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관련 이런저런 이야기 #3

식이 2021. 12. 16. 04:03 Posted by 해양장미

요리 관련 이런저런 이야기 1

요리 관련 이런저런 이야기 2

 

 

 

 

 

1) 우리가 먹는 신 맛의 종류는 대략 다음과 같은 산입니다. 사과산(=말릭산=말산), 구연산(=시트르산), 유산(=젖산=락틱산), 초산(=아세트산). 이 산은 서로 다른 풍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해해두면 좋습니다.

 

 사과산은 새콤한 사과나 딸기, 복숭아, 자두, 포도 등에 들어있습니다. 대다수 과일의 새콤함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리고 커피 생두에도 좀 들어가 있지요. 사과산의 맛은 나의 경험으로는 홍옥이나 황옥 사과를 먹을 때나 상파뉴를 마실 때 두드러집니다. 신 걸 못 먹는 사람은 홍옥 같은 사과는 먹기 힘들어하지요. 사과산은 신 맛이 강합니다. 그렇지만 나는 사과산 맛을 좋아합니다.

 

 구연산은 시트르(Citric)산입니다. 시트러스에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레몬, 라임, 영귤, 청귤. 그리고 사과산을 가지고 있는 과일들은 구연산도 같이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커피 생두에도 있고요. 커피 원두를 볶을 때 미디엄 정도에서는 사과산과 구연산에서 비롯된 풍미가 두드러지곤 합니다. 하이까지도 어느 정도 그렇고요. 그런데 시티부터는 확 줄어들고, 볶은 향기가 강해지지요.

 

 우리가 먹는 유산은 대략 유산균에 의해 생깁니다. 요거트, 잘 익은 김치, 레드 와인의 산미는 유산에서 비롯됩니다. 본래 포도에 들어있는 신 맛은 사과산이나 주석산이 주성분인데요. 레드 와인을 양조할 때는 말로락틱 발효를 통해 사과산을 유산으로 바꿔줍니다. 화이트 와인 중 샤르도네 품종은 말로락틱 발효를 하기도 합니다. 다른 신맛보다는 부드러운 산미입니다. 그런데 이 유산은 우리 구강 내에서도 뮤턴스균에 의해 생기는데, 그 때는 치아우식의 원인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아세트산은 식초의 신 맛입니다. 자극적인 향과 강한 신맛이 있지요. 화학적으로 만든 순도 높은 아세트산은 어는점이 낮아서 빙초산이라 부릅니다. 빙초산은 희석해서 먹어야 하고요. 식초는 보통 초산균에 의해 생깁니다. 김치가 시면 산도가 높아져 유산균이 죽고 초산균이 번식한 거고요. 술도 시어버리면 식초가 됩니다.

 

 요리할 때 식초 대신 레몬즙이나 라임즙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식초도 종류가 많고요. 요리에 따라 잘 골라서 써야 좋은 요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2) 흔히 광어(넙치)는 큰 광어가 맛있다는 게 상식입니다. 그런데 나는 이 상식에 그다지 동의하지 않습니다. 큰 광어가 확률적으로 맛있긴 한데 장점만 있는 건 아니기도 하고, 꼭 큰 광어가 작은 광어보다 맛있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광어 맛은 계절차가 가장 큽니다. 광어는 동절기에 맛있고, 하절기에는 맛이 떨어집니다. 가을이 되면 맛이 좋아지다가 봄이 오면 맛이 떨어지지요. 그리고 개체차도 큰 편이라 그냥 맛있는 광어가 맛있습니다. 맛있는 광어가 걸리는 건 운입니다. 개체차는 다른 모든 조건보다 우선합니다. 다만 여름에 최고의 광어를 먹는 건 아무리 맛있는 개체가 걸려도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큰 대광어의 경우 확률적으로 작은 광어보다 맛은 맛있습니다. 그런데 대광어 특유의 단점도 있습니다. 일단 광어는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회로 먹는데, 광어 살은 조금 질긴 편입니다. 그 저작감을 좋아하는 분들도 많지만, 나는 저작감은 돌돔(줄돔)이나 조피볼락(우럭)이 더 낫다고 생각하고요. 광어의 경우 작은 광어는 괜찮은데, 큰 광어는 좀 진짜로 질겨집니다. 그렇다고 먹기 힘들 정도는 아닌데, 씹을 때 유쾌함이 살짝 떨어지는 정도고, 나보다 치아나 잇몸이 안 좋은 분들은 더 먹기 힘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3) 차돌박이와 우삼겹은 비슷한 부위로 취급되며, 실제 같은 양지 부위이긴 합니다. 그런데 굳이 보자면 차돌박이와 우삼겹은 좀 다릅니다.

 

 일단 우삼겹이라 부르는 부위는 업진살입니다. 일반적으로는 등급이 높으면 업진살이라 부르고, 등급이 낮은 건 우삼겹이라 부르면서 정형을 좀 다르게 하는 걸로 보이는데요. 업진살은 한우 같은 경우 등급이 높아지면 근내지방이 많아져서 마블링이 많이 낍니다. 이 경우에는 근육 바깥의 지방을 줄이고, 근육 위주로 정형을 해서 채식주의자도 좋아하는 살살 녹는 업진살로 팔고요. 등급이 낮은 업진살은 근육 바깥쪽 지방을 좀 더 붙여서 정형해 우삼겹으로 파는 것으로 보입니다.

 

위의 사진은 돼지삼겹입니다.

 소고기의 지방 부위는 크게 피하지방, 근간지방, 근내지방이 있습니다. 근간지방은 근육과 근육 사이의 지방이고, 근내지방은 근육 안쪽의 지방입니다. 하나의 근육 바깥에는 근막이 있고, 근막 바깥쪽에는 근간지방이 있고, 근간지방을 넘어 다른 근육이 있는 게 쇠고기의 구조입니다. 다른 동물도 다리가 있는 동물이라면 대체로 이런 구조일 것입니다만, 소는 체격도 크고 근내지방도 생기게끔 비육하기 때문에 이 특성이 두드러집니다.

 

 그런데 근막은 질깁니다. 그리고 근간지방은 단단하고 잘 녹지 않습니다. 대조적으로 근내지방은 부드럽고 잘 녹습니다. 그래서 큰 근육 덩어리에 근내지방 마블링이 잘 형성된 고기는 부드러운데, 작은 근육끼리 붙어있으면서 근간지방이 발달한 고기는 질기고 단단합니다. 이런 차이는 소등심에서 두드러지는데, 얼핏 보기에는 윗등심이 훨씬 마블링이 발달해 있지만 실제로 부드러운 건 마블링이 적은 아랫등심이지요. 윗등심은 작은 근육이 여럿 붙은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차돌박이는 쉽게 이야기하면 근간지방에 해당합니다. 근간지방을 포함하여 주변에 살이 붙게 정형합니다. 근간지방이기 때문에 단단한 지방이라, 얇게 정형해서 먹어야 합니다. 두꺼우면 단단하고 질겨서 먹기가 힘들어지는 부위입니다. 대조적으로 업진살은 등급이 높으면 근육 바깥의 지방을 떼어내고 근내지방 위주로, 좀 더 두껍게 정형해서 먹지요.

 

 

 

 

 

4) 소 등심을 세 부위로 나누면 윗등심, 꽃등심, 아랫등심입니다. 소 머리쪽부터 두 부위로 나누면 윗등심과 아랫등심이고요. 윗등심과 아랫등심은 같이 등심으로 부르기는 하지만 다른 부위라 생각해도 됩니다. 꽃등심은 윗등심 중 아래쪽, 아랫등심 중 위쪽이라 할 수 있고요.

 

 윗등심은 목심과 가깝고 다양한 근육으로 되어있고, 마블링이 많고, 살치살과 떡심이 붙어있습니다. 떡심은 떼어놓는 경우도 있고요. 아랫등심은 상대적으로 마블링이 적고, 새우살과 알등심으로만 되어있습니다. 아랫등심에서 꼬리쪽으로 더 내려가면 채끝이 됩니다. 채끝 아래에 있는 몸 안쪽 살은 안심이고요.

 

 영어로는 윗등심은 척아이롤이고, 꽃등심과 아랫등심은 립아이입니다. 흔히 등심으로 알려진 서로인은 채끝이고요. 립아이는 실제로 소갈비의 윗부분이기도 합니다. 립아이에 갈비뼈까지 붙여서 정형한 걸 토마호크라고 하지요. 뼈가 있다는 점에서 종종 포터하우스/티본/엘본과 혼동되곤 합니다만, 토마호크는 등심 + 갈비 + 갈비뼈, 포터하우스/티본/엘본은 채끝 + 안심 + 등뼈입니다. 엘본과 티본의 차이는 엘본이 티본보다 안심이 작게 붙은 부위고요. 포터하우스는 티본보다 안심이 큽니다.

 

 소 등심은 화려한 마블링으로 눈길을 끄는데, 그렇게 진한 기름 풍미나 육향을 가진 부위는 아닙니다. 담백하고 부드러운 편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소고기를 많이 안 드신 분들은, 비싼 등심을 먹어보고 실망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스테이크로 주로 먹는 등심, 안심, 채끝은 비교적 담백하고 살덩이가 크고 부드러운 부위입니다. 강렬한 쇠기름 풍미에 진한 육향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다른 부위를 드시는 게 좋고요. 소를 많이 먹다 보면 등심이 맛있습니다.

 

 

 

 

 

5) 소갈비 중 꽃갈비는 가장 비싸며 생으로 구워먹기 적합합니다. 화려한 마블링, 강렬한 지방 풍미와 강한 육향, 진한 맛을 가지고 있지요. 매우 좋아하는 부위입니다. 단점은 원체 생긴 게 맛있게 생겨서, 생긴 것만으로는 품질을 알아보기 어렵다는 점이 있겠네요. 앞에서부터 6~8번 갈비뼈입니다.

 

 본갈비는 생으로 구워먹어도 손색은 없는 부위인데, 양념갈비구이를 해 먹기 가장 적합한 부위입니다. 1~5번 갈비뼈입니다. 가격은 꽃갈비와 참갈비의 중간.

 

 마지막으로 참갈비는 저렴한 갈비 부위로, 찜이나 탕을 주로 해먹습니다. 꽃갈비나 본갈비에 비해 살도 적고 마블링도 적은 편입니다. 그런데 찌거나 탕을 하면, 기름이 너무 많은 건 별로 좋지 않지요. 그래도 참갈비도 LA갈비로는 유통됩니다. 저렴하니까 부담 적게 먹을 수 있습니다.

 

 다만 한우 갈비를 구매할 땐 소매업자들이 이 이름을 그대로 쓰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업적인 이름을 복잡하게 붙여두곤 하니까 잘 보고 사야합니다.

 

 

 

 

 

6) 요리를 할 때 생각해야 할 것중 하나로, 고체로 된 음식물 내부에는 열이 잘 전도되지 않는다는 걸 꼽을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겉은 타고 속은 안 익기 쉽다는 건데요. 그래서 실제로 요리를 할 때는 순수하게 굽는 요리를 제외하면 대체로 대류열을 이용하게 됩니다. 유체로는 물, 기름, 공기를 쓰지요.

 

 가정 요리를 할 때 기름을 아끼는 사람이 많은데, 어떤 요리는 기름을 아끼면 제대로 요리가 되지 않습니다. 대표적으로는 볶음밥이나 부각 같은 요리입니다.

 

 볶음밥은 크게 나누면 수분이 많은 볶음밥과 유분이 많은 볶음밥으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둘 다 부족한 상태로 밥을 볶으면 수분이 그냥 날아가서 딱딱하게 굳어버립니다. 그러니까 Fried Rice를 만들려면 밥을 어느 정도 충분한 기름에 튀겨준다는 개념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그래야 제대로 고온의 대류열을 전달할 수 있어 밥 안에 있는 수분이 빠르게 팽창하면서 쌀이 부드럽게 익습니다. 미미하게 뻥튀기스럽게 익어야 잘 볶은 밥도 딱딱하지 않단 말이지요. 아니면 대부분의 한국식 볶음밥처럼 쌀의 수분을 날리지 않은 상태로 볶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수분이 날아가지 않으면 밥이 딱딱해지지 않지요.

 

 

 

 

 

7) 흔히 녹차를 불()발효차, 홍차는 발효차, 우롱차는 반발효차 같은 식으로 이야기합니다만. 엄밀한 의미로 발효를 하는 차는 미생물을 이용해 발효를 하는 흑차 계열이나 보이차 중 숙차뿐입니다. 홍차나 우롱차는 찻잎에 있는 산화효소를 이용해 제조한 차입니다. 산화효소가 촉매가 되어 찻잎에 있는 폴리페놀을 산화시키지요. 폴리페놀이 산화됨에 따라 차탕의 색은 녹색에서 홍색을 지나 흑색으로 변하게 됩니다.

 

 생찻잎의 산화효소는 찻잎이 물리적으로 파괴되면 활성화되는데, 열이 가해지면 파괴되고, 건조해져도 불활성화됩니다. 그래서 갓 완성된 차의 산화 정도는 찻잎에 얼마나 물리적인 대미지가 가해졌는가, 열을 가했다면(살청=殺靑) 언제 가했는가, 건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가, 건조 이후 민황(悶黄/闷黄)같은 작업을 했는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녹차는 흔히 불발효차라 하지만 엄밀하게 보면 적잖은 경우 틀린 표현입니다. 상기하였듯 발효라는 표현도 틀렸지만 산화가 전혀 진행되지 않은 차도 아닙니다. 실제 녹차를 수확하면 수확과정에서 무조건 물리적인 대미지가 생기기 때문에 느리게나마 산화가 시작되고요. 실제로는 녹차를 제조할 때 열을 가해 효소를 죽이기 전에 잎을 시들리는 위조, 녹차의 경우 약하게 위조하기 때문에 탄방이라 구분해 부르기도 하는 과정을 거치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생찻잎을 그냥 채엽해 말리면 채엽해서 담고 운반하고 너는 과정에서 물리적인 대미지가 생기고, 건조되면 또 건조되는 과정에서 대미지가 생겨서 느린 속도로 산화가 일어납니다. 그렇게 생찻잎을 그냥 말려서 만들면 백차가 됩니다. 녹차는 조금 위조하다가 열을 가해서 산화를 막는 방식이고요.

 

 물론 탄방/위조는 녹차의 제다법으로 필수가 아닙니다. 일본 녹차는 탄방/위조를 하는 비율이 낮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나 중국에서는 더 향긋한 녹차를 만들기 위해 많이들 합니다.

 

 

 

 

 

8) 요새 파키스탄산 식용 핑크솔트가 많이 유통되고 있는데요. 보기에 좋으니까 인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만, 엄밀히 보면 핑크색은 이물질입니다. 아마 붉은 산화철이 주성분인 흙이 섞여서 핑크색을 띠는 걸로 보입니다.

 

 사람은 어차피 적혈구에 산화철을 사용하고 있기도 하고, 가임기 여성은 월경으로 혈액을 잃기도 해서 철을 좀 먹어도 괜찮습니다. 모자라면 문제가 되지요. 너무 먹어도 문제가 되긴 합니다만, 먹어서 철분과잉이 되는 경우는 철분 영양제를 과도하게 먹지 않는 이상 흔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다만 핑크솔트가 흰 암염보다 더 맛있을 거라거나, 먹어서 몸에 좋다거나 그런 기대는 안 하시는 쪽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세계 어디서나 내륙 지역은 옛날부터 암염을 먹어왔는데, 전통적으로는 불순물 없는 흰 소금을 고급품으로 쳐왔습니다. 예외적으로 핑크솔트는 색이 예쁘니까 고급품으로 팔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주얼이 괜찮으니까 식용 말고도 핑크솔트 플레이트 같은 것도 팝니다.

 

 

 

 

 

 

9) 떡국용의 썰린 가래떡을 사먹다 보면 어떤 떡은 딱딱하고 질기고, 어떤 떡은 부드럽게 녹아버리는데요. 이 차이는 주로 함수율에 의한 것입니다. 딱딱하고 질긴 떡은 수분이 적은 떡이고, 너무 퍼지는 떡은 수분이 많은 떡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딱딱한 떡은 불리거나 익히는 시간이 더 길어야 조금 부드러워집니다.

 

 이러한 수분 차이는 처음 떡을 반죽할 때의 가수율과, 가래떡을 뽑은 후의 건조도 차이로 생길 것입니다. 가래떡은 뽑은 후 건조시키지 않으면 슬라이스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말려서 써는데, 어느 정도 말리느냐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집니다. 냉동고가 없던 옛날에는 완전히 건조시켜서 보존성을 확보했었지만, 현대에는 보통 적당히 말린 후 냉동보관하고 있지요.

 

 

 

 

 

10) 쇠고기를 익힐 때 온도에 따라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 지난 글에서 이야기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은 쇠고기를 구워 먹을 때 신경써야 할 일이고, 쇠고기 부위 중 적잖은 부위가 구워 먹거나 스테이크로 먹는 데 적합하지 않습니다. 구워 먹기엔 너무 질긴 부위가 많거든요. 근막이 많은 부위도 있고요. 1등급 이상의 한우 수준으로 근내지방이 많이 나오게 비육하면 좀 더 구워먹을 수 있는 부위가 많아지긴 합니다만. 대신 한우는 스테이크를 하기에는 기름이 너무 많고 근육 크기가 작아 부적합한 편입니다.

 

 일단 근육을 구성하는 액틴은 66도 이상에서 변성되어 질겨집니다. 그게 웰던이지요. 그런데 웰던으로 익어서 질겨진 이후에도 계속 물이나 수분이 많은 소스에 넣어 끓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점차 수용성 단백질 성분을 잃으면서 근섬유가 풀어져서 연해지다가 나중에는 잘게 부서져 버리지요.

 

 고깃국, , 스튜 등은 이런 식으로 만들어집니다. 물을 쓰지 않으면 이 정도로 익히는 건 어렵습니다. 그냥 가열하면 쇠고기가 수분을 다 잃고 나면 타버리거나 말라비틀어지니까요.

 

 쇠고기 찜이나 스튜는 숙성해가면서 시간을 두고 만들면 매우 맛있어집니다. 대중적으로는 쇠고기를 넣어 끓이고 숙성해가면서 먹는 카레가 있겠네요.

 

 

 

 

11) 미국산 쇠고기와 호주산 쇠고기는 매우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호주산 쇠고기의 경우 와규로 수입되는 건 미국산 프라임급에 견줄 만큼 마블링이 많지만, 실제 특성은 전혀 다릅니다. 맛있는 쇠고기 요리를 만들고 싶으면 서로의 특성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요.

 

 기본적으로 호주산 쇠고기는 미국산 쇠고기에 비해 반추동물 특유의 풍미가 강합니다. 다른 고기와 비교하면, 쇠고기와 육질이 비슷한 고기 중 말고기는 냄새가 거의 없고, 양고기는 소고기보다 냄새가 강한데요. 국내산 쇠고기는 말고기처럼 냄새가 별로 없는 편인데, 대조적으로 호주산은 양고기처럼 냄새가 있는 편이고, 미국산은 그 중간쯤 됩니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주로 뭘 먹이느냐에 의해 결정되는데요. 호주산 쇠고기는 상대적으로 생풀을 많이 먹습니다. 쇠고기는 생풀을 먹을수록 냄새가 강하고 풍미가 진해집니다. 그리고 쇠고기에 근내지방을 만들려면 영양가 있는 곡물 등을 먹이고 베타카로틴을 덜 먹게 해야하는데요. 호주에서는 소의 성장기에는 방목을 하고, 비육을 할 때는 울타리를 치고 상대적으로 좁은 공간에서 생풀과 함께 보리나 밀을 주로 먹게 합니다. 대조적으로 미국에서는 비육을 할 때 옥수수, 콩 사료를 주로 먹게 되고요.

 

 그러니까 한우고기와 미국산 쇠고기, 호주산 쇠고기를 비교하면 내 생각에는 현재 대략 다음과 같은 특성입니다.

 

 호주산 쇠고기는 긍정적인 풍미와 부정적인 풍미가 모두 강한 편이고, 질긴 정도도 가장 질깁니다. 허브, 과일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레시피에 어울립니다. 소금과 후추만 쓰는 심플한 스테이크에는 보통 미국산이 낫습니다. 카레처럼 향료가 많이 들어가는 요리에 쓰면 맛있습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레시피가 복잡해질수록 결과물이 좋은 편입니다. 살의 자체는 셋 중 제일 맛있습니다. 주관적으로 1:1:1 비교평가할 때는 호주산이 제일 맛있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많은 경우 부정적인 특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을 뿐. 풍미가 좀 있고 야생적인 맛을 좋아할 때는 우선적으로 선택할만합니다.

 

 한우는 부정적인 풍미가 거의 없는 경우가 많고, 동시에 살의 긍정적인 맛도 약합니다. 가장 연하고 기름이 많습니다. 근 몇년 사이 한우는 좀 심각할 정도로 저며굽는요리에 특화되고 있는데, 기름이 너무 많고 근육이 작아서 스테이크에도 안 어울리고 끓이는 요리 하기엔 기름이 너무 많고 비쌉니다. 예외적으로 한우조차 기름이 안 붙는 우둔, 목심쪽 부위만 이리저리 활용할 만 하고요. 전각같이 그나마 저렴하고 그나마 기름적은 부위는 불고기하긴 좋습니다. 저며구워 먹을때는 수입산 쇠고기보다 맛있습니다. 그리고 나쁜 냄새가 없는 편이라 내 생각에는 흑후추 사용이 강제되지 않습니다.

 

 미국산 쇠고기는 둘의 중간이라 할 수 있는데, 실제 요리에 전천후로 쓰기엔 가장 좋고 특히 스테이크에는 별로 대안이 없습니다. 소금과 후추만으로 스테이크를 만들 때, 어지간해서는 미국산 프라임 등급이 제일 낫습니다. 한우에 비하면 부정적인 풍미가 더 있을수는 있는데, 그 이상의 긍정적인 풍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호주산보다 연하고요. 다만 살 자체가 가진 맛의 선명함이나 깊이는 대체로 호주산만은 못합니다. 근내지방을 논외로 하고 붉은살만 이야기하면 그렇다는 겁니다. 레시피는 한우와 비슷하게 적용 가능합니다.

 

 

 

 

 

12) 우리나라에서 구매할 수 있는 쇠고기 부위 중 가격 대 성능비가 가장 좋은 부위는 척아이롤과 부채살이라 생각합니다. 수입육 기준입니다. 한우는 논외. 한우는 곰거리 제외하면 몇 년 전부터는 어떻게 해도 가성비가 안 나옵니다. 국내산 쇠고기 가성비는 이제 육우에서 찾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이 부위들이 가성비가 좋은 건 단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일단 척아이롤은 목심과 윗등심을 의미하는데, 목심 부위는 국거리고 구워먹기엔 너무 질깁니다. 윗등심 부위는 보기에는 마블링이 많이 생기지만 살치살 부위는 결도 다르고 구워보면 구워지는 것도 늦게 구워지고, 등심쪽에는 서로 다른 작은 근육이 많이 붙어서 근막이 많습니다. 먹으면 근막은 씹히지 않고 입 안에 남지요.

 

 척아이롤은 가급적 마블링이 많은 높은 등급을 사는 게 좋고, 목심과 등심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살치살이 붙은 쪽이 등심인데요. 위 사진에서 결이 사선인 부위가 살치살입니다. 살치살은 결도 다르고 특성도 다르고 좀 질기니까 떼어서 따로 취급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그리고 지방과 근막이 많은 부위는 먹을 때 신경써서 먹거나, 아니면 아예 제거해주면 더 먹기 좋긴 합니다.

 

 부채살은 살코기 자체의 품질은 일품입니다. 아랫등심이나 채끝 못지 않지요. 그 이상인 경우도 있고. 그런데 문제는 이 부위는 일반적인 정형을 하면 가운데 길게 힘줄같은 근막이 들어간다는 겁니다. 덩어리째로 사면 아예 부위 전체를 감싸고 있는 바깥쪽 근간지방과 근막부터 난적이고요.

 

 고기 정형 좀 할 줄 아는 분은 부채살을 다듬으면서 중앙 부분 근막까지 다 제거해주면 되긴 합니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이 그렇게 먹긴 어렵지요. 문제는 부채살의 특징입니다. 부채살의 살 부위는 안심이나 채끝과 비슷한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많이 익히면 맛이 없고, 미국산 프라임등급이라도 지방이 많지 않은 부위라 일단 봐서 지방이 아예 없으면 블루에서 레어 정도로 먹을 때 맛있습니다. 그런데 블루/레어로 익히면 중앙 부분 근막은 먹을 수 없습니다. 대조적으로 중앙부분 근막은 웰던 이상으로 오래 익히면 부드러워져서 약간 오도독한 느낌으로 먹을 수 있게 되는데, 부채살을 그렇게 웰던으로 익히면 고기 부위는 진짜로 맛이 없습니다. 이게 부채살이 평가를 못 받는 이유인데요.

 

 권장하는 방식은 구워먹을 때는 가위로 중앙 근막과 살코기를 분리해서 살코기는 블루에서 미디엄레어 정도로 먹고, 근막 부위만 바싹 익혀서 먹거나 하는 겁니다.

 

 물론 부채살은 전천후로 많이 쓰이는 부위고, 수분이 많은 요리를 할 때는 별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부채살을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미디엄레어 이하로 구워먹는 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한우처럼 부채살까지 근내지방이 많이 끼는 경우는 논외. 그러면 익히는 정도를 더 익혀야 하지요.

 

 

 

 

 

13) 고기를 구울 때 원칙적으로는 생고기를 잡은 집게로 익은 고기를 잡으면 안 됩니다. 생고기 표면은 오염된 상태일 수 있는데, 고기를 굽게 되면 오염원이 소독됩니다만 생고기를 집었던 집게를 통해 구운 고기에도 오염이 번질 수가 있거든요.

 

 그런데 실제로 집게를 구분해서 쓰지 않게 되는 면이 있으니까, 오염 가능성이 낮은 고기를 쓰는 게 당연히 좋고요. 나는 좀 찜찜할 때는 생고기를 쥔 집게 머리 부분을 불로 굽습니다. 그러면 소독이 되지요.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게, 집게의 세트인 가위는 불로 구우면 안 된다는 겁니다. 칼이나 가위같은 날붙이에는 불을 대면 안 됩니다.

 

 보통 스테인리스 집게는 오스테나이트계 스틸로 만들고, 칼이나 가위같은 날붙이에는 마르텐사이트계를 씁니다. 오스테나이트계는 부식에 강한 대신 연합니다. 그러니까 강도나 경도가 보기보다 낮습니다. 오스테나이트계 스틸은 취급할 때 단단하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대조적으로 마르텐사이트계 스틸은 열처리를 해서 경도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날붙이를 만들기에 적합한데요. 이렇게 열처리해서 경도를 확보한 날붙이는 스테인리스건 탄소강이건 불을 대면 열처리가 풀려버립니다. 즉 경도가 현저하게 떨어져버린다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날을 유지할 수 없고, 쉽게 날이 나가게 되지요.

 

 열처리가 풀리는 온도는 대략 150도 정도라고 알고 있습니다. 칼날은 워낙 얇아서 불꽃을 대면 순식간에 온도가 올라가서 열처리가 풀려버립니다. 그러니까 칼이나 가위는 뜨거운 물에 씻거나 하는 건 상관없지만, 끓는 기름에 빠뜨리거나 해도 안 됩니다.

 

 

 

14) 내가 어렸을 때는 설탕에 식소다를 첨가한 건 뽑기라고 했고, 포도당을 사용한 걸 달고나라고 했습니다. 요새는 뽑기를 달고나라고 통칭하는 것 같은데, 이 명칭 변화에 의아함을 느끼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다만 지역마다 이름이 달랐다고는 합니다.

 

 요새는 뽑기 키트도 나오던데 사실 뽑기를 해먹는 데 키트같은 게 굳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눌러서 모양을 찍으려면 그런 게 필요하긴 합니다만, 원래 꼭 그런 식으로 먹던 건 아닙니다. 사실 맛으로 치면 눌러서 모양찍은 건 완전히 굳어서 맛이 떨어지는 편입니다. 뽑기는 다 굳기 전에 먹는 게 맛있습니다.

 

 뽑기를 만들 때 필요한 건 큰 스테인리스 국자, 백설탕, 식소다, 중앙부에서 불꽃이 나오는 쿡탑입니다. 원래 80년대에는 연탄불에 아이들도 직접 해먹던 게 뽑기입니다. 연탄불을 쓰면 애들도 만들 수 있을 만큼 만들기가 쉽고요. 요새는 가정용 가스렌지는 중앙부에서 불이 안 나오니까, 나오는 부루스타나 캠핑용 버너를 쓰는 쪽이 쉽습니다. 그래도 근성으로 해드시는 분들은 어떻게든 인덕션에서 황설탕으로도 해드시던데 사람이 궁하면 어떻게든 다 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플라스틱 국자에 시도하면 안 됩니다

 뽑기는 그냥 설탕을 약불에 녹이면 되는 요리입니다. 다만 태우지 않는 게 포인트입니다. 생각보다 잘 안 녹기 때문에 불을 좀 크게 하거나 불에 너무 가까이 대면 탑니다. 타면 실패고요. 설탕이 타서 국자에 붙으면 잘 벗겨지지도 않습니다. 백설탕이 잘 되고 황설탕으로도 안 되는 건 아닌데, 백설탕보다는 잘 안 됩니다. 완전히 녹으면 소다를 넣어주면 됩니다.

 

 뽑기 놀이를 하려면 누른 다음 모양을 찍고 핀셋으로 모양을 파냅니다만, 원래 꼭 그렇게 먹었던 건 아닙니다. 80년대에는 국자에 소다를 넣은 후 부풀어 오르면 나무젓가락을 이용해 그대로 떠 먹곤 했습니다. 사실 그렇게 먹는 게 더 맛있습니다. 긴 디저트용 소형 스푼 같은 걸 이용해 먹으면 됩니다. 그밖에 또 한 방식은 소다를 좀 많이 넣어 충분히 부풀린 후 설탕이 충분히 담긴 통에 뽑기 덩어리를 던져넣고 굴려가면서 겉면만 굳힌 다음 먹는 건데요. 이 형태는 원래 빵이라고 불렀습니다. 뽑기는 다 굳으면 맛이 없는데, 빵은 덩어리가 져있기 때문에 겉은 좀 굳더라도 속은 여전히 굳지 않은 상태라, 그 상태로 먹으면 맛있습니다. 다만 소다가 더 들어가기 때문에 쓴맛이 좀 있는 편이라, 그 맛이 싫다면 덜 부풀더라도 소다를 덜 넣어야 합니다.

 

 

 

 

15) 인천에서 기원한 요리가 여럿 있습니다. 대략 자장면, 쫄면, 아구를 말리지 않은 생아구찜, 그리고 계란빵이 있는데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계란빵은 인천이 기원입니다. 인하대 후문 쪽에서 발명된 풀빵이라고 하지요. 예전에는 동절기 인천에 계란빵 파는 곳이 많았는데, 노점이 줄어들면서 이젠 잘 보이지 않습니다.

 

 계란빵은 원래 팥소가 들어가던 풀빵에 팥소 대신 계란을 넣고 구운 겁니다. 그런 식으로 탄생했기 때문에 모양은 평범한 풀빵 모양입니다. 아마 작정하고 개발하려고 한 레시피였다면 틀 자체가 평범한 풀빵 모양이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16) 팥소가 들어간 풀빵은 여러 종류가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국화빵 계열보다 붕어빵이 인기가 좋습니다. 내가 먹기에도 붕어빵이 더 맛있는데요. 적당히 잘 구운 붕어빵은 표면적을 늘려서 생긴 마이야르와 속의 촉촉함이 잘 공존된 편입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적당히 잘 구운 붕어빵이 국화빵보다 맛있는 이유는 같은 부피 대비 표면적이 더 넓어서 그렇다는 게 나의 견해입니다.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나는 면적이 넓다는 겁니다.

 

 한편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겉면에 마이야르가 많이 일어난 프랑스 빵 계열을 대중적으로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바게뜨. 좋아하는 사람만 좋아하지요. 우리나라 사람들도 곡물이 구워진 구수한 풍미 자체는 좋아합니다만, 딱딱하고 수분이 적은 건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체질적인 이유도 있고 문화적인 이유도 있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느 정도 수분이 많은 음식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붕어빵 같은 건 그야말로 적당히, 수분이 많이 남게 구우면서 마이야르도 많이 만든 빵이라 봐야 할 것입니다. 물론 굳이 보자면 빵보다는 과자류에 가까울지도 모르지만요.

 

 

 

17) 무게감이 가벼운 케잌류를 좋아합니다. 시폰케잌과 마들렌을 좋아하는데요. 시폰으로 만든 쇼트케잌도 좋아하고요. 케잌의 무게감에 대한 선호는 각자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파운드처럼 좀 묵직한 걸 좋아하는 분들도 있지요.

 

 그런데 시폰케잌은 구울 때 전용 틀이 필요합니다. 시폰케잌은 가운데 구멍이 난 모양이지요. 폭신하고 밀도가 낮은 케잌이라서 구울 때 가운데에도 열공급을 하기 위한 구멍입니다. 도넛에 구멍을 뚫어 튀기는 것과 같은 원리인데요.

 

 어떤 이유에선지 근래 종이로 된 1회용 시폰케잌틀에 시폰케잌을 구워서 종이틀째 판매하는 게 곧잘 보입니다. 문제는 내 생각에는 종이틀에 구운 시폰케잌은 맛도 떨어지고 먹기도 불편하다는 건데요. 시폰케잌을 좋아하는 입장에서는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인건비가 비싸져서 이렇게 된 건지. 종이틀에 구워놓은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 건지.

 

 

 

 

18) ‘맵다는 감각이 통증이라는 건 대체로 들어서 알고 계실 겁니다. 사람의 몸은 모든 자극이 특정 역치 이상이면 통증을 느끼게 되어있습니다. 예를 들어 강렬한 빛을 보면 눈에 통증이 느껴지지요. 너무 크고 날카로운 소리를 들으면 귀가 아프고요. 어떤 감각이건 사람은 통증을 느낍니다.

 

 캡사이신은 뜨거움을 느끼는 역치를 낮춥니다. 그러니까 원래 일정 이상의 온도에서만 우리 몸은 뜨겁다라고 느끼는데, 캡사이신은 그보다 더 낮은 온도. 즉 우리의 체온 정도에도 뜨겁다라는 감각을 느끼게 합니다. 우리는 이 캡사이신의 느낌을 맵다고 인지하게 학습되어 있습니다.

 

 물론 캡사이신만 매운 게 아닙니다. 겨자나 와사비, 마늘도 맵지요. 그런데 이런 것들은 모두 뜨거운매움에 속합니다. 반대로 차가운매움도 있지요. 민트에 많이 들어있는 멘톨이 그것입니다.

 

 멘톨은 반대로 차가움을 느끼는 역치를 높입니다. 원래 일정 온도보다 낮은 것에만 차갑다라는 느낌을 받게 되는 감각을, 그보다 높은 온도에서도 차갑게느끼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도 맵다는 감각에 속합니다.

 

 멘톨은 피부에 적용 시 냉찜질을 하는 것과 유사하기 때문에 파스에도 많이 쓰이고, 기호성 문제인지 치약에도 쓰입니다. 음식에도 쓰이는데 역시나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민트 레시피는 민트초코겠지요. 나는 민트초코와 파인애플이 들어간 피자도 잘 먹습니다. 최애는 아니지만.

 

 

 

 

 

19) 통칭 슈크림은 정식 명칭이 커스터드입니다. 원래 우리나라에서 흔히 슈크림볼이나 베이비슈’, 그냥 라고 부르는 그것의 이름이 슈 아라크렘(chou à la crème)입니다. 여기에 원래는 커스터드가 들어가다보니, 커스터드를 일본에서 슈크림으로도 부르게 되었다고 추정하며 그 말이 우리나라에도 들어온 것 같습니다. 프랑스어로 chou는 양배추라는 뜻인데, 슈 아라크렘의 모양이 양배추 모양이라 그런 이름이 붙었고요. 커스터드를 만들 때 양배추는 안 들어갑니다. ‘커스터드라는 말은 대체로 롯데나 오리온에서 만드는 카스타드에서 들어보셨을 겁니다. 거기 커스터드가 들어가지요. 그런데 근래엔 슈 아라크렘에 커스터드가 아닌 휘핑크림을 넣는 경우가 많습니다. 커스터드를 만드는 게 더 손이 많이 가거든요.

 

 커스터드는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하나는 샛노란 거고, 하나는 거의 흰 겁니다. 커스터드는 계란 노른자와 버터, 우유, 설탕, 약간의 밀가루, 바닐라 등으로 만드는데 유지방이 많이 들어갈수록 더 흰색을 띠고, 더 생크림에 가까운 맛이 난다고 알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슈크림빵을 사면 거의 샛노란 커스터드가 들어있었는데, 요새는 그런 것보다는 흰색에 가까운 게 많지요. 노란 건 델리만주 같은 데 들어있고요.

 

 커스터드는 디저트에서 다양하게 활용됩니다. 예를 들어 타르트지 등에 넣어 구운 건 에그타르트. 용기에 담고 위에 설탕을 담고 직화로 설탕을 구워 녹인 건 크렘 브륄레입니다.

 

 

 

 

 

20) 세상에서 가장 비싼 향신료는 사프란입니다. 사프란을 키워보면 사프란이 왜 비싼지 알 수 있는데, 사프란은 크로커스의 한 종류에서 나오는 암술로 꽃 하나에 암술이 3개씩 달리는데, 그 암술을 모은 게 사프란이라 요리에 쓸만큼 수확하려면 꽃을 어마어마하게 키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걸 다 손으로 따야 하고요. 꽃 자체는 볼만한 편이고 키우기 어렵진 않아서 땅이 남아도는 분한테는 추천합니다.

 

 사프란 다음으로 비싼 향료는 바닐라입니다. 바닐라는 친숙하기 때문에 그리 비싼 향료라는 걸 모르는 분들이 많습니다만, 진짜 바닐라는 맛있고 비쌉니다. 나는 특히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데, 잘 만든 바닐라 아이스크림은 비싸지만 매우 맛있습니다. 처음 가보는 마카롱 집에서도 나는 바닐라 마카롱을 꼭 먹어보는 편입니다. 잘 하는 마카롱 집은 바닐라 마카롱을 잘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리 관련 이런저런 이야기 #2

식이 2021. 11. 26. 19:31 Posted by 해양장미

 요리 관련 이런저런 이야기 1편

 

 

 

 

 

1) 우리가 느끼는 감칠맛에는 크게 다음과 같은 종류가 있습니다. 글루탐산, 아스파라긴산, 이노신산, 구아닐산, 호박산. 이 종류를 이해하면 음식에 복합적인 감칠맛을 연출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어려워 보이지만, 사실 완제품 조미료들도 이 종류들을 다양하게 섞어놓은 게 많습니다.

 

 글루탐산은 다양한 음식물에 들어있는 물질입니다. 많이 들어있는 식품은 다시마, 간장, 된장, 토마토, 숙성된 치즈 등입니다. MSG는 이 글루탐산 맛을 냅니다. 적당한 농도일 때는 아시안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만한 맛에 가까운데, 음식에 MSG가 너무 많이 들어가면 지나치게 달고 탁하며 입 안에 과하게 달라붙는 느낌이 됩니다. 각자 취향차가 있지만 음식물에 글루탐산 맛이 나는 %가 너무 높아지면 맑은 느낌이나 우아한 느낌을 낼 수 없게 됩니다.

 

 아스파라긴산은 콩나물에 많이 들어있습니다. 콩나물국 특유의 시원한 감칠맛이 아스파라긴산의 맛입니다. 콩나물에만 많이 들어있는 건 아닌데, 콩나물을 먹을 때 아스파라긴산 맛을 잘 볼 수 있습니다.

