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브금

 

https://youtu.be/SmXJgaipGbQ

 

 

 이번 글은 경제학의 기본적인 이야기입니다.



 ‘왜 세상은 부유한 것 같은데 가난한 사람들은 항상 있고, 분배를 통해 평등을 달성할 수 없는 걸까요?’ 라는 생각을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회주의에 끌리는 데는 본능적이고도 규범적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 정권에 대한 지지의 기반 중 하나에는 사회 구성원들의 선의가 있다고도 생각하고요.



 그러나 항상 말하듯 선한 마음이 선한 결과를 만들지는 않습니다. 선한 결과를 얻고 싶다면 먼저 현실을 이해하고 현실적인 문제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

 

 본문에서는 원천적으로 시장 경제에서 평등이 달성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간략하게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성장이 왜 끝없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도요.



 일단 누구도 이런 기적의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걸 전제하고 이야기를 시작할 필요가 있고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시장은 다음과 같은 법칙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 신용화폐를 씁니다.

2) 신용화폐를 발급하는 중앙은행은 기본적으로 양수의 기준금리를 규정합니다.

3) 모든 각국의 신용화폐는 기축신용통화인 미국달러와 연동됩니다.

4) 모든 미국달러는 미국채를 담보로 발권됩니다. (닉슨쇼크 이전에는 현물금이 담보)

5) 미국달러와의 환율이 망가진 신용화폐는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이 법칙 때문에 다음과 같은 정리가 가능해집니다.

 

1) 그러므로 우리가 가진 화폐는 고정되고 안정적인 가치 교환권이 아니고, 기준금리만큼 매년 녹아 사라집니다.

2)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노동인구는 기준금리 및 국채금리만큼은 매년 의무적으로 벌어야 합니다. 그 번 금액은 금리로 소멸합니다.

3) 그러므로 원화보다는 한국채, 미국달러보다는 미국채가 실제 통화가치를 보존하는 수단입니다.

 3-1) 보통 사람들은 국채를 직접 이용하는 대신 예적금 및 단기금융상품을 이용합니다.

 

 이 정리에 더해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게 있습니다.

 

1) 화폐는 재화와 용역에 대한 권리입니다.

2) 재화와 용역의 충분한 공급이 없다면 화폐는 쓸모가 없습니다.

3) 재화와 용역의 공급이 불충분하면 물가가 상승하니까 화폐의 가치는 떨어집니다.

4) 경제가 성장하면 너도나도 소비를 늘리기 때문에 화폐의 가치는 떨어집니다.

5) 재화와 용역의 공급이 과도해지면 때 물가가 하락하는데, 공급이 과도하다는 건 수요가 부족하다는 거고, 이것은 불경기를 의미합니다.

6) 통화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흘러 다니는 것이고, 이 현금흐름이 시장에서 빨리 일어날수록 호황이고 천천히 일어날수록 불황입니다.

7) 통화의 공급량이 많을수록 경기는 호황 쪽에 가깝고, 줄어들면 그 반대가 됩니다.

 

 일단 이 정도 알아두시고 이야기하자면요.


 

 경제규모는 현금(이라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의) 액수 총합이 아니고, 생산성의 총합입니다. 또는 구매력의 총합이기도 합니다. 생산성의 총합과 구매력의 총합은 실질적으로 같습니다.


 

 이게 성장이 중요하고 분배위주 정책을 펴면 안 되는 핵심인데요. 우리 각자가 가진 돈은 그 화폐가치만큼의 구매력이고, 중앙은행이 그 구매력을 보증하는 신용(credit)이거든요. 우리 사회가 가진 구매력의 총합이 우리 사회의 총재산입니다. 그런데 구매력은 곧 생산성입니다. 생산성만큼 우리 사회 총합에 구매력이 주어진단 말이지요. 그러니까 경제성장 = 생산성의 상승 = 구매력의 상승입니다.


 

 그런데 생산성은 현금흐름이 빨라지는 호황에 올라가고, 현금흐름이 나빠지는 불황에는 내려갑니다. 예를 들어서 공장 설비를 밤낮없이 풀가동하면 생산성이 올라가잖아요? 그런데 그러려면 발주가 있어야 합니다. 도소매 상인이나 원청업체가 발주를 하려면 그만큼의 수요가 예측되어야 하고요. 수요가 많이 예측된다는 건 사람들이 물건 구매를 많이 한다는/앞으로 할 거라는 거고요. 전반적으로 사람들이 물건을 많이 사는 상황이 시장에 현금흐름이 좋은 거고, 그게 호황입니다. 그러니까 호황은 생산성을 끌어올립니다.


 

 그리고 우리는 의무적으로 생산성을 매년 일정 정도는 끌어올려야 합니다. 기준금리가 있으니까요. 적어도 그것보다는 더 끌어올려야 +가 되는 거고, 기준금리만큼 못 끌어올리면 -가 되는 겁니다. 기준금리는 해당 중앙은행이 속한 국가의 생산성 증가 또는 노동력을 담보로 한 채무입니다. 화폐경제를 돌리는 데는 기본적인 비용이 있는 것입니다. 또 다른 나라는 생산성을 매년 높이기 때문에, 그걸 뛰어넘지 못하면 도태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는 건국 이래 단 한 번도 여유롭게 남들을 내려다볼 입장에 있지 못했습니다.


 

 그럼 분배 정책의 원천적인 문제를 짚어보지요. 정부가 적극적인 재분배 정책을 펼치려면 세금을 많이 거둬야 합니다. 그런데 세금을 거두면 가처분소득이 감소합니다. 시민들 각각의 주머니가 빈단 말이지요. 주머니가 비면 절약을 하지요? 이 절약은 시장에서 현금흐름을 줄입니다. 그러면 공장에도 발주가 줄어들겠지요? 그럼 생산성이 떨어집니다. 경제가 성장하지 못하거나 저성장을 하게 되지요. 그러면 분배를 해서 뭘 개선하기도 전에 사회 전반의 부유함이 줄어듭니다. 이게 분배 정책의 첫 번째 문제고요. 두 번째 문제는 분배 정책을 시행하면 그 분배 과정 전반에서 비효율이 발생한다는 겁니다. 그냥 잘 작동되는 시장의 분배기능보다 정부주도의 분배는 효율이 매우 낮습니다. 수압이 낮아서 어딘가 물 공급이 잘 안될 때 가장 효율적으로 물을 보내는 방법은 파이프를 정비하고 수압을 높이는 겁니다. 누군가가 물을 떠다 공급해줘 봐야 비효율적일 뿐이지요.


 

 우리 사회가 가진 부는 고정된 게 아닙니다. 유동적으로 흘러 다니고 어느 정도 쉽게 팽창하거나 수축하는 것입니다. 정부가 개입해서 분배를 하려 들면 들수록 경제 규모는 수축합니다. 주류경제학이, 경제에 대해 잘 이해하는 사람일수록 정부 주도의 분배정책에 반대하는 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입니다. 그들이 분배에 관심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적극적인 재분배 정책이 얼마나 비효율적인지는 이 정부가 잘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이 정부가 집권한 후 빈부격차 추세가 매우 심각해졌습니다. 이명박근혜 시절에는 빈부격차가 개선되고 있었는데, 이 정부 들어서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박근혜가 본격적으로 좌클릭을 한 이후) 급반전했지요. 주류경제학 이론이 그대로 실현된 겁니다.


 

 정책적으로 보면 정부의 제일 목표는 정부가 분배를 직접 해줘야 할 사람을 최소한으로 만드는 것이어야 합니다. 즉 시장의 분배기능을 최대한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는 실업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요새 글로벌 경제는 골디락스 소리 들을 정도라, 실업이 늘어나는 나라가 OECD에 거의 없습니다. 실업률이 부정확한 측정치라는 소리는 어디서나 많이 나오지만, 실업률의 수치가 아닌 추세는 중요한 참조자료입니다. 실업률이 줄어드는 추세는 좋은 거고, 늘어나는 추세는 나쁜 겁니다.


 

 정부가 주도해야하는 분배 정책은 교육과 의료입니다. 우리나라의 교육은 예전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는데 지금은 더 상태가 안 좋은 것 같습니다. 의료는 원래 지속이 불가능했는데 문재인케어로 상황이 더 나빠졌습니다.



 이 정부는 성장은 물론이고 분배 성적도 최악입니다. 분배에 대해 올바른 이해를 하지 못했고, 잘못된 신념을 밀어붙였기 때문입니다. 현명한 시민이라면 경제학의 기본을 이해하고, 정부가 내놓는 기본적인 성적만큼은 어떤지 직시하셔야 하겠습니다.

또 최저임금 협상 시즌이네요.

경제 2016. 6. 29. 19:15 Posted by 해양장미

 매년 최저임금 인상론자들의 언행을 보면 그야말로 광적입니다. 경제학은 가장 기본적인 것도 모르고, 답정너에, 인상 반대자들을 나쁜 사람으로 매도하고 시작하지요. 최저임금 노동자가 올려 달라 하는 거야 개인의 이익을 위한 것이니 납득합니다만, 아닌 사람들은 본인들이 충분한 경제적 지혜가 있는지, 그리고 감정이 아닌 이성으로 문제를 이해하고 있는지 숙고해야합니다.

 

 물론 좌파들은 대체로 이성이 아닌 감정을 앞세우는 동물이고, 본인들만 착한 줄 아니 안 될 겁니다. 높은 최저임금이 여러 문제를 일으킨다는 건 이미 작년 8월에 이야기했습니다.

 

http://oceanrose.tistory.com/506

 

 최저임금이 오르면, 오른 최저임금을 내줘야 하는 사업체나 사업자는 재벌도 대기업도 아닙니다. 특권층에 직접 고용된 사람들은 임금 많이 받는 편입니다. 최저임금 시장은 거기서 한참 내려온 생존 투쟁자들의 것이지요. 급진적인 최저임금 인상론자들은 힘없는 소규모 사업자들을 착취하려 드는 족속입니다. 이 사회의 분배 문제를 진짜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해선 진지한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지요.

 

 최저임금이 오르면 시장에 돈이 돌고 내수가 살아난다는 거짓말 하나만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생산성 향상 없는 임금인상은 제로섬 게임입니다. 예를 들어 사업자 김씨와 노동자 이씨가 있다고 칩시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김씨가 이씨에게 월급을 10만원 더 주게 되면, 시장에 돈이 더 돌까요? 아닙니다. 그냥 김씨의 돈 10만원이 이씨에게 옮겨졌을 뿐, 시장 전체의 부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만약 이 10만원이 계획상 김씨의 투자자금이었는데, 투자자금을 임금으로 받은 이씨가 10만원을 저축하게 되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시장 전체의 생산성 향상은 감소합니다. 시장 전체에 투자가 줄었기 때문입니다. 한 사회의 부는 생산성이 결정합니다. 노동자에게 더 주어진 임금만큼의 자본이, 사업체 또는 사업자에게 감소한 자본보다 사회의 생산성을 높일 확률은 그리 높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가 아니라도, 최저임금을 가파르게 올리면 장기적으로 시장 전체의 노동 생산성은 감소합니다. 숙련 노동자와 저숙련 노동자의 차이를 없애고, 노동자가 생산성이 더 높은 일에 뛰어들 동기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최저 임금이 5000원이면, 더 돈을 벌고 싶은 노동자들은 시급 10000원을 벌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5000원짜리 일보다 10000원짜리 일은 보통 더 숙련이 필요하고, 더 복잡하고, 더 생산성이 높은 일이지요. 그런데 만약 최저임금 10000원이 되면? 생산성이 낮은 일이건 높은 일이건 다 10000원이니 노동자는 숙련이 필요 없고 쉬운 일을 하면서 10000원을 받게 됩니다. 이런 상황은 이후 결코 좋지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곤 하지요사실 난 이미 이 사회에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문제가 가시화된 상황이 아닌가 의심중이기도 합니다. 지난 10년 넘게 최저임금이 얼마나 많이 올랐습니까? 그런데 그 결과가 어떻습니까?

 

 애초에 생산성 향상 이상의 임금인상이 위험하다는 건 경제학적으론 상식입니다. 좌파들은 이런 상식을 제대로 반박해본 적이 없습니다. 다른 외부 변수를 배제하지 않은, 최저임금을 올렸는데도 경제가 성장한 자료를 들고 와서 꽥꽥댈 뿐이지요. 그건 마치 담배를 매일 피워도 장수한 사람들 사례를 들고 오는 거나 마찬가집니다. 과거 담배 회사들이 주장하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요. 담배의 해악이 상식이 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지요.

 

 우리들은 더 좋은 분배를 위해 진지하게 노력해야 합니다.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고, 덜 아프고 살 수 있게끔 말입니다. 그런데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론은 분배를 위한 진지한 노력과는 매우 거리가 멉니다. 그건 불성실하고 폭력적이며, 또한 많은 경우 위선적인 주장입니다

소득주도성장론 비판

경제 2016. 1. 31. 22:18 Posted by 해양장미

 사실 근래 문재인 등이 이야기하는 소득주도성장론 같은 건 진지하게 비판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주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핵심적인 요지가 빠져있고, 결국 논리적 완결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현재 소득주도성장론은 정치적 수사이자 완성되지 않은 담론의 제안일 뿐, 완성도가 있는 정책적 계획안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이 수사가 적잖은 이들을 솔깃하게 만들고 있는 것 같으니 조금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굳이 소득주도성장론의 주류경제학쪽 기원을 찾자면, 지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정부가 할 수 있는 온갖 조치들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시민들의 소득이 충분히 개선되지 않는 현상이 발견된 것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 낙수효과가 (여러 문제들에 의해, 충분히) 발생하지 않고 있다.’는 평도 있었는데, 이 표현을 좌파들이 낙수효과는 없다는 식으로 왜곡해 전달하기도 했었지요.

