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가을 주류 감상문

식이 2023. 12. 15. 01:52 Posted by 해양장미

2023년 여름

 

 

 

 

구스아일랜드 IPA [-]

 

: 제대로 좀 마셔보고 싶어서 쇼트즈위젤 비냐 플루트에 마셔봤는데, 엄청나게 씁니다. 5.9%의 알콜도 꽤 강하게 느껴지네요. 캔째 마시면 쓴맛이 다이렉트로 안 느껴지는데, 플루트 글라스를 써서 제대로 마시면 쓴맛이 앞서네요.

 

 구스아일랜드 IPAIBU55라고 합니다. 필스너 우르켈보다 IBU가 높습니다. (IBU가 높을수록 씁니다.) 홒을 충분히 우려내서 향은 괜찮은데 정말 쓰네요. 이건 온도를 최대한 낮춰서 마셔야 나에게는 마시기 편할 것 같습니다.

 

 

 

 

 

 

금계당 바랑 [★★]

 

: 금계당은 안동의 농업회사법인으로, 2019년부터 17.5%의 청주(주세법상 약주)별바랑15%의 탁주 바랑을 빚고 있습니다. 별바랑과 바랑은 본래 해주라 부르며 대구 서씨가문에서 빚던 삼양주 방식의 가양주였다고 하며, 안동에서 생산한 쌀, 밀가루, 누룩으로 술을 빚어 시판하고 있다고 합니다. 쌀은 직접 재배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별바랑과 바랑을 같이 구매했는데, 일단 바랑을 마셔봅니다. 바랑이라는 이름은 가문이 위치한 안동시 일직면 바랑골이라는 지명에서 기원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동시에 승려들이 등에 지고 다니는 자루 모양의 주머니를 뜻한다고도 합니다. 레이블에는 안동의 아름다운 자연을 가득담은 술주머니라는 문구가 적혀있습니다.

 

 바랑은 375ml들이로 시판합니다. 들이 대비 가격대가 꽤 있는 탁주입니다만, 알콜 15%의 희석하지 않은 탁주라는 것을 감안해야 할 것입니다. 생탁주로 병입한지 한달하고도 일주일 정도 지난 걸 마셔보게 되었습니다. 유리병에 마개가 수지로 된 마개인데, 위스키 코르크 마개가 떠오릅니다. 따로 따개가 필요하지 않고 꽤 독특하고 좋습니다.

 

 일단 침전물을 섞지 않고 위에 뜬 부분을 마셔보니 처음 느껴지는 건 강렬한 산미와 아름다운 향기입니다. 단 맛이 적당히 있어서 과일 향을 연상시킵니다. 탄산은 강하지 않습니다. 15%의 도수는 적당한 볼륨감과 충만함으로 다가옵니다. 가격이 와인같더니 품질도 와인같은데요. 다만 산도가 꽤 많이 높아서, 신 걸 잘 드시는 분들에게 추천할 만 한 것 같습니다.

 

 침전물을 섞은 이후에도 느낌은 별 차이가 없습니다. 맑은 느낌의 탁주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마셔 본 탁주 중 제일 맛있는 것 같습니다. 탁주가 이렇게 맛있어도 되는건가 싶은데요. 이건 탁주지만 제대로 된 술입니다. 어지간한 비싸기만 한 탁주들하고는 아예 다른 티어에 있습니다.

 

 술이 너무 양질이라 처음에는 백세주 잔으로 마시다가, 슈피겔라우 데피니션 유니버셜 글라스를 사용해 마셔보기로 결정했습니다. 나는 술이 진짜 괜찮지 않으면 제대로 된 와인 글라스로 와인 외의 술을 마셔보는 시도는 하지 않습니다.

 

 미미한 과실 아로마. 알콜은 살짝 튑니다. 혀에 닿을 때의 느낌이 꽤 음성적입니다. 굉장히 차분하고 고요한 느낌을 줍니다. 산미는 어지간한 화이트 와인보다 강한데, 산의 종류가 시트르산이 주인것 같고 독특한 느낌을 줍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떼루아 느낌이 살짝 납니다. 희미하게나마 가을의 벼가 잘 익은 황금들판이 떠오릅니다. 피니쉬가 좀 더 있었으면 별 반 개 추가되었을 것 같습니다. 뒷맛에 약간의 누룩 향이 있는데, 데피니션 유니버셜을 사용하기 전에는 감지하지 못했을 정도로 강하지 않은 편입니다. 맛을 잘 보면 꽤나 단맛이 있고 맛있습니다.

 

 나는 이 탁주를 마시는 데 와인 글라스를 사용하는 선택이 괜찮다고 판단합니다. 유니버셜 글라스나 화이트 와인용 글라스를 사용하는 게 적합할 것 같습니다. 제품 편차에 의한 것인지, 본래 그런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내가 마시고 있는 이 술은 어지간한 상파뉴보다 더 십니다. 사과산의 날카롭고 강렬한 신맛과는 다르지만, 단순 산도로 치면 마셔본 술 중 가장 신맛이 강한 것 같습니다. 별바랑이 기대됩니다.

 

 

 

 

플래티넘크래프트맥주 Showdown X 술고래 []

 

: 알콜 4.5%. 충북 증평에서 생산하는 크래프트 밀맥주입니다. 내가 구매한 것은 Showdown X 술고래인데, 일반 술고래와 캔 디자인은 다르지만 내용물은 같다고 하네요. IBU15입니다. Light Ale이라는 표기가 있습니다. 제조한지 9개월하고도 2주 정도 지난 걸 마셔보게 되었습니다.

 

 캔을 따서 마시니 시트러스향 탄산음료 수준으로 과일향이 확 강하게 다가옵니다. 알콜 도수도 높지 않고, IBU도 낮아서 정말 알콜이 든 탄산음료 같습니다. 어떻게 이런가 싶어서 성분을 보니 천연향료와 합성향료가 들어가있네요. 가향 맥주였던 것입니다.

 

 그래도 맛없는 정도는 아니네요.

 

 

 

 

 

Trapiche Tesoro Chardonnay 2019 [★★]

 

: 아르헨티나 멘도자의 Uco Valley에서 생산된 트라피체 테소로 샤르도네 2019를 마셔봅니다. 알콜 13.5%. 마개는 스크류캡입니다. 첫 서빙 온도는 7.6도로 잡았고 슈피겔라우 빌스베르거 콜렉션 화이트와 동사의 데피니션 유니버셜을 사용했습니다.

 

 제임스 서클링이 이 와인에 93점을 줬다고 하는데, 수입사 홈페이지에 가서 보니까 91점으로 적혀 있습니다. 제임스 서클링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확인을 해보려 하니 유료가입을 해야 볼 수 있네요. 다만 93점으로 적혀있는 외국 와인 판매상을 하나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일단 93점으로 평가한 적이 있긴 한 것 같습니다. 이후 재평가를 하면서 점수가 낮아졌을수도 있겠지만요.

 

 첫 모금을 마셨을 때 받은 첫인상은 온도가 너무 낮거나 충분히 열리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사용한 빌스베르거 콜렉션 화이트보다 약간 큰 데피니션 유니버셜이 맞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양조 정보를 찾아보니 말로락틱 발효가 진행되었고 오크통 숙성도 거친 샤르도네였습니다. 정보를 보기 전에는 가격을 감안해서 언오크드 샤르도네일 거라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오크드 샤르도네였습니다.

 

 데피니션 유니버셜을 사용하자 샤르도네 특유의 품종향과 레몬향같은 느낌, 그리고 미네랄 아로마가 올라옵니다. 언뜻 마셨을 때 코트 샬로네즈나 마콩같은 남부 부르고뉴가 떠오를 정도로 구세계스럽습니다.

 

 곧 온도가 살짝 올라가니 약간의 유질감이 느껴집니다. 말로락틱 발효를 거친 오크 샤르도네의 느낌이 점차 분명해집니다. 별로 복합성은 없고, 단순하고 맛있습니다. 부담스럽지 않고 여리면서도 분명한, 양질의 오크 향이 느껴집니다.

 

 온도가 조금 더 올라가니까 굉장히 달달합니다. 뫼르소가 떠오를 정도입니다. 블라인드로 마셨으면 뫼르소에 밭을 가지고 있는 생산자의 레지오날급 부르고뉴 블랑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와인은 뫼르소에 비하면 진짜 저렴한 와인인데, 뫼르소를 연상시킵니다.

 

 이 와인은 노트를 적을 것도 없이 마냥 맛있는, 프티 뫼르소 같은 와인입니다. 다만 노트는 매우 단순합니다. 바닐라, 흰 꽃, 크고 모난 자갈 정도를 노트라 할 수 있을까요. 오크향도 제법 나고요. 가성비 좋은 oaked chardonnay라는 인상입니다. 단점이라면 복합성이 없고 떼루아 느낌도 별로 없는데, 아마 단일클론 위주고 꽤 넓은 지역의 포도를 모았을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섹시한 와인입니다. 상당히 치고 들어와요. 그런데 정말 신세계 안 같습니다. 트라피체의 와인이 원래 좀 구세계 같긴 하다고 생각하는데, 이 와인은 너무 단순하고 떼루아 느낌이 정말 약하다는 걸 빼면 진짜로 부르고뉴, 그 중에서도 뫼르소 같습니다. 뫼르소만큼 좋냐 하면 그건 절대 아니지만, 어느 정도 뫼르소스럽게 맛있긴 합니다. 이 가격에서 뫼르소 느낌이 조금이라도 나는 샤르도네 와인을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건 가성비가 좋다고 해도 되겠지요. 이 와인 가격은 요즘 뫼르소 빌라쥬급에 비하면 1/5도 안 돼요.

 

 온도가 좀 올라간 상태에서 마지막 잔을 마시면서, 나는 이 와인에 사용한 포도의 질이 충분히 양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와인이 잘 만든 와인이라 생각합니다.

 

 

 

 

 

Weihenstephaner Kristall Weissbier [★☆]

 

: 알콜 5.4%. 최고(最高)의 밀맥주를 만드는 최고(最古)의 브루어리, 바이엔슈테판을 오래간만에 마셔봅니다. 이 크리스탈 바이스비어는 오래 전 내가 처음 마셔본 밀맥주였습니다. 마시면서 밀맥주라는 게 이렇게 맛있는건가 생각했었지만, 이후 이것저것 마셔보니 바이엔슈테판이 유독 아주 맛있는 밀맥주였던 것이었습니다.

 

 바이엔슈테판 전용 잔이 있으면 좋겠지만 없어서 트라피스트 중 하나인 라 트라페의 전용잔을 대신 사용하여 마셔봅니다. 잔에 따르기 전 첫 서빙 온도가 3도로 낮은 상태부터 마셔봅니다.

 

 이 크리스탈바이스는 효모를 거른 바이스비어입니다. 그래서 색깔부터 라거와 흡사하고 맑습니다. 너무 온도가 낮아서 잘 올라오지 않는 아로마는 탁주를 연상시킵니다. 입에 넣으면 그저 맛있습니다. 맛이 제대로 느껴지기 전, 입에 닿는 감촉과 향기는 굉장히 라거스럽습니다. 입에 넣고 온도를 올리면 그제야 바이스라는 걸 알 수 있는데, 일반적인 바이스비어와는 매우 다릅니다.

 

 온도가 올라오니 고소하고 바나나 같은 향이 조금씩 올라옵니다. 적정 서빙 온도가 10도 이상인 맥주로 생각합니다. 낮은 온도에서는 향이 제대로 피어나지 않습니다. 구조감이나 균형감이 모나지 않고 부드럽습니다. 바이스임에도 제법 몰티하고 새싹 같은 느낌도 있습니다. 홒향이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역시나 아주 좋은 홒을 사용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꽃향이 온도가 완전히 올라온 후에야 느껴집니다. 꽤나 생생한 클로버 꽃향이 난다고 느낍니다.

 

 다만 이 맥주는 향이 강하지는 않습니다. 기본적으로는 편하게, 맛있게, 날카로움이나 씁쓸함 없이 마시기 좋은 맥주라 생각합니다. 차갑게 마실수록 마냥 단순하고 맛있는 맥주일 것입니다.

 

 

 

 

 

 

인천맥주 몽유병 DIPA [★☆]

 

: 개항로 맥주로 명성을 얻고 있는 인천맥주의 몽유병을 마셔봅니다. 알콜 8%. IBU 40의 헤이지 더블 IPA입니다. 병입한 지 100일정도 된 걸 마셔보게 되었습니다. 사용 잔은 라 트라페 전용잔을 사용했습니다.

 

 첫 서빙 온도는 병 내 측정 6.5도였습니다. 잔에 따르자마자 홒 향이 작렬합니다. 이 맥주는 병에 사용 홒도 기술해 뒀습니다. 아이다호세븐, 모자익(핫사이드), 시트라, 아이다호세븐, 모자익(드라이호핑).

 

 일단 아주 맛있습니다. 더블 IPA라 쓰긴 한데, 좀 쓰면 어때요. 농축 과일주스를 믹스해 만든 것 같은 수준의 과일향이 폭발하는 맥주입니다. 자몽과 귤 같은 시트러스 향, 패션플룻과 망고가 연상되는 열대과일 향, 타라곤, 민트, 로즈마리 같은 허브 향에 달콤한 맛까지 감돕니다. 밀맥아도 사용한 맥주인데, 역시나 바이스비어같은 느낌도 좀 있습니다. 점성까지 높아서 진짜 과일 통조림 국물 수준의 과일농축주스가 떠오릅니다.

 

 단점이라면 너무나도 진한 점성과 너무나도 강한 풍미일까요. 점도나 농도가 거의 묽은 시럽수준이라 조금 마실때는 맛있는데 한 병을 마시려니 부담스럽습니다. 나는 품질이 충분히 좋지 못한 비달 아이스와인같은 걸 마실 때 그리 많이 마시게 되지 않는데, 이것도 좀 그런 느낌이에요. 이런 스타일이 요새 유행하는 크래프트 맥주 스타일이라는 건 알겠는데, 이 정도 농도면 배럴 에이지드를 하거나 증류를 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배혜정 농업회사법인 우곡 생주 []

 

: 알콜 10%. 배혜정도가의 플래그쉽 제품은 우곡주입니다. 그건 13도의 살균탁주고요. 이번에 마시는 우곡 생주는 우곡주의 보급형 버전 정도 됩니다. 미리 구매해뒀던 걸 유통기한이 임박한 시점에 마셔보게 되었습니다.

 

 우곡은 고 배상면 옹의 호입니다. 우곡주는 배상면의 유작이고요. 잘 알려져있다시피 배상면 옹의 첫째 배중호가 국순당을, 둘째 배혜정이 배혜정도가를, 그리고 셋째 배영호가 배상면주가를 경영 중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 회사는 누룩도 배혜정도가 것을 쓰고, 제법도 일정 이상 공유합니다.

 

 첫인상은 배상면 일가의 술 다운 풍미라는 것, 그리고 달달하다는 겁니다. 더 진하고 누룩향이 억제되어 있지만, 느린마을 막걸리의 업그레이드 버전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탄산은 거의 없고 굉장히 진합니다. 뻑뻑하다고 할 수 있는 정도인데, 농도와 도수 때문에 동사의 살균탁주인 부자가 생각납니다.

 

 뒷맛이 조금 쓰고, 전반적으로 조금 거친데 애초에 배혜정도가 스타일이 좀 그런 것 같습니다. 마시면서 온도가 올라오니까 뒷맛에 누룩 향이 조금 많이 남는데, 그것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제주맥주 아티장 에일 로제 []

 

: 제주맥주가 이번에 아티장 에일 로제라는 사워 에일을 데일리샷 론칭으로 출시했는데, 한 병 구매해서 마셔보게 되었습니다.

 

 알콜 6%. 마개고 병이고 스파클링 와인처럼 되어 있는데, 상파뉴나 스푸만테보다 코르크가 너무 작아서 따기 힘들었습니다. 다음에 이런 마개를 만나면 코크스크류를 사용해야 할까봐요. 쇼트즈위젤 비냐 플루트 글라스를 사용해 마셨습니다.

 

 로제와인 같은 색깔. 로즈힙이 연상되는 향기. 맛은 포도가 아닌 다른 것을 사용한 와인과 맥주의 중간 정도입니다. 새콤한 첫맛에서는 순간 상파뉴가 연상되는데, 곧 신맛이 약해지면서 에일처럼 마무리됩니다. 새콤하지만 산의 종류는 상파뉴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시트르산이 주요 산인 것 같고, 어쩌면 아세트산도 좀 있을 거 같아요.

 

 나의 느낌에 이 맥주는 맛있다가 마는 느낌입니다. 첫맛이 너무나도 와인 같은데다 가격도 와인이라 와인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는데, 까바와 비교하면 내 입엔 까바가 명백하게 더 맛있습니다. 알콜대비 가격으로 생각해봐도 도수도 까바가 훨씬 높고요.

 

 이 술의 장점이라면 아마 음식 맞춰서 먹기는 와인보다 쉬울 겁니다. 어쨌든 맥주니까요. 바게뜨나 소금빵 같은 것과 먹으면 맛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페레티프로 소량을 마신다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신맛이 식욕을 돋구는데다 뒷맛이 별로 없어서, 이어 먹을 디쉬를 해치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색깔도 예쁘고요. 다만 나는 식후에 술만 따로 마시는 게 일반적이고, 이 맥주는 그런 방식에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West+Wilder - Cabernet Sauvignon (N/V) []

 

: 알콜 13%. 리즈너블한 캔 와인입니다. 20218월 말일에 생산된 걸 마시게 되었습니다. 첫 서빙 온도는 15도 정도로 다소 낮았습니다. 캔째 마시면 제맛을 못 볼 게 확실시되어 조세핀 No. 3를 사용해 마셨습니다.

 

 조세핀 글라스에 따라 놓으니 과일 향이 풍부하게 올라옵니다. 색이 진하고, 삼나무향도 느낄 수 있고, 피라진 느낌은 없습니다. 입에 넣으니 긍정적으로 다소 산화된 뉘앙스가 있고, 이내 까베르네 소비뇽다운 떫음이 느껴집니다. 약간의 잔당감이 있는데 나쁘지 않습니다.

 

 맛은 있는 와인인데요. 다만 나는 까베르네 소비뇽은 결국 장점이 숙성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와인은 탄닌을 제어해서 비교적 마시기 쉽게 만들어놨지만, 결국 떫고 뻑뻑한 느낌이 없지는 않거든요. 문제는 캔이라는 포장 방식은 까베르네 소비뇽의 숙성에 있어 그다지 좋지 못할 확률이 높다는 겁니다. 일단 입에서 느껴지는 구조감으로 볼 때 이 탄닌은 5년은 더 있어야 녹을 거 같은데, 문제는 이건 캔 와인이라는 거지요. 이 캔이 5년 더 지나면 아무도 안 마시려고 할 것 같은데요. 그래도 일단 나는 사놓은 게 더 있어서 나중에 천천히 더 마셔볼 생각입니다.

 

 이 와인에 대한 내 인상은 어떻게든 맛있게 만든 와인에 가깝습니다. 블렌딩을 잘 하고 양조 테크닉을 살려서, 어쨌든 맛있고 리즈너블한 와인을 만들었다는 느낌인 것인데요. 문제는 어쨌든 까베르네 소비뇽이라는 겁니다. 이런 타입의 와인이라면 다른 품종을 사용했으면 더 맛있었을 건데요. 물론 이 좀 떫은, 강렬한 구조감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꽤 있을 거라고는 생각합니다만... 내 최애 레드 품종은 피노 누아고, 그 다음으로 신뢰하는 품종은 템프라니요와 그라나슈에요.

 

 떫은 것만 빼면 맛있긴 한 와인이라서, 떫은 거 잘 마시고 잔당감, 과일향을 싫어하지 않는 분들에게 추천할 만한 미국 까베르네 소비뇽입니다. 다만 내추럴한 느낌과는 거리가 멉니다.

 

 

 

 

 

 

 

Bodegas Olivares - Finca Hoya de Santa Ana Tinto 2020 [★☆]

 

: 알콜 14.5%. 에스파냐 남동쪽에 위치한 Jumilla D.O.P. 입니다. 품종은 2018년의 경우 모나스트렐(무드베르드) 75%, 가르나차(그라나슈) 15%, 시라 10%라고 하는데 2020년은 잘 모르겠습니다. 마개는 스크류캡입니다. 첫 서빙 온도는 18. 사용 글라스는 조세핀 No. 3.

 

 모나스트렐이 주품종인데 향은 어째 전형적인 GSM 향 아닌가 싶습니다. 주품종이 그라나슈라고 해도 향만 맡으면 믿을 것 같아요. 그런데 입에 넣으면 역시 좀 다릅니다. 사실 모나스트렐이 들어간 와인은 많이 마셨어도 모나스트렐이 주품종인 와인은 마셔본 적이 있었나 싶은 수준인데, (마시면서 잘 생각해보니 있긴 있었네요.) 블라인드로 마셨으면 좀 묘한 시라라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

 

 나는 에스파냐 틴토(레드)를 좋아하는 편인데, 이것도 저렴하기는 하지만 그럭저럭 맛있습니다. 동물계 향이 꽤 있고, 입에 넣으면 라즈베리 및 체리, 기타 야생 베리들을 연상시키는 과일 향과 가죽, 약간의 미네랄, 그리고 태운 오크의 느낌이 살짝 납니다. 이 와인은 6000리터와 10000리터의 프렌치 오크 통에서 3개월을 숙성시킨 후 출하한다고 하는데, 그 정도로도 오크 느낌이 살짝 날 수 있나 봅니다. 그 외 요거트 향과 흑후추 향이 좀 있다고 느끼네요. 탄닌은 살짝 뻑뻑한데 조금 더 병숙성했으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피니쉬는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꽤 달달합니다. 스위트 와인이라는 건 아니고요. 고도수에 알콜 및 글리세린의 단맛이 꽤 느껴지네요. 마시면 마실수록 알콜이 굉장히 센 와인입니다.

 

 후미야 와인은 경험해본 기억이 딱히 없었는데, 이 지역의 주품종이 모나스트렐이라고 합니다. 고기와 함께 먹으면 좋다고 하고, 실제로 마시면서 생각해봐도 구운 고기가 어울릴 것 같습니다. 아니면 이걸로 스튜를 끓여도 좋을 것 같네요. 피노 누아 대신 요리에 써도 괜찮을 것 같아요.

 

 열리고 온도가 올라오면서 꽃향이 좀 올라옵니다. 저렴한 와인이지만 병숙성 좀 제대로 했으면 어떤 와인이 되었을까 조금 궁금해지기는 합니다. 디캔터를 써볼까 하는 생각이 잠시나마 들었지만, 일단 조세핀 No. 3를 믿고 그냥 천천히 마시기로 했습니다. 다만 이 와인의 시음적기를 나는 2025~2026년부터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14.5%의 알콜과 풍부한 글리세린, 모나스트렐의 풍부한 탄닌은 이 와인을 나름대로 장기 숙성 가능하게 해 줄 겁니다. (실제 약간 남은 걸 2주 정도 지나고 마셨는데도 아주 죽지는 않아서, 가격에 비해 어느 정도 장기 숙성에 적합한 와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열리고 나니 좀 남부 론 와인 같아집니다. 동물계의 느낌에 더해 스파이시한 향신료 향이 올라와서 꽃망울처럼 터지고, 그에 달달함이 더해져 꿀을 품은 꽃잎처럼 느껴집니다. 맛은 그저 달달하고요. 부케나 복합성이 너무 없는 게 아쉽긴 한데 그래도 제법 후미야의 모나스트렐은 어떤 건지 보여주는 느낌은 있네요.

 

 노트는 라즈베리, 체리, 멀베리(오디), 가죽, 실트(Silt), 커피, 요거트, 흑후추, 감초, 튤립.

 

 

 

 

 

 

 

배상면주가 느린마을막걸리 방울톡 []

 

 

: 여러 병 사뒀던 느린마을막걸리 방울톡을 소비기간을 넘겨 소비하게 되었습니다. 일단 소비기한을 열흘 정도 넘긴 걸 개봉해 봅니다.

 

 침전물을 섞지 않은 첫 모금은 여전히 달달하고, 다소 누룩 향이 나면서 과일 같은 향이 살아있는,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산화탄소가 좀 적네요. 이 제품은 성분표를 보면 처음 만들 때 이산화탄소를 추가로 주입하는 것 같은데, PET병 특성상 이산화탄소를 제대로 지키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이 상태에서 맛이 없냐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병입한지 얼마 안 된 걸 받자마자 마셨을 때보다는 이게 맛있습니다. 그렇지만 소비기한을 조금 남겨뒀을 때가 더 맛있었네요.

 

 마지막 병은 소비기한을 3주 정도 넘겨서 마셔보게 되었습니다. 소비기한이 지난 후 아주 차갑게 보관했더니 열흘 정도 넘긴 상태와 별로 변하지 않았다고 느낍니다. 그럭저럭 맛있습니다.

 

 

 

 

Duvel The Original Belgian Strong Blond [★★]

 

: 알콜 8.5%. 벨기에의 유명한 스트롱 골든 에일입니다. 굉장히 오래간만에 마셔봅니다. 듀벨 전용 잔이 있으면 좋겠지만 없어서 최고의 애비 에일 메이커인 세인트 버나두스의 전용잔을 대신 사용해서 마셨습니다.

 

 나에게 정말 맛있는 맥주 또는 최고의 맥주를 하나 꼽으라고 이야기한다면 일단 가장 먼저 꼽는 맥주가 이 듀벨 오리지날입니다. 구하기 쉽고, 가격에 비해 맛있습니다. 이것보다 맛있는 맥주가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이 듀벨보다 비싸고 구하기 훨씬 힘듭니다.

 

 이 맥주는 IPA처럼 엄청난 홒향이 화려하게 만개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 어떠한 부족함도 없이, 충만한 몰트향과 양질의 홒향을 드러냅니다. 또한 동시에 편하고 쉽게 마실 수 있습니다. 8.5%의 알콜은 부족함 없이 풍만합니다. 이 스타일은 트라피스트 중에는 발음이 비슷한 두벨보다는 트리펠에 가깝습니다.

 

 클래시컬한 벨기에 맥주답게 이 맥주는 좋은 홒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홒 향이 전면에 나서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몰트 풍미가 주입니다. 이런 맥주가 마시기 편하고, 마냥 맛있지요. 언제든 함께하고픈 맥주입니다.

 

 

 

 

 

 

Kirin - 一番搾[]

 

: 알콜 5%. 기린 이치방 시보리, 정말 오래간만에 마셔보네요. 세인트 버나두스 잔을 사용했습니다.

 

 좀 묽고 단순하긴 한데 역시 맛이 괜찮습니다. 산토리가 더 맛있다고는 생각합니다만, 이것도 좋아요. 라거치고는 몰트향도 세고 홒향도 셉니다. 주관적으로 일본스러운장점이 있는 맥주고, 일본의 좋은 면을 보여준다는 느낌으로는 (맥주 중에는) 에비스와 이걸 꼽고 싶습니다.

 

 

 

 

 

 

세븐브로이 강서 Mild Ale []

 

: 세븐브로이의 강서 맥주는 처음 나왔던 무렵 한 번 마셔본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무려 Clos de Vougeot를 마신 직후 마셨었음에도 꽤 맛있게 마신 기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후 한참 시간이 지나서야 다시 마셔보게 되네요. 세인트 버나두스 잔으로 마셔봅니다.

 

 알콜 4.6%. 색깔은 꽤 진합니다. 마시자마자 굉장히 과일스럽게 선명한 홒 향이 작렬하는데, 스타일이 무척 밝으면서도 진하고, 동시에 알콜 도수가 높은 편이 아니라서 비교적 어렵지 않게 마실 수 있습니다.

 

 예전에 마셨을 때는 이 맥주의 스타일 때문에 클로 드 부조를 마신 직후의 시너지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입안 등에 미량 남은 클로 드 부조 때문에 버프를 받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 거 없이 마시니까 이 맥주도 평범하게 그럭저럭 잘 만든 크래프트 맥주네요.

 

 

 

La Trappe Dubbel [★★☆]

 

: 트라피스트 에일 중 하나인 라 트라페의 두벨을 마셔봅니다.

 

 트라피스트 에일은 가톨릭 트라피스트회 수도자들이 수도원에서 양조한 에일을 의미합니다. 국제 트라피스트 협회에서 공인된 트라피스트 에일은 현재 11종이 있으나 그 중 메사추세츠의 스펜서 양조장이 문을 닫아 생산되는 건 10종입니다. 그 목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베스트플레이터런(Westvleteren), 로슈포르(Rochefort), 라 트라페(La Trappe), 베스트말러(Westmalle), 시메이(Chimay), 오르발(Orval), 준데르트(Zundert), 엥겔스첼(Engelszell), 트레 폰타네(Tre Fontane), 틴트 메도우(Tynt Meodow) 입니다. 한편으로 아헐(Achel)20211월까지 트라피스트였지만, 현재 자격을 박탈당해 맥주는 계속 생산하지만 트라피스트 에일은 아닙니다.

 

 트라피스트 에일과 유사한 방식으로 양조되지만 트라피스트 협회에서 공인되지 못한 맥주는 애비(Abbey=수도원) 에일이라 부르는데, 애비 에일 중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것으로 레페(Leffe)가 있습니다.

 

 이번에 마시는 라 트라페는 네덜란드에 양조장이 있습니다. 음용기간이 20252월까지지로 표기된 걸 20239월에 개봉했습니다. 전용잔에 마셔봅니다. Dubbel은 영어 더블과 같은 뜻으로 일반 맥주보다 몰트를 2배 썼다는 의미입니다. Duvel과 발음이 비슷하니까 구분이 필요합니다. 비교적 구하기 쉬운 애비 에일, 레페 브라운이 Dubble 스타일입니다. 그건 옥수수도 써서 트라피스트-애비 에일 계열로는 맛이 좀 특이합니다만.

 

 알콜 7%. 잔에 따르니 색이 진하고 거품이 풍성합니다. 병숙성이 잘 진행되어 풍미가 살아있고, 거품이 끊임없이 올라옵니다. 마셔보면 우수한 홉 향과 완성도 높은 몰트 풍미가 밀도감이 높습니다. 그리고 균형이 잘 잡혀 있습니다.

 

 쌉쌀함이 없지 않은데, 그보다 달달합니다. 브라운 에일답게 몰티한 달달함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홒을 과도할 정도로 넣은 IPA 타입과는 달리 균형감이 좋고 몰트 풍미를 앞세워서 참 맛이 괜찮습니다.

 

 330ml짜리를 마시긴 했지만 한 병이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마지막 모금을 마시면서 아쉽다고 느꼈는데, 나에게는 그런 느낌을 주는 맥주가 참 드뭅니다. 아주 맛있는 맥주입니다. 가격이고 품질이고 와인같은 게 문제라면 문제겠지만요.

 

 

 

 

 

 

플래티넘크래프트맥주 에일의 정석 []

 

: 알콜 5.2%. 아메리칸 스타일 페일 에일이고 IBU 43이라고 합니다. 세인트 버나두스 잔을 사용했습니다. 성분을 보니 이산화탄소가 첨가되었고요. 제조된 지 2개월하고도 3주 정도 된 걸 마셔보게 되었습니다.

 

 잔에 따라놓고 보니 강렬한 기포가 올라옵니다. 색은 어두운 오렌지-갈색. 한 모금 마셔보니 아메리칸 페일 에일답게 끝내주는 어택입니다. 시트러스향이 정말 신선합니다. 입안에 시트러스 으깬 걸 넣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그러면서도 IBU 높은 IPA 특유의 질감과 쌉쌀함이 있습니다.

 

 바디가 상당히 풀바디입니다. 이런 고 IBU IPA를 마실 때마다 생각하는데, 질감이 다소 미끈덕거릴 정도고 그 질감때문인지 들큰한 감각이 있습니다. 글리세린과는 느낌이 또 다른데, 내 느낌에는 통조림 국물의 그 바디감과 가장 흡사합니다. 유감스러운 점은 내가 이런 타입의 맥주를 마실 때 너무나도 무거운 이 바디감과 질감에 청량함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는 겁니다.

 

 향만으로 보면 이 에일은 꽤 좋습니다. 상세르가 떠오를 정도에요. 다만 나는 이런 타입 맥주의 무거움이 왜 트렌디한 상태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장점이라면 음... 간장을 찍은 만두에도 밀리지 않을 것 같네요. 음식과 페어링할 때.

 

 

 

 

 

 

 

M·A·N Family Wines Cellar Selection Chenin Blanc 2021 [★☆]

 

: 남아공의 슈냉 블랑을 오래간만에 마십니다. M·A·N Family Wines, 또는 M·A·N Vintners는 본래 양조장을 하던 Tyrrel Myburgh와 그의 형제 Philip, 그리고 마찬가지로 양조장을 하던 José Condeeveryday wine을 생산하기 위해 각자의 아내 이름(Marie, Anette and Nicky)의 첫 글자를 따서 지은 이름이라고 합니다.

 

 알콜 13%. 마개는 스크류캡입니다. 5.5도에서 첫 서빙. 잔은 슈피겔라우 빌스베르거 콜렉션 화이트를 사용했습니다. 이 와인은 디캔터에서 91점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합니다.

 

 첫 서빙 온도가 저온이었으나 기분 좋은 향기로 시작합니다. 첫인상은 랑그독의 블랑이 연상되는 향이라고 느꼈습니다. 입에 넣으니 다소 묽지만 마시기 편하고 유쾌한 풍미가 느껴집니다.

 

 남아공 와인은 신세계에 속하긴 하지만, 구세계와 신세계의 중간적인 맛이 나는 편입니다. 이 와인도 역시나 그러한데, 유럽 와인이라 생각하면 프루티하고 응축감이 적은 편이지만 프루티한 유럽 와인이라 해도 납득할 정도의 풍미입니다.

 

 온도가 올라오면서, 그리고 열리면서 상파뉴스러운 견과류 풍미가 슬슬 올라옵니다. 온도를 조금 올려보니 이 와인은 열대과일의 아로마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뉘앙스는 신세계스럽지 않고, 프랑스나 이탈리아 와인이 열대과일 아로마를 가진 것 같은 느낌입니다.

 

 약간의 상파뉴 뉘앙스, 그리고 약간의 오크 뉘앙스(?)가 있는데 언오크드 슈냉 블랑입니다. - 양조 정보를 볼 때는 앙금 접촉에서 기인한 것 같습니다. 도수는 높지만 전혀 어려운 맛이 아니고, 복합성이 없는 편이고, 과일 향이 풍부하기 때문에 정말 아무 생각없이 술술 마시게 되는 슈냉 블랑입니다.

 

 이 와인이 슈냉 블랑의 매력을 십분 드러내는가? 라고 생각하면 아니오. 다만 5대 메이저 화이트 품종 치고 슈냉 블랑이 접근성이 좋은 편은 아닙니다. 우리나라를 기준으로 하면 5대 메이저에 속하지 않는 피노 그리나 게뷔르츠트라미너 쪽이 더 접근성이 좋을 정도지요.

 

 어쨌든 슈냉 블랑으로 만든 와인은 맛있는 편입니다. 최고존엄 샤르도네에 비해 그리 성공률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것도 맛있냐 맛없냐의 이분법으로 보자면 맛있어요. 원천적으로 어느 정도 제대로 만든 화이트 와인은 맛없기도 힘들다고는 생각합니다.

 

 노트는 레몬, 멜론, 석회암, 점판암, 자갈, 구운 아몬드, ... 정도인데 미네랄리티의 강도가 결코 높은 편이 아니고, 빵 느낌도 상파뉴에 비하면 약합니다. 떼루아는 딱히 떠오르지 않고, 전반적으로 단순하고 묽은 와인입니다.

 

 

 

 

St. Bernardus Prior 8 [★★]

 

: 트라피스트 에일 중 최고로 꼽히는 건 베스트플레이터런(Westvleteren)입니다. 트라피스트를 넘어서 일반적으로 세계 최고의 맥주로 꼽히는 게 베스트플레이터런 12입니다.

 

 그리고 이번에 마셔보는 세인트 버나두스는 베스트플레이터런을 한 때 위탁 생산했던 회사입니다. 그러니까 베스트플레이터런을 1946년부터 1992년까지 실제로 만들던 회사가 세인트 버나두스입니다.

 

 이후 베스트플레이터런과 세인트 버나두스는 결별했습니다만, 세인트 버나두스는 최고의 애비 에일 메이커로 명성을 날리게 됩니다. 세인트 버나두스가 분류상 트라피스트 에일은 아니지만 트라피스트 스타일의 애비 에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마시는 프리오르(프라이어) 8은 두벨 스타일입니다. 알콜은 이름 그대로 8%. 전용잔으로 마셔봅니다. 소비기한이 202612월까지로 표기된 걸 20239월에 마십니다.

 

 첫 서빙 온도가 꽤 낮았으나 잘 구운 몰티한 향과 양질의 홒 향이 올라옵니다. 입에 넣으니 밀도높고 충만하면서도 홒 향이 잘 살아있는 느낌입니다. 라 트라페의 두벨에 비하면 홒에서 기인한 과일 풍미가 좀 강한 것 같습니다. 효모 맛도 많이 납니다.

 

 얼마 전 마신 라 트라페의 두벨에 비해 병숙성도가 좀 낮은 것 같습니다. 이게 1도 더 높으니까 병숙성을 더 시킬 수 있을 것 같은데, 소비기한은 이게 22개월 정도 더 남아있는 상태에서 마셨으니까 그럴 만 합니다. 조금 더 숙성해서 마셨으면 내 입에는 더 맛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마십니다.

 

 풍미가 꽤 특이합니다. 온도가 조금 올라가니까 효모 맛이 많이 나는데, 다크 럼이나 수정과를 연상시키는 면이 있습니다. 흑설탕 풍미가 조금 나면서 꽤나 달달합니다. 맛 자체가 달콤한 건 아닌데요. 향이 달콤합니다. 이 정도면 아마 대다수는 달다고 착각할 겁니다.

 

 

 

 

 

 

네오아티잔브루어리 Ark Pale Ale Brown []

 

: 알콜 5%. 세인트 버나두스 잔에 마셔봅니다. IBU34라 홒이 꽤 들어간 타입이라 생각해 봅니다.

 

 맛을 보니 역시나 그냥 페일 에일이라기보다는 IPA라는 생각이 듭니다. 꽤 낮은 온도에서 서빙을 시작했음에도 마시자마자 과일스러운 홒 향이 작렬하는데, IBU 생각하니까 그냥 온도 낮을 때 많이 마셔야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우리나라 맥주답게 탄산을 넣었고, 그래서 탄산이 셉니다. 맛은 일단 저온에서는 별로 안 쓰고, 과일 향 풍부하고, 맛이 괜찮습니다. IPA 계열은 내 생각에는 얼마나 적당히 하느냐가 마시기 편한 정도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하는데 이건 적당합니다.

 

 온도가 좀 올라간 이후에도 별로 쓰지 않습니다. 균형감이 있는 편이라는 생각이 들고요. 마시기 편하고 괜찮았어요.

 

 

 

 

 

주로 골목 막걸리 프리미엄 []

 

: 처음 이 막걸리를 구매할 때 3병을 구매했는데, 거의 구매하자마자 1병을 마셔봤었고 그 때는 너무 달기만 해서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충분히 익혀 먹어야겠다고 판단했고, 두 번째 병은 소비기한을 열흘 남겨두고, 세번째 병은 소비기한을 삼일정도 넘겨 마셨습니다.

 

 여전히 개봉이 힘듭니다. 돌려 여는 마개가 아주 강하게 잠겨있는데, 뚜껑은 또 미끄러워서 이번에는 고무밴드를 감아 마찰력을 높여 열었습니다. 내 생각엔 이정도면 제품 하자입니다. 저렴한 막걸리 뚜껑처럼 뚜껑에 세로홈이라도 있었으면 그나마 나았을 겁니다. 특히 세번째 병은 너무나도 개봉이 힘들었기에 그것만으로도 별점을 부여하고 싶은 마음이 잠시 사라졌을 정도였습니다.

 

 침전물을 섞지 않고 청주에 가까운 윗부분부터 마셔봅니다. 첫맛은 달고 뒷맛은 누룩향이 작렬합니다. 농도는 높고, 여전히 탄산은 별로 없습니다. 처음 마셔봤을 때는 나아진 것 같은데, 병숙성 과정에서 효모가 잘 활동한 거 같지 않습니다. 첫 병 인상이 생탁주라더니 효모가 죽은거 아냐?’ 였는데, 지금 와서 보면 완전히 죽진 않아도 반쯤 잠든 상태쯤은 되는 거 같습니다.

 

 알콜 12%의 도수가 입에서는 잘 느껴지지 않지만, 조금만 마셔도 취하는 느낌이 강한 편입니다. 침전물을 섞어 맛을 보니 그나마 단맛이 덜 느껴지는데, 누룩향이 세도 너무 셉니다. 좋은 술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아주 맛없는 것도 아니지만.

 

 나는 백종원이 하는 음식점 가서 딱히 맛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이 술도 그 정도인 것 같습니다. 누룩향이 강한 쪽을 전통느낌 난다고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긴 할 건데, 그런 사람들에게는 괜찮을 겁니다. 단맛이 강하니까 그 점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을 거 같고요. 가격이 안 높고 마개라도 열기 편했으면 나름 괜찮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는데, 이 막걸리는 저렴하지 않습니다.

 

 

 

 

Hoggy’s Apple Paradise Cider []

 

: 알콜 4.5%. 호기스는 시드르(사과주) 브랜드 중 하나로, 이 애플 파라다이스는 사과주스 48%, 시드르 39.88%, 천연사과향 0.2%에 정제수와 이산화탄소, 보존료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슈피겔라우 데피니션 유니버셜로 마셔봅니다.

 

 향은 사과주스 향이고 맛도 사과주스 맛입니다. 다만 그리 달지 않고, 시드르 특유의 담백하고 단정한 피니쉬가 좋습니다. 나는 시드르가 더울 때 마시기 참 좋은 주류라고 생각하는데, 기본적으로 시드르라는 게 포도로 만든 와인처럼 맛있지는 않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좀 마이너하고 주스 등으로 가미가 된 게 주로 팔리는 게 다소 아쉽긴 합니다.

 

 그래도 가미된 시드르라도 언제든 유쾌하게 마실 수 있는 주류라 생각합니다.

 

 

 

 

화양 풍정사계 [★★]

 

: 알콜 12%. 화양은 청주시 청원구에서 풍정사계라는 전통주를 빚는 농업회사법인입니다. 생청주(주세법상 약주) , 과하주 , 생탁주 , 상압식 소주 4종류를 빚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그 중 탁주인 추를 마셔봅니다. 마침 가을이기도 하고요. 생산된 지 한달하고도 일주일 정도 지난 것을 마십니다.

 

 마개가 돌려따는 플라스틱 마개인데 유감스럽게도 주로의 골목막걸리 프리미엄과 거의 동일한 마개입니다. 역시나 개봉이 좀 어려운데, 그래도 골목막걸리 프리미엄보다는 훨씬 쉽게 개봉되었습니다.

 

 일단 침전물을 섞지 않고 맑은 부분을 마셔봅니다. 누룩 향이 좀 있고, 입에 넣으니 새콤해서 유쾌해집니다. 이후 아주 구수하고 그윽한 느낌의 누룩 향이 올라오는데, 좋은 술이구나. 라고 납득이 됩니다. 입에서 느껴지는 탄산은 거의 없습니다. 마셔봤던 탁주 중 최고는 금계당의 바랑이었는데, 이것도 거의 그에 육박할 만큼 맛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침전물과 섞으니 산미가 줄어듭니다. 침전물이 많은 타입이 아닌데, 술 자체가 바디감이나 규모가 상당합니다. 백세주 잔으로 마시기 시작했는데, 이 잔으로는 진가를 알 수 없다고 판단하여 슈피겔라우 데피니션 유니버셜 글래스를 사용해보기로 했습니다.

 

 데피니션 유니버셜에 따라 놓으니 새콤한 아로마를 맡을 수 있습니다. 입에 닿을 때의 알콜이 살짝 높습니다. 와인 기준에서 이야기하면 알콜이 좀 튀는 타입인건데, 생탁주나 생청주 같은 경우 대체로 병숙성을 오래 진행하지 않고 신선한 풍미로 마시는 것이기 때문에 희석한 타입이 아닌 이상 알콜이 튀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마시기 부담스럽거나 불쾌할 정도의 알콜은 아닙니다.

 

 한편으로 이 주류의 규모는 이 데피니션 유니버셜이 딱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어지간한 언오크드 화이트 와인을 마실 때 데피니션 유니버셜이 살짝 과도하기 쉽다는 걸 감안할 때 화이트 와인 글라스에 비해 유니버셜 글라스는 더 큽니다 이건 탁주로는 정말 좋은 탁주인 겁니다.

 

 누룩 향이 꽤 납니다. 바랑같은 경우 극단적으로 누룩을 적게 사용한 탁주였는데, 그 바랑조차 데피니션 유니버셜에서는 누룩 향이 제법 났습니다. 이 풍정사계 추는 바랑같은 타입도 아니니까 누룩 향이 많이 날 수밖에 없고, 그 누룩 향의 구수함과 그윽함을 활용한 타입의 주류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데피니션 유니버셜에서 누룩 향은 비단 긍정적으로 볼 수 없는 방식으로 드러납니다. 결과적으로 이 탁주는 데피니션 유니버셜로 마시면 지나치게 분석적으로 느껴지고 상기하였듯 이 탁주가 가진 바디감에는 데피니션 유니버셜 정도가 어울리긴 합니다만 - , 단점이 과도하게 드러나는 방향이 된다는 생각입니다.

 

 결과적으로 나는 이 탁주는 청주 잔이 어울린다고 판단합니다. 이런 술을 백세주 잔에 마시는 것도 운치가 없는 것 같아 금칠이 들어간 수공예품 청주 잔을 써보니 잘 어울린다는 느낌입니다.

 

 한편으로 이 술은 맛은 있는데 가격대가 조금 높은 게 단점입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진짜로 맛있는 술입니다. 값만 비싼 술이 아니에요. 맛만 있는 게 아니라, 이쯤되면 운치도 있다고 해야 합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이 술을 보리굴비나 조기찜과 함께해보고 싶습니다.

 

 

 

 

Strongbow Rosè Apple [★☆]

 

: 시드르 브랜드 중 하나인 스트롱보우의 로제 애플 시드르를 마셔봅니다. 알콜 4.5%. Semi-Dry Cider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농축사과주스 함량이 41.6%입니다. 제조국은 벨기에.

 

 로제라고 해서 장미향을 첨가한건가? 라고 생각하고 한 입 마셔보니 그쪽이 아니고요. 이건 굳이 보면 로제와인 향에 가깝습니다. 처음에는 캔째 그냥 마시다가 색깔이 로제 색일거 같아서 슈피겔라우 빌스베르거 콜렉션 화이트 글라스를 사용해서 마시기로 했습니다.

 

 잔에 따르니 색깔이 꽤 예쁩니다. 이건 유리잔을 사용해야 하는 시드르네요. 그리고 아로마나 첫맛이 제법 포도로 만든 와인 같습니다. 뒷맛은 명백한 시드르입니다만. 원래 로제와인도 시드르도 좋아하다보니 제법 마음에 드네요. 앞으로도 종종 마시고 싶은데요.

 

 시드르는 기본적으로 포도로 만든 와인수준으로 맛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시드르의 장점은 무난함과 뒷맛의 담백함에 있습니다. 시드르의 뒷맛은 어떤 주류보다도 깔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에게는 그 깔끔함이 일종의 청량함을 느끼게 합니다.

 

 유감스러운 점이라면 우리나라에서 시드르는 맥주의 일종처럼 취급되고 있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분류로 보면 시드르는 와인이에요.

 

 

 

 

 

Tsingtao 120 Years Aniiversary Limited Edition []

 

: 칭따오 120주년 기념 캔을 여름에 이어 가을에도 마시게 되었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세인트 버나두스 잔을 이용해보기로 했습니다. 알콜은 4.7% 입니다.

 

 칭따오를 마실 때마다 생각하는데, 칭따오는 최고의 쌀맥주입니다. 맥주에 쌀을 쓰면 쓴맛이 적고 보리에 비해 좀 가벼운데요. 나는 쌀로 만든 술은 어지간해선 맛있고, 쌀을 쓴 맥주도 맛있다고는 생각합니다. 쌀로 만든 술이 원래 그렇듯 아시아 음식에 전반적으로 잘 맞고요. 다만 칭따오처럼 맛있는 쌀맥주가 또 있느냐면 저는 마셔본 게 없네요.

 

 

 

 

 

 

La Trappe Quadrupel [★★]

 

: 알콜 10%. 상미기한이 202510월까지로 표기되어있는 것을 202310월에 마셨습니다.

 

 트라피스트 에일은 기본적으로 두벨, 트리펠, 쿼드루펠이 있습니다. 각기 2, 3, 4배의 몰트를 사용했다는 뜻이지요. 쿼드루펠이 트라피스트/애비 에일 스타일에서 가장 진하고 도수가 높은 겁니다. 현존 11종의 트라피스트 중 라 트라페의 쿼드루펠을 전용잔에 마셔봅니다. 잔에 따른 후 측정한 첫 서빙 온도는 11.9도였습니다.

 

 아로마부터 진하고 맛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입에 넣으면 중량감과 규모, 볼륨이 상당합니다. 풍미는 꽤나 진하고 풍부합니다. 강하고 달콤하며 알콜 풍미와 몰트 풍미가 느껴집니다. 알콜이 좀 튄다 싶을 정도로 강합니다. 10도짜리 술 치고는 알콜이 정말 세네요.

 

 알콜 풍미 다음으로 강한 건 흑설탕같은 몰티한 달콤함입니다. 다만 그 달콤함은 알콜에서 기인한 풍미 뒤에 숨어 있습니다. 나의 판단으로 이 술은 브리딩을 좀 해서 알콜을 날린 후에 더 진가를 드러낼 것 같고, 서빙온도도 레드와인 수준에 맞추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만 일단 내가 구매한 쿼드루펠은 330ml짜리라 뭘 해볼 틈도 없이 다 마셔버렸습니다.

 

 결론적으로는 같이 구매한 두벨이 더 맛있었는데, 나는 두벨이 더 충분히 숙성된 상태였다고 생각합니다. 쿼드루펠이 도수가 더 높으니까 두벨보다 병숙성이 느리고, 더 숙성을 해야 하는 것 같아요. 가능하면 쿼드루펠은 충분히 숙성된 이후에 마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Domaine Hoffmann-Jayer Bourgogne Hautes-Côtes de Beaune (Blanc) 2019 [★★★]

 

: 도멘 호프만 자이에는 과거 자이에 질(Jayer-Gille)로 알려졌던 도멘의 후예입니다. 질 자이에는 전설적인 앙리 자이에(Henry Jayer)의 친척(오촌)으로도 유명했지요.

 

 그런데 질 자이에는 2017, 건강이 악화되었던 것인지 스위스 사람인 앙드레 호프만(André Hoffmann)에게 도멘을 매각한 후 2018년에 타계했습니다. 이후 도멘 자이에 질은 도멘 호프만 자이에로 이름을 바꿔 와인을 생산 및 판매하고 있습니다. Alexandre Vernet라는 사람이 와인 제조 팀의 리더라고 합니다.

 

 알콜 14%. 보통 부르고뉴 블랑은 (부르고뉴 알리고떼를 제외하면) 100% 샤르도네로 만듭니다만, 이 오 코트 드 본은 독특하게도 피노 블랑이 30% 섞여 있습니다. 그러니까 샤르도네 70%, 피노 블랑 30%의 구성입니다. 포도나무의 평균 수령은 두 품종 다 55년이라고 하며, 병에는 표기되어 있지 않지만 Les Vallerots라는 리외디에서 재배된 포도라고 합니다.

 

 사용 글라스는 슈피겔라우 데피니션 유니버셜과 슈피겔라우 데피니션 버건디를 사용해보기로 했습니다. 버건디 글라스를 사용해보는 이유는 도멘에서 권장하는 게 의외로 버건디 글라스라서 과연 어울리나 시도해보기로 했어요.

 

 개봉 전부터 보존상태가 살짝 의심스러웠는데, 캡실을 벗겨보니 유감스럽게도 와인이 살짝 끓어넘친 것 같은 흔적이 있습니다. 마개는 천연 코르크입니다. 가장 먼저 데피니션 유니버셜로 마셔봤습니다.

 

 첫 서빙 온도는 11.8도로 약간 높았습니다. 칠링을 더 하면서 첫 잔을 마셔보니 약간의 탄산감이 있습니다. 충분한 앙금 접촉이 있었던 것 같은 풍미. 그리고 한 입 마시자마자 순수한 샤르도네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단은 꼭 보존이 심각하게 잘못되어서 끓었다기보다는 병입 이후에도 약간의 발효가 더 진행되어 끓어올라온 면이 있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스타일이 무척 특이합니다. 블라인드로 마셨으면 상파뉴의 스틸와인 또는 도사쥬를 아직 하지 않은 상파뉴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괜히 버건디 글라스에 마시라는 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데피니션 버건디 글라스에서 이 블랑은 풍부한 과일 및 미네랄 아로마를 느끼게 합니다. 입에 넣어보니 의외로 도멘의 추천대로 - 버건디 글라스가 어울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말로락틱 발효가 된 건지 사과산을 느끼기 어렵고, 질감은 오일리한데 탄산감이 있어서 무겁거나 느끼하다는 느낌은 별로 없습니다. 레이어와 복합성을 가지고 있고, (어쨌든 레지오날 급이지만) 제법 체급이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이 블랑은 발효단계에서부터 50~70%정도는 350L의 새 배럴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제작비를 들여서 작정하고 만든 오크드 샤르도네+피노블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사용법은 부르고뉴답게 우아한스타일입니다.

 

 나는 이 와인을 다소 일찍 개봉했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더 병숙성을 시키면 더 맛있었을 겁니다. 다만 코르크가 살짝 올라온 게 보존상태가 의심스러워서 일찍 개봉했습니다. 나는 이 와인이 몇 년의 병숙성을 더 거치면 근사한 블랑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지금도 맛있습니다만, 내가 생각하기엔 4~5년 정도 더 숙성시켰으면 제법 환상적이었을 겁니다.

 

 기본적으로 나는 부르고뉴 와인을 최고라 느끼고, 최고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부르고뉴 와인을 그렇게 자주 마시지도 않고, 부르고뉴 와인만을 집중적으로 구매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부르고뉴 와인은 너무 비싸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나의 관심은 더 넓은 범위를 향해있습니다. 그러나 이 와인은 그런 나에게 결국 최고는 부르고뉴라고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어차피 잘 알고 있는 건데요.

 

 조금 열린 상태에서 평가합니다. 이 와인의 아로마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느껴지는 건 부르고뉴 아니랄까봐 미네랄입니다. 쿼츠 원석이 연상되는 아로마가 나는데, 당연한 이야기지만 쿼츠 원석에서는 아무 향도 나지 않습니다. 왜 내가 이 아로마를 맡고 쿼츠 원석을 떠올리는지는 나도 모르겠고요. 나는 와인의 미네랄리티 자체가 아직 과학적으로 증명이 불가능한 영역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잔을 기울여 입에 넣기 직전 느껴지는 감각은 열대과일 향에 가까운데, 어떤 열대과일을 특정할 수 없습니다. 다만 입에 넣으면 바로 특정되는 건 파인애플입니다. 이는 이 와인이 가진, 미세하고 강렬한 탄산이 파인애플의 브로멜라인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와인은 명징한 견과류 향기와 오크-코르크향을 남깁니다. 새 오크통에서 발효시킨 와인이다보니 아마도 발효단계부터 생겼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견과류 향기는 상파뉴처럼 앙금 접촉에서 기인한 것 같고, 이후 고도주에서 느껴지는 묘한 과일향도 느껴지는데 알콜이 14%나 되는 와인이니까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입니다.

 

 처음 개봉할 때는 조금 마시고 말려고 했는데, 어림도 없습니다. 이 와인은 너무 맛있는데다 마시기 쉬운 스타일이기 때문에 계속 마시게 됩니다. 잠시 이 와인으로 커다란 홍합을 찌면 얼마나 맛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는데, 그러기엔 와인이 너무 비쌉니다.

 

 아펠라시옹 오 코트 드 본에 대한 인상은 이 와인으로 역시나 꽤 긍정적으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본래 오 코트 드 뉘에 대해 좋게 생각해왔는데, 본도 역시나입니다. 분류상 레지오날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빌라쥬급에 육박하는 정도로 생각 중입니다. 은근슬쩍 가격도 빌라쥬급에 육박하는 게 문제긴 합니다만.

 

 아마 지구온난화는 이 와인에 양면적으로 작용하고 있을 겁니다. 오 코트 드 뉘와 본은 본래 과히 고지대라 조생종인 피노누아조차 충분히 익는 게 보장이 되지 않는 지역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구온난화는 오 코트 드 뉘와 본을 어지간한 코트 도르 빌라쥬에 육박하는 지역으로 만들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더구나 오 코트 드 뉘 및 본은 단일 크뤼라도 레지오날급으로밖에 출시가 안 되지요. 이 블랑도 그렇고.

 

 다만 미미하게나마 유감스러운 점이라면. 그 결과 생겨나는, 아주 잘 익은 포도에서 기인하는 도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14% 짜리 이 블랑은 알콜이 살짝이나마 튀긴 합니다. 나야 스피릿이 40도면 물타서 너무 묽다고 내심 불만 가지는 취향이라 14%짜리 와인도 좋게 받아들입니다. 그렇지만 이건 부르고뉴잖아요. 14%에 알콜이 미미하게라도 튀면 덜 우아해져요. 부르고뉴 와인은 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와인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건 이상적인 정도보다는 조금 덜 우아해요. 알콜이 너무 높아서. 그게 맛없는 건 아닌데, 귀족 영애가 너무 들이대면 살짝이나마 당황스러울 수 있지요.

 

 그리고 와인을 좀 남겼다가 며칠 후에 마셔봤는데, 별점을 반 개 정도 더 올릴까 고민했습니다. 역시나 이 와인은 몇 년 더 숙성하고 개봉하는 게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랬으면 별 네개도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입니다. 이 와인이 처음에 가졌던 미세한 기포는 거의 사라져서 그 매력이 감퇴했지만, 며칠동안 진행된 빠른 산화가 이 와인의 숙성 잠재력을 어느 정도 드러내줬습니다. 다소 과한 듯했던 알콜은 아마 몇 년 병숙성을 거쳤다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고, 더 높은 숙성 포텐셜로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열린 상태에서 이 와인은 아마도 피노 블랑이 꽤나 활약해준 것 같은, 커다란 흰 꽃과 같은 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모금 한모금이 아주 맛있고, 사라지는 게 아쉬운, 그렇지만 매우 쉽게 넘어가서 계속 마시게 되는 와인입니다.

 

 필터링을 약하게 한 건지 마지막 잔에는 약간의 침전물이 있었습니다. 이 와인의 바닥은 화이트 와인임에도 안쪽으로 좀 들어가 있는데, 아주 마지막 부분은 따르지 않고 버리는 게 더 좋을 것 같기도 합니다. 다만 미미한 침전물이 섞인 부분도 맛없지는 않네요.

 

 

 

 

 

좋은술 천비향 생주 [★★]

 

 농업회사법인 주식회사 좋은술은 평택시 오성면에 위치해 있으며, 천비향이라는 오양주로 유명합니다. 술을 빚을 때 덧술을 밑술에 한 번 덧치면 이양주라고 하고, 덧술이 두 번 들어가면 삼양주라 하는데요. 천비향은 덧술을 네 번 덧치는 오양주입니다. 오양주는 현재 천비향 외에도 몇 종이 시판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만, 천비향이 가장 유명합니다. 천비향 약주는 2019년에 청와대 식전 만찬주로 선정된 적도 있습니다.

 

 천비향은 생청주(주세법상 약주)약주와 생탁주인 생주’, 상압식 소주인 화주가 시판되고 있습니다. 그 중 이번에 생탁주인 생주를 마셔봅니다. 제조된 후 1개월하고도 보름정도 지난 걸 마십니다.

 

 알콜 14%. 침전물을 섞지 않고 일단 위에 뜬 부분부터 한 잔 마시려 하니 누룩향이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입에 넣으니 느낌이 상당히 셉니다. 오양주라 이런 건가라는 생각이 드네요. 정말 농밀한 술입니다.

 

 침전물과 섞어 마셔봐도 느낌이 크게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술에 약간 이물질같은 게 떠다니는데, 보기에는 누룩에서 기인한 것 같습니다. 술의 강도가 강한데, 이게 알콜이 튀거나 해서 센 게 아니고... 우롱차가 맛이 강렬하고 무거울 때와 유사한 느낌으로 센데, 철관음이나 대홍포 같은 게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그 느낌이 셉니다. 입에 넣는 순간 묵직한 게 느껴집니다.

 

 풍미 자체가 엄청나게 좋은 술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살짝 새콤하고 꽤 맛있긴 한데요. 이건 기본적으로 저렴한 술도 아니고, 저렴할 수도 없는 술이고, 이 가격대면 이 정도 맛있는 건 당연한 것 같습니다. 맛이 평범하다는 게 아니고요. 이건 최상급 청주의 탁주 버전입니다. 애초에 최상급 청주(약주)의 탁주 버전은 처음부터 탁주로 만들어 시판하는 것들과는 레벨 자체가 아예 다르지 않나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탁주로 만드는 것들은 좀 비싸더라도 적당한 시판용 술이지만, 최상급 청주의 탁주 라인업은 최고급 한국형 미주(米酒)의 보급형 버전이라고 할까요. 태생적으로 티어가 다릅니다.

 

 이 술은 중량감이 본질입니다. 바디감이 어떻게 이럴수가 있나 싶습니다. 풀바디 같은 걸로 표현할 수 있는 바디감이 아니에요. 고전 타입의 철관음을 몇 배로 농축한 것 같은 그런 바디감입니다. 다만 압각 자체를 크게 자극하는 게 아니라서, 이건 존재감이라 표현할 수도 있겠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쏘테른 와인이 연상되는 면도 있습니다.

 

 내 생각에 이 술은 존재감이 꽤 강한 한식과 함께해야 어울릴 것 같습니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조피볼락(우럭) 튀김이고요. 그 다음으로 떠오르는 건 부세(조기)찜이네요. 사적으로 종종 즐기는 참돔찜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여하튼 흰살생선 요리와 함께 마셔보고 싶은 좋은술입니다.

 

 다만 나는 안주없이 술만 마시는 게 습관이고, 이 탁주도 그냥 금방 다 마셔버렸습니다. 꽤 맛있어서 비우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네요. 이렇게 맛있는 술들이 나오는 우리나라도 꽤 좋은 나라인 것 같습니다.

 

 

 

 

Suntory The Premium Malt’s []

 

: 이번 가을도 산토리 프리미엄 몰츠와 함께 합니다. 알콜 5.5%의 이 맥주를 한 번 세인트 버나두스 잔으로 마셔 봤습니다.

 

 유리잔에 따라놓고 보니 굉장히 섬세한 기포가 올라옵니다. 새삼스럽게 느끼는데 꽤나 차분하고 조용한 맥주입니다. 라거임에도 몰티하고 규모가 있는 풍미입니다.

 

 결론적으로 세인트 버나두스 잔은 이 맥주에 잘 어울리는 느낌은 아닙니다. 어쨌든 산토리 프리미엄 몰츠도 라거라서 별로 안 어울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후 캔째 다시 마셔보면서 나는 이 산토리 프리미엄 몰츠가 홒의 풍미가 꽤 강한 편에 속하는 라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름은 프리미엄 몰츠지만 라거로는 무척이나 호피한 라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IPA 계열처럼 홒이 강하지는 않지만, 벨기에나 독일의 에일에 비하면 더 호피합니다.

 

 

 

 

Tsingtao Pure Draft []

 

: 알콜 4.3%.

 

 특이한 맥주입니다. 본래의 칭따오와는 맛이 전혀 다릅니다. 이름을 순수 생맥주라 붙이고 비열처리 맥주라고 파는데, 어차피 대부분의 시중 맥주는 비열처리입니다. 하이트가 처음 나올 때도 비열처리 맥주라고 광고했었지요.

 

 이 맥주의 맛 계열은 뭐라 논하기가 어렵습니다. 굳이 보면 우리나라 맥주 스타일에 가까운데, 우리나라 맥주는 보통 고도수의 맥주를 만든 후에 인공탄산수를 섞는 형태라 이것과는 또 꽤 달라집니다.

 

 칭따오답게 쌀이 들어가서 다소 가벼운 느낌도 있는데, 일반 칭따오에 비하면 캐릭터가 셉니다. 일반 칭따오를 마시면 마냥 맛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건 그렇지는 않아요. 묘하게 아사히가 떠오르는 면도 있네요.

 

 

 

 

 

 

Strongbow Gold Apple []

 

: 알콜 4.5%. 로제 애플에 비해 스위트한 타입이라 표기되어 있고, 실제 마셔보면 꽤나 사과 주스에 가까운 맛입니다.

 

 꽤 맛있네요. 부담 없이 마실 수 있고, 사과주스같지만 사과주스보다 맛있습니다. 얼마든지, 사과 주스처럼 마실 수 있는 시드르라는 생각입니다.

 

 

 

 

 

제주맥주 넷플릭스 제주라거 []

 

: 이 맥주는 페스티벌에서 한 번 마셔본 적이 있었는데, 맛있었고 제주맥주의 다른 맥주들이 대체로 에일이다보니 이것도 에일인줄 알았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라거더라고요. 조금 제대로 마셔보고 싶어서 구매했습니다.

 

 알콜 4.5%. 마시자마자 첫느낌부터 이게 라거라고?’ 라는 생각이 듭니다. 괜히 전에 마셨을 때 에일이라고 생각했던 게 아니었구나 싶습니다. 적혀있는 문구는 라거인데 입에서는 이게 에일이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게다가 굉장히 달달한 느낌이라, 레페나 스텔라 아르투아처럼 옥수수를 쓴 맥주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성분을 보면 보리만 쓴 맥주네요.

 

 마셔도 마셔도 에일같습니다. 다만 탄산이 세고 (제주맥주 맥주들은 우리나라 맥주답게 대체로 탄산을 추가로 주입해서 탄산이 셉니다.) 도수가 낮아 묽긴 한데요.

 

 캔째 마시다가 보다 더 제대로 맛보고 싶어서 쇼트즈위젤 비냐 플루트 글라스를 동원했습니다. 따라보니까 색깔부터 일반적인 라거 색깔이 아닙니다. 거의 헤페바이스 색깔입니다. 색깔 보자마자 생각한 게 에일을 라거라고 적어놓은거 아니야? 였습니다. 맛을 봐도 밀 비율이 낮은 헤페바이스에 탄산수를 조금 탔다고 해도 바로 믿을 정도입니다.

 

 이게 라거라면 떠올릴 수 있는 방식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어느 정도 구운 맥아를 사용하는 방식이요. 그리고 홒은 에일처럼 넣고요. 여하튼 묽은 정도만 라거고, 나머지는 완전히 에일인 맥주입니다. 블라인드로 마셨다면 100% 에일이라고 했을 맥주입니다.

 

 

 

 

 

 

 

 

 

 

 

Grove Mill Sauvignon Blanc 2022 [★☆]

 

: 알콜 12%. 말보로우(Marlborough)의 와이라우(Wairau) 밸리에 위치한, 유명한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 중 하나인 그로브 밀의 소비뇽 블랑을 마셔봅니다. 평론 점수는 이 2022년의 경우 제임스 서클링(JS) 91, 와인 스펙테이터(WS) 90인 것 같습니다. 마개는 스크류캡이고, 첫 서빙 온도는 병 내 6.7도로 낮았습니다. 슈피겔라우 빌스베르거 콜렉션 화이트 글라스를 사용했습니다.

 

 온도가 낮은 상태에서 마시기 시작했기 때문에 아로마는 일반적인 화이트와인 아로마였고, 입에 넣으니 선명한 시트러스향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미네랄 맛도 느껴져서 첫인상이 좋았습니다. 피니쉬는 길지 않고 복합성이 크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신세계 소비뇽 블랑답게 가볍게 마시기 좋은 느낌입니다. 보르도의 소비뇽 블랑보다는 루아르의 소비뇽 블랑에 가깝다고 느낍니다.

 

 이런 타입의 소비뇽 블랑은 진짜로 시트러스를 짜넣은 것 같은 풍부한 과실 풍미를 느끼게 합니다. 포도로 만든 와인인데 포도보다는 라임이나 자몽이 떠오르는 게 신기한 점이지요. 온도가 올라가면 구아바나 구즈베리의 향도 조금 나고, 미네랄리티도 더 느껴지긴 합니다. 그래도 기본적으로는 상큼하고 과일향이 두드러지는 소비뇽 블랑입니다. 입에 넣을 때 약간의 자극성이 있는데, 탄산감이라기보다는 산의 자극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온도가 높아지니까 의외로 유()질감이 조금 있습니다. 산도가 꽤 있음에도 그다지 크리스피하지 않은데, 높은 산도에 비해 사과산 느낌이 별로 없습니다. (비율상?) 어느 정도는 말로락틱 발효를 진행한건가 싶습니다. 그리고 다소의 앙금 접촉 뉘앙스가 있습니다. 온도가 조금 올라가면 견과류와 토스트된 풍미가 살짝 납니다. 저온일 때와 온도가 올라간 이후의 인상이 꽤 달라지는 와인입니다.

 

 단순한 상큼함을 원하신다면 이 와인을 아주 차갑게 마시는 게 좋습니다. 그러면 시트러스향이 아주 강한 와인이 됩니다. 다만 나에게는 온도를 조금 올려 마시는 쪽이 이 와인이 가진 다양한 모습을 느낄 수 있어 좋았습니다.

 

 온도가 꽤 올라온 상태에서는 신세계다운 잔당감이 좀 느껴집니다. 이런 단맛은 온도가 너무 낮은 상태에서는 제대로 느낄 수 없습니다만, 아마 이 와인을 덜 크리스피하게느끼게 만들었을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와인을 얼마 안 드신 분들이 감지할 만한 당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나는 이 와인의 미미한 달콤함이 다소의 매력포인트라 생각합니다. 전반적으로 달콤한 게 아니라, 드라이한 가운데 일부분이 엣지있게 달콤합니다.

 

 앙금 접촉으로 생겨난 풍미 가운데 미네랄리티가 죽지 않습니다. 미네랄이 두드러지는 와인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미네랄이 계속 자기 주장은 합니다.

 

 산도는 이 와인의 본질에 가깝습니다. 아무리 온도가 올라가도 산도가 있는 이상, 그리고 신선한 시트러스를 짜넣은 것 같은 향이 있는 이상 이 와인은 상큼합니다. 이 와인의 산은 다소의 날카로움과 부드러움이 섞여 있다고 느껴지는데, 그렇게 만들어진 와인으로 판단합니다.

 

 기본적으로는 이지드링킹을 위한 와인이고, 와인 초보자를 위한 와인이라 생각합니다. 나에게는 이런 와인을 마실 때마다 진토닉을 대신하기 좋은 와인이라는 생각이 들고요. 나는 진토닉을 만들 때 라임 및 레몬 주스를 잔뜩 사용하기 때문에 이런 와인과 살짝 유사한 타입이 되어버리거든요.

 

 

 

 

 

 

Nine North Wine Company Chasing Lions California Pinot Noir 2019 [★☆]

 

: 알콜 13.5%. 캘리포니아의 피노 누아를 오래간만에 마셔봅니다. 마개는 스크류캡입니다. 글라스 비교 겸 슈피겔라우 데피니션 버건디, 쇼트즈위젤 비냐 버건디, 조세핀 No. 3를 사용해서 마셔봅니다. 15.3도에서 첫 서빙했습니다.

 

 조세핀 No. 3에서 첫 시음을 시작했습니다. 잘토가 독립해서 만들고 있는 조세핀은 No. 3레드와인 잔으로, 다른 브랜드와 달리 보르도와 부르고뉴 잔이 따로 나오고 있지 않습니다. 이 잔은 아래쪽이 꽤 와이드해서 공기에 접촉되는 면이 비냐 버건디만큼 넓습니다.

 

 피노 누아답게 딸기향이 나고, 새콤한 향기가 납니다. 입에 넣어보면 피노 누아 특유의 글리세린 느낌과 가벼움이 살아있고, 다소의 오크 뉘앙스가 느껴집니다. 과일 향이 풍부하고 산미도 살아있습니다. 응축감은 없다시피 하고, 약간의 잔당감이 있습니다.

 

 첫인상은 살짝 수줍어하는, 음성적인 와인입니다. 알콜이 살짝 세고 잔당감도 살짝 있고, 좀 태운 오크통 뉘앙스가 있는 점은 신세계 와인같고, 특히나 이 태운 오크통에서 기인한 향이 프랑스 부르고뉴와는 다른 개성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탄닌은 거의 없습니다. 로제와인과 레드와인의 중간 정도라 할 수 있는 탄닌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주 약간의 부케가 형성되어 있는데, 감지하기는 어렵지만 부케 자체는 나쁘지 않습니다.

 

 쇼트즈위젤 비냐 버건디 글라스에서 이 와인은 보다 피노 누아스러운 개성적인 향을 드러냅니다. 역시나 피노 누아는 부르고뉴 글라스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비냐 버건디로 마실 때는 조세핀 No. 3에 비해 더 단순한 와인으로 느껴집니다. 석회질의 미네랄리티가 있는 건가? 싶고요.

 

 온도가 올라가고 열릴수록 오크 뉘앙스가 강하게 느껴지는데, 기본적으로 묽고 여리디여린 피노누아에 구운 오크 뉘앙스가 더해져서 좀 묘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와인은 오크드 샤르도네처럼 오일리하지도 않거든요.

 

 데피니션 버건디 글라스에서, 온도가 올라가고 열린 이 와인은 비교적 진한 과일향을 드러냅니다. 혀에 닿을 때부터 달게 느껴지는데, 온도가 올라간 영향이 있을 것 같습니다. 데피니션 글라스에 따른 후 온도 측정을 해보니 19.7도였습니다. 나는 이 와인에 이 정도 온도가 적합한 것 같습니다. 전체적인 요소가 분석적이지 않고 잘 융화된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후 열리고 온도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오크와 과일 뉘앙스가 강해져서 전형적인 캘리포니아 피노 누아로 느껴졌습니다. 첫인상에서 느꼈던 음성적인 느낌은, 낮은 온도와 아직 열리지 않은 상태인 것이 주 원인이었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결과적으로는 소녀가 화장을 짙게 하고 자신감을 얻어서 적극적이 된 것 같은 와인이라고 표현하겠습니다. 캘리포니아 오크드 샤르도네의 피노 누아 버전이라 하고 싶네요. 온도가 올라갈수록 아로마부터 오크 바닐라 향으로 완전히 바뀌어 버립니다.

