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각 달, 요일 명칭의 뜻

인류 2022. 8. 13. 13:17 Posted by 해양장미

 브금

 

https://youtu.be/ay3EwNGM5yw

 

 

 

 

 

 

- 달

 

 

January

 

: 야누스(Janus)의 달이라는 뜻입니다. 야누스는 로마에서 문()의 신이었는데, 로마에서는 출입문을 어떤 도시나 집의 시작이라고 생각했다고 하고, 그래서 한 해의 시작인 1월에 야누스의 달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전해집니다.

 

 

 

February

 

: 정화의 달이라는 뜻입니다. 로마에서는 215일에 정화와 속죄라는 종교적 예식을 행했는데, 그 행사의 이름이 Februa였다고 합니다.

 

 

 

 

March

 

: 전쟁의 신 마르스(Mars)의 이름을 딴 달입니다. 실제 이 단어는 행진이라는 뜻으로도 씁니다. 실제 로마에서는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는 3월에 전쟁을 많이 했다고 전해집니다.

 

 

 

 

 

April

 

: 어원이 분명하지 않고 몇 가지 설이 있습니다. 하나의 설은 열리다라는 뜻인 라틴어 aperier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고요. 다른 하나의 설은 아프로디테(Aphrodite)의 달이라는 뜻이라는 설입니다. 전자의 뜻이면 꽃이 피는 달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May

 

: 로마의 여신 마이아에서 따온 이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마이아는 산파이자 봄의 여신이며, 아틀라스의 딸이자 헤르메스의 어머니입니다.

 

 

 

 

June

 

: 유노(Juno), 즉 헤라의 달이라는 뜻입니다. 헤라는 가정의 여신인데, 로마에서는 6월이 결혼하기 좋은 달로 통용되었다고 합니다.

 

 

 

 

 

July

 

: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달이라는 뜻입니다. 카이사르가 율리우스력을 만들면서 July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그 이전에 부르던 이름은 5월이라는 뜻의 Quintilis. 로마력은 Jan.Feb.가 들어가기 전에는 1년이 10월까지 있었기 때문에, 숫자를 의미하는 월 이름은 2개월씩 모두 밀려있습니다.

 

 

 

 

August

 

: 이름 그대로 로마 최초의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달입니다. July가 그렇듯 개명 이전의 이름은 6월이라는 뜻의 Sextilis였다고 합니다.

 

 

 

September

 

: 7월이라는 뜻입니다. 실제로는 9. 라틴어 Septem이 영어로는 Seven입니다.

 

 

 

 

October

 

: 이름 그대로 8월이라는 뜻입니다. 실제로는 10. 라틴어 Octo8이라는 뜻이고, 영어로 문어를 Octopus라고 하는데 문어 다리가 8개라 그렇습니다.

 

 

 

November

 

: 9월이라는 뜻입니다. 실제로는 11. 라틴어 Novem이 영어 Nine입니다.

 

 

 

December

 

: 10월이라는 뜻입니다. 실제로는 12. 라틴어 Decem10이라는 뜻인데, 영어에는 DecaDeci라는 표현이 남아있습니다.

 

 

 

 

 

 

- 요일

 

 

 

 

Sunday

 

: 이름 그대로 태양의 날.

 

 

Monday

 

: 이름 그대로 달의 날.

 

 

 

Tuesday

 

: 티르의 날입니다. 고대 영어에서는 TýrTiw라고 표기했는데, 그 언어가 남아서 튜즈데이가 되었습니다. 현대에 티르는 전승이 많지 않으나, 고대 게르만에서는 티르가 주신이었다고 전해집니다.

 

 

 

Wednesday

 

: 오딘의 날입니다. 고대 영어에서는 오딘을 Wōden으로 표기했습니다. 그 언어가 남아서 웬즈데이가 되었습니다.

 

 

 

Thursday

 

: 토르의 날입니다. Thor's day라는 뜻. 북유럽 신화에서 티르, 오딘, 토르는 시대나 지역에 따라 주신으로 대접받았었습니다.

 

 

 

Friday

 

: 프레이야의 날이라는 의미라는 게 통설입니다. 또는 프리그(Frigg: 오딘의 아내) 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라틴어로는 금요일이 Dies Veneris. 즉 비너스의 날인데, 그게 북유럽으로 들어오면서 비너스와 비슷한 신격인 프레이야나 프리그의 이름을 빗대어 프라이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정설은 아니지만 프레이야와 프리그가 본래 동일한 신이었는데, 후대에 갈라졌다는 설도 있긴 합니다.

 

 

 

Saturday

 

: 이름 그대로 사투르누스의 날인데, 로마식 이름인 사투르누스라고 하면 사람들이 잘 모르고요. 그리스 신화에서의 이름은 크로노스입니다. 이미지 나쁜 그리스에서의 크로노스에 비해 로마의 사투르누스는 이미지가 좋았습니다. 토성의 영어식 이름 새턴도 사투르누스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예수는 왜 신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을까

인류 2017. 9. 20. 12:25 Posted by 해양장미


 나자렛 예수는 크리스트교에서는 동정녀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한 신의 아들이자, 메시아이자, 성부와 같은 페르소나라 주장합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현대인들이 들으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지요. 만약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했다 가정한다면, 남신+여인이니까 잘 봐줘도 반쪽짜리 신 아니냐고요.

 

 본문에선 옛 사람들이 왜 예수의 신성을 인정하기 쉬웠는지, 과학기술의 발전이 어떻게 여권을 성장시킬 수 있었는지, 사람들의 인식이 과학의 발전으로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설명해 보겠습니다.

 

 많은 것이 하나의 오해에서 비롯됩니다.실 옛 사람들은 정액 속에 이미 완성된 작은 사람이 들어있다고 생각했어요. 너무 작아서 안보인다고, 그런 식으로 생각했지요.

 

 이 작은 사람을 부르는 라틴어가 연금술과 창작물에서 많이 언급하는 호문쿨루스입니다. 다만 옛 사람들은 이 호문쿨루스가 성장하려면 모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여성의 역할은 호문쿨루스를 몸 속에서 키워 낳고 젖을 먹여 성장시키는 거라 생각했지요. 현미경으로 처음 정자를 발견했던 사람들은 호문쿨루스를 드디어 관측했다고 기뻐했었다고도 합니다.

 

 말 그대로 남성은 씨를 만드는 존재요, 여성은 그 씨를 키우는 밭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창작물에서 연금술사들이 유리병 속에서 호문쿨루스를 키우는 건, 별다른 게 아닙니다. 기술이 발달하면 정액 속의 호문쿨루스를 여자 몸이 아니라 유리병 속에서도 키울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지요. 요즘 기준으로 생각하면 시험관 아기를 대리모가 아닌 인큐베이터에서 키우려는 것이니, 별로 황당한 발상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런 오해는 과학적, 의학적으로는 별로 심한 오해는 아니었습니다. 현미경이 발견되고, 난자를 관측하고, 수정과 착상을 이해하게 되기 전까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었지요. 다만 이 오해는 문화에는 당연하리만큼 큰 영향을 줬고, 오해가 풀린 후에도 큰 영향을 줬습니다.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요? 동정녀 마리아는 성령에 의해 잉태했다고 합니다. 그 경우, 옛 사람들의 사고방식으로는 예수는 반쪽짜리 신이 아니고 온전하게 신성을 가진 겁니다. 마리아의 역할이 현대인이 생각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거랄까요. 생모가 아니라 대리모인 겁니다. 그래서인지 성모공경은 성모의 신성을 인정하지 않고, 성모의 원죄 없음만을 인정합니다. 물론 과학적으로 보면 만약 동정녀가 아이를 낳으면 자신의 클론, 그러니까 연령차 나는 일란성 쌍둥이가 나올 뿐입니다만.

 

 그리고 이런 인식체계에서 가부장제는 당연한 겁니다. 생모라 해봐야 현대인들 마인드로는 대리모 같은 거고, 자식들의 씨는 온전히 아버지의 것이니까요. 현대인들이 보기엔 좀 웃긴 이야기지만, 중세 세계관에선 여자는 번식능력은 없었습니다.




  그러다 기술이 발달하고 과학이 발전하고, 사람이 어떻게 생겨나는지가 밝혀졌지요. 이후 어머니는 기존과 다른 위상이 되었습니다. 현대 페미니즘은 모성에 대해 부정적인 경우가 많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여권의 상승은 진짜 모성의 발견으로 이루어진 면이 큽니다.

 

 자녀의 씨가 온전히 아버지의 것이 아닌 것이 알려진 이상, 호문쿨루스가 고환이 아닌 자궁에서 생성된다는 게 알려진 이상 가부장제는 금이 가기 쉬운 것이 되었습니다. 중세적 세계관에선 여성이 혈족의 이름을 주도할 수 없었지만, 현대 세계관에선 그럴 수 있습니다. 그래도 되니까요. 자녀의 생모는 보다 중요한 것으로 인정받게 되었고, 세계관의 큰 변화가 온갖 가치관과 사고방식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이 인식의 전환이 아동양육에 준 영향이 클 거라 생각합니다. 전근대적 세계관에서, 어머니는 자녀들을 남자의 아이로 볼 수 있었습니다. 전근대엔 흔했던 원하지 않는 임신일수록 자녀를 보는 눈이 나빴겠지요. 그런데 과학의 발달 이후 그게 어쨌든 내 아이가 된 것입니다. 물론 모성은 자연스러운 것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인식이 달라진 건 영향을 줬을 것입니다.

 

 그 영향일까요. 실제 현대에 들어 자녀를 키우는 방식이 바뀌고, 아동보호라는 개념이 생겼습니다. 사실 전근대엔 현대처럼 아동이 보호받거나 귀히 대접받지 못했거든요. 현대인들은 인류사에 전례 없을 정도로 너무 귀하게들 커서 문제인 것 같기도 합니다만.


순수한 초식동물은 채식하는 사람뿐입니다.

