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사건의 진실

정치 2014. 5. 3. 16:08 Posted by 해양장미

 이에 대해 자꾸 역사왜곡을 해대는 사람들이 많아서 좀 정확하게 이야기해볼까 한다.

 

 이 탄핵 사건은 노무현이 저지른 대표적인 잘못 중 하나였으며, 깨시민들은 이것의 진실을 왜곡하고 적반하장으로 새누리당 세력 등을 공격하곤 하는데 이에 속아 진실을 잘 모를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어째서 노무현의 탄핵소추가 의결될 수 있었는지, 노무현은 그로 인해 어떠한 결과물을 얻었는지, 그 사건이 우리 사회에 끼친 영향은 무엇일지 살펴보자.

 

 





 우선 노무현이 탄핵되었던 이유부터 제대로 알아야한다.

 

 노무현이 탄핵된 주 이유는 3권분립에 관련된 법률를 어기고 무시해서다. 이는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도전이기에 민주주의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떤 일이 있었냐하면...

 

 당시에 야권은 분열되어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으로 쪼개진 상황이었다. 이렇게 된 데는 노무현의 책임도 컸고, 당연히 민주주의적으로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즉 민주주의가 훼손되고 있었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대통령은 선거 관련하여 특정 정당이나 인물을 공개적으로 지지해서는 안 된다는 법률이 있다. 대통령이 특정 정당을 드러내놓고 지지하는 표현을 하면 그것은 독재라는 결과물로 이어지기 쉽기에, 이런 행위는 지양되어야 한다.

 

 그런데 20042, 노무현은 두어 번에 걸쳐 공개적으로 열린우리당의 지지를 호소한다. 이는 논란거리가 있을 수 없는 현행법 위반이었고, 필연적으로 논란이 일자 33일 선관위에서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을 위반했다고 판정하고 중립의무 준수를 요청했다.

 

 상식적으로, 이런 문제가 있으면 대통령이 자중하는 게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이것이 지켜지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그 기반이 되는 룰이 무너지고 만다. 그러나 노무현은 선관위의 지침에 대하여 납득할 수 없다고 하면서 계속 열린우리당을 지지하겠다고 뻐댄다.

 

 사실 민주주의의 정의를 아는 사람이라면 노무현의 저런 행위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짓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대통령이 선거 관련 법률을 어긴 후에도 선관위의 지침을 무시하고 계속 법을 어기는 건 명백한 반민주주의적 행위다. 특히 대북송금특검과 파당으로 잔뜩 뿔이 나 있던 당시의 민주당으로서는 노무현의 언행을 용납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35, 민주당은 긴급의원총회를 소집하고 사과 및 재발방지 약속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러지 않을 경우 탄핵소추를 하겠다고 경고하고 한나라당과 자민련에 협조를 구한다.

 

 사실 노무현이 저질렀던 이 사건은 원론적으로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하는 행위였고, 당시 노무현의 통치는 매우 불안정했기 때문에 한나라당 또한 협조하기로 한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이런 경고 또한 무시한다. 사실 이는 작정하고 막나가겠다는 태도나 다름없는 것이다. 노무현이 당시 원칙을 지켰다는 노빠 깨시민들의 주장은 말도 안 되는 혹세무민이다.

 

 갈등은 순식간에 커졌고, 결국 39일에 첫 번째 탄핵소추안이 나오게 된다. 이 중간 과정에서 대통령이 법률을 지키겠다고 선언만 했어도 절대 나올 수 없는 탄핵소추안이었다. 그러나 노무현은 독재를 택했다. 분명하게 이야기하는데, 이 탄핵소추는 노무현이 형식적으로 독재를 하려 했기에 나온 것이다. 독재를 시도할 수준의 권력이 있었던 건 물론 아니지만.

 

 그러나 첫 번째 탄핵소추는 통과되지 않았다.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이 막아선 탓도 있지만, 사실 한나라당도 탄핵에 적극적이지 않았고 자민련은 아예 탄핵에 동참하지도 않았다. 의원들은 탄핵소추 시 어이없는 역풍이 불 수 있다는 걸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고, 더 나아가 이 사건을 원만하게 해결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비상식적인 것은 노무현의 태도였지, 의원들은 꼭 그리 극단적인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런데 추가적인 대형 사건이 311일에 벌어졌다. 노무현이 특별 기자 회견을 열어 그 유명한 남상국 사건을 일으켰던 것이다. 당시 남상국은 대우건설 사장이었고, 노무현의 형인 노건평에게 3000만원을 건넨 의혹을 받고 있었는데 노무현이 "좋은 학교 나오시고 크게 성공한 분들이 시골에 있는 사람에게 가서 머리 조아리고 돈 주고 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라고 말을 해버렸다.

 

 그래서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다시피 남상국은 그 날 바로 투신자살해 버렸고, 이는 그 전 해 자살한 정몽헌, 바로 한 달 전에 자살한 안상영과 겹쳐 보일 수밖에 없는 대형 사건이었다. 이 경솔하고 후안무치한 언행으로 인해 탄핵소추에 참여하지 않던 자민련도 입장을 바꿨고, 다음날인 312일에 탄핵안이 가결된다.

 

 사실 탄핵안이 가결될 때도 속사정을 보면 아주 기가 막힌다. 당시 국회의장이었던 박관용의 증언에 의하면, 박관용은 312일 당시 탄핵소추가 정말 오늘은 통과될 거라는 것을 직감하고 비록 정당은 다르지만 (박관용은 한나라당이었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극단적인 사태를 막기 위해 노무현에게 연락을 넣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당시 창원에 가 있었던 노무현은 탄핵을 막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고, 결국 탄핵 소추는 통과되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탄핵 소추는 노무현에게 엄청난 반전의 기회를 제공하였다. 이후 박관용은 당시의 탄핵소추는 노무현이 파 놓은 함정이라는 주장을 하였는데, 나는 박관용의 주장이 타당하다고 여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노무현은 어쩔 수 없이 탄핵을 맞이한 게 아니었다. 여러 번의 사과 요구를 묵살하면서 불법과 독재행위를 저질렀고, 탄핵이 통과되던 당일에도 전혀 막을 생각 없이 창원에 내려가 있었다. 박관용이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면 탄핵을 막을 수 있는 최후의 기회조차 고의적으로 걷어찬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로 노무현은 엄청난 이익을 봤다.

