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상회담 폐지론과 대한민국 파시즘

사회 2014. 11. 2. 17:20 Posted by 해양장미

 신해철의 느닷없는 타계로 인해 조금 덜 회자되고 있는 것 같긴 합니다만, 지난 월요일 방영되었던 JTBC프로 비정상회담BGM으로 일본 국가인 기미가요를 틀은 것으로 인해 일련의 사회적인 파장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번 사건을 파시스트들이 궐기한 또 한 번의 사건으로 보고 있으며, 개인적으로는 한국 파시즘이 그 세를 잃지 않고 유지되는 중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한 사건이 되었습니다. 한편으로 이 사건은 대한민국 파시즘의 개성적인 특징이 드러난 경우라는 생각도 듭니다.

 

 우선 개인적으로 비정상회담의 본 편은 보지 못했으나, 기미가요 BGM에 대한 사견을 밝히자면 큰 문제 없다입니다. 한국에서 기미가요를 트는 것은 불법이 아닙니다. 90년대에는 모든 일본 음악을 트는 것이 불법이었으나, 그러한 반민주적인악법은 김대중 대통령의 치세에 사라졌고 이제 기미가요를 트는 것은 각자의 자유입니다.

 

 물론 역사적 관점에서 한국인이 기미가요를 싫어하는 것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긴 합니다. 그러나 각국의 국가를 정하는 것은 해당 국가의 권리입니다. 그로 인한 불이익을 감수하는 것 또한 해당 국가의 몫이고요. 한국은 일본 국가가 기미가요인 것에 대해 항의를 하고 자국에서 그것을 공식적으로 방송하지 못하도록 규제할 수 있으나, 그런 규제는 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실 국가(national anthem)는 대체로 폭력적이고 국가주의적인 내용이 많고 (우리 한국 애국가 같이 평화로운 가사는 좀 드뭅니다), 나라끼리 역사적으로 악연을 쌓기 쉬운 만큼 특정 나라의 국가(national anthem)에 악감정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타국에 대한 악감정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이미 한국은 기미가요의 방영 등을 금지하지 않기로 정한 상황입니다. 이것에 대해 각자가 동의하건 동의하지 않건, 현 시점에서 이는 세계적 표준에 부합하는 우리 사회의 규칙이며 사적으로 이 규칙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일단은 규칙을 존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규칙을 갈아엎고자 하더라도 일단은 규칙에 대한 존중이 필요합니다. 또한 '비정상회담'은 모토 자체 중 하나가 세계인의 화합이기도 하고요.

 

 저라고 일본이 기미가요를 국가로 쓰는 것에 대해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일본 내에도 류큐인, 자이니치 등이 있는 만큼 기미가요를 국가로 삼는 것에 불만을 품고 있는 사람이 많고, 개인적으로는 기미가요를 국가로 제정하는 일본이 대단히 한심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본 내 문제입니다. 한국 입장에서는 항의를 할 수는 있지만, 그 이상의 내정간섭을 하긴 어렵습니다.

 

 현실적으로 우리가 처한 진짜 문제는 우리 국가 내부의 파시즘입니다. 일본이 기미가요를 국가로 쓰건 어쩌건, 그건 기분이 나쁜 정도지 한국에게 실질적인 피해를 입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한국의 파시즘은 그런 가벼운 문제가 아닙니다. 공격성과 무관용으로 대표되는 이런 반민주성 및 극우성은 우리 앞에 놓인 미래를 진짜로 어둡게 만듭니다.

 

 저 역시 어떤 사람들이 기미가요를 방송한 것에 대해 불쾌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이해합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할 사람이 나올 것이라는 것도 이해합니다. 비록 그런 행위가 극우적인 행위라는 것은 이야기 해야겠지만요. 그러나 사과를 넘어 폐지를 요구하며 맹렬한 공격성을 드러내는 것은 파시즘입니다.

 

 한국의 이런 파시즘은 비단 이번만의 일이 아닙니다. 황우석 줄기세포와 심형래 디워사태는 한국 파시즘의 대표적인 사례들이었습니다. 이젠 대다수의 사람들이 황우석 사태를 흑역사로 받아들입니다만, 그런 사건이 일어나게 된 문화 및 대중심리 구조가 크게 개선되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한편으로 이러한 한국 파시즘의 현장에는 언제나 깨시민들이 있었는데,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 번 본 블로그에서 이야기해왔듯, 파시스트들이 자칭타칭 진보로 불리는 게 21세기 한국의 너무나도 불행한 자화상입니다.

 

 비정상회담 제작진이 기미가요를 튼 것에 일본제국주의 찬양이나 식민통치에 대한 찬양의도가 있었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실제 기미가요가 뭔지, 어떤 건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굳이 모두가 알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합니다. 알아봐야 기분 나쁘기만 한 일이고, 딱히 그 이상의 현실적인 문제는 없는 사안이니까요. 또한 심지어 (그럴 가능성은 없겠지만) 제작진에게 설령 일제를 찬앙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가정하더라도, 이러한 과격하고 공격적인 인민재판은 자유민주정체국가의 국민에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적어도 바람직하지는 않지요.

 

 만약 TV에서 기미가요 트는 게 보고 듣기 싫으면, 그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만들자고 주장하고 행동에 나서면 됩니다. 물론 그것은 다분히 극우적인 사고방식이고 조처라는 건 미리 이야기해야겠고, 저는 그러한 자유민주정의 적들에게 관대한 태도를 가질 생각이 없기도 합니다. 자유민주정의 핵심 사상인 관용은 오직 불관용만을 적대합니다.

 

 또 이야기해야 할게, 관용 없이 공격적으로 구는 파시스트들이 과연 특별히 애국하는 마음에서 그러는 걸까요? 전 그건 아니라고 거의 확신합니다. 그보다는 불평불만을 쏟아내고, 공격할 만한 대상을 찾은 것에 가까울 테지요. 세금 조금 더 걷는다고 투덜거리고, 조금만 나라가 마음에 안 들어도 이민 가겠다고 하던 그 사람들이 가장 파시스트같이 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애국과는 거리가 먼 불만분자들이라는 거지요.

 

 그리고 저는 이 깨시민 파시스트들이 TV에 탈북자가 나올 때 북조선 애국가 (제목은 한국 국가와 동일하게 애국가입니다만, 다른 곡입니다.) BGM으로 나온다면 결코 기미가요와 같은 반응을 보이지는 않으리라 예상합니다. 실제 북조선 애국가를 트는 건 기미가요와는 달리 불법이 될 확률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저야 북조선 애국가를 틀건, 기미가요를 틀건, 한국 전쟁 당시 한국군과 연합군에게 엄청난 피해를 끼쳤던 중국의 국가 의용군 행진곡을 틀건 그것이 우리의 이 사회와 자유민주정체에 대한 명백하거나 심각한 위협이 되지 않는 한 각자의 자유로 일단은 존중한 후, 그 뒤에 제 판단과 주장을 펼칠 것이지만 말입니다.

 

 파시스트들이 유독 기미가요에 심각한 거부감을 드러내는 이유는, 파시즘 심리에는 극우적 민족주의가 반드시 섞여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교육받고 자란 한국인들은 거의 예외 없이 우익 민족주의 교육을 받고 자랐고, 문화 또한 집단주의적이기에 파시즘에 물들기 쉽긴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타인을 존중하고 중용의 미덕을 지킬 필요가 있으며, 대화와 타협을 우선해야 한다는 교육도 같이 받았습니다. 이 사회가 잘 돌아가려면 무엇이 우선일까요?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만, 기미가요가 방송에서 가끔 나온다 해도 별 문제는 없습니다. 그러나 파시즘이 한국에 매번 넘실대는 건 이야기가 전혀 다릅니다. 뭐가 진짜 문제인지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또한 일제시대에 대한 역사교육도 보다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시각에서 좀 더 잘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합니다. 일제시대는 단순한 독립운동의 시대도, 일본이 단순히 미쳐서 한국을 수탈하던 시대도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 시대에도 사람들은 각자 생존을 위해,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했고 그런 각각의 삶들이 모여서 역사가 되었습니다. 전체주의집단주의민족주의국가주의적 사관과 교육 체계는 그 시대의 실상을 전혀 알려주지 않습니다. 실제 파시스틱하게 구는 사람들을 보면, 대체로 역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하거나 매우 편향적인 정보만을 취합하고 있는 걸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 저는 이번 사건에서 한국 파시즘에는 한국 특유의 문화적 결함이 크게 작용하고 있으며, 매우 계승되기 쉬운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한국의 여러 요건이 파시즘이 발달하기에 제법 좋은 토양이 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강화되었습니다. 실제 파시즘은 여러 국가에서 융성했었는데, 각 국가마다 개성적인 모습으로 전개되곤 합니다.

 

 다행히 한국 파시즘은 아직은 초기단계를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심화될 수 있는 여지는 있고, 심화되고 결국 집권을 해낸다면 매우 나쁜 결과가 있을 것이라 봅니다. 미리 무엇이 파시즘인지를 사람들이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파시즘을 어떻게 방지할 수 있는지도 알아야 합니다. 관용의 적이 관용을 압도하게 되면, 그 사회는 매우 쉽게 집단화되고 결국 파시즘이 꽃피기 쉬운 조건이 됩니다. 관용과 이해가 많은 사회가 좋은 사회입니다. 그런 사회를 만들려면 애국의 탈을 쓰고 완장을 차고 극우적 관점으로 타인을 공격하는 게 파시즘임을, 그리고 파시즘이 얼마나 위험하고 왜 나쁜지를 보다 더 널리 알릴 필요가 있겠습니다.

 

 

 개인적으로 강성 야권 및 깨시민 파시스트들의 큰 사상적 문제 중 하나로 사회갈등 자체가 불러오는 위험성을 간과하는 경향을 꼽고 싶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절대선의 위치에 놓고, 선한 자신들이 권력을 잡아야 만 한다고 규정하는 가운데 그것을 위한 모든 사회갈등은 민주주의는 본래 이런 것이다라는 식으로 합리화시킵니다.

 

 그들이 대한민국 정치판의 한 주류로 부상한 이후,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보여온 태도는 끊임없는 갈등의 촉발과 공격이었습니다. 그들이 모두를 공격하는 가운데 온건하고 이성적인 사람들은 침묵하게 되었고, 시민 사회와 언론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많은 것이 황폐화되었고, 황무지 위에 극단적인 반대세력이 출몰하였습니다. 갈등은 갈등을 부르고, 악은 악을 부릅니다. 세상에 서북청년당 재결성이라니, 강성 야권의 업적은 정말 대단합니다.

 

 돌이켜보면 참 안타깝습니다. 고 김대중 대통령은 자신을 해치려 한 자들도 용서하고, 사회 통합을 위해 애썼습니다. 노무현 정권이 자신의 세력에 칼을 꽂았을 때도 그는 용서했습니다. 그러나 김대중의 그러한 정신을 이은 사람은 보이지 않습니다.

 

 굳이 말할 필요가 있나 싶지만, 서북청년단 재결성 같은 소리가 나오는 건 가볍게 보면 안 됩니다. 서북청년단은 역사적인 비극이라 할 만한 범죄 집단이고, 그런 집단이 부활하는 것은 인류의 보편적 기준에서 용인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민주적인 관점을 떠난 것입니다. 민주정체가 아니라 귀족정이나 왕정일지라도 그런 집단은 용인해서는 안 됩니다

 

 새누리당은 서북청년단의 재결성을 적극적으로 막고, 자유민주정체 국가의 집권여당으로서 품위를 지키고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꼬인 정국을 쉽게 돌파하기 위해 악의 손을 잡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저는 현재 새누리당이 제정신과 균형 감각을 상실한 면이 있다고 봅니다. 서북청년단을 결성하려는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그 배후에 새누리당 차원의 지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뭘 만들고 뭘 어째도 어지간해서는 별 사고는 못 치겠지만, 결코 현명한 방식이 아닙니다.

 

 만일 서북청년단 같은 게 진짜로 활동하면 강성 야권과 깨시민들도 더더욱 과격한 언행을 보이게 될 것입니다. 그들의 파시즘적 속성도 다음 단계로 본격적으로 진화해 사회 갈등은 더 첨예해지고, 보다 위험한 사회가 될 확률이 높습니다. 집권여당은 국민을 통합시키고 평화로운 사회 분위기를 조성할 의무가 있다는 걸 상기해야합니다. 만일 그런 의무를 지키지 않는다면 새누리당의 미래도 결코 밝지 않을 것입니다.

