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층의 고립된 정치지지, 아마도 그 한 원인

정치 2019. 10. 13. 12:49 Posted by 해양장미

 추천 브금

 

https://youtu.be/WaPOQacn2qw

 


 

 현재의 30대와 그 아래 연령대는 아주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30대 이상의 연령대는 맞고 자랐다는 겁니다. 부모가 체벌을 하지 않았더라도 학교 교사들의 무분별하고 비인도적인 폭행 속에 자라났고, 대다수의 남성들의 경우 역시나 폭력이 사라지지 않았던 군대에 다녀오기도 했지요.


 

 그래서 30대 이상은 대체로 폭력교사들에 대한 아주 깊은 부정적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랬던 잘못된 세상이 어떻게 고쳐졌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교사들에 의한 폭력을 처음으로 완화시킨 건 김대중 정권이었습니다. 민주진보개혁세력이 교사들에 의해 만연하던 학교폭력을 없앴습니다. 교사들에 의한 폭행이 사라진 현재의 학교가 과거의 학교보다 꼭 좋은지 나는 잘 모르겠지만, 현재의 1020대는 과거의 교사들이 얼마나 정신이 나간 자들이었는지 잘 모를 것입니다. 30대 이상은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인권이 없었습니다. 인권이 침해당한 기억은 30대 이상에게는 보편적인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 딱히 부정적인 인식조차 없이, 그냥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는 학생이 대다수이긴 했습니다만 그렇다 해도 부당하게 일상적으로 얻어맞은 기억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많은 교사들은 1990년대에만 해도 명백하게 감정적인 이유로 학생들을 때리고 학대했었습니다. 본질적으로 폭력을 즐기기 위해 학생을 마구 때리는 교사들도 꽤 있었습니다. 그런 교사들은 자차가 아니면 거리를 다니지 않더라고요.


 

 그랬던 현실에서 당시 보수우파는 이유 없이 두들겨 맞던 청소년들 편을 전혀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한국놈들은 맞으면서 커야 정신 차린다는 무개념한 발언을 공공연하게 하던 자들도 있었는데, 대체로 자칭타칭 보수우파였습니다. 그런 청소년들 편을 들어주던 게 민주개혁세력이었습니다.


 

 마침 21세기에 접어들던 시대는 엄청나게 빠르게 변하고 있었습니다. 90년대에서 00년대는 사회변화가 빠르던 시기입니다. 2010년대는 대조적이라 할 만큼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변화가 더딘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여하튼 그렇게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를 살던 청년들은, 교사들의 폭행과 학대를 옹호하고 각종 변화에 뒤쳐진 보수우파를 자격 없다고 판단하는 게 당연했습니다.


 

 물론 지금은 그 때와는 또 다르지요. 지금은 민주당 간판을 단 자들이 파시스틱할 뿐만 아니라 청년, 특히 청년남성들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청년들이 이 정권에 강한 반발을 하고 있는데요. 지금 1020 남성들이 문재인 정권에 대해 느끼는 악감정을 현재의 3040대는 한나라당 세력에 가졌던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좀 든다고 그 나쁜 인식이 쉽게 변하지는 않습니다. 누구나 정치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는 건 아니고, 변한 현실과 상황을 실시간으로 명징하게 인지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편하고 빠르게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20대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20대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이해하기엔 너무 어리지만, 배운 것에 어떤 현실이 어긋나는지는 금방 파악합니다. 즉 학생들에게 우리 사회가 올바른 기준을 가르쳤다면, 그 기준에 무엇이 어긋나는지를 판단하는 데는 청년들이 뛰어납니다.


 

 도덕이 붕괴한 사회입니다. 집권여당은 명백하게 부도덕하며, 위선으로 바름을 모독합니다. 그 추종자들은 물론 가장 적극적인 도덕 파괴자들입니다. 현실에 적응하고 익숙해진 어른들보다는 도덕적 지식을 학습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청년들이 보다 더 현실적 부정에 민감하기 마련입니다. 세상은 언제나 그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존중받는 어른이 되고 싶은 자들은 청년들의 목소리를 수용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귀를 열고 들어는 봐야 합니다. 듣는 귀가 없고 보고 싶은 것만 보면 문재인처럼 늙게 됩니다.

