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오래 전부터 대형마트 의무휴업에 대해 반대해 왔습니다. 전국적으로 실시되고 있는 이 제도는 대단히 곤혹스럽고, 더할 나위 없이 아둔한 제도입니다.

 

 우선 실제 이 제도가 어떤 결과들을 불러왔는지 이야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가장 곤혹스러운 건 근래 세워진 신도시들의 현실입니다. 이 신도시들엔 전통시장은 물론, 전통적인 구멍가게-슈퍼마켓도 거의 없습니다. 대체로 대형마트 계열의 SSM, 대기업 계열 중형 마트가 기존의 슈퍼마켓 자리를 대신합니다. 그걸 제외하면 한국 어디에나 있는 CU등 체인 편의점들이 있고, 드문드문 대기업 계열이 아닌 중대형 마트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신도시에서도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이 되면 SSM이건 대기업 계열 슈퍼마켓이건 다 닫는다는 데 있습니다. 이러면 신도시의 마켓은 반쯤 마비가 됩니다. 편의점과 SSM같은 것보다 훨씬 큰 중대형 마트 체인, 그리고 백화점을 빼면 슈퍼마켓에서 파는 물건들을 구할 수 없게 되니까요. 이미 시장의 생태계는 바뀐 지 오래라 신도시는 기존 도심 및 택지와는 다른 상권이 생긴 게 현실인데, 법이 억지로 신도시 주민들을 못 살게 굴고 있는 겁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편의점으로 해결이 안 되면 가까운 SSM두고, 차 몰고 km단위로 떨어진 중대형 마트까지 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그런데 이 중대형 마트라는 건 도무지 소상공인이라 할 수가 없습니다. 체인형태도 많을 뿐더러 규모도 상당히 큰 게 많습니다. 객지의 소형 대형마트와 비교하면 식품코너만큼은 오히려 더 큰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농협 하나로마트 같은 경우는 대형마트인데 예외규정으로 영업할 수 있고요.

 

 더 나아가 소상공인 및 재래시장 보호와 증진이라는 명분은 현실보다는 관념이나 공상에 의한 것이 되곤 합니다. 어차피 재래시장도 이제 시장에 따라선 중대형 마트의 지분이 상당히 큽니다. 파는 품목이 비슷한데, 중대형 마트에서는 원스탑 쇼핑과 카드결제가 용이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식당 등을 하는 소규모 상인들은 코스트코 등의 특수 대형마트를 많이 이용하기도 하는데, 회원제 마트의 영업일은 물론 마트 영업시간까지 규제하면서 일부는 휴무일이나 휴무시간이 다른 이웃 도시까지 장을 보러 가거나 기타 피해를 입는 사례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대형마트 휴무 제도는 한국의 변화한 유통 및 소비 구조를 올바르게 반영하지 못합니다. 현실적으로 가구 당 인구수 및 전업주부가 줄어드는 현실에서 가공되지 않은 식재료의 소매 비중은 같이 줄어들 수밖에 없고, 이 피해는 아무래도 재래시장이 주로 받게 됩니다. 공산품 및 소규모 수요 상품 위주의 유통에서는 대형 유통 체인의 경쟁력이 높을 수밖에 없기도 합니다. 실제 대형마트에서 구할 수 있는 물건 중 통상 재래시장에서는 거의 구할 수 없는 게 정말 많습니다. 물론 그 반대도 종종 있습니다만, 젊은 핵가족이나 1인 가구의 수요를 더 잘 반영하는 건 대형마트 쪽입니다. 재래시장은 일단 판매단위가 큽니다.

 

 한국에는 어차피 오래된, 전통적인 소매점이 별로 없습니다. 할머니 때부터 이 가게를 이용해왔지.’ 같은 건 매우 드문 이야기지요. 특히 서울 및 수도권은 이런 경향이 심합니다. 유럽에야 동네마다 전통적인 소시지, , 치즈, 와인 가게 같은 게 있다지만 한국엔 그런 거 없습니다. 이 나라는 어차피 어딜 가도 거의 비슷한 걸 팝니다. 그렇다면 더 나은 체제가 기존 체제를 대체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기업도 아닌 아딸 같은 게 얼마나 대단한 여파를 만들어냈는지 보면 답은 간단합니다. 생협 같은 것도 비교적 번창하고 있고요.

 

 한편으로 실제 대형마트에는 소규모 상인들도 다수 입점해 있습니다. 대형마트에 가 보면 작은 점포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거의 개인 사업자들입니다. 푸드코트에 입점해 있는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고요. 또한 다소 번화한 거리의 대형마트는 주차장 역할도 합니다. 그런 장소에서는 현실적으로 대형마트가 닫으면 주변 상권이 다 악영향을 받습니다. 마트 쇼핑할 겸 차 몰고 나오는 사람들도 안 나오거든요. 설마 대신 이 사람들이 재래시장에 갈까요? 실제 재래시장에 차 몰고 가면 정말 많은 경우 주차지옥입니다. 잠깐만 주차해놔도 주차요금 받는 유료주차장 운영하는 경우가 대다수고, 주차 난이도 자체가 높은 곳이 많습니다. 약간의 가격 차이에도 민감한 사람들이 많은 현실에서 괜히 저렴한 재래시장이 쇠퇴하는 게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결코 재래시장에 대해 전혀 나쁜 감정이나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제가 다닌 재래시장은 대체로 친절했고 양심적이고 기타 여러 장점이 있었습니다. 다만 저는 재래시장과 대형마트, SSM등을 모두 이용하는 입장이다 보니 비교가 많이 됩니다. 사견으로는 재래시장의 문제는 재래시장의 몫이고 생활양식의 몫입니다. 대형마트를 규제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일단 양쪽은 위에도 이야기했듯 파는 물건 품목 자체가 다르기도 합니다.

 

 규제 정책은 정책 중 가장 시행하기 편한 것입니다. 그러나 무분별한 규제는 부작용이 크고, 실익은 없습니다. 저는 한국의 대형마트 의무휴무제도는 부작용만 크고 실익은 거의 없다고 판단합니다. 현실을 무시하고 관념과 공상을 앞세운 나쁜 규제는 얼른 철폐하는 게 옳습니다.

 

 

 본 사건은 이미 잘 알려져 있으므로 본문에서 딱히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아직 소식을 못들은 분들은 검색하면 바로 나오니 기사를 찾아보세요.

 

 이 사건에 대한 강성야권의 전반적 반응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체험 파시즘의 현장.’ 진짜 CCTV가 영웅이고 정의입니다. CCTV 없었으면 피해를 당한 분들은 끔찍한 사태를 모면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이 사태가 얼마나 지저분하고 사악한지에 대해서는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것입니다. 이런 비열함과 이중잣대는 그들 인성의 본질을 잘 보여줍니다. 제가 지난 세월호 특별법 관련 포스트에서 이야기했듯, 애초에 세월호 사건은 이런 식으로 확대될 일이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을 키운 장본인들이 왜 키웠을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본 사건은 도덕, 윤리, 정의, 선함의 문제입니다. 세월호 단원고 피해자 유가족 대표단과 김현 의원은 대단히 악질적인 범죄를 저질렀고, 권력을 이용해 사건을 은폐하려 했으며 깨시민들을 포함한 강성 야권 지지 세력은 또 한 번의 이중잣대 내로남불식 여론몰이를 펼쳤습니다. 가장 극단적인 인터넷 파시즘의 현장을 딱 하나만 링크합니다.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bestofbest&no=178711

 

 다행히 본 사건의 경우 피해 대리기사의 생명엔 지장이 없는 것 같지만, 만일 잘못되면 죽거나 영구적인 장애가 남을 수도 있는 게 일대 다수의 집단폭행입니다. ‘의도라는 면에서만 본다면 이 사건은 세월호 사고보다 훨씬 더 사악합니다.

 

 많은 분들이 본 사건을 통해 실망감을 느끼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 실망감은 저들의 인성과 의도를 잘못 파악한 데서 기인합니다. 생각 없이 광신적으로 한쪽편만 보고, 한쪽편만 드는 파시스트들에 대한 사회적인 주의와 경계가 필요합니다.

 


일간베스트저장소 이야기

사회 2014. 9. 7. 15:32 Posted by 해양장미

 드디어 일베충들이 양지로 나왔다고 합니다. 이건 의미가 있는 사건입니다. 그동안 일베에 대해 따로 이야기하는 걸 미루고 피해왔는데, 이제는 좀 언급해줘야 할 시각이 온 것 같습니다.

 

 어쩌다보니 본 블로그의 글 중 일부가 불펌에 의해 일베에 오르기도 하고, 본 블로그에 일베유저들도 종종 다녀가는 것 같긴 합니다만 저는 개인적으로 쭉 일베는 법적으로 통제되어야 한다.’라는 입장입니다. 일베 문제는 정치적 문제가 아니고 반사회성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 일베는 본 블로그에 집단적 공격성을 보인 사례가 있는 커뮤니티 3곳 중 한 곳이기도 합니다.

