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은 좀 더 상세하고 자세히 쓰고 싶은 내용입니다만, 시간문제로 일단은 간략하게 운만 띄웁니다. 보다 자세한 이야기는 차후에 다루겠습니다.

 

 지난 7년간 한국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잃어버린 7이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일단 저는 개인적으로 민생이라는 면에서 87체제 대한민국이 실패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GDP PPP의 눈부신 성장은 결과적으로 서민들의 삶을 충분히 개선하지 못했고, 국민들의 행복도는 오르기는 커녕 지속적으로 떨어졌습니다.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난 7년은 심했는데, 가장 큰 문제는 기업 소득이 사회로 돌아가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위해 간단한 사회적 담론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자본주의에서 기업은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합니다. 이 연장선상에서, 사회가 사회적 공익을 위해 부당하게 기업을 억압하고 수탈하는 것은 자유민주정의 원칙에 어긋납니다.

 

 그러나 또한 국가, 정부, 사회가 없이는 기업도 없습니다. 기업은 사회의 한 구성 요소일 뿐, 기업을 위해 국가와 사회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각각의 자유로운 개인이 일련의 사회적인 책임이 있듯, 기업 또한 그런 게 있는 것입니다. 기업이란 사회 위에 선 초사회적, 초법적, 초인적 존재가 아닙니다. 이따금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착각합니다. 초법적 기업은 부패한 후진적 국가에서만 초사회적 권력을 가집니다.

 

 그럼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 봅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도 한국 경제규모는 꾸준히 성장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시점부터 대략 기업과 가계 간의 소득 개선 격차가 커집니다. 이는 쉽게 이야기해서 법인이 번 돈이 계속 법인에만 남아있고, 그게 자연인에게 충분히 배분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법인이라는 게 자연인을 위해 만들어진 존재임을 감안해볼 때 이는 분명 바람직한 상황이 아니고요.

 

 그렇다면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그리고 이걸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가장 쉽게 보이는 문제는 평균임금입니다. 지난 7년간 노동자들의 평균임금은 기업의 평균적인 자산축적정도보다 덜 상승했습니다. 최저임금은 많이 오른 편이지만, 평균임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임금은 법인이 번 돈이 개인에게 나가는 가장 효율적인 분배 수단입니다. 그런데 일차적으로 이 루트가 근래 정상이 아닙니다.

 

 그런데 기업에 대해 임금을 더 달라는 사회적 요구가 없었느냐 하면 그건 아닙니다. 그리고 실제 돈을 잘 번 기업들은 임금 인상도 나름 해줬습니다. 또한 최저임금도 많이 올랐습니다. 진짜 문제는 금융위기 이후 한국 경제 구조가 변했다는 데 있지요.

 

 한국이 글로벌 금융위기에 크게 흔들리지 않고, 위기를 빨리 벗어난 데는 제조업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위상이 잘 맞아떨어진 덕이 큽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금융위기를 맞은 미국과 유럽에서 제로금리, 양적완화를 통해 소비를 촉진했는데 이 시점에서 한국 공산품이 경쟁력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가격은 저렴한데 품질은 꽤 괜찮은 제품이었으니까요. 게다가 마침 한국은 2008년 초에 원화가치를 많이 떨어뜨려놨던 상황이어서, 리먼 사태 이후 공산품을 팔아 들어온 외환이 더 큰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결국 한국은 GDP로 보면 외환위기에서 거의 최고의 선방을 거둔 나라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이것의 착시현상입니다. GDP 타격은 거의 없었고 오히려 환율과 물가를 반영한 PPP는 꾸준히 올랐지만, 이는 몇몇 글로벌 경쟁력이 있는 대기업들이 낸 결과고 그보다 작은 기업들은 큰 타격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전체 지표가 실상을 가려버리는 상황이 빚어진 거지요. 쉽게 이야기해 GDP가 그대로라는 건, 환율 문제를 제외하면 몇몇 대표 대기업이 성공한 만큼 다른 기업들이 망했다는 것이었으니까요. 특히 환율로 인해 당시 중견중소기업 중 피해본 기업이 많았습니다.

 

 금융위기 기점 이후 성공한 대기업은 몇 안 되었기 때문에, 그런 기업들의 성공 덕에 임금상승 혜택을 받게 된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의 노동자가 더 많았고, 그나마 당장 아주 어려운 기업이 아니라도 미래를 대비해 인력을 감축하는 기업이 늘어납니다.

 

 더구나 거의 정확하게 이 무렵부터 수도권 부동산 경기침체가 닥치면서 시중 자금흐름에 문제가 생깁니다. 한국 가계 자산은 다른 국가에 비해 금융자산은 적고, 부동산 등 비금융자산 비율이 매우 높은데 이 비금융자산의 상승에 제동이 걸렸고, 전세 제도라는 특수한 제도 때문에 매매가 사라지고 전세가격만 급상승하게 되면서 한국 부동산은 (전세금으로) 돈이 들어가기만 하고 (매매로) 빠져나오지는 않는 블랙홀이 되어버립니다. 또한 이 무렵 기후 문제나 수급, 가축 전염병 등으로 먹거리 물가가 불안해지는 일이 잦았는데, 이 결과 종합적으로 한국 내수시장엔 깊은 불황의 그림자가 드리워집니다.

 

 이런 타격을 가장 크게 받은 직종은 서비스업, 판매직, 단순노동직 등입니다. 이 직종들은 다른 직종들보다 임금이 덜 올랐습니다. 물론 이런 직종들에 주로 타격이 있다는 것은 사회가 더 불안정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불안정은 소비심리를 더욱 위축시킬 뿐만 아니라, 기업의 투자심리도 위축시켰습니다. 투자를 하지 않으면 직원도 안 뽑습니다. 악순환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오늘입니다.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이유는 본 블로그에서 정말 여러 차례 밝혔습니다. 소위 진보라는 인물들이 사태파악을 못하고, 문제를 악화시키는 선동만을 반복했습니다. 그렇다고 소위 보수라는 인물들이 획기적으로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했느냐 하면 그것 또한 아니었습니다. 그나마 당장 말아먹진 않을 정도였지요. 최악과 차악 정도의 관계라고 하면 맞겠습니다.

 

 어쩌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었느냐를 이야기하려면 글이 너무 길어지니 수많은 중간 과정이나 인과관계를 일단은 생략하겠습니다. 그에 대한 글은 천천히 작성해보던지 하기로 하고, 두괄식으로 본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기업 생태계에 있습니다.

 

 만약 이 전제에 동의할 수 있다면, ‘진보적인 관점에서정부는 시장에 개입하여 문제를 해결할 의무가 있으므로, 정부는 기업 생태계에 개입해서 망가진 생태계를 적극적으로 수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근래의 노무현-이명박-박근혜정부는 모두 이런 데서는 낙제입니다. 김대중 이후 대한민국 정부는 기업 생태계를 개선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현저하게 부족했습니다. 그러니까 나라가 이 꼴이 된 거죠.

 

 그럼 왜 기업 생태계가 문제인지 최대한 간단히 설명하겠습니다. 한국 기업들은 박정희때 큰 몇몇 대기업 빼면 규모가 작습니다. 80년대부터 창업하여 재벌에 편입된 기업집단은 셋뿐이라 하며, 그나마도 상황이 좋지 못합니다. 90년대 이후에는 기존의 재벌 중 망하는 그룹이 있을 뿐, 새로 창업하여 편입되는 기업은 없었습니다. 쉽게 말해 떠오르는 기업이 거의 없었다는 겁니다. 그나마 몇몇 나온 기업들도 IT기업들이었는데, 이 기업들은 태생적으로 수명이 짧고 고용에 한계가 있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또한 대부분의 한국 기업들은 근시안적 경영을 하고 있습니다. 100200년 갈 제국을 만들려는 경영자는 아무래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인력을 대합니다. 그렇지만 경영자에게 장기적인 마인드가 부족할 경우, 그 피해는 우선적으로 노동자들에게 오게 됩니다. 잠깐 쓰고 말 노동자에게 기업은 충분한 투자를 하지 않습니다. 인건비를 최대한 아껴서 단기적인 수익을 얻으려 하지요.

 

 물론 이런 방식은 기업에도 좋지 않습니다. 노동자들은 본능적으로 받는 만큼 일하려고 합니다. 만약 기업이 노동자를 착취하려 한다면, 가장 능력 있고 발상의 전환이 빠른 사람이 가장 먼저 그 직장을 그만둡니다. 결과적으로 보다 무능력한 직원이 직장에 남지요.

 

 그런데 더 큰 문제는 한국 기업 생태계는 그 역동성이 너무 떨어져 있다 보니, 기존 기업들이 문제를 일으켜도 그것을 대체할 만한 새 기업이 안 나온다는 것입니다. 만약 새로 생기는 기업이 기존 기업보다 더 노동자 대접이 좋고 더 장기적인 마인드로 더 좋은 경영을 한다면, 기존 기업은 도태되고 새 기업으로 노동자가 몰려들 것입니다. 더 좋은 인력이 모인 기업이 성공할 확률도 높겠지요. 그러나 이제 한국에서 그러한 현상은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에 대한 답은 간단합니다. 한국은 창업자의 지옥이거든요. 한국이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주장을 강력하게 펼치는 사람들은 대체로 노동자고, 앞으로도 한동안 계속 노동자로 살 사람들입니다. 물론 은퇴할 나이가 된 후에야 한국에서 창업을 한다는 게 얼마나 암담한 행위인지 절실히 깨닫게 되는 경우도 많지요.

 

 창업은 그냥 성공하는 게 아닙니다. 씨앗이나 삽수가 잘 자라려면 기후 및 토질이 맞아야 하듯, 기업의 성장 또한 기후와 토질에 비유할 수 있는 것이 맞아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은 지난 30년간 이렇다 할 괜찮은 기업이 거의 자라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토양 및 기후의 문제입니다.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말입니다.





 


 이에 대한 자료를 창업진흥원이라는 곳에서 보기 좋게 정리한 도표가 있습니다. 이 표를 보면 한국이 왜 문제가 심화되고 있는지 알 수 있고, 중국이 얼마나 대단한지도 알 수 있습니다.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요.

 

 기업 생태계는 현대인들에게 있어 매우 중요합니다. 현대 자본주의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기업의 발달과 산업 기술의 발달로 이루어졌습니다. 그 이전에 사람들은 농사를 짓거나, 목축을 하거나, 물고기를 잡거나 하는 등 직접 식량을 구하는 빈도가 높았지요. 그 시대에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먹고 사는 데 있어서는 시장의 영향을 덜 받고, 대신 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대조적으로 요즘 도시인들은 시장 및 기업 의존적이라 볼 수 있고요.

 

 한국에서 새로운 기업이 잘 나오지 않는 이유는 아주 복합적입니다만, 개인적으로 보기에 큰 요인들로는 투자 리스크 대비 리턴 문제와 문화적인 결함, 그리고 제도적인 문제 등을 꼽아야할 것 같습니다. 이것들은 위의 도표에도 나온 내용들입니다.

 

 간단히 쓰려고 한 글이 너무 길어지고 있어서 최대한 요약해서 이야기를 전개하겠습니다. 기업을 창업하는 데는 자본이 필요한데, 한국 투자자들은 굳이 신생 기업에 투자할 이유가 별로 없습니다. 한국 투자자들은 단기적인 투자성향이 강한데, 새로운 기업에 투자를 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장기적으로 돈이 묶이게 됩니다. 예를 들어 신생 주식회사에 지분 투자한 투자자가 자본을 회수하려면 상장이 되거나 인수합병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한국은 이 모두가 잘 안됩니다. 소위 착한 투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별로 없고요.

 

 여기엔 제도적인 문제도 있었습니다. 코스닥 시장은 본래 신생 기업을 위한 시스템입니다만, 코스닥 상장 조건은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서 이번 박근혜정부에서 새로 도입한 시장이 코스닥의 하위 시장인 코넥스인데, 코넥스는 아직 개인 투자자에게 완전히 개방되어있지 않습니다. 그래도 코넥스가 없는 것보단 있는 게 훨씬 낫습니다. 박근혜정부의 진보적인 움직임 중 하나였지요. 그렇지만 아직도 한국은 한참 멀었습니다. 시스템의 도입이 금융위기 이후 불경기에야 된데다, 아직 정부 주도 수준이라 사회에 뿌리를 제대로 내릴지 어쩔지는 미지수이기도 합니다.

 

 이 연장선상의 문제는 또 있습니다. 한국은 차등의결권 제도가 없는데다 이젠 신규순환출자도 불가능해졌기 때문에, (참조 링크) 창업자는 본인이 충분한 자본을 가지고 창업하는 게 아닌 이상 향후 의결권을 충분히 행사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 올 것을 어느 정도 감안해야 합니다. 아니면 투자를 받는 데 있어 제약을 감수해야 하지요. 이런 조건에서 창업자는 보다 쉽게 단기적인 시각을 가질 것이라 저는 판단합니다. 물론 이렇게 되면 기업이 노동자에 투자할 의지는 더욱 낮아지게 됩니다.

 

 왜 한국 경영자들이 단기적인 시각을 많이 가지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생각을 해볼 수 있는 동시에, 저는 거기에 대해 아직 충분한 정답이라 할 만한 걸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일단 그보다 제가 중요하게 보는 관점은 장기적이고 보다 건전한 마인드를 가진 기업이 경쟁에서 승리하는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엔 여러 제도적인 문제가 원인이 되고 있는데, 이러한 제도적 문제가 정치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건 정말 곤혹스러운 일입니다.

 

 위에 이야기했듯 박근혜정부는 그나마 약간이라도 이 기업 생태계를 개선하려는 의지를 보입니다. 그런데 보다 진보적이고, 서민의 편이라는 새정치민주연합이니 정의당이니 등등은 이런 문제들에 대해 별 관심도 없을 뿐더러, 아예 사태파악도 못하는 것 같습니다. 제도를 개선한다는 건 정치적인 문제인데, 누구보다도 민생에 신경을 써야 할 사람들이 책임을 전혀 지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생태계라거나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이 되는 일, 실제 한국 기업들의 현실 등을 이야기하면서 본문을 전개하기엔 힘이 너무 많이 듭니다. 이 모든 이야기는 일단 생략합니다. 다만 기존부터 해왔던 이야기 중 한국엔 중소기업이 더 클 만한 동기부여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는 다시 한 번 반복하고 넘어가야겠습니다. 이는 한국 노동자를 힘들게 하는 아주 핵심적인 요인입니다.

