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축 - 반란수괴 전두환 사망

정치 2021. 11. 23. 19:08 Posted by 해양장미

 브금

 

https://youtu.be/JJSS1uMRhyY?t=1622

 

 

 

 자유대한민국의 반역자였으며 폭압적인 독재자였던 전두환이 드디어 사망했습니다. 그가 잘한 면이 있었고 유능한 면도 있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만, 김재규는 사형당했는데 전두환은 천수를 누린 것은 잘못되었습니다.

 

 전두환이 아니었다면 김종필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NL 운동권 같은 흑화된 집단이 아직까지도 들끓을 일도 없었겠지요. 호남이 안고 있는 복합적인 문제도 지금보다는 훨씬 덜했을 거고요. 내란수괴가 집착한 겨우 7년의 독재를 위해 우리나라가 지불해온, 그리고 앞으로도 지불해야 할 대가가 너무 큽니다. 김영삼의 IMF 외환위기, 문재인 주석의 래디컬 페미니즘 정도가 그에 비견 가능할까요.

 

 단언컨대 나라를 지켜야 할 장군이, 반드시 그래야 할 명분도 없는데 나라를 지켜야 할 군대를 이끌고 자국의 중추를 공격해서 권력을 장악한 걸 옹호하는 것들은 보수주의자도 자유주의자도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박정희의 군사정변도 물론 옹호 받을 수 없습니다. 5.16을 쿠데타로 규정하고 5.18을 민주화 운동으로 규정한 건 다름 아닌 김영삼 정권입니다. 김영삼 정권의 역사적 판단과 민주적 정통성을 부정하는 자들은 제대로 된 자유우파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성공한 쿠데타’를 옹호할 수 있는 가치관은 어디까지나 좌파의 그것이지요.

 

 우리나라 우파에 철학이 없는 건, 박정희와 전두환을 옹호하느라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자유주의는 우리나라에 원래 없었고, 보수주의는 쿠데타를 용인할 수 없습니다. 성공한 쿠데타를 혁명으로 격상시키는 것이나, 국가주도의 정책 및 령도자를 찬양하는 것. 그리고 독재를 옹호하는 것 등등은 전형적인 좌파의 태도입니다. 내가 보는 박정희는 공도 많은 인물이지만 보수주의자라거나 자유주의자라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는 진짜로 진보적인 인물이었지요. 운동권 사이비 자칭 진보들하고는 완전히 다르게.

 

 대한민국 최초의 자유 우파 대통령은 김영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3당 합당과 IMF 외환위기의 과오가 너무나도 커서 김영삼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없게 되었다는 거고요. 김영삼 본인부터가 사상적으로 완성된 인물이라거나, 학식이 넘쳐흐르는 타입이 아니었고요.

 

 광주사태 또는 광주항쟁은 전두환의 군사쿠데타에 기반한 국가권력장악에 자유 시민들이 들고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반란수괴 전두환의 명령을 받은 군대는 그러한 자유 시민들을 향해, 그리고 휘말린 아무 죄 없는 시민들을 향해 발포하여 참극을 만들어 버렸지요. 이 사실을 부정하는 통칭 극우들이 끊임없이 기어 나와 자유우파의 앞날을 망치는데, 집요한 박멸과 응징이 필요합니다. 광주사태에서 전두환 편을 드는 것들은 천안문 사태에서 공산당 편을 드는 것들과 마찬가지입니다. 한편으로 나는 광주사태를 민주화 운동으로 부르는 것을 거부합니다. 그게 무슨 민주화 운동입니까. 반란수괴를 상대로 한 자유 시민군의 항전이자 민간인 학살이었지. 미국 레이건 대통령은 그런 참극을 일으킨 전두환을 혐오해서 정상회담도 거부했었습니다. 전두환은 1981년에야 김대중을 감형/석방하는 조건을 걸고 겨우 레이건을 만나게 되지요. 그리고 그 업보로 전두환은 1987년에 끌려 내려오고요.

 

 삼청교육대는 예전부터 종종 옹호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굴라그나 아오지 탄광하고 비슷한 거고, 시민을 무작위로 끌고갔다는 점에서는 더 나쁩니다. 북조선의 로동교화소나 신안 섬노예에 분노하는 사람들이 삼청교육대는 옹호하는 걸 보면 정신이 아득해집니다. 나는 삼청교육대를 옹호하는 것들은 시민권을 가질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건 자유 시민이 옹호해도 되는 대상이 아닙니다.

 

 한편으로 물돼지 전하나 홍준표가 조문을 가겠다고 했었는데요. 이게 어느 정도는 법조인 출신들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법률적으로 전두환은 이미 받아야 할 벌을 다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면 법률적으로는 교화가 되었고 죄가 남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지요. 추가범행이 있으면 이야기가 다르지만. 그러니까 대한민국 형법체계를 존중하는 사람일수록, 그런 사람들이 보기에 전두환은 이미 죄를 씻은 사람인 겁니다. 법조인이 정치를 하는 비율이 높은 것에 대해 내가 괜히 부정적인 게 아닙니다. 법조인들은 대체로 커먼센스가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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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가 넘어가는 것 같습니다

정치 2021. 10. 25. 19:27 Posted by 해양장미

 브금

 

https://youtu.be/fspHONVs68w

 

 

 

 

 

1) 이준석 대표가 공석이던 최고위원을 임명하고, 윤리위도 구성하였습니다. 드디어 그가 당대표의 힘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동안 그의 발목을 잡아온 건 기미소견(예정)과 사과王 전하였습니다.

 

 만덕산의 힘이 약간이나마 엿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소소한 역사의 한페이지가 넘어가려고 하는 조짐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2) 여조 추세를 보고 있자니 사과王 물돼지 전하측의 기행이 돌핀스를 넘어 국민의힘 전반에 피해를 끼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경선이 끝나면 과연 얌전해질지 의문스러운데, 이준석 대표가 만덕산의 힘을 지킬 수 있다면 경선 종료 이후 윤리위를 가동시킬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예상합니다.

 

 

 

 

 

 

3) 김종인 영감은 정략적으로는 준수한 재주를 가진 사람입니다. 다만 사람 보는 눈이 절망적이고, 본인 입지 못 다지고, 경제민주화에 대한 집착도 어이가 없지요. 그리고 그의 사람 보는 눈이 엉망임은 이번에도 다시 한 번 증명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나마 겉으로 확실히 누군가를 드러나게 밀지 않아 체면은 덜 구겼네요.

 

 

 

 

 

4) 인천지역에서 안상수 전 시장은 홍준표 캠프에 있고, 유정복 전 시장은 돌핀스에 입단하였습니다. 이학재를 비롯한 인천지역 전 국회의원들, 당협위원장들도 대체로 돌핀스에 있는 참사를 맞이하고 있는데요. 내가 좋게 평가하는 안상수가 홍캠에 있는 게 그나마 다행입니다. 낮은 가능성이지만 안상수가 지선에서 인천시장 후보로 복귀한다면 진심으로 응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5) 경선에서 홍준표가 승리한다면 그건 아마 경선투표에 참여한다면 물돼지 전하를 뽑을 당원들이, 물돼지 전하의 행보에 질려서 투표를 포기하면서 이루어지지 않을까. 그런 식으로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사람은 한 번 인식하거나 판단한 걸 잘 바꾸지 않습니다. 인지구조상 대부분은 제 때 못 바꾼다고 하는 게 맞을 겁니다. 예측과 어긋나는 관측이 있을 때 판단을 빨리 수정하고 대응하는 건 재능 또는 훈련이 필요한 영역입니다. 역으로 심리적으로 무너질 때 원칙과 견해를 유지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의 영역입니다.

