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를 벌렸을 뿐, 벌거벗지는 않은 임금님의 시대에
브금
1) 이번 설 연휴에 거리에 나가 사람들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생각했습니다. ‘패딩 공화국이네.’ 평소에도 우리나라가 패딩 공화국이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요. 명절에도 이 정도일줄은 몰랐습니다. 마지막 날 빼면 1월 설 치고 그렇게 추운 설은 아니었거든요.
사람들의 복장이 캐주얼해진 건 하루이틀 일은 아닙니다만, 이젠 설에도 갖춰입은 사람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게 나의 느낌입니다. 1990년대를 생각해보면 그때만 해도 설에는 한복을 갖춰입은 사람이 많았고, 정장은 더 흔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복장으로 다닙니다. 명절에조차 빼입지를 않는것이지요.
2) 최근에 관측되는 모습 중 하나가 넥타이의 사멸입니다. 출근한 직장인 중에도 넥타이를 매지 않은 사람을 보기 쉬워졌지요. 블레이저를 입더라도 구두가 아닌 운동화 차림으로 다니는 사람들도 흔해졌고요. 퇴근하는 전철을 보면 거의 다 패딩에 운동화지요.
여성들의 경우 몇 번 이야기했듯 메갈리아의 출현 이후 복식과 미용에 소비하는 금액이 급격하게 줄었습니다. 그리고 혼인율과 출산율이 급감했지요. 대신 여성들은 소형 SUV와 떡볶이에 돈을 썼고, 그건 떡볶이 가격의 가파른 인플레이션과 소형 세단 및 해치백의 사멸로 이어졌습니다.
한편으로 나는 이 현상이 페미니즘 외에도 많은 부분이 스마트폰으로 인해 초래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예전에는 주변과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다녔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제법 다수가, 특히 여성들은 더더욱 걸을 때도 스마트폰을 봅니다. 주변을 보지 않아요. 주변 사람은 더더욱 안 보고.
단적으로 이야기해 나는 사람들이 아싸화되고 있다고 생각하고, 세대가 내려갈수록 집단적인 아싸화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는 흔히 이야기되는 청년층의 문해력 저하라거나, 청년층의 사회성 부족같은 식으로 문제가 드러나는 중이라 생각하고요. 그나마 현 20대는 아동기나 성장기 때 스마트폰을 쥐고 자라지 않은 사람들이 다수일 텐데, 아동기부터 스마트폰을 만지면서 자란 세대가 사회에 나왔을 때 어떤 모습이 될지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3) 한편으로 나는 해돈성왕(海豚腥王) 전하를 지켜보면서 쭉 받는 느낌이, 근본적으로 예의가 없고 제멋대로인 타입이라는 겁니다.
단적으로 이야기해 나는 해돈성왕 전하가 취임 후 드레스 코드를 격식에 맞춰 입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 화이트 코드는 물론이고 블랙 코드도 본 적이 없고요. 대조적으로 정장 차림에 넥타이를 푼 건 봤단 말이지요. 쩍벌이라거나 후보 당시 논란이 있었던 열차 맞은편 의자에 발을 올리는 등의 무례에 일상적인 막말은 덤입니다. 단언컨대 나는 해돈성왕 전하같은 자유 세계 국가수반을 본 적이 없습니다.
나는 특정한 포멀함을 굳이 아무 데서나 강요하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유행의 강요라거나 지나친 스타일의 강요에 대해서도 부정적입니다. 부두노인(腐頭老人) 류시민의 다른 모든 건 내가 부정하더라도 빽바지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지요. 국회에 참석하는 의원의 코디는 묵시적인 룰이지 규정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국제적인 행사를 다니는 국가수반이 해돈성왕 전하처럼 하고 다니는 건 문제의 여지가 있어요.
한편으로 2021년에 맛서인은 텐노 즉위식에 참가하면서 드레스 코트(연미복 중 석례복)차림을 한 리락연 동지에게 ‘연미복은 일본 제복’이라는 식의 말도 안 되는 시비를 걸어 이슈가 되기도 했었는데요. 맛서인이 리재명 두목의 측근이라는 건 다들 아실테고. 연미복이 일본 제복이라는 것도 말이 안 되지만, 일본에서는 연미복도 거의 모닝 코트만 입는다는 점에서 더더욱 무식함을 드러내는 발언이었습니다.