 

 현재의 한국은 민주정체가 아닌 입헌주의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입헌주의가 전제하는 시민적 자유와 정의, 인권을 추구하는 정신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시민적 자유란 무엇이든 해도 되는 무질서함이 아니고, 서로의 권리와 시민권을 존중하고 나의 권리와 시민권을 지키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서북청년단의 재결성은 입헌적 질서에 대한 도전이자 체제에 대한 반역입니다.

 

 사실 서북청년단 재결성 같은 어이없는 소리가 나올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의 시민 각자에게 입헌적 질서의 혜택이 충분히 체감되고 있지 못하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강성 야권은 이명박 집권 이후 정권에 대한 반대만을 반복하며 대안적 가치를 제시하지 못했고, 이번 국회에 들어서는 국회선진화법과 더불어 아예 입법마비를 일상화시키는 가운데 시민들에게 큰 고통을 전가하였습니다. 또한 야권에 보다 가깝던 광범위한 시민 사회와 진보 정치권은 민주당계 정치권에 포섭되고 반MB에 매몰되어 와해되다시피 하였고, 노무현 사후 야권 언론도 너무나 변질되어 언론으로서 전혀 제 기능을 못하고 있습니다. 87체제는 실패했고, 신자유주의와 IMF, 글로벌 금융위기 등으로 인한 침체와 불황은 우리의 국가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악조건은 시민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쉽게 합니다. 강성 야권과 깨시민들은 이러한 악조건의 조성에 너무나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앞으로 더 큰 비극이 출현할지, 아니면 우리 사회가 위기를 이겨내고 다시 희망을 가질 수 있을지는 하기 나름입니다. 계속 나쁜 선택과 사건들이 이어진다면, 우리는 또 한 번 역사에 비극적인 기록을 쓰게 될 지도 모릅니다.

 


 안철수의 몰락과 함께 야권의 몰락은 선명하게 가시화된 현상이 되었습니다. 안철수가 야권의 몰락을 부추겼다고 할 수는 없고, 야권은 이미 몰락했는데 안철수의 인기와 그 기대가 잠시 몰락의 가시화를 덮어왔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저는 본 블로그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야권의 문제를 짚어왔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제가 한 이야기들은 결코 충분하지 않습니다. 야권은 수십 년 동안 굉장히 복합적인 과정을 거쳐 현재의 모습이 되었고, 그것을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을 뿐더러 지면도 많이 필요한 일입니다. 한편으로 실제 야권의 주 지지층은 20~30대인데, 평균적인 20~30대가 현재의 야권이 왜 이리 지리멸렬한지를 알기는 좀 어려운 게 현실이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최근에 야권에 편입되었기에 편향적인 자료만을 보고들은 경우가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현 시점에서 야권이 처한 가장 큰 위기 요인을 사상과 인물로 봅니다. 이 중 인물 - 인재 수급 - 의 문제는 몇 번 이야기해왔는데, 사상의 문제는 그들이 민주정 지지자가 아니다라는 표현 외엔 아직 충분하게 이야기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걸 설명하려면 무엇이 민주정인지, 무엇이 민주적인 것인지를 설명해야 합니다. 사실 여러 번 이야기한 것이지만 한국은 민주정이 자생적으로 발달한 게 아니고, 이승만에 의해 이식된 후 그것이 규범화된 민주정 발달 과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한국인의 평균적 기층 심리엔 본래 민주적인 것과는 다분히 거리가 먼 요소들이 적잖게 포함되어있고, 더 나아가 거의 예외 없이 민주정에 대한 이성적, 정서적 이해가 부족합니다. 야권 구성원 및 지지층만 이렇다는 게 아니고, 이 나라 사람들이 대체로 다 그렇습니다.

 

 다만 결정적인 차이는 양쪽의 지향 방향에 있었습니다. 현 여권의 성향을 단일하게 규정하는 것은 어려우나, 여권은 대체로 서구적 근대성과 그 강함을 더 동경하였고 미국이나 서유럽의 많은 것들을 닮으려 애썼습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자유민주정체를 채택한 국가였지요.

 

 여권이 수용한 서구적 가치는 교회를 통해 전파된 면도 많습니다. 이 과정에서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유주의가 전파되었고, 이 자유주의적인 경향은 민족과 국가, 집단을 우선하던 사회 분위기에서도 특유의 사익 추구 성향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개인성입니다. 여권의 권위주의 이면에는 개인주의가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여권의 개인주의가 다분히 이기주의적이긴 합니다만, 그것이 결국 여권을 어느 정도 민주적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민주성은 나의 입장 및 이해관계와 너의 입장 및 이해관계가 다르다는 데서 출발합니다. 만일 국가 같은 특정 사회가 단일한 방향으로 움직일 때, 나와 네가 모두 동등한 이익을 누린다면 민주성은 굳이 필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지요. 사실 많은 시민들은 내 분야를 벗어난 것에 대한 이해가 심각하게 부족합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정체는 서로 다른 입장, 이해관계, 사고방식을 조율할 수 있습니다. 선출권력의 기한 자체를 제한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민주정의 장기적인 성공확률은 다른 정치체제에 비해 높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익은 단순하게 금전적인 것이 아니고, 감정적이고 정서적인 것 모두를 포함합니다.

 

 이렇게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서로간의 반복을 줄이며 타협을 해 나가는 세월이 쌓인 결과 결국 여권은 민주정을 체화하였습니다. 비록 보수적인 꼰대에 권위적이긴 하지만, - 아마 다른 나라를 보고 배우지 않았다면 그런 문화에서 자체적으로 민주정이 탄생할 수는 없었겠지만 - 그것이 민주정의 틀을 벗어나는 경우는 이제 별로 없습니다. 이는 사실 그 나름대로의 공화정 탄생 과정이나 다름없습니다. 생각과 감정이 따르지 않더라도 습관에는 이미 민주성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야권은 좀 다릅니다. 본래 민주적인 기반이 없고 권위적이던 건 여야가 마찬가지였습니다만, 여권이 서방 세계의 근대성을 향해 진보하는 동안 현 야권의 기반이 되는 운동권 세력은 민족주의와 공산주의, 사회주의, 심지어 주체사상에도 많은 눈길을 줬습니다. 여기서 포인트는 공산권 치고 독재 안하는 나라가 없다는 겁니다. 공산주의라는 게 나의 판단이 이 사회에 최선이며, 그 반대자는 악이라는 전제를 깔거든요. 합의가 바로 안 되는 악에는 강한 폭력성을 용인하는 게 공산주의이기도 합니다. 또한 운동권은 미제와 각을 뜨자면서 상당히 강한 민족주의적 색채를 보이며 본인들을 마치 독립운동가의 후예인 양 여기기도 했습니다.[각주:1] 당연히 이런 과정에서 개인성이나 민주성은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다만 겉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실질적으로는 충분한 주체성을 가지지 못한 게 야권의 잠재의식이라는 건 차후에 기회가 되면 논하겠습니다.

 

 결국 매 순간 여권이 지금 어떻게 해서 권력과 이권을 얻을(지킬) 것인가를 고민하는 동안 야권은 우리가 옳고, 우리가 정당하니 이길 때까지 싸우자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사람은 각자가 옳다고 생각하는 게 다르기 마련이고, 또한 아주 쉽게 내가 옳고 남은 그르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 성향이 제어되지 않으면 꼰대 답정너가 되는 거고요. 더구나 정치적으로 이런 부류는 이익에 초연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서로 간에 대화와 타협이 있기 어려워지는 상황이 많이 발생합니다. 또한 사람이 저렇게 생각하더라도 어쨌든 본능적으로 내 이익은 알음알음 챙기기 마련인데, 주변 사람 이익은 진짜 안 챙겨주다 보니 결국 인망을 잃기 쉽습니다. 괜히 여권보다 야권의 분열이 잦은 게 아닙니다.

 

 결국 민주정이라는 건 야권에겐 일종의 규범이자 정의일 뿐입니다. 민주정 그 자체, 정확히 말하면 국민주권론에 기반한 87 대의민주정 체제를 야권은 진심으로 수용하고 그것에 충실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일단 민주정과 규범(도덕), 그리고 민주정과 정의는 서로 온전히 일치하는 가치가 아닙니다. 장기적으로 민주정은 사회정의에 일조할 가능성이 높습니다만, 그게 단기적으로도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더구나 보수적이거나 전통적인 규범과 민주적 가치 및 결과는 충돌할 때가 상당히 많습니다. 야권의 본질적인 문제는 이런 사상의 모순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데 있습니다. 심지어 제대로 인지하지도 못하지요. 뭐가 민주적 문제인지 뭐가 정의인지 어떤 게 규범적 문제인지도 제대로 이해를 못 하고, 더 나아가 누가 바른 말을 해도 인정을 못 하는 경우가 일상다반사입니다

 

 위에 이야기한 것들을 조금 풀어보면 이렇습니다. 여야 둘 다 모두 자생적으로 민주정을 발달시킬만한 정서적문화적관습적 기반은 원래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권은 자유민주정체를 도입한 국가들을 모방하는 가운데 각자의 이익을 조율하며 민주정을 체화시켜 나간 반면, 야권은 민주정과는 거리가 있는 쪽에 눈길을 주면서 급진적으로 각자의 생각을 내세우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문제 수위는 스스로 문제 진단도 안 되는 정도고요.

 

 이에 대한 제 결론은 현재의 야권은 가망이 없다는 것입니다만, 그래도 이유는 알고 문제를 파악해야 향후 야권의 빈자리를 채울 다음 세력에게 미래가 있습니다. 여권처럼 지름길을 가지 못한다면 자생적인 사상의 발전이라도 있어야 합니다. 지지자들을 포함한 야권이 가장 우선적으로 살펴야 하는 것은 이 지점입니다. 개인적으로 이것은 가장 온건하고 느슨한 야권 지지자들의 몫이라 생각하고요. 중도층과 새누리당의 느슨하고 온건한 지지자들과 연대할 필요가 있기도 합니다. 정치세력을 단 둘로 나눈다면 좌/, 진보/보수가 아니라 온건/과격으로 나눠야 한다는 게 제 사견입니다.

 

 그럼 야권이 어떤 매커니즘으로 반민주적이 되는지를 살펴봅시다. 야권의 사상적 뿌리를 살펴보면, 사실 야권은 진정한 의미에서 보수주의적인 정서를 강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보다 더 (융화된 형태나마) 서구 지향적이었던 여권 지지층과 약간 대조적입니다. 본 블로그에 여러 번 이야기했듯 경제정책도 야권이 더 보수적이고요.

 

 지금까지 온전히 유지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야권 식 보수주의는 주로 민족주의적이고 전통적 가치라고 판단되는 것을 (상대적으로) 더 중시하는 것이었습니다. 실제 처음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청년층에게 야권이 더 지지를 얻는 주된 이유로 이것을 꼽아야 합니다. 아주 기본적이고도 교과서적이고 성장 과정에서 체화된 윤리적 가치관을 야권이 더 잘 만족시켜주는 것으로 보이기 쉽다는 것입니다. 다만 이것이 야권이 더 윤리적이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여권 지지층은 대체로 야권 지지층과는 다른 유형의 윤리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고방식이 좀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치학적 연구 결과로 증명되었고, 그렇기에 야권 강성들의 말도 안 되는 선악 프레임이 현실에서 통할 일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정서 위에 야권은 위에서도 이야기했듯 민주정을 도덕적 가치로 덮었습니다. 여기서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한데 민주정체, Democracy~ism이 아닙니다. 이 번역과정에 문제가 있어서 민주주의로 번역한 게 많은 이들에게 문제를 야기했습니다만, Democracy는 인민에 의한 지배를 의미하며 정치 시스템을 지칭하는 어휘입니다. 본래 이 민주정체는 중세 이후 상공업자들의 자치도시들이 시행하던 통치형태였는데 - 괜히 민주정체 인민을 '시민'이라고 하는 게 아닙니다. - 근대에 민주정체가 근대국가단위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리퍼블리카니즘(공화주의)과 리버럴리즘(자유주의)이 중요한 역할을 했고 보다 근현대에 어울리는 형태로 점차 체계화됩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민주정은 정치 시스템으로 어떠한 가치 자체를 의미하는 게 아니고, 어떠한 가치를 추구하기 위한 수단이자 도구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추가적인 설명을 위해 과거로 돌아가 유럽 근대사를 살펴보자면 보수주의자들은 민주정에 반대했고 자유주의자들은 민주정에 찬성했고 사회주의자들은 시민권이 보편적으로 확장된 민주정을 지지했습니다. 저 때 보수주의자들이 민주정에 반대한 건 민주정이 보수적 가치를 훼손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사회주의자들이 시민권의 범위를 확대해야한다고 생각한 건 그것이 사회주의 구현에 이득이 될 거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민주정의 의미에 대해서도 바른 성찰을 해낼 확률이 높습니다. 민주정은 정의도 자유도 공공선도 도덕도 평등도 번영도 아닙니다. 그런데 야권 세력은 예로부터 민주정을 저런 가치들과 혼동하였고, 교조화시켰으며 그 흐름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굉장히 나쁜 결과를 낳았고 지금도 낳고 있지요.