 

 사과王 물돼지 전하를 찍기로 결심하고, 홍준표에 부정적이던 사람이 홍준표를 찍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투표를 안 할 수는 있지요. 이런 원리는 대선 본선에서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리락연 동지를 지지하다가 리재명이 되어 좌절한 민주당 지지층 중 적잖은 수는, 홍준표가 대선후보로 나올 경우 그냥 투표장에 나가지 않을 수 있어도 전두환을 옹호하고 개사과 해프닝을 일으킨 물돼지 전하가 후보가 될 경우 불편한 마음으로 투표장에 가서 떨리는 손으로 리재명 두목을 찍고 오게 될 겁니다.

 

 

 

 

 

 

6) 홍준표 영감은 타고난 정치인이 아닙니다. 본인이 원해서 정치인이 된 것도 아니었고. 그러니까 원래 그는 대통령감이라고 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실제 지선 직후 그가 차기 대통령에 이만큼 근접하리라는 예상을 하는 건 불가능했습니다. 미래를 예측한다는 건 이토록 어려운 일입니다.

 

 그가 대통령이 된다면, 그의 동맹과 그의 적수들이 주된 요인이 될 겁니다. 초여름, 이준석 바람은 그가 나이만 충족한다면 대통령이 될 수 있을 만큼 거셌습니다. 그런데 그 바람을 물돼지 전하가 막아섰었고, 대조적으로 홍준표 영감은 그 바람을 타는 걸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 홍준표 영감은 야권 1강이었던 물돼지에 대적하는 게 가능할 만큼 체급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물돼지 전하는 거저 얻을 수 있었던 승리를 걷어찬 셈이 되었고요.

 

 상대 후보가 리재명이라는 것 또한 홍준표 영감에게는 좋은 상성입니다. 홍준표의 모든 단점은 리재명 두목 앞에 대단하지 않은 것이 되고, 리재명의 거의 모든 장점이 홍준표 영감 앞에서는 빛을 잃습니다. 홍준표의 경남지사 경력은 본래 대선의 발판이 되기엔 매우 부족한 것이었으나, 상대가 리재명이라면 그것도 쓸 만해집니다.

 

 

 

 

 

7) 홍준표가 대통령이 된다면, 20년 만에 등장하는 청년이 지지하는 대통령이 됩니다. 노무현 이후 최초의 일이 되지요. 문재인 주석의 경우 청년층의 지지도 받긴 했지만, 지난 대선에서 딱히 특정 세대의 지지를 받는 후보는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2002년의 노무현은 중노년층보다는 청장년층의 지지를 받아 대통령이 되었었지요. 이번에 홍준표가 대통령이 된다면, 청년층의 열광적인 지지로 대통령이 되는 두 번째 인물이 될 겁니다.

 

 홍준표가 이런 위치에 오를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세상일이라는 건 때때로 참 기가 막힌 법입니다. 내가 홍준표를 응원하는 날이 올 거라는 생각 또한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8) 역사적인 개사과 사건의 사진에 찍힌 사과가 인도사과일 확률은 매우 낮습니다. 인도사과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거의 멸종 수준이거든요. 색깔도 저런 느낌이 아닐 거고. 요새 나오는 저런 색깔 사과면 아마 시나노골드거나 황옥일 확률이 높을 겁니다.

 

 개한테 사과를 먹여보지 않은 분들이 많은 것 같은데, 개는 사과를 좋아합니다. 개 이빨로 사과를 씹으면 아삭아삭 하는 소리가 듣기 좋게 납니다. 사람 이하고 생긴 게 다르고, 뺨이 없어서요. 소리가 잘 들려요. 그런데 사과씨는 사람이건 개건 안먹는 게 좋습니다. 사과씨에 들어있는 아미그랄린이라는 성분이 몸속에서 소화가 되면 청산가리가 만들어지거든요. 별로 많이 들어있진 않아서 먹고 죽기도 힘들긴 합니다만.

 

 

 

 

 

9) 개사과 사건이 의미하는 걸 이해 못하는 분들이 혹시 있을까봐 설명을 하자면요.

 

 개사과 사건의 주범이 명신王후라면 그냥 그 자체로 거짓해명에 더해 부부가 쌍으로 자격미달. 만약 물돼지 전하측의 해명대로 그 야밤에도 일하면서 주당 120시간 근무하는 담당자가 따로 있다면 - 담당자가 따로 없다는 이야기가 돌핀스에서 이미 흘러나왔던 것은 넘어가고 - 그런 담당자를 그렇게 중요한 직책에 기용한 게 문제라 마찬가지로 자격미달입니다. 어차피 물돼지 전하는 정치 아무것도 몰라서 청와대 들어가기라도 하면 사람 잘 써야 겨우 대통령으로 1인분 할 수 있을 건데요. 지금 보면 1인분은 커녕 잘봐줘야 풍채와 반비례하는 수준으로 빈약한 레벨 아닙니까. 게다가 사람 잘쓰겠다는 식으로 전두환 이야기를 꺼낸 건데, 그 전두환 이야기 수습하는 과정에서 사람 잘못쓴 게 드러났고, 또 돌핀스하고는 전두환 - 개사과 건으로 남국... 아니, 난국이라고 하니 우리 물돼지 전하가 자칭 王이신거 빼고 과연 장점이 무엇이 있단 말입니까?

 

 

 

 

10) 내가 갑자기 물돼지라는 표현을 써서 생소하신 분들도 있을 것 같은데, 물돼지는 돌고래의 또 다른 표준어이자 옛말입니다. 우리나라만 돌고래를 물돼지라 부르는 게 아니고, 중국어로도 돌고래는 海豚입니다. 돌고래의 ‘돌’이라는 접두사도 ‘돋’에서 변형된 건데, 원래 우리나라 말로 돼지를 부르는 말이 ‘돋’입니다. 말의 새끼를 망아지라 부르고 소의 새끼를 송아지라 부르는 것처럼 돋의 새끼는 도야지라 불렀었는데, 어쩌다보니 도야지 -> 돼지가 되어 돋 전반을 부르는 단어가 되었고, 새끼돼지는 그냥 새끼돼지 또는 돼지새끼라 부르게 되었지요. 윷놀이에서의 ‘도’ 역시 돼지를 의미합니다. 때때로 ‘도’를 돼지라고 부르는 걸 들어보신 분들도 있을 텐데, 도는 돼지와 같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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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정권 좌우 정도의 어림

정치 2021. 2. 18. 15:56 Posted by 해양장미

 

 브금

 

https://youtu.be/n0eLkfMaAcc

 

 

 내가 줄곧 생각해온 난제 중 하나가, 정치라는 걸 제대로 아는 것이 너무 어렵다는 겁니다. 많은 분들이 정치를 알고는 싶어 하는데, 잘 알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이 제안합니다. 그놈이 그놈이라면 그래도 ‘좌파는 뽑지 말라’고요. 그러려면 간략한 좌우 구분법이 필요한데요.