 

 그럼 다음 중요한 이야기로 넘어갑시다. 한국 GDP PPP의 성장을 보면, 저 앞에 이야기했듯 그 주역은 몇몇 대기업입니다. 그런데 그 대기업은 유보금을 쌓고 있고, 그에 결국 기업 -> 사회로의 재분배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심지어 유보금 과세 논란까지 일어 저는 따로 그것에 반대하기도 했었지요. 제가 유보금 과세에 반대하는 건 그게 말도 안 되는 소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또한 재분배는 필요합니다.

 

 사실 한국 대기업들이 커온 역사를 보면 이 기업들은 사회에 토해내야 할 게 많습니다. 성장 과정에서 상당한 특혜가 주어진 것은 물론, 위기 땐 공적 자금도 투입되는 등 온 국민이 키워낸 게 한국 재벌들입니다. 물론 현재 한국 기업들은 역수입이 더 싸다거나, 에어백을 부실하게 달아준다거나, 구명용 질소에 과자를 끼워 파는 등의 행위로 전 국민적인 분노를 자아내고 있기도 한데 일단은 재분배 이야기에 집중해 봅시다.

 

 잠시 잘못 끼운 첫 단추부터 이야기해봅니다. 금융실명제 이전엔 기업은 아직 정부의 발아래 있었습니다. 이후 IMF때 공적 자금을 지원할 때, 만약 정부가 그 지분을 확보하는 식으로 지원해줬다면 재분배 문제는 고민할 것도 없었습니다. 아니면 최소한 그 부채의식을 지우고 사회에 어떻게 환원할 것인지를 고민할 필요도 있었지요. 그러나 김대중과 노무현, 두 정권은 이런 의무를 다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노무현이 보인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느니, ‘문제의 본질은 불법도청같은 태도는 사태를 거의 한계까지 악화시켰지요.

 

 이명박 시대에 들어서야 우리 사회는 재분배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습니다만, 멍청하고 탐욕스러운 자칭타칭 진보좌파들은 모든 기력과 시간을 소모해 그저 반MB만 외치고 노무현 신격화나 했지 어떻게 하면 좀 그럴싸하게 재분배를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해 충분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하는 말이 유보금 과세니, 법인세 인상이니 정도니 참 한심하고 기가 막히죠.

 

 만약 법인세를 인상하면 기업이 번 돈이 사회로 더 흘러들어올까요? 문제는 별로 그렇지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사실 법인세수와 법인세율을 비교 연구해보면 무려 반비례 관계가 성립합니다. 세율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세수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는 문외한 또는 답정너들이지이요. 법인세는 회피하기가 정말 쉬운 세금입니다. 법인세율이 높은 나라에서는 자주 빚어지는 일이죠. 괜히 그 전체 세율 높은 북유럽 국가들 법인세가 한국과 비슷하거나 더 낮은 게 아닙니다. 세상은 그리 단순하지 않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실 현 정부도 이러저런 수단으로 기업들을 적당히 갈구고 있긴 합니다만, 그런 게 그다지 잘 통하지는 않습니다. 21세기엔 좀 더 세련된 방식이 필요하지요.

 

 개인적으로 그나마 가장 좋은 방안이라 생각하는 건 기업의 형태에 따라 금융소득에 대한 과세와 부동산의 거래에 대한 과세를 손보는 것입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거대 산업 기업은 산업으로 돈을 벌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물론 채찍이 있으면 당근도 있어야 합니다. 정부와 사회에서 필요한 방향으로 기업이 행동하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해야합니다. 이미 어느 정도는 하고 있지만, 현저하게 부족한 게 사실이기도 합니다.

 

 보다 강력한 방식도 있습니다. 금융의 유동성을 억제하거나, 노동 시간에 더 큰 제약을 두는 방식 같은 것 말입니다. 물론 차등의결권 제도도 도입이 필요합니다. 기업 상속에 대한 제약도 줄여야 합니다. 이 연장선상에서 상속세 자체를 폐지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입니다. 노동자에 대한 인센티브가 필요하듯, 성공한 기업인에 대한 인센티브도 필요하거든요. 전부터 기회가 될 때마다 이야기했던 걸 다시 한 번 말하자면, 잘나가는 중소기업 사장 정도만 되어도 기업 정리하고 그걸로 안정적인 투자 하면 웬만해선 본인 일가친척은 평생 큰 문제없이 먹고살 수 있습니다. 뭔가 그 이상을 해서 노동자 많이 고용하는 기업까지 만드는 데는, 그리고 더 나아가 노동자들이 충분히 잘 살 수 있게 해주는 데는 좀 다른 동기가 필요하지요.


 물론 생산적 재투자를 강권하고, 그걸 무시하면 강력하게 세무 조사하고 횡령 배임 터는 좀 더 단순하고 바람직한 방법도 지도자라면 고려해야 합니다. 물론 무능하고 어리석은 한국 정치인들, 특히 이상한 데 집착하는 자칭 진보들에게는 기대하기 힘든 방식이겠습니다.

 

 실제 2008년 이후 재벌들이 번 돈 중 정말 많은 금액이 부동산 구매나 재벌 3세 등을 위한 상속을 위해 소비되었습니다. 정부는 이런 상황을 전혀 컨트롤하지 못했고, 야권은... 이럴 거면 차라리 그냥 사라지는 게 낫습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사태파악 및 문제인식조차 못하면서 권력만 가지니까요.

 

 이 정국에서 믿을 만한 정치세력은 현재 없습니다. 그러니 시민 사회부터 일부라도 인식을 바꾸고,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시작부터 신자유주의적이었고, 야권 정치세력과 공공연하게 짝짜꿍하는 기존 시민 사회는 더 이상 이 사회에 도움이 안 됩니다.

 

 창업, 금융, 재투자, 부동산, 시장경제 등은 보수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자칭 진보세력은 사회의 일선에서 물러나야 합니다. 그들이 이러한 문제에 대해 눈을 감는 건 그들이 사회주의라는 구시대적 인습에 물들어 너무 나태하기 때문입니다. 즉 이미 그들은 진보의 간판을 걸 자격을 잃은 지 오래입니다. 자유민주정체에서 진보하려면 저런 의제에서 밀리면 안 됩니다. 적어도 미국 민주당은 저런 의제에서 공화당에 밀리지 않습니다. 충분히 자기 목소리를 내고 경쟁해서 승리하곤 하지요.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우선 의제를 올바르게 설정하는 게 중요합니다. 질병이나 증후군을 치료하려면 바른 진단이 먼저 필요하듯, 사회문제 역시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 외에도 자영업자 문제, 사회안전망 문제, 파산 제도 문제, 사기에 대한 처벌 문제 등등을 더 다룰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이런 사회문제들을 모두 다루는 것은 어렵습니다. 본문에서 우선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기업 생태계의 문제와 그 해결방안에 대한 간단한 발제 정도입니다. 물론 이런 정도만 이야기하는 것도 쉽지는 않습니다. 이 사회는 거의 생산적인 논의를 하지 않습니다. 특히 민주당계를 광신적으로 지지하는 인터넷 커뮤니티들 분위기는 정말 심하지요.

 

 기업 소득이 사회로 더 재분배되려면 새로운 기업이 많이 생기고, 성공할 수 있는 기업 생태계를 갖춰야 합니다. 그런 환경은 성공적인 자유민주정체 국가가 되려면 기본적으로 조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법인세를 올리고, 순환출자를 금지시키면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혹세무민하는 말에 휘둘려서는 안 됩니다. 그런 건 오히려 현실을 악화시킵니다. 사태의 본질을 일단 바로 보고 시작해야 한다는 게 본문의 요지입니다. 보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분량 및 시간상 다음 기회로 미룹니다.

 


두 가지 진보의 길

경제 2014. 8. 21. 19:25 Posted by 해양장미

 근래 최경환노믹스(초이노믹스)가 따끈합니다. 저는 최경환호의 전반적인 행보를 지켜보고 있는 중이고, 현재까지의 움직임과 반응에 어느 정도 이상 긍정적입니다. 그런데 사실 제 관심은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정책 못지않게 그 비판자들과 반대자들에게도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정책의 성패에 적잖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일단 본문에서는 이러한 주변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최경환노믹스 자체는 사실 제가 그 동안 줄곧 주장해왔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런 움직임은 합리적인 정부라면 당연한 것이고, 가장 큰 불만이라면 너무 늦었다는 정도입니다. 4~5월부터는 저렇게 했었어야죠. 물론 세월호 특별법과 엮어 법안 통과 딜레이를 시킨 야당의 잘못도 큽니다만, 일단 그 이야기는 차후 세월호 특별법을 이야기할 때 논하도록 하겠습니다.

 

 본 이야기를 시작하자면, 당연하게도 최경환의 경제 정책에 대한 반응은 꽤나 대조적인 편입니다. 물론 어떤 경제 정책이건 잡음이 없을 수는 없겠습니다만, 이 정책의 뿌리가 되는 마인드를 살펴보고 이견들의 뿌리도 살펴보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몇 번에 걸쳐 간략하게 이야기했습니다만, 이번에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보자면 대략 경제학파엔 크게 다음 분류 정도가 있습니다.

 

1) 케인즈주의 경제학파

2) 마켓 통화주의 경제학파

3) 마르크시안 경제학파

4) 오스트리아 경제학파

5) 행동주의 경제학파

6) 제도주의 경제학파

 

 이 외 분류방식에 따라 여러 다양한 마이너 경제학이 있지만, 이 정도만 이야기해도 굵직한 분류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분류들에 대해 약간 설명하자면, 1)에서 2)까지가 소위 주류경제학입니다. 2)는 시카고학파, 민물 경제학파, 신자유주의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다만 실제 시카고대학의 경제학은 최근 들어 통화주의 일색을 벗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그에 따라 민물경제학이라는 표현도 더는 딱 들어맞는 표현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편의상 신자유주의라 표현할 때가 많고요.

 

 마르크시안 경제학파는 보다 널리 퍼진 표현으로는 마르크스 경제학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각주:1]. 실제 이 그룹은 경제학이라는 밝은 바운더리 내에서의 영향력은 이제 거의 전무합니다만, 이 세상의 가장 어두운 영역에서는 아직 통하는 구석이 있습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한국 사회의 경제 담론 노이즈 중 많은 부분이 이 어둠에서 기인합니다.

 

 오스트리아 경제학파는 쉽게 이야기하면 하이에크 스타일입니다. 이쪽을 2)하고 혼동하는 분이 꽤 있는데, 그러면 곤란합니다. 오스트리아 학파가 통화주의 학파보다 훨씬 심하게 자유방임스타일입니다. 통화주의는 어느 정도 정부의 간섭을 전제하는데, 오스트리아 학파는 그것조차 쓸데없는 간섭이라는 입장이랄까요. 물론 이들의 존재와 혼동도 한국에서는 좀 경제 담론 노이즈에 영향을 줍니다.

 

 그리고 행동주의 계열은 쉽게 이야기해서 경제학에 심리학을 접목한 것으로, 근래 빠르게 성장 중이며 각광받고 있습니다. 다만 문제는 한국 현실에서 행동경제학은 경영이나 투자 지침 정도로 주로 활용되고 있고, 시민사회 내 거시경제 담론에선 일종의 노이즈에 가까운 영향을 주고 있기도 하다는 데 있겠습니다. 쉽게 예를 들자면 실제 주류 및 행동경제학에 대한 이해는 거의 없는 사람들이 주류경제학을 비판하기 위해 행동경제학을 들이미는 것 같은 것 말이지요.

 

 마지막으로 제도주의는 간략하게 장하준을 예로 들겠습니다. 종종 블로그에서 이 입장을 이야기해왔습니다. 참고로 제가 본 블로그에서 이야기하는 건 주로 케인즈-행동주의-제도주의쪽 입장입니다. 통화주의와는 약간의 거리가 있고, 마르크시안이나 오스트리아 쪽과는 거리가 멀다고 이해하시면 편할 것입니다.

 

 그럼 본래의 문제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한국 경제 담론의 가장 골치 아픈 문제는 소위 진보개혁그룹이 이런 투박한 분류조차 전혀 이해를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통화주의와 오스트리아를 구분 못하는 건 당연하고, 케인즈주의와 오스트리아도 구분을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더 심한 경우는 제도주의와 오스트리아를 세트메뉴로 묶어서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게 극단적인 경우라 생각하실지 모르겠으나 그렇지 않습니다. 소위 진보 언론 수준은 진짜 심각합니다. 더 나아가 진보개혁정당 수준도 알면 알수록 처참합니다. 특히 아주 나쁜 케이스가 마르크시안을 기반으로 거기에 안 맞는 말은 죄다 주류경제학 = 신자유주의라고 생각하는 케이스인데, 의외로 흔합니다. 사실 이런 건 경제에 대한 이해가 거의 전무하니까 나오는 것입니다만, 전반적인 시민 사회의 인식을 크게 왜곡시키고 있지요.

 

 현실을 보자면 경제학에 있어서 온건 보수주의적 입장은 통화주의 쪽입니다. 더 분명하게 강한 보수쪽에 가까운 입장은 오스트리아학파 쪽이라고 할 수 있고요. 케인즈주의는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입장입니다. 케인즈주의는 실질적으로 이 시대의 주류경제학 그 자체나 다름없고, 케인즈주의 내에서도 비주류쪽 계열들이 있으며 주류케인즈주의라고 할 만한 것 내부에서조차 무시 불가한 견해 차이가 또 있다 보니 상당히 다양하게 나눌 수도 있긴 합니다만, 모든 케인즈주의는 통화주의에 비하면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강한 개입을 전제합니다. 소위 수정 자본주의는 많은 경우 1920년대에 등장한 케인즈주의를 뜻하기도 합니다. 사실 통화주의 또한 케인즈주의가 없었다면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고, 오스트리아학파와는 달리 일정 이상 시장에 개입하는 것을 당연히 여깁니다.