 

 온라인 내 반사회성 문제는 인터넷 초창기 대중화 과정 때부터 사회적 논의였던 문제입니다. 그 때부터 한참동안 규제가 필요하다 VS 자정될 수 있다는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였고, 사실 이 때 자정론을 내세운 쪽은 진보세력이었습니다. 국가의 월권과 폭력성에 대한 경계는 대체로 진보세력의 몫이니까요.

 

 이후 실제 한국 정부는 인터넷을 꽤 강하게 규제하기 시작했는데 - 한국은 국제적으로 인터넷 통제 국가에 해당합니다. - , 그것은 다분히 반쪽짜리여서 어느 쪽에는 과하지만 어느 쪽에는 방관이나 다름없는 상태입니다. 저는 이러한 인터넷 규제 기준 자체가 자의적이고 제멋대로인데다 국민들의 동의도 얻지 못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또한 동시에 저는 인터넷 세상에 대한 다소의 제어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기준과 정도, 방식이 문제죠. 세상은 어느 정도의 공적인 규제가 있는 게 좋은 곳입니다. 그것은 치안과 정당한 행복 추구권의 문제입니다.

 

 만약 사람들이 일베 문제를 좀 심각하게 생각했으면 그 반사회성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을 제어할 방안을 찾았어야 합니다. 그런데 가장 일베를 싫어하는 사람들 중 일부조차도 일베를 폐쇄하는 것에 반대하였습니다. 제 생각엔 그것이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일베를 정치 논리로 접근해서 그렇다고 봅니다. 그런데 일베는 그 커뮤니티가 가진 강한 정치성 때문에 본질적인 반사회성 문제가 종종 은폐되었다는 게 제 사견입니다.

 

 사실 정치적, 이념적 편향성 문제만 본다면 일베를 최악의 커뮤니티라 하긴 어렵습니다. 저는 블로그 특성 상 온라인 여론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 일정 정도 시간을 할애하고 있고, 특히 일베는 본 블로그의 자료를 인용하는 경우가 있는 편이기 때문에 그것을 보게 될 때가 있는데 저의 판단으로 일베는 정치적 편향성이 강한 편이기는 합니다만, 그 부문에서 독보적 최고는 아닙니다. 실제 노동이나 최저임금 논의에선 일베 회원 중 제법 다수가 꽤 진보적인 모습을 보이는 경우도 있는데, 그것은 일베의 주된 구성원이 저연령대저소득층인 것과 관계가 있을 겁니다.

 

 다만 일베의 반사회성 문제는 심각합니다. 일베는 한때 논의되었던 인터넷 자정론 자체를 모두의 머릿속에서 잊어버리게 할 정도의 반사회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반사회성이라는 것은 규범, 윤리, 도덕 등을 어떠한 정당성 및 대안 없이 벗어난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불량배 집단이고, 불량배 양성소입니다. 이것은 일베의 일차적인 아이덴티티입니다. 그러니까 일베회원들이 일베충 소리를 듣는 거고요.

 

 가끔 이들을 파시스트라는 식으로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일베는 파시즘과는 거리가 좀 있습니다. 실제 한국에서 파시즘에 훨씬 가까운 쪽은 현재의 야권, 특히 깨시민들 쪽입니다. 물론 일베는 전체주의 및 권위주의를 지향하는 모습을 가지고 있긴 합니다만, 그것이 파시즘은 아닙니다. 이것을 구분하려면 파시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현재 문제는 일베를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은 전무한데, 어쩌다보니 일베 같은 F급 지향 커뮤니티가 한국 온라인 사회 내에서 새누리당-여당 및 과거의 이승만 정권, 군사정권, 기타 모든 우익 전체를 어느 정도 대변하게 되었다는 데 있습니다. 원래 일베 같은 곳은 사회가 정상적으로 돌아가면 지금 정도 규모가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아니죠.

 

 그나마 최근까지 일베는 친목질을 금지하고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만큼 양지로 나서지는 않아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세월호 정국이 길어지면서 결국 일베충들이 거리로 나섰습니다. 참 아름답지 못한 사태입니다.

 

 그러게 사회적 갈등과 대립이 너무 첨예해지고 길어지면 별 일이 다 일어난다니까요. 사태를 이렇게까지 만든 새민련 비판 간단히만 하고 이야기를 전개하겠습니다.

 

 당신들 참 대단한 성과를 냈습니다.

 

 넘어가서, 일단 사태가 이렇게까지 꼬이게 만든 일등 공신은 깨시민입니다. 오죽하면 일베충은 깨시민의 사생아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있을 정도죠. 물론 깨시민도 일베충도 인정 못하는 말이긴 합니다만, 적어도 노빠 깨시민이 없었다면 현재의 거대한 일베가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노빠 깨시민들이 온 인터넷 세상을 점령하고 반대자들을 낙인찍고 내 쫓으면서 그들 중 일부가 일베로 모였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그들은 각종 커뮤니티에서 의견이 다른 사람들에게 일베충 낙인을 찍어대고 있고요.

 

 만약 일베에 위와 같은 망명자들이 지속적으로 유입되지 않았다면 일베는 그냥 반사회적 저질, 불량, 막장 중소규모 커뮤니티로 끝났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안철수 지지자들까지도 배척하는 뺄셈의 달인집단 깨시민들에 의해 엄청난 인파가 결국 일베로 향하게 된 것 같습니다. 여기에 더해 인터넷 친노 패권을 우려한 새누리당의 비호가 덧붙여지면서 - 아마도 뒤를 봐주고 거라는 의혹이 많이 나오는 게 현실이고, 저도 이에 동의합니다. - 일베는 상당한 규모로 자라났고, 결국 극단화되어 거리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제 정치적 조직화가 충분히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아마 새누리당 지지자 - 느슨한 지지자를 포함 - 70% 이상은 일베를 막상 보면 기겁할 겁니다. 일베의 저열함과 불량함은 어떠한 변론 또는 옹호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일베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일베가 사라지면 인터넷 여론은 거의 완벽에 가깝게 점령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제 그런 시절을 겪었고요. 어쩌면 일베의 저열함 자체가 일련의 정치적 기획일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저열함에 끌릴 것이고, 누군가는 저열함을 혐오하게 된 나머지 비이성적으로 타자를 배척하게 될 테니까요. 깨시민들과 도그파이트를 벌일 수 있는 집단을 발굴양성하다 보니 결국 일베가 나왔을지도 모를 일이고요.

 

 이런 일베 문제를 해결하려면 다각도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선 현 정부는 이것에 협조적일 수 없을 겁니다. 물론 정권이 바뀌면 아마 일베도 사라지겠지만, 2의 일베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일베 같은 곳이 크게 자라날 수 없는 인터넷 토질을 만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제가 지금 자정론을 다시 꺼내드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결국 보다 중립적이고 교양 있는, 그리고 재미있는 커뮤니티가 필요합니다. 이런 커뮤니티를 만드는 건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만, 최소한 깨시민들이 어딘가에서 내 쫓은 인물들이 자리 잡을 곳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게 없으면 설령 현재의 일베를 무너뜨리더라도 제2의 일베가 생깁니다.

 

 한편 더 나은, 그리고 온건한 정치 세력을 건설하고 발굴하고 일으켜 세워야 합니다. 극단화되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 극단화되고, 명백한 사회문제도 해결 및 개선이 안 되는 현실에서는 악이 추가적인 악을 불러옵니다.

 

 또 새누리당 및 그 지지자들은 좀 더 장기적으로 이미지 관리를 숙고해봐야 합니다. 일베 같은 걸 품고 가는 건 명백한 위험성이 있는 행위입니다. 좀 더 긍정적인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최소한 투트랙으로라도 더 많은 것을 해야 하는 게 현재의 새누리당 및 그 지지 세력이라 봅니다. 개인적으로 새누리당은 약점도 많고 갈 길도 먼 정당이고, 정치지형이 바뀌면 분당할 정당으로 생각하고 있기도 합니다.

 

 물론 저도 세월호 특별법에 대해서는 현재의 야권을 비판하는 입장입니다. 야당 반대자들이 그에 대한 집회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치행위는 타인을 설득하고 나와 우리의 정당성을 드러내는 과정입니다. 일베가 새누리당과 정부의 이미지를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망치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이제 글을 마무리하면서 첨언합니다. 일베는 철저히 마이너리티를 지향하는 곳입니다. 그들이 양지로 나온다고 해서 그들이 메이져를 지향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정치적으로 일베는 깨시민을 향한 소모성 돌격대이며, 결국 그 한계를 넘어설 수 없습니다. 일베가 스스로 창출하는 명분이나 가치, 설득력이 전무하기 때문입니다. 한국 인터넷 세상에서 깨시민과 일베충이 양대 세력인 것은 한국의 양당이 새누리당과 새민련인 것보다 더 비극입니다. 우리는 어디서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졌는지 찾을 필요가 있습니다.

 

 

세월호 특별법에 관하여

사회 2014. 8. 27. 20:06 Posted by 해양장미

 세월호 관련 논의를 보고 있자면 개인적으로 참 마음이 안 좋습니다. 이 사건 이후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이 사회의 온갖 병폐가 다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저로선 이 꼬여버린 사태가 어떻게든 잘 마무리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만, 이게 왜 이렇게 계속 꼬이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단 세월호 사건은 본질적으로 대중교통사고입니다. 버스나 철도, 비행기 교통사고과 그 성격이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세월호를 운영하는 과정에서의 문제나 선장 및 선원들의 자질 문제, 또 구조과정의 문제가 크고 피해자 숫자가 많은 사건이기는 합니다.