 

 이노신산은 육류나 생선류에 많이 들어있습니다. 쇠고기, 멸치 같은 것 말이지요. 글루탐산과 함께 감칠맛을 내는 데 있어 중요한 요소인데, 글루탐산에 비해 이노신산은 맑은 느낌의 감칠맛이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만드는 음식 레시피에는 글루탐산과 이노신산 맛이 같이 나도록 되어있는 게 많습니다. 서로 다른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멸치 + 다시마 = 잔치국수 국물, 돼지등뼈 + 된장 = 뼈해장국, 쇠고기 + 토마토 = 비프스튜 등등.

 

 구아닐산은 쉽게 이야기하면 버섯의 감칠맛입니다. 이노신산과 함께 핵산계 감칠맛이라 부르는데, 조미료에 핵산계 조미료라고 적힌 것들이 있습니다. 핵산계 조미료는 육류, 생선류, 버섯의 감칠맛이고, MSG는 글루탐산의 감칠맛입니다.

 

 호박산은 쉽게 이야기하면 조개의 감칠맛입니다. 조개 외에 맛술의 감칠맛도 이 계열입니다. 아스파라긴산과는 좀 다른 소위 시원한 맛을 냅니다.

 

 

 

 

 

2) 우리나라 라면에서는 07~08년 쯤에 팔도야쿠르트를 제외한 모든 라면 회사의 라면에서 MSG가 빠졌습니다. 팔도만 MSG를 유지하고 있지요. 이후 우리나라 라면은 대체로 핵산계 조미료 맛이 많이 납니다.

 

 조미료로 설명하자면, 미원은 순수한 MSG라서 글루탐산 맛입니다. 그런데 다시다는 핵산계 조미료에 MSG와 소금이 들어있지요. 그래서 용도가 다릅니다. 미원은 글루탐산 버프용이고, 다시다는 그냥 그것만 써도 육수 비슷한 걸 만들 수 있습니다. 저렴한 냉면은 다시다 + 설탕 + 식초로만 육수를 만들기도 하는 정도라서요.

 

 우리나라 대중음식에서 MSG와 다시다 맛을 빼는 건 어렵습니다. 집 음식에서는 MSG나 핵산계 화학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 가정이 많은데, 그 경우 소위 바깥음식과 집 음식의 결정적인 맛 차이를 만드는 게 이것입니다. 대중음식으로 한식이 저렴하면서도 맛있는 가장 큰 이유는 화학조미료고, 고급음식으로는 영 발전을 못 하는 이유도 화학조미료입니다.

 

 천연재료로만 음식을 해서는 화학조미료의 감칠맛 농도를 현실적으로 따라갈 수 없습니다. 재료비를 생각 안 해도 되는 가정에서는 만들 수는 있는데, 음식점에서는 그런 식으로 만들면 재료비 너무 많이 들어서 망하고요. 조미료를 쓴 쪽이 맛의 강도가 강하기 때문에 좀처럼 우리나라 음식에서는 조미료를 빼기 어렵습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간이 센 걸 좋아하는 상황이라는 거지요. 짜게 먹다 싱겁게 먹으면 맛없다고 생각하기 쉬운 것과 마찬가지로, 감칠맛이 강한 걸 먹다 여린 걸 먹어도 비슷하게 맛없다고 느끼기 쉽습니다.

 

 

 

 

 

3) 나는 가정에서 만든 만두를 좋아합니다. 가능하면 두부를 많이 넣고, 중력분과 계란을 써서 피까지 가정에서 만든 게 좋지요. 집에서 만든 만두는 찐 것을 튀겨서 간장을 듬뿍 끼얹어 먹으면 맛있습니다.

 

 대조적으로 시판하는 만두는 튀겨도 별로 맛이 좋아지지 않고, 간장을 듬뿍 끼얹으면 짠 정도나 감칠맛이 과해집니다. 여기서 집 만두와 시판 만두의 차이를 알 수 있는데요. 쪄 먹게 나온 시판 만두피는 글루텐이나 전분이 많이 들어있어서 튀기면 영 안 어울리고요. 시판 만두의 소에는 염분과 지방질과 감칠맛 성분이 집 만두보다 일반적으로 많이 들어있습니다. 특히 비비고 시리즈는 내가 생각하기엔 감칠맛 성분이 듬뿍 들어있지요. 비비고가 괜히 인기 있는 게 아닌데, 나는 그래서 비비고가 입에 잘 안 맞습니다. 조미가 많이 된 편이라서요.

 

 이따금 맛이 맹탕인 홈메이드 만두를 드셔보셨을 겁니다. 너무 쉬어서 냄새가 나쁜 김치를 썼거나 그밖에 상태가 나쁜 재료를 넣은 만두가 아닌 이상, 대체로 그런 만두는 맛이 없는 게 아닙니다. 지방질과 감칠맛과 염분 같은 게 부족해서 맛이 없게 느껴지는 상태일 확률이 높지요. 소에 짠 맛이 과한 상태가 아니라면, 튀긴 다음 과감하게 간장을 치면 맛이 확 좋아집니다.

 

 

 

 

 

4) 쌀에는 단백질이 7% 정도 들어있습니다. 대부분의 음식에서 단백질은 맛에 부정적으로 작용하지 않습니다만, 쌀의 단백질은 함량이 높을수록 품질이 낮은 쌀로 취급됩니다. 특히 쌀로 술을 담글 때 더더욱 그렇지요.

 

 쌀의 단백질은 녹말 입자를 감싸고 있습니다. 생 단백질 자체는 별로 맛이 없기 때문에, 쌀 단백질은 보통 좋은 식감이나 맛을 내는 데 방해가 됩니다. 밥의 맛은 거의 녹말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쌀 단백질은 쌀의 안쪽보다는 바깥쪽에 많습니다. 그러니까 쌀로 술을 담글 때 다이긴죠는 쌀의 바깥쪽을 깎아내고 안쪽으로만 술을 담급니다. 쌀 단백질은 술 만드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미는 너무 식감이 나쁘니까 분도미를 먹는 분들도 많은데, 쌀겨나 쌀눈이 몸에 좋긴 하고, 사실 쌀단백도 몸에는 좋습니다만 확실하게 쌀 바깥쪽을 벗겨낼수록 맛있어지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쌀단백을 좀 벗겨주는 쪽이 맛은 더 맛있거든요. 몸에 별로 안 좋은 게 맛은 좋은 법칙이 쌀에도 적용됩니다.

 

 그런데 볶음밥을 만들면 이야기가 좀 달라집니다. 쌀단백은 밥알끼리 덜 붙게 만듭니다. 이게 쌀밥을 먹을 때는 별로 좋지 않은데, 밥을 볶을 때는 좋은 특성이 됩니다. 그리고 고온으로 마이야르를 만들어주면 쌀단백도 긍정적인 풍미가 생길 수 있지요. 마이야르 반응은 대략 130~200℃에서 일어나고, 가장 급격하게 일어나는 온도는 175~180℃입니다. 압력솥에 밥을 지어도 약 120℃정도로 조리되니까 마이야르를 거의 기대할 수 없는데, 볶을 때는 이야기가 다르지요.

 

 신동진처럼 그냥 밥을 지으면 맛없는 쌀이 볶음밥으로 만들면 맛있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볶음밥은 좀 거칠고 찰기가 없는 밥으로 볶아야 맛있습니다.

 

 

 

 

 

5) 콘플레이크와 콘푸로스트를 혼동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영어로 외우면 쉽습니다. 켈로그가 개발하여 포스트가 처음 시판한 최초의 씨리얼은 Corn Flake입니다. Flake는 얇은 조각을 뜻하지요. 프레이크, 후레이크 등 한글 표기는 다양합니다만 공통적으로 콘플레이크는 별로 달지 않습니다. 설탕을 거의 안 넣거든요. 실제 시판하는 건 여러 첨가물(비타민 등)이 들어가지만, 그냥 옥수수를 밀면서 구우면 콘플레이크가 됩니다. 농심 인디안밥이 그에 가깝지요. 다만 인디안밥은 일반적인 콘플레이크보다는 기름지고 살짝 더 답니다.

 

 콘푸로스트는 Frost입니다. 정식 명칭은 Frosted Flakes인데, Frosting은 제과 용어로 설탕 혼합물을 입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콘플레이크에 프로스팅을 한 게 콘푸로스트지요. 우리나라에서 파는 포스트 버전은 콘푸라이트라는 상품명이 붙어 있습니다.

 

 그래서 콘푸로스트는 콘플레이크와는 반대로 강한 단맛이 납니다. 설탕 혼합물이 입혀져 있으니까 조금 더 단단하고, 우유에 말았을 때 조금 천천히 부드러워지고요.

 

 우리나라에서는 콘플레이크는 인기가 없는 편이고, 콘푸로스트쪽이 인기가 좋습니다. 그래서 콘푸로스트는 싸게 살 수 있는 행사가 많은데, 콘플레이크는 들여놓지도 않는 마트가 많습니다. 나는 콘플레이크를 더 좋아하기 때문에 아쉬울 때가 많습니다. 콘푸로스트도 잘 먹긴 합니다만.

 

 

 

 

 

6) 동물성 기름은 동물이 뭘 먹었느냐에 따라 지방산의 조성이 달라집니다. 지방산의 조성은 경화 및 산패가 잘 되는 정도와 상관이 있는데요. 경화가 잘 되는 기름이 산패도 잘 되고, 오메가3를 많이 가진 기름입니다.

 

 곡물을 먹인 동물일수록 체지방에 오메가3 비율이 줄어듭니다. 그러면 체지방의 산패가 덜 되고, 건조도 덜 되는데요. 이게 장단점이 있습니다. 일단 오메가3가 몸에 좋다는 의견은 논외로 하고요. 자연산 생선이나 야생동물 고기는 지방의 산패와 건조가 빠릅니다. 대조적으로 양식 생선이나 현대 축산업에서 키운 고기는 지방의 산패와 건조가 느립니다. 우지나 돈지 같은 경우, 대략 1950년대 이전과 이후는 특성이 다른 기름입니다. 그 이전의 사용법을 지금 사용할 수 없다는 거고, 레시피도 좀 다르게 적용하는 게 좋습니다. 생선도 자연산과 양식은 취급을 좀 달리 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연산 쪽이 부패가 빠르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무쇠솥이나 팬을 관리할 때, 옛날에는 라드로도 충분했습니다. 그 땐 라드가 지금보다 건성유였거든요. 라드로 폴리머를 형성해서 넌스틱 효과를 만들기도 쉬웠다고 할 수 있지요. 그런데 이젠 그런 전통적인 방식의 조리법을 사용하기 어렵습니다. 현대의 라드는 불건성유입니다. 폴리머 형성이 잘 안 되고, 덜 굳습니다. 아마 옛날 라드로 볶음밥을 하면 매우 근사했을 겁니다. 경험적으로 볶음밥에 불건성유를 쓰면 기름이 빨리 굳어서 그런지 장점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런 라드를 구하는 게 불가능에 가깝지요.

 

 대신 산패에 강한 현대 돈지의 특성은 돼지뼈를 끓이는 계열의 요리를 발달시켰을 수 있습니다. 돈지가 옛날 돈지보다 산패가 빨리 안 되니까, 장시간 끓였다 식혔다 하면서 요리를 만들기 유리해졌을 거거든요. 쇠고기나 소뼈를 끓이는 요리도 마찬가지일 거고요.

 

 

 

 

 

7) 스테이크는 참으로 낭설이 많은 요리입니다. 근래엔 그나마 올바른 정보가 좀 퍼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낭설 때문에 잘못 하기 쉬운 요리지요.

 

 스테이크 구울 때 확실하게 실패할 수 있는 방법을 하나 알려드리자면, 육즙에 집착하는 겁니다. 육즙은 스테이크 구울 때 초보 수준에서는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육즙 남기는 데 신경 쓰는 건 마스터 영역입니다. 일단 스테이크 굽기의 마스터가 되기 전엔, 육즙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는 그걸 적으로 보는 겁니다. 적어도 쇠고기 표면 부위의 육즙은 적입니다.

 

 일단 이제 알 만한 분들은 다 알겠지만, 쇠고기 겉면을 아무리 지져줘도 육즙 보존 안 됩니다. 쇠고기 익힐 때 육즙 잘 보존시키고 싶으면 튀김옷 입혀서 비프까스로 튀기세요. 그렇게 해야 육즙 보존이 됩니다.

 

 쇠고기 표면의 육즙은 두 가지 면에서 스테이크를 굽는 데 있어 문제를 일으킵니다. 일단 첫 번째는 표면에 수분이 있으면 고기가 안 구워진다는 겁니다. 물에 젖은 음식은 굽기 힘듭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육즙은 부패가 빠르다는 겁니다.

 

 보통 소매점에서 스테이크용 고기로 파는 쇠고기는 숙성이 잘 된 고기입니다. 신선하고 맛있어 보여서 샀는데, 집에 와서 뜯어보면 나쁜 냄새가 나는 경우가 흔하지요. 십중팔구 육즙이 부패하기 시작한 겁니다. 그냥 먹어도 어지간한 사람이면 큰 문제는 없지만, 맛있게 먹으려면 나쁜 냄새를 내는 육즙을 철저히 제거해줘야 합니다. 이건 사골 끓일 때 핏물 빼는 거랑 원리가 비슷합니다.

 

 

 

 

 

8) 스테이크에 대한 또 다른 흔한 착각 중 하나는, 레어 스테이크는 생각보다 많이 구운 스테이크라는 겁니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레어를 보고 미디움이라고 생각하거나, 블루를 레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블루(블루레어)와 레어(핑크레어)는 다릅니다. 레어는 다 익힌 쇠고기고, 블루는 겉만 익히고 속은 안/덜 익힌 육회(타다키)입니다. 대조적으로 웰던은 많이 익힌 쇠고기. 미디엄은 레어와 웰던의 중간이지요.

 

 쇠고기 스테이크를 기준으로 블루로 익힌 쇠고기의 속 색깔은 생고기와 같습니다. 그런데 레어로 익힌 고기는 핑크색으로 익은 고기입니다. 거기서 더 익히면 점점 회색이 되고요. 이게 처음에는 감을 잡기 힘든데, 두꺼운 고기를 탐침 온도계로 찔러서 온도를 재면서 굽거나 수비드를 해 보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레어의 기준온도는 대략 중심부 49~54℃, 미디엄 레어는 54~57℃입니다. 레스팅 이후 60℃가 넘으면 레어나 미디엄 레어가 아니라 미디엄입니다.

 

 근단백질의 주요 구성성분인 미오신은 40℃ 이상에서 변성합니다. 이 미오신이 변성되느냐 아니냐에 따라 익힌 레어냐, 익히지 않은 블루냐가 결정됩니다. 그리고 쇠고기의 지방은 54℃에서 녹으면서 변성합니다. 그래서 지방이 있는 쇠고기는 엄밀히 말하면 레어로 구우면 안 됩니다. 진짜 레어로 먹어도 되는 쇠고기는 지방이 없는 살코기여야 하고요. 일반적으로 먹는 지방이 좀 있는 쇠고기는 54~60℃, 그러니까 미디엄 레어로 구워줘야 맛있게 먹을 수 있습니다. 대조적으로 지방이 없는 쇠고기 살코기는 신선할수록 블루로 충분합니다.

 

 60℃가 넘어가면 미오글로빈이 변성해서 회색으로 익고, 콜라겐 조직이 변해 질겨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66℃가 넘으면 미오신과 함께 근단백질을 구성하는 주요 성분인 액틴이 변성하기 시작하는데, 액틴이 변성하면 진짜로 질겨집니다. 웰던은 액틴까지 변성시키는 온도가 되지요.

 

 사견으로 두께가 일정 이상 되는 고기는 웰던 만드는 거 아닙니다. 그렇지만 햄버그처럼 다진 고기는 웰던으로 굽는 게 룰입니다. 그래야 소독이 되거든요. 고기는 주로 표면이 오염되기 때문에, 고깃덩어리는 겉면만 구워서 블루로 먹어도 대략 안전하지만 햄버그는 다지기 때문에 속까지 오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웰던으로 구워야 하지요. 다행히 웰던으로 구워서 다져진 고기조각이 단단해져도 햄버그는 씹히는 느낌이 좋고 맛있습니다.

 

 

 

 

 

 

9) 양식을 코스로 좀 드셔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양식 코스에서 빵은 전채와 함께 먹습니다. 식전빵이라고도 하지요. 수프나 샐러드를 먹으면서 빵을 먹게 된단 말이지요. 대조적으로 메인 요리하고 빵은 좀처럼 같이 먹지 않습니다. 이게 왜 그렇게 되냐 하면, 양식 메인 요리의 꽃은 아무래도 스테이크인데, 쇠고기 스테이크와 빵은 영 안 어울린단 말입니다. 그리고 웬만한 메인 메뉴하고 빵은 잘 어울리는 편은 못 됩니다. 그러니까 많은 경우 빵 대신 감자를 곁들여 먹지요.

 

 그런데 밥은 감자 못지않게, 어쩌면 그 이상으로 스테이크 같은 고기구이와 잘 어울립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밥과 스테이크를 같이 먹는 문화가 이상하게 발달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만, 외국에서는 스테이크에 밥을 같이 먹는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다. 나는 스테이크를 굽고 레스팅하는 동안 스테이크를 구운 팬에 밥을 소량 볶아서 먹기도 하는데, 별 재료 안 넣어도 고기와 함께 먹기 나쁘지 않게 됩니다.

 

 

 

 

 

10) 요새 큰 닭으로 치킨을 튀겨야 맛있다는 말을 누가 자꾸 해서 시끄러운데요. 육계 큰 닭은 물론 방목한 닭까지 좀 먹어본 입장에서 이야기하자면, 닭 맛 자체는 큰 닭이 더 맛있는데요. 대신 큰 닭은 튀겨서 익힌다고 치면 잘 안 익고, 좀 질기고, 닭냄새가 나기 쉽습니다. 괜히 작은 닭 쓰는 게 아닌데요. 큰 닭 쓴 치킨의 좋은 레시피 예가 KFC 오리지날 치킨인데요. 큰 닭은 그런 식으로 요리하는 게 어울립니다. 염지 강하게, 허브 스파이스 잔뜩. 그리고 압력솥으로 잘 익게 튀겨내야지요. 그런데 우리나라 치킨은 대체로 KFC 오리지날하고는 다른 방향으로 발달했잖아요? 레시피에 따라 작은 닭이 어울립니다.

 

 닭다리를 예로 들어볼까요. 닭다리에는 제법 큰 혈관이 있습니다. 그 혈관은 비릿하고 탁한 맛을 내지요. 먹을 때 혈관 떼서 버리고 먹는 게 더 맛있습니다. 그렇지만 보통들 그냥 먹지요. 닭이 사이즈가 커질수록 혈관도 커지고, 비린 풍미도 더 강해집니다.

 

 큰 닭으로 요리 제대로 하려면 쓸데없는 피하지방, 내장 조각, 핏덩이 같은 거 제거 확실하게 해줘야 합니다. 완전히 제대로 하면 시간 상당히 걸립니다. 확실하게 해 주면 맛이 좋아지긴 하는데요. 대량으로 프라이드 치킨 같은 거 튀길 때 그런 작업을 제대로 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게다가 큰 닭이 더 맛있긴 합니다만, 대체로 치킨 시즈닝에는 마법의 가루, MSG가 들어간다고요? MSG를 잘 쓰면 큰 닭이 가지는 맛의 이점을 작은 닭도 꽤 따라갑니다.

 

 

 

 

 

11) 일반적인 떡볶이는 정의하자면 오뎅국물 베이스에 고추장, 고추가루 등으로 매운 맛을 내고, 물엿과 설탕 등으로 단맛을 내고, MSG 등으로 감칠맛을 더한 일종의 쫄깃한 파스타 요리입니다. 강한 감칠맛과 매운 맛, 단맛이 맛의 골조를 잡고 있고, 여기에 떡의 질감이 더해진 방식인데요.

 

 맛있는 떡볶이를 만들려면 이노신산과 글루탐산 맛을 어떻게 확보할지를 생각해야합니다. 원래 레시피 자체가 저렴한 분식집 음식이라, 화학조미료를 충분히 쓰면 맛있게 만들기 쉬운데 자연재료로 일정 이상 맛있게 만들려면 난이도가 좀 높아집니다.

 

 맛없는 떡볶이는 대체로 이노신산과 글루탐산 성분이 너무 적거나, 아니면 글루탐산이 너무 많이 들어간 떡볶이입니다. MSG를 실수로 너무 넣은 떡볶이는 못 먹을 맛입니다.

 

 반대로 MSG를 아예 안 쓰고 떡볶이를 만들려면 좀 고난이도가 되는데, 원래 떡볶이가 MSG를 쓰는 쪽으로 개발된 레시피라 그렇습니다. 떡볶이를 만들 때 일반적으로 쓰는 자연적인 재료 중에는 고추장이 그나마 감칠맛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기 쉽습니다.

 

 쉬운 해결책은 케챱을 좀 넣거나 간장 베이스로 만드는 겁니다. 그러면 MSG 없어도 맛있게 됩니다. 그냥 순수한 고추장/고추가루 떡볶이는 MSG 안 쓰면 글루탐산 확보가 어렵습니다. 다시마 육수라도 내면 가능은 합니다만.

 

 

 

 

 

12) 우리가 음식물을 익히는 방법은 4가지입니다. 복사, 전도, 대류, 그리고 마이크로파입니다. 복사는 매질 없는 직접적인 열의 전달. 전도는 고체 매질을 이용한 것. 그리고 대류는 유체 매질을 이용한 것이지요. 전자렌지의 마이크로파는 음식물 안쪽에 열을 만들어내고요.

 

 불꽃이나 열선의 열기가 음식물에 직접적으로 전달될 때는 복사입니다. 팬, 철판 등에서 음식물을 굽거나 볶을 때는 전도고요. 물, 기름, 증기, 공기를 이용해 열을 전달하는 건 대류입니다.

 

 토스터기나 오븐토스터 같은 경우는 거의 복사열로 음식을 익히는 기기입니다. 그런데 컨벤션 오븐이나 에어프라이어에서는 대류열의 역할이 커지지요. 오븐은 대체로 복사열과 대류열을 쓰는데 오븐의 종류에 따라, 그리고 같은 오븐이라도 오븐 안의 음식물 위치 등에 따라 복사열과 대류열을 받는 비율이 달라집니다. 과자 같은 걸 구울 때는 복사열로 굽느냐 대류열로 굽느냐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집니다. 커피를 볶을 때는 전도열과 대류열, 그리고 기기에 따라 복사열도 쓸 수 있는데 그 비율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지고요. 저렴한 간이 로스터들은 대류열을 제대로 쓸 수 없기 때문에 커피콩을 제대로 볶을 수가 없습니다. 커피의 센터컷 내부는 복잡하기 때문에, 대류열을 쓸 수 있어야 안쪽을 원하는 만큼 구워줄 수 있습니다. 대류열만 너무 세게 걸면 바깥은 덜익었는데 안쪽부터 타버리기도 하고요.

 

 스테이크를 구울 때, 팬에 구우면 전도열로 굽는 겁니다. 석쇠에 굽거나 토치로 구우면 복사열로 굽는 거고요. 내 생각에는 제대로 스테이크를 구울 때는 충분한 전도열이나 강한 복사열로 구워야 합니다. 그런데 일반 가정집에는 철팬은 물론이고 괜찮은 스테인리스 팬도 없는 경우가 많지요. 팬이라고는 코팅팬밖에 없는 경우에는 그걸로 제대로 스테이크를 ‘굽기’는 어렵습니다. 그럴 때는 기름을 많이 써서 튀기는 방식으로 스테이크를 익히는 게 결과물이 나은데, 튀기게 되면 전도가 아니라 대류입니다.

 

 

 

 

 

13) 나는 피자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피자를 먹다 보면 불만족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맛없는 피자를 먹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다른 걸 잘못 만들어서 맛없는 게 아닙니다. 보통 설구워서 맛이 없어요. 스테이크는 너무 구우면 맛이 없는데, 반대로 피자는 설구우면 맛이 없습니다. 제대로 구운 피자는 비주얼이 좀 타야 합니다. 탄 부분이 없으면 제대로 구운 피자가 아닙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나라 사람들 중 꽤 다수가 탄 음식을 먹으면 암에 걸린다고 생각해서 기피한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대로 구운 피자를 내놓는 집은 반드시 컴플레인과 클레임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러다보니까 우리나라는 설구운 피자를 일상적으로 먹는 나라가 되어버렸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먹는 대부분의 피자는, 그냥 좀 더 구우면 더 맛있어집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파스타는 알덴테로 먹지만, 피자는 타도록 구워 먹습니다.

 

 

 

 

 

14) 치즈는 강하게 숙성시킬수록 감칠맛 성분이 늘어 ‘맛’이 좋아집니다. 대신 냄새가 생기지요. 그리고 강하게 숙성시키려면 염분이 많이 들어갑니다. 짜고 냄새가 강하기 때문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습니다. 나는 경성 치즈나 워시드 연성 치즈를 좋아합니다만.

 

 우리나라 음식 중에도 강하게 숙성시켜서 감칠맛 폭탄이고 냄새가 강한 음식은 있습니다. 보리굴비라거나, 갈치속젓이라거나. 갈치속젓은 나는 먹긴 하는데 감칠맛은 좋지만 잡스러운 풍미가 많은 음식이라 많이는 못 먹고, 보리굴비는 좋아합니다. 먹을 때마다 치즈 같은 맛이라고 생각하지요. 어쩌면 보리굴비를 주로 드시고 치즈는 별로 못 드셔보신 분들은 숙성이 잘 된 치즈를 먹으면 보리굴비 같은 맛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경성 치즈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파르미자노 레지아노, 그라나 파다노, 올드 고다(하우다), 파르미자노 레지아노와 올드 고다의 중간형, 페코리노 로마노. 이 중 페코리노 로마노는 양젖 치즈입니다. 그러니까 맛이 완전히 달라서 논외. 나머지는 우유 치즈입니다.

 

 고다(네덜란드어 발음으로는 하우다) 치즈는 네덜란드 치즈로, 유지방 함량이 높은 치즈입니다. 기본적으로는 반경성 치즈로 겉 표면을 왁스로 싸 둡니다. 먹을 때는 왁스를 벗기고 썰어 먹으면 되는데요. 일반적인 고다 치즈는 왁스가 붉은색이거나 노란색입니다. 이 때는 평범한 반경성 치즈지요. 그런데 검은 왁스로 싸여 있는 건 장기 숙성형입니다. 올드 고다는 경성 치즈라 일반적인 고다와는 다른 치즈입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치즈를 하나만 꼽으라면 올드 고다를 꼽습니다.

 

 파르미자노 레지아노는 분쇄해서 가루로 먹는 치즈의 원조격입니다. 보통 가루 치즈를 파마산 치즈라고 부르는게, 파르미자노 레지아노에서 이름을 따온 거지요. 그런데 진짜 파르미자노 레지아노는 그냥 썰어 먹어도 맛이 좋은 편이고, 가루로 먹는 치즈 중에는 풍미가 강합니다.

 

 그라나 파다노는 실질적으로 파르미자노 레지아노보다 가루 치즈로 더 많이 씁니다. 둘은 외형이나 주 용도가 비슷하지만 실제로 먹어보면 풍미 차이가 분명하게 납니다. 가장 큰 차이는 그라나 파다노는 그냥 썰어서 덩어리째 먹으면 맛이 없다는 겁니다. 이 차이는 주로 유지방에서 비롯됩니다. 파르미자노 레지아노 쪽이 그라나 파다노보다 숙성기간이 길기도 한데, 그보다 결정적인 차이가 그라나 파다노는 탈지유로 만드는 반면 파르미자노 레지아노는 탈지유에 전유를 섞어서 만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라나 파다노는 거의 유지방이 없는 치즈인 반면, 파르미자노 레지아노는 유지방이 들어가 있습니다. 유지방이 숙성되면 복합적인 풍미를 만듭니다. 올드 고다 같은 경우 유지방 함량이 48%에 이르기 때문에 그라나 파다노와는 매우 대조적이고요.

 

 올드 고다와 파르미자노 레지아노의 중간형 치즈는 유지방 함량이 올드 고다보다는 낮고, 파르미자노 레지아노보다는 높습니다. 그래서 특성이 중간적입니다. 올드 고다 같은 경우 가루 치즈로 쓰기에는 풍미도 강하고 짠 맛도 있는데, 중간형은 풍미가 약해지고 덜 짜서 가루로 쓰기도 좀 더 용이하고, 덜 짜기 때문에 짠 맛에 약한 사람이 먹기도 편합니다.

 

 

 

 

 

15) 내가 어릴 때 인천지역에 조기는 많았는데 말린 굴비는 별로 없었습니다. 말린 생선은 가자미나 박대/서대 같은 게 흔했지요. 옛날에는 참가자미 말린 것도 흔했는데, 저렴하면서도 맛이 좋았습니다. 요새는 맛있는 가자미가 예전처럼 흔하지 않고, 가격도 비쌉니다. 근 몇 년 동안은 가자미보다 광어를 더 먹고 있는 것 같기도 할 정도고.

 

 한편으로 인천지역에서 먹는 음식 중 하나가 말린 가오리 찜입니다. 인천 앞바다에서는 원래 홍어(간재미)나 가오리가 많이 잡히는데, 인천 사람들은 홍어나 가오리를 원래 삭혀 먹지 않고 신선할 때 먹거나 말려서 먹어왔습니다. 가오리는 말리면 안 삭습니다. 요새는 호남 사람들이 유입도 많이 되고, 호남 사람들한테 영향을 받았거나 어쩌다 입맛에 맞아서 삭힌 홍어를 먹는 사람들도 많습니다만. 나는 왜 맛있는 홍어나 가오리를 삭혀서 먹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삭힌 홍어는... 그건 먹을 수 있는 음식 냄새가 아니라고 느껴지는데요?

 

 참고로 간재미와 홍어가 다른 생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같은 생선입니다. 어린 홍어가 간재미입니다. 간재미가 다 크면 홍어가 됩니다.

 

 말린 가오리를 쪄 먹으면 맛있습니다. 살도 맛이 진해진 상태고, 연골이 부서지는 느낌이 좋지요. 인천 재래시장에서는 말린 가오리 조각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썩은 냄새 안 나니까 부담없이 드셔도 됩니다.

 

 

 

 

 

 

16) 가스렌지는 요리에 있어 혁명적 변화였습니다. 그런데 가스렌지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습니다. 80년대 초중반만 해도 연탄불에 요리를 하는 가정이 흔했습니다. 전두환 시절이 좋았다는 사람들이 많지요. 그 시절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연탄불에 요리를 하다가 가스렌지를 쓰게 됐고, 집마다 컬러 TV를 들여놓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시대가 좋아지는 걸 강하게 체감할 수 있었지요.

 

 가스렌지는 요리 테크닉에 큰 진보를 가져왔습니다. 전기렌지는 논외로 하고, 다른 연료를 쓰는 조리도구에 비해 가스렌지가 가지는 큰 장점은 불을 일정한 크기로 쓸 수 있다는 겁니다. 특히 약불을 쓰기 좋지요. 강불이야 무슨 연료를 쓰건 연료를 많이 투입하면 쓸 수 있습니다만, 약불을 일정하게 오래 유지하는 건 가스렌지가 아니고는 어렵습니다.

 

 우리나라는 오븐 문화권이 아니기 때문에 가스렌지가 보급되기 이전에는 약불로 장시간 굽는 요리가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화력을 제한해 쓰면서 오래 익히는 방법은 찜이나 중탕처럼 물을 이용하는 것이었고요.

 

 가스렌지의 보급은 요리에 많은 영향을 줬고, 동시에 경제수준도 올라가면서 우리나라 요리는 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흔한 속설 중 하나가 요리 못 하는 사람들은 약불을 싫어한다고도 하지요.

 

 

 

 

 

17) 부탄, 이소부탄, LPG는 호환 가능한 연료입니다. 같은 버너에 다 쓸 수 있단 말이지요. 사실 커넥터를 바꾸면 LNG도 호환이 안 될 건 없는데, LNG는 아무나 못 다루게 법이 정해져 있고요. 일반인도 같은 휴대용 버너에 커넥터 바꿔서 부탄, 이소부탄, LPG 다 쓸 수 있습니다. LPG 차량에도 충전소까지 갈 연료가 부족하면 부탄가스 캔으로 충전해도 되긴 합니다. 프로판 비율이 없으니까 겨울에는 힘듭니다만.

 

 그래서 가정용 가스렌지에 불만이 있으면 사실 좋은 휴대용 버너에 LPG 쓰면 해결이 되긴 하는데요. 문제는 두 가지입니다. 법률적으로 LPG 가스통은 실내에 두고 사용할 수 없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도시가스가 보급된 지역의 주택은, 특히 공동주택은 실외에 LPG 가스통 둘 곳이 없지요. 부탄가스는 보다 자유롭게 아무 데서나 써도 됩니다만.

 

 요새 캠핑용으로 소형 LPG 가스통 가지고 다니는 분들이 좀 있는데, 그 가스통을 실외에 둔 채로 쓰면 합법인데 실내로 가지고 들어와서 사용하는 순간 불법이 됩니다. 실내에서는 부탄이나 이소부탄 캔만 법적으로 허용됩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충전해 쓰는 LPG가 1회용 부탄보다 L당 가격이 훨씬 싸지요.

 

 그리고 또 다른 문제는 요새 도시지역에 LPG 가스통 충전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는 겁니다. 쓰는 사람이 별로 없거든요. 차량용 LPG는 가스통에 충전하지 못하게 룰이 정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LPG가 싸긴 하지만, 사실 진짜 많이 쓰지 않는 이상 도시지역에서는 그냥 부탄 쓰는 것보다 가성비가 그렇게까지 좋지 않습니다. 충전해오는 코스트가 높아서요.

 

 물론 도시가스 안 들어오는 시골에서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전화하면 LPG 업체가 알아서 찾아오거든요. 충전까지 다 해 주고 별로 비싸지도 않지요.

 

 

 

 

 

 

18) 와인 공부를 할 때는 일단 주요 품종을 이해하면 쉽습니다. 어차피 술이니까 그냥 편하게 마셔도 되긴 합니다만. 요리에 와인을 쓰려면 그래도 어느 정도는 아는 게 좋습니다.

 

 요리에 이리저리 쓰기 편한 건 화이트 와인입니다. 화이트 와인용 품종 중 가장 흔한 건 샤르도네(=샤도네이=Chardonnay)인데요. 샤르도네 와인은 요리용으로도 좋습니다. 다만 샤르도네는 세계적으로 재배하는 품종이고 양조할 수 있는 방식도 다양해서 관련 지식을 좀 알아두는 게 더 좋습니다.

 

 포도가 대체로 그렇지만 샤르도네처럼 다양한 지역에서 재배하는 포도는 재배지역의 위도에 따라 과일스러운 정도가 달라지고, 해당 지역의 양조 스타일까지 영향을 받게 되어 결과물은 더더욱 그렇게 됩니다. 예를 들어 칠레처럼 위도도 낮고 신세계 양조 스타일을 가진 지역에서 나오는 샤르도네는 과일 풍미가 많은 편인데요. 프랑스 부르고뉴처럼 위도도 높고 전통적인 스타일로 양조하는 지역에서 생산되는 건 별로 과일 풍미가 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샤르도네는 양조할 때 말로락틱 발효를 하기도 하고, 안 하기도 합니다. 또한 숙성에 오크통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고, 오크칩이나 관련 첨가물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모든 와인 품종 중 양조 스타일이 가장 다양한 품종이 샤르도네입니다.

 

 일단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런저런 요리에 쓰기 좋은 샤르도네는 고위도에서, 전통적인 스타일로, 첨가물 없이, 오크통이나 오크칩을 사용하지 않고, 말로락틱 발효를 하지 않은 타입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이런 타입의 샤르도네를 좋아하기도 하니까 이 이야기는 적당히 참고해 주시면 좋습니다. 이 중 중요한 건 말로락틱 발효를 하지 않는 것. 그리고 오크 숙성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특히 말로락틱 발효는 매우 중요합니다. 말로락틱 발효를 한 샤르도네와 하지 않은 샤르도네는 전혀 다른 와인입니다.

 

 문제는 와인을 모르면 이런 걸 구분하기 힘들다는 건데요. 기본적인 방법을 알려드리자면 요리용 샤르도네는 Chardonnay라고 써 있는 것 중 싼 걸 사면 됩니다. 왜냐하면 오크통을 사용하거나 말로락틱 발효를 하게 되면 비싸지거든요. 그런 걸 안 한다고 꼭 싼 건 아니지만, 같은 포도를 사용하면 오크통 숙성한 쪽이 더 비싸집니다. 오크통 숙성은 공짜가 아니니까요.

 

 

 

 

 

19) 드라이한 와인을 처음 드셔보신 분들은 대체로 단맛이 없으니까 배신감을 느끼곤 하는 것 같습니다. 기대했던 맛이 아닌 것이지요. 그렇게 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효모는 당을 알콜로 바꾸기 때문입니다. 포도의 당분이 알콜로 바뀌는 것이지요. 기본적으로는 달콤한 포도일수록 양조를 했을 때 도수가 올라갑니다.

 

 그러니까 달콤한 와인을 만드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포도즙의 당도를 많이 올려서 충분히 알콜을 만들어도 당분이 남아있게 하는 방법. 그리고 다른 하나는 도수를 낮추는 겁니다.

 

 포도즙의 당도를 올리는 방법은 크게 보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수분을 줄이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설탕을 넣는 것. 많이 달고, 도수도 높고, 저렴한 와인은 예외 없이 설탕을 넣은 겁니다. 예전에는 그런 와인이 많이 팔렸지요. 조금 더 고급스럽게 만드는 이 방식은 설탕 대신 농축 포도즙 같은 걸 넣기도 하고요. 대조적으로 수분을 줄인 와인은 여러 방식이 있습니다만, 이쪽엔 비싼 게 많습니다. 대중적으로 접근성 좋은 건 아이스와인인데 나는 아이스와인은 비싸기만 하지 맛있게 마신 적이 없어서 마시는 용도로는 비추하고요. 대신 아이스와인은 요리용으로는 쓸 만한 것 같습니다. 시럽 대용으로.

 

 모두에게 추천할 만한 달콤한 와인은 역시나 저도수의 프리잔떼(약발포주)입니다. 막걸리의 맑은 포도주 버전 쯤 되지요. 모스카토 다스티(Moscato d'Asti)가 대표적입니다. 내가 추천하는 건 브라케토 다퀴(Brachetto d'Acqui)고요. 원래 전통적인 방식으로, 자연 효모를 이용하면 저도수 달콤 프리잔떼가 잘 나온다고 알고 있습니다. 알콜에 약한 효모가 많아서 도수 좀 올라가다 보면 죽거든요. 그런데 예전 기술로는 도수 낮은 프리잔떼를 유통하긴 힘들었으니까, 동네에서 금방 마시는 술로는 괜찮아도 상업성이 떨어지는 게 문제였지요. 현대에도 생탁 유통은 신경 써야 하는 분야니까요. 현대에 프리잔떼를 만들 때는 대신 필터를 씁니다. 원하는 만큼 발효시킨 다음 필터로 효모를 걸러버리지요.

 

 포트와인 같은 강화와인도 단맛이 나는데, 강화와인은 저도수의 와인에 브랜디를 섞은 겁니다. 그러니까 단맛이 나지요. 포트와인은 도수도 있고 단 맛도 있기 때문에 요리에 많이 씁니다. 약간 단 맛이 나는 소스를 만들 때 쓰기 좋습니다.