인류 2017. 9. 11. 02:43 Posted by 해양장미

 일정 이상 크기의 동물 중에, 순수하게 초식성인 동물은 채식하는 사람뿐입니다. 본문은 채식에 대한 채식주의자들의 망상을 비판하기 위해 작성하였습니다.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초식동물들은 육식도 합니다. 다만 사냥을 잘 못할 뿐입니다. 그런 방향으로 진화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나 우리가 초식동물이라 생각하는 포유동물들은 모두 육식을 할 수 있으며, 실제 자연 상태에서 일정정도는 육식을 하며, 기회가 되면 육식을 합니다. 조금 이야기해보지요.

 

 기본적으로 일정 크기 이상의 동물, 그러니까 벌레보다 큰 동물들은 벌레를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얼마든지 있고, 사실 의도하지 않아도 먹게 됩니다. 예를 들어 소가 풀을 뜯고 물을 마시다 보면 미처 도망치지 못한 벌레도 같이 먹게 됩니다. 그래도 탈은 나지 않아요. 모든 고등동물들은 비슷한 진화적 기원을 가지고 있고, 고기나 탄수화물 같은 것에 대한 소화능력은 다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 야생에선 초식동물들도 기회가 되면 얼마든지 육식을 합니다. 그 쪽이 에너지 효율이 훨씬 좋으니까요. 벌레, 새알, 죽은 동물의 사체, 뼈나 뿔 같은 건 먹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먹습니다. 자신보다 약한 동물을 공격해 잡아먹는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 그런 걸 보고 놀라거나 충격을 받는 사람도 있는 것 같은데, 어차피 모든 포유동물은 육식성 조상을 가지고 있으니 놀라울 것도 없습니다. 진화 과정에서 풀을 주로 먹는 쪽으로 진화했을 뿐이고, 고기를 소화하는 능력이 사라진 건 결코 아니거든요. 애초에 모든 포유동물은 동물성 음식인 젖과 태반을 먹기도 합니다.

 

 우리 인류의 친척인 원숭이들 중 많은 종은 이미지에 비해 훨씬 육식을 좋아합니다. 가장 가까운 친척인 침팬지는 사냥도 합니다. 인류는 유독 사냥을 잘 하게 된 원숭이의 일종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자연을 보면 채식주의자들의 채식만큼 인공적이고 관념적인 게 없습니다.

 

 실제 인류의 생물학적 특성은 어딜 봐도 육식성에 가깝습니다. 사람은 셀룰로오스를 소화할 수 없고, 뛰어난 사냥 능력과 지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초식 동물들은 장내미생물을 통해 식물의 세포벽을 소화시켜서 에너지로 쓸 수 있는데, 인류에겐 그런 능력이 없고 대신 육식동물 특유의 높은 지능이 있는 것입니다. 맹장과 어금니의 퇴화도 육식동물의 특성입니다. ‘잡식동물로 인류를 흔히 분류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모든 동물은 잡식을 합니다. 다만 셀룰로오스를 소화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초식이냐 아니냐의 주된 기준이 됩니다. 대형 동물이 자연 상태에서 충분한 에너지를 얻는 방법은 셀룰로오스를 소화하지 않으면 육식을 하는 방법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풀씨와 과육을 대량으로 길러먹을 수 있게 된 농경이라는 예외를 적용하지 않는다면 말이지요.

 

 무엇보다도 높은 지능도, 의사소통능력도 사냥을 위한 진화입니다. 대체로 초식 동물은 지능이 높지 않은데, 높은 지능이 불필요할 뿐더러 비효율적이기 때문입니다. 커다란 뇌는 쓸데없을 정도로 에너지를 많이 씁니다. 초식은 에너지 섭취 효율이 매우 낮은데, 높은 지능은 필요 없기 때문에 지능을 높일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냥을 하려면 높은 지능이 필요하고, 집단사냥을 위해선 더더욱 의사소통을 위한 지능이 발달해야하니 더 지능이 높아집니다.

 

 또한 흔한 오해와는 달리, 사실 채소들이야 말로 인류의 미각적 쾌락을 위한 장기간의 집념과 노력과 실험의 결과물입니다. 야생 나물들 같은 푸새를 제외하면, 인류가 밭에서 재배하는 모든 식물들, 남새는 야생의 그것과는 거리가 굉장히 멀고, 생존능력이 거의 없습니다. 더구나 영양학적 가치로 보면 꼭 먹지 않아도 되는 게 정말 많습니다. 그러나 인류는 맛있는 식물들을 정말 많이 개발하고 키워냈습니다.



 케일, 콜리플라워, 브로콜리, 양배추, 콜라비, 카이란은 같은 식물입니다. 품종만 다른 겁니다. 배추, 순무, 청경채도 같은 식물입니다. 마찬가지로 품종만 다른 겁니다. 맛있는 걸 먹고 싶다는 인류의 욕망과 노력이 만들어낸 재배종들인 겁니다.

 

 근래의 사회상을 볼 때 채식주의자들은 늘어날 것이고, 그로 인한 폐해도 일상화될 수 있다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조적인 채식주의자들은 아이와 개, 고양이에게도 채식을 강요합니다. 아이와 개, 고양이에게 채식을 강요하는 건 학대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채식을 강요하는 것도 자기 자신에 대한 학대입니다. 입에 안 맞아서 고기를 안 먹는 건 별문제입니다만, 사람은 육식동물입니다.


플레이트 아머에 대한 오해와 이야기

인류 2017. 5. 26. 17:38 Posted by 해양장미


 요즘 시대에 안 맞게 기사단이 많이 보여서, 이런 이야기도 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플레이트 아머는 보편적 인식보단 유니크 아이템으로 유럽사나 인류사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친 물건입니다. 이런 분야를 재미있어 하실 분들도 있으려나 모르겠네요.

 

 전쟁은 안 하는 게 좋습니다만 실제로 많이 했고, 갑옷과 투구, 방패 같은 건 전쟁에서 꽤나 중요한 물건이었습니다. 사람의 맨살은 거의 털도 없고 가죽도 얇아서, 날붙이 같은 데 대단히 취약합니다. 실제 뭔가 작업할 때 목장갑 정도만 껴도 손이 다치는 정도가 확 줄어듭니다.

 



 그래서 전쟁에 나가는 사람들은 무언가 많이 걸칠수록 살아날 확률이 높았습니다. 두꺼운 털가죽을 뒤집어쓰거나, 천 옷이라도 두껍게 누빈 옷을 입는다거나. 이런 건 실제로 방어력이 제법 있어서 각기 생가죽 갑옷(하이드)이라거나, 누비갑옷(갬비슨, 퀄티드 아머) 같은 식으로 부르는 물건이 됩니다. 좀 더 본격적인 경우는 가죽을 무두질하고 파라핀, 밀랍에 삶아 강화한다거나 옻칠을 한 것으로 갑옷을 만들기도 했습니다만, 좋은 가죽은 귀한데다 들인 공에 비해 성능이 애매한 게 문제였지요. 비단도 꽤 방어력을 가진 소재이지만, 귀하고 비싸서 그런지 활용은 제한적이었습니다.

 

 아무래도 강철로 갑옷을 만들면 방어력이 더 좋은 물건이 되기 때문에, 철을 다룰 수 있게 된 인류는 거의 어느 지역에서나 철로 갑옷을 해 입고 전투에 나서곤 했습니다.

 

 철제 갑옷은 제작방식에 따라 대략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라멜라(찰갑/미늘갑옷), 라미너(판갑), 스케일(어린갑/비늘갑옷), 메일(쇄자갑/사슬갑옷), 플레이트 앤 메일(경번갑), 브리간딘(두정갑), 플레이트 아머(판금갑옷). 게임 좀 하신 분들은 웬만큼 들어보신 것들일 겁니다. 영어식 표현을 우선적으로 쓰는 건 보편적으로 그 쪽이 더 이해하기가 쉬워서입니다.


 

 하나하나 간단히 설명하자면, 라멜라는 찰갑 또는 미늘갑옷으로 불리는 것으로 작은 금속편이나 골편, 가죽편 같은 걸 끈으로 엮은 것입니다. 방어력도 있고 제작에 큰 기술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어느 지역에서나 보편적으로 쓰였습니다만... 구조 상 유지보수가 매우 골치 아픕니다. 쓰다 보면 엮어놓은 게 계속 풀어지고 어디 공격받기라도 하면 손상되고, 겹친 부분에 녹이 스는 문제 등 때문에 반복적으로 해체 후 손질, 보수, 다시 엮기를 해줘야 했기 때문입니다.

 



 라미너는 고대에 쓰던 판 갑옷으로, 조금 큰 철판을 겹치듯 이은 형태입니다. 로마에서 쓰던 로리카 세그멘타타 같은 게 대표적이네요. 한반도에서도 쓰였고 전세계적으로 많이 쓰였습니다. 방어력은 있을 테지만 겹치는 부분이 많아 영 무겁고 불편했는지 중세 이후부터는 쓰지 않게 됩니다. 이 형태는 고대식이라 게임 같은 데도 잘 안 나옵니다.



 

 스케일은 라멜라와 혼동될 때가 많습니다. 한국어로 비늘갑옷이라 부르는데, 라멜라도 종종 비늘갑옷이라 부르기 때문입니다. 라멜라가 미늘끼리 끈으로 엮은 거라면 스케일은 단단한 비늘을 가죽 옷 같은 데 붙인 건데요. 방어력이 좋고 고대부터 근대까지, 거의 전세계에서 쓰던 갑옷 형태입니다만... 단점은 아무래도 보기보다 무겁다는 거였던 거 같습니다. 이 형태는 비늘이 겹친 구조가 잘 나와요. 보기엔 그럴싸하니 의장용으로는 곧잘 인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메일은 체인을 뜻합니다. 체인메일이라는 표현도 많이 씁니다만, 이는 후대의 표현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많이 쓰였으며, 실제 중세의 기사들을 상징하는 갑옷 형태입니다. 플레이트를 입은 기사는 중세보다는 근대의 형태에요.



