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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4.15 채식주의자 비판 30

채식주의자 비판

식이 2013. 4. 15. 19:30 Posted by 해양장미


 한국 사회에서도 이제 채식주의자가 점차 증가하고 있는 것 같다. 이들은 점차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고, 사회적인 힘을 발휘하는 집단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는 필연적인 문제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채식주의자들은 충분히 검증된, 과학적인 주장을 배척하는 경향이 짙으며 맹신적인 자세를 취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온갖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굳이 채식을 선택하겠다면 그것은 각자의 자유다. 그러나 그것을 자녀에게 강요하거나, 타인에게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거나 잘못된 정보를 유포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이미 채식주의자들은 다양한 문제를 저지르고 있다.


 이런 문제가 근래 가장 첨예하게 드러난 사건은 다음 만화속세상에서 연재되었던 조경규 작가의 ‘돼지고기 동동’이라는 만화에 대한 채식주의자들의 공격이었다. 그 사건은 채식주의자들의 무지함과 광신성, 그리고 공격성을 투명하게 드러내주었다 할 수 있다. 그 외 고기를 많이 먹는 게 몸에 나쁘다는 막연한 이미지를 가진 사람은 정말 흔하게 볼 수 있다.


 이런 잘못된 인지들은 식품과 농축산에 관련된 각종 산업과 의료보건 등등에 폭넓은 영향을 끼친다. 특히 한국에서는 철학적 이유보다도 건강을 위해 채식을 하는 인구가 많다는 주장이 있는데, 쉽게 말해 어리석은 짓이다. 인간은 본래 육식동물에 가깝기 때문이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조난을 당했다고 가정하자. 문명과는 거리가 멀고, 맨손이다. 어떻게든 스스로 자연 상태에서 먹을 걸 찾고 버티면서 구조대가 오길 기다리거나, 아니면 직접 다른 사람이 사는 곳을 찾아야 한다고 치자. 그럴 때 당신은 뭘 찾아 먹어야 할까?


 채식주의를 이런 상황에서도 고집한다 가정하자면 당신은 아마 생존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자연에서 인류가 먹을 만한 식물은 그리 많지가 않다. 그나마 이른 봄이나 가을의 짧은 기간동안에는 먹을 게 많지만, 그것도 그야말로 한철이다. 나무 열매 같은 건 라즈베리 한줌이라도 야생에서 찾으면 나름 성공한 거다. 인간은 장기적으로 볼 땐 최소한 하루에 1500~2000kcal은 먹어야한다. 여기에 질병에라도 걸리면 더 잘 먹어야 하고, 먹을 거 찾는다고 종일 돌아다니려면 훨씬 더 먹어야 한다.


 모든 조난,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권장하는 건 당연하게도 육식이다. (베어그릴스의 시범을 보시라.) 원래 인간은 그렇게 살았고, 그런 만큼 생각보다 사람은 사냥을 잘한다. 조개를 캐고, 게를 잡고, 물고기를 낚고, 덫 등으로 토끼를 잡을 수 있다. 이런 동물성 음식은 훨씬 집약적인 에너지, 특히 양질의 단백질을 제공한다. 인간은 굉장히 발달한 두뇌와 섬세한 신경 전달 체계 및 근육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많은 에너지와 단백질이 필요하다. 애초에 충분한 육식이 제공하는 에너지와 단백질이 없었다면 있을 수 없는 구조다. 물론 당연하게도 성장기때는 훨씬 더 많은 단백질이 필요하다.


 채식주의자들은 엄청나게 많은 콩을 먹음으로 단백질을 보충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그게 친환경적이라는 주장도 한다. 그런데 숙고할 필요가 있는 게, 콩단백만으로 인간은 충분히 균형 있는 단백질을 섭취하기가 상당히 어려울 뿐만 아니라 애초에 그런 막대한 양의 콩을 확보하는 것 자체가 매우 고도의 테크놀로지가 필요한 일인 동시에 그리 자연적이지는 않은 일이기도 하다.


 절대로 인간은 자연상태에서 그렇게 엄청난 양의 콩을 확보할 수 없다. 콩을 그렇게 확보할 수 있게 된 건 인류사 전체로 보면 극히 최근의 일이다. 그런데 좀 다른 말이지만 채식주의 하시는 분들, 혹시 콩을 키우는 과정이 어떤지 아실까?


 콩은 종자만 먹는 작물이 아니다. 콩잎은 꽤 맛이 좋은 잎 중 하나다. 그리고 맛이 좋다는 건 사람 입에만 맛이 좋다는 게 아니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벌레가 꼬인다. 그럼 콩을 잘, 많이 수확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벌레를 죽여야 한다. 그리고 이런 과정은 거의 모든 작물이 마찬가지다.


 농업은 그 자체로 다른 종족과의 전쟁이나 다름없다. 다른 동물을 죽이기 싫어서 채식을 하겠다는 꿈이 있다면, 직접 밭을 갈고 작물을 심어보길 바란다. 그러면 농업 또한 평화롭지만은 않다는 걸 알 수 있을 거다. 온갖 해충뿐 아니라 새들이 날아와서 낱알을 노리고, 때로는 고라니나 멧돼지, 그리고 두더지가 당신의 작물을 노릴 것이다. 귀여운 토끼 한마리만 밭에 침입해도 그 나름대로의 큰 재앙이 될 수 있다. 게다가 다른 식물들과의 전쟁은 적잖은 경우 더 첨예한 갈등이다. 채식주의자가 식물에게까지 애정을 가지고 관심을 기울일지는 모를 일이지만.