한의 정서의 끝과 나쁜 방향으로의 변화

사회 2017. 11. 13. 10:17 Posted by 해양장미

 추천 브금

 

https://www.youtube.com/watch?v=MMzUKB8khxo

 

 근래 저연령층은 어떻게 체감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노무현 집권 시기 때만 해도 한의 정서라는 표현이나 감성은 다분히 일반적이었습니다. 일례로 2000년에 걸그룹 샤크라는 이라는 노래로 인기를 얻었었고, 현직 감 과수원 농부 이영도의 1999년 저 FW에서도 hjan이라는 표현이 활용되었는데 큰 위화감은 없었지요.

 

 한을 설명하자면 원한중 한이며, ‘분노, 아쉬움, 안타까움, 혹은 이들 모두가 한데 뒤섞인 묵은 감정으로 표현되곤 합니다. 이런 정서는 잘 해소되지 않는 특성이 있었기에 문제시되기도 했습니다만, 누그러들고 통제된 형태의 분노라는 점에서는 장점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이런 민족정서(?)가 어느 날 사라져 버린 것 같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오래 생각해왔는데, 역시나 나의 판단은 한국인 특유의 의 정서가 보다 보편적인 의 정서로 변하였고, 증오와 분노가 쉽게 표출되며 강화되는 게 근래 한국인의 정서 변화 방향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는 그 계기를 노무현의 자살(+ 그 뒤를 잇는 듯한 김대중의 타계)로 보고 있습니다.

 

 어떤 사회의 시간적 단면을 구성하는 요소는 매우 복합적인 것이며, 그 중 어떤 하나가 급격하게 변할 경우 사회에 드러나는 이지러짐은 예측할 수 없이 클 수도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기존 한국 사회의 안정성을 구성하던 주 요소 중 한의 정서가 있었고, 그것이 부정적인 면이 많더라도 어쨌든 그것이 급속도로 사라진 것이 한국 사회의 안정성을 크게 저해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이야기입니다.

 

 한의 정서가 있던 한국 사회엔 인내심, 최소한의 연대감, 운명에 대한 체념, 과거를 돌아보는 시간 같은 게 지금보단 훨씬 많았다고 판단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의 정서로 전환되면서 부당함에 대한 인내는 악으로, 연대감은 첨예한 적대로, 운명에 대한 체념은 무기력으로, 과거의 잘못은 조작을 해서라도 덮어야 할 것으로 인식전환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실제 과거의 한국사회에서 한의 정서는 덜 진취적이고, 부정부패와 부당함을 용인하는 방향의 문제를 낳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전환은 혼란을 일으키기 마련이며, 적대와 증오와 조작의 일상화는 꽤나 큰 문제를 빚어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문재인정권의 행보와 그에 대한 지지는 이러한 국민정서의 전환과 극단화를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고 여깁니다. 분명한 것은 역사적으로 볼 때, 또한 정치학적으로 볼 때 이런 방향으로의 변동은 좀처럼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하며, 매우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빈도가 대단히 잦다는 것입니다.

 

 한의 정서가 되살아날 필요는 없습니다. 그건 그 나름대로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다수의 한국인들은 한의 정서를 극복한 게 아니라, 일종의 열화판 정서를 대신 가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원의 정서를 가지게 된 한국인들은 도덕과 윤리를 배우며 습득했던 많은 미덕들을 잊었고, 매우 편향적인 것들만을 실행하며 본인들을 도덕적이라 여기게 되었습니다. 이젠 위선과 부덕과 혐오가 문제인 시대입니다.

 

 첨언하자면 현 정권의 적폐청산은 법무부와 사법부의 일을 청와대가 주도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면에서 정치적이며, 민주정의 분권원칙 및 협치의 정신에 위배됩니다. 각종 의혹에 대한 조사와 심판은 필요하나, 현 정권이 그다지 민주적이지 못한 것 역시 사실입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도덕적 문제에 관하여

정치 2014. 7. 22. 18:43 Posted by 해양장미

 오랜 세월동안 도덕적 우위는 민주당계 지지자들의 간판이자 무기였습니다. 능력은 어떨지 몰라도, 신한국-한나라당보단 그래도 민주당이 더 도덕적이지 않느냐는 식의 공감대가 있었던 것입니다. 현재의 젊은 새민련계 지지자들이 그러한 정치적 경향을 가지게 된 데는 이런 세월의 영향이 큽니다. 그러나 이러한 도덕적 우위 또한 이젠 옛말이 되었습니다.