  이 방식은 장점이 워낙 많아서 현대에도 쓰입니다. 촘촘한 사슬을 선이 아니라 면으로 만들어놓은 형태라, 입어도 움직임에 별로 지장이 없습니다. 공기도 통하고요. 그러면서도 베이는 걸 효과적으로 막아주기 때문에, 현대에도 정육 작업이나 잠수부가 상어의 공격을 막는다거나 하는 데 쓰입니다. 또 라멜라정도는 아니지만 노동집약적인 방식이고 기술이 덜 발달해도 좋은 걸 만들 수 있습니다. 관리도 라멜라같은 것보다 훨씬 쉬워서, 녹이 슬면 전체적으로 모래 같은 데 넣어 벗겨내는 식으로 녹제거를 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아예 스테인리스로 만들기도 하지만요. 고양이 키우는 분들한테도 유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메일은 구조적으로 사슬이 촘촘하고 이웃하는 고리의 수가 많을수록 방어력이 좋아지는데, 방어력을 높일수록 비싸고 무거워지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래도 촘촘할수록 화살 같은 걸 막는 성능이 올라가서 고성능 메일은 꽤 촘촘했던 것 같습니다.

 

 장점이 있는 만큼 단점도 꽤 분명한데, 움직이긴 편합니다만 메일을 입으면 하중이 어깨 쪽에 전부 걸립니다. 그리고 타격엔 전혀 방어력이 없다시피 합니다. 타격에 한정한다면 우리가 요즘 겨울에 입는 패딩만 못한 방어력이지요.

 

 메일이 유행하던 시기에 도검은 종종 큰 게 유용했습니다. 제대로 베이지 않더라도 후려갈기면 어쨌든 데미지가 들어가는 게 메일이니까요. 그나마 유럽 중세시대 땐 대부분의 기사들은 귀족이었고, 귀족은 죽이기보다는 포로로 잡아 몸값을 받는 게 이익이었으므로 메일만 입어도 목숨을 부지할 확률이 높아 많이 애용되었습니다만... 기사계급이 점차 기득권이 생기고, 교육수준이 올라가고 싸움을 안 하게 되면서 상황이 변하게 됩니다.

 

 플레이트 앤 메일과 브리간딘은 트랜지셔널 아머라고도 합니다. 과도기형 갑옷이라는 뜻인데, 이는 유럽에 한정하여 이 갑옷들이 메일과 플레이트 시대 중간에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플레이트 아머는 거의 유럽에서만 썼던 방식으로, 다른 지역은 브리간딘 이상의 진화는 없었습니다. 물론 현대의 방탄복이나 방검복, 강화 외골격 같은 건 제외하고요.

 


 플레이트 앤 메일은 말 그대로 메일에 판금이 결합된 형태입니다. 이 형태는 타 지역과 유럽의 것이 좀 다른데, 유럽의 것은 메일 위에 각부의 판금을 부분부분 덧입어 방어력을 높인 형태입니다.



 대조적으로 타 지역의 것은 라멜라가 진화한 것처럼 보이는 형태가 많습니다. 라멜라의 미늘을 판금 느낌 좀 날 정도로 사이즈업 하고, 잇는 끈을 메일로 바꾸면 이렇게 됩니다. 고려나 조선에서도 경번갑이라 부르면서 많이 썼습니다. 이런 형태는 플레이티드 메일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보편적으로 합의된 표현인진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명칭들 사이에서 플레이트 메일이라는 잘못된 표현 또는 오해도 등장했습니다. 실제론 플레이트 앤 메일과 플레이트 아머는 좀 다른 겁니다. 플레이트 아머는 거의 전신이 판금이며, 움직임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일부분만 메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풀 플레이트라는 표현도 씁니다.

 



 브리간딘은 유럽지역이 아닌 지역, 특히 아시아 지역에서 갑옷의 최종진화형태였습니다. 이 형태는 가죽이나 직물로 된 천에 라멜라보다 큰 철판들을 리벳()으로 고정시킨 것인데, 이렇게 만들면 충격을 받아도 철판들의 연결이 잘 끊어지지 않습니다. 방어력이 좋은데 유지보수도 쉬웠습니다. 조선에선 두정갑이라 불렀지요. 우리 조상들이 제법 많이 썼음에도 어째 현대엔 잘 알려지지 않은 유형입니다. 유럽에선 많이 안 썼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브리간딘은 그냥 가죽옷이나 비단옷에 정이 박혀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만들기에 따라선 거의 갑옷처럼 안 보이기도 합니다. 안쪽은 다 철판이지만요. 이런 외형은 갑주에 대한 기억이 많이 잊혀졌던 20세기 중후반기만 해도 많은 오해를 낳았습니다. 가장 흔한 오해가 브리간딘을 징 박힌 가죽갑옷으로 오해한다거나, 아예 아시아 군인들은 갑옷을 잘 챙겨 입지 않은 걸로 오해한 것입니다. 이 오해 속에서 나온 것 중 D&D룰에 나오는 스터디드 레더 아머라는, 가죽에 징을 박아 방어력을 높였다는 게 있습니다만, 실제론 그런 거 없었습니다. 브리간딘을 오해한 거예요. 그렇지만 요즘 게임에도 그 이상한 가죽 갑옷은 종종 등장합니다. 가죽에 징만 박는다고 그다지 나아질 건 없을 텐데요. 그리고 우리나라 사극에서 조선 군인들은 아직도 갑옷을 잘 안 챙깁니다...

 

 어쨌든 브리간딘은 거의 단점이 없는 갑옷이었으니까 웬만해선 이거보다 갑옷이 발달하지 않았습니다. 유럽만 예외였지요. 모두가 알다시피, 유럽엔 전신을 감싸는 플레이트 아머가 등장합니다.


 

 플레이트 아머는 무겁고 둔하다는 흔한 오해와는 달리 입은 상태에선 단점이 거의 없습니다. 입고 체조건 구르기건 달리기건 다 할 수 있습니다. 보기엔 무거워 보입니다만, 실제 철판이 그다지 두꺼운 건 아니고, 통판 특성상 하중이 분산되기 때문에 오히려 철 조각들이 겹치는 스케일 같은 것보다 무겁지도 않고 메일처럼 어깨에만 하중이 걸리지도 않습니다.

 

 방어력도 다른 갑옷보다 아무래도 높았는데, 통 철판이라 냉병기론 데미지가 잘 안 들어갔습니다. 물론 꿰뚫는 게 불가능하진 않고 강하게 때리면 안쪽으로 충격이 들어가긴 합니다만, 플레이트는 정타가 잘 안 들어가도록 여기저기 각이 져있어서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당연하리만큼 플레이트에 데미지를 주는 공격법이나 냉병기도 발달하긴 했습니다만... 너무 많은 훈련과 재능이 필요했습니다.

 

 일단 왜 유럽에서만 플레이트 아머가 발달했는지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플레이트의 발달 요인 중 하나는 유럽 중세사회의 봉건제에 있습니다. 기사와 기사단, 용병단 위주의 형식과 문화를 지니고 있었던 유럽 군대는 다른 유라시아 지역 군대에 비해 아무래도 소수정예 엘리트 무장집단에 가까웠고, 그러다보니 개개인의 무장 수준이 높았습니다. 대조적으로 징병을 일상적으로 하거나 모든 남성이 전사에 가까웠던 아시아 군대는 각각의 무장 수준은 낮았지요. 쉽게 이야기하면 숫자냐 정예화냐의 차이입니다.

 

 정예화된 유럽 기사들은 랜스의 발달과 함께 마상 돌격을 많이 활용했고, 그러다보니 더 갑옷이 발달했습니다. 플레이트는 투구 다음 무릎, 정강이 부분부터 발달했고 이는 말에 탄 상태에서 다리를 공격당하는 걸 막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플레이트가 발달하게 된 데는 또 다른 요건들도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는 흑사병이었습니다. 유럽은 흑사병으로 인구가 많이 줄어들었는데, 그 결과 제조업이 노동집약적인 것보다는 숙련자에 의한 것으로 발달하였습니다. 갑옷 중에 라멜라나 메일은 노동집약적인 것입니다. 대조적으로 플레이트는 숙련된 장인이 만들 수 있는 것이지요. 또 유럽에선 시장경제가 비교적 일찍 활성화되었는데, 이는 유럽 중세사회에서 도시들이 독립적이었던 것과 연관이 있습니다. 인력의 감소로 인해 발달한 도제 시스템과 상공업자들의 공간이었던 도시가, 엘리트 위주의 군대 문화와 맞물려 만들어낸 게 플레이트 아머입니다. 유럽에서만 플레이트가 등장하게 된 덴 이런 이유들이 있었습니다.

 

 대조적으로 다른 지역의 갑옷은 노동력 문제가 덜했고 도시, 상업이 덜 발달했으므로, 메일이 좀 더 촘촘해진다거나 아니면 브리간딘의 외피가 더욱 화려해지는 식으로 발달합니다. 메일이나 브리간딘이 꼭 플레이트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갑옷은 아니기도 합니다. 사람이 쓰는 물건이다보니 입은 상태에서의 방어력이 전부는 아니거든요.

 

 플레이트 아머엔 결정적인 단점이 있었는데... 입고 벗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구조적으로 혼자선 입고 벗는 게 좀 어렵습니다. 입은 상태에선 화장실 문제도 해결이 안 됩니다. 그래서 더더욱 플레이트는 엘리트 기사 위주였던 유럽 사회에서 잘 통용될 수 있는 물건이었습니다. 종자 없이 입고 벗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닙니다만,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그리고 기사들은 플레이트를 입은 상태에서 화장실 갈 일이 생기면... 보통 그냥 입은 채로 배설하였습니다. 그 결과물을 해결하는 건 종자의 몫이었지요.