 

 이 사건이 이렇게 큰 규모로 일어나게 된 것은 복잡한 정치사회문제가 얽혀있기 때문이며, 이 문제들은 그 해결에 있어 추가적인 갈등을 만들고 추가적인 문제들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또한 이와 연관되어 숨어있던 온갖 사회문제들이 드러나고 있다 보니 참 지켜보는 입장에서도 답답합니다.

 

 현재 이 사건을 둘러싼 단체는 기소된 사람들을 빼면 대략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청와대 및 행정부

2) 새누리당 세력과 그 지지자

3) 새정치민주연합 및 그 지지자

4) 단원고 피해학생 유가족들 및 생존 단원고 학생들

5) 세월호 피해자 중 단원고 학생이 아닌 사람들의 가족들 및 생존 피해 당사자들

6)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사람들

 

 그리고 이 중 정리하자면 처음 사건이 터지고 수습이 제대로 안 되는 것까지의 주책임은 1)에 있고, 그 후 문제가 꼬일 대로 꼬이는 것의 주책임은 3)에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저는 6)입니다. 3)에 속하는 사람들은 이런 첨예한 사회적 갈등이 이 사회에 끼치는 불이익과 피해를 간과해버리는 경향이 강한데, 이는 현실 사회의 복잡성과 작동원리를 잘 모르거나 무시해서 빚어지는 문제입니다.

 

 이 사태의 문제 쟁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다른 잡음들은 다 빼지요. 어지간하면 익히 들으셨을 수사권과 기소권이 첫째 문제, 그리고 둘째 문제는 조사위원회 구성을 누가 얼마나 뽑느냐 입니다.

 

 관련 특별법이 필요하고 보상이 필요하다는 데는 청와대와 여야가 모두 동의하는 상황입니다. 박근혜대통령도 특별법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내용이 문제죠.

 

 사실 세월호 사태가 터진 이후, 새민련과 그를 지지하는 세력은 그 사건의 주책임이 정부에게 있는 양 몰아갔고 정부가 큰 잘못을 해서 구조가 안 되는 양, 침몰한 사람들이 살아있기라도 한 양 언론 플레이를 했습니다. 또한 세월호가 그리 아주 오래된 배는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권 때 선박 사용연한이 길어져서 사고가 난 양 언론 플레이한 사람들도 많지요. 법 안 바꿨어도 세월호는 여전히 운행할 수 있는 연한의 배인데 말입니다.

 

 물론 정부가 멋진 활약을 했다는 것은 정말 아닙니다. 해경은 구조를 위해 24노트로 달려와 이런저런 노력을 하고 어민들과 함께 170명 이상을 구조했으나 애초에 대응 체계가 부실했고, 미심쩍게도 녹음 기록을 조작했습니다. 또 세월호 안전 관리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배가 침몰한 이후의 각종 기관들 대처도 매끄럽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은 아예 해경을 해체해버리는 초강수를 뒀고, 유병언 일가와 세모그룹도 박살을 내버립니다. 다만 유병언은 부패한 시체밖에 못 찾긴 했지요.

 

 무책임한 언론에도 큰 문제가 있습니다. ‘전원 구조라고 먼저 발표한 것은 MBC였습니다. 또한 이후 구조 과정에서 무책임한 잡음을 낸 야권 지지 언론들을 저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런 보도들이 시민들의 정신적 충격을 더 크게 만들었습니다. 마치 정부가 일부러 구조를 제대로 안 하는 것처럼 보이게까지 만들었지요. 그렇지만 미쳤다고 정부가 그렇게 하겠습니까. 음모론자들은 기본적인 손익계산도 못합니다. 무능과 악의는 구분을 해야죠. 천안함 침몰 때도 그리 음모론을 앞세우더니 여전합니다. 하긴 취향이 그런 걸 어쩌겠습니까.

 

 새민련과 야권 지지자들의 공격은 처음부터 청와대와 새누리당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아닌 척해도 이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심지어 새민련은 5)쪽에는 전화한통 없었습니다. 이런 행위는 필연적으로 정치적 대립을 불러오고,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합니다. 애초에 문제 해결과 재발방지를 위한 생산적 노력에는 관심이 없는 정치병 환자들과 권력을 추구하는 자들, 그리고 시야가 좁고 혈기만 앞세우는 바보들이 벌여 놓은 판이라 그렇습니다. 이 과정에서 좀 진짜 책임을 져야 할 해수부는 언급조차 안 되고 있고요.

 

 사실 냉정하게 말해 아무리 털어봐야 나올 게 별로 없습니다. 해경에 비리가 좀 있겠고, 또 관리감독을 해야할 해수부 누군가 잘못을 저질러서 선박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애초에 상황에 대한 매뉴얼이 제대로 안 짜여있고 훈련도 안 되어서 구조작업도 그리 엉망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 정도는 그냥 일반수사만 해도 밝힐 수 있는 겁니다. 모자라면 이후에 특검하면 되고요.

 

 특검을 넘어 기소권 수사권 이야기를 하고 야권과 유가족이 위원회를 뽑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강경파들의 속내는 간단합니다. 이 사건에 대해 뭔가 그 이상이 있다는 음모론적 망상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털어봐야 나올 건 없습니다. 박근혜가 몸이 안 좋아서 그 날 낮잠을 자고 있었을 수도 있고, 어디서 무슨 잘못을 해서 사건 보고가 제대로 안 되었을 수도 있고, 해경이 언딘과 유착관계가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만 거기까지입니다. 세월호 사건이 잘못 수습될수록 박근혜와 새누리당에 정치적 타격이 오는 상황에서 일부러 구조를 게을리 했다는 게 말이 될 리가 없습니다. 솔직히 세월호 없었으면 6.4 지방선거도 새누리가 압승하는 결과였을 겁니다.

 

 물론 유가족이야 극단적인 생각을 해도 이상할 게 없습니다. 의사자 지정해달라고 해도, 어떤 보상을 해 달라 해도 그 주장할 권리정도는 있습니다. 솔직히 그런 일 겪고도 제정신이고 냉철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요? 주장 내용이 영 아니면 안 들어주면 그만인 것이지요. 그런데 진짜 문제는 새민련 및 그 중력권 인물들이 무슨 유가족인 것처럼 굴고 있다는 겁니다. 이 시점부터 문제는 꼬일 대로 꼬였습니다. 유가족들은 자연스레 정치판 한가운데 놓이게 되었고요.

 

 사실 애초에 수사권, 기소권 가진 위원회 이야기가 나오는 것부터가 정상이 아닙니다. 이 사건은 별로 실세 고위직을 털 일이 없는 사건입니다. 아무리 올라가도 이미 끈 떨어진 사람들이나 국장급 털 일이죠. 국장급이나 퇴임관료 터는 건 그냥 검찰수사로도 충분합니다. 해경은 통째로 해체되어서 다 끈이 떨어졌다보니 샅샅이 파헤치는 데 문제가 없습니다. 어지간한 장관급이라도 이번 사건에 나쁘게 얽혔으면 보호받기 힘들 겁니다. 이런데 특검을 넘어 전에 없던 형태의 수사위원회를 꾸린다는 건 실질적으로 대통령을 털겠다는 건데 이건 박근혜가 본 사태의 주책임자라는 정치적 공세에서 나오는 발상 이상은 될 수 없습니다. 처음에 저런 발상을 꺼낸 사람이 과연 누구일까요? 설마 유족들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처음부터 알았겠습니까? 누군가가 이 사건을 키워서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했기에 판이 이렇게 지저분해지고 커진 겁니다.

 

 이번 사태가 아니더라도 검찰의 수사권독점 문제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았습니다. 소위 경찰수사권 문제 말이지요. 그렇지만 저는 경찰이 수사권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그것이 알고 싶다류의 프로그램만 쭉 봐도 동감할 수 있는 문제일 것입니다. 경찰이 워낙 막무가내로 일처리를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검찰이 문제가 없는 조직은 아니지만 그래도 수사권을 따로 가지는 게 피해자를 줄이는 방안입니다.

 

 게다가 이 사안은 형평성 문제도 큽니다. 세상에 어디 억울한 사람이 세월호 유가족뿐인가요? 그나마 세월호는 스포트라이트라도 받고 많은 이들이 나서서 도움을 줄 만한 상황입니다. 세월호 못지않게 힘들고 억울한 상황인데 관심도 못 받고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는 사람이 세상엔 정말 많습니다. 세월호만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위원회를 따로 만드는 것은 공평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사건이 터질 때마다 이런 위원회를 만들자고 하면 절차적인 문제가 커질 뿐더러, 이 사회가 더 심한 투쟁 구도로 가게 됩니다.