 

 이런 상황에서 더 강력한 재분배 정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는 나올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다만 문제는 큰 부작용이 없고, 실효성이 있다고 보편적으로 생각되는 정책은 이미 웬만큼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는 것이지요. 정부는 전능한 무언가가 아니기 때문에, 경기 후퇴 국면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소거하는 기적을 일으킬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미 세계 경제는 네트워크화 되어있기 때문에 한 정부가 제어할 수 있는 범위도 한정적입니다.

 

 이 이야기를 자세히 풀자면 꽤 길어질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국내문제 및 한국에서 회자되는 소득주도성장론에 한해 가능한 간단하게 이야기하겠습니다. 중요한 사실부터 이야기하자면, 일단 한국은 위에 이야기한 기원에 해당하는 현상이 그다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노동자들의 소득은 가시적인 지표로 볼 때 개선되어 왔고, 디레버리징도 일어나지 않았으며 딱히 경제위기라 할 만한 걸 겪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글로벌 금융위기와 불황으로 인해 오랫동안 호황이 아닐 뿐입니다. 이건 겨울에 아무리 난방을 해도 봄처럼 따스하게 살 수는 없는 것과 비슷한, 그야말로 어쩔 수 없는 문제지요.

 

 그렇지만 시민들 사이에 어느 정도 불만이 생기는 것 역시 어쩔 수 없습니다. 이럴 때 잘 하는 정부라면 시민들을 다독이고 어떻게든 심리적 만족감을 제공해야 합니다만, 박근혜정부는 이런 면에서는 무능하기 그지없기 때문에 여러 말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문재인측이 이야기하는 소득주도성장론이 비록 말은 안 되지만, 정치적 구호로는 유용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물론 정치적 구호로만 유용한 걸 진지하게 실행하면 안 됩니다.

 

 문재인발 소득주도성장론의 가장 큰 문제는 정부가 가계소득을 임의로 증대시킬, 부작용 없고 효과적인 수단이 없다는 데 있습니다. 원천적으로 가계로 흘러가는 재화는 시장에서 결정됩니다. 정부가 그 흐름에 개입할 수 있는 수단은 한정적이고, 섣부르고 무리한 개입은 혼란과 충격을 가져옵니다.

 

 실제 문재인측에서 소득주도성장론의 구체적인 방식이라고 이야기하는 건 최저임금의 지속적인 두 자릿수 인상 (매년 10%이상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및 차별 해소 같은 겁니다. 물론 뭐라 말할 가치도 없지요. 최저임금의 가파른 상승이 문제소지가 많다는 건 본 블로그에서 여러 번 이야기했습니다. 개인 사업자와 영세 사업체에 커다란 인건비 부담을 가져오게 되어 사업자의 가계를 어렵게 하고, 사업체의 도산 위험을 높이며 창업과 고용에도 악영향을 준다는 게 주 문제소지입니다. 한국 현실에서 최저임금 인상이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건 근거 없는 이야기일 뿐더러, 성장은커녕 실제 평균 가계소득에도 도움이 안 될 가능성 또한 높습니다. 더구나 객관적인 자료로 볼 때 한국 근로자의 소득은 지속적으로 개선되어 온 반면, 개인 사업자의 소득은 거의 개선되지 않고 있으며 폐업 등과 관련한 데이터를 보면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 게 현실입니다. 어느 쪽이 지원이 급한 계층인지는 명백합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문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참여정부 시절 비정규직 문제가 본격화되었고 문재인 또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건 과거의 잘못으로 넘어가더라도, 정부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강제화할 때 기업이 어떻게 대응할지 정도는 미리 생각을 해봐야합니다. 기업은 노동자에게 노동생산성을 초과하는 임금을 장기적으로 지불할 수 없습니다. 만약 그런 현상이 빚어진다면, 누군가 부당하게 수탈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 귀족노조는 비정규직을 부당하게 수탈하는 방식으로 본인들의 노동생산성을 한참 초과하는 임금을 장기적으로 받고 있긴 합니다만, 그건 균형과는 거리가 먼 강압에 의한 것으로 여러 큰 부작용을 만들어내고 있지요.

 

 만일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면, 많은 기업은 현재 수준의 정규직 임금을 보장할 수 없으며 많은 노동자를 해고해야합니다. 어떤 기업은 도산을 하거나 다른 나라로 일부라도 이전을 하는 게 차라리 나은 상황에 처하게 되며, 많은 업무 과정에 자동화 압력이 극대화됩니다.

 

 쉽게 말하면 비정규직 싸게 쓰지 말라고 정부가 강제하는 순간, 기업은 그 강제를 받아들이는 게 아니고 그 제한을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거라는 겁니다. 그 결과는 기업의 해외 이전, 창업 포기, 해외지사 이용, 공정 자동화, 인력 감축, 정리해고, 사업 매각 등이 될 확률이 매우 높고요.

 

 사실 이런 이야기는 현실을 어느 정도만 알면 굳이 할 필요도 없는 수준입니다. 가계 소득의 증대가 곧 소비로 이어지고, 선순환 사슬의 한 고리가 된다는 건 경제관념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압니다. 모든 경제학자는 가계소득의 증대를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는지를 탐구합니다. 문재인 같은 부류는 자신들만 유난히 가계의 어려움을 챙기는 것처럼 이미지 마케팅을 하지만, 멍청이가 아닌 이상 가계 소득이 중요한 걸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주류경제학이 문재인이 주장하는 것과 같은 처방을 내리지 않는 건 그게 거의 무용하며 부작용만 크기 때문입니다. 이는 주류의학계가 특정 환자의 특정 증상에 처방을 내리는 것과 같습니다. 고통스럽고 병이 빨리 낫지 않는다고 주류의학계가 반대하는 약물이나 시술을 선택하면, 보편적으로 높은 부작용 위험이 있다는 건 동의하는 분이 많을 겁니다. 물론 개개인은 곧잘 잘못된 선택을 하긴 합니다만, 한 국가의 지도자가 잘못된 선택을 하면 정말 많은 사람이 고통 받습니다.

 

 한 국가의 지도자가 주류의학을 거부하고 잘못된 방식을 택했던 사례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있습니다. 넬슨 만델라를 이어 대통령이 되었던 타보 음베키는 에이즈가 HIV 바이러스에 의해 전염되는 질환이 아니라, 가난과 영양실조에 의해 걸리는 질환이라는 에이즈 음모론을 진지하게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에이즈를 마늘과 홍당무로 치료하겠다는 정책을 펼칩니다. 남아공은 에이즈 감염률이 매우 높은 나라였는데 말입니다. 음베키 정부는 HIV 치료제에 대한 부작용을 홍보해서 약 사용을 막았고, 심지어 콘돔 사용까지 흑인 수를 줄이려는 백인의 음모라는 식으로 접근해 버립니다.

 

 그런 멍청한 정책의 결과는 당연히 참담했습니다. 하버드의 연구에 의하면 2000-2005년 사이 음베키의 정책에 의해 적어도 33만명 이상의 에이즈 추가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전해집니다. 2012년 기준 남아공엔 570만명에 이르는 에이즈/HIV 환자가 발생했으며, 전체 사망자의 40% 이상이 에이즈로 죽는 지옥이 펼쳐졌습니다. 백인이 통치하던 1990년 남아공 국민의 평균수명은 63세 이상이었지만, 음베키 집권 후인 2009년에는 47세로 곤두박질칩니다. 여담입니다만 백인들은 음베키의 정신 나간 소리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남아공 흑인 전체 인구의 13.6%가 에이즈/HIV에 걸리는 와중에도 백인의 에이즈/HIV 감염률은 0.3%에 불과했습니다.

 

 이 사례가 극단적이라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주류 전문가들의 말을 거부하고, 정치 지도자가 자신의 마음에 드는 비주류를 선택할 때는 이런 일도 빚어질 수 있는 게 우리가 사는 세상입니다. 음베키가 자국민들을 몰살시킬 생각으로 저런 바보짓을 한 건 아니겠지요. 의도가 좋은 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정치는 현실입니다. 정치가는 자신의 행위가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통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만 하지요. 그것이 안 되는 사람은 정치를 해서는 안 됩니다.

 


 얼마 전에도 짧게 적었지만, 근래 세금 논란을 보면 정말 한숨이 나옵니다. 언론인이고 정치인이고 여기저기서 시끄러운 깨시민 파시스트고 죄다 어쩜 그렇게 이기적이고 후안무치하며 근시안적인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사태가 이렇게 된 데는 조삼모사를 잘못한 현 정부 책임도 없진 않다 보니, 현 국가 지도자 벌꿀여왕께서 그런 걸 좀 잘~ 해주길 바라고 있긴 한데 거기다 대고 문재인이나 새민련 의원들 및 깨시민 파시스트들 하는 소리는 정말 가관입니다. 솔직히 저는 만약 차기에 저 인간들이 정권이라도 잡으면 어떻게 돌아갈지 정말 걱정됩니다.

 

 어쨌든 작금의 문제는 우리 벌꿀여왕님이 잘~ 하셔야 뭐가 풀릴 가능성이 있겠고, 이번에도 저는 문재인만 뭐라 하겠습니다. 문재인만 대표로 뭐라 하려는 이유는 현 시국에서 문재인이 제일 문제이기 때문입니다그와 그 주변 사람들은 도무지 나라/국민 잘 되게 할 생각은 손톱반달만큼도 없고, 그저 자기들 권력 잡을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워낙에 착한 척 해대고 깨시민 파시스트들이 온 천지에서 달님을 외치며 달레반 갑질중이다 보니, 문재인의 후안무치하고 무개념한 발언들에 대한 비판이 그 어디서도 잘 보이지 않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법인세 정상화같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입에 담는다는 겁니다. 친노-깨시스트 집단의 대중기만 중 가장 성공적인 것 중 하나가 이명박이 법인세 인하 같은 부자감세를 해서 국가재정이 어려워졌고, 그걸 보충하기 위해 노동자 유리지갑 턴다!’ 같은 소리인데, 이건 그야말로 양심이 없는 망언입니다.

 

 일단 87체제 이후 법인세 인하를 아직까지 안 한 정부는 박근혜정부가 유일합니다. 노무현정부요? 당연히 법인세 내렸습니다. 노무현만 아니라 그 이전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다 법인세 인하했습니다. 법인세 내린 건 노무현 정부에서 잘 한 행위 중 하나입니다. 마찬가지로 이명박정부의 법인세 인하도 잘 한 정책이었습니다.

 

 현실이 이런데 법인세 원상회복운운은 흔한 표현으로 망국적 표퓰리즘입니다. 도대체 원상의 기준이 언제입니까? 혹시 노무현 집권기요? 노무현 정부의 법인세 인하는 착한 법인세 인하고, 이명박 정부의 법인세 인하는 나쁜 법인세 인하라는 겁니까?

 

 법인세에 대한 혹세무민과 포퓰리즘이 너무 심합니다. 애초에 법인세가 부자세라는 편견부터가 문제입니다. 법인세는 부자세가 아니고, 법인의 회계적 소득에 대해 부여되는 세금입니다. 노동자들이 다니는 모든 법인회사는 회계적으로 적자가 아닌 이상 법인세를 냅니다. 회계적이라는 말을 쓰는 이유는, 실제 흑/적자와 회계적 흑/적자 간에 차이가 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도산 직전의 비상장 소기업을 보면 곧잘 회계적으로는 흑자인 경우들이 있습니다. 어떻게든 자금지원을 받기 위해 회계조작을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러면 실제로는 도산 직전이지만 회계적으로는 흑자이기에 법인세는 내야하지요. 대체로 법인의 입장은 자연인과 다릅니다.)

 

 그런데 법인 = 부자냐 하면, 결코 그렇지가 않습니다. 법인은 가상의 개념이고, 세금은 사실 가상의 개념인 법인이 낼 수가 없습니다. 모든 세금을 낼 수 있는 주체는 결국 자연인입니다. 결국 법인세를 누가내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마 법인세 = 부자세로 착각하는 사람들은 법인세를 사장이나 경영진 또는 대주주가 낸다고 착각하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물론 바보 같은 착각이지요. 현실은 안 그렇습니다. 법인세는 보다는 이 더 많은 부담을 지는 세금입니다. 기업 입장에서 법인세는 절세도 전가도 쉬운 세금이거든요. 힘 있는 재벌 기업일수록 더 그렇습니다. 쉽게 말해서 법인세는 회장, 사장, 이사, 대주주가 다 내는 게 아니란 뜻입니다. 실제론 노동자들이 부담하고 하청업체들이 부담하는 비율이 꽤 됩니다. 기업이 뭘 해서 법인세를 내건, 그건 기업하기 나름입니다. 당신이 만약 흑자를 내고 있는 법인회사 노동자라면, 당신은 실질적으로 항상 법인세를 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게 눈에 안 보일 뿐이죠. 원숭이만 조삼모사에 당하는 게 아닙니다.

 

 만약 적절하고 정의로우며 이상적인 법인세율이 있다면, 그건 0%일 겁니다. 제대로만 걷는다면, 세상에 세금은 소득세와 소비세만 있으면 됩니다. 모든 돈은 소득과 소비 및 투자로 움직입니다. 이는 법인의 돈도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법인세 인하 논쟁에서 중요한 건 법인세율과 법인세수의 상관관계입니다. 현실적으로 법인세율을 올린다고 법인세수가 증가하느냐 하면, 그게 그렇지가 않습니다. 법인세율을 인하한 후 법인세수가 증가한 사례가 지금껏 많고, 실제로 연구되어 있습니다.