 

 

 

 

 

20) 나는 후추 그라인더는 아주 좋은 주방용품이라고 생각하고, 모두에게 구매를 권합니다. 시중에 간단한 그라인더가 포함되어 있는 통후추도 팔긴 합니다만, 제대로 된 그라인더를 구매하시는 쪽이 좋습니다. 제대로 된 그라인더는 분쇄도 조절이 되기 때문입니다. 후추는 통후추를 갈아 써야 향이 진하고 좋습니다. 시판 후추가루는 의도적으로 약한 후추향을 낼 필요가 있을 때나 유용합니다.

 

 그런데 소금을 그라인더에 갈아 쓰는 건 내가 딱히 좋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후추는 분쇄해 두면 향이 약해지지만, 소금은 분쇄해둬도 변화가 없기 때문인데요. 소금 그라인더는 딱히 소금을 대량으로 분쇄하는 데 적합하지도 않고, 요리할 때 그라인더로 즉석에서 갈아서 쓸 때의 장점이 전혀 없습니다. 소금을 골고루 뿌리기 어렵게 만들 뿐이지요.

 

 고운 소금은 짠맛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음식에 균일하지 않게 뿌리게 되면 어떤 부분은 너무 짜고, 삼투 현상이 강하게 일어나고, 반대로 어떤 부분은 싱겁게 됩니다. 소금을 균일하게 뿌리려면 꽤 신경 써가면서 뿌려야 하는데, 그라인더를 쓰면 그렇게는 잘 안 되지요.

 

 다만 소금을 균일하게 뿌리지 않아도 되는 요리에 소금을 넣을 때는 적당량을 넣는 게 중요한데, 그라인더를 쓰면 소금을 뿌리는 양을 조절하는 게 편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푼으로 소금을 넣는 것보다 그라인더를 쓰는 게 편할 수 있지요. 작은 구멍이 뚫린 소금통을 쓰는 것보다는 편하게 적당한 양의 소금을 넣기 좋고요.

요리 관련 이런저런 이야기 #1

식이 2021. 11. 17. 00:08 Posted by 해양장미

※ 원래 한식 관련 이야기 6편을 작성하려고 했는데, 쓰다 보니까 점점 한식의 범주를 좀 벗어나는 기분이라 시리즈를 바꿉니다. 한식 관련 이야기에 비해 글이 길어져서 이 시리즈는 20개씩으로 하겠습니다. 이번 1편은 본래 한식 관련 이야기 6편으로 작성하던 거라 한식 주제가 많이 들어가는데, 다음 편부터는 한식 범주를 좀 더 벗어날 수도 있습니다.

 

 

 

 

 

1) 근래 하는 생각 중 하나가, 앞으로 한식도 보다 쉽고 정확한 레시피가 보급되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인덕션 보급률이 높아지고 있고, 중앙부에서 불이 안 나오는데다 과열방지기능도 있어 영 성능이 좋지 못한 신형 가스렌지를 보유한 세대가 늘어나고 있거든요.

 

 쿡탑은 성능으로 치면 업장에서 쓰는 간택기가 좋습니다. 가운데서부터 불이 나오고, 매우 강한 화력을 가지고 있지요. 그렇지만 가정에서 그런 걸 쓰기는 힘듭니다. 청소도 손이 많이 가고. 근래는 청소도 쉽고, 조리용기는 가리지만 최대화력도 높은 인덕션이 트렌드인데요. 인덕션이라는 물건은 일정온도를 유지해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테크니컬한 조리에는 영 좋지 못합니다. 직화불가는 물론 온도를 빨리 떨어뜨리거나, 팬을 기울인 상태로 적당히 가열을 한다거나, 화력조절을 섬세하게 한다거나, 내부 음식물을 강하게 젓고 뒤집는다거나, 바닥이 둥근 용기를 쓰거나 하기가 힘들기 때문인데요.

 

 우리나라 요리는 끓이거나 찌거나 삶거나 하는 게 많아서 인덕션 보급에 유리한 것 같습니다. 에어프라이어가 보급된 것도 인덕션 보급에 영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2) 요리를 할 때 소모되는 연료비는 대략 이소부탄 > 부탄 > 전기 > LPG > LNG입니다. 도시가스(LNG)가 가장 저렴합니다. 인덕션은 똑같은 요리를 해도 연료비가 많이 들어갑니다. 특히 누진을 먹으면 많이 들어가지요. 가정용이라도 메인쿡탑에 사용하는 고화력 인덕션의 전력소모량은 가정용 스탠딩 에어컨을 한참 상회합니다. 오래 된 집에 메인쿡탑으로 인덕션을 놓으려면 차단기 업그레이드하고 전기공사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인덕션은 전력소모를 많이 합니다. 특히 업소용이나 수입 인덕션을 쓰려면 공사가 필수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앞으로 곰탕을 끓이는 가정은 점점 더 줄어들 거라 생각합니다. 사골이나 우족, 꼬리, 잡뼈 등을 끓인 뼈곰탕 계열은 90년대 이후 장기적으로 인기가 줄어드는 추세인데, 쿡탑의 변화 트렌드가 인기 하락을 추가적으로 부추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 도시가스 업체들은 수익이 안정적인 게 장점이었는데, 앞으로는 매출과 이익이 줄어들 확률이 높습니다. 지역난방을 하면서 인덕션이나 하이라이트만 쓰는 가정은 LNG를 전혀 사용하지 않게 됩니다.

 

 

 

 

 

3) 인덕션을 사용하는 분들은 인덕션 전용 용기를 사용하게 되는데, 인덕션에 사용 가능한 스테인리스 용기들 중에는 바깥부분이 페라이트계 스테인리스로 된 것들이 있습니다. 원래 주방용품에 사용하는 스테인리스는 부식에 강한 오스테나이트계인데요. 오스테나이트계 스테인리스는 자성을 띠지 않기 때문에 그것과 알루미늄 등만 사용한 용기는 인덕션에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인덕션에 사용할 수 있는 스테인리스 용기는 이런저런 조치를 취해두는데, 그 중 한 방법이 안쪽은 오스테나이트계 스테인리스로 만들고 바깥쪽은 페라이트계 스테인리스로 만드는 겁니다. 페라이트계 스테인리스는 자성을 띠기 때문에 인덕션에 사용 가능하거든요. 오스테나이트계보다 열전도율이 조금 더 높기도 하고.

 

 그런데 단점이, 페라이트계는 오스테나이트계에 비하면 녹이 잘 습니다. 저렴한 200번대 오스테나이트계 스테인리스도 오래 사용하다 보면 녹이 스는데, 페라이트계는 그보다 녹이 더 잘 습니다. 그러니까 팬/냄비 구매를 할 때 바깥쪽이 자성을 띠는 스테인리스로 되어 있다는 팬/냄비 등은 녹이 슬 수 있다고 생각하고 다뤄야 합니다. 만약 붉은 녹이 슨 걸 확인하면 뭘 사용하건 그냥 녹을 벗겨주면 됩니다. 사포 등을 사용해도 무방. 그러면 스테인리스에 섞인 크롬이 새로운 산화피막을 만들어줄 겁니다.

 

 

 

 

 

 

4) 우리나라 사람들은 소위 불맛을 좋아하는데, 실제 음식을 할 때 순수한 불맛을 내는 건 그리 쉽지 않습니다. 불맛을 제대로 만들려면 음식을 볶을 때 음식물에서 나오는 수용액이 달궈진 기름에 닿아 생기는 유증기에 점화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중식화구급 화력이 아닌 이상 이런 현상을 만드는 건 쉽지 않고요. 프랑스 요리처럼 고도수의 술을 써서 플람베를 하면 보다 만들기 쉽지만, 증류주 풍미가 무조건 배이기 때문에 아무 레시피에나 쓸 수는 없습니다.

 

 대체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불맛이라고 생각하는 걸 내기 위해 음식점에서 주로 쓰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목초액이나 불향 향유고, 다른 하나는 무언가를 한 번 튀긴 기름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 방식이 가장 간편하고, 두 번째 방식은 실제 불맛은 아니지만 잘만 사용하면 결과물이 좋습니다. 예를 들면 파기름을 사용한다거나 탕수육을 튀긴 기름으로 밥을 볶는다거나, 간짜장을 볶는다거나 하는 방식입니다. 불향 향유는 아니라도 각각의 향미유라 할 수 있지요.

 

 별 재료가 없는 중화 볶음밥의 경우, 사실 밥을 잘 볶는 것만으로는 흔히 생각하는 불맛이 살아나기 어렵습니다. 쌀이 고온으로 마이야르와 카라멜라이징 반응이 일어날 경우 생기는 풍미는 잘들 아시는 누룽지 풍미입니다. 밥은 잘 볶아봐야 나오는 풍미가 그쪽이란 말이지요. 별 재료도 안 들어간 볶음밥에서 불맛이 난다면, 그건 대체로 향미유의 영향입니다. 밥 자체를 잘 볶았을 때의 장점은 불맛보다는 특유의 고슬고슬함과 풍부한 느낌 정도일까요.

 

 

 

 

 

 

5) 우리나라는 오븐을 사용하던 문화권이 아닙니다. 가스오븐렌지가 유행하던 시절에도 오븐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가정은 그리 많지 않았지요. 그러다가 근래 갑자기 오븐 보급이 많이 되었는데, 사람들이 오븐을 쓰면서도 그게 오븐이라고 의식을 잘 안합니다. 그렇지만 에어프라이어는 오븐입니다.

 

 오븐이 종류가 여럿 있는데, 오븐 중 컨벡션 오븐은 팬이 달려서 열풍을 적극적으로 대류시키는 방식입니다. 열풍을 만드니까 화력이 좋지요. 그리고 에어프라이어는 컨벡션 오븐의 일종입니다. 크기가 좀 작고 팬이 좀 세게 돌아가는 경향이 있지요.

 

 에어프라이어가 인기를 끌면서 요새는 대용량 오븐형 에어프라이어가 많이 보이는데, 그냥 컨벡션 오븐 아니야? 싶은 것들도 보입니다. 에어프라이어라고 이름 붙여 파는 게 더 잘 팔리니까 에어프라이어라고 네이밍해서 파는 것 같을 정도입니다.

 

 컨벡션 오븐의 장점은 화력이 좋다는 겁니다. 대류가 강하게 일어나니까요. 예열도 시간이 덜 걸리고요. 그렇지만 열풍의 단점도 있습니다. 팬이 돌아가는 오븐은 음식물이 건조하게 구워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촉촉하고 부드럽게는 굽기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베이킹 같은 걸 할 때는 단점이 있습니다. 스팀 기능이 있는 컨벡션 오븐은 그래도 낫습니다만.

 

 

 

 

 

6) 한식 볶음밥은 유감스럽게도 전혀 높은 수준이 못 됩니다. 끔찍하게도 공장제 냉동 볶음밥을 꺼내 대충 볶아 서빙하는 음식점도 많은 게 현실이고요. 볶음밥에 대한 기본개념이 너무 없는 집이 많습니다. 중화요리집도 볶음밥 잘 하는 집은 드물지요.

 

 우리나라에서 맛있는 볶음밥 먹기 힘든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쌀이고요. 두 번째는 밥 짓는 방식입니다. 일단 우리나라 쌀은 차진 자포니카입니다. 수입도 제약되고요. 인디카 좋아하는 사람도 별로 없고. 금세기 들어 쌀이 고급화되면서 점점 차지고 단백질이 적은 쌀이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그냥 백미밥으로 맛있는 한식용 쌀은 볶음밥에 안 어울립니다. 쌀이 차질수록, 부드러울수록, 쌀알이 작을수록 볶음밥이 안 됩니다.

 

 우리나라 쌀 품종 중 볶음밥에 어울리는 쌀은 신동진입니다. 음식점에서 많이 쓰고요. 저렴한 편이라 식비를 아끼려고 사드시는 가정도 있는데, 사실 신동진은 맛이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쌀 품종 중 그냥 백미밥 해 먹으면 제일 맛없는 품종이 신동진일 겁니다. 그 다음은 추청(아키바레)일 거고요. 추청은 옛날에는 맛있는 쌀이었지만 신품종 개발할 때 기본 목표를 ‘추청보다 맛있게’로 삼고 개발하다보니 이제는 추청이 신동진 다음으로 맛없는 쌀이 되어버렸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한정식집에서 추청 쓰는 데가 많다는 건데, 추청 쓴 밥은 어떻게 해도 맛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추청도 볶음밥엔 그리 나쁜 편이 아니지요. 신동진 없으면 오대가 괜찮고, 오대도 없으면 추청도 쓸만한 편에 속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신동진으로 밥 지어도 일반 백미밥 짓듯 밥 지으면 볶음밥에 안 어울립니다. 특히 문제는 압력솥을 사용하는 겁니다. 압력솥 써서 고압조리하면 쌀이 푹 익고, 압력에 밥알끼리 눌려서 서로 붙는 경향이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차지고 부드러워지고요. 요샌 전기솥도 거의 압력솥이다보니 볶음밥에 어울리는 밥이 안 나와요.

 

 볶음밥에 어울리는 밥을 지으려면 쌀을 잘 문대어 깔끔하게 씻고 충분히 불려준 다음 알루미늄 웍에 지으면 됩니다. 세라믹 코팅된 웍이면 됩니다. 웍의 둥근 바닥은 밥을 짓는 동안 쌀알이 잘 대류되도록 도와주고요. 얇고 열전도율이 좋은 알루미늄 웍의 특성상 뜸이 거의 제대로 안 듭니다. 누룽지 안 나오도록 조심해서 만들어야 하고요. 캠핑가서 코펠로 밥지을 때는 누룽지가 많이 생기더라도 잘 익히는 게 중요하지만 볶음밥용 밥은 그렇게 푹 익히지 않아도 됩니다. 약간 설익은 느낌의 엉기지 않는 밥을 지어두면 볶을 때 충분히 볶아 익혀도 됩니다.

 

 

 

 

 

7) 새송이버섯은 계열로 보면 느타리입니다. 원래 이름이 큰느타리버섯인데, 상품명이 새송이가 된 겁니다. 송이하고는 아~무 상관 없고 풍미도 전혀 다릅니다. 상품화된 버섯은 아무 데나 송이 이름 붙여놓아서 이름가지고는 맛을 연상할 수가 없습니다.

 

 새송이는 흔히 저작감으로 먹는 것 같지만, 신선한 걸 최대한 수분을 제거해주면 맛이 진해져서 맛있습니다. 그런데 워낙 수분이 많은 게 버섯이라, 새송이의 수분을 충분히 제거한다는 게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가능한 얇게 슬라이스해서 타지 않게 장시간 익혀줘야 수분이 많이 제거됩니다.

 

 

 

 

 

8) 한식 이야기 3편에서 이야기했던 군산의 특산물 나라즈케는 울외 술지게미절임장아찌입니다. 그런데 울외는 참외의 친척이라 참외처럼 달달합니다. 맛은 있는데, 참외장아찌와 비슷한 계열의 달콤한 맛이라 밥반찬으로는 조금씩 먹게 되는 맛입니다.

 

 그런데 무를 술지게미로 절이는 것도 있습니다. 그것도 나라즈케라고도 합니다. 아예 다른 채소니까 울외절임과 무절임은 맛이 많이 다릅니다. 울외절임 쪽이 비싸지만 무절임 쪽도 다른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다 일반적인 무 간장장아찌와는 맛이 좀 다르니, 술지게미 장아찌를 처음 드시는 분은 무 장아찌를 먼저 드셔보시는 것도 한 방법일 거라 생각합니다.

 

 

 

 

 

9) 똑같은 쌀로 밥을 지었는데 나와 다른 사람이 지은 밥이 맛이 꽤 다른 경험을 한 적이 몇 번 있습니다. 관련하여 한식 이야기 5편에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원인을 여러 모로 생각해본 결과 쌀을 불리고 짓느냐, 불리지 않고 짓느냐에 따른 차이가 가장 클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쌀을 불리면 그 순간부터 미생물이 증식합니다. 쌀 표면에 있으면서 맛에 영향을 주는 미생물이라면 유산균일 겁니다. 실제 쌀뜨물에 설탕과 소금을 넣고 병에 넣은 후 밀폐해두면 유산균이 꽤 증식합니다. 쌀을 불리는 정도로 신맛이 분명하게 느껴질 정도로 유산균이 증식하지는 않겠지만, 아무래도 풍미의 뉘앙스가 변하는 것 같긴 합니다.

 

 쌀을 너무 오래 불리면 미생물이 너무 증식하고, 물을 너무 많이 먹습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맛이 없는 밥이 됩니다. 대조적으로 쌀을 전혀 불리지 않고 바로 밥을 지을 경우, 불려서 지은 밥에 비해 쌀 맛은 분명하지만 풍부함이나 부드러움이 다소 부족한 것 같은 밥이 되기 쉽지 않나 생각합니다.

 

 

 

 

 

10) 쌀 중에 향기쌀이라는 게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많이 시판되는 품종으로는 골든퀸3호가 있지요. 반찰계 품종으로 팝콘 또는 누룽지맛사탕 향 정도로 부를 만한 향을 가지고 있는 품종입니다. 선호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 품종이지요. 밥 지을 때 누룽지를 전혀 안 만들어도 누룽지맛사탕 향이 나는데, 실제 누룽지 향하고는 미묘하게 다릅니다. 대체로 한국인은 그런 냄새에 거부감이 없고, 식욕이 자극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전기솥에 지어도 밥향이 강하고요. 대신 향기가 강하니까 다른 음식의 향과 조화되지 않을 수는 있습니다.

 

 

 

 

 

 

11) 햇반에서도 향이 난다고 느끼시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향기쌀 같은 걸 써서 그런 게 아니고요. 향이 나도록 밥향을 가향하지요. 햇반에 쓰는 쌀은 품질이 좋은 게 아닙니다. 맛이 별로 없기 때문에 가향을 하고, 즉석 도정하여 밥을 짓습니다. 미강유도 조금 넣고요.

 

 유감스럽게도 레토르트밥 시장은 좋은 쌀을 쓴다고 성공하지 않았습니다. 레토르트밥을 먹는 사람들은 대체로 밥맛에 까다롭지 않은 편입니다. 마케팅이 중요한 시장이지요.

 

 

 

 

 

12) 쿡탑의 화구 숫자가 부족할 때, 또는 전기렌지밖에 없어서 직화를 할 수 없을 때 흔히 쓰는 게 부탄가스용 버너입니다. 부탄가스에는 길쭉한 원통형 모양의 일반 부탄과 지름이 보다 크고 위쪽이 둥그스름한 이소부탄이 있는데요. 이소부탄은 부탄의 이성질체로 일반 부탄보다 끓는 점이 10도 정도 낮습니다. 이소부탄 캔은 원래 야외에서 동절기에 쓰라고 나온 거고 더 비쌉니다.

 

 길쭉한 부탄을 쓰는 버너는 흔히 부루스타라고 하는 일체형 버너입니다. 그런데 이소부탄가스캔은 길쭉한 부탄 캔보다 세웠을 때 안정감이 있다 보니 좀 다른 양상으로 발전했지요. 이소부탄가스캔 위에 직접 버너를 결합하거나, 아니면 아예 호스로 결합하는 형태로 제품이 나옵니다. 

 

 부루스타의 장점은 편하다는 겁니다. 구매할 때 가급적 화구의 중앙부에서도 화염이 나오는 걸 구매하는 게 좋고요. 화력이 좋은 걸 골라 사는 게 좋습니다. 그런데 부루스타는 일정 이상 지름이 큰 조리용기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부탄가스가 들어가는 곳 위를 조리용기가 덮으면 안 됩니다. 가스가 과열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잘못하면 폭발합니다.

 

 부탄가스캔은 안에 고압으로 가스가 충전되어 액화된 상태입니다. 부탄이나 프로판은 고압으로 압축하면 액체가 됩니다. 일반적으로 액화된 가스가 기화되면서 나오고, 사용자는 그 기화된 가스를 쓰게 되는데요. 액체가 기체가 될 때는 주변에서 열을 빼앗아갑니다. 그래서 부탄가스는 화기 근처에서 써도 차갑습니다. 겨울철에 부탄가스를 쓰기 어려운 건, 그리고 LPG 차량도 시동이 잘 걸리지 않을 수 있는 건 주변 온도가 차갑기에 상전이를 위해 가져올 열이 없어 액화된 가스가 잘 기화가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스캔의 온도가 올라가면, 이미 캔 안에 고압으로 압축되어있는 가스가 팽창하게 됩니다. 그러면 캔이 내부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폭발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부루스타에 큰 불판, 팬, 냄비를 사용하면 안 되는 거고요.

 

 부탄가스를 이용해 큰 불판, 팬, 냄비를 사용하고 싶을 경우 화구와 가스캔을 호스로 연결하는 타입을 써야 합니다. 대체로 이런 타입은 이소부탄을 사용하도록 되어 있지만, 커넥터를 사용하면 일반 길쭉 부탄을 사용해도 됩니다. 다만 액출에는 신경을 써야 합니다. 액출이 되는 버너는 따로 있습니다. 안 되는 버너로는 액출시키면 안 됩니다.

 

 부루스타를 사용할 때는 부탄가스캔 입구 부분의 홈이 있는 부분이 위로 가도록 연결이 됩니다. 부탄가스를 눕혀 사용할 때는 홈이 있는 부분이 위쪽이어야 내부의 액화가스가 제대로 기화될 수 있습니다. 기화한 가스가 연소되어야 안정적인 불꽃 크기를 유지하고, 완전연소를 할 수 있는데요. 다른 방향으로 부탄가스를 눕히면 액화된 가스가 그대로 나와서 제대로 상전이되지 않은 채로 연소되게 됩니다. 이것을 액출이라고 하는데요. 액출 기능을 지원하지 않는 버너에서 액출하는 건 위험하고요. 토치를 사용할 때 액출방지기능이 없는 토치에서 액출을 해버리면 토치가 화염방사기가 되어버리니 극히 주의해야 합니다.

 

 어처구니없게도 현재 우리나라는 가정용 버너에 대한 법률적 규제가 너무 심해서 중앙부에서 불꽃이 나오는 화구를 쓰고 싶거나, 일반 가정용보다 더 강한 화력의 가스렌지를 원할 경우 업소용 버너를 쓰거나 아니면 휴대용 버너를 써야 합니다. 업소용 버너 설치는 귀찮다보니 보통 가정에서 제대로 요리를 하고 싶어 하는 분들이 어쩔 수 없이 휴대용 버너를 쓰고 있지요. 현실이 그러한데도 보통 불만이 없는 게 우리나라의 이상한 규제문화와 낮은 요리수준을 드러내 줍니다.

 

 

 

 

 

13) 토치는 잘만 쓰면 꽤 좋은 조리도구입니다. 문제는 위험하고 다루기 좀 어렵다는 건데요. 일단 토치의 위험성은 내가 생각하기에는 주방칼하고 비슷합니다. 잘못 다루면 큰 부상을 입기 쉽지만, 제대로 다루면 엄청나게 위험하지는 않습니다.

 

 토치를 다룰 때 가장 중요한 건 절대로 불이 분사되는 방향에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잘못하면 사람을 직화로 구워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의도하지 않은 연소 가능한 물질이 없는지도 확인해야 합니다. 겨울에 언 수도관 녹인다고 토치질하다가 보온재에 착화되는 사고가 가끔 일어납니다.

 

 그리고 토치를 장시간 쓰면 과열되기 쉽습니다. 보통 요리에 쓰는 짧은 토치는 과열에 그리 강하지 않습니다. 토치를 일정시간 이상 쓸 거면 토치를 2개 이상 준비해서, 과열이 될 것 같으면 다른 토치로 바꿔줘야 합니다.

 

 또 중요한 것. 액출방지 기능이 있는 토치를 사세요. 액출방지 기능이 없는 토치는 가스캔이 일정 이상 기울어 액출이 되는 순간 화염방사기가 됩니다. 잘못하면 화상 입거나 불납니다.

 

 한편으로 토치로 직화할 때 음식물은 겉표면만 타는 경우가 많습니다. 토치의 불꽃은 매우 고온이지만, 그 열이 음식물 안쪽까지 전달이 잘 되지는 않습니다.

 

 한식에서 토치를 사용하기 쉬운 요리는 수분이 있는 양념이 포함된 볶음, 또는 수분이 많은 채소 그 자체입니다. 수분이 있는 음식물은 물이 가진 어마어마한 기화열 때문에 토치의 불꽃이 닿아도 잘 타지 않습니다. 대조적으로 수분이 부족한 음식물은 불꽃이 닿자마자 닿은 부분이 탑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부분. 대체로 불꽃이 다 그렇듯 토치 불꽃도 겉불꽃과 속불꽃이 있는데요. 속불꽃이 훨씬 잘 보이고 겉불꽃은 바깥쪽으로 갈수록 잘 안보입니다만, 실제 요리를 할 때는 가능한 겉불꽃 끝 쪽을 사용해야 합니다. 겉불꽃 끝쪽은 눈으로 보기에는 불이 아닌데 실제로는 불일 때가 많고요. 그 부분을 사용해야 하는 주 이유는, 가스에 포함되어있는 부취제 때문입니다.

 

 원래 가스는 메탄(천연)가스건 프로판가스건 부탄가스건 별 냄새가 없습니다. 그런데 아무 냄새가 안 나는 가스는 대형사고가 나기 쉽기 때문에, 일부러 영 좋지 않은 냄새가 나는 물질을 섞습니다. 우리가 가스냄새라고 생각하는 건 이 부취제의 냄새입니다. 토치같이 가스로 직화를 하는 경우 잘못하면 이 부취제 냄새가 음식에 들어가는데요. 그렇게 되면 영 안 좋습니다. 가능한 겉불꽃 끝 쪽으로 구워줘야 부취제 냄새가 음식에 들어가는 불상사를 줄일 수 있고요. 속불꽃이 음식에 닿으면 부취제 냄새가 바로 들어간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가스냄새 나는 음식 드시고 싶으시면 속불꽃 쓰세요.

 

 

 

 

 

14) 나는 허브나 스파이스를 많이 가리는 편은 아닌데,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게 초피(제피)입니다. 못 먹는 정도는 아닌데 화자오(화초. 중국산 초피)를 많이 쓰면 입에 안 맞습니다. 국산 초피를 조금 쓰면 괜찮은데요. 우리나라 초피는 좀 새콤한데 화자오는 별로 안시고 더 맵습니다. 사천(스촨)요리에서 마라의 ‘마’가 초피 계열의 얼얼한 맛을 의미하고, ‘라’는 고추의 매운맛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도 조선시대에 고추가 전래되기 이전에는 남부에서 초피를 이용해 매운 맛을 냈다고 합니다. 고추가 보급된 이후에는 초피 사용이 거의 없어졌지만.

 

위쪽 사진은 산초, 아래쪽 사진은 초피

 산초와 초피는 곧잘 혼동되곤 합니다. 열매 생긴 게 매우 유사하기도 한데, 또 일본어로는 초피를 산초라고 합니다. 일본 발음으로는 산쇼오. 우리나라 산초는 일본어로는 이누잔쇼오(개산초)고요.

 

 우리나라에서 초피는 남부지방에서 자라고, 산초는 더 북쪽에서 자랍니다. 인천지역 야산에서 산초는 흔한 식물입니다. 그렇지만 초피는 없지요. 그리고 생긴 건 유사해도 산초 열매 껍질은 초피와는 달리 아무 맛이 없습니다. 스파이스로 전혀 가치가 없어요. 일본에서 개산초라고 부르는 건 아마 스파이스로 무가치해서 그럴 겁니다. 대신 산초는 씨에서 기름 짜서 그걸 이용하긴 한다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풋열매를 장아찌로는 먹을 수 있다는데, 나는 먹어본 적 없습니다.

 

 

 

 

 

15) 내가 매우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가 고추부각입니다. 만들기는 많이 귀찮고 사먹으면 비싸며 좀 잘못 튀긴 것도 많고, 먹다보면 살이 찌는... 매우 좋지 못한 면이 많은 요리입니다만, 맛은 좋지요. 시판하는 건 보통 설탕을 좀 뿌려놓는데, 나는 태우지만 않으면 설탕이 굳이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요새는 고추부각보다는 김부각이 흔해서 종종 김부각을 사먹고 있습니다만.

 

 경험적으로 풋고추를 키우고 수확하는 건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후 고추가 익기 전에 충해가 많이 생깁니다. 그리고 고추 자체는 꽤 늦게까지 열리는데, 늦게 열린 고추는 잘 익히기가 쉽지 않습니다. 미처 익기 전에 서리가 내리면서 고추나무가 노지에서는 동사해 버리거든요. 고추는 원래 중미 열대지방이 원산이라 추위에 약합니다. 그래서 고추를 키우면 풋고추가 꽤 생기게 됩니다. 익은 고추는 말려서 가루를 내면 되고, 청양고추처럼 매운 고추는 얼렸다가 요리에 쓰면 되는데, 맵지 않은 풋고추 계열은 냉동하면 쓸데가 없고 말려서 뭘 할 것도 없으니 부각으로 만드는 게 보존성을 높이는 방법입니다. 다만 너무 매운 고추로 부각을 만들면 진짜로 맵습니다. 입맛에 따라서는 매운 부각이 맞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실제 키우다보면 풋고추는 생각보다 너무 매워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시판하는 건 별로 매운 게 없지만요.

 

 부각을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이야기하자면, 찹쌀풀을 발라 말린 다음 튀기는 겁니다. 마른 상태에서는 보존성이 좋습니다. 제대로 튀기지 않으면 엄청나게 딱딱하지만, 기름에 튀기면 부풀어 올라서 과자같이 됩니다. 튀길 때 약간이라도 타거나 재료가 쓴 맛이 있는 경우, 설탕을 좀 뿌려줘야 단맛이 쓴맛을 잡아줍니다. 그렇지만 고추부각을 적당히 잘 튀겨냈을 경우 약간의 소금만으로 충분합니다.

 

 

 

 

 

16) 우리나라에서 만두는 예전에는 일정 위도 이상 지역에서 먹던 음식입니다. 남부에서는 원래 만두를 거의 안 먹었었습니다. 이는 만두의 보존성 때문인데요. 현대에 사는 우리는 냉동만두에 익숙하지만, 냉동고가 보급된 역사가 그리 길지가 않습니다.

 

 가래떡 같은 건 썰어서 말려두면 남부에서도 동절기에 보존이 잘 됩니다. 그런데 소에 수분이 많아 부패가 쉬운 만두를 겨울에 보존하기엔 남부의 날씨는 애매했습니다. 잠시 따뜻해지면 부패할 수 있었지요. 대조적으로 확실히 겨울 내내 추운 한반도 중부나 이북 지역은 만두를 만들어두면 겨우내 보존해서 먹을 수 있었고요. 가정에서 그때그때 만들어먹기엔 만두는 너무 손이 많이 가는 음식입니다. 만들 때 대량으로 만들어야 효율이 있지요. 아니면 상업적인 만두집이 있거나.

 

 그리고 떡은 쌀로 만든 음식이지만 (밀떡은 논외) 만두는 밀가루를 사용한 음식입니다. 전쟁 이전 우리나라에는 쌀도 밀도 귀했지만, 상대적으로 남부에 쌀이 더 많았고 북부에는 밀이 더 많았습니다. 이는 이모작의 영향입니다. 남부는 쌀 - 보리 - 쌀 이모작이 보다 잘 되는 편이고, 밀 대신 보리를 키웠습니다. 그런데 북부로 갈수록 벼농사가 어렵고, 이모작은 더더욱 어렵습니다. 아예 북부로 가면 지역에 따라 벼농사를 포기하고 밀농사를 짓기도 합니다.

 

 물론 이제는 냉동고가 보급된 지도 오래고, 남부 지역에서도 만두는 일상적인 음식이 되었습니다. 전쟁때 남부에 가서 자리 잡은 사람들도 많고, 상업적인 만두의 발달도 빨랐지요. 다만 상대적으로 변화가 더딘 명절음식에는 영향이 남아있습니다. 설에 수도권에서는 떡만두국을 먹는데, 남부 지역에서는 떡만두국을 먹는 전통이 없습니다.

 

 

 

 

 

 

17) 김치찌개의 주류는 대략 두 종류입니다. 돼지고기 김치찌개와 참치캔 김치찌개. 각자 선호가 다르실 텐데요. 양측의 장단점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면.

 

 돼지고기 김치찌개는 일단 돼지고기의 살코기 부분에서 얻을 수 있는 풍미는 대단히 제한적입니다. 돈육은 별로 맛이 진한 고기가 아니거든요. 쇠고기로 고깃국을 끓이면 진한 풍미가 나오지만, 돼지고기로 곰탕을 끓이는 일은 없지요. 별 맛이 안 나오기 때문입니다.

 

 양질의 라드는 꽤 향기롭고 품질이 좋긴 합니다. 그런데 국내에서 파는 돼지고기 중 라드 품질이 좋은 경우는 그리 흔하지 않지요. 사견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라드 풍미에 매우 둔감합니다.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드물다고 해도 되겠지요. 라드 풍미가 좋은 돼지고기 브랜드들은 가격대비 인기가 없어서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질이 좋은 라드는 사실 김치찌개에 쓸 때 별로 장점이 있을 법한 것은 아닙니다.

 

 돼지고기 김치찌개의 장점은 포화지방을 제법 함유한 돼지기름이 가미된다는 점. 그리고 삶아진 돼지고기를 건져먹을 수 있다는 겁니다. 삶은 돼지고기는 맛있으니까 장점이 있지요. 그런데 흔히 김치찌개용으로 파는 깍뚝썰기한 돼지 등심이나 다릿살을 그냥 넣어봐야 별로 김치찌개 자체의 맛이 좋아지지는 않습니다.

 

 찌개 자체의 맛을 올려주는 쪽은 참치캔 쪽입니다. 국내에서 파는 참치캔 중 99%는 가다랑어입니다. 가다랑어는 좋은 국물 요리 재료지요. 참치캔 아니라 그냥 가다랑어 살코기로 찌개를 끓여도 맛있게 끓여집니다. 가격대비건 구하는 난이도건 참치캔을 쓰는 게 훨씬 낫긴 합니다만. 사실 가다랑어는 회로 먹기엔 맛이 없는 편이라 횟감용 가다랑어도 좀 익혀주는 게 맛있어집니다.

 

 가다랑어보다 훨씬 비싼 참다랑어로 찌개를 끓이면 맛있느냐 하면, 내 경험으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참다랑어로 김치찌개를 끓여보신 분들이 얼마나 계실지 모르겠는데, 정말 기대보다 별로 맛이 없습니다. 참다랑어 살코기의 우아하고 고급진 맛은 김치찌개국물용으로는 내 생각에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나는 찌개용으로는 가다랑어를 추천합니다. 황다랑어도 나쁘지는 않지만.

 

 그런데 참치캔을 넣으면 별로 건져먹을 건 없지요. 참치캔 큰 거 하나 다 넣어봐야 그다지 건져먹을 게 없습니다. 그러니까 사실 돼지고기하고 참치캔은 역할이 다릅니다. 참치캔이 입에 안맞는 사람이 아니라면 나는 둘 다 넣는 쪽을 권장합니다. 그러면 너무 기름져진다고 싫어하는 분들도 있는데, 기름이 적은 고기를 넣는다거나 참치캔 기름을 빼고 넣는다거나 하는 식으로 기름은 얼마든지 조절 가능합니다.

 

 그리고 돼지고기김치찌개를 끓일 때 사실 고기를 그냥 넣으면 당연히 별 맛이 없습니다. 맛있게 끓이고 싶다면 돼지고기를 잘 구워서 넣으세요. 돼지고기는 마이야르가 잘 일어나도록 구우면 맛있습니다.

 

 

 

 

 

18) 떡갈비는 본래 소갈비살을 다져 만들던 겁니다. 다진 다음 다시 소갈비에 붙여서 굽기도 했었지요. 사람에 따라서는 그것만 떡갈비로 인정하기도 합니다. 다만 실제 그런 떡갈비를 먹어보면 맛있긴 한데, 굳이 현대에 갈비를 그렇게 먹어야 하는지 의문스럽긴 합니다.

 

 옛날엔 육우가 없었습니다. 일을 하던 소를 잡아먹었지요. 일소는 당연히 육우보다 고기가 질깁니다. 마블링도 적고요. 그러니까 우리나라 옛날 쇠고기 조리법이 다져 굽거나 삶고 끓이는 방식인 겁니다. 옛날에는 그렇게 해먹어야했지요.

 

 그런데 현대 축산업이 키워낸 쇠고기는 그렇게까지 질기지 않습니다. 갈비살처럼 질기지도 않고 맛있는 부위를 굳이 다질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만들려면 보다 질긴 부위가 어울리지요. 저렴하면서도 맛이 진한 부위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게 현대적인 떡갈비 레시피입니다. 유사한 요리인 햄버그 스테이크도 마찬가지고요.

 

 시중의 떡갈비는 대략 쇠고기 떡갈비, 돼지고기 떡갈비, 그리고 둘을 섞은 믹스 떡갈비가 있는데요. 믹스 떡갈비가 제일 일반적입니다. 두 고기의 장점이 잘 합쳐져 있지요. 적당한 가격에 식감과 맛이 모두 좋습니다. 물론 쇠고기 떡갈비도 맛있고, 좀처럼 실패하지 않습니다.

 

 쇠고기 떡갈비와 쇠고기로 만든 햄버거 패티는 쇠고기를 갈아 만든다는 것과 크기, 두께 등에서 별 차이가 없는 편입니다. 그런데 맛없는 떡갈비를 만나긴 어려운 것과 대조적으로 맛없는 햄버거 패티를 만나는 건 매우 쉽다고 생각합니다. 둘의 결정적인 차이는 간장과 그 밖의 양념에 있습니다. 보통 떡갈비가 간장과 양념이 훨씬 많이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갈은 쇠고기에 있기 쉬운 부정적인 풍미를 잘 잡아주고, 간장이 구워진 좋은 풍미가 납니다.

 

 

 

 

 

 

19) 숯불에 구운 고기를 좋아하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그런데 숯불구이가 왜 맛있는지, 어떤 장단점을 가지는지에 대해 제대로 언급이 잘 안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숯불에서 원적외선이 나와 음식물을 속까지 잘 익혀주기 때문에 맛있다... 같은 말이 예전부터 많이 나돌았는데, 전혀 신경쓸 이유가 없는 이상한 소리입니다. 적외선 조사기는 물리치료기입니다. 요리에 쓸 수준의 열이 안 나와요.

 

 간단히 이야기해서 숯불을 쓰는 이유는 음식물을 직화로 굽기 위함입니다. 숯불을 써서 석쇠 같은 데 음식물을 구우면, 팬에 굽는 것과는 달리 음식물의 표면이 쉽게 건조됩니다. 팬에 음식물을 구우면 음식물과 팬이 접촉하고 있는 부분의 수분이 물리적으로 달아날 데가 별로 없기 때문에 아무래도 건조되는 효율이 낮아집니다. 그렇지만 석쇠에 구우면 증기가 날아가기 쉽지요.

 

 물이 가진 기화열은 매우 크기 때문에 촉촉한 표면은 좀처럼 잘 구워지지 않습니다. 복사열만 생각한다면 석쇠에 굽는 쪽이 단시간에 효율적으로 구울 수 있다는 겁니다. 이 차이는 간장양념된 고기처럼 타기 쉽고, 수분은 많은 음식물을 구울 때 더 커집니다.

 

 그럼 왜 숯을 쓰느냐 하면, 일단 가스는 부취제가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가스냄새가 배서 음식냄새가 나빠질 수 있습니다. 대조적으로 숯은 질이 좋은 숯을 쓰면, 숯냄새가 배는 걸 사람들이 보통 싫어하지 않는 편입니다. 내 생각에는 질이 좋고 섬세한 음식물을 구울 때가 아니면 숯냄새가 배는 건 괜찮은 편이지요. 숯불구이 닭바베큐 같은 경우 일부러 숯냄새가 배도록 굽는데, 닭에는 그런 게 잘 어울리기도 합니다. 다만 질이 나쁜 숯은 냄새가 나쁘기 때문에, 차라리 가스를 쓰는 게 낫다 싶고요. 쉽게 이야기하자면 직화할 때 좋은 숯 > 가스 > 나쁜 숯 순서로 좋습니다.