 

 나는 우리나라 조건에서 다음 다섯 가지 기준을 적용하려고 합니다.

 

- 작은 정부 지향인가, 큰 정부 지향인가?

- 산업을 지향하였는가, 금융을 지향하였는가?

- 강대국 지향인가, 속국 지향인가?

- 친미인가, 친북/친중/친러인가?

- 친일인가, 반일인가?

 

 상기한 기준으로 전자면 20점, 후자면 0점. 총점으로 0/20/40/60/80/100으로 점수를 매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점수가 높을수록 우파, 낮을수록 좌파인 걸로. 특정 팩터 구분 불가할 경우 10점입니다.

 

 이 기준대로 기존 정권들을 평가해보지요. 어느 정도 나의 사견이 들어갑니다.

 

 

 

1) 이승만 정권

- 큰 정부 지향, 산업/금융 지향 없음, 강대국 지향, 친미, 반일

: 50 (중도)

 

 

 

2) 장면 내각

- 큰 정부 지향, 산업 지향, 강대국/속국 지향 없음, 친미, 반일 지향 없음

: 50 (중도)

 

 

 

3) 박정희 정권

- 큰 정부 지향, 산업 지향, 강대국 지향, 친미, 친일

: 80 (우파)

 

 

 

4) 최규하 정권

- 평가하지 않습니다.

 

 

 

5) 전두환 정권

- 작은 정부 지향, 산업 지향, 강대국 지향, 친미, 친일/반일 지향 없음

: 90 (강한 우파)

 

 

 

6) 노태우 정권

- 작은/큰 정부 지향 없음, 산업 지향, 강대국 지향, 친미/친러 지향 없음, 친일/반일 지향 없음

: 70 (우파)

 

 

 

7) 김영삼 정권

- 작은 정부 지향, 금융 지향, 강대국 지향, 친미, 반일

: 60 (중도우파)

 

 

 

8) 김대중 정권

- 작은 정부 지향, 산업 지향, 강대국/속국 지향 없음, 친미/친북 동시지향, 친일

: 80 (우파)

 

 

 

9) 노무현 정권

- 큰 정부 지향, 금융 지향, 강대국/속국 지향 없음, 친중/친북/친러, 반일

: 10 (강한 좌파)

 

 

 

10) 이명박 정권

- 작은 정부 지향, 산업 지향, 강대국/속국 지향 없음, 친미, 친일/반일 지향 없음

: 80 (우파)

 

 

 

11) 박근혜 정권

- 큰 정부 지향, 산업 지향, 강대국/속국 지향 없음, 친미/친중 동시지향, 친일/반일 지향 없음

: 50 (중도)

 

 

 

12) 위수문동(僞囚紊哃) 정권

- 큰 정부 지향, 금융 지향, 속국 지향, 친중/친북, 반일

: 0 (매우 강한 좌파)

 

 

 정리하자면

 

우파 :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대중, 이명박

중도 : 이승만, 장면, 김영삼, 박근혜

좌파 : 노무현, 위수문동(僞囚紊哃)

 

 입니다.

 

 이렇게 정리해 놓으니까 보편적인 인식하고는 꽤 달라지지요?

 

 이 정리에서는 우파 쪽이 성적과 결과물이 좋습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우파’는 그저 보수주의를 의미한다기보다는, 루이 16세를 죽이지 않으려 했던 온건함과 공산주의에서 자유를 지키려 했던 자유주의 같은, 그런 좀 더 보편적 긍정성이 있는 걸 포함하여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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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의 포지셔닝 난항에 대하여

정치 2020. 7. 4. 12:00 Posted by 해양장미

 브금

 

https://youtu.be/SWcI7WqdlIQ

 


 

 소위 보수주의자들은 아주 오랜 세월동안 큰 착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보수세력이 어려워진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사전적 의미, 또는 정치학적 의미로의 보수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박정희가 보수주의자였을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박정희는 과감한 개혁주의자였고, 민족주의를 앞세우는 지도자였습니다. 전두환이나 노태우는 보수주의자였을까요? 둘 다 개혁적이었고, 마찬가지로 민족주의를 앞세웠습니다. 김영삼은? 김영삼은 급진 수준으로 개혁적이었고 민족주의도 강하게 앞세웠습니다. 이명박도 보수하지 않았습니다. 개혁적인 인물이었지요. 다만 이명박은 역대 한국 대통령 중 유일하게 민족에서 거리를 뒀습니다. 그래서 업적에 비해 인기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나마 말년에 독도 방문 퍼포먼스 하면서 인기 좀 올렸지요. 대신 한일관계를 살짝 말아먹었고. 마지막으로 박근혜는 좌클릭 실컷 하면서 집권했습니다. 개혁을 제대로 한 게 없습니다만, 개혁적인 성향이 없다고는 할 수 없었지요.


 

 그러니까 원래 우리나라 집권세력의 기본 컬러는 개혁 성향’ + ‘민족주의였습니다. 여기서 벗어난 정권이 거의 없어요. 어느 당에서 집권하건. 보수주의자들의 오해와는 달리, 이 성향을 기본으로 만든 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으로 이어지는 현 미통당 계열의 장기집권이었고요. 그러니까 당은 달라졌어도 일단 현 위수문동(僞囚紊)정권도 개혁 성향의 민족주의인 쪽으로 보이면서 집권한 겁니다. 물론 실제로는 역대 그 어떤 정권보다도 개혁성향이 없습니다만.


 

 미통당이 헤매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개혁과 민족을 좋아합니다. 그러니까 이 두 요소를 놓치고 집권하는 건 어렵습니다. 개혁의 청사진, 신뢰, 그리고 우리 민족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 것인지. 이런 것들을 보여줘야만 세가 생깁니다. 나는 자유주의자고 직업 정치인은 아니니까 이런 걸 알아도 별로 말을 안 해왔는데, 상황이 워낙 나쁘니까 말을 해야겠습니다.


