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사건의 진실

정치 2014. 5. 3. 16:08 Posted by 해양장미

 이에 대해 자꾸 역사왜곡을 해대는 사람들이 많아서 좀 정확하게 이야기해볼까 한다.

 

 이 탄핵 사건은 노무현이 저지른 대표적인 잘못 중 하나였으며, 깨시민들은 이것의 진실을 왜곡하고 적반하장으로 새누리당 세력 등을 공격하곤 하는데 이에 속아 진실을 잘 모를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어째서 노무현의 탄핵소추가 의결될 수 있었는지, 노무현은 그로 인해 어떠한 결과물을 얻었는지, 그 사건이 우리 사회에 끼친 영향은 무엇일지 살펴보자.

 

 





 우선 노무현이 탄핵되었던 이유부터 제대로 알아야한다.

 

 노무현이 탄핵된 주 이유는 3권분립에 관련된 법률를 어기고 무시해서다. 이는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도전이기에 민주주의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떤 일이 있었냐하면...

 

 당시에 야권은 분열되어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으로 쪼개진 상황이었다. 이렇게 된 데는 노무현의 책임도 컸고, 당연히 민주주의적으로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즉 민주주의가 훼손되고 있었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대통령은 선거 관련하여 특정 정당이나 인물을 공개적으로 지지해서는 안 된다는 법률이 있다. 대통령이 특정 정당을 드러내놓고 지지하는 표현을 하면 그것은 독재라는 결과물로 이어지기 쉽기에, 이런 행위는 지양되어야 한다.

 

 그런데 20042, 노무현은 두어 번에 걸쳐 공개적으로 열린우리당의 지지를 호소한다. 이는 논란거리가 있을 수 없는 현행법 위반이었고, 필연적으로 논란이 일자 33일 선관위에서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을 위반했다고 판정하고 중립의무 준수를 요청했다.

 

 상식적으로, 이런 문제가 있으면 대통령이 자중하는 게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이것이 지켜지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그 기반이 되는 룰이 무너지고 만다. 그러나 노무현은 선관위의 지침에 대하여 납득할 수 없다고 하면서 계속 열린우리당을 지지하겠다고 뻐댄다.

 

 사실 민주주의의 정의를 아는 사람이라면 노무현의 저런 행위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짓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대통령이 선거 관련 법률을 어긴 후에도 선관위의 지침을 무시하고 계속 법을 어기는 건 명백한 반민주주의적 행위다. 특히 대북송금특검과 파당으로 잔뜩 뿔이 나 있던 당시의 민주당으로서는 노무현의 언행을 용납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35, 민주당은 긴급의원총회를 소집하고 사과 및 재발방지 약속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러지 않을 경우 탄핵소추를 하겠다고 경고하고 한나라당과 자민련에 협조를 구한다.

 

 사실 노무현이 저질렀던 이 사건은 원론적으로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하는 행위였고, 당시 노무현의 통치는 매우 불안정했기 때문에 한나라당 또한 협조하기로 한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이런 경고 또한 무시한다. 사실 이는 작정하고 막나가겠다는 태도나 다름없는 것이다. 노무현이 당시 원칙을 지켰다는 노빠 깨시민들의 주장은 말도 안 되는 혹세무민이다.

 

 갈등은 순식간에 커졌고, 결국 39일에 첫 번째 탄핵소추안이 나오게 된다. 이 중간 과정에서 대통령이 법률을 지키겠다고 선언만 했어도 절대 나올 수 없는 탄핵소추안이었다. 그러나 노무현은 독재를 택했다. 분명하게 이야기하는데, 이 탄핵소추는 노무현이 형식적으로 독재를 하려 했기에 나온 것이다. 독재를 시도할 수준의 권력이 있었던 건 물론 아니지만.

 

 그러나 첫 번째 탄핵소추는 통과되지 않았다.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이 막아선 탓도 있지만, 사실 한나라당도 탄핵에 적극적이지 않았고 자민련은 아예 탄핵에 동참하지도 않았다. 의원들은 탄핵소추 시 어이없는 역풍이 불 수 있다는 걸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고, 더 나아가 이 사건을 원만하게 해결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비상식적인 것은 노무현의 태도였지, 의원들은 꼭 그리 극단적인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런데 추가적인 대형 사건이 311일에 벌어졌다. 노무현이 특별 기자 회견을 열어 그 유명한 남상국 사건을 일으켰던 것이다. 당시 남상국은 대우건설 사장이었고, 노무현의 형인 노건평에게 3000만원을 건넨 의혹을 받고 있었는데 노무현이 "좋은 학교 나오시고 크게 성공한 분들이 시골에 있는 사람에게 가서 머리 조아리고 돈 주고 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라고 말을 해버렸다.

 

 그래서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다시피 남상국은 그 날 바로 투신자살해 버렸고, 이는 그 전 해 자살한 정몽헌, 바로 한 달 전에 자살한 안상영과 겹쳐 보일 수밖에 없는 대형 사건이었다. 이 경솔하고 후안무치한 언행으로 인해 탄핵소추에 참여하지 않던 자민련도 입장을 바꿨고, 다음날인 312일에 탄핵안이 가결된다.

 

 사실 탄핵안이 가결될 때도 속사정을 보면 아주 기가 막힌다. 당시 국회의장이었던 박관용의 증언에 의하면, 박관용은 312일 당시 탄핵소추가 정말 오늘은 통과될 거라는 것을 직감하고 비록 정당은 다르지만 (박관용은 한나라당이었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극단적인 사태를 막기 위해 노무현에게 연락을 넣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당시 창원에 가 있었던 노무현은 탄핵을 막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고, 결국 탄핵 소추는 통과되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탄핵 소추는 노무현에게 엄청난 반전의 기회를 제공하였다. 이후 박관용은 당시의 탄핵소추는 노무현이 파 놓은 함정이라는 주장을 하였는데, 나는 박관용의 주장이 타당하다고 여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노무현은 어쩔 수 없이 탄핵을 맞이한 게 아니었다. 여러 번의 사과 요구를 묵살하면서 불법과 독재행위를 저질렀고, 탄핵이 통과되던 당일에도 전혀 막을 생각 없이 창원에 내려가 있었다. 박관용이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면 탄핵을 막을 수 있는 최후의 기회조차 고의적으로 걷어찬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로 노무현은 엄청난 이익을 봤다.

 

 나는 노무현이 아마도 기획하고 결과적으로 이익을 본 이 사건이 이 나라 국민들의 정서에 적잖은 갈등과 상처를 남겼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노무현이 진짜 나쁜 대통령이었다. 탄핵사건 이후 이 사회에 관용과 타협, 토론은 급속도로 사라졌다.

 

 대부분의 깨시민들은 사실 노무현이 왜 탄핵을 당했는지 모른다. 그들은 피해의식에 사로잡혀있고, ‘나쁜한나라(새누리)XX들이 착하고 힘없는노무현을 핍박했다는 그릇된 맹신을 가지고 있다. 물론 모든 광신도가 그렇듯, 그들은 열심히 포교활동을 해 댄다. 그러나 사실은 노무현이 민주주의를 침해한 것이었고 아마도 권력 강화를 위한 함정을 판 것이었다. 대통령이 3권 분립을 침해하고 독재를 시도할 때 야당이 대통령을 탄핵하는 건 바람직하고 마땅한 행위다. 이후 헌재의 판결은 총선으로 인한 국민들의 선택에 동의를 해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심지어 깨시민들은 탄핵정국을 새누리당이 주도한 것처럼 역사왜곡을 하는데, 당시 한나라당은 민주당 옆에서 도움만 준 거였다.

 

 이 사건에 대해 소위 진보(라고 쓰고 노빠 깨시민 아지트라고 읽는) 사이트에서는 근래에도 다음과 같이 놀고 있다.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bestofbest&no=144674&s_no=144674&page=1


http://bbs3.agora.media.daum.net/gaia/do/story/read?bbsId=K161&articleId=394192


http://www.clien.net/cs2/bbs/board.php?bo_table=park&wr_id=26632785

 


 솔직히 한숨이 나온다. 정말 왜곡하고 포장하는 것도 어느 정도다.

 

 저들에게 노무현은 신앙의 대상이다. 그러니까 민주주의보다 중요한, 독재를 해도 상관없는 존재다. 그에 나는 항상 말한다. 깨시민은 광신도’, ‘파시스트라고. 그들은 노무현의 집권기에도 파시즘을 보이며 무차별적으로 모두를 공격했고, 야권 내에서도 많은 비판이 나왔었으나 지금까지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노빠 파시스트들이 인터넷을 장악한 이후 우리 사회에서 생산적이고 온건한 모든 토론이 실종되어버렸다. 낙인찍기와 신앙간증이 소위 진보 커뮤니티에 가득하고, 그 반대에 서있다는 일베야 그냥 정화조 같은 곳이니 말할 가치도 없다. 노무현 정권이 저질렀던 온갖 반민주주의적인 폭압 또한 그들의 깽판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나는 시민들이 파시즘을 경계하고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이 사회의 시민으로 상식적인 일일 것이다. 문제는 파시스트들이 민주주의와 역사를 왜곡하면서 수호자인양 굴고, 실제로 수호자주의를 이 사회에 도입하려고 여러 번 노력하고 있다는 데 있다. 일단은 본문을 통해 역사왜곡을 바로잡는 데 조금이나마 일조해보려 한다.

 

 

 사람들이 경제에 관한 논의를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참 안타까울 때가 많다.


 역시나 일반적으로 가장 큰 문제는 뭐가 신자유주의고 뭐가 케인즈주의고 뭐가 사회주의인지 잘 모른다는 데 있는데, 케인즈주의는 거의 언급도 안 되니 일단 뒤로 접어둔다 쳐도 자칭 진보라는, 달님을 외치는 깨시민들이 걸핏하면 신자유주의적인 주장을 하는 걸 보면 참 기가 막히곤 한다.


 예를 들어서 현 한국 경제 상황에서.


 대체로 케인즈주의자라면 기준금리가 9개월째 유지인데 경기가 살아나는 양상이 지지부진하고 원화가 너무 강세니 금리 좀 내리고 하우스푸어를 위한 지원 프로그램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할 건데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밖에까지 잘 안 퍼지는 안습한 현실 앞에 있고,


 대체로 신자유주의자라면 새로운 일자리 등을 위해 의료 영리법인 세울 수 있게 규제 풀고, 경제민주화를 위해 기존 순환출자구조도 해소하고 주주의 권한을 늘려야 한다고 지금까지 해왔듯 착한 척을 앞세워 주장할 것이고,


 대체로 사회주의자라면 보편적 복지를 얼른 하라고 주장하는 동시에 뭘 몰라서 경제민주화 움직임에 동참할 것이고,


 대체로 제도주의자라면 바이오, 항공, 에너지 등의 신산업 육성을 위해 국가적 지원과 정책이 더 강하게 있어야 할 것이라 주장할 것이고 + 추가로 실제 보면 사회주의자와 함께 복지론 주장 중


 대체로 깨시민이라면 다 됐고 부정선거! 박근혜 아웃! 안철수 양보해라! 등을 외칠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좌우파로 저 사람들을 구분하자면 좀 복잡해지는데...


 우선 사회주의자는 좌파로 확실하게 구분되긴 하는데 나머지는 아니다.