 

 그리고 숯이나 가스 외의 연료는 별로 쓰기 좋지 않습니다. 참나무나 장미과 과일나무 장작의 경우, 장작에 뭔가 구워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일단 불이 컨트롤하기 힘들게 크게 일어납니다. 그리고 장작인 상태로 유지되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습니다. 잠시 활활 타다가 금방 숯이 되지요. 그래서 실제 그런 장작으로 음식 구울 때는 일단 태워서 숯이 되게 만든 후, 숯이 된 이후에 음식물을 굽곤 합니다. 장작 상태로 음식 굽는 건 커다란 바베큐 같은 요리나 구울 수 있고요.

 

 소나무 같은 장작은 논외. 그것들은 송진이 타는데요. 화력은 세고 오래 안 가고 연기 많이 나고 송진 타는 냄새 상당히 많이 나서, 일부러 그런 냄새 밴 요리 만들 거 아니면 못씁니다.

 

 액상연료의 경우, 일단 석유 계열은 대부분 냄새가 나서 영 안 좋고요. 액상파라핀 같은 건 냄새도 독성도 없으니까 쓸 수는 있겠지만 인화성도 높고, 효율적으로 사용할 만한 장비가 나와 있지 않습니다.

 

 알콜같은 경우 사용할 수는 있는데, 직화구이를 하기에는 그리 적합하지 못합니다. 비싸고, 열량이 낮고, 잘 보이지도 않는 불꽃이 활활 일거든요. 알콜스토브로 냄비 같은 데 물을 끓일 수는 있지만, 그 불에 무언가를 직화로 굽는 건 숯에 비해 딱히 좋을 게 없습니다.

 

 

 

 

20) 우리나라 음식은 다른나라 음식 대비 ‘단짠’에서는 좀 거리가 있는 편입니다. 음식이 전반적으로 감칠맛이 있는 편인데다 매운 음식도 많으니까, 달고 짠 맛에 의존할 필요가 없거든요.

 

 사람이 느낄 수 있는 맛은 단맛, 짠맛, 쓴맛, 신맛, 감칠맛, 지방맛이지요. 여기에 향기, 압각, 저작감, 질감, 그리고 매운맛 등의 요소가 합쳐져 우리가 먹는 음식의 풍미가 결정됩니다.

 

 이 중 쓴맛과 신맛은 기호성이 강한 맛입니다. 예를 들어 설탕이나 시럽 등을 넣지 않은 커피의 맛은 주로 쓴맛과 신맛이지요. 그래서 대중적인 음식은 그 외의 4가지 맛과 향기, 저작감, 매운맛 등이 강조됩니다. 우리나라 음식은 맵고 감칠맛이 강한 편이니까 어택이 강한 맛을 구성하는 데 유리한 면이 있습니다. 적당히 달고 짜고 맵고 감칠맛 강하고 지방맛 있으면 인기 있는 맛이 되기 쉽지요.

 

 대조적으로 일본 음식은 우리나라 음식보다 덜 맵기 때문인지, 다른 요소가 더 강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날씨가 우리나라보다 덥고 습한 경향도 있다 보니, 전반적으로 음식이 우리나라 음식보다 달고 짜고 감칠맛도 더 강한 편입니다. 식초도 우리나라 음식보다 적극적으로 쓰고요.

 

 서양 요리는 아시아 요리보다 감칠맛이나 매운맛 의존도가 낮은 편입니다. 그나마 남유럽 요리는 매운맛이나 감칠맛이 상대적으로 더 있는 편인데, 프랑스 요리 같은 건 그쪽으로는 승부를 못 합니다. 그런데 그러니까 프랑스 요리는 다른 분야가 발달했다고 생각합니다. 복합성이 있고, 허브나 스파이스를 섬세하게 사용하는 경향이 있지요.

 

 요리 맛이 섬세해지려면 맛의 골조를 이루는 맛의 요소를 가늘게 만드는 게 좋습니다. 단-짠-감칠-지방맛이 두드러질수록 맛은 선이 굵어지고, 박력은 생기지만 섬세함은 줄어듭니다. 근래 우리나라 요리가 지향하는 방향은 아무래도 쉽고 강하고 대중적인 방향입니다. 이게 꼭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경제력에 비해서는 고급스러운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식용 포도 품종 정리 Ver 1.1

식이 2021. 11. 10. 11:34 Posted by 해양장미

(2021/11/12 델라웨어 껍질 관련 내용 수정. Ver 1.1)

 

2021년 기준 우리나라에서 유통 중인 식용 포도 품종 정리입니다. 품종명이 명시되지 않는 수입 포도의 경우 기재하지 않고, 기억이 애매한 건 명시하지 않습니다. 참고로 청포도 = 백포도입니다.

 

 

 

 

 

*) 캠벨

 

: 가장 일반적인 품종. 90년대만 해도 포도 하면 90% 이상 이 품종이었습니다. 적포도로 씨가 있고, 껍질이 분리됩니다. 계열로는 유럽종 포도에 속한다고 합니다.

 

 브릭스는 14~17정도. 잘 익어도 산도가 높고, 향기가 좋습니다. 다른 품종만 한참 먹다가 질 좋은 캠벨을 먹어보면, 캠벨이 참 맛있는 품종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됩니다. 신맛을 충분히 느끼려면 포도알을 씹어 먹어야 하는데, 씨 때문에 씹어 먹기 편한 품종은 아닙니다. 일반적인 식용 방법은 역시나 포도알을 통째로 삼키는 것일 텐데, 그래서 어릴 때 먹는 방법을 익히는 데 세월이 좀 걸리는 편입니다.

 

 생산량이 많고 산도도 있는데다 향이 좋기 때문에 와인 양조용으로도 활용되지만, 양조용 적포도로 쓰기엔 당도가 낮고 과실부가 너무 커서 (알이 커서) 보당 없이 괜찮을 걸 만들려면 고난이도입니다. 그래도 캠벨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도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 거봉

 

: 알이 굵고 즙이 많은 적포도 품종. 당도가 높은 품종으로 18~20브릭스 정도로 올라갑니다. 예전에는 캠벨 다음으로 흔하게 보이는 편이었는데 근래에는 예전만큼 많이 보이지는 않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씨가 있고, 껍질이 분리되어 캠벨과 비슷한 방식으로 먹을 수 있는데 그렇게 먹으면 알이 커서 목이 좀 메이는 느낌도 듭니다. 씹어 먹으면 캠벨보다 달고, 덜 십니다. 그래서 거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예전에는 꽤 있었습니다. 요새는 품종이 많아져서 다소 마이너해지는 느낌입니다.

 

 

 

 

 

*) 머스캣 베일리 A

 

: 부를 때는 통칭 머루포도. 글자로 쓸 때는 영어 약어로 MBA라고 표기할 때가 많습니다. 2000년대 후반쯤 시장에 등장한 후 큰 인기를 끌어 근래에는 캠벨과 비슷한 수준으로 흔해졌습니다. 20브릭스 정도가 나오는 매우 달콤한 품종으로 산도는 낮고, 높은 당도 덕에 식용/양조 겸용 품종으로 분류됩니다.

 

 껍질이 분리되는 적포도로 씨가 있고, 캠벨과 비슷한 방식으로 먹습니다. 포도 한 송이가 캠벨보다 크고, 알 크기는 켐벨과 유사합니다. 보통 새콤하고 향기가 좋은 걸 선호하는 사람은 캠벨을, 달콤하고 시지 않은 걸 좋아하는 사람은 MBA를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MBA가 캠벨보다 현저하게 비쌌으나 근래엔 가격이 많이 비슷해졌습니다. 나는 캠벨과 MBA 모두 좋아합니다.

 

 

 

 

 

*) 델라웨어

 

 붉은 색이 감도는 적포도. 유통되는 포도는 씨가 없습니다. 껍질이 분리되는 타입인지는 불확실합니다. 양조용 포도처럼 송이와 알이 작고, 18~20브릭스 정도로 단맛이 강합니다. 조생종으로 다른 포도보다 수확이 이릅니다. 여름과일과 함께 먹을 수 있는 포도입니다. 8월에 땀을 많이 흘리고 기운이 없을 때 먹으면 좋습니다.

 

 

 

 

 

*) 블랙사파이어

 

 공식 명칭은 스위트 사파이어. 그렇지만 블랙사파이어로 통칭합니다. 껍질이 분리되지 않는 적포도. 씨가 없습니다. 알이 가지처럼 길쭉합니다. 18~22 브릭스 정도 나오는 품종으로 매우 단맛이 강하고, 외형 덕인지 씹히는 느낌도 독특합니다.

 

 수입산이 주로 유통되고 있습니다만 국내에서도 재배를 합니다. 아직 출하되는 양이 많지는 않습니다.

 

 

 

 

 

*) 샤인 머스캣 

 

 근래 대유행 중인 청포도. 껍질이 분리되지 않습니다. 알이 크고, 브릭스는 18 정도로 측정됩니다.

 

 씹어 먹는 포도 중에는 엄청나게 단 편은 아닙니다. 특유의 향을 가지고 있는데, 흔히 망고향이라 불립니다. 주관적으로 이름과는 달리 그다지 머스캣 향으로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인기를 얻은 초기에는 매우 비쌌지만 생산이 늘면서 가격이 크게 떨어지고 있습니다. 캠벨 등과는 달리 저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재배면적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어텀 크리스피

 

 껍질이 분리되지 않고 씨가 없는 청포도. 아직 국내재배가 없는 것으로 보이고, 수입으로만 들어옵니다. 내가 먹어본 씨 없고 껍질 분리 안되는 식용 포도 중에는 이게 제일 맛있습니다. 18~19 브릭스 정도 나오는 포도고, 크리스피라는 이름답게 아삭합니다. 사과맛 난다고 하는 사람이 많고 애플포도같은 별칭으로 유통되기도 합니다. 

(21/10/14 친수성 관련 문단 업데이트. Ver 1.1)

 

 

 요리를 제대로 해봐야겠다는 의욕을 가진 분들이 많이 구매하는 것 중 하나가 코팅되지 않은 스테인리스 프라이팬입니다. 그리고는 많은 경우 고뇌와 시행착오에 빠지지요. 분명히 예열을 잘 하고 썼는데, 무참하게 계란프라이가 붙어서 망치다가.. 그러다 또 어느 날은 잘 되고 그러거든요.

 

 본문은 코팅되지 않은 조리도구를 사용하는 데 필요한, '시즈닝'에 대한 대략적인 개념과 방법에 대해 다루게 될 겁니다. 코팅되지 않은 조리도구에 무언가를 구우려면, 그리고 스테인리스가 아닌 철제(연철/강철/주철) 조리도구를 다루려면 시즈닝을 이해해야 합니다. 본문은 검증이 부족한 내용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는 걸 미리 이야기해 둡니다.

 

 본래 시즈닝이라는 건 스테인리스나 코팅 제품이 나오기 이전, 옛날에 철제 조리도구를 관리하다 보니 생겨난 것입니다. 철은 공기중에 노출시키면 녹이 스니까, 옛날 기술로는 기름을 상시 발라두는 게 가장 기본적인 관리방법이었는데요. 철로 된 냄비나 솥, 팬 등에 계속 기름을 바르고 가열하고 하다 보면 기름이 굳고 검게 변해서 완전히 코팅이 됩니다. 이걸 우리나라 말로는 길들인다고 하고, 영어로는 시즈닝이라고 합니다. 전통적인 가마솥을 떠올려 보세요. 표면이 검은 색이지요? 그런데 주철도 철이라 원래는 철색입니다. 검은 건 시즈닝의 색깔이지요.

 

 유용하게도 시즈닝된 표면은 녹을 방지하는 것 외에도 음식이 잘 달라붙지 않게 합니다. 그렇지만 현대 우리나라의 가정집 주방에서 그걸 체험해보는 사람은 소수입니다. 연철/강철/무쇠로 된 코팅되지 않은 팬 가진 분 별로 없잖아요?

 

 스테인리스 팬 이야기로 돌아가서, 스테인리스 팬을 아무리 잘 예열해도 음식을 그냥 구우려고 하면 달라붙는 게 당연합니다. 원래 가열된 금속 표면에 무언가를 구우려고 하면 달라붙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스테인리스 프라이팬에도 계란프라이를 할 수 있지요. 금속 표면이 아니게 만들면 됩니다. 시즈닝을 즉석에서 만들어서 거기에 프라이를 하는 개념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시즈닝이 아니면, 금속 표면에는 당연히 음식이 달라붙는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오일을 발라 구워 만드는 시즈닝은 오일이 중합된 천연 고분자 화합물입니다. 다른 이름으로 부르면 폴리머지요. 시즈닝 작업이라는 건 금속제 팬, 냄비, 솥 등에 오일을 바르고 가열해서 폴리머로 중합시키는 겁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일종의 플라스틱을 만드는 거지요. 어차피 우리가 평소에 사용하는 플라스틱 제품들도 석유로 만듭니다. 식용유로도 천연 플라스틱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프라이팬 코팅하는 데 쓰는 테플론도 합성 고분자 화합물입니다.

 

 오일은 그냥 놔둬도 폴리머화되서 굳기는 합니다. 오래 된 식용유가 말라 굳는 걸 직접 경험해보신 분들도 있을거고, 기름을 용매로 쓰는 유화도 천천히 굳습니다. 다만 공기 중에서 오일이 굳어 폴리머화되는데는 시간이 매우 오래 걸립니다. 가열을 해 주면 훨씬 빨라지고요.

 

 스테인리스 팬에 무언가를 구우려고 할 때, 일단 필요한 작업은 오일막을 가열해서 중합시키는 겁니다. 완전히 고체화된 폴리머까지 안 만들어도 됩니다. 이건 스테인리스 팬을 많이 사용해보신 분들은 잘 아실 텐데, 기름이 중합되기 시작하면 아직 액체지만 기름이 퍼지는 모양이 변합니다. 그렇게 만든 이후 음식을 구우면 달라붙지 않지요.

 

 이 과정을 쉽게 하려면 요지는 두 가지입니다. 일단 음식이 달라붙지 않는데 필요한 시즈닝 두께는 전혀 두꺼울 필요가 없습니다. 원래 철팬 시즈닝 할 때도 기름은 가능한 얇게 발라서 굽고 그걸 여러 번 반복하는데요. 스테인리스 팬 쓸 때도 마찬가지로 가능한 얇게 바르면 됩니다. 소량의 기름을 가열중인 팬 위에 따른 후 키친타올로 골고루 발라주면서 닦아내면 되는 수준입니다. 얇을수록 폴리머화가 빨리 잘 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생각해야 하는 게 사용하는 기름의 성질입니다. 기름에는 건성유와 반건성유, 그리고 불건성유가 있는데 건성유일수록 불포화지방산 비율이 높고 잘 굳습니다. 반대로 불건성유는 폴리머화가 잘 안 됩니다.

 

 기름이 건조되는 성질은 요오드화값(옥소값)으로 표기합니다. 요오드화값이 높으면 건성유고, 낮으면 불건성유입니다. 각각의 식용유들을 대략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건성유 : 요오드화값 130 이상

- 들기름, 아마씨유, 양귀비유, 해바라기씨유, 호두기름

 

*) 반건성유 : 요오드화값 100~130

- 콩기름, 포도씨유, 옥수수유, 참기름, 카놀라유

 

*) 불건성유 : 요오드화값 100 이하

- 피마자유, 올리브유, 팜유, 땅콩기름, 동백기름, 아보카도 오일, 우지, 돈지, 오리기름, 버터

 

 들기름은 우리나라에서 구하기 쉬운 오일 중 요오드화값이 제일 높은 편입니다. 그렇지만 향이 있기 때문에 시즈닝에는 잘 쓰지 않습니다. 볶아서 압착하지 않고 그냥 생으로 압착한 들기름은 그나마 향이 적습니다만, 잘 팔지 않고요. 그 다음으로 요오드화값이 높은 오일은 아마씨유고, 철팬 시즈닝 작업에는 이 아마씨유가 주로 쓰이고 있습니다. 아마씨유는 대형마트에 가면 살 수 있고요.

 

 위의 분류에서는 나뉘어 있긴 한데, 해바라기씨유와 콩기름, 포도씨유의 요오드화값은 별 차이가 없습니다. 대략 건성유와 반건성유 사이에 걸쳐져 있는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아마씨유를 구하기 어려우면 그냥 아무 데서나 파는 콩기름이나 해바라기씨유로 시즈닝을 시도해 보는 게 비교적 잘 될 겁니다.

 

 카놀라유는 반건성유 중에서도 요오드화값이 좀 낮은 편입니다. 그래서인지 압연한 철팬 같은 데 제대로 시즈닝 먹이려고 하면 잘 먹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작정하고 하려고 하면 안 되고, 시간을 들여서 세월아 네월아 바르다 보면 시즈닝이 조금씩 되는 그런 느낌인데요. 그렇지만 카놀라유로도 익숙해지면 스테인리스 팬에서 계란프라이를 하는 정도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카놀라유로 잘 안 되면 보다 요오드화값이 높은 기름을 사용해 보세요.

 

 한편 유감스럽게도 미국에서 코팅되지 않은 주물 제품들의 평가를 보면, 올리브유로 녹 관리를 해도 잘 안된다는 불평들이 보입니다. 그런데 올리브유는 불건성유라 당연히 시즈닝이 잘 안됩니다. 실제 시골에서 짠 들기름 같은 거 스크류캡 병에 담아서 가져오면, 캡 안쪽에 기름 묻지 않았나 잘 닦아줘야 하고요. 그래도 종종 열어주지 않으면 스크류캡 안쪽에 묻은 들기름이 중합되어서 붙어버려 아예 안 열리는 불상사가 생기기도 하는데요. 올리브유는 대조적이라 할 만큼 경화되어 굳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 올리브유 뚜껑 안 열려서 고생해 보신 분 있나요?

 

 그 외 스테인리스 팬에 기름을 두르지 않고 고기 등을 구우면, 처음에는 달라붙어서 뗄 수가 없는데 한참 굽다 보면 그럭저럭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나는 아마도 고기 표면으로 나오는 기름이 중합되어 그렇다고 생각하는데, 대부분의 음식물은 기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지 뭐든 굽다 보면 처음에는 붙어도 한참 구우면 그럭저럭 뗄 수 있게 됩니다. 물론 계란 같은 걸 그렇게 하면 모양이 처참하게 망가지니까 그러면 안 되고요.

 

 또한 이 현상은 금속 표면의 친수성하고도 관련이 있을 걸로 알고 있습니다. 무언가를 구우려고 할 때, 수분이 많은 음식이 팬 표면에 접촉될수록 잘 달라붙습니다. 코팅팬도 기름을 둘러주는 쪽이 덜 달라붙지요. 그런데 음식을 굽다 보면 표면에 수분이 줄어들기 때문에, 덜 달라붙게 되기도 할 겁니다.

 

 스테인리스 표면에 폴리머가 완전히 고체화되어 굳어버리면, 일단은 노랗고 단단한 물질이 됩니다. 그냥 두고 써도 되고, 철팬에 하듯 시즈닝을 점점 만들어가도 되는데요. 일단 보기가 안 좋으니까 보통은 세척을 합니다. 찐득하게 덜 굳은 상태면 그냥 세척하는 게 좋고요. 사실 시즈닝 해서 쓸거면 스테인리스 팬이 철팬 대비 장점이 전혀 없기도 하고요. 그런데 고체로 굳은 폴리머는 주방세제로는 거의 녹지 않고, 부드러운 수세미로는 떼어낼 수가 없습니다. 충분히 단단해지기 전이라면 폴란드 스크럽 수세미로 제거 가능하고요. 조금 기스를 낼 각오라면 스테인리스 수세미를 써도 됩니다. 다만 초록수세미는 금지. 초록수세미로 긁으면 심하게 스크래치가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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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리용기의 소재 Ver. 2.12

식이 2021. 10. 12. 00:41 Posted by 해양장미

(내용을 보완하고 수정하는 중입니다. 다소의 내용 변경 있습니다. 21/08/26)

(오류 수정 및 보완 완료. Ver 2.0입니다. 21/09/30)

(Ver 2.11 스테인리스, 알루미늄, 테플론 내용 보완 및 수정. 21/10/12)

(오타 수정. 22/07/22)

 

 조리용기는 소재와 형상에 의해 그 특성이 결정됩니다. 일단은 소재에 대한 이해가 먼저고, 그 다음은 형상에 대한 이해를 하면 됩니다. 그 다음에는 디자인이 마음에 드는 걸로, 필요한 사이즈를, 주머니 사정과 주방 수납공간에 맞춰 구비하면 됩니다. 본문에서는 가장 중요한 각 소재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이하 미흡하거나 그릇된 내용이 있을 수 있으므로, 감안하고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향후 버전업을 하면서 수정해 나갈 생각입니다.

 

 

 

 

#) 스테인리스 스틸

 

 속칭 스텐 또는 스뎅. 주관적으로 모든 조리용기 소재 중 가장 유용한 전천후 소재입니다. 강철과 크롬의 합금으로 녹에 강하고 익숙한 금속광택이 오래 보존됩니다. 스테인리스는 현대 기술의 승리로 흔해서 그렇지 옛날에 있었으면 귀금속 취급받았을 겁니다.

 

 스테인리스는 종류에 따라 자성을 가지기도 하고 가지지 않기도 하는데, 조리용기나 커트러리를 만드는 데 주로 쓰이는 오스테나이트계 스테인리스는 부식에는 강하지만 자성을 띠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오스테나이트계 스테인리스만 사용한 제품은 인덕션에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래 시판되는 스테인리스 용기는 대체로 인덕션에 사용할 수 있는데, 인덕션 사용을 위해 자성을 띠는 페라이트계 스테인리스가 들어가거나 아니면 내부에 강철이나 주철을 넣는 경우도 있고, 제조과정에서 용융시킨 철을 분사하여 자성을 띠도록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방식인지 확인하는 게 좋긴 한데, 바닥 소재가 페라이트계인 경우 오스테나이트계에 비해 부식에 약하기 때문입니다. 

 

 스테인리스의, 특히 오스테나이트계의 열전도율은 강철이나 연철, 주철에 비해 현저히 떨어집니다. 스테인리스제 프라이팬이나 편수냄비들을 보면, 그냥 손잡이가 스테인리스로 되어 있는 것들이 많은데요. 불위에 놓고 한참 조리해도 손잡이 부분은 잘 안 뜨거워집니다. 비금속 소재 정도는 아니라도 보기보다 스테인리스는 열전도율이 그다지 높지 않습니다.

 

 열전도율이 낮기 때문에, 스테인리스 팬이나 냄비는 일정 가격 이상에서는 내부에 열전도성이 좋은 알루미늄이 들어가게 됩니다. 표면은 스테인리스니까 알루미늄이 1겹 들어가면 3중, 3겹 들어가면 5중이 됩니다. 일부 고급품의 경우 알루미늄보다 열 전도성이 좋은 구리가 들어가기도 하는데, 열전도가 개선되는 대신 무게와 가격이 높아집니다. 그냥 3중과 통3중의 차이는 옆면까지 다중 처리가 되어있느냐의 차이입니다. 다만 매우 드물게 고가이면서도 전체가 페라이트계 스테인리스로 된 팬/냄비도 있긴 한데, 페라이트계는 그나마 오스테나이트계보다는 열전도율이 높긴 합니다. 

 

 스테인리스를 사용할 때 염두에 둬야 하는 건 다음과 같습니다. 일단 스테인리스도 철이라 무겁습니다. 아주 얇은 스테인리스 제품은 제법 가볍긴 하지만, 그런 건 내부에 알루미늄 같은 게 없는 거라 전도성이 너무 낮아서 실사용을 해 보면 열이 정말 안 퍼져서 사용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리고 스테인리스도 녹은 습니다. 또한 표면에 코팅이 되지 않은 스테인리스는 음식할 때 음식물이 잘 달라붙습니다. 그리고 오스테나이트계 스테인리스는 철 치고는 꽤 무릅니다. 제법 기스가 잘 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마지막으로 처음 구매한 스테인리스 제품에는 대체로 연마제가 남아있습니다.

 

 연마제는 주방세제로는 제거가 안 됩니다. 기름으로 닦아내야 합니다. 키친타올에 식용유를 묻혀서 닦으면 검은 게 묻어나오는데, 더 이상 묻어나오지 않을 때까지 닦으면 됩니다. 연마제가 몸에 얼마나 나쁜지는 딱히 규명되지 않았으나, 잘 닦아주고 쓰는 게 기분상으로도 좋습니다. 보다 잘 닦아내려면 가열해서 식초로 닦아주거나 하면 됩니다.

 

 오스테나이트계 스테인리스가 녹에 강하긴 하지만 부식이 아예 안 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시고 짠 걸 오래 담아두지는 않는 게 좋습니다. 예를 들어 김치찌개 같은 걸 스테인리스에 오래 담아둘 경우, 아무리 스테인리스라도 미미하게 부식될 수 있습니다. 실제 오래 둔 경우 눈에 보이는 손상이 생기기도 합니다. 스테인리스가 녹이 슬지 않는 원리는 합금에 포함된 크롬이 먼저 산화되면서 튼튼한 은빛 피막을 만드는 것에 있는데, 이 피막은 건조한 공기중에서는 충분히 스테인리스를 지켜내지만 염분이나 산과 수분이 있는 조건에서까지 충분한 방호력을 지니지는 못합니다. 특히 저렴한 스테인리스 제품은 부식에 더 취약한 경향이 있습니다. 

 

 스테인리스 조리용기의 최대 장점은 튼튼함과 범용성에 있습니다. 무쇠나 강철 용기처럼 마구 달궈서 쓸 수 있고, 시즈닝 없이 쓰니까 마음 내키는 대로 박박 닦아 쓸 수 있습니다. 강철 수세미로 문질러서 닦을 때도 그나마 피해가 없는 편이고, 가스렌지에서만 쓴다고 가정하면 온도변화에도 강합니다. 다만 초록 수세미는 대지 않아야 합니다. 초록 수세미에 포함된 연마제는 스테인리스에 사정없이 기스를 낼 수 있습니다.

 

 특히 시거나 짠 것, 양념이 충분한 것 등을 볶을 때, 고기를 굽고 와인으로 글레이징을 할 때 스테인리스 팬이나 웍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우수합니다. 내부에 알루미늄이 들어간 제품들은 열전도율도 준수하고 스테인리스 표면은 화학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강하기 때문입니다. 

 

 스테인리스 프라이팬 중 소테팬은 그것 하나만 있어도 거의 모든 요리를 다 할 수 있습니다. 조리용기를 딱 하나만 써야 한다면, 나는 스테인리스 소테팬을 고르겠습니다. 다만 스테인리스 프라이팬으로 계란프라이를 하려면 시행착오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스테인리스 팬은 음식이 잘 달라붙습니다.

 

 한편으로 스테인리스 팬은 코팅팬보다는 분명 고화력에 강하고, 열용량도 높아서 화력이 필요한 요리를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만, 고출력 인덕션으로 고화력을 사용하는 건 재고해보셔야 합니다. 열효율 차이 때문에 유사한 스펙에서 인덕션의 최대화력은 가스렌지보다 훨씬 높은데, 스테인리스 제품은 대체로 서로 다른 금속을 압착해 붙여놓은 거라 각 금속마다 서로 열팽창률이 다릅니다. 그래서 고화력으로 급하게 달구는 행위를 반복할 경우, 팽창과 수축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잘 안보이게 뒤틀리게 됩니다. 뒤틀리더라도 가스렌지에서 사용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인덕션같은 전기렌지는 밑면이 인덕션 표면에 완전히 접촉해야만 제 화력을 받을 수 있는 구조라서 뒤틀릴 경우 제대로 사용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이런 문제를 고려하고 사용하시는 게 좋습니다.

 

 

#) 알루미늄

 

 속칭 양은입니다. 본래 양은은 구리 + 아연 + 니켈 합금인데, 조리용기에서 양은이라 하는 건 진짜 양은이 아니라 그냥 알루미늄입니다. 

 

 알루미늄은 가볍고 열전도성이 좋습니다. 게다가 저렴하기도 하지요.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조리용기 소재 중 열전도성이 가장 높은 건 구리고, 그 다음은 알루미늄입니다. 양은냄비로 끓인 라면이 맛있는 이유는, 라면은 강한 열로 끓일수록 맛있기 때문입니다.

 

 시중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알루미늄 냄비는 노란 게 있고 은색인 게 있습니다. 그렇지만 둘이 다른 금속인 건 아닙니다. 노란 제품은 그저 그렇게 색이 들도록 아노다이징(양극산화피막) 처리를 했을 뿐입니다. 놋쇠(황동)와 색이 비슷하게 만든 것이지요. 예전에는 황동으로 조리용기를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고 압니다. 그런데 근래는 황동은 너무 비싸고, 잘 만들지 않게 되었고, 노란색으로 처리를 한 알루미늄이 그 자리를 대체하게 된 것이지요.

 

 알루미늄은 이온화 경향이 매우 높기 때문에, 산화되지 않은 알루미늄 표면은 자연상태에서 장시간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산화된 알루미늄 표면은 여러 장점이 있습니다. 일단 산화피막을 형성하고 나면 내부로 녹이 더 잘 안습니다. 스테인리스 스틸에 섞인 크롬도 그런 성질이 있는데, 알루미늄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알루미늄 산화표면의 경도는 이론적으로 매우 많이 높습니다. 산화된 알루미늄은 다름 아닌 알루미나, 즉 커런덤 = 보석명 사파이어이기 때문입니다. 농담같지만 우리가 보는 모든 알루미늄 냄비 표면은 사파이어로 되어 있습니다. 아주아주 얇은.

 

 시판하는 알루미늄 제품들은 의도적인 피막처리를 합니다. 이를 아노다이징(양극산화)이라고 하는데요. 그냥 자연적으로도 알루미늄 표면에 산화피막은 생기지만, 일부러 그걸 더 고르고 두껍고 보기 좋게 만드는 겁니다. 자연적인 알루미늄 산화피막 두께는 10나노미터가 좀 넘는 수준으로 압니다. 그렇지만 일반적인 아노다이징 처리를 하면 5~8마이크로미터 수준의 산화피막을 만들 수 있습니다. 보다 두꺼운 아노다이징 처리를 하는 방식도 있는데, 하드 아노다이징(경질 양극산화)이라고 구분해 부릅니다. 30~100마이크로미터 수준의 피막을 형성할 수 있지요. 다만 일반적인 아노다이징 제품이 다양한 컬러 처리를 할 수 있는 반면, 하드 아노다이징은 알루미늄 종류에 따라 녹갈색에서 흑색에 가까운 색깔로 피막 색이 제한됩니다.

 

 피막의 이론적인 경도와는 무관하게, 실제 알루미늄 조리도구의 표면은 그리 강하지 않습니다. 순수한 긁음에는 매우 강하다고 봐야 할 테지만, 실제 물리적인 대미지는 순수하게 긁는 방식으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가장 두꺼운 하드 아노다이징이라도 피막 두께는 0.1mm에 불과합니다. 커런덤은 취성이 있으니까 충격을 받으면 깨지고요. 팬이나 냄비는 가열해서 쓰게 되니까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게 되기도 하고요. 물론 아노다이징 피막이 손상되더라도 자연적인 피막이 생기니까 실사용에 별 문제는 없습니다만, 자연피막은 예쁘게 안생깁니다. 좀 수상하게 생겼지요. 그래도 보기보다 쓰는 것 자체에는 별 문제가 없긴 합니다.

 

 한편으로 알루미늄은 산에 매우 약합니다. 그러니까 산성인 요리를 알루미늄 조리용기에 오래 조리하면 안 됩니다. 예를 들어 알루미늄 냄비에는 김치찌개를 끓이면 안 되고, 생김치나 김치찌개를 보존하는 건 더더욱 안 됩니다.

 

 코팅이 되지 않은 (아노다이징은 코팅이 아닙니다) 알루미늄 팬은 오일 파스타를 하는 데는 최고의 조리도구입니다. 스테인리스나 세라믹 코팅팬 같은 데 조리하면 알루미늄 팬에 하는 것만큼 맛있게 나오지 않습니다. 레스토랑에서도 오일 파스타는 알루미늄 팬에 합니다. 팬을 굳이 사기 뭐한 분들은 흔하고 저렴한 알루미늄 냄비에 하시면 됩니다. 그렇지만 알루미늄 팬에 토마토 파스타를 조리하지는 않습니다. 토마토 수준의 산으로도 알루미늄 팬은 손상되며, 알루미늄 성분이 용출되기 때문입니다. 알루미늄 성분은 가급적 먹지 않는 게 좋습니다. 몸에 나쁘다는 게 일반론입니다. 알루미늄 냄비에 끓인 라면도 얼른 먹고 냄비는 바로 세척하는 게 좋습니다. 바로 세척하는 게 귀찮다면 최소한 내용물은 다 버리고 물로 헹군 다음 맹물을 받아놓기라도 해야 합니다. 산과 염분은 녹의 주적입니다. 아노다이징 피막도 산과 염분 앞에서 알루미늄을 지켜주는 건 무리입니다. 알루미늄 냄비나 팬은 제대로 녹슬면 버린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도저히 사용할 만한 비주얼이 아니게 되기 때문입니다. 관리를 잘 하지 않는 이상 알루미늄 냄비는 소모품입니다.

 

 가정용 에스프레소 머신인 모카포트 계열도 가장 전통적인 건 알루미늄으로 만듭니다.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야 잘 추출되고, 맛있게 나옵니다. 또한 원체 현대에는 저렴하고 가벼운 소재다보니, 팩으로 포장된 찌개나 전골 같은 것에 간이 조리용기가 들어있고 통째로 끓여먹을 수 있게 나오는 것도 알루미늄 소재입니다. 알루미늄 냄비답게 잘 끓고, 맛있게 끓여지지요. 요새는 인덕션이 많아져서인지 그런 구성 제품도 예전보단 덜 보입니다만.

 

 알루미늄 팬은 별다른 처리가 되지 않은 건 당연히 인덕션에는 사용이 불가합니다. 인덕션의 주된 단점 중 하나지요. 알루미늄 조리도구를 자유롭게 사용하고 싶으면 최소한 가스렌지는 아니라도 하이라이트는 있어야 합니다.

 

 추가로 후술하겠지만 저렴하고 가벼운 코팅 프라이팬이나 웍은 대체로 코팅 내부가 별다른 처리 없는 알루미늄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 건 저렴하지만 약한 불로 써도 열이 잘 전달되고 조리가 잘 됩니다. 인덕션에 쓸 수 없지만 가스렌지에서 쓰기는 매우 좋습니다. 가벼워서 다루기 좋고요. 인덕션에서 작동되는 조리도구들은 무거운 게 많기 때문에, 가벼운 조리도구를 좋아하면 인덕션을 피하는 게 좋습니다.

 

 다만 요새 나오는 알루미늄 제품 중에는 바닥면에 용융된 철 입자를 뿌림으로 자성을 띠게 만든 제품들이 있습니다. 그런 제품들은 인덕션에 사용 가능한데, 아무래도 가격은 올라갑니다. 

 

 한편으로 모두들 아시다시피 쿠킹호일도 알루미늄입니다. 알루미늄의 특성을 이해한다면 조리에 쓸 수 있지요. 호일을 접어서 냄비로 쓸 수도 있고, 호일을 열전도체로 이용해 원하는 부위를 가열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방열을 시킬 수도 있지요. 해동을 시킬 때 이용할 수도 있고요. 참고로 호일의 어느 면이 음식에 닿는지는 상관없습니다.

 

 알루미늄 팬이나 냄비는 불을 가하지 않더라도 좋은 열전도체입니다. 그러니까 무언가를 해동할 때 알루미늄 냄비에 담아두면 더 빠르게 해동됩니다. 쿠킹호일로 싸서 알루미늄 냄비에 담아두면 좀 더 빠르게 해동되고요. 얼음 틀에서 얼음이 꽝꽝 얼어 잘 빠지지 않으면, 알루미늄 냄비나 팬을 뒤집어 그 위에 얼음 틀을 잠시 놓아둔 후 꺼내면 쉽게 꺼낼 수 있습니다.

 

 

 

 

#) 도기

 

 뚝배기의 소재는 도기입니다. 일본 요리에 쓰는 냄비 중에도 도기 냄비가 있고요. 금속 소재 대비 매우 낮은 열전도성, 두꺼운 두께, 전통적인 경우 치밀하지 않은 표면 조직을 가지고 있지요.

 

 두껍고 열전도성이 낮기 때문에 뚝배기에 끓인 후 서빙한 찌개는 빨리 식지 않습니다. 용기가 열을 오래 머금고 있기 때문입니다. 탄성이 부족하고, 열전도성이 낮은 소재이기 때문에 차가운 상태의 도기용기를 갑자기 센 불에 가열하거나 하면 안 됩니다. 그릇이 깨져버릴 수 있습니다.

 

 옛날에 만든 뚝배기들은 표면 조직이 치밀하지 못해 세척시 주방세제를 사용하지 않는 게 원칙이었습니다. 그러나 근래 만든 뚝배기들 중에는 표면 조직이 치밀한 것들이 많고, 그런 건 세제로 설거지해도 됩니다. 구매할 때 확인하고 구매하면 됩니다. 확인을 못했으면 밀가루나 베이킹소다로 세척하세요. 요새 만드는 것도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드는 것들은 세제 사용하면 안 됩니다. 

 

 도기용기는 당연히 인덕션에는 사용할 수 없고, 더 나아가 하이라이트에도 사용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도자기는 바닥을 평평하기 만들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가마에서 굽는 도자기 특성상, 바닥면에는 유약 처리가 되지 않습니다. 바닥면의 크기를 줄여서 유약이 발린 부분을 늘리는 게 일반적인 도자기 굽는 방법이지요. 뚝배기에 끓인 요리 좋아하시는 분들은 가스렌지를 사용하시는 게 좋습니다. 아니면 오븐을 써도 됩니다. 그래도 요새는 전기렌지를 많이 사용하다 보니 하이라이트에 사용가능한 바닥이 평평한 뚝배기가 나오기는 합니다.

 

 한편으로 도기용기는 금속 용기와는 달리 전자렌지에서 사용 가능합니다. 그래도 전자렌지용으로 쓸 거면 전자렌지용으로 나온 제품을 쓰는 게 좋습니다.

 

 

 

 

#) 철

 

 전통적으로 주로 쓰던 코팅 없는 주물제품들은 이제는 많이 사용하지 않지만, 여전히 시판되기는 합니다. 가정용으로는 잘 사용하지는 않지만 업장에서는 그래도 쓰는 곳이 있고, 오븐을 본격적으로 이용하시는 분들은 무쇠 제품을 곧잘 쓰지요.

 

 무쇠는 흔히 열을 오래 머금는다는 인식이나 속설이 있습니다만, 실제로는 스테인리스 스틸보다 열전도율이 훨씬 높습니다. 알루미늄정도는 아니고요. 대략 보통 주철의 열전도율이 스테인리스 스틸보다 3배 정도 높습니다. 알루미늄은 주철보다 4배 이상 높고요. 구리는 알루미늄의 1.5배 이상 높고요. 열전도율이 높다는 건 잘 달궈지고 잘 식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을 오래 머금는다는 인식이 있는 이유는, 보통 무쇠 조리용기가 두껍고 무거우니까 달궜을 때 열용량이 높아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보통 주철 조리도구는 매우 고화력을 필요로 하는 경우에 좋습니다. 스테이크라거나, 사워도우 빵이라거나. 고깃집 불판으로도 쓰고요. 열용량 덕에 그렇기도 한데, 진짜 고화력에 사용하려면 단일 소재를 사용해야 하기도 합니다. 서로 다른 소재를 눌러 붙이거나 입히거나 한 건 각 소재마다 다른 열팽창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진짜 고화력에는 사용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팬이나 냄비 망가집니다.