 

 흔히 언론에서 법인세를 내려줬더니 기업유보금이 증가했다같은 말을 시끄럽게 떠들곤 합니다. 그런데 저건 정치적으로 특정한 의도를 가진 기사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법인세율을 줄인 이후 기업유보금이 증가하면 사실 법인세도 더 많이 내게 되기 때문입니다. 유보금이 증가했다는 건 기업이 그만큼 더 많은 흑자를 내고, 배당을 하고도 돈이 그만큼 남았다는 것입니다. 흑자를 내면 그만큼 법인세를 내게 되니, 실제로 더 많은 법인세를 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보금은 본래 배당성향 100% 기업이 아닌 이상, 흑자를 내면 점점 증가하게 되어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회계를 잘 모르니, 언론이 혹세무민을 하는 것이지요. 물론 기본소양 없는 언론인이 워낙 많고, 기사 하나 뜨면 아무 생각 없이 퍼다 날르다 보니 혹세무민이 더 심해지는 것도 사실이긴 하고요.

 

 현실적으로 한국의 전체 세수 중 법인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OECD 최고 수준입니다. 이는 낮은 소득세 및 소비세법인세의 낮은 조세저항과 연관이 있습니다. 또한 1인당 GDP대비 법인세수도 OECD 5위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법인세만 더 인상하라는 건 비논리적이고 이기적이며 사람들을 나쁘게 선동하는 주장입니다.

 

 본문에서는 일단 법인세만 짧게 이야기합니다. 사실 소득세라거나 부가가치세, 그리고 복지 전반에 대한 문재인-새민련-깨시민측의 망언들은 인간적으로 눈 뜨고 못 봐줄 정도입니다. 그들의 발언은 너무나 많은 거짓과 무식, 그리고 경솔함으로 점철되어있습니다. 혹시 그들이 정권이라도 잡게 되면 무슨 참사가 빚어질지 무서울 정도입니다. 철학과 진실 없이 권력만을 탐하는 파시스트들을 우리는 경계해야합니다.

 

 사실 지금 정부나 여당도 결코 잘 하는 게 아닙니다. 어지간해서는 상당한 비판을 받아야 마땅할 것이나, 상대적으로 그나마 장기적으로 잘해볼 생각이 있는게 그래도 현 정부로 보이다보니, 참 일정 이상 뭐라 하기도 난감한 게 현실입니다.

 본문은 좀 더 상세하고 자세히 쓰고 싶은 내용입니다만, 시간문제로 일단은 간략하게 운만 띄웁니다. 보다 자세한 이야기는 차후에 다루겠습니다.

 

 지난 7년간 한국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잃어버린 7이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일단 저는 개인적으로 민생이라는 면에서 87체제 대한민국이 실패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GDP PPP의 눈부신 성장은 결과적으로 서민들의 삶을 충분히 개선하지 못했고, 국민들의 행복도는 오르기는 커녕 지속적으로 떨어졌습니다.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난 7년은 심했는데, 가장 큰 문제는 기업 소득이 사회로 돌아가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위해 간단한 사회적 담론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자본주의에서 기업은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합니다. 이 연장선상에서, 사회가 사회적 공익을 위해 부당하게 기업을 억압하고 수탈하는 것은 자유민주정의 원칙에 어긋납니다.

 

 그러나 또한 국가, 정부, 사회가 없이는 기업도 없습니다. 기업은 사회의 한 구성 요소일 뿐, 기업을 위해 국가와 사회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각각의 자유로운 개인이 일련의 사회적인 책임이 있듯, 기업 또한 그런 게 있는 것입니다. 기업이란 사회 위에 선 초사회적, 초법적, 초인적 존재가 아닙니다. 이따금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착각합니다. 초법적 기업은 부패한 후진적 국가에서만 초사회적 권력을 가집니다.

 

 그럼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 봅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도 한국 경제규모는 꾸준히 성장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시점부터 대략 기업과 가계 간의 소득 개선 격차가 커집니다. 이는 쉽게 이야기해서 법인이 번 돈이 계속 법인에만 남아있고, 그게 자연인에게 충분히 배분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법인이라는 게 자연인을 위해 만들어진 존재임을 감안해볼 때 이는 분명 바람직한 상황이 아니고요.

 

 그렇다면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그리고 이걸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가장 쉽게 보이는 문제는 평균임금입니다. 지난 7년간 노동자들의 평균임금은 기업의 평균적인 자산축적정도보다 덜 상승했습니다. 최저임금은 많이 오른 편이지만, 평균임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임금은 법인이 번 돈이 개인에게 나가는 가장 효율적인 분배 수단입니다. 그런데 일차적으로 이 루트가 근래 정상이 아닙니다.

 

 그런데 기업에 대해 임금을 더 달라는 사회적 요구가 없었느냐 하면 그건 아닙니다. 그리고 실제 돈을 잘 번 기업들은 임금 인상도 나름 해줬습니다. 또한 최저임금도 많이 올랐습니다. 진짜 문제는 금융위기 이후 한국 경제 구조가 변했다는 데 있지요.

 

 한국이 글로벌 금융위기에 크게 흔들리지 않고, 위기를 빨리 벗어난 데는 제조업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위상이 잘 맞아떨어진 덕이 큽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금융위기를 맞은 미국과 유럽에서 제로금리, 양적완화를 통해 소비를 촉진했는데 이 시점에서 한국 공산품이 경쟁력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가격은 저렴한데 품질은 꽤 괜찮은 제품이었으니까요. 게다가 마침 한국은 2008년 초에 원화가치를 많이 떨어뜨려놨던 상황이어서, 리먼 사태 이후 공산품을 팔아 들어온 외환이 더 큰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결국 한국은 GDP로 보면 외환위기에서 거의 최고의 선방을 거둔 나라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이것의 착시현상입니다. GDP 타격은 거의 없었고 오히려 환율과 물가를 반영한 PPP는 꾸준히 올랐지만, 이는 몇몇 글로벌 경쟁력이 있는 대기업들이 낸 결과고 그보다 작은 기업들은 큰 타격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전체 지표가 실상을 가려버리는 상황이 빚어진 거지요. 쉽게 이야기해 GDP가 그대로라는 건, 환율 문제를 제외하면 몇몇 대표 대기업이 성공한 만큼 다른 기업들이 망했다는 것이었으니까요. 특히 환율로 인해 당시 중견중소기업 중 피해본 기업이 많았습니다.

 

 금융위기 기점 이후 성공한 대기업은 몇 안 되었기 때문에, 그런 기업들의 성공 덕에 임금상승 혜택을 받게 된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의 노동자가 더 많았고, 그나마 당장 아주 어려운 기업이 아니라도 미래를 대비해 인력을 감축하는 기업이 늘어납니다.

 

 더구나 거의 정확하게 이 무렵부터 수도권 부동산 경기침체가 닥치면서 시중 자금흐름에 문제가 생깁니다. 한국 가계 자산은 다른 국가에 비해 금융자산은 적고, 부동산 등 비금융자산 비율이 매우 높은데 이 비금융자산의 상승에 제동이 걸렸고, 전세 제도라는 특수한 제도 때문에 매매가 사라지고 전세가격만 급상승하게 되면서 한국 부동산은 (전세금으로) 돈이 들어가기만 하고 (매매로) 빠져나오지는 않는 블랙홀이 되어버립니다. 또한 이 무렵 기후 문제나 수급, 가축 전염병 등으로 먹거리 물가가 불안해지는 일이 잦았는데, 이 결과 종합적으로 한국 내수시장엔 깊은 불황의 그림자가 드리워집니다.

 

 이런 타격을 가장 크게 받은 직종은 서비스업, 판매직, 단순노동직 등입니다. 이 직종들은 다른 직종들보다 임금이 덜 올랐습니다. 물론 이런 직종들에 주로 타격이 있다는 것은 사회가 더 불안정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불안정은 소비심리를 더욱 위축시킬 뿐만 아니라, 기업의 투자심리도 위축시켰습니다. 투자를 하지 않으면 직원도 안 뽑습니다. 악순환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오늘입니다.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이유는 본 블로그에서 정말 여러 차례 밝혔습니다. 소위 진보라는 인물들이 사태파악을 못하고, 문제를 악화시키는 선동만을 반복했습니다. 그렇다고 소위 보수라는 인물들이 획기적으로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했느냐 하면 그것 또한 아니었습니다. 그나마 당장 말아먹진 않을 정도였지요. 최악과 차악 정도의 관계라고 하면 맞겠습니다.

 

 어쩌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었느냐를 이야기하려면 글이 너무 길어지니 수많은 중간 과정이나 인과관계를 일단은 생략하겠습니다. 그에 대한 글은 천천히 작성해보던지 하기로 하고, 두괄식으로 본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기업 생태계에 있습니다.

 

 만약 이 전제에 동의할 수 있다면, ‘진보적인 관점에서정부는 시장에 개입하여 문제를 해결할 의무가 있으므로, 정부는 기업 생태계에 개입해서 망가진 생태계를 적극적으로 수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근래의 노무현-이명박-박근혜정부는 모두 이런 데서는 낙제입니다. 김대중 이후 대한민국 정부는 기업 생태계를 개선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현저하게 부족했습니다. 그러니까 나라가 이 꼴이 된 거죠.

 

 그럼 왜 기업 생태계가 문제인지 최대한 간단히 설명하겠습니다. 한국 기업들은 박정희때 큰 몇몇 대기업 빼면 규모가 작습니다. 80년대부터 창업하여 재벌에 편입된 기업집단은 셋뿐이라 하며, 그나마도 상황이 좋지 못합니다. 90년대 이후에는 기존의 재벌 중 망하는 그룹이 있을 뿐, 새로 창업하여 편입되는 기업은 없었습니다. 쉽게 말해 떠오르는 기업이 거의 없었다는 겁니다. 그나마 몇몇 나온 기업들도 IT기업들이었는데, 이 기업들은 태생적으로 수명이 짧고 고용에 한계가 있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또한 대부분의 한국 기업들은 근시안적 경영을 하고 있습니다. 100200년 갈 제국을 만들려는 경영자는 아무래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인력을 대합니다. 그렇지만 경영자에게 장기적인 마인드가 부족할 경우, 그 피해는 우선적으로 노동자들에게 오게 됩니다. 잠깐 쓰고 말 노동자에게 기업은 충분한 투자를 하지 않습니다. 인건비를 최대한 아껴서 단기적인 수익을 얻으려 하지요.

 

 물론 이런 방식은 기업에도 좋지 않습니다. 노동자들은 본능적으로 받는 만큼 일하려고 합니다. 만약 기업이 노동자를 착취하려 한다면, 가장 능력 있고 발상의 전환이 빠른 사람이 가장 먼저 그 직장을 그만둡니다. 결과적으로 보다 무능력한 직원이 직장에 남지요.

 

 그런데 더 큰 문제는 한국 기업 생태계는 그 역동성이 너무 떨어져 있다 보니, 기존 기업들이 문제를 일으켜도 그것을 대체할 만한 새 기업이 안 나온다는 것입니다. 만약 새로 생기는 기업이 기존 기업보다 더 노동자 대접이 좋고 더 장기적인 마인드로 더 좋은 경영을 한다면, 기존 기업은 도태되고 새 기업으로 노동자가 몰려들 것입니다. 더 좋은 인력이 모인 기업이 성공할 확률도 높겠지요. 그러나 이제 한국에서 그러한 현상은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에 대한 답은 간단합니다. 한국은 창업자의 지옥이거든요. 한국이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주장을 강력하게 펼치는 사람들은 대체로 노동자고, 앞으로도 한동안 계속 노동자로 살 사람들입니다. 물론 은퇴할 나이가 된 후에야 한국에서 창업을 한다는 게 얼마나 암담한 행위인지 절실히 깨닫게 되는 경우도 많지요.

 

 창업은 그냥 성공하는 게 아닙니다. 씨앗이나 삽수가 잘 자라려면 기후 및 토질이 맞아야 하듯, 기업의 성장 또한 기후와 토질에 비유할 수 있는 것이 맞아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은 지난 30년간 이렇다 할 괜찮은 기업이 거의 자라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토양 및 기후의 문제입니다.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말입니다.





 


 이에 대한 자료를 창업진흥원이라는 곳에서 보기 좋게 정리한 도표가 있습니다. 이 표를 보면 한국이 왜 문제가 심화되고 있는지 알 수 있고, 중국이 얼마나 대단한지도 알 수 있습니다.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요.

 

 기업 생태계는 현대인들에게 있어 매우 중요합니다. 현대 자본주의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기업의 발달과 산업 기술의 발달로 이루어졌습니다. 그 이전에 사람들은 농사를 짓거나, 목축을 하거나, 물고기를 잡거나 하는 등 직접 식량을 구하는 빈도가 높았지요. 그 시대에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먹고 사는 데 있어서는 시장의 영향을 덜 받고, 대신 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대조적으로 요즘 도시인들은 시장 및 기업 의존적이라 볼 수 있고요.

 

 한국에서 새로운 기업이 잘 나오지 않는 이유는 아주 복합적입니다만, 개인적으로 보기에 큰 요인들로는 투자 리스크 대비 리턴 문제와 문화적인 결함, 그리고 제도적인 문제 등을 꼽아야할 것 같습니다. 이것들은 위의 도표에도 나온 내용들입니다.

 

 간단히 쓰려고 한 글이 너무 길어지고 있어서 최대한 요약해서 이야기를 전개하겠습니다. 기업을 창업하는 데는 자본이 필요한데, 한국 투자자들은 굳이 신생 기업에 투자할 이유가 별로 없습니다. 한국 투자자들은 단기적인 투자성향이 강한데, 새로운 기업에 투자를 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장기적으로 돈이 묶이게 됩니다. 예를 들어 신생 주식회사에 지분 투자한 투자자가 자본을 회수하려면 상장이 되거나 인수합병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한국은 이 모두가 잘 안됩니다. 소위 착한 투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별로 없고요.

