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브금

 

https://youtu.be/Gbx21vMKzH4

 



 기해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60갑자 연도는 음력으로 셉니다.) 나는 매년 새해를 세 번 맞이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단 동지 다음날이 천문학적인 새해입니다. 전통적으로 동지는 우리나라에서도 작은설로 쳤고, 크리스마스의 기원도 동지입니다.

 

 양력설이 동지 이후 일주일 이상 뒤로 밀린 건 현행 그리고리력의 오류에 가깝습니다. 그레고리력의 잘못된 관습이나 오류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실제 별 문제는 없기 때문에 그냥 쓰고 있습니다. 20세기에 국제 표준 역법을 수정하려는 시도가 여러 번 있었지만 실패했었지요.

 

 오늘은 통칭 음력인 시헌력으로 새해의 첫 날입니다. 우리가 음력으로 흔히 쓰는 시헌력은 청나라에서 만든 것으로, 예수회 선교사들의 천문학적 지식을 수용하여 상당히 과학적으로 완성된 체계입니다. 조선 시대 땐 청나라 오랑캐들이 만든 거라고 인정을 못 받았다고 합니다만. 시헌력 24절기는 천문학적 양력 주기를 따르며 절기 사이의 간격이 조금씩 다릅니다. 지구의 공전궤도가 원형이 아닌 타원형이라 절기 사이의 간격이 일정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즉 시헌력은 24절기로 천문학적 양력 기준을 맞추고 날짜로 음력 기준을 맞추는 체계인데, 옛날에는 바닷가나 강 하구 쪽에 사람들이 많이 살았기 때문에 음력이 유용했습니다. 전근대 시절에는 바닷가에 살면 먹을 걸 구하기 쉬웠고, 대체로 강 하구에는 퇴적지가 생겨 농경에 적합한 평야 지대가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바다 근처에 살면 반드시 음력 달력을 봐야 합니다. 달의 주기에 따라 조수간만차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기해년 새해를 맞아 간단하게 역법 이야기를 잠시 해봤고요. 이번 포스트의 본론으로는 MB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을 말해볼까 합니다.


 

 어느 정도 차이는 있습니다만 문재인 정권과 노무현 정권의 공통점도 분명히 있습니다. 가장 큰 공통점은 역시나 사회주의적 성격이 있다는 것과, 강한 권력을 쥐었음에도 기대가 컸던 국민들을 크게 실망시켰다는 데 있지 않을까 합니다. 노무현 정권의 사회주의적 성격은 문재인 정권만큼 심하지는 않았고, 문재인 정권보다 노무현 정권의 권력이 꽤 약했던 것은 첨언해둡니다만 정도의 차이지 본문에서 이야기할 논지에 대한 방향성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근래 정치에 대한 실망이 일상화되고 있다고 느낍니다. 노무현 시절에도 그랬지요. 구체적으로는 노무현 시절의 분위기와는 좀 다릅니다만, 이번에 퍼지고 있는 정치적 실망감은 역시나 문재인 정권에 대한 큰 실망에서 기원한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자유한국당이 좀 잘 하고 있다면 이야기가 다를 수도 있겠지만, 그들 또한 시민들을 끝도 없이 실망시키고 있지요. 홍준표가 이명박, 박근혜 석방을 주장하고 나설 정도니 참, 그런 걸 보는 시민들 마음이 좋을 수가 없습니다. 나 역시 답답함을 느끼고 있는데, 그런 와중에 MB가 떠올랐습니다.

 

 MB는 서울시장 때부터 비토도 약점도 많았던 정치인입니다. 그렇지만 시민들의 강한 기대를 일으키는 데 성공했고, 결국 박근혜까지 꺾으면서 대통령을 차지하고 대선에 연이은 총선에서까지 친이계 일색으로 한나라당이 크게 이기도록 리드한 적이 있습니다.


 

 이명박은 탈이념적 실용을 내세웠었습니다. 국민들을 잘 살게 해줄 거라 공언했었어요. 지금정도는 아니지만 노무현 정권에도 사회주의적 아집이 있는 인사가 많았고, 불필요한 갈등과 잘못된 노선이 많았습니다. 이명박은 결코 신중하지도 않았고 완벽한 서울시장도 아니었지만, 적어도 추진력과 청사진은 보여줬었고 그래서 답답하진 않아 보였지요.


 

 나는 이명박의 천박함과 저렴함, 앞뒤 가리지 않는 무대포 스타일 및 기만적인 성향을 결코 좋게 생각할 수 없었고, 결국 내가 우려한 대로 집권하고 나니 완전히 엉터리인 면 투성이이긴 했습니다만... 결과적으로는 이명박 정권이 그나마 다른 정권들보다는 나은 편이라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명박 정권은 그나마아집을 덜 부렸고, ‘그나마현실적이었고, ‘그나마좋은 결과를 내려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비교대상이 혼자 정치하려다 비참하게 죽은 노무현, 말할 가치도 없는 박근혜, 그리고 우리 이니라서 그런 거 같긴 합니다만.