 

 곧 686으로 네이밍을 바꿔야 할 586이건 40대건, 위대(偉大)하고 개혁적인 민족주의 영웅에 대한 갈망과 환상이 있습니다. 정치를 잘 아는 사람들 중 586을 박정희와 유신의 사생아라고 조소하는 사람이 많은데, 40대까지는 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 시절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주체사상파의 정서와 사고방식도 갑자기 무()에서 생겨난 게 아닙니다. 20대가 40대와 586을 이해하기 힘든 건, 민족주의 색채를 약화시켰던 이명박 시대에 자라난 영향이라 생각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명언 중 정치가는 국민을 반보만 앞서가고, 국민의 손을 놓으면 안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정치인이 국민에 너무 앞서가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좋은 방향으로 반보씩 앞서 대한민국의 주인인 국민이 더 좋은 길로 가도록 할 수는 있습니다. 물론 국민은 대한민국의 주인이었지 헤븐조선의 주인은 아니긴 합니다. 네오 헤븐조선의 주인 당과 헤븐조선, 촛불혁명의 최고령도자, 성인지감수성과 래디컬 페미니즘의 든든한 수호자, K아이돌 중 단 하나의 정점, 누구보다 달과 같은(Lunatic) , 화성(火星)보다 붉은 분, 그믐보다 더 깊은 분, 노틀담의 예언 속 대왕 앙골모아, 평등(抨蹬)과 공정(恐怔)과 정의(怔偯) 그 자체, 북쪽을 바라볼 때는 그냥 천사, 남쪽을 바라볼 때는 나팔과 금대접을 든 천사, 모든 존엄 중 최고존엄(膗辜燇㛪), 위대(僞大)한 수령(囚囹) 문재인(紊災人) 동지(哃謘)이시지요.


 

 소 거의 다 잃고 목장 울타리 고치는 상태이긴 합니다만, 불행 중 다행히도 김종인과 주호영은 감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럴 만도 한 게, 김종인은 박정희 유신시절 당시 국민건강보험제도를 도입한 인물입니다. 주호영은 경력을 보면 법관 시절 소신판결을 하던 인물이고, 발언을 보면 정치철학을 잘 이해하는 편 같고요. 정치인으로의 행보를 보면 대구에서 쭉 비박계를 했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만약 우리나라가 말 그대로 보수주의적인 국가였다면 지금과 같이 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우리나라는 그 어떤 나라보다도 전통문화가 많이 사라진 국가입니다. 바닥난방처럼 어레인지되어 남아있는 것들을 제외하면, 거의 흔적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지요. 심지어 관습에 대한 존중도 거의 없는 편입니다. 아예 보수주의적인 기반 자체가 없단 말입니다.


 

 대조적으로 미국이나 유럽 등지는 관습을 우리보다 훨씬 중시합니다. 일견 비효율적이거나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것들조차, 일단 관습을 중요시하고 쉽게 바꾸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처럼 근대화가 늦어서 모든 걸 바꿔가면서 죽자 사자 따라붙은 나라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의 이념적 보수주의자들은 일단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보수성향의 단체를 만들거나 정책을 펼치고 싶다면 체계화를 시키고 정리한 발상을 논의하여 우리 헤븐조선의 가붕개들에게 제대로 이해를 시켜 줄 필요가 있습니다. 나 또한 자유주의자로 시간이 날 때마다 자유주의를 설명하고, 주변에 이해시키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생각을 정리하고 이야기하는 과정 없이 권력을 위해 목소리만 높이고 그 때 그 때 이익을 쫓는다면, 결국 파시스트나 포퓰리스트가 될 뿐입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들

정치 2019. 11. 18. 22:24 Posted by 해양장미

 브금은 이명박 선거송입니다.

 

https://youtu.be/TUw93udkreg

 

 

 

*) 이명박은 사실 박근혜와 묶여서 취급되기엔 성과를 낸 대통령입니다.



 그렇지만 곧잘 묶여서 취급되곤 하지요. 당이 같아서 그런 면도 있습니다만, 처음 이명박근혜라는 용어를 사용했던 건 웃프게도 대선 당시의 이명박 캠프였습니다.


 

 2007년 초에 고건이 낙마하면서 이명박과 박근혜의 한나라당 경선은 실질적으로 대선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는데요. 둘 다 워낙 클린하지 못하다보니 서로 엄청나게 어택을 가했습니다. 추후 둘이 감옥가게 되는 근거의 단초가 당시에 거의 다 나왔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양측 지지층이 감정이 많이 상하기도 했었는데요. 이명박 캠프는 대선을 치르기 위해 이명박근혜라는 어휘를 사용해서 둘을 엮게 됩니다.

 

 그 후엔 떨어지고 싶어도 곧잘 엮이게 되었지요.

 

 

*) 2008년에 광우병 시위가 그렇게 커진 데는 조중동 등 메이저 신문사의 역할도 컸습니다.


 

 몇 년간 수입하지 않았었지만, 노무현 집권 후기인 2006년 들어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이 재개됩니다. 당시 노무현 정권에 적대적이었던 조중동 등 메이저 신문사는 광우병의 위험을 소리 높여 보도했고, 미국에 영 고분고분하지 않던 노무현 정권도 아주 샅샅이 검역하여 뼛조각 하나라도 발견되면 전량 되돌려 보내고 수입을 다시 중단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미 이명박 취임 이전에 광우병과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 꽤 경계심이 생겨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이명박이 미국 다녀오더니, 갑자기 완화된 광우병 수입 조건과 함께 정권이 미국산 쇠고기를 홍보/광고하기 시작했으니 그야말로 불타오르기 좋은 상황이 조성되었던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그 시위는 노무현에 대한 공격적인 수사로 이어졌고, 이후 노무현이 자살하면서 현 문재인 정권 탄생의 발단이 되고 맙니다. 비극의 시작은 미국산 쇠고기였어요.

 

 

*) 요새 정부가 돈을 막 쓰다 보니 4대강에 대해 재평가가 나오기도 하는데요.


 

 4대강은 사실 현재 해놓은 것만 가지고는 그렇게까지 욕을 엄청나게 먹을 건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처음부터 이렇게 4대강을 하려던 게 아니고, 정신이 나갔다는 표현을 쓸 수밖에 없는 한반도대운하를 하려다가 여론에 밀려서 4대강을 한 것입니다.


 

 광우병 시위의 최대 성과는 사실 대운하를 막은 거였지요. 제정신을 가지고 대운하 계획을 살펴본다면 그게 아예 말도 안 된다는 걸 누구나 알 수 있을 겁니다. 4대강도 좀 쓸데없고 이상하게 공사된 부분이 많은데, 대운하 계획을 고쳐서 4대강을 했기 때문에 영 이상하게 된 부분이 많습니다. 그래서인지 박근혜 때도 감사원에서 꽤 많이 어택당했어요. 나는 당시의 감사원 판단도 좀 이상했다는 입장입니다만.

 

 이명박 정권은 나름대로 유능한 면이 있던 정권이었습니다만, 그 대운하와 리먼 인수 건 때문에 본격 정신 나간 정권으로 이미지가 깊숙이 박혀버렸습니다. 어지간한 비리는 넘어가주는 유권자라도 대운하같은 걸 밀어붙이는 인물을 좋게 판단하기는 무척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 당시 대운하를 포기한 이명박 정권이 유일하게 판 운하가 경인아라뱃길입니다.


 

 실제 운하로는 아무 쓸모가 없다시피 하고, 자전거 도로 및 캠핑장 취급 받고 있습니다. 인천 서구 및 계양구 일부지역 시민들에게는 무척 좋은 공원이긴 합니다. 너무나도 공사비가 비쌌던 게 문제입니다만. 경인아라뱃길의 별명 중 하나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자전거도로입니다. 4대강 자전거길은 경인아라뱃길 정서진의 아라서해갑문에서 시작해 남한강을 거쳐 낙동강으로 바로 이어져 부산까지 갈 수 있게 되어있습니다.