 

 아시아 전쟁사에 등장하는 것처럼 장수가 갑옷을 입은 채로 잔다거나... 밤에 기습을 받았는데 갑옷을 걸쳐 입고 뛰어나간다거나 하는 게 플레이트로는 거의 안 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대조적으로 브리간딘은 안쪽이 철판인 코트 같은 거라 기습 받아도 바로 걸쳐 입을 수 있었지요.

 

 그래도 플레이트는 방어력이 좋아도 너무 좋았습니다. 냉병기로 플레이트를 상대하려는 시도도 많았습니다만, 그보단 화기가 빨리 발달합니다. 위에 이야기했듯 검이나 철퇴, 해머 들고 플레이트 입은 기사를 상대하려면 많은 숙련에 더해 재능까지 필요했으나, 화기는 아무나 다뤄도 기사를 이길 수 있으니까요.

 

 결과적으로 플레이트 아머의 발달은 총기의 발달을 초래하였고, 성능이 영 좋지 않던 전근대 총기를 다루는 전략전술도 발달시켰습니다. 유럽 군대는 계속 강해졌고, 결국 다른 지역을 본격적으로 침공해 점령할 수 있을 만큼 강해집니다.

  

 플레이트 아머의 발달 이전까지 유럽과 다른 지역의 군사적 역량 차는 별로 없었습니다. 오히려 많이 졌지요. 자주 싸웠던 중동, 이슬람 세력은 물론 칭기즈칸의 손자, 킵차크 초대 칸 바투가 폴란드를 정복했을 때만 봐도요.



 그 때 참전한 기사단 중 유명한 기사단으로 소위 튜튼기사단으로 불리는 예루살렘의 성모마리아의 도이첸(독일) 형제회가 있었습니다. 1190년 경 현 이스라엘 아코 시에 세워진 야전 병원에서 시작되어 1808년 나폴레옹에 의해 해체되었다가 다시 부활하여 명예 가톨릭 단체로 아직도 남아있는 단체인데요. 여튼 그 땐 튜튼기사단이 졌습니다. 그림에도 표현되지만, 1241년이라 플레이트가 아닌 메일 입던 시기였어요. 이 때 고려에선 최충헌의 아들 최우가 집권하던 때였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보편적 의미에서의 중세 땐 플레이트 아머가 없었어요.

 

 기록상 플레이트 아머가 최초로 등장하는 시기는 1410년입니다. 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중세라기보단 르네상스 시기(시각에 따라선 르네상스를 중세말로 보기도 합니다만), 이 때 한반도는 조선 태종 이방원 집권기였습니다. 즉 플레이트 아머는 흑사병 이후의 르네상스 시대에 만들어지게 된 것으로, 근대의 태동기에 등장하여 근대사 발전과 그림자에 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물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총기의 시대에 플레이트 아머는 점차 각 부분이 줄어들고 흉갑만 남다 사라져 현대의 방탄복으로 교체됩니다. 근래는 전국민이 징병되고 군용 방어복이 비교적 중시되지 않는 시기였습니다만, 점차 징병제가 사라지면서 그런 추세도 변하고 있습니다. 이제 스타크래프트의 마린이 입는 것 같은 전투복이 개발중이다보니 나중엔 정예 군인들이 그런 걸 입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다시 전쟁은 기사단이 하는 것으로 돌아가겠지요. 근현대의 시민 평등을 만든 건 총기였습니다. 죽창이 아니라 총 앞에서 만인은 평등했으니까요. 총을 막아낼 수 있는 강화 외골격이 보편화되면 평등은 사라질 확률이 꽤 있습니다.


전편 링크 : (상) 기원부터 등장까지



 아마도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불을 사용하는 사람속 중에서도 매우 개성적인 특성과 능력을 지녔을 것이다. 물론 우리 외에 다른 가까운 친척들은 실질적으로 멸종되었기 때문에, 그들과 우리를 정확히 비교하는 것은 좀 어려운 면이 있다. 현재 인류의 분화도 외형적으로 복잡하긴 하지만, 그 DNA의 차이를 분석해보면 극히 미미하다. 그렇지만 정말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고, 그로 인해 추론되는 많은 것들이 있다. 그것들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과거에 학자들은 우리 호모 사피엔스가 다른 사람속보다 단순하게 잘난, 선형적으로 발달 진화한 종일 거라 추측하였다. 쉽게 말해 키도 더 크고 뇌도 더 큰 쪽으로 말이다. 그렇지만 이후 알고 보니 별로 그렇지가 않았다. 알고 보면 우리의 친척들은 우리보다 잘난 면이 많았다. (아마도) 말도 잘 했고, 머리도 비슷하게 좋았고, 때로는 힘도 더 세거나 키도 더 컸다. 예를 들어 잘 알려진 우리의 친척,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는 우리 기준에서 이야기하면 소위 약을 빨아야 나올 수 있는 엄청난 근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추정된다.





 아마도 네안데르탈렌시스가 어떤 몸일지를 암시할 수 있는 예를 들어보자. MMA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알 법한 알리스타 오브레임은 도핑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준 인물이다.[각주:1] 2007년까지만 해도 오브레임은 90~100kg 정도의 체중을 가지고 있었고, 일류 선수 반열로 평가받았지만 탑 수준 선수와의 경기에서는 연패를 거듭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오브레임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근육 증량과, 그 근육 증강만큼의 경기력 향상을 보이게 된다.




 그 최종 결과는 위의 사진과 같았다. 사실 이건 도저히 정상적인 사피엔스가 가질 수 없는 몸이다. 인간이 자연적으로 늘릴 수 있는 근육량은 타고난 골격에 맞춰 일정한 한계가 있다. 자연적으로는 무리하게 근육을 붙이려 해 봐야 일정 이상은 잘 안 붙는다.[각주:2] 그런데 오브레임의 근육 및 근력 증가는 도저히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는 영역이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도핑을 의심했지만, 그 도핑이 적발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동안 오브레임은 챔피언이 되었고, 그 후에야 도핑이 적발되었다. 사람들은 대체로 걸릴 만한 게 걸렸다는 생각을 했다. 도핑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변화였기 때문이었다.[각주:3]


 그런데 네안데르탈렌시스는 이렇게 우리 사피엔스가 도핑을 해야 나올 수 있는 근육량을 자연적으로 가졌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유전적 변이에 따라 우리 사피엔스보다 훨씬 강인한 몸을 가질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살아남은 것은 힘이 약한 우리다. 사실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현생 사람족 중에 유독 힘이 약한 편이다.[각주:4] 결국 근력이 약하고 보다 슬림한 몸을 가진 게 생존에 유리했다는 의미다. 이것에 대해서는 후에 더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또 한편으로 우리 사피엔스는 성차, 그러니까 여성과 남성 간의 차이가 상당히 크다. 다른 사람속을 실제로 본 생존자가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속의 성차가 어땠을지는 미지수지만, 개인적으로는 우리 사피엔스만큼의 성차는 다른 사람속에는 없었을 거라고 추정한다. 많은 근거들로 미루어볼 때 우리의 큰 성차가 우리를 다른 사람속과는 달리 한 차원 더 발달한 종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우리 인류 여성은 외형적으로 매우 두드러지며, 각종 독특한 특성들을 지닌다. 부푼 젖가슴과 양이 많고 각종 문제소지를 가진데다 잦은 월경, 본인도 제대로 알 수 없는 가임기[각주:5], 매우 정교한 신경 및 근육 체계 등이 그렇다. 사실 이런 특성들은 오랜 논쟁거리를 제공하는데, 일견 큰 의미가 없어 보이는 이런 특성들이 우리의 생존과 발달에 매우 유리한 요소임에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내가 지지하는 가설은 다음과 같다.


 월경이라는 언어 자체가 그렇듯, 우리 사피엔스의 평균 월경주기는 묘하게도 달의 주기와 일치하는 28일이다. 침팬지의 경우 월경 주기는 36일이라 달의 주기와 일치하지 않는다. 사람의 경우도 실제 달의 주기와 월경의 패턴은 관련이 없다. 단 사람은 생리불순이 없는 한 달의 모양을 보고 대략 언제 월경이 시작될지, 언제 끝날지를 알 수 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우연일지 몰라도 엄청난 결과를 불러오게 되었다. 우리는 사실 잘 공감할 수 없는 것이지만, 수많은 동물들은 단순히 현재만을 살아간다. 그들의 지성으로는 ‘현재’외엔 과거의 기억도 없고 미래 또한 예측 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보다 지능이 발달한 동물들은 과거의 기억을 가지고, 학습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 인류는 그것보다 한 단계 발전한 시간적 인지 구조를 가진다.


 동물 중 오직 우리 인류만이 미래를 예상할 수 있다. 이것은 단순한 지능의 영역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그보다는 상상과 통찰, 더 나아가서는 창조성의 영역인 것이 미래다. 미래는 과거와 같지 않고, 경험해본 일도 아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우리 인류는 엄청난 지적 도약을 해냈다.


 나는 28일 주기의 월경이 그것을 가능하게 하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 하나다. 대략 보름달이 뜰 때마다 월경을 하는 여성이라면, ‘다음 보름달이 뜰 때쯤 또 월경이 시작될 것’이라는 예측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인지적 확장은 지구 역사상 처음 등장하는, 차원이 다른 포식자를 만들어내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이런 특성은 아마도 온전히 사피엔스의 것이리라 추측한다. 우리의 인지 속에 미래가 들어오는 순간, 우리는 엄청난 일들을 해낼 수 있게 되었다. ‘계획’과 ‘상상’이라는 개념이 등장한 것이다. 우리에 비해 별로 모자랄 것 없었던 다른 인류들이 모두 실질적으로 멸종하고 우리만이 남게 된 것은 분명 현격한 차이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차이는 아마 이것이었을 것이다.