 

 이후 좀 더 테스트를 해보니 온도가 꽤 낮은 상태에서 가볍게 마시기에 적합한 와인이라는 판단입니다. 온도가 올라간 상태에서도 가볍게 마시기에는 나쁘지 않습니다. 피노 누아라고 많은 것을 바라지만 않으면 됩니다. 피노 누아 품종의 가벼움과 낮은 탄닌은, 이 와인의 경우 오크의 바닐라스러움을 최대한 살려주는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르고뉴처럼 진지하게 접근하기엔 부적합하지만, 화이트 와인처럼 차갑게 칠링해서 즐겁게 맥주나 시드르처럼 마시기에는 괜찮은 와인입니다.

 

 

 

 

Carlsberg Brooklin Pilsner Crisp Lager []

 

: 알콜 4.6%. 생산된지 좀 된 걸 여러 캔 입수했습니다. 신선한 상태는 아니라도 보관상태가 나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개봉해 마셔보니 홒향이 꽤 강한 라거입니다. ‘Crisp’ 하다고 이야기하는지 모르겠는데, 홒향이 강한 걸 그리 표현하는 기분입니다. 산토리 프리미엄 몰츠보다도 홒향이 강하고, 이게 라거가 맞나 싶은 제주맥주의 넷플릭스 라거가 생각날 정도의 호피함입니다. IPA의 라거 버전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IBU가 높은 IPA를 마시면 향은 좋지만 즐겁게 마시기는 좀 과하다는 느낌을 받는데, 이건 그래도 라거라서 마시기 편하고 나름 괜찮습니다. 다만 이것도 점성이 높습니다. 라거 특유의 청량함을 기대하고 마실 만한 건 아닙니다. 말 그대로 IPA의 라거 버전이라 생각하고 접근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분을 보면 순수한 보리 맥주임에도 불구하고, 호피함과 높은 점성 이면에 달콤함이 있는데, 보리만 사용한 라거가 이렇게 달콤한 건 독특한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맛이 달콤하다기보다는 향이 달콤한 쪽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Font Salem Let’s Fresh Today []

 

: 알콜 4.5%. 제조국은 스페인이고, 신세계에서 수입한 맥주 계열의 발포주입니다. 주세법상 맥주가 아니라 발포주로 취급되는데, 맥아 함량이 10% 미만이라 그렇습니다.

 

 이 발포주의 맛은 맥주지만 일반적인 맥주하고는 조금 다른데, 내가 마시기에는 나쁘지 않습니다. 원래 무알콜 맥주도 맛있게 잘 마시거든요. 무알콜 맥주에 비하면 훨씬 맥주같습니다.

 

 

 

 

 

 

화양 풍정사계 [★★☆]

 

: 풍정사계 를 구매할 때 생청주인(주세법상 약주) 도 같이 구매했었습니다. 어느 날 보유한 주류들의 유통기한을 확인해보다가 이 풍정사계의 명시 유통기한이 2달밖에 안 된다는 걸 알게 되었고, 이틀 지났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잘 만든 생주의 경우 유통기한과 무관하게 낮은 온도에서 보다 장기숙성을 한 걸 선호하시는 분들도 꽤 있습니다만, 나는 바로 마시기로 했습니다.

 

 알콜 15%. 본래 찻잔으로 나온, 입수 후 사용하지 않고 아껴두던 조금 크기가 있는 수공 청자잔에 마셔봅니다. 가 그러하였듯 개봉에 힘이 좀 들어갔습니다.

 

 잔에 따라 향을 맡으니 청주 특유의 아로마가 느껴집니다. 입에 넣으니 순정하게 맑고 아름답습니다. 역시 탁주()와는 또 다른 레벨을 보여줍니다. 아마 이 술은 우리나라에서 만드는 술 중 최고 수준에 이른 하나일 겁니다. 실제 수상 이력 등도 화려해서 2017년 우리술 품평회 약주ㆍ청주 부분 대상, 2021년 우리술 품평회 대통령상을 받은 바 있고요. 2017년 한미정상회담 청와대 만찬주, 2019년 한-벨기에 정상회담 청와대 만찬주로 사용된 적이 있습니다.

 

 이 술은 꽤 전통적인느낌을 줍니다. 봄꽃이 떠오르는 아름다움 이면에 전통 누룩에서 기인한 것 같은 잡스러움이 있습니다. 단정하고 세련되기보다는 풋풋합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척 예쁜 술입니다. 자신을 꾸밀 수 있게 된 20대보다는 피부트러블도 생기고 꾸밀 줄도 모르는, 그렇지만 예쁜 10대 소녀를 연상시키는 그런 술입니다.

 

 중량감은 없지만 점도가 제법 있고, 다소의 거친 느낌도 남아있지만 기본적으로 부드럽고 순합니다. 준마이다이긴죠 같은 것과는 만들어진 방향이 아예 다릅니다. 좋은 면만 보여주려는 준마이다이긴죠와는 달리, 쌀과 누룩으로 만든 술의 모든 면을 보여주려는 느낌입니다.

 

 부드럽기 때문에 도수가 센 느낌이 입에는 별로 없는데, 마시다보면 취기가 강하게 올라옵니다. 생각보다 엄청나게 취하는 술이라, 어지간하면 1병을 2인 이상이 나눠 마시는 쪽을 추천합니다. 이건 술이 사람을 마시는 그런 술입니다. 여러 말이 필요없고, 일단 마시기 위한 술이라고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하이트진로 Kelly [-]

 

: 가을에 들어서도 켈리를 마십니다. 유리병에 든 켈리는 나름대로는 맛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번에는 다시 한 번 PET 병에 담긴 것을 마시게 되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병입 후 시간이 다소 지난 것을 마시게 되었습니다.

 

 알콜 4.5%. 마침 얼마 전에 메종 루이 자도(Louis Jadot) 브랜드의 (아마도 증정용으로 만든) 버건디 글라스가 하나 생겼는데, 진짜 부르고뉴를 마시기에는 좀 부족한 퀄리티로 보이지만 맥주 등을 마시기엔 어떨까 싶어 이 켈리를 그것에 마셔보기로 하였습니다.

 

 PET 병에 담겨 한동안 보관된 이 켈리는 유감스럽게도 다소의 풍미와 탄산을 손실하였습니다. 캔에 담긴 것에 비해도 상당히 품질 손실이 심합니다. 그것이 부르고뉴 글라스에 마시니까 꽤 티가 많이 납니다. 이런 건 제대로 맛을 보면 안 됩니다. 부르고뉴 글라스에 마시면 맛이 너무 잘 느껴지기 때문에 이런 글라스를 사용하는 건 바로 포기. (마셔보고 깨달은 건데, 트라피스트 에일 수준이 아닌 이상 부르고뉴 글라스에 맥주를 마시는 건 맥주한테 너무 가혹한 행위였습니다.) 맛이 잘 느껴지지 않을 잔을 찾다가 찬장 속에서 뚜껑 없는 텀블러처럼 생긴, 300cc짜리 시드르 서머스비(Somersby) 유리잔을 발견하여 그것으로 바꿨습니다.

 

 서머스비 잔에서 이 켈리는 좀 더 마시기 편했습니다. 열화된 풍미의 부정적인 부분을 느끼기 어렵게 되었고, 단순하고 별 맛이 없지만 이 상태에서는 그게 낫네요.

 

 

 

 

 

Stella Artois [★☆]

 

: 알콜 5%. 스텔라 아르투아를 오래간만에 마시는데, 그 사이 꽤 다른 맥주가 되었습니다.

 

 기존의 스텔라 아르투아는 원재료에 옥수수가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새 일반 보리 맥주가 되었고요. 내가 이번에 마시는 캔은 오비맥주에서 국내 생산한 것입니다.

 

 일단 캔째 마셔봅니다. 무척 맛있습니다. 스텔라 아르투아는 필스너 우르켈처럼 노블 홒 중 하나인 자츠 홒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필스너 우르켈처럼 쓰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균형감과 풍미 모두가 좋네요.

 

 옥수수를 사용하던 기존의 스텔라 아르투아는 이렇지 않았습니다. 좀 더 개성이 있었지요. 그렇지만 현재의 이것은 그냥 그저 맛있는, 그것도 라거로는 최고 레벨로 맛있는 라거입니다.

 

 오비에서 만든 게 유럽에서 만든 것과 살짝 다르긴 한 것 같고, 원재료에도 이산화탄소가 표기되어있는 게 탄산을 약간 강화한 것 같은데요. 나쁘지 않습니다. 결과물이 맛있네요.

 

 

 

 

 

Tempt 1 Pêche [-]

 

: 알콜 4.0%. 시드르에 복숭아주스를 포함해 이것저것 들어간 시드르입니다. 나에게 템트는 약 10년 전에 즐겨 마시던 시드르 브랜드인데, 그 때 잠시 살았던 동네에서 템트를 쉽게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 눈에 띠어 오래간만에 구매해보게 되었습니다.

 

 캔째 마시는데 첫맛은 거의 시드르라기보다는 복숭아 주스를 잔뜩 넣은 일종의 칵테일입니다. 끝맛에서 기주가 시드르라는 걸 알 수 있긴 한데, 복숭아 풍미가 워낙 강합니다. 마시면 취하는 주스나 다름없네요.

 

 

 

 

 

오비맥주 OMG OB MUlTI GRAIN [-]

 

: 알콜 4.5%. OMG는 현미, 보리, 호밀 등을 사용한 상급 발포주라고 합니다.

 

한 입 마시면 맥주와는 명백하게 다른 풍미입니다. 뻥튀기나 죠리퐁 같은 곡물 과자의 향이 납니다. 일종의 곡물 음료수 같은데 알콜을 가지고 있습니다.

 

 

 

 

 

 

Tiger Lager Beer []

 

: 알콜 5%. 타이거는 하이네켄이 만드는 싱가포르 맥주인데, 내가 이번에 마시는 캔은 원산지가 네덜란드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경향은 본래의 하이네켄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보다는 조금 더 쓴맛이 있는 타입이라 느낍니다. 차갑게, 시원하게 마시기 좋은 라거. 아시아의 더운 지역에서 많이 팔리는 맥주입니다.

 

 

 

 

Asahi Super ‘Dry’ ヅョッキ[]

 

: 여름에 이어 꽤 많이 사뒀던 아사히 슈퍼드라이 생맥주 캔을 마십니다. 한동안 일상적으로 마셔도 될 만큼 사뒀는데, 마실 것도 많고 매일 술을 마시면서 살 수도 없다 보니 앞으로도 당분간 즐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언제 마셔도 정말 놀라울 만큼 아무 맛도 없습니다. 이 무미에 가까운 게 아사히의 핵심이겠지요. 별 맛이 없기 때문에 어떤 것과 마셔도 딱히 안 어울리지 않고, 그냥 탄산수 대신 마셔도 됩니다.

 

 

 

 

 

Carlsberg Brooklyn Pilsner Crisp Lager []

 

: 알콜 4.6%. 생산된지 좀 된 걸 여러 캔 입수했습니다. 신선한 상태는 아니라도 보관상태가 나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개봉해 마셔보니 홒향이 꽤 강한 라거입니다. ‘Crisp’ 하다고 이야기하는지 모르겠는데, 홒향이 강한 걸 그리 표현하는 기분입니다. 산토리 프리미엄 몰츠보다도 홒향이 강하고, 이게 라거가 맞나 싶은 제주맥주의 넷플릭스 라거가 생각날 정도의 호피함입니다. IPA의 라거 버전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IBU가 높은 IPA를 마시면 향은 좋지만 즐겁게 마시기는 좀 과하다는 느낌을 받는데, 이건 그래도 라거라서 마시기 편하고 나름 괜찮습니다. 다만 이것도 점성이 높습니다. 라거 특유의 청량함을 기대하고 마실 만한 건 아닙니다. 말 그대로 IPA의 라거 버전이라 생각하고 접근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분을 보면 순수한 보리 맥주임에도 불구하고, 호피함과 높은 점성 이면에 달콤함이 있는데, 보리만 사용한 라거가 이렇게 달콤한 건 독특한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맛이 달콤하다기보다는 향이 달콤한 쪽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이후 다시 마셔봐도 맛이 풍부하고 맛있는 맥주입니다. 다만 역시나 라거같지는 않습니다. 라거와 에일의 중간적인 맥주... 라기보다도 에일에 가깝고, 넷플릭스 라거와 유사한 포지션이라 생각합니다.

 

 

 

 

 

 

Edelweiss Premium Wheat Beer []

 

: 에델바이스는 오스트리아에서 만들던 밀맥주였습니다. 그런데 2018년에 하이네켄이 에델바이스를 인수했고, 네덜란드에서 맥주를 만들게 되었으며 제조법도 좀 바뀐 것 같습니다. 알콜 4.9%. 라 트라페 전용잔에 마셔봅니다.

 

 바이스비어치고는 색이 꽤 맑습니다. 본래 헤페바이스였던 걸로 알고 있는데, 원래 이랬었나 싶습니다. 이 맥주는 성분을 보면 허브향과 시트러스향이 추가로 들어갔는데, 그래서인지 밀맥주치고는 좀 IPA 같은 아로마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변화는 하이네켄 인수 이후에 일어났다고 압니다.

 

 입에 넣으면 역시나 밀맥주다운 풍미가 있는데, 동시에 순수한 맥주의 풍미도 아닙니다. 성분에 사과추출물도 들어가 있는데, 덕분에 좀 묘한 느낌의 밀맥주라고 느낍니다. 호가든이나 위트 에일처럼 이것저것 넣어서 만든 에일의 느낌인데, 스파이스를 사용한 호가든에 비하면 이건 좀 더 허브 느낌이 강한 쪽이라 느낍니다.

 

 

 

 

 

하이트진로  폭탄맥주 [★]

 

: 알콜 6%. 지난 여름에 이어 가지고 있는게 좀 더 있어 가을에도 마십니다.

 

 역시나 맛은 하이트 라거 맛인데, 알콜이 좀 더 셉니다. 예전 카스레드가 생각나는 맛이고, 라거를 조금 천천히 마시는 걸 좋아한다면 즐길 만 합니다.

 

 여러 번 마시면서 나는 내가 이 맥주를 나름 마음에 들어한다고 깨달았는데, 도수가 조금 높은 게 마음에 드는 것 같습니다.

 

 

 

 

 

Arion Moscato d’Asti 2022 [★☆]

 

: 알콜 5%. 리델 퍼포먼스 샴페인 글라스로 마셔봅니다.

 

 마개는 프리잔떼답게 아래쪽이 넓은 테크니컬 코르크입니다. 소믈리에 나이프로 개봉했는데, 원래 모스카토 다스티가 소믈리에 나이프로 개봉하기 어렵긴 하지만, 이 와인은 병 입구가 평평하지 않고 바깥쪽으로 얇아지는 타입이라 더 힘들었습니다. 어지간해서는 이 와인은 날개형 오프너로 개봉하시길 권장합니다. 나는 이 와인을 개봉하면서 저렴한 소믈리에 나이프 하나를 망가뜨렸습니다.

 

 모스카토 프리잔떼(약발포성)는 와인계의 사이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탄산음료 같은 와인의 대표격이지요. 그 중에서도 모스카토 다스티는 모스카토(=머스캣=모스카텔)로 만드는 프리잔떼 중 최고의 규격입니다. 대중적으로 매우(특히 여성들에게) 선호되는 와인이기도 합니다.

 

 이 와인은 매우 맛있습니다. 맛있는 모스카토 다스티입니다. 특히 모스카토 특유의 머스캣 향이 잘 살아있습니다. 그리고 산도도 괜찮고요. 피니쉬가 긴 건 아니지만 뒷맛이 제법 있는 편입니다. 역시나 매우 맛있는 포도 주스를 마시는 기분입니다. 알콜이 조금 섞인. 다만 별로 와인같지는 않아요.

 

 

 

 

 

 

Mazzei, Castello di Fonterutoli Ser Lapo Chianti Classico Riserva 2019 [★★]

 

: 산지오베제나 몬테풀치아노 와인이 마시고 싶어져서 조금 이른 것 같지만 개봉했습니다. 알콜 14%. 마개는 꽤 부드러운 느낌의 천연 코르크입니다. 첫 서빙 온도는 병 내 측정 10.3도로 상당히 차가웠고, 조세핀 No. 3 글라스를 사용했습니다.

 

 마쩨이는 1435년에 시작된, 굉장히 오래 된 와이너리입니다. 이 비노(와인)의 이름인 Ser Lapo는 처음 키안티 비노를 문서로 기록한 (1398) 마쩨이 가문의 선조 이름입니다. 세르 라포 마쩨이의 손녀, 마돈나 스메랄라 마쩨이의 대에 마쩨이 와이너리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 세르 라포는 90% 산지오베제, 10% 메를로를 사용했으며 2019년산의 평론가 점수는 제임스 서클링(JS) 94, 와인 스펙테이터(WS) 93, 와인 아드보케이트(WA=RP) 92, 팔스타프(Falstaff) 92입니다.

 

 개봉 후 따르면서 입구에 남은 한 방울을 입에 넣어보니 역시나 좀 단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라스에서 느껴지는 아로마는 고혹적이며 과실 향이 잘 살아있습니다. 입에 넣으면 너무 어린 걸 땄다는 생각이 바로 듭니다. 최소한 10년은 더 숙성시킬 수 있었던 와인입니다. 혀를 무두질하는 것 같은 뻑뻑한 탄닌이 느껴집니다. 탄닌 컨트롤이 안 된 와인은 아니라서 떫은 느낌을 무시하면 마시기 힘들지는 않은데, 제대로 된 모습을 어느 정도나 엿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일단 탄닌 뒤로 이 세르 라포는 강렬한 붉은 과일향과 계속 마시게 되는 유쾌한 산도, 그리고 장기적인 프랑스 오크 숙성에서 비롯된 바닐라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혀를 무두질하고 조이는 듯한 탄닌만 아니면 맛있는와인에 속합니다. 아주 맛있다는 감각이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와인이라, 일단 계속 마시게 되는 타입입니다. 복합성이 있거나 우아한 타입은 아닙니다. 강렬하고 맛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 와인의 진가를 알 기회가 없었습니다. 금방 꽤나 마셔버리게 되었거든요. 겨우 조금 알게 된 건 이 와인이 풍부한 동물계 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 아마 숙성이 다 되고 나면 무척 섹시한 와인이 될 겁니다. 그런데 성숙하기 전에, 아직 어린 소녀일 때 마셔버리게 되었어요.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와인을 마시다 보면 종종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 와인의 30% 정도는 개봉 후 일주일 정도 지나 마셨습니다. 그 시간동안 이 와인은 본래의 포텐셜을 꽤 잃어버리긴 했지만, 뻑뻑하던 탄닌이 나름 부드러워져 어느 정도 마시기 편하게 되었습니다. 시음적기에 이 와인을 개봉했으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탄닌이 좀 풀어졌다고 해도 풍미와 구조에는 아직 미숙함이 많이 있어 브리딩으로 진짜 숙성을 흉내낼 수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좀 마시다보니 혀를 무두질하는 감각이 올라옵니다. 제우스의 피, 산지오베제는 역시 꽤나 강건하다는 생각입니다.

 

 

 

 

 

 

 

Somersby Apple Sparkling Cider []

 

: 서머스비는 칼스버그에서 만드는 시드르 브랜드입니다. 이 서머스비 애플 스파클링 시드르는 사과 주스 + 시드르이며 알콜은 4.5%입니다. 전용잔에 마셔봅니다.

 

 맛은 사과주스 느낌이 강합니다. 시드르 특유의 깔끔한 느낌이 없는 건 아닌데, 맛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가 사과주스로 구성되어있지 않나 싶습니다. 사과 주스 같은 느낌으로 맛있게 마셨습니다.

 

 

 

 

 

 

 

Taittinger Prélude Brut Grands Crus (N/V) [★★★★]

 

: 떼땅져 프렐뤼드는 떼땅져의 그랑 크뤼 퀴베 N/V(nonvintage) 상파뉴입니다. 동사의 밀레짐 상파뉴와 거의 동급으로 취급되며, nonvintage 상파뉴로는 가격대가 좀 있는 편입니다. 2000년에 처음 출시되었는데, 본래는 밀레니엄 기념 한정판으로(그래서 이름이 프렐뤼드=전주곡) 매그넘만 한 번 출시하고 말 계획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너무 잘 만드는 바람에 정규 라인업이 되었습니다.

 

 알콜 12.5%. 세파쥬는 샤르도네 50%, 피노 누아 50%입니다. nonvintage라 병입일을 알 수 없습니다만, 이번에 마시는 이 병은 출고 후 그리 오래 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리델 퍼포먼스 샴페인 글라스와 쇼트즈위젤 비냐 플루트 글라스를 사용해 마셔보기로 하고 마시기 시작합니다.

 

 일단 퍼포먼스에 따라놓으니 아로마가 근사하고 매력적입니다. 입에 넣으니 상파뉴답게 앙금 접촉이 많이 된 느낌입니다. 버블은 상당히 센 편. 샤르도네가 50% 들어갔는데도 강렬한 상파뉴입니다. 그리고 무척 맛있습니다. 버블이 세도 너무 세서 일단 따자 마자 마시려니 탄산 때문에 풍미가 좀 가려지는 느낌이 있는데, 탄산이 좀 날아가고 나면 더 맛있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건 샴페인 글라스나 플루트 글라스가 안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쇼트즈위젤 비냐 플루트에서 이 상파뉴는 보다 선명한 느낌입니다만, 여전히 너무나도 강하고 많은 버블이 맛을 가리고 있습니다. 참 맛있는데 버블이 너무 강하고 많아서 맛을 보기 힘든 것도 신기한 경험입니다. 버블보블버블보블 합니다.

 

 결국 슈피겔라우 데피니션 유니버셜 글라스로 마셔보기로 결정. 이런 상파뉴 때문에 이 시대에도 쿠페 글라스도 쓰는구나 싶습니다. 그런데 내가 가진 잔 중 쿠페 글라스에 가까운 건 라 트라페 전용잔과 세인트 버나두스 전용잔 뿐이고, 그것들은 이 떼땅져 프렐뤼드를 마시기 적합한 정도의 퀄리티가 아닙니다. 그래서 데피니션 유니버셜 글라스를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데피니션 유니버셜 글라스에서 이 와인이 다소의 환원취를 가진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유니버셜 글라스에서 환원취는 단시간에 날아갔고, 이내 풍부한 과일 아로마를 풍깁니다. 그리고 이제야 진가를 드러내네요. 우아하고 아름다운 미네랄리티. 경이적인 피네스. 충분한 앙금 접촉과 숙성에서 기인한 팔렡을 가지고 있습니다. 열리기 전에는 복합성은 대단하지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순수함을 가지고 있는 편인데, 샤르도네와 피노 누아가 섞여있어서 그럴까요. 양립된 순수함이 완성된 균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열리면서 본격적인 복합성과 야성을 드러냅니다.

 

 이산화탄소의 베일을 벗은 이 상파뉴는 그냥 맛있는 정도가 아닙니다. 특히나 이런 미네랄리티는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한걸까 싶을 정도입니다. 열리기 전에는 단정했는데, 열리고 나서는 자갈 같은 미네랄리티에 더해 깊은 복합성을 느끼게 합니다.

 

 한편으로 이 상파뉴는 부정적인 향들을 품고 있습니다. 환원취, 과숙된 포도의 향, 퇴비와 같은 냄새 같은게 순간적으로 스쳐지나갑니다. 그러나 그런 향들이 결과적으로는 복합성과 생동감을 만들고 있습니다. 구세계 와인에서는 종종 있는 일이지요.

 

 이 상파뉴를 표현하자면 제우스와 헤라의 대리석상이 있는, 자갈이 깔린 정원에서 아몬드를 얹은 빵과 생포도를 먹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까요? 역시나 부르고뉴와 상파뉴는 가산을 탕진하게 만듭니다.

 

 

 

 

 

롯데주류 백화 월화정인 []

 

: 백화 월하정인은 롯데주류에서 202210월에 출시한 청주입니다. 라벨에 신윤복의 그림, 월하정인이 프린팅되어 있습니다. 청하의 상급 청주에 해당한다고 보면 될 것 같고, 청하와는 달리 주정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다만 구연산, 에리스리톨, 스테비아 등은 들어갑니다. 백화수복과는 다른 술입니다.

 

 알콜 14%. 마셔보면 볼륨감이 조금 있는 타입입니다. 맛 계열은 롯데주류 청주가 어느 정도 유사한 것 같은데, 상급품인 설화에 비하면 훨씬 저렴하긴 하지만 가격 이상으로 품질차가 나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이건 좀 맛이 잡스럽고 향기가 부족해요. 문제는 설화는 이제 단종인지 구할 수 없다는 거네요.

 

 제대로 된 청주는 물론이고 리즈너블한 화랑에 비해도 좀 그저 그렇지 않나 싶지만, 이건 풍미 계열이 사케에 가까워서 데워마시면 그나마 괜찮을 것 같습니다. 문제는 이미 차게 마시고 있다는 거고요. 언제 데워먹는 걸 시도해볼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네요.

 

 

 

 

 

 

 

 

하이트진로 Terra []

 

: 테라 일반 버전 PET를 마셔봅니다. 알콜 4.6%.

 

 테라는 켈리나 테라 한정판 싱글몰트와 달리 전분이 좀 들어갑니다. 그래서 살짝 가벼운데, 제법 좋은 홒을 사용해서 그런지 향이 좋고 잘 어울립니다. 맥스에 비하면 더 좋다고 하긴 어렵습니다만, 나는 테라가 켈리보다 맛있습니다. 즐겁게 마실 수 있는 맥주입니다. 너무 기대만 하지 않는다면.

 

 

 

 

 

 

 

하이트진로 Terra Special Editon Single Malt from Tasmania 2023 []

 

: 하이트진로의 2023년 테라 한정판을 넉넉히 구매했습니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마실 생각입니다. 2023 테라 한정판은 올 몰트 비어로 오스트레일리아 태즈매니아의 몰트와 홒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사용한 홒의 품종은 엘라(Ella)라고 하는데, 내가 익히 아는 품종은 아닙니다. 싱글 몰트라는 표현은 싱글 몰트 스카치의 인기를 빌려온 것 같습니다.

 

 알콜 4.6%. 일단 캔째 마셔봅니다.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게 버블이 상당히 부드럽고 점도가 높습니다. 높은 점도 때문에 IPA나 브루클린 필스너가 떠오릅니다. 다만 홒 풍미가 브루클린처럼 강하지는 않습니다.

 

 첫인상은 좀 실망스러웠습니다. 어째 바다거품같은 거품 잔뜩에 점도만 높은 느낌이었거든요. 이정도면 맥스 한정판은 물론이고 초창기 맥스 프라임 일반판만도 못한거 아닌가 싶은데요. 제조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날이 추워진 이후에 유통된 맥주라는 걸 감안하면 더더욱 납득이 잘 안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조금씩 맛이 살아나는데, 포인트가 온도라고 생각합니다. 첫 서빙 온도가 매우 낮았는데, 이건 그렇게 마시면 안 되는 맥주 같습니다.

 

 그래서 라 트라펠 전용잔에 마시기로 했는데, 전에 이 잔에 라 트라페 쿼트라펠을 마시고 제대로 세척을 안 해뒀더니 쿼트라펠의 달달한 초콜렛 같은 향이 살짝 배어있는 상태가 되어있습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그냥 쓰기로 했습니다. 나쁜 향은 아니기도 하고요.

 

 라 트라펠 전용잔에서 이 맥주는 훨씬 나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일단 캔째 마시지 않는 게 포인트인 것 같습니다.

 

 이후 향이 두드러지지 않는 서머스비 전용잔에 마셨더니 나쁘지 않았습니다. 맛을 상세히 보려고 할 때 좋은 레벨은 아니고, 가볍게 마시면 의외로 나쁘지 않은 느낌입니다

 

 

 

 

 

 

Indigo Eyes Chardonnay California 2020 [★☆]

 

: 인디고 아이즈는 캘리포니아 나파 밸리에 위치한 와이너리입니다. 다양한 품종의 리즈너블한 와인을 생산하고 있는데, 그 중 2020년 샤르도네(미국식 발음으로는 샤도네이)를 마셔봅니다.

 

 알콜 13.5%. 첫 서빙 온도는 병 내 6.9도였습니다. 마개는 길이가 짧은 테크니컬 코르크인데, 코르크에 아무런 인쇄도 없습니다. 슈피겔라우 빌스베르거 콜렉션 화이트 글라스로 마셨습니다.

 

 마시자마자 전형적인 캘리포니아 샤르도네라는 생각이 듭니다. 화이트 와인다운 산도와 신선함이 살아있는 선에서 오크를 적극적으로 사용했습니다. 바닐라, 시럽, 크림, 분유 같은 느낌이 꽤 있습니다. 맛 자체도 살짝 달달한 것 같은게 잔당감이 있다고 봐야겠고요. 오키드한 쓴맛도 살짝 가지고 있습니다. 온도가 워낙 낮은 영향도 있겠지만 미네랄리티나 복합성이 별로 느껴지지는 않는데, 그래도 이 정도만 되어도 꽤 맛있습니다. 어지간히 무능한 생산자가 아니고서는 샤르도네로 맛없는 와인을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살면서 지금까지 맛없는 샤르도네를 딱 한 번밖에 못 마셔봤습니다.)

 

 이렇게 가볍고 경쾌하면서도 달콤한 뉘앙스를 가진 미국식 오크드 샤르도네는 언제나 즐겁게 마실 수 있는 와인입니다. 뉴질랜드의 소비뇽 블랑이 그렇듯, 캘리포니아의 샤도네이도 하나의 장르라고 생각합니다. 이쪽은 부르고뉴를 지향하지 않아요. 와인도 술일 뿐인데 부어라 마셔라 즐겨라 하면 되는 거 아니야? 라는 느낌의 샤르도네를 만듭니다. 특히 리즈너블한 가격대에서는 더더욱 그런 느낌입니다. (가격이 올라가면 예외적인 것도 나오긴 합니다.) 여담인데 마시기엔 언제나 적합하지만 요리에 쓰기엔 난이도가 높은 타입입니다. 요리용으로는 쓰기 매우 힘들어요.

 

 마시다보니 조금 열리면서 다소의 미네랄리티가 드러납니다. 입에 넣으면 순간 맑은 시냇물을 마시는 것 같은 청명함이 있다가, 이내 곧 분유-바닐라-오크 계열의 맛이 지배합니다. 역시 캘리포니아 샤도네이는 화장을 짙게 한 여자 같은 느낌이에요. 함께 파티를 즐기기에 즐거운. 실제 스탠딩 파티에서도 캘리포니아 샤도네이는 상파뉴 못지 않게 날아다닙니다.

 

 이후 열리면서 부케가르니 같은 허브 및 스파이스 향이 본격적으로 드러납니다. 그린페퍼, 세이지나 타라곤 같은.

 

 별점 결정은 굉장히 고민했습니다. 감성적으로는 별 반 개 올리고 싶은데 이성적으로는 아니네요. 어쩔 수 없이 샤르도네는 나의 최애이자 진리입니다.

 

 

 

 

 

Pilsner Urquell [★☆]

 

: 이번 가을에도 필스너 우르켈을 마십니다. 알콜 4.4%. 언제 마셔도 고상한 맥주입니다. 좀 쓰긴 하지만. 실망시키지 않네요.

 

 

 

 

 

264청포도와인 절정 Medium Dry 2021 [★★]

 

: 264청포도와인은 시인 이육사(본명 이원록)의 고향인 안동시 도산면의 와이너리입니다. 이육사의 시 청포도의 이름을 붙였다고 하고, 청포도인 청수 품종으로 양조를 하고 있습니다. ‘내 고장 7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의 그 곳에서 키운 청포도로 와인을 빚는 곳이지요. 안동시에서 지역특화사업으로 조성한 와이너리이기도 합니다.

 

 이 와인에 사용된 청수는 현재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와인 양조용 품종으로, 우리나라 농촌진흥청이 육종한 품종입니다. 본래는 식용 포도로 육종했는데 맛이나 향은 좋았지만 수확기가 되면 알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어 실패한 품종으로 인식되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양조용으로 써보니까 좋아서 양조용 품종으로 보급에 성공했습니다.

 

 264청포도와인은 현재 이육사의 시 제목에서 따온 광야’, ‘절정’, ‘세 종류가 출시되고 있습니다. 광야는 Dry, 절정은 Medium Dry, 꽃은 Sweet라고 합니다. 그 중 이번에는 2021년산 절정을 마셔봅니다. 병에는 절정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 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부분이 적혀 있습니다.

 

 수상 경력이 꽤 있는 와인입니다. 2019 한국와인대상 실버상, 2020 한국와인대상 골드상, 2021 한국와인베스트트로피 골드상, 2021 대한민국주류대상 우리술(한국와인 부문) 대상, 2021 한국와인대상 골드상, 2021 아시아와인트로피 실버상, 2022 대한민국주류대상 우리술(한국와인 부문) 대상, 2022 베를린와인트로피 골드상, 2022 아시아와인트로피 골드상, 2022 한국와인대상 골드상, 2023 한국와인베스트트로피 그랑골드상 을 수상했습니다.

 

 알콜 13.5% 첫 서빙 온도 병 내 6.5. 마개는 테크니컬 코르크입니다. 코르크에 남은 흔적을 볼 때 보존상태가 완벽하지는 않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적인 와인에 대한 이해를 감안할 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문제 있을 정도로 대미지 입지는 않았고요. 슈피겔라우 빌스베르거 콜렉션 화이트 글라스로 마십니다.

 

 이 와인은 유감스럽게도 보당이 좀 된 와인인데, 성분 중 포도가 92%라고 기재되어 있습니다. 아마 보당 없이 양조했으면 과거의 카비넷처럼 도수가 좀 더 낮았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생산하는 와인은 대체로 보당이 된 게 많은데, 유감스럽지만 이해는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입맛도 그렇고, 우리나라 기후도 포도 키우기엔 진짜 안 좋거든요.

 

 굉장히 달달한 아로마. 먹어본 적 없는 품종의 생포도나 포도향 풍선껌같은 향. (이 와인에는 폭시-foxy-하다고 표현하는 향이 있는데, 와인 평가할 때는 부정적으로 취급되는 향입니다.) 입에 넣어보니 일단 응축감이 전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없네요. 일단 와인으로는 좋은 평을 주기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이상하게 맛있습니다. 살짝 달달한 걸 맛있게 느끼는 건가 의심하면서도, 그러기에는 이 술이 (저온에서) 그렇게 노골적으로 단맛을 가진 정도는 아니라서 그냥 향보다는 맛이 좋은 와인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온도가 좀 올라가고 나니까 나름대로 미미한 달콤함을 가진 와인이긴 합니다.)

 

 설탕을 넣은 영향인지 다른 무언가가 영향인지 알콜 성분이 꽤나 자극성이 있습니다. 목 상태가 완전히 정상은 아닌 상태에서 마셨는데, 마실 때 목에 꽤 자극이 느껴집니다. 맛이 새콤하지는 않은데 산은 꽤 있고, 그렇다고 산도가 앞서지는 않네요.

 

 과일과일한 정도는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같은데, 그 과일 뉘앙스가 굉장히 포도스럽습니다. 풍미가 좀 다르긴 하지만 샤인머스캣이나 어텀크리스피같은 식용 청포도를 액체화시켜 마시는 것 같은 기분이 좀 듭니다. 그렇다고 그렇게 달지는 않고요.

 

 생각보다 떼루아 느낌이 제법 있습니다. 응축감은 미국 저렴이 메를로보다 더 나쁜데 맛은 묘하게 좋다보니 진짜 이건 본투더 작업주가 아닐까 싶습니다. 팝핑캔디마냥 튀는 알콜이 꽤 자극성이 있는데도 잘 넘어가는 편이고, 우리나라 사람 입맛을 고려할 때 어지간해서는 이 와인 맛있다고 할 것 같네요.

 

 마시면서 조금씩 깨닫는데 이거 아주 미세한 탄산이 좀 있습니다. 버블 크기가 작아도 너무 나노스럽게 작아서 감지하기 힘든데, 그 강도는 약하지 않습니다. 눈으로는 전혀 안보이는데 제법 있어서... 디캔팅해서 최대한 날려버리면 팔렡이 좀 변할 것도 같은데 디캔터 쓰기 번거로워서 포기. 온도가 올라오면서 미네랄리티가 조금씩 올라오는데 괜찮네요. 우리나라 기반암이 화강암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하는 느낌이 있습니다. 이거 서빙 온도가 좀 높아야 해요. 10도 이상 추천. 그리고 디캔팅 추천입니다. 병숙성 잠재력은 별로 없을 것 같고, 일단 병입 후 너무 오래되기 전에 마셔야 할 타입으로 추정합니다.

 

 열린 후 느낌이 꽤 달라집니다. 묵직해지면서 미네랄 느낌이 강해집니다. 열리기 전에는 액체화시킨 식용 포도를 입에 넣는 느낌이었는데요. 열리고 나니까 액체로 만든 화강암을 입에 넣는 기분입니다. 이건 비유하자면 석가여래상주설법탑... 통칭 석가탑입니다. 다만 그 위에 진흙을 한 겹 덮은. 좀 당황스러울 정도로 변해서 생각해보니까 탄산이 문제였습니다. 탄산 날아가고 나니까(+온도가 올라가니까) 진가를 한순간에 보여줍니다.

 

 와인 자체의 포텐셜 감안 레벨은 (의외로) 별 두개 반입니다. 열리고 난 후 드러난 미네랄리티의 퀄리티가 기대보다 너무 대단합니다. 그런데 이거 잠재 레벨에 비해 완성도가 없어도 너무 없습니다. 이 와인이 가진 폭시한 아로마는 전통주 애호가들은 대체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테지만, 와인 애호가들은 다수가 고개를 가로저을 겁니다. (나는 와인 애호가 기준으로는 폭시함을 그리 싫어하는 편이 아니긴 할 겁니다.) 그래서 별 한개반에 가까운 두개로 평가하겠습니다. 아마 이 와이너리는 앞으로 점점 좋아질테지만, 지금은 아직 포텐셜이 다 발휘된 상태가 아닐 겁니다. 이번에 마신 바틀 병숙성 시킨다고 확 좋아진다는 게 아니고요. 264청포도와인에서 앞으로 점점 더 좋은 와인을 만들 것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도 일단 열심히 만든 건 알겠습니다. 이런 잠재 레벨은 무성의한 와인에서는 나올 수 없지요. 보당 안하면 더 좋을 거 같고요. 청수 자체도 아직 완성된 품종에서는 거리가 먼 것 같긴 한데요.

 

 그래도 감히 말하건데 이 와인은 이육사의 이름을 사용하는데 적어도 부끄러운 와인은 아닙니다. 강철로 된 무지개의 편린 정도는 보여주는 와인입니다. 다만 추천은 시음온도 11도 이상, 디캔팅, 그리고 부르고뉴 글라스입니다. 조건을 갖춘다면, 마시면 됩니다.

2023년 가을 공산품 음식 감상문

식이 2023. 12. 9. 16:14 Posted by 해양장미

※ 지난 글

 

2023년 여름

 

 

 

 

광동제약/건강한사람들 광동 온 더 게임

 

: 건강한사람들() 에서 생산하고 광동제약이 유통하는 에너지 음료. 포장만 봐서는 무슨 음료일지 예측하기 어려운데, 리치나 람부탄 같은 열대과일 맛이 나는 에너지 드링크라 생각하면 됩니다. 프로게임단 광동 프릭스 선수들이 개발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약한 탄산이 있고, 열대과일향이 매우 강합니다. 그리고 부스트 효과가 좋습니다. 괜찮은 에너지 음료인데, 네이밍과 패키징 때문에 상업적으로 실패한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 많이 팔리는 느낌이 아니거든요. 그나마 캔 패키징은 괜찮은 것 같은데 PET 패키징은 얼핏 봐서는 에너지음료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이건 차라리 비타 500같은 패킷으로 유통했으면 더 잘 팔렸을 것 같아요.

 

 

 

 

 

세븐브로이 , 강서 Non Alcoholic

 

: 강서 맥주의 논알콜 버전입니다. 1%미만의 에탄올을 함유하고 있다고 적혀있습니다.

 

 무알콜 맥주답게 본래의 맥주에서 무언가 빠진 느낌이 나고, 신맛이 꽤 느껴집니다만 그래도 나름대로 맛있습니다. 무알콜 맥주 치고는 알콜이 조금 들어있는 것 같기는 한데, 이 정도 도수면 잘 익은 김치나 과일을 먹었을 때 섭취하는 알콜 양과 별 차이가 없을 겁니다.

 

 진짜 맥주처럼 거품이 상당히 많이 생깁니다. 무알콜 맥주 중에는 입수가격이 조금 높은 편인 게 아쉽습니다

 

 

 

 

 

 

롯데웰푸드 파스퇴르 설레임 밀크쉐이크

 

: 밀크쉐이크는 크게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달콤한 우유로 만든 슬러쉬 같은 거고, 다른 하나는 아이스크림을 녹인 것에 가깝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주로 유통되는 건 후자고요. 이 제품은 진짜 설레임을 녹인 느낌에 가깝네요.

 

 맛은 괜찮습니다. 실제 설레임이 그렇듯.

 

 

 

 

 

유어스 감동란 계란쿠키

 

: GS리테일 유어스 브랜드의 계란쿠키입니다. 제조사는 제주내먹이라는 서귀포 회사네요.

 

 꽤 맛있습니다. 파삭한 느낌으로 잘 만든 계란과자입니다. 밀은 국내산 밀을, 계란은 유정란을 썼는데, 결과물이 괜찮은 것 같습니다. 노른자맛이 강합니다. 먹으면서 묘하게 진짜 감동란이 떠오르는 면이 있네요. 마음에 들었습니다.

 

 

 

 

 

사케루 롱 구미 그레이프

 

: Mikakuto Co. 라는 곳에서 만든 일본산 젤리입니다. 길고 얇은 포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개봉해보면 고무 파이프의 일부 같은 올록볼록한 젤리가 들어있는데, 입에 넣기 전에는 껌 같습니다. 그렇지만 입에 넣고 씹으면 껌이 아니라 젤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맛은 좀 불량식품 같습니다. 술냄새 같은 것도 살짝 나는게 맛없지는 않은데 쓸데없이 긴 포장으로 먹기가 좀 피곤해서 왜 이렇게 만들었나 싶습니다.

 

 

 

 

 

서주 페코 아이스 모나카 딸기

 

: 제법 비싼 신제품 모나카 아이스크림. 페코가 포장에 그려져 있습니다.

 

 맛이 가볍습니다. 유지방 함량이 없지 않은데 무겁지 않은 게, 꽤 좋은 걸 사용했구나라는 느낌이고, 딸기향도 질이 괜찮게 느껴집니다만 그 외에 특별히 맛있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가격이 평범하면 참 좋게 생각했을 아이스크림인데, 가격이 너무 사악합니다.

 

 

 

 

 

농심 먹태깡 청양마요

 

: 핫한 신상품을 입수해서 먹어봅니다. 봉지를 개봉해보니 냄새가 꽤나 인상적입니다. 좋다고 하긴 힘든 냄새인데요.

 

 과자를 입에 넣으니 북어 향이 확 풍기는 시즈닝이 잔뜩 묻어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매운 맛이 꽤 납니다. 꽤 바삭바삭한 식감이고요. 시즈닝에 북어가루 좀 섞어놓은 건가 싶네요.

 

 이게 왜 그리 인기있는걸까요? 나는 잘 모르겠어요. 그냥 북어포 먹는 게 훨씬 맛있습니다.

 

 

 

 

 

 

하림 The 미식 장인라면 얼큰한맛 (용기)

 

: 험로라 할 수 있는 라면사업에 도전장을 내밀고 질주 중인 하림의 The 미식 장인라면 얼큰한맛 용기면을 먹어봅니다. 챔라면이 그렇듯 이 라면도 뜨거운 물을 붓고 전자렌지에 조리하는 레시피입니다.

 

 향이 꽤 묘합니다. 처음에는 특이한 스파이스를 사용한 건가 의심했지만, 자세히 먹어보니 사용한 건야채들에서 기원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면은 역시나 특유의 꼬들면이고, 전자렌지에 돌린 후에도 생생합니다.

 

 나름 맛있네요. 나는 마음에 들었습니다. 다만 가격이 너무 비싸서, 편의점 기준 1+1 가격으로 사야 먹을 만한 가격이라고 느낍니다.

 

 

 

 

 

뚠뚠푸드 얼큰 돈코츠 라멘

 

: 용기에 생면과 건더기스프, 진공 포장 차슈가 들어간 돈코츠 라멘입니다. 뜨거운 물을 붓고 전자렌지로 익혀 먹는 조리법으로 되어 있습니다.

 

 한 입 먹어보니 라멘이라기보다는 짬뽕이 떠오릅니다. 돈코츠 라멘 맛이 아니고, 고기짬뽕 맛이에요. 특히 면만 먹을 때는 완전히 짬뽕이고요. 국물은 그나마 뼈를 우린 느낌이 강해서 돈코츠 느낌도 나긴 하는데, 나에게는 그냥 스타일 좀 특이한 짬뽕으로 인식됩니다.

 

 라멘이라는 게 원체 범주가 넓다보니 이것도 라멘이라고 한다면 라멘이겠습니다만.

 

 

 

 

 

 

HBAF 청양마요아몬드

 

: 허니버터아몬드로 유명한 바프의 청양마요아몬드입니다. 개봉하면 느껴지는 향은 그냥 청양고추가 아니라, 고추를 넣은 간장조림 향입니다. 그렇게 맵지는 않아서 사실 청양고추보다도 꽈리고추가 더 떠오릅니다.

 

 맛은 나쁘지 않은 것이, 어째 고추찜닭 같은 데 아몬드를 넣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문제는 마요맛이 안 나는 것 같아요.

 

 

 

 

 

남양 프렌치카페 로스터리 R 슈크림 라떼

 

: 커스터드크림 맛에 우유맛, 그리고 그 가운데 쓴 커피의 맛이 있습니다. 생크림에 가까운 커스터드크림에 로부스타 커피를 더한 것 같은 맛입니다.

 

 나에게는 결과적으로 커스터드크림 맛도 강하지 않고, 커피도 너무 쓴맛으로 액센트 넣으려고 했다는 느낌이긴 한데요. 아무래도 이런 건 가볍게 마시는 음료로 접근해야겠지요.

 

 

 

 

 

 

푸드올로지 가벼움을 위한 히비스커스맛 콜레티 워터

 

: 최근에 나온 신상품인데 잘 팔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히비스커스 차 같을거라 생각했는데 아니네요. 달달하고 옥수수팝콘향과 자몽향이 있습니다. 제로칼로리 감미료계열 맛이 살짝 나고요.

 

 히비스커스는 진짜 색깔 날 정도로만 우린 것 같아요. 히비스커스 풍미가 전혀 없다시피 합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농도가 워낙 옅어서 차라기보다는 물입니다. ‘워터라는 범주에 들어가는 것 같아요. 히비스커스자몽향 제로칼로리감미워터라고 하면 되겠습니다.

 

 

 

 

 

롯데칠성음료 아이스 칸타타 카라멜 마키아토 팩

 

: 이런 타입의 카라멜 커피는 맛이 묘합니다. 본래 카라멜 마키아토를 만들때는 커피와 카라멜소스를 믹싱하지 않거든요. 그런데 이런 팩 음료는 완전히 믹싱이 되어 있지요. 그래서 맛에 레이어가 없고, 본래의 카라멜 마키아토와는 전혀 다른 맛이 납니다.

 

 이 팩커피는 탄맛이 나는 커피에 카라멜소스를 섞은 것 같은데, 양쪽 다 주장이 강합니다. 조화롭게 섞여있지 않아요. 이 이질감이 어쩌면 궁여지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카라멜맛이 강하다보니 순식간에 다 마시긴 했습니다.

 

 

 

 

 

말표산업/한국생활건강/금강B&F - 마력 Darkhorse

 

: 연구개발은 한국생활건강, 제조원은 금강B&F, 유통은 말표산업이 하는 말표 마력입니다. 24캔 사서 근래 즐겨마신 에너지 드링크인데요.

 

 다소 자극성이 있는 에너지음료 맛이고, 신맛이 강하지 않습니다. 살짝 단 편이라고 생각하네요. 설탕 + 스테비아 + 수크랄로스 구성으로 캔당 100kcal고요. 카페인은 250ml100mg로 강합니다. 마시기 쉬운 맛이고 괜찮은 부스트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내 입에는 노멀 핫식스에 비하면 이쪽이 맛있고, 구매했던 가격도 저렴해서 좋았네요.

 

 

 

 

오뚜기 열떡볶이면 오리지널 (용기)

 

: 오뚜기에서 나온 용기면. 실제 작은 크기의 떡볶이용 떡이 들어있습니다. , , 건더기스프를 물에 데친 다음에 액상스프와 분말스프를 비벼 먹는 라볶이 타입인데, 떡이 잘 안 익기 때문에 전자렌지를 활용해서 더 데치는 쪽이 좋습니다. 특히 가정이나 탕비실에서 100도로 끓인 물에 해먹으면 모를까, 편의점에서 공급하는 90~93도 정도의 온수로는 더 안익습니다.

 

 이 용기면은 분말스프가 완전히 용해되지 않은 상태에서 고추장처럼 꾸덕한 액상과 버무려지는데, 그래서 분말스프의 맛이 꽤 선명하게 납니다. 분말이 섞인 소스맛의 농도가 꽤 진하고요. 떡볶이답게 맵고 달달한 맛입니다. 분말스프 때문인지 맛의 포인트와 양감이 꽤 전향적인데, 어쨌든 어택이 있는 맛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롯데칠성음료 레쓰비 카페타임 라떼

 

: 기본적으로 레쓰비 맛입니다. 커피라고 하긴 어렵고 커피맛 음료.

 

 분유맛이 꽤 납니다. 인스턴트 커피믹스의 캔커피 버전 같기도 한데, 그보다는 덜 커피같고. 커피우유가 커피가 아니듯 이것도 커피는 아닌 것 같아요.

 

 

 

 

 

 

롯데칠성음료 칸타타 스위트 아메리카노 ()

 

: 이쪽은 예전부터 어째 여러 번 마셔보게 되고 있는데, 마실 때마다 느끼지만 아메리카노 맛이 아닙니다. 본래 아메리카노는 보존성이 없는데요. 이 캔은 성분에 농축액과 합성향료, 보존재가 들어가있어서 보존이 되는 거 같고, 그래서 내가 마시기에는 아메리카노 맛이 아닙니다.

 

 본래의 아메리카노와는 맛이 다르다보니 이런 맛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아요. 진짜 아메리카노와 이런 캔 아메리카노 가격이 같아도 캔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사람들이 꽤 있거든요.

 

 

 

 

 

 

 

삼양식품 콩나물김치라면 ()

 

: 김치 풍미가 두드러집니다. 콩나물 건더기가 딱히 보이지는 않지만, 콩나물 맛도 꽤 납니다. 이름 그대로 콩나물김치라면의 맛을 잘 구현하고 있습니다.

 

 면은 탄력이 좋고 맛있습니다. 삼양식품은 면을 잘 만드는 회사입니다. 봉지면용 유탕면에 한정한다면 삼양식품이 최고라 생각합니다. 우지쓰던 시절에 비하면 팜유에 튀기게 된 이후의 품질은 조금 아쉽습니다만. 지금은 그나마 이게 최고지요.

 

 잘 만든 라면인데 나에게는 콩나물 건더기나 두부 및 유부 건더기가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라면을 베이스로 콩나물, 두부 등을 더 넣고 끓여도 괜찮을 것 같기도 합니다.

 

 

 

 

 

 

 

남양유업 테이크핏 맥스 초코맛

 

: 근래 대유행 중인 단백질음료 중 하나. 맛은 초코맛인데 굉장히 진득합니다. 점도가 엄청나게 높아요. 용해되지 않는 가루가 느껴지고, 그런 가루가 섞인 묽은 점액질을 마시는 느낌입니다. 거기에 더해 제로음료같은 단맛이 있어서 성분표를 보니까 수크랄로스, 아세설팜칼륨이 들어가있네요. 거기에 자극적인 향이 약간 있고, 그 향이 제로감미료외 시너지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종합적으로 꽤나 괴악한 맛인데, 즐겨 마시는 사람들도 꽤 있는 것 같은 음료라 각자 입맛은 참 다르구나 싶습니다.

 

 

 

 

 

 

 

오뚜기 마열라면 ()

 

: 오뚜기의 신제품 라면입니다. 열라면의 변형판 또는 업그레이드 버전 같은데, 근래 마라탕이 메이저하다보니 마라 계열인가 생각했지만 포장의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듯 마늘의 마입니다. 건더기스프와 분말스프 외에 마늘후추 블럭이 추가로 들어있는데, 조리 후에 블럭을 넣어 풀어 먹으면 됩니다.

 

 이 라면은 계열로 치면 팔도의 남자라면과 흡사합니다. 나는 남자라면도 좋아하는데, 이 마열라면도 입에 맞아서 여러 봉 먹고 있습니다. 오뚜기다운 양질의 면과 맛 스타일을 가지고 있고, 제법 매운 편에 속하는 라면입니다.

 

 면이 매우 훌륭합니다. 근래 나오는 라면 면 중 거의 최고 레벨의 면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견으로 봉지면은 삼양식품과 오뚜기가, 용기면은 농심과 팔도가 면을 잘 만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웅진식품 자연은 더 말린 제로 자몽

 

: 향은 제법 자몽 향이 납니다. 맛은 자몽 맛이 아니지만요.

 

 기분나쁜 수크랄로스와 에리스리톨, 아세설팜칼륨 맛을 제외하면 다양한 과일 풍미가 들어있습니다. 나쁘지 않네요. 제로음료만 아니라면 즐겁게 마실 수 있는 맛일텐데요.

 

 

 

 

 

 

동서식품 Maxim T.O.P 마스터 라떼

 

: 커피우유와의 경계가 모호합니다. 커피우유보다는 좀 더 진한 커피맛 + 좀 약한 우유맛이라고 하면 될까요? 들어있는 커피의 맛은 꽤 거친 경향입니다. 그 거친 느낌이 존재감을 살리고 있긴 합니다. 카페라떼라기에는 커피우유같지만, 커피우유라기엔 커피가 그래도 나 커피라고 자기주장을 하는 정도의 그런 위치에 있습니다.

 

 

 

 

 

 

 

하겐다즈 피스타치오 & 크림 파인트

 

: 하겐다즈의 신제품. 하겐다즈의 제품이 대체로 그렇듯 매우 맛있습니다. 피스타치오 알갱이도 많이 들어있고, 피스타치오 맛도 많이 납니다. 나는 원래 피스타치오를 좋아하는 편이라 이 아이스크림이 입에 잘 맞았습니다.

 

 나에게는 하겐다즈의 모든 제품군 가운데서도 손꼽히게 마음에 듭니다. 압도적인 칼로리 생각만 안 하면 앉은 자리에서 한 번에 다 먹기도 전혀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농심 - 라면왕 김통깨 (용기)

 

: 전자렌지 조리 레시피를 따랐습니다. 00년대 중후반 출시되었었던 농심의 건면세대라는 용기면을 좋아했었는데, 단종되어서 아쉽게 여겨 왔습니다.

 

 첫맛이 영 좋지 않습니다. 면의 풍미가 안 좋습니다. 첨가제 너무 넣은 거 같고, 제대로 믹스되지 않은 부분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이후 감상문을 쓰는 걸 포기했습니다. 가능하면 언젠가 한 번 더 먹어볼 생각입니다.

2023년 여름 주류 감상문

식이 2023. 9. 2. 13:16 Posted by 해양장미

 앞으로 비정기적으로 업데이트할 예정인 주류 테이스팅 기록입니다.

 

 별점 부여는 할까 말까 하다가, 하기로 결정했는데 7월 하순부터 부여했습니다. 그 전에 마신 기록은 별점 부여가 없습니다. 별점은 주관적으로 마음에 드는 정도입니다. 은 별 반개, 은 별 한개. 맛있다 맛없다로 이분하면 맛있어야 별점을 줍니다. 맛없으면 별점을 안 줘요. 경험적으로 제대로 와인 아니면 나에게 별 많이 받기는 어려우니까 감안해주세요.

 

 

 

 

타이거 포멜로

 

: 도수 2%. 거의 음료수입니다. 알콜 느낌 조금 나는 포멜로향 음료수. 맛없지는 않아요. 앞으로도 종종 마시고 싶네요.

 

 

 

 

 

포천이동 생 오곡막걸리

 

: 요새 탁주 가격 너무 비싸져서 적응이 안 됩니다. 예전엔 싸서 즐겨 마셨는데.

 

 알콜 5.5%. 과거 탁주 히트 이전의, 고전적인 스타일의 탁주를 기대했는데, 그렇지는 않습니다. 순수한 쌀막걸리 맛이 아니긴 한데, 고전 타입보다는 맑아요. 노무현 시절이나 그보다 이전의 탁주를 즐기던 분은 이게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하실 거라 생각하네요,

 

 포천이동막걸리 자체를 굉장히 오래간만에 마셔보는데, 원래 이런 느낌이었지 싶네요. 별 생각없이 맛있게 마실 수 있고요. 아스파탐 맛이 좀 유감스럽긴 합니다. 어쩔 수 없지요.

 

 

 

 

 

구스아일랜드 IPA

 

: 알콜 5.9%. 첫모금 마셔보고 라거 아니야? 싶었는데 마신 후 뒷맛이나 알콜 올라오는 게 에일은 에일이네요. 호피, 시트러스, 스무스라고 써있는데 나는 스무스에 포인트를 주고 싶어요. 무척 스무스한 에일. 버블도 섬세하고 촉감이 부드러워서 나쁘지 않아요.

 

 

 

 

 

삿포로 프리미엄 비어

 

: 알콜 5%. 진짜 오래간만에 마셔봤는데 시원하고 묽어요. 역시나 라거고, 매우 평범해요. 국산 대형 회사 맥주에 비하면 조금 나은가 모르겠어요.

 

 

 

 

 

타이완 비어 클래식

 

: 알콜 4.5%. 첫 느낌은 굉장히 평범한데, 뭔가 근래 마시던 맥주하고는 이질적이면서도 익숙한 느낌이 있어 성분을 보니 쌀이 들어갔습니다. 쌀이 들어간 맥주는 OB블루 이후 오래간만에 마셔보는 것 같아요. OB블루는 제법 좋아했었기 때문에 이것도 반갑군요. 다만 가격에 비해 맛있는 맥주라 할 수는 없어요.

 

 

 

 

 

와인 크루저 블루베리

 

: 알콜 5%. 굉장히 오래간만에 마셔보는 와인 및 브랜디 베이스의 칵테일.

 

 역시나 색깔이고 맛이고 불량식품 같아요. 아무래도 술이라기보다는 음료수. 타이거 포멜로처럼 주류 느낌이 아니에요. 그런데 알콜 함량은 술이고. 그래서 마시면 취하긴 하네요.

 

 

 

 

 

코젤 라거

 

: 알콜 4.6%. 맛은 있는데 라거 아니랄까봐 묽고 단순해요. 그런데 라거스러움 자체로 승부하기에는 청량감이 모자란 느낌이고요. 체코맥주 특유의 느낌은 있다고 생각하는데, 예전에 처음 마셔봤던 코젤이 다크였기 때문에 인상이 묘했어요.

 

 

 

 

 

 

스프릿제로 세코 비앙코

 

: 알콜 5.5%. 좀 오래된 걸 마시게 되었는데 맛은 멀쩡했어요. 제법 멀쩡한 와인 풍미. 성분을 보면 화이트 와인에 포도주스 농축액, 설탕, 이산화탄소, 구연산, 포도향 같은 걸 섞은 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이트와인스러운 느낌이 잘 살아있어요.

 

 드라이 화이트와인을 조금 묽게 만든 칵테일 느낌? 당을 넣어서 살짝 달콤합니다. 맛없진 않은데, 우리나라에서 이런 주류의 대중화는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도 나한테는 좋아요.

 

 

 

 

 

하이트진로 폭탄맥주

 

: 품질유지기한이 꽤 지난 걸 입수했어요. 다만 알콜 6%이라 별 문제는 없을 듯. 실제 마셔봐도 문제 없고요.

 

 소맥맛을 구현했다는데 내 느낌에는 전혀? 소맥처럼 이상한 알콜이 튀는 느낌은 없어요. 그저 쓴 맛이 있는 엑스포트 계열의 맥주가 조금 더 알콜이 강해진 정도? 나는 예전에 나오던 카스레드를 좋아하던 편이라 이것도 괜찮네요.

 

 도수나 쓴 느낌 대비 묘하게 부드러운 느낌이 있는데 일부러 그런 느낌을 연출한 것 같다는 느낌이에요.

 

 

 

 

 

스프릿제로 스프리즈 휴고

 

: 알콜 5.5%. 마찬가지로 좀 오래된 걸 마시게 되었네요.

 

 화이트 와인 베이스에 라임주스와 엘더플라워향이 들어갔는데, 제코 비앙코에 비해서는 살짝 크루저가 생각나네요. 그리고 화이트 와인은 열화되지 않았지만 라임주스와 엘더플라워향이 열화된 것 같이 느껴집니다. 제코 비앙코에 비해서는 열화를 느끼게 됩니다.

 

 결과적으로는 비앙코가 더 좋은데, 신선할 때 마셨으면 매력이 있었을지 모르겠어요.

 

 

 

 

 

 

하이트진로 크라운맥주 오리지날에일

 

: 간만에 크라운맥주를 보니 반가워서 구매했는데, 과거의 크라운맥주가 에일일 리가 없지요. 오래된 브랜드를 에일 브랜드로 이용하다니 묘한 기분입니다.

 

 버블이 풍성하고 부드럽고 크리미합니다. 풍미 자체는 강하지 않아요. 기네스처럼 크리미한 버블 느낌에 집중한 맥주라는 느낌,

 

 

 

 

 

웨스트+와일더 스파클링 화이트 와인 (N/V)

 

: 알콜 12.5%의 캔 와인. 미국와인이고 이산화탄소를 혼합한 타입입니다. 2021년 패키징.

 

 일단 첫 캔은 플루트 글라스 같은 걸 활용하지 않고 캔째 마셔보기로 했는데, 일단 캔와인 특유의 풍미 감쇄가 일어나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품종이 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일단 듭니다. 살짝 크리스피한데, 유럽 기준이면 남프랑스나 이탈리아, 에스파냐 정도에서 느껴지는 타입같다 생각합니다. 다만 알콜 도수 치고는 묽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품종은 Sauvignon Blanc, Chenin Blanc, Albarino, Gruner Veltliner, Riesling이라고 합니다. 이 중 정보를 찾기 전에 떠올린 품종은 앞의 셋이었습니다. 플레이버에서 소비뇽 블랑의 뉘앙스는 있는데 소비뇽 블랑이라 생각할 수 없는 맛 밸런스고, 슈냉 블랑치고는 플레이버가 묘하고, 맛이나 밸런스는 알바리뇨 와인이라 해도 납득할 만 하지만 플레이버는 소비뇽 블랑이나 슈냉 블랑을 더 떠오르게 합니다. 그뤼너 펠트리너는 내가 특성파악을 못 하고 있는 품종이고, 리슬링은 정보를 보기 전에는 들어갔다는 느낌이 없었지만 떼루아 느낌을 살짝 내주는 정도의 역할이 있다는 생각은 듭니다.

 

 처음에는 그런 느낌이 없었는데 마시다보니 꽤나 날카롭고 미네랄리티가 있는 타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성이 스파클링 와인 치고는 서빙온도가 조금 높아야 합니다. 스틸와인에 탄산 넣은 거 아닌가 싶은 특성인데, 랑그독 루시용의 소비뇽 블랑 중심의 다품종 스틸와인 정도로 생각하고 온도맞춰 서빙해야 할 것 같습니다. 처음 마실 때는 서빙온도가 너무 낮았습니다.

 

 그래도 화이트 와인이라고 맛없지는 않은데, 들이가 250cc라 사실 단가가 없는 와인은 아닙니다. 용량대비 동일 가격의 화이트 스틸와인이라 생각하면 가성비가 좋지는 않습니다. 물론 이 친구는 아무 데서나 편하게 마실 수 있는 장점이 있긴 합니다.

 

 플레이버&테이스팅 노트는 파파야, 부싯돌, 레몬필, 포멜로, 가죽, 주석산, 오크. 이 미미한 오크 뉘앙스가 오크통에서 기인했을지는 잘 모르겠네요. 아닐 확률이 제법 있을 겁니다.

 

 

 

 

 

 

인천 소성주 플러스

 

: 알콜 5%. 소성주 플러스는 예전에 마셔봤을 때는 인상이 별로였는데, 방문한 마트에서 일반 소성주를 안팔아서 간만에 구매해 봤습니다.

 

 오래간만에 마시니까 나쁘지는 않은데, 좋지도 않습니다. 소성주의 특징인 강렬함과 상쾌함이 소성주 플러스에는 없습니다. 대신 무난해졌습니다. 이쪽을 좋아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다만 내가 굳이 탁주를 마시는 이유를 충족해주는 쪽은 일반 소성주입니다. 소성주 플러스가 가진 장점은 청주계열이 상위호환으로 만족시킵니다.

 

 이 탁주가 맛없는 건 아닙니다. 그래도 소성주인데요. 다만 나는 그냥 소성주가 좋아요.

 

 

 

 

 

 

카브루 비전 브루어리 - 이지 피나콜라다 하이볼

 

: 알콜 7%. 피나콜라다를 캔으로 마실 수 있는 시대가 되었네요.

 

 맛은 피나콜라다 맛인데 직접 만들어 마시거나 바에서 마시는 피나콜라다 계열 칵테일에 비하면 뭔가 빠진 맛입니다. 일단 본래의 피나콜라다가 럼베이스인 것과 달리 이 피나콜라다 하이볼은 럼을 사용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럼 향이 나지 않습니다. 하이볼이라 하니 명목상으로는 위스키 베이스인가 싶고, 실제 다소의 오크 향이 나긴 합니다만. 위스키와 피나콜라다 믹스가 어울릴 거라 생각해본 적이 없고, 이것도 뭔가 좀 이상합니다. 치치하고도 다르고요.

 

 맛없지는 않아요. 피나콜라다는 버진으로(논알콜로) 만들어도 맛있습니다. 다만 이런 식으로 만드느니 그냥 골드럼이나 다크럼을 쓰는 쪽이 나을 겁니다. 하이볼 유행 때문에 나온 괴작 같다는 인상입니다. 피나콜라다 만들 줄 모르는 것도 아닌데 만들어 마실래요.

 

 

 

 

 

 

쿠시마사 원모어 하이볼

 

: 알콜 8.5%. 마시는 순간 오크향이 작렬합니다. 이런 건 제대로 된 오크통 숙성에서 나올 수 있는 게 아닌데? 라고 생각하면서 보니까 오크칩이 성분표에 있네요. 오크칩을 잔뜩 우려낸 하이볼인것 같습니다.

 

 하이볼이 유행한다고 해서 RTD 하이볼을 사마셔보고 있는데 지금까지는 실망스럽습니다. 오크칩 이렇게 잔뜩 우린 술을 마시느니 도토리묵을 먹겠습니다.

 

 

 

 

 

 

 

하이트진로 켈리

 

: PET를 구매해 마셔봅니다. 맥주를 포함한 모든 음료류는 PET병입품이 품질이 가장 떨어지기 때문에 고려가 필요합니다. 4월 출시된 맥스의 후속작.

 

 알콜 4.5%. 올 몰트 비어라는데 기억 속의 하이트 프라임이나 초기 맥스보다는 가볍습니다. 켈리 출시 이후 단종된 최근의 맥스는 마셔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습니다. 몰트만 사용한 맥주 특유의 느낌이 없지는 않은데, 동시에 가벼운 이유는 알콜 함량이 낮아서인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라인업 맥주답게 물같고 버블이 제법 셉니다. 쓴 맛이 별로 없고요.

 

 

 

 

 

삿포로 에비스

 

: 알콜 5%. 처음 마셔봤는데, 첫인상은 꽤 부드럽습니다. 라거와 에일의 중간적인 맛이라는 인상입니다. 정통 독일식 맥주를 지향한다는데, 어디서나 마셔본 느낌이면서도 동시에 어디서도 못 마셔본 맥주 같습니다. 버블이 기네스가 살짝 떠오를 정도로 부드러우면서도 에일하고는 달리 깔끔하며 쓴 맛이 적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옛날 OB골든라거나 초기의 클라우드, 최근의 켈리를 연상시키는 면도 있는데 이런 계열에서는 가장 맛있다고 생각합니다. 초밥집에서 많이 마신다는데 이해가 갑니다. 맥주 자체가 맛이 괜찮으면서도 음식하고 마시기도 괜찮을 것 같네요.

 

 

 

 

 

 

 

제주맥주 곰표 밀맥주

 

: 곰표 밀맥주는 기존에는 세븐브로이에서 만들었었지만, 이제 제주맥주에서 만들게 되었습니다. 기존에 세븐브로이에서 만들던 곰표 밀맥주는 이름이 대표 밀맥주로 바뀌어서 나온다고 합니다.

 

 알콜 4.5%. 밀맥주답게 말린 살구 같은 향이 두드러집니다. 꽤 맛있는 밀맥주. 곰표라는 상표 안 보고 마시면 그냥 제주맥주의 밀맥주라는 생각이 들 것 같습니다.

 

 

 

 

 

 

산토리 프리미엄 몰츠

 

: 알콜 5.5%. 나의 최애 라거입니다만, 2019년부터 한동안 볼 수 없었던 암흑기가 있었지요.

 

 라거치고는 향이 풍부합니다. 페일 에일 같은 것과 비교하면 뒷맛이 묽고, 피니쉬가 없습니다. 대신 쓴맛도 적고 깔끔. 살짝 높은 도수가 무게감을 만들고, 풍부한 향과 합쳐져 첫맛에나마 좋은 무게감을 만들어냅니다.

 

 밸런스가 좋은 주류라고 하기는 어렵다 싶으면서도 나에게는 각 요소들이 적당히 주는 만족감이 좋은 맥주입니다. 취하지만 않으면 일상적으로 많이 마실 수 있어서 좋을 텐데 싶을 정도로 입에 맞습니다.

 

 다만 이 맥주는 아주 차갑게 해서 마실 때는 진가를 느낄 수 없습니다. 온도가 많이 낮으면 굉장히 평범해집니다.

 

 

 

 

 

 

 

제주맥주 제주 위트 에일 []

 

: 알콜 5.3%. 감귤피, 오렌지 필, 코리앤더가 들어있고 밀맥아와 보리맥아가 같이 사용된 에일.

 

 구성부터 호가든이 떠오르는데, 역시 맛있습니다. 호가든보다 더 맛있는 것 같습니다. 동사의 펠롱 에일보다는 가벼운 기분으로 마시기 좋은 맥주 같습니다.

 

 

 

 

 

 

제주맥주 - 제주 펠롱 에일 [★☆]

 

: 알콜 5.5%의 페일 에일. 첫인상부터 꽤나 본격적인 에일입니다. 어택도 있고, 첫맛부터 뒷맛까지 과일 풍미가 강합니다. 망고와 살구, 말린 자두가 떠오릅니다. 일반적으로 시트러스향 난다는 이야기가 많던데 나는 그건 잘 모르겠어요. 내가 아는 어떤 시트러스향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차라리 시트러스 에 가까운 부분은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여러 면에서 꽤 취향에 맞는 에일입니다. 맥주치고는 제법 강한 쓴맛을 가지고 있는데, 그만큼 홒을 풍부하게 넣었고 홒에서 유래한 풍미가 강합니다. 우리나라 맥주답게 탄산이 강한데, 이렇게 강한 탄산도 좋지요.

 

 

 

 

 

 

카브루 비전브루어리 남산 에일 []

 

: 알콜 4.5%. 프리미엄 시트라 에일이라고 써 있습니다. 성분에는 진달래꽃이 들어있긴 한데, 딱히 과일 향을 첨가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꽤나 선명한 시트러스향이 나고요, 패션 플룻이나 플라워리한 향도 있어요.

 

 에일치고는 가벼워요. 특히 점도가 낮아요. 물론 풍미는 에일입니다만, 도수도 낮은 편이라 라거와 에일의 중간적인 느낌을 주는 부분도 있습니다. 라거를 좋아하는 분들도 접근하기 쉬운 에일이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호가든 포멜로 []

 

: 알콜 3%. 밀맥주에 포멜로 향이 섞여있고, 뒷맛에는 호가든 특유의 그 강한 코리엔더 풍미가 있습니다. 알콜 좀 들어간 포멜로 음료 같았던 타이거 포멜로에 비하면 알콜도 좀 있어서 알콜 느낌이 확연히 느껴지는 편이고, 호가든 자체가 원체 풍미가 개성적이고 강한 맥주다보니 그 느낌도 살아있는 편입니다.

 

 

 

 

 

 

에딩거 바이스비어 []

 

: 알콜 5.3%. 첫느낌부터 그다지 바이스같지 않아서 성분을 보니 밀맥아와 보리맥아를 같이 썼다고 되어있네요. 밀맥주 느낌이 강하진 않아요.

 

 탁주스러운 맥주. 탁주처럼 꽤나 달달합니다. 탁주 침전물 안 흔들고 위쪽만 마실 때와 유사한 느낌이 있습니다. (그렇게 마시면 청주하고는 조금 다르지요.) 물론 에일스러운, 바다거품 생각나는 버블도 있습니다.

 

 

 

 

 

 

 

주로 골목막걸리 프리미엄 []

 

: 알콜 12%. 백종원이 개발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제법 비싼 생탁주로 유리병에 들어있습니다. 뚜껑이 좀 미끄러운 편이라 손이 기름지거나 하면 열기 힘들 수 있습니다.

 

 단 맛이 상당히 강합니다. 충분히 당화시킨 쌀을 일부러 12도까지만 양조해서 잔당을 많이 남긴 것 같습니다. 효모는 종류마다 생존 가능한 도수가 있기 때문에, 12도가 되면 죽는 효모를 쓰면 이런 술을 만들 수 있습니다.

 

 체감상 이 탁주는 아우스레제급 단맛입니다. 과당과 포도당이 엿당보다 달다는 걸 감안하면 아마 잔당 함량 자체는 베렌아우스레제 이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누룩 향은 좀 남아있긴 한데 두드러지지는 않습니다. 희석을 하지 않은 탁주로 보이며, 탄산은 살균탁주 수준으로 매우 약합니다. 생탁주 특성상 너무 일찍 마셔서 이럴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에는 숙성을 좀 더 시켜서 마셔보려고 합니다.

 

 

 

 

 

 

블루문 벨지안 화이트 []

 

: 알콜 5.4%. 첫맛은 라거같다가 뒷맛에서 강렬한 과일 향이 나면서, 밀맥주 특유의 뉘앙스가 느껴집니다. 이후 느껴지는 피니쉬는 순수한 맥주의 그것은 아닌데, 성분을 보면 호가든이나 제주 위트 에일처럼 오렌지껍질과 고수가 들어있습니다. 고수라고 표기되어있지만 풍미를 볼 때 (미국식 표현으로) 실란트로가 아니라 코리엔더일 겁니다. (고수 잎과 줄기가 아니라 고수 씨일 거라는 이야기입니다.)