 

 이번 새민련 공천의 면면을 보면 한숨이 나오고 정말 답답합니다. 이런 정당이 한국의 제1야당이라니요. 이번엔 정말 심합니다. 그럼 한 명 한 명 살펴보겠습니다.

 

 서울 동작구을의 기동민은 모두들 잘 아시다시피 갑작스레 전략 공천되었고, 이 지역에서 오래 준비해왔던 허동준은 배제되었습니다. 본래 기동민과 천정배는 광주 광산을에서 경선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안철수-김한길 지도부는 천정배를 정략적으로 내치고 기동민을 어이없이 동작구에 꽂았습니다. 더구나 이 기동민은 전과 2범으로, 이중 하나는 비교적 흔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위반 공문서위조입니다만, 핵심은 이 전과가 87체제 후인 1992년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2012년의 공무집행방해죄인데, 400만원 벌금형을 받았으나 바로 다음날 그는 서울시 정무부시장이 되기도 하였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건 이런 공천파행에도 불구하고 나경원한테 이길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데 있지요.

 

 광주의 권은희는 이런저런 문제들이 계속 터져 나오는 중이고, 지난 포스트에서도 좀 이야기한 적이 있으니 이번 포스트에서는 일단 넘어가겠습니다. 그녀에 대해 또 한 번의 포스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만, 선거 전에 완성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한편으로 지난 지방선거에서 이미 광주에 무리한 공천을 했던 안철수는 다음에는 그런 일 없을 거라고 이야기했다고 전해집니다만, 역시나 명불허전입니다.

 

 아무리 봐도 새민련은 호남을 대접해줄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습니다. 항상 당연하리만큼 몰표를 주니 그렇겠지만요. 이런 모습은 다른 지역에서도 드러납니다. 순천 곡성군의 새민련 후보 서갑원은 과거 박연차 게이트 때 정치자금법 위반죄로 벌금 1200만원에 추징금 5000만원의 형을 받고 국회의원에서 면직된 적이 있습니다. 국회에서의 증언 감정 위반으로 벌금 200만원을 받은 사례도 있고요.

 

 또 나주 화순군의 새민련 후보 신정훈은 무려 전과 5범으로, 죄명도 아주 화려합니다. 폭행에 상해, 음주운전, 건축법/농지법 위반, 여기에 보조금 예산관리 위반까지 있습니다. 이걸 뭐라 표현해야할까요? 새민련 호남지역 후보 중엔 담양 이개호만이 드러난 전과 등 문제가 없습니다. 이쯤 되면 호남도 좀 변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대전 대덕구의 박영순도 전과가 둘 있습니다. 그 중엔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벌금을 150만원 낸 경력이 있지요. 자칭타칭 진보개혁정당 후보가 근로기준법 위반이라니 좀 그렇습니다. 이런 식으로 무늬만 진보라는 걸 입증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또 충주에 나온 한창희도 정보통신망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원을 낸 적 있는 전과 2범입니다. 당시 시장직을 하다가 유죄판결이 나서 물러난 적이 있지요. 서산 태안군에 나온 조한기 역시 음주운전 전과가 있습니다.

 

 비교적 문제없는 공천지역은 그나마 부산과 경기권입니다만, 경기권은 좀 다른 이유로 어이가 없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일단 김두관이 김포에 나왔더군요. 솔직히 김두관이 무슨 낯으로 김포에 나왔는지 잘 이해가 안갑니다. 과거에 그가 김포에 와본 적이나 있었을까요? 경남을 배신하고 권력욕을 쫓았던 인간이 과연 김포는 배신 안할까요? 여론조사도 김두관이 지고 있습니다.

 

 그나마 문제없는 대형후보 손학규도 이런 어이없는 공천파행 덕에 지지율이 밀리는 게 작금의 현실입니다. 또 백혜련 같은 경우 지난 번 통진당과의 연대 공천에서 졌고, 이번엔 수원을에 공천되었는데 승산이 별로 없기도 합니다. 수원은 3군데나 보선하는데, 새민련이 한 군데도 못 이길 것 같습니다.

 

 새민련은 14명의 재보선 국회의원 후보군 중 권은희를 포함, 최소 8명이 범죄나 낙하산 등의 문제가 있습니다. 중요한 건 이런 문제 있는 후보들 중 다수가 호남권에 공천되어 당선은 따놓은 셈이라는 데 있고, 깨끗한 후보들은 이런 공천파행의 여파로 인해 가뜩이나 힘든 상황에서 다 지게 생겼습니다.