 

 또한 행동주의는 매우 진보적이고, 제도주의 또한 다른 의미로 진보적입니다. 이 관점들은 주류경제학을 곧잘 비판하지만 또한 그것을 보완할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저는 이런 보완관계의 관점들을 가능한 한 융합시켜서 이야기하려 합니다. 그러나 마르크시안, 즉 다른 표현으로 맑스경제학은 예외입니다.

 

 역사적인 이유로 한국에서는 넓은 의미로의 마르크시안이 너무 오랜 시간 진보 소리를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마르크시안은 여러 번 이야기해왔듯 경제학취급을 아예 못 받습니다. 현실과는 괴리된 사변적이고도 예언적인 주장이 많고, 근본적으로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부정하기 때문이지요. 어떻게든 현실을 파악하고 개선하려고 하는 게 아니고, 어차피 자본주의는 망할 거라고 생각하고 접근하기 때문에 사실 쓸모가 없습니다. 과학적인 학문이 되려면 이러저러하고 어째서 이럴 확률이 높다.’가 되어야하는데, 마르크시즘은 어쨌든 미래는 이렇게 될 것임.’ 같은 비과학적 예언에 기반을 두는 경향이 짙다 보니 결국 종교가 되는 거지요. 사실 많은 사람들이 종교적이기 때문에, 마르크시안의 말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잡아끄는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체로 근거는 없지요. 별로 맞은 적도 없고. 물론 워낙 자본주의 자체에 대해 비관적이다 보니 경제위기 때마다 기세가 좋아지지만 그것도 잠시뿐입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마르크시안은 아직도 나름대로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운동권과 진보 및 개혁세력의 역사 때문입니다. 9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대학 운동권은 강력했고, 일종의 마르크시즘도 널리 퍼졌습니다. 이 운동권 출신들은 현 정치권에도 상당수가 자리 잡고 있고, 시민단체나 소위 진보쪽 언론에도 적잖은 세력이 있습니다.

 

 이들은 한국에 완성도 높은 민주정이 자리 잡는 데까지 적잖은 공을 세웠습니다. 다만 그 이후 이들에 의해 빚어진 문제는 하나 둘이 아닙니다. 본 블로그에 여러 번 이야기해왔듯 사실 이들은 민주정을 지지하지 않으며, 87체제를 일종의 중간 단계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들의 사상에 전혀 완성도가 없다는 것입니다.

 

 운동권 출신들은 예외 없이 민주화 이후 공산주의 동구권의 몰락을 경험했습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내부 모순 때문에 무너질 거라 예언했습니다만, 실제로 먼저 무너진 건 공산권이었던 것입니다.[각주:2] 또한 민주화로 인해 반공주의가 옅어지고 공산권에 대한 정보 및 각종 마르크스주의가 양성화되면서 이들의 몰락은 가속화됩니다. 군사정권이 못 보게 탄압할 때는 신비스러운 기대감이라도 있었는데, 막상 이론 체계를 보니 거의 망상 수준에 또 인물들의 꼰대성은 박정희 뺨을 후려칠 정도인데다 동구권은 이미 망한 상황이었다는 것입니다. 이후 학생운동권은 민간인을 프락치로 몰아 폭행살인을 저지르는 등 과격시위를 거듭한 끝에 민심을 잃고 사멸합니다.

 

 사상은 무너졌으나 그래도 권력은 남은 이들이 많았습니다. 이들은 3당 합당 이후의 신한국-한나라-새누리당 세력에 네거티브를 일삼으면서 권력을 강화해 나갑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떠한 일관적인 사상도 없고, 젊은 시절 익힌 마르크시안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곤 합니다. 이런 악영향은 후대에 계속 이어졌고, 이후 안티조선운동과 결합하여 광범위한 반지성적 사상 오염정도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을 퍼뜨립니다. 조선일보야 예나 지금이나 문제가 많지만, 그보다 더한 것들이 양산되었죠.

 

 또 문제가 큰 게 운동권 386-486중 운동의 맨 앞에 열정적으로 서지는 않고, 동조는 하되 본인 앞가림을 우선하고는 그 다음에 열성적인 운동권에게 부채의식을 가지게 된 부류입니다. 이들은 대체로 다른 직업을 가지다가 현 야권에 직간접적으로 포섭되었는데, 그 결과 문화권력을 거의 완벽하게 장악하고 사회의 각층에서 편향적인 압력을 행사하는 상황이라 봐도 무방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현명하여 사회가 돌아가는 복잡성에 대한 통찰이 뛰어나고, 계속 지적 수준을 선도적으로 올려나가는 성향이라면 문제가 안 되는 정도를 넘어 좋은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 반대라서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속어로 완전 수꼴에 꼰대죠. 현실의 복잡성에서는 눈을 돌리고, 내가 아는 게 옳다고 믿으니까요. 그들의 의식 기반은 전근대적 사회와 군국주의, 그리고 마르크시즘이고요.

 

 사실 한국 사회는 역동적이고 진보적 의지가 강한 편입니다. 2002년 노무현의 당선은 그 한 예시라 할 수 있습니다. 연구자료들을 보면 당시의 노무현은 60대에게도 표를 많이 받았었어요. 그렇지만 그 결과는 사람들을 크게 실망시켰지요. 노무현 본인부터가 어떻게 국가를 통치해야할지 감을 못 잡았고, 소위 진보개혁그룹 전체가 갈팡질팡하면서 전반적인 통치철학의 부재를 드러냈으니까요.

 

 저는 통칭 진보개혁세력이 그 네이밍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적절한 이름 짓기가 어려워서 그냥 저리 칭하고 있습니다만, 실제로 이 그룹은 전혀 진보적이지 않습니다. 정말 여러 번에 걸쳐 말해왔지만, 저들은 이 사회를 어떤 방향으로 만들어야하고 그 구체적인 이미지는 어떠하며 그것을 위해 무엇을 해야겠다는 개념 자체가 거의 없습니다. 다만 구시대적이고도 막연한 운동의 관성에 의해 진보개혁세력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매사에 상대편에게 반기를 들면서 반사이익을 노릴 뿐이지요. 유토피아적 치기가 앞서거나 사상적 기반이 거의 없는 보수적 도덕주의를 들이미는 게 일상적이고요.

 

 또 처음 말했던 경제문제로 돌아가보면 사실 수많은 진보개혁파 인물들은 경제문제에 초연해하고 싶어 합니다. 돈보다 중요한 게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실질적으로 돈보다 중요한 걸 지키려면 돈(=재화)이 필요합니다. 화폐란 재화의 환산 및 교환단위이며, 기본적인 재화가 없으면 사람은 살 수 없습니다. 삶의 질을 높이는 데는 필연적으로 더 많은 재화가 들어갑니다. 그렇기에 경제문제가 중요한 것입니다. 심지어 재화의 여분이 확보되지 않으면 문화발전도 없습니다.

 

 이 주제는 공산주의적 마인드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공산사회주의는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으니까요. 물론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모든 시도는 다 실패했습니다. 사람 아니라 강아지라도 자기 몫은 지키려 드는 게 본능이니까요. 이 연장선상에서 현실적으로 왜 자본주의를 채택한 서방 국가가 민주정을 꽃피웠는지, 공산주의를 표방한 동구권이 거의 예외 없이 폭압적인 독재 정치가 되었는지도 성찰이 필요합니다. 물론 이 성찰이 심하게 부족한 사람들이 소위 진보개혁그룹에 너무 많습니다. 정치인들만 그런 게 아니고 그 광범위한 지지그룹 전체가요.

 

 이 연장선상에서 이명박 취임 후를 돌아봅시다. 그 땐 거의 전 국민적인 안티MB 운동이 있었습니다. MB의 지지율은 노무현에 버금가게 바닥을 쳤었지요. 그러나 MB는 금방 지지율을 어느 정도 회복했고, MB운동은 단순히 MB를 반대하는 것 이상으로 진화하지 못합니다. 결국 현실적 대안을 제시하고 현실 속에서 그나마 진보적인 움직임을 만들어내고 있는 건 박근혜고요. 소위 진보개혁그룹이라는 사람들은 진보적인 정책에 태클이나 걸고 훈수나 두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그들이 아무 생각도 없었던 건 지난 대선 때 문재인의 형편없는 공약만 봐도 잘 드러납니다. 이번 국회 내내 법안처리 발목만 잡고 있는 것 역시 마찬가지고요.

 

 실제 최경환노믹스에 대한 것만 해도 그들이 얼마나 한심한지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일단 주류진보언론으로 꼽히는 경향신문 기사를 하나 링크해 보지요.

 

‘[사설]최경환 경제팀, 경기 불씨는 지폈다지만 (링크)’  


 이 정도면 솔직히 눈뜨고 못 봐줄 수준의 사설입니다. 일단 위에 말한 경제학파 구분을 전혀 못하다보니, 엉뚱한 말이 마구 튀어나옵니다. 최경환의 정책을 신자유주의라고 무개념 답정너짓을 하는 건 물론이고, - 그의 정책은 통화주의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 정작 본인은 부채형 정책은 당장의 경기부양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오래가지 못한다.’와 같은 리얼 신자유주의자 뺨을 후려칠 것 같은 소리부터 하고 시작하지요. 그 다음에도 참으로 어이가 저 멀리멀리 사라지는 말이 연잇습니다.

 

 심지어 마무리는 일본은 지난 20년간 1000조원이 넘는 돈을 뿌렸지만 성과를 보지 못했다.’라는 식인데, 정말 말 한번 잘했습니다. 일본이 왜 저렇게 돈을 뿌렸지만 성과를 못 봤는데요? 좀 재정정책 펴려고 하면 반대 움직임이 있어서 제대로 경기부양을 못시킨 채 재정확장을 멈추고, 또 그러니까 침체가 이어지고 다시 재정정책 좀 펼치려고 하면 또 누군가 태클 걸어서 멈추고 이러면서 다 합쳐보니 돈은 엄청나게 썼는데 결국 제대로 재정정책 한 번 못 펼쳐보다가 아베 정권 들어서야 좀 작정하고 재정정책 펴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일본이 어떻게 망해갔는지를 보고 배워야 하는데, 그 양상은 전혀 모르면서 무책임한 말만 내뱉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런 무책임함이 어떤 결과를 낳는데요.

 

 그나마 이건 언론 하나라 치고, 그럼 실제 130석 거대 야당 새민련은 어떻게 나오고 있나 봅시다.

 

최경환노믹스, 임금소득 증대 노력 없어아베노믹스보다 열등’” (링크)

 

 전 사실 이 기사를 보고 처음 든 생각이 참 답답하고 답이 없다가 아니고, ‘진짜 양심도 없다였습니다. 아니, 작년에 소득세 증세 막은 게 누군데요. 또 현재의 비정규직 문제도 그 근원책임은 민주당계에 있습니다. 그렇지만 원래 새민련 인간들이 양심이 정말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으니까 일단 넘어가겠습니다. 최경환이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 없는 것도 아니고요.


 그럼 최저임금 문제가 나와서 말인데, 어디 안 올리고 있나요? 이미 엄청나게 올리고 있습니다. 그래봐야 쥐꼬리라고 하실 분 많은 거 알고 저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만, 지금 최저임금 올리는 건 대책 없이 올리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생산성이 안 오르면 임금도 못 오른다는 건 먼 옛날 마르크스도 인정한 거예요. 임금은 생산성이 올라야 오릅니다. 그런데 생산성 오르는 속도보다 최저임금 오르는 속도가 몇 배는 빨라요.

 

 제대로 임금을 올리고 싶으면 결국 생산성을 높여야 하는데, 불경기에선 기업이 돈을 벌기 힘듭니다. 그러니까 경기가 나쁘면 통화 정책뿐 아니라 재정 정책도 펼쳐서 경기를 살려야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이익을 본다는 게 진보적인거시경제에 대한 접근 방식이라는 겁니다. 여기서 어쨌든 불경기는 불경기로 누가 죽건 망하건 놔두자라고 하는 게 극심한 수꼴 또는 경제 모르면서 훈수는 두고 싶은 꼰대의 자세고요. 수꼴 꼰대들은 어디서나 본인이 답 안나오는 꼰대인 걸 잘 모르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규제완화가 가계부채를 확대시켜 중장기적으로 내수위축 심화를 유발한다는 건 참 주옥같은 발언입니다. 일단 유동성 공급이 내수위축을 시킨다는 건 경제학적으로는 킹 오브 수꼴쯤 되는 발언이거든요. 부채가 확대되면 통화가 늘어나는데 이 때 내수가 위축된다는 말은 진짜 통화주의자들도 안합니다. 하도 말이 이상하니 중장기적으로라는 전제를 단 것 같은데, 저건 단순한 비관론 이상은 아닌 게 재정정책이 실패해서 경기가 의도한 만큼 부양되지 않을 때 재정건전성은 나빠지지만 경기는 충분히 좋아지지 않아 내수가 위축될 수 있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저 발언은 중간 과정은 설명할 수 없지만, 어쨌든 정책은 실패하게 될 것임같은 저질 답정너 발언이라는 겁니다. 인터넷 깨시민들도 아니고 국회의원이 나서서 저런 발언을 하니 역시 새민련다운 패기다 싶습니다.

 

 첨언하자면 규제완화는 정부가 그냥 하는 게 아닙니다. 이런 정책은 실제 위험성이 없지 않다 보니 다수의 경제 연구기관들이 연구하고 자료 발표하고 이게 적잖게 축적되고 정치인, 관료들 논의하고 나서야 나름 조심스럽게 들어간 겁니다. 제가 본 자료들에 의하면 최경환노믹스는 그리 위험하지 않습니다. 각종 연구자료들은 최경환의 발표 이전에 이미 쏟아져 나왔습니다. 쓸데없이 신중하게 한다고 너무 늦어서 문제죠.