 

 아라뱃길은 차라리 조금 더 폭을 넓게 팠다면 인천아시안게임 당시 조정 경기용으로 쓸 수 있었습니다만, 폭이 좀 부족해서 그 용도로도 못 썼습니다. 조정경기는 머나먼 충주에서 열렸다고 합니다. 인천아시안게임이었는데요.


 

*) 최규하는 본래 정치적 야심이 없던 인물이었습니다.


 

 박정희와 차지철이 김재규에게 총을 맞아 죽고 김재규까지 제압된 시점에서, 사실 후계로 정해져 있다시피 한 건 당연하게도 김종필이었습니다. 그런데 김종필은 유신헌법에 의해 대통령이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임시로 최규하가 대통령이 되었고, 김종필은 민주헌법으로 헌법을 고친 후 대통령이 될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전두환이 12.12를 일으켜서 대통령을 하게 되지요김종필은 대통령을 죽을 때까지 못 하게 되고요. 신군부 당시 마음이 상한 김종필을 그래도 챙겨주던 게 노태우였는데, 그래서 김종필은 노태우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해 줬고 노태우는 김종필의 조언을 따른 덕에 대통령이 됩니다. 김종필은 결국 자신은 대통령을 못 했지만 대통령을 셋 만들었어요. 박정희, 노태우, 김대중.


 

 시대가 흘러 김영삼 취임 이후 전두환과 노태우가 재판을 받게 되었고, 최규하는 증언 요청을 여러 차례 받았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모두 거부합니다. 그리고 최규하는 끝까지 아무 말도 안 하며 린드버그를 쓰는 모 대통령과는 대조적으로 무척이나 검소하게 살다가 2006년에 사망합니다.

잘못된 담론, 민주주의 VS 경제

정치 2019. 11. 7. 11:06 Posted by 해양장미

 추천 브금

 

https://www.youtube.com/watch?v=__QPyOfsTgk

 

 


 

 가끔 나오는 담론인데, 이걸로 가장 시끄럽던 때가 노무현 때였던가요. 본질적으로 이 담론은 오해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합니다. 데모크라시를 잘못 이해하고, 독재를 잘못 이해하는 데서요.

 

https://oceanrose.tistory.com/1086

 

 이 링크부터 읽어보시면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지 감 잡기 쉬워지실 거라 생각하고요.


 

 민주정체는 정치체제고, 민주적인 방식은 어느 정도의 시간적 여유가 있을 경우 - 그러므로 응급의료나 긴급한 군사작전 같은 경우는 논외 - 최선의 의사결정방식입니다. 이상적인 민주적 의사결정은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어떤 집단에서 가장 나은 인물이 표결에 의해 대표자가 됩니다. 그 대표자는 열린 태도로 전문성 있는 인물들의 도움을 받아 의사를 결정합니다. 그렇게 가능한 많은 분야에서 최선의 결과를 냅니다. 누군가 오판을 하면 바로잡습니다.



 원리상 독재는 민주적 의사결정보다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게 불가능합니다. 의사결정이 독단적이고 권위적이다 보니 합리적으로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이지요. 독재해서 망한 나라의 가장 좋은 샘플이 휴전선 북쪽에 있습니다. 그게 독재가 완전히 망하는 전형입니다. 김일성이 어처구니없는 지시 할 때 그걸 반대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어요. 거긴. 지도자가 어처구니없는 지시를 내릴 때, 지도자의 측근이 말도 안 되는 전횡을 행사할 때, 누군가 나서서 막을 수 있는 게 민주적인 겁니다.



 민주주의 VS 경제라는 담론이 나온 건 우리나라에서 군사정권이 경제정책을 잘 해서 그런 건데요. 이건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일단 독재자라고 모든 분야에서 독재하는 게 아닙니다. 박정희건 전두환이건 그랬습니다. 오히려 경제분야에서 독재하는 건 문재인이 역대 그 누구보다도 훨씬 심각합니다. 박정희건 전두환이건 경제정책에선 문재인같이 독재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경제정책 뿐만 아니라 정책 전반이 다 그랬고요.



 유신 이전의 박정희 정권은 다양한 정책에 있어 당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합리적인 의사결정능력이 있었습니다. 이는 당시 한국 상황에서 군인들이 엘리트였던 것에 기인합니다. 지금은 상상하기 힘들지만, 그 시절엔 잘 교육받는 청년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박정희 군부에서 일하던 군인 출신들은 젊은 편이기도 했고요. 지금 86보다 당시 군부정권 인사들이 훨씬 젊습니다. 5,16당시 김종필의 나이는 불과 만 35세였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30대가 당시의 김종필과 같은 권력을 얻는 게 가능할까요? 박정희도 그 땐 만 44세에 불과했습니다. 정권이 전체적으로 젊었던 겁니다.


 

 당시엔 야당의 반대들 중 어처구니가 없는 게 많았습니다. 최대한 민주적으로 가더라도 박정희 정권은 대체로 당연히 야당의 반대들을 이기고 가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민주적 의사결정이 잘 되려면 합리적 논의가 가능하고, 덜 논리적인 쪽이 빨리 패배를 인정해야 하는데,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는 그게 유난히 안 되는 편이긴 합니다. 특히 이 정권은 역대 최악으로 안 되고요. 전두환은 아예 본인의 모자람을 깨닫고 경제는 김재익 같은 전문가한테 위임하였습니다. 여담으로 나는 전두환이 통치자로 굉장히 유능했던 면을 인정하는데, 그는 정말 주제파악을 잘 했을 뿐만 아니라 주변에 베푸는 것을 절대 소홀하지 않는 인물이었습니다. 만일 이명박이 전두환의 장점을 조금이라도 본받았다면 감옥에까진 가지 않았을 겁니다. 전두환과 같은 인물이 군사정변으로 집권하였고 민간인 학살을 최소 방조하였으며 권력욕이 과도하고 인권의식이 심히 모자랐던 것은 참으로 비극적인 일이었지요. 그는 적어도 좀 더 오래 감옥에 있었어야 했습니다.


