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경제에 관한 논의를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참 안타까울 때가 많다.


 역시나 일반적으로 가장 큰 문제는 뭐가 신자유주의고 뭐가 케인즈주의고 뭐가 사회주의인지 잘 모른다는 데 있는데, 케인즈주의는 거의 언급도 안 되니 일단 뒤로 접어둔다 쳐도 자칭 진보라는, 달님을 외치는 깨시민들이 걸핏하면 신자유주의적인 주장을 하는 걸 보면 참 기가 막히곤 한다.


 예를 들어서 현 한국 경제 상황에서.


 대체로 케인즈주의자라면 기준금리가 9개월째 유지인데 경기가 살아나는 양상이 지지부진하고 원화가 너무 강세니 금리 좀 내리고 하우스푸어를 위한 지원 프로그램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할 건데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밖에까지 잘 안 퍼지는 안습한 현실 앞에 있고,


 대체로 신자유주의자라면 새로운 일자리 등을 위해 의료 영리법인 세울 수 있게 규제 풀고, 경제민주화를 위해 기존 순환출자구조도 해소하고 주주의 권한을 늘려야 한다고 지금까지 해왔듯 착한 척을 앞세워 주장할 것이고,


 대체로 사회주의자라면 보편적 복지를 얼른 하라고 주장하는 동시에 뭘 몰라서 경제민주화 움직임에 동참할 것이고,


 대체로 제도주의자라면 바이오, 항공, 에너지 등의 신산업 육성을 위해 국가적 지원과 정책이 더 강하게 있어야 할 것이라 주장할 것이고 + 추가로 실제 보면 사회주의자와 함께 복지론 주장 중


 대체로 깨시민이라면 다 됐고 부정선거! 박근혜 아웃! 안철수 양보해라! 등을 외칠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좌우파로 저 사람들을 구분하자면 좀 복잡해지는데...


 우선 사회주의자는 좌파로 확실하게 구분되긴 하는데 나머지는 아니다.


 케인즈주의자나 제도주의자는 어이없게도 수꼴 취급을 받기 일쑤고, 신자유주의자가 자칭타칭 진보로 불리는 것은 일상다반사고 소위 우파정당으로 분류되는 새누리당 내에서도 저런 온갖 소리들이 짬뽕 및 잡탕 되어서 내부갈등을 일으키는 게 현실.


 어쩌다 상황이 이리 되어가지고 사람들이 좌우파 구분도 하기 힘든 나라가 되었는지를 보자면 역시나 당연히 복잡한데, 시작부터 이야기하자면 아주 먼 과거로 올라가야 한다.


 일단 일제가 끝난 시점에서 한반도 남쪽, 그러니까 대한민국이 될 지역에서 공산주의자가 모두 제거되었다는 건 모두들 알 것이다.


 이승만 시절 한국의 정당은 이승만의 자유당과 아직까지 생존 중인 민주당이 있었다. 그런데 자유당이 민주당보다 좀 더 진보적이었다. 그리고 이승만이 물러난 이후 자유당은 부서져 버렸고, 민주당이 실질적으로 유일한 정당이 되었었다.


 많은 사람들의 오해와는 달리, 민주당은 딱히 진보주의적인 색채를 가진 적이 없었다. 다만 민주당의 역사를 보면 워낙에 많은 이합집산을 거듭했고 그 과정에서 운동권 세력이 참여하곤 하여 군사정권 시절 어감으로 ‘좌파’ 소리를 들어왔던 것이다.


 박정희가 쿠테타 이후 선거를 통해 대통령이 되는 과정에서 민주당의 보수주의적 색채는 선거에서 지는 요인이 되었다. 흔한 오해와는 달리 당시에 시민들은 박정희를 선택했고, 박정희가 서민의 편이었다.


 비록 박정희가 권위주의적이긴 했으나 서민에게 더 많은 이익을 가져다주고 삶을 안정되게 했다. 또한 유신 이전의 박정희는 선거로 당선된, 민주 체제 아래에서의 대통령이었다. 쉽게 말해 당시 구도는 박정희와 민주공화당의 제도주의적 진보 대 윤보선이나 김영삼, 김대중 등 민주당 계열의 자유주의 우파 구도였다고 할 수 있다.


 이후 박정희의 통치방식은 엄청난 경제적 성공을 가져왔다. 심지어 결국 정치적으로 실패한 유신체제조차 경제적으로는 기적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대조적으로 당시 김대중 등이 박정희의 방식에 반대하며 주장하던 소위 ‘대중경제론’이 있는데, 안타깝게도 그 내용을 보면 박정희가 오래 집권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단점이 많았다.


 박정희의 방식은 정부가 산업 육성을 돕고 금융을 제한하며 무역을 장려하는 방식이었다. 정부가 나서서 산업을 육성하고 강력한 보호무역을 통해 경제를 성장시키는 방식을 흔히 제도주의라 한다. 이 방식으로 박정희는 집권 내내 엄청난 투자를 하고, 무역 국가로 발돋움시켜 한국을 20세기에 가장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룬 국가로 만들었다.


 그런데 윤보선이나 박현채, 김대중이 주장하던 방식 - 대중경제론 - 은 이것과 반대의 방식으로, 수많은 국가들이 채택했다 실패한 방식이었다. 이 방식대로 하면 중앙은행은 강력하지 않아 금융통제가 안 되고, 산업이 제도주의처럼 발달하지도 못하며 무역 국가로 발돋움할 수도 없다.


 지금은 각종 방안들을 여러 국가들이 실험해본 끝에 뭐가 좋은지 증명이 되어있지만, 그 때는 그렇지 않았다. 박정희는 정말 가기 힘든 노선을 택했고, 엄청난 성과를 만들어냈다. 그러고 나서 그 열매를 제대로 보기도 전에 죽었지만.


 박정희 사후 박정희의 투자가 이루어낸 결과물들과 공산권의 몰락 등을 보면서 기존에 박정희의 정책에 반대하던 사람들도 의견을 달리하게 되었다. 김대중마저 90년대 들어선 기존의 대중경제론을 버리고 다른 입장을 취하게 된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도 김대중의 경제에 대한 이해는 다소 부족했던 면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가 좀 더 경제를 잘 이해했다면 IMF로 인한 타격을 더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IMF를 유발한 건 전적으로 김영삼 책임이다. 다만 김대중은 IMF와 좀 더 치열하게 싸워 피해를 줄일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어차피 멍청한 김영삼한텐 아무 기대도 안 한다. 그런데 김대중은 그래도 똑똑하니까. 똑똑한 사람은 똑똑한 사람의 몫이 있는 건데, 그 몫을 다하지 못했다는 거다.


 비극적인 문제는 민주정권의 태도 및 이해에 있었다. 박정희식 제도주의는 엄청난 발전을 만드는 동시에 필연적인 부작용을 낳는다. 정부의 혜택을 받는 쪽이 집중적으로 성장하다보니 덜 공평하고, 게다가 박정희는 권위주의적인 독재 통치를 했기에 자유에 대한 사회의 갈망도 컸기 때문이다.


 사실 자유에 대한 문제는 문화적인 면에서 두드러졌고, 지금도 충분히 해소되지 않았다. 유교식ㆍ군대식 권위주의 및 압축 근대화 과정 속에서 해소되지 못한 고간섭 문화는 아직도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그런데 민주화 이후 위의 문제들은 충분히 해결되지 못한 반면, 경제 체제는 제도주의에서 신자유주의로 급속도로 흘렀다. 특히 민주화에 누구보다 앞장섰던 김영삼부터 세계화니 선진화니 뭐니 하면서 대책 없는 신자유주의 판을 벌이다 나라를 말아먹었다.


 분배나 기타 등등의 이야기는 사실 김대중 때까지만 해도 잘 나오지 않았다. 김영삼과 김대중은 지역주의를 앞세웠고, 이념에 있어 그리 큰 차이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나마 김대중은 IT산업을 육성하는 등 제도주의적인 방안을 선택했지만 김영삼과 이후의 노무현은 아니었다.


 소위 좌우파 갈등이 빚어지기 시작하던 시점은 노무현 때부터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모두들 알다시피 노무현이 ‘좌측 깜빡이를 키고 우회전’을 해버리면서 모든 게 심각하게 꼬여버렸다. 대략 이때부터 노빠들은 제도주의와 케인즈주의 등을 ‘보수, 수꼴’등으로 낙인찍고 노무현의 신자유주의정책을 무한 실드치는 반지성주의적 궤변을 일삼게 된다. 물론 신자유주의가 본격적으로 욕먹기 시작한 이후에 깨시민들은 ‘노무현의 신자유주의는 시대적 흐름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같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무한반복하고 있고. 그런 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행위고 혹세무민이다.


 이야기가 꼬여버린 데는 이명박도 일조를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말로는 신자유주의의 화신처럼 등장을 해서는, 막상 정치는 딱히 신자유주의적으로 안 했다. 이러니 사람들의 경제적 좌우에 대한 착각이 더 심해진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근래의 경제민주화 논의는 아주 이런 혼동에 화룡정점을 찍어버렸다. 신자유주의자들이 경제민주화 타이틀을 걸고, 우린 착한 진보 ^^ 놀이를 해서 적잖은 사람들을 아스트랄하게 만들고,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을 혹세무민해 버렸다. 도무지 이게 언제쯤 어떻게 교통정리가 될지는 미지수다. 전문정보와 대중정보 사이를 이어줘야 할 기자라거나 시민 사회 등은 소양이 지극히 부족하고, 정치적 의도를 가진 뻘소리들만 해대면서 혼란을 가중시켜버렸다. 여기에 보편적 복지론이니, 선별적 복지론이니 하는 복지론이 앞서는 상황이 되다 보니 혼란은 더 심해졌다. 현실적으로 민중들은 뭐가 자기 자신에게 득이 될지를 감으로 대략 맞춰야 하는 입장이다.


 양당제에서 시민들이 명료하게 정치적 선택을 할 수 있으려면, 신자유주의 & 작은 정부 정당과 케인즈주의 & 제도주의 정당이 대립하는 게 편하다. 그런데 한국에선 제도주의를 박정희가 선점해버렸고, 그것이 극단적인 보수주의적 이미지로 자리 잡혀 있기에 이러한 이념적 균열이 일어나는 게 지극히 어렵다. 현재 박근혜정부는 적당한 제도주의와 적당한 케인즈주의, 그리고 적당한 신자유주의 사이에서 적당한 균형을 잡고 있다는 느낌인데 참 그것도 능력이라는 감상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 확 좀 땡겨 줬으면 좋겠다. (새누리)당내 신자유주의자들은 좀 치우고.


 여담인데 근래의 신자유주의는 ... 실제 경제학에선 그리 투철하고 극단적인 관념 속 신자유주의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게 이미지 그대로의 신자유주의는 이미지로나 존재할 뿐, 그게 학술적으로 맞는 말이 아니라는 건 이미 어느 정도 검증된 거고 이게 신자유주의만 이런 것도 아니고, 실제론 학자마다 서로 좀 다른 입장이긴 하지만 절충하고 더 나은 방향을 찾아가면서 이론을 만들고 현상을 살펴보고 그러는 게 현실인데, 굳이 보자면 학계에선 더 완성도 높은 수학적 무언가를 만들려고 하다 보니 무리수를 두는 경우가 꽤 있었고 그걸 막상 현실에 적용했을 때 패망한 사례도 많고 ... 오히려 리얼 ‘신자유주의’는 경제학계 외부에서 더 많은 것 같다. ‘학술적으로 맞는 말’이 아니고 ‘지들 돈 벌려고 하는 말’ 또는 ‘지들 권력 잡으려고 하는 말’을 하게 되면 사람은 완전히 이야기를 다르게 하는 법이다. 물론 저런 말들 중에는 도무지 신자유주의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이 하는 말들도 제법 많이 섞여 있으니 사람들이 더 혼동하기 쉬운 건 어쩔 수 없다.


 이념적 균열이 명료하지 못하고, 서민들이 자신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정치적 선택을 하기 어렵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상황이 아니다. 서민들은 삶의 개선을 위해 보다 케인즈주의적이거나 보다 제도주의적인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주의는 현실적인 대안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의 민주당이나 근래의 안철수 신당 모두 케인즈주의나 제도주의적인 대안을 보여준다고 하기 어렵다. 실제 케인즈주의적인 것은 학계와 관료이며, 제도주의적인 방안을 구상하는 쪽도 새누리당 내에 있다. 새누리당은 꽤나 광범위한 이념을 포괄하고 있는 정당인데, 소위 깨시민이나 진보좌파들은 이에 대한 이해가 없기에 선거에서 이기기 어렵다.


 서민들, 특히 나이가 좀 있는 서민들은 어떤 정책과 제도가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는지 어렴풋이나마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들을 향해 무식하다고 비난하고 국개론을 설파하는 깨시민들이야말로 실제로는 경제에 대한 이해가 없고 무식한 경우가 많다. 실제 깨시민들 많은 곳에서 자료와 근거를 제시하며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하는 경우, 돌아오는 건 비아냥과 매도 또는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거짓말인 경우가 99%이상이다.


 다만 새누리당이 서민들의 입장을 잘 대변해줄 수 있는 정당이 되긴 현실적으로 어렵다. 너무 많은 이념을 포괄하는 정당이 되어 있고, 당 내부에서 파워게임이 이루어지는 경우 누가 이길지는 명백하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한국 정치 현실에선 대통령의 정치 감각과 결단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대통령 주변의 이너서클이 제 역할을 못할 경우 정치 실패가 일어나기도 쉽지 않나 생각한다.



법인세 인상을 부르짖는 자들의 나비효과

경제 2014. 1. 14. 18:31 Posted by 해양장미

 자칭 진보좌파, 깨시민들이 매일 같이 주장하는 말 중 하나가 법인세를 인상하라는 것이다. 재벌이 너무 적은 퍼센테이지의 세금을 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증오와 질투에 가득 찬 발언들은, 사실 현실과는 너무 동떨어져있고 법인세를 인상할 경우 서민이 입을 피해는 너무 크다. 이번에는 이것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우선 한국의 법인세는 결코 낮은 편은 아니다. 현재 한국의 법인세는 복지국가로 알려진 북유럽 국가들과 유사한 수준이다. 근래 세계적인 추세가 지속적으로 법인세를 인하하는 것이다. 높은 법인세는 국가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칭 진보좌파 깨시민들이 법인세 인상을 계속 요구하는 건 냉정하게 말해 머리에 든 게 없고 양심도 없어서 그렇다. 북유럽 국가 동경하면서, 세금 체계를 북유럽 국가와 유사한 형태로 바꾸자 하면 가장 먼저 게거품 물고 반대하는 게 그들이다. 실제 한국의 조세 체계에서 법인세는 과하게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그렇다는 것이다.


 높은 법인세는 실제로 여러 문제를 야기한다. 그 중 가장 곤혹스러운 문제는 기업의 피터팬 컴플렉스를 심화시킨다는 데 있다. 이것은 쉽게 이야기해 성공적인 중소기업이 더 크기 싫어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한국에서 흔한 현상이다.


 중소기업이 중소기업으로 남아있는 한 기업은 계속 중소기업 혜택을 받는다. 법인세도 낮고, 금융혜택도 받는다. 그런데 중소기업의 경계를 넘어가 중견기업이 되는 순간, 법인세가 엄청나게 오르고 금융 또한 제약이 심해진다. 그래서 정말 많은 중소기업이 계속 중소기업으로 남는다.