 

 호가든하고 비슷한 구성인데 밀맥 뉘앙스가 상당히 강합니다. 꽤나 개성적인 맥주.

 

 

 

 

 

 

 

중원당 청명주 [★★]

 

: 알콜 17%. 2022 우리술 품평회 대통령상 수상이라는 문구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우리술 품평회는 탁주, 약ㆍ청주, 과실주, 증류주, 기타주류에서 대상(1), 최우수상(2), 우수상(3)을 선정한 다음 대상 중 하나만 그 해 최고의 술로 대통령상을 선정합니다.

 

 이 술은 2021년 청와대 추석선물로 선정되었던 술이라고도 하고요. 충북 무형문화재 2, 찹쌀로 빚은 약주라는 문구가 적혀 있기도 합니다. 냉장보관을 필요로 하는 생주인데, 유통기한이 12개월로 길게 잡혀있습니다. 병입한 지 45일 정도 지난 걸 마셔보게 되었습니다.

 

 375ml 들이를 샀는데 병 디자인은 네모낳고 좋습니다. 가격이 저렴한 준마이다이긴죠에 육박하는 수준인 청주인데, 첫 잔은 상당히 낮은 온도로 서빙했음에도 향기가 아름답습니다. 첫 맛은 굉장히 달콤합니다. 그리고 생주 특유의 활기가 있습니다. 이건 맛있네요.

 

 상당히 달달하고, 산미가 있으며, 살짝 새콤한 과일 향이 감돕니다. 매실 향에 가깝다고 느낍니다. 바디는 볼륨감이 꽤 있고, 전반적으로 쥬시합니다. 뒷맛에는 역시나 누룩 향이 어느 정도 있고, 피니쉬는 깔끔한 편이면서도 누룩 향으로 끝나는 변화가 긍정적으로 느껴집니다. 체감 단 정도는 슈페트레제 중에 좀 안 단 편인 정도로 느낍니다. 프랑스식으로 적으면 Demi Sec으로 적겠습니다. 단맛과 신맛이 같이 있다는 점에서 이 술은 좋습니다. 달콤함이 거북스럽지 않고, 맛있습니다.

 

 일단은 음식 없이 술만 마셨는데, 다음에 마실 때는 곁들일 적절한 음식을 찾아보고 싶어집니다. 초대리를 좀 달게 만든 스시하고 어울릴거 같기도 한데, 그런 타입 만나본지 좀 됐어요. 술 마시겠다고 직접 스시 만들기는 번거로운데요. 향료를 적게 넣은 새우 샤오마이와도 잘 어울릴지도 모르겠네요.

 

 

 

 

 

 

부루구루 Beurre Bière AAA+ [-]

 

: 알콜 4.5%.

 

 블랑제리 뵈르 브랜드의 맥주. 4종류 중 AAA+는 바닐라향과 버터향이 들어간 맥주입니다. 뵈르 감자칩과 디자인을 공유합니다.

 

 일단 느낌은 합성향료가 들어간 걸 제외하면 평범한 맥주입니다. 바닐린은 잘 모르겠고 버터향은 제법 납니다. 버터맥주라고 하면 될 것 같습니다. 허니버터칩이나 뵈르 트러플 버터칩하고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알콜이 강하지 않고, 버터향을 제외하면 진짜로 평범한 묽은 맥주맛이라 굉장히 묘합니다. 어째 맥주를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이 더 좋아할 거 같아요.

 

 

 

 

 

 

필스너 우르켈 []

 

: 알콜 4.4%. 오래간만에 마십니다. 이름 뜻은 오리지날 필스너’. 이게 최초의 필스 맥주입니다.

 

 도수가 낮으면서도 노블 홒 중 하나로 꼽히는 양질의 자츠 홒을 충분히 사용한 특성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처음 마실 때의 인상은 묽은 라거인데, 마시면서 점차 쓴맛과 홒의 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맥주의 향은 흰 꽃이 떠오르는, 플라워리함을 여리게 가지고 있습니다. 좋은 몰트의 풍미도 느껴집니다. 전반적으로 첫맛은 가벼운데 이후 느껴지는 쓴맛과 풍미가 날카로운 인상을 주는 맥주입니다. 쓴맛이 매우 강한 편입니다. 홒을 많이 사용한 맥주는 도수가 낮을수록 쓴맛이 두드러집니다.

 

 필스너 우르켈의 쓴맛은 기름진 음식의 느끼함을 잡아준다는 평을 받곤 합니다. 다만 필스너 우르켈의 향은 강도가 높은 편이 아니라서, 그 향을 온전히 즐기려면 음식 맞추기 어렵다고 느낍니다. 맥주이면서도 섬세한 향이 좋은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와인 마시는 느낌으로 스월링까지 하면서 마셔보는 게 좋습니다. 그래야 향을 제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나에게는 이것보다 맛있는 라거는 산토리 뿐입니다.

 

 

 

 

 

 

칭따오 120주년 스페셜 에디션 캔 []

 

: 알콜 4.7%. 칭따오답게 성분을 보면 보리에 더해 쌀이 사용되었습니다.

 

(무알콜 제외하고) 칭따오 마신지 워낙 오래되어서 본래의 칭따오와 얼마나 다른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근사한 맥주입니다. 쌀이 적절하게 사용되어 부드러우면서도 보리맥주의 심지는 살아있고, 홒의 향이 우아하면서도 마시기 편합니다.

 

 음식과도 잘 어울릴 느낌이라서, 다음에 기회가 되면 어울릴 만한 음식과 함께하고 싶기도 하네요.

 

 

 

 

 

 

 

배상면주가 느린마을 막걸리 []

 

: 알콜 6%. 최근에는 배상면주가의 대표 술이 이게 된 것 같습니다. 옛날에는 산사춘이었고, ‘대포민들레대포라는 술을 마케팅하던 시절도 있었는데요. 나는 배상면주가의 술 중 천대홍주를 가장 좋아했었습니다. 지금은 천대홍주, 흑미주 나오던 시절은 기억하는 사람도 별로 없네요.

 

 가라앉은 걸 흔들지 않고 비교적 맑은 윗부분만 마셔보니 나쁘지 않습니다. 역시나 단맛이 꽤 있는데, 아스파탐 맛이 안 나는 건 장점입니다. 누룩 향이 강하고 탁주답게 거칩니다.

 

 침전물을 섞어 마시면 탁주 특유의 진한 입자감을 즐길 수 있습니다. 일반 탁주보다는 비싸지만 고급 탁주에 비하면 저렴한 탁주인 걸 감안하면, 조금 거칠긴 하지만 가성비가 좋은 탁주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맛없지는 않아요.

 

 

 

 

 

제주맥주 제주백록담 에일 []

 

: 알콜 4.3%. White Ale이라 써 있어서 큰 기대 없이, 그렇지만 맛이 궁금해서 구매해봤는데 첫 모금부터 맛있습니다.

 

 성분을 보면 역시나 밀맥주입니다. 그리고 오렌지 제스트와 코리엔더, 한라봉이 들어갔습니다. 제주 위트 에일과 유사한 구성인데, 성분이 약간 다릅니다. 내 입엔 이게 위트 에일보다 더 맛있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밀맥주다운 높은 점도와 구조감에 플라워리한 홒향, 마른 살구와 망고의 느낌. 오렌지와 한라봉과 코리엔더의 느낌이 잘 어우러져있습니다. 낮은 도수에, 높은 점도에도 불구하고 바디가 무겁지 않습니다. 밀맥주 베이스의 괜찮은 RTD 칵테일이라 해도 될 것 같은 완성도입니다.

 

 단점이라면 맛있다는 느낌이 이성적으로는 확 와닿는데, 여러 캔을 계속 마시고 싶은 그런 느낌은 아닙니다. 이는 코리엔더가 들어간 밀맥주에 대한 내 선호도 문제 때문 같습니다.

 

 

 

 

 

 

술샘 서설 []

 

: 알콜 13%. 가격대가 좀 되는 살균청주인데 성분을 자세히 보니 주정, 설탕, 구연산이 들어있습니다. 레이블 사진을 자세히 안 보고 주문했었는데 실물을 받아보고 레이블이 잘못된 줄 알았었습니다. 매우 개성적인 레이블을 가진 청주입니다. 제조한지 반 년 정도 된 걸 마셔보게 되었습니다.

 

 주정의 영향인지 모르겠는데 첫 입 마셨을 때 꽤나 골격이 튼튼한 술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연산 맛이 약간 나는 건 화랑 떠오르는데, 멥쌀로(아마도 추청) 만든 술이다보니 그렇게까지 달지는 않습니다. 볼륨감이 좀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사케가 떠오릅니다. 주정이 좀 들어간 사케 말이지요.

 

 어지간한 저렴이 사케보다는 맛있고, 그렇다고 용량대비 같은 가격대로 살 수 있는 긴죠나 다이긴죠와 비교할 정도는 아닙니다. 제조사에서는 사과향이 난다고 기술해뒀는데,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습니다. 살짝 아오리나 홍로가 떠오릅니다. 그리고 풋매실의 향이 연상됩니다.

 

 조금 차갑게 해서 마시고 있는데, 이런 타입의 술일 줄 알았으면 동절기까지 뒀다가 데워 마실 걸 그랬습니다. 나는 이런 타입의 술은 데운 게 입에 더 맞습니다.

 

 

 

 

 

 

골든 고비 라거 [-]

 

: 알콜 5.1%.

 

 첫 느낌이 부드럽습니다. 생산된지 1년쯤 된 걸 마시게 되었고, 그로 인한 영향이 어느 정도는 있을 것입니다. 높은 알콜이 호프의 쓴 맛을 억제하고 있습니다만, 알콜 자체의 쓴맛이 뒤에 올라옵니다. 이게 5.1%이 맞나 싶은 수준의, 6%대 맥주가 생각나는 풍미 밸런스 및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잘 보니 캔 윗부분에 Export Edition이라 적혀있습니다. 엑스포트 맥주였던 것입니다.

 

 버블은 매우 작으면서도 강합니다. 생산한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버블이 더 강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주맥주 성산일출봉 에일 []

 

: 알콜 5.1%. Jeju Golden Ale이라 표기되어 있습니다.

 

 바디감이 강한 느낌입니다. 점도가 높습니다. 그리고 단맛이 천천히 느껴집니다. 홒의 향은 살짝 억제되어있고, 몰트 향이 더 느껴지는 기분입니다.

 

 이산화탄소를 첨가한 맥주라 버블은 꽤 강한데, 아마 이산화탄소 첨가를 안 했으면 꽤 다른 느낌의 맥주였을 것 같습니다.

 

 온도가 조금 올라가니까 홒 향이 살아납니다. 서빙온도가 꽤 높아야 할 것 같은 맥주입니다. 10도를 살짝 넘는 정도로 서빙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 계절보다는 조금 날이 풀린 후 다시 마셔보는 게 좋겠다는 느낌입니다.

 

 

 

 

 

 

 

Moët & Chandon Impérial (N/V) [★★]

 

: 알콜 12%. 제법 오래 묵혔다는 모엣 샹동을 하나 입수하여 마셔보게 되었습니다. 아마 병입 후 10년은 넘었을 겁니다. 모엣 샹동은 예전에 박람회나 파티 같은 곳에서는 마셔본 것 같은데, 제대로 병을 따서 찬찬히 마셔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사용 품종은 피노 누아, 피노 뫼니에, 샤르도네로 기재되어 있습니다. 100종류의 블렌딩이 이루어졌다고 하고, 상기된 품종 순서대로 높은 비율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사용 글라스는 쇼트즈위젤 비냐 플루트.

 

 진한 색. 살짝 코르크 향이 나고, 기포가 강하지 않습니다. 과일 향이 있고, 처음 개봉한 상태에서는 좀 환원취가 있나 싶은 상태입니다. 탄산이 별로 없어서 보존상태가 그저 그랬고 마실 시기가 지나긴 했구나 싶은데, 그래도 상파뉴인데 맛없지는 않습니다.

 

 개봉 후 환원취는 금방 날아갑니다. 많이 숙성된 화이트와인 특유의 부케가 느껴집니다. 피노 누아와 피노 뫼니에가 많이 사용된 만큼 스틸 화이트와인 기준으로 접근하면 느낌이 특이합니다. 견과류 풍미가 꽤 강하게 납니다.

 

 환원취가 줄어들고 에어레이션이 진행되고 온도가 올라가면서 복합성을 드러냅니다. NM(네고시앙) 상파뉴는 다른 건 좀 애매해도 복합성은 꽤 굉장하게 숨기고 있습니다. 아주 많은 밭의 포도를 섞어서 양조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포이약 그랑크뤼 클라세처럼 전면에 드러내놓는 그런 복합성은 아닙니다.

 

 보존상태 문제가 있을 것 같긴 하지만 이 상파뉴의 풍미는 좀 애매합니다. 전반적으로는 견과류 풍미가 앞서고, 상파뉴다운 미네랄리티를 가지고 있기도 한데, 특성이 선명하지 않아요. 대형 하우스 기본급 상파뉴가 원래 좀 이렇지 싶기도 합니다. 노트를 적자면 사과, 아몬드, 녹후추, 토스트, 붉고 각지고 큰 자갈을 연상시키는 미네랄. 그리고 아마도 보존상태 문제로 인한 코르크와 젖은 마분지 느낌. 젖은 마분지 느낌은 그래도 반 병 정도 마셨을 때 사라졌네요. 부쇼네가 살짝 있는지 모르겠어요.

 

 이 와인의 특성을 고려할 때, 보관만 잘 했다면 10년 정도의 세월로 이렇게 대미지를 입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유감스럽게도 보관이 잘 안 된 것 같습니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체급이 있다 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맛있게 마시긴 했습니다. 또한 바틀 컨디션이 좋았다 해도 딱히 압도적으로 맛있었을 거 같지는 않아요. 이런 리즈너블한 NM 상파뉴는 (나름 비싸지만) 파티용이지요. 그래도 상파뉴이기는 해서 체급 자체는 높고.

 

 한편으로 분류는 Brut인데 잔당감 꽤 느껴집니다. 브뤼치고는 좀 달아요. 도사쥬가 살짝 많이 된 기분인데, 모엣 샹동 임페리얼을 주로 마시는 자리가 파티 같은 자리라는 걸 고려해야 할 것 같습니다.

 

 

 

 

 

 

카브루 비전 브루어리 경복궁 에일 []

 

 

: 알콜 4.5%. 따자 마자 IPA 다운 향이 납니다. 시트러스향이 무척이나 강하고, 뒷맛이 깔끔합니다. 성분을 보니 연잎 가루가 들어갔네요.

 

 시트러스향 외에도 말린 살구를 연상시키는 향이 있고, 보리의 향과 홒 향이 살아있습니다. 제법 맛있습니다. 편안하게 마실 수 있고, 향도 좋습니다. 앞으로도 종종 만나고 싶은 맥주입니다.

 

 

 

 

 

 

배상면주가 느린마을막걸리 방울톡 []

 

: 알콜 6%. 느린마을막걸리의 또다른 시리즈입니다.

 

 방울톡이라는 이름 때문에 아주 강한 탄산을 기대했는데, 처음 마셨을 때는 이게 생탁주가 맞나 싶은 수준으로 탄산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을 두고 마시다보니 탄산이 강해졌습니다. 소비기간을 열흘 남긴 시점에서는 소성주에 비하면 탄산이 약하지만, 그래도 느린마을막걸리 일반 버전이나 다수의 생탁주에 비하면 탄산이 더 있는, 탄산을 충분히 즐길 만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맛은 달콤한 편인데, 여러 병을 구매해서 처음 마셨을 때는 탄산이 매우 적었고 매우 진득하게 달콤했습니다. 잘 넘어가지 않을 정도였지요. 그런데 처음부터 여러 병을 동시에 샀었고, 그것들을 시간을 두고 마시면서 탄산이 점점 강해지고, 단 맛은 줄어드는 걸 경험했습니다. 술 안에 미생물이 아직 살아있어서, 그게 당을 먹고 탄산을(그리고 원리상 알콜을) 더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 생각에 소비기한에 임박할수록 이 제품은 탄산이 강해지고 산도가 올라가면서 당도가 적당해집니다. 처음에는 아주 달콤한, 이화주를 희석하고 물엿을 탄 걸 마시는 기분이었는데 소비기간을 열흘 남긴 상태에서는 많이 소성주스러워졌습니다. 결과적으로 맛이 좋아졌고, 취향이 제법 맞는 탁주가 되었습니다. 도수대비 많이 취하는 술이 되기도 했고요.

 

 나는 이 술을 구매하신 분이 아주 달고 진득한 느낌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면, 충분히 익혀서 먹는 쪽을 권장합니다. 마개를 잘 만든 생탁주라 눕혀놔도 상관없고요. 냉장보관만 하면 됩니다. 충분히 익혔을 때를 기준으로 하면, 이 탁주는 맛있는 탁주입니다. 그런데 처음 구매했을 때를 기준으로 하면 아예 별점을 못 받을 수준이었습니다.

 

 

 

 

 

아사히 슈퍼드라이 생 []

 

: 근래 귀하신 몸인 아사히 생맥주 캔. 윗면이 참치캔 생각날 정도로 크게 따이는 구조인데, 딸 때 잘 잡고 따야 합니다. 일반 맥주캔처럼 따면 잘못하면 살짝 넘쳐버립니다.

 

 맛은 역시나 아사히 슈퍼드라이 맛입니다. 별 맛이 없어요. 거의 무미(無味)라 할 정도로 아예 별 맛이 없는 게 아사히 드라이 특징이지요. 다만 조금 더 거품이 셉니다. 온도가 좀 올라오면 거품이 더 생기기는 하는데, 몇 캔 마셔보니 나는 이 맥주는 아주 차가운 게 좋았습니다.

 

 이건 기본적으로는 아사히 슈퍼드라이 맛과 다르지 않은 맥주입니다. 그냥 용기가 다른 것 같습니다. 다만 구해서 사마시면 맛은 있을 겁니다. 이거 요새 회전율이 좋거든요.

 

 생맥주를 대체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아니오. 생맥주 애호가들은 이것에 만족하지 못할 겁니다. 다만 생맥주 애호가들은 다른 캔맥주보다는 이걸 좋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최행숙전통주가 아황주 []

 

: 알콜 17%. 찹쌀과 멥쌀을 같이 사용한 생 청주(주세법상 및 제품 표기상 약주)입니다. 색은 진한 녹황색에 가깝습니다. 양조한지 한달 정도 지난 걸 마시게 되었습니다.

 

 아황주는 고려 왕실에서 마시던 이양주라고 합니다. 고문헌을 재현하여, 농촌진흥청에서 기술을 이전하여 최행숙전통주가에서 빚고 있다고 합니다. 한자로는 鴉黃酒. 는 갈까마귀를 뜻합니다만, 아황주가 닮은 색깔은 거위 새끼라고 하네요.

 

 맛이 꽤나 묘합니다. 누룩향이 굉장히 강하고, 매우 강한 바디에 과실향도 있고, 복합적인 레이어가 있습니다. 누룩향 덕에 약간은 쿰쿰하고 약간은 구수한 향을 가지고 있고, 다소의 장향도 느껴집니다. 꽤나 강한 감칠맛을 가진 술이라 요리술로 쓰면 괜찮을 것 같은 맛인데 그러기에는 좀 비싼 술이에요. 빚는 난이도 낮은 술도 아닌 것 같고.

 

 그냥 술로 마시려면 이건 한달 반은 더 숙성해서 마시는 게 더 맛있을 뻔 했습니다. 두달 가까이 숙성시켰으면 좀 더 맛있어졌을 겁니다.

 

 음식과 매칭시키지 않고 술만 마시고 있는데, 맛 스타일이 음식하고 먹어야 할 술입니다. 그런데 이거 음식하고 매칭시키려면 아황주의 강력한 감칠맛에 밀리지 않는 음식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감칠맛이 어찌나 강한지 보리굴비나 어란하고 먹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마시면서 요리술로 사용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Baron Philippe de Rothschild Mouton Cadet (Blanc) 2020 [★★☆]

 

 

: 알콜 12%. Appellation Bordeaux Contrôlée. 세파쥬는 소비뇽 블랑 76%, 세미용 22%, 뮈스카델 2%입니다. 마개는 어글로머레이트(조각을 뭉친) 코르크. 글라스는 슈피겔라우 빌스베르거 콜렉션 화이트(애니버서리 아닙니다)를 사용했습니다.

 

 소믈리에 나이프로 땄는데 마개는 짧은 어글로머레이트 코르크고 병 입구 부분이 얇은 편이라 따기 다소 쉽지 않은 편이었습니다. 다른 형식의 오프너가 있으면 그쪽을 쓰는 게 쉬울 것 같습니다.

 

 개봉 직후 아로마를 맡아보니 순수한 소비뇽 블랑이었으면 마실 시기가 좀 지났을지도 모르지만, 세미용이 섞인 보르도 블랑이라 아직 괜찮은 것 같았습니다. 개봉해 보니 휘발성과 자극성이 있는 소비뇽 블랑 특유의 아로마가 느껴집니다. 입에 머금으려 하니 숲의 향이 났습니다. 입에 넣자 마자 광물질 느낌이 살아있습니다.

 

 어쨌든 바롱 필립 드 로칠드는 와인 잘 만듭니다. 아무리 리즈너블하게 만들어도 무통 로칠드의 소유주라서 그런지 실력은 있어요. 이건 아주 평범한 보르도 블랑입니다. 이렇게까지 평범하게 만드는 것도 능력입니다.

 

 마시면서 받은 느낌은 역시 난 순수한 소비뇽 블랑보다는 세미용 섞인 걸, 그리고 프랑스 와인을 좋아한다는 겁니다. 노트는 고양이 오줌, , 도토리, 고양이 털뭉치, 점판암, 아삭한 사과. 마시다 보니 열리면서 자몽, 흰 꽃, 그리고 구아바, 파파야, 아보카도를 연상시키는 면도 있긴 합니다. 짧은 피니쉬. 노트 적어놓고 보니까 별로 맛없는거 같아 보이기도 하는데 맛있습니다. 세미용을 섞어서 그런지 바디감도 볼륨감도 좀 있고 미네랄리티도 좋아서 화이트 와인 마시는 만족감을 제대로 줍니다. 보르도 와인답게 산도는 그리 높지 않고, 미네랄리티 살아있고요. 좋은 프랑스 (스타일) 와인이 그렇듯 자연을 마시는 것 같은 느낌이 살짝 있습니다. 잔당감 별로 없고요.

 

 서빙온도 잡기가 좀 애매한데, 온도가 좀 올라가니까 향은 좋아지는데 마시는 느낌은 그보다 조금 더 차가운 게 좋은 것 같아요. 바롱 필립 드 로칠드에서 권장하는 서빙온도는 8~10도인데, 내가 생각하기에도 10도 이하가 좋은 것 같습니다.

 

 마시면서 에어레이션이 진행되고 나니 처음보다 세미용 느낌이 좀 강해집니다. 미네랄 느낌도 처음하고는 달라지고요. 원체 꽤 다양한 밭의 포도를 모았을 와인이라 그런지 떼루아 느낌이 없지는 않은데, 분명하지도 않습니다. 달지 않은 보르도 블랑으로는 조금 오래 됐고, 보존상태가 우수하지 못했던 문제도 있긴 합니다.

 

 아. 가끔 무통 카테가 샤토 무통 로칠드의 세컨드 와인이라는 잘못된 정보가 돌아다니는데요. 현재 무통 카테는 샤토 무통 로칠드와 같은 생산자(바롱 필립 드 로칠드)라는 것 외에는 전혀 다른 와인이에요. 실제 무통 카데는 처음에는 (처음 나온 1930년에는) 무통 로칠드의 세컨드 와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1993년부터 나오는, 소위 5대 샤토 중 하나인 샤토 무통 로칠드의 세컨드 와인은 르 프티 무통 드 무통 로칠드 (Le Petit Mouton de Mouton Rothchild) 입니다. 그건 샤토 무통 로칠드()에서 만들고요. 현재 무통 카테는 그냥 바롱 필립 드 로칠드에서 만드는, 무통 이름붙인 대량 생산 보르도 와인이에요.

 

 

 

 

 

 

배혜정 농업회사법인 호랑이 생 막걸리 []

 

: 알콜 6%. 배혜정 농업회사법인은 이름이 배혜정 누룩도가 > 배혜정도가 > 배혜정 농업회사법인으로 바뀌어 왔습니다. 나는 배혜정 누룩도가 시절부터 이 회사의 술을 마셨었기 때문에, 아직도 배혜정 누룩도가라는 이름이 익숙합니다. 통칭은 배혜정도가인 것 같습니다. 남매 회사인 국순당이나 배상면주가와는 달리, 배혜정도가는 처음부터 탁주가 주력 제품이었습니다.

 

 양조한 지 한달하고도 일주일 정도 지난 걸 마셔보게 되었습니다. 성분을 보면 에리스리톨이 꽤 들어갑니다. 먼저 침전물을 섞지 않고 마셔봤습니다. 탄산이 꽤 있고, 달달한 술입니다. 에리스리톨이 내는 단맛이 아스파탐하고는 좀 다르다보니 살짝 생소한 느낌입니다. 다만 이 제품은 에리스리톨 넣어놓고 무아스파탐 막걸리라고 홍보하고 있네요. 무아스파탐이긴 한데... 에리스리톨이 아스파탐보다 비싸긴 합니다만.

 

 침전물과 섞어 맛보니 굉장히 진득한 느낌입니다. 탄산이 많은 것에 비해 산미는 별로 없고, 진득하면서 단맛이 강합니다.

 

 맛이 꽤 애매합니다. 배혜정도가에서 출시한 탁주 중 부자 16(근래 파는 데를 못 봐서 단종인줄 알았는데 아직 공식 단종은 아닌 것 같습니다.)과 송산포도생막걸리는 맛있었고, 특히 송산포도생막걸리는 즐겨 마셨었습니다. 임박상품을 사면 숙성도 잘 된 게 저렴하기까지 해서 최고의 가성비였는데, 단종되었을 때는 안타까웠지요. (지금은 부자 송산포도 막걸리라고 살균 버전이 나옵니다. 도수는 올라갔지만 병단가는 훨씬 비싸졌고 구하기는 훨씬 힘들어요.) 그에 비하면 이건 아쉽습니다.

 

 맛없냐 하면 아주 맛없지는 않습니다. 나는 탁주를 보통 청주잔에 마시는데요. 이 막걸리는 그런 잔으로 맛을 꼼꼼하게 보면서 마시면 맛없습니다. 그래서 거의 사용하지 않는 탁주용 잔 (리델 O 글라스나 온더락 잔을 닮은 느린마을 유리잔)을 사용해보기로 했습니다.

 

 역시나 결론적으로 이 술은 맛을 잘 보면서 마시는 데 부적합한 술입니다. ‘탁주라기보다는 막걸리에 가깝습니다. 생각없이 목넘김을 느끼면서 마시는 게 낫습니다. 다만 그렇게 마시려면 역시나 좀 쓰고, 거칠고, 알콜이 튀는 느낌이 납니다. 그래도 그나마 그렇게 마시는 게 낫습니다. 느낌이 부추전, 파전, 김치전 같은 것하고 먹으면 그래도 맛있을 거 같은데, 그냥 술만 마시기에는 아쉽네요.

 

 

 

 

 

 

 

하이네켄 오리지널 []

 

: 알콜 5%. 대용량 캔이 저렴하게 나와 몇 캔 구매했습니다.

 

 하이네켄은 참 굉장히 아무 맛도 없고 맹물 같은 맥주 중 하나입니다. 사용한 홒의 향 자체는 좋은데, 그 향의 강도는 매우 낮습니다.

 

 물같다고 말은 하지만 이 맥주는 피니쉬 부분에서는 어지간한 물보다 맛이 깔끔합니다. 보통 물도 이 정도로 무미(無味)는 아니거든요. 그리고 우리나라 맥주에 비해 탄산이 매우 약해서, 여름철에 땀을 흘린 후 목이 마를 때 마시기에는 최적입니다. 나는 아사히 슈퍼드라이와 유사한 계열의 맥주라고 느끼네요.

 

 대신 이 맥주는 맛을 제대로 보면서 마시기에는 부적합합니다. 별로 풍미라고 할 만한 게 그렇게 강하지가 않아요.

 

 

 

 

 

 

크래프트네이션 - Spicy & Fruity Session IPA []

 

: 알콜 4.9%의 다소 저렴하게 판매하는 인디아 페일 에일. IPA답게 향은 어느 정도 화사함이 있는데, 묽습니다. 뒷맛이 물같다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꽤 화려한 캔에는 4점 만점에 몰티 2, 플로랄 1, 비터 2, 사우어 2, 프루티 2, 스파이시2로 적혀있는데 그런 것치고는 살짝 플로랄합니다. 제조한 지 좀 된 걸 마시게 되어서 그럴수도 있는데, 조금 더 신선할 때 마셨다면 사우어와 프루티 느낌이 더 강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별점도 좀 더 올라갔을 것 같습니다.

 

 ExclusuveInclusive Beers 라고 적혀 있는데, 꽤 대중적인 지향의 IPA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하튼 향이 풍부해서 좋네요.

 

 

 

 

 

해창주조장 해창 9도 찹쌀생막걸리 []

 

: 터무니없는 고가 마케팅제품군으로 유명한 해창주조장의 그나마 저렴한 편에 속하는 9도 막걸리를 마셔봅니다. 병입 이후 한달하고도 일주일 지난 걸 마시게 되었습니다.

 

 이 술은 찹쌀이 10.2% 사용되었고 누룩과 입국, 효모를 같이 썼습니다. 사용한 찹쌀과 멥쌀은 모두 국내산이라 합니다. 그 외의 감미료는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침전물을 흔들지 않고 마셔보니 먼저 강한 누룩향이 나고, 그 이후 곧바로 화이트 와인을 연상시킬 정도의 과일 향이 치고 올라옵니다. 그리고 이후 정제되지 않게 튀어오르는 알콜 느낌이 있고, 제법 당도가 느껴집니다.

 

 침전물과 함께 마시니 과일 향이 확 줄어듭니다. 효모가 계속 활동하고 있는 술이라 거품이 상당히 생기는데, 막상 마셔보면 탄산은 강하지 않습니다. 산도는 꽤 있고, 도수에 비해 알콜이 마구 튀고, 쓴 맛도 제법 있습니다. 스타일이 상당히 와일드합니다. 꽤 개성적이긴 합니다.

 

 좋은 술이냐 하면 내 생각에는 아니오. 알콜이 심하게 튀고 전혀 정제된 느낌이 아니고, 겨우 9도짜리 술이 너무 씁니다. 그러면서 가격도 비싸요. 그런데 기본적으로 체급 자체는 있는 느낌입니다. 가격이 납득될 정도는 아니라도, 일반적인 저렴한 탁주보다는 기본적인 체급이 높다는 뜻입니다.

 

 아마 이 술을 청주로 만들어서 숙성을 좀 제대로 시켰으면 훨씬 괜찮은 술이 되었을 겁니다. 물론 그랬으면 이렇게 와일드한, 독특한 아이덴티티를 가진 술은 아니었겠지요. 이런 느낌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나는 아니지만.

2023년 여름 공산품 음식 감상문

식이 2023. 8. 31. 22:45 Posted by 해양장미

앞으로 비정기적으로 업데이트될 공산품 음식 감상문입니다. 음식점 같은 곳 감상문을 올리기엔 부담스럽지만, 공산품 음식은 별로 부담이 없어서 올려도 될 것 같습니다.

 

 일단 글은 계절별로 정리할 생각이고, 같은 제품을 여러 번 먹는 경우 내용이 업데이트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같은 제품이라도 맛이 동일하게 유지되지는 않기 때문에, 추후 다른 내용의 감상문이 올라올 수 있습니다. 스테디셀러보다는 마이너한 제품이나 신제품 위주 감상문이 많을 것입니다.

 

 입맛은 모두가 다른 법이니 감안하고 보세요.

 

(8월 31일 업데이트)

 

 

 

 

삼양식품 - 로제 불닭볶음면 (용기)

 

: 봉지면이 나오기는 한다는데 봉지면은 실물을 못봤습니다. 끓는 물을 붓고 면을 전자렌지로 익힌 후 액상소스와 분말스프를 넣어 비벼 먹는 타입입니다.

 

 별로 맵지 않고 단맛이 꽤 있습니다. 매운 성분이 없는 게 아니라 매운 맛이 제법 덮이는 느낌이라, 입보다 속에서 매운 걸 못 받는 분들한테는 매운 거라고 생각해야 할 겁니다. 이름은 로제인데 실제 로제소스 맛이 나지는 않습니다. 실제 성분에 토마토 성분은 없습니다. 로제소스 맛을 기대하고 먹으면 실망할 것 같습니다. 용기에 그려진 ‘Buldak Fire Level’2입니다.

 

 까르보 불닭볶음면과 포장이 유사해서 써 있는 글자를 읽어야 구분이 됩니다. 까르보 불닭볶음면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는데, 차이라면 이 로제 불닭볶음면의 분말스프에는 전지분유가 들어갑니다. 그래서 우유맛이 강합니다. 내 생각에 이 제품은 이름을 밀크 불닭볶음면이라 지었어야 합니다. 포장도 까르보 불닭볶음면과 차별화되었다면 더 좋았을 거 같습니다.

 

 

 

 

 

삼양식품 4과비빔면

 

: 삼양식품의 신제품 비빔면.

 

 스타일은 삼양식품의 비빔면답게 어택이 강하지 않습니다. 적당히 맵고, 과일 맛이 꽤 납니다. 사과, , 매실, 파인애플의 4가지 과일을 쓴 비빔면이라는데 마치 4종류의 청을 넣은 느낌입니다.

 

 근 몇년 사이 동사의 열무비빔면 품질이 좀 떨어졌다고 느끼고 있는데, 그것보단 이게 맛있는 것 같습니다. 다만 비빔면 가격도 많이 올라서 직접 국수 삶아 적당히 기성품 소스 사서 비벼먹는 것에 비해 메리트가 줄어든 것 같긴 합니다.

 

 나는 팔도비빔면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입이라는 점을 참조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동원 파마산 치즈로 더 진~한 베이컨 크림 리조또

 

: 700W 에서 2분 돌려서 먹으라고 되어 있는데, 그러면 너무 뜨거워져서 뚜껑 열기가 좀 힘듭니다. 2분보다 약간 덜 돌리는 게 좋을 듯.

 

 가격대가 제법 있는데 그에 비해 제대로 된 크림이나 치즈를 사용하지는 않았습니다. 파마산치즈 함량이 0.46%, 유크림 함량이 1.95% 밖에 안 됩니다. 그래도 그런 것 치고는 맛있는데, 식품 공업의 승리라는 생각도 들고 그래도 이 가격이면 좀 더 제대로 된 재료로 맛있게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제대로 된 리조또에 비하면 어디까지나 모조품입니다.

 

 베이컨이라고 들어 있는 건 베이컨이 아니고, 리챔에 좀 더 가까운 느낌입니다. 동서 제품이 대체로 이런 식인데, 나는 동서식품을 지역 회사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본사와 메인 공장이 부평공단에 있습니다.) 동서식품이 잘나가는 건 긍정적으로 보지만 상품을 이런 식으로 만드는 건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귀리가 들어있고 꽤나 오독오독 씹힙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리조또라 하기 어렵고, 귀리 느낌을 왜 홍보하거나 포장에 강조해놓지 않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코카콜라 레전드 제로

 

: 한정판 코카콜라. LoL과 콜라보해서 나와 이름이 레전드고, 우리나라 한정판이라고 합니다. 355ml 중형캔으로만 나오고 있습니다.

 

 개봉하면 새콤한 향이 올라옵니다. 과일 같은 향이 있고, 캐러멜 향이 그 다음. 그 다음에는 불량식품 캔디류같은 향이 있습니다. 피니쉬는 제로음료 특유의 피니쉬인데 나는 그것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제법 컴플렉시티가 있고 풍미 자체는 마음에 드는데, 단점이라면 중형캔 제로만 있는 것이네요. 나는 제로음료를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아침에 주스 블랙라벨 꿀배

 

: 농축 배즙을 활용한 냉장 주스. 성분에는 파인애플과 사과즙도 들어가는데, 별로 티가 나지는 않습니다. 밀향이 있고, 꿀을 약간 탄 배 주스로 완성도가 높은 느낌입니다. 농축 주스라는 걸 고려할 때.

 

 문제라면 190ml의 양과 그에 비해 높은 가격이라고 생각합니다. 들이를 큰 걸 사면 그나마 좀 싼 것 같은데, 작은 병은 아무래도 비싸요.

 

 

 

 

 

 

 

삼양식품 할라피뇨치즈 불닭볶음면 (봉)

 

 

: 면부터 할라피뇨 풍미로 양념되어있습니다. 맛은 굉장히 맵습니다. 선명한 매움이 있고, 풍미가 살아있는 편이라 먹어본 역대 시리즈 중 가장 나은 것 같습니다. 핵불닭급 맵기라고 하는데 핵불닭볶음면 계열을 먹어본 게 없어서 비교가 안 됩니다. 다만 이 라면이 실제 할라피뇨보다는 더 매운 것 같습니다. 풋 할라피뇨 향이 살아있긴 한데, 할라피뇨만으로는 이 정도 매움이 안 나올 겁니다. (익은 할라피뇨로 만든 소스가 스리라차입니다.)

 

 나는 캐롤라이너 리퍼나 트리디나드 스콜피온 부치 T. 또는 트리디나드 모루가 스콜피온, 부트 졸로키아 같은 걸로 만든 핫소스를 즐기는 편입니다. (다만 매운 걸 잘 먹는 편은 못 됩니다.) 그런데 그런 기준에서 먹어도 이 불닭볶음면은 선명하게 맵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매운맛을 잘 구현한 것 같고, 덤으로 풍미도 좋습니다. 이건 캐롤라이나 리퍼나 트리디나드 스콜피온 같은 그런 느낌은 아닙니다. 그 핫소스들은 불을 액체로 만든 것 같고, 혀와 입 안을 구워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 있어요. 그런데 이건 그냥 아리게 맵습니다.

 

 치즈 느낌은 별로 나지 않습니다. 모짜렐라 치즈 토핑을 시도해봤는데 생각보다 그리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아침에 주스 블랙라벨 오미자&자몽

 

: 오미자와 자몽을 섞으면 무슨 맛일지 상상이 잘 되지 않았는데, 어째 맛있고 잘 어울려서 성분을 보니까 배주스와 사과주스가 들어가있습니다. 즉 실제로는 복합 믹스 주스고, 오미자와 자몽 성분이 조금 들어간 거라 맛있습니다.

 

 조금 저렴하면 좋을텐데 싶고, 오미자&자몽이라는 이름치고는 달달해서 이미지가 안 맞긴 합니다.

 

 

 

 

 

 

유어스 - 밀양식 돼지국밥라면 (용기)

 

: GS리테일의 PB 용기면. 제조사는 오뚜기입니다. 최근의 최애 사발면.

 

 기본적으로는 사리곰탕면과 유사한 계열이라 느낍니다. 맛은 조금 다릅니다만. 부추/파 건더기스프가 크게 들어있고, 다대기 후첨스프가 있는데 후첨스프를 넣는 것과 넣지 않는 것의 맛 차이가 꽤 있습니다. 후첨스프를 넣으면 계열이 좀 달라지는 느낌이라서, 후첨스프를 넣지 않은 채 약간 먹어보는 쪽을 권장합니다. 나는 다대기 후첨스프를 넣지 않은 쪽이 취향에 더 맞아서, 면을 거의 다 먹은 후에 후첨스프를 넣어 먹고 있습니다.

 

 사리곰탕이 그다지 곰탕 느낌이 아니듯 이것도 나에게 딱히 돼지국밥 느낌은 아닙니다. 일단 수도권에서는 별로 인기있을 느낌의 네이밍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명명이 좀 유감입니다.

 

 봉지면만 먹어봤지만 오뚜기의 정규 사골국물 라면인 순후추라면보다 나는 이쪽이 더 맛있기 때문에, 이 밀양식 돼지국밥라면이 용기면만 나오는 게 유감입니다. 틈새라면처럼 PB로 나오다가 잘 팔려서 정규제품이 되는 케이스가 없지는 않지만, 제품이 좋아도 이 이름으로는 그렇게까지 대히트치긴 어렵지 싶어요.

 

 

 

 

 

 

 

매일유업 바이오 드링킹 요거트 스트로베리

 

: 프로바이오틱스와 프리바이오틱스를 사용한 요거트라는데, 맛을 위주로 개발한 게 아니라서 그런지 풍미는 별로 좋지 않습니다. 분명 우유 요거트인데 비릿해서 염소젖 요거트 아닌가 성분 확인을 했네요. 맛으로 마시는 요거트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동원 양반 수라 한우 쇠고기죽

 

: 한우 사태 + 표고버섯 맛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첫 맛을 봤을 때 쇠고기죽이라 생각할 수 없는 맛이라 성분을 보니 역시나입니다.

 

 본래 한우와 표고버섯으로 맛을 내면 감칠맛 성분은 이노신산과 구아닐산으로 구성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죽은 글루탐산과 호박산 맛이 주로 납니다. 특히 호박산 맛이 강하게 나서, 처음 개봉했을 때는 사실 전복죽인데 쇠고기죽으로 오해했나 생각했을 정도입니다. 아무래도 성분을 살펴보니 굴소스가 들어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죽은 표고를 넣은 한우 쇠고기죽 맛이 아닙니다. 굴소스 맛이 나는, 중화풍 죽입니다. 고기가 쇠고기가 아니라 돼지고기였다면, 그리고 쌀이 누룽지였다면 더 중화풍 느낌이었을 겁니다.

 

 그냥 중화풍 죽이라 생각하고 먹으면 맛없진 않습니다. 그런데 한우 쇠고기죽이라고 나와서 저렴하지도 않은데, 실제 한우 맛은 별로 나지 않는 게 단점입니다.

 

 

 

 

 

 

코카콜라 레몬 제로

 

: 인기있는 것 같은 신제품인데 레몬향 별로 안 납니다. 맛이 굉장히 가벼운 코카콜라. 코카콜라라는 건 알겠는데, 기본적으로 가벼워서 여름에 먹기 적합하게 만들어졌다는 느낌입니다. 제로음료답게 뒷맛은 나쁩니다.

 

 맛을 천천히 보면서 마시는 타입보다는 빠르게 갈증을 해소하듯 마시는 타입에게 적합할 것 같습니다.

 

 

 

 

 

로아커 클래식 치즈

 

: 로아커답게 꽤 맛있습니다. 적은 수분, 달콤하고 다소의 치즈맛. 식감도 좋고 진한 맛에 밸런스도 좋습니다. 과하게 부서지지도 않습니다. 다만 역시나 좀 비싼 게 흠입니다.

 

 가격을 무시하고 생각하면 먹어본 웨하스 중 가장 맛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천하장사 칠리 치즈 후랑크 90g

 

: 할라피뇨 풍미가 납니다. 껍질은 다소 탄성이 강합니다. 치즈 느낌은 강하지 않지만 나긴 납니다. 매운 맛이 강하지 않아서 애들은 좋아할 것 같은데, 매운 맛을 기대하고 먹으면 그다지 맵지 않다고 느낄 것 같습니다.

 

 맛 자체는 괜찮고 크기도 큰 편인데 이름에 비해서는 개성이 강하지는 않습니다.

 

 

 

 

 

 

삼양식품 쿠티크 에센셜 짜장 (봉)

 

: 건면에 액상소스. 향이 묘합니다.

 

 삼양식품 제품이 다 그렇듯 이 제품도 어택이 강하지 않습니다. 부드럽고 달달합니다. 일단 짜짜로니의 건면 버전 같은 느낌인데, 이게 짜짜로니보다 명백하게 비쌀 이유가 있나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먹다 보니 이 제품은 최근의 짜짜로니보다는 전성기 짜짜로니를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의 짜짜로니는 그렇게 맛있지 않지만, 한 때 짜짜로니는 최고의 포텐셜을 지닌 자장라면이었습니다. 적당히 조리하면 맛없지만, 노하우를 가지고 열심히 조리하면 매우 맛있어지는 이상한 물건이었지요. 그것도 옛날 이야기지만요.

 

 어쩌면 짜짜로니가 그렇듯 이 제품도 포텐셜만 높은 타입일 수 있으므로 다양한 방식으로 조리해보기로 했습니다.

 

 

 

 

 

 

오뚜기 영양닭죽

 

 

: 전자렌지 1100W130초 돌렸더니 뚜껑의 구멍으로 좀 끓어서 흘러넘칩니다. 그보다 조금 덜 돌리는 게 좋겠습니다.

 

 맛이 뭔가 그럴싸하면서도 실제의 닭죽과는 다른 뉘앙스가 느껴집니다. 닭에게서 유래되지 않은 맛 성분이 들어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순정상태의 닭죽을 좋아하는 입장에서는 유감입니다.

 

 맛없지는 않습니다. 닭죽이 맛없을 수가 없지요. 다만 순수한 닭죽 맛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쿠캣 꾸덕쫀득 버터바 말차초코

 

 촉촉하며 녹차와 초코 맛이 납니다. 고급스러운 맛은 아니지만 나름 맛있는데, 말차맛이긴 하지만 녹차 계열과 함께 먹는 건 어울리지 않고 커피와 어울리는 맛입니다.

 

 이 케이크는 일반적인 케잌류의 배합과는 비율이 꽤 다른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실수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보이는데, 유지류가 일반 케잌보다 많이 들어간 레시피로 추정합니다.

 

 

 

해태 Beurre Sesame Butter 생생감자칩

 

 

: 상품명이 생생감자칩을 제외하면 영어로 되어있습니다. 개봉하면 참기름향이 확 강하게 올라오는데, 진짜 참기름향이라기보다는 음식점에서 많이 쓰는 참기름향 기름의 향에 가깝습니다.

 

 버터 풍미는 별로 안 납니다. 그래도 참기름스러운 향이 두드러지는 게 제법 맛있습니다. 의외로 감자칩에 잘 어울리는구나 싶습니다. 먹고 난 후 손에 참기름향이 많이 남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입니다.

 

 

 

 

 

스타벅스 프라푸치노

 

: 대략 15년 만에 마셔보는 것 같습니다. 하워드 슐츠가 그랬듯, 나도 그 때는 이런 종류의 커피음료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었는데요. 요샌 이런 것도 좋네요. 옛날에는 매우 비싼 느낌이었는데 요샌 원체 물가가 많이 오른 반면, 이 스타벅스 프라푸치노 가격은 별로 안 올라서 이제 마실 만한 가격으로 느껴집니다.

 

 아마도 풀시티 이상의 로스트가 강한 커피가 섞였습니다. 본래 밀크쉐이크 + 카푸치노라는 컨셉이 납득가는 맛입니다. 탄 커피의 맛이 포인트를 줘서 맛있습니다. 예전엔 흔했지만 최근에는 로스트가 강한 커피가 조금 드물어졌는데, 역시 이런 커피음료에 강하게 볶은 커피가 들어가면 맛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스타벅스 프라푸치노는 동서에서 만드는데, 나는 동서를 인천 지역 기업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이 제품이 계속 잘 팔렸으면 합니다.

 

 

 

 

 

 

오뚜기 전복죽

 

: 전복 + 버섯 죽이라고 표기되어있습니다. 1100W110초 돌렸는데, 이 정도가 적당한 것 같습니다. 전복 맛도 나지만, 전복이 아닌 다른 조개 맛도 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복은 쪄 먹거나 하면 맛있지만, 죽으로 끓이면 그리 진한 맛을 내지는 못합니다. 내장 맛이 더 강한 경향이 있고요.

 

 해초가 들어가있는데, 전복스러운 맛을 내기 위해 넣은 것 같습니다. 성분을 보니 멸치엑기스와 다시마엑기스를 넣었다는데, 역시 전복만으로 이런 맛이 날 리가 없습니다. 새송이버섯이 들어가있는데, 전복죽 전복처럼 잘게 잘라 질감이 의외로 살짝 복족류를 닮아있는 느낌이네요.

 

 결과적으로 해산물 풍미가 충분히 나는, 그럭저럭 맛있는 죽이라 생각합니다.

 

 

 

 

 

 

크라운 크로플

 

: 봉지는 평범해 보이는데 매우 맛있습니다. 카라멜콘하고 유사한 계열이라 할 수 있는데, 조금 더 유지 풍미가 강하고 기분 좋게 부서집니다. 제대로 맛보려면 1개를 한 입에 다 넣어야 하는 생김새인데, 입이 작은 사람한테는 덜 만족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치아를 쓸 필요가 없이 입 안에 넣고 입천장과 잇몸으로 누르면 부서집니다. 그렇게 부수면 단면적이 넓어지면서 풍미가 확 살아나는 느낌이 좋습니다. 단점은 그렇게 한 봉 먹으면 입천장과 잇몸에 다소의 손상이 일어난다는 건데, 캔디 몇 개 먹었을 때 입안이 다치는 것과 유사합니다.

 

 요새 과자류가 원체 비싸긴 하지만, 가격이 살짝 높습니다. 맛에 비해 비싸지는 않지만.

 

 

 

 

 

 

삼립 - 대한과자점 조청모약과

 

: 호남샤니에서 생산하는 모약과. 굉장히 기름지고 달달합니다. 모약과치고는 크리스피하지 않고, 기름이 많아서 그런지 촉촉합니다. 단맛이 강한데, 이름과는 달리 조청 위주로 낸 단맛이 아닙니다. 본래의 모약과 맛과는 다르고, 기름짐과 달콤함이 강조된 모약과라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삼양식품 바질 크림 불닭우동 (용기)

 

: 슬슬 사명을 불닭식품으로 개명해야하지 않을까 싶은 삼양식품의 용기우동. 삼양식품의 액상스프를 첨부한 제품들이 대체로 스프 포장이 쉽고 깔끔하게 개봉이 안된다는 단점이 있는데, 이 제품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쯤 이런 사소한 문제를 삼양식품이 해결해줄지 모를 일입니다. 뜨거운 물과 전자렌지가 필요한 제품입니다.

 

 Buldak Fire Level 3. 건바질 향이 매우 강하고, 제법 맵습니다. 레벨 4의 일반 불닭볶음면에 육박하는 매움입니다. 면은 탄력이 있고 괜찮습니다. 바질을 많이 썼고 맵지만 고추의 풍미가 페퍼론치노 계열이 아니고, 크림이 들어갔음에도 소스의 전반적인 향이 남아시아 음식을 연상시킵니다. 나에게는 이탈리아 음식보다는 인도나 동남아 음식이 생각납니다. 물론 이건 결국 한식입니다만. 바질은 인도음식에도 많이 씁니다.

 

 실제 성분을 보니 하바네로맛시즈닝에 치킨카레맛베이스가 들어갔습니다. 매운 바질 커리 풍미의 야끼우동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은 구성입니다. 포장에는 산뜻한 바질페스토를 이야기합니다만, 이 제품의 향은 생바질에 견과를 사용하는 바질페스토의 풍미보다는 건바질을 잔뜩 넣은 것에 가깝습니다. 건바질과 생바질은 향이 다릅니다. 바질 품종에 따른 향의 차이도 있긴 합니다만.

 

 

 

 

 

 

푸르밀 다나카’s 카라메르 요구르트

 

: 푸르밀이 안 망하고 새 제품을 내놨습니다. 회사 로고에 고객이 살린 기업이라 적혀있네요.

 

 제법 맛있습니다. 캐러멜향이 꽤 나는데, 잘 어울립니다. 원래 내가 캐러멜을 좋아하긴 합니다. 맛은 마음에 듭니다. 다만 150ml라는 용량은 나에게는 조금 아쉽습니다. 약간 아쉬운 듯한 양이라 더 맛이 괜찮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닛신 컵누들 스파이시 씨푸드맛 (용기)

 

: 옛날 짜장범벅처럼 스프가 용기 안에 들어가 있습니다.

 

 향은 우리나라 제품과는 좀 이질적입니다. 면은 옛날에 나오던 삼양 컵라면 닮아서 반갑습니다. 감칠맛과 간이 강하고 맛있는데, 해물 향이 좀 비릿합니다. 조개껍질이나 새우껍질, 게 껍질 같은 걸 끓인 것 같은 향이 있습니다. 잡스러운 향이라 별로입니다. 맛은 있는데 향이 나쁘네요.

 

 

 

 

 

효성어묵 야채 듬뿍바

 

: 전자렌지로 데우니까 표면이 건조해서 진짜로 맛이 없습니다. 2개를 입수했기 때문에 나머지 하나는 어떻게 먹을까 고민 중에 있습니다. 차후 시도한 걸 업데이트하겠습니다.

 

 

 

 

 

틈새라면 매운카레 ()

 

: 팔도야쿠르트 생산. 팔도 제품의 자장라면처럼 레토르트 파우치에 담긴 카레가 동봉되어있습니다. 면을 삶은 후 물을 버리고 레토르트 파우치의 카레를 그대로 비벼 먹으라고 되어 있는데, 그냥 그러면 온도가 너무 낮아질 것 같아 일단 온도가 좀 높아질 정도로 볶았습니다.

 

 카레면임에도 틈새라면 특유의(?) 향은 가지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첫맛은 맵고 뒷맛은 답니다. 단맛이 꽤 강합니다. 카레 스타일은 일본식에 가까운 것 같긴 한데, 일본식의 매운 카레와도 스타일이 다르다는 느낌입니다. 동남아 카레 풍도 조금 있는 걸까요.

 

 매운맛 자체는 꽤 강한데 내 입에는 맛은 없네요. 이런 계열은 취향에 따라 꽤 메불메가 갈릴 것 같습니다.

 

 

 

 

 

 

팔도 비빔면 레몬

 

: 일반 팔도비빔면에 비해 레몬 향이 납니다. 그 외에는 팔도비빔면 특유의 맛이 꽤 있습니다. 특유의 밀가루맛 많이 나는 면, 멸치가루를 넣은 것 같은 강한 감칠맛과 탁함, 점도가 높은 소스로 인해 균일하지 않은 느낌. 소스 농도가 높은 부분을 먼저 먹으면 어택이 강한데, 그게 팔도비빔면의 인기 비결 같기도 하네요.

 

 

 

 

 

남양 프렌치카페 더블 카라멜 라떼

 

: 카라멜 맛이 꽤 납니다. 그리고 뒷맛은 남양 제품답게 묽습니다. 남양의 냉장커피나 커피우유나, 커피맛이 별로 강하게 나지 않는 편이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카페인 함량이 111mg이라는데, 그렇다면 에스프레소 기준 1.5샷은 들어가야 이 카페인 함량이 나옵니다. 그 정도 커피가 들어간 것 같습니다.

 

 달달하니 맛있게 마실 만 합니다. 우유가 많이 들어간 느낌이고요.

 

 

 

 

 

 

롯데칠성 - 칸타타 콘트라베이스 라떼 PET

 

: 톤다운된 라떼. 강하게 볶인 커피가 약간 섞여있습니다. 어쩌면 로부스타의 맛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결점두의 맛이 꽤 선명한데, 라떼 PET 음료에서 결점두 맛이 꽤 날 정도면 픽이 충분히 된 원두를 사용한 것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품질이 좋다고 할 수는 없으나 단맛이 강하고, 쓴 맛도 있어서 좋아하는 분들은 있을 것 같습니다.

 

 

 

 

 

 

닛신 컵누들 칠리토마토 맛 (용기)

 

: 컵누들 스파이시 시푸드맛과 마찬가지로 스프가 용기 내에 미리 담겨있는 타입입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면이 가늘고 금방 익는 타입이고, 향이 나쁩니다. 짠 맛이 강하고, 토마토 풍미는 생각보다 강하지 않습니다. 강한 토마토 풍미를 기대하고 접근했기 때문에 충분히 즐기지 못했습니다.

 

 

 

 

 

불티나마켓 & 세븐브로이 - 비트주세영 골드

 

: 첫 한입부터 꽤나 에일스러운 무알콜 맥주입니다. 무알콜 맥주는 주류로 판단하지 않으므로 본 공산품 음식 감상문에 포함시켜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마도 호프에서 유래한 것 같은 과일, 꽃 같은 향기가 조금 납니다. 꽤나 본격적인 에일의 풍미를 살짝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에일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것도 마음에 듭니다. 차후 감상 추가 업데이트 예정.

 

 

 

 

 

해태 Truffle Butter 생생감자칩

 

: 버터 향이 강합니다. 이것에 비하면 허니버터칩은 버터 향이 별로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트러플 오일 향도 꽤 납니다. 블랙 트러플 향이네요.

 

 트러플 오일 + 버터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이 감자칩도 좋아할 것 같습니다. 물론 진짜 블랙 트러플의 향이 아니라, 합성 트러플 오일 향입니다.

 

 허니버터칩보다는 이쪽이 맛있는 것 같네요. 트러플 향에 거부감이 없어야 하겠습니다만.

 

 

 

 

 

 

오뚜기 새송이 쇠고기죽

 

: 기본적인 풍미가 쇠고기죽이 아닙니다. 쇠고기와 새송이로는 나올 수 없는 감칠맛 성분이 두드러집니다. 조미료로 맛을 내고, 쇠고기나 새송이는 건더기로 기능하는 느낌입니다.

 

 실제 약간의 쇠고기와 새송이로는 죽을 끓여도 별 맛이 나오지 않긴 합니다. 쇠고기를 아주 많이 넣으면 몰라도요. 그런 맛으로는 대중성이 없을지도 모르고, 이건 대중적인 맛을 확보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새송이 쇠고기죽이라는 네이밍으로는 예측할 수 없는 맛이네요.

 

 

 

 

 

농심 하얀 짜파게티 (용기)

 

: 용기면만 나오고 있는 하얀 짜파게티입니다. 한정판이라고 하는데 지금 나온 물량 다 없어지면 사라질지 모르겠습니다. 전자렌지에 조리하는 타입이고, 분말스프와 유성스프를 넣어 비비는 형태인데 잘 안비벼지니까 신경써서 비벼야 합니다.

 

 감칠맛과 단맛이 굉장히 강합니다. 비주얼은 다르지만 맛의 경향은 옛 짜장범벅, 현 짜파게티 범벅 소컵과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더 기름지고 달콤합니다. 맛이 굉장히 진합니다.

 

 내 생각엔 이게 짜왕(봉지면)보다 맛있습니다. 초기 포장이었던 옛날 짜장범벅이 아니면 농심에서 나온 자장라면 중 이것에 견줄 만한 건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용기면이다 보니 면의 품질은 어쩔 수 없이 그저 그런데, 스타일이 봉지면으로 나오면 이정도로 맛있을 거 같진 않습니다.

 

 

 

닛신 컵누들 시푸드 커리맛

 

: 카레향 덕분인지 시푸드 스파이시나 토마토칠리맛보다는 비린 향이 적습니다. 면은 동일하게 맛있고, 짠 맛과 감칠맛이 강합니다. 카레향이 강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건 상대적으로 괜찮은 해물카레 라면 같습니다.

 

 

 

 

 

 

농심 딸기 바나나킥

 

: 개봉하면 딸기향이 강합니다. 먹어 보면 바나나킥 맛이고, 딸기 풍미가 첨가되어 있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즉 바나나킥에 딸기가 더해져 있습니다.

 

 본래의 바나나킥이 그렇듯 입에 잘 들어갑니다. 다만 맛 자체는 묘하다는 기분입니다. 딸기맛만 나는 딸기킥이면 조금 덜 묘할 것 같습니다. 거부감이 느껴진다거나 맛없다는 건 아닙니다.

 

 

 

 

오뚜기 크림진짬뽕 (용기)

 

: 전자렌지를 사용하는 레시피가 아니라서 뜨거운 물에 익힌 후 물을 버려야 합니다. 분말, 유성, 액상 스프를 넣고 비비는 형태인데, 까르보나 로제 불닭볶음면이 조금 떠오르면서도 덜 매운 게 편하게 먹기 좋네요. 나름대로 맛은 있는데 짬뽕 계열이라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아요.

 

 

 

 

 

하림 더미식비빔면 ()

 

: 면 느낌이 꽤나 특이합니다. 살짝 밀면이 떠오를 정도로 탄력이 강합니다. 그리고 이 면은 양념을 많이 흡수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면 자체도 맛있고, 양념도 맛있는데 둘이 조금 겉도는 느낌이 있어서 그 점을 개선할 수 있다면 좋을텐데 싶습니다. 면을 뽑는 부분을 구리제를 쓰면 개선될 것 같지만, 그럼 단가가 꽤 올라가겠지요. 아니면 양념스프의 점도를 올려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오뚜기 단호박죽

 

: 달달합니다. 새알심이 있는데, 탄력이 있는 게 아니고 아주 부드럽게 뭉그러집니다. 호박 맛은 제법 나는데, 단호박죽이라 그런지 늙은호박 특유의 향은 별로 없습니다.

 

 아쉬움이 없는 맛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 맛있습니다. 좋은 디저트입니다.

 

 

 

 

 

 

오뚜기 통단팥죽

 

: 다른 죽보다 조금 더 데워야 하는 것 같습니다. 1100W110초 돌렸을 때 단호박죽은 너무 뜨거웠는데 이건 살짝 덜 데워진 느낌입니다.

 

 오뚜기의 다른 쌀죽 계열에서 느껴지던 베이스 풍미가 느껴집니다. 달달하고 통단팥이 씹히는 가운데 베이스에서 유래된 듯한 감칠맛이 느껴집니다. 결과적으로 묘한 맛인데, 맛없지는 않습니다. 새알심은 단호박죽의 새알심보다는 단단합니다. 레토르트라 그런지 어쩔 수 없이 부드럽게 뭉그러집니다.

 

 

 

 

 

해태 자가비 짭짤한맛

 

: 프랜치프라이를 닮은 과자. 딱딱하지 않고 오일리합니다. 딱딱하지 않게 만든 비결이 오일리함에 있는 것 같습니다.

 

 짭짤한맛이라는 네이밍과 달리 그리 짠맛이 강하지는 않습니다. 지방맛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은 과자입니다. 유쾌한 식감에 오일리하고 부드러운 감자튀김을 간편하게 먹고 싶을 때 만족감을 줍니다.

 

 

 

 

 

 

삼양식품 하바네로라임 불닭볶음면 (용기)

 

: 불닭식품의 신제품. 소스를 맛보니 매콤새콤한 게 비빔면 소스가 떠오릅니다.

 

 새콤한 풍미가 두드러집니다. 뜨거운 온도에서 먹는 타입이어서 그런지 맛도 향도 새콤합니다.

 

 불닭시리즈 치고 매운 맛은 강하지 않은 편입니다. 압도적인 매움을 자랑하는 할라피뇨치즈와는 대조적입니다. 고추 이름만 봤을 때는 하바네로가 훨씬 매워야 하는데 말입니다. 아예 안매운 건 아니지만 까르보, 로제, 크림 같은 시리즈 빼면 가장 안매운 것 같습니다.

 

 나에게 이 제품은 뜨거운 비빔면 같다고 생각합니다. 하바네로에 라임, 그리고 고수가 약간 들어가있어 드시는 분에 따라서는 살짝 이국적이라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림 챔라면 (용기)

 

: 꽤나 가격대가 있는 하림의 용기면. 상당히 꾸덕한 액상스프와, 캔 햄 및 후랑크가 약간 들어있는 레토르트 파우치가 동봉되어있습니다. 액상스프와 레토르트 파우치를 넣고 끓는 물을 붓고 풀어준 후 전자렌지에 익혀먹게 되어있는 구성입니다.

 

 조리 직후 면이 상당히 탄력있습니다. 맛은 부대찌개를 연상하게 하는 맛인데, 부대찌개 컨셉 라면 중에는 결과물이 괜찮게 느껴집니다. 진짜 햄이 들어가니까 재현율이 높을 수밖에 없는 면이 있겠다 싶습니다.

 

 매운 풍미를 풍기는 기름 성분이 풍부합니다. 유성스프가 별첨되어있는 참깨라면보다도 일종의 향미유가 두드러집니다.

 

 다만 햄이 맛있지는 않습니다. 부대찌개를 먹을 때의 그 느낌을 기대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라면 자체는 괜찮지만 가격이 납득갈 정도냐 하면 아닙니다. 2+1 행사가격 단가 정도가 정가라면 어울릴 것 같은 느낌입니다.

 

 

 

 

 

 

동원 파마산 치즈로 더 진~한 비프 로제 리조또

 

: 베이컨 크림 리조또와 같은 시리즈입니다. 강한 토마토 맛. MSG가 들어가서 그런지 실제 토마토 맛보다 강렬하게 느껴집니다. 귀리가 씹히고, 쇠고기의 이노신산 맛은 상대적으로 강하지 않습니다.

 

 베이컨 크림 리조또가 그랬듯 맛 자체는 그저 그런데 씹는 느낌은 좋습니다. 귀리와 고기가 씹혀서 일반적인 레토르트 죽과는 다른 느낌입니다. 맛있는 정도는 아니라도 그럭저럭 즐겁게 먹을 만 한데, 가격이 좀 높은 게 단점입니다.

 
 
 
 

Bento BBQ & Spicy Flavor

 

: 오징어가 함유된 믹스 어포. 가미가 많이 된 타입입니다. 바삭하고, 당분이 많으며 제법 맵습니다. 양념 맛이 굉장히 강해서 맛있다고 해야할지 말아야할지 애매한데, 양이 많지도 않고 입에 잘 들어가긴 합니다. 금방 다 먹긴 했는데 이 맛을 추가로 더 먹어보게 될지는 모르겠네요. 다음에는 다른 맛을 먹어보려 합니다.

 

 

 

 

Bento Garric & Spicy

 

: 냄새만 맡아보면 비린내가 제법 납니다. 그러나 입에 넣으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습니다. 강력한 마늘 향. 진하게 마늘 풍미를 입혀놨습니다. 매운 맛도 여전합니다. 매우 강한 조미가 되어있습니다.

 

 

 

 

롯데칠성음료 - 핫식스 더 킹 크러쉬 피치

 

: 복숭아 캔디를 마시는 것 같습니다. 마음에 듭니다. 당보충이 제대로 되는 기분이고, 퓨레가 들어있어서 그런지 볼륨감과 중량감이 있습니다. 칵테일 재료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은 맛입니다.

 

 나에게는 마음에 들지만 점도가 있고 당이 꽤 들어있는 에너지음료니까 호불호가 갈릴 것 같습니다.

 

 

 

 

 

 

롯데칠성음료 - 핫식스 더 킹 파워

 

: 박카스같은 향. 볼륨감이 있습니다. 일반 핫식스보다는 맛있네요.

 

 피니쉬가 길지는 않은데 넘긴 후 느껴지는 향은 강합니다. 당분도 좀 있어서 에너지 부스트 효과가 느껴집니다. 물론 이런 타입은 사무직이나 학생이 졸릴 때 마시면 식곤증 때문에 역효과 납니다. 몸을 움직일 때, 또는 신체적인 회복이 필요할 때 효과적인 음료입니다.

 

 

 

 

 

 

Sole Mio SAS Pizza Mozzarella Pesto

 

: 프랑스에서 만든 냉동피자.

 

 바질페스토 맛이 매우 강합니다. 모짜렐라 치즈는 부드러운 타입이고, 에멘탈 치즈가 들어가서 치즈 맛도 강합니다. 도우는 폭신하고 인상적이지는 않은데, 최대한 강한 오븐에 굽거나 팬프라잉을 좀 하는 게 좋아보입니다. 피자가 원래 그렇듯 잘 익힐수록 맛있어질 겁니다. 크러스트는 꽤 맛있습니다.

 

 괜찮은 가격에 구매해서 가격대비 만족스럽게 먹었는데, 화력강한 오븐을 보유하신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농심 포테토칩 잭슨페퍼로니맛

 

: 피자맛 시즈닝의 농심 포테토칩. 토마토 맛이 나고, 구운 피자향이 살짝 느껴집니다.

 

 페퍼로니맛 별로 없습니다. 염도도 그리 높지 않아서, 페퍼로니 피자같은 느낌은 별로 안 납니다. 피자를 닮은 맛이긴 한데, 닮은 피자라면 아무래도 포테이토 피자 쪽이겠지요.

 

 맛 특성이 소스를 추가하면 맛있을 것 같은 타입입니다. 갈릭 소스라거나 허니머스타드라거나. 그리고 콜라와 매우 어울릴 것 같은 느낌이네요.

 

 

 

 

 

 

팔도 틈새라면 고기짬뽕 (용기)

 

: 국물이 있는 짬뽕 계열의 라면 중 팔도의 틈새라면 고기짬뽕 봉지면은 평소에 좋게 평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용기면을 먹어보게 되었습니다.

 

 팔도의 제품들이 대체로 그렇듯 면은 그저 그렇습니다. 그러나 많이 맵긴 하지만 국물 구성이 좋습니다. 특히나 짬뽕라면의 경우, MSG를 넣는 팔도가 타사보다 유리한 면이 있다고 봅니다.

 

 글루탐산이 충분한 이 라면의 맛은 미각에 길게 달라붙습니다. 고기짬뽕 느낌을 살리고 있고, 고소한 맛이 꽤 있습니다. 제법 맛있네요.

 

 

 

 

 

 

 

빙그레 메로나맛 우유

 

: ‘멜론맛이 아니고 메로나맛입니다. 진짜로 메로나하고 맛이 비슷합니다. 물론 메로나를 녹인다고 이런 맛이 되지도 않고, 메로나와 우유를 믹스해도 이런 맛이 되지 않습니다. 메로나와 비슷한 맛이 되도록 잘 만든 것이지요.

 

 가끔 마시고 있는데, 마실 때마다 제법 맛있습니다.

 

 

 

 

 

 

롯데칠성음료 - 핫식스 더 킹 제로

 

: 제로음료답게 라이트바디고, 포도알 풍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로음료치고 맛은 괜찮네요. 성분을 보니까 완전히 제로가 아니고 미미하게 당이 들어있긴 합니다. 부스트 효과는 아무래도 잠깨는 데 특화된 느낌이네요. 힘을 쓰고 몸을 움직일 일이 있으면 이건 비효율적이고, 움직임이 적은 일을 하는 데 잠을 깨려면 괜찮은 선택으로 생각합니다.

 

 

 

 

 

매일유업 - 썬업 과일 야채 샐러드 녹황

 

: 나는 야채 주스를 좋아하는 편입니다. 마셔보면 역시나 과일 맛이 두드러지지만, 그 와중에 치고 나오는 녹색 느낌이 샐러리를 연상시킵니다. 성분표를 보니 역시 샐러리가 들어있네요. 나는 샐러리를 좋아하는 편입니다. 샐러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마셔야 할 것 같은 야채주스입니다.

 

 

 

 

 

 

해태 구운버터

 

: 링 모양 봉지과자입니다. 링의 크기는 양파링보다는 좀 작습니다. 옥수수의 베이스의 과자라 옥수수의 단맛에 더해 치즈 맛이 납니다. 버터 풍미도 없진 않은데, 맛은 치즈 맛에 가깝습니다.

 

 제법 맛있습니다. 치즈맛 과자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대체로 좋아하지 않을까 싶은 맛입니다. 치즈볼보다는 좀 달고, 덜 짜고, 버터 풍미가 좀 있는데 결과적으로 괜찮습니다.

 

 문제는 네이밍과 패키지일까요. 제품의 질에 비해 그다지 성공적으로 팔리는 거 같지는 않습니다. 네이밍과 패키징이 달랐으면 좀 더 잘 팔릴 수도 있었을 과자 같아요.

 

 

 

 

 

 

 

롯데 HBAF 쌀로별 마늘빵맛

 

: 롯데가 조미 견과류로 유명한 HABF와 협업하여 만든 쌀로별의 한 시리즈.

 

 모양은 일반 쌀로별보다 넓적합니다. 그리고 마늘 맛이 좀 납니다. ‘마늘빵맛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마늘 시즈닝이 좀 섞인 쌀로별 느낌입니다. 시즈닝이 균일하지 않은데, 어떤 부분은 생마늘에 가까운 수준의 강한 마늘 향이 납니다.

 

 수크랄로스가 들어가서 그런지 오리지날 쌀로별에 비해 당분이 살짝 적습니다. 대신 뒷맛이 나쁜 게 단점입니다. 그래도 이 제품은 나름대로 마음에 들어서 여러 봉을 사두고 먹고 있는데, 현재 내가 알기로 생산이 중단되었습니다. 마지막 생산물량의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을거라 시중에서 사라질 날이 머지 않았을 겁니다. 혹시 드셔보실 분들은 발걸음을 서두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동원 양반 밤단팥죽

 

 처음 한 입부터 감칠맛이 꽤 도는게, 역시나 조미를 제법 했구나 싶습니다. 그래도 맛이 꽤 괜찮습니다. 팥 입자가 살아있고, 적당히 달달합니다.

 

 새알심 대신 밤이 들어가있는데, 밤 자체가 아주 맛있지는 않지만 괜찮은 선택 같습니다. 맛있게 먹었습니다.

※ 본문은 초판이므로, 일단 미흡하게나마 내용을 작성하고 추후 업데이트해나갈 계획입니다. 감안하고 보아주시길 바랍니다.

 

 

 주방칼은 요리를 하면 누구나 사용하는 물건입니다. 종류도 많고, 가격도 천차만별인데 관련하여 알아두면 구매나 관리에 있어 나쁘지 않습니다. 일단은 형태별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 산토쿠 (산도쿠)

 

 아마도 우리나라 가정 주방에서 가장 일반적인 식칼입니다. 일본에서 기원한 식칼로, 한자로는 三德입니다. 우리나라 한자독음으로는 삼덕(三德)이라 ‘삼덕칼’이라는 표현도 씁니다. 지금은 세계 어디에서나 쓰는 칼이 되어있지요.

 

 산토쿠의 날은 곡률이 거의 없습니다. 브랜드에 따라 곡률이 약간 있는 경우도 있고, 전혀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체로 곡률을 이용한 칼질은 어렵습니다. 그리고 보통 끝이 거의 뾰족하지 않고, 길이는 짧은 편입니다. 어지간한 과도 수준으로 짧은 산토쿠도 있습니다. 긴 산토쿠는 찾기 어렵고요.

 

 산토쿠는 보통 규토에 비해 짧은 만큼 가볍고, 끝이 뾰족하지 않으니까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들었을 때 위협감이 없고, 짧아서 좁은 공간에서 사용하기가 편리합니다. 이런 이유로 많이 쓰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곡률이 별로 없고 날의 폭이 넓다 보니 부피가 있는 생고기나 날생선 같은 것을 자르는 데는 불리합니다. 대신 상하로 눌러가면서 다다닥 채소를 써는 데(쵸핑) 적합합니다. 보통 가정에서는 채소를 썰 일이 많기 때문에 산토쿠를 많이 사용한다고 추정합니다.