한편으로 일본 대신들은 모두 모닝 코트를 입은 사진이 있는데, 입헌군주제인 일본은 내각이 출범할 때 대신들이 모두 텐노에게 임명장을 받습니다. 그 때 모닝 코트를 입고 밝은 회색 넥타이를 매는 게 예의라서 모두 모닝 코트가 있고, 격식이 필요한 행사에서 그것을 종종 입습니다. 대조적으로 우리나라는 공화국이다보니 복식이 좀 더 간소해지기 쉬운 편입니다.
4) 정장의 쇠퇴는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닙니다. 스마트폰 시대는 전 세계에 평등하게 각 분야의 종말을 초래하고 있지요. 금세기 들어 일어난 이공계의 약진과 인문계의 쇠퇴도 우리나라에만 일어난 일은 아니고, 본문에서 언급하는 모든 것은 거대한 시대변화의 일부일 겁니다.
이 시대의 비즈니스 룩에 제법 많은 영향을 준 인물이 현용 스마트폰의 창조주, 스티브 잡스입니다. 잡스가 프리젠테이션을 할 때 입었던 스웨터와 리바이스 진, 뉴발란스 운동화가 많은 영향을 줬지요. 저커버그도 티셔츠와 진을 주로 입습니다. 잡스와 저커버그가 그러니까, 불편한 정장보다 캐주얼하고 편한 차림이 창조적인 일에 도움이 되지 않느냐는 생각이 일반화된 것으로 보입니다. 복식은 이제 신분을 증명하지 않게 되었고, 격식을 얼마나 차리느냐의 문제가 되었을 뿐이지만 이젠 굳이 격식을 차릴 일이 얼마나 있겠느냐는 생각이 보편화된 것 같습니다.
문제는 사회 전반적으로 아예 예의와 격식과 정중함이 없어졌다는 느낌이 있다는 것입니다. 국가의 개인에 대한 간섭과 감시가 증가했다는 사회변화가 그런 변화에 일조하고 있을 것입니다.
단적으로 이야기해서 1990년대만 하더라도 우리 사회는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웠’습니다. 어떤 문제가 생기면 공권력이 개입하기에 앞서 사적인 해결이 지금보다 쉬웠고, 그게 일반적이었다는 뜻입니다. 그로 인한 문제도 많았지만 어쨌든 그런 사회에서는 상호간에 더 조심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촉법소년 같은 문제는 거의 없었고요. 즉 지금보다는 법보다 도덕이 중요한 사회였다는 것입니다.
법률은 본질적으로 권력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에 가깝습니다.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강조되는 건 전통적으로 덕치였지 법치가 아니었습니다. 도덕이 붕괴하고 법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타락한 권력자들이 날뛰는 디스토피아에서 살며 돌아보면 왜 선인(先人)들이 덕치를 중시했는지 알법합니다.
5) 복식을 갖추는 건 일종의 예의이고, 비언어적 소통 수단입니다. 과거에는 옷차림을 보고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어떤 계급인지 알 수 있었지요. 그 의미는 시대가 지날수록 축소되었습니다만, 그래도 최근까지는 꽤 남아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페미니즘이 퍼지는 2010년대를 지나면서 빠르게 축소되다가 COVID-19로 언택트 시대가 열리면서 포멀함이 크게 쇠락한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 포멀하게 입지 않더라도 멋지고 아름답게 차려입은 사람을 보는 건 즐거운 일입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그런 현상조차 많이 사라졌습니다.
나는 오버핏과 래시가드의 유행을 단순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00년대에 스키니진과 노출패션이 유행할 때, 나는 그것이 모더니티라 생각했습니다.
인체를 본질적으로 부정한 것으로 보고 숨겨야 할 것으로 보며, 현세보다 내세를 중시하는 것을 하나의 고전적 관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인본주의가 싹트고 성장하면서 인체는 아름다운 것이고, 긍정받아 마땅하다는 관점이 부흥합니다. 그래서 문화가 발달할 때 패션은 노출과 몸매를 드러내는 것을 긍정하게 됩니다. 세계대전 이후 오랜 세월동안 여성복의 노출도가 점점 올라갔다는 걸 복합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페미니즘은 문명을 파괴했고, 스마트폰 시대는 타인을 바라보는 것을 중단시켰습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소녀시대가 입던 스키니진은 청년들 사이에서는 엄마 바지라거나 아줌마 청바지 취급받게 되었고, 노출도가 높은 옷을 입은 여성들은 페미니스트들에게 공격받게 되었습니다.