 

 나는 노무현이 아마도 기획하고 결과적으로 이익을 본 이 사건이 이 나라 국민들의 정서에 적잖은 갈등과 상처를 남겼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노무현이 진짜 나쁜 대통령이었다. 탄핵사건 이후 이 사회에 관용과 타협, 토론은 급속도로 사라졌다.

 

 대부분의 깨시민들은 사실 노무현이 왜 탄핵을 당했는지 모른다. 그들은 피해의식에 사로잡혀있고, ‘나쁜한나라(새누리)XX들이 착하고 힘없는노무현을 핍박했다는 그릇된 맹신을 가지고 있다. 물론 모든 광신도가 그렇듯, 그들은 열심히 포교활동을 해 댄다. 그러나 사실은 노무현이 민주주의를 침해한 것이었고 아마도 권력 강화를 위한 함정을 판 것이었다. 대통령이 3권 분립을 침해하고 독재를 시도할 때 야당이 대통령을 탄핵하는 건 바람직하고 마땅한 행위다. 이후 헌재의 판결은 총선으로 인한 국민들의 선택에 동의를 해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심지어 깨시민들은 탄핵정국을 새누리당이 주도한 것처럼 역사왜곡을 하는데, 당시 한나라당은 민주당 옆에서 도움만 준 거였다.

 

 이 사건에 대해 소위 진보(라고 쓰고 노빠 깨시민 아지트라고 읽는) 사이트에서는 근래에도 다음과 같이 놀고 있다.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bestofbest&no=144674&s_no=144674&page=1


http://bbs3.agora.media.daum.net/gaia/do/story/read?bbsId=K161&articleId=394192


http://www.clien.net/cs2/bbs/board.php?bo_table=park&wr_id=26632785

 


 솔직히 한숨이 나온다. 정말 왜곡하고 포장하는 것도 어느 정도다.

 

 저들에게 노무현은 신앙의 대상이다. 그러니까 민주주의보다 중요한, 독재를 해도 상관없는 존재다. 그에 나는 항상 말한다. 깨시민은 광신도’, ‘파시스트라고. 그들은 노무현의 집권기에도 파시즘을 보이며 무차별적으로 모두를 공격했고, 야권 내에서도 많은 비판이 나왔었으나 지금까지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노빠 파시스트들이 인터넷을 장악한 이후 우리 사회에서 생산적이고 온건한 모든 토론이 실종되어버렸다. 낙인찍기와 신앙간증이 소위 진보 커뮤니티에 가득하고, 그 반대에 서있다는 일베야 그냥 정화조 같은 곳이니 말할 가치도 없다. 노무현 정권이 저질렀던 온갖 반민주주의적인 폭압 또한 그들의 깽판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나는 시민들이 파시즘을 경계하고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이 사회의 시민으로 상식적인 일일 것이다. 문제는 파시스트들이 민주주의와 역사를 왜곡하면서 수호자인양 굴고, 실제로 수호자주의를 이 사회에 도입하려고 여러 번 노력하고 있다는 데 있다. 일단은 본문을 통해 역사왜곡을 바로잡는 데 조금이나마 일조해보려 한다.

 

 

 나는 한 때 안철수에게 일련의 기대를 품었으나, 그는 나를 철저하게 실망시켰다. 그리고는 민주당의 다운 그레이드 버전 정당을 만들어 버렸다. 대략적인 내용은 알고 있었지만, 그들의 강령/정강 정책을 보자면 그들에게 기대라는 걸 품을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강령을 보면 뭉뚱그려서 좋은 말만 적어놓은 것 같지만, 수준 이하인 것만 몇 가지 인용하면서 비판을 해보겠다. 인용 부분은 파란 글씨다.


 

 

<대의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의 결합>

 

 정치인들만의 정치로 전락하는 위험성을 노정하고 있는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직접민주주의의 요소를 가미할 수 있도록 시민과 이해당사자들의 참여와 개방을 통한 협의제 민주주의를 보완적으로 추구한다.

 

: 여전히 야권은 직접민주주의 운운하는 뻘짓을 반복하고 있다. 내가 안철수를 한 때 지지해볼까 했던 주된 이유는 최장집의 합세였는데, 결국 내치더니 역시나 최장집의 이론과는 완벽하게 반대로 가고 있다. 직접민주주의? 노무현 정권과 개혁당-국참당이 망했던 길을 다시 한 번 반복하고 싶은가. 겪고도 배우는 게 없으니 바보다.

 

 

2. 경제

 

 공정한 시장경제질서 하에서 혁신과 함께하는 경제로 번영하는 국가를 만든다. 정부 주도의 양적 성장이라는 낡은 방식에서 벗어나 저출산고령화 및 경제의 세계화에 적극 대응하고 저성장과 양극화를 해소하는 혁신적 경제운용 패러다임을 구축한다. 공정한 시장 질서를 확립하고 정부의 과도한 개입을 방지하며, 양극화와 불평등을 해소하여 국민 모두에게 혜택이 골고루 돌아가는 경제민주화를 실현한다. 민간의 창의와 혁신을 극대화함으로써 역동적인 혁신경제를 뒷받침하며, 서민을 보호하고 중산층을 튼튼하게 하여 정의롭고 더불어 잘사는 경제, 사람이 중심인 경제를 만든다.

 

 

<공정한 시장경제>

 

 경제주체들간의 공정한 시장경제를 확립하고, 경제력집중의 폐해를 시정한다. 재벌 소유지배구조 개선, 금산분리 강화, 부당내부거래 해소 등 재벌개혁을 추진하며, 불법적 경제행위에 대한 징벌을 강화한다. 약탈적 금융으로부터 금융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를 정비하고, 독립적인 소비자보호기구 설치 등 금융감독체계를 보완한다. 소비자 존중의 경제운영과 소비자 주도의 개방형 혁신을 활성화한다. 지하경제를 양성화하여 세금탈루를 막고, 공평과세 정의를 구현하며, 계층세대 간 조세부담의 형평성을 확립한다.

 

: 이 글을 보는 당신이 만약 이 정강이 좋아 보인다면, 당신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이해가 아예 없거나 신자유주의자다. 위와 같은 주장은 신자유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미화시키며 표현하는 전형이며 심각할 정도의 신자유주의적 발상들을 포함하고 있다. 이것에 대한 포스트를 따로 작성한 적이 있으니, 지난 포스트 허울 좋은 경제민주화 사기극 (링크)를 참조하시길 바란다.