 

 요리를 본격적으로 하지 않는 가정에서는 산토쿠하고 과도만 있어도 웬만한 건 다 할 수 있습니다. 큰 고기덩어리를 자르거나 생선을 다듬고 저미거나 할 일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채소도 작은 걸 자를 때가 많고요. 다만 채소를 자르더라도 크기가 큰 채소를 자를 때는 산토쿠가 그리 적합하지 않습니다. 산토쿠는 작은 채소를 다룰 때 적합한 편입니다.

 

 

 

 

 

 

일본식 규토

*) 셰프(쉐프) 나이프 / 규토

 

 가장 일반적인 주방칼이긴 한데, 우리나라 가정에서는 산토쿠를 좀 더 많이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셰프 나이프는 본래 서양식 주방칼인데, 일본에서 그걸 보고 유사한 모양으로 만든 주방칼을 규토(牛刀)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식 한자 발음으로는 우도. 그래서 셰프 나이프 ≒ 규토입니다.

 

 셰프 나이프와 규토는 대체로 같은 계열로 분류하지만, 유럽과 일본의 칼 만들고 쓰는 문화가 좀 달라서 후술할 슴베나 볼스터, 손잡이, 무엇보다도 곡률 등에서 일반적인 차이는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일본식 규토는 하프탱이고, 볼스터가 없고, 팔각 핸들이고, 곡률은 크지 않습니다. 대조적으로 서양식 셰프 나이프는 풀탱도 있고, 볼스터가 있는 경우도 있고, 둥그스름한 핸들이 많고, 곡률이 더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브랜드에서 서양식 셰프 나이프와 일본식 규토를 같이 만들 경우, 일본 스타일을 와규토(和牛刀)로, 서양 스타일을 웨스턴 규토로 구분해 부르기도 합니다. 굳이 구분해 부르지 않을 때는 그냥 규토 ≒ 셰프 나이프라 생각하면 됩니다.

 

 

즈윌링 셰프 나이프. 일본식 규토에 비해 곡률이 더 있습니다.

 규토는 산토쿠에 비해 곡률이 있고, 끝이 뾰족합니다. 그래서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밀고 당기면서 자르거나, 칼끝을 쓰거나, 곡률을 이용해 다지거나 써는 등의 사용법이 있습니다. 길이는 보통 산토쿠보다 깁니다. 야나기처럼 긴 규토도 구하기 어렵지는 않습니다. 긴 규토는 일반적인 칼꽂이에는 사이즈 오버인 경우도 있으니 구매 시 감안해야 합니다.

 

 집에서 산토쿠를 주로 사용하다가 규토를 사용하게 되면, 다른 것보다 크게 느껴질 수 있는 건 절삭력은 좋지만 자르고 난 후 날에 ‘담아 올리는’게 어렵다는 겁니다. 산토쿠는 끝이 뭉뚝하고 곡률이 별로 없기 때문에 자른 후에 자른 채소나 김치를 담아 옮기는 게 쉬운데요. 셰프 나이프는 상대적으로 조금 어렵습니다. 그래서 고깃덩어리처럼 큰 걸 자를 때는 규토가 좋은데, 채소처럼 자르기 쉬운 걸 자를 때는 산토쿠나 나키리를 쓰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재래시장 등지에서 많이 쓰는 속칭 무쇠단조칼도 형태는 규토입니다. 아마 일제 이후 규토의 영향을 받아 생겨난 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만 대체로 칼등 폭이 두껍고 투박합니다.

 

 

 

 

 

다양한 페티 나이프

*) 페티/유틸리티/페어링/필링/프렙 나이프

 

 기본적으로는 흔히 생각하는 과도를 의미합니다. 다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과도로 쓰기엔 좀 크고 무거운 유틸리티 나이프도 있습니다.

 

 Petty는 작다는 뜻입니다. 프랑스어 Petit(쁘띠)와 동일한 어원을 가진 단어고요. Paring및 Peeling은 껍질 등을 벗긴다는 뜻입니다. 유틸리티 나이프는 다용도 칼을 의미하는데, 페티/페어링/필링과 동일한 나이프를 의미할 때도 있고, 작은 서레이티드(톱날이 있는) 나이프를 포함한 분류를 의미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이프 세트에 ‘유틸리티 나이프’가 있을 경우 과도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식생활에 따른 개인차는 있지만, 대체로 많이 사용하게 되는 칼이지요.

 

 프렙(prep) 나이프는 좀 큰 과도입니다. 밑준비용 칼이라는 뜻입니다. 때때로 나이프 세트에 유틸리티/프렙 나이프와 페어링 나이프가 같이 구성되어있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경우에는 유틸리티/프렙 나이프가 좀 더 큰 과도고 페어링 나이프가 좀 더 작은(짧은) 과도인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헹켈 즈윌링 프로 라인업에는 날길이 7cm에 날끝이 앞으로 굽은 필링 나이프와 8cm의 페어링 나이프, 10cm의 페어링 나이프, 14cm의 프렙 나이프, 15.5cm의 유틸리티 나이프, 18cm의 프렙 나이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보통 페어링 나이프로 파는 칼들은 일반적인 과도보다 칼날이 짧습니다.

 

 

즈윌링 7인치 프렙 나이프. 이 정도 길이면 다양한 작업이 가능합니다.

 같이 과도로 불리긴 하지만 짧은 페티와 긴 페티, 그리고 칼등이 얇은 페티와 두꺼운 페티는 적합한 용도가 좀 다릅니다. 사과나 감자를 벗길 때는 작고 가벼운 게 편하지만 소갈비를 다듬을 땐 좀 더 길고 생김새가 예리한 페티가 좋습니다. 칼등이 두껍고 묵직한 페티는 말 그대로 다용도로, 전천후로 사용할 수 있는 칼에 가깝습니다.

 

 

 

 

 

우스토프 클레버

*) 클레버 / 중식도

 

 직사각형 또는 그에 가까운 칼입니다. 중화요리는 거의 이 형태의 칼로 모든 걸 다 하지요. 서양에서 본래 클레버는 두껍고 무거운 직사각형에 가깝고 구멍이 하나 뚫려있는 칼을 의미했는데, 중식도도 생긴 게 비슷하니까 영어로는 다 클레버라 부르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실제 일반적인 중식도는 클레버와는 생긴 게 비슷할 뿐입니다. 물론 진짜 클레버와 유사한 것도 있고요.

 

 중식도는 크게 나누면 날이 바짝 서있고 두께가 얇은 게 있고, 보다 크고 두꺼우며 날이 덜 서있는 게 있습니다. 후자가 서양의 전통적인 클레버에 가까운 겁니다. 그런 건 영어로 Bone Chopper라고도 부르지요. 이런 타입도 후술할 Bucher Knife라 부르기도 합니다. 생닭을 닭도리탕용으로 토막낼 때 쓰는 칼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본 쵸퍼는 실제 뼈를 자를 때 제법 유용합니다. 굳이 세게 내려치지 않더라도 질량과 형상 덕에 어린 양이나 돼지의 갈비뼈 정도는 눌러서도 썰 수 있습니다. 경험적으로는 돼지갈비뼈 정도는 인성이 있는 강재의 셰프 나이프로도 (일본식 규토로는 어렵습니다.) 곡률을 이용해 눌러가면서 썰 수는 있습니다만, 본 쵸퍼를 사용하면 훨씬 쉽게 작업 가능합니다.

 

 

중식 차이다오. 클레버보다 현저하게 얇은 칼입니다.

 그렇지만 중화요리에서 일반적으로 쓰는 중식도는 본 쵸퍼보다 얇고 예리하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뼈를 내려치거나 하는 데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뼈를 치는 칼은 두껍고 날각이 덜 예리해야 합니다. 일반적인 중식도는 산토쿠나 나키리처럼 채소 써는 데 어울리는 칼이지요. 실제로 중국에서 일반적인 중식도를 부르는 이름은 菜刀(차이다오/채도)입니다.

 

 중식도는 무게가 있기 때문에 들 때는 힘이 들어가지만, 내려서 썰 때는 꽤 잘 썰립니다. 날의 질량은 도마 위에서 사용할 때 절삭력과 꽤 상관이 있습니다. 셰프 나이프와는 대조적으로 넓은 면 덕에 썬 음식 올려서 옮기기 쉬운 것도 장점입니다. 다만 밀고당기는 식의 절삭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보닝 나이프

*) 호네스키 / 가라스키 / 보닝 / 필렛 나이프

 

 발골 또는 정형, 육가공용 칼입니다. 칼날부터 칼등의 날물폭이 일반적인 칼보다 짧아 얇싸한 형상이지요. 구분하자면 Boning 나이프는 육고기 발골 칼이고, Fillet 나이프는 닭이나 생선처럼 보다 작은 걸 다루는 칼인데 필렛 나이프에 해당하는 건 좀 더 칼등이 얇고 낭창합니다. 실제 발골 아니라 도매용 고깃덩이라도 썰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고기덩어리 사이로 나이프가 들어가게 되면 날이 두껍고 날면의 단면적이 넓을수록 자르는 데 방해가 됩니다. 얇고 날의 단면적이 좁을수록 좋지요. 큰 고기 직접 작업해서 드시는 분들은 하나쯤 가지고 있는 게 좋은 칼입니다. 필렛 나이프는 우리나라나 일본 문화권이 아닌, 서양에서 생선을 다룰 때 쓰는 칼이라 생각하면 되겠고요.

 

필렛 나이프

 호네스키는 일본식 발골 칼입니다. 창칼이라고도 합니다. 일본식 칼이라 양각날이 아니라 편각날인 것들도 있습니다. 실제로는 발골 뿐만 아니라 다용도로 쓰이고요. 가라스키는 호네스키와 비슷한데 좀 더 깁니다.

 

 

다양한 호네스키

 우리나라에서 호네스키는 장어칼로도 많이 씁니다. 일본에서 장어칼은 우나기사키라고 따로 있는데, 지역마다 형태가 다릅니다. 우리나라에서 호네스키를 장어칼로 많이 쓰는 걸 보면 창칼 형태도 장어를 다루는 데 적합한 것 같습니다.

 

 

 

 

 

 

다양한 치즈 나이프

*) 치즈 나이프

 

치즈는 굳이 자르자면 뭘로 잘라도 안 잘리지는 않는데, 그렇다고 쉽게 잘 잘리는 물건도 아닙니다. 연성이나 반경성 치즈는 자를 때 치즈가 날에 묻으면서 잘리는 걸 방해하고, 경성 치즈는 잘 바스라지거든요. 그래서 치즈 나이프는 가능한 예리하고 얇으면서 날면의 단면적을 좁힌 형태가 되어있습니다. 보통 날에 커다랗게 구멍을 뚫어놓지요. 또 원체 치즈가 잘 안 잘리다보니 서레이티드(톱날) 처리가 된 것도 많고, 아니면 야나기처럼 날을 한쪽면만 연마한 편각날인 것도 있습니다. 때때로 일부 브랜드에서는 연성 치즈, 반경성 치즈, 경성 치즈용 칼을 따로 제작해 세트로 판매하기도 합니다. 연성 치즈의 경우 칼이 아니라 실로 자르기도 하는데, 실을 고정해서 쉽게 자를 수 있는 절단 키트 같은 것도 있긴 합니다.

 

 

 

 

 

다양한 빵칼

*) 빵칼

 

 빵칼은 대표적인 서레이티드 나이프입니다. 톱날이 달려 있지요. 케잌 사면 주는 플라스틱 칼을 생각해보시면 됩니다. 쇼트케이크는 단단하지 않으니까 플라스틱 소재로도 충분하지만, 바게뜨 같은 걸 자르려면 제대로 금속으로 만든 서레이티드 나이프가 필요해지지요. 보통 빵집에서 바게뜨나 깜빠뉴를 사면서 잘라달라고 하면 빵칼로 잘라 줍니다만, 빵을 즐겨 사먹다보면 직접 잘라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서레이티드 나이프는 단단하고 매끄러운 음식물을 효과적으로 자를 수 있습니다. 대신 자른 표면이 지저분해지기 쉽고요. 대통령이 되기 이전 윤석열이 계란말이를 빵칼로 자르는 걸 보여준 적이 있는데, 서레이티드 나이프로 썰 때의 절삭력을 이용한 겁니다.

 

 예전에 유행했던 백년장미칼은 서레이티드 산토쿠였습니다. 뭐든 슥슥 써는 칼로 광고되었지만, 사실은 빵 썰기 적합한 칼이었지요. 당연히 그런 칼은 위아래로 눌러 자르기(쵸핑)는 잘 안 됩니다. 당겨서 썰어야지요. 그래서 보통 풀사이즈 빵칼은 가늘고 길게 나옵니다. 한편으로 빵칼을 구매하고 사용할 때는 톱날 부분은 갈기 어렵다는 걸 고려해야 합니다. 톱날 가는 도구는 따로 있는데, 톱날 사이를 하나하나 갈아줘야 해서 손이 많이 갑니다.

 

 

 

 

 

 

*) 야나기

 

 정식 명칭은 야나기바보초. 줄여서 야나기바. 통칭 야나기로 부릅니다. ‘쇼부’라고도 합니다. 원래 일본어로 야나기는 버드나무라는 뜻인데, 버드나무 잎을 닮았다 하여 야나기바보초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흔히 생각하는 회칼입니다. 사실 회칼도 종류가 많은데, 대중적으로 알려진 회칼은 야나기입니다. 끝이 뾰족하고, 날폭이 얇고 깁니다. 대신 칼등을 보면 일반적인 주방칼보다 제법 두껍습니다. 길고 칼등이 두껍기 때문에 무게도 제법 있습니다. 야나기가 괜히 이 시대의 전투도검이 아닙니다. 야나기의 절삭력은 어느 정도는 날의 질량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야나기같은 회칼은 양쪽 면을 모두 갈아 단면이 V자 모양인 날을 세우는 일반적인 날과는 달리, 날을 한쪽만 세워 단면이 │/ 형태가 됩니다. 장점이 있지만, 갈아서 날을 세우려면 숫돌을 써야 합니다. 간이 칼갈이로는 갈 수 없어요.

 

 많은 경우 V자 모양 날을 양날, │/ 자 모양 편삼각 날을 외날이라고 하는데 이런 표현은 주방칼에 제한되는 표현입니다. 일반적인 도검은 양날이라 하면 아밍소드나 롱소드, 대거(Dagger)처럼 칼등이 없고 블레이드 양쪽에 날을 세운 걸 의미하고, 외날이라 하면 칼등이 있고, 카타나처럼 한쪽에만 날이 있는 걸 의미하지요. 무협지에 한정한 표현으로 전자는 검, 후자는 도입니다만, 실제로는 도와 검을 양날이냐 외날이냐로 구분해서 부르지 않았었습니다. 그냥 유의어였고, 굳이 구분하자면 칼집이 있는 쪽을 검이라 불렀었지요.

 

 물론 주방칼은 거의 다 칼등이 있기 때문에, 날의 단면에 외날/양날 같은 표현을 해도 딱히 혼동될 건 없습니다. 다만 본문에서는 더 정확한 표현을 추구하여 편각날/양각날로 이야기하겠습니다. 한편으로 편각날물 자체는 모든 분들이 사용하고 계신데, 가위는 대칭을 이루는 두 편각날물로 구성되어 있는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흰살생선회는 표면이 매끄러울수록 맛있습니다. 그래서 날을 잘 세운 긴 야나기 같은 걸로 떠야 맛있게 떠집니다. 날길이를 이용해 쭉 당기면서 질긴 생선살을 떠낼 수 있는 구조입니다. 실제 흰살생선회를 떠보면 날을 잘 세운 야나기를 써도 매끄럽게 뜨는 데 꽤 품이 들어갑니다. 생선이 질길수록, 뜨는 횟감이 클수록 깔끔하게 떠내려면 더 긴 야나기가 필요합니다. 힘을 줘서 눌러 자르는 게 아니고, 한번의 당기는 동작으로 떠내야 제대로 떠지기 때문입니다.

 

 야나기는 살덩이를 저미는 용도의 칼이기 때문에, 날의 경도가 중시되고 대조적으로 인성이나 내부식성은 덜 중요하게 취급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야나기의 이런 특성은 일본식 주방칼의 특성 전반에도 꽤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주방칼에 가장 신경쓰는 그룹이 야나기 사용자들이기 때문입니다.

 

 

 

 

 

 

*) 데바

 

 생선 잡는 칼입니다. 사진으로 얼핏 보기에는 규토나 막칼처럼 생겼지만, 실제로 보면 칼등이 두껍고 편삼각으로 날을 세우는 회칼이고 전체적인 형태도 다릅니다. 생선 비늘이나 점액질을 긁을 때, 그리고 생선 머리를 떼어낼 때 씁니다. 묵직한 칼이지만 동시에 제법 예리하게 날을 세우는 칼입니다. 이 데바로 생선 껍질을 벗기고, 뼈에서 살을 분리하고 살덩이로 만드는 작업(오로시)까지, 심지어 회를 저미기까지 다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미오로시데바

 데바는 세세하게 들어가면 종류가 많은데, 미오로시데바라고 오로시 작업을 위해 야나기처럼 날의 폭이 얇게 나오는 것도 있고, 아지키리(코데바)라고 전갱이(아지)같은 작은 생선을 작업하기 위한 소형 데바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일반적인 데바는 본 초퍼나 부처 나이프처럼 묵직한 칼입니다. 내려쳐서 생선 머리를 떼어내거나 토막낼 수 있는 칼인 것이지요.

 

 회칼의 일종이지만 야나기와는 용도가 다르기 때문에 데바의 날은 높은 경도가 아닌 높은 인성 및 강도가 요구됩니다. 그래서 일본식 주방칼은 날물의 경도가 중시되는 경향이 있음에도 유독 데바는 예외적으로 경도가 덜 중시되는 편입니다.

 

 

 

 

 

 

키리츠케 회칼

*) 키리츠케

 

 뜻은 앞코를 사선으로 잘라놓은 칼을 의미합니다. 그냥 키리츠케라고 하면 보통 야나기의 키리츠케 버전을 뜻할 때가 많고, 규토의 키리츠케 버전인 키리츠케 규토도 많이 쓰입니다. 키리츠케는 곡률이 가장 큰 앞부분이 잘려있는 형상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야나기나 규토에 비해 끝부분의 곡률이 덜한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회칼의 경우 회를 뜰 때는 날물의 길이가 실질적으로 야나기보다 키리츠케가 약간 더 길다고 할 수 있습니다.

 

키리츠케 규토

 규토의 경우, 키리츠케 규토는 일반 규토보다 칼끝이 훨씬 뾰족해지게 됩니다. 야나기는 원체 날카로운 칼이다보니 키리츠케 회칼이 야나기에 비해 칼끝이 덜 날카로운 반면, 규토는 날끝이 많이 뾰족해져서 공격적인 모양새가 됩니다. 날끝으로만 음식물을 자를 때 얇은 날폭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대신 규토의 특징인 곡률이 부족해지기 때문에 곡률을 활용할 수 있는 여지는 크게 줄어듭니다. 정리하자면 곡률은 서양식 셰프 나이프 > 일본식 규토 > 키리츠케 규토입니다. 날카로운 칼끝을 활용할 때는 키리츠케 규토가, 곡률을 이용한 절삭력이 필요할 때는 서양식 셰프 나이프가 좋습니다.

 

키리츠케 페티

 다소 드물지만 페티에도 키리츠케 버전이 있는데, 끝이 매우 예리하고 날폭이 좁기 때문에 가지고 있으면 다용도로 쓰기 좋습니다. 짧은 칼일 경우 예리한 칼끝의 활용도가 올라갑니다. 산토쿠도 키리츠케 버전으로 만들기도 하는데 그건 보통 분카로 부릅니다.

 

 가격은 일반 야나기나 규토보다 키리츠케가 좀 더 비싼 경향이 있습니다. 제작 방식이 긴 칼을 만든 다음 앞코를 잘라내는 방식이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 사키마루

 

 뜻은 둥글다는 뜻입니다. 전통적인 회칼로 알려져 있습니다. 회칼 끝을 사키마루로 만들면 외형이 카타나와 유사해지는데, 진짜로 우치가타나나 와키자시처럼 날물 전체에 곡률을 줘서 만드는 경우도 있고, 그런 건 검을 닮았다는 뜻의 ‘켄카타’같은 이름을 붙이곤 합니다. 사실 날 길이가 어느 정도 이상 되는 켄카타 사키마루는 진짜 와키자시와 별다를 게 없는 칼이긴 합니다. 진짜로 무기로 쓰려면 찌르기가 되는 야나기 쪽이 더 고성능입니다만.

 

450mm 사키마루 켄카타. 일단 합법적으로 주방칼입니다.

 한편으로 관점에 따라서는 키리츠케도 검을 닮았다고 볼 수 있고, 실제 키리츠케 켄카타라는 이름으로 팔리는 것들도 있는데, 키리츠케 켄카타는 보통 사키마루 켄카타에 비해 곡률이 없는 편이고, 대신 도드라지는 하몬(전통방식으로 카타나를 담금질할 때 생기는 무늬)을 만들어두곤 합니다.

 

 사키마루는 키리츠케와는 정 반대로 칼끝이 둥글기 때문에 찌르거나, 칼날 끝까지 이용해서 절삭을 한다거나 하기는 어렵습니다. 카타나를 닮았지만 좀 더 다루기 안전한 칼이 됩니다.

 

 참고로 카타나는 일본도의 통칭이고 우치가타나는 가장 일반적인 일본도로, 그냥 카타나라고 하면 우치가타나를 의미할 때도 많습니다. 그리고 와키자시는 좀 짧은 일본도입니다.

 

 

 

 

 

 

*) 스지히키 / 슬라이싱 나이프 / 슬라이서

 

 칼을 잘 모르는 분들이 슬라이서(스지히키)를 사진으로 얼핏 보면 야나기와 비슷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많이 다른 칼입니다. 슬라이서는 단면이 V자인 양각날이고, 야나기에 비하면 칼등 폭이 꽤 얇습니다. 실물을 보면 유틸리티 나이프가 날이 길어진 형태에 가깝습니다. 그렇지만 유틸리티 나이프로 쓰기에는 깁니다.

 

 슬라이서는 기본적으로는 육고기를 작업하는 데 쓰입니다. 육사시미를 뜨거나 고기덩이에서 포를 뜰 때, 또는 생고기 덩어리나 바베큐를 자를 때 쓰지요. 물론 야나기와 비슷하게 칼날폭이 얇고 기니까 야나기 대용으로 생선회를 떠도 되는데 (다만 양각날 특성상 야나기만큼 잘 떠지게 연마하기는 어렵습니다.), 기본적으로는 무언가를 떠낼 때 적합합니다. 생선 껍질을 벗기고 살덩어리를 떠내는 오로시 작업을 하는 칼로도 많이 씁니다.

 

 보닝 나이프와 슬라이서를 비교하면, 보통 슬라이서가 더 길고 보닝 나이프는 칼날의 폭이 더 좁습니다. 그래서 용도가 달라집니다. 보닝 나이프는 복잡한 형상의 고깃덩이와 뼈 사이를 다듬기에 좋습니다. 슬라이서는 대조적으로 살덩이를 자르거나 생선 밑작업을 하는 데 적합합니다. 보통 슬라이서가 보닝 나이프보다 길기 때문에, 큰 살덩이를 자를 때는 보닝 나이프보다 슬라이서가 적합합니다. 절삭력 자체는 더 무겁고 곡률도 더 있는 셰프 나이프가 더 나옵니다만, 슬라이서의 날폭이 좁기 때문에 큰 고기를 자를 때 슬라이서가 더 유리한 경우도 있습니다.

 

 

 

 

 

 

끝이 둥근 카빙 나이프

*) 카빙 나이프

 

 서양 문화에서는 때때로 슬라이서와 카빙 나이프를 딱히 구분하지 않는데, 일본식 명칭 스지히키와 카빙 나이프는 용도의 차이가 있습니다. 스지히키가 상기하였듯 생고기를 저미기 위한 칼이라면, 카빙 나이프는 구워놓은 고기를 자르기 위한 칼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바베큐를 저미기 위한 거지요.

 

 그래서 카빙 나이프는 서레이티드 처리가 된 것도 많고, 끝이 뾰족하지 않은 타입도 많습니다. 식탁에서 직접 서빙할 때 쓸 수 있게 만드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건 식탁에서 스테이크나 돈까스를 잘라도 괜찮게 생겼습니다. 구매할 때는 칼의 형상을 보고 용도에 맞춰 구매하면 됩니다. 물론 슬라이서나 길이가 좀 있는 페티로 카빙 작업을 해도 문제없고 잘 어울립니다. 다만 식탁에 길고 날카로운 슬라이서를 가져가면 카빙 나이프에 비해 다소 위협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전형적인 부처 나이프의 한 형태

*) 부처 나이프

 

 도축업자 칼이라는 뜻입니다. 딱히 정해진 모양이 있지 않고, 몇 가지 유형을 부처 나이프라고 하는데요. 일단 서구에서 부처 나이프로 부르는 칼은 곡률이 있는, 영화에 나오는 해적칼을 닮은 칼을 뜻할 때가 많습니다. 곡률이 있으면서 끝이 좀 둥그스름한 타입도 많고요.

 

세르비아 나이프

 또 세르비아 나이프라는, 특유의 형태를 가진 칼을 부처 나이프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또한 클레버를 부처 나이프라 부를 때도 있고요. 세르비아 나이프를 세르비아 클레버로 부르기도 합니다.

 

부처 나이프의 한 전형적인 형태

 그 외 드물지만 슬라이서나 보닝 나이프를 부처 나이프로 부르기도 합니다. 실제로 도축업자들이 슬라이서와 보닝 나이프를 사용하니까 그럴 것입니다만, 일반적인 용례는 아니라 생각합니다.

 

코쟁이칼을 닮은, 곡률이 큰 부처 나이프. 이런 타입의 부처 나이프는 Cimeter라 부릅니다. 이름의 기원은 중동의 도검 Scimitar.

 

 

 

 

 

 

 

*) 타코히키

 

 예전에 관동에서는 야나기가 아니라 타코히키가 일반적인 회칼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야나기를 주로 쓰고요. 회 전반에 사용할 수 있는 칼인데, 야나기와는 달리 끝이 네모납니다. 찔려서 다칠 위험이 없지요. 다만 끝모양을 다듬으면 사키마루가 되기 때문에, 사키마루 중에는 사키마루 타코히키 같은 이름이 붙은 것들이 있습니다. 이름 뜻은 문어칼인데, 문어만 잘라야 하는 칼은 아닙니다.

 

 전근대 시기에는 일본의 주방 환경이 현대와 많이 달랐기 때문에 타코히키를 썼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현대에는 뾰족한 야나기나 키리츠케를 주로 쓰게 되었지요. 물론 타코히키는 현대에도 생산되고 있고,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일부 짧은 타코히키는 야나기에 비해 현저하게 칼등 두께가 얇은 경우가 있습니다. 이 경우는 후쿠히키와 기능적으로 유사한 칼이 됩니다. 다만 모든 타코히키가 칼등이 얇은 건 아닙니다.

 

 

 

 

 

 

후쿠히키. 칼등을 보지 않으면 야나기와 구분이 가지 않습니다
칼등을 보면 야나기보다 훨씬 얇습니다

*) 후쿠히키

 

 복어칼입니다. 복어는 살이 단단하기 때문에 회를 뜰 때 일반 생선회보다 얇게 뜹니다. 그래서 후쿠히키는 일반적인 야나기 등에 비해 칼등 쪽이 얇습니다. 그 외 생긴 건 야나기와 같습니다. 일반적인 야나기는 칼등이 꽤 두꺼운 칼이기 때문에 회를 아주 얇게 뜨는 데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관동식 우스바

*) 우스바

 

 채소 써는 일본식 칼입니다. 채썰기, 돌려깎기 등 다양한 채소 작업에 씁니다. 곡률이 전혀 없고, 한 면만 날을 세운 편삼각 날입니다. 관동형과 관서형이 있는데, 관동형은 끝이 네모지고 관서형은 끝 쪽 날 반대쪽이 둥급니다.

 

관서식 우스바

 

 

 

 

 

*) 나키리

 

 우스바처럼 채소칼입니다. 다만 편각날인 우스바와는 달리 나키리는 일반적인 양각날입니다. 좀 작은 중식도에 가까운데, 중식도 같은 걸 쓰고 싶지만 중식도는 너무 무겁고 투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나키리를 쓰면 됩니다. 또한 산토쿠 대신 나키리를 써도 됩니다. 일부 브랜드에서 만드는 나키리는 관서형 우스바의 양각날 버전인지 산토쿠와 거의 흡사하게 생긴 것들도 있습니다. 나는 채소나 김치 등을 썰 때 나키리를 가장 선호하고 있습니다. 나키리 중에는 꽤 작고 짧은 것도 있는데, 그런 건 간단하게 작은 채소를 썰 때 사용하기 좋습니다.

 

 

 

 

 

 

*) 무키모노

 

 작은 채소칼. 끝쪽은 키리츠케처럼 사선이며, 날은 편각날입니다. 채소를 기술적으로 잘라 장식 등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칼입니다. 일반적으로 쓰기에도 우스바 대비 작아서 사용하기 편하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용예

 

 

 

 

 

*) 하모키리

 

 갯장어 칼입니다. 교토에서는 전통적으로 갯장어를 요리해 먹는데, 갯장어는 잔뼈가 많아서 잘게 칼집을 내서 뼈를 끊어 먹기 좋게 만들어 요리합니다. 그 칼집을 넣을 때 쓰는 칼이 하모키리입니다. 갯장어에 칼집을 내는 과정은 호네키리라고 합니다. 호네스키와 혼동하지 말 것.

 

 

 

*) 우나기사키

 

 뱀장어용 칼. 붕장어에도 씁니다. 일본에서 장어는 인기 있는 생선이고, 지역마다 다른 형태의 장어칼이 있습니다. 장어를 잡고 가르는 데는 짧은 전용 칼이 작업하기 좋아서 따로 발달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냥 장어칼이라 부를 때가 많습니다.

 

 

 

 

*) 분카

 

 일반적인 형태는 키리츠케 산토쿠에 가깝습니다. 길이는 보통 짧고 길이대비 날물 폭은 있는 편입니다. 산토쿠처럼도 쓰고, 아지키리 대신 쓰기도 합니다. 다용도 칼입니다. 가끔 키리츠케 규토에 가까운 걸 분카라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많이 사용하지 않지만 세계적으로는 꽤 인기 있는 칼로 보입니다. 짧은데 끝이 날카롭기 때문에 범용성도 있고, 섬세한 작업을 할 때 끝쪽을 활용하는 식으로 활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조개칼 / 오이스터 나이프

 

 굴을 포함한 조개의 껍질을 열고 살을 분리하기 위한 칼입니다. 형태는 다양한데, 쓰기 편하게 아주 짧은 것들도 많습니다. 주관적으로 조개칼은 좋은 것보다는 가격이 저렴한 걸 쓰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데요. 조개를 까는 작업은 어떻게 생각해도 칼에 부담을 많이 주기 때문에, 좋은 칼을 쓰는 것보다는 칼을 자주 바꾸는 게 현대기술 생산성 생각하면 더 나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 막칼

 

 우리나라에서 만드는 통칭 무쇠칼, 좀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대장간 단조칼중 일반적인 건 분류하자면 규토입니다. 그렇지만 막칼이라고 좀 더 큰 칼도 만듭니다. 외형은 데바와 흡사하고, 용도를 분류하자면 데바/부처 나이프/본 초퍼 정도라 할 수 있습니다.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곳은 재래시장. 막칼로 생선 머리를 날리거나 닭뼈째 치는 걸 볼 수 있지요. 물론 날을 세우면 회칼로도 쓸 수 있습니다. 실제로 회를 뜨기도 합니다.

 

 막칼은 기본적으로 저렴한 칼이기 때문에 말 그대로 막 자유롭게 다루기 좋은 칼입니다. 이건 막칼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무쇠칼이 다 그렇습니다. 실제로는 이름답지 않게 강철칼이고 대체로 품질이 엉망이라 날 자체가 어긋나게 달려있는 것들 투성이입니다만, 우리나라 대장간 강철칼은 대체로 경도는 낮고 인성은 높기 때문에 마구 내리치면서 써도 날이 깨져나가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 오로시칼

 

우리나라에서 개발/개량된 것으로 추정하는 생선 작업용 칼입니다. 일본식 칼 분류로 치면 미오로시데바의 한국형으로 봐야 할 겁니다. 오로시는 생선 껍질을 벗기고, 뼈에서 살을 분리하는 작업을 의미합니다. 또한 강판에 무나 와사비 등을 가는 것도 오로시라고 하니 참조로 알아두면 좋습니다.

 

 오로시칼의 특징은 날의 곡률이 전혀 없고, 프로파일 테이퍼는 있다는 겁니다. 즉 칼끝으로 갈수록 날물의 폭이 좁아집니다. 날길이는 미오로시데바처럼 깁니다. 우리나라 일식 요리사들이 이와 같은 모양의 칼이 오로시를 하기 좋다고 생각하여 이러한 칼을 쓰게 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 이도기리 / 나라비(나래비)

 

 일본어로 이토기리는 본래 가늘게 채를 써는 걸 의미합니다만, 우리나라에서는 어쩌다보니 뜻이 와전되어 나라비와 같은 뜻으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나라비는 줄을 세운다는 뜻으로, 넘어진 도미노처럼 썰어놓는다는 정도의 의미로 통용되는데, 우리나라에서 이도기리 칼이라고 하면 그런 식으로 써는 데 특화시켜 개조하거나 제작한 칼을 의미합니다. 오징어회나 비교적 저렴한 회를 많이 파는 횟집에서 빠르게 썰어 내놓다보니 그런 작업에 특화된 칼로 야나기를 개조하는 문화가 생겼고, 많이 쓰다 보니 통칭 이도기리(칼)가 시판도 되는 상황으로 보입니다.

 

 처음에 이도기리 칼은 야나기를 오랜 시간 연마하면서, 다만 본래의 형태를 유지하는 걸 신경쓰지 않는 방향으로 마구 갈아 사용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 결과 폭이 얇아졌고, 형태도 다소 달라졌습니다. 그런 칼이 회를 마구 빠르게 써는 데 유리했고, 실제 빠르게 마구 써는 데 숙련된 사람들이 그런 칼을 쓰니까 더더욱 그런 작업에 좋아 보인 면도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가 일본에 비해 회 소비량이 많고, 회를 썰어낸 퀄리티에는 덜 민감합니다. 그러니까 일본과 다소 다른 식으로 칼 문화가 발전한 면이 있습니다.

 

 본래 야나기는 회를 당겨서 깔끔하게 썰게 발달한 칼입니다. 그런데 이도기리는 회를 빠르게 눌러 썰기 쉬운 방향으로 개량되었습니다. 야나기에 비해 날물의 폭이 좁고, 곡률이 전혀 없습니다. 오로시칼과 비교하면 얼핏 보면 매우 비슷하지만, 날물의 폭에서 차이가 납니다.

 

 

 이상 종류 설명이었습니다. 다음으로는 종류 외의 요소들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가장 먼저 소재부터 이야기해보지요.

 

 

 

 

 

 

*) 스테인리스 스틸

 

 이녹스(아이녹스/Inox)라고도 합니다. 대부분의 현대 주방칼은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듭니다. 녹에 강하니까요. 스테인리스 스틸은 ISO 기준 크롬함량 10.5% 이상, 탄소함량 1.2% 미만인 크롬합금강입니다. 다만 실제로는 탄소함량이 1.2%보다 높더라도 그만큼 크롬이 더 들어가면 스테인리스로 취급됩니다. 섞인 크롬이 공기에 노출되면 철보다 빠르게 부식되면서 아주 얇고 투명한 피막을 만들어, 스틸에 녹이 슬지 않게 보호합니다.

 

 스테인리스 스틸은 크게 오스테나이트계와 페라이트계, 그리고 마르텐사이트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중 오스테나이트계나 페라이트계는 별로 탄소를 함유하고 있지 않고, 열처리를 통해 경화시켜 사용하는 용도가 아닙니다. 경도를 얻을 수 있는 스테인리스는 마르텐사이트계고, 그러니까 주방칼같은 날물을 만드는 데는 기본적으로 마르텐사이트계를 사용합니다. 다만 후술할 카스미 방식에서 가운데 날 부분이 아닌 바깥쪽에는 페라이트계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일부 주방칼은 오스테나이트계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칼을 전문으로 만들지 않는 주방용품 회사에서 출시하는 것들 중에 그런 것들이 있습니다. 오스테나이트계로 칼을 만들면 녹은 정말 안슬지만 날 유지력은 논할 가치도 없는 수준이 됩니다. 오스테나이트계와 마르텐사이트계를 쉽게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은 자석을 붙여보는 겁니다. 마르텐사이트계와 페라이트계는 자석이 붙지만 오스테나이트계는 붙지 않습니다.

 

 강철칼 대비 스테인리스 칼의 기본적인 특징은 높은 내부식성, 높은 칼날 유지력, 그리고 연마의 어려움 및 상대적으로 낮은 인성으로 요약 가능합니다. 기본적으로 철은 탄소를 넣어 담금질을 하면 탄화물(카바이드)이 생겨서 경도가 올라가는데요. 순수하게 철과 탄소만 함유된 강철은 철 카바이드(시멘타이트)만 생긴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런데 스테인리스는 크롬 카바이드가 꽤 생기게 되지요. 내식성을 제외하면 이게 가장 기본적인 차이입니다.

 

 크롬 카바이드는 시멘타이트보다 경도가 높습니다. 그래서 사실 강철칼보다 스테인리스 칼이 비슷한 탄소함량에서 더 높은 경도를 확보하기 쉽고, 제대로 세우기만 한다면 칼날 유지력이 더 높습니다. 대신 문제는 연삭성에 있습니다. 크롬 카바이드는 너무 단단합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저렴이 숫돌에는 제대로 안갈립니다. 이게 스테인리스 칼에 대한 인식이 나쁜 주된 한 이유입니다. 적당히 대충 갈면 날이 깔끔하게 서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크롬 카바이드가 깔끔하게 갈리지 않고 부분부분 떨어지거나 해서 제대로 된 날이 서지가 않습니다. 게다가 크롬 카바이드가 많아지면 후술할 인성(Toughness)이 떨어지기 쉽습니다. 그 외 칼이 너무 저렴할 경우, 스테인리스 칼은 아예 뭐라 평가할 만한 수준이 아닌 것이 되기 쉽기도 합니다. 기본적으로 스테인리스는 탄소강보다 비쌉니다.

 

 그리고 문제는 또 있습니다. 스테인리스는 탄소함량이 높아질수록 크롬 카바이드가 많이 생기는데, 크롬은 카바이드가 되면 내부식성에는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카바이드가 되지 않고 남아있는 크롬만 부식을 막아줄 수 있다는 건데요. 그래서 스테인리스를 고탄소강으로 만들려면 기본적으로는 크롬도 더 넣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러면 비싸지기도 하고, 인성도 떨어지기 쉽습니다.

 

 또한 스테인리스는 탄소강에 비해 가공성이 떨어집니다. 탄소강처럼 뚝딱뚝딱 고전적인 방식으로 두들기고 열처리해서는 제대로 만들 수가 없고, 좀 더 공학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이건 바꿔 말하면 전통적 기법을 사용하는 데 제한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저렴한 스테인리스를 적당히 갈아 쓰면 내부식성 빼면 별로 성능적으로는 기대할 게 없습니다. 이는 전문 요리사들이 강철칼을 선호하게 하는 주된 요인입니다. 그러나 스테인리스도 돈을 들이면 많이 좋아집니다. 세상에는 좋은 스테인리스가 많이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 대부분의 주방칼은 스테인리스로 만들어지고, 사용됩니다.

 

 

 

 

 

*) 탄소강

 

 전문 요리사들이나 시장 상인은 스테인리스가 아닌 강철칼을 사용한다는 이미지가 있고, 실제로도 많이 사용합니다. 실제 써보면 이런저런 장점이 있습니다.

 

 보통 탄소강으로 부르는 범주의 강재는 철과 탄소 외의 다른 비철금속의 함량이 매우 낮아서 순수한 강철이라 부를 수 있는 것들이거나, 아니면 비철금속의 함량이 별로 높지 않은 저합금강입니다. 대조적으로 크롬 외 비철금속의 함량이 제법 높은 합금강도 있는데, 그런 건 고합금강이라 부릅니다. 고합금강에 대해서는 따로 후술하겠습니다.

 

 탄소강의 최대 장점은 높은 가공성입니다. 칼 제작자가 만들 때도 가공성이 좋고, 사용자가 날을 갈아서 쓰기도 좋습니다. 날을 예리하고 깔끔하게 세우기 쉽기 때문에, 조리사나 시장 상인 등이 사용하는 보편적인 조건에서 탄소강 칼은 스테인리스 칼보다 ‘잘 듭니다.’ 또한 단조과정을 거쳐 만드는 탄소강 칼은 보통 스테인리스 칼보다 두껍고 무겁기 때문에, 그 질량 때문에 절삭력이 높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시장에서 파는 통칭 무쇠칼은 상기하였듯 사실 강철단조칼입니다. 보통 저합금강에 속하는 스프링강이나 레일강을 사용해서 경도는 그다지 높지 않은 편이고, 대신 인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 특성 때문에 시장칼은 날을 세우기가 매우 쉬운 편입니다. 시장칼을 주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딱히 숫돌을 꺼낼 것도 없이 항아리나 도자기 컵 등의 유약이 발리지 않은 면을 이용해 날을 세우기도 합니다. 그런 데 갈아도 곧잘 갈릴 만큼 갈기가 쉽습니다. 또한 인성이 높기 때문에 마구 내리치면서 사용해도 날이 잘 깨지거나 하지 않고요.

 

 일제 주방칼에서 애용되는 백강(=백지=시로가미=White Steel)은 정제를 많이 한 거의 순수한 강철입니다. 그래서 백강은 거의 시멘타이트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백강으로 만든 칼은 열처리를 통해 경도를 높이더라도 고경도의 비철금속 카바이드가 거의 없어 아주 깔끔하게 날을 세울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백강 칼은 흔히 ‘절미(絶味)’가 좋다고 합니다. 1095라는 강철도 백강과 비슷하게 철과 탄소 외에는 별다른 비철금속을 포함하고 있지 않아 백강 대신 쓰이곤 합니다. 1095는 미해병대의 제식 총검과 단검의 소재이기도 합니다.

 

 시멘타이트는 크롬 카바이드에 비해 경도는 낮지만, 상대적으로 입자가 작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카바이드의 입자는 작고 균일할수록 좋습니다. 기본적으로 크고 불균일한 카바이드는 날의 강도와 인성을 떨어뜨리고, 날을 세우기도 어렵게 만듭니다.

 

 또한 열처리가 쉬운 탄소강의 특징은 칼날과 칼등 부분을 서로 다르게 열처리할 수 있는 여지를 줍니다. 칼날 부분은 담금질로 경화시키고 칼등 쪽은 부분적인 가열 후 담금질을 하지 않고 풀리게 만듬으로 더 높은 인성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단적인 인성을 확보할 경우, 아주 극단적인 충격과 변형에 강해집니다.

 

 그러나 탄소강은 부식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비철금속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강철일수록 더 쉽게 녹이 습니다. 그러니까 탄소강 칼은 익히지 않은 생선이나 육류 등, 기름기가 있고 잘 잘리지 않는 걸 다룰 때 적합합니다. 지방질은 탄소강 칼의 부식을 억제해줍니다. 대조적으로 과일이나 토마토, 김치 등 산이 있는 걸 탄소강 칼로 자르면 날이 쉽게 부식됩니다. 적어도 산을 묻힌 상태로 오래 두면 좋지 않습니다.

 

 부식을 줄이려면 탄소강 칼은 항상 건조한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개수대에 오래 두거나 하는 건 당연히 안 되고, 설거지 이후 곧바로 물기를 닦아내야 하는 것은 물론, 보관 장소도 가능한 건조해야 합니다. 싱크대 밑 선반 안쪽같이 습기가 차기 쉬운 곳에 오래 두면 쉽게 녹이 납니다. 바람이 잘 통하는 칼꽂이를 사용하는 게 좋으며, 나는 설거지 이후 키친타올로 물기를 닦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생각하여 키친타올로 닦고, 헤어드라이어로 말린 이후 외부 공기가 통하고 자석 접촉이 없는 환경에 보관합니다.

 

 그렇게까지 신경써야 하나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테지만, 탄소강 칼은 상기한 것처럼 해도 실내가 습하거나 하면 녹이 피어오르곤 합니다. 연마중에도 녹이 피어오른다는 말까지 나오는 게 순수한 탄소강입니다. 쓰다 보면 녹을 전혀 경험하지 않을 수는 없으므로, 녹에 좀 무심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붉은 녹이 표면에 스는 정도는 괜찮지만, 안쪽으로 슬다 보면 아예 칼의 수명이 끝나기 때문에, 녹이 피어오르면 문질러서 제거해줄 필요는 있습니다. 붉은색이 보이면 일단 철수세미로 문지르기라도 하면, 붉은 녹이 더 피어오르는 건 억제할 수 있습니다. 보기엔 안 좋지만 철의 녹이 딱히 몸에 나쁘지는 않기 때문에, 붉은 녹만 제거하면서 쓰면 사용하는데는 문제가 없습니다. 녹으로 인한 칼의 손상이 문제입니다.

 

 한편으로 탄소강 칼을 다룰 때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녹이 안 슬도록 기름을 먹이고 팬 시즈닝하듯 굽는 경우가 있는데, 구우면 안 됩니다. 구우면 열처리한 게 풀릴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뜨거운 음식 정도의 온도는 칼날의 열처리를 풀 만큼 뜨겁지 않지만, 불꽃은 이야기가 다릅니다.

 

 탄소강 칼을 보관할 때는 녹 방지를 위해 산패하지 않는, (먹어도 문제없게) 정제된 미네랄 오일을 바를 수 있습니다. 반드시 정제된 걸 사용해야합니다. 도마 오일을 사용하면 됩니다. 아니면 더 강한 방청효과가 있는 것도 있습니다. 바셀린입니다. 바셀린은 먹어도 됩니다. 챕스틱같은 립밤도 바셀린 베이스로 만드는 겁니다. 소화가 안 되니까 많이 먹으면 배탈이 날 확률이 높겠습니다만, 바셀린을 처음 개발한 사람은 바셀린이 몸에 좋다고 믿어서 매일 1큰술씩 먹었는데 만 96세까지 살았다고 전해집니다.

 

 

 

 

*) 고합금강/분말강/공구강

 

 일반적으로 철과 탄소 외 다른 원소가 많이 들어가지 않은 철강은 탄소강이라 부릅니다. 백강이나 10XX같은 걸 제외한 통칭 탄소강은 저합금강(Low Alloy Steel)이라 부르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수 있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고합금강(High Alloy Steel)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철과 크롬 외의 다른 비철금속이 많이 들어간 것들을 의미합니다. 크롬이 많이 들어가면 스테인리스고요. 엄밀히 보면 모든 스테인리스는 고합금강입니다만, 편의를 의해 구분해 부르곤 합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스테인리스인 고합금강과, 스테인리스가 아닌 고합금강이 있습니다. 물론 스테인리스 중에도 크롬 외의 비철금속이 많이 들어간 것들이 꽤 있고요.

 

 대다수의 고합금강은 가공용 공구를 만들기 위해 개발되었습니다. 공구를 만들기 위한 강재를 공구강이라 합니다. 절삭공구 같은 걸 만드는 데 쓰는 금속이다보니 단단하고 마모에 강해야 합니다. 특히 철강재료를 고속절삭하기 위해 개발된 건 고속도공구강(=하이스강)이라 하는데, 용도가 용도인만큼 높은 경도를 요구합니다.

 

 바나듐, 텅스텐, 니오븀 등의 일부 금속 원소는 탄소와 결합하여 카바이드가 되면 아주 높은 경도를 지니게 됩니다. 커런덤(=사파이어=산화알루미나)보다 경도가 높은 카바이드를 형성하지요. 이런 원소가 많이 들어간 합금으로 도검을 만들면 높은 경도와 칼날 유지력을 가지게 됩니다.

 

 그런데 상기하였듯 카바이드는 작고 균일할수록 좋습니다. 그리고 전통적인 야금법을 사용할 때 비철금속을 너무 많이 섞으면 크고 불균일한 카바이드를 형성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그래서 더 작고 균일한 카바이드 형성을 위해 고합금강을 야금할 때는 분말야금법을 사용하곤 합니다. 분말야금법으로 야금하는 강재를 분말강(Powder Steel)이라 부릅니다.

 

 분말야금법은 금속가루를 섞고 가압하여 원하는 형태를 만든 후, 녹는점 이하의 온도로 가열하여 소결시키는 방식입니다. 녹는점이 높은 금속에 대한 야금법으로 유용한 방식인데, 카바이드를 작고 균일하게 만드는 효과도 있습니다.

 

 고경도 고합금 파우더 스틸로 도검을 제작할 경우, 매우 날을 세우기 어려운 대신 그만큼 칼날 유지력도 높은 날물을 만들 수 있습니다. 아웃도어 나이프는 고경도 분말합금강의 사용에 적극적인 편입니다. 다만 상대적으로 주방칼 분야에서 고경도 분말합금강의 사용은 일부 강종에 한정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웃도어 나이프에서만큼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아웃도어 나이프는 주방칼에 비해 보다 다양한 걸 자르게 됩니다. 나무나 밧줄처럼 음식물에 비해 단단하고 질긴 걸 자를 때가 많지요. 고성능 아웃도어 나이프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나이프를 쐐기처럼 사용해 나이프를 나무에 꽂고 망치질을 해 나무를 쪼개기도 합니다. 그러나 요리사들처럼 섬세한 절삭을 하는 경우는 적습니다.

 

 대조적으로 조리사들은 아웃도어 캠퍼들만큼 단단한 걸 작은 칼로 잘라대지는 않습니다. 뼈를 자를 때는 인성이 좋은 칼을 쓰거나 아예 톱을 쓸 때가 대부분이고, 칼을 보다 조심스럽게 다루고, 더 자주 갈기도 합니다. 요리사들은 날을 제대로 세운 주방칼로는 도마를 긁는 것도 기피합니다. 그리고 주방칼의 칼날은 평균적으로 아웃도어 나이프보다 크고 깁니다. 그러니까 조리사들은 보통 연마가 어렵고, 소재비와 가공비만으로도 값비싼 고경도 분말합금강에 대한 선호가 덜합니다. 나는 그런 거 좋아합니다만, 굳이 보자면 주방칼로 사용할 때 고합금강의 장점은 날을 한 번 세워놓으면 그게 거의 무뎌지지 않고, 일정 이상의 날카로움이 장기적으로 유지된다는 것 정도입니다. 이 자체만 놓고 보면 멋진 장점이긴 하지만, 가격과 연마의 어려움, 그리고 고가의 주방칼 이용자의 특성을 생각해보면 고합금강 주방칼이 많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자세한 내용은 후술하겠지만 편각날 칼의 우라면이 고경도 고합금강이면 갈기가 불가능에 가까워서 실질적으로 이상적인 예각날을 세우는 게 불가해지기도 합니다.

 

 

 

 

 

*) 다마스커스

 

 다마스커스는 강재는 아닙니다만, 따로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마스커스 식칼이라는 걸 많이 팔거든요. 물론 주방칼만 다마스커스가 있는 건 아니고요. 소재를 다마스커스 강이라는 식으로 표기하고 파는 칼도 많습니다.

 

 원래 다마스커스는 시리아의 수도 이름입니다. 그런데 이 도시는 다마스커스 검으로 더 유명합니다. 현재의 시리아, 레바논, 이스라엘, 요르단 등지에서 만들어지던 검을 그렇게 불렀지요. 그냥 다마스커스라고 하면 시리아의 수도보다도 다마스커스 검을 이야기할 때가 더 많을 정도입니다. 역사적으로 살라흐 앗 딘이 사용하던 검으로도 유명합니다. 미디어에서는 대표적으로 총몽(Gunnm/Battle Angel Alita)에 다마스커스 블레이드가 나옵니다.

 

 다마스커스 검은 인도에서 생산되던 우츠강으로 만든 검이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전승으로 그 검은 당시 유럽에서 사용하던 검에 비해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마스커스에 대한 이런저런 전설이 전해져오는데, 다마스커스에는 모하메드의 사다리로 불리는 독특한 무늬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18세기 들어 우츠강을 만드는 인도 철광석이 고갈되면서 다마스커스는 맥이 끊기게 됩니다.

 

 이와 별개로 패턴 웰디드라는 게 있습니다. 제강기술이 충분히 발전하지 못했던 옛 시대에는 철에 들어가는 탄소의 양을 조절하는 게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탄소함량이 균일한 철을 원하는대로 만들 수가 없었고, 차선책으로 탄소함량이 낮은 철(연철/연강)과 높은 철(고탄소강/주철)을 섞어 열간단조 접쇠를 반복하면서 원하는 특성을 만들곤 했습니다.

 

 그렇게 만든 접쇠단조강철이 부식되면 강철 또는 주철과 연철 또는 연강이 레이어를 이루면서 다른 색깔을 띠고 무늬를 만들게 되는데, 그 모양이 아름답기 때문에 도검장인들은 의도적인 무늬를 만드는 기술을 터득하게 됩니다. 접쇠로 그런 무늬가 생긴 도검을 패턴 웰디드 도검으로 불렀습니다.

 

 그런데 위에 이야기했듯 다마스커스 검도 독특한 무늬가 있었습니다. 다마스커스 검을 동경하던 유럽인들은 패턴 웰디드에서 다마스커스의 비밀을 밝히려고 했거나, 패턴 웰디드 도검을 다마스커스라고 팔았던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러다가 패턴 웰디드를 다마스커스로 부르는 게 일반화되었고, 현대에는 다마스커스와 패턴 웰디드가 거의 같은 의미로 쓰입니다.

 

 시대가 지나 다마스커스를 만들던 우츠강에 대한 현대적인 연구가 있었습니다. 우츠강에는 바나듐, 몰리브덴, 망간, 크롬, 니오븀 등이 약간 포함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원래 철광석에 그런 비철금속이 포함되어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함량이 높지는 않아도 우츠강은 자연적인 합금이었단 말이지요. 당시 기술을 사용해 그런 합금으로 도검을 만들게 되면 독특한 무늬가 생길 수 있었다고 합니다. 연구에 따르면 바나듐과 망간이 독특한 무늬를 만드는 게 주로 기여했다는 것 같고요. 지금이야 바나듐 합금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고, 사용할 수도 있지만 옛날에는 아니었지요.

 

 결론적으로 말하면 ‘다마스커스 강’으로 만들었다는 칼들이 있습니다만, 실제로 ‘다마스커스 강’은 딱히 없습니다. ‘우츠강’은 있었지만 본래의 우츠강은 다 캐서 사라진 지 오래고요. 우츠강을 재현할 수는 있지만 의미는 없습니다. 비철금속 합금은 현대에 드문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츠강보다 훨씬 좋은 합금강이 널린 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 21세기입니다. 종종 우츠강을 개인적으로 재현했다거나, 재현된 우츠강으로 칼을 만든다거나 한다는 칼 상인들도 있는데 그냥 무시하면 됩니다.

 

 현대에 다마스커스 칼이라는 건 접쇠단조와 부식으로 무늬를 만든 패턴 웰디드 도검입니다. 그 무늬는 절삭성능 자체에는 딱히 의미있는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장식적인 의미가 크지요. 주방용품은 예쁜 게 좋으니까 주방칼이 다마스커스인 건 당연히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외의 의미는 크지 않습니다.

 

 만약 시판하는 주방칼의 소재가 그냥 ‘다마스커스 강’으로 적혀있다면, 그건 제작자가 다마스커스 무늬가 나오도록 이미 접쇠과정을 거쳐 나온 강재를 구매해서 칼을 만들었다고 생각해도 됩니다. 칼을 만드는 단조사가 직접 접쇠를 하지 않은 겁니다. 제작자 입장에서는 ‘다마스커스 강’을 구매해서 만들었으니까, 다마스커스 강으로 만들었다고 표현해도 틀린 말은 아닌 것이지요. 실제 단조사가 직접 접쇠공정을 거치게 되면 시간과 노동력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많은 경우 이미 접쇠공정을 거친 제품을 이용해서 만든다고 알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스테인리스제 다마스커스 주방칼은 많은 경우 칼날에 해당하는 중심부 강재와, 다마스커스 무늬를 만드는 옆면 강재가 다른 구성입니다. 이미 접쇠가 되어 있는 다마스커스 강과 중심 강재를 구매해서 만들기도 하고, 단조사가 직접 바깥쪽 패턴웰디드 부분을 만들기도 합니다.

 

VG10 - VG2 코어리스 다마스커스 켄카타 스지히키. 제작자 사카이 타카유키

 그렇지만 날물을 구성하는 금속을 따로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다마스커스는 코어리스라고 부릅니다. 전체를 좋은 소재로 만든 코어리스 다마스커스는 후술할 혼야끼처럼 고급품입니다. 스테인리스에 비해 탄소강 다마스커스는 코어리스인 경우가 많은데, 탄소강 쪽이 단조 가공이 쉽다 보니 코어리스를 만들기도 쉬운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 좀 더 간단하게 그냥 패턴 무늬를 칼에 새겨서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경우 단점은 겉면이 부식되거나 갈거나 해서 나가면 무늬가 사라지게 된다는 데 있습니다. 대조적으로 제대로 접어서 만든 다마스커스는 표면을 좀 갈아내도 안쪽도 패턴이 있으니까 무늬가 유지됩니다. 산화가 제대로 안 되면 무늬가 잘 안보일 수 있기는 한데, 부식을 좀 시켜주면 무늬가 다시 드러납니다.

 

 다마스커스 주방칼은 일반적으로 칼등 두께가 조금 두꺼운 편입니다. 접쇠 열간단조 공정이 들어가니까 칼등이 두꺼워지는 경향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부의 다마스커스는 부식시켜 무늬를 드러내는 과정에서 두 종류의 강재가 서로 다른 정도로 부식되면서 칼 표면에 손으로 만지면 만져지는 요철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 경우 칼날 표면이 매끄럽지 않기 때문에 음식물을 썰 때 잘 달라붙지 않습니다. 다만 요철이 있어야 제대로 접어 만든 다마스커스인 건 아닙니다. 요철이 만져지지 않을 정도로 살짝 부식되더라도 패턴은 보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나는 다마스커스는 요철이 있는 쪽을 선호합니다.

 

 

 

 

*) 비철금속

 

 보통 주방칼은 강철이나 강철합금으로 만듭니다만, 아예 강철이 아닌 비철금속으로 칼을 만들기도 합니다. 주방칼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의 비철금속 소재로는 티타늄과 리퀴드 메탈이 있습니다. 리퀴드 메탈은 지르코늄, 티타늄, 니켈, 구리 등의 합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둘 다 일반적인 주방칼 소재는 아니기 때문에 나는 아직 사용해보지 못했습니다. 티타늄은 흔한 이미지로는 강철보다 강한 소재인 것처럼 알려져있지만, 실제로 그렇지는 않습니다. 티타늄 합금은 무게에 비해 강도가 강하고 녹이 슬지 않아 항공기나 자전거 등에 사용됩니다만, 도검에는 사용하지 않는 이유가 가공하기도 어려운데 강철에 비해 강도가 나오지 않습니다. 극단적으로 부식이 잘 일어나는 조건, 즉 바닷속 작업용 날붙이 같은 걸로 사용되긴 합니다만, 그 용도로도 고질소 스테인리스강이 나온 이후에는 의미가 크게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 세라믹

 

 세라믹으로 만든 식칼도 시판되고 있습니다. 세라믹은 경도가 높고 부식이 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금속이 닿으면 맛이 변질되는 예민한 식재료를 다룰 때 이점이 있고요.

 

 단점은 인성이 없어서 충격을 받으면 깨진다는 겁니다. 떨어뜨려도 깨지고, 얼은 음식처럼 너무 단단한 것도 안 자르는 게 좋습니다. 호쾌하게 내리쳐서 닭뼈 같은 걸 가르는 식의 사용도 안 됩니다. 비트는 데도 철제 칼보다 약합니다. 금속에 비하면 세라믹은 인성이 거의 없는 수준입니다.

 

 경도가 워낙 높다 보니 세라믹 칼은 날이 잘 닳지는 않지만, 한 번 닳고 나면 다시 날을 세우는 게 어렵습니다. 좋은 세라믹 칼날은 고급 숫돌 수준의 경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이아몬드 숫돌 같은 거 아니면 세라믹 날 세울 생각을 하질 말아야 합니다. 다만 세라믹 식칼로 유명한 교세라에서는 날을 세우는 툴을 팝니다. 그런 걸 이용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세라믹은 철 대비 비중이 가볍다 보니 결과적으로 칼도 가볍습니다. 그래서 질량을 이용한 절삭에는 불리하지만, 작은 과도 같은 걸 장시간 사용할 때는 좋습니다. 한참 무언가 벗길 때는 칼이 가벼울수록 피로가 덜합니다. 다만 세라믹 필링 나이프 수준이 되면 워낙 가볍다 보니 세게 쥐고 있지 않게 되고, 그래서 더 떨어뜨리기 쉽기도 합니다. 그러면 어김없이 칼날의 이 정도는 나가 버리곤 합니다.

 

 녹이 절대로 안 스는 건 세라믹의 두드러지는 장점 중 하나입니다. 그 어떤 금속도 내부식성에서는 세라믹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칼을 만약 매우 뜨거운 것에 사용해야 한다면, 그나마 세라믹 칼이 낫습니다. 금속 도검은 열처리가 풀릴 수 있지만 세라믹은 그런 문제는 없습니다.

 

 

 

 

 

 

하몬이 두드러지는 혼야끼

*) 혼야끼와 카스미

 

 일본식 주방칼은 날 부분의 중심강재와 날물 바깥쪽 강재가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단일 소재로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단일 강철(하가네)계열 소재로 만든 일본식 주방칼을 혼야끼(혼야키)라고 합니다. 대체로 고급품으로 취급되며, 특히 물로 담금질한 미즈야끼 혼야끼를 더 고급품으로 칩니다. 기름으로 담금질한 건 아부라 혼야끼라 부릅니다. 미즈야끼 대비 조금 저렴합니다.

 

 혼야끼는 진흙을 발라 담금질해 제작하는데, 이 과정에서 진흙을 바르는 모양에 따라 하몬이라고 부르는 특유의 무늬가 생깁니다. 카타나가 현대 일본에서 미술도검 취급받듯, 혼야끼도 어느 정도는 그렇습니다. 물론 실제 사람 벨 일이 없을수록 좋은 카타나에 비해 (와키자시는 야쿠자들이 진짜로 쓰긴 합니다.) 혼야끼 주방칼은 주방에서 실전을 뛰긴 하지요.

 

 여담으로 강철이 아닌 스테인리스 등으로 일본에서 단일소재 칼을 만들면 젠코우라고 합니다. 강철제를 젠코우라 해도 틀린 표현은 아니지만, 보통 혼야끼라 부릅니다. 그리고 중심강재와 날물 바깥쪽 강재가 다른 일반적인 것은 카스미 또는 아와세라고 합니다.

 

 카스미는 양각날 칼의 경우 중심강재를 바깥쪽 강재가 양쪽에서 감싸게 됩니다. 이 경우 세 겹으로 강재가 구성되기 때문에 산마이(三枚)라는 표현도 씁니다. 그런데 대조적으로 편각날 칼은 우라면은 중심강재 그대로고, 반대쪽만 연한 강재를 쓰게 됩니다. 그래서 이 경우는 니마이(二枚)라는 표현을 씁니다.

 

 산마이를 만들 때 날물은 백강이나 청강같은 강철제를, 그리고 바깥쪽 금속은 스테인리스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만든 칼을 스텐클래드라고 표현하며, 날은 강철칼이기 때문에 절삭 특성과 날 관리법은 강철칼과 같으나 칼몸쪽은 부식이 억제됩니다. 이런 칼은 날이 부식되면 갈아서 쓰면 되기 때문에 관리가 편한 게 장점입니다.

 

 이상 재질 설명이었습니다. 다음으로는 주방칼에 사용되는 강재들을 설명해보겠습니다.

 

 

 

백강 (=백지=시로가미=White Steel)

 

: 본문에서 몇 번 언급한 탄소강입니다. 철과 탄소 외의 다른 성분을 거의 제거한 것으로, 망간 0.2~0.3%, 실리콘 0.1~0.2%, 인 0.025%, 황 0.004% 정도가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조사는 히타치이며 포장지가 백색이라 시로가미라 부릅니다. 일본식 단조 주방칼에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백강은 종류가 3종류 있습니다. 기본적인 백강은 탄소함량이 1.0~1.2%입니다. 이것을 백2강 또는 시로가미 #2같은 식으로 부릅니다. 여기서 탄소함량을 1.2~1.4%로 높인 버전은 백1강입니다. 그리고 반대로 탄소함량을 0.8~0.9%로 줄인 버전이 백3강입니다.

 

 강철은 탄소함량이 높아지면 경도가 올라가고, 대신 인성이 떨어집니다. 세 버전 중 백1강의 경도가 가장 높지만, 인성은 가장 낮습니다. 인장강도가 가장 높은 건 이론적으로 백3강입니다. 탄소강의 인장강도는 탄소함량 0.86~0.87% 정도인 공석강에서 가장 높아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공석강보다 탄소가 더 들어가면 인성이 부족하여 취성(깨지는 성질)이 생기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백강은 써는 맛(절미)이 좋기로 유명하고, 연마가 쉬우며, 백강으로 만든 칼들은 고전적인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나는 내가 가진 백강 칼들을 좋아합니다. 나는 백강보다 절미와 절삭 후의 완성도가 좋은 강재를 알지 못합니다.

 

 

청강 (=청지=아오가미=Blue Steel)

 

: 백강에 약간의 텅스텐(1.5~2%)과 크롬(0.3~0.5%)을 넣은 버전입니다. 백강과 함께 일본식 강철칼 소재로 세계적으로 널리 쓰입니다. 텅스텐이 좀 들어가기 때문에 텅스텐 저합금강이라 할 수 있고, 그래서 백강과의 차이가 생깁니다. 더 높은 칼날 유지력을 기대할 수 있지만, 더 쉽게 깨지고 연마가 어려워지고, 현실적으로 절미와 절삭 후의 결과물이 거칠어집니다.

 

 청강은 1강과 2강만 있고, 3강은 없습니다. 그리고 후술할 슈퍼청강이 있습니다.

 

 

슈퍼청강 (=슈퍼청지=아오가미 슈퍼)

 

: 청강의 경도 업그레이드 버전격입니다. 탄소 1.4~1.5%, 크롬 0.3~0.5%, 텅스텐 2.0~2.5%, 몰리브덴 0.3~0.5%, 바나듐 0.5%의 저합금강. 청1강보다 탄소함량과 텅스텐 함량이 조금 더 높고, 몰리브덴과 바나듐이 약간 들어간 강재입니다.

 

 슈퍼청강은 제법 높은 탄소함량에 텅스텐과 바나듐이 들어있어 경도가 꽤 높이 올라갑니다. 그렇지만 크기가 큰 카바이드가 제법 섞여 있기 때문에 연마가 어렵고, 취성이 있으며, 단단한 걸 자를 때도 칼날이 유지되는 타입은 아닙니다. 고전적인 방식으로 야금되는 슈퍼청강의 미세조직은 균일하거나 입자가 작지 않습니다. 충격을 주는 방식으로 사용하면 안 되고, 섬세하게 다뤄야 합니다.

 

 나는 주관적으로 청강계열 칼들이 독특한 절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음식물을 자를 때 백강처럼 매끄럽지는 않지만 잘 파고드는 느낌이 있는데, 아마 성분을 생각해보면 백강이나 파우더 스틸 계열과는 달리 칼날의 미세 구조가 썩 균일하지 않을 겁니다. 이로 인해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미세영역에서 미미하게 써레이티드 효과가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1084

 

: 10XX는 상표권 없는, 거의 순수한 강철입니다. 그리고 그 중 1084는 공석강입니다. 백3강과 비슷하게 잘 만들면 준수한 경도와 인성을 확보 가능합니다. 1095에 비해 망간 함량이 좀 높기도 합니다.

 

 

1095

 

: 1084에 비해 탄소함량이 높습니다. 탄소 0.9~1.0%. 1084보다 높은 경도를 확보 가능하지만, 상대적으로 인성은 낮아집니다. 미해병대의 제식 총검 소재. 우리나라에서는 백강을 대체하여 사용합니다.

 

 서구에서는 핸드메이드 주방칼에 널리 쓰이는 탄소강으로, 15N20같은 다른 강재와 함께 코어리스 다마스커스를 만드는 데도 많이 쓰입니다.

 

 

5160

 

: 탄소 0.64%, 크롬 0.9%, 망간 1%, 규소 0.3%

 

 대표적인 스프링강입니다. 트럭 같은 데 사용되는 서스펜션용 판 스프링을 만드는 용도가 기본용도라 생각하면 됩니다. 인성이 매우 좋은 강재고, 1095나 백강에 비하면 크롬과 망간이 들어있어 녹이 살짝 덜 습니다.

 

 구하기 쉽고, 저렴하고, 인성이 매우 높은 특성 덕에 현대에 롱소드나 아밍 소드, 카타나, 사브르 같은 걸 만들 때 가장 많이 쓰는 강종 중 하나입니다. 히스토리 채널의 ‘최강의 검 더 마스터’ 같은 프로그램 보면 5160으로 검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여담인데 5160으로 만든 검 가지고 중근세로 가면 성검이나 신검 소리 들을 겁니다. 옛날 강재와 현대 강재의 품질차는 정말 큽니다.

 

 주방칼에 5160은 잘 사용되지는 않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많이 씁니다. 소위 무쇠칼이라 불리는 대장간 단조칼을 만들 때 5160을 곧잘 씁니다. 물론 시장에서 파는 단조칼은 강종을 거의 밝히지 않습니다만, 5160으로 만든 것도 시중에 제법 돌아다니고 있다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15N20

 

: 탄소 0.75~0.8%, 니켈 1.4~2%

 

 니켈이 포함된 탄소강입니다. 주방칼에서는 보통 탄소강 코어리스 다마스커스 제작에 쓰이는 강재로, 보통 1095와 함께 씁니다. 15N20에 포함된 니켈은 다소의 내부식성을 가지기 때문에, 1095와 함께 층을 이루도록 접쇠 열간단조를 한 이후 부식시키면 1095쪽이 더 많이 부식되고, 15N20은 덜 부식되고 보다 밝은 빛깔을 냅니다.

 

 

X50CrMoV15 (=1.4116≒X45CrMoV15)

 

: 탄소 약 0.5%, 크롬 13.8~15%, 실리콘 0.5~1%, 망간 1%, 몰리브덴 0.5~0.8%, 바나듐 0.15~0.2%

 

 거의 모두가 좋아하는 헹켈 즈윌링(쌍둥이) 및 인터네셔널(외둥이) 라인업에 속한 대부분의 주방칼을 만드는 강재. 다른 독일산 및 유럽산 칼을 만드는 주요 강재이기도 합니다. 어느 정도 가격대가 있는 중국산 주방칼에도 많이 씁니다.

 

 탄소함량이 낮은 편이고, 크롬 함량은 높은 스테인리스입니다. 그리고 망간과 몰리브덴도 들어가있기 때문에 내부식성이 높은 편입니다. 이 소재의 헹켈칼은 실제 사용해보면 녹이 잘 슬지 않습니다.

 

 다만 탄소함량이 낮기 때문에 경도가 많이 올라가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의외로 인성도 좋은 편이 아닙니다. 주방칼은 강종을 표시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강종을 표시하는 금속 중에는 경도, 인성, 강도가 모두 낮은 편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물론 강종을 표시하지 않는 칼보다는 표시하는 칼이 더 좋은 강재를 사용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은삼강 (=긴산코=실버3)

 

: 탄소 0.95~1.1%, 크롬 13~14.5%, 망간 0.6~1%, 실리콘 0.35%

 

 히타치의 스테인리스. 백강에 크롬과 망간이 들어간 것과 유사합니다. 탄소강과 유사한 절미를 가지는 스테인리스라 불리며 일본식 칼에 많이 쓰이는데, 텅스텐이나 바나듐같은 고경도 카바이드가 생기는 비철금속이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일식 요리사들이 많이 쓰는 합성커런덤 숫돌로 깔끔하게 날을 세울 수 있습니다. 백강만큼의 절미는 아니지만, 백강에 비해 칼날 유지력이 높고, 스테인리스니까 탄소강에 비해 사용이 편합니다.

 

 

 

420HC

 

: 탄소 0.45%, 크롬 13%, 망간 0.8%, 실리콘 0.4~0.8%, 몰리브덴 0.4~0.6%, 바나듐 0.2%

 

 마르텐사이트계 420중 탄소함량이 높은(HC) 상표권 없는 스테인리스입니다. 고급강재라 할 수는 없지만, 열처리를 잘하면 경도도 어느 정도 나오면서 매우 높은 인성을 가진 도검을 만들 수 있습니다.

 

 성분이 얼핏 비슷해보이는 X50CrMoV15와 비교하면 인성 차이가 크게 측정된 자료를 볼 수 있습니다. 의아해서 X50CrMoV15의 현미경 사진을 찾아본 결과 크고 불균일한 카바이드가 발견되는 반면, 420HC의 현미경 사진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째서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440C

 

: 탄소 0.95~1.2%, 크롬 16~18%, 망간 1%, 실리콘 1%, 몰리브덴 0.75~0.8%

 

 상표권 없는 마르텐사이트계 고경도 스테인리스. 경도와 칼날 유지력이 제법 높게 나오고, 포스코에서도 만들다보니 우리나라에서 구하기 쉬운 편에 속하는 금속이고, 어느 정도 고급품 칼을 만드는 데 쓰입니다.

 

 440C의 장점은 칼날 유지력이 제법 높으면서도 바나듐이나 텅스텐 같은 고경도 비철금속 카바이드가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커런덤 숫돌로도 충분히 날이 깔끔하게 섭니다. 그리고 탄소함량이 높은 것 치고는 녹이 잘 안 습니다. 크롬함량이 높고 망간과 몰리브덴도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440C보다 칼날 유지력이 높은 강재는 초고경도 카바이드를 포함한 것들이라, 연마 난이도도 높아집니다.

 

 

 

AUS8

 

: 탄소 0.7~0.8%, 크롬 13~14.5%, 몰리브덴 0.1~0.3%, 바나듐 0.1~0.25%, 망간 0.5% 이하, 니켈 0.3% 이하, 실리콘 0.8% 이하

 

일본 아이치에서 만드는 강재. 일본식 주방칼에 종종 씁니다. 탄소대비 크롬함량이 높아 내부식성이 좋고, 탄소함량 대비 준수한 칼날 유지력에 가격도 그리 높지 않은 편입니다.

 

 

AUS10

 

: 다른 건 AUS8과 같고 탄소함량이 0.95~1.1%, 망간 1% 이하입니다. 경도가 더 올라가고, 인성 및 내부식성은 살짝 낮아집니다. VG10과 종종 비교됩니다만, 일반적으로는 코발트가 들어간 VG10쪽의 평가가 더 높습니다.

