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0/14 친수성 관련 문단 업데이트. Ver 1.1)

 

 

 요리를 제대로 해봐야겠다는 의욕을 가진 분들이 많이 구매하는 것 중 하나가 코팅되지 않은 스테인리스 프라이팬입니다. 그리고는 많은 경우 고뇌와 시행착오에 빠지지요. 분명히 예열을 잘 하고 썼는데, 무참하게 계란프라이가 붙어서 망치다가.. 그러다 또 어느 날은 잘 되고 그러거든요.

 

 본문은 코팅되지 않은 조리도구를 사용하는 데 필요한, '시즈닝'에 대한 대략적인 개념과 방법에 대해 다루게 될 겁니다. 코팅되지 않은 조리도구에 무언가를 구우려면, 그리고 스테인리스가 아닌 철제(연철/강철/주철) 조리도구를 다루려면 시즈닝을 이해해야 합니다. 본문은 검증이 부족한 내용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는 걸 미리 이야기해 둡니다.

 

 본래 시즈닝이라는 건 스테인리스나 코팅 제품이 나오기 이전, 옛날에 철제 조리도구를 관리하다 보니 생겨난 것입니다. 철은 공기중에 노출시키면 녹이 스니까, 옛날 기술로는 기름을 상시 발라두는 게 가장 기본적인 관리방법이었는데요. 철로 된 냄비나 솥, 팬 등에 계속 기름을 바르고 가열하고 하다 보면 기름이 굳고 검게 변해서 완전히 코팅이 됩니다. 이걸 우리나라 말로는 길들인다고 하고, 영어로는 시즈닝이라고 합니다. 전통적인 가마솥을 떠올려 보세요. 표면이 검은 색이지요? 그런데 주철도 철이라 원래는 철색입니다. 검은 건 시즈닝의 색깔이지요.

 

 유용하게도 시즈닝된 표면은 녹을 방지하는 것 외에도 음식이 잘 달라붙지 않게 합니다. 그렇지만 현대 우리나라의 가정집 주방에서 그걸 체험해보는 사람은 소수입니다. 연철/강철/무쇠로 된 코팅되지 않은 팬 가진 분 별로 없잖아요?

 

 스테인리스 팬 이야기로 돌아가서, 스테인리스 팬을 아무리 잘 예열해도 음식을 그냥 구우려고 하면 달라붙는 게 당연합니다. 원래 가열된 금속 표면에 무언가를 구우려고 하면 달라붙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스테인리스 프라이팬에도 계란프라이를 할 수 있지요. 금속 표면이 아니게 만들면 됩니다. 시즈닝을 즉석에서 만들어서 거기에 프라이를 하는 개념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시즈닝이 아니면, 금속 표면에는 당연히 음식이 달라붙는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오일을 발라 구워 만드는 시즈닝은 오일이 중합된 천연 고분자 화합물입니다. 다른 이름으로 부르면 폴리머지요. 시즈닝 작업이라는 건 금속제 팬, 냄비, 솥 등에 오일을 바르고 가열해서 폴리머로 중합시키는 겁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일종의 플라스틱을 만드는 거지요. 어차피 우리가 평소에 사용하는 플라스틱 제품들도 석유로 만듭니다. 식용유로도 천연 플라스틱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프라이팬 코팅하는 데 쓰는 테플론도 합성 고분자 화합물입니다.

 

 오일은 그냥 놔둬도 폴리머화되서 굳기는 합니다. 오래 된 식용유가 말라 굳는 걸 직접 경험해보신 분들도 있을거고, 기름을 용매로 쓰는 유화도 천천히 굳습니다. 다만 공기 중에서 오일이 굳어 폴리머화되는데는 시간이 매우 오래 걸립니다. 가열을 해 주면 훨씬 빨라지고요.

 

 스테인리스 팬에 무언가를 구우려고 할 때, 일단 필요한 작업은 오일막을 가열해서 중합시키는 겁니다. 완전히 고체화된 폴리머까지 안 만들어도 됩니다. 이건 스테인리스 팬을 많이 사용해보신 분들은 잘 아실 텐데, 기름이 중합되기 시작하면 아직 액체지만 기름이 퍼지는 모양이 변합니다. 그렇게 만든 이후 음식을 구우면 달라붙지 않지요.

 

 이 과정을 쉽게 하려면 요지는 두 가지입니다. 일단 음식이 달라붙지 않는데 필요한 시즈닝 두께는 전혀 두꺼울 필요가 없습니다. 원래 철팬 시즈닝 할 때도 기름은 가능한 얇게 발라서 굽고 그걸 여러 번 반복하는데요. 스테인리스 팬 쓸 때도 마찬가지로 가능한 얇게 바르면 됩니다. 소량의 기름을 가열중인 팬 위에 따른 후 키친타올로 골고루 발라주면서 닦아내면 되는 수준입니다. 얇을수록 폴리머화가 빨리 잘 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생각해야 하는 게 사용하는 기름의 성질입니다. 기름에는 건성유와 반건성유, 그리고 불건성유가 있는데 건성유일수록 불포화지방산 비율이 높고 잘 굳습니다. 반대로 불건성유는 폴리머화가 잘 안 됩니다.