 

 

<경제의 안정적 운영 및 위기관리>

 

 나라 곳간이 국민경제의 마지막 보루라는 점을 명심하여 국가재정의 건전성을 확보한다. 불안정한 국제금융질서와 금융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금융산업에 대한 감독과 규제를 강화한다. 또한 가계부채의 급증에 대해 체계적이며 적극적으로 대응한다.

 

: ‘국가재정의 건전성에 대해 우선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신자유주의자다. 다른 나라들이 불경기를 극복하기 위해 국가빚을 늘리면서 지출을 하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부채비율이 낮은 한국은 국가재정의 건전성부터 챙길 입장이 아니다.

 

  

 이 외에도 지적하자면 지적할 게 많지만 정말 한심한 것만 찾아서 비판하였다. 이게 진짜 심각한 문제인 게, 도저히 강령의 앞뒤가 안 맞는다는 것이다. 새민련의 강령은 과정과 목표를 같이 언급하고 있는데, 도저히 그 과정으로는 그 목표를 이루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위에 언급한 <공정한 시장경제> 바로 다음에

 

<혁신적 성장 경제>

 

 세계화와 정보화의 급격한 진행으로 지식, 정보, 지역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으므로 자율적, 분권적으로 경제주체와 부문을 새롭게 연결하고 융합함으로써 생동하는 경제를 만들고, 창의적 인재양성과 정보기술 강화로 성장 잠재력을 극대화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기업가 정신을 고양하고, 벤처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발전하는 성장사다리를 만들어 기업가와 기업이 생동하는 혁신경제의 주체가 되도록 한다. 중산층과 서민들의 소득을 향상시켜 내수활성화를 도모함으로써 기업이 살아나고 일자리가 늘어나는 고용친화적 성장을 이룬다.

 

 이런 내용이 들어가는데, 보고 있자면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좋아 보이는 말만 써 놓으면 단가 싶다. 바로 위에서는 정부가 개입 안함같은 식으로 말해놓고, 밑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정부가 시장에 참 많이 개입해야 겨우 될까 말까 할 만한 걸 적어놓으면 어쩌자는 건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내가 항상 하는 말이 야권은 철학이 없다는 거다. 정권을 노리는 사람들이라면, 정부가 어디에 얼마만큼 개입할 건지 계획을 세워놔야 한다. 그런데 새민련은 도대체 생각이라는 걸 안 하는 것 같다.

 

 복지 부분을 보면 더 가관이다. 온갖 좋은 말만 가져다 써놓긴 했는데, 위에는 정부 재정은 건전하게 만든다고 하고 복지 부분을 보면 돈 엄청나게 들 것 같고, 정부 재정확충은 어떻게 할 지 말도 없고 또 위에 보면 자영업자는 살리겠다고 하고 밑에 보면 최저임금은 올리겠다고 하고. 도무지 책임감이라는 게 있는 건가 싶다. 거기에 내수 활성화같은 목표까지 적어놨으니, 참 다 이룰 수 없는 목표를 너무 많이 써 놨다.

 

 솔직한 감상으로는 이 정도 정강이면 사기를 치는 것에 가깝다. 무슨 만병통치약 광고 보는 기분이다. 사실 안철수가 옛날부터 이래오긴 했는데, 강령까지 이런 식으로 만들면 어쩌자는 건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들이 집권하면 어쩔 건지는 대략 감이 온다. 전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사회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해가 없고, 중간 중간 엄청나게 신자유주의적인 언급이 있는 거 보면 안 봐도 뻔하다.

 

 야권은 노무현 때 이미 엄청난 신자유주의 굴착을 해댔다. 그런데 그런 오류들에서 도무지 배우는 게 없다. 애초에 남탓만 할 줄 알지 자기반성이 없고, 공부도 안 하는 족속이라는 건 알고 있는데 안철수는 한 술 더 뜨는 것 같다.

 

 새정치 하겠다는 족속이, 지들이 정의라는 족속이 이러면 정말 곤란하다. 만약 이들이 정권을 잡는다면 시민들은 더욱 큰 정치적 실망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최소한의 철학과 개념이라도 있다면 이 모양 이 꼴로 정강을 만들지는 않는다.

 

 본문을 마무리하면서 식견 있는 진보주의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새누리당 싫다고 이런 정당을 지지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요즘 야권이 솔직히 어딜 봐서 진보인가? 그리고 새누리당보다 딱히 실질적으로 나을 건 뭔가? 미련하고 광신적인 파시스트들이 야권에 계속 힘을 실어주고 광신적으로 실드를 쳐대면서부터 야권은 철저하게 망가졌다. 고쳐서도 못 쓸 지경이 된지 오래니, 사실 쳐다도 안 봐주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안철수는 한 술 더 뜨는 인물이었다.

 

 정치는 책임을 져야 하고, 철학이 있어야 하고, 문제를 직시해야 하며 해결책을 제시해야한다. 그리고 민주적이어야 한다. 야권이나 광신적인 야권 지지자들은 이 중 아무것도 없다. 그들은 새누리당보다 더 신자유주의적이고, 진정성 또한 모자라며 더 반민주주의적이다.

 

 

어디서 못된 것만 배운 안철수

정치 2014. 3. 6. 13:07 Posted by 해양장미

 내가 한 때 안철수에 대한 유보적 지지를 보낸 주된 이유 중에 최장집이 있었다. 시작부터 안철수는 국회의원을 200명으로 줄이겠다는 등의 어이없는 발언을 했지만, 최장집과 같이 간다면 그런 뻘소리는 더 이상 없을 거라 기대했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최장집과 갈라졌고, 그 이후의 행보를 보면 도저히 성공하기 힘든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근래 안철수가 도마에 올렸던 것 중 하나가 공천문제다. 정당이 공천을 하지 않겠다는 건, 국회의원을 200명으로 줄이겠다는 발상과 별 다를 게 없다. 안철수는 민주주의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모자라고, 존중도 없다. 그리고 어디서 못된 것만 배웠다.