 미래를 인지하게 되면 우리는 계절의 흐름과 동물의 이동 경로 등 자연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된 이상 우리는 이제 별 생각 없이 돌아다니면서 동물을 잡을 필요가 없었다. 우리는 언제 어느 때, 어떤 동물이 어느 방향으로 어디로 이동할지를 알게 되었다. 이것은 더 강한 근육이나 더 큰 키보다 훨씬 강력한 것이었다. 사피엔스 여성들은 생리혈이 많아도, 사냥에 적극적으로 참가하기가 어려워도 별 문제가 없었다. 이제 인류 남자들은 최고의 사냥꾼이 되었고, 시간감각의 확장이 먼저 일어났으리라 추정되는[각주:6] 여성들의 식량 자급률은 남성이상으로 뛰어난 효율을 가지게 되었다.[각주:7] 성별 간에 분업이 일어났고, 그것은 인류의 번성에 기여하였다.


 나는 분업이 일어나고 그것이 강화되는 동안이 우리 사피엔스 개개인의 전성기였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모든 신체적, 심리적 양상들은 이 시기를 기준으로 완성되었다. 다른 종보다 차별화된 능력을 지니게 된 사피엔스는 풍족한 식사를 누리며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었다. 그 시기의 선조들에게는 충치도, 정신병도, 심한 전염병도, 영양 결핍으로 인한 성장 장애도, 대규모 전쟁도 거의 없었다. 훨씬 더 적은 시간을 일하고, 훨씬 많은 자유와 주변인과의 친밀함 및 애정 관계를 누리면서 지낼 수 있었다. 식단만 봐도 현대인보다 훨씬 많은 고기를 먹었다.


 이 시기에 우리는 그야말로 생태계 최강의 포식자였다. 미래를 예측하고 각종 상황을 상상하는 능력 외에도 여러 독특한 특성들이 우리를 만물의 영장으로 만들었다. 옆으로 확장된 동공과 상대적으로 작은 검은자위, 많은 부분이 드러난 흰자위는 내가 어딜 보는지, 상대가 쉽게 알 수 있도록 한다. 이것은 격투를 벌인다면 불리한 조건이지만 대신 소통에는 큰 이점이 있다. 사냥 중에도 내가 어디를 보고 있는지 동료들이 쉽게 알 수 있다. 연인 또는 가족과의 대화와 감정적인 회복에도 도움이 된다. 또한 우리의 극단적으로 줄어든 체모와 발달한 땀샘은 몸 전체를 방열판처럼 사용할 수 있게 한다. 어떤 종족도 사바나에서 인간처럼 오래 달릴 수 없다. 또한 인간의 잘 연계된 근육과 긴 팔다리, 발달한 신경계는 무기의 장거리 투척이라는 경이적인 행위를 가능하게 한다. 이와 동시에 우리는 모든 동물이 두려워하는 불을 들고 다닌다. 원한다면 우리는 모든 동물을 사냥할 수 있었다. 잘 알다시피 거대한 매머드조차 인류의 공격을 피할 수 없었다. 적당한 양의 근육은 사냥 및 생존에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너무 많은 근육은 에너지 소모가 많고, 운동 시 더 많은 열을 발생시킨다. 대신 우리는 대단히 정교하고 협응이 잘 되며, 매우 다양한 동작을 수행할 수 있는 복잡한 근육 구조를 발달시켰다. 우리는 야구공을 시속 150km 이상으로 던질 수도 있지만, 쌀알에 조각을 할 수도 있는 종족이다. 우리 외의 다른 종족들은 힘은 우리보다 세지만 절대 이런 난해한 동작들을 할 수 없다.


 포식자로서의 본능은 우리에게 깊숙이 각인되어있다. 예를 들어 아직 말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들에게 고기와 채소를 동시에 주면, 아이들은 고기부터 먹으려 드는 경향이 있다. 원래 우리는 그런 동물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들은 어릴 때는 각종 잎채소들의 쓴 맛에 민감하고, 그런 것들을 잘 먹으려 들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본능적으로 달콤하게 잘 익은 열매와 고소한 견과류를 좋아한다. 원래 우리는 그런 것들을 주로 먹어왔다. 물론 쉽게 채집 가능한 소형의 새우, 게, 생선 등도 우리는 많이 먹었다.




 이 시기의 자유로운 사피엔스는 현대의 우리와는 달리 지속적인 갈등에 노출될 이유도, 더 높은 지위를 원할 이유도 별로 없었다. 당시의 우리는 그리 많은 수의 집단을 형성하지 않았다. 특정 지역에 너무 많은 사람이 살면 식량을 충분히 확보할 수 없게 된다. 또한 이때의 우리는 사냥감의 움직임 및 기후의 변화에 따라 어느 정도 이상씩 돌아다녀야 했고, 갈등이 일정 이상 생기거나 하면 싸우기보다는 갈라지면 되었다. 쉽게 말해 서로 사이가 안 좋은데 계속 지지고 볶고 싸울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까지도 지속적인 다툼과 경쟁을 힘들어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린 사실 수천 년 전까지만 해도 별로 그래본 적이 없었다.’


 영역 또는 영토의 개념도 이 시기엔 별 의미가 없었다. 우리 선조가 살던 아프리카 대륙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넓었고, 사냥감은 풍족했으며 사람은 적었다. 멀리 이동하다 보면 우리의 친척들은 볼 수 있었겠지만 사피엔스 자체는 그리 많은 수가 아니었다.


 본래 생태계에서 포식자의 수는 그리 많을 수가 없다. 실제로 사피엔스의 수도 압도적으로 긴 기간 동안 생태계 안에서 효율적으로 조정되었다. 한 때는 크게 쇠퇴하여 멸종 위기에 몰린 적도 있었다. 그러나 사피엔스는 어려움을 항상 극복했고, 7만 년 전에는 아프리카를 떠나 다른 지역까지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런 과정 속에서 번영의 마지막 시기에 우리는 새롭고도 묘한 식량자원을 이용하게 된다. 중동 등지에 있던 야생곡물들이 그것인데, 이 묘한 식물들은 한 계절에 집중적으로 보존성이 좋은 식량을 제공해주었다. 당시엔 빙하기가 끝나면서 식생이 크게 변하던 시기였는데, 풍부해진 야생곡물들은 당시의 인류에게 꽤나 매력적인 존재였을 것이다.




 기존의 수렵채집생활이 풍족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때때로 식량이 모자라던 기간은 있었을 것이다. 곡물은 유난히 좋은 보존성을 가지고 있기에 곡물을 충분히 확보한다면 1년 내내 식량 걱정을 덜 수 있다. 물론 이런 야생곡물의 확보는 정말 오랜 기간 동안 지극히 부수적인 역할을 했겠지만, 점차 그 우수한 기능성에 매료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대략 12900년 전에 지구에 큰 사건이 터지게 된다. 1300~1400년 정도 지속된 이 시기를 ‘영거 드라이어스’기라고 부르는데, 대단히 갑작스럽고 상대적으로 짧은 빙하기였다.


 당시는 빙하기가 끝나고 점차 따스해지던 시기였다. 그런데 빙하기 때 북미에는 엄청난 양의 빙하가 있었다. 이것은 날이 따스해지면서 점점 녹아서 거대한 규모의 호수가 되었는데, 그 크기는 현대의 오대호보다도 컸다고 한다. 그리고 남아있는 빙하로 인해 가둬져 있던 호수는 결국 마지막 빙하마저 녹아 일시에 엄청난 양의 담수가 대서양으로 흘러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세계 대양의 해류흐름은 멈추었다. 그 결과는 극적인 기온 하강이었다.


 당연히 그 시기를 살던 우리 선조들은 황당한 경험을 해야 했을 거다. 불과 50년 만에 지구 평균기온이 7도나 떨어졌다. 평균기온 7도의 차이를 설명하자면, 한반도가 50년 만에 핀란드보다 더 추워진다는 것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이 쯤 되면 당연히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실제로 영거 드라이어스기에 멸종한 동물들이 꽤 있다.


 이미 다른 종에 비해 차별화된 능력을 지녔던 우리 사피엔스 중 일부는 이 시기에 생존을 위해 새로운 도전에 나서게 되었다. 자연의 최고 포식자이던 인류가 급변하는 자연에 맞서, 자연을 통제하고 조정하며 더욱 파격적인 번영의 길로 나아가고자 마음먹게 된 것이다. 농경이 시작되었다.




(계속)


  1. MMA는 약물파동으로 한동안 시끄러웠던 MLB 등과는 다르게 옷을 벗고 하는 스포츠라 몸이 어떻게 변하는지 아주 잘 보인다. [본문으로]
  2. 대부분의 바디빌더들은 약물을 한다. 약을 빨지 않고서는 그런 몸이 나올 수가 없다. 약을 쓰지 않는 바디빌드는 내츄럴 바디빌드라고 따로 부를 정도. 미국 등지에서 도핑은 생각보다 훨씬 일반화되어있을 뿐만 아니라, 약학 연구의 많은 부분조차 도핑에 투자되고 있다. 실제 심장병 연구보다 안 걸리고 강력한 도핑 연구에 더 많은 돈이 쓰인다는 건 공공연한 소문이다. [본문으로]
  3. 많은 프로 스포츠에서는 도핑 검사를 올림픽 수준으로 하지 않는다. 그래서 종종 약물 파동이 일어난다. 물론 올림픽 수준으로 검사를 해도 나중에야 도핑이 밝혀지는 경우도 많다. [본문으로]
  4. 침팬지보다 훨씬 힘이 약하다는 뜻이다. [본문으로]
  5. 생리주기 내의 가임기간, 즉 배란부터 월경까지를 의미한다. [본문으로]
  6. 이 가설을 뒷받침하는 증거라기엔 불충분할 수 있지만, 투자를 할 때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은 지금도 여자들이 더 좋은 편이다. 대신 뛰어난 사냥꾼이었던 남성의 공간 감각은 평균적으로 여성보다 뛰어나다. [본문으로]
  7. 의외로 많은 경우 여성들의 채집활동은 상당한 식량 자급 효율을 가진다. 실제 현대에 수렵채집 활동을 하는 부족들을 보면, 여성들의 채집 활동이 평균적으로는 남성들의 대형 동물 사냥보다 더 많은 칼로리를 확보하곤 한다. 대형 동물 사냥은 실패하는 날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성들이 종종 잡아오는 대형 동물은 질적으로 더 나은 식량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여성들에게 필요한 철분을 확보하는 데 중요하다. 또한 근사한 사냥감은 남성에게 있어 수컷 공작의 꼬리와도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 [본문으로]



 46억년이나 되는 지구의 역사는 생명의 역사와도 같다. 확인된 최초의 생명체의 출현 연대는 38억 7천만 년 전이지만, 이보다 오래 된 암석은 지구상에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생명체의 출현은 그보다 빨랐으리라 추정된다. 그렇다면 그 오랜 생명의 역사 속에 가장 위험하고, 포악하며 강력한 포식자는 누구였을까?





