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브금

 

https://youtu.be/oTLmXyjOobw

 


 

 IMF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민주/개혁/진보 계열이 문화권력을 계속 쥐고 있었습니다. 김영삼의 3당 합당은 실리적이었으나 명분이 없었고, 너무 많은 (당시의) 청년들에게 배신감을 느끼게 했으며, 집권한 김영삼 정권은 외환위기로 무너진 데다 이회창하고까지 대립하면서 김대중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줬고, 집권한 김대중은 전향적인 문화정책을 펼쳤으니까요.


 

 노무현 시절이 지나 이명박과 한나라당은 집권할 수는 있었지만, 문화적인 열세를 만회하지는 못했습니다. 국정원 동원해서 인터넷 공작하고, 공중파 장악하고 그런 식으로는 했습니다만, 문화권력을 전혀 못 가져오고 역효과만 잔뜩 났지요.


 

 그 때부터 이야기는 많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한나라당은 노년층이 주로 지지하는 정당이고,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청년층이 성장하면 한나라당의 미래는 없을 거라고요. 이후 박근혜가 집권을 이었음에도 이름 바꾼 새누리당은 아무 것도 제대로 안 했습니다. 뭘 똑바로 하기는커녕 문화계 블랙리스트 만들고 세월호 대응도 엉망으로 하고 진박공천하면서 미래를 없애 버렸지요.


 

 현재의 20대는 30대와 40대가 일반적으로 가지는 정치적 포지션을 이해하기 좀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겪어온 세월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꽤 많은 30/40대가 느끼기에, 문재인 당선 이전의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은 청년이었던 그들이 느끼던 구시대적 권위주의와 억압의 상징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외환위기의 주범이었고, 그럼에도 남탓과 책임회피만을 반복한 군사정권의 잔재였습니다. 이러한 부정적 이미지들의 디테일이나 정확성의 문제를 지적할 수는 있겠지만, 한나라당이건 새누리당이건 청년들이 그렇게 느끼는 문제요소들을 제공하였고 미래를 버렸습니다. 이미 이명박 정권 말기부터 이명박 지지층 중 다수가 한나라당에 대한 청년층의 부정적 정서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박근혜의 당선으로 새누리당은 정권을 이어나갈 수는 있었지만, 이미지는 더 망가져버리고 말았고요.


 

 현재의 3040은 어릴 때 각인된 기억들이 있는 것입니다. 정치 고관심층이거나 그럴 만한 계기가 있지 않고서는 한 번 가진 정치적 성향이 잘 변하지 않습니다. 특히 맘카페의 정치적 편향성이 심각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는데,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들이 대체로 사실 정치에 대해 알아보거나 관심가질 시간이 애초에 별로 없고 정치 고관심층도 거의 없다는 데 있습니다. 평균적인 20대 남성과 평균적인 아이엄마를 놓고 대조해보면, 정치에 대해 알아볼 시간이건 에너지건 관심이건 엄청나게 차이 납니다. 애엄마들끼리 모여서 정치 이야기를 별로 하지도 않고, 하게 되더라도 반론이 오고가고 다투거나 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대체로 최소한의 관심만 두는 맘들이 맘카페를 통해 편향된 정치적 시각을 가지고 유지하게 되는 건 그리 어려운 원리에 의한 게 아닙니다.

 

 그러나 조금씩 상황이 변하고 있습니다.


 

 관련하여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이겁니다. 민주당 PC좌파들이 장악한 세상, 빡빡하고 재미없잖아요. 문화적으로 발전하고 있나요? 자유가 늘어나고 있나요? 나오는 픽션, 예능은 예전보다 재미있나요? 세상에 자애가 가득하기라도 한가요? 이게 제대로 된 나라인가요? 꿈과 사랑이 가득한 파란나라라도 도래하였나요? 오직 주식시장만 파랗지요.


 

 지금 정치에 처음 관심을 가지고 중립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사람들한테는요. 민주당은 도덕과 정의와 올바름을 그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능욕하는 권력자들입니다. 위선이야말로 선에 대한 가장 기만적이고도 모독적인 행위지요. 정유라는 문제 터지니까 사과라도 제대로 했었는데, 조민은 그렇지도 않습니다. 조국은 입에 침도 안 바르고 뻔뻔하게 거짓말을 합니다. 멀끔한 얼굴로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을 하니까 속는 사람도 많지요. 이걸 지켜보는 청년들은 속이 터질 수밖에 없습니다.