 문제는 중소기업은 직원을 얼마 고용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고용률을 올리려면 중견기업 이상의 큰 기업이 많아져야 하는데, 높은 법인세는 큰 기업의 탄생을 가로막는 장벽이 된다는 것이다. 기업은 근본적으로 이윤을 추구하기 때문에, 성공적인 중소기업이 몸집을 불리려 할 때 사회가 그것에 대해 어떤 자세를 취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런데 한국은 자칭 진보좌파가 진짜 서민이나 젊은이들의 삶에는 관심도 없고, 사리사욕과 망상과 오만만을 앞세워 너무나 많은 깽판을 부린 탓에 중소기업이 더 크는 것을 막으려 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결과는 2030의 심각한 취업난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회계적으로 중소기업으로 남아있고자 하는 기업들, 또한 법인세와 인건비를 아끼고자 하는 기업은 외국에 연계법인을 세우는 식으로 법인세를 회피할 수 있다. 이것은 세계적으로 매우 흔한 현상인데, 한국의 경우 좀 더 심각한 문제가 된다. 가까운 곳에 인건비를 충분히 아낄 수 있는 중국 및 동남아 국가들이 있는 데다 기업행위에 대한 사회 분위기도 적잖게 나빠져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성공적인 한국 중소기업 중 다수의 해외법인을 가지고, 그 총규모는 이미 어지간한 중견기업을 넘어선 경우도 없지 않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한국에서 중견기업 또는 대기업 대접을 받고 싶지 않아한다. 괜히 견제 받고, 감시받고, 세금 두드려 맞고, 혜택 못 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자칭 진보좌파들과 깨시민들은 일자리를 만드는 데는 거의 관심이 없다. 어떻게 하면 괜찮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성찰하지 않는다. 머리에 든 것도 없고 현실 경험도 없으니 쓸 만한 아이디어도 창출하지 못한다. 하도 멍청해서 뭐가 신자유주의인지도 모르고, 신자유주의자들 하는 말에 홀려서 서민들 못살게 굴고, 감정만 앞서서 일차원적이고도 어이없는 법안 주장하고 그러는 게 민주당의 현실이다. 그런 민주당의 망조를 뒷받침하고 있는 깨시민들 또한 기초적인 데이터도 안 본다. 이성과 성찰과 토론보다는 비아냥과 망상과 무지, 그리고 질투와 분노가 앞서는 게 그들이다.


 이미 수많은 기업들이 법인을 외국으로 옮겨서 외국계 회사가 되고 있다. 한국에서 한국인이 세운, 한국인이 일하고 있는 기업들이 그러고 있다는 거다. 이것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진보좌파들의 반기업 정서와 각종 압박들이 한몫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깨시민들은 한국은 온통 기업위주라고 우기지만, 현실을 모르는 헛소리다. 실제 기업 하는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 줄 들어보긴 했는지 모르겠다. 허구한 날 소통을 부르짖는 이들이 사실 가장 심한 불통을 보이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소통은 ‘무조건 내가 옳으니 내 말을 들어!’로 읽어야한다.


 기업이 없으면 노동자도 없다. 한국이 사회주의 국가처럼 국영기업을 잔뜩 가질 것도 아니고. 또 돈 잘 버는 사람이 없으면 다른 사람들도 돈을 못 번다. 자영업자도 물건 사주는 사람이 필요하고, 제조업도 마찬가지다. 현대 사회에서는 고급 상품을 사는 사람이나 얼리어답터가 없다면 기술개발 또한 제대로 될 수가 없다. 법인세가 기업의 발목을 잡는다면, 그것이 사회에 어떤 효과를 불러올지를 통찰해야한다. 그런 것을 하기 싫다면 그냥 아무 말 안 하고 있는 게 사회에 누를 끼치지 않는 방법이다.




진보세력의 박정희 컴플렉스와 신자유주의

경제 2014. 1. 1. 23:58 Posted by 해양장미

 2014년이 시작되는 현재, 한국에서 ‘진보’의 정의는 적어도 정치적으로는 소위 '민주화 세력'으로 인식되는 범주와 유의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민주화는 과거에 이미 완성되었고, 모든 정당에 나눠져서 들어갔으나 많은 이들에게 그것은 무시되고 있다. 실제 DJ만 하더라도 DJP연합을 이룸으로 과거 군사정부와 손을 잡는 등, 이미 민주화 세력을 기준으로 한국 정당의 정치적 스펙트럼을 나누는 것은 무의미할 정도로 어렵다.


 실제 현 시점에서 소위 한국의 진보세력이 소위 보수 세력에 비해 철학적으로 딱히 진보적일 건 없다. (좀 더 진정한 의미에서의) 진보주의자들은 어디에나 있지만, 절대적인 수는 적고 오히려 민주당계나 NL의 경우 진보 이미지를 앞세워 마케팅을 할 뿐, 그 내용은 전혀 진보적이지 않은 경우가 다반사이다.


 오히려 깨시민이나 진신류로 표상되는 진보세력은 정말 많은 경우 구체적인 정책에 너무 무지하고, 더 나아가 정말 많은 경우에 아예 관심이 없다. 그들은 대체로 어떤 정책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를 통찰하지 못하고, 그것에 대해 심사숙고하는 태도도 없으며 자신의 믿음이나 감정, 또는 특정세력에 대한 광신적 지지를 앞세우기에 바쁘다. 더 나아가 그들의 이런 양상은 단순히 지지자들에서 끝나지 않고, 그들이 지지하는 정치인들 또한 그들과 유사한 모습을 보이곤 한다. 치기 어린 정의감으로 그 결과를 충분히 숙고하지 않거나, 심각한 확증편향에 가득 찬 정책을 매번 주장하고 밀어붙이는 게 그들의 현실이다.


 이런 세월이 누적되면서, 한국 국민들의 실제 삶은 여러 부분에 걸쳐 큰 피해를 입었다. 비록 한국이 잘 나가는 나라이긴 하고, 그 과실을 어느 정도씩은 모두가 누리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그것은 가랑비에 옷 젖듯이 다가오기에 크게 체감되는 경우는 드물다. 사람은 손익을 결코 동등하게 느끼지 않고, 누구나 이익보다는 손해에 대해 훨씬 민감하기 때문에 정치인들은 손해를 보고 있는 자들을 적극적으로 구제하고, 문제를 해결해줄 필요가 있다. 또한 손해를 보는 자들을 최대한 줄일 필요가 있다. 한국 진보정치의 부재는 이런 면에서 큰 문제를 낳고 있다.


 구체적으로 사안을 보면, 소위 보수로 분류되는 인물들이 오히려 실제로는 진보적인 포지션에서 정책을 펼쳐나갈 때가 적지 않다. 이것은 한국의 진보ㆍ보수 구분법과 인식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인터넷 노빠들의 등장 이후, 한국 정치 분위기는 지나치게 적대적이고 말이 험악하며 진영논리가 앞서기에 올바른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는 게 현실이고, 그렇기에 실제 사안들과 정책들의 효과나 영향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기에 진보ㆍ보수의 구분은 별 의미 없는 라벨링이 되어버렸다. 실체 없이 이미지만 나도는 게 작금의 상황이기에, 그런 것들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을 잡는 사람들은 대체로 부동층이 되어있으며 별 말을 하지 않는 경향이 강해져있기도 하다. 나만 해도 친노세력이나 민주당계의 어이없는 정책 등을 비판하다 보니 일베충, 알바, 수구꼴통 같이 어처구니없는 공격적인 말을 종종 듣는데 이건 정말 심각한 문제다. 그들은 과거 군사독재세력의 ‘빨갱이’ 낙인을 완벽하게 벤치마킹한 것으로 보인다.


 본문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이런 어이없는 적대적 대립과 무책임함, 그리고 진영논리와 철학 부재 등이 현실적으로 한국 국민들에게 너무도 큰 고통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현실적으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조금이나마 이야기해보고 싶다.


 이 면에서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이야기는 지속적인 경기의 냉각과 일자리 문제다. 이 두 가지 문제는 한국이 겪은 지난 10~15년간의 문제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만드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들은 소위 ‘진보적인’,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민주화 세력의 정신을 유지하거나 이어받은 사람들이다. 이런 진보적인 사람들은 새누리당 내에도 상당수가 있기 때문에, 실제의 문제 양상은 꽤나 복잡하게 일어나곤 한다. 그렇지만 현실을 요약해서 이야기하자면, 라벨이 진보적인 사람들이 실제로는 마인드건 사고방식이건 가진 이념이건, 주장하는 정책이건 대단히 보수적인 경우가 너무 많은 게 문제의 핵심이다.


 이 면에선 소위 인터넷 깨시민들이 ‘우리가 진짜 보수’라고 이야기할 때가 있는데, 그것이 핵심을 짚은 것일지도 모른다. 깨시민은 어딜 봐도 보수주의자가 맞다. 그것도 수꼴 극우파 수준으로 보수다. 수꼴들이 본인들을 진보로 라벨링해서, 서민 챙기는 척 하면서 온갖 개념을 어지럽히고 막말을 해대니 서민들의 삶이 엉망이 되는 거다.


 이런 문제의 기원은 안티 박정희, 즉 박정희 컴플렉스에서 비롯된다. 소위 민주화-진보 세력의 사고에는 박정희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자 하는 의식이 깔려있다. 그런데 박정희의 정책은 문화적이거나 정치적인 억압은 강했지만, 경제정책에 있어서는 보수적이라 할 수 없었다. 박정희의 경제정책이 세계적으로도 유래를 찾기 힘든 성공을 거둔 것은 훌륭한 정책을 펼쳤기 때문이다. 소위 진보세력 중엔 박정희의 업적을 폄하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공과를 바르게 평하지 않는 데서 많은 문제가 시작된다. 이런 태도는 박정희의 딸인 현 대통령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다.


 역대 한국 대통령 중 가장 자주적이고, 미국과 거리가 멀고, 가장 장기적 관점에서 경제와 산업을 성장시키고, 가장 신자유주의와 거리가 멀었던 대통령은 박정희다. 이것은 진보주의자에겐 불편한 진실이고, 모두들 박정희의 업적을 거짓말까지 동원해 폄하하는 데 바쁘다. 이런 시도는 지난 대선 때도 몇몇 단체에 의해 반복되었다.


 박정희가 했던 모든 것들을 부정하고, 박정희와 다른 방식으로 성공을 거두려 한 데서 비극이 시작되었다. 물론 박정희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수단을 정당화시켰다. 그가 나쁜 짓을 많이 했다는 걸 부정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그의 정책은 객관적으로 평가될 필요가 있다. 모든 주변 이미지와 감정을 제외하고, 정책과 행위만을 놓고 본다면 박정희는 국가주도적 진보주의자가 되고, 노무현은 극단적인 신자유주의 우파가 된다. 사람에 따라 불편하더라도 이것이 진실이다. 박정희는 금융을 억제하고 국가 및 관료 주도적으로 산업을 발달시켜 나갔다. 그 과정에서 적잖은 문제가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폐허에서 그 정도의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룬 국가는 지구촌에 한국뿐이다.


 심지어 박정희가 없었다면 삼성전자도 현대자동차도 포스코도 없었다. 옷 만들던 이병철에게 전자산업 하라고 시키고 건설업 하던 정주영에게 자동차 만들라고 시킨 건 박정희였다. 포스코의 전신인 포항제철은 다들 못하겠다고 해서 박정희가 직접 국가 주도로 차린 것이다.


 세계적으로 봐도 커다란 한국의 중공업은 개개의 기업이 쉽게 시도할만한 게 아니다. 특히 한국 같은 철저한 후발주자는 더더욱 그렇다. 국가에서 안 시켰어도 한국이 반도체 만들고, 자동차 만들어서 세계에서도 손에 꼽히는 국가가 될 수 있었을까? 냉정하게 말해 그건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그냥 박정희가 잘했다는 식으로 마무리되어서는 정말 곤란하다. 진짜 문제는 박정희 사후에 있다. 박정희 사후 한국엔 제 2의 삼성, 제 2의 현대자동차가 나오기는커녕 있던 대기업들까지 하나하나 몰락하고 결국 지금은 안정적이고 성장세인 대기업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커다란 암울함이다.


 한국 대기업이 쓰러진다고 중견기업ㆍ중소기업이 잘나가고 있을까? 아니다. 한국 기업들은 어차피 대체적으로는 세트메뉴다. 그 동안 소위 민주화 진보좌파들은 박정희와 대기업에 대해 지극히 적대적이고, 시장 개방하고 주주중심 자본주의, 금융 자본주의로 경제체제 바꿔, 기존에 박정희가 만들었던 부정한 대기업 재벌이 무너지면 뭔가 자연적으로 새로운 기회들이 창출될 거라는 주장을 했다. 그런데 사실 이런 이야기는 신흥종교에 가까운 것이다. 물론 근거는 별로 없다. 본래 신앙엔 믿음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무엇이 신자유주의인지, 왜 신자유주의가 문제인지를 먼저 개념을 잡아야한다. 흔히 깨시민을 비롯한 민주당 지지자들은 노무현의 적극적인 신자유주의 노선을 시대적 한계라는 이유로 변호하곤 하지만, 노무현은 상당히 적극적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쳤을 뿐만 아니라 그런 움직임은 지금도 지속중이다. 노무현보다는 이명박이, 이명박보다는 박근혜가 덜 신자유주의적인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대통령이 순간순간 했던 선택들을 보면 그 이념을 알 수 있는데, 대통령은 권한이 큰 직책이고 각자의 사고방식과 철학, 경험 등에 의해 선택이 이루어지게 된다. 외부의 압력으로 신자유주의적인 판단을 했다는 건 졸렬한 변명을 넘어 혹세무민하려는 거짓말에 불과하다.


 진짜 진보라면 국가가 나서서 신산업을 육성하자고 주장해야 한다. 또한 금융그룹을 자국민이 소유해야 한다고 주장해야한다. 어설픈 코스모폴리탄이 진보일 수 있는 국가는 미국뿐이다. 미국은 최강대국이니까. 그렇지만 한국은 아니다. 타국인들에게 인류애를 나누고 돈도 나눠줄지언정, 경제 주권은 나눠줘선 안 된다.


 지금 자칭 진보들이 하는 짓은 글로벌 금융세력에게 경제 주권을 팔아넘기고, 그나마 맞설 수 있는 국내 대기업은 옥죄는 행위에 불과하다. 사실 난 조선 말에 친일, 친청, 친러하던 사람하고 그들이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아무리 박정희를 만주국 장교출신 다카키 마사오라고 한들 박정희의 업적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그런 식으로 대통령에 반기를 드는 세력이 매국행위를 하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원래 제국주의라는 거, 식민지라는 거 별거 아니다. 군함 끌고 가서 무역하자고 하고, 강대국에게 이익이 되는 법 통과시키고, 그 나라 재산들 싸게 싸게 매입하고, 그리고 그 나라 사람들한테 물건 팔고 노동력 착취하면 그게 식민지다. 이 연장선상에서 신자유주의는 일종의 현대식 경제제국주의라 할 수 있다.


 김영삼 정부가 치기어린 신자유주의로 한국을 IMF의 수렁으로 빠뜨린 후, 김대중 정부는 화끈한 결단을 하지 못하고 IMF에 끌려 다니며 국부를 빼앗겼다. 노무현 정부는 거기서 한 술 더 떠서 아예 적극적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국가 경제의 뿌리를 뽑아 놨다. 자칭 진보세력은 이런 흐름을 진정시키려는 데 있어 큰 방해가 되고 있다. 그들의 무지와 광신, 어리석은 오만, 끝없는 권력욕과 질투심, 박정희 컴플렉스 등이 그 원인이다.


 나와 이웃의 행복을 위해 좋은 선택을 하고 싶다면, 가슴은 뜨거울지언정 머리는 차가워야 한다. 내가 바른 판단을 하고 있는지 언제나 의심을 가져야 하고, 나와 생각이 다른 이들의 말과 글에 귀를 기울여볼 필요가 있다. 소위 진보세력들이 박정희에 대해 컴플렉스를 가지고, 그의 방식이 낡았다고 여기며 신자유주의에 동조하는 목소리를 높이는 이상 현재와 같은 정치경제적 문제들은 해결되기 어려울 것이다.





 근래 한국 경제는 새로운 위기에 처해 있다. 과거 여러 풍파를 이기고,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남기도 했지만 그래도 한국 경제는 지금까지는 잘 순항해온 편이다. 그렇지만 이번 덫은 종류가 좀 다르고, 대단히 치명적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문제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경제 자체를 뒤흔들 수 있는 문제라 본다. 앞으로 가능한 한 열심히, 여러 차례 이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이 문제를 한번에 간추려 간결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가 말할 이 덫을 세간에서 부르는 이름은 ‘경제민주화’다. 사실 소위 경제민주화론자들이 내놓는 법안이나 제안을 보면 난 평정심을 유지하기 힘들다. 본 포스트의 글은 종종 과격한 어조를 사용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나의 심정에 비하면 굉장히 순화한 어조다.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해서, 현재 알려진 경제민주화는 나라를 팔아먹고 또한 도태시킬 수 있는 방식이다. 그들에 비하면 이완용은 매국노는커녕 애국자에 가까울 거다.