 

 무쇠 조리도구는 별다른 코팅이 된 제품이 아닌 이상 기름을 발라 구워 '시즈닝'을 해서 씁니다. 철팬 시즈닝은 기름을 구워서 중합된 물질을 만들어서 코팅재로 사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전통적인 방식이지요. 무쇠주물은 주조로 만들었기 때문에 표면이 밀도가 높거나 아주 고르지는 않습니다. 그 대신 시즈닝을 잘 먹는 편이고, 시즈닝이 잘 된 상태여야 녹이 슬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시즈닝은 음식이 잘 달라붙지 않는 성질도 가지고 있습니다.

 

 시즈닝이 된 무쇠 조리도구의 표면은 중합된 기름 성분이 있으며, 미량의 철 성분이 용출됩니다. 그래서 무쇠 조리도구에 조리한 음식은 미미하게나마 특유의 풍미가 있으며, 미량의 철분을 섭취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철분 부족을 방지할 수 있다고 하지요.

 

 

 

 무쇠 외에 연강(Mild Carbonsteel)이나 연철(Wrought Iron)로도 팬, 웍 등을 만듭니다. 코팅되지 않은 강철팬은 서구나 중국에서는 흔한 조리용기지만, 우리나라 가정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 강철의 특성은 주철과 어느 정도 유사하지만 저탄소강(연강)의 경우 주철보다 열전도율이 미미하게 좋고, 고탄소강은 주철보다 열전도율이 떨어집니다. 연철은 연강이나 무쇠보다도 열전도율이 약간 더 높고요. 

 

 주조로 만드는 무쇠제품과는 달리 강철이나 연철제 팬은 열간단조를 하거나 압연 이후 커팅을 하는 공정을 사용하게 됩니다. 그래서 무쇠 제품에 비해 모양이 깔끔하고, 상대적으로 얇고 가볍고, 표면이 치밀합니다. 그러니까 표면밀도가 낮고 두껍고 무거운 무쇠 제품과는 제법 다른 특성을 가지게 됩니다. 무쇠 제품은 시즈닝을 잘 먹고, 대체로 반영구적인 시즈닝을 형성시켜서 사용하는데요. 강철이나 연철제 팬은 표면이 보다 치밀하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시즈닝을 먹지 않고, 보다 가벼운 시즈닝을 만들어서 사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무쇠팬보다 가볍다고는 하지만 강철이나 연철 팬도 우리나라 주방에서 흔히 사용하는 코팅 알루미늄 팬과 비교하면 꽤 무겁습니다. 스테인리스 팬과 비교해도 손이 더 가고요. 그렇지만 사용해보면 우수한 성능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스테인리스나 법랑 및 세라믹코팅 대비 코팅이 되지 않은 철제 팬이나 웍의 대표적인 단점은 산에 매우 취약하다는 겁니다. 토마토 수준이라도 산성 소스같은 걸 볶으면 시즈닝이 크게 손상됩니다. 그리고 관리가 전혀 되지 않을 경우 제대로 부식이 될 수도 있습니다. 녹이 슬면 녹을 벗겨내고 다시 시즈닝을 해줘야 합니다.

 

 

 

 

#) 구리

 

 통상적인 조리용기로 사용하는 소재 중 가장 열전도율이 높은 건 구리입니다. 은을 사용하면 구리보다 열전도율이 높겠지만, 은은 너무 비싸서인지 색깔이 쉽게 변해서인지 조리용기 소재로는 거의 사용되고 있지 않습니다. 만들 수야 있고 시판하는 물건도 있긴 합니다만, 순은 프라이팬은 하나에 수백 만 원은 됩니다.

 

 구리는 알루미늄보다도 1.5배 이상 열전도율이 높고, 색깔도 아름다운 소재입니다만 단점은 녹입니다. 구리의 녹은 독성이 있기로 유명한 녹청입니다. 다행히 구리는 이온화 경향이 수소보다 낮아서 녹이 잘 스는 금속은 아닙니다만, 일단 슬면 답이 안 나오는데다 음식물은 금속에 녹을 만드는 주범인 산과 염분과 수분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스테인리스 스틸이나 알루미늄은 사실 구리보다 녹이 잘 습니다만, 사용에 용이한 녹을 형성하는 금속이라 조리용기로 쓸 만한 겁니다. 그런데 구리는 그냥 녹이 슬면 안 됩니다. 순수한 구리 팬이나 구리 냄비 등을 사용할 경우, 녹이 아예 슬지 않도록 철저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그래서 구리 조리도구는 내부에 다른 금속을 입힌 게 많습니다. 주석이 가장 전통적이고, 현대에 나오는 건 스테인리스 스틸을 입히기도 합니다. 스테인리스보다는 주석의 열전도율이 훨씬 높기 때문에 주석을 입힌 쪽이 열조절하기가 좋은데, 문제는 주석이 고열에 약하다는 겁니다. 주석의 녹는점은 겨우 섭씨 231.93도입니다. 팬 제대로 달구거나 하면 주석이 녹아버린다는 거지요. 그래서 주석 입힌 구리팬은 고온 조리에는 쓰기 어렵습니다. 스테인리스 스틸을 입히면 열전도율이 낮아지고요.

 

 구리팬은 보통 섬세한 조리에 적합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열전도율이 높긴 하지만 스테이크처럼 호쾌한 요리를 하기엔 팬도 비싸고, 주석 입힌 팬은 잘못하면 주석이 녹아버립니다. 대신 온도변화가 가장 빠르기 때문에 온도조절을 섬세하거나 빠르게 하는 조리에 어울린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관리할 수 있다면 호쾌하게 요리해도 됩니다. 중국에서는 코팅하지 않은 구리팬을 그런 식으로 쓰지요.

 

 주석 입힌 구리팬은 서구에서는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주석을 새로 입혀주는 가게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주석을 입혀주는 가게가 없기 때문에, 주석이 벗겨진 구리팬은 답이 안 나오게 됩니다. 주석은 워낙 잘 녹기 때문에 직접 할 수도 있다고는 합니다만... 구리팬 애호가는 연습을 하는 것도 한 방법이긴 하겠습니다.

 

 유기는 구리합금으로 만든 기물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생산하는 유기는 대체로 구리가 78%, 주석이 22% 들어간 청동입니다. 가끔 구리 함량이 더 높은 물건도 있습니다. 흔히 방짜유기라는 표현을 쓰는데, 청동 단조 기물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방짜 = 단조입니다.

 

 유기는 식기로 주로 쓰지만 불판 같은 조리도구도 만드는데, 유감스럽게도 구리합금은 순수한 구리에 비해 열전도율이 크게 떨어집니다. 특히 청동의 열전도율은 구리합금 중에도 심하게 낮은 편이라, 강철이나 주철보다 열전도율이 못합니다. 순수한 주석의 열전도율은 강철이나 주철보다 높은데, 구리와 주석을 합금하면 이상하게 열전도율이 낮아지는 것으로 측정실험결과가 나와 있습니다. 황동의 경우 구리보다는 많이 낮지만 그래도 준수한 (연철보다 높고 알루미늄보다 낮은) 열전도율을 가지는데, 우리나라 유기 중 황동제를 찾는 건 어렵습니다. 대조적으로 황동 팬은 중국 등지에서는 쓰기 때문에, 중국에서 직구를 하면 구할 수 있습니다. 한국어로 이야기하면 구리와 청동, 황동이 혼동될 수 있는데, 영어 단어로는 확연하게 구분됩니다. 구리는 Copper, 청동은 Bronze, 황동은 Brass입니다.

 

 청동도 순수한 구리와 마찬가지로 녹청이 습니다. 유기 관리하기 어렵다는 건 한 번쯤 들어보신 분들이 많을 겁니다. 실제 청동은 그저 놋쇠 색이고 우리가 봐 온 유기 색이 청동 색입니다만, 청동이라는 이름이 붙은 건 녹이 슬면 우리가 잘 아는 녹색 녹이 되기 때문입니다.

 

 별다른 처리를 하지 않은 구리 조리도구는 당연히 인덕션에서는 사용이 안 됩니다.

 

 

 

 

#) 플루오린화 탄소수지 (불소수지, 테플론)

 

 테플론은 잘 알려진 물질 중 마찰력이 가장 낮은 편입니다. 물질이 잘 달라붙지 않지요. 그래서 거의 모든 코팅 프라이팬 표면은 테플론으로 덮여 있습니다. 특별한 소재를 주로 쓴 것처럼 광고하는 거의 모든 코팅 프라이팬들이 사실은 테플론으로 코팅이 되어 있지요. 테플론 외에 사용되고 있는 건 세라믹입니다. 세라믹 계열은 테플론에 비해 몸에 나쁘지 않다고 인식되어서 사용 중입니다만, 세라믹 코팅의 달라붙지 않는 성능은 테플론만 못합니다. 물리적인 긁힘에도 테플론이 세라믹보다 강하고요.

 

 테플론 코팅 프라이팬을 처음 개발해 판매한 브랜드는 테팔입니다. Tefal의 Tef는 테플론을, Al은 알루미늄을 의미합니다. 이후 이 방식을 아주 많은 브랜드에서 만들고 있지요. 거의 모든 가정에서 사용하고 있을 거고, 익숙하니까 별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을테지만, 논코팅팬을 여러 종류 사용하다 써보면 분명한 특성이 있습니다. 보통 저렴한 코팅팬은 알루미늄 팬이고, 그래서 가벼우며 열전도성이 좋은 편입니다. 그렇지만 요새는 인덕션을 많이 사용하는 만큼 스테인리스 스틸이 들어간 코팅팬도 많은데, 그러면 아무래도 무거워지고 열전도율은 낮아집니다. 대체로 아랫면에 동그란 철이 들어갑니다. 대신 두꺼워지니까 열용량이 늘어나서 특성이 달라집니다.

 

 테플론 코팅 프라이팬은 고가로 갈수록 물리적인 긁힘에는 강해집니다. 저렴한 건 약하고요. 그러니까 비싼 걸 사면 보통 더 오래 쓸 수 있지요. 그런데 테플론은 본래 가진 물질 특성이 고열에 약합니다. 섭씨 200~300도 정도에서 분해되기 시작하고, 360도 정도면 완전히 녹으면서 유독가스를 내뿜습니다. 그래서 코팅팬에는 고열조리를 하면 안 되고, 소금기가 있는 건 가급적 조리하지 않아야 합니다. 소금 알갱이는 구우면 온도가 엄청나게 올라갑니다. 닿은 부분의 코팅이 녹아버려요. 그러니까 코팅팬에는 조리시간이 짧은 요리를 해야 하고, 가급적 강불을 쓰지 않는 게 좋습니다. 강불을 써야 하거나 조리시간이 긴 경우 스테인리스 팬이나 철팬이 좋습니다. 스테인리스 팬이나 철팬 쓰는 게 힘들면 세라믹 코팅이 그나마 낫고요. 특히 저렴이 테플론 코팅팬은 코팅은 약한데 내부는 열전도율 높은 알루미늄이라 온도가 쉽게 올라갑니다. 잘 다루면 저렴하고 좋은 팬이 되는데, 특성 이해 못 하고 잘못 다루면 순식간에 망가집니다.

 

 또한 테플론은 오일에도 약합니다. 조리 후 프라이팬에 오일을 둔 채 방치하면, 오일이 테플론 입자 사이에 스며들어 팬을 망칩니다. 코팅팬은 물리적으로 박박 닦는 것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조리 후 오일을 방치하지 않아야 합니다. 테플론 입자는 그리 치밀하지 않습니다. 이따금 물을 부어서 끓여주면 좀 깔끔해집니다. 

 

 급격한 온도변화는 테플론 코팅팬에 금기입니다. 갑자기 센불로 가열하는 것도 물론 안 좋지만, 그보다도 달궈진 팬에 물을 붓거나 하는 걸 피해야 합니다. 강하게 달궈서 계란 프라이를 하는 것도 물론 안 좋습니다.

 

 대체로 테플론 코팅팬은 높이가 낮은 프라이팬입니다만, 테플론을 전문으로 다루는 브랜드의 경우 소테팬이나 밀크팬, 웍 같은 제품에도 테플론 코팅을 해놓습니다. 테플론 코팅과 세라믹 코팅은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각 특성을 이해하고 구매하고 사용하시는 게 좋습니다.

 

 한편으로 테플론이 몸에 나쁘다는 말이 많습니다. 일단 논란거리가 되었던 건 테플론을 중합할 때 쓰던 PFOA라는 물질인데, 이게 몸에 나쁘다는 말이 많아지자 미국에서 듀폰사가 사용금지를 당했고 요새는 안 쓴다고 보면 됩니다. 테플론을 제조할 때 PFOA를 꼭 써야 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요새 프라이팬에는 PFOA가 들어간 테플론은 잘 없습니다. 다만 테플론 코팅의 수명은 한정적이며, 음식물이 달라붙기 시작하면 코팅이 나간 거니까 더 사용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코팅팬은 소모품입니다.

 

 

 

 

#) 법랑

 

 법랑은 금속 위에 유리질 유약을 발라 소성한 것을 의미합니다. 보통은 철 위에 법랑을 소성합니다. 법랑은 철기의 방청방식 중 하나이기도 한 동시에, 순수한 도자기로는 견고하게 만들기 어려운 얇은 형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물론 기술 좋게 만든 아주 얇은 백자나 본차이나도 있습니다만 법랑과는 세세한 형상이나 느낌이 다릅니다. 그리고 법랑은 내부가 금속이기 때문에 조리용기로도 많이 쓰입니다.

 

 법랑의 장점은 일단 예쁘다는 겁니다. 그리고 화학적인 오염, 즉 산과 염분에는 스테인리스보다도 강합니다. 김치찌개를 냄비에 계속 담아두겠다고 한다면, 법랑냄비나 유리냄비를 사용하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보통 얇고 가벼운 편입니다. 내부는 철이지만 얇게 만들기 때문에 가벼워집니다. 

 

 법랑 제품은 대체로 색이 화려하고 광택이 납니다. 그런 느낌의 조리용기는 법랑 외에는 만들기 어렵습니다. 도자기처럼 아름답지만 도자기에 비하면 열전도도 잘 됩니다. 어떤 법랑 제품은 무쇠 제품이라고 마케팅 포인트를 잡고 일부러 좀 듬직한 디자인으로 만들지만, 어쨌든 법랑은 법랑입니다. 단조나 압연한 강철이나 연철 위에 법랑을 만들면 얇고 섬세하고, 무쇠주물 위에 법랑을 만들면 묵직하고 듬직하고. 그렇게 되는 것이지요.

 

 법랑의 단점은 물리적인 충격과 온도변화에 취약하며, 법랑철기의 경우 일단 한 부분이라도 미세하게라도 파손이 되면 내부가 부식될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법랑은 유약이 철을 감싸서 철의 부식을 보호하는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온도변화에 취약한 이유는 철과 유리질 유약의 열팽창계수가 다른데, 유리질 유약은 변형이 심할 경우 금이 가기 때문이고요. 그래서 법랑 제품은 조심조심 써야 합니다.

 

 법랑의 유약 표면은 충분히 튼튼하지 못하기 때문에, 법랑 제품은 물리적으로 강하게 설거지하면 안 됩니다. 철수세미 금지, 스푼으로 긁는 것 금지입니다. 약한 옷감 쓴 예쁘고 고급진 옷 함부로 세게 빨면 안 되듯, 예쁜 법랑도 마찬가지입니다.

 

 보통 철 위에 법랑을 입히기 때문에 법랑 제품은 바닥만 평평하면 인덕션에 대체로 사용 가능합니다.

 

 

 

 

#) 세라믹

 

 도기도 법랑도 세라믹의 일종입니다만, 조리용기에는 그 외 다른 방식으로 금속 위에 세라믹을 코팅하기도 합니다. 고온으로 녹인 미세한 세라믹 입자를 분사한다거나, 좀 더 화학적인 방식을 사용한다거나. 그렇게 세라믹을 입히면 법랑처럼 광택이 나지는 않는, 금속에 무언가가 입혀진 조리용기가 됩니다. 기술이 필요한 방식이지만 수요가 많다 보니 꽤 흔하지요. 냄비나 웍을 주로 만들지만 프라이팬도 만듭니다. 세라믹 코팅은 테플론 코팅에 비해서는 음식이 더 달라붙습니다만, 테플론에 비해 몸에는 덜 나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고온으로 가열하는 데는 테플론보다 강합니다. 태생이 세라믹이니까요.

 

 스테인리스 제품에 비해 세라믹 제품은 보통 가볍고, 얇고, 음식이 잘 달라붙지 않습니다. 세라믹 코팅은 테플론보다는 더 달라붙지만 스테인리스 표면에 비하면 그냥 안 붙는다고 봐야 합니다. 게다가 광물질 특성상 산이나 염분에도 강한 편입니다. 코팅 표면만 멀쩡하다면 산이나 염분에는 스테인리스보다 강합니다.

 

 문제는 모든 코팅이 그렇듯 쓰다 보면 벗겨지고, 세척도 약하게 해야 한다는 겁니다. 물리적인 긁힘에는 테플론보다도 약하기 때문에, 잘 관리해가면서 사용해줘야 합니다. 또한 법랑처럼 강한 불로 갑자기 가열하는 데도 약합니다. 금속과 세라믹 성분의 열팽창계수가 크게 차이나니까 어쩔 수 없습니다. 그나마 세라믹 제품은 녹만 나지 않으면 코팅이 벗겨져도 보기 안 좋고 달라붙을 뿐, 테플론처럼 버리는 게 나을 것 같은 수준으로 몸에 나쁠 건 없습니다만 벗겨진 세라믹 코팅 냄비나 팬은 경험적으로 별로 좋은 조리도구라 하긴 어렵습니다. 

 

 일반적인 가정집에서는 냄비는 이 타입을, 프라이팬은 테플론 코팅을 가장 많이 씁니다. 세라믹 냄비는 어쨌든 보통 가볍고 쓰기가 편하거든요. 낡으면 버리고 또 새로 사는 게 일반적이고요. 

 

 세라믹 제품의 내부는 대체로 알루미늄입니다. 그래서 가열하면 온도가 잘 올라갑니다. 코팅된 표면은 코팅되지 않은 표면에 비해서는 음식에 열을 잘 전달해주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순수하게 알루미늄만으로 된 건 가볍고, 좀 무거운 건 내부에 철이나 스테인리스가 들어가곤 합니다. 인덕션에 사용 가능한 제품들 중에는 철이 들어간 게 많습니다.

 

 

 

#) 유리

 

 내열유리는 화학적으로 안정되어 있으며 경도도 높고 내부가 보인다는 점에서 냄비의 소재로 쓰입니다. 팬으로는 쓰이지 않는데, 열전도율이 매우 낮기 때문입니다. 보통 내열유리냄비는 잡화꿀색이고, 유리에 도자기 성분을 섞어 만든 건 불투명하여 도자기와 유사합니다.

 

 성분 특성상 유리는 녹이 슬지 않기 때문에 산이나 염분에 강합니다. 그리고 법랑이나 세라믹 코팅과는 달리 유리냄비는 통짜 유리라 긁힘에도 강합니다. 철수세미로 긁어도 된단 말이지요. 급격한 온도변화나 물리적인 충격, 점성이 있는 액체를 끓이는 문제만 아니면 유리냄비는 강합니다. 다만 열전도율은 최악이라 감안해야합니다. 열전도율이 낮은 건 도기와 비슷해서, 도기처럼 일단 한 번 끓이면 열이 오래 갑니다. 실제 유리와 도기는 공통점이 많은 소재입니다.

 

 유리냄비의 최대 단점은 깨지면 답이 안 나온다는 겁니다. 유리냄비만한 유리를 깰 일은 보통 없는데, 깨졌을 때 위험하기도 하고 다치지 않더라도 청소가 매우 번거롭다 못해 주의가 필요합니다.

 

 점성이 있는 요리는 유리냄비에서 끓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유리는 워낙 열전도가 나쁜데, 점성이 있는 요리에서는 문제가 더 커지는지 쉽게 눌러 붙고 문제가 심한 경우 냄비가 아예 깨지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미역국만 해도 점성이 있는 요리에 속합니다.

 

 당연하지만 유리는 인덕션에 사용이 안 됩니다. 일부 제품은 처리를 해서 인덕션에 사용 가능한 것도 나옵니다만.

 

 

 

#) 돌

 

 천연 암석은 우리나라에서는 솥의 소재 또는 구이용 돌판의 소재로 사용됩니다. 흔히 곱돌이라 부르는 암석은 광물학적으로 마그네슘과 칼슘 함량이 높은 각섬암에 해당하는데, 놀라울 만큼 과학적인 연구나 관련기준이 없습니다.

 

 흔히 돌을 가열하면 원적외선이 나온다고 합니다만, 원래 우리가 보는 일반적인 모든 물질은 특정 온도에서 특정한 전자기파를 방출합니다. 우리가 적외선을 못 보니까 우리 몸에서 나오는 적외선을 못 볼 뿐이지요. 우리 눈에 보이는 가시광선이 물질에서 나오려면 훨씬 고온으로 온도를 높이면 됩니다. 빨갛게 달궈진 금속이나 무언가가 연소할 때 보이는 불꽃, 발광하는 백열등 필라멘트에서 우리는 가시광선을 볼 수 있지요. 그러니까 온도를 조금 올리면 그 어떤 물건이건 적외선이 나옵니다. 천연 돌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고요.

 

 우리나라에서 실사용되는 각섬석 곱돌에서 다행히 아직 석면이 검출되거나 한 적은 없습니다만, 침(needle)형 입자는 발견된 바 있습니다. 그것이 섭취 시 사람에게 어떤 악영향을 줄지는 모르나, 관련 안전규정이라거나 충분한 연구 같은 게 없는 상황입니다.

 

 곱돌은 밀도가 높고 무겁고 열전도율이 낮습니다. 그래서 열용량이 크고, 그게 조리에 주된 영향을 주는 것이라 추정합니다. 실제 돌솥으로 지은 밥을 먹으면 맛이 괜찮은데, 그것이 소재의 특성으로 인한 것일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돌로 만든 불판의 경우 관리의 어려움에 비해 맛에 큰 잇점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여담으로 돌솥비빔밥을 할 때는 실제 돌솥이 아니라 보통 뚝배기를 사용합니다.

수세미의 종류

식이 2021. 9. 20. 00:22 Posted by 해양장미

 브금

 

https://youtu.be/CNviChyjZEQ

 

 

 

 설거지는 섬세한 작업입니다. 근래 식기세척기의 발전 속도가 빠른데, 언젠가는 우리가 세탁기를 쓰듯 식기세척기를 쓰게 되고, 손빨래를 하듯 손 설거지를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본문에서는 다양한 수세미의 종류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아직 초판이라 내용이 미흡한 부분이 있을텐데, 이후 버전업을 해 나갈 계획입니다.

 

 

 

 

 

*) 초록수세미

 

 고전적인 수세미. 청수세미라고도 합니다. 보통은 뻣뻣하고 얇은 초록색이지만 다양한 형태가 있습니다. 거품이 잘 나는 편이 아니기 때문에, 거품을 내기 위한 우레탄 스펀지가 붙어있는 제품도 많습니다.

 

 기본적으로 초록수세미는 부직포를 구성하는 섬유들에 연마제를 붙여놓은 타입입니다. 저렴하지만 광물질 연마제가 붙어있기 때문에 연마력이 엄청나게 높습니다. 스테인리스 스틸 표면 정도는 그냥 긁어서 스크래치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연마력이 높은데, 막상 용기에 달라붙은 이물질을 떼내는 능력은 별로 높지 않은 안타까움이 있는 수세미입니다.

 

 나는 기본적으로 초록수세미의 사용을 권장하지 않는데, 식기나 조리도구에 가하는 대미지는 큰 반면 그에 비해 이물질 제거능력은 높지 않기 때문입니다. 갈아버려도 상관없는 표면을 청소하거나 할 때는 워낙 저렴하고 가격대비 튼튼하니까 사용할 만합니다. 일부 업장 같은 데서는 초록수세미 계열의 대안을 찾기 어려운 요소도 있긴 합니다.

 

 

 

 

 

*) 아크릴 뜨개 수세미

 

 아크릴 수세미실로 된 편물 수세미입니다. 근래 가정 싱크대의 메인 수세미 자리를 이게 주로 차지하고 있을 겁니다. 저렴한 가격, 다양한 디자인, 수제작이 가능한 점, 우수한 거품 생성 능력, 우수한 세척 능력, 식기에 가하는 대미지가 낮은 점 등 거의 전천후로 우수한 수세미라 생각합니다.

 

 다양한 모양이 있고, 모양에 따라 거품이 나는 정도나 질감이 다릅니다. 나는 딸기 모양이 마음에 들어서 그걸 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만 보기보다는 세척력이 강한 편이고, 옻칠 제품처럼 약한 표면에는 분명하게 대미지를 주니까 옻칠 제품에는 사용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아크릴 뜨개 수세미는 손으로 뜬 건 귀엽거나 개성적인 모양을 가지기도 합니다. 대신 좀 비싸고요. 기계로 대량으로 뜬 건 많이 주문하면 쌉니다. 자주 갈아주면서 사용하는 쪽을 권장합니다. 단점이라면 미세플라스틱이 많이 생긴다는 썰이 있는데, 아마 합성수지 계열은 다 같은 문제가 있을 겁니다.

 

 

 

 

 

*) 그물망 수세미

 

 한 때 유행했고 지금도 많이 쓰는 수세미입니다. 아크릴 뜨개 수세미나 우레탄 폼 계열 등에 비교하면 보기보다 거품이 잘 안 나고, 아크릴 뜨개 수세미 대비 헹굴 때 손에 힘이 더 들어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신 얇고 공기가 잘 통하기 때문에 건조가 잘 되고, 얇기 때문에 틈새까지 잘 씻을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부드럽고 그리 강해보이지 않지만 그물망 수세미도 확대해 보면 꽤 거칩니다. 옻칠 제품같이 약한 표면에 주는 대미지는 아크릴 뜨개 수세미보다 더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표면 약한 식기에는 사용 금지. 사용하다 보면 수명이 긴 편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특유의 좁은 곳 세척능력은 유용한 편이라, 하나쯤 쓰면 좋습니다.

 

 그물망 같은 소재가 스펀지를 한겹 싸고 있는 형태도 있습니다. 스펀지가 있으면 거품이 잘 나고, 그물망 수세미는 의외로 세척력이 괜찮은 편이니까요.

 

 

 

 

 

 

*) 필터폼 수세미

 

 다소 탄탄하고 성긴 폼이 표면에 있는 수세미입니다. 보통 안쪽은 보다 거품이 잘 나는 우레탄 폼 등으로 되어있습니다. 부드러운 편이고 거품이 잘 나기 때문에 젖병 등을 세척하는 데 많이 쓰입니다. 설거지감 표면에 스크래치를 잘 내지 않는 타입입니다. 세척력이 좋거나 하지는 않기 때문에, 한쪽에는 필터폼이 있고 반대쪽에는 초록수세미와 같은 소재가 붙어있는 타입의 수세미도 있습니다.

 

 필터폼 수세미가 어느 정도까지 식기를 아낄 수 있는지는 충분히 테스트해보지 못했습니다. 필터폼 자체는 그리 튼튼하지는 않습니다.

 

 

 

 

 

*) 셀룰로오스 수세미

 

 기성품으로 흔히 시판하는 제품 중에는 드물게 천연 소재 기반입니다. 식물의 셀룰로오스를 활용해 만든 스펀지 수세미로, 얼핏 보면 그냥 일종의 스펀지로 보입니다. 천연펄프 수세미라고도 합니다.

 

 완전한 제로 스크래치 수세미. 옻칠 표면처럼 약한 표면을 닦아도 표면을 손상시키지 않습니다. 거품이 잘 나고, 펄프 청소기를 사용해보셨으면 아시겠지만 의외로 세척력이 나쁘지 않습니다. 표면이 약한 식기나 조리도구를 쓰시는 분에게 강력 추천. 환경보호에도 괜찮을 것 같고요.

 

 단점은 물기를 굉장히 잘 흡수합니다. 오염이 되기 쉽고, 은근히 잘 안 마릅니다. 그러니까 소모품이라고 생각하고 과감하게 자주 갈아주는 게 좋습니다. 아니면 소독에 신경을 좀 쓰는 쪽을 권장합니다. 가격은 저렴한 편입니다. 

 

 

 

 

 

 

*) 은색 망사 수세미

 

 보통은 스펀지 위를 은색 망사가 덮고 있는 타입입니다. 색깔이 좀 다른 경우도 있습니다. 금속처럼 보이기 때문에 금속 소재일 거라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폴리에스터 및 나일론 등의 망사라서 세척력은 제한적입니다. 좀 뻣뻣할 뿐이고, 세척력이건 식기에 기스를 내는 정도건 아크릴 뜨개 수세미와 그렇게까지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이걸로 스틸 수세미를 대신하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 스테인리스 스틸 수세미

 

 통칭 철수세미. 굉장히 훌륭한 이물질 제거능력과 함께, 제법 인정사정없이 식기 및 조리도구 표면을 긁어버립니다. 다만 긁는 정도는 초록수세미보다는 덜합니다. 초록수세미에 들어가는 연마제보다는 스테인리스의 경도가 낮기 때문입니다.

 

 사용해 보신 분들은 대체로 다 알겠지만, 철수세미의 내구성은 결코 높지 않습니다. 제법 쉽게 망가집니다. 사용하다가 음식물 찌꺼기 같은 게 안쪽에 틀어박히면 어찌 제거도 어렵습니다. 완전히 소모품입니다. 조금이라도 망가지면 그냥 사용을 더 안 하는 게 좋은데, 얇은 스테인리스사가 끊어지거나 하면 손도 다칠 수 있고 식기에도 대미지를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스틸이니까 버릴 때는 재활용에 버려도 됩니다.

 

 

 

 

 

*) 구리 수세미

 

 스테인리스 대신 구리로 된 수세미입니다. 거의 팔지 않고, 철수세미보다 비싸고, 철수세미보다 약합니다. 장점은 스테인리스보다 경도가 낮아서 식기에 대미지를 덜 준다는 겁니다. 찾아 구해서 사용하는 분들은 있는데, 나는 사용해보지 못했습니다.

 

 

 

 

 

*) 폴란드 스크럽 수세미

 

 폴란드산 도자기같은 디자인이라 폴란드 수세미라 부릅니다. 기본 소재는 코튼인데, 거기에 특별하게 거친 코팅이 되어 있습니다. 주 용도는 철수세미 대신으로 쓰는 건데, 경도나 세척력이 절묘합니다. 식기 표면에는 별로 대미지를 주지 않는데, 철수세미에 육박하는 이물질 제거 능력이 있습니다. 내구성도 철수세미보다 훨씬 좋고 쇠냄새 같은 것도 없어서 강력 추천하는 물건. 단점은 좀 비싸고 별로 파는 곳이 없다는 겁니다.

 

 

 

 

 

*) 천연 수세미외

 

 수세미외에서 나오는 천연물입니다. 통칭 천연 수세미. 원래는 ‘수세미’라고 하면 수세미외를 뜻하는 말이었습니다만, 실제 현대의 통용 언어는 그게 아니고 천연소재 수세미가 이것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학명을 따서 루파라고도 합니다. 그냥 말려서 씨앗 등을 제거한 형태로 많이 유통됩니다만, 섬유를 풀어서 다시 짠 형태로도 쓰입니다.

 

 성능이나 사용하는 감촉 등은 최상입니다. 거품이 정말 잘 나고, 부드럽고 감촉이 좋은데다 천연소재라 미세표면이 다공질인 건지 은근히 잘 닦입니다. 게다가 또 부드러워서 식기도 거의 안상하게 합니다. 미세플라스틱 문제 등이 없는 건 덤. 단점은 비싸고 약하다는 겁니다. 루파 약해요... 그리고 잘 닦이긴 하는데, 부드럽다보니 단단하게 달라붙은 것 등을 제거하는 능력은 없습니다.

 

 

 

 

 

*) 삼베실 뜨개 수세미

 

 천연 수세미계의 라이징 스타입니다. 아크릴 수세미 실 대신 삼베실로 뜬 수세미인데요. 좀 거칠고 제법 잘 닦입니다. 천연소재다운 좋은 사용감이 있는데요. 단점은 아크릴 수세미보다 뻣뻣하고, 비싸고, 특유의 대마 냄새가 난다는 겁니다. 냄새는 사용하다보면 줄어들긴 합니다.

 

 삼베실 뜨개 수세미는 헹구는 용도로는 괜찮은 수세미인데, 워낙 뻣뻣해서 그런 건지 뭐가 문제인지 세제 짜서 거품 내려 해도 거의 안 납니다. 삼베실 수세미로 거품 바르는 건 좀 무리고요. 그래도 특유의 천연소재 쓰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미세플라스틱 안 생기는 건 덤입니다.

형태에 따른 팬(Pan)의 종류 (Ver 1.1)

식이 2021. 9. 6. 12:14 Posted by 해양장미

(21.11.15. 테플론 코팅과 세라믹 코팅에 대한 내용 일부 수정. Ver 1.1)

 

 브금

 

https://youtu.be/reHoA0xxo_o

 

 

 

 

 

 팬(Pan)은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대략 큰 종류를 나열해보자면 그리들, 스킬렛, 소테팬, 웍 정도가 있겠네요. 전자에서 뒤로 갈수록 옆면이 생기고, 더 높이 올라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들은 쉽게 말하면 철판 또는 불판입니다. 옆면이 아예 없거나 별로 올라가지 않고, 팬의 가장 높은 곳의 높이가 낮지요. 고기나 소시지, 채소, 크레이프 같은 걸 굽거나 오븐에서 피자, 빵 같은 걸 굽거나 하는 데 주로 쓰입니다. 액체를 담을 수 없거나 매우 소량만 담을 수 있고, 볶음은 할 수 있는 정도입니다. 조리원리상 구이를 하는 데는 그리들 형태의 조리 결과물이 좋은데, 그 이유는 후술하겠습니다.

 

 스킬렛은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프라이팬 형태입니다. 그리 높지 않은, 바깥쪽을 향하는 옆면이 있지요. 옆면이 높지 않고 각이 바깥쪽을 향하기 때문에, 스킬렛도 구이에 적합한 편입니다. 스킬렛은 일정 이상의 오일을 충분히 담을 수 있어 튀김도 가능하고, 옆면의 각을 이용하여 계란프라이나 부침개 같은 걸 뒤집을 수도 있습니다. 부침개를 그냥 던져서 뒤집는 건 스킬렛으로 하는 게 쉽지요. 그리고 가정에서 요리를 할 때는 기름이 튀는 것도 청소할 일을 만드는데, 같은 요리를 해도 그리들을 쓰는 것보다는 스킬렛을 쓰는 게 그나마 기름이 팬 바깥으로 덜 튀긴 합니다. 실제 코팅 스킬렛을 바닥만 닦으면서 한참 쓰다 보면 나중에 옆면에 중합된 오일이 굳어 지저분해지는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지요. 그건 그리들을 썼다면 다 팬 밖으로 튀어 나갔을 오일들입니다.

 

 소테팬은 스킬렛에 비해 옆면이 더 올라가고, 각도도 더 위로 올라가는 타입입니다. 그렇다고 웍 수준으로 옆면이 높지는 않고요. 프라이팬으로 시판하는 것 중 옆면이 밖으로 많이 벌어지지 않고, 위로 올라가는 타입은 소테팬이라 봐도 됩니다. 가끔 보다 보면 스킬렛이라 해야 할지 소테팬이라고 해야 할지 좀 애매한 것도 있긴 합니다. 또한 브랜드에 따라 소테팬은 낮은 편수냄비와 유사해 보일 때도 있습니다.

 

 소테팬은 스킬렛에 비해 구이에는 덜 적합합니다. 옆면 각도 때문인데, 식재료를 구울 때는 옆면이 있을수록 수증기가 잘 날아가지 않게 됩니다. 소테팬의 경우 지름이 큰 건 가운데 쪽에서 구울 때는 별 문제가 없지만, 사이드에서 구우면 수증기가 상대적으로 빨리 날아가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소테팬에서 마이야르를 잘 만들려면 기름을 적게 써서 굽는 것보다는 기름을 많이 써서 튀기는 게 좋습니다. 이는 웍을 사용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과당의 캐러맬화 반응은 섭씨 110도, 자당이나 포도당의 캐러맬화 반응은 160도 정도에서 일어납니다. 그리고 마이야르 반응은 130도 정도에서 일어나기 시작해 175도 이상에서 본격적으로 일어납니다. 구이, 튀김은 온도를 175도 이상으로 올려 마이야르 반응과 캐러멜라이징을 일으키는 조리법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그런데 수분이 있는 음식물은 물이 가진 비열 및 기화열 때문에 아무리 가열을 해도 온도가 잘 올라가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원리를 이용해 종이컵에도 물을 끓일 수 있지요. 물이 담긴 종이컵은 직화로 가열해도 물의 비열과 기화열 때문에 착화될 만큼 온도가 올라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이는 음식물의 마른 표면에서 잘 일어나고, 젖은 표면은 수분이 날아간 후에야 본격적으로 구워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팬은 옆면이 없을수록 무언가를 구울 때 수분이 잘 날아갑니다. 또한 팬의 열전도율과 열용량 또한 구이에 많은 영향을 줍니다.

 

 스킬렛에 비해 소테팬은 같은 지름일 때 들이가 훨씬 크고, 무언가를 구운 다음 끓이거나, 볶거나 하는 조리 등에 적합합니다. 그리고 웍에 비하면 그래도 굽는 성능이 좋고, 지름이 큰 건 충분히 스킬렛처럼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굳이 보면 가장 전천후 팬입니다. 뭐든 다 할 수 있지요.

 

 웍은 스킬렛에 비해 현저하게 옆면이 높은 타입입니다. 쉽게 볼 수 있는 종류가 여럿 있는데, 우리나라 가정에서 주로 쓰는 타입은 궁중팬이라 부르고요. 익히 많이들 보셔서 익숙하실 겁니다. 그리고 바닥이 더 둥글어서 중식화구에 쓰는 중화웍도 대표적인 웍입니다. 한편으로 서양식 웍은 바닥이 좁은 편수냄비처럼 생긴 게 많습니다.

 

 웍은 깊기 때문에 무언가를 굽는 데는 별로 적합하지 않습니다. 볶거나 튀기거나 하는 데 적합하고, 조리거나 끓이는 데도 괜찮지요. 면을 삶는 데도 좋습니다. 중화요리는 고화력 화구에 웍을 쓰기 때문에 중화요리가 그런 방식으로 발전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중식에는 굽는 요리가 적고, 거의 찌거나 튀기는 방식의 요리가 많은데 웍은 구이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발달한 것 같습니다. 마이야르를 일으키려면 기름을 많이 써서 튀기는 게 좋지요.

 

 한편으로 보통 테플론 코팅은 스킬렛에 많이 하고, 궁중팬을 포함한 웍에는 하는 빈도가 줄어듭니다. 테플론은 강한 넌스틱 (달라붙지 않는 성질) 을 위한 코팅이고, 볶음이나 튀김 등의 조리를 하는 데에는 적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웍이나 냄비에 되어 있는 코팅은 대체로 세라믹 코팅입니다. 세라믹 코팅은 테플론 코팅 대비 좀 더 달라붙긴 하지만, 고온조리나 오일 사용에 더 강한 편입니다. 물론 스킬렛에도 세라믹 코팅이 된 것들이 있습니다. 여담으로 티타늄 코팅, 다이아몬드 코팅, 마블 코팅, 그래핀 코팅이라고 하는 것들은 다 테플론 코팅입니다. 빈도는 적지만 소테팬이나 웍에도 테플론 코팅이 된 게 있는데, 그 경우 코팅소재 차이에 의한 특성 차이를 이해하고 사용하는 게 좋습니다. 테플론 코팅에 자신 있는 업체들이 그런 걸 만드는데, 브랜드 밸류 때문에 비싸지만 테플론 코팅의 장단점은 그대로입니다.