 

 문재인이 집권해서 좋아진 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문화, 경제, 재정, 금융, 행정, 치안, 외교 등등 모든 분야에서 단언컨대 역대 최악의 정권입니다. 대깨문은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광신집단이고요.


 

 커다란 정치적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문재인이 집권하기까지, 정치에 대해 관심을 처음 가지는 청년들은 대체로 자연스럽게 민주당 지지층이 되었었습니다. 한나라-새누리당 지지층이 되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소수였습니다. 그러나 이젠 그렇지 않습니다. 현재의 10~20, 특히 남성들은 민주당에 대해 대체로 부정적입니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부류는 상대적으로 소수입니다.



 민주당은 그들이 붙잡고 있던 문화 전반 및 각종 사회적 구성요소들과 함께 천천히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이 붕괴는 너무 광범위하고 끔찍하기 때문에 보는 입장에서는 영 정서적으로 좋지 않긴 합니다만, 이젠 그렇게 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문재인이, 친문이, 민주당이 나쁘다는 것은 차츰 상식이 되어갈 것입니다. 물론 정치에 대해 관심이 있고, 정상적인 지능과 감각을 가진 사람들은 이미 갖춰야 할 상식을 갖추고 있을 것입니다.

자유주의라는 대안

정치 2018. 8. 31. 22:03 Posted by 해양장미

 추천 브금

 

https://youtu.be/UBQUeVPdYvo

 


 

 이 곳을 자주 찾아주시는 분들은 다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만, 나는 자유주의자입니다.

 

 나는 동성애, 낙태, 안락사 같은 논제에 있어 모두 진보적인 입장입니다. 나는 정치적 자유주의자이기에 다원주의자이며 가능한 타인끼리의 간섭은 줄여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남이사 뭘 하건, 그게 나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되지 않는다면 신경 쓰지 않는다는 입장이지요.



 다원주의에 대한 - 특히 사회문화적인 면에 대한 - 나의 지향은 아주 강합니다. 진짜로 남한테 피해만 안 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만큼 나는 꼰대를 많이 싫어합니다. 특히 좌파 꼰대들은 북핵보다 더 답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나는 방어적 민주주의자이기도 합니다. 다원주의가 하나의 사회적 단위 내에서 상대주의를 지나치게 강조하고, 언더도그마에 빠져 타인에게 피해를 강요하는 순간 극단주의자가 대세가 되고, 좌파 포퓰리즘이나 극우파가 날뛴다는 걸 잘 알고 있기도 합니다. 다원주의의 한계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느냐 아니냐, 공격성이 어떠한가에 있습니다.


 

 자유주의는 문화적인 면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경제적인 자유도 중요합니다. 이것에 대해 조금 설명하자면, 정부는 자유 시민들의 재산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또한 동시에 정부는 자유시장이 최대한 효율적으로 작동하도록 매 순간 조치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시장을 무조건 자유방임해야한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닙니다. 어차피 닉슨 쇼크 이후의 현대 금융시장은 자유방임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기도 합니다.

 

 경제적인 면에서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는 기본적으로 갈등 관계입니다. 사회적 자유주의라는 건 엄밀히 말하면 성립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회주의는 필연적으로 누군가에게는 무거운 세금을 물리고, 조세저항을 초래합니다. 그것은 정치권력 또는 무력에 의한 일종의 폭력이며, 결코 동의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유재산침해에 대한 불만을 가진 자들의 저항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사회주의적인 국가는 진취적이고 성공을 추구하는 인적 자원을 빠르게 잃습니다. 권력자에 의한 사유재산침해의 역사는 아주 오래 된 것이기도 합니다. 사회주의와 좌파 포퓰리즘은 사유재산침해를 인민의 이름으로 어찌 잘 합리화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고전적이지 않은, 또는 리버테리어니즘이 아닌 현대적인 자유주의는 꼭 필요한 복지나 꼭 필요한 부분의 정부 간섭을 결코 배제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자유주의는 노동능력이 없는 자를 위한 복지를 딱히 부정하지 않습니다. 축조물이나 제조 과정, 교통수단 등의 안전 관리 같은 것도 정부가 간섭을 해야만 하는 부분입니다.