 

 

VG10

 

: 탄소 0.95~1.05%, 크롬 14.5~15.5%, 망간 0.5%, 바나듐 0.1~0.3%, 몰리브덴 0.9~1.2%, 코발트 1.3~1.5%

 

 일본 타케후 사의 강재. 일본 상급 주방칼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강재입니다. 단조사들이 좋아하고,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기가 있어서 업그레이드 변형판이나 유사품도 꽤 있습니다. 중국에서 만드는 유사품은 10Cr15CoMoV라 부르지만, 오리지날 VG10과 같은 품질로 인정받고 있지는 못합니다.

 

 VG10의 코발트는 담금질하는 과정에서 물성을 좋게 만듭니다. 몰리브덴 함량도 높은 편이라 내식성을 확보합니다.

 

 

 

코발트스페셜

 

: 탄소 0.95~1.15%, 크롬 15~17%, 망간 0.3~0.5%, 바나듐 0.2~0.3%, 몰리브덴 1~2%, 코발트 2~3%, 실리콘 0.6~0.7%

 

 VG10에서 코발트 함량을 높이고, 그 외 크롬, 몰리브덴 등을 더 넣은 강재입니다. VG10만큼 많이 쓰이지는 않고, VG10의 업그레이드 강재쯤으로 취급됩니다.

 

 

 

VG10 MAX

 

: 탄소 1.1%, 크롬 16%, 몰리브덴 1.5%, 텅스텐 2.5%, 바나듐 3%, 코발트 2.5%

 

 일본의 칼 회사 슌(Shun)에서 독점 사용하는 강재. VG10의 업그레이드판으로 홍보되며, 알려진 성분은 위와 같습니다.

 

 파우더 스틸로 만들어야 할 것 같은 조성인데, VG10은 파우더 스틸이 아닙니다. VG10 MAX도 파우더 스틸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일반적인 강재로 위의 성분을 만들면, 내마모성은 확보할지언정 취성이 커지기 쉽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슌 칼을 쓰다가 날이 깨졌다는 말이 드물지 않게 나옵니다.

 

 나도 VG10 MAX 강재를 사용한 슌 칼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상기한 이유로 조심스럽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N690

 

: 탄소 1.08%, 크롬 17.3%, 몰리브덴 1.1%, 바나듐 0.1%, 코발트 1.5%

 

 오스트리아 뷜러사의 강재. 처음 개발된 버전은 코발트가 없었습니다. 초기버전과 구분해 부를 때는 N690Co라고 합니다. 조성이 VG10과 비슷하여 VG10과 비슷한 금속 취급을 받기도 하지만, 크롬함량이 VG10보다 높습니다.

 

 

SKD11 (=D2=SLD=1.2379)

 

: 탄소 1.4~1.6%, 크롬 11~13%, 망간 0.6~0.9%, 몰리브덴 0.8~1.2%, 바나듐 0.2~0.6%, 실리콘 0.4%

 

 오래 된 고크롬 냉간단조용 공구강으로 상표권이 없습니다. 서양에서는 주로 D2로 불리고, 우리나라나 일본에서는 SKD11로 주로 불립니다. 크롬의 함량 자체는 스테인리스에 준하지만, 탄소함량이 높아서 스테인리스에 해당하는 내부식성을 가지지는 못합니다. 스테인리스라기에는 내부식성이 살짝 모자란 수준입니다. 그렇지만 가격에 비해 칼날 유지력이 좋아서 서양에서는 도검용 강재로 많이 쓰이는 편입니다.

 

 일반적인 D2는 인성이 나쁘기 때문에 미국 크루서블사에서는 분말강으로 D2를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그건 CPM D2라는 이름이고, 일반 D2보다 인성이 훨씬 높습니다.

 

 

SKD12 (=A2=1.2363)

 

: 탄소 0.95~1.05%, 크롬 4.75~5.5%, 망간 0.4~1%, 몰리브덴 0.9~1.4%, 바나듐 0.15~0.5%, 실리콘 0.1~0.5%

 

 D2(SKD11)에 비해 탄소함량과 크롬함량이 낮은 냉간단조용 공구강입니다. 비철금속 함량이 높지 않고, 크롬함량은 스테인리스의 절반이 좀 안 되는 수준이라 전반적으로 탄소강과 스테인리스의 중간적인 조성입니다. 일반적인 사용자 입장에서는 녹이 잘 슬지 않는 탄소강이라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AEB-L

 

: 탄소 0.67~0.68%, 크롬 13~13.5%, 망간 0.6%, 실리콘 0.4%

 

 스웨덴 우데홀름사의 강재입니다. 별 특색없는 조성 같아 보이기도 하고, 파우더 스틸도 아니지만 좋은 강재입니다.

 

 AEB-L이전에 우데홀름사가 개발했던 AEB라는 강재가 있었습니다. 그건 조성이 은삼강하고 비슷합니다. AEB는 질레트 면도기 날 제작용으로 쓰였었는데, 이후 후술할 산빅의 12C27에 영향을 받은것인지, 아마도 특성을 개선하기 위해 탄소함량을 줄입니다. 그래서 Low carbon이라는 뜻의 L이 붙어 AEB-L이 개발됩니다. AEB-L은 면도칼날을 만들면서 개량된 강재라, 꽤 드물게 칼날용으로 개발된 강재라 할 수도 있습니다.

 

 AEB-L의 특징은 탄화물 크기가 작다는 겁니다. 현미경으로 보면 전체적으로 작고 고른 탄화물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스테인리스에서 이보다 탄소함량을 높이면 큰 탄화물이 생기기 쉽기 때문에 물성이 불균일해지고 깨지는 성질이 생기기 쉽고, 매끄럽게 연마하기도 어려워집니다. 이 문제를 개선하려면 분말야금법이 필요해지고요. 극단적인 절삭력이 필요한 면도날은 깔끔하게 날을 세울 수 있어야 함은 물론, 면도기 카트리지는 소모품이다 보니 단가가 높아도 안 됩니다. 그 조건을 충족하는 금속 중 하나가 AEB-L입니다.

 

 AEB-L은 그리 높지 않은 탄소함량에도 불구하고 경도를 꽤 높게 올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경도대비 인성이 높습니다. 또한 연마하기도 쉬운 편입니다. 단단한 걸 벨 때의 칼날 유지력도 탄소강보다는 현저히 높은 편입니다.

 

 단점이라면 AEB-L로 만든 칼들은 가격이 저렴한 느낌은 아니라는 겁니다. AEB-L이 좋긴 한데, AEB-L자체는 개발된지 오래 된 편이라 비싸게 살 거면 대안이 없지 않습니다. 그리고 스테인리스에 속하기는 하지만, 스테인리스치고 내부식성이 좋은 편은 아닙니다.

 

 

12C27

 

: 이 강재에는 두 버전이 있습니다. 12C27™은 탄소 0.6%, 크롬 13.5%, 망간 0.4%, 실리콘 0.4% 입니다. 그리고 12C27M은 탄소 0.52%, 크롬 14.5%, 망간 0.6%, 실리콘 0.4% 입니다. M버전은 탄소를 약간 줄이고 크롬과 망간을 늘려 내부식성에 집중한 버전입니다. ™버전이 일반적인 12C27입니다.

 

 스웨덴 샌드빅의 강재. 상기하였듯 AEB-L의 탄생에 일조하였습니다. 샌드빅사의 강재를 스웨덴강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12C27을 뜻할 때도 있습니다.

 

 

13C26 (≒FC61)

 

: 탄소 0.68%, 크롬 12.9%, 망간 0.6%, 실리콘 0.4%

 

 샌드빅사의 강재. AEB-L과 실질적으로 같은 강재 취급받습니다. 그리고 헹켈에서 FC-61이라고 표기하면서 고급품에 사용하는 강재가 있는데, 그게 13C26이나 AEB-L아니냐는 게 일반론입니다.

 

 

14C28N

 

: 탄소 0.62%, 질소 0.11%, 크롬 14%, 망간 0.6%, 실리콘 0.2%

 

 질소를 함유한 샌드빅사의 신형 강재입니다. 질소를 이 농도보다 더 합금하려면 비싼 설비가 필요합니다. 양산형으로는 최대한의 질소를 함유하여 우수한 특성을 가지게 개발한 강재라 할 수 있습니다.

 

 면도칼용 강재답게 13C26보다 주로 개선된 건 내부식성입니다. 상기하였듯 13C26 및 AEB-L의 내부식성은 스테인리스의 기준은 충족합니다만, 스테인리스 중 높은 내부식성은 아닙니다. 14C28N은 화장실에서 물에 적신 채 두는 면도날 카트리지에 사용하기 좋도록 내부식성이 높아졌습니다. 이 특성이 주방칼에도 잘 어울리는 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19C27

 

: 탄소 0.95%, 크롬 13.5%, 망간 0.65%, 실리콘 0.4%

 

 샌드빅사에서 내마모성을 위주로 개발한 강재입니다. 본래의 용도는 질긴 섬유나 택배박스용 종이를 자르라고 내놓은 건데, 고경도에 스웨덴 강재를 좋아하는 일본식 주방칼에도 사용합니다. 성분을 보면 은삼강하고 유사하기 때문에, 흡사한 강재로 생각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BD1N

 

: 탄소 0.85~0.95%, 질소 0.1~0.15%, 크롬 15~17%, 망간 1%, 몰리브덴 0.5%, 실리콘 1%

 

 미국 카펜터 사에서 만드는 질소강. 높은 내부식성과 경도를 동시에 확보한 스테인리스로, 질소강답게 내식성이 높으면서도 경도 또한 제법 높게 올라갑니다.

 

 

 

SG2 (=R2≒FC63)

 

: 탄소 1.25~1.45%, 크롬 14~16%, 몰리브덴 2.3~3.3%, 망간 0.4%, 바나듐 1.8~2.2%, 실리콘 0.5%

 

 일본식 주방칼에서 널리 사용하는 타케후의 분말강. SG2는 Super Gold 2의 약어입니다. 이 강재는 아마 주방칼에 가장 많이 쓰는 분말강일 겁니다. VG10과 경도는 유사하게 나오지만, 분말강이고 바나듐 함량이 의미있게 높은 만큼, 칼날 유지력에서 장점을 가지며 인성도 VG10보다는 미미하게 더 높습니다.

 

 파우더 스틸이다보니 전통적인 단조 공법을 좋아하는 일본에서는 주로 카스미의 날물용 강재로 이 강재를 쓰곤 합니다. 그런데 편각날 칼의 경우, 카스미로 만들더라도 우라면은 날물용 강재가 그대로 노출됩니다. 그래서 우라면을 연마해야 하는 편각날 칼에 SG2를 사용하게 되면 우라면의 연마가 어렵다는 걸 염두에 둬야 합니다. 바나듐 카바이드를 연마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텅스텐이 제법 들어가는 슈퍼청강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슈퍼청강과 비교하면 SG2는 경도도 덜 올라가고, 연마는 그나마 쉽습니다. SG2에 포함된 크롬은 바나듐이 카바이드로 변하는 비율을 줄입니다. 그리고 SG2는 분말강이기도 하고, 바나듐은 텅스텐에 비하면 카바이드의 크기가 작습니다. 카바이드가 작고 균일하면 연마가 용이해지고, 강도가 올라갑니다.

 

 한편으로 헹켈의 미야비 및 밥 크라이머 라인업에 많이 사용하는 FC63이라는 강재가 있는데, 이 SG2와 같은 강재라는 게 통설입니다.

 

 

 

SRS13

 

: 탄소 1.3%, 크롬 13%, 망간 0.3%, 몰리브덴 2.75%, 텅스텐 1.25%, 바나듐 1.5%, 실리콘 0.3%

 

 산요에서 만드는 파우더 스틸. 같은 라인업에 SRS15라고, 탄소 1.5%에 크롬 15% 버전이 있는데 그건 SG2의 유사 강재 취급받습니다. 그러나 SRS15는 텅스텐이 들어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SRS13은 그보다 탄소와 크롬이 조금 적은 버전입니다.

 

 

 

ZDP189 (≒MC66)

 

: 탄소 3%, 크롬 20%, 몰리브덴 1.4%, 바나듐 0.1%, 텅스텐 0.6%

 

 히타치의 파우더 스틸. 이 강재는 물성이 Steel이긴 합니다만, 사전적인 Steel의 범주는 벗어나 있습니다. 탄소가 3%나 들어가있기 때문에 고전적인 분류법으로 보면 이 철은 Steel이 아니라 Cast Iron(주철) 입니다. 그러나 20%의 크롬이 들어가 있고, 분말야금법이 사용되기 때문에 강철이라 할 만한 물성을 가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극단적이라 할 만큼의 탄소함량으로 경도를 높이 올린 고크롬강. 크롬이 20%나 들어가 있지만, 탄소가 너무 많아서 스테인리스가 아닙니다. 이 정도 탄소 대 크롬 함량에서는 너무 많은 크롬이 카바이드로 변해서, 남아있는 크롬으로는 충분한 내부식성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일반적인 탄소강 수준으로 녹이 스는 건 아니고, 세미 스테인리스 정도로 부를 수 있는 정도의 내부식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ZDP189의 특징은 엄청나게 경도를 올릴 수 있는데, 그 경도에 비해 날을 세우기 쉽다는 겁니다. 바나듐이나 텅스텐이 많이 들어가 있지 않고, 대체로 시멘타이트나 크롬 카바이드가 경도에 기여하고 있는데다 파우더 스틸이라 그럴 것입니다. 경도는 ZDP189가 슈퍼청강이나 SG2보다 높고, 칼날 유지력은 그 이상으로 격차가 크게 높지만 커런덤 숫돌로 날을 깔끔하게 세울 수 있는 쪽은 ZDP-189쪽이고, 슈퍼청강이나 SG2는 어렵다고 봐야 합니다.

 

 한편으로 헹켈 케맥스 및 미야비 일부 칼에 사용하는 MC66이라는 강재는 ZDP189라는 게 통설입니다.

 

 

 

HAP40 (≒CPM Rex 45)

 

: 탄소 1.27~1.37%, 크롬 3.7~4.7%, 몰리브덴 4.6~5.4%, 텅스텐 5.6~6.4%, 바나듐 2.8~3.3%, 코발트 7.5~8.5%

 

 히타치의 파우더 스틸. 고합금 고속도공구강으로 고도의 내마모성뿐만 아니라 내열성까지 갖추기 위한 조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텅스텐과 코발트를 섞는 건 초경합금의 일반적인 조성입니다. 비율이 높은 코발트는 텅스텐 카바이드를 소결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날물에 사용할 경우만 생각하면 바나듐 함량이 더 높은 게 좋습니다. 바나듐 카바이드는 텅스텐 카바이드에 비해 입자가 더 작고, 경도는 약간 더 높습니다. 그러나 텅스텐 카바이드는 상대적으로 열에 강한 편입니다. 그래서 고속도공구(하이스)강에는 텅스텐을 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고합금강은 경도가 높게 나오고, 칼날 유지력도 우수합니다. 그리고 HAP40은 고합금강 중 주방칼을 만드는 데 가장 많이 사용되는 강재일 겁니다. 이 강재의 조성은 미국 크루서블사의 CPM Rex 45라는 강재와 유사하여, 거의 같은 강재로 취급받기도 합니다.

 

 HAP40은 저합금 탄소강에 비하면 크롬함량이 높고, 몰리브덴이 많이 들어있으므로 어느 정도의 내부식성은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스테인리스 수준은 아닙니다.

 

 이 강재로 만든 주방칼은 실제 사용해보면 절삭하는 느낌이 다소 독특합니다. 아무래도 일반적인 Steel이나 Stainless Steel과는 조성이 많이 다르다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이쯤되면 강철로 부르기 힘든 합금이라 봐도 될 것 같습니다.

 

 

 

CPM S35VN

 

: 탄소 1.4%, 크롬 14%, 몰리브덴 2%, 바나듐 3%, 니오븀 0.5%

 

 미국 크루서블사의 파우더 스틸. 개발과정에서 나이프를 위해 제작된 드문 강재 중 하나입니다. SG2에 필적하는 칼날 유지력인데, 인성은 SG2보다 현저하게 더 높습니다. 니오븀은 작은 크기의 카바이드를 형성해서 날물에 좋은 특성을 부여합니다. S35VN은 아웃도어용 나이프를 만드는 데 주로 사용됩니다만, 미국에서는 고성능 주방칼 제작에도 사용합니다. 나는 S35VN과 후술할 Elmax를 유사한 레벨의 강재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평가는 Elmax가 더 좋은 것 같습니다만.

 

 

 

Elmax SuperClean

 

: 탄소 1.7%, 크롬 18%, 몰리브덴 1%, 망간 0.3%, 바나듐 3%, 규소 0.8%

 

 스웨덴 우데홀름의 파우더 스틸. 통칭 ‘슈퍼 스틸’로 불리는 강재 중 하나입니다. 높은 경도, 높은 칼날 유지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SuperClean’은 우데홀름의 파우더 스틸에 붙는 이름입니다.

 

 S35VN과 비교하면 칼날 유지력이 좀 더 높고, 인성은 조금 떨어집니다. M390과 비교하면 칼날 유지력은 다소 부족하고, 인성은 조금 더 높습니다.

 

 

 

M390 (≒20CV≒204P)

 

: 탄소 1.9%, 크롬 20%, 몰리브덴 1%, 망간 0.3%, 바나듐 4%, 텅스텐 0.6%, 규소 0.7%

 

 오스트리아 뷜러사의 파우더 스틸. 본래 공구강으로 개발되었으나 도검에 사용했을 때 판타스틱한 성능이 나오기 때문에 미국의 크루서블과 카펜터에서 복제를 만들어 나이프용 강재로 사용하게 됩니다. 크루서블에서 만드는 게 20CV, 카펜터에서 만드는 게 204P입니다.

 

 이 슈퍼 스틸은 매우 높은 칼날 유지력과 내부식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탄소함량이 강철의 범주를 초월하는 수준(사전적인 강철의 탄소함량은 0.035~1.7%)으로 높은데다, 20%나 되는 크롬을 가지고 있어 카바이드도 많이 만드는 동시에 충분한 내부식성을 가질 만큼 크롬이 남는 것으로 보입니다. M390은 고탄소 마르텐사이트계 스테인리스 중 최고 수준의 내부식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나듐 함량도 높은 편이다 보니 일반적으로 주방칼에 사용되는 스테인리스 중 M390은 가장 높은 칼날 유지력을 가진 것으로 추정합니다. M390보다 더 높은 칼날 유지력을 가지는 강재는 대체로 스테인리스가 아니거나, 주방칼을 만드는 데는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상기한 ZDP189나 HAP40은 M390에 필적하거나 어쩌면 그 이상의 칼날 유지력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만, 그것들은 스테인리스는 아닙니다.

 

 다만 인성은 낮은 편이기 때문에 거친 작업용 식칼 소재로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Cronidur 30 (=LC200N=Z-FiNit=1.4108=N360)

 

: 탄소 0.25~0.35%, 질소 0.3~0.5%, 크롬 14~16%, 몰리브덴 0.85~1.1%, 망간 1%, 니켈 0~0.5%

 

 고질소강. 강철에 섞인 질소는 탄소를 대신할 수 있지만, 일정농도 이상의 질소를 철과 합금하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크로니두르 30은 질소를 철과 합금하려는 시도 끝에 개발되었고, 획기적인 내부식성과 높은 인성을 가지는 강재입니다. 또한 인성에 비해 칼날 유지력도 나쁘지 않습니다.

 

 마르텐사이트계임에도 오스테나이트계 수준의 내부식성을 가진 강재인만큼 도검에 사용될 때는 부식이 쉬운 환경에서 아웃도어 나이프용으로 많이 쓰입니다만 헹켈에서 창립 280주년 기념칼, 트윈 1731에 크로니두르 30을 사용하면서 일부에게나마 보급되었습니다.

 

 통용되는 이름이 꽤 많은 강재인데 아웃도어 나이프 사용자에게 주로 알려진 이름은 LC200N입니다. 대조적으로 주방칼 사용자에게 알려진 이름은 크로니두르 30 쪽입니다.

 

 

 

CPM MagnaCut

 

: 탄소 1.15%, 크롬 10.7%, 질소 0.2%, 몰리브덴 2%, 바나듐 4%, 니오븀 2%

 

 높은 칼날 유지력, 칼날 유지력에 비해 꽤 높은 인성, 높은 내부식성을 동시에 가지는 파우더 스틸. 원래 이 셋이 같이 높기가 어려운데, 그걸 실제로 구현해낸 나이프용 강재입니다.

 

 탄소함량이 높지 않고, 탄소함량 대비 크롬 함량도 높은 편이 아니지만 크롬 카바이드의 형성을 최소화하는 배합으로 개발되었고 몰리브덴을 함유하여 내부식성이 높은 편입니다. 최근에 개발된 인기높은 강재. 제조사는 크루서블이고 개발자는 Larrin Thomas입니다.

 

 

 

 

 다음 차례로는 칼의 각 부분 및 그 형태 등에 대한 특성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ㄱ) 칼날

 

 날붙이는 물리력을 날끝에 집중시켜 무언가를 자르는 도구입니다. 잘 드는 칼은 칼끝의 두께가 얇고, 칼날 부분의 단면 형상이 예각이고, 베는 동안 날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완벽하게 날을 세운다고 한다면 날끝이 분자 하나만큼의 두께가 되면 이상적인 두께입니다만, 금속 칼의 경우 그 정도로 날을 세우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고, 그런 두께의 칼날은 유지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상적으로 간 금속 칼날은 실제로 수십 나노미터 수준의 날끝 두께를 가질 수는 있습니다.

 

 금속이 아니라 흑요석이나 유리, 석영을 사용한다면 극단적인 날끝을 만들 수 있긴 합니다. 흑요석은 날을 완벽하게 세우면 진짜로 3나노미터 수준의 날끝을 만들 수는 있습니다. 물론 주방칼에 흑요석을 쓸 일은 없습니다만.

 

 칼날 단면의 각도는 실질적으로 칼의 절삭력에 많은 영향을 줍니다. 칼끝의 단면은 쐐기 형태기 때문에, 각도가 예리할수록 잘 벨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동시에 각도가 예리할수록 날이 약해지고, 손상되기 쉽습니다.

 

 주방칼은 종류에 따라 날을 V자 모양의 양각날로 세우기도 하고, │/ 모양으로 편각날을 세우기도 합니다. 보통 편각날이 더 잘 든다는 인식이 있지만, 실제 절삭력을 측정해보면 동일 각도에서는 양각날 쪽이 더 절삭력이 높게 측정됩니다. 아마 │/ 모양의 / 부분이 자르는 대상에 대해 더 둔각이라 그럴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만 실제로는 회칼 등에는 │/ 모양의 편각날이 선호되고 있는데, 익히지 않은 생선살과 같은 부드러운 물성을 가진 음식물에는 편각날이 음식물을 우라면 반대 방향으로 밀어내면서 단점이 상쇄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양각날 칼은 일반적으로 편각날 칼에 비해 둔각으로 세워집니다. 편각날 칼은 우라오시쪽은 0°이기 때문에 15~20°수준으로 날을 세우는 게 어렵지 않은 반면, 양각날 칼은 20°수준으로 날을 세우려면 한쪽마다 10°로 연마해야 합니다.

 

 한편으로 편각날은 손잡이 쪽에서 볼 때 │/ 모양으로, 왼쪽에 우라면이 있는 게 일반적이고, 그게 오른손으로 쓰는 칼입니다. 그런데 왼손잡이도 있기 때문에, 왼손잡이를 위한 반대 방향의 편각날도 있습니다. 왼손잡이용 편각날 칼은 사용자가 적다보니 아무래도 더 비싸고, 공급도 적은 편이긴 합니다.

 

 칼날은 매끄럽게 세워질 수 있으면 좋지만, 실제로는 그렇게까지 매끄럽고 이상적으로 칼날을 세우기는 어렵습니다. 칼날 끝은 나노미터 단위의 세계고, 그보다 조금 두꺼운 부분도 마이크로미터 단위의 세계라 육안으로는 보이지도 않고 미립자는 만져지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보이지도 만질 수도 없는 미세 영역이 자르는 데는 영향을 줍니다.

 

 날을 세우는 방식은 칼날의 완성도에 영향을 줍니다. 일반적으로 추천되는 방식은 방수가 낮은 숫돌부터 시작해서 점차 높은 (고운) 숫돌로 손으로 갈아 마무리하는 겁니다. 다른 방식으로 날을 세우면 그렇게까지 매끄럽게 완벽하게 날을 세우기 어렵고, 기계적인 건식 연삭 도구를 사용하면 아예 마찰열로 온도가 너무 올라가서 열처리가 풀려버릴 수가 있습니다. 간이 칼갈이는 칼날 끝쪽만을 갈아버리고 보다 위쪽은 갈지 못하기 때문에 과도하게 사용하면 갈아도 잘리지 않는 무딘 날이 되어버리기도 합니다. 이상적인 내구성을 가지는 양각날의 단면은 볼록한 모양이어야 합니다만, 느슨한 벨트 샤프너를 이용해 숙련자가 갈 때만 구현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숫돌로는 바나듐이나 텅스텐 카바이드를 갈아낼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다이아몬드 숫돌을 사용하는 게 아니라면, 커런덤 숫돌로는 바나듐이나 텅스텐 카바이드는 갈아내는 게 아니라 떼어내게 됩니다. 커런덤이 경도가 더 낮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시장표 숫돌로는 스테인리스의 크롬 카바이드도 갈아내기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실질적으로는 카바이드의 입자 크기가 연마 난이도에 영향을 줍니다. 숫돌 등 연삭재의 요철 크기보다 카바이드가 작을 경우, 카바이드를 통째로 떼어내기 쉬워집니다.

 

 즉 경도가 높은 비철금속 카바이드가 큰 입자 크기로, 분균일하게 생길 경우 일반적인 연마로는 매끄러운 칼날을 세우기 어려워집니다. 그리고 카바이드와 주변 강철 조직의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큰 카바이드는 경계부분을 따라 칼날 끝이 안 보이게 깨져나가게 만들기 쉽습니다.

 

 한편으로 칼날 끝은 너무나 얇고, 금속은 어느 정도 충격이 가해져도 휘었다가 원래대로 돌아오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실제 미세영역에서는 칼날 끝이 휘었다가 원래대로 돌아오는 경우가 드물지 않게 발생합니다. 그러나 금속은 굽힘이 반복되면 피로파괴가 일어나기 때문에, 그에 대한 저항성(피로강도 및 인성)이 실제 매끄러운 날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카바이드는 인성을 떨어뜨립니다. 카바이드의 양이 많을수록, 입자의 크기가 클수록 인성이 떨어집니다.

 

 부식과 광물질의 형성 또한 칼날의 이상적인 날카로움에는 악영향을 줍니다. 부주의하게 다룰 경우 스테인리스도 조금씩 부식되며, 물에 녹아있던 광물질 성분들이 칼날 끝에서 말라 굳을 경우, 보이지 않는 크기의 결정을 만들어내 날카로움을 잃어버리게 합니다. 일상적으로 사용할 때는 아무 문제 아닌 게, 칼날 끝과 같은 나노미터 단위의 세계에는 악영향을 줍니다. 흔히 강철칼이 스테인리스보다 잘 든다고 하는 이유 중 하나가 강철칼 사용자들의 관리 방식에 있을 걸로 추정합니다. 강철칼 사용자들은 녹 방지를 위해 칼을 적신 상태로 방치하지 않습니다. 대조적으로 스테인리스 칼 사용자들은 칼을 더 편하게, 부주의하게 다루는 편이기 때문에, 아무리 날을 잘 세워놔도 그게 유지가 충분히 잘 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동일하게 주의하여 다루면 스테인리스 쪽이 더 날 유지가 잘 됩니다. 부식에 강하기 때문입니다. 칼날은 보이지 않는 수준의 부식으로도 보이지 않게 손상됩니다.

 

 다만 칼날은 이상적으로 매끄러운 날카로움을 유지하지 않더라도 어지간해서는 절삭은 됩니다. 때때로 손상되거나 잘못 연마되어 거칠어진 칼날이 소재에 따라 더 나은 절삭력을 보이기도 하는데, 보이지는 않아도 미세영역에서 톱날과 같은 모양이 될 경우 어떤 소재에는 더 잘 파고들면서 잘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음식물은 그저 자른다고 다가 아닙니다. 절삭하여 얼마나 깔끔한 절단면을 만들어냈는가에 따라 다른 결과물이 나옵니다. 물론 음식에 따라 완전히 매끄러운 절단면이 무조건 좋은 건 결코 아니기도 합니다.

 

 

 

 

 

일본식 편각날의 단면과 우라의 구조

ㄴ) 우라

 

우라는 양각날 칼에는 없고, 일정 이상 가격대의 편각날 칼에만 있습니다. 가격대가 좀 있는 편각날 칼은 얼핏 보기보다는 구조가 복잡한데, 편각날 칼의 단면을 │/라고 할 때, 왼쪽 │면은 실제로 평면이 아닙니다. 미미하게나마 오목하게 연마를 해 둡니다. 과장하여 표현하면 )/ 같은 모양이란 말이지요. 이 오목한 것을 우라, 오목한 면을 우라면, 오목한 곳을 우라스키, 연마로 생기는 우라스키 위아래의 평평한 영역을 우라오시라고 합니다.

 

 편각날 칼을 연마할 때는 │/ 모양의 오른쪽, 그러니까 /면을 통째로 가는 게 아닙니다. 모든 칼이 그렇듯 기본적으로는 날끝을 갈게 되지요. 그런데 │면이 평면이면 면을 통째로 갈아야 합니다만, 담금질로 경도가 올라간 날물을 통째로 가는 건 쉽지 않습니다. 실제로는 │면이 평면이면 어지간히 연마를 해서는 제대로 갈리지를 않고, 날을 편각날로 유지시키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라가 있습니다. 우라가 있기 때문에 큰 어려움 없이 날끝을 편각날로 세울 수 있는 겁니다.

 

 우라가 있기 때문에 편각날 칼은 숫돌을 이용해 손으로 연마를 해야 합니다. 우라면을 숫돌에 갈아 우라오시를 먼저 연마해주는 게 편각날 칼의 연마방식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편각날을 세우는 게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 외 우라는 음식물이 칼날에 덜 붙게 하는 효과도 있습니다. 날면이 오목하니까 아무래도 덜 붙게 됩니다.

 

 편각날 칼도 저렴한 건 우라가 없습니다. 우라는 일단 단조 과정에서 숙련된 단조사가 직접 망치로 때려 만듭니다. 그 다음에 수공연마과정에서 우라를 완성하고요. 그러니까 기본적으로는 제대로 만든 수공단조제품이어야 우라가 있다는 겁니다. 그냥 판 강재를 잘라 만드는 편각날 칼은 우라를 만들기 어렵습니다. 일본식 주방칼에서 수공 단조가 중요하게 취급되는 한 이유입니다.

 

 우라가 없는 편각날 칼은 실질적으로 날끝은 1:9 정도의 비대칭 양각날이라 생각해도 됩니다. 우라가 있는 칼도 완벽하게 편각날을 세우면 날끝이 쉽게 손상되는 경향이 있어, 끝부분이 둔각인 이중날(이토)을 만들거나 날끝의 우라오시를 살짝 갈아 비대칭 양각날을 만들어놓기도 합니다. 절삭력을 포기하고 내구성을 확보하는 식의 연마를 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는 거지요.

 

 탄소강 편각날 칼은 우라스키에 녹이 스는 걸 신경써야합니다. 우라면을 숫돌로 문지르더라도 오목한 우라스키에는 숫돌이 닿지 않으므로 직접 제거를 해 줘야 합니다. 우라스키에 붉은 녹이 깊이 파고들다보면 칼의 수명이 끝납니다.

 

 그리고 우라의 존재 때문에라도 일식 요리사들은 다이아몬드 숫돌같은 연마력이 강한 숫돌의 사용을 피하거나 최소한으로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편각날 칼은 날 부분의 우라오시를 소모하면서 사용하는 거고, 그러니까 날 부분의 우라오시를 아껴 사용해야 칼 자체를 제대로 오래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이아몬드 숫돌처럼 연마력이 강한 건 우라를 너무 많이 소모시키기 쉽습니다. 우라가 다 소모된 편각날 칼은 상기하였듯 비대칭 양각날을 세워 쓰게 되는 게 보통입니다. 우라를 다시 파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라가 있는 편각날 회칼은 양각날 칼에 비해 탄소강이 장점을 더 가집니다. 아무리 칼날 유지력이 높은 고합금강을 사용한다 해도, 경도가 높은 금속으로 만든 날은 취성이 있고 칼날의 안정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칼날 끝이 미세하게 깨지게 되고, 사용하다보면 미네랄 결정이나 부식에 의해서도 미세하게 손상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절삭력은 유지될지언정 절미나 절단면의 매끄러움이 유지될 수는 없습니다. 생선회의 특성상 절단면은 매끄러울수록 좋고, 그렇기에 회칼은 가능한 매끄럽고 완벽한 날이 유지되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결국 자주 연마하는 게 답이고, 우라면이 있는 편각날 칼을 자주, 완벽하게 갈면서도 최대한 오래 날쪽 우라오시를 보존하려면 탄소강만한 게 없게 됩니다. 파우더 스틸 같은 경우 애초에 우라를 만드는 게 어렵기도 합니다.

 

 

 

 

 

ㄷ) 칼등 두께

 

 칼등 두께는 주방칼의 특성에 많은 영향을 줍니다. 두께가 두꺼운 칼은 같은 날폭과 길이일 때 보다 무겁고 튼튼합니다. 그리고 음식물을 자를 때 쐐기처럼 파고들면서, 절삭과정에서 절삭이 끝난 부분을 벌려놓는 경향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수공 단조작업이 들어가는 칼들은 칼등 두께가 두꺼운 편입니다. 단조를 통해 칼날 부분은 얇게, 칼등 부분은 두껍게 만듭니다. 다마스커스의 경우 대체로 접쇠공정 덕에 두께가 어느 정도 있고요. 대조적으로 얇은 철판을 절삭가공해서 수공단조 없이 만드는 방식의 날물은 보통 두께가 얇습니다.

 

 도마 위에서 음식물을 자를때, 칼날의 질량은 절삭력에 제법 영향을 줍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칼날이 무거우면 잘 잘리고, 가벼우면 잘 잘리지 않습니다. 칼등 두께가 두꺼운 칼은 동일 조건에서 더 무겁기 때문에, 들어올리는 동작에 힘이 더 들어가지만 더 잘 잘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만 이런 경향은 음식물의 딱딱한 정도에 따른 차이가 심한 편인데, 예를 들어 부피가 크고 단단한 뿌리채소 같은 경우 형태변형이 어려우므로 칼등 두께가 얇은 쪽이 쉽게 파고듭니다. 두꺼운 칼은 무처럼 큰 뿌리채소를 자르는 데 적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익히지 않은 생선살이나 육류 같은 경우 질기긴 하지만 모양변형은 쉬우므로 칼등 두께가 두꺼운 칼로 당겨 잘라도 문제가 없고, 오히려 질량 때문에 얇은 칼보다 쉽게 잘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만 칼이 아예 파묻힐 정도로 부피가 큰 육류나 생선을 다룰 때는 칼날이 얇고 폭도 좁으면서 표면은 매끄럽지 않은 게 좋습니다. 그런 조건에서는 칼날과 음식물의 마찰을 줄일수록 칼이 잘 나갑니다. 어떤 음식물을 자르냐에 따라 잘 드는 칼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수공 단조작업을 거친 날 면의 한 형태

ㄹ) 날 면의 매끄러운 정도

 

 수공 단조작업이 있는 칼은 많은 경우 칼날 면이 매끄럽지 않게 마무리됩니다. 다마스커스가 아니라도 일부러 장식적인 모양을 만들어놓는 경우도 제법 많은데, 심미적인 이유도 있습니다만 실제 사용할 때도 특성이 달라집니다. 칼날 면이 매끄럽지 않고 우둘두둘한 부분이 많을수록 절삭시 음식물에 접촉하는 면적이 좁아집니다. 즉 마찰이 더 적게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칼날의 면적 대비 부피가 큰 음식물을 자를 땐 날면이 음식물에 덜 마찰할수록 쉽게 절삭됩니다. 다만 날면이 매끄럽지 않게 처리되는 칼은 보통 수공단조를 거친, 칼등 두께가 일정 이상 두꺼운 칼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두께가 얇은 게 이익인지, 아니면 날의 표면이 매끄럽지 않은 게 이익인지는 자르는 음식물의 특성에 따라 달라집니다.

 

경면 처리를 한 야나기

 반대로 경면처리라고, 날의 면을 거울처럼 가공하는 방식도 있습니다. 이는 고방수의 숫돌에 연마를 해서 아주 매끄러운 표면을 가지게 하는 것입니다. 아름다움을 위해 만드는 작업이고, 그래서 가격대가 좀 있는 수공단조도검에 시도되곤 합니다. 이 경우 보기엔 좋지만 음식물에 대한 마찰력이 높아지기 때문에, 부피가 큰 음식물을 자르기에는 덜 적합해집니다.

 

 참고로 수공단조 공정이 있는 쪽이 꼭 고급칼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날물 전체가 파우더 스틸인 경우에는 수공단조공정이 들어갈 여지가 없습니다. 일본식 주방칼은 날물은 파우더 스틸로, 바깥쪽은 수공단조로 만드는 카스미도 많습니다만 그게 날물 전체를 파우더 스틸로 만드는 것보다 우월한 방식은 아닙니다. 그런데 날물 전체를 고합금 고경도 파우더 스틸로 만들게 되면 대체로 칼등이 얇고, 날면은 매끄럽게 마무리됩니다. 워낙 비싸고 가공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테이퍼가 두드러지는 가라스키

ㅁ) 테이퍼와 곡률

 

 테이퍼는 도검에서 칼날이 핸들에서 끝으로 갈수록 폭이 좁아지거나 얇아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방칼은 보통 칼날의 두께는 일정하므로, 폭이 좁아질수록 테이퍼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곡률은 칼날이 휜 정도입니다.

 

 테이퍼는 주로 무게중심에 영향을 줍니다. 칼날이 길수록 무게중심이 손잡이 쪽이 있는 쪽이 다루기 편한데요. 테이퍼는 칼끝 부분을 가볍게 하고 손잡이 부분을 무겁게 해 다루기 편하게 만들어줍니다.

 

곡률이 큰 빅토리아녹스의 cimeter

 곡률은 절삭력과 상관이 있습니다. 곡률이 없는 주방칼은 음식물에 날이 1차원적으로, 그러니까 하나의 선으로 닿게 됩니다만 곡률이 심한 경우에는 0차원적, 그러니까 점의 형태에 가깝게 음식물이 날이 닿고 힘이 집중됩니다. 그래서 곡률이 있는 칼과 없는 칼은 절삭력이 좀 차이납니다.

 

 셰프 나이프/규토는 곡률이 있는 대표적인 칼입니다. 대조적으로 산토쿠는 곡률이 별로 없고, 나키리는 그보다 더 적거나 아예 없으며, 중식도는 거의 아예 곡률이 없습니다. 대조적으로 시미터는 셰프 나이프보다 큰 곡률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르기 어려운 걸 자를 때는 곡률이 있는 칼의 곡률을 이용하면 보다 쉽게 자를 수 있습니다. 밀거나 당기는 동작으로 자를 때 곡률의 효과가 커집니다.

 

 

 

 

손잡이에 가까운 부분의 날끝 모서리를 사용 가능한 타입의 6인치 셰프 나이프

ㅂ) 날의 뾰족한 부분

 

 뾰족한 칼끝이 필요한 작업들이 있습니다. 그냥 칼날로는 해결이 안 될 때가 있지요.

 

 키리츠케 규토나 페티의 경우 칼끝이 매우 뾰족하기 때문에, 뾰족한 칼끝이 필요할 때 유용합니다. 대신 그만큼 위험하니까 조심해야 하고요.

 

 일부의 칼은 손잡이쪽 칼날 끝이 뾰족하게 처리되어 있습니다. 이 부분도 사용 가능합니다. 그런데 다칠 확률이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이 뾰족한 걸 선호하지 않는 경우도 많고, 아예 갈아내서 뾰족하지 않게 처리하기도 합니다. 후술할 볼스터가 이 부분을 덮는 경우도 있고요.

 

 

 

 

 

풀탱

ㅅ) 슴베

 

 슴베(Tang)는 손잡이에 들어가는, 날물에서 이어지는 부분을 의미합니다. 손잡이가 슴베를 완전히 감싸서 슴베가 보이지 않는 타입은 히든탱 또는 하프탱, 슴베가 손잡이 끝부분까지 이어져서 손잡이가 슴베를 감싸는 형태면 풀탱이라고 합니다. 둘은 특성이 좀 다릅니다.

 

 내구성이 좋은 건 당연히 풀탱 쪽입니다. 풀탱을 실제 본 적이 없는 분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철판이 날 뿐만이 아니라 손잡이까지 쭉 이어지고, 손잡이는 그 철판을 감싸는 형태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어떤 풀탱 도검은 별다른 손잡이 없이 그냥 슴베에 마끈 등을 감아서 사용하는 타입도 있습니다. 주방칼은 그런 타입이 없지만, 아웃도어 나이프에는 그런 타입도 있지요.

 

끈을 감아 핸들을 처리한 풀탱 아웃도어 나이프

 풀탱 칼은 대략 유럽식입니다. 풀탱이 히든탱과 가장 다른 점은 무게와 무게중심입니다. 손잡이 끝부분까지 철판이 이어지기 때문에, 히든탱 대비 더 무겁고 무게중심이 더 손잡이 쪽에 있습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더 묵직하고, 무게균형이 잘 맞는 편입니다. 풀탱은 많은 경우 슴베가 드러나 있고, 슴베 면을 포함하여 쥐게 됩니다. 나는 슴베가 드러난 풀탱 핸들의 쥐는 감각을 좋아합니다.

 

 히든탱은 풀탱 대비 칼의 전체 무게는 보통 가볍습니다. 대체로 철제 슴베보다는 핸들 소재가 가볍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히든탱은 무게중심이 날 쪽에 있습니다. 긴 칼일수록 더 그러합니다. 그래서 쥐었을 때 느낌이 다릅니다. 일본식 회칼 계열은 칼등이 두껍고, 길이도 긴데 히든탱이기 때문에 무게중심이 현저하게 칼날쪽에 있습니다.

 

레이피어의 핸들 부분. 풀탱입니다.

 과거 전투용 도검은 풀탱이 많을 것 같아도 의외로 히든탱이 많았습니다. 풀탱은 히든탱 대비 도검으로 무언가를 베거나 할 때 손에 전해지는 충격량이 크기 때문입니다. 강재에 비해 연한 소재인 핸들이 충격을 흡수해줘야 손목이 덜 아프단 말이지요. 손에 닿는 탱 사이드가 부식될 여지도 있고요. 일본식 식칼은 카타나의 영향을 많이 받은 편이라 전통적으로 히든탱을 쓴다고 알고 있습니다. 대조적으로 서양 도검은 근대를 거치며 레이피어와 사브르로 발전하는데, 레이피어와 그 이후에 등장한 스몰소드, 에페, 플뢰레 등은 중세도검에 비해 날이 가느다란 도검이다보니 풀탱으로 만듭니다. 그래서 서양식 나이프는 풀탱이 많지 않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본식 팔각핸들. 히든탱입니다.

ㅇ) 핸들의 모양

 

 주방칼 손잡이의 모양은 실제 칼을 사용할 때 느낌에 많은 영향을 줍니다. 일본식 칼은 단면이 팔각으로 각이 져 있는 게 특징입니다. 히든탱 팔각핸들이 일본식 주방칼의 아이덴티티입니다. 각이 있기 때문에 원형계열 핸들이나 측면이 납작한 핸들과는 다른 그립감이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만드는 일본식 칼도, 일본식이라는 특성을 강조할 때는 손잡이에 각을 줍니다. 완전한 팔각일수록 일본식 같아집니다.

 

헹켈 밥 크라이머 브랜드의 굴곡이 있는 핸들을 가진 나이프

 일본식을 제외하면 대체로 핸들은 둥그스름합니다. 아예 동글동글한 계열도 있고, 좀 납작하게 동그란 것들도 있는데 아무래도 취향차가 큽니다. 이것저것 쓰다 보면 손 모양에 맞춰 약간의 굴곡이 있는 핸들이 쓰기 편하다는 생각은 듭니다만, 어째 그런 건 저렴이 주방칼에 많고 고급 주방칼에는 상대적으로 덜 흔합니다.

 

 

 

 

 

흑단 핸들. 흑단은 수종과 부위에 따라 완전히 검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ㅈ) 핸들 소재

 

 소재를 크게 나누면 플라스틱과 나무가 있습니다. 플라스틱은 가볍고 부패하지 않는 게 장점입니다. 그래서 편하게 쓰는 칼일수록 플라스틱 손잡이인 게 좋습니다. 대부분의 가정 주방에서는 손잡이가 플라스틱인 칼을 쓰고 있을 겁니다. 일반적인 가정용 칼은 내식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날물이건 핸들이건.

 

흑단 핸들 데바

 그렇지만 고급 칼에는 나무 손잡이도 많이 씁니다. 좋은 나무를 쓰면 잡는 느낌도 좋고, 모양도 아름다워집니다. 대신 플라스틱에 비해서는 관리가 필요하고요. 나무 손잡이도 부패를 막기 위해 이런저런 처리는 합니다만, 어쨌든 물에 계속 담가두거나 하지는 않는 게 좋습니다. 나무는 수종에 따른 밀도차이는 있습니다만, 대체로 어쨌든 플라스틱보다는 무겁습니다. 흑단처럼 물보다 비중이 큰 수종을 쓰면 제법 무겁고요.

 

원피스 스테인리스 핸들

 스테인리스 같은 금속으로 손잡이를 만드는 경우도 있는데 날과 아예 결합부가 없이 원피스로 되어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속이 찬 스테인리스면 무겁고 비싸지니까 보통 속이 비게끔 만드는 것 같습니다. 다루기 편해서 이런 타입도 인기가 제법 있지요.

 

아크릴 핸들 풀탱 다마스커스 페티

 고급품 플라스틱 손잡이도 있습니다. 아크릴을 사용해서 고급스러운 무늬를 만든 것들입니다. 그리고 나무 손잡이도 함침 처리를 해서 색을 들이고 모양을 내곤 합니다. 함침 나무 손잡이는 비쌉니다. 부패에 강하고요.

 

함침목 핸들 규토

 주방칼 손잡이의 소재 제한은 거의 없기 때문에 다양한 고급 소재도 사용합니다. 자개(나전), 터키석, 라피스라줄리, 크리스탈, 사슴뿔, 물소뿔, 양뿔, 은 등등. 손에 닿았을 때 문제가 생기거나 쉽게 망가지는 게 아니라면 뭐든 써도 됩니다.

 

소뿔 핸들 풀탱 스테이크 나이프

 

 

 

 

 

핸들에서 칼날로 이어지는 부위가 볼스터입니다

ㅊ) 볼스터

 

 볼스터는 유럽식 칼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핸들과 날 사이에 있는 겁니다. 전투용 도검의 가드와 같은 역할입니다. 볼스터가 있으면 일단 사용 자체는 더 안전하고 편해지는 면이 있습니다. 손이 날로 갈 수 있는 여지를 막아주거든요. 무게중심도 좀 달라지고요.

 

 다만 문제는 볼스터가 날 있는 부분까지 크게 있는 경우 칼을 숫돌에 갈기 좀 어려워진다는 겁니다. 연마봉(야스리)이나 연삭기 등 다른 형태의 칼갈이로 갈아야 합니다. 그런데 칼을 가는 가장 좋은 방식은 숙련자가 숫돌에 손으로 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손해가 있긴 하지요. 이 문제 때문에 볼스터를 갈아내서 없애버리는 사람도 있긴 있습니다.

 

 물론 일반적인 사용자 기준에서 보면 볼스터가 큰 게 좋긴 합니다. 다칠 위험은 적고, 요새 일반인이 숫돌 쓸 일이 얼마나 있습니까. 높은 완성도로 갈리진 않아도 다른 걸로 갈아도 날은 서고요.

 

 

 이상 칼날의 형태적 특성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날물의 물리적 기본 특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본문 초판을 마치겠습니다.

 

 

 

 

 

 

A) 경도

 

 영어로는 Hardness. 딱딱한 정도입니다. 강도와는 다릅니다. 엄밀하게 정의된 개념은 아니지만, 통념으로 이야기하자면 ‘긁힘에 강한 정도’를 의미합니다. 대중적으로는 모스 경도가 잘 알려져 있지요.

 

 경도를 긁힘에 강한 정도라고 규정한다면, 경도는 칼날을 유지하는 능력에 개념적으로 비례합니다. 다만 문제라면 경도라는 개념이 엄밀하지 않다는 점, 그리고 칼날처럼 매우 얇은 물질의 경도를 측정하는 건 일반적인 경도 측정방식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날물의 경도 측정은 일반적으로 록웰(록크웰) 경도 측정법을 사용하는데, 주방칼에 쓰는 경도 높은 금속의 경우 록웰 C측정법이라 하여 다이아몬드 콘을 유압기로 눌러 박아 얼마나 찍히느냐에 따라 경도 측정을 합니다. HRC로 표시하지요. 그런데 이 방식으로는 칼날의 긁힘에 강한 정도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는 없습니다. 카바이드 입자가 존재하는 날끝은 균일한 물성을 지니지 않기도 합니다.

 

 그래서 실제 도검에 사용하는 금속은 칼날 유지력이라는 기준을 따로 측정합니다. 일정한 칼날각과 규격으로 칼을 만들고, 실제로 얼마나 벨 수 있는지 측정하는 건데요. 이론적으로 보면 칼날의 경우 이쪽이 더 올바른 경도 측정법일 수 있습니다만, 측정법이 복잡하기도 하고 현재 주로 참조되는 CATRA 칼날 유지력 측정법이 실리카가 함유된 종이를 이용하기 때문에 실리카보다 경도가 낮은(시멘타이트가 실리카보다 경도가 높다는 자료가 일반적이지만, 실제 CATRA 측정결과를 보면 시멘타이트의 경도는 실리카보다 경도가 낮다고 봐야 합니다.) 시멘타이트(철 카바이드)에 대한 유지력 측정을 할 수가 없습니다. CATRA 측정법을 기준으로 하면 440C가 슈퍼청강보다 현저하게 칼날 유지력이 좋은 걸로 측정되는 묘한 결과가 나와버립니다. 440C는 스테인리스라 크롬 카바이드가 많이 형성되어있기 때문에 (텅스텐이 좀 들어가긴 했지만) 시멘타이트에 의해 주로 경도가 나오는 탄소강(저합금강) 계열인 슈퍼청강보다 실리카에 마모가 덜 되는 걸로 추정됩니다. 또한 CATRA 칼날 유지력 측정법은 칼날에 어느 정도 충격과 같은 대미지가 가해지는 실험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칼날 유지력 테스트는 특정한 칼이 아니라 특정한 금속의 특성을 파악할 때 사용되는 방식이다보니 실제 시판하는 주방칼들은 HRC만 표기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충분히 완벽한 측정법은 아직 존재하지 않지만, 바나듐/텅스텐/니오븀 등의 초고경도 카바이드가 많이 형성되는 합금일수록, 그리고 카바이드의 크기가 작고 균일할수록, 인성이 높을수록 HRC 측정수치 대비 칼날 유지력이 높습니다. 예를 들어 일제 고급칼에 많이 사용하는 VG10과 SG2를 비교하면, 경도는 비슷하게 나오더라도 SG2쪽의 칼날 유지력이 더 높습니다. SG2쪽이 바나듐이 많이 들어있고 또 분말강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칼날 유지력’을 잘못 이해하면 안 됩니다. 경도와 칼날 유지력이 높은 칼들은 조심조심 주의해서 다뤄야 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체로 인성이 나쁘기 때문입니다. 긁힘에는 강하지만 충격에는 약하단 말이지요. 단단한 걸 강하게 내려치거나, 도마를 긁어가면서 사용하거나 하면 잘못하면 칼날이 깨져버립니다. 칼날 유지력이라는 건 긁힘에 대한 저항력이지 깨짐에 대한 저항력이 아닙니다. 이를 오해하면 안 됩니다. 후술할 ‘인성’에 대한 부분을 참조해주세요.

 

 

 

 

 

 

B) 인성

 

 영어로는 Toughness. 쉽게 이야기하면 깨짐에 저항하는 성질입니다.

 

 단적으로 세라믹은 경도는 어지간한 금속보다 높습니다만 인성은 매우 낮습니다. 충격이 가해지면 깨져버리지요. 다이아몬드는 지구 최고의 경도를 지닌 물질이지만, 경도에 비해 인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강한 충격을 가하면 깨져버립니다. 마찬가지로 세라믹이나 다이아몬드 뿐만 아니라 금속도 인성이 부족할 경우 허용이상의 충격이 가해지면 깨집니다.

 

 철은 탄소함량을 높이고 열처리를 통해 경도를 높일수록 인성이 낮아집니다. 그리고 카바이드가 많아질수록 인성이 낮아지고, 또한 카바이드 입자가 클수록 또 인성이 낮아집니다. 고경도 고합금을 분말강으로 만드는 이유는 카바이드의 입자를 작게 만들기 위해서라고 알고 있습니다.

 

 물성의 균일성은 인성에 큰 영향을 줍니다. 날물의 일부분에 탄소함량이 너무 높다거나, 큰 카바이드가 있다거나, 야금 과정에서 미세한 공기 방울이 섞였다거나 하면 인성이 크게 떨어지게 됩니다. 야금 기술이 떨어지던 시절에 도검을 만드는 데 가장 어려운 요소는 균일한 인성의 확보였습니다. 현대에 들어 야금기술은 많이 발전했지만, 여전히 드물게나마 작은 공기방울이 섞이는 등 보이지 않는 불량은 발생하고, 그건 주로 날물 전체가 가지는 인성에 큰 악영향을 주게 됩니다.

 

 마구 내리치면서 쓰는 칼과 섬세하게 절삭하는 칼은 다른 물성을 가져야 합니다. 전자는 경도보다는 인성이 높아야 하고, 후자는 경도가 높은 게 좋습니다. 아무리 좋은 금속이라도 경도, 특히 칼날 유지력과 인성이 같이 높기는 어렵습니다. 같은 금속이라도 칼을 만들 때 경도를 조금 낮추면 인성이 높아집니다.

 

 경도가 아주 높은 칼들은 금속칼이라도 세라믹 칼처럼 인성이 없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마모에는 매우 강하지만 충격을 받으면 칼날이 깨지면서 아예 이가 나가버립니다. 대조적으로 우리나라 대장간 칼들은 경도는 낮고 인성 특화입니다. 생선을 토막내거나 닭을 자르려면 인성이 높은 칼이 필요합니다. 특히 냉동된 식재료를 자르려 시도할 때 인성이 부족한 칼의 사용을 피해야 합니다. 얼은 음식 자르려다가 세라믹 칼날 깨먹었다는 이야기가 드물지 않습니다. 대조적으로 경도가 낮고 인성만 높으면 깨지지는 않지만 칼날이 잘 닳고, 충격이 가해지면 날이 잘 뭉개지게 됩니다.

 

끝이 말려버린 칼날 단면의 사진

 인성은 칼날의 안정성에 영향을 줍니다. 칼날을 바짝 세울수록 그렇게 됩니다. 연마를 제대로 한 칼날 끝은 매우 미세한 두께를 가지고, 실제 사용을 하면 미세한 영역에서 계속 휘거나 하다가 파괴되곤 합니다. 높은 인성은 이런 피로파괴에 대한 저항성(피로강도)을 높여줍니다. 즉 인성이 높은 소재여야 날을 예리하게 세워서 쓰기에 적합하고, 높은 절삭력의 날물에 어울린다는 이야기입니다.

 

 한편으로 칼날이 일정 이상 길어지면 인성은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옛날 백병전 시대에 사용하던 전투도검을 만든다고 가정하면, 경도보다는 인성이 훨씬 중요합니다. 장검정도의 질량과 길이를 가지는 도검은 날을 바짝 세우지 않아도 인체에 치명적인 대미지를 쉽게 가할 수 있기 때문에 날 유지력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인성이 부족하면 충격이 가해졌을 때 부러져 버립니다.

 

 

 

 

녹슨 스테인리스 주방칼

C) 내부식성

 

 실제 칼을 사용할 때 내부식성은 꽤 중요한 요소입니다. 칼 관리를 잘하더라도 녹이 잘 쓰는 칼은 시간을 더 쓰게 됩니다. 일반 가정은 칼을 원체 막굴리는 집이 많으니까 강철칼을 사용하는 주부는 별로 없고요.

 

 철에 합금했을 때 내식성에 가장 크게 관여하는 금속은 크롬이고, 그 다음이 니켈. 그 다음이 망간과 몰리브덴쯤 됩니다. 그리고 탄소는 크롬과 결합하기 때문에 내식성을 떨어뜨립니다. 즉 탄소를 많이 넣어 경도를 올리면 내부식성은 낮아집니다.

 

 스테인리스라도 냄비 만드는 오스테나이트계에 비해 칼 만드는 마르텐사이트계는 내부식성이 낮습니다. 경도확보를 위해 탄소가 많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경도가 높을수록 녹이 잘 습니다. 그러니까 완전 저렴이 스텐 식칼은 보통 녹은 잘 안 습니다. 탄소함량이 낮고, 칼날 유지력이 떨어지는 대신 그나마 내식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내식성에 완전히 특화된 칼도 있긴 합니다. 세라믹이나 티타늄같은 소재 칼이요. 세라믹 칼은 아예 녹이 슬지 않지요.

 

 시중에 드물지만 내식성이 매우 높은 질소합금소재 칼도 있긴 합니다. 스테인리스에 탄소 대신 질소를 합금하게 되면 경도, 인성, 내부식성이 다 같이 일정 이상 높은 스틸을 만들 수 있습니다. 다만 문제는 일정 이상 질소가 섞인 합금은 매우 만들기 힘들다는 겁니다. 그래서 비싸고요. 프라이팬 같은 거 만들 때 질화철을 표면에 만드는 공정은 그렇게까지 어렵거나 완성품이 비싸지 않지만, 질소합금은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감자칩을 사도 봉지 안에 주로 들어있는 게 질소입니다만, 그 질소를 철과 합금하는 건 큰 규모의 장비를 필요로 합니다. 실제 질소합금 칼 써보면 좋긴 좋습니다. 비싸고 구하기 힘들다보니 추천은 못합니다만.

 

 대조적으로 내식성이 극단적으로 낮은 소재는 백강입니다. 철과 탄소 외에는 최대한 제거한 소재라서, 부식을 막아줄만한 성분이 없습니다. 나는 백강 칼은 젖은 상태로 두지도 않고 새콤한 걸 자르지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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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이 2022. 4. 10. 03:36 Posted by 해양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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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방은 지방산과 글리세린으로 되어 있습니다. 글리세린은 알콜의 한 종류고, 지방산은 카복실산의 한 종류입니다.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지방은 산성입니다. 물에는 녹지 않습니다. 기름이니까요.

 

 그러니까 지방은 다음 세 가지에 녹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기름, 알콜, . 씻을 때는 알칼리로도 씻어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음식의 향에 지방과 산은 강한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콩피나 저온튀김을 할 때는, 식용유가 지방을 녹인다는 걸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합니다. 기름진 식재료를 기름으로 저온에 삶으면, 음식물의 수분보다도 지방질이 기름에 녹아나올 확률이 높습니다.

 

 그리고 상기한 내용은 어느 때보다도 식기를 씻거나 할 때 알아두는 게 좋습니다. 빨래를 할 때도 알고 있어야 하고요.

 

 일반적인 주방세제는 중성입니다. 그리고 계면활성제가 들어가있지요. 주방세제는 계면활성제를 통해 기름기를 씻어냅니다. 계면활성제는 물과 기름을 섞이게 하지요. 계면활성제에 잡힌 기름은 물에 녹을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지방이 충분히 액상인 상태에서는 계면활성제만으로 기름을 씻어낼 수가 있는데요. 고형화된 기름에는 표면에 계면활성제 칠해봐야 그게 섞이지가 않습니다. 그러니까 주방세제로는 굳어버린 소기름이나 굳어서 폴리머화된 기름을 씻어낼 수가 없습니다.

 

 모든 기름이 그렇지만, 특히 소기름은 싱크대 배수구로 가급적 들어가지 않는 게 좋습니다. 배수관 막힙니다. 배수관에 들어간 기름은 시간이 지나면 상당히 딱딱하게 굳기 때문에, 막히면 전문업체 불러야 합니다. 특히 잘 굳는 소기름은 최대한 키친타올이나 휴지 등으로 닦아내 일반쓰레기로 버리고, 닦아내고 남은 건 기름이 녹을 만큼 뜨거운 물로 씻어내야 합니다. 녹은 상태에서는 계면활성제가 통합니다.

 

 폴리머화된 기름은 닦아내려면 일단 산으로 녹이는 게 좋습니다. 식초에 적신 키친타올을 붙여두면 천천히 녹습니다. 폴리머가 형성된 건 사실 보기가 안 좋을 뿐, 실사용에는 별 문제가 없는 편이니까 특별한 경우 아니면 그냥 둬도 됩니다. 문제는 폴리머 위에 새콤한 요리를 하는 데는 애로사항이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시즈닝이 덮인 무쇠솥으로 새콤한 잼을 끓인다거나, 토마토 소스를 끓이는 건 피해야 합니다.

 

 액상 주방세제 대신 사용할 수 있는 설거지형 고체 비누는 사용이 불편한 면은 있지만, 기름기 제거에는 액상세제보다 탁월한 성능입니다. 고체 비누는 액상 주방세제와는 달리 약간 알칼리성인데다가 기본적으로 지방질을 굳힌 것이라 그렇습니다. 중성 액상세제보다 고형비누가 세척력이 강합니다.

 

 여담으로 피부에 장시간 접촉한 빨래감에 노랗게 물이 드는 건 이염이 아닌 이상 피지와 땀이 배서 그런 겁니다. 기름기와 요소가 포함되어 있는데, 중성세제로 빨면 이게 제거되지 않습니다. 요새 파는 옷이나 이불 등을 보면 뭐든 중성세제로 빨라고 써있는 편입니다만, 중성세제와 알칼리성세제의 특성을 이해해야 합니다. 중성세제는 굳이 보면 주방세제와 비슷하기 때문에, 세탁용 중성세제 없으면 주방세제 세탁기에 넣고 돌려도 되긴 합니다. 다만 주방세제는 거품이 많이 나는 편이라 잘 헹궈줘야 하고요.

 

 빨래감에 피지와 땀이 뱄을 것으로 추정되는 경우 깔끔하게 빨래를 하려면 알칼리성 세제를 사용해야 합니다. 색이 들었으면 표백을 해 줘야 하고요. 다만 다음의 소재는 물빨래를 하려면 중성세제를 사용해줘야 합니다. (), (비단), 거위털, 오리털 등. 그러니까 동물성 소재는 알칼리를 대면 안 됩니다.

 

 동물성 소재는 단백질로 구성되어있고 적잖은 지방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알칼리성세제로 빨게 되면 단백질이 망가지고, 지방질도 잃어버립니다. 거위털이나 오리털이 들어간 패딩이나 이불을 알칼리성 세제로 빨아버리면, 모양도 망가지고 보온능력을 크게 상실해 버립니다.

 

 드라이클리닝은 기름으로 빠는 겁니다. 그러니까 동물성 섬유가 지방질에 오염되었을 경우, 드라이클리닝을 해야 합니다. 계면활성만으로 깨끗하게 만들 수 있는 상태면 중성세제로 빨면 되고요. 그러나 거위털이나 오리털 제품은 드라이를 하면 안 됩니다. 거위털이나 오리털에 포함된 기름기가 드라이클리닝 과정에서 손실되기 때문입니다.

 

 

 

 

 

2) 손에 어떤 냄새가 뱄을 경우, 주방세제같은 중성세제로 손을 씻어서는 잘 사라지지 않습니다. 특정한 냄새가 나는 것에는 에스테르가 많은데, 에스테르를 닦아내기엔 물과 중성세제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기름이나 알콜, 또는 산으로 닦는 게 냄새를 없애는 좋은 방법입니다. 식용유를 약간 손에 바르고, 손톱 밑까지 식용유로 잘 닦고, 식용유를 주방세제로 닦아내면 웬만한 냄새는 지워집니다. 냄새가 그리 강하게 밴 게 아니라면 물티슈로 손을 닦아도 잘 지워지는 편입니다. 물티슈에는 대체로 알콜류가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일도 물티슈도 없으면 그나마 주방세제보다는 고체비누로 씻는 게 낫습니다.

 

 자연적인 향은 보통 그리 강하지 않기 때문에 굳이 유기용매를 사용해 냄새를 지우지 않아도 시간이 좀 지나면 금방 사라집니다. 문제는 합성향을 만졌을 때입니다. 합성향은 냄새의 강도와 지속력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 방식은 손에 테이프 끈끈이 같은 게 묻었을 때도 유용합니다. 끈끈이도 유기용매에 녹는 성분이기 때문입니다.

 

 

 

 

 

 

쌀 건조 시설

3) 쌀의 건조 상태는 맛과 보존성에 큰 영향을 줍니다. 맛은 건조가 덜 된 게 맛있지만 그렇게 되면 보존성이 떨어지고, 너무 마르거나 건조과정에서 열을 너무 받거나 한 건 맛이 떨어집니다. 문제는 사먹어보기전에는 이걸 알 수가 없다는 겁니다. //보통으로 나뉘는 쌀의 등급은 이런 문제를 전혀 표현해주지 않습니다.

 

 경험적으로 쌀을 사서 먹었는데 너무나 기적적으로 맛있는 경우, 그리고 밥을 할 때 물을 충분히 많이 잡지 않아도 촉촉한 경우, 건조가 덜 되었을 확률을 의심해봐야 합니다. 이 경우 지체 없이 쌀을 쌀통에 담고, 냉장보관을 하는 것을 강력 권장합니다. 보존성이 대단히 나쁘기 때문에 상온에서는 금방 상할 수 있습니다. 확실하게 덜 말랐다고 판단될 때는 실리카겔을 쌀통에 넣는 것도 고려해볼만 합니다.

 

상온의 바람으로 쌀을 건조하는 시설

 그리고 쌀을 샀는데 기대보다 너무 맛이 없는 경우, 경험적으로는 건조가 너무 된 경우가 많습니다. 쌀의 건조에는 많은 경우 열풍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쌀이 열을 너무 많이 받았을 확률도 있습니다. 이 경우 맛을 완전히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나마 씻을 때 잘 씻어 먹으면 좀 낫습니다. 많이 건조된 쌀은 상대적으로 표면이 쉽게 부스러지는 편이라, 도정을 마치고 나면 표면에 쌀가루가 좀 많이 붙어있는 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표면에 쌀가루가 많은 상태인 건 밥을 하고 났을 때 매우 나쁜 결과를 가져오기 쉽습니다. 쌀알끼리 잘 비벼 씻어 쌀가루를 충분히 제거해주고, 잘 불리고 밥을 하면 그나마 준수해집니다.

 

 나는 쌀을 여러 종류 사놓고 그때그때 해먹고 싶은 걸 해먹는데요. 쌀을 여러 종류 갖춰놓으면 쌀마다 건조도가 제법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쌀 한 종류만 밥하다 보면 물 맞추는 게 감이 적응되서 쉬운데, 여러 종류의 쌀로 밥을 하면 쌀마다 잡아야 하는 물이 조금씩 달라집니다. 쌀마다 쌀알 크기가 다르기에 쌀알 사이의 공간이 달라져서 가시적인 물량이 달라지기도 합니다만, 실제 건조정도가 달라서 생기는 문제도 있습니다. 어느 정도 맛있는 밥을 짓는 건 쉬운 일이지만, 이상적인 밥을 짓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4) 시대가 지날수록 우리나라 밥공기는 크기가 줄어드는 중입니다. 최근에 산 공기와 예전부터 쓰던 공기를 비교해보면 들이가 많이 차이납니다. 1970년대에 사용하던 공기는 아예 사이즈가 많이 달라서 현대 기준으로 보면 샐러드용 볼 수준이고, 2000년대 초에 사용하던 공기도 지금 기준이면 국그릇으로 쓸 수 있을 정도입니다. 대조적으로 최근에 나오는 공기는 아래쪽으로 갈수록 좁아져서 실질적으로 한 컵 정도 들이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이런 변화에는 여러 요인이 있는데, 밥 말고도 먹을 게 많아져서 그렇기도 합니다만 밥 자체가 변한 것도 한 이유입니다. 우리나라에 압력솥이 보급되기 시작한 건 70년대 후반부터고, 80년대엔 아직 압력솥이 충분히 보급되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다가 90년대 들어서는 전자렌지와 압력솥이 일반화되지요. 00년대 이후에는 전기압력솥이 보급되었고요. 최근에는 우리나라에서 밥을 직접 지어먹는 사람들 중 99%는 압력솥에 지은 밥을 먹고 있을 겁니다.

 

찐밥 조리예

 그런데 압력솥에 밥을 지으면 일반적인 솥이나 냄비에 지은 것에 비해 고압으로 밥이 되기 때문에 밥의 밀도가 높습니다. 대조적으로 찐밥은 밀도가 낮고요. 그래서 찐밥과 압력솥밥을 동일 부피로 먹으면, 압력솥에 지은 밥은 배부른데 찐밥은 별로 배도 안부르다가 금방 소화되고 마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신 압력솥에 지은 밥은 밀도가 높기 때문에 소화는 살짝 덜 됩니다.

 

 그리고 예전하고 현대에 먹는 품종은 좀 다릅니다. 그나마 오랜 기간 먹어온 품종은 추청 정도고요. 근래 보급된 품종들은 대체로 20세기에 먹던 품종보다 차지고 부드럽습니다. 차지고 부드러운 쌀은 된 쌀에 비해 더 포만감이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양을 덜 먹어도 더 배부릅니다. 그러니까 예전에는 덜 차진 쌀을 일반 솥에 밥을 지어 먹었기 때문에, 더 많은 부피의 밥을 먹어야 했단 말이지요.

 

 

 

 

 

 

5) 압력솥은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밥을 지어먹는 조리도구로 인식됩니다만, 개발 자체는 유럽에서 먼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원래는 압력솥은 양식을 위해 나왔습니다.

 

 그래서 서구에서 생산되는 고급 압력솥은 압력의 정도를 조절한다거나, 실시간으로 압력을 표시하는 압력계가 달려있다거나, 우리나라 압력솥보다 높은 압력을 가한다거나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아무래도 외제를 사려면 국산보다 비싸다는 겁니다. 우리나라는 거의 모든 가정과 식당에서 압력솥을 쓰다 보니 저렴하게 압력솥을 대량생산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나도 아쉬운 대로 국내산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압력솥은 크게 스테인리스제(겉은 스테인리스지만 속에는 알루미늄이 들어가 있습니다.)와 알루미늄제가 있고, 드물게 곱돌이 들어간 것도 있습니다. 알루미늄 압력솥은 스테인리스제에 비해 가열과 냉각이 빠르기 때문에 솥이 같은 중량일 때 더 빠르게 밥이 되고, 뜸은 덜 듭니다.

 

 알루미늄제 압력솥은 그냥 금속색인 것과 짙은 회색인 게 있습니다. 짙은 회색인 건 양극산화 경질피막 (하드 아노다이징) 처리를 한 겁니다. 우리가 보는 모든 알루미늄은 (다른 코팅이 없는 이상) 산화알루미나(=커런덤=사파이어) 피막이 생긴 상태인데, 경질피막 제품은 두꺼운 피막이 형성되도록 처리를 한 겁니다. 드물게 다른 색의 피막처리를 한 것도 있는데, 알루미늄은 경질피막이 아닌 이상 피막처리를 할 때 원하는 색을 넣을 수 있습니다. 무게는 알루미늄제가 스테인리스제보다 가볍습니다. 그리고 모든 알루미늄 조리도구가 그렇듯, 알루미늄제 압력솥도 조리를 할 때는 산이 들어간 것이나 짠 걸 피해야 합니다.

 

 압력솥은 밀폐구조라 음식물을 넣고 가열하면 수증기를 잘 배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부 압력이 높아지고, 압력이 높아지니까 내부의 끓는점이 올라갑니다. 그래서 물이 고온에서 끓게 되는 게 압력솥의 조리원리입니다. 압력을 올릴수록 끓는점이 올라가고요. 압력솥은 제한적으로 수증기를 배출하는데, 너무 압력이 올라가면 폭발하기 때문에 내구한계 이상의 증기는 배출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모든 압력솥은 복수의 증기 배출구를 가지고 있고, 그래서 하나의 배출구가 막혀도 다른 배출구로 증기를 배출해서 폭발하지 않게끔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배출구가 막히지 않았나 종종 체크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압력솥의 밀폐 패킹은 사용하다보면 점점 수축해서 작아집니다. 그리고 아주 오래되면 충분한 탄성을 잃어버립니다. 본래의 사이즈보다 너무 수축되면 압력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게 됩니다. 압력솥이 이상작동을 하면 가장 먼저 체크해야 하는 건 패킹입니다. 모든 패킹은 소모품입니다. 이상작동을 처음 느끼면 패킹을 쭉 당겨 늘려본 다음 사용하면 어느 정도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도 있습니다. 수축한 걸 힘으로 늘려주는 원리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된 패킹은 결국 갈아야 합니다. 패킹 문제는 패킹 분리 및 배출구 관리가 어려운 전기솥에서 문제가 더 생기기 쉬우니 주의가 필요합니다.

 

 한편으로 실제 요리를 즐겨하시는 분들 중 압력솥으로 밥만 짓는 게 아니라, 본래의 용도에 맞게 다양한 고압조리를 압력솥으로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유분이 많은 요리는 압력솥으로 하다 보면 증기 배출구가 막힐 위험이 높습니다. 또는 솥의 용량 대비 많은 양의 요리를 해도 증기 배출구에 문제가 생길 확률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용량대비 너무 많지 않은 양의 요리만 해야하고, 증기 배출구가 막히지 않았나 수시로 점검하고 뚫어줄 필요가 있습니다. 다양한 요리를 하고 싶은 분들은 큰 압력솥을 구매하시는 게 좋습니다. 큰 압력솥은 설거지할 때 좀 더 성가시긴 합니다만. 일부 대형 압력솥은 다양한 음식물의 조리를 전제로 안쪽 증기배출구에 반구형 망이 달려있어 배출구가 막히는 걸 방지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압력솥으로 인한 증기화상은 매우 위험합니다. 뜨거운 증기에 손을 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데, 실제 압력밥솥으로 인한 부상자 중 태반이 영유아입니다. 전기압력솥을 포함하여, 조리중인 압력솥을 부주의하게 건드려서 화상을 입는 겁니다. 특히 전기솥은 쿡탑보다 더 낮은 곳에 둘 수도 있기 때문에, 아동이 건드리기가 더 쉽습니다. 밥을 지을 때는 영유아가 압력솥을 건드리지 않도록 매우 주의해야 하며, 성인도 압력솥은 기본적으로 주의해야 합니다.