 

 기름이 건조되는 성질은 요오드화값(옥소값)으로 표기합니다. 요오드화값이 높으면 건성유고, 낮으면 불건성유입니다. 각각의 식용유들을 대략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건성유 : 요오드화값 130 이상

- 들기름, 아마씨유, 양귀비유, 해바라기씨유, 호두기름

 

*) 반건성유 : 요오드화값 100~130

- 콩기름, 포도씨유, 옥수수유, 참기름, 카놀라유

 

*) 불건성유 : 요오드화값 100 이하

- 피마자유, 올리브유, 팜유, 땅콩기름, 동백기름, 아보카도 오일, 우지, 돈지, 오리기름, 버터

 

 들기름은 우리나라에서 구하기 쉬운 오일 중 요오드화값이 제일 높은 편입니다. 그렇지만 향이 있기 때문에 시즈닝에는 잘 쓰지 않습니다. 볶아서 압착하지 않고 그냥 생으로 압착한 들기름은 그나마 향이 적습니다만, 잘 팔지 않고요. 그 다음으로 요오드화값이 높은 오일은 아마씨유고, 철팬 시즈닝 작업에는 이 아마씨유가 주로 쓰이고 있습니다. 아마씨유는 대형마트에 가면 살 수 있고요.

 

 위의 분류에서는 나뉘어 있긴 한데, 해바라기씨유와 콩기름, 포도씨유의 요오드화값은 별 차이가 없습니다. 대략 건성유와 반건성유 사이에 걸쳐져 있는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아마씨유를 구하기 어려우면 그냥 아무 데서나 파는 콩기름이나 해바라기씨유로 시즈닝을 시도해 보는 게 비교적 잘 될 겁니다.

 

 카놀라유는 반건성유 중에서도 요오드화값이 좀 낮은 편입니다. 그래서인지 압연한 철팬 같은 데 제대로 시즈닝 먹이려고 하면 잘 먹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작정하고 하려고 하면 안 되고, 시간을 들여서 세월아 네월아 바르다 보면 시즈닝이 조금씩 되는 그런 느낌인데요. 그렇지만 카놀라유로도 익숙해지면 스테인리스 팬에서 계란프라이를 하는 정도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카놀라유로 잘 안 되면 보다 요오드화값이 높은 기름을 사용해 보세요.

 

 한편 유감스럽게도 미국에서 코팅되지 않은 주물 제품들의 평가를 보면, 올리브유로 녹 관리를 해도 잘 안된다는 불평들이 보입니다. 그런데 올리브유는 불건성유라 당연히 시즈닝이 잘 안됩니다. 실제 시골에서 짠 들기름 같은 거 스크류캡 병에 담아서 가져오면, 캡 안쪽에 기름 묻지 않았나 잘 닦아줘야 하고요. 그래도 종종 열어주지 않으면 스크류캡 안쪽에 묻은 들기름이 중합되어서 붙어버려 아예 안 열리는 불상사가 생기기도 하는데요. 올리브유는 대조적이라 할 만큼 경화되어 굳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 올리브유 뚜껑 안 열려서 고생해 보신 분 있나요?

 

 그 외 스테인리스 팬에 기름을 두르지 않고 고기 등을 구우면, 처음에는 달라붙어서 뗄 수가 없는데 한참 굽다 보면 그럭저럭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나는 아마도 고기 표면으로 나오는 기름이 중합되어 그렇다고 생각하는데, 대부분의 음식물은 기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지 뭐든 굽다 보면 처음에는 붙어도 한참 구우면 그럭저럭 뗄 수 있게 됩니다. 물론 계란 같은 걸 그렇게 하면 모양이 처참하게 망가지니까 그러면 안 되고요.

 

 또한 이 현상은 금속 표면의 친수성하고도 관련이 있을 걸로 알고 있습니다. 무언가를 구우려고 할 때, 수분이 많은 음식이 팬 표면에 접촉될수록 잘 달라붙습니다. 코팅팬도 기름을 둘러주는 쪽이 덜 달라붙지요. 그런데 음식을 굽다 보면 표면에 수분이 줄어들기 때문에, 덜 달라붙게 되기도 할 겁니다.

 

 스테인리스 표면에 폴리머가 완전히 고체화되어 굳어버리면, 일단은 노랗고 단단한 물질이 됩니다. 그냥 두고 써도 되고, 철팬에 하듯 시즈닝을 점점 만들어가도 되는데요. 일단 보기가 안 좋으니까 보통은 세척을 합니다. 찐득하게 덜 굳은 상태면 그냥 세척하는 게 좋고요. 사실 시즈닝 해서 쓸거면 스테인리스 팬이 철팬 대비 장점이 전혀 없기도 하고요. 그런데 고체로 굳은 폴리머는 주방세제로는 거의 녹지 않고, 부드러운 수세미로는 떼어낼 수가 없습니다. 충분히 단단해지기 전이라면 폴란드 스크럽 수세미로 제거 가능하고요. 조금 기스를 낼 각오라면 스테인리스 수세미를 써도 됩니다. 다만 초록수세미는 금지. 초록수세미로 긁으면 심하게 스크래치가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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