 

 결국 민주와 정의, 도덕을 혼동한 멍청한 야권은 민주성의 확대 그 자체를 선하고 옳은 것이라 생각하게 됩니다. 김대중이 대통령을 하던 시기까지는 그래도 리더가 있고 조직이 있다 보니 이 멍청함이 수습 불가능한 문제가 되지는 않았는데, 이후 당내-직접-참여 민주주의 등이라 부를 수 있는 망상에 가까운 시도들이 야권에서 끊임없이 시도되고 결국 돌이킬 수 없는 몰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이 문제를 가능한 한 쉽게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일단 우리가 추구하는 각종 가치들은 서로의 영역에 간섭하며, 한 가치를 극대화시킬 경우 다른 가치를 침해하는 게 많습니다. 본래 세상이란 균형이 필요한 것이고, 그 균형이 크게 어긋날 경우 파괴적인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는 마치 큰 기압차가 폭풍을 불러오고 큰 전위차가 벼락 등의 방전현상을 만드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들 역시 극단화될 경우 필연적인 충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정의 VS 자유, 평등 VS 자유, 발전 VS 평등, 도덕 VS 자유 등등들 처럼요.  더 상세하게 들어가면 너와 나의 자유에 대한 인식이 다르고 정의에 대한 인식이 다르며 도덕 관념 또한 다르기에 결국 갈등의 여지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런데 본질적으로 가치가 아닌 체제인 민주정을 극단적으로 만들 경우 어떻게 될까요? 이렇게 하면 결국 민주정의 민주성 그 자체가 극단화되어 보편적 가치들을 모두 잡아먹어버립니다.

 

 민주성은 권력을 분산하고 가장 작은 단위에까지 권력을 부여하며, 외부로 권력을 나눠주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극단화되면 결국 아무런 유의미한 권력도 남지 않고, 소위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상태가 남습니다. 그런데 또 문제가 여기서 끝나지 않은 것이, 민주성은 어떠한 특정 사회에는 구현할 수 있더라도 우리는 다양한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모든 사회의 권력을 일거에 날려버릴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권력은 자연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자연성을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내가 어떤 다른 사람 A와 무인도에 표류되었는데, 내가 그 사람보다 훨씬 더 사냥과 채집을 잘 하고 각종 생존 기술에 능하다면 당연히 내가 더 많은 권력을 가지게 됩니다. 세상에서 권력 자체를 없애버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민주성의 극단화는 그것을 추종한 집단을 소멸시킬 뿐입니다. 난방 뜨습게 하려다가 집 태우고 타죽는 격이죠.

 

 물론 이런 설명은 현실적으로 민주당계에 발생한 문제들을 설명하기에 불충분합니다. 비리와 부정, 무관심이라는 요소들을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직접 민주주의 요소 도입한다고 모바일 투표 하게 되면 결국 그거 죄다 돈 선거에 부정선거 됩니다. 당내 민주주의가 심해지면 결국 나오는 결론은 온갖 암투와 음해를 동반하는 극단적인 계파투쟁이고요. 참여민주주의에 진성당원제 하겠다던 모 유망했던 정치인은 결국 정당 2번 깨먹고 평당원들 부역시키고 남의 돈 먹튀한 후 부정선거를 저지른 후 은퇴했지요.

 

 그럼 다음 차례로 깨시민들의 문제를 살펴봅시다. 사실 깨시민들은 사상적으로 야권 강경파들과 맥락을 같이 하기에 중요하게 살펴야 합니다깨시민들의 일차적인 문제도 민주정과 정의, 도덕을 구분 못하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정의와 도덕을 곧 민주성이라고 착각하고는, 그것을 강압적으로 타인에게 강요하는 데서 파시스트로의 첫 발을 내딛습니다.

 

 깨시민들이 이런 착각을 하는 데는 다음과 같은 이유도 있습니다. 민주정이라는 시스템을 구현하려면 룰이 필요한데, 이 룰을 상대 쪽에서 어겨가면서 권력을 얻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룰을 지킨다는 건 일정 이상 도덕의 문제고, 이 연장선상에서 도덕과 민주성을 혼동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룰은 사실 양쪽 모두에서 어깁니다. 원래 사람 심리가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인 면이 있는데 깨시민들은 성격적으로 이 성향이 강합니다. 그렇지만 여기까지는 그리 이상한 건 아닙니다. 문제는 이 다음부터 발생하지요.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나 도덕을 타인에게 제안하는 건 인간이 사는 과정에서 정당하고 당연한 행위입니다. 그런데 민주적인 방식은 설득, 제안, 타협, 협상, 인정, 이해, 보상, 존중 같은 것들입니다. 위에서도 계속 이야기했듯 민주정은 일종의 툴이고, 위에 나열한 방식들은 이 툴의 바람직한 세부 툴입니다. 비유하자면 민주정은 현대적인 공구 박스고, 저런 방식들은 좋은 공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깨시민들은 저렇게 민주적인 방식을 쓰지 않습니다. 그들은 상대를 매도, 폄하하고 권위적으로 윽박지르면서 이게 먹히지 않을 경우 추방하고 정신 승리하는 야만적인 방식을 씁니다. 그들은 민주정과 민주성에 대한 본질적 인식 및 이해 자체가 거의 전무하며, 그러다보니 자신들이 뭘 하는지도 모릅니다. 실제 그들의 행태는 고대 씨족사회의 전투적이고 배타적인 사람들과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물론 누구에게나 도덕과 정의는 있습니다. 원시인들에게도 있습니다. 즉 깨시민들은 민주정이라는 공구 박스는 근사해 보여서 그걸 비슷하게 만들어 들고 다니지만, 그 안에 스패너와 드라이버 및 윤활유 대신 돌도끼와 화살촉을 넣고 다니는 셈입니다. 대조적으로 새누리당 주류는 가죽 주머니에 돌로 만든 스패너라도 넣어 다니는 셈이고요.

 

 원래 세상 모든 강경파들이 자신들이 정의요 선이요 도덕이라 생각합니다. 무장 테러 단체건 독재자건 파시스트건 마찬가지입니다. 본질적으로 민주적이냐 아니냐의 차이는 그 언행 양식과 시스템에 따른 차이입니다. 그리고 깨시민들의 사고방식이나 언행은 그 어느 구석도 민주적이지 못합니다. 그들은 자신들과 다른 정치적 선택을 하는 사람들을 인정하지 못하고, 그들을 제거 대상으로 생각하고 배제하고 무의식적으로 자신들이 그들을 지배해야 한다고 여깁니다. 그들은 같은 시민권을 지닌 타자의 선택을 존중하고 결과를 인정하며 자신의 의견을 조리 있게 말하고 설득하려 노력하는 민주 시민의 기본적인 태도가 전무합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진정한 의미에서 정치 엘리트이거나 충분히 전문적인 것도 아닙니다. 민주와 정의도 구분 못할 만큼, 그리고 정의와 도덕 등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도 거의 없을 정도로 반지성적이지요. 결국 그들 또한 대중(Demos)에 불과하지만, 그들의 인식 속에서 그들은 특별히 깨어 있는대중입니다. 이런 전반적인 특성은 파시즘과 상당히 유사하지요.

 

 그런데 정말 우스운 건 거의 절대 다수의 깨시민은 초기 파시즘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고, 자신들이 파시스트라고는 상상조차 못하며 실제 적대세력을 파시스트로 낙인찍고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런 인식의 문제들은 단순히 인터넷 게시판 깨시민들에게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진짜 야권을 구성하는 주요 인물들에까지 이어집니다.

 

 사실 그러니까 선거만 하면 지지요. 아는 것도 없고 생각도 없는데 오만하고 폭력적이거든요. 그래서 종종 생각 있는 사람들이 중도적으로 온건하게 가야한다고 주장하고 나서기도 하는데, 그러면 강경파가 벌떼같이 들고 일어나서 선명야당론을 내걸고 더 싸워야 한다고 우깁니다. 그렇지만 타인의 마음을 얻을 수 없는 강경함으로 민주정에서 어떻게 이기겠습니다. 결국 지고 국민이 멍멍이 새끼라고 울부짖는 게 매번 반복될 따름이지요.

 

 어차피 이제 강경하고 무식한 야당과 깨시민들의 수명도 다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워낙 배타적이고 오만하고 권위적이다 보니 사람이 들어오지 않고, 점차 세력을 잃어가는 가운데 그 권력의 공백을 채울 무언가가 필요해질 것입니다. 물론 그 무언가는 기존의 야권 같아서는 안 됩니다. 자유, 민주, 정의, 도덕 등에 대한 통찰과 경제, 사회문제, 평등, 문화 등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설득력을 갖춘 정당이 설립되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많은 국민들은 과격하고 무식한 정치에 환멸을 느낀 지 오래고, 새 희망으로 안철수를 잠시 밀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안철수는 끝났고, 이젠 다음 희망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다음에 누군가가 성공하려면 현 야권의 문제를 먼저 되짚어봐야 합니다.

 


  1. 그래서 성공한 운동권은 캐딜락이 아닌 벤츠를 탑니다. [본문으로]

 언제나 깨시민들의 패턴은 같습니다. 선거에서 지고, 그러고 나면 잠시 멘붕하고, 멘붕을 이겨내기 위해, 그리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국개론을 소리 높여 외칩니다.

 

 그나마 온건하고 현명함이 남아있는 야권 지지자들은 슬슬 이런 깨시민의 언행 패턴이 자신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걸 깨닫는 것 같습니다만, 깨시민들을 말리는 건 어려울 겁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무의식은 근본적으로 민주정을 반대하기 때문입니다.

 

 간단히 말해보지요.

 

 깨시민식 국개론 말마따나 국민(수준)이 다 큰 강아지라 올바른 정치적 선택을 할 능력이 없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논리적인 결론은 간단합니다. 투표권 박탈하고 민주정 그만 해야죠. 제대로 선택 못 할 사람에게 정치적 선택권을 주면 나라가 망할 거 아닙니까? 특히 양당제 현실에서 깨시민들 말대로라면 새누리당은 집권할 자격이 없는 부도덕한 정당이니 당연히 민주당계가 계속 독재해야죠.

 

 깨시민들이 뭘 말하고 싶어 하는지는 명백합니다. 정리해보죠. 그들 기준에 안 맞는 사람들의 투표권은 박탈하고, 그들의 기준에서 올바른선택능력이 있는 사람들만 정치적 권한을 가지고 그들이 지지하는 정치세력이 계속 해먹어야 한다는 게 그들의 사고방식입니다. 비아냥이 아니고 그들이 말하는 방식의 논지를 계속 전개시켜나가면 이런 결론이 도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민주주의요? 그들은 남들이 민주주의가 옳다고 하니까 민주주의가 뭔지도 모르면서 그저 민주주의라 써진 간판을 들고 있을 뿐입니다. 세상에 아무리 선거 결과가 마음에 안 들어도 국개론을 펼칠 수 있는 민주정 지지자는 없습니다. 국개론은 민주정의 전제 조건을 부정하는 독재자나 제국주의 외세의 논리입니다.

 

 게다가 백날 말하듯 그들이 지지하는 정치세력은 사상도 빈약하고 도덕적이지도 않고 국민에게 희망을 주지도 않지요. 할 말이 없으니 그저 니네가 더 나쁘고, 나쁜 놈들이 뭘 해도 밀어주는 국민이 강아지고, 운동장은 기울어져있다고 징징댑니다.

 

 그런데 이 징징이 조금 더 가면 뭐가 되는지 아십니까? 민주정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민주정을 파괴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정치 형태를 내세운 결과는 역사 속에 수많은 사례가 있습니다. 물론 외눈박이 바보들이 유토피아를 건설한 사례는 없어요. 매번 현세의 지옥을 만들었을 뿐이죠. 제가 괜히 그들을 파시스트라 하는 게 아닙니다. 진짜로 초기 파시스트들하고 패턴이나 정신세계가 꽤 비슷해서 그렇습니다.