 

 여기엔 제도적인 문제도 있었습니다. 코스닥 시장은 본래 신생 기업을 위한 시스템입니다만, 코스닥 상장 조건은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서 이번 박근혜정부에서 새로 도입한 시장이 코스닥의 하위 시장인 코넥스인데, 코넥스는 아직 개인 투자자에게 완전히 개방되어있지 않습니다. 그래도 코넥스가 없는 것보단 있는 게 훨씬 낫습니다. 박근혜정부의 진보적인 움직임 중 하나였지요. 그렇지만 아직도 한국은 한참 멀었습니다. 시스템의 도입이 금융위기 이후 불경기에야 된데다, 아직 정부 주도 수준이라 사회에 뿌리를 제대로 내릴지 어쩔지는 미지수이기도 합니다.

 

 이 연장선상의 문제는 또 있습니다. 한국은 차등의결권 제도가 없는데다 이젠 신규순환출자도 불가능해졌기 때문에, (참조 링크) 창업자는 본인이 충분한 자본을 가지고 창업하는 게 아닌 이상 향후 의결권을 충분히 행사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 올 것을 어느 정도 감안해야 합니다. 아니면 투자를 받는 데 있어 제약을 감수해야 하지요. 이런 조건에서 창업자는 보다 쉽게 단기적인 시각을 가질 것이라 저는 판단합니다. 물론 이렇게 되면 기업이 노동자에 투자할 의지는 더욱 낮아지게 됩니다.

 

 왜 한국 경영자들이 단기적인 시각을 많이 가지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생각을 해볼 수 있는 동시에, 저는 거기에 대해 아직 충분한 정답이라 할 만한 걸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일단 그보다 제가 중요하게 보는 관점은 장기적이고 보다 건전한 마인드를 가진 기업이 경쟁에서 승리하는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엔 여러 제도적인 문제가 원인이 되고 있는데, 이러한 제도적 문제가 정치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건 정말 곤혹스러운 일입니다.

 

 위에 이야기했듯 박근혜정부는 그나마 약간이라도 이 기업 생태계를 개선하려는 의지를 보입니다. 그런데 보다 진보적이고, 서민의 편이라는 새정치민주연합이니 정의당이니 등등은 이런 문제들에 대해 별 관심도 없을 뿐더러, 아예 사태파악도 못하는 것 같습니다. 제도를 개선한다는 건 정치적인 문제인데, 누구보다도 민생에 신경을 써야 할 사람들이 책임을 전혀 지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생태계라거나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이 되는 일, 실제 한국 기업들의 현실 등을 이야기하면서 본문을 전개하기엔 힘이 너무 많이 듭니다. 이 모든 이야기는 일단 생략합니다. 다만 기존부터 해왔던 이야기 중 한국엔 중소기업이 더 클 만한 동기부여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는 다시 한 번 반복하고 넘어가야겠습니다. 이는 한국 노동자를 힘들게 하는 아주 핵심적인 요인입니다.

 

 그럼 다음 중요한 이야기로 넘어갑시다. 한국 GDP PPP의 성장을 보면, 저 앞에 이야기했듯 그 주역은 몇몇 대기업입니다. 그런데 그 대기업은 유보금을 쌓고 있고, 그에 결국 기업 -> 사회로의 재분배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심지어 유보금 과세 논란까지 일어 저는 따로 그것에 반대하기도 했었지요. 제가 유보금 과세에 반대하는 건 그게 말도 안 되는 소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또한 재분배는 필요합니다.

 

 사실 한국 대기업들이 커온 역사를 보면 이 기업들은 사회에 토해내야 할 게 많습니다. 성장 과정에서 상당한 특혜가 주어진 것은 물론, 위기 땐 공적 자금도 투입되는 등 온 국민이 키워낸 게 한국 재벌들입니다. 물론 현재 한국 기업들은 역수입이 더 싸다거나, 에어백을 부실하게 달아준다거나, 구명용 질소에 과자를 끼워 파는 등의 행위로 전 국민적인 분노를 자아내고 있기도 한데 일단은 재분배 이야기에 집중해 봅시다.

 

 잠시 잘못 끼운 첫 단추부터 이야기해봅니다. 금융실명제 이전엔 기업은 아직 정부의 발아래 있었습니다. 이후 IMF때 공적 자금을 지원할 때, 만약 정부가 그 지분을 확보하는 식으로 지원해줬다면 재분배 문제는 고민할 것도 없었습니다. 아니면 최소한 그 부채의식을 지우고 사회에 어떻게 환원할 것인지를 고민할 필요도 있었지요. 그러나 김대중과 노무현, 두 정권은 이런 의무를 다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노무현이 보인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느니, ‘문제의 본질은 불법도청같은 태도는 사태를 거의 한계까지 악화시켰지요.

 

 이명박 시대에 들어서야 우리 사회는 재분배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습니다만, 멍청하고 탐욕스러운 자칭타칭 진보좌파들은 모든 기력과 시간을 소모해 그저 반MB만 외치고 노무현 신격화나 했지 어떻게 하면 좀 그럴싸하게 재분배를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해 충분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하는 말이 유보금 과세니, 법인세 인상이니 정도니 참 한심하고 기가 막히죠.

 

 만약 법인세를 인상하면 기업이 번 돈이 사회로 더 흘러들어올까요? 문제는 별로 그렇지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사실 법인세수와 법인세율을 비교 연구해보면 무려 반비례 관계가 성립합니다. 세율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세수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는 문외한 또는 답정너들이지이요. 법인세는 회피하기가 정말 쉬운 세금입니다. 법인세율이 높은 나라에서는 자주 빚어지는 일이죠. 괜히 그 전체 세율 높은 북유럽 국가들 법인세가 한국과 비슷하거나 더 낮은 게 아닙니다. 세상은 그리 단순하지 않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실 현 정부도 이러저런 수단으로 기업들을 적당히 갈구고 있긴 합니다만, 그런 게 그다지 잘 통하지는 않습니다. 21세기엔 좀 더 세련된 방식이 필요하지요.

 

 개인적으로 그나마 가장 좋은 방안이라 생각하는 건 기업의 형태에 따라 금융소득에 대한 과세와 부동산의 거래에 대한 과세를 손보는 것입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거대 산업 기업은 산업으로 돈을 벌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물론 채찍이 있으면 당근도 있어야 합니다. 정부와 사회에서 필요한 방향으로 기업이 행동하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해야합니다. 이미 어느 정도는 하고 있지만, 현저하게 부족한 게 사실이기도 합니다.

 

 보다 강력한 방식도 있습니다. 금융의 유동성을 억제하거나, 노동 시간에 더 큰 제약을 두는 방식 같은 것 말입니다. 물론 차등의결권 제도도 도입이 필요합니다. 기업 상속에 대한 제약도 줄여야 합니다. 이 연장선상에서 상속세 자체를 폐지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입니다. 노동자에 대한 인센티브가 필요하듯, 성공한 기업인에 대한 인센티브도 필요하거든요. 전부터 기회가 될 때마다 이야기했던 걸 다시 한 번 말하자면, 잘나가는 중소기업 사장 정도만 되어도 기업 정리하고 그걸로 안정적인 투자 하면 웬만해선 본인 일가친척은 평생 큰 문제없이 먹고살 수 있습니다. 뭔가 그 이상을 해서 노동자 많이 고용하는 기업까지 만드는 데는, 그리고 더 나아가 노동자들이 충분히 잘 살 수 있게 해주는 데는 좀 다른 동기가 필요하지요.


 물론 생산적 재투자를 강권하고, 그걸 무시하면 강력하게 세무 조사하고 횡령 배임 터는 좀 더 단순하고 바람직한 방법도 지도자라면 고려해야 합니다. 물론 무능하고 어리석은 한국 정치인들, 특히 이상한 데 집착하는 자칭 진보들에게는 기대하기 힘든 방식이겠습니다.

 

 실제 2008년 이후 재벌들이 번 돈 중 정말 많은 금액이 부동산 구매나 재벌 3세 등을 위한 상속을 위해 소비되었습니다. 정부는 이런 상황을 전혀 컨트롤하지 못했고, 야권은... 이럴 거면 차라리 그냥 사라지는 게 낫습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사태파악 및 문제인식조차 못하면서 권력만 가지니까요.

 

 이 정국에서 믿을 만한 정치세력은 현재 없습니다. 그러니 시민 사회부터 일부라도 인식을 바꾸고,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시작부터 신자유주의적이었고, 야권 정치세력과 공공연하게 짝짜꿍하는 기존 시민 사회는 더 이상 이 사회에 도움이 안 됩니다.

 

 창업, 금융, 재투자, 부동산, 시장경제 등은 보수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자칭 진보세력은 사회의 일선에서 물러나야 합니다. 그들이 이러한 문제에 대해 눈을 감는 건 그들이 사회주의라는 구시대적 인습에 물들어 너무 나태하기 때문입니다. 즉 이미 그들은 진보의 간판을 걸 자격을 잃은 지 오래입니다. 자유민주정체에서 진보하려면 저런 의제에서 밀리면 안 됩니다. 적어도 미국 민주당은 저런 의제에서 공화당에 밀리지 않습니다. 충분히 자기 목소리를 내고 경쟁해서 승리하곤 하지요.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우선 의제를 올바르게 설정하는 게 중요합니다. 질병이나 증후군을 치료하려면 바른 진단이 먼저 필요하듯, 사회문제 역시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 외에도 자영업자 문제, 사회안전망 문제, 파산 제도 문제, 사기에 대한 처벌 문제 등등을 더 다룰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이런 사회문제들을 모두 다루는 것은 어렵습니다. 본문에서 우선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기업 생태계의 문제와 그 해결방안에 대한 간단한 발제 정도입니다. 물론 이런 정도만 이야기하는 것도 쉽지는 않습니다. 이 사회는 거의 생산적인 논의를 하지 않습니다. 특히 민주당계를 광신적으로 지지하는 인터넷 커뮤니티들 분위기는 정말 심하지요.

 

 기업 소득이 사회로 더 재분배되려면 새로운 기업이 많이 생기고, 성공할 수 있는 기업 생태계를 갖춰야 합니다. 그런 환경은 성공적인 자유민주정체 국가가 되려면 기본적으로 조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법인세를 올리고, 순환출자를 금지시키면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혹세무민하는 말에 휘둘려서는 안 됩니다. 그런 건 오히려 현실을 악화시킵니다. 사태의 본질을 일단 바로 보고 시작해야 한다는 게 본문의 요지입니다. 보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분량 및 시간상 다음 기회로 미룹니다.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

경제 2014. 2. 25. 11:27 Posted by 해양장미

 한국은 분배에 있어 문제가 심각화되는 경향을 가진 나라다.


 사실 한국의 지니계수라거나 빈부격차를 보면, 한국은 큰 문제가 있는 나라에 속하지는 않는다. 물론 한국보다 좋은 나라도 있지만, 한국보다 못한 나라가 정말 많다.


 그런데 한국이 좀 독특한 문제를 가진 점을 요약하자면,


1) 좀 중간이 없다. 잘살거나 아니면 못 산다. 쉽게 말해 양극화.

2) 못 사는 사람들 중 정말 못 사는 사람들은 너무 심각하게 못 산다. 이 사람들은 사회에 거의 아무 목소리도 못 내고, 그나마 살만한 사람들에게 치인다.

3) 전반적으로 너무 고학력에 너무 노동시간도 길고 타인 의식을 많이 하는 사회라 평균만큼 하기도 너무 힘들다.

4) 서민들도 부자를 너무 쉽게 볼 수 있다. 다른 나라에 비해 생활구역이 뚜렷하게 분리되어있지 않다. 더구나 문화적으로 사람 간의 비교를 심하게 한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진보좌파들은 실질적인 분배문제에 있어 현실성 있는 대안을 내놓거나 통찰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고, 그렇기에 정치적인 문제 해결이 너무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번 글에서는 이에 대해 좀 이야기해볼까 한다.


 그리고 어린 깨시민들의 안타까운 피해의식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한다.


 일단 가장 먼저 이야기해야 할 것은 흔히 대다수가 겪게 되는 저임금노동에 관한 것이다. 성인이 되고 저임금노동을 처음 해 보면, 그 반응은 각자 다르지만 대체로는 그것이 힘든 데 비해 정말 돈은 안 된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나마 요즘은 최저임금이 많이 올라서 꽤 나아졌지만, 10년 전만 해도 1.5배쯤 심각했다.


 보통 한국 사람들은 고학력에 어린 시절 인생의 목표도 (실제 이루기 힘들 정도로) 높은 편이라서 이런 경험이 좀 충격적이기 쉽다. 대체로 이런 경험들에서 진보적인 의식이 싹트기 시작하는데, 문제는 이후 습득하게 되는 소위 ‘진보세력’이 주장하는 말들을 좀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기 쉽다는 데 있다. 그나마 진보세력이 하는 말들이 좀 말이 되는 소리들이면 그래도 괜찮은데, 알고 보면 대체로 뻘소리 그 자체라서 이게 사회문제로까지 커지게 되는 것이다.


 일례를 들기 위해 모 커뮤니티의 덧글 하나를 임의로 인용해 보겠다.[각주:1] 우연히 발견한 이 글을 인용한 이유는, 이것이 매우 흔한 진보좌파 식 담론 중 하나의 스탠다드가 될 수 있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또한 이 덧글은 해당 커뮤니티의 추천/반대 시스템에서 인용 시점 현재 추천 60개에 반대 0개를 받고 있기에, 소위 진보적인 사람들의 인지와 정서를 파악하는 데도 일정 이상 도움이 된다고 본다.