 이 답은 정해져 있다. 우리 인류, 호모 사피엔스다.


 인류의 지구정복은 결코 근현대의 산업 문명이 이루어낸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이미 아주 오래 전에 다른 종이 이르지 못한 영역에 이르렀고, 차별화된 장점을 가졌다. 그리고 모든 다른 종들을 발밑에 두게 되었다. 그러나 그 후 우리는 새로운 시련 앞에서 또 다른 도전을 했고, 그 결과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너무 많이 변했기 때문에 우리는 사실 우리가 어떤 종이었는지도 거의 잊었다. 그러나 결국 극히 최근에 들어 우리는 본래의 모습을 조금씩 발견해가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왜 이토록 가진 게 많음에도 불구, 왜 그리도 불안하고 불행한지를 넌지시 일려주는 본질이다.


 그것을 알리기 위해서는 우리의 기원과 식생의 변화, 그리고 돌아가야 할 곳을 이야기할 필요가 있겠다. 생물학적으로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고, 그 기원을 찾고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알아보자.


 우리의 가장 먼 직접적인 조상의 기원은 약 3억 2400만 년 전, 고생대 석탄기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초의 완벽한 육상 네발동물인 파충강은 꽤 초기부터 복잡한 분화를 보이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들로는 무궁아강과 단궁강, 그리고 이궁아강을 들 수 있었다. 무, 단, 이라는 것은 두개골 뒤에 있는 측두창의 개수를 의미하는데, 무궁아강은 측두창이 없고, 단궁강은 하나며 이궁아강은 두 개다.


 이 중 단궁강은 전통적으로는 파충강 내의 단궁아강으로 분류하였으나, 현재는 그보다는 단궁강이라는 독립된 강으로 분류하는 추세인 것 같다. 단궁강의 초기 형태는 반룡목이라 불리는데, 고생물에 조금만 관심이 있더라도 많이들 봤을 법한, 등에 돛이 커다란 고생대 생물들이 그들이다.




 이런 등지느러미는 체온 조절을 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시대가 흘러 페름기가 되자 더 진화된 단궁강 생물인 수궁목이 등장하게 된다. 수궁목은 흔히 ‘포유류형 파충류’로[각주:1] 알려진 생물들로, 다리뼈가 바로 몸통에서 아래로 떨어져 보다 활동적인 몸을 가지게 되었으며 또한 강화된 체온조절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페름기에 수궁목은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지구생물 역사상 최악의 참사인 페름기말 대멸종이 찾아오면서 그 전성기도 한풀 꺾이고 만다.


 지구 생물의 95%가 멸종한 페름기말 대멸종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근래 나온 가장 유력한 가설은 시베리아에서 거대 화산이 폭발해 오존층이 크게 파괴되면서 지구 기온이 너무 올라갔다는 것이다. 당시 열대지역 해수온도는 섭씨 40도까지 올라갔고, 식물이 살 수 없게 되면서 생태계의 고리가 끊어졌다고 추정된다. 이후 중생대 트라이아스기가 오면서 많은 것이 변하게 된다.


 단궁강의 명맥이 페름기에 끊긴 것은 결코 아니다. 수궁목도 트라이아스기 초기만 해도 강성했다. 그런데 중생대는 고생대와는 전혀 다른 기후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페름기 때 산소농도는 현재의 115%에 이르렀다. 그런데 트라이아스기가 되자 산소농도가 현재의 80%수준으로 떨어졌다. 아마도 산소를 만들어내는 식물이 많이 죽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평균 기온은 더 올라갔다.


 이런 상황에서 수궁목이 가졌던 체온 유지 능력과 커다란 체격은 더 이상 그리 유리한 조건이 아니게 되었다. 그리고 굉장히 강력한 경쟁자가 나타나게 되는데, 그들은 위에 이야기했던 이궁아강의 후예들이었다.


 단궁강에 비해 이궁아강은 굉장히 다양하게 분화하였다. 복잡한 분화 속에 현재까지 그 후예가 살아있는 두 하강은 인룡하강과 조룡하강인데, 이 조룡하강 중에서 경이적인 생명체가 등장하게 된다.


 이 새로운 생명체들은 희박한 산소농도에서도 민첩한 움직임을 가져갈 수 있는 특수한 조직을 가지고 있었다. 폐에 달려있는 기낭이라는 주머니가 그것인데, 이 기낭은 혈관처럼 뼈와 근육 속으로 이어져 굉장히 효율적으로 산소를 공급할 수 있는 기관이었다. 기낭을 가진 그들은 체격이 작고 빨랐고, 수궁목들은 그 민첩한 움직임을 따라갈 수 없었기에 진화 경쟁에서 한 발짝 뒤쳐지고 말게 된다. 이 조룡하강의 새로운 강자는 다름 아닌 공룡이었다.





 공룡은 잘 알려진 대로 곧 거대화되었고 이후 쥐라기에 접어들면서 전성기를 맞이한다. 그러나 단궁강 또한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다. 쥐라기에 단궁강은 거대화된 공룡의 힘을 이길 수는 없었지만, 보다 효율적인 생존 방식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치아의 종류를 다양하게 만들고, 입과 코 사이에 구멍을 뚫었다.[각주:2] 이로 인해 단궁강은 보다 효율적인 음식 섭취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대신 치아의 복잡한 진화는 연속적인 치아의 교체를 어렵게 만들었다[각주:3].


 또한 단궁강은 공룡이 잠든 야간에 주로 활동하게 되면서 청각과 후각이 발달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지능이 높아졌고, 보다 활동적인 심장과 숨을 보다 효율적으로 쉴 수 있는 횡격막, 그리고 추운 밤에도 추위를 타지 않게 하는 체모, 자손을 보다 안전하게 키울 수 있는 가죽 주머니 등이 생기게 된다. 이런 진화 후의 모습은 단궁강이라는 이름보다는 현대의 포유강이라는 이름에 보다 어울린다. 단궁강과 포유강은 사실 다른 분류가 아니다. 단궁강이 진화해서 그대로 포유강이 된 것이다. 겉보기엔 좀 많이 변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포유강의 알껍질은 점점 얇아지다가 아예 알이 없어지는 쪽이 대세가 되고 만다. 진화 과정에서 육아 주머니 대신 횡격막 밑의 공간을 활용해 아예 몸속에 육아를 시키는 공간을 만드는 변화가 생기기도 한다. 태반을 가진 포유강, 진수하강이 생긴 것이다. 한편으로 공룡 또한 굉장히 다양하게 분화하면서 털이 있는 종류가 생기기 시작하는데, 이들을 깃털공룡이라 부른다.


 이후 시간이 오래 흘러 백악기를 지나 중생대도 막을 내린다. 잘 알려진 공룡시대의 종말은 긴 추위와 함께 시작되었으며, 체온을 보존할 수 있는 종들만이 살아남았다. 이 과정에서 살아남은 공룡들은 통상적인 입과 이빨 대신 부리가 달려 있었는데, 덤으로 깃털까지 길게 기른 친구들이었다. 쉽게 말해 새가 되어 있었던 공룡들이었던 것이다.




 신생대에 들어서도 포유강과 조강의 경쟁은 계속된다. 거대한 육식성 새들이 정말 오랜 세월동안, 대략 6000만년동안 포유강과 포식자의 지위를 놓고 경쟁을 했다. 그리고 그 경쟁이 종결된 것은 비교적 최근이라 할 만한 200만 년 전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결국 승리한 것은 보다 지능이 높고 민첩한 포유강이 되었다. 이제 거대한 포식성 새들은 더 이상 지상에 남아있지 않다. 언제든 이 상황은 다시 바뀔 수 있지만.


 한편 진수하강 중 우리가 속한 영장상목은 백악기에 분리되었다. 이 영장상목에는 흔히 설치동물로 묶이는 쥐목과 토끼목, 그리고 영장동물로 묶이는 나무두더지목, 날원숭이목, 플레시아다피스목, 영장목이 있다.


 이 중 영장목이 가진 개성은 시각에 있다. 다른 포유강에 비해 후각은 떨어지지만 기본적인 시력이 좋고, 일부 영장목은 포유강 중 거의 유일하게 적색을 볼 수 있다. 적색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붉은 색으로 익은 과실을 찾아 먹을 수 있는 재능을 가졌다는 것이다. 또한 잘 알다시피 대부분의 영장목은 기본적으로 나무 위에서 긴 시간을 보낸다.


 우리는 이 영장목 중 직비원아목-협비원소목-사람상과에 속한다. 영장목의 분류는 대단히 복잡하고 특성도 다양한데, 사람상과는 이 중 독특하게도 꼬리가 없어진 원숭이들이다. 왜 나무 위 생활에 유리한 꼬리가 없어졌는지는 도저히 알 수가 없지만, 어쩌다 보니 없어졌는데 생존에 별 문제가 없었다고 하는 게 적당할 것 같다. 이 사람상과는 긴팔원숭이과와 사람과로 나뉘는데, 이 사람과는 우리와 우리가 잘 아는 침팬지, 오랑우탄, 고릴라 등의 유인원을 포함한다. 특히 이 중 사람과 더 가까운 침팬지속의 침팬지와 보노보는 사람족으로 따로 분류한다.