 

 여하튼 현재의 자유한국당은 MB의 실패 못지않게 MB의 성공도 좀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박정희의 딸인 게 정치적 가치의 7할 이상을 차지했던 박근혜는 논외로 하고, 군사정권과 김영삼 빼면 자수성가해서 대통령까지 했던 자유한국당 계열 유일한 정치인이 이명박입니다. 이명박이 어떻게 노무현 정권의 약점을 공략하고 민심을 얻을 수 있었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지방정권 운영 면에서도 이명박, 안상수, 손학규 시절 수도권은 좋았습니다. 이명박이 좀 너무 주변 생각 안하고 막 나간 면은 있고, 나는 그걸 결코 좋게 생각하진 않았지만 세월이 지나 돌아보면 장점이 더 많았지요. 박원순 3선 하는 걸 보고 있으니까 더 그렇습니다.

 

 (그 때는 한나라당이었던) 손학규정도는 아니었지만 당시의 이명박도 그렇게까지 보수적인 이미지는 아니었습니다. 실제로는 이미지보다 보수적이었고, 그게 대통령이 된 이후 발목을 잡기도 했지만 더 보수적인 박근혜에 비해 이명박은 조금은 중도적인 이미지가 있었지요. 그게 이명박을 강한 후보로 만들었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자유한국당은 당시의 한나라당에 비해 여러 모로 나쁜 상황이고, 행보도 불안불안합니다. 조건도 다른 게 노무현 시절엔 이명박과 손학규가 지방정권에서 인상적인 행보를 보이면서 인지도를 높이고, 차기 정권까지 노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지방정권까지 민주당이 싹쓸이한 상황이라 그게 안 됩니다. 그리고 황교안이 당 내에서 너무 강해졌습니다. 황교안은 절대로 혁신적이거나 중도적인 이미지는 아닙니다.


 

 전당대회에서 황교안이 무난하게 승리한다면, 어쩔 수 없이 미래의 많은 부분이 황교안의 손에 있을 것이고 그건 현실이니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황교안이 그나마 괜찮은 행보를 걸어주길 바랄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 정권교체가 없다면 이 나라의 미래가 위험해도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MB가 비록 최종적으로는 실패한 정치인이었을지언정 한 때는 성공적이었던 것을 떠올리고, 그 성공이 어떻게 가능했었는지 복기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대깨문과 메갈과 상습적 보행 흡연자 제외, 모두들 기해년 한 해 복 많이 받으세요.

 추천 브금

 

https://youtu.be/RKhsHGfrFmY

 


 

 갤럽이 여론조사한 자료가 지난 연말에 나왔습니다. 이제야 이야기해 봅니다. 지방자치의 활성화는 곧 자유주의의 신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방선거 이후 슬슬 평가가 나올 때가 되었지요.

 

 나의 서식지역과 밀접한 상관이 있는 광역자치단체장은 3명입니다. 3명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일단 이재명은 평가가 전국 꼴찌입니다. 경기지사보다 더 윗자리로 올라가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손학규-김문수-남경필은 모두 괜찮은 경기지사였는데, 이재명은 가장 나쁜 민선 경기지사가 될 것 같습니다.


 

 박원순은 부정평가가 꽤 늘었습니다. 긍정평가도 어느 정도 높은 편인데 그에 비해 부정평가도 높습니다. 물론 나는 서울시민들이 여전히 박원순에 대해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원순 장기집권 아래 서울은 부동산 가격만 많이 오르고, 도시경쟁력이나 인구추세는 명백하게 쇠퇴하고 있습니다. 이는 여러 번 말했듯 서울이 자가주택거주비율이 낮은 도시이며, 여초도시임에도 출산율 낮은 여초도시가 되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박남춘은, 현 인천시민으로의 느낌은 애매합니다. 인천시장답게 숙명적으로 욕을 좀 잡수시고 있긴 한데 나의 개인적인 판단은 애매한 not bad. 아직은 송영길, 유정복보다 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은 아닙니다. 여론조사 결과도 긍정평가도 낮고 부정평가도 낮은데, 사실 아직 뭘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에 가까워 보입니다.

 

 나는 박남춘이 인천에 대한 최소한의 애정은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판단하긴 이르지만, 송영길보단 이 점에서는 나아 보입니다. 다만 청라와 송도에는 다소 부정적인 것 같다고 느낍니다. 송도 워터프론트 문제와 청라 소각장 문제에서 한 번씩 사고를 쳤지요.