 이런 말을 하면 소위 깨시민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는 알고 있다. 그렇지만 미리 이야기하자면 나는 보수주의자와는 거리가 멀다. 본 블로그에서도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깨시민들이 지지하는 경제민주화론자들이 하는 말들은 월가 금융마피아들이 하는 말과 똑같아도 너무 똑같은 게 정말 많다. 물론 중간 중간 어이없이 사회주의적인 이야기를 하기도 하지만, 접합이 안 되는 걸 동시에 이야기하니 더 무식해보일 뿐이다.


 경제민주화론의 뿌리는 매우 깊다. 그리고 거기엔 재벌에 대한 질투와 증오심이 깃들어있다. 물론 재벌에 문제 많은 건 나도 안다. 그거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다. 그런데 경제민주화론자들이 문제인 건, 그 증오 때문에 결국 선택한 방식이 신자유주의 중에서도 극단적인 신자유주의라는 데 있다.


 사실 이렇게 말해도 별로 호응은 없다. 신자유주의 개념을 잡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아무한테나 신자유주의가 뭐냐고 물어봤을 때 어느 정도 제대로 답하는 사람은 100명 중 1명이나 될까? 걸핏하면 신자유주의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로 한정해서 물어봐도 10명중 1명이나 어느 정도 제대로 답할 거다. 의식적으로 신자유주의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실제 경제에 대해 하는 이야기는 신자유주의적인 웃픈 사태가 너무 많이 보이기도 한다.


 일단 모든 설명을 위해 현대 자본주의의 재미있고도 웃기는 면 하나를 이야기해보겠다. 예를 들어서 애플. 내가 애플 주식을 사고 싶으면 당장 살 수 있다. 그건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다. 그런데 주식은 그 회사의 지분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나는 정말 간편하게 애플의 일부를 사버릴 수 있다. 물론 1/N이지만.


 그런데 회사 주인 되긴 쉬운데, 회사 노동자 되긴 엄청 어렵다. 애플에 취직? 적어도 내가 이룰 만한 목표는 아니다. 실제론 취직은커녕 견학도 주식 사는 것보단 훨씬 어렵다. 애플 본사는 여기서 너무 머니까.


 이게 의미하는 건 간단하다. 회사와 노동자는 국적이 있고, 각 사회 현실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그렇지만 금융으로 분류되는 회사의 소유 권한은 그렇지 않다. 소유권은 순식간에 바뀔 수 있고, 이것이 파생 상품 등과 결합되면 훨씬 복잡해진다.


 현실적으로 이제 세계는 실물거래보다는 금융거래의 총액이 훨씬 많다. 특히 한국은 세계 제 1의 파생금융시장이다. 금융은 마법이고, 마법 같은 일을 해 내지만 그것은 매번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겐 엄청난 부를 가져다주지만, 상대에게는 굉장히 파괴적일 수도 있는 게 금융이다. 우리는 금융자본주의 위에 살고 있다. 비록 사람들 대부분은 금융에 대해 거의 무지하지만 말이다.


 경제민주화 논의로 돌아가서, 위에도 이야기했지만 경제민주화의 가장 큰 부분은 소위 재벌개혁에 관한 것이다. 대체로 경제민주화론자들은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를 재벌위주의 낙후된 체제 문제로 보며, 재벌권력을 해체함으로 한국 경제를 이롭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지만 그것이 진실일까?


 간단한 반례를 들어보겠다. 우리는 IMF를 겪으면서 대우그룹을 잃었다. 대우 계열사들은 조각조각 찢어져서 대우자동차는 GM에, 대우가 인수했던 쌍용자동차는... 떠돌다가 얼마 전 마힌드라에, 대우인터네셔널은 포스코에 흡수되는 등 박살이 나버렸다. 그런데 그래서 우리가 좋았는가?


 나는 대우가 망하고 일어난 사태들 중 일부를 직접 눈으로 봤다. 그것은 전혀 좋은 게 아니었고, 끔찍했다. 망한 회사의 노동자는 정말 쉽게 실업자로 전락한다. 세계 2번째로 L6엔진을 개발했던 대우자동차는 글로벌기업 GM의 한국 공장으로 전락했고, 쌍용차는 제대로 된 주인을 못 만나서 얼마 전까지도 한참 이슈가 되었던 쌍용자동차 사태가 벌어졌었다.


 만약 지금 삼성그룹이나 현대자동차그룹, 또는 현대중공업그룹이 대우같이 된다면 그 사태는 상상을 초월하게 끔찍할 것이다. 재벌에 대한 증오심을 앞세우는 사람은 IMF에서 아무 것도 못 배운 사람이다. 그런데 실제로 경제민주화론자들은 IMF에 대해 꽤나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기존의 구시대적 질서가 무너지고, 한국 경제가 선진화된 계기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난 그런 관점은 황당할 따름이다.


 내가 하는 이야기들은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고 특별한 것도 아니다. 그저 대중들이 공감할 수 있는, 상식선의 이야기이다. 진실을 바로 봐야 한다. 우선 몇 번이고 본 블로그에서 이야기했지만 IMF이후 한국의 대기업들은 더 이상 온전히 한국의 소유가 아니다. 특히 금산분리 이후, 한국의 은행들은 거의 전부 외국 자본에 넘어가버렸다. 만일 증권사나 보험사를 포함하는 좀 더 강력한 금산분리가 일어났다면, 어쩌면 한국의 금융 모두는 외국 자본의 것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 우리 한국인이 제1금융권 은행에 내는 대부분의 대출금 이자가 가져다주는 이익의 과반은 외국인에게 넘어간다. 은행 쪽 빼도 외국인이 과반을 소유한 대기업 엄청 많다. 삼성전자? 의결권 빼면 과반이 외국인들 거다. 포스코, 네이버, 삼성화재, KT&G, 이마트, 신세계는 외국인이 과반을 소유하고 있는 이름난 대기업들이다. 굳이 과반이 아니더라도 외국인이 3할 이상을 소유한 대기업들은 너무 많아서 일일이 언급하기도 힘들 정도다. 우리가 GDP가 많이 늘었는데도 실생활은 IMF전보다 못한 건, 외국자본에 의해 우리의 국부가 많이 유출되는 탓이 크다. 만약 외국인들이 가져가는 이익을 국내에 돌릴 수 있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투자로 많은 이익을 보고 있는 외국 자본이 경영권은 손 안 댈까? 그럴 리가. 이미 우리가 다 아는 기업에 대한 적대적 M&A시도가 두 번이나 있었다. 한번은 SK에, 한번은 KT&G(구 담배인삼공사)에 있었는데 두 번 다 경영권은 지켰지만 상처뿐인 승리였다. 둘 다 노무현 정권 때 있었던 일이다.


 이 중 SK-소버린의 갈등은 굉장히 심각했다. 당시 SK그룹은 순환출자 구조의 지분 방어가 충분히 형성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적대적 M&A에 취약했는데, 당시 소버린이라는 모나코 국적의 자산운용회사에서 보름가량에 걸쳐 다량의 SK주식을 매입했었다. 그 당시 SK는 불법정치자금 등에 연루되어서 검찰조사를 받는 등의 사건이 터져 주가가 하락해 있었는데, 대주주 지분률도 낮았기 때문에 더욱 위험했다. 소버린은 1700억원 수준의 돈으로 SK의 주식 14.99%를 소유할 수 있었고, 2대주주가 되어 2년간 SK의 경영권 탈취를 시도했었다. 당시 SK가 경영권을 결국 방어할 수 있었던 것은 펜텍&큐리텔 덕이었는데, 만일 소버린이 펜텍&큐리텔과 결탁하는 데 성공했다면 SK가 외국 금융자본에 완전히 넘어갈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래도 소버린은 8000억~1조 수준의 엄청난 시세차익을 보고 떠났다. 참고로 소버린의 직원은 겨우 20명이다. 여기서 살짝 생각해볼 거. 이렇게 소버린이 번 돈을 누가 벌어다 줬을까?


 개인적으로는 이런 사태가 있었는데도 무턱대고 순환출자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 머릿속이 이해가 안 간다. 나는 그들이 온전한 선의를 가졌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 한국은 엄청난 희생을 감수하면서 재벌을 키웠고, 그로 인해 어느 정도 부자 국가가 되었다. 재벌이 미워도 재벌이 버는 돈을 이 사회에 환원할 수 있게 해야지, 재벌이 외국 금융자본의 공격에 팔려나갈 수 있게 만들어서야 되겠는가. 매국노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일단 삼성이나 현대자동차그룹의 순환출자를 해소하는 건 현실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말 그대로 엄청난 자금이 없으면 순환출자구조를 바꾸는 게 불가능한 게 현실이다. 그들이 삼성 순환출자를 해소방안이라고 주장하는 구체적인 방식은 터무니없는 망상에 불과하다.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내 정신줄이 나갈 지경이니 말을 안 하는 게 나을 것 같다. 그래도 조금만 요약해 말하자면 주식 잔뜩 팔아서 순환출자 해소하란다...


 순환출자 해소한다고 서민들 살림살이가 나아질까? 한국 경제가 나아질까? 개미 투자자들이 반길까? 주식시장의 큰 손 연기금이 이익이라도 볼까? 다 아니다. 순환출자 폐지론은 그냥 강아지 풀 뜯어먹는 소리다. 순환출자는 일본, 프랑스, 도이칠란트, 캐나다에도 있는 방식이다. 미국은? 미국은 순환출자보다 훨씬 강력한 차등의결권 제도가 있다. 일본은 순환출자보다 훨씬 강력한 상호출자도 허용된다.


 실제로 SK-소버린사태와 KT&G-칼아이칸 사태 이후 한국 기업들은 유보금을 쌓고, 자사주를 매입하는 데 돈을 더 많이 쓰고 있다. 경영권이 위험한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어디 있겠는가. 저런 극단적인 위험 앞에서 다른 투자는 뒷전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멍청이들이 증오심을 내세우고, 광신도들이 그들의 뒤를 뒷받침하고 여론을 장악하는 동안 민생이 어려워진 건 당연한 일이다.


 무엇보다도 세상 그 어떤 멍청이도 제대로 된 국가 지도층이라면 국가의 존립기반이 되는 큰 기업의 경영권을 외국 자본에게 그대로 넘겨주진 않는다. 그런데 이 나라 멍청이들은 정말 특별한 수준으로 멍청하다. 이 스페셜 멍청이들의 명단을 보자면 대략 민주당, 통합진보당, 참여연대, 경실련, 깨시민, 그리고 새누리당 내 소수파인 경실모 정도를 들 수 있겠다. 심지어 이 멍청이들은 나라 곳간을 날로 팔아먹으려 들면서 지들이 정의로운 척을 한다. 솔직히 보고 있으면 정신줄이 나갈 것 같다.


 이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적대적 M&A는 나쁜 게 아니라고 한다. 시장에서 일종의 규율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도대체 적대적 M&A가 무슨 규율을 잡는다는 건지 모르겠다. 외국자본이 한국기업 산다고 덤벼오는 게 대체 우리에게 주는 이익이 무엇인가?


 기업 소유주가 한국인이건 외국인이건 상관없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지만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기업 인수되고 나면 보통 제일 먼저 하는 게 인력감축이고 업무효율향상이다. 외국자본은 돈 뽑아먹고, 봐서 팔고 나가면 그만이다. 그건 쌍용자동차만 봐도 알 수 있다. 사회적 압력? 한국 법? 그런 건 어지간한 외국인 투자자에겐 아무 의미도 없다. 재벌 총수들은 무슨 비리를 저지르건 기본적으로 자신들의 기업에 애정을 가지고 대대손손 번영시키려 하지만, 외국 인수자들은 보통 안 그렇다. 100년 후를 바라보는 사람과 10년 안에 최대이익을 내려는 사람의 경영방식이 같을 수가 있겠는가? 어떤 방식의 기업이 한국에 있는 게 모두에게 이익일까?


 이들은 얼마 전 부도난 동양그룹이 순환출자 때문에 부실해져서 집단으로 망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그건 진실왜곡이다. 동양그룹이 망한 건 핵심 사업인 동양시멘트가 이익을 못 내고, 추가로 그냥 경영을 잘못해서다. 순환출자는 지배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고, 거기에 많은 지출을 해서 망했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지주회사가 안정적인 지배에 돈이 더 많이 든다.


 이걸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보면, 경제민주화론자들은 대기업 집단에서 한 기업이 어려워질 때 다른 계열사가 도와주면서 (돈을 빌려주면서) 문제가 누적된다는 식으로 주장한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이게 나쁜가? 예를 들어 삼성카드가 어려울 때 삼성전자에서 돈을 빌려주는 게 나쁜가? 내 생각에는 그게 아니다. 판단미스가 아니라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수단이 더 있는 게 경영상 훨씬 유리하다. 경제민주화론자들은 어떤 대기업 하나가 부실해지면 그게 바로 투명하게 드러나서, 투자자들도 발 빼고 주가도 바로 무너지고 채권자 찾아가고 그러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건 경영자에게도 수많은 직원에게도 하청업체에도 안 좋은 것이다. 그저 투자자, 그것도 사모펀드같은 것에게 유리할 뿐이다.


 그러니까 현재 멍청이들이 주장하는 방안대로 기존 순환출자 폐지되어 버리면 진짜 좋아하는 건 펀드들뿐이다. 물론 펀드에 줄 대고 돈 받는 사람들도 웃긴 한다. 경제민주화 하자는 사람들 중 그런 사람도 당연히 있다고 들었다. 덤으로 금융에 대해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옆에서 목소리만 높이는 걸 보면 정말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나마 현재 새누리당쪽에서는 신규순환출자만 막는 방향으로 타협하는 것 같은데, 막긴 왜 막나. 순환출자 괜찮은 제도다. 부실과 부실이 엮여서 더 어려워지면? 방관하지 말고 정부가 미리 좀 더 강력하게 개입하는 게 좋다. STX건 동양이건 위험 자체는 미리 감지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 나는 차등의결권 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신규순환출자를 없애려면 차등의결권 제도를 도입해야한다.


 유사시 외국 자본한테 자꾸 국내기업이 팔리는 것도 정말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봐서 수익성이 있고 큰 기업이면, 특별 예산을 편성해서라도 국유화를 시키는 게 낫다. 나중에 민영화시키더라도 그게 훨씬 이득이고, 노동자들에게도 그게 훨씬 낫다. 그러나 IMF 이후 멍청이들이 자꾸 설치면서 국부가 계속 유출되고 있고, 실업자들은 늘고 있다. 군사정권 하던 방식 싫다고, 소위 금융마피아들이 지들 돈 벌려고 하는 말을 그대로 외워서 앵무새처럼 따라하니 매국노가 되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1주 1표의 원칙을 중시하는 경제민주화는 대기업 이상으로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의 미래에 큰 문제를 안겨줄 수 있다. 기업의 성장과정에선 각종 자금조달이 필요한데, BW(신주인수권부사채)나 ELW(주식워런트증권)같은 걸로 조달이 이루어지곤 한다. 아직 대기업이 못 되어 신용이 모자란 기업들이 채권시장에서 채권을 발행할 경우 지불해야 금리는 엄청나게 높다. 그런데 경영권을 그나마 쉽게 보장해주던 순환출자가 금지되게 되면, BW등을 통한 자금조달에도 부담을 더 느끼게 될 수 있다.


 더구나 연결회계가 도입된 이상, 주주들은 투자를 고려할 때 순환출자가 되어있는 기업의 재무 구조를 좀 더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좀 더 신경이 쓰일 뿐이다. 리스크를 미리 파악하고 털어내는 건 불가능한 일이 아니고, 정부의 관리감독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지주회사 구조가 더 낫다는 근거가 불충분하기도 하다.


 물론 경제민주화론자들이 주장하는 건 순환출자 폐지뿐만이 아니다. 심각한 문제를 가진 게 정말 많다. 본문에서는 분량 상 그 중 문제가 크다고 생각되는 몇 가지만 다루려고 한다.