 게다가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 문제도 그렇습니다. 복지를 하려면 돈이 있어야죠. 근데 경기가 나쁘면 세금이 안 걷힙니다. 실제 세수 걷히는 걸 보면 세율이 아닌 경기에 따라 세수가 왔다 갔다 합니다. 오히려 연구를 해보면 세율하고 세수는 음의 관계까지 성립합니다. 세율을 올리면 세금은 오히려 덜 걷히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겁니다. 이건 현실이다 보니 사실 이걸 이해 못하면 복지정책도 제대로 발제하는 게 어렵습니다. 진보무늬 답정너 꼰대들은 현실을 받아들이기엔 멘탈이 너무 약하다보니 인정할 수 없겠지만요.

 

 복지정책은 한 번 해놓으면 그 다음 조절하는 게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처음에 충분히 안정적인 재원을 확보하고 해야지, 막무가내로 하면 제2의 국민연금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사실 불경기일 때 저소득층에 재정을 직접적으로 쏟아 붓기 어려워지는 원인이 됩니다. 복지론자들은 저소득층에 직접적으로 돈을 풀면 그들은 여유가 없어서 돈을 쓰니까 선순환이 일어난다.’는 식의 주장을 하는데, 사실 막상 해보면 별로 그런 경우는 없기 때문입니다.

 

 불경기 시 재정 정책의 목표는 일차적으로 민간지출을 늘리는 것입니다. 불경기란 돈이 안 도는 소위 돈맥경화를 의미하기 때문에, 정부가 지출을 늘려 소비를 촉진하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정부는 연쇄적인 반응을 예상하고 연구한 후 그 곳에 재정을 투입하게 됩니다.

 

 이것이 성공하여 경기를 회복시킬 수 있다면 세수가 늘어나고 그 늘어난 세수는 복지 등 다른 정책에 쓸 수 있습니다. 선순환이 일어나는 거지요. 그렇지만 실패할 경우에는 돈을 풀었는데 민간지출은 늘어나지 않고 오히려 민간에서 부채를 갚아버리는 현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사실 이 경우 가장 좋은 대응방법은 니들이 쓸 때까지 돈을 푼다.’ 인데, ‘봐봐. 안되잖아.’하고 돈을 그만 풀면 처음부터 안 푼 것만도 못하게 됩니다. 이게 위에서 말한 일본이 겪은 일이고요. 괜히 재정정책에 금융규제완화가 동반되는 게 아닙니다.

 

 근거도 연구도 이성도 대책도 없이 경제 전반은 시장에 맡기고, 그냥 부자들한테만 세금 걷어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면 정부 경제정책은 다라는 태도는 진보도 뭣도 아닙니다. 그저 조금 인도적이고 세상일에 별 관심 없는 보수주의자의 태도일 뿐이죠. 사실 진보개혁세력 발언들을 보고 있자면 노무현 때 괜히 그토록 신자유주의 스타일이었던 게 아닙니다. 마인드 자체가 그래요. 그들은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에 관심이 없습니다. 일반인이 그래도 바람직하지는 않은데, 그런 사람들이 진보개혁정치인을 자처하니 큰 문제죠.


 이제 진보 지지층에겐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지금껏 해 왔듯 앞으로도 쭉 가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하면 앞으로도 어둠과 함께할 따름입니다. 운이 좋아서 집권을 하더라도 성공할 수 없지요. 자격이 없고 실력이 안 되니까요. 그렇지만 편한 길입니다. 개념인 코스프레도 할 수 있고, 저쪽 욕도 신나게 할 수 있지요.

 

 그렇지만 진짜로 사회의 진보를 원한다면 완전히 다른 길을 걸어야합니다. 한국의 소위 진보개혁세력이 지금껏 걷지 못했던 가시밭길 말입니다. 솔직히 말이 바른 말이지, 87체제 이후 소위 개혁세력은 현 대통령 박근혜에 비하면 엄청 편한 길 걸었습니다. 학생 운동권 시절부터 돈과 권력과 함께하면서도 진보 정의 개혁 코스프레하고 특권층으로 살아온 사람 엄청 많습니다. 새민련이 현재의 형편없는 모습이 된 건 오랜 세월의 결과입니다.

 

 전 기존의 진보개혁세력 인물들에게서는 그 어떠한 희망도 찾지 못합니다. 이미 인재의 무덤으로 악명을 높이고 있는 공식 콩가루인 마당에 갑자기 특급 인재가 하늘에서 떨어질 수는 없는 법이죠. 본 블로그에서 몇 번에 걸쳐 말해왔듯 진짜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사람은 이제 그 쪽에 안 붙습니다. 이미 실패한 정치인이 된 안철수도 만약 성공하려면 민주당과 승부를 해서 민주당을 부술 필요가 있었지요. 안철수가 비록 정말 못하긴 했지만, 아무리 잘했어도 민주당하고 합친 이상엔 방법이 없었을 겁니다. 차라리 새누리당 들어가서 대통령 되는 게 훨씬 쉬웠을 거라서요. 1년 전에 이렇게 말했으면 납득 못했을 분들 중에 지금은 그럭저럭 수긍하실 분들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결국 누군가는 어떤 게 진짜 진보의 길인지를 발견하고, 성찰하고, 대안을 만들어서 굳은 의지로 가시밭길을 걸어야 합니다. 다만 새 인물이 나올 때 필연적으로 수반될 진보무늬 기득권과 그 추종자인 깨시민들의 폭력적 견제는 시민 사회에서 보호해줄 필요가 있겠지요.

 


  1. 시각에 따라 마르크시안과 마르크시스트를 구분하기도 합니다만, 본문에서는 구분하지 않습니다. [본문으로]
  2. 굳이 마르크스를 좀 변호하자면 이 공산권은 등장 시부터 마르크스의 생각과는 달랐습니다. [본문으로]

 시간문제로 조금 짧게 씁니다.

 

 휴대폰 보조금으로 트러블을 일으킬 때부터 이미 정부를 비판하는 여러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저 역시 현 정부가 첨단산업에 대한 이해가 너무 부족하며, 기술적 분야의 미래를 설계해나갈 능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팬택 문제의 사업적인 부분은 첨단기술과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현 정부가 이런 데서도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장점이 없는 셈입니다.

 

 지난 시간동안 박근혜정부는 어려운 사정의 팬택이 더욱 어려워지는 방향으로 무리하게 보조금 정책을 운용하였습니다. 이동통신 시장은 정부의 입김이 큰 시장으로, 자유시장과는 거리가 멀기에 정부의 올바른 정책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정부는 공정하지 않았고 이 문제에 있어 전혀 통찰력이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정부는 국익을 위해 팬택발 기술유출을 막고, 팬택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챙겨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팬택 문제는 이동통신사들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정부가 뒤에서 어떻게 손을 쓸지, 저로서는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겉으로는 정부 일이 아니다라는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게 진심인지 작전인지는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잘 안 풀릴 경우, 다른 건 몰라도 팬택이 외국에 팔리는 사태만은 막아야합니다. 미국이라면 국가적으로 중요한 기업을 외국에 넘길까요? 그들은 결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팬택 문제가 악화될 경우, 정부가 그것을 방관한다면 저는 박근혜정부를 강도 높게 비판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 터무니없는 신자유주의의 길을 가느냐, 아니면 부친의 뒤를 이어 제 역할을 하는 정부를 운용하느냐의 분수령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가급적 이 문제가 잘 해결되었으면 합니다.

 

 

 

LTV 완화 및 가계부채 논란에 대하여

경제 2014. 6. 29. 19:41 Posted by 해양장미

 근래 들어 LTV[각주:1] 완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논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전 예전부터 LTV 완화에 강력하게 찬성하는 입장이었는데, 가계부채가 많은 상황에서 LTV 완화가 가계부채에 악영향을 줄 거라는 연구결과들이 나오고 있어서 이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 합니다.

 

 모든 것에 앞서 우선적으로 이야기할 게 있습니다. 모든 투자전망 및 규제정책에는 낙관론자와 비관론자의 의견이 엇갈리기 마련입니다. 사람은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각자가 보고 싶은 데로 상황을 보게 됩니다. 경제학자들은 보다 정확한 예측 모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만, 이러한 예측 모델들의 정확성은 일기 예보보다 떨어지는 게 현실입니다. 기상 현상에 비해 경제 현상은 더욱 변덕스럽고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합니다.

 

 이런 한계 때문에 경제 문제에 있어 미래를 전망한다는 것은 내일 비가 오냐, 안 오냐같은 문제가 됩니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 경제 정책을 결정한다는 건 내일 놀러가려고 하는데, 예상 강수확률이 60%라면 과연 그냥 놀러갈까, 아니면 취소해야 하는가?’ 같은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치권의 언어는 이런 불확실성에 비해 너무나도 전투적입니다. 한국에서는 꽤나 단정적인 어투가 일상적이며, 예언가와 같은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특히 일종의 종말론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대체로 사이비 종교 교주 혹은 신도와 같습니다. ‘곧 멸망이 다가오니, 우리는 검소함 같은 도덕적 미덕을 회복해야한다.’ 같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물론 세상이란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긴 합니다만, 혹세무민은 언제나 타인에게 피해를 주기 마련입니다.

 

 그럼 본론인 가계부채 문제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LTV 논란의 핵심은 LTV 그 자체가 아닌 가계부채입니다. KDI[각주:2]나 피치[각주:3]LTV를 늘리면 가계부채가 늘어날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거나 경고를 하고 있는데, 사실 이건 당연한 일입니다. LTV를 늘리면 당장은 가계부채가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불경기에서 레버리지 규제를 해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가 살펴봐야 할 건 현재의 높은 가계부채 자체입니다. 왜 이리 가계부채가 많은지, 가계부채의 질(퀄리티)과 건전성은 어떠한지를 봐야 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가계부채를 해결할 수 있는지를 보고, LTV가 그것과 어떠한 연관이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거시경제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 구성원들의 심리와 전망에 있습니다. 쉽게 기본적인 설명을 하자면 사람들은 앞으로 수입이 늘어날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 돈을 더 쓴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아무리 지금 자금이 충분하더라도 앞으로 쪼들리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돈을 덜 씁니다. 유난히 헤픈 사람도 있고 구두쇠도 있지만 대체로는 이렇습니다.

 

 시장경제는 사람들이 돈을 많이 쓰면 쓸수록 더 호황이 오고, 안 쓰면 안 쓸수록 불황이 오게 되어있습니다. 누군가가 돈을 쓴다는 건 누군가가 돈을 번다는 거고, 돈의 흐름이 빨라질수록 해당 사회는 부유해지기 때문입니다.

 

 이 연장선상에서 가계부채는 그 액수보다도 사람들이 가계부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봐야합니다. 부채가 그 이상의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고 전망하게 되면, 그 부채는 거시적으로는 별 문제가 아닙니다. 쉬운 말로 5%이율로 돈 빌려서 10% 수익을 얻게 되면, 아무리 많은 돈을 빌려도 빌린 만큼 이익이 되는 것이지요.

 

 한국의 가계부채가 늘어나게 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만, 가장 큰 비중은 역시나 2008년부터 시작된 부동산 경기 침체에 있습니다. 한국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매우 잘 이겨낸 국가지만, 같은 해부터 발생한 부동산 경기 침체는 아직 극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방보다는 수도권에서의 피해가 큽니다.

 

 노무현 정권 시절 부동산 상승기 때 수많은 사람들이 담보대출을 포함한 투자를 감행했습니다. 그 덕에 대다수는 재산을 불렸습니다만, 망설이다 나중에 움직인 사람들 중 일부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망설이던 사람들은 그다지 투기적인 성향을 가졌다 보긴 어려운데[각주:4], 이 사람들 중 일정 비율이 주로 하우스푸어가 된 것입니다.

 

 한편 이 사회엔 하우스푸어보다도 가계부채문제의 주된 요인이 되는 계층이 있습니다. 자영업자[각주:5]와 실질적으로 자영업이나 다름없는 소규모 법인[각주:6]의 문제입니다. 한국은 신용대출이 발달하지 못했기에, 가능한 한 저리로 대출을 받으려면 담보대출을 받아야 합니다. 물론 한국에서 가장 일반적이고도 저금리인 담보대출은 주택담보대출입니다.

 

 IMF이후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가속화되면서 은퇴자금을 활용해 자영업을 시작하는 사례가 증가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질이 좋지 못한 가계부채가 늘었습니다. 최저임금의 가파른 상승, 이어지는 불경기, 신용카드 사용 비율의 증가, 계속되는 은퇴자들의 창업, 대기업 계열의 골목상권 진출 등으로 인해 자영업 및 소규모 법인의 생태계는 무너졌고[각주:7] 그것은 현재의 가계부채 문제의 주된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문제가 커지게 된 건 부동산 경기침체 이후 부동산에 묶인 자산이 충분히 유동화되기 어려웠다는 점에 있습니다. 부동산은 거래에 시일이 오래 걸릴 수 있는 자산이고, 급매물이 축적될 경우 순식간에 가격이 폭락할 수 있습니다. 특히 한국의 경우 공동주택이 주된 거주형태이기에 주택가격이 규격화되어있고, 폭락은 순식간에 번질 수 있습니다. 물론 폭락을 방지하려는 힘이 충분하기에 실제 폭락이 발생한 지역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만, 대신 유동성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표준가격에 거래가 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렇게 줄어든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거래보다는 대출을 선택하는 사람도 많아졌습니다.

 

 침체 당시 정권을 쥐고 있었던 이명박 정부는 정책과 행정에 있어 애매한 모습을 적잖게 보였습니다. 부동산 문제에 있어 최악의 대응을 한 건 아니었습니다만, 문제를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태도 역시 부족하였다고 봅니다. 쉬운 말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결정하고 추진하기보다는 우유부단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태도는 나쁜 결정을 밀어붙이는 것보다는 낫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문제 해결에 대한 더욱 본격적인 논의는 현 정부인 박근혜정부가 들어선 이후에야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각주:8]

 

 LTV 관련 논의에 있어 제가 생각하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이율입니다. LTV는 부채의 액수에 대한 제한이지만, 이 법적 한도는 제1금융권[각주:9]의 담보대출에만 적용됩니다. LTV 제한이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제한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LTV를 넘어서는 대출을 받는 사람들은 LTV 한도 때문에 더 많은 이율을 부담하게 됩니다.[각주:10] 실제로 보면 자영업자들이 부담하는 가계부채 평균 이율이 노동자가 부담하는 이율보다 유의미하게 높습니다.