 

 

 

 

 

6) 개복치가 어째 밈이 되어 있는데, 실제 개복치 살은 회로 먹으면 맛이 없습니다. 맛이 나쁘다는 게 아니고, 진짜로 거의 맛 자체가 별로 없습니다. 맹맛입니다. 동부묵하고 비슷한데, 동부묵보다 맛이 더 맹맛입니다. 안드셔본 분들은 거의 묵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개복치 살이 거의 아무 맛도 없는 이유는 대체로 콜라겐같은 성분으로 되어 있어서 그렇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돼지 껍데기나 소 스지 같은 것과는 달리 부드럽습니다.

 

 여담인데 콜라겐을 먹거나 바른다고 우리 몸에 콜라겐이 흡수되는 게 아닙니다. 콜라겐을 우리 몸이 그대로 흡수할 방법이 없습니다. 먹으면 소화과정에서 작은 단백질로 쪼개서 흡수합니다. 그러니까 그냥 다른 단백질 음식을 먹나, 콜라겐을 먹나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7) 어떤 동물이건 맛있게 먹기 위해서건 잡으면 바로 방혈 작업을 해야 합니다. 혈액은 부패가 매우 빠르기 때문입니다. 아주 신선한 피는 먹어도 됩니다만, 그래도 따로 분리해서 취급하는 게 좋고요. 고기가 신선함을 유지하는 기간과 피가 신선함을 유지하는 기간은 다릅니다.

 

 시골에서 잡은 닭같은 경우, 유감스럽게도 방혈 처리가 완전하지 않은 경우가 제법 있습니다. 바로 먹으면 상관없지만 냉장보관 좀 했다가 요리해 먹으려고 하면 목이 잘린 부분의 피가 완전히 제거되지 않아 부패되어 있는 경우를 보곤 합니다. 그런 닭을 생각없이 그냥 끓여먹거나 하면 비린내가 나게 됩니다. 잡자마자 먹는 거 아니면 피가 고여있는 부분을 잘라내고, 배쪽에서도 최대한 핏덩이를 제거해 줘야 합니다.

 

 곰탕이나 닭백숙 등을 끓일 때 초반에 거품을 계속 건져주는 가장 큰 이유도 피와 육즙의 부패에 있습니다. 미처 제거되지 못한 피나 표면의 육즙이 가장 먼저 익어서 거품으로 떠오릅니다. 식재료가 완전히 신선하지 않을 경우 이게 악취를 내기 때문에, 빨리 건져줘야 악취가 음식 전체에 퍼지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만일 오늘 잡은 닭을 바로 끓이거나, 육회로도 먹을 수 있는 수준의 고기로 곰탕을 끓이는 경우엔 굳이 거품을 안 건져줘도 됩니다.

 

 생선이나 해산물의 부패가 매우 빠른 이유 중 하나도 방혈에 있습니다. 생선은 어지간해서는 방혈 처리를 하지 않고, 그냥 죽은 걸 유통하니까 부패가 빠를 수밖에 없습니다. 자연산 생선은 지방산 조성도 오메가3가 많아 부패가 더 빠르고요. 물론 제대로 유통하는 생선은 피빼기를 합니다만, 우리나라에서 유통하는 대부분의 생선은 피를 빼놓지 않았기에 금방 상합니다.

 

 게의 경우 피빼기는 더 문제가 됩니다. 게의 피는 헤모글로빈이 아닌 헤모시아닌을 사용하기 때문에 붉은색이 아니고, 그래서 잘 안보입니다. 그렇지만 조금만 선도가 떨어져도 게 피는 악취가 납니다. 피를 제거하고 요리하는 게 정석인데, 잘 모르고 그냥 조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8) 사람은 단맛을 단위체의 수가 작은 당, 일부 아미노산, 일부 알콜, 기타 일부 유기화합물에서 감지합니다.

 

 당의 단위체의 수가 많아지면 단맛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타액에 포함된 아밀라아제(아밀레이스)는 단위체 결합을 이당류인 엿당으로 분해합니다. 그래서 탄수화물을 입에 넣고 오래 씹으면 단맛이 납니다.

 

 당이 아닌 것 중 단맛을 내는 건 데아닌(테아닌), 글리신, 글리시리진, 필로둘신, 글리세린, 사카린, 아스파탐, 자일리톨, 소르비톨, 수크랄로스, 스테비오사이드, 에리스리톨 등이 있습니다.

 

 데아닌은 녹차에서 단맛을 냅니다. 다만 일정 레벨 이상의 녹차가 아니면 데아닌 맛을 거의 느낄 수 없으므로, 녹차에 돈 좀 써보신 분이 아니면 데아닌 맛을 별로 경험해보지 못하셨을 겁니다.

 

 글리신은 게를 먹으면 느낄 수 있는 단맛입니다. 감초에도 들어있습니다. 신선하고 물이 좋은 꽃게는 꽤 단맛이 나는데, 아미노산에서 기원한 단맛입니다.

 

 감초가 내는 단맛의 주성분은 글리시리진이라는 성분입니다. 요새는 단맛을 내는 게 많아서 감초를 많이 쓰지 않지만, 단맛 음식이 귀하던 시절에는 감초를 많이 활용했습니다. 내가 어릴 때는 간식거리가 없으면 감초를 씹기도 했는데, 요새는 예전에 비해 감초가 잘 안보입니다.

 

 필로둘신은 이슬차(수국차)의 단맛 성분입니다. 예전에 이슬차가 유행했던 시절에는 수정과도 이슬차로 단맛을 내곤 했었는데, 나는 수정과에는 설탕이 어울린다는 생각입니다.

 

 글리세린은 지방에 포함되어있기에 누구나 많이 먹고 삽니다만, 글리세린 맛 자체가 두드러지는 걸 맛본 분들은 많지 않을 겁니다. 글리세린은 알콜의 일종이라서, 와인을 마시다 보면 글리세린 맛이 두드러지는 와인이 가끔 있습니다. 내가 마셔본 와인 중 글리세린 맛이 가장 두드러지는 와인은 브랜드를 잊은 부르고뉴 루즈(피노 누아)였는데, 저렴하게 몇 병 샀었는데 글리세린 맛이 많이 나서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그냥 마시면 딸기향 보습비누를 마시는 기분이 조금 있었는데, 그걸로 콕오뱅을 해먹으면 맛이 참 괜찮게 나왔었지요.

 

 스테비오사이드는 스테비아라는 허브에 들어있습니다. 스테비아는 그냥 차로 끓여마셔도 단맛이 강하게 납니다. 맛있는 단맛은 아닙니다만. 여하튼 감미료로 쓸 수는 있습니다.

 

 

 

 

 

9) 사람의 미각은 기본적으로 나트륨 이온을 짜게 느낍니다. 나트륨은 알칼리 금속이기 때문에, 다른 알칼리 금속이온이나 알칼리 토금속족 이온도 짜게는 느낀다고 합니다. 문제는 그 물질들 목록을 보면 전혀 먹고싶지 않다는 건데, 사실 염화나트륨은 익숙하니까 먹는거지, 염소하고 나트륨으로 떼어놓고 생각해보면 웬만해선 근처에도 가기 싫은 물질들이긴 합니다. 염화나트륨은 짭짤한데, 염소는 독성이 강해서 소독제 아니면 화학무기로 쓰고요. 나트륨은 물에 넣으면 폭발합니다.

 

 인류는 사바나에서 진화했습니다. 사바나는 열대초원으로 소금이 흔하지 않은 조건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진화 과정 동안 소금이 많아서 문제인 경우는 별로 없었고, 부족할 때 문제가 되곤 했습니다. 동물은 소금을 못 먹으면 많은 문제가 생깁니다. 사람의 경우 염소로 위산을 만들고, 나트륨으로 체액의 삼투압을 조절하며 각종 소화액을 만들어냅니다. 그러니까 소금을 오래 못 먹으면 사람은 뭘 먹어도 소화를 못시킵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짠걸 좋아합니다. 문제는 소금이 흔해졌다는거고요.

 

 음식 간에 실패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대체로 너무 뜨거운 국물맛을 보거나 급하게 삼켜서 그렇습니다. 음식이 너무 뜨겁거나 빨리 삼키면 간을 제대로 볼 수가 없습니다. 식혀가면서 입안 전체로 제대로 천천히 맛을 봐야 합니다.

 

 소금의 함수율이나 소금 알갱이의 크기는 나트륨 섭취량 대비 짠맛에 큰 영향을 줍니다. 특히 소금이 직접 입안에 닿는 조건에서는 그러합니다. 소금은 천일염 사이즈의 큰 덩어리일땐 그다지 물에 잘 녹는 편이 아닙니다. 천일염 물에 넣고 그냥 두면 소금 알갱이 한참 남아있습니다. 소금 알갱이의 크기가 작아질수록 잘 녹아서 짠맛이 강해지지요.

 

 고기에 소금을 찍거나 할 땐 특히 신경써야 합니다. 고운 가루처럼 분쇄한 소금은 엄청나게 짭니다. 같은 양을 천일염 수준의 알갱이로 입에 넣으면 그다지 짜지 않고요. 결과적으로 소금을 덜 먹고 싶으면, 고운 소금을 먹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10) 쓴맛은 기본적으로는 독극물에 가까운 맛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진화과정에서 쓴맛을 덜 느끼는 방향으로 진화하였습니다. 화식(火食)을 하게 되면서 일어난 변화로 추정하는데, 그래서 인류는 영장목 중 쓴맛에 둔한 편이고, 점차 일부 쓴맛 성분은 수용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어느 정도 수용 가능한 쓴맛 성분은 기호식품에 해당하는 맛을 냅니다. 예를 들면 카페인. 약도 독이기 때문에 대체로 약은 씁니다.

 

 사람은 어릴 땐 쓴맛을 민감하게 느낍니다. 그래서 어린 아이들은 채소를 싫어하는 경향이 있고, 커피나 술도 잘 못 마십니다. 그러다가 성장하면서 쓴맛에 강해집니다. 평균적으로 여성보다는 남성이 쓴맛에 더 둔감해지는데, 그래서 남성들이 여성보다는 보통 쓴 걸 잘 먹습니다. 대조적으로 여성은 남성에 비해 단맛에 둔감합니다. 그래서 여성들이 남성보다 더 단 걸 잘 먹습니다. 똑같은 수준으로 단 걸 먹으면 남자들이 더 달게 느낀단 말이지요.

 

 나이가 들면 사람은 단맛과 짠맛에 점점 둔감해집니다. 그에 비해 쓴맛을 느끼는 감각은 그대로 남습니다. 그래서 노인들은 입맛을 쉽게 잃고, 음식을 하면 달고 짜게 간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국인들은 쓴 야생 나물들을 먹는 편이라, 제법 다수가 쓴맛에 강한 입맛을 가지고 있습니다. 금세기 들어 설탕을 넣지 않은 아메리카노가 널리 퍼진 건 원래 한국인들이 쓴 걸 잘 먹어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외국에서는 우리나라보다는 설탕이나 시럽을 넣어 먹는 경우가 많습니다.

 

 

 

 

 

 

 

11) 신맛은 산의 맛이고, 산은 냄새와 많은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쓴맛이 학습과 기호의 영역이듯 신맛도 어느 정도 그러합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극적인 신맛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는데, 덜익은 과일이나 부패가 시작된 음식에서 신맛이 나기 때문입니다. 위액이 역류해도 신맛을 느끼고요. 다만 어느 정도의 신맛은 대체로 좋아합니다. 잘 익은 열매도 많은 경우 신맛은 나거든요.

 

한국인이 애정하는 열매, 참외가 20.7브릭스를 기록하는 순간

 우리나라사람들은 신맛에는 부정적인 편이고, 음식의 향에도 그리 민감한 편이 아닙니다. 새콤한 감귤류의 즙이나 풋과일즙을 음식에 활용하지 않는 편이고, 다양한 허브의 사용에 적극적이지 않으며, 과일도 새콤하거나 신맛이 나는 계열보다는 단맛이 강한 과일 선호도가 높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쌀식초는 서양에서 많이 사용하는 사과나 포도식초에 비해 산미도 향도 부드러운 편입니다.

 

 

 

 

 

12) 감칠맛은 단맛과 유사성이 있는 감각입니다. 실제 단맛과 감칠맛을 같이 느낄 수 있는 음식들도 있지요. 녹차라거나, 꽃게라거나. MSG의 맛도 사람에 따라 달게느낄 수 있습니다.

 

 마이야르 반응이나 육류, 어패류 등의 숙성 과정은 감칠맛을 끌어올립니다. 그러니까 삶은 고기보다 잘 구운 고기는 감칠맛이 강합니다. 선어회가 활어회보다 감칠맛이 강하고요. 쇠고기 육회보다는 쇠고기 레어 스테이크가 감칠맛이 강하고요. 같은 돼지 뒷다리도 절여서 햄으로 만들면 그냥 삶아먹는 것보다 감칠맛이 강합니다. 그냥 삶은 콩은 감칠맛이 거의 없지만 된장이나 간장은 감칠맛이 강하고요.

 

 바닷가 음식은 내륙 음식보다 감칠맛이 강한 경향이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수도권보다는 호남 음식의 감칠맛이 강한 경향이 있습니다. 해산물을 절이고 말리고 삭히면 감칠맛이 강해지는데, 전라도 바닷가쪽 음식이 그런 경향이 강합니다.

 

 감칠맛이 매우 강조되는 우리나라 음식 중 하나로 갈치속젓을 꼽겠습니다. 갈치 내장으로 담근 젓갈인데, 갈치 내장의 소화효소때문에 자체적으로 단백질 분해가 많이 일어납니다. 좀 비릿하고 잡스러운 맛이지만 감칠맛이 강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사람은 좋아합니다.

 

 

 

 

 

13) 사람은 지방의 맛도 느낍니다. 지방맛이라고 하지요. 지방산 맛 자체를 혀에서 감지할 수 있는 겁니다. 지방은 향이나 음식의 질감과도 관련이 깊습니다만, 미각적으로도 영향을 줍니다.

 

 지방맛에 대한 기호는 사람마다 차이가 큽니다. 그렇지만 대체로 사람들은 지방맛을 어느 정도 좋아하기는 하는데, 지방맛이 너무 강하면 느끼하다고 좋아하지 않습니다. 단적으로 고기의 지방질만 먹으라고 하면 별로 좋아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구운 건 그나마 잘 먹는 사람이 많지만, 삶은 고기의 비계나 삼계탕의 닭껍질은 안먹는 사람이 많지요.

 

 지방맛에 대한 수용은 어느 정도 이상 학습의 영역이기도 합니다. 요새는 크림소스 파스타가 일반화되었지만, 아직 크림소스가 일반화되지 않았던 시절에는 크림소스 파스타를 못 먹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어릴 때 안 먹다가 성인이 되고 처음 먹어서 입에도 못 대는 사람이 많았지요. 그렇지만 지금은 일반화되어 다수가 먹을 수 있는 메뉴가 되었습니다.

 

 

 

 

 

 

14) 나는 일화의 천연사이다를 좋아합니다. 강한 탄산에 라무네 맛이지요. 게다가 쌉니다.

 

 일본 소설, 만화, 애니메이션 등에서 라무네소다로 표현하는 게 어떤 맛인지 궁금하신 분들은 천연사이다를 드셔보시면 감이 올 겁니다.

 

 라무네는 원래 레모네이드의 일어 발음이 변형된 걸로 알려져있는데, 레모네이드와는 다른 풍미라 라무네라는 일본식 탄산음료로 자리잡혔습니다. 그 맛을 빙과류에도 많이 쓰면서 우리나라 빙과류에도 소다맛이라는 네임으로 많이 쓰이게 되었는데요. (: 캔디바의 푸른 표면) 막상 우리나라 탄산음료중에는 그런 맛을 내는 게 천연사이다가 유일합니다.

 

 다만 진짜 일제 라무네는 입구가 구슬로 막혀있습니다. 뚜껑의 부품으로 구슬을 눌러 내리면 병목쪽에 구슬이 걸리고, 개봉되어 마실 수 있게 되어있습니다. 완구같은 느낌이 있기 때문에 애들은 좋아할 수 있는데, 덕분에 쓸데없이 비싸고 개봉에 힘이 들어가는 음료입니다. 원래 현대식 왕관병뚜껑이나 스크류캡이 개발보급되기 전에 나온 방식이라는데, 일본에선 그 방식이 라무네의 아이덴티티가 되어버려서 계속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와인이 쓸데없이 지금도 코르크 쓰는 것처럼 말이지요.

 

 

 

 

 

 

15) 유리병에 든 탄산음료를 좋아합니다. 어릴 땐 많이 마셨는데요. 요샌 내가 거주하는 지역에서는 전멸했습니다. 탄산음료용 유리병 취급하고 재활용하는 인력이 사라진 게 원인으로 생각합니다.

 

 병입당시 들어가는 음료가 같더라도 유리병과 캔, PET병은 보존성이 다릅니다. 유리병이 음료의 맛을 가장 잘 보존해줍니다. 캔과 PET는 음료의 풍미를 온전히 보존하지 못합니다.

 

 음료 캔은 보통 알루미늄으로 만드는데, 산에 약한 알루미늄은 산성을 띠는 탄산음료와 직접 접촉시키면 안 됩니다. 그래서 알루미늄 캔 안쪽은 플라스틱으로 코팅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이 폴리머가 음료의 풍미를 떨어뜨립니다. 가격이나 보존성을 생각하면 다른 소재는 적합한 게 없고요.

 

 아예 소재 자체가 플라스틱인 PET병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PET병은 조직 자체가 치밀하지 못해서 탄산 자체를 온전하게 보존하지 못합니다. 고무풍선 잘 묶어놔도 바람 빠지듯 그렇게 병 표면 자체에서 탄산이 조금씩 빠져나갑니다. 풍미 떨어지는 건 물론이고요.

 

 왕관병뚜껑 안쪽도 플라스틱으로 코팅되긴 합니다만, 그건 접촉면적이라도 좁지요. 세워 놓으면 흔들지 않는 이상 음료와 뚜껑의 접촉이 없기도 하고요.

 

 그나마 유리병 맥주는 아직 흔하긴 한데, 유리 맥주병을 자세히 보면 하이트 맥주인데 병에는 CASS가 각인되어있다거나 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다. 맥주병을 재활용할 때 섞여서 그런데요. 국내 회사에서 쓰는 640ml 또는 500ml 맥주병은 각인을 빼면 규격이 똑같아서 호환이 가능합니다.

 

 

 

 

 

 

16) 누구나 냄비 바닥을 태워 보셨을 겁니다. 태우고 나면 어지간해선 지워지지 않지요.

 

 탄 냄비도 두 가지 타입이 있습니다. 하나는 이런저런 음식물을 넣고 끓이다가 태운 거고, 다른 하나는 물을 끓이다가 물이 다 증발하고 더 가열해서 태운 겁니다.

 

 음식물이 완전히 타버려서 냄비에 붙은 경우, 그건 탄화물입니다. 지방질이 완전히 타버리는 경우 중합되어 폴리머, 즉 일종의 플라스틱이 됩니다. 플라스틱이 생겨서 냄비에 붙어버렸으니까 잘 사라지지 않지요.

 

 지방 중합체는 산이나 염기에 약합니다. 그러니까 식초, 초산, 탄산소다(워싱소다) 같은 걸로 제거를 시도할 수 있습니다. 대체로 물리적으로 긁어내는 작업도 필요한데, 냄비가 어떤 소재냐에 따라 접근을 달리해야합니다. 세라믹 등으로 코팅된 냄비는 긁어내면 안 됩니다. 코팅막이 같이 긁히기 때문입니다. 코팅재 위의 탄화물은 철저하게 화학적인 방식으로 제거를 시도해야합니다. 물리적인 방식의 제거는 스테인리스처럼 표면을 긁어내도 상관없는 소재에만 시도하는 게 좋습니다.

 

 그런데 그냥 물이 다 증발한 후 더 가열해도 냄비가 타버리곤 합니다. 탄 음식물을 다 제거해도 스테인리스 냄비가 타있는 걸 발견할 때가 있고요. 이건 설명하자면 말 그대로 금속 냄비가 탄 겁니다. 철도 탑니다.

 

 강철을 열간단조하는 영상을 보면, 달군 철을 두들기면 표면에서 무언가가 계속 이탈해 떨어지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그게 타서 산화된 철인데요. 검은 녹의 일종인 산화제삼철(Fe3O4)이 표면에 생겨나고 두들길 때마다 떨어져 나간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철은 가느다란 섬유나 분말 상태가 아니면 잘 타지는 않습니다만, 그래도 시간을 두고 가열하면 일단은 그다지 격렬하지 않은 연소가 천천히 일어나서 산화제삼철이 형성될 수 있습니다. 경험적으로는 보다 일반적인 녹인 산화제이철(Fe2O3), 즉 붉은 녹이 어느 정도 고온에서 곧잘 형성되기도 합니다. 이 경우 검게 탄 자국과 함께 붉으스름하게 녹이 피어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아예 더 많이 가열하면 열간단조할때처럼 붉게 달아오고요. 이렇게 된 후 식으면 전체가 검게 변해버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전체 표면에 검은 녹이 형성된 거라 생각하면 됩니다.

 

 그렇게 타버린 냄비는? 사실 그냥 써도 별 문제될 건 없습니다. 스테인리스가 아예 타버린 부분은 경도가 낮아져서 부스러질 수 있고, 녹슨 쇠냄새가 날 수 있으니까 단단한 부분이 나올 때까지 철수세미로 문질러주는 정도는 해야 하고요. 사실 철가루는 좀 먹어도 되고, 녹슨 철도 별 문제는 아닙니다. 녹슬어서 못쓰게 되면 그게 문제인데 검은 철은 별로 문제될 게 없고요. 어차피 보통 주방에서 쓰는 건 스테인리스라 안보이는 두께의 크롬피막 생겨날거고요.

 

 녹슨 못에 찔리거나 녹슨 철조망에 다치거나 하면 파상풍 위험이 있기 때문에 흔히 녹슨 철에는 독이 있다는 오해가 있는데, 녹슨 철 자체는 문제가 없습니다. 파상풍균은 흙에 있습니다. 야외에서 녹슨 철은 보통 흙이 묻어있고, 표면이 매끄럽지 않고 잘 부서지니까 문제가 되는 겁니다. 청결한 실내에서 쓰는 철은 그냥 녹을 벗겨내면 그만입니다.

 

 음식물이 타서 눌러붙은 경우에도, 뭘해도 잘 안벗겨지는 정도고 별 냄새도 안 나면 그냥 써도 됩니다. 지방질 같은 게 완전히 중합되어 폴리머가 되어버린거라, 무쇠솥 위에 만드는 시즈닝하고 별 다를 게 없는 상태입니다. 보기가 좀 안 좋을 뿐이지요. 요새 사람들이 대체로 무쇠나 철제 솥, 냄비, 팬 같은 거 안 쓰니까 시즈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필요이상 부정적으로 보는 겁니다.

 

 

 

 

 

17) 예전에 블로그에 소개한 적이 있었던 (링크) 돼지고기 뼈등심은, 이후 돈마호크라는 이름으로 상품화되어 퍼졌습니다. 문제는 가격입니다. 나름대로 인기가 있었던 건지, 돼지고기 인플레이션 때문인지 처음 내가 소개할 때에 비해 가격이 올랐고, 가격에 비해 맛이 없다거나 조리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오곤 합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돈마호크는 거의 등심이기 때문에, 따로 정형한 돼지 등심보다 딱히 크게 비쌀 이유가 없습니다. 물론 돈마호크에는 비싼 가브리살이 포함되긴 합니다만, 동시에 뼈와 피하지방층이 포함되기 때문에 등심보다 너무 비싸면 구매가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쇠고기 토마호크도 거의 립아이(아랫등심)이기 때문에, 립아이보다 일정 이상 비쌀 경우는 구매가치가 없습니다.

 

 인터넷에 찾아보면 돈마호크를 지나치게 비싸게 파는 걸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나는 굳이 그런 걸 사먹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제(22/04/08) 트레이더스의 한 점포에 가서 확인해본 결과, 아직 합리적인 가격으로 돈마호크 부위를 파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소매용으로 정형한 돈마호크는 시판하지 않고 있었고, 크게 포장해서 파는 부위육 팩(원육)만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건 아직 100g1500원대를 유지하고 있었고, 잘라서 돈마호크를 해도 좋고, 아니면 보다 큰 덩이로 바베큐나 수비드를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편으로 돈마호크는 스테이크용 정형이기 때문에, 스테이크 조리법으로 조리해야 합니다. 스테이크를 구울 줄 아는 사람에게는 돈마호크를 굽는 게 딱히 별 문제가 아닙니다만, 스테이크를 구워본 경험이 별로 없는 사람한테는 돈마호크의 조리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18) 닭갈비는 처음에는 양념한 닭고기를 숯불에 구워먹던 요리라 소 양념갈비와 비슷하다 하여 닭갈비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닭의 갈비쪽 살을 사용했다는 말도 있는데, 어디 먹을 게 있어야지요. 닭이 흔해진 이후에는 주로 다리살로 만듭니다.

 

 현대의 닭갈비는 모두가 아시다시피 양념한 닭고기와 채소를 볶고, 사리나 치즈를 곁들여 먹는 요리입니다. 먹고 난 후 밥을 볶아먹기도 하고요. 사견으로는 볶음밥이 본체인데, 닭갈비를 구색 맞추기 수준으로 만들고 볶음밥만 만들려고 하면 경험적으로 잘 안됩니다.

 

 닭갈비가 흔하고 성공적인 요리다보니 업소용 조리도구 중 닭갈비 팬이라 불리는 게 있습니다. 지름이 큰 원형 양수팬으로, 무코팅 경질피막 대형 알루미늄 팬을 사용하고 싶은 분에게 추천할 만 합니다.

 

 숯불에 굽는 양념 닭갈비도 사라진 건 아닙니다. 먹으면 나름대로 맛있습니다. 다만 소나 돼지고기가 흔해진 시대에 경쟁력이 높은 메뉴는 아닌 것 같습니다.

 

 

 

 

 

 

19) 시중에 대략 3종류의 고구마가 있습니다. , , 호박고구마가 있는데요. 대략 품종 차이입니다. 같은 품종이라도 재배환경에 따라 밤고구마스러워지기도 하고 물고구마스러워지기도 합니다만, 기본적으로는 품종차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호박고구마가 색깔도 호박색이고, 단호박 비슷한 맛도 나고 해서 호박에 접붙인 고구마라는 설이 한동안 나돌았으나, 실제로는 그냥 고구마 품종이 그런 겁니다. 요샌 호박고구마 쪽이 워낙 일반화되어서 그냥 고구마 하면 호박고구마를 떠올리는 분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익혔을 때 안쪽 색이 노란 고구마고, 수분이 많은 타입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호박고구마 색인데 밤고구마처럼 분질형인 품종도 있긴 합니다.

 

 고구마를 구워 먹으려면 물고구마처럼 수분이 많고 점질형인 게 좋습니다. 수분이 날아가지 않도록 쿠킹호일에 싸거나 꼬꼬떼(더치오븐)를 이용해 오븐에 구우면 됩니다. 맛있지만 커다란 전기오븐으로 구우면 전기를 많이 쓰게 되는 게 단점입니다. 바스켓형 에어프라이어나 직화형 더치오븐을 쓰면 좀 더 저렴하게 구울 수 있습니다.

 

 수분이 적은 밤고구마는 찌거나 튀겨 먹기에 적합합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고구마 튀김에도 타입이 여러 가지 있습니다. 채를 썰어 튀긴 게 있고, 튀김옷을 입혀 튀긴 게 있고, 깍두기처럼 썰어 튀긴 후 녹인 설탕이나 꿀, 물엿 등을 입힌 고구마탕(맛탕)이 있습니다. 나는 튀김옷을 입혀 튀긴 고구마를 떡볶이와 함께 먹는 걸 좋아합니다.

 

 

 

 

 

 

20) 대체로 가정에서는 조리 용도라도 나무젓가락을 씁니다. 일회용이 아닌, 지속 사용가능하게 나오는 나무젓가락은 대체로 다음 중 하나의 처리는 되어 있습니다. 드물게 처리가 안 된 것도 있는데, 그런 건 그냥 쓰면 정말 수명이 짧습니다.

 

) 옻칠

) 플라스틱 수지 도포

) 오일 먹임

) 식용 가능한 왁스 도포

 

 ㄷ과 ㄹ은 같이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견으로는 ㄱ이나 ㄴ처리 이전에 ㄷ처리를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는 잘 안 만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떤 처리를 하건 나무젓가락은 수명이 있는 편입니다. 수명을 길게 쓰려면 관리를 잘 해야 하는데요. 일단 ㄱ이나 ㄴ의 경우 오래 쓰려면 마모가 잘 되는 수세미로 설거지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ㄷ이나 ㄹ의 경우 오래 적신 상태로 두면 안 됩니다. ㄱ이나 ㄴ수준의 방수 상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지간한 수세미는 옻칠이나 플라스틱 수지는 오래 지나지 않아 조금씩 벗겨버립니다. 추천하는 건 펄프 수세미입니다. 펄프 수세미로만 설거지를 하면 옻칠 젓가락을 비교적 오래 사용할 수 있습니다.

 

 조심스레 사용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옻칠 젓가락은 끝쪽부터 조금씩 벗겨집니다. 그렇게 되서 물기가 들어가고, 젖은 상태가 유지되면 나무가 썩습니다. 나무가 썩으면 더 사용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 나는 식용 등급의 미네랄 오일을 먹이는 걸 추천합니다. 컵에 도마 오일을 담고 옻칠이 벗겨진 끝쪽을 담가두고, 안쪽으로 오일이 완전히 먹도록 며칠 두면 됩니다. 그 다음 겉면의 오일을 닦아내고 설거지하고 쓰면 됩니다. 종종 오일을 먹여주면 부패 없이 오래 사용할 수 있습니다.

 

 ㄷ에 해당하는 나무젓가락이나, 종종 보이는 아예 처리가 안 된 나무젓가락도 오일을 먹여가면서 사용하면 어느 정도 오래 사용 가능합니다. 반드시 도마용 미네랄 오일을 사용해야 합니다. 식용유를 포함한 동식물성 오일은 산패됩니다. 산패되면 답이 안나옵니다.

 

 ㄹ에 해당하는 식용 가능 왁스는, 나는 실제 도마나 나무젓가락에 사용하는 건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종류에 따라 식물유가 포함되어 약간의 자극성이나 맛, 향 등을 가지곤 하기 때문입니다. 대조적으로 도마오일로 시판하는 정제된 미네랄 오일은 무미에 무향입니다.

 

요리 관련 이런저런 이야기 #7

식이 2022. 3. 13. 20:04 Posted by 해양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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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직화구이를 할 때 가스는 그다지 좋지 못한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가스에 섞이는 부취제이고, 다른 하나는 가스의 화학식에 있습니다. 메탄(천연가스)CH4, 부탄은 C4H10, 프로판은 C3H8입니다. 공통점으로 수소를 많이 가지고 있는데요. 그렇기에 가스는 연소 과정에서 수소와 산소와 만나 H2O, 즉 물을 만들어냅니다. 가스가 연소하면 수증기가 생겨난단 말이지요. 그러니까 가스불 위에 직화로 음식물을 구울 때, 음식물은 가스불의 열기와 함께 수증기를 같이 쬐게 됩니다. 수증기 때문에 음식물은 촉촉해지고, 젖기 때문에 덜 구워집니다. 음식물은 표면이 건조해야 잘 구워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가스 화구에 음식물에서 기름이라도 떨어져서 오염되면 청소가 대단히 귀찮지요.

 

 대조적으로 숯은 탄소가 주성분입니다. 아무리 잘 건조된 숯도 자체적으로 수분을 약간 머금고 있긴 하지만, 주성분이 그냥 탄소고 수소 원자를 가지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연소 시에 수증기를 많이 만들어내지는 않습니다. 그러니까 가스불과 달리 숯불은 건조한 열기가 올라옵니다. 무연탄이 주성분인 연탄도 마찬가지로 건조한 열기가 올라오고요. 숯불구이나 연탄구이가 가스불 직화와 다른 건 부취제와 함께 수증기의 비율에 의한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가스불을 피우고, 그 위에 석쇠나 타공팬을 이용해서 충분히 마른 느낌으로 무언가를 굽는 건 숯불대비 어렵습니다. 잘못하면 부취제 냄새 배고요.

 

 그렇지만 숯이나 연탄 같은 고체 탄소연료는 가스에 비해 사용이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일단 가정집 실내에서는 연기 때문에 사용이 어렵고, 원하는 만큼 착화시키고 소화시켜 재사용하기도 피곤하고, 재가 생기기도 합니다.

 

 그래도 수분이 적은 느낌으로, 직화로 구워진 걸 먹으려면 숯이나 연탄 같은 것에 굽는 게 더 좋습니다.

 

 

 

 

 

 

2) 현실적인 이유로 직화를 할 때 토치를 많이 쓰게 됩니다. 숯불을 쓰는 건 제약이 꽤 있으니까요. 토치는 위쪽에서 불꽃을 가져다댈 수 있기 때문에 가스의 단점인 수증기 생성으로 인한 문제는 현저하게 덜합니다. 수증기는 위로 날아가니까요. 물론 음식물 표면에서 증발하는 수분 또한 빠르게 날려보내기 유리합니다. 음식물의 상부를 직접 가열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토치 불꽃의 지나치게 높은 온도와 부취제 냄새인데요. 토치 겉불꽃 온도는 굉장히 높아서 무언가를 태우기 쉽고, 안쪽 화염을 가져다대면 부취제 냄새가 배기 쉽습니다.

 

 토치를 쓰는 데 익숙해지면 높은 온도의 겉불꽃으로도 그리 타지 않게 많은 것들을 익힐 수 있게 되긴 합니다. 다만 식재료의 수분함량이나 형상에 따라 좀 난감한 것들도 생기는데요. 어쨌든 토치 겉불꽃 온도는 1,300~1,500수준입니다. 요리엔 그런 온도가 필요없어요.

 

 개선책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시어잘(씨어잘)이라는 악세사리고, 다른 하나는 퍼지는 화염을 만들 수 있는 타입의 토치입니다.

 

 시어잘의 경우 원래는 미국에서 나온 상품명입니다. 오리지날 상품은 미국 상황에 맞춰 나온 거라 좀 사용에 성가신 제약이 있어서, 우리나라에서도 유사품이 나와있지요. 구조 자체는 단순하기 때문에 나는 유사품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직 일반명사가 없는 물건이라 유사품도 최초의 상품명인 시어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시어잘의 원리는 스크린망이 있는 구조물을 토치 앞에 장착하여, 본래 직진성이 강하고 화력이 집중되는 토치의 불꽃을 넓게 퍼뜨리는 겁니다. 실제로 사용해보면 불꽃의 위력이 많이 감소하고 퍼지게 되는데요. 토치 화력을 약하게 만드는 물건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그리고 원리상 토치에서 먼 쪽에서 불꽃을 흩뜨리기 때문에, 토치를 사용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인 가스 부취제 냄새가 완화됩니다.

 

 단점은 시어잘의 가격과 무게, 불꽃이 퍼지는 모양, 그리고 철망의 연소인데요. 일단 시어잘의 가격은 토치보다 몇 배는 비쌉니다. 사용자가 많지 않으니까 단가가 높아져요. 그리고 시어잘 특성상 토치 앞쪽에 철제 구조체가 들어가기 때문에, 무게중심이 앞쪽에 집중되고 좀 무겁습니다. 토치질을 오래 해야 하는 상황이면 부담스러운 중량일 수 있고요.

 

철솜은 이렇게 탑니다

 시어잘을 사용하면 앞의 철망이 빨갛게 달아오르면서 타버립니다. 철은 덩어리 상태에서는 안 타지만, 망이나 솜 형태로 단면적을 넓혀놓으면 외부산소접촉량이 많아져 불에 탑니다. 철이 연소하면 검은 산화철이 되고 쉽게 부스러지는데요. 붉은 녹 정도는 아니지만 철망이나 철솜 같은 게 타버리면 겉면에서 철이 부서지며 가루가 잘 이탈합니다. 즉 시어잘의 철망에서도 철가루가 이탈하면서 망이 망가지게 되는데요.

 

 일단 철가루 자체는 좀 먹어도 별 문제가 되진 않습니다. 실제 시리얼에는 철분섭취를 위해 소량 철가루를 넣기도 합니다. 그래도 시어잘을 사용할 때는 철가루를 털어주면서 쓰는 걸 일단 공식적으로 권장합니다. 그리고 철망이 너무 타버리면 교체해줘야 하고요. 잘 타기 때문에 덜 타는 합금 철망을 쓰기도 합니다. 덜 타도록 철망 대신 타공 철판을 쓰는 분들도 있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시어잘에서 나오는 불꽃 모양이 섬세하게 사용하기 쉬운 타입은 아니라는 겁니다. 화력을 낮춰서 약한 화력을 쓸수록 컨트롤이 쉬운데, 이 경우 오븐 안의 열선처럼 정말로 약한 복사열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불꽃을 키우면 꽤 퍼지는 화염이 나오는데, 시어잘의 큰 화구와 무게 및 직진성이 약한 불꽃 특성은 사용하기 편하지는 않습니다.

 

 시어잘 대신 적용 가능한 방식이 불꽃 모양을 조절할 수 있는 토치입니다. 일부 토치에 그런 기능이 있는데요. 직진성이 약하고 약간 퍼뜨리는 불꽃을 만들 수 있습니다. 시어잘 쓰는 것처럼 많이 퍼지지는 않고요. 그래도 직진성이 약간 줄어들기 때문에 조금 덜 타긴 합니다. 화력이 덜 집중되고요.

 

 나는 수분이 일정 이상 있는 음식물을 조리할 때는 시어잘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타기 쉬운 걸 덜 태우고 시어링하고 싶을 때는 시어잘을 쓰는 게 좋습니다. 시어잘은 무겁고 불편한 점들이 있기 때문에, 좀 조심스럽게 요리를 할 때 쓰게 됩니다. 시어잘로도 답이 안 나올 정도로 잘 타는 거면, 광파오븐을 사용해서 굽습니다.

 

 토치로 음식물을 굽고 다양한 칼로 칼질을 하다 보면 요리라는 게 어릴 때 놀이의 연장선상에 있구나 싶습니다. 장난감 칼싸움, 불장난, 소꿉놀이가 합쳐지면 요리가 됩니다. 요새 애들은 그리 위험하게는 안 노는 것 같지만 말이지요.

 

 

 

 

 

 

 

3) 마이야르 반응은 175~180에서 가장 격렬하게 일어납니다. 단백질과 당이 반응해서 갈색으로 변하고, 맛있는 풍미가 생기는 현상이지요. 180보다 온도가 높아지면 마이야르 반응은 덜 일어나고, 대신 당이 캐러멜이 되는 캐러멜라이징 현상이 본격적으로 일어납니다. 그러다가 200보다 온도가 더 올라가면 탑니다.

 

 그런데 마이야르는 더 낮은 온도에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사실 그냥 상온에서도 일어납니다. 그 결과물이 간장과 된장입니다. 발효될 때 느린 속도로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나지요.

 

 아시아인은 간장에 설탕, 물엿, 꿀 등을 섞어 고기 등에 바르고 구웠을 때 나는 향기에 강하게 반응합니다. 그게 단적인 마이야르와 캐러멜라이징의 냄새입니다.

 

 한편으로 중화요리의 불맛은 굳이 풀어 이야기하자면 마이야르 + 캐러멜라이징 + 탄화물의 풍미입니다. 불맛이 너무 강한 건 어찌 보자면 탄 풍미가 강해진 겁니다. 사견으로 이상적인 볶음은 그다지 불맛이 강하지는 않습니다. 불맛 말고 선명한 향이 살아있는 게 진짜지요. 내가 먹어본 최고의 중화 볶음 요리들은 불맛이 강하지 않았었습니다. 물론 이런 지론에는 각자 주관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불맛을 더 좋아할 수도 있지요. 커피도 더 볶은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듯. 풀시티 이상으로 볶은 커피는 탄화된 풍미가 들어갑니다.

 

 

 

 

 

 

 

4) 커피의 경우 볶는 온도와 시간에 따라 볶인 정도가 달라지고, 풍미도 많이 변합니다. 많은 커피 로스터들은 커피에 더 달콤한 풍미를 부여하고자 합니다. 그러기 위해 캐러멜라이징이 잘 일어나는 구간의 온도에서 커피가 볶이는 시간을 늘리려고 하지요. 그런데 커피는 볶는 시간이 일정 시간 길어지면 본래의 풍미를 급격하게 잃기 때문에, 180~200에서 오랫동안 볶을 수는 없습니다.

 

 커피를 저온에서 장시간 볶게 되면 본래의 풍미를 많이 잃어버리고, 대신 자극이 적고 부드러운 커피가 됩니다. 어찌 보면 곡물차에 가까운 느낌이 되는데, 볶은 현미차나 메밀차 같은 것도 나름대로 인기가 있으니까 기호에 따라서는 그런 걸 좋아하기도 합니다. 다만 나는 그런 기호라면 그냥 현미녹차나 메밀차를 마시는 게 더 낫지 않나 생각합니다.

 

 반대로 다수의 로스터들은 최대한 고온에 강한 열풍을 이용해 단시간에 커피를 볶는 게 커피 생두 본연의 풍미를 살리는 방식이라 생각해 왔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 방식에 꽤나 의문을 가지고 있는 것이, 실제 시도 시 결과가 기대보다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원인을 찾아본 결과 과학적인 결과물을 찾을 수 있었는데, 본래 커피에는 클로로겐산(페놀산)이라는 폴리페놀 성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로스팅이 시작되면 이 클로로겐산이 락톤이라는 쓴 맛 성분을 만들어냅니다. 락톤은 로스팅을 지속하다보면 일단 파괴되었다가, 더 로스팅을 지속하면 또 다른 타입의 쓴 물질인 페닐 인단을 만들어냅니다. 그러니까 커피를 너무 단시간에 볶으면 클로로겐산 락톤 때문에 맛이 없고, 너무 오래 볶으면 본래 생두가 가진 향이 사라지고 밋밋하며 쓸데없이 또 쓴맛이 나는 커피가 되는 것입니다.

 

 주관적으로 생두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대체로는 너무 빠르지 않은 속도로 볶아 (소위 열풍식은 너무 빠르게 온도를 올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일본식 기준 미디엄 후반 정도로 볶아낸 원두가 좋습니다. 하이 초반이 넘어가면 잃는 풍미가 생깁니다. 대신 미디엄 정도 로스트에서는 캐러멜라이징으로 생기는 달달함은 포기해야 합니다. 생두 품질이 떨어질수록 본래 생두가 가진 풍미가 별게 없기 때문에 더 볶아서 캐러멜라이징으로 풍미를 만들어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저그런 생두는 시티 이상으로 볶아줘야 합니다. 일본식 명칭은 볶는 정도에 따라 라이트 -> 시나몬 -> 미디엄 -> 하이 -> 시티 -> 풀시티 > 프랜치 -> 이탈리안입니다.

 

 

 

 

 

5) 우리가 먹는 장어는 크게 네 종류가 있습니다. 붕장어(아나고/바다장어), 갯장어(하모), 뱀장어(우나기/민물장어), 꼼장어(먹장어).

 

 이 중 꼼장어는 실제로는 장어가 아닙니다. 캄브리아기에 등장한 원시적인 어류인 무악어류, 그러니까 턱이 없는 고대 원시 어류의 직계 후손입니다. 상어보다 더 오래된 원시적 진화 형태를 보존하고 아직도 살아남은 친구들이지요. 고생대 생물의 직계지만 잘 번식하고 있으니까 맛있게 먹어주면 됩니다.

 

 꼼장어는 워낙 비주얼이 파격적이고, 생선 본체도 그렇지만 알은 더더욱 못먹게 생겼기 때문에 (꼼장어 알 사진은 게시하지 않겠습니다. 찾아보지 않는 쪽을 권장.) 세계적으로 거의 먹는 나라가 없고, 거의 우리나라에서만 먹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잡는 양으로는 소비량 충당을 못 하고요. 우리가 먹는 꼼장어는 거의가 수입산입니다. 골뱅이처럼 지구촌에서 잡히는 걸 모두 수입해서 먹고 있지요.

 

 갯장어는 일본인이 좋아하고, 오랜 세월동안 우리나라에서 먹기엔 일본에서 비싸게 사줬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선 제법 잡힘에도 소비가 없던 생선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나라 경제력도 좋아지면서 이젠 갯장어도 먹는데요. 그래도 아직 비쌉니다.

 

 붕장어는 예전에는 흔한 생선이었습니다. 횟집에서 공짜 서비스로 붕장어 회를 줄 정도였고, 보통 회 입문하면 제일 먼저 먹어보는 생선이기도 했지요. 맛도 괜찮은 편이고요.

 

 장어는 피에 독이 있습니다. 그래서 붕장어를 회로 먹으려면 잘게 썰고 살을 완전히 빨아서 피를 확실하게 제거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붕장어 회는 예쁘지 않고 뭉개진 모양인 겁니다. 구워 먹으면 괜찮기 때문에 구이용 장어는 비주얼이 멀쩡하고요.

 

 흔히 민물장어로 부르는 뱀장어는 피에 독성이 더 강해서, 아예 회로는 못 먹습니다. 빨아도 소용없어요. 다행히 장어 피 독은 익히면 효력이 사라집니다. 그러니까 뱀장어는 구워 먹는 겁니다. 구워 먹기엔 붕장어보다 뱀장어 구이가 맛있지요.

 

호네키리를 한 갯장어

 한편으로 일본인은 장어를 좋아하고 많이 먹어서인지 장어칼은 따로 종류가 있습니다. 갯장어용은 하모키리, 뱀장어용은 우나기사키라고 부릅니다. 갯장어는 뼈가 많아서 칼집을 잘게 내서 먹는데, 하모키리는 그 칼집 내는 작업인 호네키리를 할 때 쓰는 칼입니다. 그리고 우나기사키는 뱀장어나 붕장어를 잡고 살을 발라낼 때 씁니다. 갯장어도 하모키리를 할 때가 아니고 잡을 때는 우나기사키를 쓰곤 합니다.

 

 

 

 

 

6) 돼지고기 부위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위는 가브리살입니다. 가브리살은 쇠고기로 치면 대략 살치살에 해당하는 부위입니다. 가브리살의 풍미는 돼지마다 편차가 매우 큰데, 경험적으로는 한돈이 수입산 돈육에 비해 가브리살은 유독 맛있는 편입니다. 우리나라 돼지는 외국 돼지들과는 달리 삼겹살을 가능한 맛있게, 그리고 많이 얻는 방향으로 육종되고 사육되는데, 그게 가브리살에 큰 영향을 주는 것 같습니다.

 

 가브리살 다음으로 좋아하는 부위는 꼬들살입니다. 꼬들살은 돼지머리 뒤쪽에 붙어 있는 뒷덜미살입니다. 그러니까 돼지머리에서 목살로 이어지는 부위란 말이지요. 사람으로 치면 머리에서 이어지는 뒷목 결릴 때 그 뒷목살. 가브리살은 대략 (아마도 하부)승모근이고요. 목살은 꼬들살과 가브리살 사이입니다. 꼬들살은 강한 화력으로 잘 구워 먹으면 맛있습니다. 직화구이가 어울립니다.

 

 돼지머리 뒤쪽에는 꼬들살 말고 옆 목근육 살도 있는데요. 사람으로 치면 뒷목 옆에서 내려오는 양쪽 목근육이 있지요. 그 쪽이 항정살입니다. 그런데 항정살은 돼지를 분할하면 돼지머리 쪽에도 붙어있고, 돼지 몸통쪽에도 붙어있어요. 비싸게 파는 항정살은 돼지 몸통쪽 항정입니다. 머리쪽은 피하지방이 많이 붙어있거든요.

 

 돼지머리는 취급하기 나름이라 사실 편육 먹어도 꼬들살, 볼살, 항정살 같은 고급부위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편육이 잘만든 거 좋은 부위 먹으면 참 맛있습니다. 잘만 걸리면 가성비 최고가 돼지머리 편육입니다. 맛없으면 대책없이 맛없습니다만. 그리고 순대국이나 돼지국밥에도 돼지머리 고기를 넣고, 어떤 순대국집에서는 삶은 돼지머리고기를 따로 주기도 하는데요. 운 좋으면 항정살이나 볼살 먹을 수 있습니다. 꼬들살은 구우면 맛있지만 삶아서 수분이 많은 상태로 먹으면 별로 특별하게 맛있진 않은 것 같고요. 볼살은 삶아도 맛있고 구워 먹어도 맛있습니다. 구우면 꼬들살 못지 않게 맛있어요.

 

 돼지고기 무한리필집 같은데 항정살 있는 경우가 꽤 있는데, 보면 피하지방이 많이 붙고 고기부분은 작은 항정을 주곤 합니다. 그게 돼지머리쪽의 항정, 소위 두항정입니다. 그것도 돼지 품질만 괜찮으면 맛있지요.

 

 삶은 소대가리만 맛있는 게 아닙니다. 돼지 대가리도 맛있습니다. 소위 뒷고기집에서 파는 고기들, 그거 거의 돼지머리 고기입니다. 그걸 삶아서 눌러 만든 편육을 사먹으면 싼데, 뒷고기집에서 발라낸 걸 구워먹으면 훨씬 비싼 게 현실입니다. 물론 돼지 머리를 발라내는 게 노동이긴 한데, 편육 만드는 것도 쉬운 건 아니지요.

 

 

 

 

 

7) 라면은 흔히 강한 불로 끓여야 한다는 게 속설이고, 실제로도 강한 불로 끓이는 게 더 맛있습니다. 그런데 물이 끓는점에 도달한 시점에서 강한 화력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충분히 물이 끓을 정도면 되고, 화력을 더 세게 해봐야 물이 빨리 증발할 뿐이지요. 물 안에서 삶아지는 음식물은 화력하고 상관없이 1기압에서 100에 매우 근접한 온도로 조리됩니다. 즉 강한 화력이 라면에 끼치는 영향은 대략 세 가지 정도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 면을 투입하면 면의 온도 때문에 끓던 라면 물의 온도가 내려가는데, 그 내려간 라면 물이 다시 끓기까지의 시간이 단축됨으로 생기는 변화

. 더 강한 화력을 사용할 경우 물의 대류가 격렬해지는데, 그로 인한 영향

. 최종적인 증발량의 차이. 즉 염도 등의 상승.

 

.은 아마 제법 영향을 줄 겁니다. 원래 어떤 면이건 면을 삶을 때는 충분한 양의 물에 삶는 게 정석입니다. 면을 넣으면 물온도가 떨어지는데, 물온도가 떨어질수록 맛없게 삶아진다는 게 통설입니다. 그런데 인스턴트 라면은 애초에 넣는 물 양이 정해져있고, 그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즉 강한 화력을 사용할수록 면 투입 이후 다시 금방 끓어오른다는 겁니다.

 

.은 아마 큰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은 나름대로의 영향을 줄 겁니다. 물이 졸아드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8) 상기한 이론을 검증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라면을 끓여봤습니다. 평소에 먹던 맛일수록 차이가 났을 때 이해가 쉬울 것 같아, 대량으로 사두고 평소에 많이 먹던 라면을 이용했습니다.

 

. 일반적으로 라면을 끓일 때보다 현저히 많은 양의 물에 면을 삶습니다. , ㄹ에서 소요되는 시간이 있으므로 본래 레시피보다 삶는 시간을 살짝 줄여줍니다.

. 면을 삶으면서 동시에 다른 냄비에 계량한 물에 건더기스프와 분말스프를 넣고 끓여둡니다.

. 면을 다 삶으면, 면을 냉수에 씻어 전분기를 제거합니다.

. 스프를 끓여둔 물에 삶은 면을 넣고 충분히 끓을 때까지 가열합니다.

. ㄷ의 과정에서 유분기가 줄어들었으므로 호두유를 약간 넣어줍니다.

 

 실험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일단 면이 평소보다 더 익습니다. 본래 면을 넣었을 때 온도가 떨어져서 익는 정도가 줄어드는데, 충분한 양의 물에 면을 익혔기에 면이 받은 열이 더 많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더 익었음에도 불구하고 익은 정도에 비해 면의 탄성이나 맛은 현저하게 개선됩니다. 전분기를 제거한 영향이 크게 느껴지고, 어떤 면이건 삶을 때는 역시나 충분한 양의 물에 끓이는 게 정석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면과 스프를 따로 끓인데다 면을 씻었기 때문에 (면을 찬물에 헹구면 양념이 덜 뱁니다. 파스타를 삶고 헹구지 않는 이유) 스프에 양념이 밴 느낌은 확실히 줄어듭니다만, 짬뽕이나 일본식 라멘을 먹어도 어차피 면에 국물양념 맛이 밴 상태가 아닌데 그런 비슷한 느낌이라 딱히 부정적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인스턴트 라면의 조리법은 기본적으로는 칼국수와 같습니다. 국물에 면을 넣고 끓여서 그대로 먹는 방식이지요. 칼국수는 의도적으로 국물의 점도를 올려서 먹는 요리입니다. 그러니까 Noodle Soup라는 표현도 씁니다. 그런데 인스턴트 라면은 대체로 그런 식의 레시피가 최적인 면 요리가 아니지요. 그냥 편의상 한 냄비에 넣고 끓일 뿐.

 

 한편으로 팜유 성분이 줄어들고 대신 호두유를 넣음으로 느껴지는 긍정적인 느낌도 있습니다. 호두유는 딱히 향미유는 아닙니다만, 팜유는 포화도가 높아서 덩이지고 달라붙는 기름인 반면 호두유는 포화도가 낮고 가벼운 느낌의 기름입니다. 그래서 풍미가 선명하고 산뜻해집니다.

 

 따로 끓이는 방식의 단점은 번거롭다는 겁니다. 설거지할 냄비도 하나 더 생깁니다. 인스턴트 라면에 굳이 더 수고를 들여 맛을 조금이라도 개선할 필요가 있는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9) 가정용 가스렌지에 알루미늄 팬이나 웍, 또는 대형 솥 등을 사용할 때 염두에 두면 좋은 게, 바닥 열평형의 문제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시판하는 가정용 가스렌지는 바닥을 고루 가열하지 않고, 불꽃이 나오는 부분이 한정적인데요. 실제로 그 때문에 불꽃이 닿는 부분과 닿지 않는 부분의 온도차가 꽤 나게 됩니다. 그 현상을 눈으로 직접 보려면 가정용 가스렌지를 이용해 지름이 넓고 얇은 알루미늄 프라이팬에 물을 담은 다음에 물을 끓여보면 알 수 있는데요. 불꽃이 나오는 부분만 우선적으로 동그랗게 물이 끓는 기포가 올라옵니다. 팬의 특정 부분만 계속 불꽃이 닿으니까 나오는 현상인데요. 팬 바닥이 균일한 온도가 아니라는 거지요.

 

  이 현상은 팬이 얇을수록 심하게 일어납니다. 바닥이 달궈진 부분의 열기가 그대로 위로 올라오는 경향이 더 강해지거든요. 대조적으로 팬이 두껍고 무거울수록 열기가 바닥을 구성하는 금속에 더 많이 전도됩니다.

 

 상대적으로 바닥을 전체적으로 가열하는 화구 모양을 가진 가스렌지나 인덕션, 하이라이트를 사용하면 이런 문제는 완화되거나 사라집니다. 문제는 2014년 이후 우리나라에서 시판하는 가정용 가스렌지는 무조건 화구 가운데 안전장치가 들어가고, 불꽃은 사이드에서만 나온다는 겁니다.

 

 이 현상으로 인해 바닥이 얇은 솥, 냄비에 무언가를 장시간 끓일 때는 대류가 불균일할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가정용 가스렌지에서 무언가를 가열할 때는 바닥 전체가 가열되면서 대류가 순환하는 게 아니고요. 불꽃이 닿는 부분부터 가열되면서 대류가 올라옵니다. 가스렌지 쓰다 보면 감이 적응을 합니다만, 가끔 이해가 잘 안 가는 현상이 발생하고 요리가 의도대로 되지 않을 때, 화구 모양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10) 상기한 이유들로 인해, 우리나라 가정용 가스렌지에서 라면을 끓일 때는 지름이 좀 큰 알루미늄(양은) 냄비를 쓰는 게 맛있습니다. 면 따로 끓이는 건 일단 논외로 하고요. 1개를 끓이더라도 조금 큰 냄비가 낫습니다. 우리나라 가정용 가스렌지는 불꽃이 작은 냄비를 사용하면 냄비 바깥으로 나가버리기 때문에, 좀 큰 냄비를 사용해야 가스렌지 화력을 강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작은 라면냄비로 라면을 끓이고 싶다면, 인덕션이나 가운데에서도 불꽃이 나오는 구형 또는 캠핑용 고화력 가스렌지를 쓰는 게 낫고요.

 

 면을 먼저 넣느냐, 스프를 먼저 넣느냐로도 이야기가 곧잘 나오곤 하는데, 스프를 먼저 넣는 쪽이 끓는점을 올려서 스프를 넣고 면을 넣어야 더 잘 익는다는 통설도 있습니다만, 사실 라면스프는 물의 끓는점을 그다지 의미있게 올리지 못합니다. 그 정도 끓는점은 날씨나 고도에 의해서도 변합니다. 끓는점을 올리고 싶으면 뚜껑을 덮으세요. 그보다 중요한 건 면을 넣었을 때 떨어지는 물온도를 얼마나 빨리 다시 올릴 수 있느냐인데요. 이 때문에 스프를 먼저 넣어야 합니다.

 

 대체로 다들 경험해보셨을 텐데 강불에서 물이 펄펄 끓고 있을 때 라면스프를 넣으려 하면, 증기 때문에 뜨겁기도 하고 증기가 많이 올라와서 분말스프가 잘 안 넣어집니다. 수증기에 금방 젖어버리고, 깨끗하게 잘 넣어지지도 않지요. 그래서 라면을 좀 끓여보신 분들은 무의식적으로 불을 줄이고 스프를 넣곤 하는데요. 여기서 면을 먼저 넣고 스프를 털어넣으면 불을 줄인 상태이기 때문에, 면을 넣은 후 떨어진 온도가 회복되는 게 더 늦어집니다. 그러니까 불을 줄이고 스프를 넣고, 다시 불을 강하게 만들어서 펄펄 끓어오르면 그 때 면을 넣는 게 좋습니다.

 

 경험적으로 냄비 뚜껑을 덮고 끓였을 때보다 열고 끓이는 게 맛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 냄비 뚜껑을 덮고 끓이면 내부 압력이 올라가서 끓는점이 높아지고, 수분은 덜 증발합니다. 그러니까 면이 더 익고, 염도는 낮아지는데요. 보통 라면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면이 꼬들하고 염도가 좀 높은 라면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뚜껑을 덮는 게 손해가 될 수 있는 건데요. 일단 분명한 건 뚜껑을 덮는 쪽이 화력면에서는 이익이 있다는 겁니다.

 

 이 문제는 뚜껑을 제한적으로 사용함으로 개선할 수 있습니다. 즉 물이 끓을 때까지 뚜껑을 덮었다가, 스프와 면을 넣고 다시 뚜껑을 덮고, 30초 정도 후에 뚜껑을 여는 식으로 말이지요.

 

 그리고 라면을 끓이는 도중 면을 계속 건졌다가 다시 넣었다가 하면 맛있어진다는 설도 있는데, 그건 그렇게 하면 그냥 덜익으니까 꼬들해지는 겁니다. 삶아야 하는 면을 끓는 물 바깥으로 계속 꺼냈다가 다시 넣었다가 하면 당연히 잘 안 익지요.

 

 

 

 

 

 

 

11) 흔히 아로마 오일이라고 부르는 것에는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천연재료에서 추출한 거고, 다른 하나는 합성향인데요. 전자를 보통 에센셜 오일, 후자를 보통 프래그런스 오일이라고 합니다. 일반적인 방향제, 향초, 아로마 선향/죽향, 화장품 등에는 합성향인 프래그런스 오일이 사용됩니다.

 

 합성향은 음식에도 사용됩니다. 음료, 제과, 빙과류 등에 폭넓게 쓰이는데요. 제품 성분표에 보면 합성착향료같은 식으로 적혀 있습니다. 합성향을 사용하는 대표적인 음료로 꼽을 만한 게 환타입니다. 예를 들어 환타 오렌지맛의 오렌지향은 진짜 오렌지향과 다르지요. 합성 오렌지향입니다. 오렌지를 닮은 향이지만 오렌지향이 아니지요. 또 많이 쓰는 합성향으로 바닐라향이 있습니다. 꽤 흔하게 팔고, 많이 씁니다. 예전에는 동네 슈퍼마켓에서도 합성 바닐라향 파우더를 팔았습니다. 대조적으로 훨씬 비싼 바닐라 오일도 대형마트 가면 살 수 있는데요. 그건 에센셜 오일입니다.

 

 향재로 사용할 때는 원물과 에센셜 오일도 꽤 차이가 나긴 합니다. 예를 들어 진짜 침향(沈香)과 침향의 에센셜 오일은 특성이 매우 다릅니다. 나는 진짜 침향을 태우는 향은 매우X10 좋아합니다만, 침향 에센셜 오일은 아무리 좋은 침향에서 뽑아낸 거라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침향 조각을 태우지 않고 아로마 램프 등에서 직접 가열할 경우, 그 향은 에센셜 오일의 향에 가깝긴 합니다. 그렇지만 진짜 침향의 가치는 태워봐야 알 수 있지요.

 

 여담인데 침향은 태워서 향을 즐기는 거지, 먹는 거 아닙니다. 침향은 몇 년 전만 해도 향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태우는 향재로 인식되었는데, 어째 몇 년 사이에 인기 있는 약재가 되어가지고 사람들이 침향을 먹고, 우려마시고 있는데요. 제발 그러지 좀 마세요. 옛날 사람들은 용골이라고 공룡 화석을 용의 뼈로 생각하고 탕약으로 끓여 먹었다는데, 침향을 먹느니 차라리 그게 나을지도 모릅니다.

 

 바닐라의 경우에도 바닐라 오일과 진짜 바닐라 씨앗은 좀 차이가 있습니다. 나는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은 좋아하는 편이지만, 원체 바닐라를 좋아함에도 하겐다즈 바닐라 아이스크림은 좀 유감스럽습니다. 하겐다즈는 바닐라 오일을 쓰기 때문입니다. 진짜 고급 바닐라 아이스크림은 씨앗을 직접 쓰지요. 바닐라빈 가격은 같은 무게의 은과 비슷합니다. 그래도 침향보다야 한참 쌉니다만.

 

 

 

 

 

 

 

12) 최고(最高)의 차()를 만드는 나라가 어디냐고 나에게 묻는다면, 녹차는 중국이고 오룡차와 홍차는 대만이라고 이야기하겠습니다. 소위 육대다류 중 백, , 흑차는 거의 중국에서만 만드니까 따로 꼽을 의미가 없고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중공 사람들은 중국 본토 홍차가 어째 대만 홍차보다 못하냐고 발끈하실지도 모르겠는데, 그야 중국 본토 홍차가 대만홍차 빼면 전세계 다른 어떤 나라의 홍차보다도 압도적으로 좋은 건 맞는데요. 대만홍차는 중국 본토 홍차 이상으로 기술이 좋은 데다가, 나는 소록엽선(小绿叶蝉) 생긴 걸로 만든 걸 최고로 여긴다고 답해주고 싶습니다.

 

 소록엽선은 벌레입니다. 성충 몸길이가 3mm정도인 아주 작은 곤충으로, 대만에서는 저지대의 차밭에 주로 생깁니다. 이 벌레는 찻잎에 달라붙어서 대롱처럼 생긴 입으로 찻잎이나 찻잎 줄기의 즙을 빨아먹는데요. 그러니까 원래 충해를 입히는 벌레입니다. 우리나라 이름은 초록애매미충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복숭아나 감귤의 품질을 떨어뜨리는 해충 취급받습니다.

 

 그런데 차나무는 소록엽선에 즙을 빨아먹히면 향기가 나는 물질을 매우 적극적으로 만들어냅니다. 사람들은 소록엽선같은 벌레를 포식할 수 있는 새 같은 걸 부르기 위해 향기를 만들어내는 거 아니냐는 식으로 생각하기도 하는데, 여하튼 소록엽선에 차나무가 심하게 당하면 당할수록 찻잎 향기가 근사해집니다. 다른 게 흉내낼 수 없는 향이 나는데, 설명을 하자면 꽃과 꿀, 또는 일종의 과일 비슷한 향이지만 실제 꽃, , 과일 중 어느 것도 정확히 그런 향이 나지는 않습니다.

 

동방미인

 소록엽선에 당한 잎으로는 주로 동방미인(東邦美人)이라는 차를 만듭니다. 일반적인 오룡차와는 꽤 거리가 있고, 오룡차와 홍차의 중간적인 차로 볼 수도 있지만 일단 오룡차로 분류하는데, 제대로 된 동방미인은 아주 많이 근사합니다. 그런데 소록엽선에 당한 잎으로 동방미인만 만드는 건 아닙니다. 적극적으로 산화시켜서 홍차를 만들기도 하는데, 내 입에는 수습 불가능하게 심하게 소록엽선에 충해를 당한 잎으로 만든 홍차가 최고의 홍차입니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홍차의 풍미와는 꽤 다른 홍차입니다만. . 물론 동방미인이 더 좋긴 합니다. 어떤 홍차도 진짜 동방미인은 못 따라가요. 이름만 동방미인인 차는 논외.

 

 여담으로 초록애매미충에 의한 차수(茶樹)의 충해는 우리나라에도 보고가 있는데, 딱히 그걸 활용해서 차를 만든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소록엽선에 당한 차는 무농약이라는 게 보장된다는 면에서 인기가 있기도 합니다. 농약을 치면 소록엽선이 충분히 생길 리가 없잖습니까. 엄밀한 의미에서 유기농으로 뭘 재배한다는 건 벌레하고 친해진다는 겁니다.

 

 

 

 

 

 

 

13)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장 표준적인홍차 맛은 대략 스리랑카(실론)의 캔디(Kandy) 지역 BOP 급 차가 그나마 비슷할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오랜 세월 동안 가장 접하기 쉬웠던 홍차는 그나마 립톤 옐로 라벨이었는데, 립톤 옐로 라벨은 다양한 지역의 홍차를 블렌드한 것이기는 합니다만, 그나마 단일 지역 차 중 립톤 옐로 라벨 맛과 비슷한 게 실론티, 그 중에서도 캔디 지역 차를 꼽을 수 있습니다.

 

 원래 립톤은 스코틀랜드 출신 토마스 립톤이라는 사람이 세운 회사로, 식료품점을 해서 돈을 많이 번 후 실론 캔디, 우바 지역의 다원 다수를 매입합니다. 그래서 립톤 옐로라벨도 기본적인 풍미는 캔디 및 우바 지역 차인데요. 고지대인 우바 지역 차가 캔디 지역 차보다 맛있음에도 굳이 추천하지 않는 건, 우바 지역 차는 크게 2가지 스타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관적으로 근사한 우바 차는 쥬시하면서도 장미 향에 가까운 좋은 플로럴함이 있습니다. 이 타입의 우바 홍차는 캔디 홍차 이상으로 클래시컬하고, 익숙하면서도 품질이 좋습니다. 그런데 어떤 우바 차는 대만의 홍옥품종 홍차 비슷한 풍미를 가집니다. 나는 그 품종향을 민티하다고 느끼는데, 나는 민트차도 민트 종류 안 가리고 잘 마시지만 홍옥 품종의 향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그런 향을 일부의 우바 차도 가지고 있습니다.

 

 여담으로 스리랑카 차는 유통 체계가 매우 안좋습니다. 좋은 가격에 좋은 걸 사는 게 쉽지가 않은 편입니다. 스리랑카 정치와 상업 발달 정도가 안좋아서 그렇습니다.

 

 

 

 

 

 

14) 최고의 홍차 이야기를 했으니 최고의 커피도 이야기해볼까요. 이건 표준적인 답이 정해져 있습니다. 최고의 커피를 만드는 나라는 파나마입니다. 파나마 운하 있는 파나마요.

 

 파나마의 일반적인 커피가 최고 품질은 아닙니다. 사실 스페셜티 레벨에서도 마찬가지고요. (사견으로는 아시엔다 라 에스메랄다의 다이아몬드 마운틴도 그저그런 스페셜티 커피라 생각하네요.) 그저 파나마의 고지대에서 나오는 게이샤 품종 커피만 아예 어나더 레벨입니다.

 

 파나마 보케테 지역에 위치한 아시엔다 라 에스메랄다, 우리나라 식으로 말하면 에스메랄다 농장은 1999년에 심각한 커피녹병이 돌아 대다수의 커피나무를 잃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 게이샤라는 한 품종만 병에 내성을 가진 걸 발견했고, 그래서 농장에 게이샤를 많이 심었습니다.

 

 원래 게이샤 품종은 1930년대에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되어 1963년에 이미 파나마에도 보급되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재배하기 까다롭고 수확량이 나빠서 딱히 인기있지는 않았지요. 그러다가 곰팡이병에 강해서 아시엔다 라 에스메랄다에 많이 심었는데요. 이후 나무가 자라서 2004년에 수확을 했고요.

 

전설의 시작

 그게 커피 역사상 적어도 열 손가락 안에는 꼽힐 만한 사건이 됩니다. 기존에 존재하던 커피와는 아예 다른 수준의 커피가 나와 버렸거든요. 이후에 밝혀진 것에 의하면, 게이샤 품종은 일반적인 고도에서 키우면 평범한 수준의 커피가 됩니다. 수확량만 적고요. 그런데 고지대에서 키울수록 엄청나게 좋은 커피가 됩니다. 에스메랄다는 고지대에 걸쳐 있는 농장이었고, 기존 커피나무가 워낙 다 죽어서 게이샤를 많이 심었기에 대발견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참고로 위에 이야기한 다이아몬드 마운틴은 카투아이라는 품종입니다. 그 품종은 평범해요.

 

 이후 스페셜티 커피 시장은 무럭무럭 성장합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파나마 게이샤는 어나더 레벨에 있고요.

 

에티오피아 게이샤

 게이샤 품종이 좋다는 게 알려져서 이후 원 게이샤 품종이 있던 에티오피아에서도 게이샤를 다시 찾아 번식시켰고, 다른 나라에도 심고 그랬는데요. 그렇게 나온 결과물들도 충분히 좋긴 한데, 파나마 게이샤와는 뭔가 다릅니다. 게이샤 품종은 에티오피아 -> 탄자니아 -> 코스타리카 -> 파나마로 퍼졌는데요. 이 과정에서 유전자가 뭔가 변한 거 아니냐는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실제 각 나라에서 키워 파는 게이샤는 다 특성이 좀 다릅니다. 다 좋긴 한데요. 각 지역마다 변이가 일어난 건 아닌가 추정합니다. , 물론 이름만 게이샤고 수준은 게이샤로 볼 수 없는 것도 있긴 합니다. 진짜 게이샤는 어느 나라 것이나 좋은데, 이름은 같아도 사실 완전 동일한 품종으로 보긴 힘들 정도로 특성이 다릅니다. 파나마 게이샤라고 부르는 품종도 지역마다, 농장마다, 같은 농장 안에서도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후 게이샤 외의 질이 좋은 품종이 발굴되고, 육종되고 있기도 합니다. 다만 주관적으로는 원래 있던 부르봉(버번)과 티피카가 얼마나 좋은 품종인지 새삼 알게 되었다라는 인상이네요.

 

 한편으로 에스메랄다 게이샤의 충격이 가져온 큰 변화가 있는데요. 이후 커피를 볶는 정도가 약해졌다는 겁니다. 새콤한 맛이 남아있게 볶은 커피를 드셔보신 분들이 많을테고, 왜 커피를 그렇게 볶아먹는지 의아함을 가져보신 분들도 많을텐데요. 고급 커피는 생두에 가진 향기 성분이 풍부하고 다양한데, 많이 볶아버리면 그런 향이 많이 사라지고 평범한 볶은 커피향이 주가 됩니다. 생선은 찜쪄먹거나 조려 먹어도 맛있지만, 고급 생선 물 좋은 게 있으면 회로 먹잖아요? 비유하자면 그런 거지요. 참다랑어 익혀드셔본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는데, 회로 먹으면 최고존엄인 참다랑어도 익히면 평범한 익힌 참치가 됩니다.

 

 

 

 

 

 

15) 에스메랄다 게이샤가 가져온 혁명 이전, 세계 최고의 커피로 꼽히던 건 자메이카 블루마운틴입니다. 그 다음 정도로 꼽히던 게 하와이의 코나였지요. 여기에 예멘의 모카 마타리를 더해 3대 커피 같은 식으로 부르기도 했었는데요.

 

 게이샤의 등장 이후 커피 월드가 참 많이 변하긴 했습니다만, 지금 기준으로 봐도 블루마운틴은 좋은 커피긴 합니다. 아직도 명성이 높다보니 가성비가 전혀 안 나오긴 합니다만.

 

 블루마운틴이 왜 좋은 커피냐 하면, 일단 품종이 본래의 티피카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좋은 자연환경에서, 고지대에서, 정성껏 잘 키우는 커피입니다. 그러니까 품질이 좋습니다.

 

 아라비카 커피는 에티오피아가 원산지입니다. 에티오피아에는 다양한 커피 품종이 자연적으로 자라고 있는데, 대체로 품질이 좋습니다. 그러니까 에티오피아 커피는 특별한데요. 비유하자면 에티오피아 커피는 자연산 생선에 가깝고, 다른 대부분의 나라 커피는 양식 생선에 가깝습니다.

 

 에티오피아에서 자연적으로 자라는 커피 품종들을 원종이라 합니다. 그리고 이 원종들 중 이른 시기에, 세계에 널리 퍼져나간 두 품종이 있습니다. 티피카와 부르봉(버번)이 그것이지요.

 

 이 두 품종은 원종에 가깝습니다. 그러니까 결과물이 좋고 맛있습니다. 문제는 두 품종 다 병충해에 취약하고 수확량이 별로 없는 편이라는 겁니다. 특히 티피카는 부르봉보다도 더 약하고 수확량도 더 적습니다. 두 품종 중에는 티피카가 먼저 세계적으로 보급되었는데, 이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부르봉으로 교체되고, 이후 부르봉도 너무 약하고 수확량이 적으니까 더 병충해에 강하고 수확량도 많고 수확도 쉬운 개량종으로 점차 바꿔나갑니다. 부르봉 계열의 유명한 개량종으로 카투라와 카투아이가 있는데, 품질은 대략 부르봉 > 카투라 > 카투아이고, 병충해에 강한 정도나 키우고 수확하기 쉬운 정도, 수확량 등은 그 반대입니다.