 

 물론 깨시민 개개인은 의식적으로 파시즘이 나쁘다고는 생각합니다. 민주정이 뭔지 모르듯 파시즘도 뭔지 잘 모르지만요. 또한 그들은 대체로 권위주의나 독재, 전체주의 등이 나쁘다고도 생각합니다. 실제 무의식은 권위주의에 가득 차있고, 독재를 번번이 지향하기도 하지만 의식과 무의식이 따로 논다고 봐야죠. 이런 모순이 워낙 심하기에 제가 그들을 철학도 사상도 뭣도 없다고 하는 겁니다. 주워들은 것들을 체계화시키고 자기 스스로를 성찰할 지식과 지혜가 현저히 부족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들은 대체로 충동적이고 반지성주의적이며 도덕주의적인 경향이 있습니다. 가끔 오해하시는 분들이 있어서 말하는데, 제가 말하는 도덕주의는 경직된 사고방식에 세상의 복잡성에 대한 이해가 현저히 떨어지고 근거 없이 자신이 도덕적으로 남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면서 타인에게 훈장질을 하는 꼰대인 반면 막상 본인은 도덕률을 잘 안 지키는 걸 의미합니다. 도덕주의자들이 넘쳐나는 사회엔 결코 도덕이 없지요. 또한 민주정과 도덕주의는 함께 갈 수가 없습니다.

 

 사실 역사상 수많은 철학자들이 민주정에 반대했습니다. 민주정은 분명 큰 단점이 있고, 파국으로 치달을 위험성이 상존하는 체제입니다. 그러나 민주정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민주정을 지지하는 것입니다. 민주정이 현실적으로 가장 나은 제도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필연적으로 민주정 지지자들은 민주정의 단점과 위험성을 잘 인지하고, 그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노력하게 됩니다. 정당과 관료를 기반으로 한 현대의 민주정 체계는 오랜 시행착오와 보완 과정 속에 형성되었고, 계속 보완과 개량 중에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민주정을 반대하는 것 자체를 덮어놓고 비난할 생각은 없습니다. 물론 비판과 논박은 강도 높게 하겠지만요. 그런데 깨시민들은 자신들이 민주정을 반대하고 있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고, 더 나아가 자신들을 민주주의자로 규정하다 못해 민주주의의 수호자인 양 자처합니다. 이러한 일자무식과 뻔뻔함은 진짜 위험한 문제입니다. 양심이 있다면 그들은 자신들이 민주정 지지자가 아니라는 걸 선명하게 밝혀야 합니다.


 민주정은 너와 나의 입장과 사고방식은 다르고, 대화와 타협이 필요하며 각각의 시민들은 각자 자신을 위해 장기적으로는 최대의 이익이 되는 정치적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전제 및 가설에서 출발합니다. 물론 깨시민들은 이 전제 중 그 무엇도 갖추지 못합니다. ‘내 생각은 옳고, 네 생각은 그르다. 내가 대의다. 니들과는 대화할 것도 타협할 것도 없다. 그리고 니들은 옳은 선택을 하지 못한다.’ 이게 그들이 쭉 보여 온 언행입니다. 전형적인 독재자의 궤변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국개론에 마음이 동하는 분들을 위해 첨언합니다. 민주정에서 항상 시민들이 옳은 선택을 하는 건 아닙니다. 실제로 그른 선택을 하기도 하고, 때때로 민주정 자체를 붕괴시키는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실제 박정희 유신 체제는 투표를 통해 결정되었었지요.

 

 그렇기에 민주정 지지자들은 민주정을 보다 안전하고 성공적으로 만들기 위한 고심을 오랜 세월 해왔습니다. 정당을 기반으로 한 민주정, 관료 및 각 분야의 엘리트, 자유로운 언론, 헌법과 3권 분립 등이 이런 고심 끝에 나온 안전장치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새민련은 어떤가요?

 

 일단 새민련은 정당을 기반으로 한 민주정을 충분히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그 정당엔 인력수급이 제대로 안 된지 오래고, 걸핏하면 찢어졌다 합쳤다 선거마다 군소정당과 합세하고, 계파다툼은 눈뜨고 보기 뭐한 수준이며 무엇보다도 한 정당으로서의 어떠한 가치를 공유하고 있지 못합니다. 또한 관료와 엘리트들은 새민련에 등을 돌린 지 오래고, 노무현은 3권 분립을 침해했었지요.

 

 제대로 돌아가는 민주정 체계는 시민들의 실수를 미연에 줄이고, 실수를 하더라도 그걸 극복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새민련은 이러한 안전장치를 지나치게 무시합니다. 새민련 구성원과 지지자 중 너무 많은 비율이 사실 민주정 지지자가 아니라서, 민주정에 대한 성찰과 고민이 심각하게 부족한 모습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이런 세월 속에서 과거 민주정을 지지하고 DJ를 지지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돌아선지 오래입니다. 현재의 40~50대의 평균이 처음부터 새누리당을 지지했을까요? 국개론은 민주정을 반대하기 위해 창조된 망언입니다.

 

 현실 속에서 민주정은 민감하고 감정적이거나 또는 무관심하고 단편적인 시민들과 탐욕스러운 정치인들의 상호 관계 속에서 의외로 좋은 결과를 만들어나갑니다. 민주정은 세상사의 복잡성을 극대화하고, 서로간의 피드백을 통해 성공적인 결과를 도출하는 체제입니다. 집단주의적이고 도덕주의적인 단편성으로 이 복잡한 민주정을 쉽사리 재단하려 드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도덕주의자의 결론은 언제나 독재가 되고 맙니다. 도덕을 강요하기 위해서는 독재 권력이 필요하니까요.

민주당계는 해답을 찾기 어렵다

정치 2014. 8. 4. 21:52 Posted by 해양장미

 이번 보궐선거 이후 이제야 새민련 및 야권 현실이 눈에 들어오고 앞이 캄캄해진 여러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글쎄, 그래서 저는 애진작에 야권을 버려야 야권이 산다고 말해왔는데...

 

 제 친구 하나도 그러더군요. ‘나는 민주당에 기대를 계속 가지기에 오판을 하는 것 같다.’라고요. 그래서 저는 원래 사람은 판단에서 감정을 배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니, 내가 좋아하는 쪽에 좀 더 엄격한 게 바른 판단에 도움이 된다.’ 정도로 답해줬습니다.

 

 사실 민주당계의 몰락과 답 없음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습니다. 블로그에서 몇 번에 걸쳐 말해왔습니다만, 민주당계는 인재 수급이 제대로 안 된지 꽤 됩니다. 유시민이 개혁당하고 국민참여당으로 두 번 애들 꼬셔서 말아먹고,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 아니면 창조한국당은 들어가도 민주당엔 잘 안 들어간 게 이미 15년은 된 것 같습니다.

 

 실제로 새민련 내 운동권 파벌들 소식이나 양상 보면 가관도 그런 가관이 없습니다. 냉정하게 말해 그 사람들 민주정 지지자 아니에요. 그 사람들이 말하는 민주주의는 진짜 민주주의 아닙니다. 원래 운동권 이념은 사회주의였고 거의 철저하게 군대식 문화로 투쟁하던 사람들이라, 요 몇 년 기준 유능하고 진보적인 청년들 차라리 새누리당 개혁파로 들어가고 말지 민주당엔 거의 안 들어갑니다. 한총련 패망 후 민주당에 야망 가진 성골 뉴페이스는 실질적으로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이미 유시민 국참당 시절부터 민주당은 모이면 죄다 나이 좀 있는 분들 모임이었어요.

 

 솔직히 90년대 생 진보적인 청년들하고 386, 486 운동권 사이의 정서적문화적 거리는 진짜 한 220만 광년 쯤[각주:1] 됩니다. 똑똑하고 진보적인 애들 거기 잡아다 놓는 건 불가능해요. 적어도 의식이 깨있고 권위주의를 싫어하는 청년이라면 며칠 버티기도 힘들죠. 민주당이 진보? 민주주의? 솔직히 김대중의 존재를 빼면 시작부터 그랬던 적 없습니다. 태생적으로 지주의 정당이었고, 박정희 때부터는 김대중의 정당이었고, 김대중 이후엔 민주당은 이미 끝난 것이었습니다. 노무현이 대통령이 된 것도 민주당에 김대중의 후계자라 할 만한 인물[각주:2]이 없어서였습니다. 그 땐 노무현 아니면 이인제였거든요. 사실 이인제가 더 유력했고요. 그리고 다들 알다시피 노무현은 민주당을 철저하게 부숴놨습니다. 대안이라고 나왔던 열린우리당이야 객관적으로 망한 정당이고요.

 

 민주당계가 망하게 된 배경에는 무엇보다도 철학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를 쉽게 설명하면 민주당계는 김대중의 제왕적 리더십이 민주적이지 않다고 생각했고, 경선 과정에서도 여론을 적극적으로 수렴하여야 하며 보다 시민참여형의, 직접민주주의 요소를 도입한 정치 체계가 옳다고 생각하게 된 것[각주:3]입니다.

 

 그런데 이는 사실 민주정에 대한 무지와 반지성주의, 그리고 운동권 특유의 사회주의적 발상에서 비롯된 오판이었습니다. 야권 정치인들 및 지지자들 사이엔 87체제 이후에도 이 체제가 진정한 민주주의의 달성이 아니고, 더 높은 수위의 민주주의를 쟁취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면이 광범위하게 있는데[각주:4] 그 흐름이 이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근현대 민주정의 현실과 논리를 무시한 몽상은 정당의 기반이 흔들리고 비리가 난무하는 참담한 결과로 이어집니다.

 

 열린우리당 붕괴 이후엔 실제 민주정 지지자가 아닌 이들이 일정한 권력을 쥐고 살벌하게 계파 다툼을 벌이면서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운동권 출신들 중 다수는 여전히 되도 않는 우월감과 선민의식이 있고, 이런 선민의식은 깨시민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내심 1당 독재를 하고 싶은데, 안타깝게도 그러지 못하고 있지요. 그저 자신들만이 권력을 쥘 자격이 있다는 종교관을 가지고, 정의의 수호자로 어필하면서 선거 때마다 선택을 못 받으면 국민이 다 큰 강아지라고 소리 높여 망언을 외쳐왔을 뿐입니다. 그런 세월이 반복되니 당연히 DJ 때부터 민주당 지지했던 사람들이 조금씩 떨어져 나가지요. 애초에 민주정을 지지하지 않으니, 민주정 체제에 적응하여 무언가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흐름을 돌이키기엔 이제 너무 늦었습니다. 안철수는 실패, 손학규는 떠나. 새민련에 어떤 혁신이나 진보가 남았을까요? 새누리당 반대하는 거 말고, 야권 비판하는 목소리 일베충이니 알바니 정직원이니 낙인찍고 욕하는 거 말고 도대체 무슨 진보적인 아젠다를 내걸고 대안과 희망을 제시한단 말입니까? ‘저녁이 있는 삶말하던 손학규는 끝났으니 이젠 없습니다. 문재인의 지난 대선공약을 다시 한 번 떠올려보면 그저 고개가 가로저어질 뿐입니다. 그런 걸 한국 제1야당 후보 대선공약이라고...

 

 되도 않는 권력추구 집단은 시민들이 나서서 끝내야 합니다. 이미 이번 보궐에서 시민들은 충분히 그 의사를 드러냈습니다. 너무나도 어리석었던 안철수가 이용만 당하다 몰락한 사례가 있으니, 이젠 어지간한 명사가 저 쪽 집단에 기웃거리는 확률은 현저하게 낮아질 겁니다. 착한 척 하는 데 속아주는 것도 일이년이죠. 안철수도 워낙 정치초짜에 뭘 모르니까 새민련 만든 겁니다. 정치 좀만 알았어도 절대 안했을 오판이었죠.

 

 아직은 박원순 등이 어찌 차기 대통령이 될 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그렇다 해도 민주당이 제대로 부활할지는 회의적입니다. 물론 발버둥의 일환인지 이번 선거 후에도 역시나 어김없이 국개론이 나오고 기울어진 운동장론이 나옵니다. 김형식 사건, 기동민권은희 등 납득할 수 없는 공천, 서갑원이나 신정훈 등 비리 전과 후보 등등을 보고 대체 뭐가 이쁘고 잘한다고 새민련을 뽑아야 한다는 건지 모르겠는데, 그저 지들 안 뽑아줬다고 국민이 수준이 떨어지네 어쩌네 민주주의의 위기네 그러는 인물도 있습니다. 솔직히 이게 사이비 종교랑 뭐가 다른 건지.