 인천 구도시 출신들 중에 청라, 송도 등에 대해 부정적인 정서를 가진 사람들이 있는데, 어쩌면 박남춘도 그런 쪽에 해당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박남춘은 현 중구 북성동 (인천역 인근 및 월미도 쪽) 출신이고 부친이 도림동에서 과수원을 했었습니다.


 

 내가 서식중인 지역 외를 잠시 보자면, 역시나 부울경 쪽이 우선적으로 보입니다. 민주당이 싹쓸이한 부산 울산 경남쪽 평가가 안 좋습니다. PK가 꽤 오랜 시간 자유한국당 계열 지지지역이다가 최근에 민주당 쪽으로 넘어갔는데, 민주당 편을 들어 본 결과는 아무래도 그다지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PK는 중공업 항만지역인데 민주당을 지지하면 일부 노동자만 이익을 보고, 전반적으로는 손해를 보게 됩니다


 보시는 분들 각자 주소지의 광역단체장에 대해 느끼는 것이 있으면 멘트를 남겨주시면 좋겠습니다.



(+ 내용추가. 리얼미터 조사 자료를 첨부합니다.)



안철수의 승산

정치 2017. 3. 26. 22:22 Posted by 해양장미

 요 며칠 사이 안철수의 미미한 승률이 조금이나마 올라갔다는 생각이 들어 글을 써봅니다. 안철수의 호재를 정리해보자면.

 

1. 황교안 불출마, 이후 홍준표의 상승세

2. 안희정과 문재인 사이 갈등과 골의 심화

3. 국민의당 경선에서의 대승 기조

 

 정도를 꼽을 만 한 것 같습니다.

 

 각기 설명하자면 효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홍준표는 경남도지사입니다. 그런데 문재인이 차기대통령으로 매우 유력해진 이유가, 부산-울산-경남 PK일대가 문재인 지지로 돌아서서 그렇습니다. 박근혜정부가 PK를 심하게 홀대하고, 김무성이 낙마하면서 PK가 문재인쪽 지지로 넘어간 겁니다.

 

 PK는 대선에서 매우 중요한 지역입니다. 수도권 빼면 인구수가 제일 많아요.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기 정말 힘들었던 게, 김대중은 PK의 지지를 얻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는 이인제라는 변수가 나오면서 김대중은 대통령이 될 수 있었지요. 이후 노무현은 PK에서 제법 높은 표를 얻었기에 이회창을 맞상대로 이길 수 있었습니다. PK에서 차이가 너무 벌어지면 다른 지역에서 그 표를 만회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그런데 안철수는 현재 PK에서 문재인의 상대가 못됩니다. 양자대결이 되면 여기서 너무 큰 차이가 나기 때문에, 안철수가 다른 지역에서 선전하더라도 문재인을 이기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홍준표라는 변수가 등장했습니다. 홍준표는 비록 평이 좋은 도지사는 못 되지만, PK에서 어느 정도 득표는 가능한 인물입니다. 문재인의 텃밭 표를 갉아먹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안희정과 문재인의 싸움이 감정적인 양상까지 치달으면서, 결국 경선은 문재인이 이길 것 같지만 안희정 지지자들의 표를 온전히 가져가긴 매우 힘들어진 것 같습니다. 안희정 지지세 중 많은 부분을 안철수가 흡수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었다 생각해 봅니다. 민주당 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도 다소나마 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또한 안철수는 어려운 경선 룰 합의를 비교적 무난하게 해냈고, 손학규를 상대로 일방적인 우세를 점하며 역시 대선주자라는 인식을 일깨우지 않았나 싶습니다. 지금까지 안철수는 국민의당에 가려져 시민들에게 그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 면이 있었던 것 같지만, 이제 당의 조력을 받으며 뛸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아직도 안철수의 앞길은 험난합니다. 여론조사 결과 문재인은 모든 지역에서 지지율 선두입니다. 단 한 지역에서도 안철수가 문재인을 이기지 못합니다. 만일 문재인이 경선만 평화적으로 치러냈다면, 어차피 대통령은 문재인이었을 게임입니다. 그러나 문재인은 그 안희정마저도 멘붕하게 만들었고, 달레반들은 좌희정에게까지 폐기물 스티커를 붙였습니다. 물론 안희정도 잘못한 게 있겠지요. 그러나 저런 식으로 모두를 적으로 돌리는 문재인이 과연 집권이라도 한다면, 그가 정치를 어떻게 할진 참으로 우려스러운 바이며 결국 우리 대한민국 시민들은 실제 투표를 눈앞에 두면 그런 생각을 한 번쯤은 해 보게 될 겁니다.