 

 1970년대에서부터 80년대 초반까지는 공공, 환경 관리조차 시장주의적으로 접근하던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1984년에 보팔 가스 누출 사고가 터지면서 극단적인 시장주의는 그 설득력을 잃었지요. 자유주의는 원리주의가 아니고, 고집스럽지 않습니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양극단의 정치적 갈등을 최대한 배제한 균형이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정치적 자유주의는 후기 롤즈의 철학으로 대표할 수 있습니다. 그 주장을 요약하자면, 본문의 위에 설명한 것과 같은 다원성입니다. 서로 다른 포괄적 교설들이 중첩되는 지점에서의 중첩적 합의를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를 정치와 도덕의 분리로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특정한 도덕을 강조하는 것은 공동체주의 또는 공화주의의 특성인데, 자유주의는 보다 다양한 도덕이 있을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도 방어적 민주주의 범주 안의 옳음의 범위를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워마드나 이슬람 원리주의 같은 건 포용할 수 없지요.


 

 대조적으로 보수적인 공동체주의를 주장하는 철학자로 역제 정의란 무엇인가를 집필한 마이클 샌델을 꼽을 수 있는데, 나는 그의 주장을 여러 모로 비판하는 입장에 있습니다.

 

 본문은 대략적인 자유주의 소개이며, 자유주의라는 대안을 제시하려는 목적에서 작성되었습니다. 요새 문재인 정권에 실망하면서, ‘내가 보수 편을 들어야 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런데 보수주의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보수 정치세력 편을 들라고 하는 건 처음부터 어려운 이야기지요.

 

 자유주의는 보수주의가 아닙니다. 철학적으로는 공동체주의 또는 공화주의와 대립하는 개념이며, 현실적으로는 사회주의와 보수주의 모두에 대립할 수 있는 개념이지요.

 

 그러나 자유주의는 좌파와 우파 모두에게 더럽혀져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우익들이 주로 자유주의의 이름을 망쳐왔지만, 글로벌 기준에서는 좌파 사회주의자들이 자유주의 이름을 많이 더럽혔습니다. 미국의 리버럴들은 결코 더 이상 리버럴하지 않습니다. 사사건건 간섭하기 좋아하고 교조적이며 너무나도 사회주의적인 자들이 자유주의자를 자처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그것은 명백한 잘못입니다. 진짜 자유주의는 그런 게 아닙니다.

 

 한편으로 나는 리버테리언들은 다소 극단적이며 현실적이기보다는 관념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은 왜 현대적인 자유주의가 변화하였는지를 조금 더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리버테리언이나 고전적 자유주의자가 아닙니다만, 그런 쪽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의견을 밝혀둡니다.

 스스로를 마초라 부르는, 그러나 진실은 찐따에 좀 더 가까운 이 시대의 다수 남성들은 그들의 ‘평균적으로 박약한’ 지적 수준 때문에 남자는 원래 가사노동을 안 하는 거라고 믿으며 - 그러나 종종 마지못해 하며 - 숨을 쉬고 있다. 그러나 남자들이 집안일을 안 하게 된 것은 지극히 최근의 일이었다.


 ‘사랑방’이라는 단어는 다들 알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는 이 단어가 정확히 뭘 뜻하는지 잘 모른다. 전통한옥의 구조를 보면, 사랑방은 안방보다 대문 쪽에 가까이 있는 일종의 손님 접대용 방으로, 남성이 사용하였다. 대조적으로 안방은 여성의 공간이었고 부엌과 접해 있었다.


 조선 문화에서 남성들은 안채의 주인은 아니었지만, 사랑채의 주인은 되었다. 그런 만큼 노비를 충분히 둘 정도의 경제력을 가진 자들이 아니라면, 당연하리만큼 ‘가사노동’을 했다. 이 가사노동은 여성들이 하던 요리, 빨래 등은 아니었지만 보다 중요할 수 있는, 남성적인 노동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건축, 건물 보수, 장작 패기, 장작 마련, 쇠죽 쑤기 등등.