 

 즉 위에 이야기한 것을 요약하자면 가계부채의 주된 문제는 소규모 사업자들에 있고, 이 소규모 사업자들은 LTV한도로 인해 실제 가진 자산의 규모에 비해 비교적 높은 이자를 부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에서 저는 LTV한도가 소규모 사업의 실패 확률을 높이고 있다는 추론도 가능하다 여깁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실패한 사업자는 그 순간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는 피부양인구가 됩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이 문제는 우리 사회의 고령화 문제 및 복지 문제, 청년층의 노인 부양 문제와도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LTV 한도를 완화해야 한다는 명분은 충분합니다. 또한 부동산 경기침체가 계속되어왔는데 LTV를 낮게 유지할 명분이 없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자영업자, 소규모 법인 문제를 개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경기침체를 속히 끝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계부채의 위험성 또한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가계대출 금액이 너무 크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기엔 많은 이들이 한국의 가계부채 문제를 과대평가하고 있습니다. 보통 이런 비관적 시각에는 전문적인 언어가 정치적 언어로 옮겨질 때 확대 재해석되는 문제가 그 뒤에 있는 것 같습니다.

 

 현재 한국의 가계대출 규모는 외부 조건이 불변일 때는 감내할 만한 수준입니다. 한국의 가계대출은 많은 부분이 부동산 담보대출이고, 부동산이 폭락하지 않는 한 총자산에 비해 안정적인 규모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금융자산에 비해서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부채가 유난히 큰데, 이는 한국인들이 재산을 금융자산으로 보유하는 비율이 낮기 때문입니다.[각주:11] 물론 이런 점을 정치적이고도 공격적인 언어로 악용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한국은 (가계)금융자산에 비해 가계부채가 비정상적으로 높다!' 같은 식으로요.

 

 중요한 것은 가계부채의 규모를 줄이려면 경기를 회복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경기가 나쁠 때 부채가 줄어들 리 없고, 채무가 늘어나는 것을 두려워하다 유동성이 줄어드는 경우 심히 나쁜 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경영이 힘든 기업에 회생자금이 필요하듯, 경기가 나쁜 사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부동산이 시민들의 가장 큰 재산인 나라에서 부동산 거래가 오래 침체되어 있는 건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입니다.

 

 한편으로 저는 충분한 근거 없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종말론을 설파하는 부동산 폭락론자들을 경계합니다. 대부분은 부동산이나 금융에 대해 기초지식조차 없어서 하는 말입니다만, 그 뒤에는 누가 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세상에는 나쁜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LTV는 완화해야 합니다. 설령 가계부채가 더 늘어나더라도, 현행 LTV를 유지하는 것보다는 그것이 장기적으로 가계부채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확률이 높다고 봅니다.[각주:12] 다만 정부는 향후 금리가 오를 것에 대비하여 고정금리대출을 늘리려는 시도를 지난 몇 년간 반복하고 있는데, 고정금리를 선택했던 사람들이 금리인하로 손해를 본 경험들이 있기에 이 시도는 실패할 것입니다. 한국은 변동금리제를 실시해왔던 나라인 만큼, 앞으로도 경기회복 때까지는 어떻게든 저금리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게 옳다고 봅니다.

 

 더 나아가 저는 정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부동산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잘 팔리지 않는 주택을 매입하고 임대를 놓는 등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는 북유럽 등의 복지국가 시스템에서는 당연한 일입니다. 사실 진보주의자들이 이런 식의 주장을 강력하게 펼칠 필요가 있습니다. 주거복지와 경기부양 모두에 도움이 되는데다, 북유럽에서 실제로 사용중인 방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자칭 타칭 진보들을 보면 한숨이 나올 뿐입니다. 그들은 대체로 나쁜 상황을 이용해 불안과 공포를 자극함으로서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고 얻으려 들 뿐, 진짜 문제를 해결할 만한 어떠한 현실적 방안도 생각하거나 제시하지 않습니다.

 

 당장 이 사회의 미래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불안을 해소시키고, 안정된 정서를 공유하는 것입니다. 공포감을 자아내는 말들이 공포를 확대시키고, 공포스러운 미래를 불러옵니다. 사람들은 예견한 대로 행동함으로 인해 예견을 실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현실적 위험에서 눈을 돌리는 것은 더 위험한 행위입니다만, 약간의 위험을 확대시켜 겁을 주는 것은 더욱 위험합니다. 역사는 겁쟁이가 아닌 용기 있는 자들의 편이었습니다.

 


  1. 주택담보대출비율을 의미합니다. LTV가 60%으로 책정된 지역에서는, 주택가치가 1억일 때 제1금융권에서의 주택담보대출한도가 6천만원이 됩니다. [본문으로]
  2. 한국개발연구원. 국무조정실 산하의 재단법인 경제ㆍ사회 연구기관입니다. [본문으로]
  3. 국제신용평가사 중 하나입니다. [본문으로]
  4. 수완 좋고 재기 넘치는 사람들은 대체로 분위기를 빠르게 읽고 투자에 일찍 뛰어들기 마련입니다. [본문으로]
  5. 연구에 의하면 자영업자들의 부채는 전체 가계부채의 43.6%를 차지하며, 가구당 부채액수는 임금노동자의 2배에 육박합니다. [본문으로]
  6. 실제 소규모 법인회사들을 보면 적잖은 경우 자영업과 동일한 방식으로 경영되고 있고, 자영업과 같은 양상의 큰 문제를 가진 경우가 적지 않지만 통계적으로는 결코 자영업으로 잡히지 않습니다. 무늬만 법인이지만 무늬 때문에 식별은 거의 불가능한 것입니다. [본문으로]
  7. 통계적으로 현재 자영업자의 1/3 정도는 생활비도 못 벌고 있습니다. 자영업자 평균 연수입도 노동자에 비해 유의미하게 낮습니다. [본문으로]
  8. 잘 하다가 전월세에 세금 걷는다는 희대의 바보짓을 하긴 했습니다만. [본문으로]
  9. 새마을금고, 지방농협 같은 건 제1금융권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본문으로]
  10. 물론 현실적으로는 DTI같은 문제도 있습니다. [본문으로]
  11. 한국 사람들은 총자산이 많은 사람이 부채도 많습니다. 그런데 비금융자산인 부동산을 빼고 금융자산만을 놓고 보면, 금융자산과 부채 사이엔 역의 관계가 성립합니다. 금융자산이 없을수록 부채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서구 선진국과는 정반대의 성향입니다. 즉 한국 가계부채는 외국의 사례와 양상이 달라 특수성이 있다는 겁니다. 자산이 많은 사람들이 부동산에 돈이 묶여 있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본문으로]
  12. 다만 외부리스크를 헤지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LTV를 지키자는 주장도 타당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한국이 그런 위험 회피적인 경향이 중장기적으로 더 큰 위험을 만들어내는 상황에 처해있다고 느낍니다. [본문으로]

자본주의의 진화 - 마이너스 이율의 도입

경제 2014. 6. 8. 16:52 Posted by 해양장미

 경제학은 왜 필요할까? 이번엔 이것부터 간단히 설명을 하고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경기가 나빠지면 개개인 입장에서는 씀씀이를 줄이는 게 현명한 선택이 되지만, 사회 구성원 모두가 그러면 불경기는 더욱 심해지고 모두들 더 가난해진다. 사회에 불안과 불신이 팽배해지고 모두들 은행에서 현금을 인출하려고 하는 뱅크런 현상이 발생할 경우, 은행은 예금액 전부를 현금으로 보유하고 있지 않기에 (은행의 현금 보유 비율을 예대차라 한다.) 파산하게 된다. 이것이 공황이고, 경제학 중 많은 부분이 이런 상황을 방지하고 해결하기 위해 발전하였다.

 

 개개인이 모두 과도하게 이기적이 될 때 그게 사회에 파괴적인 결과를 낳는 건 세상의 당연한 이치이다. 혹자는 자본주의가 이기심을 과도하게 긍정한다고 주장하지만, 대체로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경제학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거나 사이비거나 특별히 이기적인 사람들이다. 위대한 경제학자들은 대체로 사회 구성원들의 윤리성과 신뢰, 공동체 의식 등도 중시한다. 성공적인 시장에는 그런 게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불황이 빚어질 때마다 윤리성의 회복을 강조하며, 그들 각자가 상상하는 자본주의 이전 시대상으로 돌아가거나 - 실제로 그들이 상상하는 것과 같은 시대는 없었지만. - 아니면 사회주의 체제를 구축하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은 언제나 검소함을 주장하기 때문에, 경기를 회복시키고자 하는 경제학자들(또는 정부 및 관료들)에게는 골칫거리가 된다. 사실 아무리 심한 불경기라도 사람들이 돈을 펑펑 써대기 시작하면 금방 끝난다. 불경기란 시장에 돈이 잘 돌지 않는 현상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심리와 가치관은 대체로 문제를 악화시킨다.

 

 그래서 정부는 금리를 조절한다. 비록 금리는 (채권과 환율 때문에) 정부가 완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경기를 조절하고 정부 재정을 관리하는 데 있어 가장 전통적인 수단이다. 그런데 근래 들어 선진국들의 부채가 불어나게 되면서 금리는 점차 낮아졌고, 결국 금리의 조절만으로는 불충분한 시대가 다가왔다. 그래서 미국과 일본은 양적 완화라는 비전통적 방법을 채택하게 되었고, EU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되었다. 단기금리에 음수를 적용하게 된 것이다. 해당 소식을 링크하겠다.

 

‘ECB, 은행 단기예금에 첫 마이너스 금리 적용 (링크 클릭)’

 

 내가 생각하기에 마이너스 금리는 지금껏 있어왔던 자본주의의 기본 법칙을 (직관적으로[각주:1]) 뒤흔드는 행위다. 근대 자본주의의 발달은 금리와 예대차로부터 시작하였다. 금리가 있으니 사람들은 은행에 돈을 맡겼고, 은행은 예대차를 이용해 없는 돈을 창조하여 빌려줌으로 시중에 통화량을 늘렸다. 이렇게 늘어난 통화량은 호황을 만들고 모두를 부유하게 하는 데 크게 공헌하였으나, 이 시스템은 태생적으로 돈이 돈을 벌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흔히 진보좌파들이 지적하는 자본주의의 단점중 정말 많은 부분이 사실 ‘(양수인) 금리가 있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금리가 양수일수도 있고 음수일수도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아직 기준금리는 음수가 되어보지 않았고, 기준금리를 음수로 만들려면 화폐 체계를 완전히 바꿔야하지만 실제 채권금리가 음수가 되었던 사례는 최근에 있었고, 이는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자본주의의 진화라 할 수 있는 변화다. 만약 기준금리가 음수가 될 수 있다면, 화폐의 의미 자체가 변한다.

 

 본래 자본주의에서 현금은 기준금리 대비 부채이며, 미래 생산성에 대한 부채였다. 그런데 기준금리가 음이 되면, 현금은 그 자체로 자본이 된다. 사실 그렇기에 기준금리를 음수로 만들면서 기존 법칙들을 유지하려면 화폐를 없애야 하는데, 이런 이야기는 개인적으로는 사담으로나 하던 것이었지만 이젠 현실 앞에 등장해 있다. 난 사실 더 이상 세상에 버스 토큰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듯, 실물화폐도 그다지 필요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를 한국이 결정할 수는 없다. 세상의 기축통화는 달러다. 그렇더라도 과거 금본위제가 어느 날 사라졌듯, 미래의 어느 날 실물화폐가 사라질 날이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금리 기준점을 0에 두고 +, -를 조절할 수 있다면 이론적으로 불황을 극복하기는 훨씬 쉬워진다. 불황을 극복하는 데 있어 가장 손쉬운 방식은 현금을 무가치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경제적 불안감을 느낄 때, 사람들은 현금을 가치 있고 안전한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흐르지 않는 현금만큼 무가치한 것도 없다. 경제학자들은 오래도록 군중의 불안감 및 현금 숭배와 싸워왔다.

 

 필요하다면 모든 실물 화폐를 없애버리고, 중앙은행은 -5% 기준금리 같은 것도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현금을 쥐고 있는 게 정신 나간 짓이라고 생각하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모두가 최소한으로 돈을 쓰는 시장은, 모두가 최소한으로 돈을 버는 시장과 같다. 물가 문제에선 심한 인플레이션만 막으면 된다.

 

 보기에 따라 약간 난해했을지 모르는 이야기를 마치면서 부연하자면, 내가 이야기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케인즈주의적 관점이다. 그리고 신자유주의자들은 이것과 정 반대로 이야기하고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정부의 재정 정책은 불필요하며, 물가를 안정시키는 것 외엔 시장에 개입할 필요조차 없다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그들은 위기일 때 도리어 금리를 높여 투자를 촉진하자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한국은 IMFIMF의 지시로 그런 결정을 했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참으로 고통스럽고 끔찍했다. 그러나 이 사회의 수많은 신자유주의자들은 그 경험에서 별로 배운 게 없는 것 같다. 물론 자칭 진보좌파들도 경제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 신자유주의자들의 달콤한 말에 자꾸만 넘어간다는 것도 또 한 번 강조해야하겠다.

 


  1. 사실 양적완화도 판단하기에 따라선 자본주의의 기본 법칙을 뒤흔드는 행위일 수 있지만, 직관적으로 사람들에게 그렇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본문으로]

최저임금 이야기에 대한 보론

경제 2014. 4. 12. 18:38 Posted by 해양장미

 내년 최저임금 협상이 진행되려는 이 시기에, 미국의 최저임금이 대폭 올랐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나는 최저임금 인상론자들이 이에 큰 영향을 받을 거라 생각한다.

 

 한편으로 지난 포스트, ‘최저임금, 너무 올랐다 (링크)'에 대한 과격한 진보좌파 및 저임금 생활자의 반응은 매우 부정적으로 뜨거웠는데, 그들의 근시안적 태도와 폭력성 및 과격함, 그리고 근거 없는 오만함은 참으로 우려가 되는 면이 있다.