 그냥 돈을 내고 패셔너블하게 ‘난 평화주의자야!’ 라고 달콤한 꿈을 꾸며 채식을 하면 이런 건 신경을 안 써도 되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밭에서 나온 거의 모든 작물은 위에 말한 과정을 거친 것이다. 동물을 죽이지 않는 농업 같은 건 존재할 수 없다. 도시의 시민들은 가시적인 먹이 그물에서는 빗겨 있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모든 동물은 먹고 먹히고, 빼앗고 지키는 관계 위에 서 있다.


 물론 잔혹함을 눈앞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감정 자체를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다. 그러나 채소가 거기서 예외가 되어있는 건 아니다. 모든 농업은 수많은 동식물을 죽이면서 결과물을 낸다. 밭에서 자라는 거의 모든 것들은 식물계의 가축들이다. 자연 상태에서는 그렇게 연하고, 크고, 환상적인 맛을 내는 식물이 대량으로 절대 존속할 수가 없다. 인간이 다른 종족들의 손에서 그들을 보호해주기에 그들은 대량 번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도 F1이라고, 우리가 먹는 농작물의 반 이상은 불임 작물로 유전 변이된 것들이다. 그 인공성은 동물보다 훨씬 더하다. F1 작물들은 씨가 맺히지 않는다.


 감정적으로 고기를 먹기 힘들다는 것과 채식주의를 바람직한 것으로 포장하는 것 사이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채식주의는 근래 유행하는 신흥 종교로, 과학이나 합리성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식주의자들은 자신을 선량하다고 생각하고, 채식주의를 전도하려 애쓰며 육식을 좋아하는 이들을 공격하곤 한다. 이런 행동 패턴은 사이비성이 있는 종교 활동과 전혀 다르지 않다. 그러한 어리석음의 예시는 이젠 더 이상 찾기 어렵지 않다.


http://navercast.naver.com/magazine_contents.nhn?rid=1377&contents_id=24836&leafId=1377


 예를 들자면 이런 것. 이 글은 고고학적 사실마저도 의심하는 맹신을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어이없는 거짓말도 하고 있는데, 우선 힌두교도가 고기를 안 먹는다는 주장은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힌두교 지역 인도음식에 고기요리가 없다고 생각하시나? 힌두교도도 고기를 많이 먹는다. 소고기를 안 먹긴 하는데 (이 또한 모든 힌두교도가 아예 안 먹는 건 아니다.) 대신 양고기나 닭고기를 많이 먹는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사람들은? 그들은 눈에 보이는 고기의 물리적인 부분은 먹지 않는다. 그러나 육수는 먹고 있다. 그것이 종교적 믿음에 근거한 거라면 뭐라 할 말이 없지만, 사실 별 의미 없는 행위다. 불교의 승려? 또한 보편적인 오해와는 달리 승려들도 육식을 한다. 불교엔 그런 계율이 없다.


 또한 채식주의가 건강에 나쁘다는 근거는 정말 많이 밝혀져 있다. 이는 영양학계 및 의학계의 메인스트림에 해당한다. 물론 그 반대의 주장도 있지만, 이는 채식주의자들의 진영에서 나오는 소수의 의견이다. 마치 생물학에서의 지적설계론이나 창조주의가 가지는 비과학성과 유사하다. 맹종이 학술을 침해하는 것이다. 항상 이야기하지만, 인류는 채식주의를 실행한 적이 없다.


 현대의 육류가 옛날보다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주장 또한 어느 정도 오해가 있다. 일단 그 무엇보다도 현대식 도축 과정이 훨씬 더 인도적이다. 재래식 도축 방식은 동물에게 적잖은 고통을 주었다. 그러나 현대에는 좀처럼 그렇게 하지 않는다. 가급적 고통 없는 도축을 해야 고기질이 좋다는 걸 모두가 알기 때문이다. 오직 이슬람교도와 유태교도만이 이러한 합리성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이들이 채식주의자들보다는 현명하다. 사육방식 또한 옛날이라고 꼭 현대보다 인도적이었던 게 아니다.


 또한 비건이 아닌 많은 채식주의자들이 포유류와 조류, 그리고 어패류를 차별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대체 그러한 구분에 어떠한 합리성이 있는지 심각하게 의심스럽다. 감정적으로 포유류를 먹기 싫다면 그런 거야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각자의 선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권장사항은 못된다. 비합리적 이유를 들어 그것을 합리화시키려 하기에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어패류를 먹는 게 포유류나 조류를 먹는 것보다 윤리적이라는 주장은 대체로 무지와 망상, 그리고 감정적 편향에서 비롯된다. 아마 팔딱이는 생선을 잡아본 적이 없으니까 마음이 편한 거겠지.


 채식주의자들은 채식을 우월한 것으로 규정하려는 망상을 그만둘 필요가 있다. 물론 당신들이 채식을 하건 어쩌건 그건 자유다. 다만 그것을 당신의 가족과 이웃에게 무리하게 권장하거나 강요하지 말라. 당신들의 합리화와 무지, 그리고 공격적 전도는 이 땅의 프로테스탄트가 하는 그것과 정말 아무런 차이가 없다. 물론 단백질 섭취의 부족이 그러한 망상과 공격성을 만들어내기 쉽기는 하다. 어쩌겠는가. 영양 실조로 신경 전달 물질이 충분하지 못한 것을.


 글을 마무리하면서 마지막으로 꼭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이 글은 조용히 채식을 실천하는 분들에 대한 글은 아니라는 것이다. 개인의 취향 또는 개인적 철학이나 종교로 인해 채식을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각자의 자유이고, 각자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만큼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판단에도 정당한 기준이 필요하다. 채식을 실천함으로 심신의 건강을 잃을 수 있으며, 그것이 꼭 평화로운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는 것은 미리 감안해야 한다. 채식주의자들이 공격적으로 잘못된 지식을 퍼뜨림으로 인해 많은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