 

커피 품종 진화 트리, 티피카

 그러니까 지금까지도 본래의 티피카에 가까운 걸 (자메이카 블루마운틴에서 키우는 티피카 계열 품종명 또한 블루마운틴입니다. 대략 티피카 원종에 가까운 변종 취급받습니다.) 키우고 있는 블루마운틴, 코나는 좋은 커피입니다. 그냥 키우는 것도 아니고 잘 키우고 있고요.

 

커피 품종 진화 트리, 부르봉

 부르봉 같은 경우 그나마 티피카보다는 많이 키우는데, 부르봉도 좀 게이샤처럼 고지대에서 품질이 좋아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평범한 고도의 부르봉은 평범한 커피인데, 아예 고지대에서 잘키운 부르봉은 게이샤가 살짝 연상되는 정도로 품질이 좋아집니다. 특히 부르봉은 평범한 건 색깔이 레드 또는 옐로우인데, 좀 특이하게 둘 사이의 교배종으로 추정되는 핑크나 오렌지도 있고, 그런 건 더 맛있습니다.

 

 

 

 

 

 

16) 명절에 지내는 제사를 차례라고 하지요. 차례는 한자로 茶禮입니다. 그러니까 원래는 술이 아니라 차를 올리는 거였어요. 그러다가 우리나라에서 차를 마시지 않게 되면서 속칭 곡차, 즉 술을 올리게 된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전근대 시기에 차는 사치스러운 기호품 취급이었습니다. 실제로 차라는 게 좋은 걸로 챙겨 마시다 보면 쉽게 사치스러워지고, 수공으로 만들면 제다에 노동력이 많이 들어갑니다. 우리나라는 고려 시대에는 차를 많이 마셨고, 차례나 다반사(茶飯事)같은 말이 여전히 남아있을 정도로 일상적이었지만 조선시대에는 검약을 중시하는 문화였던데다 조선 후기 들어 경제적 어려움도 겪으면서 차문화가 사라졌었습니다. 대신 우리나라에서는 숭늉을 끓여 먹는다거나, 무궁화로 차를 끓여먹거나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키우는 무궁화도 히비스커스의 친척이기 때문에, 일제 이전에는 곧잘 차로 마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조선반도가 일본제국령이 되면서부터는 다시 우리나라에서도 차를 많이 재배했습니다. 일본인은 조선인에게 차 만드는 기술을 잘 가르쳐주지 않으려고 했지만, 보고 배운 사람도 있었지요. 그리고 광복 이후에도 한동안은 차가 인기가 좋았습니다. 그렇지만 가짜 차가 유통되다가, 점차 우리나라는 커피 문화로 넘어가게 됩니다. 노무현 시기쯤에는 마지막 붐이 있었지만, 이명박 정권 초기에 농약보이차 파동이 터지고, 스타벅스같은 에스프레소 기반의 카페가 널리 보급되면서 완전히 커피 문화로 넘어가고 맙니다.

 

 나는 우리나라가 커피문화가 된 이유 중 하나로 차갑게 마실 때 커피가 차보다 맛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꼽습니다. 따뜻한 커피가 따뜻한 차보다 맛있다고 할 수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차가운 것끼리 비교하면 아이스커피가 더 맛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겠다는 사람들이 꽤 있지요.

 

 우리나라 사람들 중 차가운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이 꽤 있다고 생각합니다.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 것과 일맥상통하는 게 있지 않나 생각하고 있는데요. 우리나라는 냉면 등 차가운 면 요리가 세계적으로 발달한 나라이기도 하지요.

 

 나의 경우 주로 동절기에는 차를, 하절기에는 커피를 소비합니다. 따스한 커피는 봄과 가을에 주로 마시고, 여름에는 아이스커피를 마시게 되니까 마시는 커피의 종류도 좀 달라집니다.

 

 

 

 

 

17) 새우를 좋아하는 분이 많은데, 새우는 상태에 따른 맛 차이가 심한 편입니다. 냉동한 적 없는 신선한 새우는 대체로 맛있습니다만, 삶아서 껍질을 벗겨 냉동한 것들은 거의 맛이 남아있지 않지요.

 

 새우를 먹는 일반적인 요리법 중 하나가 소금을 깔고 굽는 소금구이인데, 그 조리방식은 일단 테플론코팅팬 같은 데 하면 팬을 망치기 쉽다는 걸 염두에 둬야하고요. 그냥 팬에 굽는 것에 비해 새우가 잘 구워지긴 하는데, 삼투현상으로 새우 내부의 수분이 빠져나오면서 절여지는 효과가 있어 수분이 줄어들어 온도가 쉽게 올라가고, 달궈진 소금 알갱이가 둥그스름한 새우 표면을 감싸면서 보다 접촉면적이 많아지기도 하여 그렇습니다.

 

 그런데 새우를 익히는 데 그리 고온이 필요한 건 아니고, 딱히 새우 겉껍질에 마이야르 만들 일도 없기 때문에 굳이 소금을 많이 소비하고 팬에 부담을 줘가면서 소금구이를 하지 않아도 새우를 맛있게 익힐 수 있습니다.

 

 나는 새우는 머리 뒤쪽 내장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머리를 제거한 새우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요. 새우가 물이 나빠지면 내장이 먼저 썩기 때문에, 신선한 새우를 먹어야 그나마 내장을 먹을 수 있고요.

 

 새우를 취급할 때 주의할 건 새우 머리와 꼬리는 매우 뾰족하다는 겁니다. 그리고 날것일때는 새우 표면에 비브리오균이 있어요. 비브리오균은 수온이 높을 때 잘 번식하기 때문에 6~10월이 위험합니다. 그래서 하절기에 새우를 다듬다가 뾰족한 새우 머리에 찔리거나 하면, 비브리오에 감염될 수 있습니다.

 

 비브리오균이 만들어내는 독성은 간에서 해독합니다. 그래서 간이 건강한 사람은 큰 질환이 안 생기는데, 간이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은 패혈증까지 걸려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생새우를 다듬을 때는 고무장갑이건 니트릴장갑이건 비닐장갑이건 일단 방어력을 확보할 수 있는 장갑을 끼고 작업하고, 찔릴 경우 잘 씻고 소독하고 몸에 문제가 있으면 지체없이 병원에 가야 합니다. 비브리오균은 85이상에서 사멸하니 익혀 먹으면 괜찮습니다.

 

 

 

 

 

 

18) 시판 간장에는 TN 수치라는 게 있습니다. 총질소함량을 의미하는데요. TN 수치가 높을수록 고급간장입니다. 샘표에서 양조간장 701501을 시판하여 이 수치가 대중적으로 알려졌는데, 701TN 1.7%5011.5%입니다.

 

 KS규격으로 TN 수치는 1.0%이상은 표준, 1.3% 이상은 고급, 1.5% 이상은 특급입니다.

 

 시판 간장들의 TN 수치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표기 수치 % 이상이라는 의미입니다.

 

1.7% 샘표 양조간장 701, 청정원 햇살담은 씨간장숙성 양조간장 골드

1.5% 샘표 양조간장 501, 샘표 다시마간장, 샘표 맛있게 염도낮은 양조간장, 샘표 국산콩 양조간장, 샘표 유기농 자연콩 양조간장, 샘표 계란이 맛있어지는 간장, 샘표 회간장, 청정원 햇살담은 씨간장숙성 양조간장, 신앙촌상회 양조 생명물간장, 사조대림 해표 양조간장, 삼화 진간장 플러스

1.3% 샘표 진간장 금F3, 샘표 조림간장, 청정원 햇살담은 두번달여 더 진한 진간장골드, 신앙촌상회 양조1급 진간장, 사조대림 해표 조림간장, 삼화 양조진간장, 삼화 맛간장

1.2% 샘표 맑은조선간장, 샘표 국간장

1.1% 샘표 진간장 금S, 청정원 햇살담은 두번달여 더 진한 진간장

1.02% CJ 이츠웰 참진한 진간장

1.0% 샘표 진간장 S, 몽고간장 순, 몽고간장 1, 몽고간장 송표, 몽고간장 진골드, 몽고간장 국, 오복 향이좋은 덕용국간장, 신앙촌상회 양조 깔끔한 국간장, 신앙촌상회 양조 골드간장, 하회마을 순간장, 사조대림 해표 진간장S, 사조대림 해표 국간장, 삼화 진간장, CJ 이츠웰 참진한 국간장, 신송 진간장, 신송 진간장 프리미엄

0.95% 오복간장 금표

0.9% 오복간장 청표, 하회마을 진간장, 하회마을 국간장, 하회마을 불간장, CJ 이츠웰 참진한 진간장 S

0.88% 삼화 맑은 국간장, 삼화 순간장, 삼화 불고기간장

0.85% 오복간장 진간장, 삼양식품 다참 삼양진간장

0.83% 오복 맛이좋은 덕용진간장, 오복 향이좋은 덕용진간장

0.82% 큐원 참진간장

0.81% 몽고간장 진

0.8% 샘표 맛간장 국ㆍ찌개용, 샘표 맛간장 조림ㆍ볶음용, 삼화 척척척 만능간장, 삼화 알뜰간장

 

몽고식품, 오복식품, 신송식품의 간장은 양조간장의 경우 TN표기가 없고, 혼합간장만 TN표기를 합니다.

청정원의 간장은 일부 간장에만 TN표기가 있습니다.

 

 보통 간장의 TN수치는 양조간장이 높고, 혼합간장은 낮습니다. TN 수치가 낮은 간장들은 산분해간장의 비율이 높고, 양조간장은 혼합간장이라 표기하기 위한 구색 맞추기 수준으로 들어간 게 많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순수 산분해간장 성분만 있는 상품은 시판되는 게 없는 걸로 압니다.

 

 일반적으로 진간장이라고 표기하는 건 혼합간장입니다. 예외적으로 청정원과 신앙촌상회의 진간장만 양조간장입니다. 이 두 회사는 산분해간장을 생산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혼합간장이라고 TN이 꼭 낮은 건 아닙니다. 삼화식품의 진간장 플러스는 혼합간장임에도 TN 1.5%입니다. 많은 분들이 사용하는 샘표 진간장 금F31.3% 수준의 TN수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산분해간장이 양조간장보다 꼭 맛없는 간장은 아닙니다. 높은 TN의 산분해간장은 장점이 있는 풍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간장을 조리거나 하지 않고 그대로 먹을수록 고급 간장을 쓰는 게 좋습니다. 전이나 튀김 등을 찍어 먹는 용도의 간장으로는 TN 1.3%이상을 권장합니다. 그리고 밥을 비비거나 할 때는 가능한 좋은 걸, 가급적 TN 1.5% 이상을 사용하는 게 맛있습니다.

 

 

 

 

 

19) 우리나라 마켓에서 공장제 조미료는 세대를 나눕니다.

 

 1세대 조미료는 미원이나 미풍, 다미 같은 MSG입니다. 2세대 조미료는 다시다, 감치미같은 핵산계 위주 조미료고요.

 

 3세대 조미료는 화학조미료가 해롭거나 질이 떨어진다는 인식에서 나온 자연재료 위주의 분말형 조미료입니다. 산들애, 맛선생 등이 있지요. 그리고 이후 등장한 4세대는 첨가물을 최소화한 액상발효조미료입니다. 연두, 다시다 요리수 등이 있습니다.

 

 이밖에 근래 많이 사용하는 육수 만드는 코인이라거나, 서양 요리에 많이 쓰는 스톡. 실질적으로 조미료 역할을 하는 굴소스 등도 많이 쓰는 조미료라 할 수 있는데요.

 

 실사용을 할 때는 어떤 성분이 들어가있는지를 보는 게 좋습니다. 다양한 재료가 들어가있을수록 다양한 맛이 나긴 하는데, 대신 컨트롤이 안 되고 난잡한 맛이 나기 쉽습니다. 특히 천연물을 많이 넣은 타입일수록 그러합니다. 그리고 MSG가 들어가있는 건 확 티가 납니다. MSG는 입에 오래 달라붙는맛을 냅니다. 조금만 들어가있어도 천연 글루탐산에 비해 농도가 높은 편이기 때문에, 완성된 요리 스타일에 큰 영향을 줍니다.

 

 시판 조미료를 사용하는 건 여러 모로 요리를 편하게 만들어주긴 합니다. 예를 들어 직접 병아리뼈 육수를 만들어보면, 육수 자체는 굉장히 맛있게 나오긴 하는데요. 문제는 만드는 데 시간과 노동력이 많이 들어가고, 잘 졸여놔도 보존성이 나쁘고, 꽤 농축한 것 같은 걸 요리에 사용해도 그리 강한 맛이 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실제 원재료부터 소스를 만들고 식재료를 조미해서 음식을 만들면 맛있긴 한데, 시간과 노동력과 비용이 많이 들어가서 일상적으로 먹긴 어렵습니다. 그리고 맛의 요소들이 여리고 섬세한 게 많아지기도 해서, 어쨌든 풍미의 강도가 시판 조미료를 사용한 것 수준으로 올라가기는 쉽지 않습니다. 다만 나는 글루탐산 농도가 너무 높은 것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요리할 때 시판 조미료를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

 

 

 

 

 

 

20) 말고기는 제법 맛있는 고기입니다. 원래 소보다 말이 비싸고, 소처럼 살이 잘 찌지도 않고, 힘줄이나 근막이 소보다 훨씬 질겨서 다 제거해야 하기 때문에 말고기는 원래 소고기보다 비싼 고기인데요. 한우가 워낙 비싸지다보니 웃프게도 이제 제주산 말고기가 한우보다 쌉니다. 가격은 미국산 프라임등급 쇠고기나 호주산 와규보다는 조금 비싼 정도입니다.

 

 말고기는 지방이 적고, 냄새가 없는 편이고, 육회나 블루, 레어 정도로 익힌 고기를 좋아하는 분들에게 적합한 고기입니다. 일본에서는 육회로는 소보다 말이 좋다는 개념이 자리잡혀 있다고 하는데, 나는 그 주장에는 동의하지도 반대하지도 않습니다.

 

 말고기는 맛 자체는 소고기하고 많이 비슷합니다. 말고기인지 말 안 하고 사람들에게 시식을 시키면 소고기로 생각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제주에서는 육용 말을 사육하는데, 유감스럽게도 대중화에는 실패하고 있습니다. 여러 문제가 있지만 말고기 식용 자체에 거부감을 가진 사람들도 꽤 됩니다.

 

 한우는 마블링이 아직 많이 생기지 않은 어린 개체를 도축하면 횟감으로도 맛있고 스테이크용으로도 맛있습니다. 그렇지만 요새는 그런 한우가 잘 나오지 않습니다. 마블링을 많이 만드는 쪽이 가격을 더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고기는 블루 스테이크나 육회를 좋아하는 분들에게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육용 말의 사육, 도축, 유통 체계는 쇠고기에 비하면 완성도나 접근성이 떨어지는 게 단점입니다.

요리 관련 이런저런 이야기 #6

식이 2022. 2. 17. 19:36 Posted by 해양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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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초밥 같은 요리가 고급 요리가 된 건 여러 모로 신기한 일입니다. 비싼 초밥의 가격은 어처구니가 없지요. 맛은 있지만. 어느 정도 비싸기 때문에 비싼 게 비싼 초밥이라고 생각합니다.

 

 맛있는 생선초밥은 초밥 위에 올려진 생선의 질과 밥의 균형, 그리고 밥이 뭉쳐진 정도가 포인트입니다. 물론 밥 자체의 품질도 영향을 주긴 하고요. 그런데 정말 간단히 이야기하면 초밥을 쥘 줄 아는 사람이, 살포시 밥을 뭉쳐서 초밥을 만들면 그럭저럭 맛있습니다. 잘 만든 쥠초밥은 입 안에 밥을 넣으면 밥알이 쉽게 풀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만들기도 어렵고, 만들어놓을 수도 없지요.

 

 우리나라 쥠초밥의 문제 중 하나가, 많은 경우 너무 찰기가 강한 쌀로 초밥을 만드는 경우들이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쌀알끼리 붙는 경향이 강해서 먹었을 때 밥이 바로 풀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쥠초밥용 밥에 고시히카리 같은 거 쓰는 거 아닙니다. 차라리 추청이나 신동진 쓰는 게 낫습니다. 특히 고시히카리 햅쌀은 찰기가 많은 편인데, 맛있는 밥 쓴다고 그런 걸로 잘못 질척하게 밥 지으면 초밥 망합니다.

 

 그리고 쥠초밥은 쥐자 마자 먹어야지, 쥐고 나서 두면 중력 때문에 밥끼리 눌리고 뭉쳐서 점점 더 단단해집니다. 그래서 시간이 좀 지나면 처음 쥐었을 때처럼 풀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제대로 된초밥은 숙련자가 쥐자 마자 손님이 먹어야 하니까 좀 비싸지긴 합니다.

 

 문제는 시중의 초밥 대부분은 아예 사람이 쥐지도 않는다는 겁니다. 초밥 쥐는 기계가 있고, 그 기계로 밥을 뭉치고, 그 위에 자른 생선을 얹어 파는 게 대다수의 저렴한 시중 초밥입니다. 어차피 그런 초밥들은 대체로 쥐자 마자 먹지도 않고요.

 

 여담인데 초밥은 법인카드로 먹는 게 제맛입니다. 먹방 BJ 수준으로 잘 먹는 여자라면 혼자서 10인분도 먹을 수 있지요.

 

 

 

 

 

 

 

2) 초밥과 마찬가지로 한우도 법인카드로 먹어야 제맛입니다. 내돈내고 먹는 한우야 호불호가 갈립니다만, 법카한우는 거의 모두가 좋아하는 음식이지요.

 

 그런데 근래 마켓을 돌아다니다 보면 1+ 등급 육회라거나, 투뿔나인 육사시미라거나. 그런 것들을 보게 되는데요. 사실 그런 거 보면 속으로 한숨이 나옵니다.

 

 이전 편에서 이야기했지만 한우 등급은 대략 알등심의 근내지방도로 매기는 겁니다. 그런데 등급이 너무 높은 쇠고기는, 본래는 근내지방이 거의 생기지 않는 우둔 같은 부위에도 지방이 생겨요.

 

 문제는 쇠기름은 녹는점이 높아서 체온으로는 녹지 않는다는 겁니다. 스테이크를 구울 때도 지방이 있는 부위는 미디엄 레어 정도로는 익혀야 하고, 블루나 레어 수준으로 먹기엔 부적합합니다. 그렇게 지방이 낀 비싼 한우를 회로 먹어요? 입에서 녹지 않는 지방인데요? 익히지 않은 소지방은 제대로 씹히지도 않습니다.

 

 육회나 육사시미는 기름 없는 부위로 해먹는 겁니다. 기름이 있으면 안 좋아요. 그러니까 1++1+1등급이고 하등 필요없습니다. 요새 한우는 너무 기름이 많아져서 육사시미, 육회에 안 어울리는 방향으로 비육되고 있는 겁니다.

 

 기름이 있는 쇠고기는 미디엄 레어 이상으로 익혀서 드세요. 그렇게 먹어야 맛있습니다.

 

 

 

 

 

 

 

3) 흔히 수제햄으로 파는 것들이 있습니다. ‘바베큐햄같은 식으로도 부르고, 선물세트로도 주고받는데요. 분류상으로는 본레스햄이라고 부르는 것들입니다. 돼지고기 덩어리를 절여서 훈연하는 게 본래의 제법인데, 보통 시판하는 건 양념이 포함된 소금물을 주사하고 훈연액에 절여서 만듭니다. 제대로 만든 건 우리나라에서는 비싸고요. 식품회사에서 대규모로 만들어 시판하는 건 그래도 싸게 먹을 수 있는 편이지요. 그냥 생돈육 사는 것보다 쌀 정도입니다. 어찌 보면 시판 훈제오리의 돼지고기 버전인데, 기름 함량 때문에 특성은 훈제오리와 꽤 다릅니다.

 

 본레스햄은 살코기로 만들기 때문에 지방함량이 낮은 편입니다. 그래서 캔햄과는 용도가 완전히 다르고요. 잘 구워서 그냥 먹으면 의외로 별로 맛없습니다. 보통 본레스햄을 구워먹는 분들은 케챱, 허니머스타드 등을 곁들여 먹는데 실제 돼지등심같은 부위를 쓰기 때문에 소스 없이는 맛이 심심하기 쉽습니다.

 

 이런 류의 가공육은 샌드위치나 밀전병 등에 싸 먹는 랩(Lab), 크레이프 등의 요리에 잘 어울리고요. 피자 토핑으로도 괜찮습니다. 밥하고 잘 어울리는 캔햄과는 대조적으로 빵 계열하고 잘 어울립니다. 그 외 프레스햄을 대체해도 됩니다.

 

 

 

 

 

 

 

4) 소와 돼지는 같은 네발 포유동물이라 몸구조가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소에는 있는데 돼지에 없는 부위는 천엽, 벌집, 막창뿐입니다. 돼지 막창은 소의 막창에 해당하는 부위가 아니고, 실제로는 대창입니다.

 

 소의 우둔, 설도는 돼지고기에서는 후지(뒷다리살)입니다. 그리고 소의 양지에 해당하는 부위는 삼겹살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삼겹살은 돼지의 갈비살 + 양지(뱃살) 입니다. 흔히 돼지갈비라 부르는 건 등쪽의 등갈비고요. 삼겹살의 오돌뼈는 늑골과 흉골을 잇는 늑연골입니다. 실제 우삼겹이라 부르는 업진살은 돼지의 삼겹살 중 일부에 해당하는 부위가 맞기도 합니다.

 

 다만 단단해서 국거리로 쓰는 부분이 많은 양지에 비해 돼지의 삼겹살은 부드러운 부위인데요. 이 차이에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소는 체격도 더 크고, 초식동물입니다. 그런데 돼지는 비초식동물이지요.

 

 초식동물과 비초식동물의 차이는 식물섬유를 에너지원으로 활용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입니다. 원래 모든 동물계 생물은 자체적으로는 식물섬유를 에너지로 쓸 수 없는데요. 미생물 중에는 식물섬유를 분해해서 동물이 사용 가능한 에너지원으로 분해해주는 것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초식동물들은 장 속에 그런 미생물을 키웁니다. 그러니까 풀만 먹고도 살 수 있는 건데요. 풀이라는 게 원체 영양가가 없고 미생물 발효까지 시켜야 하니까 초식동물은 내장이 크고 깁니다. 그리고 그렇게 내장이 커야 하니까 체격도 커지는 경향이 있고요. 사실 초식동물도 육식할 수 있으면 육식을 피하지는 않는 편입니다. 사냥을 못 하는 거지요.

 

 활동적인 초식동물 중 예외적으로 체격이 작은 생물이 토끼인데, 사실 토끼의 몸 사이즈는 초식동물 하기에는 너무 작습니다. 그러니까 체격에 비해 내장도 긴데, 그 내장을 두 번에 걸쳐 활용합니다.

 

 그래서 소 내장은 돼지 내장에 비해 부피가 크고 무겁습니다. 소의 복근은 그 크고 긴 내장의 무게를 버텨줘야 하고요. 그러니까 소양지는 제법 질긴 조직인 반면 돼지 삼겹살은 부드러운 조직인 것입니다.

 

 

 

 

 

 

 

5) 예전에는 메추리알이 매우 저렴했습니다. 시대가 지나면서 메추리알 가격이 계란에 비해 많이 올라서, 요새는 메추리알이 계란보다 비싼 느낌인데요. 예전에는 계란보다 메추리알이 싼 느낌이어서 서민들이 많이 먹었습니다.

 

 메추리알은 프라이를 하면 귀엽습니다. 그런데 딱히 계란프라이보다 맛있지는 않고, 만드는 데 노동력이 들기 때문에 비주얼용 아니면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도 맛없지는 않고, 귀엽기 때문에 애들한테 해주면 좋아합니다.

 

 시중에서 잘 팔지는 않지만 메추라기 고기도 팝니다. 문제는 메추라기 고기는 워낙 살이 적어서 그런지 영계라는 대체재가 있어서인지 우리나라에서는 인기가 없고, 그래서 도축유통 시스템이 엉망이라는 겁니다. 외국엔 메추라기 고기도 즐겨 먹는 나라가 많은데, 우리나라는 메추라기를 많이 키우면서도 잘 먹지 않으니 유감입니다.

 

 

 

 

 

 

 

6) 영계는 약병아리나 중병아리라고도 부르는, 실질적으로 병아리에 해당합니다. 부화한지 한달 정도 지난 병아리들이지요. 삼계탕용 생닭으로 파는, 2마리에 1킬로 하는 것들이 그것입니다. 한마리에 500그램 정도니까 5호 닭이지요. 닭을 X호라고 하는 건, 1100그램 정도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큰 닭이 맛있다고 병아리 고기를 폄하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만, 이렇게 어린 닭을 즐겨먹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일단 외국, 특히 미국하고 우리나라는 닭에 대한 입맛 자체가 다른 편입니다. 미국에서는 닭가슴살이 최고 인기 부위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제일 인기없는 부위지요. 다이어터나 헬스하는 사람들이나 먹는 부위로 취급받고요. 미국에서도 버팔로윙은 해먹지만, 그건 원래 인기없던 부위였던 윙으로 버팔로 시의 시그너쳐 메뉴를 만든 셈입니다. 대조적으로 우리나라에선 윙은 옛날부터 인기가 많은 부위입니다.

 

 그런데 큰 닭에 비해 병아리는 껍질과 지방이 많습니다. 체격이 작으니까 부피대비 껍질이 많은 건데요. 똑같은 부피의 물체도 잘라서 분리해 두면 표면적이 늘어나는 걸 생각해보면 원리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영계를 튀기면 껍질튀김 맛을 부피대비 많이 즐길 수 있습니다. 조각을 낼수록 튀김옷 면적이 늘어나고요. 교촌치킨 같은 경우 조각을 많이 내서 부피 대비 껍질 넓이를 극대화시킨 타입입니다.

 

 영계백숙도 큰 닭을 끓이는 것에 비해 몇 가지 특성이 있습니다. 일단 지방질이 더 나오고요. 상대적으로 뼈도 좀 쉽게 우러납니다. 삼계탕이 그저 닭을 1마리씩 주기 때문에 인기있는 음식인 게 아닙니다. 큰 닭 끓인 거하고 맛이 달라요.

 

 큰 닭은 잘 끓이면 맛있습니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조리 난이도가 올라갑니다. 잘 하려면 손이 더 가요. 괜히 작은 닭이 인기있는 게 아닙니다.

 

 

 

 

 

 

 

7) (acid) 중 옥살산이라는 산이 있습니다. 옥살산이라는 이름은 옥살리스, 즉 괭이밥에서 따왔는데요. 괭이밥은 토끼풀과 착각하는 분들도 있지만, 엄연히 다른 식물입니다. 꽃은 생긴 게 꽤 다르고요. 참고로 원예용 괭이밥은 흔히 사랑초라고 부릅니다.

 

 실제 괭이밥을 먹어보면 옥살산이 많아 새콤한 맛이 납니다. 그런데 이 옥살산은 독성이 있습니다. 그냥 독성도 꽤 있고, 요로결석도 유발합니다.

 

 옥살산은 괭이밥 외에도 파슬리, 시금치, 죽순에 꽤 들어있습니다. 수용성이라 데치면 줄어들고요. 파슬리에 특히 많은 편인데 데치지도 않으니까 파슬리 많이 먹으면 옥살산 좀 먹는다 생각해야 합니다. 파슬리는 100g1.7g의 옥살산이 있다고 하는데, 옥살산의 치사량은 600mg/kg입니다. 그러니까 체중이 50kg인 사람은 파슬리를 1.76kg 정도의 파슬리를 먹으면 위험할 수 있습니다. 물론 파슬리를 킬로그램 단위로 먹는 사람은 없겠습니다만. 요로결석 위험을 높인다고 하니까 파슬리나 시금치, 죽순을 많이 먹은 날에는 물을 많이 드셔주시고요. 많이 먹을 수 있는 위험 자체는 시금치가 파슬리보다 높은 편입니다. 시금치 즐겨드시는 분은 물을 가능한 많이 드세요.

 

 옥살산은 좀 들어있지만 시금치는 참 맛있는 채소입니다. 어떻게 먹어도 맛있지만 나는 피자에 시금치가 들어간 것도 좋아하는데요. 시금치를 넣어 굽고 바질과 루꼴라를 얹은 피자는 맛있습니다.

 

 

 

 

 

 

 

 

8) 가만히 놔둬도 잘 자라는 야생풀 중 잎이나 씨앗을 먹을 수 있는 게 많습니다. 문제는 맛과 효율인데요. 대체로 재배종으로 개량한 쪽이 더 먹기 좋고, 부드럽고, 씨앗도 커지는데요. 대신 약해져서 그냥 놔두면 야생 잡초에 밀립니다. 손이 가요. 그래서 텃밭 가꾸면서 잡초를 뽑아 정리하다가 먹을 수 있는 잡초들은 요리해먹다 보면 나름대로 좀 먹게 됩니다.

 

 내가 먹어본 잡초들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질경이 : 아무 데서나 엄청나게 잘자랍니다. 나물 해먹으면 제법 맛이 괜찮은데 일부러 키워먹을 정도는 아닙니다. 포장 안된 흙길이면 아무 데나 있으니까 먹고 싶으면 구하기는 쉽습니다. 나름 상품화가 되어 있어서 파는 곳도 있긴 한데, 나는 질경이처럼 아무데나 널린 것도 사서 먹나 싶습니다. 씨앗은 차전자입니다.

 

 

명아주 : 어린 건 먹을 만 합니다. 문제는 이게 뭐지 싶어서 놔두면 엄청나게 자랍니다. 1년생 초본식물 주제에 줄기로 지팡이 만들 수 있게 자랍니다.

 

 

소리쟁이 : 옥살산이 포함되어 있어서 소도 안 뜯어먹는 식물이라고는 하는데, 초봄에 어린 걸 데친 다음 된장국 끓여 먹으면 맛있습니다. 과도할 정도로 비옥하고 산성화가 안된 토양에서만 잘 자라는 식물이라 야생엔 잘 없고 초봄의 경작지에 많습니다. 소리쟁이 국은 좀 미끄덩거리는 질감이 있습니다.

 

 

원추리 : 원예종은 데이릴리라고 하는데, 야생 원종은 원추리라고 합니다. 잡초라기엔 원예용으로 키우기도 하는 식물입니다만, 원하지 않는 곳에 뜬금없이 자랄 땐 잡초 취급 받습니다. 잎이 아주 어릴 때에 한해 데친 다음 나물로 먹을 수 있습니다. 조금 자라면 못먹습니다. 자랄 수록 독이 많아지기 때문에 조리할 때는 물에 한참 담가 독을 빼줘야 합니다. 어릴 때 먹으면 맛있습니다. 다만 사견으로 원추리를 먹어치우는 건 좀 아깝습니다.

 

 

환삼덩굴 : 환삼덩굴은 생태계 교란식물 중 하나로, 엄청난 번식력으로 악명높습니다. 맥주 담글 때 쓰는 홒의 친척이라 환삼덩굴 꽃으로도 홒을 대체할 수 있다고는 하고, 잎도 먹을 수 있다고 하기에 잎을 먹어본 적이 있는데요. 맛은 없었습니다. 굳이 먹을 만한 건 아니었습니다.

 

 

해바라기 : 해바라기는 아무 데서나 싹이 잘 올라오는 편입니다. 솎아내지 않고 그냥 방치하면 우리가 잘 아는 거대 해바라기로 자라는데, 가을이 되면 씨를 먹을 수 있습니다.

 

 

이 사진의 상태면 나라면 위쪽 2개만 먹습니다.

까마중 : 까마중을 잡초로 봐야 할지 모르겠는데, 딱히 일부러 키우는 사람은 별로 없고 아무 데서나 곧잘 자라니까 잡초인가보다 생각 중입니다. 까마중은 가지과 식물인데, 작고 동그랗고 검은 베리가 열립니다. 열매는 나름 맛있습니다. 내 생각에는 오디나 블루베리보다는 맛있고, 친척인 방울토마토 중 맛없는 것보다도 맛있는데요. 문제는 열매에도 솔라닌이 좀 들어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많이 먹으면 안됩니다. 그런데 감자를 잘못 먹어 가벼운 솔라닌 중독을 경험해본 적이 있는 입장에서, 까마중을 나름대로 열심히 따먹어도 솔라닌 중독증상을 느꼈던 적은 없습니다. 완전히 익어서 꼭지 색이 변한 열매만 골라 따먹어야 합니다. 덜익은 건 솔라닌이 많습니다. 아동은 먹으면 안 됩니다. 참고로 토마토도 덜익은 건 솔라닌 있습니다. 까마중은 독성이 어느 정도 있기 때문에 약으로 쓰는 분들도 있습니다.

 

 

 

 

 

 

9) 상추는 이름 때문에 요새는 배추와 가까운 식물이라 여겨지거나 혼동도 합니다만, 예전에는 상치가 표준어였습니다. 그러다가 1988년에 상추로 표준어가 바뀌었습니다. 어원은 생채(生菜) 입니다. 요새는 결구되지 않는 양상추와 비슷한 아삭한 걸 생채라 부르기도 하지요.

 

 상추는 왕고들빼기속에 속하는 국화과 식물입니다. 그래서 배추나 깻잎과는 멀고, 가까운 건 치커리. 그리고 의외로 민들레입니다. 이미지 매치가 잘 안 될 수 있지만 재배종도 오크상추는 실제로 민들레 잎하고 생긴 게 비슷하기도 하고, 노지에서 키운 상추는 제법 쓴맛도 생기고 쓴맛의 즙도 많아집니다. 상추의 진액에는 안정을 가져다주고 잠오는 효과가 있어서, 저녁 식사에 상추쌈을 먹으면 좋습니다. 아침부터 먹으면 쓸데없이 졸릴 수도 있긴 한데요.

 

 민들레도 먹을 수는 있습니다. 쓴 맛이 나니까 일반 식용으로는 많이 안 먹지만요. 약용으로 주로 소비됩니다.

 

 

 

 

 

 

 

10) 주름이 많은 축면상추나 로제트 형태로 붙어있는 시금치 등은 흐르는 물에 씻어도 흙이 잘 안 씻겨나갑니다. 그러니까 형상이 복잡한 잎채소는, 물을 받아 꼭지를 쥔 채 담그고 털듯이 씻어야 합니다. 그래야 흙이 잘 씻깁니다. 그렇게 줄기 안쪽엔 흙이 남는 경우가 많아서 체크를 하고 따로 씻어줘야 합니다.

 

 유감스럽게도 음식점에서는 상추를 충분히 씻지 않은 채 내놓는 곳이 많습니다. 상추를 제대로 씻으려면 아무래도 손이 많이 가는데, 잘 씻는다고 돈을 더 받거나 손님이 늘거나 할 확률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상추는 서빙되었던 상추를 손님이 손대지 않은 건 재사용해도 합법입니다.

 

 위생 관리 신경쓰는 업장에서는, 상추 같은 건 락스 희석액에 담갔다가 헹궈서 서빙합니다. 생채소는 익히지 않기 때문에 락스희석액을 쓰는 게 안전한 소독법입니다. 다만 매끄럽고 비다공성이며 표면이 방수성인, 세포벽이 있는 식물만 락스로 소독할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 숯불이나 연탄을 쓰는 고깃집에서 고기를 구워먹다 보면 기름이 숯에 떨어져서 불길이 활활 크게 올라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 당황하는 분들도 있는데요. 나는 올라오는 불에 직화로 고기를 구워먹기도 합니다만, 끄고 싶으면 상추를 이용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불을 상추로 덮어버리면 금방 꺼지거든요. 촉촉한 상추는 마르기 전에는 불이 붙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불 위에 상추를 얹으면 연소에 필요한 산소가 부족해져서 불이 꺼집니다.

 

 

 

 

 

 

 

11) 시판 유부에는 초밥용과 탕용이 있습니다. 초밥용 유부는 구하기 쉽고, 마트의 냉장 코너에 있는데요. 탕용 유부는 파는 데가 좀 드물고, 냉동 코너에 있습니다. 인터넷에서는 사각 유부유부 슬라이스로 검색하면 구매할 수 있습니다. 사각 유부는 통 유부고, 슬라이스는 잘라 놓은 겁니다. 그냥 탕용 유부로 검색하면 거의 유부 주머니만 나옵니다. 그리고 조미 유부라고 되어 있는 건 어떤 형태라도 탕용으로 사면 안 됩니다. 조미된 유부는 초밥용입니다.

 

 탕용 유부가 그냥 두부보다 좋은 점은 유통기한이 길고 사용도 편하다는 겁니다. 국에 두부를 넣으려면 도마와 칼을 꺼내고, 썰고, 씻어야 합니다. 남은 건 또 소금물에 담가 둬야하고요. 그렇지만 슬라이스 유부는 그냥 냉동실에서 꺼내 한줌 집어 넣으면 끝이지요. 사각 유부라도 가위로 자르면 됩니다.

 

 샤브샤브를 드실 때 유부를 넣어 드셔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유부는 어지간한 국물 요리에는 잘 어울리는 편입니다. 다만 기름지기 때문에 개운한 맛을 내야 하는 국물에 쓰면 기름져집니다.

 

 

 

 

 

 

12) 철의 산화물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일단 FeO(산화제일철)가 있고요. 그리고 Fe2O3(산화제이철/삼산화이철)이 있고요. 다른 하나는 Fe3O4(산화제삼철/사산화삼철)입니다. 산화제이철은 흔히 보이는 붉은 녹인데요. 산화제일철이나 산화제삼철은 검은 녹입니다. 철광석에도 적철석과 자철석이 있는데, 적철석은 산화제이철이 들어있는 반면 자철석에는 산화제삼철이 들어있기에 색깔과 성질이 다릅니다.

 

 철이 보통 자연상태에서 산화되면 산화제이철이 됩니다. 우리가 철의 녹을 막으려고 하는 건 산화제이철의 형성을 막으려는 것입니다. 철이 산화제이철이 되면 부피가 커지고, 조직이 연해지고, 가루가 되어 부스러집니다. 못써먹을 게 되는 거지요. 그래서 우리는 일부러 산화제이철을 쓰려는 게 아니면 매우 다양한 수단으로 철이 산화제이철이 되는 걸 막으려 노력합니다.

 

 그 중 한 방법이 산화제일철이나 산화제삼철을 만들어놓는 겁니다. 검은 녹 위에는 붉은 녹이 잘 안 피거든요. 검은 녹을 만드는 방법은 대략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고온에서 만드는 것. 다른 하나는 산(acid)을 쓰는 겁니다. 원리상 고온에서는 산화제삼철이, 산을 쓸 때는 산화제일철이 되는 것 같습니다.

 

 고온에서 만들어진 검은 녹은 소위 무쇠칼로 불리는 우리나라 대장간 강철단조칼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단조 주방칼은 날을 세운 부분 제외하면 검은 녹이 슬어 있습니다. 단조를 한다고 꼭 검은 녹이 생기는 건 아닌데, 우리나라 주방칼은 만들어 둡니다. 검은 녹 슬어있다고 붉은 녹 안 생기는 건 아니지만, 아주 쉽게 피어오르지는 않습니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수공으로 단조해 만든 프라이팬에도 검은 녹이 형성되어 있는 경우가 있긴 한데, 시대가 시대다보니 그런 제품은 흔하지는 않습니다.

 

 강철칼이나 합금공구강 칼을 쓰는 사람들은 일부러 칼날을 식초나 빙초산으로 부식시켜 검은 녹을 만들면서 칼을 관리하기도 합니다. 검은 녹이 안 슬어있는 순수한 탄소강은 정말 녹이 엄청나게 잘 피어오르기 때문에, 관리가 매우 귀찮습니다.

 

 

 

 

 

 

 

13) 상기한 검은 녹을 생성한 철팬 같은 경우 영어로는 그 소재를 Blue Steel로 표현합니다. 실제 완전히 수공으로 단조해서 산화제삼철 피막이 생긴 철팬의 색깔은 검은 색이라기보다는 어두운 청회색 정도에 가깝습니다. 신품을 사면 보통 방청유가 발린 상태라 더 검어보이긴 하지만, 방청유막을 벗겨내면 삼삼한 다크 블루 그레이 표면이 드러나지요.

 

 그런데 Blue Steel은 산화제일철이나 산화제삼철만을 표현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 표현은 질화철도 포함합니다. 질화철은 고온에서 철과 암모니아를 반응시켜 질화물 표면을 형성한 겁니다. 질화강은 경도와 내부식성 등에서 장점이 있습니다. 검은 녹처럼 녹이 덜 습니다.

 

 그러니까 Blue Steel은 크게 세 종류가 있습니다. 산으로 부식시킨 것. 매우 높은 고온에서 열간단조한 것. 그보다 덜한 고온에서 암모니아와 반응시켜 질화철을 만든 것. 공통점은 셋 다 어느 정도 붉은 녹에 대한 내부식성이 있다는 겁니다.

 

 Blue Steel은 표면에 형성됩니다. 그러니까 금속 자체에 손상이 생길 경우 벗겨질 수 있고, 안쪽은 그냥 철입니다. 신경 안쓰고 시즈닝해 써도 됩니다. 직접 검은 녹을 만들고 싶으면 가정에서 할 수 있는 건 산으로 부식시키는 방법뿐입니다.

 

 

 

 

 

 

 

14) 재래시장의 잡화점에 가면 대장간에서 만든 한국식 강철단조칼을 팝니다. 흔히 무쇠칼이라 부르지만, 주철로 만든 건 아닙니다. 주철로 주방칼 같은 거 만들지 않습니다. 만약 만든다면 아예 못쓸 물건일 겁니다.

 

 시장 단조칼은 가정에서는 많이 사용하지 않지만 시장 상인들은 많이 쓰고, 이런저런 장단점이 있는데요. 일단 강철칼이라 아예 저렴이 스테인리스 칼보다는 칼날의 물성이 좋습니다. 스테인리스는 마르텐사이트계가 아니면 아예 열처리가 안 되기도 하고, 마르텐사이트계라도 크롬이 탄소와 결합하기 때문에 들어간 탄소가 제 효율을 못 냅니다. 그래서 스테인리스 칼이 좋은 칼이려면 어느 정도 가격대가 되야 하는데요. 크롬이나 다른 금속원소 거의 안 섞인 강철은 그런 단점은 없어서, 저렴이라도 어느 정도 경도와 인성을 확보하는 게 쉽습니다.

 

 한국식 강철단조칼은 사실 보면 품질관리가 완전히 엉망입니다. 손잡이에서 칼날까지 똑바로 곧은 것 자체가 드뭅니다. 각도들이 제멋대로고, 모양이 완성도가 낮은 편들이라 직접 눈으로 보고 골라서 사야 합니다. 그리고 대장간에서 두드려 만든 것 치고는 원체 저렴이 칼들이라 사용한 강철도 좋은 게 아니고, 모양이 미려하지도 않고 두껍고 투박한데요. 그래서 가지는 장점도 있습니다.

 

 일단 시장에서 파는 단조 칼들은 비철금속이 많이 들어가지 않은 강철 칼입니다. 대체로 스프링강이나 레일강으로 분류되는 강재를 쓰지요. 그리고 칼등 쪽이 두껍고요. 열처리가 딱히 근사하게 된 물건들도 아닌데요. 이런 것들이 어떤 특성을 가지냐면, 막쓰기엔 참 좋은 칼이 됩니다.

 

 순수한 탄소강의 특징은 날을 세우면 쉽게, 매끄럽게 날이 잘 선다는 겁니다. 다른 비철금속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탄소강일수록 그렇게 됩니다. 대신 경도가 충분히 높지 않은 순수한 탄소강은 날이 잘 닳는데요. 그건 날을 자주 가는 사람한테는 큰 문제가 아닙니다. 그리고 경도를 높이 끌어올리지 않은 탄소강은 취성(깨지는 성질)이 낮고, 대신 인성은 있는 편입니다. 우리나라의 속칭 무쇠칼은 그리 경도가 높은 편이 아니고, 대신 대체로 인성이 괜찮습니다.

 

 경도가 낮고 인성이 높은 칼은 충격을 가해도 잘 깨지지 않고 어지간해선 찌그러집니다. 그리고 칼등이 두꺼운 칼은 썰 때 음식물을 쐐기처럼 쪼개면서 들어갑니다. 빠르게 썰듯 칼질을 할 때, 무거운 편이니까 잘 썰리면서 음식물이 칼몸에 잘 달라붙지 않는 편입니다.

 

 비싼 합금강으로 만든 고경도의 주방칼은 특성이 전혀 다릅니다. 날을 세워놓으면 잘 유지되는 반면, 한 번 날을 깔끔하게 세우기는 엄청나게 힘들고, 깨지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큰 충격을 주면 안 됩니다. 칼등도 얇은 게 많아서 섬세하게 써야 하는 칼이 나오는 경우가 많지요.

 

 주방칼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자세히 다룬 글을 따로 준비하고 있고, 추후 잘 다듬어서 업데이트 예정입니다.

 

 

 

 

 

 

15) 식재료 내에서 수분은 생각보다는 잘 이동할 수 있습니다. 특히 온도가 높을 때는.

 

 그 때문에 일정 이상 구운 스테이크는 표면에 육즙이 올라오고, 튀김은 금세 눅눅해집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기에 그런 건지 좀 이야기해보지요.

 

 스테이크는 블루로 구우면 사실 핏물이 뚝뚝 떨어진다거나 하지 않습니다. 흔히 핏물이 뚝뚝 떨어진다고 표현하는 스테이크는 보통 미디움에서 웰던 정도의 스테이크입니다. 핏물이 안 떨어지는 스테이크를 만들려면 웰던보다도 더 많이 구워 아예 오버쿡을 만들거나, 미디엄레어 이하로 구우면 됩니다.

 

 이렇게 되는 원리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스테이크는 굽다 보면 표면부터 수분을 잃습니다. 그런데 음식 내부의 수분은 촉촉한 부분에서 마른 부분으로 이동하려는 성질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안쪽은 촉촉한데 바깥쪽은 건조한 스테이크가 되면, 안쪽의 수분이 바깥쪽으로 이동하면서 스테이크 표면에 육즙이 올라오게 됩니다.

 

 고화력으로 레어 정도로 구우면 스테이크는 표면만 건조해질 뿐, 조금 안쪽에는 여전히 수분이 많은 상태입니다. 그러니까 상대적으로 수분 이동이 많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많이 구울수록 건조한 부분이 많아지기 때문에 수분 이동이 많이 일어납니다. 안쪽 온도가 더 높아지니까 더 수분 이동이 쉬워지기도 하고요. 안쪽에서 나와서 표면을 젖게 만들 육즙이 다 사라질 때까지 구우면 고기 전체가 말라비틀어지는 오버쿡이 됩니다.

 

 스테이크를 제대로 구우려면 일정 이상의 화력이 필요합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고기를 굽는 도중에도 수분 이동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고기 안쪽에서 계속 수분이 바깥쪽으로 올라오는데요. 고기 구울 때 화력이 너무 약하면 안쪽 수분이 바깥쪽으로 올라오는 속도 대비 구워지는 속도가 느려서 제대로 고기를 구울 수 없게 되고, 결과적으로 수분을 많이 잃게 됩니다. 대조적으로 고화력일수록 수분 손실이 적게, 겉표면만 익힐 수 있습니다.

 

 이 현상은 표면에서 수분 손실이 큰 튀김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납니다. 갓 튀긴 튀김은 바삭하고, 속은 수분이 많아 촉촉한 상태인데요. 시간이 좀 지나면 안쪽 수분이 바깥쪽으로 이동하면서 튀김이 눅눅해집니다.

 

 의도적으로 두 번 튀기는 튀김들이 있는데, 안쪽 수분을 줄이기 위해 두 번 튀기는 겁니다. 프라이드 치킨 같은 경우 한 번만 제대로 튀겨서 바로 먹으면 안쪽이 촉촉해서 매우 맛있는데요. 그런 치킨은 튀기자마자 먹을 때만 맛있고, 금방 눅눅해집니다. 그러니까 보통 시판하는 튀김은 두 번 튀겨서 안쪽 수분을 제거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야 배달을 해도 한동안 겉이 바삭한데요. 대신 그렇게 두 번 튀기면 가슴살같은 부위는 퍽퍽해져서 맛이 없어집니다.

 

 

 

 

 

 

16) 대체로 가정에서는 2구 이상의 쿡탑(가스렌지 등)을 사용하고 계실 겁니다. 그런데 그 중 한 쪽에 솥이나 주전자를 며칠이고 올려놓고, 다른 한 쪽에서 고기를 굽는다거나 프라이를 한다거나, 여하튼 기름을 쓰는 요리를 하다 보면 솥이나 주전자 등으로 기름이 제법 튑니다. 그 상태에서 솥이나 주전자를 쓰다 보면 그 기름이 중합되어 폴리머화되어 고착화되는데요. 그 원리는 무쇠팬 등에 시즈닝을 입히는 원리와 같습니다.

 

 스테인리스 밥솥이나 주전자 등에 튄 기름이 폴리머화되면 보기가 좀 안좋습니다. 그래서 이게 뭔가 싶어서 닦으려 해도 잘 안지워지지요. 그런데 기름이 튀어 생긴 폴리머는 보기가 좀 안 좋을 뿐,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가스렌지에 생긴 폴리머도 마찬가지입니다. 보기만 안 좋지요.

 

 스테인리스 프라이팬도 오래 쓰다보면 폴리머가 곧잘 생기는데, 특히 바닥 쪽에 많이 생길 수 있습니다. 팬에 고인 기름을 따라버리다보면 바닥 쪽으로 흘러가고, 그게 완전히 닦이지 않은 상태에서 가열하게 되면 중합되어 고착되고, 그렇게 세월이 흐르면서 폴리머가 형성되다보면 나중에는 아예 검게 층을 이루게 되거든요. 무쇠팬에 검은 시즈닝이 덮여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도 보기 안좋으니까 굳이 지우려고 한다면 산으로 녹이고 스테인리스 수세미나 사포로 밀어버리면 되긴 합니다. 시즈닝과 같으니까, 시즈닝이 제거되거나 제거할 때와 같습니다.

 

 

 

 

 

17) ABC 주스라는 게 있습니다. Apple Beet Carrot 해서 ABC 주스인데요. 나는 사과 주스도, 당근 주스도 좋아하기 때문에 사과당근주스도 좋고, ABC 주스도 좋아합니다. 사과당근주스 대비 비트 때문에 색깔이 붉어서 보기에 그럴싸한 것도 장점입니다.

 

 ABC 주스는 그냥 마셔도 좋습니다만, 사과비트당근 즙이라 요리에 쓰기에도 괜찮습니다. 양념에 넣거나 소스에 첨가하거나 할 수 있단 말이지요. 건강을 위해 드시는 분들이 많아서인지, 드레싱 소스로 쓰는 분들도 종종 보입니다.

 

 다만 세상엔 당근 주스도 드시기 힘들어하는 분들이 많은데, 비트 주스는 당근 주스보다는 난이도가 좀 있습니다. 둘이 합쳐진 ABC 주스도 먹을 만한 맛이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좀 있는 것 같습니다. 나는 ABC 주스 같은 게 몸에 좋아봐야 얼마나 좋겠느냐고 생각하면서 맛있으니까 마십니다만, 건강을 생각해서 억지로 드시는 분들도 있는 것 같아요.

 

 

 

 

 

 

18) 고기를 사서 바로 해먹지 않을 경우, 당연한 말이지만 너무 오래 두면 부패하게 됩니다. 그런데 부패했는지 부패하지 않았는지 좀 애매할 때도 있는데요. 고깃덩어리의 경우 애매하면 다음과 같이 하면 먹을 만 해집니다.

 

 고기는 육즙이 먼저 상합니다. 보통 상태가 애매한 고기는 육즙은 살짝 상했는데 근육 조직은 아직 멀쩡한 겁니다. 그러니까 육즙을 최대한 빼 주면 먹을 만해집니다. 고기가 신선할 때는 키친타올로 표면 육즙만 제거해도 됩니다만, 상태가 애매하면 그 정도로는 불충분합니다. 일단 고기덩어리를 흐르는 물에 잘 씻어주세요. 그 다음 키친타올로 물기를 제거합니다. 그리고는 절이듯이 소금을 잔뜩 뿌립니다. 그 후 좀 절여질 때까지 둡니다. 최소 30분은 절여야 합니다. 다만 상태가 좀 심각하면 소금을 뿌리는 정도로는 모자라고, 곰탕 끓일 때처럼 아예 고기를 물에 담가서 한참 핏물을 빼는 게 좋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본문에서는 소금을 쓰는 방법을 설명합니다.

 

 고기를 절이면 삼투현상으로 내부의 육즙이 밖으로 나옵니다. 그러면 다시 흐르는 물에 잘 씻어줍니다. 완전히 잘 씻으려면 해산물 씻을 때처럼 밀가루를 바르고 문지르면서 씻으면 됩니다. 그 다음 다시 키친타올로 물기를 충분히 제거하고요. 그 다음 이제 요리에 필요한 만큼의 염도로 간을 해주면 됩니다. 여기서 간을 한 번 더 해도 또 육즙이 나오는데요. 조리를 시작하기 전에는 키친타올로 최대한 육즙을 제거한 후, 굽는 요리를 할 경우에는 헤어드라이어를 써서 고기 표면을 건조시켜주면 좋습니다. 구울 거면 물기 제거가 부족하면 맛없습니다. 삶거나 찔 생각이면 헤어드라이어는 사용하지 않아도 됩니다.

 

 주의사항은 고기를 씻으면 고기 표면의 박테리아가 튀는 물에 섞여 주변으로 퍼지기 쉽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근처에 생으로 먹을 쌈채소, 과일 같은 걸 두면 안 되고요. 싱크대, 주변 식기, , 도마 등도 위생적으로 관리해야 합니다.

 

 헤어드라이어는 고기 표면을 건조시키는 데 유용합니다. 다만 내부에서 나온 육즙을 고기 표면에 말라붙게 합니다. 그러니까 육즙 성분을 제거할 때는 키친타올로 흡수시켜서 버려야 하고요. 그냥 표면을 건조하게 만들 때는 헤어드라이어가 좋습니다. 키친타올만으로는 헤어드라이어를 쓰는 만큼 건조해지지 않습니다. 나는 주방에 헤어드라이어를 하나 따로 놓고 씁니다. 헤어드라이어는 주방에 하나 있으면 여러 모로 유용합니다.

 

 

 

 

 

 

19) 도마는 기공이 크지 않고 경도가 적당한 수종의 나무로 된 엔드그레인 도마나 통 슬라이스 도마가 좋습니다. 나무는 결 방향이 세로로 되어있기 때문에, 결 방향 그대로 나이테 무늬가 도마 표면에 드러난 상태여야 결 사이로 칼날이 가볍게 들어가고, 칼자국이 크게 티나지 않습니다. 엔드그레인 도마가 아니라도 도마로 쓰기에 적합한 수종의 도마를 사용하는 게 좋습니다.

 

 고무 도마나 플라스틱 도마는 좋은 수종의 나무도마 다음으로 좋습니다. 경도가 낮은 합성고무나 플라스틱은 적어도 칼날을 상하지는 않게 합니다. 다만 칼자국이 난 부분에 장기적으로 세균이 번식하기가 더 쉽고, 손질해가면서 쓰기가 상대적으로 어려운 경향이 있습니다.

 

 고무나무나 편백나무 등을 사용한 도마는 저렴하고 흔하지만 그리 좋은 도마라 하기는 어렵습니다. 고무나무는 도마로 쓰기에는 너무 무르기 때문에, 칼자국이 깊이 나고 수명이 짧습니다. 편백나무같은 침엽수는 목질의 기공이 큽니다. 저렴한 도마를 자주 교체하면서 쓰는 것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오일로 마감 처리가 제대로 된 원목 도마는 보통 도마 오일에 원목을 담가서 안쪽까지 오일을 먹여놓습니다. 그런 도마는 단순히 표면에만 도장이 있거나 한 게 아니고, 안쪽까지 방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수분에 강합니다. 표면이 손상되거나 오일이 일정 이상 마르면 사포질을 하고 도마오일을 좀 먹여주면 됩니다. 도마오일은 정제한 미네랄 오일을 파니까, 그걸 구매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도마나 원목 조리도구에는 식용유 쓰는 거 아닙니다. 식용유는 산패됩니다.

 

 사용을 주의해야 하는 도마는 유리도마와 스테인리스 도마입니다. 그리고 도마 없이 접시 위에 식재료를 올려놓고 그대로 써는 것도 피해야 합니다. 유리는 경도가 너무 높습니다. 유리도마를 쓰면 도마에 칼자국이 어지간해선 남지 않는데, 대신 칼날이 나갑니다. 유리도마는 무언가를 자르는 용도보다는 밀가루 반죽 같은 걸 하는 작업대로 적합합니다. 스테인리스 도마 또한 오스테나이트계로 만들기 때문에 날붙이에 쓰는 마르텐사이트계 스테인리스보다 경도가 낮긴 합니다만, 칼날 손상 확률이 높음은 물론 금속 부딪치는 소리 나고, 무겁기까지 합니다. 게다가 미끄럽고요.

 

 도자기 접시 같은 데 식재료를 올려놓고 자르는 분들도 많은데, 그렇게 하면 도자기의 유약 부분이 미세하게 손상됩니다. 당장은 잘 안보여도 도자기가 미세하게 깨져나가고 있는 겁니다. 유약 가루 먹어서 좋을 게 없음은 물론, 도자기의 패인 부분은 오염과 변색도 쉬우니 귀찮더라도 그렇게는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20) 우리나라 요리는 요리명에 조리법을 엉망으로 표시해 둡니다. 갈비찜은 국물이 적은 스튜라 조림에 가깝고, 닭찜(찜닭)도 마찬가지입니다. 아구찜도 찜은 아니지요. 그리고 닭볶음탕이라는 조어는 국립국어원의 역사적인 잘못이지요.

 

 물론 엄밀히 말하면 찜은 고온의 수증기로 조리하는 것을 의미하며, 볶음은 우리나라에서 의미하는 범주가 과하게 넓긴 한데, 대략 기름으로 볶는 것과 물기가 있는 볶음, 그리고 기름도 물기도 없는 덖음을 구분해주면 별 문제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증기에 화상을 입어보신 분들은 아실 텐데, 증기는 음식물에 꽤 많은 열을 공급할 수 있습니다. 고온의 수증기는 열에너지를 많이 가지고 있는데, 물은 비열이 높기 때문에 끓여서 수증기가 된 물은 그만큼 열을 많이 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가열가습은 난방에도 매우 좋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겨울처럼 건조하고 추운 기후에는 더더욱.

 

 수증기가 상대적으로 저온의 음식물에 접촉하면 증기에서 물로 상전이합니다. 그렇게 증기가 물로 액화하면 증기가 품고 있던 잠열을 방출하는데, 이는 물이 수증기가 될 때 상당한 기화열이 필요한 것의 정 반대 과정입니다. 증기가 물체에 접촉하면서 물이 되면 적잖은 열을 방사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래서 찜은 음식물을 꽤 잘 익힙니다. 증기에 의한 화상도 생각보다 매우 위력적이고 끔찍하니까, 증기는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특히 압력솥에서 나오는 증기는 많이 조심해야 합니다.

 

 압력이 높아지면 물의 끓는점이 높아집니다. 즉 가압한 상태에서 찜을 하면 기화하는 수증기의 온도도 높고, 더 높은 온도에서 증기가 액화할 수 있다는 것인데요. 찜구이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밀폐공간에서 증기는 온도가 많이 올라갈 수 있습니다. 1기압에서 물은 100도에서 끓으니까 증기 온도도 1기압에서 100도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증기가 되고 나도 물분자는 얼마든지 열을 더 흡수할 수 있습니다.

 

 가압 찜구이는 촉촉한마이야르를 만들 수 있습니다. 보통 찜이나 삶기로 마이야르를 못 만드는 건 어디까지나 온도문제입니다. 마이야르는 170~180정도에서 잘 생기니까요. 그러니까 스팀 온도를 150이상으로 만들 수만 있으면 마이야르는 생깁니다. 스팀오븐이나 더치오븐/꼬꼬떼를 사용하는 오븐 조리법에서 이와 같은 조건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요리 관련 이런저런 이야기 #5

식이 2022. 2. 4. 23:38 Posted by 해양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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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본 라멘에는 메이저한 건 크게 세 종류가 있습니다. 시오(소금), 쇼유(간장), 미소(된장). 그런데 우리나라 인스턴트 라면도 일본 라멘과 뿌리는 같지요.

 

 우리나라의 맵지 않은 베스트셀러 인스턴트 라면도 위의 분류를 적용할 수 있습니다. 진라면 순한맛과 삼양라면은 소유라멘인데, 안성탕면은 미소라멘입니다.

 

 조금 풀어 이야기하면 진라면 순한맛은 쇠고기+소사골+간장+어간장 구성입니다. 안성탕면은 쇠고기+소사골+된장+우거지 구성이고요. 삼양라면은 역사적으로 몇 번 리뉴얼이 크게 있었지만 현재 나오는 건 햄+표고버섯+간장 구성입니다.

 

 진라면 순한맛은 꽤 티나는 쇼유라멘 스타일입니다. 간장맛이 제법 납니다. 안성탕면은 대조적이라 할 만큼 된장맛이고요. 삼양라면은 부대찌개맛 컨셉인데, 실제로 부대찌개 끓일 때 넣어도 위화감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간장이 좀 들어가있는 타입이지요.

 

 

 

 

 

 

 

2) 이전 4편에서 튀김기름 온도를 안 높이고 튀김을 시작하면 튀김이 느끼해지기 쉽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는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낮은 온도부터 튀김재료를 넣어 높은 온도로 가열하면서 튀기면 기름을 많이 먹습니다. 그런데 그냥 끝까지 낮은 온도 (140이하)로 튀겨서 마무리하면 기름을 많이 먹지 않습니다. 저온튀김은 고온튀김대비 기름을 덜 먹거든요. 대신 별로 바삭해지지도 않고, 마이야르도 충분히 일어나지 않습니다. 원리가 다른 조리법입니다. 그러니까 일반적인 튀김의 정의와는 달라집니다.

 

 저온튀김이 기름을 덜 먹는 걸 응용할 수는 있습니다. 고온으로 기름을 달군 후 일단 튀김을 시작하고요. 튀김재가 들어가면 기름온도가 내려가는데 여기서 그냥 내려간 온도를 유지하면서 130전후에서 저온튀김을 합니다. 그 후 다 튀겨질때쯤 기름온도를 높여서 마무리합니다. 이러면 속까지 익히면서 그냥 고온에서 튀긴것 대비 기름을 덜 먹게, 그리고 더 촉촉하게 튀길 수 있습니다.

 

 

 아니면 일본 현지의 돈까스집에서 사용하는 방식도 있습니다. 낮은 온도부터 튀기기 시작해서, 온도를 올려가면서 튀기다가 150~160정도에서 마무리하는 것입니다. 다만 이런 식으로 해서 튀겨서 마무리하려면 어느 정도 완성된 레시피가 필요합니다.

 

 

 

 

 

 

 

3) 상기한 저온튀김의 온도 기준은 140이하입니다. 140이상의 온도는 식재료의 탄수화물이나 단백질과 결합되어있는 수분인 결합수가 이탈할 수 있는 온도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결합수는 140이하에서는 거의 이탈이 안됩니다. 식재료를 바싹 말려도 결합수는 분리되어 날아가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조리온도가 140가 넘느냐, 아니냐는 요리의 결과물이 달라집니다.

 

 그런데 아예 100이하의 온도에서 기름에 저온으로 삶는조리법도 있습니다. 물이 끓는 온도보다 낮은 온도에서 기름으로 익히는 건데요. 이 프랑스식 조리법을 콩피(Confit)라고 합니다. 콩피 드 카나드(오리 콩피)는 양식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겁니다.

 

 저온 조리라는 면에서 콩피는 수비드 또는 중탕과 어느 정도 유사성이 있는 조리법입니다. 재료의 수분을 잘 보존하고, 장시간 익혀서 부드러워집니다. 그리고 수비드나 중탕에 비하면 기름맛이 꽤 들어가지요. 만들 때는 오븐이나 수비드 기계를 주로 씁니다.

 

 콩피는 원래는 보존식입니다. 기름은 잘 상하지 않으니까, 기름에 식재료를 담가서 저온으로 익혀둔 채 굳히면 상온에서도 음식이 잘 상하지 않게 되거든요. 수분이 날아가지도 않고. 먹을 때 튀기거나 구워 먹으면 맛있고요. 보존식이니까 콩피는 병조림, 통조림으로도 팝니다.

 

 

 

 

 

 

 

4) 우리는 익히지 않은 전분은 먹지 않고, 익힌 전분만 먹습니다. 익히지 않은 전분은 사람이 소화를 잘 못 시키거든요. 맛도 없고.

 

 우리가 쌀이나 밀을 조리할 때는 물을 사용해 익힙니다. 이 과정에서 호화(糊化)가 일어나게 되지요. 호화가 잘 된 갓한 밥이나 갓구운 빵을 먹으면 맛있습니다. 그런데 이후 상온에 두면 전분이 다시 부정적인 방향으로 변성되는 노화 과정이 일어납니다.

 

 전분이 노화되면 수분이 빠져나가면서 굳고, 맛이 없어지고, 소화가 다시 잘 안 되는데요.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전분의 노화는 온도가 차가울수록 빠르게 일어납니다. 가장 빠르게 일어나는 온도가 4입니다. 밥이나 빵을 냉장 보관하면 상하지는 않지만 맛이 없어지는 게 그래서입니다. 전분이 노화되어 변성되어버리면 다시 데우는 정도로는 충분히 다시 호화되지 않습니다. 삼각김밥을 포함한 편의점 냉장김밥이 괜히 맛없는 게 아닙니다.

 

 전분의 노화를 억제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얼립니다.

2. 말립니다.

3. 아예 60이상의 온도를 유지합니다.

 

 그러니까 밥은 식으면 그냥 용기에 넣어 얼려버리는 게 가장 좋은 보관법입니다. 아니면 누룽지로 구워서 말리거나요. 빵도 마찬가지로 얼리거나 말리는 게 좋고요.

 

 그런데 요즘은 사람들이 일부러 밥을 냉장 보관했다가 먹기도 합니다. 그렇게 먹으면 맛은 떨어집니다만, 아예 못먹을 정도로 맛없어지는 건 아니기도 하고. 상기하였듯 소화가 잘 안 되거든요. 그러니까 소화흡수율이 떨어져서 좀 다이어트 효과가 있단 말이지요.

 

 

 

 

 

 

 

5) 우리나라에서 튀김용 기름으로 많이 쓰는 기름은 콩기름, 쇼트닝, 카놀라유입니다. 쇼트닝은 식물성 고형유 중 가향되지 않은 것을 의미하는데, 향이 첨가된 건 잘 아시는 마가린입니다.

 

 통상적으로 시판되는 쇼트닝의 주성분은 팜유인데, 팜유는 원래 상온에서도 잘 고형화되기 때문에 쇼트닝을 만들기 적합하며, 무언가를 튀겼을 때 바삭한 느낌도 살고 산패도 잘 안 되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라면은 쇼트닝에 튀깁니다. 중식집에서도 쇼트닝을 많이 사용하고요. 조금 자극성이 있는 맛이 필요한 패스트푸드나 호프집 주방 등에서 쇼트닝을 애용하곤 합니다.

 

 콩기름은 쓰는 가정이 좀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많이 팔리고 있고, 일반적으로 가정에서 쓰는 식용유 중 가장 저렴한데요. 대용량 기준으로 리터당 가격을 따져보면 2700원 정도 합니다. 현재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1600원 정도 하니까, 먹지도 못하는 휘발유 가격에 비하면 그리 비싸지 않은 것입니다.

 

 실제 예전 00년대 휘발유 가격 리터당 2000원 넘던 시기에는, 앞으로 유전이 고갈되어서 기름이 부족해질테니 팜야자 농장에 투자하자는 투자상품 붐도 있었습니다. 바이오디젤이 앞으로 대세가 될 거라는 말들도 꽤 있었거든요.

 

 카놀라유는 콩기름에 비해 풍미가 좀 나은 편이라 생각합니다. 가격은 대용량 구매 시 콩기름보다는 약간 비싼 리터당 3000원 정도라 저렴한 기름에 속합니다. 요새는 튀김용으로 콩기름 대신 카놀라유를 쓰는 음식점도 많습니다. 큰 차이는 아니지만 카놀라유가 콩기름보다 튀김이 맛있게 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6) 기름은 무언가를 튀기거나 공기중에 노출되다보면 산도가 높아집니다. 그 산도는 산가측정지나 전자식 산도측정기로 측정할 수 있는데요. 문제는 둘 다 비싸다는 겁니다.

 

 튀김을 많이 하는 업장에서는 측정지나 측정기를 씁니다. 쓰는 기름 양이 워낙 많으니까요. 그렇지만 가정에서 튀김을 하는 정도면 그냥 새 기름을 사용하는 게 차라리 쌉니다. 어차피 튀김기름은 리터당 3000원밖에 안하니까요. 측정지는 개당 300원 정도로 생각하면 되고요. 산도측정기는 60만원 정도 합니다. 산도측정기 하나 살 돈이면 튀김기름을 200리터는 살 수 있습니다.

 

 

 

 

 

 

 

7) 조리도구나 식기, 식품보관용기등을 사다 보면 종종 붙어있는 라벨, 스티커, 테이프 등 때문에 곤혹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깔끔하게 안 떼어지고 끈끈이가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경우가 많단 말이지요.

 

 접착제는 대체로 유기용매에 녹는 성질을 가진 물질로 되어있습니다. 무기용매로 녹는 접착제는 물로 쉽게 제거 가능하니까 별 문제가 되지 않는데, 유기용매에 녹는 물질은 물로는 제거가 잘 안 됩니다. 유기용매로 녹이거나 물리적으로 긁어내야지요.

 

 나는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라벨, 스티커, 끈끈이를 제거합니다. 일단 그냥 손톱으로 떼어지면 떼어버리고요. 남는 건 지우개질을 합니다. 끈적한 게 잘 제거되는 상태라면 지우개질만으로도 깔끔하게 끈끈이를 제거할 수 있습니다만, 잘 안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때는 일단 물티슈로 문지르면서 제거합니다. 시판 물티슈는 유기용매로 젖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끈끈이를 어느 정도 닦아낼 수 있습니다. 어지간한 끈끈이는 드라이기로 온도를 높여주고 물티슈로 문지르고 지우개질을 하는 걸 번갈아 반복하면 지워집니다.

 

 그런데 가끔 강적이 있습니다. 물티슈로도 안 되는건 진짜 유기용매를 사용해서 녹여야 합니다. 쉽게 구할 수 있고 몸에 해롭지 않은 것들 중 유기용매로 사용 가능한 건 알콜, 오일, 그리고 아세톤이 있습니다. 그런데 물티슈로 가망이 없어보일 정도면 그냥 아세톤을 사용하는 게 낫습니다. 매니큐어 제거제로 쓰니까 아무 화장품 가게나 가면 살 수 있습니다. 다이소에서도 팔고요

 

 아세톤의 단점은 강력한 유기용매다보니 일부 플라스틱에도 대미지를 준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플라스틱에 아세톤을 사용할 때는 아세톤이 접촉하는 플라스틱 표면이 손상될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둬야 하고요. 만져도 별 문제는 없지만 그래도 비닐장갑이나 니트릴장갑 등을 끼고 아세톤을 다루는 게 좋습니다. 보통 매니큐어 리무버로 파는 아세톤에는 합성향을 첨가해 두는데, 그게 손에 닿으면 배서 몇 시간은 안 없어집니다. 향 없는 순수 아세톤도 구하려면 약국에서 구할 수는 있는데, 또 그런 건 피부에 닿으면 좀 독해서 장갑 끼고 쓰는게 좋습니다. 잘못하면 피부 틉니다.

 

 

 

 

 

 

8) 많은 사람들이 각자 특정한 향을 싫어하곤 합니다. 나도 정말로 기피하는 향이 하나 있는데요. 캄포 냄새입니다. 캄포는 우리나라 말로 녹나무를 의미하는데요. 녹나무에는 장뇌가 들어있고, 장뇌 냄새가 납니다. 원래 정확하게 말하면 캄포는 장뇌를 뜻하는 말이고, 녹나무는 캄포라또는 캄포나무라고 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냥 캄포라고 합니다.

 

 캄포는 호주에서 지나치게 많이 자라서 벌채해서 수출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제주에서도 자라지만 수입 목재를 도마로 많이 씁니다. 장뇌에는 약간의 독성이 있는데, 그게 살균효과도 있다 보니 항균도마로 홍보되고 있습니다. 독성도 있는 만큼 캄포도마가 몸에 나쁜지 아닌지는 논란거리가 있긴 합니다만, 많이들 쓰고 있고 별 문제보고가 없는 거 보면 실사용시의 독성문제는 딱히 우려스러울 정도는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나무 조각을 먹으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는 합니다만.

 

 그런데 진짜 문제는 냄새인데요. 캄포는 정말 향이 강합니다. 그리고 그 향은 나에게는 좀 견디기가 어렵습니다. 기호성이 강한 냄새라고 생각합니다. 장뇌 냄새인데요. 물파스에도 장뇌가 들어갑니다. dl-캄파라고 써있지요. 나는 물파스 냄새도 좀 기피하는 편인데, 물파스냄새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캄포 향도 괜찮을 확률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장뇌는 녹나무에만 들어있는 건 아닙니다. 로즈마리에도 장뇌가 약간 들어있습니다. 캄포나무처럼 장뇌 냄새가 두드러지는 건 아닙니다만, 요리에 로즈마리를 잔뜩 넣어 익히거나 하면 장뇌 냄새가 확 풍기게 됩니다. 다행히 나에게 로즈마리의 장뇌 냄새는 견딜 만한 정도고, 로즈마리를 못 먹거나 하지는 않습니다만 너무 장뇌 냄새가 강해지면 좋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어쨌든 로즈마리도 독성이 있다 보니 임산부는 피하는 게 좋다고 합니다. 로즈마리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장뇌를 싫어해서 그럴 확률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9) 고기를 팬에서 구울 때 유의해야 할 점은 팬에 접촉하는 면만 제대로 구울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고기는 평평하게 잘라놔도 굽다 보면 수축을 하면서 표면이 떠버리곤 합니다. 돼지고기로 치면 이 현상은 지방질이 많고 육질이 부드러운 삼겹살에서는 별로 없는데, 작은 근육 여럿이 붙어있는 목살이나 고기결이 좀 더 살아있는 다리살에서는 보다 두드러지는 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삼겹살이 유독 인기있어진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라 생각합니다. 삼겹살은 기름이 많고, 수축하면서 모양이 변하는 게 덜하다보니 표면에 마이야르가 일어나게 굽기가 쉽거든요. 오버쿡을 해도 맛있고요. 마이야르를 덜 일으켜도 기름맛이 강해서 풍미가 있고요.