‘ 쌍팔년도식 경제관념을 교육받은 사람들이 자꾸 분배를 성장과 반대되는 개념쯤으로 착각을 하는게 문제인데, 분배는 성장에 반하는 개념이 아닙니다.


 분배는 더 성장하기 위한 밑거름이에요. 소를 키워 파는 사람도 더 질 좋은 사료, 예방접종 등 기본적인 의료 지원을 해야 더 높은 수익을 낼 수 있습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도 양질의 품종을 구하고 더 좋은 비료를 써야 더 높은 수익을 내는 법이구요. 공장을 운영하는 사람도 더 좋은 기술 개발에 투자를 하고 더 좋은 설비에 투자를 해야 수익을 올릴 수 있죠. 성장과 분배의 개념도 마찬가지에요. 노동자 개개인의 삶의 질이 올라가야 노동력도 더 향상되고 더 뛰어난 품질의 노동력 제공이 가능해 집니다. 분배는 성장의 결과라거나, 성장 이후에 '다 이루었다'하고서는 나눠먹는 개념이 아닙니다. 더 성장하기 위한 기본적인 투자죠.


 성장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자는 둥 뻘소리 하는 인간들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멍청이 이거나, 혹은 다 알면서 자기 배만 채우기 위해 거짓말하는 악당일 뿐입니다.


 공산주의가 망한 이유를 인간의 본능적인 '욕심'을 무시해서 그랬다고 쉽게들 이야기 합니다. 자본주의가 망한 이유도 똑같습니다. 인간의 본능적인 '욕심'이 저절로 컨트롤 될거라 믿는 착각과 무지 때문에 망한거에요. 지금의 자본주의는 초창기 개막장 천민자본주의랑은 엄청나게 다릅니다. 이름에 자본주의 들어가 있다고 해서 저 옛날 산업혁명 시절 영국에서 10대 미만 어린애들을 공장 기계 틈 기름웅덩이 속으로 밀어넣던 그 시절 막장 자본주의랑 같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시장논리에 모든걸 맡기면 다 알아서 될거다'라는 둥, '낙수효과'라는 희대의 뻘소리를 지껄이는 둥, 인간의 욕심과 시장논리에 그냥 모든걸 맡겨두면 다 알아서 될거라는 그런 착각은 곤란합니다.


 나라에서 나서서 적극 개입하며 분배에 힘써주지 않으면 더이상의 성장도 없습니다. 분배가 없으면, 분배를 위한 정부의 시장개입이 없으면, 결국에는 시장도 붕괴되고 말겁니다.


 지금 대한민국 경제를 살리는 길이요? 최저임금 확 높이고, 나태하고 태만한 대기업들 정신차리게 확 조져줘야 합니다.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고, 중소기업들이 대기업을 위협할 수 있게 보호해줘야 합니다. 어느 중소기업이건 좋은 아이템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새로운 강자로 일어설 수 있게 여건을 만들어줘야 하고, 대기업들도 정부 지원에 기대어 중소기업과 노동자들 피나 빨어먹으며 썩어가는게 아니라 언제건 밀려날 수 있다는 위기감에 죽자살자 뛰게 만들어야 합니다. 노동자들이 높은 임금과 여가생활, 자기계발의 여유를 가지게 되었을때 소비도 촉진되는 법이고, 더 질높은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게 되는 것이며, 그로 인해 기업들의 경쟁력도 올라가는 겁니다.


 자유시장경쟁체제요? 분배가 없으면 제일 먼저 '경쟁'이 없어집니다. 그 다음은 '시장'이 붕괴되고 '자유'도 무너집니다. 분배는 성장 이후에나 하는 옵션, 선택 같은게 아니라 성장을 위해서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기본 전제입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글쓴이에게는 좀 가혹하고 유감스러운 평일지 모르겠지만) 위와 같은 이야기는 너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정확히 말하면 그럴싸한 말과,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섞여 있긴 하다. 저런 글을 보면 도대체 누가 저런 이상한 소리를 하게 만들었을까, 얼마나 사태가 악화되었으면 애들이 저런 글에 모두 동의만 하게 된 걸까 싶다.


 한국 대기업이 나태하고 태만하다는 건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망상이다. 실제 수많은 한국 대기업들은 글로벌한 규모다 보니 외국 기업과의 경쟁에 살벌하게 노출된 상태다. 그런 만큼 현실을 보면 대기업들이 중소기업보다 훨씬 더 혁신적인 경우가 정말 많다. 그들이 정부의 보호 아래서 착취나 하면서 나태하게 있다는 오판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르겠다. 한국 대기업들이 각종 문제가 없는 건 아니고, 하청기업 착취가 없는 것도 결코 아니지만 적어도 나태하지는 않다.


 또한 주식회사는 원론적으로 투자자(주주)의 것이고, 투자자들은 기업의 실적이 매 분기 늘어나고 줄어드는 데 촉각을 곤두세운다. 실적이 줄어드는 걸 반기는 투자자는 없고, 기업은 투자자를 위해서라도 점점 더 많은 이윤을 남겨야 하는 게 현실이다. 이 상황을 바꿀 수 있는 방법? 사실 총수가 주주 엿 먹이는 게 유일한 방법인데, 진보좌파들은 총수는 싫어하고 주주 대우는 언제나 극진하니 될 리가 없다. 금융자본주의 사회에서, 좌파 지식인이라는 작자들이 금융에 대한 개념이 제로니 뭐가 되겠는가.


 실제 무식한 좌파들이 대기업에 괜한 압력 넣으면 그 피해는 엉뚱한 데로 튄다. 1차 하청업체에 튄 불꽃은 2차 하청업체로, 2차는 또 3차에게... 이런 식이 될 수밖에 없다. 또 위기를 느낀 대기업은 도전적인 신규투자를 꺼리게 될 수 있고, 유보금을 축적하는 경향도 생긴다. 정부는 힘은 세지만 전지전능하지 않고, 현실적으로 대기업을 제지하려는 수단들은 거의 다 헛발질이 되는 게 현실이다. 그 헛발질에 맞아서 실려 나가는 애먼 피해자들이 한둘이 아니고.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 이미 제법 하고 있다. 실제로 창업하려고 하는 청년들은 대체로 정부의 각종 지원 프로그램과 중소기업에 대한 혜택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한국 중소기업이 크기 힘든 건 정부의 지원이 없어서가 아니다. 하청업체 문제? 현실적으로 중소기업 차리는 사람한테 대기업 1차 하청은 나름대로의 꿈인 경우가 많다. 1차 들어가면 사실 회사 망할 걱정은 많이 없어진다. 중소기업의 대기업 위협? 사실 거의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제조업 기준에서 중소기업은 대체로 완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이 아니다. 규모 상 완제품의 Part를 생산하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타 업체에 생산품을 납품하는 입장이 되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무슨 중소기업 지하실에 외계인이라도 있어서 우주수준의 기술을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대기업과 경쟁할 만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중소기업? 체급이 애초에 너무 다르다. 초일류 엔지니어들이 뭐가 아쉬워서 중소기업에서 일할까.


 그럼 위의 말마따나 중소기업이 새로운 강자가 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본 블로그에서 항상 하는 말이지만 중소기업은 크다 보면 중견기업이 되고, 더 크면 대기업이 된다. 그런데 중소기업만 지원하고 중견기업부터는 견제하고 나 몰라라 하면? 중소기업은 영원히 중소기업으로 남기 쉽게 된다. 아니면 기업을 팔아 버리거나.


 이미 한국은 중소기업 지원은 나름 빵빵한데 중견기업부터는 대접이 엉망이라, 중소기업의 피터팬 컴플렉스가 꽤 심한 상황에 있다. 심지어 잘 나가는 중소기업들 중에는 해외지사 세우면서 한국에선 계속 중소기업으로 남아있거나, 한국 마음에 안 든다고 외국으로 날라버리는 회사도 있다. 이건 워낙 여러 번 해온 말이라 같은 말 자꾸 하려니 피곤한데, 사태가 이렇게까지 망가진 건 신자유주의자와 멍청한 사회주의자들의 쎄쎄쎄 짝짝꿍 놀이 때문이다. 요약하자면 정의감에 불타는 멍청이들이 모든 걸 망쳐 놨다. 그들의 눈에는 슈퍼 갑의 위치에 있는 몇몇 대기업 말고는 보이는 게 없는 것 같다.


 어설프게 국내 대기업 조여 봐야 국민들이 얻을 건 거의 없다. 그 대기업들에 국민연금 돈 잔뜩 들어가 있고,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일하고 있고 엄청난 수의 하청업체들이 연결되어있다. 또 한국 대기업들의 국제적인 라이벌 기업들은 각 해당 나라들 지원 받으면서 뛴다. 괜히 대기업 규제 들어갔다가 외국계 대기업만 신나라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또 대기업에 압박을 가하자는 말은, 대기업이 되려는 중견기업이나 미래가 유망한 중소기업에도 압박이다. 중소기업 많아봐야 일자리 안 나온다. 또한 대기업의 수가 적다는 건 그들이 그만큼 내수시장 및 갑을관계에서 유리한 입지에 있다는 뜻도 된다. 하청업체 입장에서는 납품할 기업을 충분히 고르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좌파들의 근본적인 문제는 분배에 대해 기본개념을 못 잡는다는 데 있다. 경제학적으로 시장실패 = 불황 = 디플레이션 or 저성장 = 분배 안 됨 이다. 복지 시스템? 그런 건 부수적인 것이다. 시장이 아닌 정부가 분배를 주도해야한다는 관점은 공산주의인데, 사실 현실에서 성공한 케이스가 없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소득재분배는 본질적으로 시장이 하는 것이다. 시장이 성공적으로 잘 돌아갈수록 분배가 잘 된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진보좌파들은 노동자들이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더 적은 시간을 일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청년들의 살벌한 취업난을 해결할 수 있을지 알지 못한다.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할 수 없기에 사회를 개선하지 못하고, 오히려 어리석게도 신자유주의와 때때로 결탁하면서 사태를 크게 악화시켰다. 경제 현실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좌파들이 퍼뜨리는 사회주의적 관념을 잣대로 세상을 재단하면서 비롯된 일이다.


 한국의 노동자들이 정말 좋지 못한 상황으로 몰리게 된 건 일차적으로는 IMF 이후이다. 그 이전까지는 경제가 잘 성장하면서 분배 또한 점점 잘 되고 있었다. 성장과 분배는 별개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IMF 이후 상황이 크게 변해버렸다.


 수많은 기업이 도산하면서 일자리가 사라졌고, 금융에 대한 주권을 잃어버리면서 한국 기업들의 지분 중 많은 부분을 외국인들이 차지했다. 금융개방이 강행되었고, 주주 중심의 신자유주의가 광풍처럼 몰아치게 되었다.


 주주를 중시하는 신자유주의가 곤혹스러운 건, 위에도 말했지만 투자자들이 근시안적이 되기 쉽다는 데 있다. 그렇지만 기업을 올바르게 경영하다보면 사실 어려울 때도 있고, 위기를 극복하고 큰 투자를 하면서 점점 더 나아가기 마련이다. 그런데 주주들은 그런 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당장의 실적과 당장의 주가만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주주의 힘이 강해질수록 기업의 간부들도 주주를 무시할 수 없게 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노동자까지 챙기기는 힘들게 된다. 지난 대선 때 시끄러웠던 경제민주화 이야기도 신자유주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건 지난 포스트들에서 몇 번 다뤘었다.


 계속 새로운 대기업이 생겨나서 인력을 수용해야만 노동자가 부족해져서 임금도 올라가고 대우도 좋아지는데, 한국은 IMF 이후 있던 대기업도 도산하고, 새로 생겨나는 큰 기업은 거의 없다 보니 노동자 대우가 좋아지기가 힘든 상황이 되었다. 더구나 일부 귀족노조가 온갖 땡깡을 부리다보니 상황은 더더욱 심각하게 꼬였다. 부르주아-프롤레탈리아로 세상을 이분화시켜 재단하는 멍청한 사회주의자들이 이 문제를 더 심각하게 꼬아놓은 것은 물론이다.


 문화적 결함으로 인해 일부의 직종에 노동자가 계속 몰리게 된 것 또한 큰 문제다. 더 이상 젊은이들이 힘든 일을 하기 싫어한다는 지적에 대해 발끈하는 청년들이 많지만, 막상 현장에 가 보면 사태는 생각보다 심각할 때가 많다. 한국인 남성 청년을 환영하는 일자리는 찾아보면 꽤 있다. 돈 더 주고 한국인을 쓰려고 해도 사람을 못 구하는 곳이 의외로 정말 많다. 외국인 노동자 일 시켜보니까 일을 잘 못 하다 보니 나온 현상이기는 하다. 찾으면 돈을 꽤 주는 곳도 찾을 수 있을 거다. 물론 학습된 무기력에 시달리는 수많은 청년들은 이런 일자리를 찾아다닐 정신적 여유가 모자란 것도 현실이고, 문화적인 각종 차별의식도 문제가 되곤 한다. 이런 건 단순히 각자의 몫은 아니다.

  

 그렇더라도 소위 ‘좋은 일자리’가 부족한 것은 맞고, 여자가 할 만한 일은 더더욱 부족하기도 하다. 그 주된 이유는 한국에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좋은 기업이 부족하기 때문이고 이런 상황에선 기업이 노동자에 비해 절대적인 우위를 가지게 된다. 좋은 기업에 들어가고 싶은 사람은 많은데, 좋은 기업이 뽑는 사람은 얼마 안 되기 때문이다.