 

 한국의 최저임금 문제는 구조적인 것이다. 한국의 사교육 문제가 입시제도 고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듯, 한국의 양극화와 저임금노동자 빈곤 문제도 최저임금 좀 올린다고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전반적인 시장 및 산업 구조를 파악하고, 더 나은 대안을 협의해야 한다. 그러나 단순무식하고 과격하며 폭력적인 최저임금 인상론자들은 온갖 거짓말들을 해가면서, 최저임금을 대폭 올리는 것만이 윤리적인 행위이며 그것이 서민의 삶을 크게 개선시킬 거라는 식으로 오도를 하고 있다.

 

 쉽게 이야기해 보자. 임금 노동자들이 임금을 받을 수 있는 이유는 그 노동이 시장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없다면, 재화()는 그 쪽으로 흐르지 않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최저임금을 받는 일들은 대체로 부가가치가 매우 낮다.

 

 한국은 제조업 기반의 경제 구조이고, 이 제조업에서 볼 때 좋은 기술력을 가진 나라지만 동시에 가격 경쟁력도 갖춘 나라다. 아직 기술력만으로는 독일, 일본, 미국을 이기기 힘든 분야가 많다. 그렇기에 한국은 더 저렴한 상품을 공급하고 있고, 이 저렴한 상품을 공급하는 데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인건비이다. 그리고 이렇게 낮은 인건비는 낮은 물가를 만든다. 한국 사람들의 높은 생활수준은 낮은 물가와 낮은 세금으로 이루어지는 면이 많다.

 

 한편으로 한국의 자영업자는 전체 직업군의 30%이며, 이 숫자에 실제 가게에서 무보수로 일하는 자영업자의 가족들은 포함되어있지 않다. 그리고 이 자영업자의 7~8할 수준은 수익성이 낮고, 5년 내 폐업률도 극단적으로 높기에 현재의 가파른 최저임금 상승을 감내하기 어렵다.

 

 폭력적이고 이기적인,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론자들은 이런 자영업자 및 소규모 법인들에 대해 전혀 이해심이나 자비심이 없다. 그들은 세상을 노동자와 자본가로 이분화시켜서, 둘의 폭력적인 갈등을 조장하는 공산주의적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세상은 그리 단순하지 않고, 대부분의 소규모 사업가들은 매우 복잡한 시장 경제의 핵심적인 일원이다. 이들이 어찌되건 상관없다는 발상은 사악하며 폭력적이고 부도덕하며 때때로 지극히 이기적인 것이다.

 

 나는 과격한 최저임금 인상론자들이 실제 한국 시장 경제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경우를 전혀 본 적이 없다. 현실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실제 대부분은 최저임금 받는 저연령층이거나 본격적인 좌파다. 그들은 나이가 든 상황에서 사업이 망한 영세 사업자들과 그 가족이 어떤 형편에 처하는지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런 사악함과 폭력성은 언제나 경계해야 한다.

 

 물론 최저임금이 충분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국의 전체적인 경제 상황이 단순하고 간단한 노동으로는 충분한 부가가치를 창출하기에 부족하기에 그렇다. 이는 최저임금 상승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이따금 최저임금이 오르면 최저임금을 받은 사람들이 구매력이 상승하므로 자영업자도 타격을 입지 않을 거라는 뻘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진짜 경제의 기초도 모르니까 하는 소리다. 구매력 상승이 자영업자의 손해를 막으려면, 최저임금은 물가만큼만 올라야 한다. 그러나 지난 포스트에서 밝혔듯, 최저임금 상승률은 물가상승률에 비해 엄청나게 높기에 자영업자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또한 소규모 사업가들은 가만 놔둬도 점점 프랜차이즈 등에 치이는 상황이기도 하다. 실제 IMF이후 한국의 자영업자 비율은 점점 감소하고 있고, 이것은 한국 사람들의 삶을 더욱 빡빡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본문을 빌려 과격하고 사악한 멍청이들에게 꼭 말해주고 싶은 게 하나 있다. 너네들이라고 언제까지고 최저임금 노동자일 수는 없고, 언제까지고 좋은 직장에 다닐 수도 없다. 은퇴는 50대고, 기대수명은 100살인게 이 시대다. 나이가 들면 정말 다수가 치킨집을 차리고 카페를 차린다. 보통 사람이 번듯한 직장에 다닐 수 있는 시기는 전체 수명과 비교해 지극히 짧다.

 

 최저임금도 지키지 못할 정도면 사업하지 말라고? 그것에 대해 똑같이 해주고 싶은 말은, 왜 편하게 최저임금이나 받는 일을 하냐는 것이다. 이런 말이 아니꼽게 들릴 지도 모르겠지만, 기대수익이 낮아도 가게를 차리는 것과 돈을 별로 못 받아도 일을 하는 것 사이엔 사실 별 차이가 없다. 그런 입장에 놓이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일단 좀 과격하고 폭력적인 태도부터 치우고 시작하는 게 좋다. 역사를 보면 내가 옳고 정의롭다고 생각하면서 폭력을 쓰는 사람들이 항상 가장 큰 사고를 치는 법이다.

 

 지난 몇 년간 최저임금은 그나마 많이 올랐지만, 자영업자의 수익률 상승은 초라할 지경이다. 여전히 공산주의적 마인드를 못 버리고 있는 좌파들이 어린 애들을 선동해서, 지나치게 폭력적이고 과격한 태도로 이 사회의 경제 체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편으로 나는 본 블로그에서 여러 번 한국 경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것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이야기해왔다. 전체적으로 경제가 성장하고 각종 문제들을 해결하면 평균소득도 올라갈 거라 기대할 수 있다. 한국은 노동생산성이 아직도 낮고, 노동시간은 너무 긴 나라다. 법정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도 많고, 그만큼 법정최저임금을 주기 어려운 일터가 정말 많다. 이런 각종 문제들을 개선해야 하는 게 우선적인 문제다.

 

 한국의 최저임금은 물가상승률의 2배 수준으로 매년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이러한 최저임금 상승은 거시경제에 대단히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고, 가뜩이나 낮은 고용률도 더 떨어뜨리는 쪽으로 영향력을 행사한다. 고용률을 높이고자 하는 박근혜정부의 정책이 성공하려면 최저임금의 상승을 어느 정도 낮게 억제해야한다. 안타깝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1인당 PPP는 실제 1인당 GDP보다 중요한 경제 자료다. 구매력을 기준으로 한 것인데, 각 국가의 화폐가치가 GDP에 반영되기에 PPP가 더 정확한 자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구가 천만 명이 안 되는 나라는 실제 우리와 비교 가능한 국가라기에는 규모가 너무 작다. 특히 적은 인구와 가치 있는 천연자원의 보유가 합쳐질 때는 정말 잘 살 수가 있다. 그렇기에 이 자료는 실질적으로 한국보다 잘 사는 국가가 어디어디가 있는지 꼽아볼 수 있다. 보기 편하게 순위별로 꼽아보자면.



1위 미합중국        $54609

2위 오스트레일리아  $44406

3위 캐나다          $43145

4위 네덜란드        $42143

5위 타이완          $41580

6위 도이칠란트      $40756

7위 벨기에          $38697

8위 브리튼 연합     $38309

9위 니폰            $38297

10위 프랑스         $36453

11위 한국           $34776



 대략 이 정도가 된다. 생각보다 높은가?


 1인당 PPP순위에서 한국은 뉴질랜드, 에스파냐, 이탈리아 등보다 높다. GDP와 다른 결과가 나오는 건, 한국 원화의 가치가 낮게 평가되어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물가가 낮은 이유도 있다. 같은 이유로 대만은 PPP기준으로는 훨씬 더 순위가 올라간다.


 인구가 1천만이 넘는다 해도 벨기에 같은 경우는 서울시 인구 정도다. 스베리예(스웨덴) 같은 경우는 인구가 천만 명이 좀 안 되어서 빠졌다. 아주 작은 도시국가들을 빼고 노르웨이, 슈바이츠(스위스), 외스터라이히(오스트리아), 에이레(아일랜드), 쿠웨이트, 덴마크, 수오미(핀란드), 이스라엘도 한국보다 1인당 PPP가 높지만 인구가 천만 명이 안 되어서 빠졌다. 이런 나라들의 경제 구조는 생각보다 천연자원이나 소규모 공업 의존이 높은 경우가 많다.


 실제 한국 수준의 경제적 생활수준을 영위하면서 사는 국가는 거의 없다. 한국 사람들이 힘든 건 신자유주의와 양극화, 너무 긴 노동시간, 그리고 너무 쪼이는 고간섭 경쟁문화 및 아직 남아있는 전근대적 비합리성 때문이지 못 살아서가 아니다.


 사실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것을 해낸 건지 잘 모른다. 1900년까지 개항이 제대로 안 되었던 나라 중에 선진국이 된 나라는 한국뿐이다. 그리고 인구 5천만 명이 넘는 나라 중 선진국이 된 나라는 미국, 서유럽 몇 국가, 일본 외엔 한국밖에 없다. 1980년대만 해도 한국이 이탈리아, 에스파냐를 제치고 프랑스나 일본에 견줄 만큼 잘 살 거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도로에 벤츠, BMW가 널려서 운전하기 겁나게 될 거라 생각했던 사람이 누가 있었을지 모르겠다.


 물론 한국인들은 만족을 모른다. 아직 미국만 못하다고, 스칸디나비아 반도 국가만 못하다고, 독일에 비해 제조업 경쟁력 떨어진다고 아우성인 게 한국이다. 1등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국가니까. 근데 PPP 기준하면 독일하고 우리, 이제 얼마 차이도 안 나고 솔직히 세후로 치면 이제 중산층 기준 독일인보다 한국인이 더 잘 산다. 독일은 세금 많이 떼는데, 한국은 중산층한테 정말 소득세 안 떼는 편이다보니까. VAT도 낮고.


 이제 우리한테 진짜 부족한 게 뭔지 생각해봐야 한다. 한국인의 체감 생활수준이 낮은 이유는 따로 있다. 우리는 이제 문화적이고 심리적인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더 나은 회사들이 생기고, 더 나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무조건 열심히 하던 시대는 지난 지 오래다. 쓸데없는 조급증과 쓸데없는 불안감도 버려야 마땅하다. 한국은 문화적 결함에서 나오는 심리적 질병이 만연한 사회라 할 수 있다.


 한국은 잘 사는 나라다. 다만 잘 사는 사람만 잘 사는 나라고, 잘 못 살던 사람이 잘 살기가 다소 쉽지 않은 나라고, 사회적으로 쓸데없이 받는 스트레스가 좀 많은 나라다. 어디서부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논의해야 한다.



하마다 고이치의 말에 동의한다.

경제 2014. 2. 27. 23:33 Posted by 해양장미

 "변동환율제에선 나라마다 통화정책을 자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 엔화가 너무 저평가되고 원화 가치가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올라가는 게 염려된다면 한국도 양적완화 정책을 펴서 맞받아칠 수 있지 않겠느냐"


 아베노믹스의 설계자이자 현 일본은행 총재의 스승격[각주:1]인 하마다 고이치의 말이다.[각주:2]


 내가 박근혜정부에 대해 별 말을 안 하고 있던 것은 결코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속된 말로 정치권이 병림픽[각주:3]을 하는 와중에 - 특히 백번 천번 뭐라 해도 모자랄 그놈의 경제민주화 때문에 - 그나마 ‘나랑 의견은 다르지만 이런저런 사정 고려했을 때 그럭저럭 그런가보다 할 수 있는 정도’는 되기 때문에 별 말을 안 한 거다. 그렇지만 여왕폐하께서 나름 정치를 잘 하다 보니 지지율이 굳건해서, 굳이 편을 들어주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이제 할 말은 조금씩 해야겠다.


 제일 마음에 안 드는 것부터 하나 이야기하고 시작하자. 도대체 왜 그리 소심하게 경제정책 펴시는지 모르겠다. 좀 화끈하게 땡겨봐도 되는 상황이 아니신가. 적어도 여왕폐하 아버님이라면 이렇게 하진 않았을 거다.


 박근혜정부의 경제정책이 나름대로 건전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 영 체감 상 실효적인 게 별로 없는 건 여러 이유가 있지만 아베노믹스가 한 몫을 단단히 하고 있다. 어쨌든 한국은 제조업 국가고, 일본과 경쟁해야 하는 입장인데 동남쪽 열도국 총리대신 아베가 엔화 찍는 윤전기를 돌려 대서 - 이 말이 진짜로 현금을 위조지폐마냥 막 찍어댄다는 건 아니다. - 엔화가치를 폭락시키니 일제 수출품들 가격이 급락하고, 그에 경쟁 상품 만드는 한국의 제조업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럼 대한민국의 국가 지도자라면 어째야 할까. 저 쪽이 저러면 우리도 같이 하면 된다. 그런데 아직 한국 기준금리는 2.5%다. 저쪽은 제로금리에 양적완화까지 하는데 말이다. 물론 우리는 저 쪽 보다는 엄청난 여유가 있지만, 혹시 박근혜정부, 아베노믹스가 그냥 실패할 거라 보는 건가? 아닌가 혹시 물가안정을 위해 환율을 건드리기 싫은 걸까?


 박근혜정부의 아이덴티티는 사실 어디쯤에 있는지 파악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예를 들어서, 박근혜정부는 기업과 주주간의 관계에서 오너의 권리를 어느 정도 보장해준다는 면에서 덜 신자유주의적이다. 작년의 신속한 추경편성도 마음에 들었고, 창업과 기업의 성장을 돕는 각종 정책도 높게 평가한다. 그런데 거시정책에서 너무 소심한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한국은 변동환율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고, 내가 생각하기엔 아직 이율도 다른 선진국에 비해 높다. 양적완화는 너무 실험적인 방식이라 쳐도 기준금리를 더 낮춰서 대응할 수 있지 않은가. 저성장이 이어지고 있는데, 재정 정책과 통화량에 대해 너무 보수주의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려한다. 물론 어쩌더라도 아예 경제 개념이 없는 족속들보다야 낫겠지만, 국민들 인내심도 생각 좀 하셔야하지 않는가.