 

 비교를 위해 세월호와 매우 유사한 성격을 가진 사안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지난 3월 말 있었던 소위 송파 버스 급발진 사고를 아시는지요? 이례적인 대중교통사고라는 점에서 두 사건은 성격이 같습니다. 피해자 숫자는 좀 차이가 납니다만, 보통 사람들에게 더 피부로 와 닿을 법한 위험은 버스급발진 사고 쪽이지요. 침몰하는 배에서는 어찌 탈출이라도 할 수 있는 반면 급발진 하는 차에서는 탈출할 방법도 없습니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이 사고의 사망자들은 간접적으로나마 아는 사람들입니다. 사건을 잘 모르실 분들을 위해 기사를 하나 링크합니다.

 

<송파 버스사고 운전기사, 끝까지 운전대 놓지 않았다. (링크)>

 

그런데 이 사고의 수사결론은 다음과 같은 식입니다.

 

<경찰 "송파버스 사고, 급발진 등 기계적 결함 없어" (링크)>

 

 과연 누가 이 수사결과를 납득할 수 있습니까? 일단 저는 납득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이 사고의 피해당사자로 아들을 잃은 부모도 이해 못 한다고 합니다. 억울한 걸로 치면 이 쪽이 세월호보다 더합니다. 세월호는 선박의 무리한 개조나 평형수 문제, 과적 문제 등이 이미 인정되고 있습니다만 급발진은 여러 사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진짜 예외적 위원회를 만들려면 이런 데 만들어야죠.

 

 물론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정부를 믿지 못하고, 수사권과 기소권과 위원회 임명권을 가져오고 싶어하는 심리를 이해는 합니다. 그러나 그건 헌법적 문제는 없을지 몰라도 절차적, 관행적, 규범적 문제는 빚어집니다. 피해자가 수사권과 기소권에 관여하지 못하게 되어 있는 것은 법률적 공정성을 위한 것입니다. 만약 이 사건에서 세월호 유가족이 그 뜻을 관철하게 된다면, 그것은 일종의 특혜입니다. 특혜라는 표현이 거북스럽게 느껴질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객관적으로 다른 억울한 사건의 수많은 피해자들은 그런 특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세월호만큼 스포트라이트를 못 받고, 정치적인 사건이 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본인들이 원하지 않더라도 세월호 유가족들은 이미 정치의 한복판에 들어와 있고, 여론의 힘에 의해 어느 정도의 권력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 되었으며 그 특별한 권력은 예외를 만들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법치에서 권력에 의해 하나만 예외가 되는 것은 대단히 바람직하지 못한 일입니다. 만일 현행 제도가 세월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정도로 엉망이라면, 특별법을 만들 게 아니라 제도 자체를 영구적으로 고쳐야 합니다. 이것은 세월호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억울한 사건들을 다룰 때의 기본자세입니다.

 

 저는 세월호에 흥분하고 몰입하여 특별법에 강력하게 찬성하는 사람들이 사실 대부분 이 사회의 각종 문제들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니면 양심이 없거나 철저히 정치적인 사람들이겠지요. 수많은 억울한 문제들을 익히 보고 관심을 가져온 사람들이라면 이 문제도 예외가 되기 어렵다고 생각할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번 사건은 이런 관점에서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 - 주로 새누리 지지층 - 은 야권 세력이 무슨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지 잘 압니다. 그 중엔 넓게 퍼진 시선의 오류들 - 음모론적 시각이나 해경, 청와대에 잘못을 떠넘기는 것 등 - 을 조금이나마 교정해줄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아요. 그 대신 단식중인 김영오씨를 공격하지요.

 

 야권이 세월호 특별법을 가지고 국회 업무를 마비시키는 건 정상이 아닙니다. 7월까지 통과되지 못했던 법 중에는 - 현 시점에서 통과되었는지는 확인을 못 했습니다만 - 심지어 해양 안전에 대한 법률도 있었습니다. 세월호 특별법을 가지고 그런 법률 통과를 막는 건 야당이 진짜 문제해결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겁니다. 그런 건 법안 자체에 문제가 없는 한 1초라도 빨리 통과시켜야 옳은 게 아닙니까. 세상에 복잡성에는 아무 관심도 없고, 진짜 사회 문제에도 평소부터 별 관심이 없는 깨시민들이야 두 눈 감고 귀 막고 세월호에만 올인할 수 있겠습니다만, 보통 서민만 해도 그들보다는 피부에 와 닿는 정치사회적 문제들을 더 잘 압니다.

 

 김영오씨를 공격하는 것은 도의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치공학이라는 면에 있어서는 좋은 전략입니다. 새민련 세력이 그냥 본인들이 무엇을 잘못하는지 모르는 게 정부와 새누리측에게 이익이 되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꼬인 데는 새민련과 그 강성 지지자들 책임이 상당합니다만, 본인들은 모릅니다. 보고 있는 입장에선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만약 김영오씨가 순수하다고 전제한다면, 과연 누가 김영오씨를 부추겨 사지로 몰아넣었을까요? 같이 옆에서 누군가 단식해준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이 본문을 정리하려 합니다. 김영오씨의 개인 신상을 캐내면서 공격하는 것은 품위 없는 행위입니다. 그저 제 사고방식에서 그에게 할 수 있는 말은 당신의 요구는 무리하다. 둘째 딸을 봐서라도 단식을 멈춰주셨으면 좋겠다.’ 정도입니다. 또한 동시에 세월호 특별법에 반대한다고, 야권과 그 강성 지지자 집단을 비판한다고 무조건 일베충으로 모는 파시스트들을 보고 있자면 참담한 심정입니다. 실제 미네르바 사건 때 누군가 그를 찾아가 자살하라고 권유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전 지금도 누군가는 김영오씨가 굶어 죽길 내심 기원하고 있으리라 추측합니다. 아무쪼록 별 추가적인 사고 없이 이 사건이 해결되길 기원합니다. 세월호 사건은 이미 추가적인 피해자를 다수 낳은 상황입니다.



한국의 문화적 결함과 출산율 문제

사회 2014. 8. 2. 20:31 Posted by 해양장미

 모두가 아시다시피 현재 한국의 출산율 문제는 심각합니다. 이것에 대해 여러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으나, 사람들은 이 문제의 본질을 짚어내지 못하고 해결의 실마리도 보이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일단 저는 한국이 근시일 내에 출산율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저는 파격성이 있는 본격적 이민정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앞으로 미합중국 같은 다민족다문화 사회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조선인 출신 한국인[각주:1]의 출산율 문제 또한 고려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이따금 복지청년실업같은 게 출산율 문제의 핵심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복지 및 청년실업은 사실 그렇게 나쁘거나 심각하진 않습니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나 도이칠란트, 몇몇 부유한 소국 정도만이 평균적으로 한국보다 더 나은 상황입니다. 물론 한국 내부의 문제도 심각하지 아니하다 볼 수는 없습니다만, 이것이 한국 출산율의 주된 문제라 보긴 어렵습니다.

 

 그리고 사실 모든 선진국은 예외 없이 출산율이 낮습니다. 인구수가 유지되려면 2명 사이에 2.1명은 출산을 해야 하는데, 이 수치를 달성하는 선진국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기회가 될 때마다 본 블로그에서 이야기해왔지만 선진국임에도 높은 출산율을 가진 나라는 대체로 가톨릭 국가들입니다. 가톨릭은 피임과 낙태에 부정적인 교리를 펼치기 때문에 자연스레 출산율이 높아집니다. 한국보다 복지 없고 실업률 높아도 애 훨씬 많이 낳습니다.

 

 물론 가톨릭 국가가 아닌 국가끼리 비교해도 한국은 출산율이 낮습니다. 그러나 그럴 수밖에 없지요. 한국 문화는 애 낳고 어쩌고 하기에 최악입니다. 설명을 위해 쉽게 예를 들어봅시다.

 

 이제 21살이 된 여성이 있습니다. 그녀는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이걸 보고 한국에서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리고 10대가 임신을 했습니다. 이럴 때 보고 축하해주고 지원을 해줄 한국인이 얼마나 있을까요?

 

 심지어 한국에서는 20대 중반 여성이 아이 둘 셋 낳아도 사고 쳤냐고, 심지어 기혼자라도 피임 실패했냐고 할 정도입니다. 당연히 그런 시선과 고나리[각주:2]와 쓸모없는 잔소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이런 언어와 시선의 폭력이 결국 출산율을 떨어뜨립니다. 평소에 이런 말을 하고 시선을 보낸 사람들은 이 기회에 반성 좀 하시기 바랍니다.

 

 한국처럼 아이 어머니들에게 폭력적인 말을 하고 시선을 보내는 선진국은 거의 없습니다. 가임기 여성이 아이를 낳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본인이 선택한 출산이라면 문제될 게 없습니다. 전 미성년자가 아이를 낳아도 축하와 격려, 그리고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서구 이야기를 할 필요도 없이 타이완만 봐도 10대 엄마가 학업을 병행할 수 있도록 학교 내에 육아시설이 있는 곳도 있습니다.

 

 아이를 낳는 어머니는 일단 축하와 배려의 대상입니다. 무슨 원수의 자식이라면 모를까, 그런 게 아니라면 누구도 인간의 탄생에 대해 광의의 폭력을 행사할 권리는 없습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소녀가 아이를 키우는 건 쉽지 않지만, 그렇기에 배려와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진짜 걱정이 된다면 도움을 주는 게 옳고요.