 출자총액 제한 제도라는 게 있다. 보통 줄여서 출총제라 부르는데, 경제민주화론자들은 이것의 재도입을 주장하고 있고 작년 선거 때 문재인 공약으로도 나왔었다. 이 출총제는 기업의 신규법인 설립과 구주취득에 의한 계열사 편입을 제한하는 제도인데, 쉽게 이야기해 재벌의 신규투자 및 몸불리기를 막는 제도인 것이다.


 그런데 당연하지만 이런 출총제는 대기업의 신규투자를 가로막게 된다. 과연 이것이 바람직할까? 지금도 대기업들은 현실적으로 많은 유보금을 쌓아놓고 있다. 오죽하면 추미애는 유보금에 과세까지 하려 드는 상황이 아닌가.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출총제를 도입하자는 건, 결국 결론은 하나다. 괜히 일 더 벌이지 말고, 수익 고배당하고 주주중심 경영하라는 것이다. 게다가 출총제는 한국 기업에게만 적용되는 국내법이기 때문에, 외국 회사는 자유롭게 국내 기업 지분을 매수할 수 있고 한국 기업은 그 경쟁에 마음껏 뛰어들 수 없게 된다. 그러니까 출총제 재도입하면 외국인 투자자들이 좋아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경제민주화론자들이 사실 글로벌 금융자본의 편이라는 건, 그들과 민주당이 현재 국회에 올려놓고 매일같이 시위하며, 민생법안 막으면서 밀어붙이는 상법개정안만 봐도 알 수 있다. 본문에서 이것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려면 지면이 더 많이 들어갈 것 같은데, 간단히만 소개하자면.


 집중투표제 의무화라거나 집행임원제도, 감사위원이 되는 이사의 분리선출 및 사외이사 비율 늘리기 등등이 쟁점이 되고 있는데 이 법안들을 하나하나 설명하자면 복잡하니 요약해 말하자면, 경제민주화론자들과 민주당이 강경 주장하고 있는 방식은 모두 소액주주가 이사회에 더 많은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는 방향이다.


 사실 이런 걸 보고 있자면 기가 찬다. 매국노들과 매국노에 속은 멍청이들이 정의의 탈을 쓰고, 자칭타칭 깨어있는 시민이라는 광신도들을 규합하여 글로벌 금융자본의 종으로 날뛰면서 당장 필요한 민생법안은 막고 있기 때문이다. 조금 설명하자면 저 소액주주가 말이 소액주주지, 의미가 있을 만한 지분을 가지려면 엄청난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특정 기업과 특수관계도 아닌 사람이 의미있는 소액주주가 되려면, 엄청난 부자거나 아니면 펀드여야 한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이번 상법개정안은 소버린같은 외국 사모펀드가 국내 대기업에 좀 더 감내놔라 배내놔라 하기 쉽게 해주는 개정안이라는 소리다.


 결론적으로 본문을 요약해보겠다. 소위 경제민주화라고 하는 것들은 대중이 피상적으로 생각하는 평등주의가 아니다. 진실은 금융자본, 그것도 외국인을 포함한 글로벌 금융자본이 한국 대기업을 좀 더 접수하기 쉽고, 이용해서 이익을 얻기 쉽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저런 말도 안되는 소리들의 이론적 기틀이 되는 것이고, 저런 멍청한 소리가 계속 나오고 지지받는 이유는 사람들이 재벌에 대한 질투심이 있고, 금융과 경제를 사실 정말 모르며, 관용 없는 도덕주의적인 태도를 가지곤 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공약을 취소하고, 경제민주화를 막고 있는 것은 정말 잘하고 있는 거다. 경제도 금융도 모르고 일자무식하게 그저 노무현 찬양, 이명박근혜 까기에 여념이 없는 깨시민들은 자신들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실 경제민주화가 뭔지, 구체적으로 뭔 소리를 하는지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있는 깨시민은 전체 깨시민 중 1%도 안 될 거다. 그러니까 깨시민은 안 되는 거고.


 사람들이 지금 민주당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좀 더 잘 알 필요가 있다. 현재 민주당은 부동산 관련법안을 4월부터 계류시키고, 제대로 협의하지 않으면서 예산안 심의도 제대로 안 하고, 걸핏하면 국회에 참석하지 않는 가운데 특검수용과 위에서 설명한 경제민주화 법안 등이나 밀어붙이고 있다. 그러니까 내가 이것도 정당이냐고 그러는 거다. 정치인의 자격이 안 되는 사람이 민주당에 너무 많다.




 개인에게 부채란 고통스럽기 쉬운 일이다. 물론 레버리지를 즐겨 사용하고, 그로 더 많은 부를 얻는 사람들도 많긴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에게 빚은 공포이자 타락의 상징 같은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적금과 보험을 들고, 부채를 최소한으로 맞추면서 안전한 삶을 사는 것을 바람직하다 생각하고, 또한 그런 것을 권장 받곤 한다.


 그렇기에 대체로 ‘우리 도시에 빚이 많다!’라는 말은 훌륭한 정치적 언어가 되곤 한다. 근래 나왔던 이야기만 해도 서울시 빚이 27조네, 인천시 빚이 10조네... 심지어 성남은 모라토리엄 선언까지 했었다. 이 도시들은 새누리당에서 민주당 정치인으로 시장이 바뀐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사실 2013년 현재, 과거 2010년 성남의 모라토리엄 선언은 과도한 정치쇼였다는 지적이 많은 상황이다. 나는 이것에 대해서 아직 구체적인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모라토리엄이라는 것은 극단적인 상황에서 나올 만한 것인데 성남이 그런 상황이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중요한 것은 민주당과 소위 진보좌파들이 자꾸만 ‘빚’과 ‘재정적자’를 들고 정치적 공세를 펼친다는 데 있다고 본다.


 지난 포스트, ‘계속되는 민주당의 발목잡기에 대한 사견’  및 ‘민주당의 대기업 유보금 과세 논란’에서  나는 민주당이 자꾸만 월가 신자유주의자들이나 할 법한 소리를 한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이번 포스트에서도 그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고, 그런 소리를 내는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한 약간의 이야기를 할 것이다. 민주당의 저런 태도가 이 사회에 끼치는 해악이 너무 큰 데 반해, 그들의 그런 면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너무 없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할 필요성을 느낀다.


 민주당은 왜 걸핏하면 ‘재정적자’를 입에 담을까? 그리고 왜 새누리당 정치인들은 재정적자를 감수하는 것일까? 재정적자는 왜 필요하고, 얼마나 위험할까? 이런 것들에 대해 먼저 알아야 정치판의 저런 언어들을 이해할 수 있다.


 가장 먼저 이야기해야 할 것. 이 정부 재정적자라는 면에서 본질적으로 진보주의적인 것은 새누리당이다. 대조적으로 민주당은 보수주의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민주당이 하는 말 중에는 진보좌파 방식의 방안도 많기 때문에, 그들이 철학이 없고 포퓰리즘 공약만 늘어놓는다는 지적을 듣는 것이다.


 왜 민주당이 보수주의적인 것인가? 그것은 부채에 대한 태도 차이에서 기인한다. 현대의 새로운 케인즈 경제학이 제시하는 불황에 대한 대응방법은 한마디로 다음과 같다. ‘돈을 풀어라.’ 이것은 정부지출을 늘리라는 식의 말과 같다. 그런데 그러려면 세금을 더 걷어야 하지 않느냐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부자감세논란 또한 지난 몇 년간 시끄러웠다. 그런데 세율을 올려야 할까?


 세금을 더 걷어야 하는 건 맞다. 그런데 세금은 거래 또는 소득이 발생할 때 과세되기 때문에, 세율의 증가는 곧 거래의 감소로 이어지고 그것은 불황을 심화시킬 뿐만 아니라 결국 세수도 줄어들게 하기 쉽다. 비유하자면 A라는 물건을 팔 때 2000원 남기고 3~4개 파는 것보다는, 1000원 남기고 10개 파는 게 낫지 않은가? 세금도 같은 이치다.


 현실적으로 불황이 오면 세수는 줄어든다. 그러니 정부는 더 많은 돈을 풀어야 한다. 불황일 때는 빚을 져야 (부채를 늘려야) 하는 것이다. 이것과 정확히 반대의 요구를 했던 게 과거 외환위기 때 IMF인데, 그들이 강요했던 긴축&고금리 방안 때문에 대한민국은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했다. 막상 근래 금융위기를 겪자 미국도, 유럽도, 일본도 그런 식으로 하지 않고 네오케인즈주의의 방식대로 돈을 풀어 난관을 극복하고 있다. 무식하면 당하는 거다. 몇 년 전 IMF 총재가 한국 외환위기 때 IMF가 했던 조처는 실수라고 인정 및 사과까지 했었다.


 위와 같은 진실에도 불구, 불경기인데도 부채 줄이라는 말과 함께 적자가 쌓여서 큰일 날 거라고 하는 진보좌파가 많다. 물론 민주당도 그런 식의 말을 많이 한다. 그러나 이렇게 부채를 두려워하고, 걸핏하면 긴축을 이야기하는 방식은 과거의 IMF나 근래의 미국 공화당 및 보수주의자의 관점과 같다.


 그들이 미국의 QE(양적완화)나 일본의 아베노믹스가 뭘 의미하는지 알고 있을까? 이미 금리는 0에 가깝고, 돈을 적당히 풀어서는 아예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 않으니까, 아예 국채를 직접 매입하는 방식 등으로 통화(돈)를 시중에 마구마구 풀어버리는 게 양적완화 및 아베노믹스다. 이러면 화폐가치는 떨어지지만, 통화량은 늘어나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불황의 순환 구조에서 벗어나기 쉽게 된다. 그런데 한국 진보좌파들은 금리만 낮춰도 왈왈댄다. 이들이 생각하는 건 물가밖에 없다... 그런데 물가가 안 오르는 건 디플레이션이다. 물가가 오르지 않는다 = 디플레이션 = 불황 인 것을 이들은 알고 있는 것인지?


 본래 경기는 순환한다. 계절이 순환하듯 호황과 불황도 교차하기 마련이다. 돈 없을 때 절약하는 건 각 가정에나 이익이 되는 방식이다. 그러나 불경기라 돈 없다고 모든 가정이 절약하면, 시장에 돈이 돌지 않기 때문에 불황은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한국은 식량이나 생필품의 자급자족률도 극단적으로 낮은 편이다보니 이렇게 되면 그 고통은 더욱 심하다.


 사업할 때 어려우면 원래 돈 끌어다 쓰기 마련이다. 그 정도가 과도하지 않도록 조절하는 게 중요할 뿐이다. 적자 났다고 무조건 사업 접으면? 세상에 될 사업 아무 것도 없다. 정부는 가계재정보다는 사업에 가까운 것이다. 불경기일 때는 재정적자를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돈을 풀어야 한다. 이것이 보다 진보적인 관점이고, 많은 이들이 고통을 덜 겪는 방법이다. 그러나 자칭 진보좌파는 긴축을 하라고 하니, 무지가 빚어내는 심각한 불운이라 해야겠다.


 만일 불황일 때 과거 IMF의 조처처럼 긴축하면? 사실 이렇게 하면 시간적으로는 불황을 더 빨리 벗어날 수도 있다. 다만 우리가 IMF때 겪은 일과 동일한 상황이 발생한다. 씻을 수 없는 고통의 바람이 불어오게 되는 것이다. 빈부격차는 엄청나게 커지고, 수많은 기업이 도산하고, 살아남은 대기업은 더 커지며 자본가들은 상당한 돈을 번다. 이럴 때 돈을 버는 자본가들은 결코 국내의 자본가뿐만은 아니다. 엄청난 외국계 자본이 침투해서 국부가 유출되게 된다. 이런 게 진보좌파가 원하는 것인가?


 재정건전성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부채의 액수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산 대비 부채가 어느 정도인지, 재정규모 대비 부채가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향후 어떻게 부채를 해결할지가 중요하다. 그러나 부채의 액수를 말하는 이들은 부채의 질적인 면은 말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서울시 부채? 18조가 넘는 SH공사 부채보다는 4.3조 정도 되는 지하철공사 부채가 훨씬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부채 가지고 허구한 날 시끄러운 박원순은 SH공사 부채나 건드리지, 지하철공사 부채는 손댈 생각도 못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런 게 포퓰리즘인거다.


 만약 이런 문제들이 복지와 결합한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복지엔 필연적으로 재정이 필요한데, 민주당식의 재정 관점과 복지는 결합이 잘 안 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이미 상당한 수준으로 하고 있는 복지정책인 건강보험과 국민연금을 보자. 어떻게 운용되고 있는가? 그리고 지속 가능한가?


 소위 진보좌파들의 4대보험에 대한 평가는 보통 그리 좋지가 않다. 그러나 그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더 나은 방안을 만들 것인지는 미지수다. 대체로 그들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생각인지 말이 없고, 모델도 제시하지 못한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매우 다른 성향의 관점이 접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재정 정책에는 신자유주의 스타일로 이야기하면서, 분배 문제에서는 갑자기 사회주의 스타일이 되니 될 리가 없는 것이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렇다.


 한국은 진보적인 열정이 넘치는 나라다. 사회를 개선하려는 의지도 강하고, 대한민국 건국 이후 두 번이나 민중 혁명을 통해 사회를 바꿨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가 충분히 진보하지 못한 것은 현재 진보좌파 입지에서 권력을 잡고 있는 이들의 소양이 매우 부족하고, 그들이 권력욕이 있을 뿐 철학이 있거나 비전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친노세력과 깨시민이 이에 해당한다.


 그들이 망상에 가득 차있는 사이, 소위 보수우파는 보수우파로의 아이덴티티를 벗고 더 진보적인 입지에 서 있다. 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지는 근래의 한나라-새누리당 정권은 4대강 같은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했지만, 금리를 잘 조절하고 좋은 재정 정책을 펴는 등 합리적인 조처를 취하고 있다. 적어도 경제 정책에 있어 새누리당 정권은 보수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자칭 진보좌파들의 엄중한 자기반성이 요구될 때이지만, 내가 보기엔 이미 그들은 반성을 잊었고 남탓만 하고 있다. 그러니까 나는 오늘도 이런 포스트를 쓴다.



 근래 민주당 하는 걸 보고 있자면 뭐라 형용할 말이 없다. 한심하고, 다시 봐도 한심하고, 또 보면 더 한심하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한심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는데, 그날그날의 소식을 보면 뭐라 형용을 못할 정도로 한심하니 그저 한숨이 나올 따름이다.





 이번에는 추미애가 한 건 터뜨렸다. 사실 추미애가 이런 말을 한 게 하루 이틀 일은 아니었는데, 이번엔 아예 작정하고 국회로 들고 나올 셈인가보다. 참 어떻게 이렇게 멍청한 소리를 다 하나 싶은데, 우선 추미애의 주장이 얼마나 뻘한 소리인지를 설명하기 위해 유보금에 대해서 조금 정리해보도록 하자.


 가장 기초적인 것부터 설명하자면 우리가 흔히 아는 기업들은 대체로 다 주식회사이면서 법인이다. 법인이라는 것은 기업과 사람을 분리하는 체계인데, 법적으로 개인 사업자의 경우 사업자가 운영하는 회사가 아무리 크더라도 그것은 모두 그 개인 소유이지만, 법인은 그렇지 않고 독립적이다. 주식회사법인은 (명목상이건 실질적이건) 투자자의 증권 지분으로 소유를 결정하며, 그 증권(주식)을 소유한 주주들이 소유한 만큼씩의 권리를 나눠 갖는다.


 즉 이 주식회사의 원칙을 놓고 보면 삼성전자는 이건희 게 아니고, 현대자동차는 정몽구 게 아니다. 주식회사는 주주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리 단순하지는 않다. 대체로 사람들은 삼성전자를 이건희 거라고 직관적으로 받아들인다. 이건희가 가진 삼성전자 지분은 그리 많지 않지만, 순환출자라는 제도와 그 동안 쌓아온 지배가 그런 직관을 뒷받침한다. 물론 그런 현실에 대해서는 비판도 많긴 한데, 주로 그런 비판을 하는 사람들은 소위 진보좌파들이다. 그렇지만 사실 삼성전자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이건희가 삼성전자를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게 좋다.