 여왕폐하 아버님께서는 그리 소심하지 않으셨다. 아무리 잃을 게 많아졌다고는 해도, 한국의 상황이 상대적으로 괜찮다고는 해도 지금은 다들 위험을 감수하는 시대다.


 경제에 대한 이해가 다소 부족하신 분들에겐 지금까지 적은 이야기들이 좀 뜬금없이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내가 한 이야기는 ‘우리 신자유주의적으로 가지 맙시다.’와 거의 유사한 이야기다. 덤으로 이야기하자면 ‘일본의 실패를 보고 배우자’ 같은 이야기도 된다.


 아베노믹스는 양적완화지만 일종의 환율전쟁이기도 하다. 아베노믹스는 엔화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난 첨에 아베가 저럴 때 미국이 일본을 말릴 줄 알았다. 그런데 안 그러더라. 이미 외교적인 고려까지 있었다는 뜻이다. 근래 일본이 노골적으로 보이는 군사주의 우경화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일본은 단합이 필요하고, 전쟁이라도 불사할 기세다.


 그런데 우리는 일본이 저러는데 뭘 하고 있는 걸까. 그들이 가진 절박함이나 패기를 그냥 무시해도 되는 걸까? 대한민국은 위에 말했듯 양적완화까지 할 필요도 없다. 기준금리가 2.5%나 되기 때문에, 이것만 한 1.5% 수준으로 낮춰도 원화가치를 절하시킬 수 있다. 근래 한국 기준금리 인하 논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닌데, 나는 정부가 너무 금리를 높게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부의 우려는 높은 가계부채로 인한 리스크 관리에 있다고 본다. 그런데 한국의 가계부채는 자산대비 그다지 높지 않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같은 파생상품으로 과도한 자산대비 부채비율을 가졌던 미국 등과 비교하면 꽤 안전하다. 게다가 우리는 어느 정도 마음대로 금리를 조절할 수 있다. 또한 가계부채는 경기가 살아나야 줄어드는 것이다.


 이미 지난 1월에 기준금리가 인하될 거라는 전망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기준금리는 아직도 유지 중이다. 나는 이게 한은의 과도한 상황 낙관과, 그 예측이 빗나간 현실에서 그것을 바로 인정할 수 없는 관습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 본다. 한은이 독립적으로 보이려는 것도 그 이유에 속할 것이다.


 사실 이런 모습도 신자유주의와 관료제의 폐단이다. 솔직히 누가 미래를 얼마나 예측할 수 있나. 미래예측이 그리 잘 되면 공무원 때려치우고 전업 투자자로 나서도 그로스나 소로스 못지않게 돈 잘 벌 수 있을 텐데. 그리고 한은 독립시키자는 말은 제발 그만 좀 하자. 관치금융 해야 한다.


 국제 금융시장에게 부정적 시그널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니까 우린 너무 고금리를 유지해왔다는 거다. 지금이라도 빨리 얼른 내리고, 다른 선진국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해야 한다. 더는 밍기적거릴 때가 아닌 것 같다.


 솔직히 DTI며 LTV며 다 강하게 유지하고 있는 한국이다. 기준금리 좀 내린다고 큰 리스크를 질 상황이 아니라는 거다. 무식한 야당 정치인들 무서워서 이런 식으로 하고 있는 건 아니리라 믿는다.


 한국은행의 발언을 보면 현재의 금리도 경기부양에 적합한 금리라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대통령의 뜻과 한국은행의 의지가 현재 동일한지 개인적으로 의문이다. 여왕폐하께 한 마디 더 남기자면, 이런 상황에서 아버님이라면 어떻게 했을 지를 생각 좀 해보셨으면 한다.




  1. 혹시 잘 모르실 분들을 위해 말하자면, 하마다 고이치는 자신의 제자격인 일본은행 총재를 비판하던 입장이다. [본문으로]
  2. 기사 참조 http://media.daum.net/issue/415/newsview?issueId=415&newsid=20140220151809687 [본문으로]
  3. 난 이 단어를 좋아하지도 않고 가볍게 쓰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근래의 한국 정치권을 형용할 때 이보다 더 어울리는 표현은 없다. [본문으로]

임대소득세 추징 문제에 대한 이야기

경제 2014. 2. 26. 20:08 Posted by 해양장미

 정부에서 세수가 부족하다보니 무리한 걸 건드리려고 하는데, 잘못하면 이거 큰 일 난다.


 한국은 월세가 비교적 저렴한 국가에 속한다.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할 분들 있겠지만, 외국 선진국들 월세는 오버 좀 보태서 살인적이다. 한국 월세가 싼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주요한 요인이라 생각되는 걸 몇 가지만 들자면


1) 전세 제도가 있고, 전세와 월세가 경쟁을 하는 구도

2) 세입자에 대한 각종 법률적 혜택과 약간이나마 약자를 위하는 온정적 사회 분위기

3) 어지간한 임대소득에 대한 실질적 면세혜택


 등을 들 수 있었다.


 그런데 1은 이미 어느 정도 붕괴되는 중이고 여기에 3을 건드리게 되면 그야말로 뇌관에 불을 붙이는 셈이다. 실제 한국에서 월세는 투자대비 소득금액이 이미 상당히 낮은데, 세금이 추징되게 되면 거의 메리트가 없어지기 때문에 가파른 월세 상승이 예상된다.


 더구나 소득세보다도 더 큰 문제가 소득이 추징될 경우 부과될 수 있는 4대보험 문제다. 한국에서 지역가입자의 건강보험 금액은 소유 주택과 자동차, 그리고 연령과 성별에 의해 매겨지는데 임대소득이 추징될 경우 4대보험료까지 추가로 부과되는 케이스가 상당히 나올 수 있다. 임대인들은 절대로 그 손해를 혼자 떠안지 않는다. 임대사업을 포기하면 포기했지. 임대인 입장에서 주택임대는 선택의 영역이지, 의무의 영역이 아니다.


 이는 임대사업자 신청을 의무화시킨다는 방안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현행 한국의 주택임대 관행은 전반적으로 저렴한 주택임대료라는 결과로 귀결된 상태다. 이를 과세의 대상으로 삼는 건 조세정의에 그리 잘 부합하는 결과를 못 만들 가능성이 높다. 또한 전체적인 경제에 미칠 해악도 적지 않다. 최악의 경우 임대주택 매물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면서 겨우 살아나려는 부동산 시장에 피해를 줄 가능성도 있다. 또한 전문 임대사업자가 임대사업을 주도하게 되면 빈부격차는 더욱 커질 것이다. 임대차 관계에서 확정일자를 못 받게 함으로 조세를 회피하게 되면서 피해자가 양산될 가능성도 있다.


 정책은 신중해야하고 현실을 잘 반영해야 한다. 임대차 관계를 양성화시키고 싶다면 그 전에 해야 할 게 너무 많다. 정책 만드는 사람들이 과연 현실과 현장을 얼마나 알지 모르겠다. 한편으로 전세금에 대해서도 과세를 추징하면 헌재 가서 위헌판결날 가능성이 높다. 명분이 은행이율에 대한 과세인데, 은행이율은 이미 금융소득으로 과세가 되기에 이중과세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

경제 2014. 2. 25. 11:27 Posted by 해양장미

 한국은 분배에 있어 문제가 심각화되는 경향을 가진 나라다.


 사실 한국의 지니계수라거나 빈부격차를 보면, 한국은 큰 문제가 있는 나라에 속하지는 않는다. 물론 한국보다 좋은 나라도 있지만, 한국보다 못한 나라가 정말 많다.


 그런데 한국이 좀 독특한 문제를 가진 점을 요약하자면,


1) 좀 중간이 없다. 잘살거나 아니면 못 산다. 쉽게 말해 양극화.

2) 못 사는 사람들 중 정말 못 사는 사람들은 너무 심각하게 못 산다. 이 사람들은 사회에 거의 아무 목소리도 못 내고, 그나마 살만한 사람들에게 치인다.

3) 전반적으로 너무 고학력에 너무 노동시간도 길고 타인 의식을 많이 하는 사회라 평균만큼 하기도 너무 힘들다.

4) 서민들도 부자를 너무 쉽게 볼 수 있다. 다른 나라에 비해 생활구역이 뚜렷하게 분리되어있지 않다. 더구나 문화적으로 사람 간의 비교를 심하게 한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진보좌파들은 실질적인 분배문제에 있어 현실성 있는 대안을 내놓거나 통찰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고, 그렇기에 정치적인 문제 해결이 너무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번 글에서는 이에 대해 좀 이야기해볼까 한다.


 그리고 어린 깨시민들의 안타까운 피해의식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한다.


 일단 가장 먼저 이야기해야 할 것은 흔히 대다수가 겪게 되는 저임금노동에 관한 것이다. 성인이 되고 저임금노동을 처음 해 보면, 그 반응은 각자 다르지만 대체로는 그것이 힘든 데 비해 정말 돈은 안 된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나마 요즘은 최저임금이 많이 올라서 꽤 나아졌지만, 10년 전만 해도 1.5배쯤 심각했다.


 보통 한국 사람들은 고학력에 어린 시절 인생의 목표도 (실제 이루기 힘들 정도로) 높은 편이라서 이런 경험이 좀 충격적이기 쉽다. 대체로 이런 경험들에서 진보적인 의식이 싹트기 시작하는데, 문제는 이후 습득하게 되는 소위 ‘진보세력’이 주장하는 말들을 좀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기 쉽다는 데 있다. 그나마 진보세력이 하는 말들이 좀 말이 되는 소리들이면 그래도 괜찮은데, 알고 보면 대체로 뻘소리 그 자체라서 이게 사회문제로까지 커지게 되는 것이다.


 일례를 들기 위해 모 커뮤니티의 덧글 하나를 임의로 인용해 보겠다.[각주:1] 우연히 발견한 이 글을 인용한 이유는, 이것이 매우 흔한 진보좌파 식 담론 중 하나의 스탠다드가 될 수 있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또한 이 덧글은 해당 커뮤니티의 추천/반대 시스템에서 인용 시점 현재 추천 60개에 반대 0개를 받고 있기에, 소위 진보적인 사람들의 인지와 정서를 파악하는 데도 일정 이상 도움이 된다고 본다.


‘ 쌍팔년도식 경제관념을 교육받은 사람들이 자꾸 분배를 성장과 반대되는 개념쯤으로 착각을 하는게 문제인데, 분배는 성장에 반하는 개념이 아닙니다.


 분배는 더 성장하기 위한 밑거름이에요. 소를 키워 파는 사람도 더 질 좋은 사료, 예방접종 등 기본적인 의료 지원을 해야 더 높은 수익을 낼 수 있습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도 양질의 품종을 구하고 더 좋은 비료를 써야 더 높은 수익을 내는 법이구요. 공장을 운영하는 사람도 더 좋은 기술 개발에 투자를 하고 더 좋은 설비에 투자를 해야 수익을 올릴 수 있죠. 성장과 분배의 개념도 마찬가지에요. 노동자 개개인의 삶의 질이 올라가야 노동력도 더 향상되고 더 뛰어난 품질의 노동력 제공이 가능해 집니다. 분배는 성장의 결과라거나, 성장 이후에 '다 이루었다'하고서는 나눠먹는 개념이 아닙니다. 더 성장하기 위한 기본적인 투자죠.


 성장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자는 둥 뻘소리 하는 인간들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멍청이 이거나, 혹은 다 알면서 자기 배만 채우기 위해 거짓말하는 악당일 뿐입니다.


 공산주의가 망한 이유를 인간의 본능적인 '욕심'을 무시해서 그랬다고 쉽게들 이야기 합니다. 자본주의가 망한 이유도 똑같습니다. 인간의 본능적인 '욕심'이 저절로 컨트롤 될거라 믿는 착각과 무지 때문에 망한거에요. 지금의 자본주의는 초창기 개막장 천민자본주의랑은 엄청나게 다릅니다. 이름에 자본주의 들어가 있다고 해서 저 옛날 산업혁명 시절 영국에서 10대 미만 어린애들을 공장 기계 틈 기름웅덩이 속으로 밀어넣던 그 시절 막장 자본주의랑 같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시장논리에 모든걸 맡기면 다 알아서 될거다'라는 둥, '낙수효과'라는 희대의 뻘소리를 지껄이는 둥, 인간의 욕심과 시장논리에 그냥 모든걸 맡겨두면 다 알아서 될거라는 그런 착각은 곤란합니다.


 나라에서 나서서 적극 개입하며 분배에 힘써주지 않으면 더이상의 성장도 없습니다. 분배가 없으면, 분배를 위한 정부의 시장개입이 없으면, 결국에는 시장도 붕괴되고 말겁니다.


 지금 대한민국 경제를 살리는 길이요? 최저임금 확 높이고, 나태하고 태만한 대기업들 정신차리게 확 조져줘야 합니다.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고, 중소기업들이 대기업을 위협할 수 있게 보호해줘야 합니다. 어느 중소기업이건 좋은 아이템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새로운 강자로 일어설 수 있게 여건을 만들어줘야 하고, 대기업들도 정부 지원에 기대어 중소기업과 노동자들 피나 빨어먹으며 썩어가는게 아니라 언제건 밀려날 수 있다는 위기감에 죽자살자 뛰게 만들어야 합니다. 노동자들이 높은 임금과 여가생활, 자기계발의 여유를 가지게 되었을때 소비도 촉진되는 법이고, 더 질높은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게 되는 것이며, 그로 인해 기업들의 경쟁력도 올라가는 겁니다.


 자유시장경쟁체제요? 분배가 없으면 제일 먼저 '경쟁'이 없어집니다. 그 다음은 '시장'이 붕괴되고 '자유'도 무너집니다. 분배는 성장 이후에나 하는 옵션, 선택 같은게 아니라 성장을 위해서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기본 전제입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글쓴이에게는 좀 가혹하고 유감스러운 평일지 모르겠지만) 위와 같은 이야기는 너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정확히 말하면 그럴싸한 말과,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섞여 있긴 하다. 저런 글을 보면 도대체 누가 저런 이상한 소리를 하게 만들었을까, 얼마나 사태가 악화되었으면 애들이 저런 글에 모두 동의만 하게 된 걸까 싶다.