 케인즈주의자나 제도주의자는 어이없게도 수꼴 취급을 받기 일쑤고, 신자유주의자가 자칭타칭 진보로 불리는 것은 일상다반사고 소위 우파정당으로 분류되는 새누리당 내에서도 저런 온갖 소리들이 짬뽕 및 잡탕 되어서 내부갈등을 일으키는 게 현실.


 어쩌다 상황이 이리 되어가지고 사람들이 좌우파 구분도 하기 힘든 나라가 되었는지를 보자면 역시나 당연히 복잡한데, 시작부터 이야기하자면 아주 먼 과거로 올라가야 한다.


 일단 일제가 끝난 시점에서 한반도 남쪽, 그러니까 대한민국이 될 지역에서 공산주의자가 모두 제거되었다는 건 모두들 알 것이다.


 이승만 시절 한국의 정당은 이승만의 자유당과 아직까지 생존 중인 민주당이 있었다. 그런데 자유당이 민주당보다 좀 더 진보적이었다. 그리고 이승만이 물러난 이후 자유당은 부서져 버렸고, 민주당이 실질적으로 유일한 정당이 되었었다.


 많은 사람들의 오해와는 달리, 민주당은 딱히 진보주의적인 색채를 가진 적이 없었다. 다만 민주당의 역사를 보면 워낙에 많은 이합집산을 거듭했고 그 과정에서 운동권 세력이 참여하곤 하여 군사정권 시절 어감으로 ‘좌파’ 소리를 들어왔던 것이다.


 박정희가 쿠테타 이후 선거를 통해 대통령이 되는 과정에서 민주당의 보수주의적 색채는 선거에서 지는 요인이 되었다. 흔한 오해와는 달리 당시에 시민들은 박정희를 선택했고, 박정희가 서민의 편이었다.


 비록 박정희가 권위주의적이긴 했으나 서민에게 더 많은 이익을 가져다주고 삶을 안정되게 했다. 또한 유신 이전의 박정희는 선거로 당선된, 민주 체제 아래에서의 대통령이었다. 쉽게 말해 당시 구도는 박정희와 민주공화당의 제도주의적 진보 대 윤보선이나 김영삼, 김대중 등 민주당 계열의 자유주의 우파 구도였다고 할 수 있다.


 이후 박정희의 통치방식은 엄청난 경제적 성공을 가져왔다. 심지어 결국 정치적으로 실패한 유신체제조차 경제적으로는 기적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대조적으로 당시 김대중 등이 박정희의 방식에 반대하며 주장하던 소위 ‘대중경제론’이 있는데, 안타깝게도 그 내용을 보면 박정희가 오래 집권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단점이 많았다.


 박정희의 방식은 정부가 산업 육성을 돕고 금융을 제한하며 무역을 장려하는 방식이었다. 정부가 나서서 산업을 육성하고 강력한 보호무역을 통해 경제를 성장시키는 방식을 흔히 제도주의라 한다. 이 방식으로 박정희는 집권 내내 엄청난 투자를 하고, 무역 국가로 발돋움시켜 한국을 20세기에 가장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룬 국가로 만들었다.


 그런데 윤보선이나 박현채, 김대중이 주장하던 방식 - 대중경제론 - 은 이것과 반대의 방식으로, 수많은 국가들이 채택했다 실패한 방식이었다. 이 방식대로 하면 중앙은행은 강력하지 않아 금융통제가 안 되고, 산업이 제도주의처럼 발달하지도 못하며 무역 국가로 발돋움할 수도 없다.


 지금은 각종 방안들을 여러 국가들이 실험해본 끝에 뭐가 좋은지 증명이 되어있지만, 그 때는 그렇지 않았다. 박정희는 정말 가기 힘든 노선을 택했고, 엄청난 성과를 만들어냈다. 그러고 나서 그 열매를 제대로 보기도 전에 죽었지만.


 박정희 사후 박정희의 투자가 이루어낸 결과물들과 공산권의 몰락 등을 보면서 기존에 박정희의 정책에 반대하던 사람들도 의견을 달리하게 되었다. 김대중마저 90년대 들어선 기존의 대중경제론을 버리고 다른 입장을 취하게 된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도 김대중의 경제에 대한 이해는 다소 부족했던 면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가 좀 더 경제를 잘 이해했다면 IMF로 인한 타격을 더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IMF를 유발한 건 전적으로 김영삼 책임이다. 다만 김대중은 IMF와 좀 더 치열하게 싸워 피해를 줄일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어차피 멍청한 김영삼한텐 아무 기대도 안 한다. 그런데 김대중은 그래도 똑똑하니까. 똑똑한 사람은 똑똑한 사람의 몫이 있는 건데, 그 몫을 다하지 못했다는 거다.


 비극적인 문제는 민주정권의 태도 및 이해에 있었다. 박정희식 제도주의는 엄청난 발전을 만드는 동시에 필연적인 부작용을 낳는다. 정부의 혜택을 받는 쪽이 집중적으로 성장하다보니 덜 공평하고, 게다가 박정희는 권위주의적인 독재 통치를 했기에 자유에 대한 사회의 갈망도 컸기 때문이다.


 사실 자유에 대한 문제는 문화적인 면에서 두드러졌고, 지금도 충분히 해소되지 않았다. 유교식ㆍ군대식 권위주의 및 압축 근대화 과정 속에서 해소되지 못한 고간섭 문화는 아직도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그런데 민주화 이후 위의 문제들은 충분히 해결되지 못한 반면, 경제 체제는 제도주의에서 신자유주의로 급속도로 흘렀다. 특히 민주화에 누구보다 앞장섰던 김영삼부터 세계화니 선진화니 뭐니 하면서 대책 없는 신자유주의 판을 벌이다 나라를 말아먹었다.


 분배나 기타 등등의 이야기는 사실 김대중 때까지만 해도 잘 나오지 않았다. 김영삼과 김대중은 지역주의를 앞세웠고, 이념에 있어 그리 큰 차이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나마 김대중은 IT산업을 육성하는 등 제도주의적인 방안을 선택했지만 김영삼과 이후의 노무현은 아니었다.


 소위 좌우파 갈등이 빚어지기 시작하던 시점은 노무현 때부터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모두들 알다시피 노무현이 ‘좌측 깜빡이를 키고 우회전’을 해버리면서 모든 게 심각하게 꼬여버렸다. 대략 이때부터 노빠들은 제도주의와 케인즈주의 등을 ‘보수, 수꼴’등으로 낙인찍고 노무현의 신자유주의정책을 무한 실드치는 반지성주의적 궤변을 일삼게 된다. 물론 신자유주의가 본격적으로 욕먹기 시작한 이후에 깨시민들은 ‘노무현의 신자유주의는 시대적 흐름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같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무한반복하고 있고. 그런 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행위고 혹세무민이다.


 이야기가 꼬여버린 데는 이명박도 일조를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말로는 신자유주의의 화신처럼 등장을 해서는, 막상 정치는 딱히 신자유주의적으로 안 했다. 이러니 사람들의 경제적 좌우에 대한 착각이 더 심해진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근래의 경제민주화 논의는 아주 이런 혼동에 화룡정점을 찍어버렸다. 신자유주의자들이 경제민주화 타이틀을 걸고, 우린 착한 진보 ^^ 놀이를 해서 적잖은 사람들을 아스트랄하게 만들고,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을 혹세무민해 버렸다. 도무지 이게 언제쯤 어떻게 교통정리가 될지는 미지수다. 전문정보와 대중정보 사이를 이어줘야 할 기자라거나 시민 사회 등은 소양이 지극히 부족하고, 정치적 의도를 가진 뻘소리들만 해대면서 혼란을 가중시켜버렸다. 여기에 보편적 복지론이니, 선별적 복지론이니 하는 복지론이 앞서는 상황이 되다 보니 혼란은 더 심해졌다. 현실적으로 민중들은 뭐가 자기 자신에게 득이 될지를 감으로 대략 맞춰야 하는 입장이다.


 양당제에서 시민들이 명료하게 정치적 선택을 할 수 있으려면, 신자유주의 & 작은 정부 정당과 케인즈주의 & 제도주의 정당이 대립하는 게 편하다. 그런데 한국에선 제도주의를 박정희가 선점해버렸고, 그것이 극단적인 보수주의적 이미지로 자리 잡혀 있기에 이러한 이념적 균열이 일어나는 게 지극히 어렵다. 현재 박근혜정부는 적당한 제도주의와 적당한 케인즈주의, 그리고 적당한 신자유주의 사이에서 적당한 균형을 잡고 있다는 느낌인데 참 그것도 능력이라는 감상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 확 좀 땡겨 줬으면 좋겠다. (새누리)당내 신자유주의자들은 좀 치우고.


 여담인데 근래의 신자유주의는 ... 실제 경제학에선 그리 투철하고 극단적인 관념 속 신자유주의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게 이미지 그대로의 신자유주의는 이미지로나 존재할 뿐, 그게 학술적으로 맞는 말이 아니라는 건 이미 어느 정도 검증된 거고 이게 신자유주의만 이런 것도 아니고, 실제론 학자마다 서로 좀 다른 입장이긴 하지만 절충하고 더 나은 방향을 찾아가면서 이론을 만들고 현상을 살펴보고 그러는 게 현실인데, 굳이 보자면 학계에선 더 완성도 높은 수학적 무언가를 만들려고 하다 보니 무리수를 두는 경우가 꽤 있었고 그걸 막상 현실에 적용했을 때 패망한 사례도 많고 ... 오히려 리얼 ‘신자유주의’는 경제학계 외부에서 더 많은 것 같다. ‘학술적으로 맞는 말’이 아니고 ‘지들 돈 벌려고 하는 말’ 또는 ‘지들 권력 잡으려고 하는 말’을 하게 되면 사람은 완전히 이야기를 다르게 하는 법이다. 물론 저런 말들 중에는 도무지 신자유주의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이 하는 말들도 제법 많이 섞여 있으니 사람들이 더 혼동하기 쉬운 건 어쩔 수 없다.


 이념적 균열이 명료하지 못하고, 서민들이 자신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정치적 선택을 하기 어렵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상황이 아니다. 서민들은 삶의 개선을 위해 보다 케인즈주의적이거나 보다 제도주의적인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주의는 현실적인 대안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의 민주당이나 근래의 안철수 신당 모두 케인즈주의나 제도주의적인 대안을 보여준다고 하기 어렵다. 실제 케인즈주의적인 것은 학계와 관료이며, 제도주의적인 방안을 구상하는 쪽도 새누리당 내에 있다. 새누리당은 꽤나 광범위한 이념을 포괄하고 있는 정당인데, 소위 깨시민이나 진보좌파들은 이에 대한 이해가 없기에 선거에서 이기기 어렵다.


 서민들, 특히 나이가 좀 있는 서민들은 어떤 정책과 제도가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는지 어렴풋이나마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들을 향해 무식하다고 비난하고 국개론을 설파하는 깨시민들이야말로 실제로는 경제에 대한 이해가 없고 무식한 경우가 많다. 실제 깨시민들 많은 곳에서 자료와 근거를 제시하며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하는 경우, 돌아오는 건 비아냥과 매도 또는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거짓말인 경우가 99%이상이다.


 다만 새누리당이 서민들의 입장을 잘 대변해줄 수 있는 정당이 되긴 현실적으로 어렵다. 너무 많은 이념을 포괄하는 정당이 되어 있고, 당 내부에서 파워게임이 이루어지는 경우 누가 이길지는 명백하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한국 정치 현실에선 대통령의 정치 감각과 결단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대통령 주변의 이너서클이 제 역할을 못할 경우 정치 실패가 일어나기도 쉽지 않나 생각한다.