 

 더 이상 저는 도덕성에서도 새민련이 대체 무슨 우위를 지니는지 모르겠습니다. 새누리당에도 문제 있는 후보야 있지만, 대체로 음주운전 정도고 (물론 음주운전도 큰 죄입니다만, 워낙 새민련 후보들 죄목들이 화려해서요.) 좀 예외적인 게 광주에 나온 송환기가 사기전과가 있고 나주의 김종우가 명예훼손 전과가 있는데 어차피 당선 가능성이 전무한 후보들이라 새민련에 비하면 범죄 관련 문제는 훨씬 적은 셈입니다.

 

 안철수에게 묻고 싶습니다. 이런 게 새정치입니까?

 

 또 모두들 잘 알다시피 새민련의 도덕성 검증 문제를 드러내주는 사태가 근래 하나 크게 터지기도 했습니다. 유력한 살인교사 용의자 김형식 사건 말입니다. 물론 이런 인물을 미리 검증하는 건 어려울 수 있지만, 이에 대해 새민련은 아~무 도의적 책임도 지지 않고 있습니다. 평소에 그리도 도덕적인 척하기 좋아하던 깨시민들이 김형식 사태는 쉬쉬하는 걸 보고 있자면 쓴웃음이 나올 따름입니다

 

 깨시민을 포함한 새민련의 광적인 지지세력은 이런 각종 사태들에도 불구,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있습니다. 그들의 마음속에선 천지가 뒤집혀도 새민련이 새누리보다는 나은 당이기 때문에, 아무리 범죄자가 판을 쳐도 그저 새누리당은 나쁜 당이고, 새민련은 그래도 선한 당일 겁니다. 물론 이런 건 광신적인 종교라 할 수 있겠지요.

 

 도덕성도 없고 무능한 이런 정당은 없어지는 게 낫다고, 저는 이전부터 이야기해왔습니다. 근래 새누리당이 그래도 새민련보다는 도덕적이고 능력도 있습니다만, 국민들을 만족시키기엔 분명 모자라고 실수도 많이 합니다. 그러니 민주정의 성공을 위해서는 대안이 될 수 있고, 협력도 비판도 현명하게 할 수 있는 야당이 있어야겠지요. 새민련은 대한민국의 제1야당 자격이 없습니다. 그리고 현 안철수-김한길 체제가 무너지면 또 다시 일어날 친노세력 역시 대안이 못 된다는 건 이미 오랜 세월동안 증명되었습니다. 그나마 다른 세력인 손학규도 이번 선거에서 무너질 것 같고, 천정배나 정동영도 이번 사태에서 강단과 패기가 없는 인물임이 드러났습니다.

 

 사태가 어째서 이렇게까지 되었는가에 대해 저는 다방면으로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극단적인 진영논리가 일차적인 문제일 것입니다. 새누리당은 그래도 어느 정도 내부 견제도 있고, 역동적이며 국민 눈치도 많이 봅니다. 현재 새누리당의 주 지지층은 과거 민주화 운동에 호의적이었던 세대고, 이들은 새누리당의 각종 행태에 대해 다분히 비판적인 가운데 느슨한 지지를 보내게 된지 오래입니다. 물론 새민련 지지자들은 이걸 인정하지 않고, 앞뒤 못 가리고 콘크리트 소리만 하다가 매번 참담하게 패배하지만요.

 

 대조적으로 새민련계 지지자들의 경우 비교적 코어 지지층이 많다고 파악합니다. 노무현 정권의 실패 시점부터 중도적인 사람들이 비교적 한나라-새누리당을 지지하게 되고, 새민련은 골수들이 주로 지지하는 정당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지지층의 이탈 문제는 지난 대선 이후 민주당에서 작성한 연구 보고서만 봐도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코어 지지자들은 민주당계가 뭘 잘못하건 상관없이 찍고 무한정 변호를 합니다. 인터넷의 황위병들은 악명이 높기도 하지요. 그리고 민주당계는 오랜 세월동안 이런 코어 지지자들을 끼고 그들만의 기준에 맞춰 권력다툼을 해 왔습니다. 이런 세월은 민주당계를 한없이 무능하게 만들었고, 사람들의 초점은 더 이상 민주당계에 있지 않습니다.