 이런 일들을 옆에서 구경이라도 해 보면 알겠지만, 남성들의 가사노동량은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었다. 옛날엔 어지간한 집은 거의 가장 본인과 일가친척, 이웃 등이 힘을 합쳐 직접 지었고 끊임없는 보수가 필요했다. 예를 들어 초가집은 매년 지붕의 건초를 갈아야 하는데, 그것은 주로 남자들의 일이었다. 또한 진흙으로 쌓은 벽은 시간이 지나면 쉽게 무너지기 때문에, 그 역시 지속적인 보수가 필요하다. 농사에 필요한 소를 키우고 다루는 것도 주로 남자들의 몫이기 때문에[각주:1], 가정에서 남성들의 노동력은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당시 남성들이 가정 내에서 대접을 잘 받았던 건 어느 정도 이상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였다. 또한 당시엔 남자들이 아들들을 교육시켰다. 남자의 일들을 남자에게 배우면서 자랐던 것이다.


 그러던 조선 남자들이 집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잃어버린 건 일제시대와 그들에 의해 시작된 급속한 산업화 때문이었다. 일본은 제국주의 시대의 그 어떤 다른 국가보다도 자신들의 식민지를 체계적으로 근대화시키고자 했다. 당시 일본 내에는 크게 두 가지 세력이 있었는데, 그 중 한 세력은 장기적으로 조선 등의 식민지를 일본 제국의 영토로 만들 계획을 품고 있었다.[각주:2] 일본이 당시 조선인들에게 했던 행동들을 돌아보면 비난할 만한 것들이 꽤 있지만[각주:3], 그들은 그런 여러 가지 어이없는 ‘근대적인’ 행위들을 자국민에게도 했었다. 일례로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일본인이 서양인들에 비해 유전적으로 열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본을 들른 서양인 남자들의 유전자를 최대한 받아 일본인을 유전적으로 개량하려고 들기도 했었다. 이 시대에 그런 행위를 하면 막장국가 소리 듣기 딱 알맞겠지만, 그때의 일본인들은 진지했었다. 그리고 그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조선을 점령한 후 근대화를 시키려 들었으니, 딱히 악의가 크게 없었을지는 몰라도 당하는 쪽에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긴 했다.


 여하튼 산업화 과정에서 일본은 일단 남자들을 집에서 내보냈다. 농경 사회는 급속도로 붕괴하기 시작했고, 남자들은 일터에서 일을 하고 돈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제는 학교를 세워 그 동안 교육의 기회를 제공받지 못하던 여성들을 교육시켰고, 그 여성들은 일제에게 교육받은 방식으로 아들들을 가르쳤다. 나쁘게 말하면 식민지형 찐따들의 최초 생성이었다.


 아버지들이 아들을 교육시키지 못하게 되면서, 남성들의 문화는 급속도로 단절되었다. 조선 시대에 남자들은 상투를 틀고 귀고리를 했고, 집안에 두루미와 매를 키우며 시와 서화와 활쏘기를 즐겼다. 그러나 일제시대 이후엔 윤리적이고도 바람직한 취미들은 거의 사라졌고, 문화적 빈자리를 차지한 것은 대단히 퇴폐적이고 말초적인 유흥 문화였다.[각주:4]