다양성을 포용하는 방향으로 발전하던 문화는 문명의 파괴자들에 의해 서로 혐오하고, 외면하고, 공격하는 것으로 변질되었습니다. 도덕과 규범과 정중함은 쇠락하였습니다. 멍청함이 직업병인 판사들과 잘못된 신념을 가진 법조인들, 원하는 모든 것을 가르는 권력자, 위선적인 기득권 단체들, 그리고 그것을 추종하는 ‘다수’가 그 주체입니다.
6) 한편으로 남성 복식의 장기적인 변화 방향은 남성의 사회적 지위가 낮아졌다는 걸 일관적으로 의미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고전 만화 캔디캔디 원작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캔디스 화이트가 아치볼드(아치볼트)를 처음 만날 때 아치는 화려한 블라우스를 입은 걸로 묘사됩니다. 캔디캔디의 시대적 배경은 1차 세계대전 시기인데, 실제로 1차 세계대전 당시만 해도 남성이 레이스로 장식된 블라우스를 입는 건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남성도 화려하게 입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았었다는 말이지요.
남성복이 간소화되고 장식이 빠지게 제약된 건 주로 세계대전과 미국의 영향이라 생각합니다. 세계대전은 정말 많은 걸 바꿔놓았는데, 세계대전 이전에는 각국의 군복이 화려했었습니다. 당시의 정장인 프록 코트를 그대로 화려한 군 정복으로 쓰기도 했었지요.
그런데 군사기술이 발달하면서 은폐가 중요해졌고, 각국이 진심으로 싸우는 대전을 거치면서 군복이 보호색으로 변해버립니다. 질병을 방지하고 부상을 입었을 경우, 또는 화학무기에 노출되었을 경우 치유하기 쉽도록 하기 위해 머리도 짧게 자르는 게 일반화되고, 수염도 면도해버리게 되지요. 이런 변화를 겪으면서 복식도 간소화되었고, 장식이 최소화된 복식과 차림에 신경을 크게 쓰지 않는 것이 남성다운 것으로 간주되게 됩니다. 남자아이가 스커트를 입지 않게 된 것도 의외로 2차 세계대전 시기부터입니다. 그나마 장식적인 부분이 남아있던 게 넥타이였는데, 최근에는 그것조차 사라지는 중이지요.
문제는 전후 복식에서의 미적인 부분을 거의 여성복이 독식하게 되었고, 나는 이것이 여성의 사회적인 계급을 끝없이 올리고 남성의 사회적인 계급을 추락시키는 한 원인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복식은 그 자체로 계급을 상징하고, 잘 갖춰입은 옷은 나름대로의 사회적인 지위를 부여합니다. 남성복의 경우 단적으로 말하면 여성복보다 대충 만드는 경향이 짙어졌고, 여성복의 다양성과 발전 정도, 시장의 크기 등등이 남성복과 큰 격차가 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의복에 신경을 쓴다는 건 곧 사교성과도 직결됩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가진 돈을 옷에 쓰면 그 옷을 입고 나가봐야 하기 때문에, 좀 더 인싸에 가까워질 확률이 높습니다. 그래서 점점 여성들은 평균적으로 인싸화되었고, 남성들은 아싸화되는 경향이 나타났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이 세월이 누적되면서 사회상에 큰 변화가 있었다고 봅니다.
다만 근래 유행이 된 페미니즘과 탈코로 인한 여성의 패션 지출 감소, 그리고 여성 중에도 아싸가 늘어나는 현상, 대조적이라 할 만한 그루밍족의 증가를 보면 앞날은 또 모르겠다 싶기도 합니다.
7) 데모크라시가 퍼진 이후, 대중이 명사의 캐주얼한 복식에 친근함과 호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예를 들어 날리면 대통령 취임식에서 샌더스는 수트나 코트가 아닌 점퍼에 벙어리장갑 차림이었는데, 그에 샌더스를 좋게 보고 응원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나는 대통령 취임식에 점퍼를 입은 것을 굳이 좋게 볼 건 없었다고 생각하는데, 샌더스 지지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젤렌스키 또한 전쟁 이후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수트를 입지 않습니다. 언제나 티셔츠나 점퍼 같은 복장을 하고, 옷을 갖춰입을 시간도 없이 전쟁 중에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최근의 크이우는 그래도 젤렌스키가 옷을 갖춰입을 정도는 될텐데 싶은데, 캐주얼한 복장을 보이는 게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좀 더 친근하게 느껴질지는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