 

 새누리를 찍는 사람들은 그나마 새누리가 현실적으로 낫다고 생각해서 찍곤 합니다. 그리고 새민련을 찍는 사람들은 그래도 새누리는 못 찍겠어서 새민련을 찍습니다. 그러니 어느 쪽에서나 중심축은 새누리입니다. 새민련이 주도적으로 잘 해서 뭘 어찌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이런 세월이 쌓이다보니 결국 이 정도로 비도덕적이며 국민을 우롱하는 수준의 공천까지 나오는 것입니다.


도덕적인 깨시민들의 반민주성에 대하여

정치 2013. 10. 17. 19:50 Posted by 해양장미

 걸핏하면 민주주의를 외치는 깨시민들이 실제로는 반민주주의자라는 이야기는 지난 포스트, ‘마지막 남은 샛노란 맹신자들의 횡포에 대하여’등의 포스트에서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뤘던 적은 없는 것 같아서, 이번 포스트에서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보려 한다.


 우선 역시나 지난 포스트, ‘흔한 오해 중 하나 - 민주주의는 정의인가?’  에서 이야기했듯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 없이 민주주의를 아무 데나 가져다붙이는 게 깨시민들의 첫 번째 문제다.


 이런 오해가 나오는 일차적인 이유는 국민주권과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오해 때문이다. 대체로 깨시민들은 시민이 좀 더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보다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SNS를 통한 소통을 강조하고 모바일 투표와 여론조사를 통해 당내 후보자를 선출하는 등의 행동도 이런 발상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문제가, 이렇게 되면 될수록 1인 1표제를 중심으로 하는 보통선거의 의미가 퇴색된다는 데 있다. 즉 행동을 하는 시민들이 정치에 깊이 개입하려 하면 할수록 목소리 큰 일부 사람들의 의견이 더 많이 반영된다. 문제는 이 사람들이 대체로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라는 데 있다. 정말 바쁘게 사는 사람들은 그 정도로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게 불가능하다. 또한 보다 온건하고 덜 과격한 사람들은 더 과격한 사람들에 밀리기 쉽다. 깨시민들이 전투적이고 타인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며, 비아냥거리는 경향이 강해진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또 문제가 많은 게, 보통 시민들이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시간적/인지적 한계가 분명하다는 데 있다. 즉 시민들이 더 개입하면 개입하려 할수록, 보다 심도 있고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이 무언가를 해볼 수 있는 여지는 낮아진다.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이 당 내에서 한 번 거르는 시스템이 사라지고, 깨시민이 개입해 깨시민에게 인기를 끄는 사람들이 주도권을 쥐게 되기 쉽다. 민주주의 자체가 중우정치화될 위험성이 있는데, 소위 깨시민들에 의해 보다 급격한 중우정치가 발생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리고 문제를 일으키는 이런 깨시민들의 의식 또한 사실 전혀 민주주의적이지 않다. 그들의 성향을 보면 유교적 도덕주의 및 철인정치론을 내세울 때가 많다. 실제 예를 들면, 그들은 ‘각자의 이익’의 집합으로 나타나는 민주주의의 성향과, 이익과 인기를 위해 애쓰는 정치인들을 비난할 때가 많다. 그리고 이런 태도는 사실 플라톤 등 민주주의에 대한 각종 비판자들의 관점과 거의 일치한다.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지만, 플라톤이 주장했던 철인정치는 당시 민주정의 단점을 극복해보고자 나온 것이었다.[각주:1] 민주정의 탄생부터 문제제기까지 플라톤의 주장은 분명 옳다. 다만 그의 문제 해결을 위한 주장은 현실과 크게 어긋난 면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플라톤의 주장이 어느 정도 이상 현실 속에서 실행되었던 국가는 서구보다는 동아시아에 많았다. 예를 들어 플라톤이 초기 조선을 본다면, 일정 이상 이상사회에 가깝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다들 알다시피 실제 역사에서 승리를 거둔 쪽은 대체로 민주정을 고수한 쪽이었다. 한반도만 봐도 플라톤의 방식에 더 가까운 국가는 이쪽보다는 북조선이라 볼 수도 있다.