 본문에서 주로 다룰 문제의 유보금은 주식회사가 배당하지 않고 회계적으로 쌓아놓은 이익금을 의미한다. 즉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예를 들어서 삼성전자가 올해 장사를 잘 해서 법인세를 내고 나서도 30조의 이익을 얻었다고 치자. 그리고 그 중 10%에 해당하는 3조를 배당했다고 치자. 그럼 27조가 남는다.


 기업은 주주의 것이기 때문에, 주주에게 배당으로 돌려주지 않은 돈은 원칙적으로 기업의 소유가 아니다. 이런 돈은 기업의 성장을 위해 재투자되거나 배당되어야 하는 것이 일차적인 원칙이다. 투자나 배당을 아직 결정하지 않은, 즉 결정을 유보한 이익금을 유보금이라 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이런 유보금을 배당하지 않고 쌓아 놓으면 그것은 주가에 반영된다. 더 확실한 반영을 위해서는 유보금을 이용해 자사주를 매입하고 이익소각까지 시키는 법도 있지만, 그것은 일종의 다른 형태의 배당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유보금을 쌓아두기만 하고 명목상 아무 것도 안 해도 주가는 오른다. 쌓인 이익이 증권의 시가총액에 반영되는 것이다.


 일례를 들어보자. 삼성전자의 2012년 말일 기준 주가는 1주당 152만 2천원이었다. (현재는 조금 내려가서 142만 4천원이다.) 그렇지만 삼성전자 증권의 1주당 액면가는 5000원이다. 액면가라는 것은 처음 삼성전자를 세우던 시기를 기준으로, 초기 투자금이 명목상 저 가격이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어떻게 저런 차이가 날까?


 간단하다. 삼성전자가 엄청난 돈을 쌓아놓고 또 벌어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쌓아놓은 돈과, 앞으로 벌어들일 돈의 예상치가 현재의 주가를 만든다. 2012년 말일 기준 삼성전자가 쌓아놓은 유보금은 120조에 육박한다.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년초보다 주가가 다소 떨어진 현재에도 200조가 넘는데, 이렇게 높은 시가총액을 막대한 유보금이 떠받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위에도 이야기했듯, 원칙적으로만 보면 이런 유보금은 결국 투자되거나 배당되어야 하는 돈이긴 하다. 그러나 실제로 기업들이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기업 투자를 유도하겠다.’라고 매번 하던 말은, 이런 유보금을 새로운 사업에 투자하도록 해 고용도 늘리고 경기도 살리겠다는 식의 뜻을 품고 있었다.


 그런데 근래 기업이 쌓아놓은 유보금이 상당히 늘어났고, 이것은 국가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는 분명히 좋지 않다. 그래서 추미애는 작년부터 유보금 탓을 하더니, 이번에는 아예 유보금에 과세를 하는 법안을 발의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기사를 둘 첨부한다.


[대기업 투자안하면 과세하겠다고?]

[투자않고 쌓아둔 유보금 과세 추진... 재계 발칵]



 그럼 이제 상황을 설명했으니 한숨부터 한 번 더 쉬고 이야기를 시작해야겠다. 정말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떠오른다. 저런 어이없는 법안이 통과되지도 않겠지만, 이름 있는 민주당 의원이라는 사람이 저리도 무식하니 민주당이 맨날 그 모양 그 꼴이라는 생각 이상은 안 든다.


 우선 꼭 설명해야 할 것은 유보금은 이미 법인세를 낸 후의 금액이라는 것이다. 법인세를 낸 후의 이익금은 기업이 사실 어디에 쓰건, 위법한데 쓰는 게 아닌 이상 원칙적으로 자유다. 유보금을 쌓아두면 징벌하겠다는 말은 사실 민주주의적인 태도가 아니다. 쉽게 말해 그건 독재국가에서나 할 수 있는 발상이다.


 게다가 유보금은 절대로 현금이 아니다. 추미애는 무슨 삼성전자가 지폐로 120조를 쌓아놨다고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단언컨대 아니다. 세상에 돈이 있는데 그냥 쌓아놓고 놀릴 것 같은가? 기업인들은 멍청이들이 아니다. 유보금은 회계적으로는 쌓여있는 돈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도 그런 건 아니다. 이걸 착각하면 대단히 곤란하다.


 현실적으로 추미애식의 주장은 암만 잘 봐줘도 유보금 쌓지 말고 배당하라는 말 이상은 안 된다. 추미애의 의도야 기업이 투자를 해서 돈을 풀어야 사회에 돈이 돈다는 것이겠지만, 현실적으로 세금 물린다고 투자가 잘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게다가 이렇게까지 멍청한 말이 나오는 이유는 추미애가 기업이 왜 유보금을 저리 쌓아놓고 있는지에 대해 이해를 못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전에도 이야기한 적 있지만, 한국 기업들 한국 거 아니다. 외국인들이 한국 대기업들의 지분을 상당량 가지고 있다. 현실을 보여드리자면 다음과 같다. 외국인비율을 보시라. 저 비율만큼 저 기업들은 한국 게 아니다.





 유보금 안 쌓고 배당하면? 외국인 주주가 가진 지분은 100% 확실하게 바로 외국으로 다 빠져 나간다. 그렇지만 유보금을 쌓아두면 이야기가 다르다. 어쨌든 칼자루는 계속 쥐고 있게 되는 거다. 자본엔 국경이 없다. 있어도 아주 희박하다. 그러나 기업과 사람엔 국경이 있다. 이게 글로벌 금융의 위험한 점이다.


 적대적 M&A(인수합병) 가능성은 더 큰 문제다. 한국의 금융시장은 상당한 수준으로 개방되어있고, 언제든 외국 펀드가 주식을 매입하면서 기존 총수를 몰아내고 자신들의 바지사장을 앉히려 시도할 수 있다. 실제로 몇 년 전만 해도 그런 시도가 많았다. 이게 우리가 가진 IMF의 회복 못한 상처들이다.


 그나마 한국 조건에서 외인의 적대적 M&A에 보호막이 되어줬던 것이 순환출자였다. 그런데 별.. 참으로 다양한 멍청이들이 경제민주화니 뭐니 하면서 순환출자 없앤다고 그래왔고, 그나마 박근혜가 되어서 그런 멍청한 흐름이 조금 진정된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런 분위기에서 절대 기업들은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언제 법의 보호가 사라질지 모르고, 적대적 M&A가 들어올지 모른다.


 쉬운 말로 워런 버핏이 삼성전자 사버리겠다고 마음먹는다 생각해보자. 지금은? 순환출자때문에 아무리 버핏이 돈이 많아도 못 산다. 그렇지만 순환출자가 향후 경제민주화니 뭐니 하는 뻘법안으로 사라져버리면, 버핏 정도 돈 있는 사람은 삼성전자를 진짜로 접수할 수 있다. 그러면 삼성전자는 미국기업 되고, 이건희 가문은 손 떼야 하는 거다. 한국 재벌들이 돈 많은 것 같은가? 세계에 돈 많은 사람들 정말 많다. 그런 사람들이 펀드로 돈 모아서 쳐들어올 수 있다. 전투기 타고, 총 들고 오는 것만 침공이 아니다.


 이뿐만이 아니다. 재벌 문어발 경영 막는다고 이런저런 규제하고, 그룹 간 내부거래도 못하게 하는 게 현실이다. 그러니 투자하려고 해도 투자처가 마땅치 않은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다. 지금 같은 식으로 옛날부터 막았으면 현재의 한국 대기업들은 없었다.


 예를 들어보자. 삼성전자는 다들 잘 아실 텐데, 삼성전자와 밀접한 다른 삼성 계열사로 삼성 SDI가 있다. 삼성 SDI가 뭐하는 회사냐 하면, 쉽게 이야기해 디스플레이와 2차전지를 만드는 회사다. 즉 삼성 스마트폰의 디스플레이와 배터리는 삼성 SDI에서 만든다. 삼성전자는 삼성 SDI주식의 20% 이상을 가진 최대주주인 상황이다.


 그런데 삼성전자가 만약 삼성 SDI쪽 사업투자를 위해 유보금을 사용하려 하면 법률적으로 문제가 상당히 복잡해진다. 예를 들어서 삼성전자가 스마트폰의 성능을 높이기 위해 배터리에 더 투자를 해야겠다... 라고 마음먹는다면 그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닌 것이다. 물론 옛날엔 이런 문제가 딱히 없었다.


 정말 답답해서 요지를 좀 세게 이야기하려고 한다. 주주중심경영? 재벌 해체? 경제민주화? 사실 내 보기엔 강아지 풀 뜯는 소리들이다. 나도 뭣도 모를 땐 저런 풀 뜯는 소리가 진짜 맞는 줄 착각했던 적도 있지만, 좀 알고 나면 풀 뜯는 소리 이상은 아니다. 내가 이런 말 한다고 수꼴 취급하는 멍청이들이 분명히 있을 텐데, 그 멍청이들은 지들 하는 말이야말로 월가 신자유주의자들이 하는 말하고 완전 판박이라는 걸 꼭 알아야한다.


 그리고 또 엄중한 진실. 추미애 식으로 유보금에 세금 부과하면 확실하게 주가 폭락한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배당 더 하라고 압력 넣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유보금이 세금으로 나가기 전에 뽑아먹으려 할 거다. 물론 재벌들은 적대적 M&A에 훨씬 취약해질 거다. 폭락한 주가와 줄어든 유보금. 그 다음 사태는?


 대기업의 유보금을 사회에 풀고 싶으면 방법은 간단하다. 우선 각종 산업진흥 및 경기부양 법안들 얼른 처리하고, 뻘한 경제민주화 같은 거 접고, 그룹 내부거래 규제 완화하고, 어느 정도 경영권 보장해주면 된다. 그리고 주주중심경영 하지 말고, 기업의 미래를 위해 경영하라고 해야 한다. 주주들은 기업의 먼 미래엔 어차피 별 관심이 없다. 세상에 주주중심경영해서 잘 된 기업이 얼마나 있다고 주주중심경영 하라는 건지.


 이건 좀 더 분명하게 이야기할 필요가 있으니 짚고 넘어가자. 주주중심경영이라는 말이 나온 배경부터 먼저 알아야 한다. 저건 당연히 미국에서 나온 말인데, 미국엔 차등의결권 제도가 있다. 이건 한국엔 없는 제도다. 이걸 설명해 드리자면 원래 주식은 주식 1주당 의결권 1인데, 차등의결권을 가진 창업주는 주식 1주당 200의 의결권도 가질 수 있다. 이건 절대 권력이다.


 차등의결권 처음 들어본다고? 그러니까 순환출자 폐지논란이 웃기는 소리다. 미국 본토는 순환출자보다 더한 제도를 이미 가지고 있다. 경제민주화 하자는 사람들은 이런 진실은 안 말하지만 미국 기업은 차등의결권이 있다 보니, 창업주는 신과 같은 전권을 가지고 유보금도 잘 안 남기면서 경영할 수가 있다.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워런 버핏, 세르게이 브린, 레리 페이지, 마크 주커버그도 모두 차등의결권을 가지고 있다. (잡스의 차등의결권은 후계자에게 넘어갔고.)


 월가 투자자들이 차등의결권을 별로 좋아할 리는 없다. 그러니까 주주중심 경영하라고 그들은 주장한다. 차등의결권은 때때로 너무 창업주를 오만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주주를 신경 쓰는 건 그들의 독단적인 면을 감쇄시킬 수 있기는 하다. 그러나 저 위에 말한 모두도, 삼성도 현대도 차등의결권이나 순환출자로 인한 경영 안정성을 가지고 대성공을 이룩하였다.


 경제에 대한 말을 할 때, 일단 그 말을 처음 한 사람이 자기 돈 벌고 싶어서 하는 말인지를 생각해보는 게 중요하다. 문제는 멍청이들은 이걸 못한다는 데 있다. 어리석음과 선의가 합쳐질 때가 최악이다. 안 좋은 방향으로 근면성실하기 쉽기 때문이다.


 추미애의 어리석은 제안이 기각될 거라 믿는다. 그렇지만 이런 걸로 어이없는 딜을 시도하려 들 것을 우려한다.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은 어리석음을 내려놓고 어떤 게 사회와 자기 자신을 위한 길인지를 좀 더 숙고할 필요가 있다.



 본문은 지난 글 두 편의 보론으로, 본문을 읽기 전에 먼저 지난 두 글을 읽어주시길 바란다.


1편 : ‘메트로 9호선과 맥쿼리, 그리고 서울시와 민자사업 이야기’ 

2편 : ‘박원순과 맥쿼리, 그리고 메트로 9호선 - 두 번째 이야기’ 


 지난 2편에서 나는 시간 관계상 서울시민들이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의 금전적 손해를 보았는지에 대해 명확성 있게 계산하지 못했다. 그래서 본문에서는 그것에 대해 계산을 해 보다 명료한 숫자로 이야기를 할 것이다. 그래야만 박원순이 서울시민에게 당장 어느 정도의 손해를 끼쳤는지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기존 9호선 MRG에 대해 자꾸 오인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9호선 MRG 계약은 운수수입이 예상치에 미치지 못할 경우, 첫 5년은 예상금액의 90%, 그 다음 5년은 80%, 그 다음 5년은 70%를 보상해준다는 계약이었다. 그리고 맥쿼리가 운영하기로 했던 나머지 15년은 MRG가 없다.


 그렇다면 그 예상 운수수입과 최대 MRG 금액, 그리고 실제 MRG가 발생한 금액은 어떠했는지를 보자.





 저 최대보상액과 실제보상액 간의 %차이는 4년 평균 44.8%에 육박한다. 현재 9호선은 예상치와 거의 비슷한 - 현재는 살짝 상회하는 - 승객이 타고 있는데, 그에 비해 운임 수익은 반 정도라는 의미다. 처음 계약에 비해 너무 낮은 요금이 적용된 탓이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대 MRG금액과 실제 MRG금액 간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어쨌든 운임수입이 있는 이상, 최대 MRG금액을 다 보상하는 일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마 박원순이 무리하게 계약을 변경하지 않고, 본래 예정된 대로 요금 재협상을 했다면 MRG 금액은 크게 줄어들었을 것이다. 지금껏 MRG 지급률이 저렇게 높은 것은 어디까지나 9호선이 기대한 운임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단 진보좌파에 유리한 방식으로, 계속 서울시가 요금을 이와 같이 억제했다고 가정해 보자. 즉 일단 앞으로도 평균 44.8% 수준의 MRG를 제공했다고 치고 계산을 해보겠다.


 이 경우 향후 최대 지급될 수 있는 9호선의 MRG금액은 1조 1483억이다. 여기에 현재까지의 MRG율을 적용하면 5141억이다. 즉 지금처럼 서울시가 9호선의 요금인상을 억제했을 경우, MRG로 지급되었을 금액은 5000억원 정도라는 의미다.


 아니면 만일 박원순이 아닌 좀 더 정상적인 시장이 취임했다면, 9호선은 운임을 어느 정도 올릴 수 있었을 것이다. 이 경우 MRG 지급률은 크게 떨어졌을 것이다. MRG지급률이 25%로 떨어졌다면? 서울시가 앞으로 11년간 지불해야 할 금액은 겨우 2871억 정도다. 물론 이렇게 된다면 9호선은 다른 호선보다는 조금 더 비쌌겠지만, 그만큼 세금은 덜 지출된다.


 즉 본래의 계약조건을 잘 지켰다면, 서울시가 향후 지출했을 돈은 기껏해야 3천억원 정도였다. 세금으로 MRG를 지금처럼 많이 보존해주더라도 5000억원을 조금 넘는 수준이었고. 박원순의 서울시 측은 5조 이상의 지출이 있었을 거라 언플을 하지만, 그것은 터무니없는 수치다.


