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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3.16 왜 주식시장의 활성화가 기업에 도움이 되는가?

 이따금 소위 ‘진보적인’ 분들 중에는 주식시장을 합법적인 사기도박판이며, 실제 노동이나 생산과는 관련도 없는 사람들이 돈을 빼먹는 도구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주식시장의 존재가 그렇게 허술한 것이었다면 자본주의의 대성공은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주식시장은 아주 중요하고, 그 중에서도 리스크가 높은 주식시장이 가장 중요하다.


 그 이유를 서술하자면 다음과 같다. 새로운 기업이 성공하려면 거의 예외 없이 어딘가에서 자본을 끌어와야 한다. 흔히 노동자 마인드로는 ‘남의 돈으로 사업을 하지 말라’고 하지만, 사업가 마인드는 그런 게 아니다. 사업은 남의 돈으로 하는 거고, 실패하면 파산 신청하고 도망 좀 다니다가 재기하면 되는 거다. 원래 파산 제도가 있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고, 사업 재능이 있는 사람이 두어 번 말아먹어도 재기하게 해서 말아먹는 경험을 쌓게 할 수 있게 해주는 거다. 결국 그래서 대박 한번 내면 수백수천 노동자가 일자리를 얻게 되니까. 그러나 은행은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결코 벤처기업에 저금리로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 은행은 지불의무가 있기 때문이다.[각주:1]


 은행 외에 벤처기업에 낮은 이율로 돈을 빌려주는 사람을 소위 엔젤투자자라 그런다. 벤처기업에 돈 빌려주는 사람은 아무리 엔젤투자자 소리를 듣긴 해도 손해 볼 생각으로 기부하는 건 아니다. 그들도 수익을 내고 싶어 한다. 다만 좋은 일도 할 겸사,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으로 도전할 뿐이다. 그런데 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투자 방식은 BW다.


 BW에 대한 이해 없이는 금융을 일정 이상 알았다 할 수 없다. 물론 BW와 비슷하거나 관련이 있는 개념을 가진 것도 많다. CB도 있고 ELW도 있고. 그러나 여기선 BW만 언급하겠다. BW는 풀어서 ‘신주인수권부사채’라고 한다.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BW는 기본적으로 채권이다. 다만 이 채권에는 신주인수권이 따라온다.


 신주인수권은 BW를 구매할 때 특정 시기와 가격을 명시한다. 이 신주인수권은 청구권이며, 투자자는 정해진 시기에 청구권을 사용할 수도 있고 포기할 수도 있다. 투자자 입장에선 정해진 시기에 회사의 주가를 보고 주식을 청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주식을 청구하지 않아도 채권으로의 가치는 남는다.


 다만 BW는 일반 채권에 비해 이율이 낮다. 신주인수권이 따라오는 대신이다. 그런데 신생 비상장기업에 투자자가 거액의 BW 투자를 하고 차후 신주를 인수할 경우, 그 주식을 처분해야만 현금 수익이 나오게 된다. 그렇기에 벤처 투자자들은 BW를 구매할 때 성공 시 인수한 주식을 어떻게 정리할지까지 계획을 세우고 투자를 하게 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가장 좋은 주식 매도 방식은 회사의 상장이다. 상장기업의 주식과 비상장기업의 주식 사이에는 유동성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가치도 다르다. 또한 상장 이후의 추가적인 주가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즉 주식시장은 상장이 쉬울수록, 높은 수익률이 나올수록 도전적인 투자자들이 신생 기업에 투자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주식시장이 실물 경제에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이런 이유다. 이게 세계에서 가장 잘 되고 있는 시스템이 미합중국의 벤처들과 나스닥이다. 결국 누군가 대박을 노리고 투자를 하는 것이, 진지하고도 도전적인 사업가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곤 하는 것이다.


 한국에는 이러한 자본주의의 기본 원리를 충분히 이해하는 사람이 너무 적다. 그렇기에 한국에서 사업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누군가는 창업을 하고, 실패를 거듭하고 파산을 겪고 사채업자들한테 도망을 다니더라도 다시 일어나서 기업을 세워 중견기업으로 키워야 한다. 그래야만 일자리가 생기고 사회에 돈이 돌아가고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있다. 복지는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들이나, 기타 여러 이유로 돈을 벌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필요한 안전장치일 뿐, 결국 누군가는 어떤 형태로든 일을 해야만 다들 먹고 살 수 있다.


 여담이지만 사회적 약자들이 정치적 판단에 있어 보수세력을 선택하는 이유 역시 간단하다. 그들은 복지같이 좀 뜬구름 잡는, 각자에게 혜택이 얼마나 돌아올지도 모르는 공약에는 큰 관심이 없다.[각주:2] 그보다 그들에게 와 닿는 것은 자신이 소속된 작은 기업이나 가게들이 얼마나 안정적으로 잘 운영될 수 있느냐다. 증세나 갑작스러운 정책 변경 같은 건 섣불리 잘못하면 그들의 직장을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다. 포디즘 몰락 이후 사용자와 첨예한 갈등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안정적이고 규모가 큰’직장을 가진, 소위 귀족노동자들이다. 이 점에서 사회주의 세력들은 현실 자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뿐더러,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하며 소위 ‘자기들만 잘난’ 꼰대짓을 하고 있다고 이야기해야겠다.


 문제는 한국의 코스닥이 신생 기업의 투자 수단으로 잘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정부에서 투자자 보호를 목적으로 상장을 어렵게 해놨기 때문이다. 결국 현재 한국은 코스닥과 코스피의 구분이 애매모호한 상태다. 코스닥은 좀 더 많은 리스크를 가지고, 좀 더 많은 일확천금을 기대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현재 한국은 신생 기업이 상장을 하는 것이 워낙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상장을 기대하면서 투자하지를 않는다. 주식 시장이 기업하는 데 도움이 되게 하려면 리스크를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본은 결코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 오히려 통제하기 어려운 괴물에 가깝다. 그러나 자본이 지나간 자리에서 꽃이 피고 열매가 맺었던 역사를 돌아봐야 한다. 현대 인류는 자본이 낳은 과실을 이용하여 황제의 식사를 하고, 긴 기대수명을 누리고 있다.



  1. 이 과정에서 독재자의 개입이 기업 육성에 도움이 된 케이스는 수도 없이 많다. 그러나 보통 독재자들은 기업을 충분히 육성하고 나면, 성장한 부르주아 계급에 의해 잘려 나가곤 한다. [본문으로]
  2.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현명한 정책이 아니라 보는 보편적 무상급식이 그리 이슈가 되었던 건, 결국 서민층의 피부에 와닿는 이슈였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복지를 잘 하려면 결국 어느 정도의 난해한 시스템을 도입할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하면 서민들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