 

 김무성까지 적으로 돌리고 굴욕을 줘 가며 진박, 문고리 정치하던 박근혜의 말로를 다들 봤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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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정치 관련 이런 저런 생각들

정치 2016. 6. 19. 20:50 Posted by 해양장미

*) 새누리당에게 혁신은 이미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상황인데, 친박계를 보면 당의 미래에 대한 고민이 있는지 의심스러운 상황입니다. 만일 반기문이 친박계에 의해 옹립된다 해도, 반기문이 친박계를 그냥 둘지는 알 수 없습니다. 반기문과 친박계 성향이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 유승민이 복당하긴 했지만 당 내에서 세력이 없습니다. 대통령이 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은데, 그 정도 역량이 될지는... 크게 기대하지 않습니다. 친박계에서 받는 미움을 뚫으려면 MB 육박하는 뭔가가 필요한데, 그럴 만한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요.

 

*) 문재인이 현 시점에서 다음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 같습니다. 물론 그가 좋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겠지만요. 새누리당 정권이 문제 많다고 문재인이 그보다 나은 대안이 되는 게 아닙니다. 바닥 밑엔 지하가 있지요.

 

*) 근래 있었던 이재명 단식투쟁에서 나는 이재명 편이었습니다. 내가 이재명을 결코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이 곳에 자주 들러주시는 분들은 다 알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이야기가 달랐습니다. 중앙 정부가 지자체 예산을 마음대로 건드리면 안 되지요. 그런 건 올바른 민주정이 아닙니다.

 

*) 이어서 이야기하자면, 근래 나는 중앙 정부의 권한을 줄이고 지방자치를 활성화하는 쪽에 관심이 많습니다. 물론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가 있긴 합니다. 한국은 중앙 정부가 나서서 공적 자금을 투입해 대규모 토목사업을 벌이는 식으로 신도시를 만들어 왔습니다. 그렇게 일단 도시가 생겨야 지방자치를 할 만한 기반이 생깁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지방자치라는 게 어렵습니다. 박정희 시절부터 시민들이 독립적으로 도시를 세운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 다만 중앙 정부에 의존하는 현 체제는 이제 한계가 보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지자체들은 돈이 없고, 중앙 정부는 각 지역 현안에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모든 국민의 생각과 취향이 같을 수도 없습니다. 삶의 질을 높이려면 지자체에 더 많은 권한이 주어져야 합니다. 아직 나로선 위에 이야기한 문제를 극복할 방법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 다음 대선에 정권이 교체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듭니다. 현재의 새누리당은 정상이 아니고, 시민들의 피로감도 꽤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렇다고 야권이 대안으로 느껴지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지요. 새누리당이 분당되어 4자구도가 되는 쪽을 바랍니다.

 

*) 위 이야기의 연장선이기도 한데, 개인적으로 현재 대선후보군으로 언급되는 인물들 중 그나마 덜 부정적으로 보는 인물이 반기문입니다. 다만 반기문이 친박계로 나오면 흔쾌히 지지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반기문 본인이 대통령을 하고 싶다면, 친박에 대한 시민들의 부정적 판단을 신중히 이해해야 합니다.

 

*) 만약 문재인이 대통령이 된다고 가정할 때,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충분한 청사진을 가지고 청와대에 들어갈 가능성은 거의 없을 걸로 전망합니다. 최소한 노무현은 삼성 말이라도 들었지만 문재인은 그런 것도 없을 겁니다. 문재인과 그 측근들 정도의 현실 이해로 각 분야의 관료들을 납득시킬 수도 없을 거고, 진행할 정책마다 터져 나올 불만에 대응하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결국 그런 상황에선 깨시스트들이 날뛰면서 반대의 목소리를 진압할 수밖에 없겠지요.

 

*) 당선 가능성을 빼고 보면 개인적으로 다음 대통령이 되었으면 하는 사람은 1) 손학규 2) 김문수입니다. 둘 중에선 손학규를 더 지지하고, 그나마 김문수보다는 손학규 쪽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손학규에게 한 번쯤 기회가 주어질 수 있을까요? 친박, 친문 빼고 다 뭉치자는 이야기도 있긴 하던데, 유승민이 복당했지만 현실로 이루어진다면 좋겠습니다. 증오의 시대를 끝내고 행정 잘 하는 사람이 대통령 하는 시대가 오면 좋겠습니다.

 

 

손학규의 은퇴를 보며

정치 2014. 8. 1. 01:55 Posted by 해양장미

 생각할수록 은근히 마음이 쓰라립니다.