 새로운 식민지 남성들은 바람직한 삶의 모델을 새로 만들어야만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일제가 시작된 지 100년도 더 지난 오늘날에도 평균적인 한국 남성들의 문화는 다분히 불건전하다. 한국은 세계 최고액의 스카치위스키 소비국이다.[각주:5] 그리고 이 위스키는 대부분 룸살롱에서 소비된다. 알려지기론 한국의 GDP의 5%정도가 성매매 또는 유사성매매가 포함된 유흥업에 사용되고 있다. 통계 조사 결과 한국 남성의 성매수율은 50%가 넘는다. 그에 비해 도서구매율은 여성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그렇다 해도 당장 그때부터 남성들이 집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잃은 것은 아니었다. 그때까지도 남자들이 집에서 해야 할 일이 많았다. 그 시기는 오래 이어졌다. 집이 전통가옥인 이상, 남자들은 집안일에서 손을 놓을 수가 없다. 끊임없이 일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박정희 시대에 들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박정희는 노동 시간을 대폭 늘렸고, 남성들을 반영구적으로 가정에서 쫓아냈다. 물론 남성들만 집에서 쫓겨난 것은 아니었지만, 그 때는 기혼 여성의 근로비율이 낮았다. 또 박정희 시대에 시멘트를 사용한, 전문 건설업자들이 지을 수 있는 그런 주택이 보급되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급속한 도시화가 이루어지면서 공동 주택이 보급되었다. 이 새로운 주택들은 남성을 완벽하게 집안일에서 해방시켰다. 난방 방식도 연탄으로 바뀌었다. 이젠 남자들이 집을 짓고, 고치고, 장작을 패고, 쇠죽을 쑬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이 시기는 대략 1970년대 말부터 80년대 초 정도다.


 그리고 1990년대부터는 여성들의 본격적인 사회 진출이 이루어졌다. 그로 인해 남성들은 기존에 여성들이 하던 집안일을 분담할 필요성이 생겼다. 그러나 아직 남자들은 그런 것들에 익숙하지 않다. 이미 그 때로부터 근 2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젊은 남자들조차 여자가 밥상을 차려주지 않으면 식사를 제대로 못 챙기곤 한다. 수많은 젊은 여성들은 자신의 남편을 ‘우리 집 큰애’라고 부른다. 그런 소리를 듣는 남자들은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의 화신처럼 행동하곤 한다. 그들이 원하는 건 ‘내 여자가 된 엄마’쯤 되는 것 같다.[각주:6]


 한국에 널린 아파트들은 집주인이 직접 고치고 보수할 필요도 없고, 하고 싶어도 쉽지 않다.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거나 위험한 경우가 많다. 난방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 장작을 패기는커녕, 연탄을 갈 일조차 없어졌다. 한편으로 가사 도구들의 발전은 어쨌든 집에서 여성이 하던 일을 줄였기 때문에, 여자들은 투덜대면서도 혼자 힘으로도 가사 일을 어느 정도 다 할 수는 있다. 남자들은 굳이 자신까지 나서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곤 한다.


 가사 노동에 있어 아파트 주거가 일반화되지 않은 외국은 남자들 일이 여전히 많다. 그들은 잔디를 깎고, 정원을 가꾸고, 집과 차를 고친다.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의 집에 애정을 가지고, 가족들에게 가정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진다.


 대조적으로 박정희식 산업 모델은 남자들을 거의 완벽하게 집 밖으로 몰아내 버렸다. 그 과정 속에서 야근은 일상화되었고, 남자들은 집안일에 면책 특권을 받았다. 그러나 그 세월은 불과 20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이다. 이젠 시대가 변했지만, 남자들은 여전히 그 면책 특권을 행사하려 한다. 그러나 그것이 잘 통할 리 없다.


 당장은 집안일을 안 하는 게 남성들에게 이득으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대가는 참혹하다. 무엇보다도 자식들이 문제다. 자식들이 보기에,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집에서 아무 것도 안 하고 빈둥거린다. 그들의 어머니가 뼈 빠지게 바깥일을 하고, 집안일까지 해서 식탁까지 차려주는 동안 아버지들은 잔소리나 안 하면 다행인데, 보통은 일은 안 하면서 잔소리까지 한다. 음식이 맛이 없다는 둥, 요즘 너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든다는 둥.


 물론 밖에서 돈을 벌어오는 건 가정을 지켜나가고 화목함을 유지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아내는 그것을 이해할지 몰라도, 자식은 아니다. 자식들은 꽤 나이가 들기까지는 돈의 흐름을 체감 상 잘 이해하지 못한다. 자식들의 눈에 비치는 아버지는 아무 것도 하지 않기에 가정의 진정한 구성원이 아니다.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지만 결국은 그렇게 된다.


 직장에서 괜찮은 사람인데 집에서 폭군이 되는 아버지는 흔하다. 집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세월이 결국 그들이 집에 있는 것을 불편하게 만든다. 그래서 직장에서 은퇴한 남성의 삶은 많은 경우 비참하다. 대체로 그들은 평생 집에 돈을 벌어다 줬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가족들에게는 가족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집 안에 와서는 오직 받기만 하고, 다른 가족들을 불편하게 해왔기 때문이다.