 

 민주주의는 너무 많은 오해를 받고 있는 시스템이다. 현행 민주주의 시스템은 정당을 기반으로 한다. 그런데 소위 개혁적이라는 인물들이 정당의 힘을 와해시키며, 직접적으로 국민과 소통하고 여론을 수렴하겠다는 식의 언행을 펼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이런 건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 부족과 오만에서 나오는 것이다.

 

 도시에서 출발한 초기의 민주주의와는 달리, 현대의 국가 단위 민주주의는 너무 큰 대상(Nation)을 다룰 뿐만 아니라 너무 전문적이고 복잡한 걸 다루고 있다. 그렇기에 현대의 민주주의는 전문가 집단과 안정적으로 고용된 정규직들(공무원)을 기반으로 한 체제를 구축하고 있으며, 여기에 국민들이 선거로 뽑은 지도자를 앉혀 전문 관료집단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사회를 운영하게 된다.

 

 정당이 필요한 이유는 더 나은 정치인을 선별하고 육성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정치가 쇠락하지 않으려면 항상 새롭고 유능한 정치인들이 배출되어야 하며, 성공적인 회사가 그렇듯 정치인 또한 정당한 노력을 통해 더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은 새누리당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제대로 된 정당이 없는 상황이다. 민주당은 이합집산을 반복하며 전통을 잃어버렸고, 젊은 당원들을 키워낼 만한 상황도 아니며 입당 지원자도 별로 없고 실질적으로 정치 자영업자의 협회처럼 전락해버린 지 오래다.

 

 정당에서 공천권을 빼자는 건 곤혹스러운 발상이다. 유능한 지도자가 지휘하는 정당이 유능한 정치인들을 발굴해서 시민들에게 소개하는 게 정상이다. 그것은 마치 유능한 소믈리에가 와인을 추천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니들 알아서 고르세요.’는 좋은 서비스가 아니다. 소믈리에가 괜히 있는 게 아니듯이, 정당인들도 아닌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새로 좋은 정치인을 발굴할 수 있단 말인가.

 

 정당의 올바른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선 정치인들이 바른 길을 걸을 수가 없다. 어떻게든 나서서 이름을 날리고 시민들의 눈도장을 찍어야만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정당이 힘을 잃고, 구심점이 되지도 못한다면 정치인들은 정당을 이용하려 들 뿐이다.

 

 어리석은 실패한 실험들이 현재의 망가진 민주당을 만들었다. 새누리당이 그나마 현재의 위용을 갖추고 있는 것은 위기를 극복할 만한 뛰어난 지도자가 있었고, 조직이 와해된 적이 없으며 이상한 실험을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많은 야권 지지자들은 민주당이 더 민주적이라 착각할지 모르겠지만, 훨씬 완성도 높은 민주주의 시스템을 가진 게 새누리당이고 그래서 새누리당이 선거 승률이 좋은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너무 많은 야권 지지자들이 민주주의에 대해 개념을 못 잡고 단단히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깨시민들이 그리도 파시스트처럼 구는 거고. 뭐가 민주주의고 뭐가 수호자주의고 뭐가 파시즘인지, 뭐가 뭔지 아예 개념을 못 잡거든.

 

 안철수는 최장집에게 아무 것도 배우지 못했다고 본다. 정치에 대해 아는 것도 없으면서 고집만 부리니까 최장집이 떠났으리라. 안철수에게서 어떠한 진보성을 찾을 수 있는지, 어떠한 새정치를 찾을 수 있는지 나로서는 더 이상 모르겠다. 수많은 이들이 빠졌던 함정에 안철수 또한 빠진 것이다. 이게 다 공부를 안 해서, 뭐가 옳고 그른지를 구분하지 못해서 그렇다. 안철수가 의술이나 프로그램은 알겠지만, 정치에 대해 무엇을 알겠는가. 결국 그는 올바른 말을 무시하고, 어디서 못된 것만 배워서는 그를 도우려던 사람들까지 배신해 버렸다.

 

 현재 안철수가 제시하는 구조로 통합신당은 성공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운이 좋아 집권을 하더라도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릴 것이다. 정당으로서 구심점이 제대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때 잘 나갔던 열린우리당이 무너지는 데는 6개월로 충분했다.

 

 

 


깨시민 파시스트들의 특성과 위험성

정치 2014. 2. 17. 12:29 Posted by 해양장미

 한국에서 깨시민 - 광신 노빠 - 은 가장 정치적으로 위험한 집단이다.


 그들은 대세후보를 잠재우고 자신들의 대선후보를 내세울 정도의 정치적 힘이 있고, 굉장히 광신적인데다 본인들을 선이라고 믿는, 제법 철저한 파시스트다. 그들의 파시즘은 몇 줄로 요약할 수 있는데,


1) 우리는 선이고, 너네는 악이다

2) 우리가 하면 착한 FTA, 착한 신자유주의, 착한 조문. 니네가 하면 나쁜 FTA, 나쁜 신자유주의, 나쁜 조문.

3) 우리가 이기면 위대한 국민, 국민의 승리. 우리가 지면 국민이 멍멍이 새끼. 또는 부정선거.

4) 우리는 옳다. 그러므로 국민의 선택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를 선택하면 옳은 선택. 저쪽을 선택하면 틀린 선택. 민주주의 따위 중요하지 않음. 그렇지만 우리야말로 민주주의의 화신.

5) 우리를 비판하면 일베충. 바로 사상검증 들어감. 이명박, 박근혜 욕해보라고 시킴.

 

 이런 사람들이 변호인 천만 관객 동원하고, 멀쩡하고 착한 척을 하니 위험 그 자체. 이들의 사고구조는 철저한 파시스트에 가까우며, 지극히 반민주주의적이다. 민주주의는 근본적으로 국민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들은 자신들이 평범한 국민보다 더 ‘깨어있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며 자신들과 다른 사고방식을 인정하지 못한다.


 이들이 이렇게까지 저열해진 데는 여러 이유가 있는데, 당연히 처음부터 노무현 정권과 그 지지자들이 이리 망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노무현이 정말 정치를 잘못하면서 차츰 사람들이 떨어져 나갔고, 결국 가장 기회주의적이거나 광신적인 사람들, 또는 너무 순진하거나 매우 느슨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만이 남았던 것이다.