 

 한국 여성들은 시선과 언어의 폭력에서 자유롭기 대단히 어렵습니다. 집단주의 문화의 한국인들은 집단의 눈 밖에 나는 걸 두려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남성들보다는 여성들이 심리적으로 이러한 집단 문화에서 벗어나는 것을 더욱 기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한국 문화에서는 아이를 일찍 낳기만 해도 별 소리를 다 듣는 게 현실입니다. 제대로 된 도움 하나 안 주는 사람들이 말은 많지요. 물론 나이 먹어서 안 낳아도 마찬가지지만, 30대 초산이 일상화된 현실에 과연 아이 몇 명이나 낳을까요?

 

 한국이 다른 선진국보다 아이를 안 낳게 된 건 결국 문화적인 결함 문제가 큽니다. 물론 위에 언급한 이유라는 게 전부라는 건 아닙니다. 한국 젊은층은 고간섭 집단주의 인습과 문화적 진보 사이에서 혼란을 겪고 있고, IMF 이후의 장기적인 경기침체 등이 겹쳐 워낙 행복도가 낮다보니 자식에게 그런 불행을 대물림해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가득 차있기도 합니다. 사실 스스로 힘을 가지고, 불행을 이겨내고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삶을 쟁취할 때 쯤 출산을 계획한다면 이미 아이 하나 이상은 가지기 힘든 나이가 되어있는 게 일반적이기도 하지요. 또한 개인적 독립성이 낮고, 성인이 된 후에도 부모건 사회건 어른 대접을 안 해주다보니 여러 심각한 문제들이 있습니다.

 

 전 한국이 이런 문화적 결함을 단시일에 극복할 수 있다고는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항상 이민자를 많이 받아야 인구 구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심각한 문화적 결함 또한 해결해야 합니다. 저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하면 개선할 수 있을지에 대해 오래도록 많은 고민을 해왔습니다만, 뾰족한 묘안은 없습니다. 누가 한국의 고등학교에 육아방을 만들 수 있을까요? 교복 입은 아들이 아버지, 제 아들입니다.’ 라고 어느 날 갑자기 아기를 데려왔을 때 손자가 생겼다고 기뻐할 아버지가 과연 몇이나 있겠습니까?

 

 한국인 개개인이 예기치 않은, 표준의 범주에서 어긋나는 아이를 반기지 않는 이상 출산율이 늘어날 일은 별로 없습니다. 사람 자체를 귀하고 소중하게 여겨야 이 문제가 해결됩니다. 이 말은 우리가 이 문제를 단시일 내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이 앞으로도 번영하고 인구 구조를 해결하려면 일단 이민자부터 잔뜩 받고, 하나하나 사회문제를 개선하고 문화를 꽃피워 나가면서 어찌어찌 장기적으로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이민자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 인구 구조가 망가져버리면 문화를 바꾸고 사회문제를 개선하는 등 뭘 어쩔 기회조차 박탈당합니다.

 

 물론 이민 정책의 성공을 위해서는 시급히 한국을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어야하기도 합니다. 좋은 나라여야 양질의 이민자가 옵니다. 또한 이제 한국도 본격적으로 투자이민자를 받을 필요가 있을 겁니다.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선택의 기로에서, 우리는 이제 과감한 선택을 하지 않으면 예견된 몰락을 겪을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1. 소위 말하는 한민족을 뜻합니다만 이 표현이 작위적이기에 사용하지 않습니다. [본문으로]
  2. 쓸데없는 견제성 및 권력형 관리&갈굼을 표현하는 속어입니다. [본문으로]

민족주의와 식민사관 논쟁에 대한 소고

사회 2014. 6. 17. 03:51 Posted by 해양장미

 근 며칠 문창극 총리지명자의 자질에 대한 이야기로 조금 시끌시끌한 것 같습니다. 저는 이 블로그를 통해 그 논란에 본격적으로 끼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만[각주:1], 그에 대한 논란 중 식민사관 논쟁이 있어 조금 흥미를 끕니다. 저는 이 논란이 언제고 해결되어야 할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선 교학사 역사교과서 논란이 떠오릅니다. 당시 직접 블로그를 통해 밝히진 않았습니다만, 그 과정에서 제가 무엇보다도 끔찍하게 본 것은 민족주의 사관과 민족주의자들의 극우성입니다. 그에 비하면 교학사 교과서의 오류는 상대적으로나마 사소한 것으로 느껴졌고, 이후 검증을 통해 개선된 부분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생각하기에 다른 교과서들은 교학사 교과서에 비하면 충분한 검증을 통과했다고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이는 교학사 교과서가 사회적 압력으로 인하여 훨씬 엄정한 검증과정을 거쳤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역사 애호가인 친구와 교학사 교과서에 관한 사담을 나눴었는데, 그 친구는 반일감정을 저보다 강하게 가진 편이라 그런지 교학사 교과서의 문제에 대한 발언들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 제 반응은 다음과 같은 식이었습니다. ‘교학사만 문제가 아니라 다 문제죠.’

 

 사실 제가 보기엔 교학사 아닌 다른 역사교과서들 문제가 현 시점에서는 더 심합니다. 아마 역사를 좀 파본 사람이 아니라면, 제 말이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역사를 객관적으로 접근하고 알아가는 사람이라면 제 말에 일리가 있다고 여길 거라 생각합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한국의 역사 교육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잘못되어 있었습니다. 지나치게 편파적인 민족주의 사관을 가지고 주입식 교육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실질적으로 그들의 사관과 태도는 역사교육 자체를 거의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어버리기까지 합니다.

 

 사실 사람들은 고등 역사교육 다 받아봐야 왜 조선이 망했는지, 조선의 사회 양상은 어떠하였고 어떤 식으로 변했고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는지,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는 어떠하였는지, 우리가 역사 속에서 뭘 배울 수 있는지, 일제 땐 실제로 어떤 일들이 벌어졌고 대한민국 건국 과정은 실제로 어떠하였는지... 전혀 감도 못 잡는 경우가 일상다반사입니다. 커리큘럼 전체가 잘못되어있고 왜곡되어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역사 공교육은 거의 쓸데없는 거나 반복해 외우게 시킵니다. 그러니 학생들은 역사 과목을 싫어하고, 역사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합니다. 오직 우리 민족은 위대해!’ ‘고난을 슬기롭게 이겨냈어!’ 같은 거나 배우죠. 물론 이런 건 지식도 지혜도 아닙니다. 세뇌죠. 현실적으로 좋은 교사를 만나지 않는 한 거의 아무 것도 못 배운다고 봐야합니다.[각주:2]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자신이 배운 걸 의심하기보다는 신뢰합니다. 그게 윤리적이라 느껴질수록, 권위를 확보하고 있을수록 더 그렇습니다. 이것은 어느 정도는 인간의 본능이고, 어느 정도는 문화적인 현상입니다. 형성된 믿음을 깨고 무엇이 진짜 사실인지를 알아가는 건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이런 사태가 일어난 주 원인은 민족주의입니다. 민족이라는 근대적인 개념은 이것이 우리에게 이식된 이후, 거의 모든 역사 관념에 개입하여 뒤헝클어놨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것에 대해 조금 간략하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민족은 Nation 또는 Volk의 역어입니다. 같은 단어가 국민으로 번역되기도 합니다. 물론 유럽어의 번역어인 만큼 매우 근대적인 개념입니다. 쉽게 이야기해 조선에는 민족 개념이 없었습니다. 조선 이전에도 그렇고요.

 

 민족주의 개념이 짙은 사람에게는 이런 설명이 이해가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왕이 있는 사회엔 본래 민족개념이 없습니다. 왕 아래 신민들이 있을 뿐입니다. 게다가 조선은 단일 민족도 아니었습니다. 일단 개국공신 퉁두란이 여진족이었던 건 대체로 아실 겁니다. 조선 초기 퉁두란 뿐 아니라 여진족이 조선에 많이 들어왔습니다. 물론 여진족만 들어왔던 건 아니고요. 초기 조선은 무려 이민자 대접이 좋은 나라로 소문나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조선 말기에도 크게 변하지 않습니다. 동학농민운동 때 조선 정부는 외세를 끌어들여 농민군을 말살시켰습니다. 이는 민족주의가 없는 사회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실제 한일합방 당시 양반들은 조선의 멸망보다 신분제의 폐지에 훨씬 강한 반감을 드러내기도 하였었습니다.

 

 민족 개념은 근대적 공화국의 국민개념을 위해 창작되었습니다. 사람은 본래 그리 많은 수의 집단이 어떠한 일체감을 가지게끔 되어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민족이라는 개념이 도입되면서 민족 근대국가가 형성됩니다. 근대적 공교육은 민족 개념을 강화하였고, 그것은 어떤 부분에서는 긍정적인 효과를 보기도 했으나 부정적인 면도 많았습니다. 그 중 가장 심각했던 걸 하나만 꼽자면 파시즘입니다. 파시즘은 어디까지나 철저히 근대적인 현상입니다.