87년 체제 각 정부 평가

정치 2014. 1. 22. 17:48 Posted by 해양장미

87년 체제 각 정부 평가



 본문에서는 2014년 1월 현재, 87년 체제 이후 각각의 대통령과 그들의 정부에 대해 가지고 있는 사견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87년 체제의 역사는 결코 오래 되지 않았지만, 수많은 이해관계와 포장에 의해 왜곡이 발생해있다. 여기에 더해 각자 가진 사고방식 및 철학에 의한 평가의 차이도 크다.


 내가 생각하는 관점은 다음과 같다. 정치는 결과로 말해야 하며,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과 현실적 이익을 줘야 한다. 아집과 불통으로 국민들의 삶을 망가뜨려서는 안 된다. 이런 관점에서 잘 한 정부부터 서술해볼까 한다.




1위) 노태우 정부


: 노태우 정부는 많은 이들이 군사정권의 연장선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지만, 나는 노태우 정부가 87체제 최고의 정부였다고 본다. 또한 그는 실질적인 한국 민주정치사의 초대 대통령이기도 하다.


 보통 사람들의 피상적인 인식보다 노태우 정부는 훨씬 눈부신 업적을 쌓았다. NLL논란에서도 종종 언급되는 남북기본합의서를 만들고, 한반도에서 핵을 없애 비핵화 공동선언을 이끌었으며 (당시 주한미군은 핵을 가지고 있었다.), 88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가운데 온갖 공산권 국가들과 수교를 맺었다. 공산권이었던 중국 및 러시아와의 수교도 이 때 이루어진 것이다. 대북정책은 북조선을 고립시키는 동시에 관계개선에도 성공하였다. 평시 작전 통제권의 환수도 추진하여 김영삼 때 완료되었다.


 민주주의 대통령제에서 대통령의 일차적인 책무는 외교와 국방에 있다. 원칙적으로 볼 때, 민주적으로 의사결정을 하고 사회를 개선시켜나가는 것은 의회의 몫이 더 크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노태우는 좋은 대통령이었다. 엄청나게 정세가 급변하던 시대에 그는 최고의 선택을 했다. 또한 이 시기에 한국의 민주주의와 경제수준 또한 크게 발전하였다. 노태우의 시대에 한국은 최초로 채무국에서 채권국으로 발돋움한다. 장준하의 명예회복과 지방자치제의 부활도 그 때 이루어졌다. 여성 권익도 신장되었다.


 여러 시대적 불행 위에 있었지만, 노태우는 인품이 훌륭한 편이었던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성격이 유순하고 어른스러워 화도 잘 내지 않고, 친구들의 싸움도 중재했다고 한다. 이런 성격은 사람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그가 대통령이 된 후에도 유지되었던 것 같은데, 그의 그런 성품이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에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87년의 민주화를 결단한 것 또한 그의 공이 크다.

 

 이른 80년대 초에도 그는 전두환의 신군부 세력이긴 했지만, 김종필 등 구 군부 세력 등에게 예의를 갖춤으로 추가적인 갈등을 무마하였다. 또한 안하무인인 전두환의 하대와 핍박에도 불구, 인내와 웃음으로 위기를 이기고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장관시절엔 상사 눈치를 보느라 퇴근을 못 하는 관례를 없애도록 한 개혁적 인물이기도 했다.


 비록 불법정치자금 수수 문제로 불명예스레 무기징역까지 선고받고 지금은 병상에 누워있지만, 사실 금융실명상태가 아니었던 그 시대에 불법정치자금은 당연시되었던 관례였고, 실제 후임인 김영삼에 의해 정치적으로 제거된 면 또한 크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불법정치자금에서는 김대중도 노무현도 결코 자유롭지 않았다. 또한 노태우는 전두환과는 달리 추징금을 꾸준히 납부해오기도 했다. 지금은 거의 완납상태다.

 

 개인적으로 그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역사적으로 재조명될 필요가 있는 인물이라 본다. 보안사 사찰 사건 등은 분명한 과오이지만, 그로부터 한참 지난 시대에도 그와 유사한 사건이 일어났으니 그 시대를 감안하면 꼭 이해 못할 것도 없다. 한편으로 인천공항과 1기 신도시 또한 그의 계획이다.


 여담인데 두 명의 노씨 대통령 중 실제 많은 업적을 세운 노태우는 인기가 가장 낮고, 온갖 과오를 저지른 끝에 자살한 노무현은 최고의 인기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정치는 결과로 말하는 것이다. 노태우가 아니었다면 민주화에 얼마나 더 많은 피가 필요했을지 모르고, 어쩌면 신군부와 기존 군부의 투쟁으로 나라꼴이 엉망이 되었을 수도 있었으며, 민주주의가 제대로 자리 잡히기 전에 붕괴할 수도 있었고, 기존 공산권 국가 및 북조선과의 관계도 훨씬 나쁘게 자리 잡을 수도 있었다. 이룬 업적과 행동으로 보면 노태우야 말로 민주화 이후 가장 현실 속에서 진보적이고 상식적인 대통령이었다.




2위) 김대중 정부


: 굉장히 좋지 못한 상황에서 출발하였지만, 나는 김대중 정부가 노태우 정부에 비하면 여러 번 오판을 저질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김대중은 분명 대정치인이고 국민에 대한 애정을 가졌으며 여러 방향으로 최선은 아닐지언정 차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쉬운 말로 김대중 정부는 노무현 정부와는 달리 진정성이 있었다.


 김대중 정부는 신자유주의와 전통적 제도주의에 양다리를 걸쳤다고 평하고 싶다. 내가 긍정적으로 보는 것은 제도주의의 면, 즉 IT인프라를 깔고 벤쳐를 육성하며 나름대로 유동성을 강하게 공급한 면 등을 들고프다. 그는 IMF에 대해 충분히 패기 있는 선택을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호박씨 정도는 깠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는 신자유주의적인 사상과는 좀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이 망조와 오판 속에서 그나마 국민들의 고통을 줄이는 데 일조하였다. 스스로 강경한 신자유주의의 길을 걸었던 김영삼이나 노무현과는 달랐다.


 김대중의 시대 때, 소기업들은 마지막 꿈을 꿔볼 수 있었다. 현재 큰 기업이 된 신생 기업들이 그 때 탄생하였다. 이것은 노무현 정부와는 분명히 대조되는 점이다. 나는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세트로 묶는 게 그릇된 인식이라 본다. 둘은 공통점이 별로 없다.


 그의 한계는 그의 사고방식에 있다. 그는 노벨 평화상을 받기에 적합한 인물일 것이다. 여성 권리도 크게 신장시켰다. 그러나 대통령으로서 그는 다소 통찰력과 과감성이 떨어졌다. 그는 IMF의 요구를 묵살하고, 모라토리엄이나 디폴트 같은 카드라도 활용하여 좀 더 배짱 있게 재협상을 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IMF의 강경한 요구들을 수용하면서 신자유주의적인 흐름으로 나라를 이끌고 만다.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 나름대로의 노력을 했지만, 안타깝게도 그 노력은 충분한 결과를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내가 보기엔 신자유주의에 대한 오판이 많이 섞인 탓이 크다. 또한 햇볕정책도 결과적으로는 실패였다. 주변 사람들과의 소통이 충분한 인물도 아니었다. 자신에 대한 비판을 잘 못 받아들인다는 지적을 받곤 했다.


 한편으로 그의 정권을 미화하는 부류들도 많지만, 그 또한 왜곡이 많다. 일례로 그의 정권 때 국정원 불법도청 사태가 터진다거나, 아들인 김홍업이 ‘최규선 게이트’라는 사건에 걸려 징역 1년 6개월 형을 받는다거나 하는 문제들이 있었다. 진영논리에 빠져있는 이들의 말을 귀담아들어서는 안 된다.





3위) 이명박 정부


: 개인적으로 이명박 정부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나에게 개인적으로 손해를 안겨준 면도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정부나 김영삼 정부보다는 낫다. 나름대로의 현명한 선택으로 국난을 넘기기도 했고, 어려운 시대에 최선은 아닐지언정 차선을 다한 면도 있다. 비록 좀 어설픈 면이 있었지만, 잘 해보려고 한 것에 비해 과도하게 욕먹는 측면도 분명 있다고 본다.


 이명박 정부의 딜레마 중 가장 큰 것부터 이야기해야겠다. 비록 이명박은 뉴라이트에게 지지를 받아 신자유주의를 말로 앞세우기는 했지만, 그는 사실 신자유주의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고 본다. 또한 극우파의 지지를 받았지만 이명박은 나름대로 꽤 평화주의적이고 겁이 많았던 것 같다. 다만 그의 그런 성정은 대북관계에 좋게 작용하지는 않았다.


 집권 내내 이명박은 자신의 사고방식과 주변 인물들의 사고방식 사이에서 갈등을 빚었던 것 같고, 인사문제에 시달렸다고 본다. 그는 평균적인 정치인보다 꽤 험한 인생을 살아왔고, 현장에서 단련된 감각이 있었다. 그런데 말을 잘 못하고 덕이 부족한 데가 있어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주변의 과도한 충성경쟁과 미숙함도 더더욱 문제를 야기했다고 본다.


 사실 그나마 그의 현실 감각 덕에 리먼 위기는 최소화되었다. 그는 관치금융이라는 비난을 들으면서까지 중소기업을 지원했고, 그 나름대로 진짜 비즈니스 프랜들리를 위해 노력했다. 비록 다 잘 된 건 아니고, 일부 오판으로 영생토록 욕먹을 짓도 하긴 했지만 그나마 이명박이 좋은 결단을 내린 탓에 한국은 금융위기를 어느 정도 잘 넘길 수 있었다. 깨시민들은 노무현 정권이 돈을 많이 쌓아놔서 잘 넘겼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그보다는 이명박이 좋은 선택을 해서 잘 넘긴 거다.


 물론 이명박 정부는 4대강 같은 뻘짓에 더해, 친형인 이상득계를 전혀 컨트롤하지 못하게 되면서 (여기엔 이재오의 낙선이 큰 영향을 줬다. 괜히 중간에 이재오가 돌아온 후 잡음이 줄어든 게 아니다. 이상득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 이재오였기 때문이다.) 측근비리가 심해졌고, 국민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서 정국이 꼬인 상태로 5년을 보내는 비극을 겪었다. 그래도 한국은 이명박 집권 시기에 한 단계 더 성장했으며, 비교적 금융위기를 잘 넘겼다는 면에서 차선이나마 다한 정부라 평할 수 있겠다.


 


4위) 노무현 정부


: 깨시민들에 의해 태평성대였던 것처럼 포장되는 면이 있지만, 노무현 정부는 최악의 정부였다. 그나마 내가 김영삼 정부보다 나은 평을 하고 있는 건 IMF는 안 불러와서다. 그거 빼면 노무현 정부가 87체제 최악의 정부다.


 노무현 정부는 총체적인 좌충우돌을 저질렀다. 기존 민주당에 대한 공격을 강행하고, 대통령이 되는 과정에서의 정적들도 너무 처절하게 제거했을 뿐만 아니라 여당을 파괴하고 삼권분립을 침해하여 탄핵소추를 의도한다거나, 심지어 그렇게 새로 만든 여당도 임기 중 파당으로 치닫게 하는 등 온갖 만행을 저질렀다. 또한 그를 지지했던 세력을 배신하고 소위 ‘좌측 깜빡이를 키고 우회전하는’ 모습으로 많은 이들에게 고통과 절망을 주었다. 87체제 아래 아마도 유일하게 군부대까지 투입한 과격한 시위진압이 있었고, 폭력진압으로 사망자까지 나왔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깨시민 노빠들은 노무현 정부의 과오를 덮고, 그를 국민을 위했던 성군으로 역사왜곡을 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그러나 선거과정부터 뒷돈 부정을 저질렀던 정부로, 이미지와 실제 사이의 간극이 극단적으로 큰 정부이기도 하다.