 노무현이 집권하던 시점까지는 모든 과는 노무현의 것이었다. 당시 노무현의 지지율은 어차피 바닥이었고, 결국 노무현이 고건 발목을 잡고 열린우리당은 붕괴하면서 대선은 해 볼 필요도 없는 것이 되었다. 대통령이 한나라당 경선에서 결정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런데 상황반전은 이명박 집권 이후 이루어진다. 어쩌다보니 광우병 촛불시위가 불이 붙었는데, 처음에는 별거 아니었지만 이명박이 대응을 너무 잘못했고 이때가 기회다 싶었던 이명박 반대자들이 다 나오면서 문제가 엄청나게 커졌다.


 아마 당시 상황은 이명박이 한 번이라도 직접 나와서 ‘날 믿어 달라.’고 했거나 재빠르게 나서서 ‘국민의 목소리를 귀담아듣겠다.’ 정도로 이야기했다면 금방 별거 아니게 끝났을 것이다. 그런데 당시 정부가 했던 거의 모든 행동은 오히려 문제를 키우는 방향이었고, 이후 리먼사태까지 겹치면서 이명박 정부는 바로 난항을 겪게 된다.


 이명박은 그리 확고한 지지층을 가진 대통령이 아니었기에 문제는 심각했다. 광신적인 노무현 지지자들이 이명박 반대 분위기를 몰고 갔고, 실제 이명박 정권 또한 부족한 면이 많았기에 사태는 크게 악화되었다. 이후 이명박 정권은 노무현의 비리를 수사하지만, 노무현이 자살하게 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닫는다.


 사실 노무현 집권 이후의 대북특검이라거나 이인제에 대한 수사, 현대를 향한 온갖 공격 등에 비하면 노무현에 대한 비리 수사는 별일도 아니었다. 노무현 본인은 어땠을지 몰라도 - 수사가 중단되어서 아는 사람만 알 것이다. - 권양숙이나 노건평, 이광재 등은 확실히, 또는 거의 확실하게 비리가 있었고 충분히 클린한 정권이라 할 수 없었다.


 노무현 사후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에게 부채의식을 가지게 되는데, 그 부채의식은 대체로 정치에 대해 별 관심이 없던 사람들에게 생겨났다. 그 틈을 파고들어 수많은 사람들이 혹세무민을 시도하면서 지극히 광신적이고, 노무현 정권에 대해서 온갖 환상을 가지고 있는 깨시민들이 양산되게 된다.


 특히 이들의 온라인 커뮤니티 장악은 심각하였다. 이러한 장악은 노무현 집권기부터 시작되었고, 다분히 조직적이었다. 아무리 대형 커뮤니티라도 잘 조직된 수십 명만 있으면 정치적 분위기를 충분히 한 쪽으로 몰고 갈 수 있다. 이들은 노무현 정권 당시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에도 상당한 압력을 넣었고, 노무현 사후 보다 더 극렬하게 활동하였다. 활발한 활동으로 운영진에 올라가 편향적인 커뮤니티 운영으로 확고한 정치 편향성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애초에 ‘깨어있는 시민’이라는 말 자체가 자신들은 깨어있으며, 민주주의는 제대로 피어나보지도 못하고 위기 아래 있으며, 깨어있는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지켜야 하며 타자는 계몽이 필요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물론 이것은 심각한 착각이다. 이미 민주주의는 거의 완성되었다. 혁명도 더 이상 필요하지 않고, 민주주의는 각자의 다른 입장과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겨루는 제도에 가깝다는 걸 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민주주의의 역사와 실제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의 모습들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고, 상상 속의 ‘평등하고 공정한 사회’를 이룩하는 것을 민주주의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좋게 보면 유교식 철인정치론자, 나쁘게 보면 파시스트가 되었으며 그 경향은 나쁜 쪽으로 점점 흘러가고 있다.


 그들은 처음부터 충분한 지성을 갖추지 못했다. 지성을 갖춘 이들은 초기 노사모에는 많았을지 몰라도, 금방 빠져나가 다른 정치세력에 합류되었고, 그 틈을 노려 한 자리 챙기려는 이들이 남아 감성적인 혹세무민을 계속하였기에 ‘깨시민’은 반지성주의적 공감대에서 탄생하였다 봐도 무방하다. 그들의 광신성이나 배타성에도 그럴 만한 기반들이 있다.


 깨시민 의식이 지니는 온갖 문제들은 한국의 문화적 결함과 공교육의 단점에서 출발한다. 그들은 대체로 민족주의적이고, 도덕주의적이고, 계급 갈등이 있다고 생각하며 한국이 공정하지 못한 나라고, 충분히 민족주의적 정의를 채우지 못한 그릇된 역사 위에 서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노무현 정부가 너무나 많은 ‘관용’을 보였기에 실패했다는 잘못된 공감대가 있어서, 타자에 대한 관용이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상당한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대단히 공격적이다. 또한 한국인들이 가진 한의 정서라거나 화병, 질투심, 유교적인 성군에 대한 동경 등도 모두 강하게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이들은 본질적으로 집단주의 및 도덕주의적인 우익이며, 잘 체계화된 사상을 가진 게 아니고 서로 모순된 관점을 복잡하게 가지고 있기에 어떠한 문제 해결책을 만들어내기가 대단히 어렵다. 현실 속에서 이들은 조직적이지도 관용적이지도 못하고 각자도생할 수밖에 없고, 현실적인 문제해결책을 내놓지 못하다보니 점점 더 도덕주의적이 되어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친노 그룹이 결코 도덕적으로 완벽한 것은 아니기에, 깨시민들의 지지성향은 점점 더 광신적이 되어가기 쉽다. 그들의 도덕주의에 대한 이야기는 지난 포스트, ‘도덕적인 깨시민들의 반민주성에 대하여 (링크)’ 에서 다룬 적이 있으니 참고하길 바란다. 


 대체로 깨시민들은 정치철학이나 경제학, 그리고 한국 근현대사 등에 대해 지식이 심각하게 부족하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고등학교 수준에서 많은 것들이 머물러있고, 그 이후에 지식을 습득하려는 노력을 안 하는 건 아니지만 그들의 이너서클 내에서만 떠도는 지식을 습득하는 경우가 많아 그릇된 지식체계를 형성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이따금 그들에게 보다 나은 지식을 전달하려는 이들이 있지만, 그들의 오만과 배타성은 타자를 밀어내고 낙인찍고 사상검증하기에 바쁜 게 현실이다. 워낙에 감정적이고, 자신이 가진 지식과 가치관을 의심해보는 태도가 없다 보니 확증편향이 상당히 강하기도 하다.