 

 팬 중엔 바닥이 평평하지 않은 팬도 있습니다. 그릴팬이라고 하는 형태인데, 팬 바닥에 올록볼록 요철이 있는 겁니다. 음식물을 구울 때 볼록한 부분에만 닿아서 구워지는 형태지요.

 

 이러한 그릴팬에 음식을 구울 경우 최고의 장점은 비주얼이 좋아진다는 겁니다. 단점은 볼록한 면에 닿은 부분은 타는데, 안 닿은 부분은 설익기 쉽다는 거고요. 실제 고기를 구울 때 그릴에 구우면 전체적인 마이야르를 만들기 어렵습니다. 마이야르를 덜 만들고, 대신 전반적으로 촉촉하게 굽는 걸 목적으로 할 때 더 적합합니다. 그릴팬이 아닌 일반적인 팬에 굽는 것 대비 수육에 가까운 맛이 난단 말이지요. 그릴팬 중 옆면이 꽤 높이 올라가는 것들도 있는데, 그런 건 뚜껑을 덮고 반쯤 찌듯이 구울 수 있습니다. 마이야르를 가능한 피하는 쪽의 조리에 적합합니다. 여담으로 코팅팬은 논코팅팬 대비 마이야르가 잘 일어나지 않는데, 코팅이 된 그릴팬을 사용하면 더더욱 마이야르가 안 일어나게 됩니다.

 

 한편으로 그릴팬의 요철은 고기를 구울 때 표면 수분을 증발시키는 데 강합니다. 스테이크같은 큰 고기덩어리를 구울 때는 표면 수분을 제거하고 구우면 보다 잘 구워집니다만, 보다 얇거나 작게 정형된 고기는 그렇게 하나하나 제거하는 게 어려워서 그냥 굽게 될 때가 많고, 그릴팬은 그럴 때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밑준비에 시간을 쓰기 어렵거나 여러 장의 고기를 구워야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릴팬의 단점 중 하나는 설거지가 어렵다는 겁니다. 요철을 잘 닦아줘야 하는데, 그냥 수세미로 평범하게 닦아서는 잘 안 닦입니다. 그릴팬을 자주 쓰실 분들은 솔이나 전용 세척 도구를 쓰시는 게 좋을 겁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흔하게 쓰는 형태는 아닌데, 타공이 뚫려있는 팬도 있습니다. 석쇠와 팬의 중간 정도 형태라 할 수 있는데요. 실제 기능도 석쇠와 팬의 중간입니다. 오븐에 넣어 피자 같은 걸 굽는 데도 많이 씁니다. 석쇠에 비하면 깔끔하게 세척하고 관리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언급해야 할 것 같은 게 빠에야 팬입니다. 빠에야는 본래 발렌시아쪽 언어로 그냥 ‘팬’을 뜻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빠에야에 해 먹던 요리 이름이 빠에야가 된 건데요. 비슷한 케이스의 한식으로는 ‘신선로’가 있습니다.

 

 빠에야 팬은 형태를 보면 지름이 넓은 양수 스킬렛에 가깝습니다. 스킬렛 중에도 높이가 낮은 편이고요. 대체로 그냥 스킬렛의 일종이라 생각해도 무방합니다. 빠에야 팬의 최대 장점은 팬을 팬째로 그냥 서빙할 때 모양새가 더 괜찮다는 겁니다. 식탁에서 덜 걸리적거리고요. 대신 편수팬도 장점이 있으니까 대체로 프라이팬이 편수인 겁니다. 조리 중에 팬 위치를 조절하거나 기울이거나 들거나 하는 데는 편수팬이 훨씬 편합니다.

 

 이외에도 양면팬이나 약간의 요철이 있는 팬, 돔형 불판이 있는 팬 같은 다양한 형태의 팬들이 있습니다. 요철이 있는 팬은 기본적으로는 그릴팬과 원리가 유사하고, 양면팬 같은 경우는 뚜껑이 정확하게 결합되는 찜구이용 팬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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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 관련 이런저런 이야기 #5

식이 2020. 11. 3. 15:23 Posted by 해양장미

 브금

 

https://youtu.be/U3LUcgmUTe8

 

 

1- https://oceanrose.tistory.com/1202

2- https://oceanrose.tistory.com/1205

3- https://oceanrose.tistory.com/1213

4- https://oceanrose.tistory.com/1215

 




 

1) 김치가 익어가는 과정은 유산균과 효모(이스트)가 함께합니다. 유산균은 젖산을 만들고, 효모는 당을 먹고 알콜과 이산화탄소를 배출합니다. 김치가 제대로 익어가는 과정에서는 유산균의 활동이 활발하고, 효모의 활동은 덜 활발합니다. 가장 맛있게 익은 상태에서 김치는 유산균은 많이 증식한 상태고, 산은 젖산 위주라 부드러운 산미가 나며, 약간의 알콜이 생성되어 있고, 이산화탄소 버블이 있습니다. 김치도 꽤 중독성이 있는 음식인데, 미미하게나마 알콜이 함유되어 있어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효모는 단당도 이당도 다당도 분해할 수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단당이나 이당을 먹었을 때 더 활발하게 알콜과 이산화탄소를 만들어냅니다. 김치에는 대체로 무가 사용되는데, 무즙에는 디스타아제가 들어있습니다. 디스타아제는 다당을 단당 및 이당으로 분해합니다. 굳이 설탕을 넣지 않아도 녹말풀로 양념을 버무려주면 무즙의 디스타아제가 녹말을 엿으로 분해해줍니다. 그러니까 무를 사용하지 않는 김치에 녹말풀을 썼을 때는 효모가 직접 다당을 분해해야 하기 때문에 분해효율이 낮습니다. 무를 갈아서 녹말풀에 좀 섞어 주거나, 설탕을 써 주는 게 좋습니다.

 

 김치가 시어지는 터닝포인트는 유산균이 유산을 너무 많이 생성한 시점입니다. 유산균은 너무 증식하면 산도가 너무 올라가서 스스로 만든 유산에 죽어버립니다. 그러고 나면 효모가 우점종이 되지요. 유산균이 있을 때는 김치 냄새가 나빠지지 않습니다만, 효모가 과하게 증식하면 골마지가 피면서 쉰김치 특유의 꿉꿉한 냄새가 나게 됩니다. 김치 효모는 맥주 효모와 마찬가지로 몸에 나쁠 게 없고, 독성도 없어서 골마지 핀 김치도 딱히 몸에 나쁠 건 없습니다만 냄새가 나쁩니다. 맛도 점점 안 좋아지고요. 물론 곰팡이가 피면 버려야하지만요. 골마지와 곰팡이는 다릅니다.

 

 김치는 보존할 때 가능한 공기와 접촉을 차단해야 한다는 걸 대부분 아실 겁니다. 일단 유산균은 혐기성이라 산소가 닿으면 쉽게 죽어버립니다. 대조적으로 효모는 산소에 강합니다. 그러니까 산소접촉은 빠르게 유산균을 죽이고 효모의 과다증식을 유도합니다.

 

 또 문제가 있는 게 초산발효입니다. 알콜은 공기에 노출되면 증발되어 날아가거나 공기 중에 떠도는 초산균에 의해 식초로 변해버립니다. 보관온도가 높아도 초산균이 잘 증식하고요. 부드러운 산인 유산에 비해 초산은 식초 같은 강한 산미와 자극적인 냄새를 가집니다. 신 김치가 익은 김치보다 자극적으로 신 건 초산균의 영향입니다.

 



 

2) 밥을 엿기름으로 삭히면 식혜가 됩니다. 엿기름을 실제 못 보신 분들을 위해 이야기하자면, 엿기름은 기름이 아닌 맥아, 즉 싹틔운 보리입니다. 싹틔운 보리에는 아밀라아제(=디스타아제)가 들어있기 때문에, 다당류인 밥을 이당과 단당으로 분해시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냥 밥을 삭히기만 해서 만든 식혜는 그다지 달지 않습니다. 우리가 흔히 먹는 식혜는 설탕을 넣어 더 달게 만든 겁니다. 식혜에서 밥알을 빼고 졸이면 조청이 됩니다. 이 조청을 그냥 굳히면 갈색 갱엿이 되고, 공기를 섞어가면서 굳히면 흰엿이 됩니다.

 

 옛날에는 조청을 물엿이라고도 했던 것 같지만, 현대에 물엿과 조청은 편의상 구분을 좀 합니다. 물엿은 대체로 옥수수 전분을 공업적으로 당화시켜 만든 것으로, 투명한 게 많습니다. 갈색 옥수수 물엿도 있지만요. 투명한 물엿은 냄새나 특유의 맛이 약한 편입니다.

 

 대조적으로 조청(쌀물엿)은 엿 특유의 풍미가 있는 편이고 더 진득합니다. 가격은 투명 옥수수 물엿이 훨씬 싸지만, 맛있는 건 아무래도 조청입니다.

 

 조청/물엿에는 꽤 특이한 기능이 있는데, 볶는 요리를 할 때 물엿을 넣으면 잘 안탑니다. 그래서 좀 달게 볶아도 되는 볶음에는 대체로 물엿을 쓰는 게 한식 일반 레시피입니다. 음식에 윤기를 더하는 기능도 있다 보니, 물엿은 한식에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여담으로 호박엿은 호박으로 맛을 낸 엿이지, 호박을 주재료로 만든 엿이 아닙니다. 그리고 올리고당은 단당이나 이당이 아닌, 대략 3~10당으로 단맛은 나지만 사람이 잘 소화시키지 못하는 당입니다. 대신 장내미생물이 이용하거나, 소화흡수가 잘 안 되기 때문에 살이 덜 찌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맛은 별로 없습니다. 시판하는 올리고당은 순수한 올리고당이 아니고, 액상과당 같은 게 섞인 겁니다.

 



 

3) 흔한 잡초인 강아지풀은 개나 고양이를 놀리는 용도 외에, 종자도 먹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잡풀인 피의 종자도 먹을 수 있지요.

 

 강아지풀은 조의 야생형입니다. 조라는 이름이 익숙하지 않다면 좁쌀이라고 하면 더 이해가 쉬울지도 모르겠네요. 조는 강아지풀을 개량한 겁니다. 그 작은 알곡도 나름 야생 강아지풀에 비하면 큰 쪽으로 개량한 것이지요. 사실 식물이곡물이 인류를 지배합니다.

 

 조는 기장하고 닮은 모양새지만, 조가 확연히 작습니다. 주관적으로 풍미는 조가 낫습니다. 기장은 밥 해먹기엔 조보다 맛이 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옛날에는 현대처럼 쌀이 흔하지 않았고, 특히 위도가 높은 지역은 쌀농사가 어려워서 조를 많이 먹었다고 합니다. 쌀은 상대적으로 위도가 낮은 지역에서 주로 먹던 거지요. 그래서 자포니카를 주로 먹는 문화권은 우리와 일본, 대만 정도입니다.




 

4) 나는 한식 소스의 정점은 고추장이라 생각합니다. 무척이나 유니크한 소스지요. 보통은 보기만큼 맵지도 않고요.

 

 고추장도 공장식과 재래식이 있고, 된장 못지않게 차이 납니다. 재래식 고추장은 스타일도 좀 다양하고요. 다만 그냥 먹을 때는 저렴한 공장식 고추장도 제법 맛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렴한 대용량 고추장은 정말 저렴한데, 그렇게 저렴한데도 가격에 비해 꽤 먹을 만 합니다. 대조적으로 고급화시키면 많이 비싸지지만, 매우 맛있습니다.

 

 쌈장과 고추장은 본래 크게 다른 레시피는 아닙니다. 제대로 된 쌈장은 고추장에 고추가루가 덜 들어간 것이거나, 고추장에 된장과 갖은 양념을 믹스하고 볶은 것인데 고추장 성분에 원래 막()장 성분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된장 비율이 높아진 일종의 고추장이라 봐도 무방합니다. 물론 흔한 공장제 쌈장이야 개량식 공장제 된장에 양념 좀 한 거지만요. 여하튼 그래서 어지간해서는 쌈장 대신 고추장을 써도 됩니다. 나는 공장제 쌈장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고추장으로 거의 대체합니다. 물론 호박잎 쌈에는 제대로 만든 쌈장을 써야 하고요. 생선회에 공장제 쌈장은 고추장으로는 대체가 안 되고요.

 

 고추장의 최대 단점은 생각보다 굉장히 풍미가 강하다는 데 있습니다. 고추장이 들어간 요리는 무조건 고추장 맛이 납니다. 그래서 어떤 요리에건 고추장을 쓰는 건 신중해야합니다. 고추장은 부재료일 수가 없습니다. 어떤 요리에건 고추장이 들어가는 순간, 고추장XX 또는 비빔XX 같은 식으로 불러야 합니다.

 



 

5) 생선회에 초고추장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지만, 나는 회에 초고추장은 어지간해서는 먹지 않습니다. 초고추장 찍은 회는 회맛이 아닙니다. 초고추장 맛이지요. 내 생각엔 피데기 구워 고추장 찍어 먹는 게 고급 생선회에 초고추장 찍는 것보다 맛있습니다.

 

 물론 물미역에는 초고추장을 찍어야 합니다. 물미역에는 다른 소스를 생각할 수 없습니다. 브로콜리에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경상도에서는 부추전을 간장보다도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는 경상도 입맛과는 거리가 좀 있습니다만, 부추전만큼은 나도 그렇게 먹는 걸 좋아합니다. 배추전에 초고추장도 맛있다고 생각합니다. 내 생각에 초고추장은 동물성 음식보다도 식물성 음식에 어울리는 편입니다.

 



 

6) 다양한 콩 중 대두로만 두부, 된장, 간장 등을 만드는 이유는 대두가 매우 높은 단백질 함량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콩류는 대두만큼 단백질 비율이 높지 않습니다.

 

 일본식 된장인 미소나 공장식 개량된장, 중국식 첨면장, 춘장, 그리고 우리나라 고추장은 장 계열이긴 합니다만 콩에 더해 밀가루, 찹쌀가루, 보리가루 등을 씁니다. 이런 곡물가루들은 단백질보다는 당을 제공하는 역할인데, 발효과정에서 당이 변해가는 과정은 대동소이합니다. 다당 -> /이당 -> 알콜/이산화탄소 -> 식초 로 변하지요.

 

 그래서 잘 만들어졌을 때 상기한 장들은 달달한 편입니다. 찹쌀고추장 같은 경우 아주 잘 만들어지고 적당히 익은 상태에서는, 찹쌀엿이 잘 형성되어서 달콤합니다. 찹쌀은 당화 이후 알콜로 완전히 변하지 않는 경향이 있고요. 첨면장 같은 경우 주성분이 아예 밀이고 완전히 숙성된 상태에서는 물엿에 가까운 단맛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재래식 고추장은 담글 때 곡물 성분이 과숙되기 쉽습니다. 과숙되면 상기한대로 알콜이 형성된 후, 초산균 접촉에 의해 그 알콜이 식초로 변합니다. 그래서 과숙 초기의 고추장에서는 단미가 줄어들면서 알콜 풍미와 약발포주같은 톡 쏘는 느낌이 생기고, 그 단계를 넘어서면 단맛이 아예 사라지고 산미가 생깁니다.

 

 과숙 고추장은 그 자체로는 맛이 영 없어서 그냥 먹긴 어렵고 요리에 쓰던지 다른 양념과 믹스를 해야 맛있습니다. 아니면 식소다로 중화를 해서 신맛을 없애기도 합니다. 과숙을 막으려면 당화가 완료된 상태에서 멸균시킨 후 밀봉보관하면 될 겁니다.

 

 한편으로 우리가 먹는 김치나 장, 부풀린 빵에는 대체로 미량의 알콜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익히거나 끓여도 알콜은 웬만해서는 다 날아가지 않습니다. 술을 쓰는 요리에는 알콜이 반드시 남아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술을 직접 마시는 것보다야 알콜을 적게 섭취하게 됩니다만, 건강 문제나 임신 등의 이유로 알콜을 끊어야 하거나 소아에게 주는 경우에는 알고는 있어야 하겠습니다.

 



 

7) 문어는 한국인이 즐겨 먹는 생물 중 머리가 가장 좋은 편에 속할 겁니다. 다행히 인류의 라이벌로 성장하기엔 문어는 수명이 너무 짧아서, 문어가 지구를 탈출해 화성을 정복한 후 그들의 모습을 닮은 로봇으로 지구정복을 노리는 일은 없을 것 같긴 합니다.


 

 문어가 속한 연체동물문 두족강(통칭 두족류)은 꽤 재미있고 신기한 방향으로 진화한 생물들입니다. 아주 오래 전, 중생대 시절에는 두족류도 껍질이 있는 게 주류였습니다. 암모나이트와 벨렘나이트가 두족류에 속합니다. 그렇지만 현생 두족류는 껍질이 없는 게 주류지요. 껍질과 뼈가 줄어드는 방향으로 진화했다는 게 통념입니다. 물론 현생 두족류 중에도 앵무조개, 집낙지, 스피룰라처럼 암모나이트같은 @형 패각을 가진 것들도 있고, 갑오징어도 제법 크고 아름다운 뼈를 가지고 있긴 합니다만, 대부분의 문어와 낙지는 뼈가 아예 없습니다.


 

 나는 물고기를 제외한 해산물 중 문어가 가장 맛있다고 생각합니다. 통칭 가문어 드셔보고 문어 맛없다는 분들도 있는데, 가문어는 어디까지나 가짜 문어입니다. 훔볼트오징어라는 대형 오징어 다리지요. 훔볼트오징어는 오징어 중에도 원체 맛이 없는 오징어라서 시판하는 건 그나마 먹을 만하게 가공 처리한 겁니다. 물 좋은 국내산 문어는 매우 맛있습니다. 비쌀 뿐.

 

 내가 좋아하는 문어 요리방식은 조림입니다. 간장에 조리는 건데요. 잘 만들면 해산물같지 않게 냄새도 괜찮고 맛있습니다. 양념 맛으로 먹는 음식이 아니고, 맛있는 문어에 양념을 좀 한다는 느낌으로 만들어야 맛있습니다.

 

 한식은 아니지만 타코야키도 맛있다고 생각하고 좋아합니다. 그런데 여담이지만 나는 문어 대신 낙지를 넣은 걸로 추정되는 타코야키를 먹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낙지 자체는 좋아합니다만, 낙지 타코야키는 맛이 없었습니다.

 


 

8) 옛날에 그냥 오징어라 부르던 건 갑오징어였습니다. 현대에 우리가 그냥 오징어라 부르는 건 옛 분류로는 꼴뚜기의 일종입니다. 이게 용어정리가 정식으로 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1990년에만 해도 통칭 오징어의 정식 명칭은 피둥어꼴뚜기였습니다. 90년대 초에 피둥어꼴뚜기에 살오징어라는 이름을 붙여 같이 정식 명칭으로 취급하게 되지요.

 

 우리나라에서 현재 오징어로 취급되는 국내산 오징어는 대략 5종류입니다. 살오징어, 창오징어, 화살오징어, 무늬오징어, 그리고 갑오징어입니다. 이 중 옛날 이름 기준 진짜 오징어는 갑오징어 뿐이고요. 살오징어는 통칭 오징어’, 창오징어와 화살오징어는 통칭 한치입니다. 무늬오징어는 이명이 흰오징어고요. 시중에서 화살오징어와 무늬오징어는 좀 희귀합니다.

 

 갑오징어는 살오징어를 대체하여 다양한 요리에 쓸 수 있지만 데쳐 만드는 숙회가 정석이라 생각합니다. 갑오징어의 질감은 살오징어 대비 매우 연하고, 그 특유의 질감이 두드러지는 장점입니다. 그렇지만 맛 자체는 살오징어 대비 딱히 장점이 없습니다. 살오징어 대비 값비싼 갑오징어의 장점을 최대한 즐기려면 숙회가 좋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숙회를 좋아하지 않고 볶음이나 튀김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갑오징어를 쓴다 하여 살오징어보다 맛없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9) 돼지고기는 좋게 말하면 담백하고, 나쁘게 말하면 맛이 심심한 고기입니다. 단적으로 이야기해 소고기와 비교해보면 국물 우리는 용도로는 부적합하지요. 살 속에 소고기만큼 충분한 맛 성분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겁니다.

 

 돼지고기를 먹을 때 느껴지는 풍미 중 많은 부분을 향기와 식감, 그리고 지방부의 기름맛이 차지합니다. 품질이 좋은 돼지기름은 열에 녹았을 때 무척 근사한 향기를 냅니다. 다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냄새에 덜 민감하고, 라드를 잘 쓰지 않다보니 돈지의 향은 그다지 중시되지 않고, 그보다는 부정적인 돼지냄새가 없어지는 방향으로 돼지를 키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돼지를 구울 때는 겉면에 마이야르를 많이 만들수록 맛있습니다. 쇠고기는 오버쿡을 피하는 게 마이야르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만, 돼지고기는 기름이 조금 있는 부위일 때는 오버쿡을 일으키더라도 마이야르를 잘 일으키는 게 맛있습니다. 돼지고기에서 맛을 이끌어내려면 마이야르 반응을 충분히 일으키거나, 햄처럼 절여서 숙성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양념의 힘을 빌리는 게 좋습니다. 돼지는 닭에 어느 정도 육박할 정도로 강한 양념과 잘 어울립니다.

 

 


  

10) 키위는 무언가 열대과일같은 이미지지만, 실제 원산지는 중국이며 다래의 친족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곧잘 자라는데 정운천 전 장관이 국내 재배 키위에 참다래라는 이름을(양다래 정도가 보다 정확한 이름이겠습니다만) 붙였고, 정운천의 별명이 키위정입니다.

 

 국내에서 재배하는 키위 중 레드키위라는 게 있습니다. 무화과와 접붙인 키위라 소문이 나 있는데요. 그런 게 가능한 것인가 의아해하면서도 꽤나 보도가 많이 되고 소문이 제법 나서 접붙인 키위인가보다 생각하였었는데, 육종자료를 보니 일반적인 품종개량의 결과물이고 무화과에 접붙인 키위라는 건 헛소문인 것 같습니다. 


 풍미는 그린키위와는 꽤 달라서, 파파야나 무화과를 떠오르게 하는 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무화과에 접붙인 키위라고 헛소문이 퍼지고 있는지도 모르겠고요. 껍질에는 털이 많지 않고, 얇습니다. 별로 시지 않은 편이고요. 

 

 향후 레드키위가 일반화되면, 한식 요리에 쓰기 좋은 식재료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그냥 먹는 용도로는 그린키위가 좋고, 그린키위가 가진 강력한 연육 효과가 질긴 고기로 불고기를 할 때 유용하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린키위는 한식에 사용하기엔 개성이 강한 맛이라 한우 같은 데는 안 씁니다. 레드키위는 한식 양념에 사용하기에 그린키위보다 좀 더 무난한 풍미가 아닐까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11) 우리나라의 전통 주방에서 쓰던 조리도구는 시루와 무쇠솥입니다. 시루, 무쇠솥, 번철, 식칼 이외의 조리도구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러니까 전통한식은 거의 다 무쇠솥에 만들 수 있는 요리입니다. 전이나 적은 달군 솥뚜껑이나 번철에 쇠기름을 내서 부치는 식이었고, 솥을 쓰니까 끓이는 요리가 발달했지요. 번철은 프라이팬 같은 거였는데, 솥뚜껑하고 유사하게 생긴 물건이었습니다.

 

 밥은 품질 좋은 솥이 개발되기 전에는 쪄서 만들었었습니다. 찐 밥은 생산성이 좋고 포만감이 금방 오는 편이라 근래에도 군대나 단체급식 같은 데서 나오기도 합니다. 대신 맛은 지은 밥에 비해 좀 떨어지지요. 포만감이 오래 가지도 않고요.

 

 무쇠밥솥이 개발되기 이전인 중세에는 우리나라나 아시아 전반이나 유럽이나 서민의 주식은 죽이었습니다. 서양에서는 죽보다 감주처럼 곡물을 거르지 않은 맥주를 먹기도 했습니다. 보리죽보다야 맥주가 맛있으니까 그랬을 거라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서민들도 솥에 지은 밥을 먹을 수 있게 된 건 고려시대 중기쯤으로 추정됩니다.

 

 화덕을 사용하지 않았던 건 우리나라 요리 발달에 여러 모로 영향을 줬습니다. 화덕은 유럽뿐만 아니라 인도, 중국 등지에서도 사용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어째 화덕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선진국이 된 이후에도 우리나라의 오븐 보급률은 그리 높지 않았고, 아파트 입주할 때 오븐이 있어도 잘 사용하지 않았었는데 요새야 간이 컨벤션 오븐인 에어프라이어가 보급되면서 많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12) 가정용 가스렌지는 예전에 생산되던 건 중앙부에서도 불꽃이 나왔습니다. 지금도 부탄가스를 사용하는 부루스타는 중앙부에서도 불꽃이 나오는 게 많지요. 그렇지만 화재감지 센서 부착 의무화의 영향으로, 요새 나오는 가스렌지는 가에서만 불꽃이 나오고 중앙쪽은 불꽃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에 가스렌지의 실질적인 화력이 줄어들었고, 모카포트를 사용할 때 일반 가정용 가스렌지에 삼발이로는 사용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요새는 인덕션도 많이 쓰기 때문에 가스렌지의 불에 대한 불만은 그리 많이 제기되지 않습니다만, 인덕션은 조리도구가 대단히 제한되고 섬세한 조리가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모든 불만을 해소하려면 업장용 가스렌지를 가정에 설치할 수밖에 없습니다만, 업장용 가스렌지는 화력은 좋아도 가정용처럼 쓰기 편하지 않습니다.

 

 여담인데 인덕션이 건강에 더 좋다는 건 인덕션 업체의 허위과장광고입니다. 가스렌지는 정상적인 작동을 할 때는 거의 완전연소를 합니다. 푸른 불꽃일 때는 완전연소라고 보면 됩니다. 불완전연소를 하면 탄 냄새, 그을음 등이 발생하지요. 실제 가스렌지를 사용해 물을 끓인다고 실내 PM 2.5 초미세먼지 수치가 딱히 올라가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조리 시 미세먼지는 음식이 조리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며, 그것은 인덕션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제 공정위는 전기레인지 업체의 허위과장광고에 대해 몇 년 전 시정조치한 바가 있습니다만, 당시의 허위과장광고영향인지 인덕션이 더 건강에 좋다고 아직도 알려져 있습니다. 관련 기사를 링크합니다. 실내에서 고등어를 굽는 등 조리를 하면 환기, 후드의 사용, 공기청정기의 사용 등으로 미세먼지를 제거해줘야 합니다.

 

https://www.todayenergy.kr/news/articleView.html?idxno=118832

 

 



13) 매운 떡볶이나 불닭에 쿨피스류라는 조합이 어쩌다 생겨났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쿨피스류를 꽤 좋아합니다만, 쿨피스는 고추의 매운 맛을 제거하는 데는 별 효과가 없습니다. 캡사이신은 지용성이기 때문입니다. 클렌징 오일로 화장 지우듯 입안의 캡사이신은 기름으로 지워야 한단 말이지요.

 

 그러니까 같은 종이팩에 들었어도 쿨피스보다는 우유를 마시는 게 매운 맛을 지우는 데 훨씬 좋습니다. 물론 저지방 우유 같은 건 별로 안 좋고, 지방이 많은 우유가 좋습니다. 모짜렐라처럼 유지를 제거하지 않은 치즈도 당연히 도움이 됩니다. 체다슬라이스도 도움이 되고요. 그렇지만 그라나 파다노 같은 경성 치즈(가루 치즈)는 별 도움이 안 되는데, 그라나 파다노는 탈지유로 만드는 치즈이기 때문입니다. 좀 더 고급품인 파르미자노 레자노는 탈지유 + 전유이기 때문에 그나마 그라나 파다노보다는 조금 낫긴 합니다만.

 

 그러니까 매운 떡볶이에 피자치즈, 불닭에 피자치즈 같은 요리가 코리안 스탠다드가 된 건데 실제로 잘 어울릴 수밖에 없습니다. 피자치즈는 매운맛을 줄여줍니다. 설령 모조치즈라도 기름으로 만들기 때문에 매운 맛을 줄이는 데는 유용합니다.

 

 유지방이 들어간 아이스크림은 매운맛을 씻어내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렇지만 지방이 들어가지 않은 빙과류는 씻어내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먹으면 차가우니까 입 안의 감각이 둔해져서 매운 맛을 덜 느끼게 될 뿐입니다.

 

 재워구운 김이나 견과류를 먹으면 당연히 캡사이신이 잘 씻깁니다. 초콜릿도 도움이 됩니다. 그렇지만 쿨피스는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쿨피스는 유제품이긴 합니다만, 들어가는 건 탈지분유라 거의 지방이 없습니다. 물을 마시는 거나 거기서 거기란 말이지요.

 



 

14) 우리나라에서는 별 구분 없이 딸기라 지칭하기도 합니다만, 스트로베리와 라즈베리는 아예 꽤 다른 식물이고 열매입니다. 장미과에 색깔이 빨갛다는 것 외에는 별 공통점이 없습니다.


 

 통칭 딸기인 스트로베리는 초본성입니다. 실제 키워보면 바닥을 기는 풀입니다. 야생 딸기 중에는 뱀딸기가 이에 가깝습니다. 뱀딸기를 실제 먹어보면 별 맛은 없지만 향은 딸기 향입니다. 산딸기는 풍미가 아예 다르고, 씨가 알알이 들어있고요. 목본성 식물이라 스트로베리보다는 뽕나무 열매인 오디가 산딸기에 가깝습니다. 실제 지나가다 산딸기 계열을 보신 분들은, 그게 관목에 열려있는 걸 보셨을 겁니다.

 

 원래 딸기는 초여름 열매였습니다. 90년대만 해도 노지에서 육보 같은 딸기를 많이 키웠는데, 경기권에서는 오월은 되어야 익어서 수확합니다. 그런데 점점 하우스 재배가 늘고, 품종이 설향 같은 걸로 바뀌면서 초겨울부터 나오는 열매가 되어버렸고, 실제 제철인 오월이 되면 딸기를 보기 힘든 기현상이 생겨났습니다. 요새는 육보를 보기 힘들기도 하고요.

 

 딸기 애호가들이 많은데, 딸기는 1년 내내 먹을 수 있는 열매가 아니다보니 일찍 출하되는 딸기에 돈을 기꺼이 쓰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점점 출하시기가 앞당겨졌고, 마침 개발 보급된 설향 품종이 겨울 수확 품종이기도 했고, 초여름이 되면 습하고 더워져서 유통이 어려우니까 제철에는 사라지는 기현상이 생겨버렸습니다.

 

 여전히 오뉴월에 출하되는 육보를 키우는 농가들이 있긴 한 것 같습니다만, 이젠 귀하신 몸이 된 것 같습니다. 어째 일본 품종이라고 천대받기도 하고요. 2005년에는 우리나라 딸기 생산 중 85.7%가 일본 품종인 육보 아니면 장희였습니다. 그렇지만 작년엔 생산량의 95.5%가 설향을 포함한 국산 품종입니다. 그 중에서도 설향 한 품종이 전체의 87.6%를 점유 중이지요. 여담으로 우리나라에서는 향기가 좋은 과일보다는 단 과일이 인기가 있는데, 딸기에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고 그게 딸기 제철이 겨울에서 초봄이 되어버린 주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겨울은 날이 맑으니까, 하우스에서 재배하면 충분히 햇빛을 받고 달콤한 딸기가 나올 수 있거든요. 봄이 되고 비가 오고 황사가 끼고 하면 딸기의 당도가 떨어지기 쉽습니다. 대신 새콤하고 향기가 좋은 딸기를 얻을 수는 있는 것 같습니다만, 그런 건 우리나라에선 인기 없지요.

 

 나는 금귤을 좋아해서 원래 초봄에 낑깡을 먹다가 늦봄에는 딸기를 먹으면서 최애 과일인 천도가 출시되기를 기다리곤 했었는데, 2010년대 들어 금귤과 딸기 철이 겹치고 늦봄부터 초여름에는 과일 기근기가 오는 최악의 패턴이 생겨버렸습니다. 금귤과 딸기 중 하나만 먹자면 나는 금귤을 먹게 되기 때문에, 딸기를 잘 먹지 못하고 있습니다. 초여름 노지딸기가 언젠가 부활했으면 좋겠습니다.

 


 

15) 돈까스는 어느 부위로든 만들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많이 쓰는 건 물론 등심(로스가스)이고, 안심(히레가스)도 많이 씁니다. 주관적으로 안심으로 만든 돈까스는 저작감이 좋습니다만 등심대비 냄새가 조금 나쁘고 맛이 미미하게 떨어지기 쉽습니다.

 

 실제로는 뒷다리살로도 돈까스를 곧잘 만듭니다. 뒷다리살로 만든 돈까스는 보다 고기맛이 강하고, 질감이 단단하면서 힘줄이 있는 경향이 있습니다. 돈까스를 먹다가 맛은 나쁘지 않은데 힘줄이 두엇 나오면, 대략 뒷다리살 돈까스라 생각하면 됩니다. 뒷다리살의 저작감은 안심과 반대 방향입니다. 안심이 쫄깃하다면 뒷다리살은 퍽퍽합니다.

 

 해 보신 분들은 별로 없겠지만 삼겹살로 돈까스를 만들어도 의외로 괜찮습니다. 고기가 좀 얇으면 굉장히 바삭하다 못해 딱딱하게 튀겨지는데, 딱딱하도록 구운 베이컨과 유사성이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돈까스라기에는 좀 다른 음식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맛은 나름대로 좋습니다. 튀기면 저절로 라드가 나오기 때문에 풍미 좋고 바삭하게 튀겨집니다. 딱딱 베이컨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만들어 보셔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한편으로 현대에는 많이 줄어들었지만 예전에는 다진 고기로 만든 돈까스, 일본어로는 민치(멘치)가스도 많았습니다. 흔히 피카츄나 한입 돈까스같은 저렴한 냉동 돈까스로 취급됩니다만, 민치가스는 당연히 잘 만들면 매우 맛있습니다. 실제 유럽 커틀릿 중에도 다진 고기로 만드는 게 많고요. 문제는 우리나라에서는 잘 만든 민치가스 먹는 게 매우 어렵다는 겁니다.

 


 

16) 일본 소설이나 만화 등을 보면 메론빵이라는 빵이 많이 나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잘 팔지 않지만, 메론빵은 소보로빵과 유사한 빵입니다. 빵에 붙은 쿠키반죽의 종류가 조금 다르고, 조금 더 얇게, 체크무늬로 붙인 거지요. 실물 못 보신 분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대략 롯데 마가레트 모양 소보로빵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원래는 멜론이 안 들어가는 빵인데 이름이 멜론빵이다보니 멜론을 넣기도 합니다.

 

 주관적으로는 소보로빵이 메론빵보다 맛있습니다. 모양이나 이름은 메론빵이 귀엽지만요. 일본에서는 소보로빵은 거의 안 만들어먹고, 메론빵을 만들어먹는다는데 메론빵이 맛은 좀 덜해도 귀여우니까 만들어먹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소보로빵은 분명 일본에서 전래된 빵인데, 경양식 돈까스처럼 한국 음식이 되어 버렸습니다.


 

 나는 맘모스빵이야말로 소보로빵의 올바른 진화 방향이라고 믿습니다. 맘모스빵은 우리나라에서 어레인지된 빵으로 추정되며, 일본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일본 거주하던 한인들이 우리나라에 귀국하면 맘모스빵을 사서 챙겨 먹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고 전해집니다.

 




17) 밥은 같은 쌀이라도 어떤 물로, 어떻게, 어떤 도구로 짓느냐에 따라 맛이 제법 달라진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떤 게 맛있느냐라고 한다면, 좋은 쌀로 지은 밥이 맛있는데요. 어떻게 짓느냐에 따라 맛있는 수준은 비슷하더라도 맛이 나는 방식은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물 외에 다른 걸 첨가해서 짓는 분들도 있는데, 나는 그건 그냥 이 아니라 부재료를 명시해서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음식이니까요.

 

 압력솥을 쓰면 쌀을 불리지 않아도 충분히 밥을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 생각에 불린 쌀과 불리지 않은 쌀은 결과물이 다릅니다. 불리지 않은 쪽이 아무래도 고슬하게 나오는 경향이 있고, 충분히 불린 쌀은 차지게 나오는 경향이 있습니다. 맛 자체도 좀 다른 것 같긴 한데,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압력솥과 일반 솥 또는 냄비에 한 밥을 비교하면, 냄비에 한 밥 쪽이 더 고슬합니다. 취향에 따라 냄비밥을 선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냄비밥 쪽이 짓는 데 손이 더 많이 갑니다. 압력솥으로 짓는 게 편하지요.

 

 전기솥은 요새는 거의 다 압력솥인데, 아무래도 맛이 일정하게 나옵니다. 기술이 좋아져서 밥맛이 절대 나쁘지는 않은데, 지어주는 대로 먹어야 한다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인 것 같습니다. 수동 모드가 아니고 오토 모드만 된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지은 밥을 보관할 때는 밥 냉동용 밀폐용기에 소분해 담아 얼리는 게 최고입니다. 갓 지은 밥에 근접하는 맛을 그나마 유지하려면 냉동 말고는 방법이 없습니다. 대조적으로 전기밥솥의 보온모드에 보관하는 건 밥을 가장 맛없게 보관하는 방식입니다.

 


 

18) 밥을 할 때 누룽지가 생기게 하느냐, 안 생기게 하느냐에 따라 밥향이 꽤 달라집니다. 되거나, 고슬하지 않게, 충분히 차지게, 그렇다고 질지는 않게 익히면서 누릉지가 전혀 생기지 않도록 밥을 짓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요. 주관적으로는 누룽지가 생기지 않아야 순수한 밥향이 난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대중적으로는 누룽지가 좀 생긴 밥 쪽이 인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가마솥이나 (압력솥이 아닌) 곱돌솥을 쓴 밥은 어지간해서는 누룽지가 생깁니다. 돌솥밥을 주는 한식집에 가면 물을 부어 누룽지를 마지막에 먹는 게 별미지요. 대조적으로 전기솥은 누룽지가 잘 안생깁니다. 그래서 전기솥으로 한 밥은 가마솥으로 한 밥과 냄새부터 좀 다르긴 합니다.

 

 밥할 때 누룽지가 생기지 않아도 밥을 팬에 구워서 누룽지를 만들 수 있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좀 말려두면 좋은 보존식이 됩니다. 완전히 마른 누룽지는 상온에서 부패하지 않습니다. 그냥 먹기엔 너무 딱딱하지만 뜨거운 물에 잠깐 끓이거나 불리면 됩니다. 좀 만들어두면 햇반 같은 걸 대체할 수 있지요. 물론 파는 것도 있고요.

 


 

19) 고래회충, 즉 아니사키스는 야생 바닷물고기에 흔한 기생충입니다. 아니사키스는 생선이 살아 있을 때는 주로 내장 쪽에 있는데, 일부는 생선이 죽고 나면 살로 옮겨가기도 합니다. 그리고 살아서 사람의 위장으로 들어가면 난리를 치면서 위장벽이나 장벽으로 파고들기도 하지요. 드물지만 매우 골치 아픈 증상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위천공이라거나. 장폐색이라거나. 구충제 안 들으니까 애초에 산 채로 위장에 보내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지난 40년 동안 고래회충은 283배 폭증했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별 위험이 없었지만, 요새는 흔해졌다는 이야기인데요. 고래회충은 최종숙주가 고래입니다. 예전엔 고래가 멸종 위기종이었지만, 지난 수십 년 동안 사람들이 고래를 보호하면서 개체수가 많이 늘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은 좀 잡아먹게 해 달라고 오랫동안 요청 중인데요. 고래를 비롯한 해양포유류가 는 게 고래회충이 흔해진 주된 이유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예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자연산 회는 가능한 생선이 살아있을 때 내장을 깔끔하게 제거하고, 제거하는 데 사용한 도마, , 손을 깨끗하게 씻거나 교체하고 회를 뜹니다.