 그의 집권 시기 동안 서민들의 삶은 크게 붕괴하였고, 국제적인 활황과 부동산 폭등에 맞물려 GDP는 크게 올랐지만 경기가 가라앉고 잠재성장률이 크게 저하되었으며 기조적인 저성장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또한 그는 의도적으로 정적이 속해있던 현대그룹을 제거하고 노골적으로 삼성의 편을 들었으며, 온갖 민영화 작업에 착수하였다. 그는 누구보다도 친재벌, 신자유주의 정책을 폈으며, 통찰력과 소통이 부족했고 오만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그의 일화들을 보면 어릴 때부터 성품이 바르거나 개념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어릴 때 잘 사는 친구의 가방을 몰래 칼로 찢어발긴다거나, 20대엔 지나가는 아낙네에게 성희롱을 한다거나, 노출을 한다거나 하는 문제행동을 저질렀다. 그리고 그의 그런 바람직하지 못한 성품은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고쳐지지 않은 것 같다. 그렇게나 공격적으로 행동해서 온갖 적들을 만들 걸 보면. 적어도 정치인은 그래서는 절대 안 된다.


 결국 그는 마지막까지 고건의 발목을 잡으면서 자신의 편을 거의 모두 잃고 만다. 결과적으로 그는 죽음을 선택하게 되었고, 이후 친노-깨시민-노빠 세력은 근본주의적 종교집단의 행태를 보이며 역사왜곡을 강행하고 있다. 영화 ‘변호인’이 너무 흥행하는 걸 보면 마음이 편하지 못하다.


 


5위) 김영삼 정부


 전두환-노태우-김영삼으로 이어지는 세 대통령에 대한 별명은 각기 ‘돌, 물, 깡’ 이라고 한다. 셋 다 그들의 언행과 품성을 잘 나타내는 단어다. 깡03은 집안의 재력과 패기와 깡으로 민주화를 이룩하고 그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그는 머리가 나쁘기로 소문나 있기도 하다.


 3당 합당 이후 땡깡으로 민자당 대통령 후보가 되고, 평생의 라이벌인 김대중을 꺾은 그는 이후 노태우에게 처절한 칼날을 휘두른다. 이런 뒤통수치기는 이후 한 때 그의 적자 격이었던 노무현이 그대로 반복하기도 하는데, 손을 잡을 때는 미리 상대의 성품을 봐야 하는 법이다.


 흔히들 김영삼의 업적 중 하나회 척결을 높이 평가하는데, 그 속사정은 나름 복잡하다고 알고 있다. 굳이 보자면 경북 기반의 하나회를 제거한 대신 경남 기반의 모 조직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는 식으로 들었다. 물론 그 조직의 문제 정도가 하나회 수준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한국 군대도 문제 많다는 건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김영삼이 기존 군부를 제거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새로운 좋은 군대를 만든 것도 결코 아니다.


 그는 박정희가 한 건 다 문제가 있다는 듯 행동했다. 그래서 매우 강력한 신자유주의 노선을 걸었다. 개방, 개방, 개방... 그의 신자유주의 행보에 견줄 수 있는 정부는 노무현 정부뿐이다.


 그의 무리한 금융경제개방과 치적을 쌓으려는 태도는 결국 IMF 외환위기라는 엄청난 비극을 가져온다. 전후 45년간 한국인들이 피땀으로 일군 자본과 기득권의 정말 많은 부분이 그에 의해 무너졌다.


 IMF는 한국 경제에 어떤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기에 왔던 비극이 아니다. 그저 정부가 관리를 잘못하고, 섣부른 금융개방을 추진하면서 위기에 안일할 때 어느 정도의 비극이 찾아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한 세계적인 사례일 뿐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은 IMF를 ‘충분히 진화하지 못했던 한국 경제에 대한 필연적인 심판’ 정도로 포장하려 들고, 이런 경향은 역시나 신자유주의적인 친노 깨시민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그것은 결코 진실이 아니다. IMF가 오기 불과 1년 전만 해도 한국 경제는 성공신화 속에 있었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 시절의 호황기를 한국은 아직도 되찾지 못했다. 한국 브랜드나 기업은 엄청나게 성장했지만, 김영삼 이후 한국이 이룬 성과는 한국인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덤) 박근혜정부


 항상 ‘박근혜정부’라고 붙여 쓰려니 힘들다.


 현재까지 박근혜정부에 대한 개인 평가는 김대중 정부와 유사한 수준이다. 이명박 정부보다는 확실히 낫다고 느끼고 있고, 그렇다고 노태우 정부 수준은 아니다.


 나는 박근혜정부가 다소 과감함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많은 경우에 안전주의적인 선택을 하는 것으로 보이곤 한다. 그러나 정치력이 모자라지는 않고, 납득 가능한 수준에서 행동하는 편이다. 이런 면에서도 김대중 정부와 유사하다. 선거 후 1년이 지나도록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 역시 유사성이 있다.


 다만 나는 박근혜정부가 힘을 많이 쓸 수 있는 초반에 이룬 게 좀 적지 않나 우려하는 면이 있다. 정부는 대선 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힘이 약해지기 마련이다. 아직까지는 별 가시적인 문제가 없지만, 5년 단임제의 한국에서 성공적인 통치를 하려면 빠른 각종 조처들이 불가피하다.


 아직 박근혜정부는 만 4년 1개월 정도에 해당하는 임기가 남았다. 이 기간 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을지, 성공한 정부로 평가받을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올해에 많은 것들을 해내야 한다. 선거의 여왕이 통치의 여왕이 될 수 있을지는 거의 올해 결정될 것이다.





- 마무리하며


 사실 안타깝게도 민주화 이후 87년 체제에서, 각각의 정부들은 대체로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냉정하게 이야기해 박정희-(최규하)-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군 출신 인사들의 정치가 훨씬 성공적이었다. 물론 군바리 정치가 수많은 문제점과 단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막상 성적표를 놓고 보면 군인들이 더 잘한 면이 너무 많다. 박정희 이전의 이승만과 윤보선은 최악의 대통령들이었고.


 정말 좋아할 수는 없지만, 일베충들이 ‘민주화’를 부정어로 사용하는 것에는 어느 정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하위 중 하위문화에서 말하는 것들은 대체로 현실을 반영하는 면이 있다. 그것이 바람직하다거나 옳다거나 그런 문제는 아니다. 사회적인 기본 현상 중 하나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익보다 민주주의가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수많은 유교 선비스타일 수꼴들이 너무 많은 것을 망쳐 놨다. 민주주의는 그런 게 아니다. 민주주의의 민자도 모르는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자기 맘대로 전용하면서 생겨난 문제가 정말 크다. 민주주의는 밥을 먹여주고 돈을 벌게 해줘야, 그리고 재미있게 해줘야만 하는 제도다.


 각 정부들의 실패엔 미국 유학파들이 앞뒤 분간을 못한 탓도 크다. 뭐가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를 생각하지 못하고, 미국에서 배운 대로 하다 보니 너무 많은 것을 망쳐 놨다. 그들은 미국에서 배운 걸 한국에서 또 그대로 가르치고 발언하면서 문제를 엄청나게 키워 놨다. 어디에나 공부만 잘 하는 돌대가리 멍청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민주주의는 좋은 제도이지만, 반드시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역사상 수많은 민주주의가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 허울뿐인 민주주의가 유지되는 곳도 있다. 나는 모든 정치체계는 근본적으로 각자의 권익과 안전을 위한 것이라 여긴다. 그것이 잘 지켜지는 체계가 좋은 체계다. 각각의 사람들이 과거와 현재를 냉정하고 바르게 평가할수록, 정치는 더 성공적으로 나아갈 확률이 높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영논리와 아집과 각종 관념의 울타리들을 극복할 필요가 있다.


 87체제의 각종 실패들은 시민들의 삶, 특히 젊은 사람들의 희망을 너무 많이 빼앗아갔다. 그 결과 한국은 눈부신 성장을 하는 동시에 큰 잠재성장률 하락을 겪고 낮은 출산율을 가진 국가가 되었으며, 너무 많은 사회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더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주의는 크게 위협받기 마련이다. 깨시민과 일베충이라는, 서로 적대적이지만 너무나 많은 부분이 닮은 파시스트들이 온라인 세계를 온통 잠식한 것도 정치의 실패에서 기인했다고 본다. 정치의 성공이란 그토록 중요한 것이다.




철도노조의 파업과 그 진압은 정당한가?

사회 2013. 12. 22. 18:36 Posted by 해양장미

 나는 지난 포스트, ‘코레일과 철도민영화 사이의 간략한 이야기(링크 클릭)’에서 철도노조의 파업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배제하였다. 그래서 이번 포스트에서는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노조의 파업은 본질적으로 노동자의 권리를 증진시키기 위한 것이다. 이는 법률로 보장받는 것이며, 노동자는 임금이나 근무요건 등 노동조건의 개선을 위해 노조를 만들고 파업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그런데 또한 법률적으로 노동자는 경영에 간섭할 수 없다. 경영에 대한 판단은 주주 및 사용자의 권리이며, 이는 대체적인 대중의 직관에는 위배될지언정 근현대 자본주의의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주식회사란 소유와 경영, 그리고 노동을 분리하는 체제다.


 그렇기에 원론적으로 철도노조는 ‘임금을 올려 달라!’라고 파업을 할 수는 있지만, ‘민영화 반대!’라고 파업을 할 수는 없다. 합법파업과 불법파업의 경계는 노조의 요구사항에 따라 달라진다. 오늘 경찰에 의해 철도노조가 강제진압된 것은 철도노조의 파업 명분이 민영화 반대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철도노조는 민영화 반대를 외치며 파업에 들어갔을까?


 내가 보기에 철도노조가 진짜로 원하는 건 사실 임금인상 등의 처우개선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아무리 봐도 객관적으로 이번 수서발 KTX 법인 분리는 기껏해야 민영화 전 단계지, 본격적인 민영화 단계라 보긴 무리이기 때문이다. 지난 포스트에서 말했듯 이미 5개 자회사가 있는 코레일 그룹에 법인 하나 더 생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진짜로 민영화가 목전에 닥쳐, 불법파업으로 인한 손해를 무릅쓰고 초법적인 판단을 해야만 할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 철도노조가 원하는 임금인상 폭은 6.7~8.1% 정도라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는 근래의 경제상황을 생각해볼 때 쉽게 수용할 만한 인상폭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임금인상을 전면에 주장하면서 파업을 하게 되면, 철도의 공공성 때문에 절대로 대중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결국 그들은 파업의 명분이 필요했던 게 아닐까.