 

 손학규는 거의 유일하게 그 동안 민주당에서 가치와 대안을 이야기하던 인물이었습니다. 이명박 정권 동안 저는 그를 차기 대통령 후보로 지지했었고, 그의 정치적 성공을 여러 모로 바라왔습니다만 결국 그는 이렇게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물론 손학규에겐 대정치가로의 리더십은 부족했습니다. 더 강한 권력 의지를 가지고 세력을 형성하며, 내 것을 점차 챙기는 인물이어야만 대통령까지 될 수 있습니다. 손학규에겐 이런 모습이 없었고, 마음씀씀이만 좋아가지고는 정치적 오판을 계속했기에 대통령감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좋은 정치인이었고 참 안타까운 은퇴를 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민주당 및 새민련이 좀 정상적인 정당이었다면 손학규의 모자란 면이 채워질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손학규가 민주당에 온 시기는 이미 열린우리당의 실패로 인해 민주당이 가치와 대안,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권력만을 추구하게 되는 시기였습니다. 손학규는 이 퇴보와 혼란을 수습하기엔 적합하지 못한 인물이었습니다.

 

 이번 보궐선거에서 야권이 입은 피해는 굉장히 큽니다. 그리고 이것을 단순히 망해 마땅할 정당의 몰락으로 편하게만 바라보기는 좀 어렵습니다. 새민련은 분당까지 가능한 상황이 되었고, 유력하고 그나마 나은 정치인들이 큰 데미지를 입어 향후 쇄신은커녕 더 나쁜 모습을 보이기 쉬운 게 현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정의당은 정당의 존속 자체가 불투명해졌고요.

 

 민주정체 국가의 정치적 성공을 위해서는 거의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뛰어난 야당이 필요합니다. 야당이 잘나야 여당도 견제를 받고 더 나은 모습을 보이기 마련입니다. 또한 현실적으로 현재의 대통령과 새누리당도 그리 잘한다고만 하기는 어렵기도 합니다. 그러나 앞으로 새민련에서 친노가 재부상할 확률이 높기에, 한국 정치는 더 심한 대결양상으로만 치달을 확률이 높다고 느껴집니다. 어떤 긍정적인 시너지를 기대하긴 어려울 테고요.

 

 저는 이미 지난 4, 야권을 버려야 야권이 산다고 주장을 펼친 적이 있습니다. 실제 DJ 이후 야권은 정상적으로 돌아간 적이 거의 없습니다. 열린우리당 분당 때부터 민주당은 실질적으로 붕괴한 거나 다름없고, 열린우리당이 무너진 후엔 손학규 등이 산소호흡기 달아준 상황에 가깝습니다. 거의 과거의 영광만이 남은 정당을 혁통 친노가 철저하게 이용하다 망한 후, 그 다음엔 안철수의 인기가 수혈되어 겨우 명맥을 이었습니다만 이젠 그것도 끝났습니다. 민주당계는 이미 불치병에 걸린 지 오래입니다. 어쩌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었는지를 냉정하게 고찰해보지 않고, 기울어진 운동장론만 펼치는 강성 야권 지지자들이 사실 야권을 이렇게까지 만들었습니다.

 

 냉정하게 이야기해서 현실적인 진보주의자라면 이제 차라리 새누리당에서 대안을 찾는 게 낫습니다. 경제학에 대해 기초수준의 이해만 있다면, 최경환의 경제 정책이 얼마나 진보적인지 알 수 있습니다. 정부의 적극적인 시장 개입, 대기업에 대한 견제, 실질적인 양적 완화, 통화 및 환율에 대한 통찰 등 좋게 평가할 만한 점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경제학에 대해 기초지식도 없고, 신자유주의자들의 말에 홀딱 넘어간 자칭 진보이자 실질 파쇼 또는 마르크시스트들은 그저 빈 캔 소리를 내며 욕을 할 뿐입니다. 참 요란해요. 참여정부 같은 신자유주의 정부에 비하면 박근혜정부는 적어도 거시경제에선 비교조차 하는 게 실례일 정도로 진보적입니다.

 

 ‘저녁이 있는 삶을 말하고, 유럽에 가서 대안을 직접 찾던 손학규가 몰락한 이상 어차피 이제 야권에 대안은 없습니다. 안철수는 정치에 재능 없다는 게 증명되었습니다. 정의당도 몰락입니다. 천정배도 정동영도 기개가 없어 그릇이 아닙니다. 친노? 문재인? 말할 가치도 없습니다. 차기 대통령은 어부지리로 박원순이 될 것 같지만요. 제가 보기엔 박원순에서 진보를 찾느니 차라리 디자이너 오세훈에서 찾는 게 빠르겠습니다. 오세훈이 비록 센스 없는 디자인으로 욕을 먹어 마땅한 전임시장이긴 했으나, 그의 복지정책은 박원순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많은 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었죠.