 최초의 사람아족, 즉 본격적인 인류의 분화는 약 7~800만 년 전부터 시작된 것 같다. 사람족에서 사람아족이 분화되는 과정은 뚜렷하거나 분명하지는 않은데, 현재까지 본 자료로는 아주 긴 세월 동안 분리되어서 소위 사람화되었다가 다시 침팬지와 섞이기도 하면서 복잡한 분화 과정을 겪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현재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 된 사람아족은 사헬란트로푸스차덴시스다.




 사람아족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침팬지나 보노보와는 달리 직립보행을 하게 된다. 당시 분화를 촉진했던 것은 아마도 지구의 건조화였을 것이다. 모든 원숭이들은 숲 속에 산다. 그렇지만 당시엔 숲이 줄어들고 있었고, 건조한 열대 초원인 사바나가 늘어나고 있었다. 꼬리가 이미 없어진 상태에서, 숲을 나와 초원을 돌아다니는 세월 속에서 이족보행의 진화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초기의 사람아족은 현생 인류보다 키가 훨씬 작았고, 사바나는 정글과는 달리 트여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두 발로 서 있는 게 유리했을 것이다.





 사람아족은 다른 영장목이 그렇듯 오랜 세월 동안 다양하게 분화하였으며 여러 방식으로 생존을 모색하였다. 이 중 약 500만년 전부터 등장해 완벽한 직립보행에 성공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나 파란트로푸스 등이 성공적으로 진화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성공적인 진화는 약 250만 년 전, ‘호모’로 표현되는 사람속의 등장으로 이어진다. 잘 알려진 초기 사람속인 호모 하빌리스의 등장과 함께 사람은 뗀석기를 사용하면서 구석기 시대의 서막을 연다. 이 사람속부터 인류는 본격적인 포식자로 발돋움하게 되는데, 육식 자체는 이미 침팬지를 포함한 사람족에게는 보편적인 일이지만, 사냥을 해서 충분한 고기를 확보하기엔 능력이 부족한 편이다. 특히 당시 인류가 살던 사바나의 동물들은 결코 만만한 사냥감들이 아니다. 그들을 사냥 할 수 있는 능력을 본격적으로 갖추기 시작한 것은 뗀석기를 개발한 후의 일로 보인다.




 아직 호모 하빌리스는 현대 인류와 비교하면 눈에 흰자위가 없었고, 땀샘도 발달해있지 않았다. 성차도 심하지 않았고 키도 아직 그리 크지 않았으며 뇌용량도 600cc대 수준이었다. 얼핏 보면 인간과 침팬지의 중간 같은 정도다. 그러나 호모속의 등장은 다른 사람족과의 확연한 분리라 할 수 있었다. 돌연변이로 인해 혼혈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이 무렵부터는 언어를 썼을 거라는 추측도 하고 있다. 그리고 본격적인 진화가 190~180만 년 전에 이루어진다. 호모 에르가스테르(에르가스터)가 등장하였기 때문이다.




 호모 에르가스테르의 시대에 이르러 사람속은 불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분명하지는 않지만 에스가스테르가 분화되어 다른 종이 된 것으로 추정되는 - 그리고 훨씬 유명한 - 호모 에렉투스는 아프리카를 떠나 아시아에까지 퍼졌다.


 에르가스테르의 시대에 들어 사람속은 드디어 강력한 사냥꾼의 모습을 가지게 된다. 동시대에 다른 사람아족인 초식성의 파란트로푸스가 살았지만, 파란트로푸스는 멸종했고 호모 에스가스테르는 180cm 이상의 큰 키, 더욱 진보된 뗀석기, 초기에는 900cc, 후기에는 무려 1100cc에까지 이르는 현생 인류와 큰 차이가 없을 정도의 커다란 뇌를 발달시키며 번성하게 되었다. 에스가스테르는 아마도 우리의 직접적인 조상이다.


 불의 사용은 기적적인 결과를 안겨주었다. 불로 익힌 음식, 특히 영양가가 풍부한 고기는 더 작은 소화기로도 충분한 영양 공급을 가능하게 했다. 그로 인해 인류는 점점 장기가 작아졌고, 소화에는 작은 힘만 들여도 되게 되었다. 작은 소화기, 높은 에너지 효율은 전형적인 포식자의 특성이다. 충분한 영양은 또 키를 자라게 했고, 몸통은 짧아지면서 다리가 길어졌다. 골격은 튼튼하고 강해졌고, 남는 에너지는 더 성공적인 사냥을 위해 뇌와 지능, 감각 등에 투자되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유형의 인류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인간이 다른 종과 차별화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불이다.


 이렇게 사람속은 영장목 중 거의 최초로 지배적인 포식자의 자리에 올라섰다. 어떤 생물 종이 진화를 거치면서 식성이 변하는 건 사실 드문 일은 아니지만, 사람속의 변화는 그 중에서도 포식동물로의 극적인 변화라 할 수 있다.[각주:4] 그리고 사람은 기존의 다른 포식자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유형의 사냥꾼이 되어갔다.


 이후 사람속은 다양하게 분화되고 여러 번 아프리카를 떠나 전 세계로 퍼졌다. 현생 인류인 우리 호모 사피엔스 또한 그런 분화 중 한 갈래에서 나왔고, 그 시작은 아마도 아프리카에서 약 20만 년 전부터이다. 이 세월동안 진화는 꾸준히 일어났고, 성공적으로 퍼져 나간 종은 우리 호모 사피엔스뿐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현재 유일한 생존 집단이라는 것이다.



(계속)


  1. 때때로 반룡목도 포유류형 파충류라 하지만, 그것은 형태가 그렇다기보다는 초기 단궁강 전체를 포유류형 파충류라 부르곤 하기 때문이다. 실제 포유류형 파충류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것은 수궁목이다. [본문으로]
  2. 우리가 음식을 한참 씹으면서도 숨을 잘 쉴 수 있는 것은 이 때 진화를 멋지게 해내서 그렇다. [본문으로]
  3. 그러니까 우리는 치과에 다닌다. [본문으로]
  4. 정 반대의 극적인 식이 변화 예로는 자이언트판다(팬더곰)를 들 수 있는데, 판다는 곰의 일종으로 식육목에 속하지만 거의 대나무만 먹는 초식동물이 되었다. [본문으로]

 의학계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것 중 하나는 동물실험 단계를 과신하는 것이다. 근래 유행하고 있는 간헐적 단식이라거나 소식이 수명을 늘린다는 각종 이야기들은 사실 임상실험에서의 유의미한 성공이 불충분하거나 없으며, 동물실험에서의 성과를 바탕으로 소위 약을 파는 (...) 게 아닌가 싶은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지난 글, ‘간헐적 단식에 대한 이야기 추가 (링크)’에서 살짝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그렇다면 실제 동물실험과 임상이 큰 차이를 보여 비극적인 결과를 낳았던 경우가 있을까? 근래 가습기 피해자 문제로 다시금 회자되었던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다. 유명한 탈리도마이드 사건이다.


 탈리도마이드는 1953년 서독에서 개발된 진정ㆍ수면 및 임산부 입덧약으로 1961년 정도까지 전 세계에 유통되었다. 당시 탈리도마이드는 동물 실험에서 부작용이 발견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 약은 결국 동물 실험이 부정확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비극적인 사례가 되고 말았다. 뜻밖에 인체에서는 혈관형성을 방해하는 부작용이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이 약은 임산부가 입덧약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팔다리가 짧거나 아예 생기지 않는 ‘해표상기형’ 피해자들이 12000명 이상 태어나게 되었다. 사망자도 속출했다고 전해지는데, 내가 본 자료에서는 5000~6000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당시 탈리도마이드의 부작용을 확인하는 데만 오랜 시간이 걸렸다. 차후에 드러난 거지만, 탈리도마이드는 임상에서는 현기증이나 말초신경염 같은 부작용이 있었지만 은폐되었었다. 그리고 동물실험을 근거로 유통되었었다. 예외적으로 미합중국 FDA는 탈리도마이드에 대한 허가를 내주지 않았었는데, 그 이유는 ‘이상하게 탈리도마이드는 사람에게는 효과가 있는데, 동물에게는 효과가 없다.’였다고 한다. 실제 탈리도마이드는 광학이성질체로 약효와 부작용이 함께 동반되는 약이다. 매커니즘상 동물에게는 부작용이 없었지만 약효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미국의 탈리도마이드 피해자는 상대적으로 매우 적은 17명이었던 반면, 대조적으로 일본의 피해자는 사망자만 약 1200명이었다. 이후 탈리도마이드는 아이러니하게도 새로운 혈관형성 억제 능력을 인정받아 한센병 및 다발성 골수종, 암 등에 효과를 보이는 약제로 쓰이고 있다고 전해진다.

 

 동물 실험이 문제를 일으키기 쉬운 근본적인 이유는 동물 실험에 사용하는 주된 동물이 생쥐라는 것이다. 사람과 생쥐는 사실 전체 생물군에서 보면 상당히 가까운 편이지만, 그래도 의료 정확도를 생각하면 좀 진화 계통상 거리가 있다. 혹시 어느 정도 거리인지 궁금하실 분들을 위해 실제 분류계통을 좀 상세히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사람 : 진핵생물역 - 동물계 - 진정후생동물아계 - 후구동물상문 - 척삭동물문 - 척상동물아문 - 유악하문 - 사지상강 - 포유강 - 수아강 - 진수하강 - 영장상목 - 영장목 - 직비원아목 - 원숭이하목 - 협비원소목 - 사람상과 - 사람과 - 사람아과 - 사람족 - 사람아족 - 사람속 - 사람종


생쥐 : 진핵생물역 - 동물계 - 진정후생동물아계 - 후구동물상문 - 척삭동물문 - 척상동물아문 - 유악하문 - 사지상강 - 포유강 - 수아강 - 진수하강 - 영장상목 - 쥐목 - 쥐아목 - 쥐상과 - 쥐과 - 쥐아과 - 생쥐속 - 생쥐종


 보면 생쥐와 우리는 영장상목이라는 것까지만 동일하고, 이후 목 단계에서 갈라진다. 이 분화 시기는? 근래의 연구에 의하면 8500만 년 전 정도의 일이다. 이 시기는 중생대 백악기에 해당하는 시대이니, 그야말로 아득히 먼 과거의 일인 것이다. 그래도 사실 다른 포유동물에 비해 그나마 가깝긴 한데, (개나 고양이, 또는 돼지보다 가깝다.) 의료 실험을 하기에 충분히 잘 맞을 정도로 가까운 건 아니라 할 수 있다.