 서울시는 미인상보조금이 4조가 넘을 거라 언론 플레이를 했는데, 본래 계약 어디를 봐도 그런 이상한 계약은 없었다. 서울시가 계약한 건 MRG뿐이었고, 요금 인상을 지금처럼 간섭하고 못 올리게 하는 게 계약위반일 뿐이다. 만약 서울시가 맥쿼리와 법정 싸움을 계속 갔다고 가정해볼 때, 맥쿼리의 승소로 서울시가 30년 내내 100% MRG를 해줬다 가정해도 절대 4조가 나올 수가 없다. 서울시는 이것에 대한 구체적인 계산식을 전혀 밝히지 않고 있다.


 또한 서울시는 본래 계약에선 15년 이후 MRG가 없기 때문에, 요금이 협약대로 오르지 않을 경우 맥쿼리측에서 추가 보조금을 요구하거나 소송을 거는 등 대응을 했을 거라는 식의 언론 플레이를 하고 있는데, 정말 개념이 없는 것 같다. 애초에 약속을 어기고 힘으로 투자기업을 찍어 누르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게 문제다. 약속은 지키자고 하는 거지, 어기려고 하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이번에 바뀐 계약으로 인해 서울시가 앞으로 26년간 지출해야 할 금액은 얼마일까? 이것에 대해 서울시가 발표한 금액은 1조 9816억원이다. 도대체 7464억에 이율 4.15%[각주:1]~4.86%에 매 분기 원금까지 상환하는 구조에서 어떻게 이런 거액을 지출하게 되는 지 개인적으로는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데, 지들 잘했다고 발표하는 자료에서 일부러 금액을 뻥튀기할 이유가 없으므로 저 2조에 육박하는 예상금액 발표를 액면 그대로 일단 받아들여보자.


 이 경우 투자기업과의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어기는 도시라는 불명예를 제외하고, 서울시가 본 금전적 손해는 (내 무난한 시나리오의 계산에 의할 경우) 1조 6945억, 그러니까 1.7조다.


 여기서 중간 결론. 박원순은 탄핵감이다.


 만약 계속 많은 MRG를 제공했던 5천억 시나리오를 적용했을 때도 손해금액은 1.47조 수준. 그렇지만 난 사실 계속 요금인상을 찍어 누를 정당한 방법은 없었다고 생각하기 떄문에, 이 시나리오에 대해서는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 게 맞을 것 같다.

 

 그러니까 서울시민은 박원순의 9호선에 대한 포퓰리즘 정책 때문에 대략 1.7조 정도를 손해 봤다. 이 금액을 서울시 1인당 금액으로 나누면? 서울시 인구가 대략 작년 말 기준 1044만 명이었으므로, 1인당 16만 2310원 정도 손해를 봤다.


 이건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너무 끔찍한 일이다. 나는 아직도 어떻게 7464억 땡겨 썼는데 2조가 나가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 계산이 엉터리 계산이길 바랄 뿐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건 어리석고 광신적인 깨시민들과 좌파 어용언론, 그리고 나꼼수와 경실련 등 때문이라고 밖에는 할 말이 없다. 아마 이 글에도 회계의 ㅎ자도 모르는 여러 멍청이들이 악플을 달 것 같은데, 회계를 모르는 건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지만, 기초지식도 없음에도 아는 척을 하면서 모두에게 피해를 끼치는 건 죄다. 그런 죄들이 쌓여 이런 끔찍한 결과를 불러왔다.


 박원순은 굉장히 위험한 정치인이다. 그는 대중을 기만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이런 심각한 중우정치를 보고 있자니 매우 답답하다. 냉정한 판단력 없이 도덕주의적이고 정의감만 불타는 사람들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인 것 같다.


 누가 박원순의 이런 사기성 정치쇼에 대항할 수 있을까? 깨시민들에 의해 맥쿼리는 이명박과 결탁한 사악한 자본으로 낙인찍혔고, 박원순은 시민을 위해 복지행정을 펼치는 정의로운 영웅으로 포장되었다. 이것에 정면으로 반대하는 것은 상당한 정치적 힘과 용기가 필요한 일인데, 지금 보면 그럴 수 있는 거물 정치인이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라도 그것은 불가능하다. 끽해봐야 일부 서울시의원들과 명성이 높지 않은 국회의원들이 분투하고 있는 정도가 현실이다.


 솔직히 내년에 박원순이 재선된다면 이 인간이 어디까지 서울시를 말아먹을지 모르겠다. 박원순정도로 이미지가 신선하고 언론 플레이에 능한 정치인이 작정하고 포퓰리즘 정책을 쓸 경우, 현재 한국 구조에서는 대응하기가 너무 어렵다. 각종 우파언론이나 단체, 우익 개인들은 대체로 좌파들 못지않게 멍청하고, 극단적인데다 폭력성향까지 보이곤 해서 정말 이미지가 나쁘고 신용을 너무 잃었다. 그렇다고 무슨 다른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다. 기껏 대안세력이라는 게 안철수인데, 그 안철수가 꽂아준 게 박원순이니. 심지어 지금 추세로 보면 박원순은 대통령도 될 수 있다. 그것을 상상하면 좀 머리가 아프다.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해서 좌우파들이 다 제정신이 아니다. 대립은 극단적이고, (기대보단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박근혜정부 이후가 우려된다. 일단은 박원순의 재선을 막는 게 중요해보인다.




  1. 9호선 시민펀드에 대한 자세한 발표를 보니 모두 4.3%의 연리가 아니라 몇 년 만기냐에 따라 이율이 달랐다. 4년 만기는 4.15%, 5년 4.25%, 6년 4.35%, 7년 4.45%이며 평균이 4.3%이라는 뜻이었다. [본문으로]

- 서문과 참고자료 -



 본문은 지난 포스트, ‘메트로 9호선과 맥쿼리, 그리고 서울시와 민자사업 이야기’의 후속글로, 이번에 서울시 메트로 9호선의 대주주가 교체된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작성한다. 


 메트로 9호선에 관련한 관심이 매우 뜨겁다보니 본 블로그에 대한 유입도 많고, 심지어 누가 일베에 퍼가서 일베에 오르기까지 하는 별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평소에 본 블로그는 절대 일베랑 사이가 좋을 수가 없다. 난 그곳을 싫어한다.) 그런데 마지막에 내가 쓰지 않은 좌좀 운운하는 문장 하나를 덧붙였더라. 참 왜 그런 조작을 하는지. 컨텐츠를 함부로 변경한 건 죄다.


 한편 때때로 링크가 열린 곳 중 열람 가능한 곳을 보면 이전 글 본문을 (배경지식이 너무 없어 이해력이 부족해서인지, 의도적인 건지) 심하게 오독하는 경우도 있고, 믿고 싶지 않아하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이 기회에 첨언하자면, 지난 본문을 이해할 수 없는 정도라면 이번 맥쿼리 건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니, 진실을 알고 싶으면 약간의 기본지식 공부가 꼭 필요하다. 회계, 투자, 금융, 인프라 등에 대한 기초지식이 심하게 부족한 상황에서 오보와 선동에 휘둘리며 박원순을 찬양하거나 하는 것은 대단히 어리석고 또한 위험한 행위다. 만일 공부고 뭐고 다 귀찮다면 아예 이쪽에 관심을 안 가지는 게 차라리 낫다. 어이없는 오해보단 아예 모르는 게 나은 것이다. 또한 정치인은 기본적으로 찬양의 대상이 아니다.


 그 외 더 상세한 자료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는데, 찾지 못해서 어려움을 겪는 것도 본다. 그래서 약간의 자료들을 볼 수 있는 곳을 알려드리고 글을 시작하려 한다.


 우선 서울시가 메트로9호선을 만들던 당시의 자료는,


 http://ebook.seoul.go.kr/web_http/section/seoul_main.php


 이 링크에서 ‘9호선’으로 검색을 하면 볼 수 있다. 단 원하는 자료를 찾으려면 꽤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서울시메트로9호선’의 공시를 보려면, dart에 나와 있기는 한데 저렇게 검색하면 안 나온다. ‘서울시메트로구호선’으로 검색해야한다.


 또한 몇 가지 이야기하고 시작해야할 참고사항이 있다.


 우선 이명박 전 대통령과 ‘맥쿼리한국인프라투융자회사’(우리가 흔히 아는 맥쿼리) 사이엔 어떠한 관계도 입증되지 않았다. 이상득의 아들이자 이명박의 조카인 ‘이지형’은 ‘맥쿼리한국인프라투융자회사’가 아닌 ‘맥쿼리IMM'의 대표이사였는데, 이 두 회사는 이름은 비슷하지만 어떤 밀접한 관계를 지닌 회사가 아니다. 경실련이나 나꼼수 등의 오인에 기원한 무책임한 언론 플레이로 인해 정말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하고 있지만, 맥쿼리인프라와 이명박 정권과의 관계는 전혀 입증된 것이 없다. 이지형이 경실련을 상대로 치른 명예훼손 소송이 있고, 여기서 패소하여 더 많은 오해가 생겨났는데 이는 시민단체인 경실련이 감사해야 한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것에 대해 재갈을 물릴 수 없다는 의미이지 경실련이 한 말이 참이었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시민 사회가 경실련, 나꼼수 등에 도의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울시와 맥쿼리 사이의 소송과 맥쿼리의 패소에 대한 이야기도 간단히 해야 할 것 같다. 본래 맥쿼리는 초기 계약에서 스스로 운임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법원이 서울시와 협약을 해서 결정하라고 판결을 한 것은, 처음 9호선을 개통할 때 - 당시엔 오세훈 정권이었다. - 서울시와 공문이 오고갔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즉 1년 후 요금조정을 다시 하기로 했기 때문에, 그 약속이 본래의 운임결정권보다 시간적으로 후에 일어난 일이므로 양측은 합의로 요금을 조정해야 한다는게 법원의 판단이었다. 즉 당시에 판결 자체는 맥쿼리가 패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다고 서울시가 이긴 것도 아니었다. 서울시는 요금인상 협상에 제대로 응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나는 저 1심 판결이 원칙적으로는 바람직하지 못한 판결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서울시가 요금협약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에, 요금조정의 권한은 맥쿼리에게로 돌아가는 게 이치에 맞지 않나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9호선의 수요예측은 매우 잘 들어맞았고, 그 정확성은 상당히 높게 평가할 만하다. 9호선이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은 것은 처음에 계산한 운임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고, 수요예측을 한 사람은 매우 훌륭하였다고 본다. 그럼 이제 본문으로 넘어가겠다.




- 대주주의 교체와 손익 -



 우선 저번에도 이야기했지만 이번에 박원순이 저지른 이 심각한 포퓰리즘 대형사고로 인해, 일반 서울시민과 한국인은 모두 잠재적인 피해를 봤다. 지난 포스트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이제 한국은 정부가 외국계 투자회사와의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뒤집어엎는 국가가 되었다. 이는 심각한 신용의 추락을 초래하며, 향후 투자를 유치할 때 큰 불이익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또한 향후 전반적인 SOC를 추진하는 데 있어서 악영향이 생길 수밖에 없기도 하다. 이것은 박원순과 박원순 지지자들이 저지른 대형사고이며, 이것에 대해 나는 그들이 사악하고 어리석어서 모두에게 큰 죄를 지은 것이라 본다. 사실 나비효과라는 면에서 본다면 오세훈이 그렇게 무책임하게 시장 그만둔 것부터가 중죄지만.


 한편 솔직한 심정으로 이번 대주주 교체는 매우 답답하고, 짜증나는 동시에 웃기기도 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새로운 대주주라는 쪽이 맥쿼리인프라의 대주주들이기 때문이다.


* 맥쿼리 대주주들 *



* 새로운 9호선 주주들 *




 한화생명보험, 교보생명보험 등 맥쿼리 대주주인 동시에 새로운 9호선 대주주가 되는 기업들은 이번 인수가 전혀 손해일 수가 없다. 흔하게 보이는 오해와는 달리, 이들은 맥쿼리에서 빠져 나간 게 아니다. 이들이 맥쿼리의 소유주이고, 맥쿼리 이름으로 9호선 주식회사 지분을 소유하다가 직접 더 많이 소유하는 식으로 바뀐 것이다. 또한 맥쿼리는 기업 형태 자체가 모든 이익을 배당하는, 일종의 금융상품과 비슷한 것도 참조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계약이 어떻게 변경된 건지, 그것의 손익은 어떻게 되는지를 알아보도록 하자.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서울시와 서울시민들은 이번 계약에서 손해를 보았다. 이익을 본 것은 이미지가 좋아진 박원순과 맥쿼리 주주, 그리고 새로운 9호선 대주주들뿐이다.


 일단 지난 포스트에서 이야기했던 맥쿼리의 손해에 대하여, 그 손해 이유를 간략하게 다시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1) 맥쿼리는 9호선 주식회사에 대해 주식으로 418억, 연리 15%의 후순위채권으로 335억을 투자하였다. 그리고 9호선의 최대주주는 아니지만 운영 권한과 책임을 얻어, 실제 운영을 ‘서울9호선운영’이라는 회사에 위임하였다.


2) 운행을 시작한 9호선엔 기대 예상치에 거의 근접하는 승객이 몰렸지만, 맥쿼리는 애초에 계산하고 약조한 운임을 받지 못했다.


3) MRG는 9호선 운영과정에서 발생하는 전체적인 손해가 아닌, 운임에 대한 손해만을 보상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운임수입 예상의 90%에 해당하는 MRG를 받아도 상당한 손해가 발생하였다.


4) 9호선 주식회사는 상당한 손해가 누적되면서 결국 초기자본이 전부 잠식되고, 회계상 자본이 남지 않은 적자기업이 되었다. 이는 맥쿼리 입장에서 보면 주식으로 투자한 418억이 날아가는 결과였으며 (다른 대주주들도 마찬가지.) 335억의 후순위채권 또한 향후 운영기간동안 본래의 회사 자본을 충분히 만회하지 못하면 회수가 불가능해지게 되었다. (이 후순위채권은 9호선 주식회사에 대한 채권이기 때문. 서울시는 보장하지 않음.)


5) 견딜 수 없게 된 맥쿼리는 다들 아는 시위를 벌이게 되었다. 이후 박원순 포퓰리즘 모드.


 여기까지가 맥쿼리 및 다른 9호선 주주들이 크게 손해를 입었던 과정이다.


 그런데 우선 큰 자본잠식이 일어난 저 9호선 주식회사를, 서울시 및 새로운 대주주들은 본래의 가격에 인수해줬다. 이로 인해 맥쿼리는 기존에 발생한 손해들을 거의 만회했고, 큰 갈등 없이 적잖은 수익을 올리면서 빠져나왔다. 덕분에 맥쿼리 및 현대로템 등 9호선 기존 주주들은 신났다.


 서울시가 만약 그냥 계속 MRG를 해줬다면 얼마나 지출이 되엇을까? 일단 MRG는 15년간 보장되며, 그 보장률이 계속 줄어든다. 이미 MRG는 대략 4~5년 정도를 해줬으므로, 본래의 계약대로라면 MRG를 10년 정도만 더 해주는 것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그런데 MRG로 서울시가 돈을 얼마나 썼을까? 2009년부터 해마다 지불한 MRG 금액은 다음과 같다. 2009년 131억원, 2010년 293억원, 2011년 414억원, 2012년 429억이다. 이 기간은 초기 5년에 해당하는 90%보장기간인데, 4년 합쳐서 겨우 1267억원을 보장해줬을 뿐이다.


 하던 방식대로 갔다면, 어느 정도 운임이 낮게 유지되어서 MRG 금액이 매년 오른다 해도 대략 서울시는 MRG기간 내내 4천억원 정도만을 지출했을 거라고 어림 추산한다. 그런데 서울시는 지금 대주주 변경으로 3조를 아꼈다고 언론 플레이를 하고 있다.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워낙 황당해서 어떻게 이런 계산을 냈나 보니까, 일단 앞으로 MRG로 줘야 되는 돈을 7830억원으로 과할 정도로 많게 계산한 후, 맥쿼리가 요금을 올릴 수 없게 하는 대신 미인상 보조금을 지급한다고 가정하고 그 금액을 계산하니 그게 4조 3915억원이라는 것이다. 참 기가 막힌다. 운임 인상 약속을 어기는 걸 전제로 언론 플레이를 하는 건 그렇다 치고, 혹시 앞으로 26년간 지하철 요금 동결할 생각인 것인가.