 

 나는 우리나라의 발전은 박정희 정권이 합리적 의사결정을 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판단하며, 그것은 독재자의 일반적 특성이 아니라고 굳이 이야기하겠습니다. 적어도 박정희는 경제에 있어 올바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인물이었고, 집권 전반부에는 독단적으로 잘못된 판단을 많이 내리지 않았습니다. 만약 박정희가 문재인처럼 독단과 오판을 반복했다면, 한강의 기적이 없었음은 물론 그 어떤 비참한 나라꼴이 되었을지 모를 일입니다. 다만 박정희가 권력욕을 덜 부릴 수 있었고 겸손했다면 참으로 좋았을 것인데, 권력에 대한 그의 과욕은 그 자신에게도, 그의 일가에게도 비극을 만들었을 뿐임을 모두가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박정희는 경제를 잘 한 정권으로 평가받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의 방식은 시대에 뒤떨어졌습니다. 유신 이후 말년에는 경제를 못 해서 퇴임 압력을 받다 김재규에 의해 사살되었음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즉 박정희도 비교적 민주적이고 젊던 시절에 더 잘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잘못한 점이 쌓였음에도 스스로 단점을 충분히 개선하지 못했기 때문에 말년에는 독재로 인한 실책이 두드러졌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민주정의 장점 중에는 박정희처럼 지도자가 권력에 집착하고 교만해질 때 그걸 방지할 수 있는 것이 일단 있습니다. 아무리 유능한 지도자라도 잘못을 하지 않을 수는 없으며, 지도자의 노화와 지속되는 과로는 이런저런 문제를 만들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민주적 의사결정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어느 때에나 반드시 필요합니다. 의사를 결정하는 방식을 기준으로 본다면, 박정희나 전두환보다 문재인의 독재하는 정도가 더 심합니다. 박정희는 군사 독재자의 일반적인 단점이 적은 편인데, 문재인은 포퓰리즘 독재자로 온갖 단점을 총망라하여 교과서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라 하겠습니다.

앞으로 해야 할 것

정치 2019. 9. 16. 12:23 Posted by 해양장미

 추천 브금

 

https://www.youtube.com/watch?v=B7sFufV8o9w

 



 추석도 지나갔네요. 명절 기간 동안 문재인 비판, 조국 비판 많이들 하셨습니까? 싸움은 잘 하셨는지요?


 

 요새 문재인 정권이 데모크라시를 망치는 걸 보고 있으면요. 확실히 박근혜보다는 몇 수 위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안희정, 이재명 같은 정적 제거를 보면 지저분함의 극치지요. 박근혜가 진박마케팅은 했지만, 정적을 이 정권 수준으로 더럽게 제거하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조국 지키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박근혜는 안대희, 문창극, 이완구 등에 훨씬 엄정한 기준을 적용해서 임명을 철회하거나 사퇴시키곤 했었지요. 그런데 문재인 정권은 조국을 보호하기 위해 피의사실 공개금지 훈령까지 만들려고 하면서 본격적인 독재행보에 나서고 있습니다. 만일 박근혜가 이번 정부 하듯 피의사실 공개금지를 추진했다면 절대 탄핵당할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이에 문재인 정권에 반대하는 민주 시민들이 일단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문재인, 조국 편을 노골적으로 드는 사람들은 민주정의 적이요, 독재의 부역자이면서 판단능력과 양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가능한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대접을 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일단 그들을 전두환 시절 전두환 정권을 옹호하던 자들과 동급 취급을 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전두환이 명백한 독재자였듯, 문재인도 방식은 다르지만 이제 명백한 독재자입니다.


 

 더 나아가 이제 문재인과 조국 편을 강하게 드는 자들은 통찰력과 상황 이해능력, 책임감 등이 심각하게 결여된 인물임이 확인된 것이므로 그에 어울리는 대응을 해야만 합니다. 앞으로 가능한 그들의 판단을 신뢰하지 말고, 판단할 위치에 두지 않으며, 책임져야 할 위치에 두지 않아야 합니다. 문재인의 실정을 옹호하고 그의 책임을 묻지 않으려는 자들은, 자신이나 자신이 애정을 가진 이가 무언가 책임질 상황이 될 경우 똑같이 한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또한 대깨문, 대깨조들은 이미 우리나라의 번영과 발전, 윤리성, 시민의 행복, 자유와 공동체 등에 심한 피해를 입히고 있는 바, 모든 가치의 공적이자 사회의 공적으로 간주할 필요가 있다고도 주장하겠습니다.


 

 쉽게 정리하겠습니다. 지금은 87체제 이후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최대 위기입니다. 그리고 대깨문, 대깨조는 독재 정권의 부역자들이자 파시스트로 민주주의의 명백한 적입니다. 민주주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민주주의자라면, 민주주의의 적에게 그에 상응하는 대접을 각자 가능한 범주 내에서 철저하게 해주시길 바랍니다.


 

 본문이 과격하다고 생각하실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 이니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민주당 20년 집권하다가는 정치, 경제, 외교, 사법, 행정, 사회질서 등등 다 무너질 확률이 너무 높고요. 어차피 모든 게 무너질 때가 오면 두개골이 무사한 사람들은 대깨문들을 원수 취급하게 될 겁니다. 그러니까 파국이 오기 전에 뭐라도 해보는 게 낫습니다.


 

 본문은 가까운 대깨문, 대깨조에게 공격성을 드러내고 당장 응징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런 식으로는 각자의 상황이 개선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그들에게 권력과 지위와 책임을 허용하거나, 무언가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또한 그들은 판단력이 낮고, 의존적이며, 주관이 별로 없습니다. 어딘가에서 사기당하기 쉽고 큰 오판을 저지르기도 쉬운 타입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떼어낼 수 없이 가까운 사이라면, 이성적으로 그들의 권한과 결정권을 차차 박탈해 나가야 합니다. 물론 가능하다면 너무 가까이하지 않는 게 좋긴 합니다.


 

 대깨문이 되기 쉬운 성격을 가진 인물은 본질적으로 굉장히 자기중심적입니다. 자기중심적이라는 게 이기적이라는 건 아닌데, 주관적 친밀감을 많이 중시하는 타입들이라 친하면 잘해주는 경우도 많습니다. 인간적인 타입으로 보일 수도 있지요. 문제는 위에도 말했듯 판단력도 책임감도 없으면서 자기주장은 강하고, 그와 동시에 주관이 약하며 또 타인에게 의존적인 데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타입들이 대체로 대깨문이 됩니다.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친밀감은 유지해도 좋지만 중요한 일은 가급적 엮이지 않는 게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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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도 518일이 돌아왔습니다. 한국사에 비극은 참 많았지만, 5.18은 그 중에서도 역사에 많은 영향을 끼친 비극이었습니다.

 

 5.18은 불법반역행위로 권력을 점유한 군벌에 의한, 무고한 시민에 대한 무차별 폭동/학살 사건이었습니다. 특히 이 사건은 지역감정을 자극해, 일종의 약화판 홀로코스트를 유도한 면이 있었습니다. 딱히 민주화 운동이랄 것도 없이 광주 시민들은 생존과 존엄을 위해 용감하게 싸웠고, 역사의 승자가 되었습니다. 부당한 권력의 폭력 앞에 자연인이 존엄을 위해 무장하고 맞서 싸우는 건 천부적 권리이자 의무입니다.

 

 다만 향후 이 역사적 비극을 정리하겠다고 나선 참여정부가 어처구니없는 과오를 저지른 게 있었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에피소드라 한번쯤 언급해보려 합니다.

 

 배승일씨는 1980년 당시 광주의 한 탄약창고에서 육군전투병과교육사령부 군무원으로 복무 중이었습니다. 그는 과거 1977년 이리역 폭발사고 당시 폭발물 처리를 맡은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524, 전남도청은 시민군이 점령 중이었지만 곧 계엄군의 탈환작전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군은 도청 지하에 엄청난 양의 폭약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배승일씨에게 제거해주길 부탁합니다. 그에 배승일씨는 목숨을 걸고 2000여개의 다이너마이트와 450여발의 수류탄 뇌관을 제거합니다. 만약 이것이 교전 중 터졌다면 어떤 결과가 있었을지는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일이지요. 배승일씨는 이 공적을 인정받아 그해 보국훈장 광복장을 받습니다.