 

 일단 민주정의 기본에 대해 이해는커녕 거부감을 가진 반민주주의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보편적인 국민들은 민주정을 원하는데, 강성 야권 인사 및 깨시민들은 사실 민주정을 원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인정은 못 해도 내심 왕정이나 1당독재를 더 좋아할 겁니다. 자신들이 미는 정치인이 왕이 되면 오체투지하고 기쁨의 눈물을 흘릴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무슨 정치제도를 지지하건 개인의 자유이긴 합니다만, 저런 사람들이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인 양 거짓말을 해 대니 참으로 문제입니다.


 

  1. 안드로메다와의 거리 말입니다. [본문으로]
  2. 사실 김대중의 진짜 후계자는 박근혜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관용적인 표현이 아닌 이상 그 근거는 부족해 보입니다. 다만 김대중과 박근혜 사이가 그리 나쁘지 않았던 것은 사실입니다. [본문으로]
  3. 요약하자면 인민주권론입니다. 언젠가 국민주권 VS 인민주권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으로]
  4. 저는 이런 그릇된 인식이 87 민주정체의 정치적 실패 중 많은 부분의 주요요인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본문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일단 내 생각엔 깨시민이라는 용어는 꽤 괜찮게 잘 만든 것 같다. ‘깨시민노빠와 유의어이지만, 약간의 어감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1) 노빠라는 말의 기원을 찾자면 노사모부터 이야기해야 할 텐데, 근래 깨시민 짓하고 넷을 돌아다니는 아가들 중 태반은 노사모 전성기 시절에는 꼬꼬맹이였음.

 

2) 노무현 사망도 이미 5년 전의 사건이 되어서, 현재 친노’, ‘노빠라고 할만한 세력은 노무현 생전의 친노’, ‘노빠와는 100% 일치한다고 하기는 어려움.

 

3) 개인적으로는 정말 많은 깨시민들의 탄생과 언행이 노무현 사후 그에 대한 일종의 부채의식에서 비롯되었다고 추정함.

 

 정도를 꼽고 싶다.

 

 이런 깨시민들은 마이너리티를 지향하는 일베충에 비해 상당히 메이져한 정치집단이고, 그 활동량과 파괴성은 숫자대비 기존 한국에 있었던 그 어떤 정치집단보다도 강력하다. 그리고 그들의 정치적 성향은 학술적으로 파시즘과 상당히 가깝기 때문에, 언제든 굉장히 문제될 수 있는 집단이라 생각한다. 참고로 깨시민이라는 용어가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진 근본적인 이유는 누가 봐도 유별나게 깨어있다고 보기 불가능한 뇌내 청순함에도 불구하고 자신들만 깨어있다고 자처하였으며, 더 나아가 참으로 멍멍이같은 국민 멍멍이론을 웅변하면서 우리들이야말로 깨어있는 시민으로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다!! 같은 되도 않고 기가 막힌 선민의식을 노출증 환자처럼 노출해왔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물론 깨어 있는 시민이라는 어휘는 탄생 시점부터 깨지 못한 시민의 존재를 상정하고 차별화시키기에 반민주주의적일 수밖에 없었다.

 

 특히 위험한 것은 깨시민 교리의 파급성에 있다. 깨시민은 깨시민 교리를 받아들인 대체로 평범한 사람들이며, 깨시민들은 본인 언행의 문제점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나는 이 사회의 여러 근본적인 문제들이 젊은 깨시민들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생각하며, 파시즘의 확산을 막고 민주주의 체제의 성공을 이루기 위해서는 깨시민이 왜 탄생하고 그들이 왜 그런 모습을 보이는지를 이야기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일단 깨시민의 등장과정을 이해하려면 대선 무렵부터의 노무현 지지자들이 어떤 갈등을 겪고, 어떻게 분열되고 어떻게 지지세력이 줄어들고 종교화되어갔는지에 대한 대략적인 이해가 필요할 것 같다. 이 모든 것들에 대해 나는 본문에서 상세한 기록을 남길 생각까지는 없고, 정말 간단하게 뭉뚱그려서 이야기하자면 다음과 같다.

 

 노무현은 어린 깨시민들의 그릇된 신앙과는 달리 취임과정부터 엄청난 실정을 반복하였고, 그 실정의 총량은 감히 그 2MB각하를 상회한다고 평할 만 하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수많은 논란이 벌어지고 지지자들이 마음의 상처를 크게 입고 이탈을 반복했는데, 그 과정에서 언제나 노무현은 옳다는 식으로 광신적인 비호를 해대며, 노무현과 적대하는 모든 이들을 무차별로 공격해댄 세력이 있었으니 이들을 사람들은 노빠라 불렀다.

 

 ‘노빠들은 그들이 처음 등장한 이래 인터넷 세상에서 엄청난 화력과 단결력을 자랑했다. 물론 그들은 지금도 쉽게 찾아볼 수 있듯이 한나라당을 절대적인 악으로 취급하고 - 그땐 한나라당도 정말 엄청나게 밉상으로 굴어서 노빠들이 큰 힘을 얻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때 한나라당이 하던 짓을 근래는 야권이 하고 있다. - 한나라당이 아닌 모든 정치세력을 노빠 밑에 복속시키고자 하였다. 그 노빠의 필두라 할 수 있는 정치인은 유시민이었고, 그들은 조직적으로 움직이면서 거의 모든 인터넷 커뮤니티를 장악했다. 사실 30~40명 정도가 조직적으로 움직인다면 아무리 큰 인터넷 커뮤니티라도 장악될 수밖에 없다. 이 당시 이들의 힘은 정말 컸기에, 열린우리당 정치인들조차 이들의 눈치를 많이 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것은 파국적 결과를 낳았다.

 

 본문은 노빠의 사악함과 광기를 지적하려는 게 주목적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나치 친위대의 인터넷 버전이라 할 만 했다. 노무현이 정치적으로 워낙 실정을 거듭했고 인기를 금방 잃었기에 이 문제는 현실 속에서 크게 심각해지지는 않았지만, 대신 실정으로 인한 다른 문제들이 축적되었고, 그들과 친노 정치인들의 패악질 속에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현재의 야권은 반영구적으로 망가져버리고 말았다.

 

 깨시민들은 온갖 망상과 궤변으로 무시하는 분야이지만, 현재 30대 후반~50대 초반 정도의 새누리당 지지자들 중 다수는 과거 노무현 지지자였다. 그들은 노무현의 실정과 야권의 철학 없음, 그리고 노빠-깨시민들의 패악질에 실망하여 현 여권 지지로 돌아섰다.

 

 본 주제로 돌아가 노무현이 아직 집권하면서 실정을 거듭하고 있을 때, 이미 열린우리당 내에서도 노빠들이 파시스트 종교집단이라는 지적은 적잖게 있었으나 그 현상이 이런 식으로 진화할 거라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보편적으로 특정 정치인 추종집단의 생명은 그 정치인의 권력이 사그라짐과 함께 같이 소멸되기 때문이다.

 

 이명박으로의 권력승계는 여러 정보로 추론해볼 때 노무현 정권의 의도였지만 - 고건과 박근혜, 이명박 중 이명박을 작정하고 골랐다는 의미 - , 두 정권의 거래는 2008년 촛불정국으로 인해 파토나고 만다. 이명박 정권은 시위 자금의 출처 등을 조사하다 촛불의 주체를 노사모라 판단하게 되었고, 이명박 대통령은 노무현에게 적잖은 배신감을 느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내가 판단하기에 당시 친노-노빠 집단은 촛불정국으로 이명박 정권을 뒤흔들어 바닥까지 떨어졌던 권력을 탈환하는 데 주된 관심을 두고 있었다. (이는 결코 당시의 모든 촛불 시위대가 그랬다는 것은 아니다.) 노무현 본인은 아무 생각이 없던 건지, 다른 노빠들처럼 정치적 재기를 노리고 있던 건지는 모르겠으나 이명박 대통령의 불편을 가중시키는 언행을 반복하였다. 그리고 촛불정국으로 인한 이명박 정권의 인사 물갈이는 노무현 정권 인맥과의 핫라인이 끊기는 것을 의미했다. 당신의 혼란 속, 이명박 정권 내부의 권력 투쟁은 엄청나게 치열했다. 적잖게 복잡한 과정을 거쳐 검찰 수사가 시작되었다.

 

 자살하지 않았다면 노무현은 아마도 감옥에 갔을 것이다. 내가 보기엔 그가 포괄적 뇌물죄에서 빠져나갈 방법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그런 결과가 나왔다면 깨시민이 등장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살했고, 사회 분위기는 급변하였다.

 

 사실 그전부터 우리 사회에는 노무현에 대해 막연한 호감을 가진 이들이 많았다. 그것은 대부분 그의 단순하고 직설적인 모습 및 이미지 메이킹에서 기인한 것이었지만, 대통령을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결코 아니고 노무현의 그러한 일면은 다른 정치인들이 가지지 못한 대중적 장점이었다. 고 노무현에 대한 추모열기는 탄핵 때 이상으로 폭발하였고, 촛불시위와 노무현 자살을 계기로 정치에 관심을 가졌다는 사람이 많이 등장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위에 이야기했듯 노빠들이 만들어내는 종교적 컨텐츠를 주로 학습하게 된다. 깨시민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깨시민의 교리는 수많은 사이비 종교들처럼 기존 세상의 상식을 버리는 데서 출발한다. 그러면서도 깨시민 교리가 강력한 건 그것이 이 사회의 문화적 약점들을 더할 나위 없이 잘 공략하고 있다는 데 있다. 이 신흥 종교의 교리는 매우 잘 만들어졌기에, 평범한 한국 젊은이라면 누구나 깨시민이 될 수 있다.

 

 그들은 가장 먼저 선과 악을 구분하고, 내 편과 적을 흑백논리로 나눈다. 물론 당연하게도 내 편이 선이고, ‘진정성을 가진 노무현과 그의 후계자들이 그들의 선한 대표자가 된다. 그들의 종교관 속에서 교주는 노무현-유시민-문재인-(박원순)으로 이어진다. 교주에 대한 그들의 신앙은 대체로 종교인들이 그렇듯 굳건하기 때문에, 양떼들처럼 그들을 따라다니며 교리를 전파하게 된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정의공정’, 그리고 민주주의는 개신교의 믿음’, ‘소망’, ‘사랑과 크게 다를 게 없다.

 

 이러한 행동패턴은 사실 그리 특이할 건 없다. 인류의 원시적 특성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행동패턴이 저런 식으로 정치 집단화될 때는 그것이 현대 민주주의 체제에 전혀 어울리지 않으며, 더 나아가 대단히 위험하다는 데 있다.

 

 쉽게 이야기해보자. 민주주의는 시민이 정치 지도자를 선택하고 판단하는 체제다. 즉 이 과정에서는 회의와 계산, 그리고 재고가 필연적이다. 그리고 시민과 정치인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동등하며, 이 사회 구성원들끼리는 서로 다른 정치적 의견을 가지더라도 이해와 대화와 타협,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거나 잊어버린 기본적 윤리다.

 

 그런데 깨시민들은 이 윤리 자체를 전복한다. 이들은 자신들이 섬기는 정치 지도자를 내심 시민보다 한 단계 더 높이고, 그들을 의심하거나 견제하는 것을 거부한다. 더 나아가 이들은 자신들이 적대하는 집단을 적으로 규정하고, 자신들에게 협조하지 않는 모든 것들을 적대집단에 끼워 맞추는 모습을 보인다. 물론 그들의 적대감과 공격성은 상식을 초월한 지 오래다.

 

 그들에게 있어 다른 야권 세력은 굴복시키고 지배해야 할 대상이며, 여권 세력은 타협의 여지가 없는 제거의 대상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자신 스스로를 민주주의의 화신인 것처럼 포장하기 때문에,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모자란 사람들은 민주주의의 개념 자체에 엄청난 오해를 하게 되기 쉽다. 물론 깨시민들은 민주주의에 대해 거의 아는 게 없는 사람들이기에, 그런 오해를 확산시키는 데 쉽게 앞장설 수 있다.

 

 한국인들이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자연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구의 경우 민주주의의 역사가 오래 되었거나, 민주주의가 자연 발생했기에 그에 어울리는 문화가 체화되어있다. 그러나 한국은 민주주의가 이식된 후 그것이 규범화되었고, 규범화 과정에서 민주주의와 어울리지 않는 다른 여러 가지 기존 윤리적 관점들과 갈등을 빚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리고 깨시민 현상은 이런 아노미가 어떤 식으로 폭발할 수 있는지를 매우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충분히 민주주의적이지 않은 문화에서, 충분히 민주주의적이지 못한 교육을 받고 자라난다. 여전히 한국 문화는 다분히 군대식이고, 대화와 타협에 익숙하지 않으며 권위적이고 성급하다. 또한 쉽게 집단적 불안감을 느끼며, 무언가 근본적인 잘못됨을 곧잘 체감하지만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충분한 고민이 없다. 이에는 한국 특유의 반지성적이고 파괴적인 집단주의가 큰 역할을 한다.