 결국 오늘 철도노조의 불법파업은 경찰에 의해 진압되었고, 이것은 현행법 및 공공의 이익을 위한 조치라 보기에 크게 모자라지는 않을 것 같다. 안타깝지만 일단은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는 것 같다. 철도노조가 충분히 좋은 방식을 선택하지 못했다는 게 개인적인 판단이다. 언젠가는 그들이 더 나은 조건에서 일하면서 보다 승객에게 더 안전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참고로 철도파업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옛~날에 노무현 정부에서도 익히 있었던 일이다. 당시 노무현과 문재인이 뭐라고 했었는지 기사가 남아있으니, 링크를 해 드리겠다. (클릭)  보시다시피 각종 불법파업에 대해 노무현 정부는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정부에 비해 더 강경했고 더 과격하면 과격했지, 결코 덜 과격했던 적은 없었다. 실제 이명박 집권 이후엔 적어도 시위 진압 중 사망자는 없었지만, 노무현 정부 때는 그렇지 않았다. 깨시민들에 의해 시민들의 태평성대처럼 포장되고 있는 노무현 정부 때의 참상을 기록하고 있는 기사를 하나 링크하려 한다. (클릭) 지금 와서 저랬던 민주당과 친노세력이 위선적으로 착한 척 하는 것을 보면 연말에 입맛이 떨어질 지경이다. 이건 아마 많은 이들에게 불편한 진실일 거다.


 한편 지난 포스트에서 넌지시 이야기했지만, 코레일을 공사화시키고 적자를 떠넘긴 이후 철도인력은 계속 감축되어왔고, 그로 인해 철도노동자들의 부담 또한 커진 게 사실이기도 하다. 철도노조가 인력감축으로 불안감을 느끼고 힘들 거라는 예상은 충분히 할 수 있고, 그것을 고임금으로 보상받고 싶어 할 거라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문제가 이렇게 된 건 노무현 정부 때 근본적으로 잘못된 구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파업이 불법이긴 하고, 정치적 의도성이 있는 발언을 하며 국민의 발을 볼모로 잡은 것에는 찬성할 수 없지만 그들이 그런 선택을 하게 된 것도 이해가 가는 면은 있다. 예를 들어 현재의 구조에서 기관사는 한 번 전철을 운행하기 시작하면 긴 시간동안 화장실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데, 이 때문에 사망한 기관사도 2007년에 있었다. 부기관사를 태울 인력이 안 나오기 때문이다. 공황장애 등으로 지난 1년 반 새 자살한 지하철 기관사도 3명이나 된다.


 개인적으로는 다시금 역사와 객차에서 충분한 인력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민영화엔 찬성하지 않는다. 통일호가 달리고, 철도청이 철도를 운영하던 시절엔 역에도 차량에도 충분한 인력이 있었다. 그런 것들이 모두 고용을 창출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가 풍족하고 부드럽게 돌아가려면 모두들 약간의 낭비를 해야 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덴 지혜와 냉정함과 책임의식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게 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문제를 처음 유발시킨 이들이 무책임하게 그들의 신도를 데리고 위선적인 정치적 발언을 해대는 사회에서, 도대체 무슨 문제가 제대로 해결이 되겠는가.



반(Half)자발적 정보통제

정치 2013. 11. 24. 17:38 Posted by 해양장미

 얼마 전 살짝 간만에 연락이 닿은 친구와 정치 이야기를 조금 했다. 나보다는 좀 더 감정적이고 야권 지지 성향이 강한 친구인데, 전기 요금 인상안에 큰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말해주었다. 이번엔 가정용 전기요금은 조금 오르고, 산업용 전기요금이 많이 오른다고. 덤으로 누진체계 변화가 취소되었다는 이야기도 했고. 디테일하게 이야기하자면 주택용 전기요금은 2.7%, 농사용 3.0%, 가로등/심야전력 5.7%, 대형건물 5.8%, 산업용은 가장 많이 올라서 6.4% 오르게 된다.


 역시나 그 친구는 이런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고 했다. 당연한 일이다. 일부러 찾아보지 않는 한, 그 친구가 접하는 미디어나 주변 사람들의 성향을 볼 때 그런 사실은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참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과거 조중동의 여론조작을 염려하던 사람들이 이젠 더 심한 여론조작 전문가들이 되어버렸다. 시대가 변해서 이젠 신문을 챙겨 보는 젊은 사람들은 많지 않다. 심지어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세대조차 종이 신문을 읽는 빈도는 줄어들었다.


 스마트폰은 공짜로 나눠주던 무가지까지 대폭 없애버렸다. 사람들은 이제 자신이 들어가는 커뮤니티와 SNS등에서 많은 시사정보를 얻는다. 소위 조중동의 영향력은 대폭 축소되었고, 사람들이 각자 입맛에 맞는 미디어를 선택하게 된 지도 오래 되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친노ㆍ깨시민 세력이 광범위한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를 거의 장악하다시피 했다는 데 있다. 물론 일베같은 반대 케이스도 있지만, 일베 등은 상식을 가진 누가 봐도 문제가 되는 커뮤니티이기에 그 폐해는 오히려 덜할지도 모른다. 진짜 문제는 겉으로 보기에 별 문제 없어 보이는 커뮤니티들이 가진 정치적 편향성이 과도하다는 데 있다.


 소위 깨시민이라 불리는 노무현교도들은 거의 모든 커뮤니티에 퍼져 있다. 이들의 방식은 정말 단순한데, 철저하게 자신들이 지지하는 친노세력을 정의로운 세력이라 떠받들면서 방해가 되는 세력은 가차 없이 매도하고, 친노세력에 대한 비판을 하는 자들을 무조건적으로 ‘알바’, ‘일베충’, ‘국정원 직원’등으로 낙인찍는 것이다.


 과거 군사정권의 빨갱이 낙인찍기를 벤치마킹한 듯한 이 전술은 굉장히 강력하여서, 노무현 사후 어지간한 커뮤니티들은 이들에게 거의 접수 당했다. 대체로 이들은 상세하고 논리적인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고, 상대를 부정하다 매도하고 낙인찍으며 분노의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인다. 시사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일수록 이 분노의 공감대에 휩쓸리기 쉽다. 심지어 그들은 같이 분노하지 않는 사람을 곧잘 악으로 매도하기까지 한다.


 사실 광신적인 노무현교도의 수는 매우 적다. 과거 국민참여당의 당세는 진보신당(현 정의당)만도 못했다. 그렇지만 그 소수가 만들어내는 여론은 엄청나다. 그들은 먼 과거로 돌아가면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든 적도 있고, 근래엔 친노세력이 민주당을 하이재킹할 수 있게 만들었고, 더 나아가 손학규와 안철수를 밀어내고 문재인을 대선후보로 만들었다.


 물론 그들도 분명한 한계는 있다. 매번 선거에서 패하는 걸 보면 그 정도가 그들의 한계다. 과거 김대중과 노무현을 지지했던 사람들이 박근혜로 돌아선 건 노무현 정부에게 큰 실망을 했고, 그것이 개선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만들어내는 진영논리와 증오감, 광신, 그리고 정부 실패는 선거 결과를 떠나 우리 모두에게 너무 큰 피해로 다가오고 있다.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이 좋다. 그들의 말을 듣고 있다 보면 세상은 모든 게 잘못되었고, 한국은 사람이 살 만한 나라가 아니며 부정한 자들이 권력을 잡은, 태어나서는 안 되었던 나라에 불과해진다. 마음속에 분노를 품게 만들고, 인생을 불행하게 만드는 게 그들의 방식이다. 거기에 휘말려 포교를 당해버리면 그들과 함께 이 사악한 현세를 구원해줄 재림 메시아를 기다리게 된다.

 

 그들을 자신의 편이라 생각하고, 그렇지 않은 쪽에 증오심과 적대감을 품게 된다면 모든 사태를 바로 바라볼 수 없다. 나에 대한 직접적인 피해가 아니라면, 증오심과 적대감을 내려놓는 게 우선이다. 모든 상황을 원점에서 다시 짚어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다면 진실과의 거리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더 이상 정부는 옛날처럼 정보를 검열할 수 없지만, 많은 시민들은 진영논리에 갇혀 맹신과 적대감으로 스스로 정보통제를 당하고 있다.

 



노무현과 NLL - 대북송금특검과 노무현의 인식

정치 2013. 10. 7. 19:21 Posted by 해양장미

 노무현의 NLL관련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자료 삭제 및 봉하 이관 문제에 있어 노무현 전대통령이 문제 소지를 만든 것이 아니었나 정도로 생각 중이다. 일단 본문에서는 그것에 대해 주로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본문에서 우선적으로 이야기하려는 것은 노무현 정권의 대북정책과 줄곧 가져온 군사외교노선에 대한 것이다. 노무현 정권의 군사외교적 성향은 당연히 이명박ㆍ‘박근혜정부’와는 차이가 있고, 내 생각엔 김대중 정부와도 꽤 차이가 있다. 나는 노무현 정권이 이 문제에서 비현실적인 면이 있었고, 그게 참여정부가 크게 좌충우돌하게 된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노무현은 대북문제에 있어 몇 가지 큰 실수를 저질렀다. 그 중에서도 가장 잘못 끼운 첫 단추는 유명한 대북송금특검이었다. 대북송금특검이 당시 한국 사회와 대북관계에 끼친 영향은 상당했고, 그 영향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나는 대북송금특검을 노무현 대통령이 강행하게 된 데에는 노무현의 정치적 아마추어리즘과 정몽준에 대한 악감정이 크게 한 몫 했다고 추정한다. 대북송금특검의 결과 김대중의 민주당과 현대그룹, 그리고 대북정책 등은 큰 타격을 입게 되었고 결국 당시 현대그룹 회장이던 정몽헌은 자살하고 말았다. 그로부터 몇 년 후 그 노무현도 정몽헌의 뒤를 따르게 되었지만. 당시의 분위기를 볼 수 있는 기사를 하나 링크한다.


<영남을 향한 뜨거운 프로포즈>


 피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대통령은 도박을 하면 안 된다. 대통령이 손에 쥐고 있는 판돈은 국가와 국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무현 전대통령은 비현실적인 상황 인식 및 경남지역에 대한 편애로 도박을 걸었고, 그것은 한나라당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이 때 노무현의 태도와 이후 삼성X파일 사태가 터졌을 때의 이중적인 태도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파멸 직전이었던 한나라당이 기사회생하는 데 대북송금특검이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당시 노무현 청와대가 가졌던 태도를 보여주는 기사를 링크하겠다. 대연정 제의까지, 더 나아가 고건의 발목을 잡을 때까지 노무현 정권이 가진 태도는 한결같은 데가 있었다.


<유인태 수석, 박희태 대표 방문>


 이후 대북관계는 급속히 냉각되고 만다. 김대중 정부 때는 남북이 어느 정도 대화도 하고 문제도 풀어가려는 움직임이 충분히 있었다. 재벌인 현대그룹까지 거기에 개입해 있었기 때문에, 그 반발도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러나 현대그룹이 이탈하고 김대중 쪽 인물들이 조사를 받게 되면서 상황은 크게 악화되었다. 한국이 북조선에 대한 무언가를 행사해볼 수 있는 여력이 급속도로 사라졌다. 당시 상황이 얼마나 엉망이었는지는 2004년 1월에 고 김근태 전 의원이 했던 인터뷰를 보면 조금 감을 잡을 수 있다.