 

 그런데 2006, 노무현 정부는 5.18 진압작전 참가자의 서훈을 취소하면서, 배승일씨의 훈장도 함께 박탈해버립니다. 어처구니없는 처사였지요. 당연히 배승일씨는 그 조치를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배승일씨는 당시로부터 약 10년 전에 당한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언어/시각에 장애가 있는 상황이었고 생계도 수월하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그렇다 해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그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온갖 5.18 단체를 찾아다니고, 정부에 소송까지 불사하여 결국 2007년에 명예를 되찾습니다.

 

 참여정부는 일을 엉터리로 해서 광주사태의 영웅 중 한 명에게 부당한 피해를 끼쳤습니다. 이에 대해 정부 차원의 사과와 보상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참여정부는 공권력 행사로 인한 시민들의 피해에 합당한 보상과 사과를 했던 정부는 아니었습니다.

 

 그에 본 블로그에서라도 배승일씨의 업적을 다시 한 번 이야기하고 기념합니다. 그의 활약으로, 어쩌면 발생할 수도 있었던 끔찍한 참사가 예방되었습니다.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폭발물을 제거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국가는 그에게 감사는커녕 훈장을 빼앗아갔었지만, 명예는 회복되었습니다.


 인터넷에서 야권을 지지하는 사람들 중 절대 다수는 친노다. 좀 더 제대로 표현하자면 ‘친노주의’적이라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대부분 그들은 친노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거나, 친노가 그 어떤 다른 세력보다도 낫다고 생각한다. 또 한편으로는 친노가 잘못을 좀 저질렀기로서니 그들의 적인 새누리-친일파보다는 훨씬 낫지 않느냐는 식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런 의문들에 대한 나름대로의 참고 자료를 제시하고자 한다. 친노가 그 동안 해 온 업적과 잘못을 좀 정리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애초에 친노가 왜 태어났는지, 어떻게 태어났는지, 그리고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를 알아야 한다.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민주주의 체제와 헌법은 1987년의 민주화로 탄생되었다. 그래서 현재의 체제를 87체제 및 제 6공화국이라 한다. 그러나 이 87체제는 시작부터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 민주화의 두 영웅, 김대중과 김영삼이 단일화를 이뤄내지 못함에 의해 전두환의 친구였던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당시에 민주화 항쟁을 하던 수많은 사람들은 그야말로 극심한 정신적 피해를 입었고, 그 때 정신줄이 나가버린 사람은 그야말로 셀 수 없이 많았다. 당시 노태우의 득표율은 36.6%에 불과했다. 그리고 김영삼과 김대중이 각기 28%, 27%을 나눠 먹었다. 단일화를 했다면 절대로 질 수 없는 선거였다.


 그러나 이 87년의 오점은 이후 흑역사의 화룡정점이라 할 수 있는 김영삼의 3당 합당으로 한 단계 진화하고야 만다. 김영삼은 민주화 세력의 반을 이끌고 박정희 잔여 세력 및 전두환 잔여 세력과 합치고 만다. 그리고는 92년에 평생의 동반자이자 라이벌이었던 김대중을 꺾고 대통령이 되면서 미래로 이어질 단단한 흑역사의 구도를 완성 짓는다.


 이 때 김대중은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그것은 단순한 좌절 탓은 아니었다. 87년의 패배엔 김영삼보다는 그의 책임이 더 컸다. 3당 합당을 저지른 것은 김영삼이었지만, 김대중도 그럴 만한 배경은 제공한 상태였다. 그리고 김대중의 적들은 김대중을 두려워했다. 그는 완벽한 인물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너무 큰 인물이었다. 이때의 비극은 5년 후에 반전 드라마가 되긴 하지만, 그가 정치에서 떠나있던 동안 민주화 세력은 참으로 많은 것을 잃었다.


 또한 3당 합당이 일어나던 시기에 세계사도 큰 변화가 있었다. 도이칠란트가 통일되고,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지고, 중국 또한 본격적으로 자본주의의 길로 가면서 한중수교가 대선을 약 4개월 앞둔 시기에 이루어졌다.


 김문수와 이재오는 다들 높이 평가하던 민주화 투사였다. 그러나 이들은 공산주의의 붕괴를 보면서, 자신들이 믿던 가치가 붕괴하는 것을 보았다. 뉴라이트는 믿음의 붕괴로 탄생하였다. 이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180도 선회했다. 그들은 여전히 치열하지만, 과거의 동지들과 함께 하지는 않은 지는 오래되었다.


 손학규가 김영삼의 밑으로 들어간 것은 저 김영삼 정권 때의 일이었다. 그는 민주화 투사였으며 김근태의 친구였고, 김대중을 더 존경했다. 그러나 김대중은 그 때 정계에 없었다.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김영삼 쪽이었다. 친노들은 아직도 그가 한나라당 출신이었다고 낙인을 찍는다. 그러나 그의 입장에서는 그럴 만 했다.


 김대중이 없는 5년간 민주당을 일으켜보고자 고생한 사람들은 여럿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 나름대로의 야심이 있었다. 그러나 5년 후 복귀한 김대중의 거대한 존재는 그들의 지난 노력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김대중은 그들과 충분히 타협하질 못했다. 민주당의 잠재력은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는 과정에서도 충분히 하나가 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97년 대선에서 김대중이 승리한 것은 김종필과의 연합 및 이인제의 이회창 표 나누기, 그리고 외환위기라는 특수한 상황과 이회창이 영남 출신 후보가 아니었던 배경 등에서 성공할 수 있었다.


 이후 집권한 김대중은 자신에게 충성했던 측근들을 제대로 챙겨주거나 키워주지 못했다. 그는 위대한 정치인이었지만 현실적인 통치자로 충분히 단련되어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또한 그는 이상주의적인 면이 있는 인물이었고, 그가 처한 현실은 현실주의적인 복수를 어렵게 했다. 그는 악을 철혈로 심판하려고 하기보다는 용인하였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필요한 계파와 정당의 발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결과 소위 동교동계는 김대중의 5년이 흐르면서 구태의 상징이 되었다. 김대중조차 막지 못한 측근비리가 터지면서는 더더욱. 그는 한국의 눈부신 민주화와 새로운 번영의 길을 만드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신질서를 만드는 데 실패한 것이다.


 노무현은 이러한 조건에서 대선 후보로 등장했었다. 그의 개인적 정치사도 꽤 복잡한 편인데, 그는 처음에는 김영삼 쪽의 인물이었으나 3당 합당 때 그 유명한 ‘이의 있습니다!’를 외치면서 떠났다. (그 결과 김영삼은 노무현의 장례식에서조차 그를 제대로 추모하지 않았다.) 이후 노무현은 민주당계로 들어갔고, 부산과 종로 등지에 여러 번 출마했으나 두 번을 제외하고는 낙선을 거듭했었다. 2000년엔 종로 공천을 거절하고 부산에 출마했었는데, 여기서도 낙선했지만 결국 이 과정에서 노사모를 얻었었다. 그 후 그는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해수부가 없어진 것과, 이번 대선 과정에서 해수부 이야기가 많이 나온 것은 실질적으로 노무현의 발자취 때문이라 할 수 있다.