 

 깨시민의 비극은 그들이 문화적 진보를 추구하는 것에 비해 실질적인 진화의 노력은 전무하다는 데 많은 것을 기원한다. 그들은 본질적으로 비이성적인데, 사람은 본래 자연 상태에서는 감정적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이성을 활용하려면 훈련이 필요한 법이다. 그런데 깨시민은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훈련이 거의 되어있지 않고, 그렇기에 종교적이며 타인 또한 종교적으로 만든다.

 

 깨시민 교리는 대부분의 종교 교리가 그렇듯 마음속의 불안감과 문제의식을 자극한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 사회는 무언가 잘못되었어.’라고 생각하고 있고, 그것 자체는 사실이기 때문에 대안을 찾고 싶어 한다. 그리고 깨시민들은 이 지점에서 그럴싸한 대안을 제시한다. 이 대안은 받아들이는 사람한테는 매우 편하다. 딱히 어려운 지식을 학습할 필요도 없고, 역대 교주들의 진정성에 대한 믿음 하나면 반쯤 끝나기 때문이다.

 

 이들이 언제나 안티질에 집중하는 이유 또한 교리 구조가 그래서이다. 이들은 기존 체제의 잘못된 점에 불안감을 느끼는 자들에게 매국노 수꼴들이 문제야!’ 라고 포교를 하는 방식으로 세력을 늘려나갔다. 물론 실제 친일 출신은 야권도 만만치 않은 정도를 넘어 더 많을 지경이고, 알고 보면 수꼴스러운 건 깨시민이 챔피언 먹을 지경이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이렇다보니 이들은 새누리당 안티질 자체에 온 능력을 집중할 뿐, 자신들이 어떠한 사회를 어떻게 만들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성찰이 거의 없다.

 

 그저 종교인들답게 그들은 이상적인 공공선을 러프 스케치처럼 대~충 상상하며, ‘깨어 있는자신들이 그 공공선을 수호해야 한다고 여긴다. 그리고 그들의 교리에서 그들의 주적인 새누리당 세력은 언제나 그 공공선을 침해하기 때문에, 기회가 될 때마다 그들을 공격하고 그들의 권력을 빼앗아 와야 한다고 여긴다. 그러나 이런 방식이 민주주의 체제에 어울릴 리가 없다.

 

 철학적 빈곤과 반지성주의는 깨시민들의 대표적인 특성이다. 이성의 등불이 밝혀진 곳에 광신이 존재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들이 상상하는 공공선은 결코 철학적 완성도가 있지도 민주적이지도 않다. 그들은 민주주의뿐 아니라 정치 자체에 대한 이해가 없기에 모든 것을 제멋대로 상상하고 재단한다. 그리고 그들이 창조해낸 종교 교리 가치관에 모든 것을 끼워 맞춘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시민들이 각자의 갈등을 조율하고, 공동체의 번영을 통해 사익을 지키려는 역사적 기원에서 출발하였다. 민주주의의 성공사는 그 현실성의 승리라 할 수 있다. 한 사회 속에서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갈등을 평화적으로 조율하는 가운데 가급적 모두의 이익을 챙기는 체제가 다른 체제보다 우월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경우 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성찰이 높은 수준이었기에, 불필요한 사회 갈등을 줄이고 마침 다가왔던 국가적 위기를 이겨내기 위해 애썼다. 비록 모든 판단을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그는 어느 정도 진정한 민주주의적 대통령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후임인 노무현의 행보는 그와는 정반대였다. 그는 불필요한 갈등을 키웠고, 사회분열을 끊임없이 야기했다.

 

 깨시민들은 김대중의 이름을 항상 팔아먹고 다니지만, 김대중의 가치관이나 정신은 손톱만큼도 이어받지 않은 거짓된 자들이다. 그들은 취임하자마자 김대중 정권을 무차별로 공격했던 노무현 정권의 종교적 추종자이며, 그렇다고 노무현 말은 잘 듣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들은 근본주의 종교집단답게 민주주의에서 필요한 화합과 타협 자체를 근본적으로 거부한다. 노무현이 사악한 세력을 너무 봐줘서죽었다는 망상과 피해의식에 사로잡혀있기 때문이다. 그들을 보면 종교적 착각에 근거해 피해의식을 키우고, 앞뒤 안가리는 공격성을 가진 정치적 집단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쉽게 알 수 있다.


 사실 철학의 빈곤 문제는 노무현 정권 자체부터 따져 봐야한다. 노무현은 민주 정치 뿐만 아니라, 정치 자체에 대한 이해가 거의 전무했다. 일례로 노무현 캠프는 경제공약 자체가 없었는데, 훗날 대선캠프 공약팀장 이병완이 이야기하기를

 

권력을 왜 잡느냐. 지속적으로 권력을 잡고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죠. 예전의 박정희라면 권력은 수단이거든요. 최종적인 가장 큰 수단이 대통령입니다. 꿈을 잡기 위해 꿈을 이야기 하고 희망을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대통령 중에 유일하게 꿈과 비전을 애기하지 않은 분이 딱 한 분이 있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 후보였습니다.”

 

원칙과 상식, (노무현 후보는) 이 가치만 이야기 했습니다. 가치를 내세워 대통령이 된 유일한 분입니다. 노 대통령은 정치적 성공이 아니라 정치 자체와 싸움을 벌였습니다. 대통령은 정치와 싸우기 위해 정치를 시작했습니다. (후략)”

 

 이 모양 이 꼴로 이야기하는 수준의 형편없는, 정말 순화해서 이야기해 어린 소년 같은 수준의 정치철학을 가지고 있었으니 정치가 제대로 될 리가 없었던 것이다.

 

 정치를 해야 할 대통령이 정치와 싸우기 위해 분노를 품고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리고 그는 정치를 하지 않고, 정치와 싸웠다. 그것은 종교적인, 그리고 정치를 혐오하는 행위이고 그의 파괴성에 한국 정치는 많은 부분이 부서졌다. 초대 교황이 이랬으니 깨시민들도 그를 이을 법 하다.


 그리고 정말 안타까운 건 노무현이나 깨시민, 아니면 더 나아가 어떤 야권 지지자들의 착각과는 달리 현 한국 정치 시스템은 완벽한 민주주의고, 그들이 적대하는 정치민주 정치그 자체라는 데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민주주의의 가장 강력한 적이며, 민주주의의 파괴자인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보이는 집단주의와 타자에 대한 심각한 배타성, 일상적인 낙인찍기, 종종 보이는 강력한 민족주의, 도덕주의와 이중잣대, 무한한 피해의식과 선민의식 등등은 종합하여 학술적으로 보면 영락없는 파시즘이기에 참으로 우려스럽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첨언하고 싶은 이야기. 사실 극단적인 깨시민 자체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그들은 인터넷 사회 전반을 잠식하고, 더 나아가 소위 진보언론의 대부분을 잠식하여 광신적이고 위험한 정보조작을 일상적으로 자행하고 있다. 그에 정말 많은 이들이 큰 영향을 받고 있으며, 그 폐해는 너무 광범위해서 어디에서나 악령처럼 튀어나올 지경이 되었다. 심지어 여초에서 요리 레시피를 찾아보더라도, 간단한 유머글을 보더라도 뜬금없는 문재인찬양, 박원순찬양을 볼 수 있을 정도다.

 

 어떤 친구는 광신 노빠는 실제 야권에서 진짜 일부일 뿐이라고도 한다. 야권 지지하는 사람들 중 노빠 싫어하는 사람들 정말 많다고 한다. 그러나 깨시민과 그들이 지지하는 친노들은 현실 속에서 야권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들은 뜬금없이 민주당 당권을 장악하고 총선에 나선 후, 거기서 어이없이 실패한 후에도 손학규를 물리치고 안철수까지 꺾고 국민들 사이에서 듣보에 가깝던 문재인을 대선후보로 앉히는 만행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른 위인들이다. 나는 사람들이 그들의 위험성을 보다 더 제대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사건의 진실

정치 2014. 5. 3. 16:08 Posted by 해양장미

 이에 대해 자꾸 역사왜곡을 해대는 사람들이 많아서 좀 정확하게 이야기해볼까 한다.

 

 이 탄핵 사건은 노무현이 저지른 대표적인 잘못 중 하나였으며, 깨시민들은 이것의 진실을 왜곡하고 적반하장으로 새누리당 세력 등을 공격하곤 하는데 이에 속아 진실을 잘 모를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어째서 노무현의 탄핵소추가 의결될 수 있었는지, 노무현은 그로 인해 어떠한 결과물을 얻었는지, 그 사건이 우리 사회에 끼친 영향은 무엇일지 살펴보자.

 

 





 우선 노무현이 탄핵되었던 이유부터 제대로 알아야한다.

 

 노무현이 탄핵된 주 이유는 3권분립에 관련된 법률를 어기고 무시해서다. 이는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도전이기에 민주주의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떤 일이 있었냐하면...

 

 당시에 야권은 분열되어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으로 쪼개진 상황이었다. 이렇게 된 데는 노무현의 책임도 컸고, 당연히 민주주의적으로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즉 민주주의가 훼손되고 있었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대통령은 선거 관련하여 특정 정당이나 인물을 공개적으로 지지해서는 안 된다는 법률이 있다. 대통령이 특정 정당을 드러내놓고 지지하는 표현을 하면 그것은 독재라는 결과물로 이어지기 쉽기에, 이런 행위는 지양되어야 한다.

 

 그런데 20042, 노무현은 두어 번에 걸쳐 공개적으로 열린우리당의 지지를 호소한다. 이는 논란거리가 있을 수 없는 현행법 위반이었고, 필연적으로 논란이 일자 33일 선관위에서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을 위반했다고 판정하고 중립의무 준수를 요청했다.

 

 상식적으로, 이런 문제가 있으면 대통령이 자중하는 게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이것이 지켜지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그 기반이 되는 룰이 무너지고 만다. 그러나 노무현은 선관위의 지침에 대하여 납득할 수 없다고 하면서 계속 열린우리당을 지지하겠다고 뻐댄다.

 

 사실 민주주의의 정의를 아는 사람이라면 노무현의 저런 행위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짓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대통령이 선거 관련 법률을 어긴 후에도 선관위의 지침을 무시하고 계속 법을 어기는 건 명백한 반민주주의적 행위다. 특히 대북송금특검과 파당으로 잔뜩 뿔이 나 있던 당시의 민주당으로서는 노무현의 언행을 용납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35, 민주당은 긴급의원총회를 소집하고 사과 및 재발방지 약속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러지 않을 경우 탄핵소추를 하겠다고 경고하고 한나라당과 자민련에 협조를 구한다.

 

 사실 노무현이 저질렀던 이 사건은 원론적으로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하는 행위였고, 당시 노무현의 통치는 매우 불안정했기 때문에 한나라당 또한 협조하기로 한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이런 경고 또한 무시한다. 사실 이는 작정하고 막나가겠다는 태도나 다름없는 것이다. 노무현이 당시 원칙을 지켰다는 노빠 깨시민들의 주장은 말도 안 되는 혹세무민이다.

 

 갈등은 순식간에 커졌고, 결국 39일에 첫 번째 탄핵소추안이 나오게 된다. 이 중간 과정에서 대통령이 법률을 지키겠다고 선언만 했어도 절대 나올 수 없는 탄핵소추안이었다. 그러나 노무현은 독재를 택했다. 분명하게 이야기하는데, 이 탄핵소추는 노무현이 형식적으로 독재를 하려 했기에 나온 것이다. 독재를 시도할 수준의 권력이 있었던 건 물론 아니지만.

 

 그러나 첫 번째 탄핵소추는 통과되지 않았다.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이 막아선 탓도 있지만, 사실 한나라당도 탄핵에 적극적이지 않았고 자민련은 아예 탄핵에 동참하지도 않았다. 의원들은 탄핵소추 시 어이없는 역풍이 불 수 있다는 걸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고, 더 나아가 이 사건을 원만하게 해결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비상식적인 것은 노무현의 태도였지, 의원들은 꼭 그리 극단적인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런데 추가적인 대형 사건이 311일에 벌어졌다. 노무현이 특별 기자 회견을 열어 그 유명한 남상국 사건을 일으켰던 것이다. 당시 남상국은 대우건설 사장이었고, 노무현의 형인 노건평에게 3000만원을 건넨 의혹을 받고 있었는데 노무현이 "좋은 학교 나오시고 크게 성공한 분들이 시골에 있는 사람에게 가서 머리 조아리고 돈 주고 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라고 말을 해버렸다.