 이들은 전혀 도덕적이지 않지만 도덕주의적이고, 역사에 대해 잘 모르지만 본인들이 올바른 역사의식을 함양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굉장히 멀지만 자신들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수호자라 생각한다. 그리고 착한 사람, 개념인으로 자신을 포장하고 본인 스스로도 그렇게 믿기에 수많은 사람들을 혹세무민하고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타자를 공존의 대상이 아닌 퇴치의 대상이라 여긴다. 또한 결코 자신들이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은지, 그것을 위해 어떤 방안을 선택해야 할지, 그 과정에서 나올 수 있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애초에 그런 수준이 못 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민주주의는 아주 좋은 제도라서, 이들은 현실 속에서 좀처럼 승리를 거두지 못한다. 깨시민들의 심각한 배타성과 공격성, 그리고 후안무치함과 무식함은 그들이 왜 정치적 성공을 거둘 수 없는지를 잘 보여준다. 소통을 들먹거리면서 언제나 최악의 불통을 보이는 게 그들이기도 하다.


 이제 이들의 전성기도 거의 다 지나가고 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실체를 깨닫고 있고, 트위터도 예전 같지는 않다. 안철수가 새로운 대안 세력으로 떠오르고 있으며, 그의 우유부단함이나 정치적 미숙함은 다 감안하더라도 일단 그는 네거티브를 일삼거나 배타적이지는 않다. 이젠 증오와 적대의 정치도 어느 정도 접을 때가 되었다. 조율과 타협이 없다면, 그것은 올바른 민주주의가 아니다.


 괴물이 되어버린 깨시민이지만, 그들은 결국 ‘이상적인 군주를 뽑아, 더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고 싶은’ 사람들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민주주의를 이해하지 못하기에 민주주의의 적이 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이 복잡한 사회에서 철학자 왕은 있지도 않고, 설령 있다 해도 일반 국민들이 그것을 고를 수 있는 능력은 없을 뿐더러 정말 잘나고 착한 사람은 굳이 정치를 하지 않는다.


 깨시민들의 의식은 본질적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우려와 적대로 점철되어있다. 그들은 시민들이 올바른 대통령을 선택할 수 없다고 믿기에, 보다 ‘깨어있는’ 자신들이 지도자를 골라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전제는 애초에 망상일 수밖에 없고, 무의식중에 저렇게 생각할지언정 본인들 스스로도 저렇게까지 문제를 의식화하지는 않기에 그들은 타자에 대한 온갖 저주와 증오만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극단적 파시스트가 되는 것이다. 특히 깨시민의 파시즘은 노무현에 대한 신격화 및 무조건적인 그리움과 애정을 동반하기에 더더욱 위험하다. 고인이 된 정치인을 신격화시키고 지속적으로 미화하는 건 지극히 반민주주적인 행위임을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집권 이후, 김대중 정부의 모든 통치행위는 IMF시대라는 명분 아래 가려졌다. 수많은 개혁진보 세력은 IMF를 극복하고 노무현 정권이 들어설 때까지 자신들의 이념적 선택을 충분히 드러내기가 어려운 면이 있었다. 그래도 ‘재벌을 개혁한다.’는 명분은 유지되었던 것 같다.


 당시 개혁진보 세력은 자유주의 세력과 사회주의 세력의 연대 형태에 가까웠다고 본다. 둘은 재벌과 과거 군사정권식의 발전 모델에 대한 적대감으로 엮여 있었다. 참여정부의 각종 정치적 선택에 크고작은 영향을 줬다고 추정하는 자유주의자들은 군사 정권이 한국에 너무 많은 부패를 만들었기에 큰 문제를 가지고 있으며, 재벌이 소유한 각종 특권들을 빼앗고, 기업 지배 구조를 소위 ‘선진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이 움직임은 이미 노무현 집권 이전 소액주주운동부터 시작하여, 근래의 경제민주화까지 이어지는 것 같다.


 그런데 막상 노무현 정권 자체는 자유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니었다. 퇴임 이후 노무현이 밝힌, 현재는 사라져버린 그의 항변에 의하면 그가 따른 이념 체계가 따로 있었던 것 같다[각주:1]. 그나마도 취임 시기부터 단일한 노선을 잡은 것은 아니고, 충분히 잘 검증된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여기서 사상이라는 것은 통치자로서 가져야 할 정치철학 및 사고방식을 의미한다.


 노무현 본인은 자신을 역사의 과오를 바로잡고, 새로운 미래를 여는 대통령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노무현 지지자들과 노무현의 공통점은 기존 군사정권과 한국식 문제점들에 대한 적대감이었다고 본다. 노무현이 대중적 인기를 잃는 가운데서도 소위 노빠들에게 지속적이고도 열광적인 지지를 계속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적대감을 충족하는 데는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모습을 계속 보였기 때문이라고 본다. 비록 그것은 이성적인 통치행위라고 보긴 어려웠지만.


 그런데 실제로 노무현의 통치가 성공적이었냐 하면 그것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노무현 정부는 총체적인 실패를 거듭했고, 거의 완벽하리만큼 민심을 잃었다. 노무현 정부의 과오를 적자면 여기서부터 몇 페이지를 할애해도 모자라다. 시기별로 차이는 있지만 한 때 노무현을 좋아했던 사람들 중 대부분은 노무현에게서 어떤 형태로든 이탈하였다. 문제는 남은 세력이 굉장히 광신적이었다는 데 있다.


 노무현과 친노세력을 선으로, 한나라당-새누리당과 범보수세력을 악으로 규정하려는 행위는 굉장히 일반적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그런데 문제는 이건 논리적 근거를 가지지 못한, 전형적인 편 가르기 행위인 동시에 광신 종교적인 양상을 띤다는 데 있다.