 

 진짜 서민들에겐, 정말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들에겐 진짜 아~~~무 관심도 없이, 그저 증오심과 광신만 넘치는 정치병 환자들이 너무 많은 것을 망쳐놓습니다. 깨시민 파시스트와 일베충 소시오패스가 넷상에서 눈뜨고 보기 뭐할 정도로 싸우면서 사회 병폐는 더더욱 곪아 들어갑니다.

 

 혼란스러운 시대가 열릴 거라 예상합니다. 본격적으로 망조가 보이는 새민련은 더욱 몸부림을 칠 것입니다. 물론 이미 언데드 같아진지 오래고, 박원순도 있으니 부활할지도 모르죠. 새누리당 내에도 무능한 야당이 계속 있는 게 좋을 사람이 상당히 되니, 알게 모르게 많은 지원을 해줄 것입니다.

 

 어쨌든 저는 손학규의 은퇴로 새민련에 대해 마지막 남았던 일말의 기대를 완전히 접습니다. 비영남비호남 출신 대통령을 한 번쯤 보고 싶다는 희망도 뒤로 더 미뤄 둡니다. 그는 경기 출신으로 지역 기반 없이 많은 것을 해냈던 좋은 정치인이었습니다.

 

 


 인터넷에서 야권을 지지하는 사람들 중 절대 다수는 친노다. 좀 더 제대로 표현하자면 ‘친노주의’적이라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대부분 그들은 친노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거나, 친노가 그 어떤 다른 세력보다도 낫다고 생각한다. 또 한편으로는 친노가 잘못을 좀 저질렀기로서니 그들의 적인 새누리-친일파보다는 훨씬 낫지 않느냐는 식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런 의문들에 대한 나름대로의 참고 자료를 제시하고자 한다. 친노가 그 동안 해 온 업적과 잘못을 좀 정리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애초에 친노가 왜 태어났는지, 어떻게 태어났는지, 그리고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를 알아야 한다.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민주주의 체제와 헌법은 1987년의 민주화로 탄생되었다. 그래서 현재의 체제를 87체제 및 제 6공화국이라 한다. 그러나 이 87체제는 시작부터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 민주화의 두 영웅, 김대중과 김영삼이 단일화를 이뤄내지 못함에 의해 전두환의 친구였던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당시에 민주화 항쟁을 하던 수많은 사람들은 그야말로 극심한 정신적 피해를 입었고, 그 때 정신줄이 나가버린 사람은 그야말로 셀 수 없이 많았다. 당시 노태우의 득표율은 36.6%에 불과했다. 그리고 김영삼과 김대중이 각기 28%, 27%을 나눠 먹었다. 단일화를 했다면 절대로 질 수 없는 선거였다.


 그러나 이 87년의 오점은 이후 흑역사의 화룡정점이라 할 수 있는 김영삼의 3당 합당으로 한 단계 진화하고야 만다. 김영삼은 민주화 세력의 반을 이끌고 박정희 잔여 세력 및 전두환 잔여 세력과 합치고 만다. 그리고는 92년에 평생의 동반자이자 라이벌이었던 김대중을 꺾고 대통령이 되면서 미래로 이어질 단단한 흑역사의 구도를 완성 짓는다.


 이 때 김대중은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그것은 단순한 좌절 탓은 아니었다. 87년의 패배엔 김영삼보다는 그의 책임이 더 컸다. 3당 합당을 저지른 것은 김영삼이었지만, 김대중도 그럴 만한 배경은 제공한 상태였다. 그리고 김대중의 적들은 김대중을 두려워했다. 그는 완벽한 인물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너무 큰 인물이었다. 이때의 비극은 5년 후에 반전 드라마가 되긴 하지만, 그가 정치에서 떠나있던 동안 민주화 세력은 참으로 많은 것을 잃었다.


 또한 3당 합당이 일어나던 시기에 세계사도 큰 변화가 있었다. 도이칠란트가 통일되고,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지고, 중국 또한 본격적으로 자본주의의 길로 가면서 한중수교가 대선을 약 4개월 앞둔 시기에 이루어졌다.


 김문수와 이재오는 다들 높이 평가하던 민주화 투사였다. 그러나 이들은 공산주의의 붕괴를 보면서, 자신들이 믿던 가치가 붕괴하는 것을 보았다. 뉴라이트는 믿음의 붕괴로 탄생하였다. 이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180도 선회했다. 그들은 여전히 치열하지만, 과거의 동지들과 함께 하지는 않은 지는 오래되었다.