<김근태, “김정일 설득할 사람은 DJ뿐”>


 이후 노무현 정권이 가졌던 군사외교 계획은 논란거리가 되었던 ‘동북아 균형자론’이었다. 이는 노무현 정권의 민족주의적 아이덴티티를 강하게 증명하는 것으로, 지금 생각해봐도 현실성이 부족했던 정책이었다. 주체성을 가지겠다는 건 좋지만, 사실 우리가 안 그래왔던 것은 아니다.[각주:1]


 다만 동북아는 세계에서 가장 강한 군사력이 모여 있는 곳이다. 대한민국은 결코 만만한 국가가 아니지만, 그렇다 해도 타국의 눈치를 안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한편으로 노무현 정권은 그 유명한 평택 대추리 사건을 일으킨다. 이것은 다들 알다시피 용산 등지에 있던 주한미군을 이전시키는 과정에서 나왔다. 이 과정에서 노무현 정권은 평택의 자국민을 우선시하지 못했고, 군대까지 투입하는 폭력적인 진압으로 악명을 떨쳤다. 동북아 균형자를 이야기하는 노무현이 먼저 보던 것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와 민족일 뿐, 그곳에 살고 있는 자유 시민들이 아니었다. 정의와 민주주의의 수호자같이 이야기하던 그는 말뿐인 대통령이었다. 이명박은 적어도 시위대를 향해 군대를 투입한 적은 없었다. 당시 대추리 상황에 대한 기사 하나를 링크한다.


<대추리 주민들 “땅 줄더라도 농사지으며 살 수 있도록 해달라”>


 전시작전권 문제도 이와 함께 터져 나왔다. 사실 줄곧 전시작전권을 한국에 되돌려주고 싶어 하는 것은 미국이고, 한국은 그걸 그냥 가지고 있으라고 떠넘기고 있는 형국이다. 여기에는 여러 현실적인 이유가 있는데, 민족주의자들이 단편적으로 이해하기엔 어려운 문제다. 노무현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라는 명대사를 남기며 전시작전권을 빨리 환수하려 했는데, 이 면에서 사실 그는 (아마도 본인의 의도와는 달리) 미국의 편을 든 것이었다. 이라크파병과 대추리 문제에서부터 전시작전권 문제, 그리고 더 나아가 한미 FTA까지 그는 줄곧 미국에게 어떤 주도권도 잡지 못했다. 정확히 말해 미국의 요구대로 끌려 다녔다고 보는 게 맞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후 다른 포스트에서 또 이야기할 일이 있을 것 같다. 이번 포스트에서 저 문제들을 다 이야기할 수는 없고, 실제로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하는 건 노무현이었다.


 대한민국이 북조선에게도, 미국에게도 힘을 뭔가 행사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은 결과는 끔찍했다. 2006년엔 북조선의 1차 핵실험이 터지고 말았다. 이 결과 김대중 정권까지 싸잡혀 평가 절하되고 말았지만, 사실 노무현 정권은 김대중 정권의 외교 및 대북관계를 계승한 게 전혀 아니었다.


 그나마 노무현 임기 말 2차 남북정상회담이라도 할 수 있었던 데엔 김대중의 중재가 큰 공헌을 하였다. 김대중의 선택이 옳았건 틀렸건 그는 일관적이었고, 분명한 선의를 가지고 있었다. 그에 비해 노무현은 정의감이 있었을지는 모르나 미숙했고 여러 번 모순된 선택을 하였으며 비현실적이었다. 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제의 발언이 터져 나온 걸 이해하려면 이런 각종 배경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문제의 NLL로 돌아가 보자. NLL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임의 설정되고 관례적으로 굳어진 황해상의 남북 경계선이라 할 수 있다. 휴전 당시 남북은 해상 경계선을 확정하지 않았고, 한국 및 유엔군은 황해 북쪽의 많은 섬들을 점령한 상태였다.


 한국은 이 면에서 휴전을 위해 북조선에게 북부 섬의 점령 권한을 양보하였다. 예를 들어 휴전 당시 한국&유엔군은 평양에서 80km도 안 떨어진, 대동강 하구에 위치한 석도를 점령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런 섬들을 점령하고 있으면 한국이 북조선에 대해 치명적인 군사작전을 전개할 수 있었기 때문에, 평화를 위해서는 포기해야만 했다. 한국은 결국 백령도를 최북단으로 하는 서해 5도만을 영토로 가져가게 된다. NLL이 한국에 유리한 방식으로 그어진 이유는 해상에서의 우위에 있었다.


 그러다보니 NLL은 북조선 입장에서는 숨이 턱턱 막히는 분계선일 수밖에 없다. 황해도는 서해 5도 덕에 바로 문 앞까지 조여진 상황이라 볼 수 있다. 북조선이 휴전조약을 폐기하고 국제법으로 나가자고 할 경우, 서해 5도의 앞바다는 북조선의 12해리 영해에 들어가게 된다. 북조선은 최소한의 군사적 분쟁으로 이를 국제분쟁으로 끌고 갈 수 있는 여지를 가지고 있다. 한국은 북조선에 비해 훨씬 우위에 있는 군사력을 가지고 있지만, 군사적 충돌은 하지 않는 게 좋다.


 이번 NLL 문건에 있어 노무현의 발언이 크게 비화가 된 것은 NLL을 딜의 대상으로 삼은 것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외교적 발언이라는 게 두루뭉실한 데가 있고, 이후 장관급 추가 협상에서 NLL은 지켜졌지만 시비가 걸릴 정도는 된다. 노무현은 NLL 근처에 평화수역을 조성하고, 대신 해주항을 개방해달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다. 결론적으로 성공하지는 않았지만 이게 성사되었을 때 어떻게 되었을까?


 내 견해는 다음과 같다. 노무현의 안보 의식은 느슨한 데가 있었고, 북조선에 대한 인식도 어느 정도 과하게 낭만적이었다. 등면적 공동어로구역을 만드는 대신 해주항을 개항하게 되었다면, 그것은 적어도 안보에는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현실적으로 NLL은 굉장히 첨예한 적대적 해상경계선이다. 북조선과의 전쟁 가능성이 현존하는 한, 어떤 형태로든 NLL을 양보하는 건 위험할 수밖에 없다. 군사적 측면에서 서해 5도는 지극히 중요하다. 만일 공동어로구역 때문에 보안이 약화되어서 북조선의 기습 작전으로 서해 5도가 점령된다면, 한국은 바로 수도권이 위험해진다. 그런 일이 없어야겠지만 전쟁이 벌어진다면 초반에 서해 5도를 사수하는 것은 전략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공동어로구역이 생긴다면 서해 5도는 유사시 더 위험해진다.


 DMZ와 NLL의 가장 큰 차이는 DMZ는 명목상 완충지대지만 NLL은 그런 거 없다는 것이다. NLL은 바로 황해도와 서해5도의 좁은 해역 사이에 있고, 워낙 좁기에 완충지대가 있기 어렵다.


 한편으로 개성공단이 있는 이상 솔직히 해주항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있으면 물론 더 좋지만 없다고 해서 별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는다. 해주항을 개항할 경우 북조선도 위험을 더 감수해야하긴 하지만, 어차피 우리는 북조선을 먼저 공격할 계획이 없다. 만약 우리가 선공할 계획이 있다면야 해주항을 개방했다면 유리했겠지만, 당연히 그런 목적은 없었다.


 또 일부가 주장하듯 해주항을 평화적인 항구로 만들었다면 군사적으로 유리할 수 있었을까? 답은 NO. 우선 해주항에서 눈에 보이는 군함들을 치울 수는 있어도, 거기에 주둔한 병력을 없애는 것은 북조선 입장에서 불가능할 뿐더러 전쟁이 발발하는 동시에 해주항은 군사적인 항구로 변해버린다. 쉽게 말해 계산해보면 군사적으로는 전혀 이익이 아니라는 것.


 어쩌면 노무현은 해주항을 김정일이 양보할 리 없다고 생각해서 그런 발언을 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또한 그게 아니라도 노무현이 의도적으로 안보를 포기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것이 정치적 쟁점으로 과하게 타오르고 있는 건 별로 좋은 현상이 아니다. 물론 화약에 앞뒤 안 가리고 불붙인 문재인이 책임지고 국회의원 사퇴하거나, 최소한 반성하는 성명을 내는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1. 소위 진보주의자들이 가져왔던 가장 비현실적인 인식이 대한민국이 미국에 대해 주체적이지 못하다는 것인데, 사실 굳이 보자면 한국은 어느 정도 미국을 착취해온 나라에 가깝다. [본문으로]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집권 이후, 김대중 정부의 모든 통치행위는 IMF시대라는 명분 아래 가려졌다. 수많은 개혁진보 세력은 IMF를 극복하고 노무현 정권이 들어설 때까지 자신들의 이념적 선택을 충분히 드러내기가 어려운 면이 있었다. 그래도 ‘재벌을 개혁한다.’는 명분은 유지되었던 것 같다.


 당시 개혁진보 세력은 자유주의 세력과 사회주의 세력의 연대 형태에 가까웠다고 본다. 둘은 재벌과 과거 군사정권식의 발전 모델에 대한 적대감으로 엮여 있었다. 참여정부의 각종 정치적 선택에 크고작은 영향을 줬다고 추정하는 자유주의자들은 군사 정권이 한국에 너무 많은 부패를 만들었기에 큰 문제를 가지고 있으며, 재벌이 소유한 각종 특권들을 빼앗고, 기업 지배 구조를 소위 ‘선진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이 움직임은 이미 노무현 집권 이전 소액주주운동부터 시작하여, 근래의 경제민주화까지 이어지는 것 같다.


 그런데 막상 노무현 정권 자체는 자유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니었다. 퇴임 이후 노무현이 밝힌, 현재는 사라져버린 그의 항변에 의하면 그가 따른 이념 체계가 따로 있었던 것 같다[각주:1]. 그나마도 취임 시기부터 단일한 노선을 잡은 것은 아니고, 충분히 잘 검증된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여기서 사상이라는 것은 통치자로서 가져야 할 정치철학 및 사고방식을 의미한다.


 노무현 본인은 자신을 역사의 과오를 바로잡고, 새로운 미래를 여는 대통령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노무현 지지자들과 노무현의 공통점은 기존 군사정권과 한국식 문제점들에 대한 적대감이었다고 본다. 노무현이 대중적 인기를 잃는 가운데서도 소위 노빠들에게 지속적이고도 열광적인 지지를 계속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적대감을 충족하는 데는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모습을 계속 보였기 때문이라고 본다. 비록 그것은 이성적인 통치행위라고 보긴 어려웠지만.


 그런데 실제로 노무현의 통치가 성공적이었냐 하면 그것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노무현 정부는 총체적인 실패를 거듭했고, 거의 완벽하리만큼 민심을 잃었다. 노무현 정부의 과오를 적자면 여기서부터 몇 페이지를 할애해도 모자라다. 시기별로 차이는 있지만 한 때 노무현을 좋아했던 사람들 중 대부분은 노무현에게서 어떤 형태로든 이탈하였다. 문제는 남은 세력이 굉장히 광신적이었다는 데 있다.


 노무현과 친노세력을 선으로, 한나라당-새누리당과 범보수세력을 악으로 규정하려는 행위는 굉장히 일반적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그런데 문제는 이건 논리적 근거를 가지지 못한, 전형적인 편 가르기 행위인 동시에 광신 종교적인 양상을 띤다는 데 있다.