 만일 새누리당과 조중동, 그리고 삼성이 단순한 악이라면 당연하게도 노무현 역시 악이 된다. 노무현은 대북송금특검, 사학법 투쟁 등 여러 번에 걸쳐 한나라당의 편을 들었을 뿐만 아니라 대연정까지 제의했다. 또한 중앙일보나 삼성과도 굉장히 가까웠고, 중앙일보 회장 홍석현을 주미대사로 임명했을 뿐만 아니라 삼성 문제가 터졌을 때도 삼성 편을 들면서 노회찬과 대립했었다. 이런 행위들은 당시에 수많은 노무현 지지자들을 이탈하게 했었지만, 광신적인 비호세력 쪽이 더 입심이 강했었다. 그리고 노무현의 죽음과 함께 이 광신성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었다. 기묘하게 좋은 쪽으로 포장되어서.


 이명박 대통령이 민주주의 국가의 지도자로 정치력이 부족했던 것은 맞다. 그는 여러 번에 걸쳐 반대 세력이 힘을 얻을 만한 빌미를 제공하였다. 자살한 전 대통령의 이름과, 슬픔 속에 명을 달리한 것으로 보이는 전전 대통령의 이름이 반대파의 구심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사실 한동안 드셌던 Anti MB 연대는 생산적인 사상을 가지거나 뚜렷한 대안을 가진 게 아니었다. 죽은 노무현은 신격화되었기 때문에 생전에 저질렀던 과오와 잘못들은 묻혔다. 광신적인 지지자들은 여러 곳에서 목소리를 높였고, 반론과 반성을 제기하는 자들을 ‘알바’로 매도하고 비아냥거리곤 했다. 이 매도와 비아냥은 지금도 어디서나 일상적이다. 다만 ‘알바’라는 말이 ‘일베충’이나 ‘국정원 직원’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과거 한 때 자칭 진보개혁 세력은 토론에 적극적으로 응하고, 더 나은 사회적 대안을 찾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그런 시대는 오래 전에 끝났다. 이성적인 이들은 더 이상 친노세력을 지지하지 않는데, 인터넷에서 친노세력과 적대하게 되면 금방 ‘일베충’같은 소리를 듣는다. 소위 깨시민들이 공공연하게 일삼는 비아냥과 매도, 광신성은 도를 넘은 지 오래고 토론이나 논의 자체를 불가능하게 할 정도다. 이로 인해 인터넷은 같은 비아냥과 매도에 능한 일베충 등과 친노세력이 각종 세뇌와 선전을 일삼는 각축장이 되었다.


 혹자는 사람들이 보수화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과거 소액주주운동을 하던 자유주의자들을 기준으로 할 때는 단순히 붙는 Tag가 바뀐 게 맞다. 한 때 진보 소리를 듣던 사람들이 그 태도 그대로 살면서 보수로 이름이 바뀌었다. 전성기에 친노세력은 근본적으로 단일 이념집단이 아니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얽혀 있었다. 그리고 그 중 사회주의적인 자들이 결국 노무현 사후 주도권을 잡았다고 보는 것이 옳다. 자유주의자들은 한 때 다수가 MB로 갈아탔지만, MB는 자유주의자들을 실망시켰다. 물론 갈아탔던 건 자유주의자들뿐만은 아니었다.[각주:2]


 금융위기 이후 정치권의 언어들은 보다 왼쪽으로 이동했다. 이 과정에서 사회주의자들은 친노세력의 언어와 사상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그러나 이런 언어들과 관념들이 어떠한 현실성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세력을 유지하고 키우기 위해 보다 인기에 영합하는, 자극적인 말들이 나돌아 다녔고 반 MB 정서는 이런 자극적인 말들과 잘 융합되었다. 그러나 그 한계는 결국 본선에 가서는 분명해졌다. 현실적인 이야기에서는 약할 수밖에 없는, 반성도 회고도 없는 사상누각의 이념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자칭 진보개혁세력은 진실을 보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여전히 자신들만이 옳고, 자신들만이 민주주의를 대변하며 과거의 과오들은 저 멀리 치워 놓는다. 보편적인 시민들은 과거를 대하고 반성하는 면에서도 오히려 박근혜 대통령이 낫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지지율은 많은 것을 말해준다.


 냉정하게 이야기해서 진보세력은 김대중 이후 빠른 속도로 낙후되고 고립되었다. 한 때 진보세력에 포함된 것으로 인지되던 비교적 유능한 사람들은 거의 다 떠났다. 그들은 박근혜 대통령에 만족하거나, 안철수를 지지하거나, 아니면 다른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또는 이 모두를 동시에 할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도 박근혜 대통령에 만족하고 있지만 새누리당에 제 2의 박근혜가 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기에 대안 또한 찾고 있다.


 진보개혁세력이 나아질 여지가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좀 어려운 면이 있다고 본다. 무엇보다도 깨시민들의 안철수 견제가 너무 강하다. 그리고 새누리당은 장기집권을 위해 계속 깨시민과 일베충이라는 적대적 공생집단을 계속 안고 갈 수가 있다. 깨시민이 날뛰는 한 새로운 대안 개혁세력이 힘을 얻는 게 쉽지 않다. 그들의 광신성과 비아냥과 매도를 이겨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새누리당이 본선에서 그들을 꺾는 건 결코 어렵지 않다. 모든 면에서 상대 자체가 안 된다. 절대적으로 불리했던 탄핵 정국에서도 당시 한나라당은 나름 선방하면서 의석을 따냈었고, 그 다음부터는 친노세력을 상대로는 불리하건 유리하건 간에 일방적인 승리를 따냈다.


 첨언하자면 민주 공화정에서 정치인이란 숭배의 대상이 되어서는 매우 곤란하다. 정치인은 기본적으로 탐욕스럽고 언제든 변할 수 있다고 전제해야 한다. 그러나 노빠 깨시민들은 이 기본 원칙을 너무 심각하게 어기고 있다. 사실 내가 생각하기에 노빠들이 원하는 정치 제도는 일종의 전제정이다. 그들은 왕을 섬기길 원하며, 친노 왕가가 지속되기를 원한다. 노무현에 가깝냐 아니냐가 그들이 정치인을 판단하는 기준이다. 또한 이들은 민주주의라는 구호를 전면에 내걸지만, 실제로는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고 선거 패배를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들은 대통령 후보를 안철수에서 문재인으로 바꿔버릴 정도의 힘이 있다.