 손학규가 김영삼의 밑으로 들어간 것은 저 김영삼 정권 때의 일이었다. 그는 민주화 투사였으며 김근태의 친구였고, 김대중을 더 존경했다. 그러나 김대중은 그 때 정계에 없었다.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김영삼 쪽이었다. 친노들은 아직도 그가 한나라당 출신이었다고 낙인을 찍는다. 그러나 그의 입장에서는 그럴 만 했다.


 김대중이 없는 5년간 민주당을 일으켜보고자 고생한 사람들은 여럿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 나름대로의 야심이 있었다. 그러나 5년 후 복귀한 김대중의 거대한 존재는 그들의 지난 노력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김대중은 그들과 충분히 타협하질 못했다. 민주당의 잠재력은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는 과정에서도 충분히 하나가 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97년 대선에서 김대중이 승리한 것은 김종필과의 연합 및 이인제의 이회창 표 나누기, 그리고 외환위기라는 특수한 상황과 이회창이 영남 출신 후보가 아니었던 배경 등에서 성공할 수 있었다.


 이후 집권한 김대중은 자신에게 충성했던 측근들을 제대로 챙겨주거나 키워주지 못했다. 그는 위대한 정치인이었지만 현실적인 통치자로 충분히 단련되어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또한 그는 이상주의적인 면이 있는 인물이었고, 그가 처한 현실은 현실주의적인 복수를 어렵게 했다. 그는 악을 철혈로 심판하려고 하기보다는 용인하였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필요한 계파와 정당의 발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결과 소위 동교동계는 김대중의 5년이 흐르면서 구태의 상징이 되었다. 김대중조차 막지 못한 측근비리가 터지면서는 더더욱. 그는 한국의 눈부신 민주화와 새로운 번영의 길을 만드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신질서를 만드는 데 실패한 것이다.


 노무현은 이러한 조건에서 대선 후보로 등장했었다. 그의 개인적 정치사도 꽤 복잡한 편인데, 그는 처음에는 김영삼 쪽의 인물이었으나 3당 합당 때 그 유명한 ‘이의 있습니다!’를 외치면서 떠났다. (그 결과 김영삼은 노무현의 장례식에서조차 그를 제대로 추모하지 않았다.) 이후 노무현은 민주당계로 들어갔고, 부산과 종로 등지에 여러 번 출마했으나 두 번을 제외하고는 낙선을 거듭했었다. 2000년엔 종로 공천을 거절하고 부산에 출마했었는데, 여기서도 낙선했지만 결국 이 과정에서 노사모를 얻었었다. 그 후 그는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해수부가 없어진 것과, 이번 대선 과정에서 해수부 이야기가 많이 나온 것은 실질적으로 노무현의 발자취 때문이라 할 수 있다.


 10년 전, 민주당 경선 시작 당시 가장 유력하던 후보는 이인제였다. 지금이야 이인제가 좀 개그 이미지로까지 전락했지만, 그 때만 해도 이인제는 작년의 문재인이나 안철수 이상의 인지도를 지닌 유력 대선 후보였다. 대조적으로 당시 경선에 나선 노무현은 사실 충분히 준비된 후보는 아니었고, 안티 이인제에 가까웠다.


 이인제의 최종 승리를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렇지만 뜻밖의 변수는 여론조사에서 나왔다. 여론조사 결과 노무현이 이회창과의 1:1 구도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고, 이후 민주당 경선에서 엄청난 세몰이를 하며 최종 승리에 이르렀다. 한편으로 당시 김해 출신이던 노무현은 영호남으로 갈라진 한국의 지역 구도를 타파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안고 호남의 지지를 받는 영남 후보로 올라서게 되었다. 여론조사가 정당 정치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한 것이 이 때였다.


 그러나 경선을 승리한 노무현이 대선을 맞이하기엔 아직 긴 시간이 남아있었다. 당시 민주당의 경선은 4월 말에 끝났고, 대선까지는 무려 8개월이 남은 상황이었다. 더구나 그 중간의 여름엔 지방 선거와 한일 월드컵이 끼어 있었다. 거기에 더해 노무현은 쉽게 말해 갑자기 툭 튀어나온 후보에 가까웠다. 노무현은 호남 출신도 아니었고, 명성도 다소 부족했고, 기반도 충분하지 않았다.


 당시에 노무현을 견제했던 민주당 사람들을 무조건 비난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정치는 현실이고, 현실적인 조직에서 갑자기 위로 확 올라와 튀는 사람이 있으면 견제하는 게 사람 심리다. 특히 한국은 그런 문화가 강하다. 그리고 노무현은 기반이 충분하지도 않았고, 그런 현실에 적응하기보다는 그런 현실과 맞서는 사람이었다.