 대화가 안 돼서? 그 이유도 중요하다. 그러나 어머니와 자식들 사이에도 대화가 잘 안 되는 집은 흔하다.[각주:7] 그렇지만 그 갈등 관계는 보통 가족이라는 범주 안에서 이루어질 뿐, 가족으로 못 느끼는 양상으로 치닫지는 않는다. 어쨌든 대부분의 어머니들은 (물론 예외도 있지만) 집안일을 도맡아 하기 때문에, 자식들 입장에서는 갈등의 요소가 있더라도 가족이 아니라고 생각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일단 내가 먹을 식사를 해주고 내가 입을 옷을 빨아주는 사람과는 밀접할 수밖에 없다.


 가정이라는 곳에서 가족과 함께 사는 남자들은 결국 가정에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자신의 역할과 일을 가정 내에서 만들 필요가 있다. 잔소리쟁이나 자기자랑꾼처럼 모두가 싫어하는 위치에 있으면 안 된다. 무엇보다도 자식들에게 무언가 필요한 일을 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것이 좋은 아버지의 조건이다.


 물론 자식들만 문제는 아니다. 황혼이혼율이 괜히 높은 게 아니다. 아내 입장에서도 남편이 밖에서 일을 하는 게 고생스러울 거라 상상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눈으로 직접 보지 않는 한 공감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 게다가 요즘은 여자들도 거의 일을 한다. 같이 일하고 피곤한 상태인데 집에선 남자 쪽만 주로 놀면 여자 눈에 좋아 보일 리가 없다. 처음에야 애정으로 봐 준다 쳐도, 수십 년 그런 세월이 쌓이면 싫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남자도 집안일을 해야 한다는 건 딱히 페미니즘 같은 게 아니다. 남성은 농경 사회 이후 언제나 집에서 일을 해왔다. 다만 아주 짧은 기간,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아주 잠시 남성이 집안에서 몰아내졌을 뿐이다. 그러나 그 혼란기도 이제 끝났다. 남성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집안들을 찾음으로 가정의 일원으로 복귀해야한다. 안타깝지만 가정에서 자신의 일자리가 없는 남자는 결국 돈 벌어오는 기계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다. 스스로 그렇게 보이게끔 행동하기 때문이다.

 


  1. 일소를 다루는 건 다소 위험성이 있는 일이고, 여성에게는 쉽지 않은 면이 있다. [본문으로]
  2. 만일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지 않았다면, 이 계획은 실제로 이루어졌을지도 모른다. [본문으로]
  3. 향후 부패한 군부가 권력을 장악한 일본 제국은 좀 다른 성격의 국가가 되어버려서, 전쟁의 확대와 함께 조선을 처참하게 수탈하게 된다. 그러나 조선을 처음 합병할 당시의 일본은 딱히 꼭 그런 성격의 국가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 결과 2차 대전 이후 다른 서구에게 점령당했던 식민지들보다는 일제에게 지배당했던 식민지들의 경제 성장이 두드러지게 빨랐다. 물론 일본이 서구보다 더 못한 점도 있다. [본문으로]
  4. 정확히 말하면 그 보편성에서는 민주화 이후 시대가 더 심하다. [본문으로]
  5. 소비 양상을 보면 더 나쁘다. 에이지드(숙성년수)가 높은 위스키가 많이 팔리고, 싱글 몰트 시장은 작다. 위스키를 음미하기보다는 원샷을 하고 폭탄주를 만들어 먹기 때문인데, 그 때문에 일부 브랜드의 위스키는 아시아 수출용이 내수용보다 도수가 낮다. [본문으로]
  6. 설명을 하기 위해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개념을 이야기했을 뿐,, 나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가 실제로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본문으로]
  7. 물론 보통 아버지들이 더 심각하다. 평균적인 한국 아저씨들의 화법 자체에 문제가 있다. 대체로 말 자체를 잘 못하는데다 상대의 감정도 잘 못 헤아린다. 전반적인 문화적 결함 탓으로 보고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