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존엄사'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20.01.12 이제 우리나라가 유일하게 고를 수 있는 선택지 48

 브금

 

https://youtu.be/Dh-ESpsb9LE

 


 

 이제 우리나라는 몇 년 지나면 초고령 사회로 접어듭니다. 고령화 -> 고령 -> 초고령 사회로의 진입 속도가 세계에 유래가 없을 만큼 빠른데요. 진짜 문제는 초고령 사회가 된 후에도 고령자 비율이 점점 더 신기록을 경신하면서 높아질 거라는 데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출산율과 인구구조는 한 국가가 감당할 수 있는 범주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더구나 저출산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고, 개선의 기미조차 없으며 오히려 악화일로에 있습니다. 문재인과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은 최악의 인물과 세력으로 역사에 남을 겁니다.


 

 이제 이 상황을 수습할 방법은 실질적으로 하나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민은 수습책이 아닙니다. 보완책일 뿐. 상황이 몇 년 전보다 너무 많이 악화되었기 때문에, 이민을 앞으로 아무리 많이 받아도 수습이 안 됩니다. 훨씬 더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내놓을 수 있는 방안 중 그나마 온건한 방식은 적극적 안락사의 허용과 노년층에 대한 안락사 권장입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게 온건한 겁니다. 더 과격하고 비윤리적이라는 시시비비가 붙을 방식은 많이 있습니다만, 그런 것들은 배제하고요. 그나마 인도적이고 윤리적이며 온건한 방식은 대규모 노인 안락사입니다.


 

 우선 나는 적극적 안락사에 대한 적극적 찬성자임을 먼저 밝혀둡니다. 인터넷에서 정치를 논의하기 좋아하는 청장년들은, 힘들게 사는 노인들이 실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잘 모릅니다. 그렇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비참함이 아직도 대한민국 노년들에게는 종종 있습니다.


 

 위선적인 강남좌파들이 최저임금 1만원을 외치고 있을 때, 어떤 노년 부부는 하루 종일 폐지를 주워 5천원~1만원 가량의 돈을 법니다. 그래도 그런 노년 부부는 부부가 함께 일해서 돈을 벌 수 있다고 감사하고 기뻐하기도 합니다. 그보다 더 비참한 노인들은 골방 누워 만성적인 온갖 통증에 시달리면서 커피믹스도 돈 없어서 못 마십니다. 복지의 사각지대는 정말 넓고, 복지예산을 아무리 늘려도 워낙 중간에 가로채고 먹는 것들이 많아서 해결이 잘 안 됩니다. 보면 착한 척 하던 것들이 권력 쥐면 참 잘도 챙겨먹습니다.


 

 늙고 아픈 데 돈 없으면 인간으로의 모든 존엄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어리고 젊으면 그래도 최소한의 존엄은 스스로 챙길 수 있습니다만, 늙고 병들어 심신을 제어하기 어렵게 되면 모든 존엄이 사라집니다. 옛날 같으면 차라리 금방 죽어버려서 편해질 것을, 현대 보건의학 기술이 애매하게 좋아진 탓에 고통스러운 시간만 길어지기도 합니다.



 여담인데 암에 걸려 아파하다 죽는 건 차라리 나은 죽음에 해당합니다. 많이 고통스럽고 아프지만 죽기 직전까지 의식도 있고, 가족과 이야기도 나눌 수 있고, 심지어 일도 할 수 있습니다. 치매는 종종 암보다 훨씬 끔찍합니다만, 그래도 최악은 아닙니다. 혈관성 질환들이 최악의 질환이 되기 쉽지요. 어느 순간 사람을 식물인간이나 반신불수로 만들 수 있습니다. 잘못되면 죽지도 못하고 몇 년 이상 욕창을 앓으며 비참하게 연명해야 합니다. 현행법상으로는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어릴 때부터 금연하고 절주하고 운동하고 비만을 조심해야 합니다. 적극적 안락사라도 합법화되어야 극단적인 비참함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본래의 참담한 이야기로 돌아가서, 이대로 가면 우리 사회는 노인 봉양이 안 됩니다. 잘라서 말하건대 불가능해요. 완전히 막장 되기 전에 상황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대응을 해야지, 안 그러면 나라 망합니다.


 

 그러니까 적어도 죽고 싶어 하는 사람은 존엄하게 죽을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 그래야 존엄하게 가실 분들은 가고, 남은 사람도 삽니다. ‘안 돼요. 사셔야 합니다.’ 라고 말하고 싶은 분들 많을 건데, 그것도 최소한의 여유는 있어야 하는 겁니다. 이제 우리는 그런 최소한의 여유가 거의 안 남아 있어요. 출산율 0.XX라는 건 그런 겁니다.



 밀리는 전쟁터에서, 또는 너무 위험한 곳에 조난당했을 때. 부상자 다 끌고 갈 수 없잖아요. 이제 우리나라가 맞닥뜨릴 상황은 그거랑 똑같습니다. 더 늦기 전에 자발적으로 돌아가실 분이라도 존엄하게 돌아가실 수 있게 해야지, 그런 선택조차 못하고 상황을 더 악화시키면 그 다음엔 더 나쁜 선택 해야 합니다. 상황 파악 못 하고 어줍지 않게 무책임한 동정심이나 종교적 도그마를 앞세울 경우, 그 다음에 맞이해야 하는 건 더욱 비참한 상황이 될 겁니다.



 2020년쯤 되니까 이렇게 좀 SF 디스토피아틱한 이야기도 하게 되네요. 이런 상황까지 만드는 문재인 일당과, 래디컬 페미니스트들과, 그것들을 지지하는 홍위병 파시스트들에게 항구적인 불행이 닥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