 깨시민들은 역사적 사실들에 무지하지는 않다. 그렇다보니 그들은 곧잘 모순되는 주장을 한다. 민주주의를 찬양하고, 더 민주주의를 늘려야겠다고 말하면서도 생각하는 방식은 철인정치 및 유교식 도덕주의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신한국-한나라-새누리당이 무언가를 하는 데 대해 반대를 하는 데 힘을 기울인다. 스스로의 이야기를 하기엔 그들의 정치철학적 기반이 사상누각이기 때문이다. 친노 정치인에 대해 맹신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 또한 다 이유가 있다. 철인정치론에선 본래 통치계급은 정해져 있기 마련이고, 깨시민들이 인정하는 통치계급이 친노세력인 거다. 물론 더 이성적인 이야기를 하기엔 그들은 너무 어리석다.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만 민주주의는 단점도 많고 부작용도 항상 있는 체제다. 결코 절대선이 아니고, 윤리적인 체제도 아니다. 태생부터 민주주의라는 것은 기존 질서를 전복하면서 등장할 수밖에 없고, 이는 곧 기존 도덕/윤리/질서를 뒤엎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현실적으로 민주주의는 시민의 선택을 받아야 하기에 정치인들은 시민의 인기를 얻어야 하고, 달콤한 거짓말을 해야 하며 잘 작동하지 않을 경우 매번 근시안적인 정책이 발생하기 쉽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각종 태생적인 문제점들을 충분히 스스로 잘 해결할 수 있는 제도라 보기 어려운 면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철인정치를 주장한다면 민주주의라는 말을 앞세우는 짓은 하지 않는 게 옳다. 이미 1987년부터 민주주의 제대로 하고 있는 데 26년째 자꾸 아직 아니라고 말하는 것도 공감을 얻기 어렵기도 하고.


 민주주의에서 ‘도덕’은 가장 중요한 가치가 아니다. 이익과 이미지가 민주주의의 양대 힘이고 도덕은 이 중 이미지를 구성하는 한 요인일 뿐이다. 실제 시민들은 누군가가 도덕적인지 판단하기가 어렵고, 정치인의 도덕성이 각자에게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는 경우도 많으며 너무나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현대 사회의 특징 상 일반도덕은 정치적 일면에서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깨시민들의 배타적이고도 광신적인 자세는 도덕주의의 본질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언제나 자신의 도덕적 우월성을 확신하는 이들은 지극히 위험하다. 이런 사람들은 언제나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무시하고 집단주의적인 사고방식으로 치닫기 쉬우며, 대단히 폭력적인 모습을 취하곤 한다.


 한국에 윤리와 신뢰가 부족한 것은 도덕주의가 없어서가 아니다. 도덕주의의 과잉은 대체로 역설적인 결과를 낳기 마련이다. 배려, 열린 마음, 온정, 관용, 내가 틀렸을지 모른다는 여유가 실제로 사회를 더 윤리적이고 믿을 수 있게 만든다. 그러나 도덕주의자들에게는 저런 게 심히 부족하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깨시민들은 나이 어린 꼰대이자 타자를 적극적으로 공격하는 배타적 괴물이 되어 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도덕은 스스로에 대한 것이고, 도덕주의는 남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다. 나에게는 엄격하고 남에게는 관대한 게 좋은 것이다. 도덕적인 깨시민들이 반민주적인 것은 당연하며, 선거에서 매번 지는 것도 당연하다. 그들은 매번 공분을 일으키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깨시민보다 훨씬 성격이 좋기 때문에 그런 공분에 동감하지 않는다. 나와 같이 화내! 화내지 않으면 너는 악이야! 라고 말하는 그들을 보통 사람들은 ‘뭐 그렇게까지 화를 내야하냐?’, ‘미쳤구먼.’ 정도로 생각한다. 원래 사람들은 개인적이고 사소한 것에 화를 잘 내고, 남 일에는 화를 잘 안 내는 게 정상이다. 물론 실제 동정심과 공분 심리는 아무 관련이 없다. 오히려 동정심이 부족한 건 깨시민 쪽이다.


  1. 플라톤의 스승이었던 소크라테스의 죽음 또한 민주주의와 관련이 깊다. 소크라테스 또한 플라톤처럼 반민주주의였다. 소크라테스에게 사형이 선고된 것은 그가 민주주의를 비판했기 때문이었고, 사실 사형판결 또한 그에게 겁을 주고 쫓아내기 위함이었지 그 이상은 아니었다. 거기서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라는 식으로 (이걸 직접 말하진 않았다) 죽음을 받아들였을 뿐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