 

 인간의 의식은 본래 나와 가족부터 근처의 부족까지 확장됩니다. 오래 전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그리 많은 수의 타인에 대해 알 일이 없었습니다. 우리의 자연적인 인식 방식은 아직 이 시기에서 크게 벗어난 것이 아닙니다. 사실 한 인간이 수천만 명, 심지어 수억 명 이상을 같은 '민족'으로 인식하게 되는 건 어디까지나 상상의 문제입니다. 저는 비신론자라서, 비신론 입장에서 비유하자면 민족은 일종의 종교와 같은 것입니다.

 

 민족주의는 대한민국 건국 이후 국가주의적인 색채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하였습니다. 그리고 조선의 멸망과 일제의 지배라는 굴욕적 역사를 부정하기 위한 여러 노력이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역사 인식은 왜곡되었고, 과거의 문제점을 성찰하는 태도는 빠르게 사라졌습니다. 또한 민족주의는 신생 국가 대한민국의 아이덴티티를 긍정적으로 확립하는 데 나쁜 영향을 주었는데, 이 관점에서 볼 때 분단국가인 대한민국 건국은 하나의 민족국가를 설립하지 못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럼 논의 전개를 위해 잠시 문창극 총리지명자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제가 보기엔 그 역시 교회에서 했던 발언 전반을 보면 민족주의적인 색채를 다분히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발언에서 우리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시련 등등을 이야기하고 있지요. 그가 말하는 주제는 한민족이 하나님에게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뜻입니다.

 

 다만 논란이 되는 부분은 소위 식민사관 문제인 것 같은데, 제가 보기엔 민족주의자들이 극우적인공격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안타깝게도 이 사회에서는 글로벌 기준에서 극우파들이 [진보좌파] 타이틀을 달고 있어요. 이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혼란을 가져다주고 있습니다.

 

 제 말은 문창극의 발언이 충분히 타당하다거나 합당한 이야기라는 게 아닙니다. 다만 교회 내의 언어라는 게 본래 그다지 논리적이지는 않다고 생각하고, 그의 이야기 주제는 하나님의 시련이었다고 판단합니다. 그가 총리로 적합한가에 대해서는 저 역시 정말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민족주의적으로 민감하게 구는 건 그의 자질 문제보다도 더 큰 사회문제일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럼 소위 식민지 근대화론(식근론)에 대해 간단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일단 조선 말기는 국가 자체가 제대로 유지되지 않던 상황이었고, 근대성과는 거리가 상당히 멀었던 게 사실입니다. 약간의 개인적인 가치판단을 첨부한다면, 그런 국가는 국가로서의 존속가치가 없습니다. 이는 현재의 북조선이 국가로서의 존속가치가 없는 말과 유사합니다.

 

 그리고 냉정하게 이야기해서 당시의 조선은 국가를 유지할 만한 역량을 유지하고 있지 못했습니다. 즉 어떤 열강에라도 정복되기 대단히 쉬운 상황이었으며, 아마도 일본이 점령하지 않았다면 다른 열강에 의해 점령되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조선의 지배층이 너무나도 오랜 기간 동안 많은 잘못을 했기 때문이며, 저는 현대 한국인들이 역사에서 이런 문제들을 배우고 같은 문제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짜 역사의 가치라면 이런 데 있을 겁니다.

 

 그러나 민자영을 명성황후라고 안 불러준다고 뭐라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게 현실입니다.[각주:3] 갈 길이 너무 멀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알고 보면 식근론보다는 내가 조선의 국모다!’론 같은 게 진짜 문제입니다. 극단적인 민족주의와 과거미화는 결국 파시즘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 일제가 한반도 근대화에 도움이 된 것 자체는 절대적으로 참입니다. 일제는 조선을 단기적 착취대상인 식민지로 삼으려 한 게 아닙니다. 그들은 일본 제국 내에 한반도를 포함시킬 계획으로, 장기적인 접근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 결과 을사조약 이후, 태평양전쟁 전까지 한반도 민중의 생활수준은 크게 향상됩니다. 이는 많은 데이터들에 의해 쉽게 증명됩니다. 그래도 일제가 잘못을 많이 하지 않았느냐고 묻는다면, 태평양 전쟁 시기를 제외한다면 조선의 지배층들이 일제 이상으로 잘못했었다고 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민중의 입장[각주:4]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국가의 이름이 무엇이냐, 지배층이 어떤 왕조냐가 아닙니다. 특히 진보적이고 자유주의적인 관점일수록 민중 자체의 삶을 중요한 기준으로 다뤄야 합니다.

 

 국가, , 정통성, 충성... 이런 걸 중시하는 것은 대조적으로 보수주의적이며 집단주의적인 관점입니다. 그렇기에 이런 것을 중시하는 민족주의는 본질적으로 보수주의적이면서 집단주의적인 극우파의 자세입니다.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민중의 삶은 국가의 정통성에 비해서는 별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각각의 행복 추구권, 개성, 인권... 이런 건 상대적으로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한국에서는 소위 진보세력이 극우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어서 참으로 문제입니다. 이 사회엔 진짜 진보가 필요합니다.

 

 역사적 문제가 이렇게까지 심각해진 데는 나름대로의 역사적이유가 있기도 합니다. 1980년 무렵까지 한국 사학계는 조선 이후의 근현대사 자체를 다루지 않았다고 알고 있습니다. 아마도 많은 갈등 요인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80년대에 들어 사학계 일부는 현대사 연구를 시도했습니다만, 전두환이 그것을 불온하다하여 막았습니다.

 

 물론 우리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한 냉정한 성찰 자체를 불온하게 여기는 것은 한국-일본에서 쉽게 발견 가능한, 매우 심각한 문화적 결함입니다. 이런 문화적 결함은 좌우파를 가리지 않습니다.[각주:5] 그러나 일부 성찰을 시도한 집단이 있고, 그들은 현재 한국 사회의 파벌 중에는 소위 보수에 주로 붙어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진보가 아닌 보수성찰을 더 한다는 것은 그 단어 자체가 어울리지 않습니다. 이런 현실은 많은 대중에게 인식의 오류를 불러일으키기 쉽기도 합니다.

 

 사학계의 실증적 연구가 권위주의적 억압에 가로막혀 있는 사이, 그 빈자리를 차지한 것은 소위 재야학계와 운동권이었습니다. 이들은 풍부한 상상력을 가지고 있었고, 적잖은 거짓말을 섞어가면서 인기를 끌게 됩니다.[각주:6] 그리고 이 영향은 실제 사학계 또는 역사교육학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퍼져 나갔습니다. 진실이 감춰진 사이, 수많은 오류들이 역사교육을 지배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사관의 문제이기에 현대사가 아닌, 우리가 역사를 보는 관점 전반에 영향을 주게 됩니다.

 

 민족주의자들은 역사를 논하고 가르치는 데 있어 수많은 진실을 식민사학으로 낙인찍고, 자신들의 주장과 아집을 듬뿍 집어넣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에 날개를 답니다. 한편으로 1992년 우루과이라운드 이후 유행하였던 배일호의 신토불이열풍과 줄곧 유행하던 민족주의적인 각종 문예, 드라마, 다큐멘터리. 그리고 2002년 월드컵의 성공 등이 민족의식을 강화시켜갔었습니다.

 

 이것과 연관된 수많은 문제를 단순화시켜 논하는 것은 사실 너무나도 힘든 일입니다. 이야기할 문제 자체가 너무 많은데다 자료도 충분히 정리되어 있지 않아 하나하나 찾아야 하는 것 역시 많고, 이 사회의 한 지배적인 패러다임에 대항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미숙하게나마 이에 반대하는 움직임도 있고, 그 움직임을 주도하는 세력도 있습니다.

 

 그럼 이제 뉴라이트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별로 이미지가 좋지 못한 뉴라이트를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는, 그나마 그 집단이 민족주의 사관에 대항하고 있는 가장 메이져한 그룹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미숙함과 각종 문제에도 불구하고, 저는 뉴라이트가 이 사회에 끼치는 긍정적인 영향들이 있다고 판단합니다. 물론 이것을 제가 그들을 좋아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주지 않기를 바랍니다.

 

 한국의 뉴라이트는 많은 부분 87 민주화 이후 동구권의 몰락을 본 이들의 변화에 기원합니다. 이들의 주류는 대체로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던 사람들입니다. 그 당시 민주화에 앞장서던 사람들 중 사회주의에 심취하던 사람들이 많았으나, 공산권의 몰락이 이들에게 진실을 깨닫게 한 것입니다.

 

 저는 이들의 태도는 그래도 진보적이라 평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진보라는 것은 자신이 옳다고 믿던 것을 의심하고 고쳐나갈 수 있는 태도, 그리고 나쁜 구습을 바꿔나갈 수 있는 추진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적어도 기존 사상보다는 훨씬 쓸 만한 사상을 발견했습니다. 비록 그들이 가진 새로운 사상에 문제와 미숙함이 없는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만, 적어도 그들은 민족주의에 대항할 만한 사상을 확보하고 힘을 모으게 됩니다.

 

 뉴라이트와 민족주의 계열이 벌여온 충돌을 서술하는 것은 너무 힘들고 많은 노동력이 필요한 일이라 일단 본문에서는 많은 부분을 생략하고 넘어가려 합니다. 또한 뉴라이트에 대한 비판은 이미 사회에 넘칠 정도라 제가 보탤 게 별로 없을 정도입니다. 다만 저는 너무나도 민족주의적인 평범한사람들이 뉴라이트를 손쉽게 으로 낙인찍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명해야겠습니다. 그런 태도는 극우적이고 다분히 파시스틱한 태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파악하기에, 역사왜곡은 양쪽 모두에서 자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양쪽 중 민족주의 계열이 압도적으로 강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균형과 견제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역사인식 문제에 있어 아직 균형은 멀었다고 생각합니다.