 노무현 같은 유형의 사람이 실질적으로 최고 지도자에 오르는 것은 인류의 역사 전체를 통틀어도 그리 흔한 일이 아닌 것 같다. 그러나 발달한 문명과 기술, 그리고 노무현이 가진 정치인으로의 매력은 그런 낮은 가능성을 실현시켰다. 노무현은 21세기식 통신 테크놀러지를 활용해 시민들에게 직접적으로 자신의 매력을 어필했고, 이후 벌어진 각종 갈등들을 정면으로 맞상대했다.


 당시 야권의 갈등은 심각했다. 반대쪽의 상수로는 이회창이 있었고, 야권은 시끄러웠다. 심지어 민주당 경선 당시엔 박근혜조차 이인제와 연대할 가능성이 있었다. 2002년 4월에 박근혜는 이회창에 반대하여 한나라당에서 탈당한 후 신당 창당 작업에 들어간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 때 DJ 정부 출신인 김종필도 연합할 수 있었다. 이는 당시 대선 레이스의 중대 변수였다. 이후 박근혜는 정몽준과 연대하여 제3의 세력을 만들려다 실패하고 10월에 한나라당으로 돌아가게 된다. 박근혜는 이로 인해 많은 것을 배웠고, 이후 2007~2008년에는 모든 결과에 승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박근혜가 만약 또 한 번 한나라당에서 탈당했었다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인제는 경선 패배 후 결국 민주당을 탈당했다. 노무현이 이끄는 민주당은 6월의 지방선거에서 참패했고, 노무현은 그 책임을 져야 했다. 그는 재신임 투표를 이야기했지만, 민주당의 반노 세력은 노무현의 퇴진을 요구했다.


 친노와 반노라는 갈등의 싹은 이미 이 때 틔어졌다. 노무현이 민주당에서 기반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정당 기반의 대의민주제라는 체제를 파괴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민주당이 가진 여러 문제점을 봉합하는 대신, 기존의 정당 체제에 구체제라는 도장을 찍었다. 그 대신 온라인을 이용한 준-직접 민주주의를 추구하였다. 이는 노무현 집권 내내 일어난 현상이었다. 아직도 온라인에 가득한 친노주의자-깨시민들의 의식은 저 노무현식 프레임의 연장선상이나 다름없다. 노무현은 저게 옳은 길이라 믿었던 것 같지만, 저것은 현실적으로 무모한 시도였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본인에게는 이익이 되는 사고방식이기도 하였다.


 애초에 당시의 민주당에는 갈등의 씨앗이 심어져 있었다. 정당이 정상적으로 돌아간다면, 김대중을 보좌했던 사람들이 민주당에서 충분한 대접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도 사람들은 계파와 정당, 인물 중심이라는 현실 정치의 여러 요소들을 무시하기에 바빴다. 그들은 군사정권을 부수는 데는 전문가였지만, 어떤 것이 현실적으로 훌륭한 정치 구조인지를 성찰하는 데는 모자람이 있었던 것 같다.


 헌신과 노력이 정당한 보답을 주지 않을 때 사람은 좌절하고 분노한다. 이는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정치인들이 자기 자신을 버리고 오직 사회와 정의를 위해 헌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굉장히 폭력적인 발상인 동시에 비현실적이고도 도덕주의적인 관념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김대중은 험한 시대를 헤쳐 나갔고, 워낙 많은 짐을 지고 있었기에 모든 행동에 있어 충분히 가벼울 수가 없었다. 그 무거움은 주변 사람들을 버겁게 했고, 분열의 씨앗을 낳았다.


 노무현은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야 할 사람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지 않았다. 애초에 그러기 힘든 위치이기도 했지만, 애초에 그는 본인이 믿는 바에 충실한 사람이었고 그의 관념 속에 소위 ‘구태정치인’들은 들어있지 않았다. 그는 국민을 소환하여 구태정치인과 싸우는 소환술사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전쟁은 시작되었고, 그는 정몽준을 꺾고 이회창을 꺾었다. 그러나 그의 승리는 기본적으로 엄청난 갈등의 싹을 안고 있었다. 너무 많은 적을 만들었던 것이다.


 잘나고 윤리적인 인간이 타인을 이해하려면, 우선 보편적인 인간의 모자람과 어리석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래야 최소한의 관용이 생긴다. 그러나 많은 진보주의자들은 이걸 잘 하지 못하기에 사람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곧잘 관념의 척도로 사람을 상상하고 재단한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내가 보기엔 노무현도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보통 사람의 욕망과 질투, 추악함, 어리석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외면해버렸다. 그는 사람을 믿어주면 보답한다는 식의, 손을 내밀면 잡아줄 거라는 식의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불행하게도 대통령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