 10년 전, 민주당 경선 시작 당시 가장 유력하던 후보는 이인제였다. 지금이야 이인제가 좀 개그 이미지로까지 전락했지만, 그 때만 해도 이인제는 작년의 문재인이나 안철수 이상의 인지도를 지닌 유력 대선 후보였다. 대조적으로 당시 경선에 나선 노무현은 사실 충분히 준비된 후보는 아니었고, 안티 이인제에 가까웠다.


 이인제의 최종 승리를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렇지만 뜻밖의 변수는 여론조사에서 나왔다. 여론조사 결과 노무현이 이회창과의 1:1 구도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고, 이후 민주당 경선에서 엄청난 세몰이를 하며 최종 승리에 이르렀다. 한편으로 당시 김해 출신이던 노무현은 영호남으로 갈라진 한국의 지역 구도를 타파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안고 호남의 지지를 받는 영남 후보로 올라서게 되었다. 여론조사가 정당 정치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한 것이 이 때였다.


 그러나 경선을 승리한 노무현이 대선을 맞이하기엔 아직 긴 시간이 남아있었다. 당시 민주당의 경선은 4월 말에 끝났고, 대선까지는 무려 8개월이 남은 상황이었다. 더구나 그 중간의 여름엔 지방 선거와 한일 월드컵이 끼어 있었다. 거기에 더해 노무현은 쉽게 말해 갑자기 툭 튀어나온 후보에 가까웠다. 노무현은 호남 출신도 아니었고, 명성도 다소 부족했고, 기반도 충분하지 않았다.


 당시에 노무현을 견제했던 민주당 사람들을 무조건 비난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정치는 현실이고, 현실적인 조직에서 갑자기 위로 확 올라와 튀는 사람이 있으면 견제하는 게 사람 심리다. 특히 한국은 그런 문화가 강하다. 그리고 노무현은 기반이 충분하지도 않았고, 그런 현실에 적응하기보다는 그런 현실과 맞서는 사람이었다.


 노무현 같은 유형의 사람이 실질적으로 최고 지도자에 오르는 것은 인류의 역사 전체를 통틀어도 그리 흔한 일이 아닌 것 같다. 그러나 발달한 문명과 기술, 그리고 노무현이 가진 정치인으로의 매력은 그런 낮은 가능성을 실현시켰다. 노무현은 21세기식 통신 테크놀러지를 활용해 시민들에게 직접적으로 자신의 매력을 어필했고, 이후 벌어진 각종 갈등들을 정면으로 맞상대했다.


 당시 야권의 갈등은 심각했다. 반대쪽의 상수로는 이회창이 있었고, 야권은 시끄러웠다. 심지어 민주당 경선 당시엔 박근혜조차 이인제와 연대할 가능성이 있었다. 2002년 4월에 박근혜는 이회창에 반대하여 한나라당에서 탈당한 후 신당 창당 작업에 들어간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 때 DJ 정부 출신인 김종필도 연합할 수 있었다. 이는 당시 대선 레이스의 중대 변수였다. 이후 박근혜는 정몽준과 연대하여 제3의 세력을 만들려다 실패하고 10월에 한나라당으로 돌아가게 된다. 박근혜는 이로 인해 많은 것을 배웠고, 이후 2007~2008년에는 모든 결과에 승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박근혜가 만약 또 한 번 한나라당에서 탈당했었다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인제는 경선 패배 후 결국 민주당을 탈당했다. 노무현이 이끄는 민주당은 6월의 지방선거에서 참패했고, 노무현은 그 책임을 져야 했다. 그는 재신임 투표를 이야기했지만, 민주당의 반노 세력은 노무현의 퇴진을 요구했다.


 친노와 반노라는 갈등의 싹은 이미 이 때 틔어졌다. 노무현이 민주당에서 기반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정당 기반의 대의민주제라는 체제를 파괴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민주당이 가진 여러 문제점을 봉합하는 대신, 기존의 정당 체제에 구체제라는 도장을 찍었다. 그 대신 온라인을 이용한 준-직접 민주주의를 추구하였다. 이는 노무현 집권 내내 일어난 현상이었다. 아직도 온라인에 가득한 친노주의자-깨시민들의 의식은 저 노무현식 프레임의 연장선상이나 다름없다. 노무현은 저게 옳은 길이라 믿었던 것 같지만, 저것은 현실적으로 무모한 시도였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본인에게는 이익이 되는 사고방식이기도 하였다.


 애초에 당시의 민주당에는 갈등의 씨앗이 심어져 있었다. 정당이 정상적으로 돌아간다면, 김대중을 보좌했던 사람들이 민주당에서 충분한 대접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도 사람들은 계파와 정당, 인물 중심이라는 현실 정치의 여러 요소들을 무시하기에 바빴다. 그들은 군사정권을 부수는 데는 전문가였지만, 어떤 것이 현실적으로 훌륭한 정치 구조인지를 성찰하는 데는 모자람이 있었던 것 같다.


 헌신과 노력이 정당한 보답을 주지 않을 때 사람은 좌절하고 분노한다. 이는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정치인들이 자기 자신을 버리고 오직 사회와 정의를 위해 헌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굉장히 폭력적인 발상인 동시에 비현실적이고도 도덕주의적인 관념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김대중은 험한 시대를 헤쳐 나갔고, 워낙 많은 짐을 지고 있었기에 모든 행동에 있어 충분히 가벼울 수가 없었다. 그 무거움은 주변 사람들을 버겁게 했고, 분열의 씨앗을 낳았다.


 노무현은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야 할 사람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지 않았다. 애초에 그러기 힘든 위치이기도 했지만, 애초에 그는 본인이 믿는 바에 충실한 사람이었고 그의 관념 속에 소위 ‘구태정치인’들은 들어있지 않았다. 그는 국민을 소환하여 구태정치인과 싸우는 소환술사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전쟁은 시작되었고, 그는 정몽준을 꺾고 이회창을 꺾었다. 그러나 그의 승리는 기본적으로 엄청난 갈등의 싹을 안고 있었다. 너무 많은 적을 만들었던 것이다.


 잘나고 윤리적인 인간이 타인을 이해하려면, 우선 보편적인 인간의 모자람과 어리석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래야 최소한의 관용이 생긴다. 그러나 많은 진보주의자들은 이걸 잘 하지 못하기에 사람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곧잘 관념의 척도로 사람을 상상하고 재단한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내가 보기엔 노무현도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보통 사람의 욕망과 질투, 추악함, 어리석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외면해버렸다. 그는 사람을 믿어주면 보답한다는 식의, 손을 내밀면 잡아줄 거라는 식의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불행하게도 대통령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