 이런 한국의 양극화가 극단적으로 심해진 시점은 노무현 정부 때이다.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드라이브 및 부동산 폭등이 이 사회에 정말 큰 상처를 남겼다. 위에 이야기했듯 IMF 이전만 해도 한국의 성장과 분배는 어느 정도 같이 일어났지만, 노무현 때부터는 성장은 되는데 분배는 오히려 기존만 못해지는 상황이 벌어졌다. IMF가 일차적인 문제였지만, 일단 고비를 넘긴 후에 집권한 노무현은 IMF가 벌여놓은 참상을 오히려 더 키웠다. 그의 적극적인 금융개방정책으로 인해 산업으로 벌어들인 돈이 금융으로 빠져나가는 경우가 많아졌고, 부동산을 제어하지 못하면서 다른 곳에 투자되었어야 할 돈이 모두 부동산으로 향했다. 이때의 폭등이 심했던 만큼  이명박 집권기의 부동산 침체는 심각했고, 부동산에 흘러들어간 돈은 고인 물처럼 밖으로 나가기 어렵게 되었다. 더구나 이 시기엔 부동산 폭락을 외치는 얼간이들이 더 극심한 거래절벽을 유도하면서 사회를 더 힘들게 만들었다. 사실 얼간이라거나 멍청이라거나, 이런 건 정말 순화된 표현이다. 그들이 이 사회에 끼친 해악과 그 참상을 생각하면 더 심한 말을 들어도 싸다.


 참여정부 당시 열린우리당에서 일하던 어떤 사람의 증언에 의하면, 당시 열린우리당의 분위기는 ‘양극화’는 입에도 담지 못하게 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그런 데는 관심도 없었을 뿐더러, 소위 민생은 뒷전이었다는 이야기다. 그 때 열린우리당에서 양극화 문제 해결해야 한다고 그러면 ‘민주노동당으로 가라’ 같은 비아냥까지 들었다고 하는데, 그들의 비아냥과 뺄샘정치와 철면피는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가 보다. 그랬던 사람들이 지금은 무슨 서민의 편인 양, 노무현 때가 그래도 사람 살만한 세상이었던 양 구는 걸 보면 종종 어이가 없다. 뻔뻔한 거짓말을 앞세워 커뮤니티들을 장악하고 있는 황위병들의 파시즘과 무지가 세상에 끼친 해악이 너무 크다. 대학 등록금 폭등, 출산률의 지속적인 저하, 자살률의 증가, 장기적인 경기침체 등은 모두 노무현 정권에서 일어났다. 노빠 깨시민 파시스트들에게 속고 사는 사람들은 얼른 진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특히 노무현 때 너무 어려서 아무 것도 모르던 애들 작정하고 속이는 사람들이 진짜 악질이다.


 만일 노무현 정권이 분양원가를 공개하고, 제 때 금리를 조절하고 LTV규제 등을 조속히 도입하여 부동산 폭등을 견제하고, 무분별한 금융 개방을 잘 규제했다면 모든 것이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노무현은 서민을 위하지 않았고, 충분한 통치철학도 없었다. 당시 한국이 벌어들인 돈을 국제 금융으로 잃지 않고, 그게 부동산이 아닌 새로운 산업에 투자되었다면 정말 좋았을 것이다. 부동산 폭등이 어느 정도 제어되었다면 계속 완만하게 가격이 상승하였으리라 본다. 그랬다면 근래의 극단적인 침체기도 겪지 않았을 것이고 전세 문제도 지금 같지는 않았을 거라 추측한다. 비정규직 문제 등에서도 노무현 정부는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깨시민들이 말도 안 되는 혹세무민으로 노무현 정부를 변호하면서 잘못된 인식을 퍼뜨리니 문제를 해결하기 더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당시의 부동산 급등은 결국 정부의 온갖 헛발질 끝에 (종부세같은) 시장 및 과세 정의에 어긋나는 극단적 조처로 마무리되었는데, 강력한 규제와 맞물려 이제 너무 올랐다는 심리가 더해지면서 금융의 패턴 중 하나인 ‘Bust’ (소위 버블붕괴)가 발생하게 되고 이는 한국 부동산 시장의 특성인 전세제도 및 변동금리제도와 맞물려 거래절벽+전세가격 폭등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혹세무민을 일삼는 부동산 종말론자들은 한국 부동산의 특징을 고려하지 않고, 극히 일부 국가의 예만 의도적으로 들면서 한국 부동산은 폭락할 것이라고 오랜 시간 종말론을 퍼뜨려왔으나 그것은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았고, 문제를 계속 키우는 결과만을 낳았다.


 그나마 근래엔 반등의 여지가 있다. 불만투성이에 비관론에 빠진 깨시민들에게는 보이지 않겠지만, 현 정부는 시장에 대해 약간의 신뢰는 회복하였다. 부동산 규제는 완화되었고, 거래절벽은 해결 조짐이 있다. 이는 역시나 금융의 일반적인 패턴과도 일치한다. 부동산 종말론자들의 말은 겨울이 올 때마다 봄은 다시는 오지 않고, 이대로 빙하기가 올 거라고 소리치는 것과 흡사하다.


 박근혜정부는 근래 창업을 더 강력하게 지원하고 있고, 법인을 세우기 쉽도록 제도를 고쳤다. 또한 코스닥보다 작은 규모인 코넥스 증권시장을 도입해서 상장을 보다 쉽게 만들었다. 코넥스 시장은 아직까지는 대중적이지도 않고 충분히 성장하고 있지도 않지만 제도상으로는 중요한 가치가 있다. 상장이 쉽다는 것은 초기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인 요소다. 기업을 세울 때는 투자를 받아야 하는데, 투자자들은 가급적 빠른 시간 안에 수익을 실현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상장이 어렵다면 그만큼 투자를 받기도 어렵고, 투자가 없으면 기업을 만들기 어렵다. 한국은 세계 제 1의 파생금융시장이지만, 투기적 금융이 심하게 발달한 반면 창업과 신산업을 위한 ‘착한’금융은 거의 발달하지 못한 국가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가 이 포지션에 서야 할 사람들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근래엔 중견기업에 대한 지원 논의도 이루어지기 시작했고, 법인세 차등 구간에 대한 논의도 이루어지고 있다. 다만 이런 중요한 이야기들은 무능력하고 어리석고 폭력적인 정치권과 어리석은 자칭 진보좌파 지지자들의 무관심 속에서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다.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기업이 많아져야 노동자들이 대접을 받을 수 있다. 부가가치가 높아야만 임금도 많이 줄 수 있고, 좋은 기업이 많아져야 노동자들이 기업을 좀 더 고르고 쉽게 취업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것을 위한 정책적 지원은 지극히 부족하고, 특히 어리석은 진보세력들이 현실을 모르고 외면하면서 사태를 더 나쁘게 만들고 있다.


 일례로 GM대우나 쌍용차 정리해고 노동자들은 왜 재기가 아닌 투쟁에 매달린 것일까? 그들의 입장에선 대기업 정규직을 벗어나면 다시는 그런 수준의 생활을 누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 수많은 하청업체, 비정규직 직원들은 정리해고 당해도 그렇게 싸우지 않는다. 언론의 관심도 정규직 출신 투쟁자에게 집중된다. 물론 하청업체나 비정규직 출신 입장에서는 투쟁하는 것보단 재취업이 훨씬 현실적이기도 하다. 일은 비슷하게 하는데, 임금은 대기업 정규직이 훨씬 많이 받는 게 항상 지적되는 한국의 현실이다. 특정 대기업 강성노조는 끊임없이 싸우면서 엄청난 임금을 받고 있고, 그에 한국 기업들은 성공적인 기업일수록 점점 더 정규직 뽑기를 주저하고 있다.


 현재 한국은 성공적이고 젊은 창업인이 심히 부족한 사회가 되었고, 청년들의 시장과 노동, 금융, 부동산 등에 대한 인식도 충분히 현실적으로 합당한 수위에 올라있지 못하다. 특유의 집단주의나 이너서클 문제, 도전 없이 위험을 회피하려는 성향 등도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남들이 비교적 안전주의적인 길을 걸을 때 누군가는 도전정신을 가지고 기업을 세운다. 용기를 가진 도전자가 없다면 자본주의는 제대로 돌아갈 수 없지만, 많은 창업자들은 한 번 이상 넘어지고 힘들어서 도와 달라 그런다. 사업 성공에 가장 필요한 것은 그 무엇보다도 ‘운’이다. 그런 그들이 다시 일어나서 성공하면 많은 사람들을 고용할 수 있고, 그런 성공한 사람들이 많아지면 더욱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기에 노동자 대우도 좋아지게 된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역사 속에서 이런 진리를 깨닫고 창업자를 위한 안전 장치라 할 수 있는 주식회사 시스템과 파산 시스템을 발명하였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자칭 진보좌파들은 ‘이미 한국은 기업하기 너무 좋은 나라’라는 잘못된 망상을 가지고, 창업자들을 위한 금융 시스템 등에도 냉소를 보이며 누군가가 더 위로 올라서는 것을 가로 막는다. 조금만 돈을 벌어도 부르주아 취급을 하고, 운동권 방식으로 진실을 외면해 버린다. 금융계의 큰 손은 그런 그들의 어리석음과 질투심을 곧잘 이용하고, 엄청난 부를 축적한다.


 만약 한국이 정말 기업하기 좋은 나라였다면 글로벌 대기업들이 한국에 수많은 지사를 세우고,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한국 출신 기업들까지 해외에 지사를 세우고, 더 나아가 아예 법인을 해외로 옮겨버리고 있다.


 애초에 사회주의자들은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기업 활동 자체를 나쁘게 보기 때문에, 고용문제를 악화시키고 그로 인해 노동자의 처지를 더욱 최악으로 치닫게 한다. 물론 기업이 돈을 못 벌면 직원 - 엄밀하게 말해 대표이사도 기업 노동자이다. - 들도 돈을 못 벌고, 세금도 안 걷히니까 정부가 지출할 수 있는 재원도 모자라게 된다. 그리고 한 줌도 안 되는 이 사회의 사회주의자들은 무식하고 철학이 없는 수많은 자칭타칭 ‘깨시민’들의 사고방식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있기도 하다.


 진짜 사회를 개선하고 싶은 사람은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이해하고, 어떻게 해결해야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존에 알고 있던 것이 정말 옳은지를 끊임없이 검증하고 더 나은 방식을 찾아야 한다. 소위 진보좌파들은 자신이 일단 쌓은 지식과 사고방식을 신념과 정의라는 이름으로 합리화하고, 극단적인 확증편향을 보이기에 실제 사회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잘못된 신념과 가치관으로 나쁜 결과를 만드는 것은 언제나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자칭 진보좌파들의 집단주의와 이너서클 성향은 젊은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더해 ‘세상은 무서운 곳.’, ‘안 되는 곳’ 같은 온갖 협박과 공포감 등이 이 사회를 도전과 혁신이 부족한 곳으로 바꾸어 버렸다. 한국의 진정한 불안요소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바로 봐야 한다.


 물론 이 이야기는 복지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복지는 일종의 사회 안전망 또는 공공재의 개념으로, 어디까지나 경제구조에서 부수적인 것에 해당한다. 복지 재정은 공짜가 아니며, 국가의 복지는 국가가 경제적 성공을 거둘 때에야 그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 물론 튼실한 복지 시스템은 사회를 보다 더 혁신적이고 도전적인 방향으로 이끄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그보다 한국에 우선적으로 필요한 건 각종 반기업적인 규제들과 정서, 그리고 문화적인 결함 등을 해결하는 것이다.


 특히 자칭타칭 진보좌파들은 평소에는 복지국가를 만들자고 주장하지만, 막상 그들에게 약간의 손해라도 생길 수 있는 증세안이 나올 경우 후안무치할 정도로 거부감을 보이면서 ‘월급쟁이 유리지갑만 턴다!’는 식으로 여론몰이를 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작년에 민주당은 세무조사를 강화할 수 있는 법안에 대해 강경하게 반대하여 결국 통과되지 못하게 했다. 이러한 뻔뻔함과 도둑X심보로는 이 사회의 분배를 결코 개선할 수 없다.


 또한 현실적으로 한국의 재정 긴축 문제라거나 정부 부채 문제 등을 이야기하게 되면 이야기는 훨씬 복잡해진다. 한국의 수많은 정치사회적 담론들은 문제를 악화시키는 방향으로 얽혀 있다. 이 나라에서는 자칭타칭 진보좌파들이 실제로는 더 수구/보수주의적 자세를 취하고 있기에 문제가 심각해지는 부분이 많다. 상황을 개선하고 싶은 사람은 먼저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한국의 자칭타칭 진보좌파들은 현실을 이해하는 데 있어 너무나 소양이 부족하다. 정말로 소통이 필요한 이들은 그들이다.



  1. 출처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bestofbest&no=149251&s_no=149251&page=1 [본문으로]

 개인적으로 진보좌파를 구분하는 기준은 지난 포스트, ‘한국형 6단계 이념 분류’ 에서 밝혔다. 본문에서는 저 포스트에서 (4), (5), (6)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통합하여 진보좌파라 이야기할 것이다. 그래프를 첨부한다.





 한국의 진보좌파가 사회에 끼치는 가장 큰 문제라면 사실 경제적인 면에서 현실성이 없다는 것이다. 다분히 교조적인 (5), (6)은 그렇다 치고 문화적으로 자유주의적인 (4)가 경제적으로 비현실적 선택을 하는 것은, 잘못된 이해를 하고 있는 것은 왜 그럴까? 본문에서는 이것에 대한 사견을 좀 이야기하려 한다.