 

 민족주의자들은 진짜 식민사관을 가진 것과, 조선 말기의 문제 및 무능 및 당시의 세계사적 현상 등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제대로 구분하지 않습니다. 식민사관은 그러므로 일본은 조선을 지배해야 한다.’라는 주장이 핵심입니다. 대조적으로 객관적인 사관은 당시의 조선은 이러저러한 문제가 많았고, 이러저러해서 일본에 지배당하게 되었으며 일제 당시엔 어떠어떠하였다.’라고 진실을 파악하는 데 주력합니다.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만, 역사란 역사적 사실에서 배울 게 있기에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이야기를 소위 사회주의적 민족주의 - 민중사관에 대한 비판으로 연장해가고 싶습니다. 한국의 민족주의는 정말 광범위한 영역에 부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그러나 그러기엔 이 본문이 너무 길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이것에 대한 내용과 비판은 다음 기회로 미뤄야할 것 같습니다.

 

 우선적으로 본문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민족주의적이지 않은 태도식민사관으로 이분화 시켜, 이것을 양극단의 진영 논리적 정치 갈등으로 발전시키는 일련의 흐름. 그리고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원인에 대한 우려입니다. 물론 현재 이 사태 자체에는 박근혜 대통령과 현 정부도 적잖은 책임이 있으나, 저는 이 사태 이면에 있는 만성적인 민족주의 담론 문제를 주로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1. 사실, ‘설마 그런 사람이 통과되겠느냐’ 정도로 좀 편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본문으로]
  2. 사담을 첨부하자면, 지인 중 공무원 시험에 좀 뒤늦게 도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국사를 싫어하다보니 국사 과목에 많은 부담감을 느끼고 있는데, 저는 민족주의자들이 의도적으로 중대한 역사적 사건들을 주요 커리큘럼에서 누락시키고 역사를 흥미로운 흐름으로 파악하지 못하게끔 만든다고 대기근과 소중화사상 등 몇몇 예시를 들어 설명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뭉뚱그려 설명하자면, 민족주의 사관은 비판적인 시각을 최대한 빼고 가능한 한 긍정적인 민족사를 ‘만들어’ 가르치려다보니 역사의 흐름을 설명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으로]
  3. 통상적으로는 민자영이 어떤 인물이었는지 잘 모르는 사람일수록 ‘명성황후’라고 챙겨 불러줍니다. 알수록 싫어할만한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민자영을 명성황후라 부르는 게 별 문제 있는 건 아니지만, 그럴 거면 고종도 광무황제로, 흥선대원군도 헌의대원왕으로 챙겨 불러줘야 형평성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본문으로]
  4. 이 말을 ‘민중사학’과 혼동할까봐 조금 우려가 됩니다. 한국에서 민중사학은 민족주의 사학의 한 계열로,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사회주의적 색채의 민족주의 사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제가 이야기하는 관점과는 적잖은 거리가 있습니다. 본문의 주제에 대해 좀 더 심도 있는 접근을 하려면 민중사학에 대한 자세한 조명이 필요하겠으나 분량 등의 문제로 줄입니다. [본문으로]
  5. 제 개인적으로는 소위 진보좌파가 이런 문화적 결함을 더욱 강하게 가지고 있다고 느낍니다. 이는 경험적인 이야기입니다. [본문으로]
  6. 이 가장 극단적이고도 유명한 사례가 환단고기입니다. [본문으로]

결국 잠수부 중 사망자가 나왔다.

사회 2014. 5. 6. 11:26 Posted by 해양장미

 세월호 관련해서는 추가 사망자가 안 나오길 바랐었는데, 결국 나왔다. 물론 나올 만 했고. 일단 관련 기사부터 링크.

 

http://news.naver.com/main/ranking/read.nhn?mid=etc&sid1=111&rankingType=popular_day&oid=003&aid=0005829016&date=20140506&type=1&rankingSeq=1&rankingSectionId=102

 

 

 저 쪽 현장은 사실 잠수부 기준에선 애초에 들어가선 안 되는 곳이나 다름없다. 이성적으로만 보자면 안에 생존자가 있을 확률은 처음부터 거의 없었고, 무리하게 작업하면 추가 사망자가 발생할 확률이 다분하였다. 그런데 계속 무리한 작업이 있더라. 사람들은 안전을 이야기하면서도 계속 잠수부들의 안전을 도외시하는 이중성을 보였다.

 

 그리고 그 결과 추가 사망자가 발생했다. 나올 만한 결과가 나온 것이지만 참 안타깝다. 천안함 때도 이미 겪은 일인데, 또 반복되었다. 한숨이 나온다.

 

 난 이 사건에서 소위 까기 위해온갖 노력을 다 하던 오지라퍼들이 얼마나 잠수부들의 안전을 도외시하는 발언을 많이 했는지 잘 보았다. 물론 그들은 자신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를 것이다. 항상 말하지만 사건 사고에 있어 지나치게 감정적인 건 정말 많은 경우에 도움이 안 된다. 이건 가족 일이건 어떤 관계건 마찬가지다.

 

 예를 하나만 들어보자. 해경이 민간 잠수부들이 들어가는 걸 막았다고 뭐라 하는 사람들을 정말 많이 보았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다 들어가려 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걸 알아도 그 때는 뭐라 이야기하기가 어려웠다. 이젠 이야기를 안 해도 그 때 누군가 통제하지 않았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다이빙벨 논란에 대한 짧은 이야기

사회 2014. 5. 1. 16:48 Posted by 해양장미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야 이해 못할 건 아니지만, 다이빙벨 무조건 내려 보내야 한다면서 다이빙벨에 회의적인 사람들에게 적잖은 공격성을 보였던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일단 또 먼저 이야기하자면 그들의 공격성은 이 사회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본인의 공격성을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남을 해칠 사람들이고 이미 많은 해악을 끼쳐왔다. 물론 그들은 항상 그래왔듯 또 정신승리를 시전하고 딴소리를 할 것이다.

 

 다이빙벨이 실패했다고 하니 이것에 대해 이야기를 해도 되겠다. 결론이 나기 전엔 말하기도 어려운 분위기를 조성한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발언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와 정말 거리가 먼 파시스트들이다. 이들이 특정 정치 세력을 지지한다는 걸 염두에 항상 둬야 한다. 물론 이번에도 이들은 현 정부를 공격하는 것을 우선시했다. 혐오스러운 정치병 환자들이 너무 많이 보인다

 

 사실 원리상 다이빙벨은 저 현장에 별로 크게 도움 될 일이 없었다. 잠수부가 작업하는 효율을 조금 높여줄 수는 있는데, 그것도 한도가 분명하고 현장엔 워낙 잠수부가 많았기 때문에 다이빙벨이 큰 역할을 할 만한 상황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한 다이빙벨의 실효성 또한 그리 대단하리라 기대하기 어렵다. 일단 체온 때문에 한 잠수부가 물에 젖는 잠수복을 입고 구조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지극히 제한된다. 다이빙벨이 잠수부의 체온문제를 해결해준다는 주장이 있었는데, 난 그걸 보자마자 거짓말이라고 판단하였다. 물속에서 체온과 수압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이빙벨이 할 수 있는 건 지극히 제한적이고, 그것을 내리기 위한 각종 코스트를 감안해볼 때 크게 이익이라 보기 어려웠다.

 

 해경이나 언딘 편을 들 생각은 전혀 없지만 다이빙벨을 쓰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면서, 그것에 대해 회의적인 사람들을 공격한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을 것이다. 원래 그들은 남은 공격하지만, 본인들은 아무런 책임도 안 져 왔고 이번에도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이종인은 계속 말을 바꿨고, 신뢰하기 어려운 모습을 보였음에도 맹신적으로 그를 추종하는 자들 또한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러한 자기반성이 없는 이들은 한둘이 아니고, 그들이 이 사회에 어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물론 이제 와서 말을 바꾸고 뻔뻔하게 구는 모습도 정말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당연히 새삼스럽지도 않다. 그들은 원래 항상 그랬으니까. 그들은 세월호 사건에 대해 뭐라 할 자격이 없다. 소 잃고도 외양간 못 고치는 패턴이 이런 거라서.

 

 

세월호 참사 관련 이야기

사회 2014. 4. 30. 20:29 Posted by 해양장미

 사건이 터진 이후, 돌아가는 걸 지켜봐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역시나 이 사고는 이 사회의 많은 문제점들을 드러내주는 것 같다. 일부러 좀 뒤늦게 몇 가지 이야기를 하자면.

 

 

1) 난 세월호의 선장이 유영철보다 더한 학살을 저질렀다고 생각한다. 그는 그에 어울리는 죄값을 치러야한다. 언제 어디서나, 어떤 이유에서건 사고는 일어날 수 있다. 그래서 선박에서는 선장의 책임이 막중한 것이다. 그는 선장의 자격이 전혀 없었다. 차라리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면 훨씬 많은 사람들이 살았을 것이다.