2. 회를 뜰 때 고래회충이 있는지 잘 살피고, 회를 가급적 얇게 뜹니다. 먹을 때 잘 씹어 먹습니다.

3. 익혀 먹으면 안전합니다.

4. 참치 냉동고 같은 -35이하로 내려가는 저온냉동고에서 얼었던 생선은 안전합니다. 그렇지만 일반 냉동고에서는 며칠씩 살아남습니다.

5. 생선회를 먹고 명치가 매우 아프면 지체 없이 병원에 갑니다. 지체하면 안 됩니다.

6. 먹이가 통제되는 양식어는 거의 안전합니다.

 

 직접 회를 떠먹는 입장이 아닌, 단순한 회 소비자에게 중요한 건 2번인 것 같습니다. 고래회충도 생명체라 씹히면 죽습니다. 회를 드실 때는 잘 씹어 드세요. 고래회충 같은 게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좋고요. 보통은 없겠지만.

 

 미리 죽은 생선 회 떠먹을 때는 진짜로 고래회충을 신경 써야 합니다. 내장제거가 안 되어 있는 건 뜰 때 뱃살 쪽에 고래회충 없나 잘 살펴봐야 합니다. 시력 안 좋은 분들은 선어회 뜨면 안 됩니다. 춘추 있는 분들은 안경 쓰고 뜨세요.

 

 여담으로 생강이 고래회충 구충에 도움이 된다는 속설이 있는데, 근거가 있는 이야기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횟집에서 초생강을 먹어주면 딱히 나쁠 건 없겠지요.

 

 확률적으로 고래회충이 별로 위험하지는 않습니다. 독감 걸려 죽을 확률이 회를 즐기다 고래회충으로 고생할 확률보다 훨씬 높습니다. 자연산 회 많이 먹으면서 잘 안 씹고 삼키는 스타일한테나 좀 위험할 수 있을까요.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만 회는 잘 씹어 드세요.

 

 


  

20) 우리나라에서 키우는 마늘은 대략 한지형과 난지형이 있습니다. 한지형 마늘이 육쪽마늘입니다. 편수가 적고 풍미가 강합니다. 대조적으로 난지형은 대체로 편수가 많고, 풍미가 연하지요. 가격은 한지형 > 난지형입니다.

 

 가격차와 품질차가 나기 때문에 보통 한지형 마늘은 벗기거나 편을 분리하지 않은 상태로 통째로 유통됩니다. 난지형은 편을 분리하거나 아예 편 껍질을 깐 상태로 유통되는 경우가 많고요. 한지형이 저장성이 높아서 통째로 잘 말리면 제법 오래 보존 가능합니다.

 

 요리에 사용할 때 평균적인 한지형과 난지형 마늘의 풍미 차이는 꽤 큽니다. 비슷한 정도의 마늘 풍미를 내려면, 한지형에 비해 난지형 마늘을 사용할 때는 확연히 더 많이 넣어야 합니다.

 

 난지형 마늘이 장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풍미가 약하다는 건 먹기에 부담이 적다는 뜻도 됩니다. 싸니까 많이 먹을 수도 있고요. 마늘 편 자체를 먹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 때는 난지형 마늘도 괜찮습니다. 마늘을 익히지 않고 생으로 먹으려면 난지형이 그나마 덜 자극적입니다. 한지형 마늘은 맵습니다.

 

 그렇더라도 기본적으로 맛있는 건 한지형 쪽입니다. 괜히 육쪽마늘이 비싼 게 아닙니다. 보통 육쪽마늘 대비 깐마늘이 맛이 없는 건, 마늘을 까 둔 영향보다도 국내산이라도 난지형 마늘을 주로 까 두는 영향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산 마늘이거나요.




 

21) 마늘은 보관하다보면 저절로 싹이 트기도 하는데, 싹튼 마늘은 구근 부분의 맛이 당연히 떨어집니다. 그런데 마늘 싹은 그 자체로도 맛이 괜찮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싹을 일부러 키워서 마파두부 등의 요리에 사용합니다. 실제로 마파두부 만들 때 마늘 싹을 넣으면 맛이 좋습니다. 감자싹을 먹으면 안 되기 때문에, 가끔 마늘싹도 먹으면 안 되냐는 의문을 가진 분들도 있는데 파 계열은 모두 싹을 먹어도 됩니다.

 

 한편으로 마늘종을 마늘싹이라 부르기도 합니다만, 구근에서 키운 싹과 마늘종은 다릅니다. 마늘종은 마늘의 꽃대입니다. 마늘싹이 없을 때는 마늘종으로 대체할 수도 있긴 합니다만, 식감 등이 다릅니다.

 

 양파를 싹틔우면 가는 파와 비슷한 게 자라나는데, 대파나 쪽파에 비교하면 풍미가 매우 약한 게 자라납니다. 대파도 쪽파도 없다면 대신 쓸 수는 있습니다만, 딱히 일부러 먹을 만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셜롯도 마찬가지인 것 같고요.

 



 

22) 국밥은 밈이 될 정도로 가성비가 매우 좋은 음식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성비가 좋아 근래 보급이 많이 된 음식이 콩나물국밥과 순대국밥일 것입니다. 수도권은 옛날에는 설렁탕이 대세였는데, 근래 순대국이 설렁탕을 몰아내고 대세를 거머쥐었습니다. 설렁탕보다 저렴한데다 설렁탕처럼 농축액 사용시비 같은 것도 없고, 건더기도 많은 편이라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순대국밥은 돼지국밥과 거의 같은 요리입니다. 실제 시판하는 순대국과 돼지국밥이 좀 다른 스타일을 가지고 있긴 합니다만, 돼지국밥을 주로 먹는 부울경 지역과 타 지역의 입맛 차이에 기인한 걸로 추정하고 있고요. 평균적으로 돼지국밥이 순대국밥에 비해 맑은 편입니다. 스타일 차이를 제외하면 돼지국밥에 순대 몇 조각이 들어가면 순대국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돼지국밥에는 순대 대신 부추가 들어간다고 해도 될까요.

 

 다만 순대국에는 소뼈육수를 활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소뼈육수를 사용하게 되면 아무래도 돼지국밥과 현저하게 다른 맛이 됩니다. 보통 순대국밥 육수는 돼지 등뼈로 끓이는데, 그렇게 하는 집은 메뉴판에 뼈해장국이 있습니다. 메뉴판에 뼈해장국이 없는 순대국집은 직접 육수를 끓이지 않거나 소뼈육수를 사용하는 집입니다. 나는 순대국을 나름대로 좋아합니만 불쾌한 냄새를 느낄 때가 잦고, 소뼈육수를 사용한 곳들이 입에 더 맞는다고 느낍니다.

 

 돼지국밥의 또 다른 자매 메뉴로 고기국수(돼지국수)를 꼽을 수 있습니다. 고기국수는 가장 유명한 제주 음식인데, 타 지역과는 달리 돼지를 매우 진하게 우려내고 마늘 같은 스파이스는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한식 아닌 것처럼 깔끔하면서 진한 맛입니다. 제주식 고기국수에서 면이 아닌 밥을 주는 건 돼지국밥이라 하는데, 부산경남식 돼지국밥과는 이름은 같지만 꽤 스타일이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23) 비빔밥을 한식으로 홍보, 보급한다고 했을 때 그게 과연 성공할까 싶었습니다. 물론 비빔밥의 맛은 한국인이라면 딱히 싫어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만, 비빈 후의 비주얼이 영 아니잖습니까. 그런데 의외로 채식주의자들 때문에 성공적으로 보급 중이라 합니다. 그야 채식 메뉴 중에야 맛있는 편이긴 할 테지요. 나는 계란이 빠진 비빔밥은 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참기름과 고추장을 쓴 비빔밥이 일반적이고 그게 다양한 재료와 어울리는 편입니다만, 별다른 재료가 들어가지 않는 간장버터계란 비빔밥도 매우 맛있습니다. 일본인들은 간장에 날계란밥을 워낙 좋아해서 계란밥에 어울리는 양념간장을 개발해 시판하기도 하는데, 그건 나름대로 맛있지만 참기름과는 어울려도 버터와는 풍미가 어긋납니다. 계란간장은 요새는 국내 브랜드에서도 나오고 있고요. 간장버터계란에는 순수한 무염버터에 품질이 좋은 양조간장, 그리고 뒤집지 않고 한 면을 완전히 튀긴 계란프라이가 최적입니다.

 

 콩나물밥은 급식이나 저렴한 도시락 등으로 먹으면 맛이 없습니다만, 잘 만들면 맛있습니다. 간장으로 비비는 걸 전제로 하는 밥이라, 밥 지을 때부터 태생적인 비빔밥입니다. 정석은 달래를 잘게 썰어 넣은 달래간장으로 비벼 먹는 겁니다. 콩나물밥에 달래간장은 달래를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여담인데 달래와 다래는 물론 전혀 다른 겁니다.

 

 보리밥을 주로 파는 식당은 거의 비빔밥 집입니다. 보리밥은 비빔밥으로 먹을 때 맛있습니다. 순수하게 보리로만 지은 꽁보리밥은 밥알끼리 엉겨 붙지 않으면서도 찰보리인 경우 적절한 찰기와 부드러움이 있어 비빔밥에 최적입니다. 보리밥은 다른 방식으로 먹는 것보다 비빔밥이 가장 맛있는 것 같습니다.




 

24) 나는 우리나라 프라이드치킨을 크게 3가지 타입으로 분류합니다. 일단 하나는 일반적인 튀김옷. 맥시칸이나 페리카나 같은 오래 된 브랜드들이 기본적으로 튀겨주는 타입입니다. 그리고 그보다 튀김옷이 얇은 타입이 있습니다. 보드람이나 마리째 통째로 튀기는 옛날통닭 같은 타입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물결무늬 튀김옷이 두껍게 붙은 크리스피 치킨이 있지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크리스피 치킨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KFC같은 경우 핫크리스피 치킨이 오리지널 치킨보다 인기가 좋은 나라는 거의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하지요. 한 때 KFC와 거의 비슷한 맛이라고 홍보하면서 인기를 몰았던 부어치킨도 오리지널이 아닌 핫크리스피를 비슷하게 만든 거였습니다.

 

 BBQ는 기본이라 할 수 있는 황금올리브 치킨이 크리스피 타입입니다만, 바삭칸 치킨이라고 얇은 튀김옷 치킨도 팔고 있습니다. 나는 튀김옷이 얇은 타입을 좋아해서, BBQ는 바삭칸 치킨이 좋고 KFC는 오리지날을 선호합니다. ‘바삭칸치킨인데 크리스피타입이 아니라 얇은 튀김옷인 건 재미있는 표현이라 생각합니다. 얇은 튀김옷 치킨의 바삭함과 크리스피 치킨의 바삭함은, 둘 다 바삭하지만 좀 느낌이 다르지요.

 

 한편 사견으로 잘 만든 치킨은 크리스피도 맛있지만, 못 만들었을 때는 크리스피 쪽이 압도적으로 맛이 없는 것 같습니다. 튀김옷이 기름을 과도하게 먹어서 지나치게 기름진 치킨이 나오거든요. 만약 기름이 산패라도 되거나 염지가 잘 안 된 치킨이면 압도적으로 맛없습니다. 그리고 양념치킨으로 만들면 크리스피보다 중간 두께 튀김옷 치킨이 명백하게 맛있다고 생각합니다.

 


 

25) 탕수육 계열 요리는 중국에서도 지역마다 스타일이 다양한데, 우리나라에서는 굉장히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만들어 팔리고 있는 계열은 대략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1. 얇고 넓적한 고기 (꿔바로우) or 가늘고 긴 고기 (탕수육)

2. 튀김옷의 재료 : 밀가루 or 감자/고구마/옥수수 전분 or 찹쌀가루 or 타피오카 전분

3. 소스의 소재 : 채소, 케챱, 파인애플, 레몬의 사용유무

4. 사용 부위 : 등심, 안심, 뒷다리살, 기타

 

 일단 우리나라에서 만들어 파는 꿔바로우는 밀가루는 잘 안 씁니다. 보통은 찹쌀가루를 쓰는데, 중국 현지 꿔바로우는 전분을 사용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에도 전분을 쓰는 곳이 있긴 할 겁니다. 다만 우리나라에서 꿔바로우는 어째 찹쌀 탕수육으로 처음에 알려져서, 찹쌀을 주로 쓰는 것 같습니다.

 

 꿔바로우는 양꼬치집에서 시켜야 맛있고, 인천 차이나타운이나 북경오리집 같은 곳에서 시키면 보통 맛없습니다. 이유는 꿔바로우는 원래 동북(둥베이) 요리라 그렇습니다.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중화요리는 일차적인 기원이 산동성(산둥) 요리고, 거기에 화북(화베이) 요리나 광동(광둥)요리가 섞인 형태인데 산동이나 화북에서 먹는 탕수육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먹는 탕수육에 가까운 것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모처의 꿔바로우는 고기는 얇은데 튀김옷을 듬뿍 써서 튀겨서, 식감이 찹쌀도넛 같은 느낌이 꽤 있습니다. 나는 찹쌀도넛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 스타일도 좋은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만들던 전통적인 탕수육은 대략 밀가루 옷에 슴슴한 간장식초 소스맛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광동식의 영향도 받고 하면서 케챱, 파인애플 등이 사용되는 경우도 흔해졌고, 식초보다 풍미가 좋은 레몬 등을 사용하는 경우도 생겼습니다. 고기도 뒷다리살이나 안심 등도 사용하게 되었고요.

 

 주관적으로 간장이나 케챱은 소스에 많이 쓰면 소스맛이 진해져서 부먹보다 찍먹이 어울리게 변하는 것 같습니다. 간장이건 케챱이건 숨김맛처럼 소량을 쓰면서 섬세하고 치밀한 맛을 내는 게 잘 만든 탕수소스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최근에는 꿔바로우가 아닌 일반 탕수육에도 찹쌀튀김옷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밀가루 튀김옷의 다소 폭신하면서 부드러운 느낌보다 찹쌀튀김옷의 아삭한 느낌이 대중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것 같은데요. 나는 길쭉 탕수육에는 밀가루 옷이 좋지만 찹쌀탕수육도 나름대로 맛있는 것 같습니다.

 


 

26) 찹쌀도넛은 팥이 들어가도 맛있지만, 팥이 들어가지 않은 속이 빈 것도 맛있습니다. 속 빈 찹쌀도넛은 부피 대비 저렴한 게 매력입니다.

 

 그런데 예전에 시장에서 찹쌀도넛을 샀더니, 종이봉투에 녹색 물이 배어나와 무척 수상하게 여긴 적이 있습니다. 찹쌀도넛 먹다 죽은 사람 이야기는 못 들어서 수상하게 여기면서도 먹었는데, 맛은 이상이 없어서 뭔가 하다가 나중에 정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 찹쌀도넛은 찹쌀도넛이 아니라 타피오카 도넛이었던 것입니다.

 

 타피오카 반죽으로 만드는 대표적인 빵이 깨찰빵입니다. 깨찰빵을 먹다 보면 속이 녹색인 경우를 볼 수가 있는데, 내가 먹었던 찹쌀도넛도 동일한 경우였던 것 같습니다.

 

 만일 찹쌀 도넛을 먹다가 기름에서 녹색 기운이 보여도 너무 놀라실 건 없습니다. 진짜 찹쌀로 만드는 찹쌀도넛은 좀 드뭅니다. 많은 경우 타피오카를 씁니다.

 



 

27) 빵과 떡의 경계는 좀 애매한 면이 있습니다. 술빵이나 만터우, 포자(파오즈), 꽃빵, /호빵은 그 경계에 있는 음식이겠지요. 깨찰빵이나 찹쌀가루 믹스 빵 계열도 그렇고요. 구운 것만 빵이라 부르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크게 부풀리면 빵이냐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애매하게 부풀린 난(인도 음식)부터 아예 안 부풀린 차파티, 로티 계열도 빵이고, 밀가루 문화권에서 무발효빵은 그리 드물지 않은 레시피입니다. 여담인데 차파티는 만들어 먹어 보면 의외로 먹을 만 합니다. 밀가루를 물반죽해서 얇게 만든 다음 그냥 잘 구우면 됩니다. 원래는 통밀가루를 씁니다만 백밀가루도 당연히 무방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잘 의식하지 못합니다만, 야채호빵은 명백하게 포자(파오즈)의 일종입니다. 만두집에서 왕만두라고 파는 것과 야채호빵은 거의 다르지 않습니다. 야채호빵 쪽이 빵 비율이 좀 더 높긴 합니다만. 주관적으로는 같은 호빵이라도 야채호빵은 주식이고 팥 호빵은 디저트 느낌입니다.

 

 여담으로 많은 분들이 잘 의식하고 있지 못합니다만, 중국 화베이 지역은 쌀 문화권이 아닙니다. 밀 문화권이고 면과 만두를 포함한 찐빵 및 튀김빵을 주식으로 먹지요. 코에이에서 삼국지 게임을 만들 때 주곡을 로 만들어놔서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 같기도 한데, 그건 명백한 고증 오류입니다. ‘’, ‘’, ‘같은 걸로 만들어놨어야 올바른 고증이고요. 당시에도 중원에서는 쌀 별로 안 먹었고 지금도 화베이에서 쌀은 별식입니다.

 

 개화 이전에 중국에서 왜 화덕에 구운 빵을 만들어먹지 않았는지는 좀 의문스러운데,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강력분 품종이 없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고요. 아시안이 서양인보다 타액분비량이 적어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는 지금도 저배율 빵을 많이 안 먹는데, 촉촉하지 않은 빵을 먹으면 맛없고 뻑뻑하다 느끼는 사람이 많습니다. 실제 저배율 빵도 밀, , 이스트로만 굽는 경우가 별로 없습니다. 그러니까 중국에서도 찐빵 쪽이 아무래도 더 촉촉하니까 인기가 있었을 수도 있겠지요.

 



 

28) 주관적으로 쌀이 그냥 익혀 먹을 때는 곡물 중 제일 맛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엿을 만들거나 양조주를 담그거나 해도 맛있습니다. 쌀이 인류의 축복인건지, 인류가 쌀의 노예인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런데 쌀은 주관적으로 증류주로 만들면 맛이 없습니다. 전통식 쌀소주가 맛이 없단 말이지요. 그러니까 나는 우리나라에서 희석하고 조미한 타피오카 보드카가 소주라는 이름으로 일반화된 후, 지금도 그게 변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타피오카 소주는 입에 안 맞아서 못 마시지만요.

 

 나는 증류주 만드는 기술과 노하우는 중국과 스코틀랜드와 일본이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비싼 꼬냑을 마시느니 저렴한 샤블리나 싱글 캐스크 버번/테네시 마시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프랑스를 꼽지 않습니다. 프랑스 사람들도 스카치 많이 마십니다.


 

 여하튼 온갖 종류의 바이지우(백주)가 다 있는 중국에서 쌀소주는 많이 안 마십니다. 그 넓은 전국에서 온갖 바이지우는 다 만들어본 결과 쌀로 만든 게 딱히 맛있지 않다는 게 결론이라는 거지요. 물론 바이지우 주산지가 쌀이 별로 안 나오는 지역이라는 것도 하나의 이유겠습니다만, 맛있으면 외지 쌀이라도 가져다 만들겠지요.

 

 바이지우의 주재료는 많이 알려져 있다시피 수수입니다. 다른 말로 고량. 그래서 바이지우를 대체로 고량주라 부르지요. 물론 바이지우에 수수만 쓰는 건 아니긴 합니다. 중국 사람들답게 이것저것 다 씁니다. 쌀도 씁니다. 거의 쌀로만 만든 바이지우도 있긴 있습니다. 이것저것 다 써서 좋은 결과물을 만들면 된다고 생각하지요. 그리고 일본 소주도 고구마가 주류입니다. 보리도 쓰고요.


 

 우리나라 전통증류주 중에도 쌀로 만들지 않은 게 있습니다. 문배주라고, 김포에서 만듭니다. 원래는 평양 지역 술이라 하고요. 재료는 수수, 조에 밀누룩입니다. 좀 거칠긴 한데, 주관적으로는 쌀소주 같은 것과는 품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산 바이지우와 비견하면... 완성도가 좋다고 하긴 어려운데, 매력은 있습니다.

 

 나는 어릴 때 문배주를 처음 마셨을 때 무척 맛있어서 좀 놀랐습니다. 그런데 명절에 한 잔 얻어먹었던 거고, 정확히 무슨 술인지 기억을 못 해서 한동안 전통증류주 이것저것 마셔보다가 겨우 찾았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 만드는 사람도 바뀌고 공법도 바뀌어서 옛날 그 정도 수준의 풍미는 나오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맛있긴 합니다.

 

 여담으로 23도짜리 저렴이 문배주도 파는데 그건 진짜 문배주가 아니라는 평입니다.

 



 

29) 우리나라 사람들은 술맛을 모릅니다. 그 명백한 증거가 우리나라 판매용 스카치에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시판하는 스카치는 35~40도가 많습니다. 201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저도수화되었지요. 해외에서 파는 제대로 된 블렌디드 스카치는 보통 43도고요. 아예 고급품인 싱글 캐스크는 물을 아예 섞지 않아서 60도 전후 된다는 걸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요.

 

 웃프게도 우리나라는 스카치가 정말 많이 팔리는 나라입니다. 다만 사람들이 맛을 즐기려고 마시는 게 아니고, 유흥업소 같은 데서 마구 마셔버리는 게 문제지요. 스트레이트 잔을 원샷하는 문화다보니 도수가 낮아졌습니다. 요새는 희석식 소주도 청주 수준으로 도수가 낮아지고 있고요.


 

 한편으로 이명박 시절엔 탁주(막걸리)가 유행했었는데, 그 땐 와인 페어에도 탁주 부스가 있을 정도였습니다. 탁주를 라이스 와인이라고 부르곤 하고요. 그런데 내 생각엔 이화주같은 걸 제외한 탁주의 고급화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이미 쌀 양조주를 고급화시키는 방식은 거의 알려져 있습니다. 입맛이야 각자 다를 수 있지만, 일반적인 기준으로는 어떻게 해도 탁주는 준마이다이긴죠처럼 고급스러운 맛을 낼 수 없습니다.

 

 애초에 일본에서는 양조용 쌀을 따로 키웁니다. 양조용 품종만 100종류가 넘고 신경 써서 키우지요. 그런데도 와인에서 그랑/프리미어 크뤼 취급하듯 제대로 논 구분해서 고급화하지 않는다고 불만의 목소리가 있습니다. 대조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탁주 고급화 이야기는 나오지만 대부분의 탁주는 수입쌀로 만들며, 그 수입쌀은 남아도는 국내산 쌀보다 미미하게 저렴할 뿐입니다. 그나마 있던 탁주 열풍도 끝났고 요새는 사람들이 아주 많이 희석한 소주를 마시고 있지요. 우리나라 소주 도수는 옛날 대비 반토막 났습니다.

 


 

30) 우리나라의 인스턴트 라면사에는 큰 사건이 대략 3번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2010년대의 하얀국물라면 유행이나 짜왕을 선두로 한 굵은 면발 중화라면의 유행 같은 건 작은 유행이겠고요. 큰 사건을 꼽아보면.

 

 첫 번째로 꼽아야할 건 역시나 1989년의 우지파동입니다. 그 이전엔 삼양라면은 우지(쇠기름)로 튀겼었는데, 당시 법률이나 관행으로나 별 문제가 없었음에도 공업용 우지로 라면을 튀긴다는 게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문제시되었습니다. 검찰은 문제 있다고 주장하는데 당시 보건사회부는 문제없다고 결론을 내리기도 했었지요. 객관적으로는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당시 수사를 지휘한 검찰이 김기춘이라는 게 2016년에 뒤늦게 밝혀지기도 했었지요.


 이후 삼양라면은 몇 년간 아예 시판되지도 못했고, 법정에서 승소하여 재출시를 하게 된 이후에는 예전만큼의 퀄리티를 보이지 못했습니다. 삼양라면은 쇠기름으로 튀긴 게 맛있었습니다. 지금이야 삼양식품은 불닭식품 다 됐습니다만. 그리고 당시 파동으로 우리나라 요리에는 동물성 기름을 거의 사용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팜유나 쇼트닝으로 대체하게 되었지요. 식문화 전반의 수준이 떨어지게 된 겁니다.


 

 두 번째로 꼽아야 할 건 빙그레의 라면사업 철수입니다. 빙그레는 1985년부터 2003년까지 라면을 생산해 팔았습니다. 20년도 안 되는 생산이었고, 상업적으로 실패했으니까 철수한 거였긴 한데 애호가들한테는 전설이 되어 있지요. 나는 우지파동 이전에는 삼양라면을 먹다가 우지파동 이후 삼양라면을 구매할 수 없게 된 이후 빙그레 라면을 먹었고, 빙그레 라면이 사라질 때까지 먹었습니다. 그래서 기억에 많이 남아있어요.

 

 빙그레에서 시판했던 매운콩라면은 팜유가 아닌 콩기름을 사용해서 인기가 좋았습니다. 매운콩라면은 우지파동 이후 팜유로 튀기지 않은 유일한 메이저 브랜드 라면이었고, 그게 사라진 이후에는 브랜드 라면 중 유탕면은 모두 팜유로 튀기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세 번째로 꼽아야 할 건 2010년 경 농심, 삼양식품, 오뚜기의 모든 라면에서 MSG가 빠지게 된 사건입니다. MSG가 몸에 나쁘다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근거는 없습니다만, MSG가 몸에 나쁘다는 관념은 오래 전부터 있었습니다. 본질이 화학조미료 국물인 라면에서 MSG를 뺀다고 건강에 좋은 게 될 리 없지만, MSG를 빼는 마케팅은 빙그레가 라면 팔던 시절부터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게 2010년이 다가올 때쯤 불이 붙지요. MSG가 나쁘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팔도를 제외한 모든 메이저 브랜드의 라면에서 MSG가 빠지게 된 것입니다.

 

 MSG는 몸에는 별 영향이 없지만 맛에는 영향이 큽니다. 라면 전반에서 MSG가 빠지자 맛이 많이 변하게 되었지요. 사견으로는 당시 농심 라면이 맛이 많이 떨어지게 되었고, 그 악영향은 5년 이상 갔습니다. 라면은 보통 사람들 생각보다 꽤나 자주 맛을 미미하게 바꾸는 편인데, 그렇게 하면서도 농심이 MSG 뺀 라면 맛 끌어올리는 데는 아주 오랜 세월이 걸렸다고 생각합니다. 삼양식품이나 오뚜기는 퀄리티엔 문제가 없었지만 끓이는 데 좀 노하우가 필요한 제품들(잘못 끓이면 맛없는)을 한동안 내놓았었고요. 팔도는 여전히 MSG를 유지중입니다만, 원체 일반 라면은 약하고 용기면이나 비빔면, PB라면 같은 것만 강한 회사라 존재감이 강하지는 못합니다. 그래도 2020년 현재 고전적인 인스턴트 라면 맛을 그나마 가장 잘 유지하고 있는 회사는 팔도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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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 관련 이런저런 이야기 #4

식이 2020. 10. 14. 17:41 Posted by 해양장미

 브금

 

https://youtu.be/8i8ZYp3Vpgw

 

 

1- https://oceanrose.tistory.com/1202

2- https://oceanrose.tistory.com/1205

3- https://oceanrose.tistory.com/1213

 

 

 

 

 

1) 콩국수는 유니크한 한식입니다. 콩국수와 같은 요리는 다른 나라에서는 먹지 않는 것 같습니다.

 

 콩국수에 대한 호불호는 각자 꽤 다른 것 같은데, 나는 매우 좋아하는 편입니다. 냉면보다 콩국수를 좋아하고 있고, 여름에는 거의 매일 먹어도 괜찮습니다. 그렇지만 콩국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이해는 가는게, 나도 어릴 때는 콩국수 맛을 잘 몰랐기 때문입니다.

 

 냉면도 그렇지만 콩국수도 꽤 방식이나 기호가 다양합니다. 잘 언급되지는 않지만 두드러지는 방식 및 기호의 차이는 얼마나 비지를 거른 맑은 콩물을 쓰는가일 겁니다. 비지를 전혀 거르지 않아 걸죽한 콩국수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비지를 최대한 완전히 걸러 매우 맑은 콩국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실제 시판하는 걸 보면 중간 정도 형태도 많고요.

 

 콩물은 화합물이 아니라 혼합물입니다. 삶아 갈은 콩 입자의 고형 성분은 물에 용해되지 않습니다. 즉 이 문제는 어느 사이즈의 입자까지 허용하느냐의 문제입니다. 비지에 해당하는 큰 입자가 많을 경우, 콩 맛은 진해집니다만 맑은 느낌이 없고, 먹을 때 충분히 씹지 않으면 목에 걸리는, 일종의 텁텁한 느낌을 남기게 됩니다. 대조적으로 맑은 콩물에 가까울수록 맑고 목넘김도 깔끔합니다만 콩 맛이 연해지기 쉽지요. 나는 맑은 콩물을 선호하고, 너무 비지가 많이 들어간 건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맑은 콩물 쪽이 정석이라 보이는데, 한 때 시판 두유나 두부 간 것 같은 걸 사용한 콩국수가 꽤 팔렸기 때문에 비지가 들어간 쪽이 진짜 갈아 만든 콩국수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그 맛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많이 늘어난 것 같습니다.

 

 어떤 면을 사용하느냐도 기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 면이나 사용해도 잘 어울리기 때문입니다. 나는 해서 먹을 때는 소면을 사용하는데, 바깥에서 먹으면 손칼국수로 된 걸 주로 먹게 됩니다. 소면보다 중면을 선호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어느 쪽이건 맛있는 것 같습니다.

 

 콩국수는 대체로 소금간을 해서 먹습니다만, 전라도 쪽에서는 콩국수에 소금이 아닌 설탕을 넣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나는 달콤한 콩국수는 한 번 먹어봤는데, 입에 맞지 않았습니다만 식사가 아닌 디저트로 소량을 먹는다면 괜찮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2) 칼국수는 전국적으로 매우 다양한 형태가 있는데, 인천 지역은 해안이라 그런지 대략 멸치, 디포리, 바지락 등을 활용한 해물칼국수가 주류입니다. 그렇지만 인천은 지리적으로는 경기권이기 때문에 닭육수나 소 사골육수를 활용한 서울 / 경기식 칼국수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나는 해물칼국수 계열을 좋아하는데, 육수맛보다도 면 스타일에 대한 호불호 차이인 것 같습니다. 해물칼국수는 보통 두꺼운 면을 씁니다. 칼국수는 다른 면 요리와는 달리 면반죽을 육수에 넣고 삶아서 그대로 먹는 요리입니다. 그래서 국물에 전분기가 풀어져서 점도가 생기고, 면은 퍼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조리법 때문에 영어로는 Noodle Soup라 부르기도 하지요. 나는 면이 수제비처럼 좀 두꺼워야 그렇게 퍼져도 쫀쫀하고 질감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닭 칼국수나 사골 칼국수는 면이 얇은 경향이 있습니다. 아예 생면이 아니라 건면을 쓰는 경우도 많지요. 얇은 면을 육수에 그대로 삶아내니까, 국물의 점도가 많이 올라가는 대신 면이 쉽게 퍼져버립니다. 그 느낌을 좋아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나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잘못하면 면 반죽끼리 붙지 말라고 사용한 생밀가루 맛이 너무 나게 되기도 하고요.

 

 

 

 

3) 세계적으로 간장은 크게 두 종류가 있습니다. 콩간장과 어간장(어장)입니다. 세계적으로는 어간장을 더 많이 씁니다. 어간장은 지중해 문화권인 로마 제국에서도 많이 먹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콩간장 문화권입니다만, 어간장의 일종인 액젓은 김치 등을 담글 때 씁니다. 콩간장이 주류니까 활용이 다양하지는 않지만요.

 

 콩간장의 주재료인 대두는 만주가 원산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와 중국 북부, 일본 등지에서 대두를 활용한 요리법이 발달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순수하게 대두를 이용한 장이 발달한 편이었는데, 흔히 국간장으로 활용하는 조선간장은 콩만 사용한 장입니다.

 

 대조적으로 일본에서는 밀, 보리를 섞는 방식이 발전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방식이 우리가 현대에 주로 먹는 왜간장입니다. 대체로 우리나라에서 왜간장은 공업화된 방식으로 만들고 있고, 현대 기술 덕에 저렴하게 맛있는 간장을 먹고 있지요.

 

 공업 기술로 만든 간장 중 산분해 간장이 있습니다. 균을 이용해 단백질을 분해하는 전통적 방식 대신 염산으로 분해한 후 소다로 중화하는 방식인데요. 화학적 방식이다보니 사람들이 좋아하지는 않지만 단백질 분해율 자체는 균을 사용하는 것보다 높습니다. 순수한 산분해간장은 소비자들이 그 이미지를 좋아하지 않아 잘 유통되지 않습니다만, 산분해간장에 양조간장을 혼합한 혼합간장은 여전히 인기가 좋습니다. 가격도 저렴한데다 맛도 나쁠 게 없거든요. 시판하는 간장 중 진간장으로 표기된 건 거의 다 혼합간장입니다. 원래 진간장은 된장 포기하고 5년 이상 장기숙성시켜 만드는 조선간장입니다만, 그런 건 잘 팔지 않으니까요.

 

 사견으로는 쌀을 먹는 동북아시아 문화권은 콩간장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콩밥을 싫어하는 사람은 많이 봤습니다만, 콩간장을 안 좋아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습니다.

 

 

 

 

 

4) 된장은 콩간장과 쌍둥이 같은 관계입니다. 물론 간장을 만들지 않고 메주에서 바로 만드는 막장도 된장의 일종으로 보긴 합니다만.

 

 자세히 들어가면 된장의 종류는 매우 다양합니다만, 우리나라에서는 대략 공장제 개량식 된장과 재래식 전통 된장으로 구분합니다. 공장제 된장은 종국균이 통제되어 있고, 감칠맛이 강하며, 별다른 재료 없이 된장 위주로도 그럴싸한 맛이 납니다. 그렇지만 풍미가 깊지는 않지요. 나는 개량식 된장을 미소와 재래식 된장의 중간형 정도로 여기고 있고, 둘 중 재래식 된장보다는 미소에 좀 더 가깝다고 느낍니다.

 

 재래식 된장은 감칠맛 자체는 공장제 된장보다 약합니다. 공장제 된장은 미소처럼 국물의 주재료로 쓸 수 있는데, 재래식 된장은 부재료라 생각하면 됩니다. 이 특성 때문에 간편하게 끓이는 된장찌개는 개량식이 맛있는데, 재료를 많이 사용할수록 재래식 된장이 맛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믹스를 해도 됩니다. 의외로 서로 역할이 다른 소스이기 때문입니다.

 

 

 

 

 

5) 낫토와 청국장은 매우 유사한 것입니다만, 일본 낫토는 주로 생으로 먹어서 그런지 냄새가 잘 나지 않는 균을 선택적으로 사용하고 저온 발효시키는 방식으로 발전하였습니다. 물론 청국장도 낫토처럼 냄새가 별로 안 나게 만들 수 있고, 이미 그런 기술이 개발되었습니다만... 어째서인지 청국장 애호가들은 냄새가 나지 않는 청국장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경향이 있고, 꽤나 보편적인 음식이었던 청국장찌개가 잘 먹지 않는 음식으로 변해버렸습니다. 21세기 들어 우리나라 사람들이 피하게 된 2대 냄새로 청국장 냄새와 담배냄새를 꼽아야 할 것 같은데, 나는 담배냄새는 매우 싫어합니다만 청국장은 괜찮고, 청국장을 잘 찾아볼 수 없게 된 건 유감스레 생각합니다.

 

 나는 청국장과 재래 된장을 믹스한 레시피를 좋아합니다. 공장제 된장과 재래 된장을 같이 쓰는 레시피에서 공장제 된장을 청국장으로 대신하는 겁니다. 그리 드문 레시피는 아닐 걸로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는 청국장을 만들려면 볏짚이 필요합니다. 볏짚의 고초균을 이용하는 거지요. 그런데 고초균은 열소독을 해도 잘 죽지 않을 만큼 튼튼한 균이라, 청국장을 만들던 장소에서는 볏짚을 안 써도 청국장이 잘 만들어집니다. 공기 중에 떠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청국장 만드는 법 레시피를 찾아보면 볏짚이나 균주 같은 거 전혀 안 쓰는 레시피도 있는데, 그런 레시피는 장소에 따라서는 실패할 수도 있을 걸로 생각합니다.

 

 청국장 냄새가 싫으면 낫토로 대신 끓여도 됩니다. 일본 거주 한인들이 청국장 먹고 싶을 때 낫토를 많이 쓴다고 압니다. 여담으로 낫토도 (일본 내) 지역에 따라서는 청국장처럼 냄새가 꽤 있다고 합니다.

 

 

 

 

 

5) 계란은 닭의 품종에 따라 알껍질 색이 달라집니다. 오리알도 마찬가지고요.

 

 세계적으로 인기가 있는 계란은 흰색 계란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갈색 계란이 주류입니다. 우리나라도 80년대만 해도 시중에 흰색 계란이 많았었는데요. 90년대 들어서면서 신토불이 민족주의 열풍이 불더니 갈색 계란이 토종이 낳은 거라는 소문이 돌면서 사람들이 갈색 계란을 선호하게 되었고, 어느 때서부터인가 시중에서 갈색 계란만 팔게 되었습니다. 물론 진짜 우리나라 토종닭 품종은 멸종한지 오래고, 시중에서 토종닭이라 파는 것은 후대에 만들어진 유사 토종닭 품종이거나 노계입니다.

 

 이후 오랜 시간이 흘러 2016년 계란값이 폭등하면서 1판에 만원을 넘어가는 참사가 벌어졌을 당시, 외국에서 계란을 수입해왔더니 흰 계란이라 사람들이 매우 생소해하기도 하였습니다. 희니까 계란이 아니라 오리알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보였습니다.

 

 

 

 일반적이지는 않지만 껍질이 청색인 청란도 있습니다. 청계가 낳은 알인데요. 몸에 더 좋다는 속설이 있어 인기 있고 가격도 비쌉니다만, 건강 쪽으로는 계란 색깔은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알 색깔에 따른 맛 차이는 미미하게나마 있는 것 같습니다.

 

 여담으로 갈색 달걀도 진한 갈색과 옅은 갈색이 있습니다. 경험적으로는 시판 달걀은 색이 짙은 편이고, 시골 닭들이 나은 알들은 색이 옅은 편입니다. 내 생각에는 색이 옅은 알이 더 맛있는데, 크기는 색이 진한 알들이 더 큰 경향이 있습니다.

 

 

 

 

 

6) 계란말이와 오믈렛은 유사한 요리인데, 각 지역마다 만드는 방식은 다릅니다. 우리나라식 계란말이도 특색이 있지요.

 

 우리나라에서는 계란말이용 소형 팬을 쓰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얇은 지단에 가까운 것을 만 형태의 계란말이가 흔합니다. 두꺼운 계란말이를 만들려면 팬이 작거나 계란을 많이 써야 합니다. 종종 대형 계란말이를 만드는 식당을 보면 한식 계란말이인데 꽤나 두꺼운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계란말이는 내 생각엔 식감이 좀 단단한 편입니다. 속까지 잘 익었고요. 그런 스타일이 우리나라 입맛이나 관념에 맞는 것 같습니다.