 

 그래서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다시피 남상국은 그 날 바로 투신자살해 버렸고, 이는 그 전 해 자살한 정몽헌, 바로 한 달 전에 자살한 안상영과 겹쳐 보일 수밖에 없는 대형 사건이었다. 이 경솔하고 후안무치한 언행으로 인해 탄핵소추에 참여하지 않던 자민련도 입장을 바꿨고, 다음날인 312일에 탄핵안이 가결된다.

 

 사실 탄핵안이 가결될 때도 속사정을 보면 아주 기가 막힌다. 당시 국회의장이었던 박관용의 증언에 의하면, 박관용은 312일 당시 탄핵소추가 정말 오늘은 통과될 거라는 것을 직감하고 비록 정당은 다르지만 (박관용은 한나라당이었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극단적인 사태를 막기 위해 노무현에게 연락을 넣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당시 창원에 가 있었던 노무현은 탄핵을 막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고, 결국 탄핵 소추는 통과되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탄핵 소추는 노무현에게 엄청난 반전의 기회를 제공하였다. 이후 박관용은 당시의 탄핵소추는 노무현이 파 놓은 함정이라는 주장을 하였는데, 나는 박관용의 주장이 타당하다고 여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노무현은 어쩔 수 없이 탄핵을 맞이한 게 아니었다. 여러 번의 사과 요구를 묵살하면서 불법과 독재행위를 저질렀고, 탄핵이 통과되던 당일에도 전혀 막을 생각 없이 창원에 내려가 있었다. 박관용이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면 탄핵을 막을 수 있는 최후의 기회조차 고의적으로 걷어찬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로 노무현은 엄청난 이익을 봤다.

 

 나는 노무현이 아마도 기획하고 결과적으로 이익을 본 이 사건이 이 나라 국민들의 정서에 적잖은 갈등과 상처를 남겼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노무현이 진짜 나쁜 대통령이었다. 탄핵사건 이후 이 사회에 관용과 타협, 토론은 급속도로 사라졌다.

 

 대부분의 깨시민들은 사실 노무현이 왜 탄핵을 당했는지 모른다. 그들은 피해의식에 사로잡혀있고, ‘나쁜한나라(새누리)XX들이 착하고 힘없는노무현을 핍박했다는 그릇된 맹신을 가지고 있다. 물론 모든 광신도가 그렇듯, 그들은 열심히 포교활동을 해 댄다. 그러나 사실은 노무현이 민주주의를 침해한 것이었고 아마도 권력 강화를 위한 함정을 판 것이었다. 대통령이 3권 분립을 침해하고 독재를 시도할 때 야당이 대통령을 탄핵하는 건 바람직하고 마땅한 행위다. 이후 헌재의 판결은 총선으로 인한 국민들의 선택에 동의를 해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심지어 깨시민들은 탄핵정국을 새누리당이 주도한 것처럼 역사왜곡을 하는데, 당시 한나라당은 민주당 옆에서 도움만 준 거였다.

 

 이 사건에 대해 소위 진보(라고 쓰고 노빠 깨시민 아지트라고 읽는) 사이트에서는 근래에도 다음과 같이 놀고 있다.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bestofbest&no=144674&s_no=144674&page=1


http://bbs3.agora.media.daum.net/gaia/do/story/read?bbsId=K161&articleId=394192


http://www.clien.net/cs2/bbs/board.php?bo_table=park&wr_id=26632785

 


 솔직히 한숨이 나온다. 정말 왜곡하고 포장하는 것도 어느 정도다.

 

 저들에게 노무현은 신앙의 대상이다. 그러니까 민주주의보다 중요한, 독재를 해도 상관없는 존재다. 그에 나는 항상 말한다. 깨시민은 광신도’, ‘파시스트라고. 그들은 노무현의 집권기에도 파시즘을 보이며 무차별적으로 모두를 공격했고, 야권 내에서도 많은 비판이 나왔었으나 지금까지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노빠 파시스트들이 인터넷을 장악한 이후 우리 사회에서 생산적이고 온건한 모든 토론이 실종되어버렸다. 낙인찍기와 신앙간증이 소위 진보 커뮤니티에 가득하고, 그 반대에 서있다는 일베야 그냥 정화조 같은 곳이니 말할 가치도 없다. 노무현 정권이 저질렀던 온갖 반민주주의적인 폭압 또한 그들의 깽판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나는 시민들이 파시즘을 경계하고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이 사회의 시민으로 상식적인 일일 것이다. 문제는 파시스트들이 민주주의와 역사를 왜곡하면서 수호자인양 굴고, 실제로 수호자주의를 이 사회에 도입하려고 여러 번 노력하고 있다는 데 있다. 일단은 본문을 통해 역사왜곡을 바로잡는 데 조금이나마 일조해보려 한다.

 

 

야권을 버려야 야권이 산다.

정치 2014. 4. 11. 02:45 Posted by 해양장미

 바빠서 조금 오래간만에 포스트. 쓸 게 많은데, 일단 간단하게 근래의 야권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개인적으로 나의 친인들은 절대 다수가 야권 지지층이다. 그렇다고 소위 강경지지자는 거의 없지만, 적어도 젊은 세대의 어느 정도 선량한 사람들에겐 새누리당은 심히 밉보인 지 너무 오래다.

 

 그러나 근래의 야권 행보는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적잖은 혼란을 가져다주는 것 같다. 난 한 달쯤 전에, 안철수가 합당하던 날 분명히 말했다. '안철수는 끝났다'고. 그리고 역시나, 지금 와서 보면 그게 더 분명해졌다. 분명히 이렇게 될 줄 알았다.

 

 다시 한 번 야권이 안 되는 이유를 말해야겠다. 야권은 정치인들이건 지지자들이건 뭘 모른다. 경제()의 기초도 모르고, 정치()의 기초도 모른다. 정말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뭐가 신자유주의인지, 뭐가 케인즈주의인지도 모르고, 뭐가 민주주의인지, 뭐가 민주주의에서 거리가 먼지도 전혀 구분을 못한다.

 

 야권 지지층의 평균적인 언행은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고, 공부하지 않고 말하는 것에 가깝다. 그들은 이너서클 내에서 떠도는 잘못된 지식들만을 공유하고, 제대로 된 지식들은 멀리하며 이따금 들려오는 바른 말들을 가혹하게 공격하고 그런 말을 하는 자들을 내 쫓는다. 그러니까 나는 이렇게 말한다. ‘니들이 광신도 파시스트다.’

 

 정말 많은 경우에 나는 친인들을 붙잡고 복잡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 어디서 못된 것만 잔뜩 주워들어가지고는, 오해를 해도 어지간히 단단히 하고 있는 경우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들은 나와 친분을 가지고 있고, 나에 대한 존중이 있기 때문에 내 말을 어느 정도 들어준다. 그러나 친분이 없는 경우, 대체로 야권 지지층들이 보이는 배타성과 적대의식 및 피해의식은 정말 난감한 수준이다.

 

 야권 지지층들이 저열해진 것은 철학과 지식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스스로가 옳다고 단단히 믿고 있지만,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비아냥과 욕과 음모론과 뒷담화 뿐이다. 제대로 근거를 들고 토론을 할 실력이 안 되고, 피해의식이 지나치게 강하기 때문이다.

 

 쉽게 이야기해보자. 야권은 공천문제 가지고 한 달 넘게 내전을 벌였다. 이건 정말 소모적이고, 무의미하고, 정말 많은 국민들에게 정치적 실망감과 혐오감을 안겨다주는 일이다. 대체로 국민들은 이런 문제에 대해 관심이 없고, 좀 더 분명히 이야기해서 이런 쓰잘데기 없는 문제로 싸우면서 정치력 소모하는 것을 대단히 혐오한다. 극렬 야권 지지층의 문제가, 광신적인 정치병 환자다보니 남들도 그럴 줄 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보통 국민들은 절대 안 그렇다.

 

 평범한 국민들이 지금 야권에 원하는 게 뭐 같나? 야권 정치인이나 지지층은 이런 걸 몰라도 너무 모른다. 그저 지네들만 잘나가지고, 국개론이나 떠들면서 피해의식만 가득 차 있으니 알 리가 없다. 내가 항상 친인들한테 말한다. ‘도대체 야권에서 무슨 희망을 찾을 수 있단 말이야?’ 이것에 대해 아무도 희망을 입에 담지 못한다.

 

 예를 들어서, 근래 박근혜정부는 수많은 개혁을 행하고 있는데 그것이 모두 충분한 것은 아니다. 박근혜정부의 태생적인 한계가 있고, 잘 못하고 있는 것도 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어쨌든 지금 양상은 박근혜정부만 고군분투 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잘하건 못하건, 박근혜정부의 규제개혁과 각종 노력들, 그리고 외교 행위 등을 대단히 좋게 평가한다. 그러니까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새누리당 지지율이나 선거 당시 지지율보다 월등하게 높은 것이다.

 

 야권 지지층은 이것을 이해 못한다. 그러니까 그들이/너님들이 머리도 나쁘고 성격도 나쁘다는 것이다. 둘 중 하나라도 좀 좋으면 이걸 이해할 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 국민들은 정부와 정치인한테 당해도 너무 당해서, 잘하고 못하고를 넘어 열심히 하는 것 같으면 좋아해줄 정도에 이르렀다. 근데 야권 지지층들은 정치공학이나 신경 쓰고, 절차적 정당함에나 신경 쓰지 실제 정치의 각종 목적들에는 무관심하고, 아는 것도 없지 않은가.

 

 한편으로 공천은 당연히 당이 해야 하는 것이다. 안철수가 정치의 지읒자도 모르니까 이걸로 뻘짓 하는 건데, 뻘짓을 반복하니 지지율이 폭락하는 거다. 다시 한 번 말한다. 안철수는 끝났다. 안철수를 아직도 지지하고 있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그는 정치적 대안으로 불충분하다는 게 증명된 것 같다.’ 공천문제 약속? 이명박이 대운하 약속 안 지켜서 다행이잖아? 4대강도 안 했으면 훨씬 더 좋았을 것을.

 

 지금 야권이 제대로 된 야권이라면, 정부의 각종 실제 정책들에 대해 비판하고 견제를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야권은 그러지 않는다. 야권은 이미 작년의 정부 세수 개혁에 대해 명분도 정의도 없는 엉터리 태클을 걸었고, 부동산 문제들에 대해 정부도 못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엉터리 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으며, 통신 문제 등에 대해서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다. 도대체 머릿속에 든 게 없고, 국민을 전혀 쳐다보지 않으니까 그렇다. 그런 주제에 선민의식은 또 속된말로 쩔어준다. 한 발짝만 물러서서 보면 그야말로 토탈 패키지, 완전체 악당들이다

 

 오래도록 야권을 지지했던 친구들이 가끔 그런다. 그래도 새누리당 혼자 독식하면 안 되는 것 아니냐. 정치적 견제가 필요하지 않느냐. 그런데 사실 그런 심리가 오래 지속되었고, 야권은 계속 뻘짓과 헛짓만을 반복하면서도 무슨 언데드같은 명줄을 가지게 된 것 같다. 그들은 항상 뼈를 깎는 쇄신을 하겠다고 하지만, 이젠 깎을 뼈도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들은 백골도 안 남은 악령에 비유할 수 있다.

 

 일단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이름부터가 문제다. ‘새정치라는 당명을 몇 년이나 사용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남들한테 새정치연합이라 불러달란다. 도무지 존중이라는 게 없는 자세다. 누가 다른 당을 새정치로 아무렇지 않게 부를 수 있을까? 니네가 새정치면 우리는 헌정치냐는 생각이 안 들 수 있을까? 이건 과거 열린우리당이 약칭을 우리당으로 불러달라고 한 거랑 비슷하다. 한심하고 무개념하다. 무엇보다도 하는 짓이 헌정치 오브 헌정치잖아?

 

 내가 근래 친인들에게 주장하는 것은 이것이다. 이제 야권은 새누리당보다 진보적일 것도 전혀 없고, 민주적이지도 않고 고쳐서도 못 쓴다. 그냥 망하게 두자. 그러면 새로운 야권이 생겨날 것이다. 어쩌면 새누리당이 분당할 수도 있다. 현재의 새누리당은 동일 이념 집단이 아니다.