 한편으로 근래의 정치권 모습을 보면 누가 진보고 누가 보수인지 도저히 모르겠다. ‘박근혜정부’는 고용률을 높이고, 정규직 4만명 늘리고, 재벌 총수들을 입건하고, 각종 산적해 있는 사회 문제들을 해결하는 가운데 증세를 통해 현실적으로 복지를 늘리려 하고 있다. 게다가 이민자 문제, 여성 문제 같은 데도 새누리당이 더 진보적이다. 솔직히 박근혜정부는 미국으로 치면 공화당 정부보다는 민주당 정부에 가까워 보인다. 그런데 한국 민주당은 도대체 뭐하는 정당인지 모르겠다. 그나마 차별금지법 입법한다 했을 때는 조금 좋게 보려고 했는데, 반대에 좀 부딪쳤다고 패기도 신념도 없이 패망 정당 인증하는 것처럼 그냥 접어버리고, 증세안에는 세금폭탄이니 뭐니 하면서 일단 반발부터 하고, 이민자 문제나 여성 문제 등은 아예 안중에도 없어 보이고, 고용률을 늘리는 방안 같은 건 꿈도 못 꾸니 하는 짓 보면 어느 쪽이 과연 진보인가? 싶다. 혐오스러운 깨시민들은 걸핏하면 저소득층이 어째서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거냐는 식으로 비아냥거리지만, 도대체 친노세력이 서민을 위해 해준 게 얼마나 있는지부터 먼저 묻고 싶다.



이어지는 부연글 : 자유주의자의 변화와 노무현의 영향 (클릭)




  1. 당시 ‘민주주의 2.0’이라는 홈페이지에서 퇴임 후 노무현이 잠시 직접 활동했었다. 이 과정에서 심상정 의원과의 참여정부에 대한 토론이 있었는데, 조금 진행되려는 와중에 노무현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면서 중단되었고, 이후 그의 투신으로 다시는 재개되지 못했다. 개인적으로는 노무현은 민족주의, 국가주의, 중상주의 정도의 노선을 가진 것 같다. [본문으로]
  2. 다양한 국면에서 바라볼 때, 노무현 정부는 이명박 정부에게 스스로 바톤을 넘겼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지만 노무현 정부는 반쯤 노골적으로 고건의 출마를 막고, 정동영의 발목을 잡았다. 또한 노건평과 이상득 간의 밀약이 있었다는 썰도 공공연했다. 개인적인 추론으로는 만약 2008년에 이재오가 낙선하지 않고 촛불시위가 그리 커지지 않았다면, 그리고 노무현이 자살하지 않았다면 많은 상황이 변했을 것이다. [본문으로]

노무현 정신, 탈권위의 역설

정치 2011. 6. 1. 22:50 Posted by 해양장미



 혹자는 노무현 정신 중 하나로 탈권위를 들 것이다. ‘탈권위는 주된 노무현 정신이다.’ 라는 명제는 이것이 실제로 참이냐 거짓이냐를 떠나서, 명제 자체의 추상적 이미지가 보편적으로 존재함에는 대부분 동의할 수 있을 거라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일단 이 명제를 참이라고 가정해 보자. 그런데 그렇다면 현 시점에서 이 탈권위라는 정신의 가치는 친노 진영에서 어떻게 실현되고 있을까? 정리하자면 친노는 탈권위적이냐는 질의다.


 결론부터 말하면 완전히 No. 세상에 이렇게 표리부동하게 권위적인 집단도 드물겠다. 노무현교는 종교가 되어있고, 그 교주는 유시민이며, 근래 그의 권위가 흔들리는 바, 차기 교주 후보로는 문재인이나 김두관이 지명되고 있다.


 그들에 대한 옹호나 신앙은 무조건적이다. 정치는 행위와 결과로 나타나는 현실임에도, 이 신흥 종교의 신자들은 신앙과 심정적 윤리를 강조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유시민이야말로 깔끔하고, 진정성이 있고, 옳고, 윤리적이고...’


 사실 이는 약간의 거리를 두고 생각하면 정말 어이가 없는 현상에 불과하다. 아이돌에 대한 열광이야 그것이 윤리적으로 옳건 그르건 그건 그러라고 만들어진 존재니 그럴 법하다고 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인을 우상으로 삼다니, 그야말로 ‘민주 정치의 타락’ 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현명한 시민이라면 정치인은 정치인으로 취급해야 한다. 정치는 아름답지 않을 때가 더 많은 현실이고 정치인은 감시와 견제가 없다면 언제든 변질될 수 있으며, 민주주의 사회의 정치인은 기본적으로 권력을 탐하는 존재이다. 또한 정치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고, 정치가는 항상 관료 집단과 타협해야하며 언제나 조직이 필요하다. 그리고 규모가 있는 정당은 현실적인 체계 및 체제임에도 이런 현실은 쉽게 무시당한다. 더 나은 정치인을 뽑는 건 민주주의라는 체제 내의 바람직한 가능성 실현이지, 혁명적 행위가 아니다.


 자유민주주의의 본질적 속성 중 하나를 이득을 위한 평화적 대립과 (권력 획득을 위한) 경쟁, 그리고 권력의 시간적 유한성이라 정의할 수 있다. 이 측면에서 볼 때 현 정부는 그 윤리성에 대해서는 비난할 수밖에 없지만, 자유민주주의라는 기본적인 틀에는 큰 손상을 주지 못한다. 이명박 정부는 가장 핵심적인 지지 세력에게는 이익을 보장하는 편이고, 그것은 실리적인 관계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지지자는 대부분 이명박이 자신에게 이득을 가져다 줄 거라 생각할 뿐이다. 어지간해서는 이명박을 메시아처럼 숭배하지는 않는다. 그러기엔 그림 속의 예수처럼 꽃미남도 아니고 불상처럼 인자해 보이지도 않으니까.


 노무현의 사망과 이명박 정부의 실정은 과격한 분노를 종교화시켰다. 그 분노와 맹목성은 실제로 파시즘의 재현이며, 절대적인 권위를 갈망한다. 그리하여 작은 비석 하나만 세우고 아무도 원망하지 말라던 노무현의 유고는 철저하게 무시되고, 노무현은 노리스도가 된다. 민주주의적 열정은 허공에 흩어지고, 분노는 쉽게 가학성을 보인다. 그 결과 노무현 정신은 온데간데없이 그 이름 세 글자만 남아 분열의 뿌리, 신종 파쇼 종교가 탄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