 본래 한국에서 생겨나지 않은 말 중 본래의 어감과 꽤 다르게 번역된 말들이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대통령’인데, 이 어감은 ‘president’와 분명히 좀 다르다. 그런데 이건 자본주의도 마찬가지다. 자본주의의 영문은 ‘capitalism'이다. 한국에서 ’캐피탈‘이라는 말이 쓰이는 용례 덕도 있겠지만, 어감이 확 달라지지 않는가?


 진보좌파가 경제에 대해 잘못된 이해를 하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관념적 윤리성이다. 많은 그들은 이 시장이 윤리적으로 잘못되어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윤리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면에서 그들은 사회성을 앞세우려 들고, 복잡한 각종 금융 기술들을 사기적인 것이라 생각하여 ‘악’으로 규정한다. 물론 실제로 수많은 파생 금융 기술들이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선악을 쉽게 나누고 구분하려는 건 진보좌파가 가장 빈번하게 가지곤 하는 미성숙한 모습 중 하나다.


 경제 분야에서 가장 큰 문제는 너무 많은 진보좌파인들이 ‘돈’자체에 대해 제대로 이해를 못한다는 데 있다. 너무 많은 진보주의자들은 돈을 실물이라 착각한다. 실물의 변형된 형태를 돈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태도는 사실 자본주의에는 맞지 않는다. 1) 이자가 있고, 2) 발행기관이 있는 한 돈은 실물일 수가 없다. 그리고 그들이 딱히 크게 어리석어서 이런 착각을 하는 건 아니다. 정말 오랜 세월동안 인류는 돈이 실물이라고 착각을 해 왔다. 돈이 실물이 아님을 깨달은 사람들이 먼저 부자가 되었고, 그런 사람들이 사는 국가가 제국이 되었다. 이것에 대해 조금 이야기를 해 보자.


 사람들은 오랜 시간동안 금화와 은화를 화폐로 썼다. 금과 은은 그 자체로 귀금속이기 때문에, 순도만 보장된다면 그 자체로 실물로 가치가 있었던 것이다. 근대 이전 화폐 발행기관들은 충분한 신용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그렇기에 화폐 자체의 가치를 실물로 보장해주지 않는다면 아무래도 가치가 있기 어려웠다. 사실 너무 많은 진보좌파의 인식은 안타깝게도 이 시대에 머물러 있다.


 대항해시대가 시작될 무렵, 에스파냐(스페인)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앞서갔다. 그들은 남아메리카의 은광에서 엄청난 은을 발견했는데, 당연하게도 그들은 부자가 되었다고 좋아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았다. 오히려 에스파냐는 얼마 안 되어 브리튼(영국)과 네덜란드에 밀리고 만다. 왜 그들의 막대한 부는 실효성이 없었던 걸까?


 MMORPG계열 게임을 해보신 분이라면 이 문제를 좀 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게임 속 화폐는 유저가 많아지면 금방 그 가치가 떨어진다. 많은 MMORPG게임에서는 따로 화폐발행기관이 없고, MOP을 잡으면 돈이 생기게 된다. 그런데 MOP은 계속 무한히 리필되기 때문에 유저들은 약간의 노동으로 무한한 돈을 벌 수 있다. 이것은 엄청난 은광을 발견한 에스파냐와 거의 동일한 상태다. 너무 많은 돈이 시중에 풀리면, 돈은 그 가치가 떨어진다. 시중에 돈이 2배가 되면 예전에는 은화 1개로도 살 수 있던 고깃덩어리를 은화 2개는 줘야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돈은 교환의 매개수단일 뿐 실물이 아니다. 관리되지 않는 돈은 풍년에 농산물 가격 폭락하듯 언제든 그 가치가 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후에도 인류가 돈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일부 천재들이 돈의 본질을 빨리 직감하고 막대한 돈을 벌긴 했지만, 그것은 소수에 국한된 경우였고 체계화되어 있지도 않았다. 인류가 돈을 바르게 이해하고 통제하게 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1971년, 서방 세계는 드디어 화폐를 실물과 완전히 분리시켰다. 그 이전에 달러는 금화의 변형된 형태였다. 35달러는 언제든 금 1온스로 바꿀 수 있었다. 이 제도를 금본위제라 한다. 그리고 금본위제 폐지 이후, 인류의 경제는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되었다.


 수많은 진보좌파들과 (한국에서는 아니지만) 보수주의자들은 금본위제의 폐지를 탐탁찮아한다. 그러나 금본위제는 본질적인 모순을 가지고 있었다. 화폐에는 이자가 붙는데, 금은 저절로 증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자가 존재하는 한 금의 가치는 저절로 올라가게 된다. 장기적으로 이 모순을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즉 이자가 있는 자본주의에서는 금을 화폐로 쓸 수 없다. 자본주의가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가는 순간이었다.


 한편으로 인류가 금을 돈으로 썼던 것은 발행기관의 신용문제 때문이었다. 금이 어떠한 발행처보다도 믿을 만했기 때문에 금을 돈으로 썼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젠 더 이상 금을 돈으로 쓸 수 없게 되었다. 돈은 본질적으로 신용이다. 이 크레딧을 보증하는 게 과거엔 금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금은 저절로 증식하지 않기 때문에, 이자가 존재하는 돈은 금이라는 기원을 벗어나 더 진보된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이 시기부터 돈이 사람보다 더 빠르게 진보했다. 자칭 진보주의자들에 비해 경제학과 금융의 진보가 훨씬 빨랐다는 뜻이다. 너무 많은 진보좌파가 본질적으로 현대의 돈이 크레딧이며, 폭발적으로 증식하는 속성이 있다는 걸 잘 이해하지 못한다. 때때로 일부 이해하더라도 이 상황은 윤리적인 문제가 있으며, 금본위제로 돌아가거나 획기적인 개선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정말 많은 경우 일종의 음모론을 믿곤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금본위제 폐지 이후 공산주의에 대해 승리를 거뒀다. 또한 1971년 이후 지구는 상당히 부유해졌다. 그들은 금이 돈을 계속 보조할 수 없다는 것은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이 또 이해하지 못하는 것(어쩌면 인정하지 않는 것)은 시장의 분배기능이다. 본질적으로 자본주의 경제에서 분배를 담당하는 것은 시장이다. 잘 돌아가는 시장은 은행의 예대차와 연계되어 엄청나게 자본을 증식시키고, 수요를 늘린다. 늘어나는 수요 전망은 경쟁적으로 공급을 늘리기 때문에 분배도 잘 일어난다. 그런데 너무 많은 진보좌파들은 시장 자체를 과소평가하고 무시하는 경향이 짙다. 그러나 실제 공산주의 국가를 제외하면 시장은 언제나 분배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정부의 직접적인 분배는 훨씬 그 효율이 떨어지고 부작용도 큰 방식이다.


 냉정하게 이야기해 진보좌파들이 경제면에서 하는 이야기 중 정말 많은 것들이 1800년대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들이다. 또한 그들은 너무 많은 경우 이성적인 이야기보다는 감정적인 증오를 퍼붓는다. 근래 그들이 취하는 태도 중 가장 나쁜 예를 들자면 부동산과 대기업에 대한 태도를 들 수 있다.


 민주당을 위시한 대다수 진보좌파들의 부동산에 대한 접근은 어리석은 광신 그 자체나 다름없다. 그들이 집값폭락을 외치는 근본적인 원인은 증오심과 질투, 그리고 그런 감정과 결합되어 ‘집값이 이렇게 높은 건 옳지 않다.’라는 판단에 있다. 그러나 집값은 시장에서 형성된 것이지, 어떤 특정인이 결정한 게 아니다. 또한 집값이 폭락할 경우 어떤 현상이 생길지, 부동산 거래가 잘 되지 않을 때 어떤 결과가 발생하는지에 대해 그들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거나 망상을 한다. 부동산 가격이 반토막 난다는 예언과 떨어져야 한다는 당위, 그리고 그에 어울리는 민주당의 행동들은 결국 전세대란을 불러왔다.


 대기업에 대한 태도 또한 그렇다. 그들은 대기업을 마치 재벌의 소유인 양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그래서 재벌에서 기업을 분리시키고, 좀 더 사회가 기업에서 많은 것을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하곤 한다. 그런데 기업에 대해 워낙 잘 모르다보니 말도 안 되는 소리가 너무 많이 나오는 게 문제다.


 예를 들어 대기업이 현금을 쌓아놓았다는 말에 진보좌파들은 분개하며, 그것들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실제로 그 쌓아놓은 현금은 대체로 ‘유보금’이다. 이 유보금은 본질적으로 대기업 소유의 돈이 아니고, 대기업의 소유자인 주주의 돈이다. 그러니까 기업은 함부로 유보금을 건드릴 수 없다. 기업이 순이익을 현금배당하지 않고 이익금을 쌓아두면 그 유보금은 주가에 반영된다. 기업 총수라 할지라도 이 유보금을 함부로 건드리면 배임ㆍ횡령죄가 된다.


 다만 유보금이 그냥 기업에 쌓여있는 건 사회적으로 좋은 건 아니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정부는 투자를 유도한다. 기업이 투자를 한다는 것은 대체로 사업을 확장하는 것이다. 그러면 새로운 일자리도 생기고, 시장에서 돈이 더 빠르게 돌아 호황이 오게 된다. 그러나 진보좌파들은 투자를 위해 정부가 기업에 각종 혜택을 제공하는 것을 매우 아니꼬와하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좌파 이념은 다 내던지고 ‘그냥 시장에 맡기라!’고 19세기 자유주의자들이나 할 법한 말을 하기도 한다. 나는 이런 웃기는 광경을 너무 많이 봤다. 그런데 그러면서 또 법인세는 늘리라고 한다. 아무 것도 모르고 매사에 감정적이니까 그런 말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그런 판단들과 사회적 압력은 불황을 만들어낸다. 불황은 그 무엇보다 나쁘다. 특히 가진 게 없는 사람일수록 불황을 견디기 더 어렵다. 진짜 부자들은 오히려 불황을 반기기도 한다. 호황은 시민들을 더 평등하게 만들지만, 불황은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한편으로 진보좌파들은 국가와 사회를 실제보다 인격체에 가까운 것으로, 또한 보다 전지전능한 것으로 여기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현상을 반영하는 직관은 아니다. 정부는 아무리 잘 하려고 노력을 해도 허술한 면이 있을 수밖에 없으며, 시장은 쉽게 제어할만한 것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정부는 시장을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 오직 규제나 진흥을 시도할 수 있을 뿐이다.


 모든 국가가 시장이 발달하기 전에는 계획경제 정책들이 잘 통한다. 그러나 충분히 시장이 커진 이후엔 그렇지 않다. 계획경제를 추종한다는 면에서는 모든 집단주의자가 좌우에 상관없이 동일하다. 보수주의자들은 제 2의 박정희를 기대하고, 사회주의자들은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혁명적 영웅을 꿈꾼다. 박정희교와 노무현교가 동시에 존재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에서 한 정치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이다.


 때때로 진보좌파들은 ‘진짜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라고 외친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경제를 모르듯, 민주주의도 모른다는 데 있다. 민주주의란 통치제도일 뿐이고 이 제도는 현실 속에서는 자유주의와 결합되어, 각각의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경쟁하고 화합하는 가운데 시장과 연계되어 돌아가는 사회 구조가 된다. 세금을 좀 더 걷던 덜 걷던, 세계의 모든 민주주의 국가는 근본적으로 이렇다. 시민들은 결코 경제적으로 실패한 정권이나 정당에 투표를 하지 않는다.


 깨시민들은 서민들이 왜 새누리당을 지지하느냐고 분개하지만,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새누리당이 민주당보다 훨씬 경제적으로 현실적이고, 지난 세월을 되돌아봐도 뭐 하나라도 서민들에게 더 해줬다. 민주당은 서민들에게 잘 한 게 거의 없다. 있더라도 그것은 거의 다 김대중 정권이 한 것이지, 노무현 정권은 그야말로 최악이었고 각 지역의 지자체장이나 지역구 국회의원들을 봐도 새누리당 쪽이 더 해놓은 게 많고 문제도 잘 해결하는 경향이 짙다.


 진보좌파들의 경제적 이론들은 너무나 낙후되어있다. 그들이 하는 말들은 케인즈주의와 사회주의를 적당히 섞어놓은 것들이 많은데, 실제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현재의 네오케인즈주의에 대한 이해는 너무나도 부족하고, 좌파 경제학자들은 주류 학계에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나마 있는 사람들조차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맞는 게 없고, 네오케인지언에 해당하는 주류 경제학자들과 토론을 하면 상대가 되지를 않는다. 한국의 진보좌파들은 좀 더 현실적인 경제적 시선을 가질 필요가 있다. 현실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제시하는 대안들은 대체로 별 가치가 없는 것이다.


복지 담론의 불편한 진실

경제 2013. 5. 30. 17:42 Posted by 해양장미

 근래 한국에서 사회주의자들이 대단한 일을 해낸 것 중 하나는, 복지를 곧 분배인 것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는 데 있다. 많은 사람들이 ‘분배를 늘려야 한다.’라는 정치사회적 의미를 사회주의적이고 복지를 강화해야 하는 것처럼 이해하곤 한다. 그러나 사실 분배와 복지는 정말 다른 것이다.