 실제 행태 특성에서 사람과 생쥐는 사이즈 차이도 너무 나고, 수명 차이도 크다. 그럼에도 쥐를 동물 실험에 많이 사용하게 되는 건 번식력이 좋아 저렴하고 크기가 작아 실험이 용이하며, 실제 동물 실험 과정은 꽤 잔인한 과정이기에 그나마 쥐가 실험자의 각종 심적 부담 등도 덜하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정확도 면에서는 가끔 할 말 없는 결과를 보인다.


 탈리도마이드는 광범위한 동물 실험에도 문제가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생쥐는 물론 개, 고양이, 집쥐, 햄스터, 닭에게는 아무런 독성도 없었다. 차후 발견된 것이지만 예외적으로 토끼 중 소수 품종에게만 문제를 드러냈다. 토끼는 쥐목, 영장목과 함께 영장상목에 속하는, 비교적 사람과 가까운 계통을 가진 동물이다.


 그런데 이런 비극적인 사례와 대조적으로 쥐 실험을 하지 않아 얻어 걸린 인류의 행운도 있다. 페니실린은 인간에게는 아무 해가 없고 오히려 정말 많은 사람을 구한 기적의 약이지만, 쥐한테 적용하면 쥐 태아에게 사지기형을 유발한다. 만약 동물 실험을 했다면 페니실린은 허가가 못 될 약일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요지는 동물 실험을 근거로 각종 약을 팔아대는 비주류의학의 의견을 조심해서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약장수라는 말이 괜히 그런 뜻을 가진 게 아니다.) 특히 다큐에서 ‘쥐 실험 결과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고 하면 유난히 주의해야한다. 만약 충분한 임상결과가 있다면 그런 식으로 말할 이유가 없다. 보편적인 의료 실험단계는 쥐 실험부터 해보고, 필요하다면 다른 동물 실험도 해본 후 임상을 여러 차례에 걸쳐 거친 후 그것을 총합한 2차 자료라 할 수 있는 메타 분석 데이터까지 만들어서 그것까지 봐야 안전이나 효능이 확실하게 입증된다 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객관적으로 보자면 간헐적 단식이나 비타민 C제제의 다량 복용, 베타카로틴 및 각종 항산화 보충제의 복용 같은 것보단 MSG를 마음껏 먹는 게 훨씬 안전하다. MSG는 워낙 많은 논문에서 장기적으로 공격당했으나 안전하다는 결과가 나온 물질이다.

 

 임상시험 메타데이터는 세간에 널리 퍼진 건강 상식과는 반대의 결과가 나올 때도 있다. 예를 들면 각종 비타민 제제, 무기질 보충제, 항산화제 같은 제제가 암 발병 위험이나 심장질환 위험, 사망률을 높인다는 메타데이터가 도출되어 있다. 쉽게 이야기해서 합성 비타민 제제가 자연식 섭취 시 얻을 수 있는 비타민 등의 영양 물질과는 임상 결과 크게 다르다는 것이다. 다만 암 발병 외의 다른 문제나 효능에 대해 어떤지는 아직 미정이다. 물론 비타민 결핍에는 합성비타민의 사용이 유용하다.


 소식을 하면 오래 산다는 이야기 또한 쥐 실험으로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수명이 2년인 생쥐 실험과는 달리, 수명이 25년인 붉은털원숭이를 사용한 실험에서는 소식과 수명연장의 상관관계가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사람이 소식을 하면 오래 산다는 속설은, 어디까지나 쥐 실험단계에서만 증명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쥐 실험과 그 상위 단계의 실험은 차이가 나곤 한다.


 다만 임상시험을 충분히 해서 메타데이터를 쌓는 것은 시간과 비용, 그 외 각종 노력이 적잖이 들어가는 일이다. 의료라는 게 많은 경우 스피드가 요구된다는 걸 감안해보면, 때때로 위험을 감수하는 게 이익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동물 실험을 근거로 새로운 의료 및 건강 관리법에 도전한다면, 기본적으로 그것은 리스크를 감수한 행위라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중요한 것은 공중파에서, 책에서 기적적인 것처럼 소개한다고, 각종 의사들이 주장하는 거라도 그게 너무 파격적으로 들린다면 일단 주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 시행을 해보기 전에 자료를 찾아보고, 충분한 반론을 들어본 후 조심스레 접근하는 게 안전하다. 몸을 망가뜨리는 건 너무 쉽고, 만약  건강을 잃는다면 그건 보통 나 혼자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치아는 채식의 증거인가?

인류 2013. 5. 5. 20:07 Posted by 해양장미

 채식주의자, 또는 채식주의 이데올로기에 물들어 있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다. 인간의 송곳니는 위아래 한 쌍인데 반해, 어금니는 소구치와 대구치를 포함해 위아래 다섯 쌍이기에 곡물 등의 채식을 주로 하는 게 어울린다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 그럴까?


 이는 생물학에 대한 몰이해로 빚어지는 오해이다. 생물학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그럴싸할 수 있겠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치아의 진화는 꽤나 복잡하고, 식이의 진화에 비해 필연적으로 느리다. 우리 인류는 포유강-영장목-사람과[각주:1]이기 때문에 영장목-사람과 계통의 치아와 감각을 가지고 있다.


 영장목의 치아는 그 내부에서도 비교적 복잡한 다양성이 있지만, 대체로 그 개수로 볼 때 송곳니보다는 어금니가 발달한 편이다. 송곳니는 길이가 긴 경우는 있어도 숫자가 늘어나지는 않는다. 그리고 영장목은 각각의 종에 따라 그 식이가 비교적 다양한 편이며, 대체로 잡식성이다. 대형 유인원인 사람과의 경우는 다른 영장목에 비해 어금니의 개수가 적은 편이다.


 사실 치아의 비율이 어떠한 종의 식이를 판별하는 데 중요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식육목에 속하는 판다는 거의 하루 종일 대나무만 먹고 사는 99% 초식동물이지만, 여전히 곰의 치아와 소화계가 남아있다. 식이 진화는 복잡하게 발달하고, 그것이 항상 좋은 선택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판다는 별로 좋지 못한 선택을 한 종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번식력이 낮고, 멸종 위기종이 되었다. 판다는 대나무에서 충분한 영양을 얻기 어려워하기 때문에, 하루 종일 최소한으로 움직이면서 대나무를 먹는다.


 영장목의 주된 식사는 평균적으로 나무 열매와 여린 잎, 새알과 곤충 등이다. 대부분의 영장목은 억센 잎을 잘 소화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여린 잎과 나무 열매를 구분할 수 있는 시각이 발달했다. 포유강 중 영장목을 제외하면 적색을 구분할 수 있는 포유강은 원시적 포유강에 해당하는 유대하강 뿐이다. 우리가 키우는 대부분의 포유강 애완동물은 붉은색을 구분하지 못한다. 최소한 적록색맹인 것이다.


 어금니가 곡물을 씹기 위해 발달한 것이라 생각하면 오류다. 야생에는 곡류가 거의 없다. 그리고 우리는 실제로 고기를 먹을 때도 어금니를 잘만 쓴다. 무얼 먹건 간에 인간의 식이에는 어금니가 필요하다. 그리고 인류가 사냥을 하고 고기를 먹어온 역사 동안 송곳니가 주도적인 역할을 해온 적은 없다.


 인류는 대략 700만 년 전, 열대의 정글에서 사바나로 나온 초기 사람과부터 그 역사를 시작한다. 사바나에는 정글과는 달리 사람과가 먹을 수 있는 식물성 음식들이 잘 없다. 그래서 우리의 직간접적인 조상들, 즉 원시인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생존의 길을 모색했고 그 중 육식을 선택한 이들이 살아남았다.


 우리의 옛 친척들 중에는 식물 뿌리를 주식으로 삼으로 한 이들도 있었다. 만약 이들이 현재까지 살아남았다면, 그들은 아마 우리보다 턱이 비교할 수 없이 더 발달했을 거다.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화식을 하고 전분질을 거의 먹어오지 않았기에 턱이 발달하지 않았고, 밖으로 별로 튀어나오지 않았으면서도 비교적 갸름한 턱을 가지게 된 것이다.


 곡류는 맛있다. 운동 때의, 또는 병에 걸렸을 때의 에너지원으로도 좋다. 그러나 우리는 99%의 시간 동안 이렇게 곡류를 먹어오지 않았고, 그나마도 이렇게까지 도정된 곡류를 일상식으로 먹게 된 것은 그야말로 극히 최근의 일이다.


 우리의 어금니는 결코 이런 곡류를 먹기 위한 것이 아니다. 아무리 이를 잘 닦아도 피할 수 없는 치아우식의 주범은 당분이고 곡류다. 우리의 어금니는 절대적으로 오랜 시간 동안 구운 고기와 과육, 부드러운 새잎, 견과, 곤충 등을 씹는 데 사용되어 온 것이다. 우리의 치아 구조는 우리가 채식을 했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는다.



  1. 실제 인간의 생물학적 분류 계통도는 훨씬 복잡하다. 이것은 많이 축약한 것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