 만일 새누리당과 조중동, 그리고 삼성이 단순한 악이라면 당연하게도 노무현 역시 악이 된다. 노무현은 대북송금특검, 사학법 투쟁 등 여러 번에 걸쳐 한나라당의 편을 들었을 뿐만 아니라 대연정까지 제의했다. 또한 중앙일보나 삼성과도 굉장히 가까웠고, 중앙일보 회장 홍석현을 주미대사로 임명했을 뿐만 아니라 삼성 문제가 터졌을 때도 삼성 편을 들면서 노회찬과 대립했었다. 이런 행위들은 당시에 수많은 노무현 지지자들을 이탈하게 했었지만, 광신적인 비호세력 쪽이 더 입심이 강했었다. 그리고 노무현의 죽음과 함께 이 광신성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었다. 기묘하게 좋은 쪽으로 포장되어서.


 이명박 대통령이 민주주의 국가의 지도자로 정치력이 부족했던 것은 맞다. 그는 여러 번에 걸쳐 반대 세력이 힘을 얻을 만한 빌미를 제공하였다. 자살한 전 대통령의 이름과, 슬픔 속에 명을 달리한 것으로 보이는 전전 대통령의 이름이 반대파의 구심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사실 한동안 드셌던 Anti MB 연대는 생산적인 사상을 가지거나 뚜렷한 대안을 가진 게 아니었다. 죽은 노무현은 신격화되었기 때문에 생전에 저질렀던 과오와 잘못들은 묻혔다. 광신적인 지지자들은 여러 곳에서 목소리를 높였고, 반론과 반성을 제기하는 자들을 ‘알바’로 매도하고 비아냥거리곤 했다. 이 매도와 비아냥은 지금도 어디서나 일상적이다. 다만 ‘알바’라는 말이 ‘일베충’이나 ‘국정원 직원’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과거 한 때 자칭 진보개혁 세력은 토론에 적극적으로 응하고, 더 나은 사회적 대안을 찾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그런 시대는 오래 전에 끝났다. 이성적인 이들은 더 이상 친노세력을 지지하지 않는데, 인터넷에서 친노세력과 적대하게 되면 금방 ‘일베충’같은 소리를 듣는다. 소위 깨시민들이 공공연하게 일삼는 비아냥과 매도, 광신성은 도를 넘은 지 오래고 토론이나 논의 자체를 불가능하게 할 정도다. 이로 인해 인터넷은 같은 비아냥과 매도에 능한 일베충 등과 친노세력이 각종 세뇌와 선전을 일삼는 각축장이 되었다.


 혹자는 사람들이 보수화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과거 소액주주운동을 하던 자유주의자들을 기준으로 할 때는 단순히 붙는 Tag가 바뀐 게 맞다. 한 때 진보 소리를 듣던 사람들이 그 태도 그대로 살면서 보수로 이름이 바뀌었다. 전성기에 친노세력은 근본적으로 단일 이념집단이 아니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얽혀 있었다. 그리고 그 중 사회주의적인 자들이 결국 노무현 사후 주도권을 잡았다고 보는 것이 옳다. 자유주의자들은 한 때 다수가 MB로 갈아탔지만, MB는 자유주의자들을 실망시켰다. 물론 갈아탔던 건 자유주의자들뿐만은 아니었다.[각주:2]


 금융위기 이후 정치권의 언어들은 보다 왼쪽으로 이동했다. 이 과정에서 사회주의자들은 친노세력의 언어와 사상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그러나 이런 언어들과 관념들이 어떠한 현실성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세력을 유지하고 키우기 위해 보다 인기에 영합하는, 자극적인 말들이 나돌아 다녔고 반 MB 정서는 이런 자극적인 말들과 잘 융합되었다. 그러나 그 한계는 결국 본선에 가서는 분명해졌다. 현실적인 이야기에서는 약할 수밖에 없는, 반성도 회고도 없는 사상누각의 이념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자칭 진보개혁세력은 진실을 보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여전히 자신들만이 옳고, 자신들만이 민주주의를 대변하며 과거의 과오들은 저 멀리 치워 놓는다. 보편적인 시민들은 과거를 대하고 반성하는 면에서도 오히려 박근혜 대통령이 낫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지지율은 많은 것을 말해준다.


 냉정하게 이야기해서 진보세력은 김대중 이후 빠른 속도로 낙후되고 고립되었다. 한 때 진보세력에 포함된 것으로 인지되던 비교적 유능한 사람들은 거의 다 떠났다. 그들은 박근혜 대통령에 만족하거나, 안철수를 지지하거나, 아니면 다른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또는 이 모두를 동시에 할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도 박근혜 대통령에 만족하고 있지만 새누리당에 제 2의 박근혜가 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기에 대안 또한 찾고 있다.


 진보개혁세력이 나아질 여지가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좀 어려운 면이 있다고 본다. 무엇보다도 깨시민들의 안철수 견제가 너무 강하다. 그리고 새누리당은 장기집권을 위해 계속 깨시민과 일베충이라는 적대적 공생집단을 계속 안고 갈 수가 있다. 깨시민이 날뛰는 한 새로운 대안 개혁세력이 힘을 얻는 게 쉽지 않다. 그들의 광신성과 비아냥과 매도를 이겨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새누리당이 본선에서 그들을 꺾는 건 결코 어렵지 않다. 모든 면에서 상대 자체가 안 된다. 절대적으로 불리했던 탄핵 정국에서도 당시 한나라당은 나름 선방하면서 의석을 따냈었고, 그 다음부터는 친노세력을 상대로는 불리하건 유리하건 간에 일방적인 승리를 따냈다.


 첨언하자면 민주 공화정에서 정치인이란 숭배의 대상이 되어서는 매우 곤란하다. 정치인은 기본적으로 탐욕스럽고 언제든 변할 수 있다고 전제해야 한다. 그러나 노빠 깨시민들은 이 기본 원칙을 너무 심각하게 어기고 있다. 사실 내가 생각하기에 노빠들이 원하는 정치 제도는 일종의 전제정이다. 그들은 왕을 섬기길 원하며, 친노 왕가가 지속되기를 원한다. 노무현에 가깝냐 아니냐가 그들이 정치인을 판단하는 기준이다. 또한 이들은 민주주의라는 구호를 전면에 내걸지만, 실제로는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고 선거 패배를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들은 대통령 후보를 안철수에서 문재인으로 바꿔버릴 정도의 힘이 있다.


 한편으로 근래의 정치권 모습을 보면 누가 진보고 누가 보수인지 도저히 모르겠다. ‘박근혜정부’는 고용률을 높이고, 정규직 4만명 늘리고, 재벌 총수들을 입건하고, 각종 산적해 있는 사회 문제들을 해결하는 가운데 증세를 통해 현실적으로 복지를 늘리려 하고 있다. 게다가 이민자 문제, 여성 문제 같은 데도 새누리당이 더 진보적이다. 솔직히 박근혜정부는 미국으로 치면 공화당 정부보다는 민주당 정부에 가까워 보인다. 그런데 한국 민주당은 도대체 뭐하는 정당인지 모르겠다. 그나마 차별금지법 입법한다 했을 때는 조금 좋게 보려고 했는데, 반대에 좀 부딪쳤다고 패기도 신념도 없이 패망 정당 인증하는 것처럼 그냥 접어버리고, 증세안에는 세금폭탄이니 뭐니 하면서 일단 반발부터 하고, 이민자 문제나 여성 문제 등은 아예 안중에도 없어 보이고, 고용률을 늘리는 방안 같은 건 꿈도 못 꾸니 하는 짓 보면 어느 쪽이 과연 진보인가? 싶다. 혐오스러운 깨시민들은 걸핏하면 저소득층이 어째서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거냐는 식으로 비아냥거리지만, 도대체 친노세력이 서민을 위해 해준 게 얼마나 있는지부터 먼저 묻고 싶다.



이어지는 부연글 : 자유주의자의 변화와 노무현의 영향 (클릭)




  1. 당시 ‘민주주의 2.0’이라는 홈페이지에서 퇴임 후 노무현이 잠시 직접 활동했었다. 이 과정에서 심상정 의원과의 참여정부에 대한 토론이 있었는데, 조금 진행되려는 와중에 노무현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면서 중단되었고, 이후 그의 투신으로 다시는 재개되지 못했다. 개인적으로는 노무현은 민족주의, 국가주의, 중상주의 정도의 노선을 가진 것 같다. [본문으로]
  2. 다양한 국면에서 바라볼 때, 노무현 정부는 이명박 정부에게 스스로 바톤을 넘겼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지만 노무현 정부는 반쯤 노골적으로 고건의 출마를 막고, 정동영의 발목을 잡았다. 또한 노건평과 이상득 간의 밀약이 있었다는 썰도 공공연했다. 개인적인 추론으로는 만약 2008년에 이재오가 낙선하지 않고 촛불시위가 그리 커지지 않았다면, 그리고 노무현이 자살하지 않았다면 많은 상황이 변했을 것이다. [본문으로]

문재인이 당선되려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

정치 2013. 6. 10. 22:45 Posted by 해양장미

 대선이 끝난 지도 반년이 다 되어간다. 개인적으로 선거 당시 문재인 후보를 상당히 비판적으로 지지했던 입장이었지만,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되어 이 정도 할 줄 알았다면 문재인 후보에게 투표를 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만족스러운 건 아니라도 내 기대보단 잘 하고 있다. 실제 지지율도 60%가 넘었다. 상대적으로 문재인은 존재감이 없어졌다.


 어쨌든 당시엔 문재인 후보의 패배가 잠시나마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면이 있었고, 한동안 패배의 이유를 추론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려 애썼던 시간이 있었다. 그리고 좀 시간이 흘러 감정적으로 거리를 두고 보니 문재인은 그렇게 해서는 절대 이길 수가 없었다. 선거를 잘못 치른 것이다.


 만약 노무현을 지지했던 사람들을 문재인이 온전히 흡수하였다면 문재인은 큰 표차이로 이겼을 것이다. 어차피 그사이 투표권을 가지게 된 20대는 문재인을 지지했다. 대선에서는 처음으로 도입된 해외 부재자 투표도 문재인이 승리했다. 여기에 반 MB 정서 등, 여러 유리한 입장에서도 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럼 문재인의 실수들을 꼽아보자.



1) 대선에 출마하면서 현충원을 찾았을 때, 이승만과 박정희 묘소를 참배하지 않았다.


: 대통령 후보라면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소수의 이승만 지지자뿐만 아니라, 정말 많은 박정희를 좋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지지 가능성을 반영구적으로 멀리 밀어버린 사건이었다. 또한 시작부터 분열과 갈등의 이미지를 심음으로 평화적인 사람들의 지지 가능성도 멀어졌다. 박근혜는 김대중, 노무현 묘소 일부러 참배 안하는 것 같은 밴댕이짓은 안했다.



2) 어이없는 경선 모바일 투표 과반 전승


: 이 때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자들과 손학규 지지자들이 다수 이탈했다. 탐욕스러운 친노세력의 바지사장으로 비춰졌던 것이다. 민주당은 이 시점부터 분열되었고, 문재인은 이 당 내분을 수습하는 데 실패하였다.



3) 안철수와의 관계


: 문재인은 대선 기간 내내 안철수만 찾았다. 그 결과 안철수가 대선의 주역으로 비춰졌고, 문재인은 제 1 야당의 후보로 무게감 있는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물론 아름다운 단일화에 실패하기도 했다. 대선후보로 혼자 서는 데 실패한 것이다. 오히려 안철수 쪽이 언제든 독자 출마도 가능하다는 듯 당당하고 의연한 모습을 많이 보였다.



4) 이정희와의 관계


: 토론에서 비록 사실관계가 ‘옳을’지언정 충분히 ‘예의’를 갖추지 않은 이정희에 대해, 시민들은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문제는 문재인이 여기서 이정희와 거리를 두지 못함으로 인해 도매급으로 묶여버렸다는 데 있다. 더구나 이정희는 적잖은 국민들에게 ‘종북’으로 낙인찍힌 상황이었는데, 문재인까지 여기에 휘말려 버린 셈이다.