 

 표면이 떠버리면 팬에서 단순히 굽는 것만으로는 충분히 마이야르가 일어나게 잘 굽기는 어렵습니다. 익기야 익습니다만, 팬에서 떨어진 부분은 온도가 충분히 안 올라간단 말이지요.

 

 돼지 목살을 구울 때는 조금 익힌 다음에 근간지방을 따라 각각의 근육들을 잘라 잘 뒤집어가며 구워주면 거의 해결됩니다. 돼지 목살도 지방이 좀 있는 편이기 때문에, 팬을 쓰면 약간 뜬 정도는 지방질이 해결해주기도 합니다. 다만 전체적으로 경사진 불판은 좀 덜 구워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기름이 고이지 않으니까요.

 

 물론 이는 마이야르를 잘 일으키려는기준에서의 이야기입니다. 그냥 구워익히는 것 자체는 어떤 불판에 굽건 잘 됩니다. 표면이 올록볼록한 그릴팬에 구워도 고기가 충분히 구워지긴 하지만, 접촉면적이 좁으니까 마이야르는 별로 일어나지 않지요.

 

 

 

 

 

 

 

10) 한우의 등급은 다른 여러 조건도 보지만 대략적으로는 알등심의 근내지방도를 보고 측정합니다. 1등급에서 9등급까지 있는데, 약어인 BMS로 표기합니다. 풀어 쓰면 Beef Marbling Score.

 

 흔히 유통되는 한우 등급에 적용하면 BMS 7+~9 = 1++ 등급입니다. BMS 6~7 = 1+ 등급이고요. BMS 4~51등급. BMS 2~32등급. BMS 1이면 3등급입니다.

 

 대략 BMS 4~51등급 정도면 미국산 프라임등급, BMS 2~3 정도의 2등급이면 초이스 등급에 해당합니다. BMS 6부터는 정말로 지방이 많은 거지요.

 

아랫등심 사진. 안쪽 하트 모양의 살코기 부위가 알등심입니다

 이 등급제는 잘 이해해야 합니다. 알등심은 원래 지방이 잘 생기는 부위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한우 1+ 등급 이상이면 지방이 원래 별로 없는 부위에도 마블링이 생긴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전신에 근내지방이 낀다는 거고요.

 

 알등심에 지방 많으면 다른 부위에도 근내지방이 많을 확률이 높긴 한데, 꼭 정비례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원래 지방이 많은 부위는 좀 등급이 낮아져도, BMS 3정도만 되어도 지방이 꽤 많습니다.

 

 그러니까 한우를 고를 때는 표기된 등급보다도 눈에 보이는 근내지방도를 잘 살펴서 고르는 게 좋습니다. 표기된 등급이 정확하게 들어맞는 부위는 알등심뿐입니다. 예를 들어 알등심보다 지방이 잘 끼는 살치살을 기준으로 하면, BMS 8인 개체가 9인 개체보다 지방이 더 많거나 한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

 

 

 

 

 

 

 

11) 팬에 구울 때 특히 신경써야 하는 음식이 몇 종류 있습니다. 몇 개 예를 들어보자면 생선, 양고기, 그리고 떡갈비를 꼽겠습니다. 생선과 양고기는 냄새가 강하고, 떡갈비는 간장 소스가 타버리기 때문인데요. 셋 다 테플론 코팅팬 같은 데는 조리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비싼 테플론 코팅은 물리적인 긁힘에는 강해서, 긁어도 잘 손상이 안되는데요. 그렇지만 테플론 자체의 물성을 어쩔 수는 없습니다. 오일은 테플론 입자 사이에 스며듭니다. 그렇기에 생선 기름이나 양고기 기름 같은 게 테플론 입자 사이에 스며들어버리면 답이 잘 안나옵니다. 좋은 테플론 코팅팬일수록 관리를 잘 해야 편하게 오래 쓸 수 있습니다.

 

 코팅이 없는 무쇠팬이나 연철, 강철팬 등에 입혀두는 시즈닝도 추가적으로 중합되는 오일과는 결합하는 성질을 가지기 때문에 생선이나 양고기를 굽는 데는 별로 적합하지 않습니다. 다만 시즈닝을 다소 희생시킬 생각이 있다면, 냄새를 제거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은 편입니다. 시즈닝이야 얼마든지 벗겨내고 새로 만들면서 쓸 수도 있으니까요. 다만 그래도 귀찮고 시간이 걸리는 건 사실입니다. 마찬가지로 간장이 타서 시즈닝에 눌러붙어도 시즈닝의 일부 손상을 피하긴 어렵습니다.

 

 시즈닝도 코팅도 없는 스테인리스 팬이 이럴 때 좋습니다. 세척에 강하다는 건 명백한 이점을 지닙니다. 그런데 스테인리스 팬이 없다면? 지름이 크고 낮은 스테인리스 전골냄비 같은 걸 써도 됩니다. 전골냄비와 소테팬은 어느 정도는 호환이 됩니다. 스테인리스 프라이팬은 사봐야 어차피 별로 안 쓸 것 같아서 마련을 주저하시는 분들은, 전골냄비를 구매하셔서 주로 냄비로 쓰다가 스테인리스 팬이 필요할 때만 전골냄비를 팬으로 쓰셔도 됩니다.

 

 석쇠와 쿠킹호일을 사용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석쇠에 그냥 구우면 뒷수습이 어려우니까, 쿠킹호일을 고정하는 용도로만 석쇠를 쓰는 거지요. 특히 생선을 구울 때는 쿠킹호일이 괜찮습니다. 세척할 필요도 없이 버리면 되니까요. 또 생선은 대체로 본래 풍미가 강하기 때문에, 굳이 마이야르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쿠킹호일로 싸서 찌듯이 낮은 온도에 구워도 됩니다. 다만 생선에 식초나 레몬즙 등을 활용하는 경우에는 쿠킹호일을 피하세요. 알루미늄은 산에 매우 약해서, 산이 닿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알루미늄 성분이 녹아나옵니다.

 

 

 

 

 

 

 

12) 고기를 냉동하는 것은 고기의 품질에 그렇게까지 큰 악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냉동육을 먹으면 맛없다고 느끼기 쉬운데요. 이에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가장 큰 원인은 일단 품질이 좋은 고기는 가급적 냉장유통하고, 냉동유통하는 고기는 품질이 떨어진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니까 애초에 냉동육을 사면 품질이 낮은 고기일 확률이 높다는 겁니다. 이건 냉장육이냐 냉동육이냐의 차이가 아니고, 그냥 고기 자체의 레벨 차이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원인. 보통 고기는 도축과 발골, 분할정형 이후 부위별로 크게 진공포장한 다음 유통되는데요. 냉장유통시에는 유통되는 동안 계속 숙성이 일어납니다. 진공포장한 고기는 냉장상태에서 쉽게 상하지 않고 꽤 오래 갑니다. 그런데 바로 얼려버리면 숙성이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냉동육을 사면 숙성이 불충분한 고기일 수 있습니다. 숙성이 잘 안된 쇠고기는 그 이유로 질기거나 감칠맛이 부족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또한 결정적인 이유는 냉동 과정에서의 조직파괴입니다. 물은 얼면 팽창합니다. 고기도 내부에 물을 많이 머금고 있는데, 얼리면 물이 팽창하면서 조직을 손상시킵니다. 그래서 냉동한 고기는 해동하거나 그대로 굽거나 하면 물이 상당히 많이 나옵니다. 이 과정에서 다소 육즙도 손실되긴 하는데, 그건 사실 그렇게 중요하진 않고요.

 

 고기 표면의 육즙은 쉽게 오염되고 부패하기 때문에 많은 경우 상한 느낌이나 누린내 등의 부정적인 풍미를 가지곤 합니다. 그러니까 냉동육은 냉장육보다 수분제거가 중요한데요. 실제 고기를 접하다보면 이미 썰어놓은 상태로 냉동을 하거나, 냉동 후 썰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얇은 고기가 되면 육즙을 제거한 후 굽거나 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냉동육을 그냥 굽게 되면, 고기온도 자체가 낮기도 하고 냉장육에 비해 수분도 많이 나오기 때문에 잘 안구워집니다. 이게 사실 사람들이 냉동육을 맛없다고 느끼는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13) 베이킹소다 = 탄산수소나트륨 = 중탄산나트륨 = 중조 식소다 는 원래 과자나 뽑기 만들 때 조금씩 쓰는 물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설거지, 청소에 쓰기 좋은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알음알음 쓰다가 어째 점점 청소용으로 유명해지고, 이제 본격 청소/설거지용 가루가 되었는데요.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근래 시판하는 탄산수소나트륨은 식용등급이 아닌 것도 많습니다. 원래 용도대로 식용으로 쓰려면 식용 등급을 쓰셔야 합니다.

 

 베이킹소다의 이미지가 좋다보니 주방세제에도 세탁세제에도 베이킹소다 넣었다고 표시해두고, 전천후로 많이 쓰는데요. 설거지할 때 베이킹소다의 특성은 분말 형태이고, 약한 연마력과 이물질 흡착능력과 녹였을 때 탈취효과를 가진다는 겁니다. 그리고 맛은 없지만(씁니다) 식용 등급이면 소량 먹을 수도 있고요. 이 특성 때문에 쓰게 된 거고, 세척력이나 연마력으로 보면 딱히 강하지않습니다. 원래 약해서많이 썼던 물건입니다.

 

 설거지할 때 베이킹소다를 예전부터 많이 썼던 물건은 다구입니다. 차를 마시다보면 다구에 잘 지워지지 않는 찻물이 드는데요. 자사호같은 다구는 찻물을 들여 쓰도록 되어있습니다만, 유럽식 티포트나 찻잔은 찻물이 들면 영 보기가 안 좋거든요. 그런데 비싼 다구를 손상시킬 수 있는 강한 연마력이나 세척력 등이 있는 물건을 가져다대기는 싫고, 또 못먹는 물질을 쓰기도 싫으니까 베이킹소다를 써서 세척하는 게 룰이 된 겁니다. 베이킹소다로 닦으면 찻물이 잘 지워지거든요. 가루라 형상이 복잡한 도자기를 세척하기 좋고요.

 

 그러니까 베이킹소다의 장점은 흡착/연마/탈취기능이 있으면서도 설거지를 할 때 설거지감에 거의 대미지를 안 준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럴 수 있는 건 연마력이 매우 약하기 때문입니다. pH도 약한 알칼리성이라 화학적인 손상을 일으킬 위험도 낮은 편입니다.

 

 그런데 특성이 이렇기 때문에 강한 세척/연마 능력이 필요할 때는 베이킹소다 쓰는 거 아닙니다. 그리고 물에 완전히 녹인 베이킹소다는 연마능력을 완전히 상실하며, 세척능력도 별로 높지 않습니다. 베이킹소다가 흡착/연마/세척능력을 가지는 건 가루 상태이거나 소량의 물이 섞여서 반죽이 된 페이스트 상태일 때입니다. 물에 녹이면 입자가 용해되어서 그저 약알칼리성 물이 될 뿐이지요. 이 상태에서도 탈취효과나 약알칼리성에서 비롯되는 미미한 능력은 있습니다만.

 

 흔히 처음 냄비나 팬을 구매했거나, 태운 냄비를 닦는다거나 할 때 베이킹소다를 탄 물을 끓이라거나, 베이킹소다에 물과 식초 또는 구연산을 섞어서 끓이라거나 하는데요. 별 소용 없습니다. 일단 금속의 경우 가열하면 팽창을 하기 때문에 잘 세척해주려면 뜨거운 상태에서 세척해주는 게 좋긴 합니다. 그런데 물에 녹인 베이킹소다 자체는 별로 대단한 효과가 있는 건 아닙니다. 그리고 베이킹 소다에 식초나 구연산을 넣으면? 부글부글 하는 비주얼이 보이니까 뭔가 있어보이지만 그냥 중화반응입니다. 알칼리와 산이 만나 중성화가 되는 거지요. 열을 좀 내면서. 그건 진짜로 아무 효과 없습니다.

 

 

 

 

 

 

 

14) 시판하는 소다는 크게 4가지가 있습니다. 베이킹소다, 가성소다(수산화나트륨), 과탄산소다(과탄산나트륨), 탄산소다(탄산나트륨). 이 중 탄산소다가 굳이 보면 그냥 소다입니다.

 

 탄산소다는 시중에서는 워싱소다라는 이름으로 팝니다. 베이킹소다에 비해 pH가 꽤 높습니다. 즉 더 강한 알칼리성을 가집니다. 참고로 베이킹소다를 구우면 탄산소다가 됩니다. 탄산소다 못 구하면 베이킹소다를 구워서 만들 수도 있습니다. 베이킹소다는 가열하면 이산화탄소가 분리되어 나오는데, 원래 그 원리로 과자를 부풀리는 겁니다.

 

 탄산소다는 베이킹소다보다 염기성이 많이 강하기 때문에 청소/빨래용으로 본격적인 활용이 가능합니다. 특히 빨래할 때 많이 쓰는데요. 시판 가루비누에는 원래 탄산소다가 좀 들어있습니다. 시판 세제에 베이킹소다 넣었다고 하는 건 그냥 사람들이 베이킹소다를 좋아하니까 그리 적어놓는거고, 원래는 베이킹소다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게 강한 세정력을 가지는 탄산소다가 들어갑니다. 탄산소다는 베이킹소다보다 염기성이 대략 500배는 강합니다.

 

 빨래용 액체세제를 사용하는 분들이 많은데, 액체세제는 가루세제에 비해 세정력이 낮습니다. 그러니까 강한 세척능력이 필요할 때는 탄산소다를 좀 같이 넣어주면 좋습니다. 다만 염기성이 강해지니까 헹굴 때 충분히 중화를 시켜줘야 합니다. 섬유유연제는 산성이기 때문에 그걸 쓰면 기본적인 중화는 되는데, 유연제를 좀 넉넉하게 쓰거나 식초를 유연제 칸에 넣어서 중화를 시켜주고, 충분히 행궈주면 됩니다. 다만 드럼세탁기에는 쓸만하지 않습니다.

 

 설거지할 때는 최후의 수단으로 쓸 수 있습니다. 나는 탄산소다는 염기성이 강하고 식용도 아니기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설거지감에 쓰고 싶지 않은데요. 뭘해도 답이 없으면 탄산소다를 쓰는 게 다른 염기성 물질을 쓰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염소가 들어가있는 락스나 산소가 들어가있는 과탄산소다보다는 설거지감을 덜 상하게 합니다.

 

 과탄산소다는 탄산소다에 산소가 더 들어가있는 겁니다. 산소계 표백제의 주성분이기도 한데요. pH도 높고 산소까지 만들기 때문에 강한 세정, 표백, 살균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찬물에는 잘 안녹습니다. 녹여 쓰려면 뜨거운 물에 녹여야하고요.

 

 과탄산소다는 설거지 같은 데는 쓰기 힘듭니다. 너무 셉니다. 식기건 조리도구건 망가지기 알맞습니다. 아주 강한 세척능력을 가지고는 있지만, 웬만하면 안쓰는 게 좋습니다. 빨래할 때도 표백효과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탈색이나 이염을 피하려면 쓰면 안 되고요.

 

 마지막으로 가성소다는, 비누 만들 거 아니면 가급적 손대지 않는 게 좋습니다. 업장에서는 희석액을 오븐 청소에 쓰기도 합니다만. 기본적으로는 위험하니까 아예 손대지 않는 게 좋은 물질입니다.

 

 

 

 

 

 

 

15) 중화면에는 대체로 소다가 들어갑니다. 중화요리는 물론이고 라멘도 일본식 중화요리기 때문에, 일본식 라멘이나 시판 인스턴트 라면에도 들어가지요. 알칼리를 넣어 반죽한 면은 단단하고 꼬들해집니다. 덜 퍼지고요. 대신 풍미가 좀 나빠지고 소화가 잘 안되는 게 문제지요.

 

탄산나트륨은 탄산소다고, 중탄산나트륨은 베이킹소다입니다

 몸이 별로 좋지 않을 때 라면이나 자장면, 짬뽕 먹으면 잘 소화가 안 될 수 있는데, 대략 세 가지 이유입니다. 하나는 기름이 많다는 것. 그리고 잘 안 씹기 쉽다는 것. 또 하나는 면이 알칼리성이라는 겁니다. 우리 위장은 염산을 분비해서 pH를 낮추는데, 알칼리성 음식을 먹으면 pH가 올라갑니다. 위장 내부의 pH가 올라가게 되면 소화가 잘 안 됩니다.

 

 그러니까 중화면이나 라면을 먹을 때는 새콤한 걸 같이 먹는 게 좋습니다. 김치, 식초를 뿌린 단무지, 자차이(짜사이) 절임 등등 모두 신 음식입니다. 음료들 중에도 pH가 낮은 게 많습니다. 특히 탄산음료는 pH가 매우 낮은 편입니다. 콜라를 마시면 소화에 도움이 된다는 건, 일단 pH가 낮은 게 한 이유입니다.

 

 

 

 

 

 

 

16) 우리가 먹는 생선에는 자연산이 많습니다. 자연산 생선의 특징은 체내 지방산의 기원이 곡물에서 비롯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선기름에는 오메가3가 많습니다.

 

 오메가3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신선할 때 먹으면 몸에 좋다고 알려져있는데요. 대신 쉽게 산패됩니다. 특히 자연산 생선기름은 진짜 심하다 싶을 정도로 산패가 쉽게 됩니다. 가정용 냉동실에 보관 중인 냉동된 생선의 기름도 천천히 산패가 일어나는 중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육류나 채소와는 달리, 냉동 생선은 냉동실에서도 제법 빠른 속도로 부패한단말이지요.

 

 이 부패를 억제하려면 일반 냉동고로는 안 되고요. -40이하로 온도가 낮아지는 특별한 냉동고가 필요합니다. 참치 냉동고라는 이름으로 팔리는데요. 일단 유통중인 냉동 수산물은 저렇게 낮은 온도에서 보관됩니다. 그런 걸 집에 사와서 18수준의 가정용 냉동고에서 보관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부패가 일어나는 거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러니까 수산물은 냉동실에 쟁여두는 거 아닙니다. 쟁여두고 싶으면 참치 냉동고를 사야 합니다. 문제는 참치 냉동고는 김치냉장고처럼 위쪽을 열어야 하는 타입으로 나온다는 겁니다. 그래서 공간활용하기가 매우 안좋습니다.

 

 

 

 

 

 

 

17) 대나무는 이름은 나무지만 나무가 아닙니다. 커다란 초본식물입니다. 그래 보여도 볏과 풀이란 말이지요.

 

 대나무는 활용도가 높은 식물입니다만, 여느 볏과 풀이 그렇듯 규사(석영=실리카) 성분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실제 일반적인 볏과 풀을 맨손으로 만지다보면 베일 수 있는데, 풀의 가장자리에는 규사 성분이 있기 때문에 경도가 꽤 높고, 그렇기에 피부가 베일 수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대나무도 규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대나무로 만든 조리도구는 다른 나무로 만든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해야합니다. 경도가 높은 입자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나무 수저나 주걱으로 팬 같은 걸 긁으면 대나무만 닳는 게 아니고, 긁히는 팬의 코팅 등이 벗겨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나무 도마를 쓰면 칼날이 손상될 수 있습니다. 나는 마모가 현저하게 일어날 수 있는 영역에는 대나무를 사용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18) 프라이드치킨과 양념치킨의 선호도는 각자 다를 것입니다. 그런데 혹시 예전에는 양념치킨이 맛있었는데, 요새는 프라이드치킨이 더 맛있는 것 같다.’라고 느끼시는 분들 있으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프라이드치킨이 양념치킨보다 대체로 맛있어지고, 양념치킨은 맛이 떨어진 게 맞습니다. 그게 왜 그렇냐면요.

 

 양념치킨은 프라이드치킨에 양념을 추가로 입힌 겁니다. 그러니까 프라이드치킨보다 간이 세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만들려면 양념치킨을 위한 프라이드치킨은 그냥 시판 프라이드치킨보다 밑간을 여리게 하고, 들어가는 스파이스나 허브도 고려를 해야하는데요. 대다수의 치킨집에서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프라이드치킨 위주로 개발을 하고, 거기에 추가로 양념을 바르게 되지요.

 

 옛날 양념치킨이 맛있었던 이유는 프라이드치킨의 염지가 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프라이드치킨은 소금을 찍어 먹기 적합한 수준으로 간이 낮았고, 허브/스파이스도 그리 많은 양을 사용한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대조적으로 양념치킨은 추가적인 양념이 묻으니까 간이 적당해져서 맛있었던거지요.

 

 그런데 00년대 중후반 들어 BBQ, 네네 등이 유행하면서 우리나라 치킨업체들 경쟁이 치열해졌고, 그 결과 프라이드치킨들의 염지가 점점 강해집니다. 그에 맞춰 치킨양념 간은 약해지는 경향이 생기는데, 그렇게 만들다보니 양념치킨은 맛이 떨어지고 프라이드치킨은 맛있어졌습니다.

 

 예전 방식으로 양념을 만들면 여전히 양념 자체는 맛있습니다. 그런데 요새 나오는 염지가 강한 프라이드치킨에 그런 양념을 바르면 전체적인 간이 좀 세집니다. 간간한 걸 잘 먹는 사람한테는 맛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는 혀에 닿는 간이 센 걸 잘 못 먹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렇게는 잘 안팝니다. 물론 가끔 그냥 간이 세고 맛있는 양념치킨을 파는 곳도 있긴 한데요. 그런 양념치킨은 주관적으로는 치밥을 해야 맛있습니다. 밥하고 먹기 좋은 간이 되거든요.

 

 여담인데 치밥은 기본적으로 프라이드치킨보다 양념치킨이 맛있는 편입니다. 양념치킨쪽의 간이 더 세기 때문입니다. 보통 프라이드치킨의 간은 밥하고 먹기 좋을 정도로 강하지는 않습니다. 맥주하고 먹기 좋은 정도의 간으로 맞춰놓지요.

 

 

 

 

 

 

19) 햄은 본래 돼지 뒷다리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걸 절여서 만드는 음식 전반을 햄이라고 부르는 거고요. 그러니까 원래는 하몽이나 프로슈토, 잠봉 같은 게 햄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프레스햄도 햄으로 부릅니다. 프레스햄은 원래 분류를 하자면 케이싱이 없는 소시지에 가까운 물건인데요. 맛이 좀 달라서 그렇지 만드는 방식은 쿡살라미 계열과 크게 다를 건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프레스햄으로 부르는 건 비닐팩에 넣어 파는, 스모크향이 나는 네모낳고 다소 단단한 걸 의미하고요. 캔에 넣은 프레스햄은 따로 구분해 취급합니다.

 

 관습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캔햄 중 돈육 함량이 낮은 저급품은 상품명으로 런천미트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보통 런천미트라고 파는 것들은 먹을 만한 맛이 못 됩니다. 대조적으로 돈육 함량이 높은 캔햄의 대표적인 상품은 스팸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스팸의 발음과 유사하게 고급 런천미트 이름을 짓곤 합니다. ‘로스팜’, ‘리챔’, ‘안심팜처럼 말이지요. 물론 으로 표기하기도 하고요. ‘튤립햄처럼.

 

 일단 설 선물로 캔햄을 받은 분들이 제법 있을거라 이야기하자면, 고급형 캔햄 340g 사이즈는 대체로 플라스틱 덮개가 있는데요. 그 덮개는 보기와는 달리 밀폐력이 거의 없습니다. 일단 개봉한 런천미트를 그 덮개만 덮어서 냉장고에 보관하게 되면, 밀폐력이 없기 때문에 수분이 증발해 날아가 버리고, 맛이 없어집니다. 그러니까 개봉한 후 남은 캔햄은 따로 밀폐용기에 넣어 보관하는 게 가장 좋고요. 그냥 플라스틱 덮개 덮어서 보관할 거면 최소한 비닐로라도 한 번 싸매는 게 낫습니다. 절충안은 지퍼백을 이용해 보관하는 겁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캔햄의 특성은 염도와 지방함량이 높고 물성이 부드럽다는 겁니다. 그래서 다른 프레스햄이나 본레스햄, 쿡살라미와는 용도나 특성이 좀 달라집니다. 요리에 여기저기 쓰기에는 비닐팩 프레스햄 쪽이 낫습니다. 그렇지만 캔햄은 구워서 밥과 함께 상추쌈을 해먹으면 맛있습니다. 삼겹살을 대체할 수 있지요.

 

 

 

 

 

 

 

20) 우유에서 유지방만 분리해서 모으면 버터가 됩니다. 버터를 완전히 분리해낸 우유는 무지방우유고요. 버터를 어느 정도 분리한 우유는 저지방우유입니다.

 

 그럼 유지방을 많이 포함한 우유는? 그게 생크림입니다. 제과에는 생크림에 설탕을 넣고 휘핑해서 씁니다. 크림소스를 만들 때는 휘핑하지 않은 무가당 생크림을 그냥 쓰고요.

 

 그러니까 크림소스를 만들 때는 버터하고 우유만 있어도 됩니다. 물론 진짜 크림을 쓰는 게 더 좋긴 한데요. 문제는 우리나라 음식에는 크림을 넣는 게 거의 없어서, 크림 한 팩 사면 다 쓰지 못하고 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보존성도 나쁘고요.

 

 생크림을 베이킹에 사용할 경우, 진짜 생크림만으로 만들면 맛은 좋습니다. 그렇지만 경화제 없이 휘핑을 제대로 하려면 설탕을 많이 넣어야 하기 때문에 많이 달아집니다. 그리고 다수의 제과점에서는 우유 생크림이 아닌 식물성 휘핑크림이나 식물성 크림과의 혼합물을 씁니다.

 

 우유 생크림만으로 만든 생크림케잌은 식물성 휘핑크림을 사용하는 것에 비해 모양이 예쁘게 잘 안나옵니다. 작업성이 현저하게 나쁘기 때문입니다. 진짜 생크림 쇼트케잌은 모양은 수수하고 가격은 비쌉니다.

 

 맛있는 쇼트케잌을 먹고 싶다면, 잘하는 제과점에서 모양이 수수한 생크림 케잌을 사면 됩니다.

요리 관련 이런저런 이야기 #4

식이 2022. 1. 20. 19:34 Posted by 해양장미

요리 관련 이런저런 이야기 1

요리 관련 이런저런 이야기 2

요리 관련 이런저런 이야기 3

 

 

 

 

 

1) 가스렌지의 불꽃은 본래 파란색입니다. 그런데 겨울철에 가스렌지를 쓰다 보면 가끔 노랗고 붉은 화염, 즉 황염이 평소보다 많이 나오는 걸 볼 수 있는데요. 주의가 필요합니다.

 

 가스는 완전히 연소하면 청색 불꽃이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LNG를 쓰는 설치형 가스렌지에서 황염이 나오는 건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황염이 나오는 요인은 대략 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생각합니다.

 

a. 산소 부족

b. 공기 중에 섞인 작은 물방울 습도

c. 렌지에 문제 발생

 

 일단 가장 흔한 원인은 산소부족입니다. 겨울철 실내는 환기가 부족하기 쉽고, 이건 결국 산소가 부족해지기 쉽다는 겁니다. 산소가 부족하면 가스가 완전히 연소되기 어려워지지요. 특히 가스렌지를 쓰는 가정은, 가스가 연소하면 이산화탄소가 생기고 산소가 줄어든다는 걸 생각해야합니다. 가스가 완전연소되면 딱히 다른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지만 이산화탄소가 생기고 산소가 줄어드는 건 연소반응인 이상 어쩔 수 없습니다. 대체로 우리나라 겨울철 실내는 이산화탄소 농도가 꽤 높습니다. 환기 게을리 하면 기준치 이상으로 올라가는 거 순식간입니다. 특히 실내에서 불을 써서 요리를 하면서 환기를 게을리하면 영락없이 이산화탄소 농도가 올라갑니다. 산소는 그만큼 줄어들고요. 인덕션, 하이라이트같은 전기렌지 계열은 단점이 많지만 이산화탄소를 만들지 않는다는 장점은 있습니다.

 

 그리고 공기 중에 섞인 작은 물방울이 황염을 만들 수 있습니다. 공기 중에 섞인 물방울은 수증기와는 다른데요. 수증기는 물이 기체로 상전이한거고 공기중에 섞인 물방울은 액체상태의 작은 물 입자가 공기와 혼합되어있는 것입니다. 공기 중에 액체 상태의 미세한 물방울이 섞인 건 쉽게 이야기하면 안개입니다. 이렇게 공기에 혼합된 물방울은 쉽게 기체로 상전이할 수 있긴 합니다만, 그건 수증기가 아닙니다. 수증기는 눈에 안 보입니다. 물을 끓였을 때 보이는 김의 경우 기체로 상전이한 수증기가, 공기중에 퍼지면서 온도가 낮아졌기에 다시 물로 상전이하는 것들이 보이는 겁니다. 이후 김은 공기중에 퍼지면서 다시 수증기로 상전이하게 되고, 그러면 보이지 않게 되지요.

 

 가습기 중 초음파가습기는 물을 증기로 직접 상전이시키는게 아니고, 물을 가느다란 입자로 쪼개 공기 중에 흩어놓는 겁니다. 상전이는 공기 중에 미세한 물방울이 흩어진 후에 일어나지요. 그러니까 초음파가습기는 황염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안개가 심한 날이나 지역도 한 원인이 될 수 있겠고요. 가열식 가습도 눈에 보이는 김을 꽤 만들어내긴 하니까 이론적으로 원인이 될 수는 있습니다만, 실제로는 초음파가습처럼 황염을 만들어내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초음파가습대비 고온의 김을 만들어내고, 주변 온도도 높이니까 김이 보다 쉽게 상전이되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렌지에 문제가 생겨도 황염이 생길 수 있습니다. 단순하게 화구에 이물질이 끼었거나 해도 황염이 생길 수 있지요. 렌지가 원인인지 파악해보려면 다른 가스렌지를 켜보면 됩니다. 그러니까 집에 부루스타나 캠핑용 버너 하나 정도는 있는 게 좋습니다.

 

 황염은 불완전연소라서 일산화탄소를 만듭니다. 실내에 일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지면 사람을 중독시키고 죽음까지 이르게 만듭니다. 연탄가스 중독이 일산화탄소 중독입니다. 가스불에서 황염이 보인다면 일단 황염의 원인을 제거하려 시도해보고, 만일 어쩔 수 없이 황염이 나오는 상황에서 렌지를 사용해야한다면 적극적인 환기가 필수입니다.

 

 

 

 

 

 

이 염소가 아닙니다

2) 요리를 하고 조리 도구를 다룰 때 신경 써야 하는 원소 중 하나가 염소(Cl)입니다. 일단 수도물에는 염소가 들어있습니다. 평소에는 이 염소가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지만, 겨울철에는 실내 염소농도가 높아질 수 있습니다. 환기가 잘 안 되고, 가습도 하는데 가습에 수도물을 사용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수도물 속 염소농도는 수도물을 쓰는 위치가 정수장에서 얼마나 가까운지 먼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법적으로 수도물 내 염소농도는 기준치가 있어서, 정수장에서 가장 먼 곳에서도 기준치 이상이 되어야 하는데요. 그러다보니까 정수장 가까운 곳에서는 염소농도가 좀 높습니다. 미량 섞인 거니까 그것 자체로는 별 문제가 없지만, 환기도 잘 안하고 살면서 수도물 계속 끓이고, 증발시키고, 초음파 가습기 같은 걸로 안개까지 계속 만들어버리면 이야기가 좀 다르지요.

 

 그런데 우리가 주방에서 일상적으로 접하는 염소 원소는 수도물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소금에도 있지요. 소금은 나트륨과 염소의 화합물이잖습니까. 우리 몸은 소금을 먹으면 거기서 나트륨 성분만 사용하는 게 아니고, 염소 성분도 사용합니다. 위액은 펩신과 염산으로 되어 있는데, 이 염산의 화학적 합성을 위해 우리 몸은 소금 등으로 섭취하는 염소를 사용합니다.

 

 그런데 소금에 포함된 염소의 높은 반응성은 주방에서는 곤혹스러운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염소의 특성 중 하나가 산화피막을 돌파한다는 겁니다. 스테인리스 주방용품의 크롬피막이나 알루미늄의 산화알루미나 피막을 뚫어버리고, 부식을 일으키지요.

 

니켈

 그래서 내식성에 특화된 오스테나이트계 스테인리스는 부식에 대한 저항성을 높이기 위해 크롬뿐만 아니라 니켈, 망간, 몰리브덴 등을 추가로 합금합니다. 니켈은 스테인리스의 내식성을 크게 향상시키고, 몰리브덴은 염소이온에 대한 방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니켈은 고가의 금속이라는 겁니다. 근래 대략적인 금속 가격은 구리가 알루미늄보다 4배 육박하게 비싸고, 구리보다 니켈이 2배 정도 비싸고, 주석은 니켈보다 2배 정도 비쌉니다. 그리고 은은 주석보다 18~19배 정도 비쌉니다.

 

망간

 니켈은 비싼 금속이기 때문에 저렴한 스테인리스에는 별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대신 망간을 넣는데, 니켈 대신 망간으로 내식성을 보강한 오스테나이트계 스테인리스는 실제 사용하다보면 그렇게까지 내식성이 높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저렴한 스테인리스는 소금기가 닿는 걸 주의해야합니다. 제대로 니켈이 들어간 304같은 스테인리스는 평범하게 쓰면 이게 녹이 슬긴 스는건가 싶은 내식성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소금 알갱이가 닿은 상태로 가열하거나 하는 건 조심해야 합니다. 고온에서는 염소이온이 산화피막을 돌파하기 쉬워집니다.

 

 

 

 

 

 

3) 주방칼을 쓸 때 제일 중요한 건 다치지 않는 겁니다. 프로 요리사들도 칼질하다가 곧잘 다칩니다. 잘나가던 음식점이 몇 달 문 닫을 정도로 다치는 경우도 있지요. 그냥 손을 베는 거 말고도 칼을 떨어뜨려서 발을 다치거나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날을 세운 주방칼은 많이 날카롭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피부는 도검에 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냉병기로 전쟁하던 시절에 금속 갑옷을 못 입는 병사들은 천으로 된 누비옷을 입고, 머리카락을 길렀습니다. 마른 머리카락은 같은 굵기의 쇠줄보다 질깁니다. 잘 길러서 목을 가리면 머리카락 덕에 목을 베이지 않을 수도 있었지요. 어쩌면 잘 기른 수염도 목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칼질할 게 많으면 손에 아무 거라도 끼면 낫습니다. 고무장갑이건 니트릴장갑이건 얇은 면장갑이건 맨살에 비하면 칼에 베였을 때 방어력이 현저하게 높아집니다. 물론 제대로 된 방어력을 가진 손보호용 장갑도 있습니다. 작업이 많으면 사용해볼만 하지요.

 

 한편으로 손톱은 의외로 손을 곧잘 보호해주는 편입니다. 칼을 사용하다가 조금 실수했을 때, 길러놓은 손톱은 손이 베이는 걸 막아주기도 합니다. 물론 제대로 실수하면 손톱까지 잘려버릴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리고 손톱을 기르면 위생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4) 주방칼을 보관할 때 자성이 있는 칼꽂이나 거치대 등에 보관을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석으로 고정을 시키면 아무래도 관리가 쉽긴 한데요. 대신 잃는 게 있습니다.

 

 자석에 붙는 강자성 물질은 자석에 붙여두다 보면 천천히 자석화가 됩니다. 그러니까 자석에 칼을 붙여두면 칼도 자석이 되어간단 말입니다. 그렇게 자성이 생긴 칼을 갈아서 날을 세우려고 하면, 갈린 금속 입자가 제대로 떨어지지 않고 자성에 의해 붙는 문제가 생깁니다. 잘못하면 쇳가루에 의해 날에 기스가 난다거나 날이 제대로 매끄럽게 서지 않는다거나 할 수 있지요. 또한 자석에 잘못 붙이거나 하면 칼날이 손상될 확률도 없지는 않습니다.

 

 자성이 생기면 탈자기(자성제거기)를 이용해 자성을 없앨 수 있긴 합니다. 다만 나는 조금 여유가 있다면, 자성이 생기지 않도록 칼을 관리하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5) 스테이크를 어느 정도 드시게 된 분들은 대체로 레어에서 미디엄 정도를 선호합니다. 그런데 풍미나 질감의 스타일이 다르긴 합니다만, 잘 구운 웰던은 생각보다는 맛있습니다.

 

 웰던은 스테이크를 하기에는 정형이 얇게 된 고기를 굽다 보면 만들어지기 쉽습니다. 고기가 일정 두께 이하일 경우, 어지간해서는 (충분한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난) 잘 구워진 표면과 내부의 적절한 레어~미디엄 레어급 익힌 정도가 공존하기 어렵습니다. 이 경우 선택이 필요한데요. 고기가 신선하고 기름이 적어서 육회로 먹어도 맛있을 것 같으면 덜익히는게 좋은데, 기름이 있거나 덜 신선할 경우 미디엄 이상으로 굽는다 생각하고 마이야르를 충분히 일으켜 맛을 내는 게 낫습니다.

 

 그런데 미디엄 이상으로 구운 쇠고기는 보통 레스팅을 시키면 고기 표면에 핏물같은 붉은 육즙이 올라옵니다. 오히려 레어 정도에서는 육즙이 안 나오고요. 화력과 장비가 부족해서 고기를 오래 익힐 경우엔 굽는 도중에도 그럴 수 있습니다. 붉은 물이 올라오는 걸 보고 핏물을 구워버리겠다면서 계속 뒤집어가면서 육즙이 안 나올 때까지 익히면, 맛있는 웰던을 넘어서 오버쿡이 됩니다. 마르도록 너무 구운 고기가 된단 말이지요.

 

 웰던은 최대한 익힌 풍미를 내는 가운데 내부의 수분은 덜 잃는 게 포인트입니다. 웰던으로 구우면 내부의 수분이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그건 맛있는 육즙이기 때문에, 밥을 볶거나 하면 제법 좋은 맛이 납니다.

 

 고기는 웰던이 된 순간 익히면 익힐수록 어느 단계까지는 점점 더 질겨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일정 두께 이상인 고기는 웰던으로 구우면 안 됩니다. 스테이크를 하기에는 다소 얇은 고기를 익힐 때 웰던을 고려해볼만 합니다. 예전보다는 덜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스테이크를 하기에는 얇은 고기를 파는 경우가 많습니다.

 

 

 

 

 

 

 

6) 양고기는 쇠고기와 육질이 비슷하지만 실제 먹을 때는 돼지고기보다 더 익혀야 합니다. 레어스럽게 구워진 양고기는 먹을 만한 게 아닙니다. 고기는 완전히 익히면 육향이 줄어드는데, 양고기는 특유의 냄새를 잡아서 먹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다 구워야지요.

 

 양고기를 먹을 때는 대략 3가지 소스와 함께 먹습니다. 쯔란믹스, 민트젤리, 홀그레인머스타드. 이외에도 일반적인 스테이크소스나 다른 향신료 가루도 쓰긴 합니다만, 위에 이야기한 것들이 일반적입니다.

 

 쯔란믹스는 양꼬치집에서 먹는 붉은 가루입니다. 성분은 대략 쯔란가루, 흑후추, 고추가루, 참깨, 소금입니다. 보통 그냥 쯔란이라고 부르지만, 쯔란은 쿠민(커민/큐민/Cumin)시드고요. 실제 쯔란믹스의 쯔란함량은 보통 20% 정도입니다. 고추가루 함량이 더 높습니다. 나는 쯔란믹스를 좋아하는 편이라 양꼬치를 먹을 때는 쯔란믹스를 많이 먹습니다.

 

 민트젤리는 양고기를 먹을 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스입니다. 단맛이 나기 때문에 고기에 먹기엔 이상하고, 빵에 먹는 게 낫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양식에서는 과일 소스 계열처럼 단 걸 고기에 많이 씁니다. 익숙함의 문제라 생각합니다.

 

 홀그레인머스타드는 겨자씨 알갱이가 남아있는 머스타드 소스입니다. 많은 분들에게 익숙할 겁니다. 파는 곳도 많고요. 홀그레인머스타드는 양고기뿐만 아니라 쇠고기에도 잘 어울립니다.

 

 요새 점점 양고기를 파는 곳이 늘어나고 있는데, 양고기는 쇠고기와는 달리 소스를 곁들이지 않으면 충분히 맛있게 먹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구하기 쉬운 홀그레인머스타드라도 갖추고 드시는 쪽을 권장합니다.

 

 

 

 

 

 

 

7) 집에서 튀김을 했는데 너무 느끼하거나 하여 실패할 경우, 대체로 그 원인은 튀김기름의 온도에 있습니다. 보통은 튀김재료를 넣는 순간의 온도가 너무 낮은 겁니다.

 

 물 정도는 아니지만 식용유도 어느 정도 비열이 있습니다. 튀김솥/냄비/팬 등에 일정들이 이상을 붓고 가열을 하게 되면, 온도가 충분히 올라가는데까지 시간이 제법 걸립니다. 문제는 기름은 온도가 올라가도 발연점 이하에서는 티가 안 난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발연점까지 올려서 튀김을 하면 그건 너무 온도가 높고요.

 

 기름 온도를 확인할 수 있는 여러 노하우가 있긴 합니다만, 가장 좋은 답은 온도계입니다. 튀김전용솥은 온도계가 부착되어 나오는데, 그런 걸 써도 되고요. 아니면 요리를 제대로 하려면 탐침형 온도계라도 있어야 합니다. 일반 가정에서는 딮프라잉을 자주 안하기 때문에 튀김에 대한 감을 잡아서 하기는 힘듭니다. 그러니까 더더욱 온도계가 필요합니다.

 

 튀김 종류에 따라 기름 온도가 150~180는 되는 상태에서 튀김 재료를 넣어야 합니다. 너무 낮은 온도에서 튀김 재료를 넣으면 기름을 많이 흡수해버립니다. 결과적으로 너무 느끼한 튀김이 되어버리지요.

 

 만약 온도계가 없다면, 튀김 반죽을 조금 넣어서 금방 익으면서 떠오르는가로 온도를 가늠해보는 게 편한데, 이런 식으로 할 때는 발연점이 낮은 기름으로 하면 의도치 않은 발연점에 이를 수 있습니다. 정제된 해바라기씨유, 콩기름, 카놀라유는 새 기름일 경우 발연점이 220이상이니까 그나마 발연점을 피하기 용이하긴 한데, 무언가를 튀길수록 산가가 높아져서 발연점이 낮아지니까 감안해야합니다.

 

 

 

 

 

 

 

8) 어떤 허브를 쓰느냐는 제법 요리의 지역적 아이덴티티를 드러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요리에서 전천후로 사용하는 허브에는 파가 있습니다. 마늘 구근은 스파이스라 허브는 아닌데, 마늘싹이나 마늘종은 허브라 할 수 있습니다. 마늘싹을 마파두부에 넣으면 맛있습니다. 고수같은 경우 위쪽 풀 부분은 특유의 영 좋지 못한 냄새가 나는 통칭 실란트로라는 허브인데, 씨앗 부분은 통칭 코리엔더라고 대다수의 한국인들이 전혀 거부감을 못느끼는 스파이스입니다. 코리엔더는 시판 카레가루에도 거의 기본적으로 들어갑니다.

 

 부추, 경상도 말로 정구지를 많이 쓰면 우리나라 요리 중에서도 영남 요리 같아집니다. 다른 지역에서 안 먹는 건 아니지만, 영남 사람들이 좋아하고 많이 먹으니까요. 다른 나라 요리도 각 지역마다 쓰는 게 있습니다. 주관적으로 소엽(차조기/차즈기)은 우리나라에도 많지만, 잘 먹지 않으니까 소엽을 쓴 요리는 일본 요리 같다고 느낍니다.

 

 스위트 바질을 많이 쓰면 이탈리아 요리 같아집니다. 스위트 생바질을 쓰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오레가노는 나에게는 주로 남미 요리에서 접했기 때문에, 남미 요리 같은 느낌을 줍니다. 그리스 요리나 터키 요리에도 많이 쓴다는데 나는 그쪽은 잘 접해보지 못했습니다.

 

 프랑스 요리는 타라곤을 쓰면 나에게 프랜치같다는 느낌이 있는 편입니다. 거기에 타임을 더하고 스파이스로 셜롯을 쓰면 더 프랜치같아집니다. 우리나라에서 타라곤은 예전에는 아예 구하기 힘들어서 키워서 썼었는데 요새는 말린 타라곤 정도는 그래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습니다. 한국 요리는 대략 맛이 잘 안 나는 거 같으면 파와 마늘을 넣으면 되고, 이탈리아 요리는 바질을 넣으면 되고, 프랑스 요리는 타라곤을 넣으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영국 요리의 대표적인 향신료는 스피아민트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민트라도 페퍼민트와 스피아민트, 애플민트는 풍미가 꽤 다른데요. 영국 요리스러운 건 특히나 스피아민트라는 주관적인 인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9) 제조 과정을 제외하고, 일반적인 소비자가 구매해서 장기보관을 할 경우 질이 좋아지는 걸 기대할 수 있는 것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장기 숙성형 와인이고, 다른 하나는 보이차와 같은 장기 숙성형 차입니다.

 

 일단 와인을 처음 접하시는 분들이 가장 먼저 이해해야 할 게, 시판하는 와인의 90% 정도는 장기 숙성형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장기숙성형으로 분류 가능한 와인도 대부분은 병입 후 5~10년 정도 지나면 마시기 가장 좋은 시기가 되고, 그 이상 보존하게 되면 품질이 떨어지게 됩니다. 다만 가끔 장기 숙성형으로 생각되지 않는 와인이, 지나치게 오래된 와인일 걸로 의심하고 개봉했는데 너무나도 근사하게 숙성되어있는 경우도 있긴 합니다.

 

 와인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성분이 많을수록 병입 후 장기 숙성이 가능해집니다. 폴리페놀(탄닌), , 사과산/말릭산, 알콜. 본격적인 장기 숙성형 레드와인은 숙성이 되지 않았을 때 마시면 떫은 감을 먹었을 때처럼, 입안을 무두질하는 것 같은 강렬한 떫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런 와인은 전통적인 보르도 와인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는데, 근래에는 점점 생산되는 비율이 줄어들고 있고요. 당과 산 또한 장기 숙성이 가능한가에 있어 꽤 중요합니다.

 

 나는 캘리포니아의 메를로(Merlot) 와인들이 생각보다 근사하게 병숙성되는 걸 몇 번 경험해봤습니다. 그리 비싸지 않은 메를로 와인들은 장기숙성을 하기에는 폴리페놀이 부족하고 산도도 그리 높지 않습니다. 그러나 캘리포니아의 메를로는 아주 살짝 단맛이 남아있는 경우들이 있고, 알콜도수도 꽤 높은 편인데 그게 뜻밖의 장기숙성에 도움이 되곤 하는 것 같습니다.

 

 가장 오래 병숙성 가능한 와인은 도수가 20% 이상인 포티파이드 와인과 보트리티스 시네리아라는 곰팡이에 감염된 포도로 만드는 귀부와인입니다. 와인을 오래 보관할 때는 반드시 눕혀서, 온도가 많이 올라가지 않는 곳에 보관해야 합니다. 서늘한 지하실이 가장 좋습니다. 다만 마개 소재가 코르크가 아닌 경우에는 세워서 보관해도 됩니다. 코르크 마개는 젖으면 팽창하고 마르면 수축하기 때문에 세워두면 수축해서 밀폐능력이 떨어지게 됩니다.

 

 

 

 

 

 

10) 모든 건조식품은 건조가 되고 나면 미생물에 의한 발효나 효소에 의한 급격한 반응이 일어나지 않게 됩니다. 그렇지만 자연적인 산화는 일어나게 되는데, 이 자연적인 산화 때문에 건조식품도 오래 되면 본래의 맛을 잃어버리고 점차 먹을 수 없게 되는데요.

 

 차()의 경우 폴리페놀을 가지고 있고, 본래 효소로 인한 산화를 시켜 먹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장기보관에 매우 강한 편입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차는 장기보관하면 산화도가 점점 올라가는데 그게 그리 꼭 나쁘지는 않다는 겁니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녹차를 장기 보관하면 점점 홍차화된다고 정리할 수 있는데요.

 

 일반적인 묵은 녹차는 맛이 없어질 뿐입니다만, 상기하였듯 이 원리로 인해 장기보관시 맛이 좋아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유명한 차로 운남보이차가 있지요. 분류하자면 보이차 중 생차는 그냥 녹차입니다. 그런데 일반적인 녹차 품종과는 달리 야생차에 가까워서 폴리페놀 등이 많습니다. 그래서 녹차상태에서 그냥 우려먹기엔, 어린 차수의 잎으로 만든 건 (소위 관목형 밭차) 사실 어렵고요. 고지대 내륙 사람들 먹듯 한번 구워서 끓여먹거나 아니면 시간을 두고 산화시켜서 먹어야 합니다. 수십 수백 년 이상 오래 자란 재배형 (야생방목형) 교목 차수로 만든 건 상대적으로 순해서 만든 지 얼마 안 된 녹차 상태에서도 그냥도 마실 만한데, 그런 건 일반 녹차처럼 만들고 불기운이 좀 빠진 몇 개월 지난 후가 제일 맛있고, 그 다음부터는 점점 맛이 없어지다가 한참 시간이 지나면 산화된 맛이 들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인천 보관 기준 10년 정도 지나고 나면 익어서 다시 맛있게 먹을 만해집니다.

 

이 사진은 백차입니다.

 이러한 변화양상은 경험적으로 어떠한 차건 유사하게 일어납니다. 차를 장기보관하면 제다시 열건조하거나 굽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구운 풍미, 쓰고 떫은맛을 포함한 모든 맛의 요소가 일단 천천히 사라지고, 그 후 오랜 시간에 걸쳐 산화된 풍미가 생겨납니다.

 

 이 자연산화는 보관하는 장소의 평균기온과 습도 등에 의해 일어나는 속도가 달라집니다. 우리나라는 추운 편이라서, 우리나라에서 보관한 보이차는 홍콩이나 대만, 사천(스촨) 등에서 보관한 것에 비해서 산화 속도가 현저하게 느립니다. 물론 부울경남에서 보관한 차는 수도권에서 보관한 차보다는 빨리 산화될 것입니다.

 

 다만 한 가지 포인트라면 아무리 차를 오래 자연산화시켜도 카페인이 분해되거나 줄어들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카페인은 쉽게 분해되는 화합물이 아닙니다. 화학적인 디카페인 처리방법을 제외하면, 차를 마실 때 카페인 섭취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은 뜨거운 물에 차를 살짝 우려서 첫물을 버리고(세차) 마시는 방법이 있을 뿐입니다.

 

 

 

 

 

 

 

11) 흔히 보이차를 구매해서 마시면 느낄 수 있는 특유의 부정적인 풍미(그러나 소위 보이차 애호가는 좋아하기도 하는 풍미), 경험적으로는 내가 생차를 구매해서 15년을 보관했을 때는 전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 경기권의 실내에서는 그렇게 보이차가 격렬하게 산화될 일이 없단 말이지요. 소위 완전건창에서는 딱히 부정적인 풍미가 생기지 않습니다. 물론 이 이야기에서 실제 흑차계열로 봐야 하는 숙차는 논외입니다. 그리고 완전건창에서 숙성한 차라도 사람에 따라 입에 안 맞을 수는 있습니다. 실제 굳이 보면 흙냄새에 가까워지는 면이 있거든요.

 

 보이차를 포함한 모든 차의 후숙성은 온도와 습도에 따라 그 속도와 양상이 달라집니다. 너무 온도와 습도가 높으면 썩어버리지요. 그런 건 습창이라 하는데, 실제 예전에는 그런 차도 많이 나돌았습니다.

 

 근래 나도는 소위 익은보이차는 아마도 보통 홍콩이나 대만 등지의 창고에 보관했거나, 아니면 우리나라에서 보관했다 해도 식품을 보관하기에는 너무 조건이 열악한 가건물 창고 같은 데 보관되어 때때로 지나치게 높은 온도와 습도에 노출된 것일 확률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면 익는 속도는 빨라지지만 부정적인 풍미가 더 섞이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보이차에서 상한 것같은 부정적인 풍미가 난다면 대체로 진짜로 상했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런 걸 먹어도 별 문제가 없는 건 독소를 만드는 미생물이 번식하지 않았기 때문일테지요. 실제 의도적으로 미생물을 번식시키는 보이숙차나 흑차계열을 마시면 입에는 취향이 갈리지만 몸에는 별 문제가 없기도 하지요. 먹어도 몸에 별 문제없는 미생물은 많습니다.

 

 

 

 

 

 

 

 

12) 가스렌지의 화력은 화구의 생김새로 인한 변수를 제외하면, 거의 가스의 소모량 화력입니다. 어차피 모든 가스렌지는 가스가 완전연소되어야 정상작동하는 것이고, 우리가 사용하는 가스의 품질은 거의 동일합니다.

 

 가스렌지의 화력은 대략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단위로 표시됩니다. kW, Kcal/h, BTU. 그리고 시판 가스렌지는 전체 가스소비량과 화구당 가스소비량을 표시하게 되어있으므로, 소비자는 화구당 화력을 봐야 합니다.

 

 변환식은 1kW 860Kcal/h입니다. 그리고 1BTU 0.252Kcal 입니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 어떤 가스렌지 화구의 가스 소비량이 4.2kW로 표기되어 있다면, 대략 3,612Kcal/h이고 14,333.3 BTU입니다.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가정용 LNG 가스렌지의 큰 화구가 이 정도 화력입니다. 그리고 부루스타 중 특별하게 강한 화력을 가진 일부 제품의 화력도 이 정도입니다.

 

 참고로 업소용 가스렌지는 화력이 더 좋아서, 대체로 풀사이즈 화구는 5,000Kcal/h를 상회합니다. 라면은 강한 불에 끓이는 게 맛있기 때문에, 음식점에서 끓인 라면이 맛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식화구의 경우 화력이 약한 것도 10,000Kcal/h에 육박합니다. 센 건 20,000Kcal/h이상 되고요. 그러니까 일반적인 버너로는 중식 레시피를 따라 해도 맛이 달라집니다.

 

 

 

 

 

 

 

13) 비타민C를 많이 먹는 게 건강에 좋다는 말들이 있지만, 아직까지 고용량 섭취가 좋다는 근거가 없습니다. 다만 비타민C를 아예 먹지 않으면 명백하게 문제가 되지요.

 

 비타민C는 새콤한 과일에 많이 있을 것 같지만, 사실 가성비와 함유량을 고려할 때는 풋고추를 먹는 게 비타민C를 가장 많이 섭취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모든 고추 계열에 비타민C가 많이 들었으니까, 풋고추가 입에 안 맞으면 파프리카 드셔도 됩니다.

 

 시판하는 음료 중에 비타민 C를 함유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비타500이나 오로나민C처럼 비타민 드링크도 있고, 레몬워터 같이 비타민이 들어있을 것처럼 생긴 것도 있는데요. 그냥 일반적인 음료에 비타민을 넣어두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게 오란씨와 맥콜인데요. 오란씨는 종류마다 다르지만 100ml당 비타민C 40~100mg이 함유되어 있고, 맥콜은 500ml당 비타민 120mg이 함유되어 있습니다. 비타민C는 하루 권장섭취량이 100mg이상이니까 오란씨 한 캔/한 컵이나 맥콜 500ml 마시면 충족됩니다. 비타500 대신 오란씨를 마셔도 된단 말이지요.

 

 물론 비타민음료나 비타민제 먹는다고 채소와 과일 등의 섭취를 게을리하면 안됩니다. 이런저런 연구를 보면 비타민제를 많이 먹는 것보다 채소를 많이 먹는 게 압도적으로 몸에 좋거든요.

 

 차로 비타민C를 섭취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녹차나 감잎차에는 비타민C가 들어있거든요. 찻잎을 산화하거나 하면 비타민C가 쉽게 파괴되기 때문에 녹차를 마셔야 합니다. 감잎차는 호불호가 쉽게 갈릴 맛이긴 한데, 카페인도 없고 비타민C는 많아서 입에만 맞으면 즐겨 마시기 괜찮습니다.

 

 

 

 

 

 

 

14) 오븐이나 전자렌지는 클수록 활용도가 높아집니다만, 작을수록 동일 출력 대비 화력이 높아집니다. 원리상 특정 공간 안의 온도를 올리는 물건이라 그런데요. 오븐뿐만 아니라 전자렌지도 커지면 W대비 화력이 낮아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컨벡션 오븐의 일종인 바스켓형 에어프라이어의 경우 크기가 작은 대신 소모전력대비 화력이 대단히 좋습니다. 크기를 줄이고 바람은 강하게 만든 오븐이라 그런데요. 크기가 커지면 고성능 팬을 장착한 에어프라이어라도 화력이 떨어집니다.

 

 가정용 전기오븐은 사용 가능한 전력에 어느 정도 현실적인 제약이 있는 편입니다. 오븐 설치를 위해 전기공사가 필요한 스펙으로 가정용 오븐을 만들어 팔면 안되니까요.

 

 한정된 에너지로 오븐의 실질적 화력을 올리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바람을 강하게 대류시키는 것. 습도를 높이는 것. 가압하는 것. 그리고 팟(Pot)이나 팬, 스톤(Stone)을 예열해 축적된 열을 활용하는 것. 조리할 음식물을 열원에 가까이 위치시키는 것.

 

 오븐 내에서 가압조리를 하려면 뚜껑이 무겁고 손잡이까지 금속이거나 내열 소재이며 공기 구멍이 뚫려있지 않은 팟 안에 음식을 넣고 익히면 됩니다. 그러면 팟 내부에서 가열되면서 팽창하는 증기와 공기가 압력솥처럼 압력을 만들어냅니다. 이런 형태의 팟에는 대표적으로 더치오븐, 꼬꼬떼가 있습니다. 후술할 것이지만 더치오븐과 꼬꼬떼는 정확히 동일한 걸 의미하지는 않지만, 대략 같은 걸로 이해해도 무방합니다. 꼬꼬떼를 캐서롤이라고도 하는데, 캐서롤에 대해서는 언젠가 따로 이야기하겠습니다. 오븐에 들어가는 소형 가마솥이 있으면 그걸 써도 됩니다.

 

 압력솥을 오븐에 통째로 넣으면 안 됩니다. 예외 없이 금속이 아닌 부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플라스틱 손잡이라거나 고무 패킹 같은 부분이요. 차라리 더치오븐이 없다면 뚝배기를 쓰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다만 보통 뚝배기 뚜껑에는 구멍이 있으니까, 가압조리를 하고 싶다면 그건 어떻게든 막아줄 필요가 있지요. 막을 만한 게 딱히 없으면 밀가루 반죽이라도 쓰면 될 겁니다.

 

 

 

 

 

 

15) 더치오븐은 네덜란드에서 기원한 것도 아니고, 열원이 장착된 오븐도 아닙니다. 원래는 미국에서 개척자들이 사용하던 주철 냄비지요. 특징은 뚜껑에 구멍이 없고 밀폐된다는 것. 그리고 뚜껑 위쪽이 평평하다는 겁니다. 이게 더치오븐이라고 불리게 된 건 네덜란드 상인이 팔아서. 그리고 실제로 오븐처럼 썼기 때문입니다.

 

 미국 개척자들은 충분히 불을 피우고 더치오븐을 이용해 뚜껑 윗부분에도 숯 등을 올려 가열하는 방식으로 더치오븐을 진짜 오븐으로 활용했습니다. 더치오븐 하나로 빵도 굽고 고기도 굽고 수프도 끓였단 말이지요.

 

 그 유용성 때문에 더치오븐은 현대에도 꾸준히 팔리고 있으며, 캠핑용 조리도구로 인기있습니다. 물론 가정에서도 쓸만한데요. 전통적인 대형 더치오븐은 꽤 크고 무거운데다 무쇠로 되어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주부들이 다루기 편하지는 않습니다.

 

 주철 더치오븐의 단점은 아무래도 녹과 시즈닝 관리입니다. 무쇠 제품은 시즈닝이 안정화되기 전에는 녹이 정말로 잘 습니다. 시즈닝 위에도 녹이 슬 정도입니다. 주조한 무쇠는 조직이 치밀하지 않기 때문인지 시즈닝이 더 강하게 결합하기도 하는데, 물이 스며들면 녹도 쉽게 피어오르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토마토, 와인, 식초, 김치, 요거트 등이 들어가는 산성 소스가 접촉하면 시즈닝이 쉽게 파괴됩니다.

 

 그래서 법랑(에나멜)을 입힌 더치오븐이 많이 유통됩니다. 이런 더치오븐은 오븐 안에 넣어 조리하는 팟, 꼬꼬떼와 실질적으로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법랑을 입힌 더치오븐 꼬꼬떼 입니다.

 

 다만 때때로 꼬꼬떼로 쓸 수는 있지만 더치오븐으로 쓰기는 어려워보이는 걸 더치오븐이라는 이름으로 팔기도 합니다. 꼬꼬떼는 열원을 가진 오븐이 있을 때 오븐용 조리도구로 사용하는 팟이고, 더치오븐은 열원이 없을 때 직화를 통해 오븐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조리도구입니다. 그래서 꼬꼬떼는 일반적으로 더치오븐보다 사이즈가 작기도 합니다.

 

 법랑 더치오븐의 단점은 일반적인 강철압연판에 만드는 법랑과는 달리 무겁고, 주물조직의 표면이 완성도가 낮다보니 불량률도 높고 운반이나 사용 중에 법랑이 쉽게 손상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사용을 기준으로 하면 깨진 부분만 녹슬기 전에 시즈닝을 입히면 되긴 합니다만, 법랑이 깨지면 보기가 안 좋지요.

 

 

 

 

 

 

16) 더치오븐을 오븐으로 사용할 때는, 바닥에 삼발이를 깔아서 음식물을 바닥에서 띄우고 익히게 됩니다. 삼발이가 없으면 돈까스용 체망 같은 걸 써도 됩니다. 사이즈만 맞으면 됩니다.

 

 즉 솥 안에 삼발이를 깔아서 음식물을 바닥에 접촉시키지 않고, 뚜껑을 덮고 한참 동안 고화력으로 가열해 익히는 게 더치오븐의 활용법입니다.

 

 활용법 자체는 특별한 게 없어보일 수 있지만 일반적인 솥이나 냄비는 이런 식으로 사용하는 데 다소 제한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스테인리스 냄비를 태워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스테인리스는 안에 물이 없는 상태에서 가열하게 되면 변색되면서 타버립니다. 타는 거야 감수한다고 쳐도 잘못하면 뒤틀릴 수도 있고요. 스테인리스 제품은 보통 안쪽에 알루미늄 등이 들어가있는 복합소재이기 때문에 열팽창계수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고화력으로 직화해서 오븐처럼 사용하려면 법랑더치오븐은 손상될 수 있다는 것도 생각을 해야 합니다. 내부의 금속과 겉면 법랑의 열팽창계수가 많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찜솥과 더치오븐 조리법이 다른 건, 더치오븐은 보통 스팀이나 수분을 적게 사용한다는 겁니다. 찌기보다는 굽는 식으로, 더 고온으로 익히는 걸 목표로 조리할 수 있지요. 물론 수분을 충분히 활용해서 가압증기로 익히는 식의 조리도 가능합니다. 증기는 물하고는 달리 밀폐된 공간에서 가압하면서 온도를 올리면 온도가 많이 올라갑니다.

 

 

 

 

 

17) 쇠고기 스테이크를 해먹는 부위로 흔히 등심, 안심, 채끝을 꼽습니다만 그 부위만 스테이크에 적합한 것은 아닙니다. 실제 음식점에서도 많이 쓰는 부채살은 지난 번에 이야기했고요. 그밖에도 보섭살과 우둔은 스테이크로 해먹기 적합한 부위인데요.

 

 주로 육사시미나 육포로 먹는 이미지인 우둔은 실제 슈하스코(츄라스코)집에 가면 등심이라고 서빙해주는 그 부위입니다. 슈하스코집에서 등심을 드시면서 좀 의아함을 느낀 분들도 있었을거라 생각하는데요. 사실 우둔을 등심이라고 잘못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살덩이가 크고 살코기 부분에 지방질이 전혀 없고 조금 뻑뻑한 그건 우둔입니다.

 

 우둔은 육사시미로 파는 신선한 걸 블루로 먹으면 매우 맛있습니다. 스테이크를 해도 맛이 괜찮은데, 워낙 기름이 없는 부위라 헬스하는 사람들이 닭가슴살 대신 먹을 정도입니다. 기름이 좀 있는 걸 좋아하시는 분들의 입에는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보섭살은 설도의 한 부분입니다. 우둔의 아랫부분이 설도지요. 소의 엉덩이가 우둔이고, 궁둥이는 설도입니다. 보섭살은 채끝에서 이어지는 부분인데, 고급부위는 아니지만 스테이크용 부위로 손색이 없습니다. 채끝보다 지방이 더 없고 부드러운 부위기 때문에 미디엄 이하의 스테이크가 잘 어울립니다. 경험적으로 채끝 중 보섭살에 가까운 부위는 반쯤 보섭살스러운 맛이 나기도 하는데, 어쨌든 채끝이 보섭살보다 비싸기 때문에 그런 채끝을 먹으면 그냥 보섭살을 먹는 게 낫겠다 싶기도 합니다.

 

 

 

 

 

 

 

18) 안창살, 토시살은 소의 횡격막입니다. 돼지의 갈매기살에 해당하는데요. 부위 특성상 고기와 내장의 중간적인 맛을 냅니다. 염통처럼 쫄깃하면서 지방이 없고, 피맛이 꽤 나는 편이지요. 안창살보다 토시살이 좀 더 염통에 가까운 느낌입니다.

 

 이 부위들의 특징은 신선할 때 맛있다는 겁니다. 특히 안창살은 맛있지요. 내장하고 비슷한 부위라 숙성이 필요없고, 도축해서 얼마 안 되었을 때 먹는 게 맛있고, 대신 부패가 좀 빠릅니다. 부패가 일어나기 시작하면 품질이 확 떨어지고요.

 

 그래서 상태가 그저그런 안창살이나 토시살은 양념을 해서 먹게 됩니다. 양념을 해서 파는 경우도 많고요. 양념하지 않은 안창살, 토시살을 살 때는 무조건 신선한 걸 골라야 합니다. 고기 표면에 즙이 너무 올라왔다거나, 지나치게 촉촉해 보인다거나 하면 신선도가 떨어진 겁니다. 판매하는 고기에 괜히 핏물 흡수 시트를 깔아놓는 게 아닙니다. 고기 표면에 수분이 많다는 건 빠르게 부패가 진행되고 있다는 의미로 생각하면 됩니다.

 

 

 

 

 

 

19) 후추는 세 종류가 있습니다. 블랙, 화이트, 그린. 이외에 페퍼로 불리는 것들은 후추가 아닙니다. 핑크페퍼는 후추를 닮은 다른 스파이스인데, 통후추 믹스에 포함되어있는 붉은 것은 핑크페퍼입니다. 그리고 스촨페퍼라 불리는 건 초피입니다. 그 외 고추를 종류에 따라 레드 페퍼, 칠리 페퍼, 벨 페퍼(피망) 같은 식으로 부르기도 하지요.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건 흑후추입니다. 흑후추는 덜익은 후추 열매를 말려서 만듭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후추 향을 가지고 있는데, 통후추를 안 사용해보신 분들은 제대로 된 후추 향을 잘 모르고 계실 수 있습니다. 후추가루는 후추향이 많이 약해져 있는 상태거든요.

 

 흑후추는 거의 전천후 스파이스로 사용 가능하며 대부분의 한식에도 잘 어울립니다. 한식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흑후추가루와 함께했기 때문입니다. 유독 안 어울리는 음식이라면 미역국 정도 있겠네요. 그런데 진짜 비프스테이크나 라구소스(쇠고기 토마토 소스)에 사용하기엔 후추가루로는 좀 약합니다. 통후추가 필요해지지요.

 

 후추가루를 많이 쓰는 것과 향이 강한 통후추를 쓰는 건 결과물이 꽤 다릅니다. 어떤 요리에는 후추가루를 많이 사용하는 쪽이 통후추를 쓰는 것보다 어울리기도 합니다. 통 흑후추의 향은 어떤 요리에는 너무 강하기 때문입니다.

 

 흑후추 다음으로 쉽게 볼 수 있는 백후추는, 다 익은 후추 열매를 물에 불려 껍질을 벗기고 말린 겁니다. 그래서 흑후추와는 완전히 다른 스파이스입니다. 별로 맵지 않고 고급스러운 풍미를 가지고 있지만 흑후추처럼 쓰면 안 됩니다. 일단 한식에는 쓸 수 있는 용도가 제한적입니다. 서양 요리같은 풍미를 나게 하거든요.

 

 백후추 풍미가 두드러지는 음식으로 꼽을 만한 건 KFC의 오리지날 치킨입니다. KFC 오리지날의 메인 스파이스가 백후추거든요. 백후추를 좋아하는 사람은 KFC 오리지날 치킨도 좋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는 매우 좋아합니다.

 

 녹후추는 녹색 후추입니다. 영어로는 그냥 그린페퍼라고 하면 보통 청피망을 의미하고요. 그린페퍼콘(Green Peppercone)이라 해야 정확하게 통 녹후추입니다. 본래는 아마 말리지 않은 생 풋 후추열매를 의미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후추는 열대작물이다보니, 생 풋 후추열매는 열대지방 아니면 귀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접할 수 있는 녹후추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풋후추 열매를 소금과 식초로 절인 겁니다. 병조림 형태로 팝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동결건조공법을 통해 생후추 풍미를 최대한 유지시킨 채로 건조한 것입니다. 이러면 같은 풋후추 열매를 말린 것이지만, 전통적인 방식으로 말린 흑후추와는 색도 다르고 풍미도 다른 게 됩니다.

 

 건조 녹후추는 흑후추 대비 허브 같은 풍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냥 녹후추만 갈아 뿌려도 후추와 건조 허브를 같이 쓰는 것같은 효과가 있습니다. 흑후추 대비 산뜻한 풍미라고 할 수 있는데요. 강렬한 후추 풍미가 필요할 때는 흑후추, 산뜻함이 필요할 때는 녹후추가 좋은 것 같습니다.

 

 모든 통후추는 페퍼밀에 소량씩 담아 쓰는 게 좋습니다. 페퍼밀에 후추를 갈아 쓰게 되면 후추의 일부분이 먼저 분쇄되어 나오는데요. 손상된 남은 부분은 비교적 빠르게 풍미가 약화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현상을 줄이려면 페퍼밀에 후추를 소량씩 담아 쓰면 됩니다.

 

 

 

 

 

 

 

20) 백설탕은 가장 완벽한 감미료입니다. 완벽하게 안전하고 순수하고 강한 단맛을 가지고 있지요. 분말형태라 전천후로 사용 가능하고요. 물론 정제당이니까 많이 먹으면 문제가 됩니다만, 꿀 같은 건 설탕에 비해 훨씬 위험합니다. 육아해보신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첫돌을 맞이하지 못한 영아는 꿀 섭취 금지지요. 석청같은거 잘못 먹으면 성인도 죽고요.

 

 백설탕이 맛없다는 분들도 꽤 있는데, 백설탕은 아무 냄새도 다른 맛도 없이 그저 단맛밖에 없으니까 완벽한 감미료인 것입니다. 요리를 하다 보면 때때로 백설탕의 이러한 특성이 필요해집니다. 음식 색깔을 탁하거나 진하게 만들지도 않고요. 건조한 물성 덕에 제과에도 유용합니다.

 

 물론 좀 더 풍부한 설탕 풍미를 내고 싶다면 다른 설탕을 써야하지요.

 

당밀

 각설탕이나 슈가파우더 같은 제형문제를 논외로 하면 설탕에는 대략 다음과 같은 다섯 종류가 있습니다. 백설탕, 정제 황설탕, 정제 흑설탕, 비정제 황설탕, 비정제 흑설탕입니다. 다 특성이 좀 다른데요. 일단 정제설탕의 특징은 당밀을 완전히 분리했다는 겁니다. 당밀을 분리한 순수한 설탕은 백설탕이지요.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식용 가능한 순수한 당밀은 소매용으로 수입이 안 되고요. 직구로 구매할 수는 있습니다. 당밀에도 당분은 꽤 남아있기 때문에 증류주의 주원료가 되기도 하는데, 당밀로 만든 증류주가 럼입니다. 럼을 즐겨 드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설탕 향이 나지요.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럼 브랜드로는 바카디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유통되는 황설탕은 백설탕으로 만듭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백설탕을 가열해서 카라멜 풍미가 나게 만든 거지요. 황설탕을 즐겨드시는 분들은 백설탕보다 황설탕이 맛있어서 드시는 분들도 많은데요. 백설탕과는 달리 풍미가 있습니다. 대신 단점은 덩어리가 진다는 건데요. 백설탕처럼 분말 형태로 깔끔하게 유지가 잘 안 됩니다.

 

 일반적으로 시판하는 흑설탕은 황설탕처럼 백설탕을 가열하고, 아예 검은 빛깔이 나게끔 캐러멜까지 넣어 가공한 것입니다. 그래서 진득하고, 진한 흑설탕향이 납니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시판되는 흑설탕은 어디까지나 백설탕을 가공한 겁니다. 그러니까 가격도 백설탕하고 별 차이가 없고요.

 

 비정제설탕(마스코바도)은 일반 설탕보다 좀 비쌉니다. 당밀을 완전히 분리하지 않은 설탕인데요. 당밀을 전혀 분리 안한 사탕수수 원액은 가공하기가 별로 안좋아서 공정이 복잡해집니다. 그러니까 그대로 가공할수록 비싸지고요. 당밀 성분이 섞여 있기 때문에 복합성 있는 풍미입니다.

 

 비정제설탕의 경우 흑설탕은 당밀을 전혀 분리 안한거고, 황설탕은 원심분리기로 당밀을 약간 분리해낸 걸로 생각하면 됩니다. 백설탕을 만들려면 화학적인 정제공정을 거쳐야 하는데, 비정제설탕은 그런 공정을 거치지 않습니다.

 

 몸에 좋으냐 나쁘냐를 이야기한다면, 대체로 설탕은 거기서 거깁니다. 당밀에 칼슘, 칼륨, 철이 꽤 들어있긴 한데요. 비정제설탕으로 무기질 보충하려 들다가는 무기질 보충으로 얻는 이익보다 설탕을 너무 먹어서 생길 손해가 클 확률이 높습니다.

 

 물론 요리의 풍미를 위해 비정제설탕이나 당밀을 쓰는 건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비정제설탕은 꽤 복합성이 있는 풍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요리 풍미에 달콤한 풍부함을 줄 수 있지요.

 

 정제설탕과 비정제설탕의 중간형도 있습니다. 정제설탕으로 황설탕이나 흑설탕을 만드는 과정에서 당밀을 첨가하는 경우도 있고, 비정제설탕과 정제설탕으로 만든 흑설탕을 섞는 경우도 있습니다. 실사용할 때는 맛을 보고 사용하면 됩니다. 향과 맛이 어떠한가, 색은 어떠한가가 결국 요리의 결과물을 결정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