 또한 멍청한 음모론자들은 맥쿼리가 쉽게 물러난 이유에 대해 좀 생각해봐야 한다. 서울시가 힘으로 맥쿼리를 내쫓은 것처럼 보이는가? 박원순이 영웅이어서 영웅적인 업적을 이룬 것일까? 세상은 그리 단순하지 않고, 박원순은 독재권력이 없다. 만약 맥쿼리가 엄청난 이권을 누리고 있던 상황이었다면 순순히 물러날 이유가 없다. 실제 박원순은 맥쿼리를 포함한 기존 9호선 주주들에게 자본잠식이 된 회사를 정가에 사주는 파격적인 혜택을 제공했고, 그렇기에 심각하게 손해보던 맥쿼리 등은 웃으면서 이익보고 빠져나간 것이다. 물론 이것은 정치쇼이다. 난 솔직히 살면서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정치쇼만 하는 악질 정치인은 처음 본다. 박원순의 다른 정치쇼들에 대한 포스트들을 링크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한 정치쇼’

‘박원순 서울시장이 과연 서울시 빚을 줄였을까?’


 그리고 또 보자. 왜 맥쿼리 대주주 출신의 새로운 9호선 대주주들은 아무 불만 없이 웃으면서 겨우 4.86% 수준의 수익률 상품에 막대한 추가투자를 했을까? 이것을 이해하려면 박원순이 만든 새로운 이 투자상품이, 기존 주주들이 참여했을 당시의 투자상품과는 아예 성격이 다른 것이라는 점을 이해해야만 한다.


 우선 가장 큰 차이는 불확실성이 해소되었다는 것이다. 지하철을 운행하기 전에 예측으로 투자를 하는 것과, 운행 후 승객의 증가 추이를 보고 투자하는 것 사이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금융은 기본적으로 고위험은 고보상, 저위험은 저보상이다. 실제 9호선은 예상치를 상회할 정도의 승객이 몰려들고 있기 때문에, 운임을 자율 결정할 수 있거나 보상을 제대로 받을 수 있다면 매우 안전한 투자처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서울시의 보증 방식도 바뀌었다. 과거 MRG는 15년간 예상 운수수입만을 보장해주는 것이었다. 그것도 첫 5년은 90%, 그 다음 5년은 80%, 그 다음은 70%을. 그런데 이번에 박원순이 제시한 조건은 그게 아니다.


 서울시는 새로운 대주주들에게 다음과 같은 보상을 해 준다. 우선 9호선 주식회사의 가치는 7464억인데, 이 중 1000억은 채권형 시민펀드고 나머지에 대해 연리 4.86%의 이자와 함께 상각액, 운영비용을 다 합쳐서 100% 보상해준다. 물론 여기서 운임수입, 부속사업 수입은 빼고 나머지만 보상하긴 한다. 즉 쉽게 이야기해서 대주주들 입장에서 이 상품은 6464억에 대한 연리 4.86%의 고정수익을 서울시 보증으로 원금과 함께 매 분기 상환받는 상품이다.


 이 안전성은 기존의 MRG와는 완전히 다르다. 이전 대주주들은 9호선 주식회사에서 MRG를 빼면 알아서 수익을 내야 했다. 서울시가 비협조적인 기간 동안 이미 자본잠식이 일어났던 게 현실이다. 그런데 저 조건은 사실 그냥 원리금 상환이라는 방식을 빼면 4.86%짜리 채권이나 다름없다.


 근래 이 정도 신용에 이 정도 채권을 찾기란 쉽지 않다. 현재 한국 국채 금리는 2.8% 정도다. 국채보다 9호선에 투자하면 2% 정도 수익률이 더 높다. 거기에 원금까지 꾸준히 회수된다. 유일한 문제라면 서울시가 이미 한 번 엎은 거 두 번 못 엎을 건 아니라는 건데, 사실 결과적으로 지난 대주주들도 큰 불만까지는 없이 적당히 얻어먹고 떠난 만큼, 다른 안정성을 감안하면 감수할 만 하다고 생각해볼 법 하다. 또한 서울시가 어떠한 잘 안 알려진 혜택을 추가로 제공했을지는 또 모르는 일이다. 이런 계약에선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기득권이 얼마든지 오고갈 수 있다.


 그렇다면 서울시의 손익은? 결론적으로 박원순 빼고 서울시가 얻은 건 운임을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게 된 것뿐이다. 만약 서울시가 약속을 지켜 맥쿼리와 요금 협상을 잘 했다면, 충분한 승객이 타고 있는 만큼 MRG도 많이 줄 거 없고 4조 이상이라고 언플을 한 미인상 보조금도 전혀 지급할 필요가 없었을 거다. 그나마 MRG는 앞으로 10년 정도만 주면 될 것이었고, 그 금액도 그리 크지 않았을 거다.


 대신 서울시는 7464억이라는 새로운 빚을 얻었다. 기존의 9호선 주식회사는, 그 자본금을 서울시가 상환해야 할 의무가 없었다. 그러나 이젠 이야기가 달라졌다. 이제 서울시는 9호선 운영에서 나오는 수익에 세금을 더해 저 7464억의 원금과 이자를 매 분기 상환해야한다. 결국 맥쿼리와 운임 잘 협상하고, 그냥 MRG 주는 것보다 더 많은 지출이 일어나게 되었다. 최소 수천억원은 손해본 것 같다. 그것도 손바닥 뒤집듯 투자회사와의 약속을 어기는 도시라는 불명예와 함께.


 서울시민은 저렴한 9호선 요금을 얻었고, 대신 바닥으로 떨어진 신용과 막대한 빚을 얻었다. 9호선은 이 난리를 친 이상 앞으로도 낮은 운임을 유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기에, 저 부채를 상환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 채권형 시민펀드? -


 이번 7464억의 서울시 부채 중 1000억은 시민펀드로 채운다고 한다. 이 이율은 4.3%으로, 대주주들의 상품보다는 좀 낮다. 그렇더라도 평범한 채권보다는 이율이 높다.


 개인적으로는 이것 또한 박원순 특유의 언론 플레이라고 생각한다. 시민펀드 공모할 거 없이, 그냥 채권 발행하면 그게 더 이율이 낮기 때문이다. 여러 모로 평소에 입만 열면 서울시 채무 없애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할 일은 아니다.



- 박원순의 정치쇼 -


 9호선에 대한 이야기는 이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박원순의 이번 정치쇼는 정말 답답하고 어이없는 것이다. 그와 투자자들만 이익을 봤다. 기자들은, 특히 자칭 진보좌파 기자들은 진실에는 관심도 없고 서울시의 말이나 경실련, 나꼼수의 음모론을 받아 적을 뿐이다. 그들은 회계도, 금융도, 경제도 모른다.


 문재인도 안철수도 인기가 예전 같지 않다. 박원순은 차기 서울시장과 대통령을 모두 노리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박원순이 매우 위험한 정치인이며, 본인의 이미지 관리를 위해 모든 것을 다하는 사람이라 판단한다. 이번 정치쇼로 그는 시민 복지를 위해 악덕 자본과 싸우는 영웅이 되었다.


 어느 시대에나 이런 위험한 포퓰리즘 정치인이 나올 수 있다. 서울 시민들이 다음 지방선거에서 보다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다. 일단은 그가 뭘 잘못했는지, 어떻게 정치쇼를 하고 있는지를 알리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추가글 : 서울시민들의 금전적 손해에 대한 계산 (링크)




근시안적 빈곤 - 체감 물가가 높아지는 한 이유

경제 2013. 10. 10. 18:58 Posted by 해양장미

 몇 년 전부터 유행한 이런 말이 있다.


 ‘부자들은 채소와 과일을 먹고, 중산층은 고기를 먹고, 서민은 인스턴트를 먹는다.’


 공감이 좀 가실지 모르겠다.


 이 이야기가 담고 있는 문제는 꽤나 복잡하다. 분명한 건 이게 한국만 겪고 있는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거의 세계 어느 나라나 같은 문제를 겪고 있다. 다만 한국은 변화 속도가 빠르고, 향후 다소 심한 양상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큰 편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문제로 인한 피해는 점차 확산되고, 더욱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어갈 것이다. 본문에서는 위와 같은 문제가 생기는 이유와 피해 전망, 그리고 해결 방안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한식이 현대의 모습을 갖추게 된 건 지극히 최근의 일이다. 150년 전 조선시대 말, 우리 조상님들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밥상 앞에 앉아 있었다.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해 백미밥과 배추김치를 기반으로 하는 현대의 한식의 보편화는 근현대의 기술이 있지 않고서는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이 중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배추는 현대 한식에서 가장 중요한 잎채소이다. 그런데 사실 한국 배추처럼 거대하고 꽉 차게 결구가 되어있는 형태의 배추는 매우 드물다. 이런 형태의 배추는 작년부터 영어로 ‘Kimchi Cabbage’라 부르게 된 것 같다. 이는 본래의 배추 형태와는 달리, 포기김치를 담그기 위해 개량된 종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한 가지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개인적으로 오랜 기간 의문을 가졌던 것 중에 ‘배추뿌리’의 존재가 있었다. 1960년대에 나온 건강 서적을 보면, 배추보다 배추뿌리가 몸에 좋으니 챙겨 먹으라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그 시대에 살아보지 않은 나는 막상 배추뿌리를 본 적이 없었다. 시판되는 배추는 모두 뿌리가 잘려 있었으니까.


 배추뿌리가 문화적으로 먹는 것이었다면 굳이 잘라서 팔 이유가 없었다. 부유해진다고 먹던 걸 일부러 잘라 버리는 건 좀처럼 생기지 않는 일이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답은 의외로 쉬운 데 있었다. 한국에서 1960년대에 키우던 배추는 요즘 배추와는 종류가 다른 배추였던 것이다.


 옛날 배추를 현대에는 보통 토종배추나 뿌리배추 등으로 부른다. 이 배추는 무처럼 뿌리를 먹을 수 있고, 흰 부분도 가늘며 속이 차지 않는다. 사실 알고 보면 배추는 식물학적으로 순무와 같은 종인데, 토종배추는 순무처럼 다소 매운 맛이 난다고 한다. 나는 아직 먹어본 적이 없지만. 토종 배추의 사진을 첨부한다.





 현대적인 대형 결구배추가 대량 재배되게 된 건 1970년대부터이다. 그런데 배추를 한번이라도 키워 본 분들은 다들 아시겠지만, 배추는 더위에 약한 채소다. 그렇기에 한국 기후에선 늦여름에 심어 가을동안 키운 후 김장을 담그는 채소인 것이다[각주:1]. 대형 결구배추는 이 짧은 기간 동안에 한 알의 씨에서 그리도 거대한 채소로 성장해야한다. 당연히 엄청난 영양분이 필요하고, 그마저도 한국인들은 일 년 내내 배추를 원하게 되었다.


 이 문제 때문에 한국 고랭지는 엄청난 면적이 배추로 뒤덮이게 되었다. 고랭지는 여름에도 온도가 많이 올라가지 않기 때문에, 연중 계속 배추를 키울 수 있다. 그런데 농업에 조금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다들 아시겠지만, 이렇게 넓은 면적에 단일 작물이 자라려면 그만큼의 관행적인 영농법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쉽게 말해 지속적인 종자개량과 다량의 화학비료, 농약의 투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실제 배추는 배추흰나비라는 이름까지 붙은 해충이 있을 정도로 많은 벌레들이 노리는 작물이다.


 그나마 한동안은 이런 식으로 수요를 버틸 수가 있었다. 기후는 비교적 안정적이었고, 유가도 그리 높지는 않았으며 농촌 인력도 그럭저럭 노동력이 있었다. 또한 땅심에도 어느 정도의 여유는 있었다. 그렇지만 오랜 기간 누적되던 각종 문제들은 최근에 심각한 양상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젠 기후가 변덕이 정말 심하다. 유가는 높아져서 화학비료와 농약의 가격도 올랐다. 물론 농촌의 노동력은 말할 필요도 없다. 50대면 젊은이 취급을 받을 정도니. 그리고 너무나도 오래 지속된 약탈적 농업은 한국 농지들의 지력을 크게 떨어뜨리고 말았다.


 한국인들은 유교적인 사고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국가가 윤리성을 가지고 국민을 부모처럼 보살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에 한국인은 일 년 내내 배추 가격이 안정되어야 한다는 식의 이상한 관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자연 법칙상 가능한 일이 아니다. 배추는 본래 가을에 한 번 재배되는 채소이고, 수요가 많다 보니 고랭지나 시설 재배로 부족분을 채우고 있을 뿐이다. 그나마도 기후가 나쁘거나 하면 당연히 수확량이 떨어지는 게 자연의 이치고, 더 나아가 너무 오랜 기간 동안 무리하게 많은 배추를 길렀기 때문에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코스트로 같은 양과 품질을 가진 배추를 생산할 수는 없다. 배추는 쌀, 고추와 함께 한국에서 가장 첨예하게 산업화된 작물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한 배추는 한 일례일 뿐이다. 사실 한국인들이 보편적으로 좋아하는 거의 모든 식재료들이 적잖은 문제를 안고 있다. 특히 한국 농업의 현실은 알고 나면 좀 골치 아픈 분야다. 기후는 점점 변덕스러워지고 있고, 너무 오랜 기간 동안 생산량 위주로 재배를 해온 결과 유기물함유량이나 양이온치환능력같은 땅심은 크게 떨어졌다. 애초에 한국 땅은 화강암질이기 때문에 좋은 토질이 아니다.


 한국 정부는 오랜 기간 동안 도시 서민들이 싼 가격에 충분한 채소를 먹을 수 있도록 하는 데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여왔다. 이런 정책이 한국의 산업화와 경제 성장, 그리고 보건에 큰 공헌을 한 것은 맞다. 그러나 그런 정책이 지속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몇 년 전부터 채소 가격이 요동치고, 종종 구제역이나 조류독감 같은 재앙이 발생하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또한 한국인들은 다분히 현대적인 기술이 적용된 것들에 전통의 탈을 씌우고, 그것에서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게 되었다. 하나하나 예를 들어보자면 위에 말했듯 대형 결구배추는 현대의 발명품이고, 대체로는 상당한 화학비료와 농약을 투입해야만 나오는 작물이다. 흰쌀밥은 현대적인 도정 기술의 산물이고, 멸치는 현대적 조업 기술 및 대규모 가공 기술의 산물이다. 우리가 대체로 흔히 먹는 고추는 과거엔 이리 널리 퍼지지 못했고, 그 품종도 현대화되었을 뿐더러 대규모 재배를 위해 적잖은 화학 약품들이 투입된다. 고추는 병충해에 약하기 때문에 국민약골 소리까지 듣는 작물이다.


 축산업은 공장식 축산 문제 이야기가 많이 나도니 굳이 이야기를 많이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조금 설명하자면 한국의 축산업은 집약적이고, 사료는 거의 수입하며 품종 문제등도 있다. 땅도 비싸고 인건비도 비싸기 때문에 방목하는 것도, 풀을 베어서 주는 것도 어려운 경우가 많다. 물론 보다 신경 써서 풀도 베어주고 공간도 확보하면서 가축을 키우는 농가도 있기 때문에 전체를 나쁘게 말할 수는 없지만, 기본적으로 좋은 여건은 아니라는 의미다. 무엇보다도 더 나은 방식으로 키운 농축산물이 아직 충분히 대접받지는 못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수입 개방 압력은 점점 커지고 있고, 도시 서민들은 싸게싸게만 외치면서 물가가 올라 죽겠다고, 유통업자들이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사실 유통업은 문제가 아니다. 딱히 큰 부자가 된 전통적 유통업자를 나는 본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한국의 높은 물류비용이나 리스크, 보관 비용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소위 유통을 현대화시킨 대형마트는 또 다른 방식으로 악의 축같은 대접을 받고 있으니, 상황파악에 좀 더 이성적일 필요가 있다.


 정부는 앞으로도 더욱 저렴한 농축산물 공급을 위해 보조금을 지급하고, 대형 영농을 탄생시킬 것이다. 그러나 그런 방식은 지금껏 그래왔듯 더욱 농촌을 압박할 거고, 장기적으로 생산성을 더 낮출 것이다. 기후는 점점 더 예측하기 어려워질 거고 농산물 가격은 올라갈 수밖에 없다.