 

 야권은 대안이 되어야 하고 희망을 줘야 한다. 지금의 야권에서는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다. 최소한 새누리당보다 더 진보적이고, 더 민주적인 정당이 야권을 해야 한다. 지금의 새민련은 새누리당보다 더 보수적이고, 더 수호자주의/철인정치론 스타일에 정치공학을 최우선한다. 사실 새민련 당헌당규 보니까 가관도 그런 가관이 없더라. 일일이 뭐라 할 가치도 없을 정도로 수꼴정당이다.

 

 마지막으로 꼭 한 마디를 해야겠다. 야권 지지층들을 보면, 정말 많은 이들이 국개론을 설파하거나 내심 국개론과 선민의식을 가진다. 그러나 그것은 지극히 반민주주의적인 사고방식으로, 파시스트의 자세다. 우리 좀 민주적으로 하자. 가끔 보면 죽어라 꼰대인데 자긴 민주적이라 생각하는 윗대가리들이 있는데, 강경한 야권 지지자들이 윗자리 앉으면 그 쪽으로 완전체일 거다.



깨시민 파시스트들의 특성과 위험성

정치 2014. 2. 17. 12:29 Posted by 해양장미

 한국에서 깨시민 - 광신 노빠 - 은 가장 정치적으로 위험한 집단이다.


 그들은 대세후보를 잠재우고 자신들의 대선후보를 내세울 정도의 정치적 힘이 있고, 굉장히 광신적인데다 본인들을 선이라고 믿는, 제법 철저한 파시스트다. 그들의 파시즘은 몇 줄로 요약할 수 있는데,


1) 우리는 선이고, 너네는 악이다

2) 우리가 하면 착한 FTA, 착한 신자유주의, 착한 조문. 니네가 하면 나쁜 FTA, 나쁜 신자유주의, 나쁜 조문.

3) 우리가 이기면 위대한 국민, 국민의 승리. 우리가 지면 국민이 멍멍이 새끼. 또는 부정선거.

4) 우리는 옳다. 그러므로 국민의 선택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를 선택하면 옳은 선택. 저쪽을 선택하면 틀린 선택. 민주주의 따위 중요하지 않음. 그렇지만 우리야말로 민주주의의 화신.

5) 우리를 비판하면 일베충. 바로 사상검증 들어감. 이명박, 박근혜 욕해보라고 시킴.

 

 이런 사람들이 변호인 천만 관객 동원하고, 멀쩡하고 착한 척을 하니 위험 그 자체. 이들의 사고구조는 철저한 파시스트에 가까우며, 지극히 반민주주의적이다. 민주주의는 근본적으로 국민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들은 자신들이 평범한 국민보다 더 ‘깨어있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며 자신들과 다른 사고방식을 인정하지 못한다.


 이들이 이렇게까지 저열해진 데는 여러 이유가 있는데, 당연히 처음부터 노무현 정권과 그 지지자들이 이리 망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노무현이 정말 정치를 잘못하면서 차츰 사람들이 떨어져 나갔고, 결국 가장 기회주의적이거나 광신적인 사람들, 또는 너무 순진하거나 매우 느슨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만이 남았던 것이다.


 노무현이 집권하던 시점까지는 모든 과는 노무현의 것이었다. 당시 노무현의 지지율은 어차피 바닥이었고, 결국 노무현이 고건 발목을 잡고 열린우리당은 붕괴하면서 대선은 해 볼 필요도 없는 것이 되었다. 대통령이 한나라당 경선에서 결정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런데 상황반전은 이명박 집권 이후 이루어진다. 어쩌다보니 광우병 촛불시위가 불이 붙었는데, 처음에는 별거 아니었지만 이명박이 대응을 너무 잘못했고 이때가 기회다 싶었던 이명박 반대자들이 다 나오면서 문제가 엄청나게 커졌다.


 아마 당시 상황은 이명박이 한 번이라도 직접 나와서 ‘날 믿어 달라.’고 했거나 재빠르게 나서서 ‘국민의 목소리를 귀담아듣겠다.’ 정도로 이야기했다면 금방 별거 아니게 끝났을 것이다. 그런데 당시 정부가 했던 거의 모든 행동은 오히려 문제를 키우는 방향이었고, 이후 리먼사태까지 겹치면서 이명박 정부는 바로 난항을 겪게 된다.


 이명박은 그리 확고한 지지층을 가진 대통령이 아니었기에 문제는 심각했다. 광신적인 노무현 지지자들이 이명박 반대 분위기를 몰고 갔고, 실제 이명박 정권 또한 부족한 면이 많았기에 사태는 크게 악화되었다. 이후 이명박 정권은 노무현의 비리를 수사하지만, 노무현이 자살하게 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닫는다.


 사실 노무현 집권 이후의 대북특검이라거나 이인제에 대한 수사, 현대를 향한 온갖 공격 등에 비하면 노무현에 대한 비리 수사는 별일도 아니었다. 노무현 본인은 어땠을지 몰라도 - 수사가 중단되어서 아는 사람만 알 것이다. - 권양숙이나 노건평, 이광재 등은 확실히, 또는 거의 확실하게 비리가 있었고 충분히 클린한 정권이라 할 수 없었다.


 노무현 사후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에게 부채의식을 가지게 되는데, 그 부채의식은 대체로 정치에 대해 별 관심이 없던 사람들에게 생겨났다. 그 틈을 파고들어 수많은 사람들이 혹세무민을 시도하면서 지극히 광신적이고, 노무현 정권에 대해서 온갖 환상을 가지고 있는 깨시민들이 양산되게 된다.


 특히 이들의 온라인 커뮤니티 장악은 심각하였다. 이러한 장악은 노무현 집권기부터 시작되었고, 다분히 조직적이었다. 아무리 대형 커뮤니티라도 잘 조직된 수십 명만 있으면 정치적 분위기를 충분히 한 쪽으로 몰고 갈 수 있다. 이들은 노무현 정권 당시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에도 상당한 압력을 넣었고, 노무현 사후 보다 더 극렬하게 활동하였다. 활발한 활동으로 운영진에 올라가 편향적인 커뮤니티 운영으로 확고한 정치 편향성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애초에 ‘깨어있는 시민’이라는 말 자체가 자신들은 깨어있으며, 민주주의는 제대로 피어나보지도 못하고 위기 아래 있으며, 깨어있는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지켜야 하며 타자는 계몽이 필요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물론 이것은 심각한 착각이다. 이미 민주주의는 거의 완성되었다. 혁명도 더 이상 필요하지 않고, 민주주의는 각자의 다른 입장과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겨루는 제도에 가깝다는 걸 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민주주의의 역사와 실제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의 모습들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고, 상상 속의 ‘평등하고 공정한 사회’를 이룩하는 것을 민주주의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좋게 보면 유교식 철인정치론자, 나쁘게 보면 파시스트가 되었으며 그 경향은 나쁜 쪽으로 점점 흘러가고 있다.


 그들은 처음부터 충분한 지성을 갖추지 못했다. 지성을 갖춘 이들은 초기 노사모에는 많았을지 몰라도, 금방 빠져나가 다른 정치세력에 합류되었고, 그 틈을 노려 한 자리 챙기려는 이들이 남아 감성적인 혹세무민을 계속하였기에 ‘깨시민’은 반지성주의적 공감대에서 탄생하였다 봐도 무방하다. 그들의 광신성이나 배타성에도 그럴 만한 기반들이 있다.


 깨시민 의식이 지니는 온갖 문제들은 한국의 문화적 결함과 공교육의 단점에서 출발한다. 그들은 대체로 민족주의적이고, 도덕주의적이고, 계급 갈등이 있다고 생각하며 한국이 공정하지 못한 나라고, 충분히 민족주의적 정의를 채우지 못한 그릇된 역사 위에 서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노무현 정부가 너무나 많은 ‘관용’을 보였기에 실패했다는 잘못된 공감대가 있어서, 타자에 대한 관용이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상당한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대단히 공격적이다. 또한 한국인들이 가진 한의 정서라거나 화병, 질투심, 유교적인 성군에 대한 동경 등도 모두 강하게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이들은 본질적으로 집단주의 및 도덕주의적인 우익이며, 잘 체계화된 사상을 가진 게 아니고 서로 모순된 관점을 복잡하게 가지고 있기에 어떠한 문제 해결책을 만들어내기가 대단히 어렵다. 현실 속에서 이들은 조직적이지도 관용적이지도 못하고 각자도생할 수밖에 없고, 현실적인 문제해결책을 내놓지 못하다보니 점점 더 도덕주의적이 되어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친노 그룹이 결코 도덕적으로 완벽한 것은 아니기에, 깨시민들의 지지성향은 점점 더 광신적이 되어가기 쉽다. 그들의 도덕주의에 대한 이야기는 지난 포스트, ‘도덕적인 깨시민들의 반민주성에 대하여 (링크)’ 에서 다룬 적이 있으니 참고하길 바란다. 


 대체로 깨시민들은 정치철학이나 경제학, 그리고 한국 근현대사 등에 대해 지식이 심각하게 부족하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고등학교 수준에서 많은 것들이 머물러있고, 그 이후에 지식을 습득하려는 노력을 안 하는 건 아니지만 그들의 이너서클 내에서만 떠도는 지식을 습득하는 경우가 많아 그릇된 지식체계를 형성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이따금 그들에게 보다 나은 지식을 전달하려는 이들이 있지만, 그들의 오만과 배타성은 타자를 밀어내고 낙인찍고 사상검증하기에 바쁜 게 현실이다. 워낙에 감정적이고, 자신이 가진 지식과 가치관을 의심해보는 태도가 없다 보니 확증편향이 상당히 강하기도 하다.


 이들은 전혀 도덕적이지 않지만 도덕주의적이고, 역사에 대해 잘 모르지만 본인들이 올바른 역사의식을 함양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굉장히 멀지만 자신들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수호자라 생각한다. 그리고 착한 사람, 개념인으로 자신을 포장하고 본인 스스로도 그렇게 믿기에 수많은 사람들을 혹세무민하고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타자를 공존의 대상이 아닌 퇴치의 대상이라 여긴다. 또한 결코 자신들이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은지, 그것을 위해 어떤 방안을 선택해야 할지, 그 과정에서 나올 수 있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애초에 그런 수준이 못 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민주주의는 아주 좋은 제도라서, 이들은 현실 속에서 좀처럼 승리를 거두지 못한다. 깨시민들의 심각한 배타성과 공격성, 그리고 후안무치함과 무식함은 그들이 왜 정치적 성공을 거둘 수 없는지를 잘 보여준다. 소통을 들먹거리면서 언제나 최악의 불통을 보이는 게 그들이기도 하다.


 이제 이들의 전성기도 거의 다 지나가고 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실체를 깨닫고 있고, 트위터도 예전 같지는 않다. 안철수가 새로운 대안 세력으로 떠오르고 있으며, 그의 우유부단함이나 정치적 미숙함은 다 감안하더라도 일단 그는 네거티브를 일삼거나 배타적이지는 않다. 이젠 증오와 적대의 정치도 어느 정도 접을 때가 되었다. 조율과 타협이 없다면, 그것은 올바른 민주주의가 아니다.


 괴물이 되어버린 깨시민이지만, 그들은 결국 ‘이상적인 군주를 뽑아, 더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고 싶은’ 사람들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민주주의를 이해하지 못하기에 민주주의의 적이 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이 복잡한 사회에서 철학자 왕은 있지도 않고, 설령 있다 해도 일반 국민들이 그것을 고를 수 있는 능력은 없을 뿐더러 정말 잘나고 착한 사람은 굳이 정치를 하지 않는다.


 깨시민들의 의식은 본질적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우려와 적대로 점철되어있다. 그들은 시민들이 올바른 대통령을 선택할 수 없다고 믿기에, 보다 ‘깨어있는’ 자신들이 지도자를 골라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전제는 애초에 망상일 수밖에 없고, 무의식중에 저렇게 생각할지언정 본인들 스스로도 저렇게까지 문제를 의식화하지는 않기에 그들은 타자에 대한 온갖 저주와 증오만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극단적 파시스트가 되는 것이다. 특히 깨시민의 파시즘은 노무현에 대한 신격화 및 무조건적인 그리움과 애정을 동반하기에 더더욱 위험하다. 고인이 된 정치인을 신격화시키고 지속적으로 미화하는 건 지극히 반민주주적인 행위임을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