 

2) 배가 크게 기운 시점에서 무조건 갑판으로 나와야 한다는 건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기준에서는 상식이다. 침몰하는 선박의 선실 안에 있으면 살 가능성이 거의 없다. 이는 수많은 사고에서 증명되었고, 영화 타이타닉만 봤어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선실 안에 얌전히 있으라는 방송은 고의적인 학살이 아닌가 싶은 수준이지만, 그 말을 듣고 배 안에 남았던 사람들 또한 그릇된 지시를 수용했다는 점에서 안타까운 오판을 한 것이다.

 

 유사시 누군가가 나의 안전을 온전히 책임져주지 않는다. 일상 속에서 그러한 상황에 처할 일은 드물지만, 그렇더라도 재난에서 빠져 나오는 것에 대한 숙지가 필요하다. 나는 이 사회가 그런 것이 지극히 부족하기에 과도하게 많은 희생자가 나왔다고 느낀다. 학생들은 어려서 잘 모른다 쳐도 교사들은 보다 나은 지시를 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대한 교육과정이 따로 필요할지도 모른다.

 


3) 냉정하게 이야기해서 세월호가 가라앉은 시점에서 안에 있던 사람들은 생존 가능성이 별로 없었다. 그 이후 벌어진 온갖 답답하고 불쾌한 상황과 사건들에도 불구하고, 추가적인 희생자가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정말 안타깝지만 대부분의 구조 작업은 현실적인 효용성을 가진 게 아니다. 크레인 또한 마찬가지로 보여주기 이상의 의미는 거의 없다. 선박의 인양은 쉬운 게 아니고, 구조는 실제로는 시신을 꺼내는 작업이나 다름없다. 잠수에 대해 쉽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설령 잔잔한 바다라도 일정 수심 이하에 들어갔다 나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하물며 저 곳은 목숨이 순식간에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곳이라 봐야 한다.


 

4) 나는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에게 적잖은 혐오감을 느낀다. 정부의 미흡한 대처에 대해 실망을 한다거나, 다른 방식이 더 좋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는 물론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현 정권에 반대하는 입장을 가진 사람들의 반응은 그와는 많이 다르다. 참사를 이용해 증오심을 충족하려 드는 모습이 타인들에게 어떻게 보일지를 그들이 알 수 있을까.


 

5) 박근혜정부는 여러 기관간의 의견을 조율하는 것이나 순발력 같은 데서 계속 약점을 보여 왔다. 이번 사건에서는 그것이 잘 드러났고, 예상할 수 있었던 각종 전통적인 문제들 또한 드러났다. 사진을 연출한다거나 구조를 제대로 하고 있다고 언플을 하는 것은 드문 일도 아니지만, 유가족을 비롯해 많은 이들을 실망시키기엔 충분한 사건들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건 그나마 사소한 문제같다.


 

6) 역시나 깨시민들은 노무현때 만들어진 재난 대비 매뉴얼이라거나, 이명박 때 20년에서 30년으로 늘어난 선박 연식 제한 문제 등을 이야기하면서 게거품을 물고 있는데 혐오스러운 정치병도 정도껏 하면 좋겠다. 이것에 대해 야권 지지하는 친구한테 설명을 하느라 좀 애를 먹었는데, 선박 수령의 제한은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다. 선박은 본래 차량에 비해 더 많은 메인터넌스가 필요하고, 수령이 늘어나면 그 메인터넌스에 더 많은 지출을 해야할 뿐 수령 자체가 주된 문제는 아니다. 이 사건의 진짜 문제는 선박개조에 관련된 규정과 관리 시스템, 그리고 누가 봐도 수상하고 문제투성이인 해운회사의 안전불감증 같은 것이다. 이 때가 기회라는 듯 공격성과 증오심을 드러내는 사람들에 대한 주의가 필요하다.


 

7) 세월호 사건으로 300명이 죽었다. 슬프고 안타깝다. 그러나 이 나라에선 한 해에 14000명이 자살한다. 하루에 자살로 죽는 사람이 40명에 육박한다는 뜻이다. 시도했지만 실패하는 사람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일주일마다 세월호 희생자에 육박하는 수가 자살한다. 그리고 이러한 자살들의 가장 주요한 원인은 재정난이다. 가난은 현대 사회에서 그 무엇보다도 쉽게 사람을 죽인다.

 

 난 세월호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면서 공격성을 보이는 사람들이, 평소에 사람 적잖게 죽일 소리를 쉽게 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세월호 사건 자체만으로도 안타까운데 참 못 볼 꼴 많이 본다는 기분이다. 과도한 적대와 증오는 결코 이 사회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지 못한다. 물론 그들은 자신들과 다른 유형의, 보다 보편적인 사람들에 대한 공감능력이 정말 바닥 수준이기도 하다.

 

 

8) 기자들에 대해선 아무런 할 말이 없다. 말할 가치도 없다. 살면서 카메라랑 마이크 든 사람들은 가급적 피하는 게 상책이다.

 

 

9) 난 이 사회가 상실감과 우울에 좀 길게 빠져 있는 것 같다. 이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슬프고 안타까운 일은 언제나 우리들 곁에서 일어난다. 이번엔 그것이 좀 더 큰 규모로 한 번에 일어났고, 그래서 잘 보일 뿐이다.

 

 한편으로 모든 것에는 대가가 따른다. 안전이란 대가가 따르는 것이며, 더 안전한 것은 더 비싸고 더 오래 걸리는 것이다. 나는 이런 사건에도 불구하고, 보편적인 한국 사람들이 안전을 위해 두드러지게 더 많은 대가를 지불할 것 같지는 않다.

 

 부수적인 사건이지만 이번 사건 이후 광역버스의 입석을 금지시키는 어이없는 사건이 벌어졌었다. 나는 그러한 것에는 냉소를 보낼 수밖에 없다. 광역버스에서 입석을 없애려면 광역버스 요금이 어디까지 오를까? 사람들은 그런 요금을 수용하기 어려울 것이다.

 

 

 노무현 때 친일 청산을 하려고 했던 걸 기억하시는 분들 많을 거다. 그런데 그 때 그게 왜 실패했는지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그 이유는 간단했는데, 파보니까 열린우리당에도 친일 걸리는 사람 엄청 많았거든. 그러니까 불면증 환자들이 맨날 소리 높여서 새누리당보고 친일 정당이니 뭐니 해도 씨알도 안 통하는 거다.


 이게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일제시대는 40년에 육박했고 그 이전의 난장판이었던 조선 말기부터 치면 더 길었고 사실 멍멍이 막장이었던 조선 말기보단 사람 살기 훨씬 나은 시대였다. 일제가 제대로 맛 간 태평양전쟁 발발 이후는 제외.


 사실 어느 시대에나 사람은 더 잘살기 위해 노력하는 게 당연한 거다. 망해버린 옛 나라 붙잡고 그거 살리겠다고 가족 버리고 뛰는 사람은 소수일 수밖에 없다. 그런 사람들이 가치가 없다는 게 아니고, 그게 일반적인 선택일 수는 없다는 거다. 사람 있고 국가 있지, 국가 있고 사람 있나. 민족과 국가를 우선하는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극우일 수밖에 없는데, 이런 극우적 관점을 옛날에 학교에서 많이 가르쳐서 무분별하게 수용한 후, 그런 관점이 옳다고 생각하는 멍청이들이 너무 많아서 문제다. 사실 자기 스스로 ‘나 수꼴’ 이러고 그러면 그나마 나은데, ‘나 진보’ <- 이러면서 그러진 말자고.


 불면증 환자들이 ‘사람이 먼저다’라고 말하는 것은 철저한 거짓말이지만, 말 자체는 맞다. 자연인이 군주보다도 국가보다도 민족보다도 먼저다. 이것은 민주주의의 근본이 되는 사상이다. 그럼 이 관점에서 제일 먼저 반성하고 돌아봐야 할 게 뭘까?


 이 면에서 내 주장은 간단하다. 조선말과 같은 어이없는 상황이 왜 왔는지를 성찰하고, 다시는 그러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역사교육은 ‘일본놈 나쁜놈’ 같은 거나 가르치지, 조선 말기가 왜 그리 엉망이 되었는지는 제대로 안 가르친다. 그러니까 우리 역사교육이 쉬운 말로 글러먹은 거다. 왜 조선이 전쟁 한 번 제대로 못하고 무너졌는지를 알아야 한다. 근데 현실은 민자영을 명성황후라 안 칭해준다고 발끈하는 애들 천지니, 국사 과목은 도대체 뭐 하러 있는 건지.


 지금도 나라 팔아먹질 못해 안달인 족속들 참 많다. 이 블로그에서 여러 번 이야기했다. 근데 자칭 진보들이 그러고, 불면증 환자들은 그엔 관심도 없잖은가. 빨리 정신 차려야 한다. 100년 전 매국보단 현재의 매국이 더 중요한 게 아니겠는가.


 이것에 대한 이야기는 지난 포스트, ‘허울 좋은 경제민주화 사기극 (링크)’ 에서 다뤘으니 참조하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