 지금도 그렇지만 서민들은 점점 더 국내산 신선식품을 먹기 어려워질 것이다. 서민들의 우는 소리는 점점 더 심각해질 것이고, 정치가들은 더욱 더 달콤한 말을 하면서 농촌을 더 압박하고 포퓰리즘 정책을 펼칠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빈곤을 후대에 떠넘기면서 근시안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빈곤은 점점 누적되고 있고, 이 체제가 지속 가능한지에 대해 나는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상황을 이해하고, 좀 더 지속 가능한 사회 체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자칭 진보라는, 깨어있다는 시민들은 이런 문제엔 진지한 관심이 없다. 몇 년 전 구제역 사건 때 자칭 진보들이 걱정하던 것은 대체로 고기값과 수질 오염 뿐이었다.


 수입에 의존하는 게 한 방법이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중국산 농산물도 시간이 지나면 결코 지금처럼 저렴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은 아직도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고, 어쩌면 스스로 식량을 자급자족하는 것조차 어려워하게 될 수도 있다. 또한 12억 인구의 인도가 경제성장을 더 하게 되면 세계 식량은 더 모자라질 가능성이 높다. 한동안 지속적으로 국제 식량 가격은 올라갈 것이다.


 국제유가의 추가 상승 여력도 문제를 크게 만들 수 있다. 모든 화학비료나 화학농약, 농기계에는 석유가 소모된다. 유통에도 석유가 필요함은 물론이다. 식량 가격의 지속적인 상승은 도시 서민들의 식단을 더욱 불량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고, 이는 장기적으로 국민의 심신 건강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


 과거에 미래로 미뤄둔 근시안적 빈곤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개인적 차원에서 이런 문제를 개선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있지만, 사회적으로 보면 더욱 큰 비용이 나갈 가능성이 높다. 오늘도 자칭 진보주의자들은 더 저렴한 물가와 더 많은 복지, 더 낮은 세금을 원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해줄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고, 사실 지금도 정부는 오래 지속되어온 포퓰리즘 정책으로 시민들의 불만을 누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어떤 사회가 문제를 잘 해결하려면 진보적인 사람들이 영리하고 이성적일 필요가 있다. 그러나 한국의 자칭 진보들은 그런 것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다. 자칭 진보들이 징징대면 징징댈수록 빈곤은 심해지기 마련이다. 그들은 남의 주머니를 털어 내 주머니를 채우는 데만 급급하다. 근시안적이고 이기적인 이들이 지역을 끼고 갈라져 진영논리를 앞세우며 비아냥거리고 다투는 사이 우리의 미래는 점점 빈곤해지고 있다. 누구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는지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1. 일부 추위에 강한 배추는 월동하기도 한다. 이것을 우리는 대체로 봄동이라 부른다. [본문으로]

 개인적으로 진보좌파를 구분하는 기준은 지난 포스트, ‘한국형 6단계 이념 분류’ 에서 밝혔다. 본문에서는 저 포스트에서 (4), (5), (6)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통합하여 진보좌파라 이야기할 것이다. 그래프를 첨부한다.





 한국의 진보좌파가 사회에 끼치는 가장 큰 문제라면 사실 경제적인 면에서 현실성이 없다는 것이다. 다분히 교조적인 (5), (6)은 그렇다 치고 문화적으로 자유주의적인 (4)가 경제적으로 비현실적 선택을 하는 것은, 잘못된 이해를 하고 있는 것은 왜 그럴까? 본문에서는 이것에 대한 사견을 좀 이야기하려 한다.


 본래 한국에서 생겨나지 않은 말 중 본래의 어감과 꽤 다르게 번역된 말들이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대통령’인데, 이 어감은 ‘president’와 분명히 좀 다르다. 그런데 이건 자본주의도 마찬가지다. 자본주의의 영문은 ‘capitalism'이다. 한국에서 ’캐피탈‘이라는 말이 쓰이는 용례 덕도 있겠지만, 어감이 확 달라지지 않는가?


 진보좌파가 경제에 대해 잘못된 이해를 하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관념적 윤리성이다. 많은 그들은 이 시장이 윤리적으로 잘못되어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윤리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면에서 그들은 사회성을 앞세우려 들고, 복잡한 각종 금융 기술들을 사기적인 것이라 생각하여 ‘악’으로 규정한다. 물론 실제로 수많은 파생 금융 기술들이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선악을 쉽게 나누고 구분하려는 건 진보좌파가 가장 빈번하게 가지곤 하는 미성숙한 모습 중 하나다.


 경제 분야에서 가장 큰 문제는 너무 많은 진보좌파인들이 ‘돈’자체에 대해 제대로 이해를 못한다는 데 있다. 너무 많은 진보주의자들은 돈을 실물이라 착각한다. 실물의 변형된 형태를 돈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태도는 사실 자본주의에는 맞지 않는다. 1) 이자가 있고, 2) 발행기관이 있는 한 돈은 실물일 수가 없다. 그리고 그들이 딱히 크게 어리석어서 이런 착각을 하는 건 아니다. 정말 오랜 세월동안 인류는 돈이 실물이라고 착각을 해 왔다. 돈이 실물이 아님을 깨달은 사람들이 먼저 부자가 되었고, 그런 사람들이 사는 국가가 제국이 되었다. 이것에 대해 조금 이야기를 해 보자.


 사람들은 오랜 시간동안 금화와 은화를 화폐로 썼다. 금과 은은 그 자체로 귀금속이기 때문에, 순도만 보장된다면 그 자체로 실물로 가치가 있었던 것이다. 근대 이전 화폐 발행기관들은 충분한 신용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그렇기에 화폐 자체의 가치를 실물로 보장해주지 않는다면 아무래도 가치가 있기 어려웠다. 사실 너무 많은 진보좌파의 인식은 안타깝게도 이 시대에 머물러 있다.


 대항해시대가 시작될 무렵, 에스파냐(스페인)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앞서갔다. 그들은 남아메리카의 은광에서 엄청난 은을 발견했는데, 당연하게도 그들은 부자가 되었다고 좋아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았다. 오히려 에스파냐는 얼마 안 되어 브리튼(영국)과 네덜란드에 밀리고 만다. 왜 그들의 막대한 부는 실효성이 없었던 걸까?


 MMORPG계열 게임을 해보신 분이라면 이 문제를 좀 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게임 속 화폐는 유저가 많아지면 금방 그 가치가 떨어진다. 많은 MMORPG게임에서는 따로 화폐발행기관이 없고, MOP을 잡으면 돈이 생기게 된다. 그런데 MOP은 계속 무한히 리필되기 때문에 유저들은 약간의 노동으로 무한한 돈을 벌 수 있다. 이것은 엄청난 은광을 발견한 에스파냐와 거의 동일한 상태다. 너무 많은 돈이 시중에 풀리면, 돈은 그 가치가 떨어진다. 시중에 돈이 2배가 되면 예전에는 은화 1개로도 살 수 있던 고깃덩어리를 은화 2개는 줘야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돈은 교환의 매개수단일 뿐 실물이 아니다. 관리되지 않는 돈은 풍년에 농산물 가격 폭락하듯 언제든 그 가치가 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후에도 인류가 돈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일부 천재들이 돈의 본질을 빨리 직감하고 막대한 돈을 벌긴 했지만, 그것은 소수에 국한된 경우였고 체계화되어 있지도 않았다. 인류가 돈을 바르게 이해하고 통제하게 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1971년, 서방 세계는 드디어 화폐를 실물과 완전히 분리시켰다. 그 이전에 달러는 금화의 변형된 형태였다. 35달러는 언제든 금 1온스로 바꿀 수 있었다. 이 제도를 금본위제라 한다. 그리고 금본위제 폐지 이후, 인류의 경제는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되었다.


 수많은 진보좌파들과 (한국에서는 아니지만) 보수주의자들은 금본위제의 폐지를 탐탁찮아한다. 그러나 금본위제는 본질적인 모순을 가지고 있었다. 화폐에는 이자가 붙는데, 금은 저절로 증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자가 존재하는 한 금의 가치는 저절로 올라가게 된다. 장기적으로 이 모순을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즉 이자가 있는 자본주의에서는 금을 화폐로 쓸 수 없다. 자본주의가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가는 순간이었다.


 한편으로 인류가 금을 돈으로 썼던 것은 발행기관의 신용문제 때문이었다. 금이 어떠한 발행처보다도 믿을 만했기 때문에 금을 돈으로 썼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젠 더 이상 금을 돈으로 쓸 수 없게 되었다. 돈은 본질적으로 신용이다. 이 크레딧을 보증하는 게 과거엔 금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금은 저절로 증식하지 않기 때문에, 이자가 존재하는 돈은 금이라는 기원을 벗어나 더 진보된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이 시기부터 돈이 사람보다 더 빠르게 진보했다. 자칭 진보주의자들에 비해 경제학과 금융의 진보가 훨씬 빨랐다는 뜻이다. 너무 많은 진보좌파가 본질적으로 현대의 돈이 크레딧이며, 폭발적으로 증식하는 속성이 있다는 걸 잘 이해하지 못한다. 때때로 일부 이해하더라도 이 상황은 윤리적인 문제가 있으며, 금본위제로 돌아가거나 획기적인 개선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정말 많은 경우 일종의 음모론을 믿곤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금본위제 폐지 이후 공산주의에 대해 승리를 거뒀다. 또한 1971년 이후 지구는 상당히 부유해졌다. 그들은 금이 돈을 계속 보조할 수 없다는 것은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이 또 이해하지 못하는 것(어쩌면 인정하지 않는 것)은 시장의 분배기능이다. 본질적으로 자본주의 경제에서 분배를 담당하는 것은 시장이다. 잘 돌아가는 시장은 은행의 예대차와 연계되어 엄청나게 자본을 증식시키고, 수요를 늘린다. 늘어나는 수요 전망은 경쟁적으로 공급을 늘리기 때문에 분배도 잘 일어난다. 그런데 너무 많은 진보좌파들은 시장 자체를 과소평가하고 무시하는 경향이 짙다. 그러나 실제 공산주의 국가를 제외하면 시장은 언제나 분배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정부의 직접적인 분배는 훨씬 그 효율이 떨어지고 부작용도 큰 방식이다.


 냉정하게 이야기해 진보좌파들이 경제면에서 하는 이야기 중 정말 많은 것들이 1800년대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들이다. 또한 그들은 너무 많은 경우 이성적인 이야기보다는 감정적인 증오를 퍼붓는다. 근래 그들이 취하는 태도 중 가장 나쁜 예를 들자면 부동산과 대기업에 대한 태도를 들 수 있다.


 민주당을 위시한 대다수 진보좌파들의 부동산에 대한 접근은 어리석은 광신 그 자체나 다름없다. 그들이 집값폭락을 외치는 근본적인 원인은 증오심과 질투, 그리고 그런 감정과 결합되어 ‘집값이 이렇게 높은 건 옳지 않다.’라는 판단에 있다. 그러나 집값은 시장에서 형성된 것이지, 어떤 특정인이 결정한 게 아니다. 또한 집값이 폭락할 경우 어떤 현상이 생길지, 부동산 거래가 잘 되지 않을 때 어떤 결과가 발생하는지에 대해 그들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거나 망상을 한다. 부동산 가격이 반토막 난다는 예언과 떨어져야 한다는 당위, 그리고 그에 어울리는 민주당의 행동들은 결국 전세대란을 불러왔다.


 대기업에 대한 태도 또한 그렇다. 그들은 대기업을 마치 재벌의 소유인 양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그래서 재벌에서 기업을 분리시키고, 좀 더 사회가 기업에서 많은 것을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하곤 한다. 그런데 기업에 대해 워낙 잘 모르다보니 말도 안 되는 소리가 너무 많이 나오는 게 문제다.


 예를 들어 대기업이 현금을 쌓아놓았다는 말에 진보좌파들은 분개하며, 그것들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실제로 그 쌓아놓은 현금은 대체로 ‘유보금’이다. 이 유보금은 본질적으로 대기업 소유의 돈이 아니고, 대기업의 소유자인 주주의 돈이다. 그러니까 기업은 함부로 유보금을 건드릴 수 없다. 기업이 순이익을 현금배당하지 않고 이익금을 쌓아두면 그 유보금은 주가에 반영된다. 기업 총수라 할지라도 이 유보금을 함부로 건드리면 배임ㆍ횡령죄가 된다.


 다만 유보금이 그냥 기업에 쌓여있는 건 사회적으로 좋은 건 아니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정부는 투자를 유도한다. 기업이 투자를 한다는 것은 대체로 사업을 확장하는 것이다. 그러면 새로운 일자리도 생기고, 시장에서 돈이 더 빠르게 돌아 호황이 오게 된다. 그러나 진보좌파들은 투자를 위해 정부가 기업에 각종 혜택을 제공하는 것을 매우 아니꼬와하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좌파 이념은 다 내던지고 ‘그냥 시장에 맡기라!’고 19세기 자유주의자들이나 할 법한 말을 하기도 한다. 나는 이런 웃기는 광경을 너무 많이 봤다. 그런데 그러면서 또 법인세는 늘리라고 한다. 아무 것도 모르고 매사에 감정적이니까 그런 말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그런 판단들과 사회적 압력은 불황을 만들어낸다. 불황은 그 무엇보다 나쁘다. 특히 가진 게 없는 사람일수록 불황을 견디기 더 어렵다. 진짜 부자들은 오히려 불황을 반기기도 한다. 호황은 시민들을 더 평등하게 만들지만, 불황은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한편으로 진보좌파들은 국가와 사회를 실제보다 인격체에 가까운 것으로, 또한 보다 전지전능한 것으로 여기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현상을 반영하는 직관은 아니다. 정부는 아무리 잘 하려고 노력을 해도 허술한 면이 있을 수밖에 없으며, 시장은 쉽게 제어할만한 것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정부는 시장을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 오직 규제나 진흥을 시도할 수 있을 뿐이다.


 모든 국가가 시장이 발달하기 전에는 계획경제 정책들이 잘 통한다. 그러나 충분히 시장이 커진 이후엔 그렇지 않다. 계획경제를 추종한다는 면에서는 모든 집단주의자가 좌우에 상관없이 동일하다. 보수주의자들은 제 2의 박정희를 기대하고, 사회주의자들은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혁명적 영웅을 꿈꾼다. 박정희교와 노무현교가 동시에 존재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에서 한 정치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이다.


 때때로 진보좌파들은 ‘진짜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라고 외친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경제를 모르듯, 민주주의도 모른다는 데 있다. 민주주의란 통치제도일 뿐이고 이 제도는 현실 속에서는 자유주의와 결합되어, 각각의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경쟁하고 화합하는 가운데 시장과 연계되어 돌아가는 사회 구조가 된다. 세금을 좀 더 걷던 덜 걷던, 세계의 모든 민주주의 국가는 근본적으로 이렇다. 시민들은 결코 경제적으로 실패한 정권이나 정당에 투표를 하지 않는다.


 깨시민들은 서민들이 왜 새누리당을 지지하느냐고 분개하지만,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새누리당이 민주당보다 훨씬 경제적으로 현실적이고, 지난 세월을 되돌아봐도 뭐 하나라도 서민들에게 더 해줬다. 민주당은 서민들에게 잘 한 게 거의 없다. 있더라도 그것은 거의 다 김대중 정권이 한 것이지, 노무현 정권은 그야말로 최악이었고 각 지역의 지자체장이나 지역구 국회의원들을 봐도 새누리당 쪽이 더 해놓은 게 많고 문제도 잘 해결하는 경향이 짙다.


 진보좌파들의 경제적 이론들은 너무나 낙후되어있다. 그들이 하는 말들은 케인즈주의와 사회주의를 적당히 섞어놓은 것들이 많은데, 실제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현재의 네오케인즈주의에 대한 이해는 너무나도 부족하고, 좌파 경제학자들은 주류 학계에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나마 있는 사람들조차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맞는 게 없고, 네오케인지언에 해당하는 주류 경제학자들과 토론을 하면 상대가 되지를 않는다. 한국의 진보좌파들은 좀 더 현실적인 경제적 시선을 가질 필요가 있다. 현실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제시하는 대안들은 대체로 별 가치가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