5) 친북성향


: 평창 올림픽을 북조선과 같이 치르겠다는 둥, 바로 북조선 요구를 들어주고 남북대화부터 하겠다는 둥 북조선에 적대적으로 변한 민심을 읽지 못하고 친북 성향의 태도를 보였다. 현재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올라간 것도 북조선에 대해 주도적인 태도를 보이고, 성공적인 결과를 얻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6) 심각한 경제적 무지 및 좌파성향


: 부동산 가격이 더 떨어져야 한다는 둥, 각종 기업들의 순환출자를 바로 폐지해야 한다는 둥의 어이없는 공약과 발언 등으로 주로 40대 이상 중산층, 자산가 및 투자자 계층의 폭발적인 이탈을 초래했다. 소위 기득권에게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는 좌파 아마추어리즘이 드러난 것이다. 참고로 한국은 부동산 소유가구가 소유하지 않은 가구보다 2배는 많으며, 순환출자를 폐지시킬 경우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는데다 외국 자본의 적대적 M&A에 대한 대응도 더 어려워진다.



7) 지역적 민심이반


: 평창 올림픽이나 북조선 문제 등 때문에 강원 및 경기 북부 지역의 민심이반이 두드러졌고, 대선의 주요 격전지인 충청권에도 전혀 어필하는 게 없었다. 역대 충청을 잃고 대통령이 된 사람은 없었다. 문재인은 이회창과 선진당을 흡수한 박근혜에게 충청권에서 일방적으로 밀렸고, 경남에서 어느 정도 선전을 했지만 결국 선거에서 이길 수 없었다.



8) 명성의 부족


: 대선 2년 전, 박근혜를 모르는 사람은 한국에 거의 없었지만 정 반대로 문재인을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문재인은 한명숙이나 안희정 정도의 인지도도 없는 인물이었고, 현직으로 정치를 하던 인물도 아니었다. 또한 대선 과정에서도 문재인은 자신의 이름값을 높이려는 시도가 별로 없었다. 문재인은 안철수만 불러댔고, 토론에서도 이정희가 더 두드러져 보였으며 이미 고인이 된 노무현이 문재인보다 더 어필될 정도였다.



9) 광적인 친노-노빠-깨시민들


: 몇몇 구역을 제외하면 온라인을 거의 점령하다시피 한 이들은 대단히 편파적인 정보를 마구 퍼뜨리면서 타 후보를 공격했으며, 그 결과 역효과를 냈다고 보인다. 친노세력은 이들을 이용해 민주당을 잠식하고 손학규를 떨어뜨리고 안철수까지 사퇴하게 했지만, 박근혜와의 본선 무대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는 자들이었다. 문성근-명계남-탁현민 등은 아예 광화문 유세 때 ‘무대 근처에 민주당 국회의원은 아예 오지도 말라’ 라는 식의 정신 나간 소리를 했고, 재야인사들은 단일화 당시 안철수에게 지속적인 압력을 가했으며 기타 온갖 이중잣대와 만행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10) 기득권을 포기하지 못함


: 박근혜가 국회의원 자리까지 내려놓으면서 패배하면 정계은퇴를 하겠다고 비장한 모습을 보인 반면, 문재인은 초선 국회의원 자리를 내려놓으라는 말에도 불구, 권력에 집착하는 듯한 자신감 없는 태도를 보였다. 또한 친노 인사들이 임명직 불참 선언을 해야 한다는 말도 있었지만,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애초에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문재인은 어차피 친노의 바지사장 또는 얼굴무슈[각주:1]였고, 권력에 대한 친노의 욕심은 그 어떤 정치세력보다도 심하기 때문이다.



 이런 모든 문제에도 불구하고 문재인이 48%이나 받았던 건 기본 구도 자체가 워낙 반 MB정서가 강했고, 박근혜 캠프가 말을 중간 중간 바꿔가면서 실수를 한 면이 있었던 데다 안철수의 인기를 흡수한 것도 커서였다. 물론 문재인 후보 자체의 매력도 있었지만, 문재인이 좋아서 찍은 사람은 결국 대체로 야권 후보를 찍었을 사람이었다 할 수 있다. 대선 1년 전 지지율을 보면, 문재인이 받은 득표율은 결코 문재인 후보가 가진 지분이었다 하기 어렵다.


 문재인이 선전한 것은 아니다. 문재인과 박근혜의 득표율 차이는 3.6%였다. 이는 노무현과 이회창 사이의 2.3%이나 김대중과 이회창 사이의 1.6%보다 훨씬 큰 차이다. 문재인은 애초에 대통령감도 아니었고 - 그의 다른 면보다는 그의 정치 경력이나 명성, 그리고 대통령이 되려 노력했던 세월이 그렇다는 것이다. - 그렇다고 안철수처럼 신선한 느낌이 있는 후보도 아니었다.


 한국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굉장히 진보적인 편이다. 좌파적이라는 게 아니고 새로운 가치, 새로운 기술, 새로운 시대를 항상 추구하려 한다. 박근혜는 5년 전의 실패를 딛고, 박정희의 그늘조차 벗어나며 어쨌든 표면적으로는 유신에 대한 사과도 했고, 대한민국 첫 여성대통령을 만들어보자는 제안 또한 내세웠다. 그러나 문재인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문재인은 이승만과 박정희를 지지하는 자들을 배격하고, 부동산 소유주들도 대기업도 평창도 투자자들도 모두 내치고, 편을 갈랐다. 참여정부 때의 사회혼란과 분열이 다시 찾아올 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시민들은 그런 문재인을 지지할 수 없었다.


 문재인이 당선되려면 위의 문제들을 저지르지 말았어야 했다. 반대로 했어야 했다. 그렇다면 문재인은 질 수 없었을 것이다. 질 수밖에 없었던 행동을 너무 많이 했기에 그와 친노세력은 결국 패배하였고, 역사의 뒤쪽으로 밀려나고 있다.



  1. 프랑스어에서 마담은 여성대명사, 무슈는 남성대명사. [본문으로]

 친노-노빠-깨시민들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가 노무현에 대한 비판을 못 참는다는 데 있다. 그들에게 노무현은 순교자이며, 무조건 존중받아야 하는 종교적 대상이 되어 있다. 그러나 역대 다른 모든 대통령이 비판받을 수 있듯, 노무현도 비판받을 수 있다. 김대중도 마찬가지다.


 객관적으로 노무현에게 좋은 평가를 해야 할 의무를 가진 사람은 없다. 노무현이 정치를 잘했다면 정권교체가 되지도 않았을 거고, 여러 정책이 실패하지도 않았을 거고 죽을 필요도 없었을 거다. 노무현 지지자들은 노무현을 선으로, 이명박을 악으로 바라보기에 이명박 정권이 노무현을 공격해 죽었다고 하지만, 군사정권 때 양김이 받았던 탄압에 비하면 그건 탄압도 아니었다.


 그런데 강용석이 옛날에 노무현을 좋게 평가하지 않았던 방송이 끄집어내어져 화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관련 기사는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newsview?newsid=20130524150708994 을 보시면 된다.


 본 기사에서 PD나 곽 교수의 언행이 바람직했다 생각하지 않는다. 강용석은 노무현의 명예를 딱히 크게 훼손한 것도 아니고, 그의 개인적인 추론이나 판단을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방송 자체가 노무현에 대한 상반된 평가를 다루는 것임에도 불구, PD나 곽 교수는 노무현 편을 들고 있다.


 강용석이 노무현 편을 들어야 할 의무가 있을까? 노무현이 ‘대통령이라기엔 너무 격정적이어서 적을 많이 만들었다.’ 라는 평을 듣는 게 부당한 인물이었을까? 노무현의 자살에 대한 추론은 나와 강용석이 다르긴 하지만, 사고방식에 따라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긴 하다.


 고인을 왜 굳이 비판하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긴 하겠다. 그러나 저 방송 자체가 노무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또한 고인이라는 게 무조건적인 방패가 될 수 없다. 노무현은 개인이 아닌 공인이었고, 사망 후에도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고, 그에 대한 추모 열기나 동정심이 냉정한 평가에 방해 요소로 작용했다. 한 정부와 대통령의 공과가 평가될 수 없다는 건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한편으로 심적으로 미성숙한 사람일수록 달콤한 말만 듣기 좋아하고, 내 생각과 똑같은 말만 듣고 싶어 하는 법이다. 친노 노빠 깨시민들의 행태가 그러하다.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친인들과 이야기를 할 때면 항상 느끼는 게, 깨시민류나 민주당 지지계의 공격성에 대해 극심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들고, 내 이야기를 듣게 하려면 먼저 상대의 생각을 인정하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미성숙한 깨시민들은 자신이 옳다고 믿기에 그 신앙대로 광신도짓을 한다.


 노무현에 대하여, 강용석과 비슷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세상엔 정말 많다.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다고 바로 적대감과 공격성을 드러내는 게 친노 노빠 깨시민들의 행태다. 그러니까 친노는 탄핵정국 이후 선거에 이겨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거다. 그들은 국민이 자신의 것인 양 포장하지만, 막상 국민은 친노를 싫어한다.



친노의 저열함과 운명

정치 2013. 5. 22. 14:16 Posted by 해양장미

 지난 일요일, 고 노무현 전대통령 추모 집회에 민주당 대표 김한길이 참석했다가 멱살을 잡히는 사건이 있었다. 당연하게도 멱살을 잡은 사람은 강경노빠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김한길에 대해 어떠한 긍정적인 판단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친노의 저열함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결국 당대표 멱살을 잡는 양상으로까지 드러났다.


 정치란 본래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려는 노력이며 그 자체로도 수많은 갈등을 만들어낸다. 김한길과 친노 사이에 갈등이 있었으나 김한길이 나쁘고 친노가 좋다고 할 수 없다. 친노가 저지른 잘못을 열거하자면 정말 하루 종일 해도 모자랄 것이다.


 친노세력에 비해 훨씬 정당하게 당대표가 된 김한길이 멱살을 잡히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는 결국 한줌 친노세력의 입지를 더욱 축소시킬 수밖에 없다. 물론 민주당 자체가 그 생명력을 다한 정당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민주당이 가지고 있는 적잖은 지분은 더 이상 친노의 것이 아니다.


 분노조절장애를 심각하게 안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깨시민들은 도리어 김한길의 멱살을 잡은 그 사람을 비호하고 있다. 언제나 그들의 행동패턴은 그런 식이다. 자신들이 모든 법률과 규범 위에 서있다. 결국 그런 자들이 전투적으로 나서가며 문재인을 소환해 지난 대선후보로 앉혔고, 박근혜에게 정권을 가져다 바쳤다.


 대선 1년 전 시점에서 이명박의 최대 라이벌은 고건이었고, 박근혜의 최대 라이벌은 안철수였다. 그 라이벌들을 제거해주고 이명박과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것은 친노세력이었다. 인터넷 친노는 자신 외의 모든 정치적 발언들을 용납하지 않아왔고, 걸핏하면 상대를 ‘알바’로 매도했다.


 그 결과가 지금이다. 친노는 사멸 앞에 놓여있고, 친노에 잡아먹힌 민주당도 이제 그 삶을 다한 것 같다. 저열함은 저열함에 어울리는 운명을 불러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