 분배란 쉽게 이야기해 경제적 성장의 과실을 나누는 것 전체를 의미한다. 당연하게도 이 분배가 잘 될수록 사회는 보다 평등해지고, 가난하고 불만을 가지는 이들이 적어지게 된다. 그런데 복지, 특히 정치사회 쪽에서 말하는 공공복지는 정부가 개입하는 형태의, 분배의 한 방식을 의미할 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원칙적인 분배는 복지보다는 통화의 회전에 달려있다. 즉 노동자가 임금을 제 때 많이 받고, 보통 사람들이 돈에 대해 너무 불안감을 가지지 않고 쓸 만큼 쓰고, 소비에 의해 영세상인들도 돈을 충분히 벌 수 있다면 그게 분배가 잘 되고 있는 거다. 시장이 충분히 잘 작동한다면, 복지는 다분히 보조적 수단으로 충분하다. 문제는 충분히 잘 작동하는 시장은 정말 드물다는 데 있다.


 완벽한 시장이 일종의 유토피아라는 건 모두가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시장의 불완전함을 어떻게 극복할지에 대해서는 각자 생각이 다르다. 소위 메인스트림의 사고방식은 시장을 좀 더 잘 작동시키는 데 있다. 금리와 통화량을 조절하여 물가를 조율하고, 시장이 무난한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


 한국을 포함한 세계의 선진국들은 이러한 면에서 잘 작동하는 시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충분하냐고 묻는다면 많은 경우 그렇지는 않다. 호황은 모두를 평균적으로 부유하게 만들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불평등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신용이 무너지거나 붐이 꺼질 때 발생하는 불황을 막을 방법 또한 완벽하지는 않다. 이는 마치 병에 걸렸을 때, 의료적 조치를 받는다 해도 전혀 아프지 않을 수는 없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사회주의자들의 말대로 복지를 늘려야 하는 것일까? 근래 보편적 복지 담론이 불이 붙었던 것처럼, 증세를 해서 그런 식으로 하면 우리 사회의 분배는 더 나아질까? 그리고 근본적으로 우리 사회가 분배가 잘 안 되는 이유는 뭘까?


 우선적으로 꼭 이야기해야 할 것들은 이런 여러 가지 이야기에서 사회주의자들이 말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거다. 고의적인 누락이건, 몰라서 말하지 않는 것이건 근래 벌어지고 있는 사회주의적 담론의 확산은 사기성이 있다는 게 근래의 개인적인 판단이다. 


 일단 꼭 알아야 할 것은 모든 복지는 공짜가 아니라는 것과 우리 사회는 이미 일부 측면에선 강도 높은 복지를 실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 사회의 ‘아주 저렴하면서도 잘 관리되고 있는’ 대중교통은 엄청난 적자를 감수하고 시행 중이라는 점에서 분명한 복지이지만, 지속 가능성이 의심되는 복지다. 모두들 현재의 운임 체계에서 적자가 누적된다는 걸 알고 있다. 다만 생각하지 않을 뿐이다.


 대중교통 요금이 오른다 하면 자칭 서민들은 모두들 죽는다는 소리를 낸다. 그러나 그들은 미래의 일에 대해 눈을 감고 있다. 어떻게든 해결되겠지? 라는 심정으로 우리의 후손들에게 빚을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국민건강보험도, 국민연금도 마찬가지다. 복지 시스템이 잘 작동되기 어려운 이유는 정말 많다. 가장 큰 이유는 장기적으로 재원을 확보하는 게 어렵다는 것이다.


 대중교통 요금을 올린다거나 건강보험료를 더 걷겠다거나, 연금 지급액을 낮추겠다는 등의 조처를 반가워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지속 가능한 복지를 위해서는 대략 저런 조치들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4~5년짜리 정권들이 저런 일들을 벌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박원순처럼 초기 협정을 무시하고 대중교통요금을 올리는 걸 힘으로 눌러버리는 시장이 대중에게 인기를 얻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과연 우리 사회가 지금 하고 있는 복지 시스템을 장기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나는 대단히 의문스럽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코레일만 봐도 그렇게 인력감축을 하고 부실한 면을 많이 만들고 그래도 계속 적자가 나고 있다. 그나마 근래는 적자액이 줄어 올해가 흑자원년이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상황이다. 박원순이 부당하게 탄압하였다고 보고 있는 서울지하철 9호선만 해도 지난해 540억의 적자가 났다고 시에 청구한 상황이다. 9호선과 맥쿼리의 진실 또한 자칭 진보언론과 박원순의 포퓰리즘에 의해 크게 왜곡되고 있다고 본다.


 즉 민주주의 정권 하에서 복지 시스템을 제대로 유지시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복지 시스템을 처음 만드는 것 자체는 비교적 쉬운 일이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예산을 증액하고 혜택을 축소하는 정치적 리스크를 아무도 지고 싶어 하지 않아한다. 갑자기 대중교통비 기본요금을 500원 인상하겠다고 누군가 발표한다면, 그 사람이 과연 다음 선거에서 이길 수 있을까? 난 아니라고 본다. 그런데 모든 복지 제도가 이런 면이 있다.


 또한 세율을 올린다고 결코 세금이 더 걷히는 게 아니다. 이에 대해서는 지난 글 ‘커지고 있는 지하경제와 그 문제 및 원인, 그리고 해결방안’ 에서도 다룬 적이 있는데, 증세는 필연적으로 조세저항을 만들고 지하경제를 키우기 마련이며, 그 결과 현대의 금융자본주의 하에서 순환하지 않게 되는 돈은 모두에게 피해가 된다는 게 그 주된 내용이었다.


 실제 이명박 정권이 부자감세로 욕을 먹긴 했지만, 그것은 부당한 정치적 공격이었다. 우선 국세청에서 공개한 연도별 종합소득세율을 보자.


http://taxinfo.nts.go.kr/docs/customer/noted/noted_main.jsp?taxitem_str=%C1%BE%C7%D5%BC%D2%B5%E6%BC%BC&sub_title=%BC%BC%C0%B2&file_path=file%2FnotedInfo%2FU%BC%D2%B5%E6%BC%BC%C0%B2%282012%29.htm


 조금만 자세히 봐도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종합소득세율을 감세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명박 정권 또한 마찬가지로 감세기조였지만, 정권 도중 3억 이상의 고소득자에 대한 추가세율이 생겨났다. 무려 38%나 된다.


 1억 초과 법인세율 또한 마찬가지다. 노태우 정권 때 34%였던 법인세율은 김영삼 정권에서 28%까지 내려간 후, 김대중 정권에서 27%, 그리고 노무현 정권에서 25%로 감세한다. 그리고 이를 이명박 정권은 22%로 내렸다. 1억 미만 법인세율 흐름도 거의 동일하다.


 즉 감세는 이명박의 특이한 행동이 아니라, 민주화 이후 쭉 이어져온 기조였다는 게 핵심이다. 이에 대해 일단 자칭 진보 좌파 사회주의 세력들은 두 가지 방향으로 공격했다. 하나는 보수주의자와 연합하는 양상의 김대중부터 노무현까지 다 신자유주의였고, 그것이 양극화에 일조했다는 공격이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노무현 정권을 그래도 마음만은 서민을 위했던 정권처럼 포장하여 이명박 정권을 유독 부자 편을 드는 정권으로 낙인찍었다. 그러나 이는 모두 부당한 공격이다.


 결과적으로 세수는 어땠을까? 세율을 꾸준히 내린 것과 반비례로 세수는 쭉 증가해 왔다. 김대중 정권 후기인 2001년에 걷힌 총 국세는 95.8조였던 반면, 많은 감세가 있는 이후인 2011년에 걷힌 총 국세는 192.4조원이다. GDP가 올라가서? 꼭 그렇지도 않다. 현재와 큰 GDP 차이가 없었던 노무현 정권 말기인 2007년의 총 국세는 161.5조원이었다. 국제경기는 노무현 정권 때가 훨씬 나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세율인하가 더 많은 세수를 불러온 것이다.


 실제 감세를 하면 일시적으로는 세금이 덜 걷힌다. 그러나 금방 회복되어 더 많은 세금이 걷히게 된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는가? 세율과 세수의 관계를 일차원적으로 생각해선 안 된다. 증세가 지하경제와 불황을 불러온다면, 감세는 더욱 많은 경제활동으로 인한 호황을 불러온다. 세금은 돈이 돌아가는 과정에서 부과되기에 호황이어야 세수가 늘어난다. 실제 자유 경제학자들의 이론이 잘 증명되어온 게 한국인 것이다.


 결국 복지를 위해 증세를 하겠다는 방식은 불황을 불러올 수 있는 위험한 방식일 수밖에 없다. 현실적인 복지는 증세하지 않고, 적자를 누적시키지 않는 복지이다. 그런데 이미 한국은 적자를 누적시키는 양상의 복지를 하고 있다. 이런 면들에서 본다면 복지를 늘려 분배를 하자는 방식은 바람직하지가 않다.


 물론 한국이 사회적 지출비용이 높은 편은 아니고, 세율이 유럽 국가들에 비해 높은 편도 아니다. 그런데 여기엔 중대한 맹점이 있다. 이것은 결코 사회주의자들이 말하지 않는 것들이다. 알려진다면 결코 지금처럼 시민들이 복지 담론에 열광할 수가 없을 테니까.


 일례로 스웨덴을 보자. 스웨덴은 복지국가로 유명하다. 스웨덴이 복지국가가 된 일차적인 이유는 워낙 부유해서였지만, - 2차 대전 직후 전쟁에 휩쓸리지 않은 스웨덴은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였다. - 그런 복지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는 엄청난 세금이 들어간다. 그런데 실제 스웨덴의 세율과 한국의 세율을 비교해보면 어떨까?


 한국이 스웨덴에 비해 세금을 별로 안 내는 건 맞다. 그런데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한국은 소득수준을 4단계로 나눌 경우, 고소득자가 저소득자에 비해 8.7배나 많은 소득세율을 부과 받고 있다. 이는 세율기준이기에 실제 세액으로 치면 까마득한 격차가 나게 된다. 실제 한국은 부자들만 세금내고, 서민들은 거의 세금 안 내는 나라다. 그런데 스웨덴은 소득격차 대비 1.44배 차이밖에 안 난다. 쉽게 말해 모두가 세금을 많이 낸다는 것이다.


 한국만큼 고소득자가 저소득자에 비해 엄청난 세율을 부과 받는 나라는 소위 선진국 중 없다. 배수로 치면 브리튼이 1.43배, 미합중국이 1.57배, 일본이 1.82배, 도이칠란트가 2.16배, 프랑스가 좀 차이가 심해서 2.64배다. 그러나 어떤 나라도 한국처럼 극단적인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쉽게 이야기해서 한국이 세금을 많이 걷지 않는 건 맞는데, 특히 극단적으로 저소득층에 세금을 거의 안 걷고 있다는 것이 진실이다. 실제 경험으로 모두들 알겠지만, 한국은 저소득층에 대한 소득공제율이 커서 소득이 일정 이하면 실제 세금을 안 걷는다. 그런데 다른 나라는 이렇게 하지 않는다. 다른 나라들에서는 소득이 낮은 서민에게도 세금을 꽤 떼어간다. 소위 복지국가들은 다 그렇게 한다.


 소득세뿐만이 아니고, 모두들 공평하게 낼 수밖에 없는 VAT도 한국은 상당히 낮은 편이다. 모두들 알다시피 한국의 VAT는 10%다. 그런데 세계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20%전후의 높은 VAT를 걷는다. 스웨덴의 VAT는 25%다. 그나마도 한국 서민들은 현금거래를 통해 VAT를 내지 않는 데 능하다.


 결국 한국이 증세를 통해 복지국가가 되려면 서민들에게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이 엄청난 세금을 물려야 한다. 그런데 면세혜택에 익숙한 한국 서민들이 과연 그걸 감내할 수 있을까? 한국은 사실 서민에게 실질적 면세혜택을 제공해왔다는 점에서 제법 복지국가였다고도 할 수 있다.


 한국 현실에서 ‘복지해줄게, 세금 왕창 내라.’ 라는 말은 사실 복지국가를 만들려 한다면 부자보다도 서민에게 먼저 적용되어야 한다. 사회주의자들은 결코 이 진실을 말하지 않아왔다. 그들은 부자를 털어 서민의 주머니를 채울 수 있는 양 말해왔다. 그러나 한국은 이미 중산층 이상만 세금을 내는 나라다. 부자들의 경우 그 불평등을 인지하고 있는 만큼, 세율을 더 올린다 하면 조세저항도 강할 수밖에 없다. 실제 세율 올려봐야 부작용만 심하고 딱히 더 걷히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실제 세금을 더 걷는 방법은 결국 서민들에게 보다 평등한 조세를 부과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게 과연 서민들이 원하는 걸까?


 실제 우리 한국인들에게 다가와 있는 불평등은 복지의 문제가 아니다. 보다 많은 좋은 일자리, 너무 길지 않은 노동시간, 강제적이지 않은 회식 및 유흥, 법 앞에서의 평등, 하도급 및 갑을관계에서의 정당함, 체불 없는 임금 지급, 출산 및 육아시의 경제적 안정 등이 정말로 필요한 것이다.


 부자에 대한 증오심으로 증세를 주장하는 것은 결국 모두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불러온다. 부자가 돈을 잘 쓰도록 해야 한다. 그 돈이 시장에서 잘 돌고 돌면 결국 지급준비율의 원리로 점점 불어나면서 모두의 주머니로 돌아오는 게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세상의 법칙이다. 사업자들이 돈을 벌어야 노동자도 안정적으로 임금을 받고, 사업하기 좋아야 일자리가 많이 생긴다. 일자리가 많이 생겨야 노동자도 좀 더 귀한 대접을 받을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사회주의를 억압해왔기에 실제 사회주의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아직도 잘 모른다. 그러나 우린 왜 자본주의가 결국 사회주의를 이겼는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