 

 

 

 

 

7) 오므라이스는 내가 매우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입니다. 애초에 볶음밥 + 오믈렛이다보니 잘 만들면 아주 맛있을 수밖에 없는 레시피고, 요리사의 실력이 극단적으로 강조되기 쉬운 요리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데미글라스를 쓰는 경우가 많다 보니, 제대로 만들려면 조리 난이도도 매우 높고 포텐셜도 높은 레시피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나는 오므라이스에 데미글라스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요. 오믈렛이고 데미글라스고 원래 프랑스 레시피인데, 프랑스에서는 둘을 조합해 먹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고, 내 입에도 둘은 잘 안 어울립니다. 실제 오믈렛에 데미글라스는 서구권에서는 일본식 오믈렛으로 부릅니다. 일식 레시피란 말이지요. 어쩌다가 왜 그렇게 먹고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내가 오므라이스에 선호하는 소스는 크림소스와 케챱입니다. 크림소스는 오므라이스에 매우 잘 어울립니다. 오믈렛은 원래 유제품과 잘 어울리지요. 크림치즈 등 유제품을 사용하는 오믈렛은 서구권에서 꽤 일반적인 레시피이기도 합니다.

 

 

 잘 모르는 분들도 많지만, 중화요리집에서도 오므라이스를 만듭니다. 한국식 중화요리 중 하나 같은데요. 대체로 중식 볶음밥 + 케챱 + 계란지단입니다. 여기서 포인트는 많은 경우 볶음밥과 얇은 계란지단 사이에 꽤 많은 양의 케챱이 들어간다는 겁니다. 지단 위에 케챱을 조금 뿌리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실제로 먹으면 케챱 맛이 상당히 강합니다. 계란지단이 얇긴 하지만, 애초에 볶음밥에 계란이 추가로 들어가지요.

 

 이렇게 설명만 하면 경험적으로 괴식이나 사도 같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습니다만, 잘 만들면 꽤 맛있는 요리입니다. 원체 계란과 케챱이 잘 어울리기도 하고, 중식 오므라이스는 중식 볶음밥으로 만든 오므라이스입니다. 중식 볶음밥은 잘 만들면 그 자체로도 충분히 맛있습니다. 그리고 그걸 오므라이스로 만든다고 맛없어지진 않습니다. 계란에 케챱만 좋아한다면 더 맛있지요.

 

 다만 중식 오므라이스는 레시피가 딱히 표준화된 게 아니라서, 계란 위에만 케챱을 뿌리는 경우도 있고 시판하는 오므라이스 소스를 사용한 것도 있습니다. 나는 오므라이스를 맛있게 잘 만드는 중식집은 요리를 잘 하는 집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8) 우리나라에서 파는 까르보나라 스파게티는 한국식 로컬라이징 크림소스 스파게티입니다. 본래 이탈리아식 까르보나라는 관찰레라는, 돼지 항정살을 절여 만든 염장육과 페코리노 로마노, 계란 노른자, 후추로 만든 겁니다. 진짜 오리지날 레시피에 가까운 건 드셔 본 분 비율이 높지 않을 텐데, 관찰레는 둘째 치고 페코리노 로마노를 파르미자노 레자노나 그라나 파다노, 또는 가루 치즈 같은 걸로 대체하면 완전히 다른 풍미가 되기 때문입니다.

 

 페코리노 로마노는 양젖 치즈입니다. 파르미자노 레자노 대비 매우 짜고, 양젖 냄새가 납니다. 양젖은 별로 드셔보신 분이 없을테니 산양유 비슷한 냄새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원래의 까르보나라는 새하얗고 단단한 양젖 치즈를 좋아해야 기호에 맞는 음식입니다. 나는 페코리노 로마노는 입에 맞지 않아서 힘듭니다. 파르미자노 레자노로 대체해 만들면 기호에 맞고요.

 

 이탈리아 피자가 미국에 가서 미국식 피자가 되었듯, 까르보나라도 미국에서 크게 변이하였습니다. 프랑스 요리처럼 크림이 들어가게 되었지요. 미국 요리는 프랑스 요리에 영향을 많이 받은 편입니다. 그렇지만 미국식 까르보나라에는 계란과 치즈에 라드를 쓰는 오리지날리티는 남아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나라로 넘어온 까르보나라에서는 아예 계란이 빠집니다. 치즈도 거의 빠지고요. 라드도 빠지고 베이컨에서 나온 기름 정도만 라드 성분이 됩니다. 거의 순수한 크림소스 스파게티가 되지요. 진한 크림도 대다수의 코리안은 좋아하지 않으니까, 우유를 섞은 묽은 크림이 주류가 되고요. 원래 이탈리아 까르보나라가 꽤 뻑뻑한 걸 생각하면 많이 묽어진 겁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 마늘이 들어갑니다. 마늘 먹는 분야에서 코리안이 이탈리안한테 질 수는 없지 않습니까.

 

 물론 지난 몇 년 사이 오리지날 까르보나라의 존재가 알려지긴 했습니다만... 피자가 우리나라에서 마개조되었듯 까르보나라도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사람들 입에 맞춰 마개조되고 있습니다.

 

 

 

 

 

 

9) 요리에 재미 들린 사람들이 많이 해 보는 것 중 하나가 힘줘서 카레 만드는 겁니다. 그런데 카레는 그다지 힘 줘서 만들 만한 요리가 아닙니다. 카레 만드는 친구들한테 항상 조언하는 게 카레는 적당히 만들어 먹는 요리고, 제대로 요리를 만들 거면 스튜를 끓이라고 합니다.

 

 카레의 기원은 인도의 커리입니다. 인도는 요리에 아주 다양한 스파이스를 많이 쓰는데, 양고기나 닭고기 같은 주재료에 약간의 채소와 다양한 스파이스를 써서 끓여낸 진한 국물 요리 같은 걸 대략 커리라 생각하면 됩니다. 여기서 포인트는 약간의 채소입니다. 인도식 커리는 채소가 많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치킨 커리와 비슷한 한식은 카레가 아니라 닭도리탕입니다.

 

 이후 이 커리가 영국을 거쳐 일본에서 재탄생해 카레가 됩니다. 카레는 커리와는 완전히 다른, 스파이스가 들어간 감자 스튜 같은 요리가 되었지요. 물론 인도에도 감자가 들어간 커리를 먹기도 합니다만, 그건 주재료가 감자인 커리라는 느낌이지 카레같지는 않습니다.

 

 일본 카레는 라멘 같은 일식 국물요리 조리법과 결합해, 본격적으로 육수를 쓰고 스파이스도 고급스러운 시나몬, 정향(클로브), 육두구(넛맥)를 중점적으로 쓰고 거기에 버터 루를 등을 쓰는 등 일본인의 소울푸드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카레가 들어오면서 카레는 대대적인 다운그레이드를 겪게 됩니다. 그야 예전에는 우리나라와 일본의 경제력, 식탁 사정은 차이가 컸으니까요. 그 선두주자는 오뚜기였습니다. 오뚜기는 과감하게 비싼 육두구, 정향, 시나몬 같은 걸 다 빼버립니다. 그리고 강황과 호로파(페누그릭. 파가 아닙니다. 한자로 葫蘆巴. 콩과 식물입니다.) 위주의 한국식 카레가 탄생하지요. 여기에 쿠민 시드(쯔란)와 펜넬(산미나리), 그리고 코리엔더도 기본적인 향료가 됩니다. 로즈마리와 월계수잎이 더 들어가기도 합니다.

 

 여담으로 코리엔더는 고수의 씨앗입니다. 고수 잎인 실란트로와는 매우 다른 풍미입니다. 실란트로는 우리나라 사람 중 잘 못 드시는 분들이 많지만, 코리엔더는 누구나 즐길 만한 스파이스입니다.

 

 한국식 카레가루의 위대함은 카레가루 자체 가격도 싼데, 감자/양파/당근 3대 채소만 썰어서 카레가루와 끓이기만 하면 그럭저럭 먹을 만한 게 된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카레용 고기로 취급하는 건 등심인데, 돼지 등심을 조금 넣는다고 거기서 딱히 맛이 많이 우러나오는 게 아닙니다.

 

 장점이 있는 대신 한국식 카레는 고급화시키기 쉽지 않습니다. 고급형 카레도 이런저런 조미료가 첨가되는 거지, 일본식 카레처럼 향료가 고급화되는 게 아닙니다. 조미료는 비프분말이니 치킨파우더, 양파분말 같은 거라 사실 원재료로 넣으면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겁니다.

 

 그러니까 한국식 카레는 적당히 인스턴트로 즐기면 그게 올바른 방식입니다. 우리나라 브랜드의 고급형 카레가루는, 쉽고 적당히 더 맛있는 카레를 만드는 데 적합합니다.

 

 

 

 

 

10) 기호의 차이는 있습니다만, 레시피 자체로 보면 하이라이스가 카레라이스보다 고급음식 레시피입니다. 일본에서는 하야시라이스, 오사카 쪽에서는 하이시라이스라 부른다는데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하이라이스로 이름이 바뀐 것 같습니다.

 

 하이라이스는 설명하자면 데미글라스 스튜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데미글라스 레시피는 비프스튜와 많이 비슷합니다. 소스가 되도록 졸인 비프스튜라고 볼 수도 있지요. 그런 데미글라스를 사용해서 만드는 거라, 하이라이스는 졸인 비프스튜를 첨가해 만드는 비프스튜 덮밥이라 볼 수도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시판하는 하이라이스 블럭/과립이나 데미글라스 소스 안 쓰고 처음부터 만들거면 그냥 비프스튜 만들면 됩니다. 1차로 데미글라스를 만들고 그걸 또 하이라이스로 만들 이유가 없어요. 그러니까 하이라이스는 반제품을 이용한 간단 비프스튜 덮밥에 가깝습니다.

 

 레시피 특성상 하이라이스는 적당히 만들면 당연히 카레라이스보다 맛이 없습니다. 대신 작정하고 만들면 카레라이스보다 맛이 더 올라가는 레시피 구성입니다. 그러니까 카레 힘줘서 만들어보실 계획이면 그보다는 하이라이스에 도전하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진짜로 맛있는 거 만들어보고 싶으시면 제대로 스튜 끓이는 게 좋고요.

 

 

 

 

11) 소는 반추동물입니다. 반추동물은 되새김질을 하는, 위가 4개인 동물이지요. 각각의 위는 첫 번째부터 양, 벌집, 천엽, 막창이라 부릅니다.

 

 그런데 돼지는 직장을 막창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실제로는 대장 전반을 막창으로 팝니다. 그러니까 소의 대창이 돼지의 막창입니다. 돼지는 반추동물이 아니기 때문에 위장이 4개가 있지 않고, 그러니까 소의 막창에 해당하는 기관은 없다고 봐야 합니다. 돼지의 위는 사람처럼 1개입니다.

 

 소 막창은 상태가 좋은 경우에 한해 소의 각종 부위 중 매우 맛있는 부위에 꼽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신선한 막창을 구워 먹으면 버터에 가까운 풍미에 씹는 감촉도 좋습니다. 그리고 열매가 들어간 청주 계열과 매우 잘 어울립니다. 다만 신선도가 조금만 떨어져도 풍미가 매우 평범해진다는 게 단점입니다. 주관적으로 상태 좋은 막창은 곱창보다 훨씬 맛있습니다만, 평범한 막창은 딱히 곱창보다 별로 맛있지 않습니다.

 

 

 

 

 

12) 곰탕 및 설렁탕 계열 중 내가 가장 맛있다고 생각하는 건 소머리국밥입니다. 제대로 삶은 소대가리는 매우 맛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우설을 따로 취급하지 않기 때문에 소머리국밥을 먹어야 우설을 먹을 수 있기도 합니다. 실제 통 우설은 꽤 큽니다. 소머리를 삶으면 우설수육이 나오는데, 그걸 저며서 국물에 곁들이는 게 정석입니다. 우족에 비해 소머리는 젤라틴은 적지만, 큰 근육인 우설이 있기 때문에 좀 더 곰탕같은 고기국물 맛이 섞여 있습니다.

 

 우족도 잘 끓이면 물론 맛있습니다. 우족은 젤라틴이 많기 때문에, 희석을 많이 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젤라틴질 국물이 매우 진한 맛을 냅니다. 다만 우족탕은 우리나라 요리에서는 그냥 먹는 국물 요리고, 다른 조리에는 별로 사용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요리에 사용하는 육수로 비슷한 느낌인 건 닭발육수입니다. 닭발도 콜라겐이 꽤 있는데요. 보통 파는 닭발 요리는 매우 맵게 양념해서 뜯어먹는 것이지만, 국물의 점도를 높이기 위한 육수로도 활용됩니다. 대표적으로는 짬뽕을 끓일 때 닭발육수를 쓰곤 합니다. 냉면육수로도 닭발육수를 쓰기도 합니다.

 

 

 

 

 

13) 내가 닭 요리 중 가장 맛있다고 생각하는 건 콕오뱅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은 닭도리탕입니다. 볶는 요리가 아니기 때문에 닭볶음탕이라고는 부르지 않습니다. 찜닭 레시피를 좀 극단적으로 개량하면 닭도리탕보다 맛있게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아직은 그런 걸 접해보거나 만드는 데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일정 이상 잘 만들면 닭도리탕이 찜닭보다 맛있지만, 그저 그럴 때는 찜닭이 더 맛있는 것 같습니다.

 

 닭도리탕은 매운 양념인 것 치고는 레시피 포텐셜이 매우 높습니다. 닭이 워낙 스파이스와 매우 잘 어울리는 경향이 있기도 하지요. 실제 프라이드 치킨도 스파이스 안 쓰고 그냥 튀기면 별 맛이 없습니다. 보통은 온갖 양념에 절여서 (염지해서) 튀기는 겁니다. 닭은 고기 자체는 별 맛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닭가슴살 스테이크는 바질이라도 뿌려야 먹을 만한 맛이 되지, 아무 허브 / 스파이스도 안 쓰면 맛이 없습니다.

 

 그리고 닭도리탕의 최대 장점 중 하나가 포텐셜도 높지만 어지간해서는 그럭저럭 맛있게 된다는 겁니다. 완전히 실패한 닭도리탕을 만나는 건 그리 쉽지 않습니다. 맛 없는 프라이드 치킨 만나는 게 더 쉽지요. 닭만 신선하고 정말 이상하게만 안 만들면 그럭저럭 맛있습니다. 물론 잘 만들면 매우 맛있고요.

 

 

 

 

14) 꽤나 맛있는 한식 닭 요리인데 이름이 너무 애매해서 잘 안 알려졌던 요리 중 하나가 닭한마리입니다. 닭한마리는 맛이 강하지 않아서 그런지 일본인이 제일 좋아하는 한식 중 하나로 꼽힙니다. 닭한마리는 서울 음식으로, 거의 서울과 인근 지역에서만 팝니다. 이게 무슨 요리인지를 굳이 설명하자면 파닭전골 정도 되는데, 닭도리탕이나 찜닭처럼 토막난 닭으로 끓이는 요리고, 파 맛이 나는 맑은 닭국물 요리고, 부추와 함께 전용 간장 양념 같은 걸로 먹고, 떡 같은 게 보통 기본으로 들어있고, 고기를 다 먹은 후에는 칼국수 사리 같은 걸 넣어서 먹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먹는 방식으로 보면 뭔가 닭갈비의 맑은 국물 요리 버전 같기도 합니다.

 

 요새는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이 닭한마리를 좋아한다는 뉴스가 보도되면서 이 인지도 낮던 음식도 조금 알려진 것 같긴 한데, 여전히 그리 전국적으로 유명한 요리는 아닌 것 같습니다. 뭔가 외국인이 매우 좋아하는 음식으로, 대한민국 관광용 음식이 된 것 같기도 하고요.

 

 

 

 

 

15) 영계백숙에 대해 의문을 가진 분들이 꽤 있습니다. 왜 그렇게 작은 병아리 같은 걸로 해먹느냐는 건데요. 시판하는 조금 큰 13호 생닭 같은 거 말고, 진짜 시골에서 많이 키운 닭으로 해먹어보면 왜 영계백숙을 만드는 지 알 수 있습니다.

 

 

 방목해 키운 큰 닭은 고기가 진하고 맛있긴 합니다. 대신 질기고, 안 익고, 특유의 냄새가 있습니다. 안 익는 거야 시간을 두고 익히면 되긴 합니다만, 냄새가 문제입니다. 백숙은 말 그대로 백숙에 가까운 레시피일수록 별로 들어가는 부재료가 없어서요. 냄새 잡는 게 힘듭니다. 만들다보면 약재 같은 게 많이 들어가는 경향이 있고요.

 

 그래서 백숙하려면 작은 닭으로 만드는 게 효율이 좋고, 큰 닭은 토막 내서 닭도리탕이나 찜닭 같은 걸 만드는 게 더 효율이 좋습니다. 바꿔 이야기하면 맛있는 큰 닭으로 굳이 백숙을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16) 감자탕/뼈해장국은 나름대로 꽤 좋아하는 요리인데, 나는 그 요리를 시래기된장국의 베리에이션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돼지뼈 육수를 활용한 시래기된장국 계열 요리로 본단 말이지요.

 

 돼지 등뼈에 붙은 고기는 맛있긴 한데, 고기 양이 많지는 않습니다. 먹다 보면 뼈는 꽤 쌓이는데 먹은 고기 양은 그리 많지 않은 요리지요. 그렇지만 시래기 국물 요리로는 최고입니다. 감자탕은 시래기가 핵심재료입니다.

 

 여담으로 홈메이드 감자탕과 음식점 감자탕은 꽤 다른 맛이 날 때가 많은데, 음식점 감자탕에는 MSG가 들어가서 그렇습니다. 감자탕은 재료 특성상 MSG를 넣은 거랑 안 넣은 게 아예 다른 맛이 납니다. 나는 넣지 않은 쪽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안 넣으려면 재래 된장 쪽이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17) 도토리묵도 우리나라에서만 먹는 한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도토리 하면 다람쥐를 떠올리시는 분들이 많지만, 실제 도토리라는 이름은 현대어로 돼지밤이라는 뜻입니다. 옛날에는 성체 돼지를 돝으로, 어린 돼지는 돝야지로 불렀는데요. 돝야지 -> 도야지 -> 돼지로 말이 변했고, 어떤 이유에선가 성체 돼지건 어린 돼지건 돼지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소와 송아지, 말과 망아지처럼 돝과 돝야지로 불렀던 겁니다. 도토리에는 돝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지요. 돼지가 도토리를 매우 좋아합니다.

 

 우리 민족은 아주 오~래 전부터 도토리를 주식으로 먹었습니다. 대략 신석기 시대, 그러니까 1만 년 전 정도부터요. 한반도는 기후대가 원래 자연 산림은 참나무 위주여야 합니다. 지금은 전국토 민둥산 되었다가 빨리 자라는 소나무부터 식재한 다음, 참나무로 천이 중인 거고요. 우리 먼 조상들은 도토리를 먹기 위해 토기를 제작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질그릇이 없으면 도토리를 먹기 힘들어요. 도토리는 타닌 성분이 많아서, 물에 담가서 타닌을 빼야 합니다. 물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필요하단 말이지요. 고대에는 우리나라 뿐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도토리 먹는 지역이 꽤 있었던 것 같은데, 해 먹기가 힘들어서인지 다른 나라 도토리들이 맛이 없어서인지 거의 우리나라에만 도토리 먹는 문화가 남았습니다.

 

 순수한 도토리 가루 묵은 아주 약간 쫀득하며 풍미가 매우 진합니다. 타닌을 완전히 빼내지 않아야 도토리묵다운 묵이 되고요. 내 생각에는 꽤 맛있는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호불호가 조금 있는 것 같습니다.

 

 

 

 도토리는 참나무 열매는 다 도토리라 부르다 보니, 종류가 여럿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도토리가 나오는 나무 종류 중 기본적인 것은 여섯입니다. 신갈, 떡갈, 굴참, 졸참, 갈참, 상수리. 이 중 흔한 건 상수리고, 제일 맛있는 건 졸참나무 도토리라고 합니다.

 

 

 

 

 

18) 우리나라 식문화 중 좀 특이한 것 중 하나가, 버섯의 갓보다는 대를 주로 먹는다는 것입니다. 갓이 펴지지 않은 어린 버섯을 많이 먹는다는 이야기입니다.

 

 버섯은 갓이 맛있지만 갓은 잘 부서집니다. 그래서 운반이나 유통이 어려운 종류가 많고, 씹는 저작감도 저항이 덜합니다. 대조적으로 대는 갓에 비해 풍미가 약한 대신 운반과 유통이 씹고, 저작감이 좋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향에는 둔감하고 저작감을 매우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보니 대 위주의 버섯 유통이나 어린 버섯을 좋아하는 경향이 정착한 것 같습니다.

 

 송이버섯이나 표고버섯의 등급 기준이 영향을 줬을지도 모릅니다. 송이버섯은 갓이 펴지지 않은 어린 버섯일수록 등급이 높고 비쌉니다. 갓이 펴진 건 등급이 낮고 싸지요. 표고버섯도 그렇고요. 그런데 등급 높은 송이가 딱히 맛있는 건 아닙니다. 갓이 펴지지 않은 송이가 보기 좋다고 생각해서 비싼 것 같은데, 모양이 남근을 닮아서 그렇다는 썰이 제일 그럴싸합니다. 정력에 좋다고 생각되는 음식이 비싸지는 경우는 흔하니까요.

 

 

 

 

 

19) 느타리버섯은 원목 재배로 갓이 일정 크기 이상으로 자란 게 제대로 된 상품이며 맛이 매우 좋습니다. 1990년대만 해도 갓이 펴진 느타리가 유통되었지요. 그런데 21세기 들어 보다 저렴하게 병에서 키우는 기술이 등장하였고, 병 재배한 느타리를 갓이 다 펴지기 전에 어린 것을 저렴하게 맛타리라는 상품 이름으로 유통하면서 큰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제대로 키운 느타리 쪽이 풍미가 훨씬 좋긴 합니다만 사람들은 어린 맛타리의 단단한 식감과 저렴한 가격에 호의적이었고, 시대가 지나면서 점차 맛타리가 아예 느타리를 거의 대체해 버리게 됩니다. 이젠 제대로 키운 느타리를 파는 곳은 많지 않습니다.

 

 저작감과 향을 빼고 맛만으로 판단한다면, 제대로 키운 느타리는 가장 맛있는 버섯 중 하나라 생각합니다. 더 비싼 버섯들은 약용버섯이거나 향이 좋은 거지 맛이 느타리보다 좋은 게 아닙니다. 계란과 섞어 전을 부쳐 먹는 게 느타리를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20) 표고버섯은 말린 것과 생표고가 있습니다. 말린 표고버섯은 말리는 과정에서 갓이 거북이 등딱지 모양으로 갈라지는 화고가 최상품이고, 화고 중에서도 많이 갈라져 흰 속살이 크게 보이는 백화고가 상급품입니다. 표고의 겉면이 많이 보이는 건 흑화고라고 하며 백화고보다는 아랫등급으로 칩니다. 그리고 갈라지지 않은 어린 표고를 말린 건 동고, 갓이 벌어지도록 자란 표고를 말린 건 향고, 그보다 더 갓이 많이 벌어진 하급품은 향신입니다. 등급을 정리하자면 백화고 > 흑화고 > 동고 > 향고 > 향신 이고요. 표고버섯 슬라이스나 후레이크는 대략 향신이 많고 향고인 경우도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물론 맛은 딱히 별 차이 없습니다. 특성 자체는 조금씩 다르긴 한데, 백화고가 향고보다 맛있느냐 하면 내 생각에는 아닙니다. 내가 실사용에 선호하는 건 동고나 향고인데, 딱히 비싸지도 않으면서 맛도 충분히 있고 먹기도 좋기 때문입니다. 백화고는 사실 향고에 비하면 어린 버섯이라 향이 꽤 약하기도 하고요.

 

 굳이 보자면 표고의 품질 차이는 건표고보다도 생표고에서 쉽게 느낄 수 있고, 표고가 나온 계절이나 품종 등에 따른 차이가 큰 편입니다. 표고가 겉보기 좋은 쪽이 가격이 높다 보니, 맛하고는 별 상관이 없는 쪽으로 품종개량이 되고 있는 것 같고, 딱 봐도 화고스러운 건 맛은 크게 기대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봄에 생표고가 많이 풀려서 저렴할 때가 있는데, 경험적으로는 그 때의 표고버섯이 맛있습니다. 표고를 말릴 환경이 된다면, 그 때 표고를 많이 사서 말려 두면 좋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21) 내가 먹어 본 버섯 중 주관적으로 가장 맛있었던 건 큰갓버섯입니다. 문제는 큰갓버섯은 야생버섯이고, 흔하지도 않은데 나는 야생버섯을 채취할 줄 모릅니다. 그러니까 운 좋아야 먹어볼 일이 있는 버섯입니다.

 

 송이버섯은 처음 먹었을 때는 매우 놀라웠고 한동안 선호했는데, 이후 여러 번 먹다 보니 어택이 강한 풍미이긴 한데 원체 개성이 강한데다 본래 가진 풍미에서 뭘 하건 더 좋아지는 경향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비싸다보니 이후 그다지 선호하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요리를 잘 한 상태에서 정말 맛있게 먹은 경험이 있었던 버섯은 표고입니다. 지금은 사라진 음식점에서 먹어봤던 전가복인지 잡탕인지에 들어있었는데, 볶는 요리 하나만큼은 초일류인 주방장이 만든 거였고 표고를 잘 볶았을 때 얼마나 맛있는지 그 때 깨닫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중화요리 중 볶음을 그리 선호하지도 않고, 정말 잘 볶아봐야 그만큼 인정도 못 받다 보니 버섯 같은 걸 잘 볶아주는 요리사 만나기는 매우 어렵다는 겁니다. 중식화구가 있어야 그런 볶음을 시도라도 해볼 수 있다 보니 직접 그런 볶음에 도전하는 건 어렵고요.

 

 일반적인 조건에서 구하기 쉬운 버섯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버섯은 양송이입니다. 여담인데 아실만한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양송이건 새송이건 송이버섯하고는 별 상관이 없고요. 상품명 참송이, 해송이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22) 양송이는 귀여운 외형과 부담 없는 풍미를 가진 버섯입니다만, 실제 어떻게 해먹어야할지 어려워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사실 양송이의 특성은 대다수의 한식 레시피에 잘 안 어울리긴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양송이 먹는 방식은 대를 떼어내고 갓만 물이 생기도록 구워 먹는 것 같은데, 양송이 물은 속설만큼 몸에 좋을 건 없습니다만 버섯 자체는 몸에 꽤 좋은 편이고, 칼로리도 별로 없는데다 물이 생기도록 구운 양송이는 맛있으니까 많이 드셔도 좋습니다.

 

 양송이는 음식에 사용했을 때 완성된 음식의 풍미를 잘 담아내고, 스스로 가진 버섯향과 조합되어 매우 맛있게 먹을 수는 것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버섯 자체만 구워 먹어도 꽤 맛있는 버섯이긴 하지만, 양송이와 어울리는 풍미가 좋은 요리에 사용했을 때 더 맛있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요리는 대체로 향이 중시되지 않거나, 양송이에 잘 어울리지 않는 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버섯볶음을 하기에는 수분이 많은데다 비싸고요. 재래된장찌개에 양송이를 넣으면 의외로 나쁘지는 않습니다만, 버섯을 양송이만 넣어서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표고는 기본적으로 넣고 양송이를 부재료로 넣거나 해야 좋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으로 먹는 요리 중 예외적으로 양송이를 넣었을 때 잘 어울리는 건 카레입니다. 이는 카레가 태생적으로 서양 요리에 가까운 것이라 그렇다고 생각하고요. 넣어보면 꽤 잘 어울립니다. 원래 수프나 스튜 등에서 활약하는 버섯입니다.

 

 

 

 

 

23) 흔히 고급재료로 취급되지만 사견으로 맛이 꽤 애매하고 과대평가가 많다고 생각하는 식재료 중 하나가 전복입니다. 특히 전복죽은 꽤 고평가입니다. 전복죽이라고 파는 것 중 소라죽이나 골뱅이죽이 많은데, 내 생각에는 전복죽보다 소라죽이 더 맛있습니다. 전복은 맛이 진하고 강한 식재료가 아니라서, 죽 같은 데 넣어서는 맛이 나지가 않습니다. 대조적으로 소라는 진한 맛을 가지고 있지요.

 

 신선한 전복으로 죽을 끓이면 조개 맛보다는 내장 맛이 더 나는데, 전복 내장 맛은 일종의 해초가 소화되다 만 맛입니다. 전복의 주식이 다시마 같은 해초라서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전복내장죽보다는 매생이죽이 낫습니다.

 

 전복회는 특유의 씹는 느낌을 좋아할 수는 있는데, 맛 자체는 별게 없습니다. 초장 맛에 드시는 분들이 많을 걸로 생각합니다.

 

 사견으로 전복을 맛있게 먹는 방식은 전복장입니다. 익힌 전복을 양념간장에 담근 건데요. 간장 양념이 전복 특유의 맛과 잘 어울리는데다 워낙 전복 살은 단단하다보니 흐물해지지도 않아서 맛있습니다. 다만 비리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내 생각엔 전복장은 해산물의 일반적인 비림이 아니고, 해초가 좀 비릿해진 느낌입니다. 주관적으로 전복장은 꽃게 간장게장만큼 맛있고, 새우장 같은 것보다는 훨씬 맛있습니다.

 

 

 

 

 

24) 명태는 우리나라에서만 인기 있는 생선입니다. 사실 살 자체가 맛있는 생선이라 볼 수는 없지만, 크고 저렴한데다 뼈를 우려내면 국물은 맛있는데다 한식 양념이 명태살에 잘 어울리기 때문에 인기가 생긴 것 같습니다. 모두들 아시겠지만 명태는 가공법에 따라 이름이 다양합니다. 생물은 생태, 얼린 건 동태, 완전히 말리면 북어, 반만 말리면 코다리, 얼었다 녹았다 하는 조건에서 말린 건 황태, 황태 만들다가 색이 검어지면 먹태(흑태), 어린 건 노가리입니다. 여담인데 노가리를 너무 잡아서 우리나라 동해에서는 명태가 씨가 거의 말랐습니다. 생태는 워낙 보존성이 나쁘고, 회로도 거의 못 먹기 때문에 말리거나 얼리는 방식이 발달했습니다.

 

 명란젓은 우리나라에서 개발된 한식으로 참기름을 곁들이면 맛이 좋고, 인기도 좋은 젓갈입니다만... 우리나라보다는 일본에서 더 인기가 있습니다. 노리마키가 한국에 와서 한국인의 소울푸드가 된 것처럼, 명란젓은 일본에 가서 일본인의 소울푸드가 되어버렸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명란젓을 안 먹더라도 알이 포함된 동태탕을 많이 먹는데, 일본인은 명란젓만 소비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많은 일본인들이 적어도 예전에는 명란젓이 명태의 알인 걸 잘 몰랐습니다. 명태를 잘 모르기도 하고, 그다지 먹을 게 아닌 잡어로 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요새는 좀 알려졌을지 모르겠네요.

 

 한편으로 명태의 고니(곤이)는 사실 이리입니다. 곤이는 난소고, 이리는 정소입니다. 그러니까 알이 있는 개체는 이리가 없습니다.

 

 

 

 

 

25) 말리지 않은 아구(표준명 아귀)찜은 인천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구찜은 호불호가 분명한 음식이라 인천 사람들도 아구찜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많은데, 나는 매우 좋아하는 편입니다.

 

 누구나 인정하겠지만, 아구 살은 사실 별로 먹을 게 없습니다. 양이 많지 않은 아구 살의 맛은 우아합니다만 동시에 밍밍해서, 살을 먹을 거면 차라리 가자미를 쪄먹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아구의 장점은 그 물컹거리는 부분에 있습니다. 생선이라기보다는 낙지나 주꾸미를 먹는 기분으로 먹으면 맛있습니다. 커다란 아구일수록 먹을 게 많습니다. 아구를 안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구찜은 콩나물밖에 먹을 게 없다고 주장합니다만...

 

 서양 요리에도 아구 요리가 있는데, 프랑스 요리 같은 데 아구살에 소금과 허브를 쓴 스테이크 같은 게 있기도 합니다. 영국에서는 튀겨 먹기도 하는 것 같고요. 그런데 나는 아구살 스테이크는 별로 좋은 조리법이라 느끼지 못했습니다. 박대 구워 먹는 게 훨씬 맛있습니다.

 

 

 

 

 

 

26) 와사비나 가루 와사비(호스래디쉬)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나는 스시에 들어간 와사비 외에는 와사비를 잘 먹지 않는 편입니다. 나는 생선회를 먹을 때는 간장이건, 와사비를 곁들인 간장이건, 초고추장이건 거의 먹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호스래디쉬를 싫어하는 건 아닌데, 호스래디쉬가 들어간 샌드위치도 잘 먹고요. 가루 와사비를 푼 간장은 구운 가자미나 해물탕/해물찜에 들어간 낙지를 먹을 때 주로 먹습니다. 특히 탕에 들어간 낙지에 호스래디쉬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소고기에도 와사비를 곁들여먹는 걸 좋아하는 분들이 많은데, 나는 소고기에는 와사비보다는 홀그레인 머스터드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27) 우리나라 사람들은 저작감을 매우 중시합니다. ‘치감이라는 신조어도 쓰는 것 같은데, 굳이 어휘를 해석해보자면 치감은 치아 내의 신경과 치주인대쪽에서 느끼는 감각일 것이고 저작감은 씹을 때 사용하는 턱관절과 구강 내의 촉각 전반을 포함한 감각일 것이라 저작감이라 표현하는 게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작감이라는 어휘가 잘 알려지지 않아서 대체로 사용하게 된 신조어휘가 치감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음식 중 저작감의 최대 만족을 위해 발달한 요리로 산낙지를 꼽을 수 있을 겁니다. 잘라서 참기름이라도 뿌려 놓으면 그나마 요리지만, 요리를 아예 안 하고 낙지를 통째로 드시려 시도하다 돌아가시는 분들도 종종 있지요. 우리나라에서는 복어 먹다 죽는 사람보다 산낙지 먹다 죽는 사람이 많은 걸로 압니다. 가장 위험한 요리입니다. 잘 씹어 먹으면 100% 안전하다는 면에서 참 웃프기도 합니다만.

 

 산낙지가 거의 우리나라에서만 먹는 음식이 된 건, 낙지가 세계적으로 흔한 생물이 아닌 것도 한 이유일 것 같습니다. 낙지는 거의 동아시아에만 있다고 하고, 뻘에서 삽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서해안 같은 조건이어야 낙지가 있단 말이지요. 일본에서조차 낙지는 많이 먹지 않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28) 벚꽃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봄 감성을 사로잡은 지 오래입니다만, 이것은 일제 이후의 유행입니다. 조선 시대 때는 벚꽃보다도 복사꽃과 매화를 좋아했지요. 위의 사진은 복사꽃입니다.

 

 꽃은 벚꽃도 복사꽃도 매화도 예쁩니다만, 열매의 활용도로 보면 벚나무는 복사나무를 따라가기 어렵습니다. 서양 체리와 달리 버찌나 앵두는 그다지 먹을 만한 게 아닙니다. 열매가 작고 씨앗이 커서 먹을 게 없습니다. 별로 인기 있을 만한 맛도 아니고요.

 

 대조적으로 관상용 복사나무에서 열리는 복숭아는 대체로 품종개량이 되지 않은 개복숭아이긴 합니다만, 개복숭아는 매실청처럼 설탕에 절여 청으로 담그면 꽤 맛있는 시럽이 됩니다. 맛이야 설탕 맛이지만 복숭아향이 나거든요.

 

 

 가끔 변이로 인해 개복숭아 중에서도 크고 맛이 괜찮은 게 있긴 한데요. 과수용 복사나무도 꽃은 예쁘고요. 문제는 그런 건 관리가 어렵다는 겁니다. 복숭아는 맛있고 워낙 즙도 많아서 그런지 벌레들이 정말 작정하고 달려드는 과일입니다. 벌레와 전쟁을 벌이고 제 때 봉지라도 씌워주지 않으면 벌레천지가 됩니다. 사람 입에 맛있는 건 야생에 경쟁자가 많기 마련입니다.

 

 여담인데 매실청이나 개복숭아청 등을 효소라고 부르는 건 이상한 이름입니다. 청은 효소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과일 청은 그냥 과일 성분이 당에 추출되어 나온 시럽입니다. 맛으로 먹는 거란 말이지요.

 

 

 

 

 

 

29)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밥을 먹습니다만, 밥을 먹는 방식은 사람마다 꽤 다릅니다. 국물이 없으면 밥 먹기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국물 요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국물에 밥을 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따로 먹는 걸 선호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카레 같은 걸 먹을 때 덮어서 먹는 걸 선호하는 사람도 있고, 잘 비벼 먹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요. 밥과 반찬을 한 입에 넣어서 먹는 사람도 있고, 따로 먹는 사람도 있습니다. 식사 시간도 각자 매우 다릅니다. 군대 다녀온 경험들 때문인지 우리나라 사람 중에는, 특히 남자들 중에는 매우 빠르게 식사를 마치는 사람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맛을 잘 보기에는 좋지 않은 문화지요.

 

 나는 맛있는 식사를 위해서는 쌀 품종을 각자의 식사 방식이나 기호에 따라 고를 필요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밥을 먹을 때 국물을 챙기는 빈도가 낮다거나, 잘 말아 먹지 않는다거나, 치아가 충분히 좋지 못하다거나 하면 부드럽고 차진 쌀이 좋습니다. 그렇지만 국물에 말아 먹는 걸 즐긴다면 좀 단단한 쌀로 지은 된밥이 잘 어울리지요.

 

 보통 맛있는 품종으로 불리는 쌀들은 차지고 부드러운 게 많습니다. 고시히카리도 그렇고, 삼광도 그렇고, 반찰계들은 더하고요. 그렇지만 단단한 식감을 좋아한다면 좀 더 단단한 쌀을 구매할 필요가 있습니다. 근래 보급되는 품종중에 참드림이 단단한 식감을 가지고 있는데요. 풍미도 매우 좋은데다 웬만한 한식에는 다 어울릴 맛이라 널리 추천해도 될 것 같습니다. 참드림이 차지지 않다는 건 아닙니다. 차진데 단단합니다. 찰기와 단단하고 부드러움은 다른 겁니다. 차진 쌀이기 때문에 참드림을 볶음밥용으로 추천할 수는 없습니다.

 

 

 

 

 

30) 우리나라는 두부를 맛있게 잘 만드는 나라입니다만, 두부를 가공하는 방식은 발달하지 않은 편입니다. 유부는 많이들 먹지만 아직도 일식 느낌이고, 건두부 같은 건 한식화되지 않은 중화요리 분야로 취급되고 있지요.

 

 두부는 튀겨 먹으면 꽤 맛있습니다. 부침과 튀김은 좀 다릅니다. 두부를 튀기려면 부치는 것 대비 기름을 꽤 써야지요. 수분을 뺀 두부를 2번 튀기면 유부가 되는데, 유부를 만들 게 아니면 굳이 수분을 많이 뺄 것 없이 적당히만 빼준 후 한 번만 잘 튀기면 됩니다. 물론 딮프라잉을 할 때는 적어도 겉면의 수분 정도는 잘 닦아줘야 폭발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튀긴 두부는 맛있지만 기름이 너무 많습니다. 기름지지 않게 튀긴 두부 비슷한 걸 간편하게 만드는 방법이 있긴 한데요. 전자렌지에 돌리는 겁니다. 전자렌지는 음식의 수분을 날려서 맛없게 만드는 데 매우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두부는 원체 수분이 많은데다 수분이 날아가도 맛있기 때문에 전자렌지에 팍팍 돌려버리면 제법 맛있어집니다.

 

 한편으로 요새는 에어프라이어가 많이 보급되고 오븐을 가진 집도 많이들 있다 보니 오븐을 사용한 두부 레시피도 알려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에어프라이어는 오븐의 일종입니다. 역시나 원리상 튀기지 않고도 수분을 많이 날려버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