 한국 대기업이 나태하고 태만하다는 건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망상이다. 실제 수많은 한국 대기업들은 글로벌한 규모다 보니 외국 기업과의 경쟁에 살벌하게 노출된 상태다. 그런 만큼 현실을 보면 대기업들이 중소기업보다 훨씬 더 혁신적인 경우가 정말 많다. 그들이 정부의 보호 아래서 착취나 하면서 나태하게 있다는 오판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르겠다. 한국 대기업들이 각종 문제가 없는 건 아니고, 하청기업 착취가 없는 것도 결코 아니지만 적어도 나태하지는 않다.


 또한 주식회사는 원론적으로 투자자(주주)의 것이고, 투자자들은 기업의 실적이 매 분기 늘어나고 줄어드는 데 촉각을 곤두세운다. 실적이 줄어드는 걸 반기는 투자자는 없고, 기업은 투자자를 위해서라도 점점 더 많은 이윤을 남겨야 하는 게 현실이다. 이 상황을 바꿀 수 있는 방법? 사실 총수가 주주 엿 먹이는 게 유일한 방법인데, 진보좌파들은 총수는 싫어하고 주주 대우는 언제나 극진하니 될 리가 없다. 금융자본주의 사회에서, 좌파 지식인이라는 작자들이 금융에 대한 개념이 제로니 뭐가 되겠는가.


 실제 무식한 좌파들이 대기업에 괜한 압력 넣으면 그 피해는 엉뚱한 데로 튄다. 1차 하청업체에 튄 불꽃은 2차 하청업체로, 2차는 또 3차에게... 이런 식이 될 수밖에 없다. 또 위기를 느낀 대기업은 도전적인 신규투자를 꺼리게 될 수 있고, 유보금을 축적하는 경향도 생긴다. 정부는 힘은 세지만 전지전능하지 않고, 현실적으로 대기업을 제지하려는 수단들은 거의 다 헛발질이 되는 게 현실이다. 그 헛발질에 맞아서 실려 나가는 애먼 피해자들이 한둘이 아니고.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 이미 제법 하고 있다. 실제로 창업하려고 하는 청년들은 대체로 정부의 각종 지원 프로그램과 중소기업에 대한 혜택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한국 중소기업이 크기 힘든 건 정부의 지원이 없어서가 아니다. 하청업체 문제? 현실적으로 중소기업 차리는 사람한테 대기업 1차 하청은 나름대로의 꿈인 경우가 많다. 1차 들어가면 사실 회사 망할 걱정은 많이 없어진다. 중소기업의 대기업 위협? 사실 거의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제조업 기준에서 중소기업은 대체로 완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이 아니다. 규모 상 완제품의 Part를 생산하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타 업체에 생산품을 납품하는 입장이 되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무슨 중소기업 지하실에 외계인이라도 있어서 우주수준의 기술을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대기업과 경쟁할 만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중소기업? 체급이 애초에 너무 다르다. 초일류 엔지니어들이 뭐가 아쉬워서 중소기업에서 일할까.


 그럼 위의 말마따나 중소기업이 새로운 강자가 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본 블로그에서 항상 하는 말이지만 중소기업은 크다 보면 중견기업이 되고, 더 크면 대기업이 된다. 그런데 중소기업만 지원하고 중견기업부터는 견제하고 나 몰라라 하면? 중소기업은 영원히 중소기업으로 남기 쉽게 된다. 아니면 기업을 팔아 버리거나.


 이미 한국은 중소기업 지원은 나름 빵빵한데 중견기업부터는 대접이 엉망이라, 중소기업의 피터팬 컴플렉스가 꽤 심한 상황에 있다. 심지어 잘 나가는 중소기업들 중에는 해외지사 세우면서 한국에선 계속 중소기업으로 남아있거나, 한국 마음에 안 든다고 외국으로 날라버리는 회사도 있다. 이건 워낙 여러 번 해온 말이라 같은 말 자꾸 하려니 피곤한데, 사태가 이렇게까지 망가진 건 신자유주의자와 멍청한 사회주의자들의 쎄쎄쎄 짝짝꿍 놀이 때문이다. 요약하자면 정의감에 불타는 멍청이들이 모든 걸 망쳐 놨다. 그들의 눈에는 슈퍼 갑의 위치에 있는 몇몇 대기업 말고는 보이는 게 없는 것 같다.


 어설프게 국내 대기업 조여 봐야 국민들이 얻을 건 거의 없다. 그 대기업들에 국민연금 돈 잔뜩 들어가 있고,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일하고 있고 엄청난 수의 하청업체들이 연결되어있다. 또 한국 대기업들의 국제적인 라이벌 기업들은 각 해당 나라들 지원 받으면서 뛴다. 괜히 대기업 규제 들어갔다가 외국계 대기업만 신나라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또 대기업에 압박을 가하자는 말은, 대기업이 되려는 중견기업이나 미래가 유망한 중소기업에도 압박이다. 중소기업 많아봐야 일자리 안 나온다. 또한 대기업의 수가 적다는 건 그들이 그만큼 내수시장 및 갑을관계에서 유리한 입지에 있다는 뜻도 된다. 하청업체 입장에서는 납품할 기업을 충분히 고르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좌파들의 근본적인 문제는 분배에 대해 기본개념을 못 잡는다는 데 있다. 경제학적으로 시장실패 = 불황 = 디플레이션 or 저성장 = 분배 안 됨 이다. 복지 시스템? 그런 건 부수적인 것이다. 시장이 아닌 정부가 분배를 주도해야한다는 관점은 공산주의인데, 사실 현실에서 성공한 케이스가 없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소득재분배는 본질적으로 시장이 하는 것이다. 시장이 성공적으로 잘 돌아갈수록 분배가 잘 된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진보좌파들은 노동자들이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더 적은 시간을 일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청년들의 살벌한 취업난을 해결할 수 있을지 알지 못한다.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할 수 없기에 사회를 개선하지 못하고, 오히려 어리석게도 신자유주의와 때때로 결탁하면서 사태를 크게 악화시켰다. 경제 현실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좌파들이 퍼뜨리는 사회주의적 관념을 잣대로 세상을 재단하면서 비롯된 일이다.


 한국의 노동자들이 정말 좋지 못한 상황으로 몰리게 된 건 일차적으로는 IMF 이후이다. 그 이전까지는 경제가 잘 성장하면서 분배 또한 점점 잘 되고 있었다. 성장과 분배는 별개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IMF 이후 상황이 크게 변해버렸다.


 수많은 기업이 도산하면서 일자리가 사라졌고, 금융에 대한 주권을 잃어버리면서 한국 기업들의 지분 중 많은 부분을 외국인들이 차지했다. 금융개방이 강행되었고, 주주 중심의 신자유주의가 광풍처럼 몰아치게 되었다.


 주주를 중시하는 신자유주의가 곤혹스러운 건, 위에도 말했지만 투자자들이 근시안적이 되기 쉽다는 데 있다. 그렇지만 기업을 올바르게 경영하다보면 사실 어려울 때도 있고, 위기를 극복하고 큰 투자를 하면서 점점 더 나아가기 마련이다. 그런데 주주들은 그런 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당장의 실적과 당장의 주가만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주주의 힘이 강해질수록 기업의 간부들도 주주를 무시할 수 없게 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노동자까지 챙기기는 힘들게 된다. 지난 대선 때 시끄러웠던 경제민주화 이야기도 신자유주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건 지난 포스트들에서 몇 번 다뤘었다.


 계속 새로운 대기업이 생겨나서 인력을 수용해야만 노동자가 부족해져서 임금도 올라가고 대우도 좋아지는데, 한국은 IMF 이후 있던 대기업도 도산하고, 새로 생겨나는 큰 기업은 거의 없다 보니 노동자 대우가 좋아지기가 힘든 상황이 되었다. 더구나 일부 귀족노조가 온갖 땡깡을 부리다보니 상황은 더더욱 심각하게 꼬였다. 부르주아-프롤레탈리아로 세상을 이분화시켜 재단하는 멍청한 사회주의자들이 이 문제를 더 심각하게 꼬아놓은 것은 물론이다.


 문화적 결함으로 인해 일부의 직종에 노동자가 계속 몰리게 된 것 또한 큰 문제다. 더 이상 젊은이들이 힘든 일을 하기 싫어한다는 지적에 대해 발끈하는 청년들이 많지만, 막상 현장에 가 보면 사태는 생각보다 심각할 때가 많다. 한국인 남성 청년을 환영하는 일자리는 찾아보면 꽤 있다. 돈 더 주고 한국인을 쓰려고 해도 사람을 못 구하는 곳이 의외로 정말 많다. 외국인 노동자 일 시켜보니까 일을 잘 못 하다 보니 나온 현상이기는 하다. 찾으면 돈을 꽤 주는 곳도 찾을 수 있을 거다. 물론 학습된 무기력에 시달리는 수많은 청년들은 이런 일자리를 찾아다닐 정신적 여유가 모자란 것도 현실이고, 문화적인 각종 차별의식도 문제가 되곤 한다. 이런 건 단순히 각자의 몫은 아니다.

  

 그렇더라도 소위 ‘좋은 일자리’가 부족한 것은 맞고, 여자가 할 만한 일은 더더욱 부족하기도 하다. 그 주된 이유는 한국에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좋은 기업이 부족하기 때문이고 이런 상황에선 기업이 노동자에 비해 절대적인 우위를 가지게 된다. 좋은 기업에 들어가고 싶은 사람은 많은데, 좋은 기업이 뽑는 사람은 얼마 안 되기 때문이다.


 이런 한국의 양극화가 극단적으로 심해진 시점은 노무현 정부 때이다.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드라이브 및 부동산 폭등이 이 사회에 정말 큰 상처를 남겼다. 위에 이야기했듯 IMF 이전만 해도 한국의 성장과 분배는 어느 정도 같이 일어났지만, 노무현 때부터는 성장은 되는데 분배는 오히려 기존만 못해지는 상황이 벌어졌다. IMF가 일차적인 문제였지만, 일단 고비를 넘긴 후에 집권한 노무현은 IMF가 벌여놓은 참상을 오히려 더 키웠다. 그의 적극적인 금융개방정책으로 인해 산업으로 벌어들인 돈이 금융으로 빠져나가는 경우가 많아졌고, 부동산을 제어하지 못하면서 다른 곳에 투자되었어야 할 돈이 모두 부동산으로 향했다. 이때의 폭등이 심했던 만큼  이명박 집권기의 부동산 침체는 심각했고, 부동산에 흘러들어간 돈은 고인 물처럼 밖으로 나가기 어렵게 되었다. 더구나 이 시기엔 부동산 폭락을 외치는 얼간이들이 더 극심한 거래절벽을 유도하면서 사회를 더 힘들게 만들었다. 사실 얼간이라거나 멍청이라거나, 이런 건 정말 순화된 표현이다. 그들이 이 사회에 끼친 해악과 그 참상을 생각하면 더 심한 말을 들어도 싸다.


 참여정부 당시 열린우리당에서 일하던 어떤 사람의 증언에 의하면, 당시 열린우리당의 분위기는 ‘양극화’는 입에도 담지 못하게 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그런 데는 관심도 없었을 뿐더러, 소위 민생은 뒷전이었다는 이야기다. 그 때 열린우리당에서 양극화 문제 해결해야 한다고 그러면 ‘민주노동당으로 가라’ 같은 비아냥까지 들었다고 하는데, 그들의 비아냥과 뺄샘정치와 철면피는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가 보다. 그랬던 사람들이 지금은 무슨 서민의 편인 양, 노무현 때가 그래도 사람 살만한 세상이었던 양 구는 걸 보면 종종 어이가 없다. 뻔뻔한 거짓말을 앞세워 커뮤니티들을 장악하고 있는 황위병들의 파시즘과 무지가 세상에 끼친 해악이 너무 크다. 대학 등록금 폭등, 출산률의 지속적인 저하, 자살률의 증가, 장기적인 경기침체 등은 모두 노무현 정권에서 일어났다. 노빠 깨시민 파시스트들에게 속고 사는 사람들은 얼른 진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특히 노무현 때 너무 어려서 아무 것도 모르던 애들 작정하고 속이는 사람들이 진짜 악질이다.


 만일 노무현 정권이 분양원가를 공개하고, 제 때 금리를 조절하고 LTV규제 등을 조속히 도입하여 부동산 폭등을 견제하고, 무분별한 금융 개방을 잘 규제했다면 모든 것이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노무현은 서민을 위하지 않았고, 충분한 통치철학도 없었다. 당시 한국이 벌어들인 돈을 국제 금융으로 잃지 않고, 그게 부동산이 아닌 새로운 산업에 투자되었다면 정말 좋았을 것이다. 부동산 폭등이 어느 정도 제어되었다면 계속 완만하게 가격이 상승하였으리라 본다. 그랬다면 근래의 극단적인 침체기도 겪지 않았을 것이고 전세 문제도 지금 같지는 않았을 거라 추측한다. 비정규직 문제 등에서도 노무현 정부는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깨시민들이 말도 안 되는 혹세무민으로 노무현 정부를 변호하면서 잘못된 인식을 퍼뜨리니 문제를 해결하기 더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당시의 부동산 급등은 결국 정부의 온갖 헛발질 끝에 (종부세같은) 시장 및 과세 정의에 어긋나는 극단적 조처로 마무리되었는데, 강력한 규제와 맞물려 이제 너무 올랐다는 심리가 더해지면서 금융의 패턴 중 하나인 ‘Bust’ (소위 버블붕괴)가 발생하게 되고 이는 한국 부동산 시장의 특성인 전세제도 및 변동금리제도와 맞물려 거래절벽+전세가격 폭등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혹세무민을 일삼는 부동산 종말론자들은 한국 부동산의 특징을 고려하지 않고, 극히 일부 국가의 예만 의도적으로 들면서 한국 부동산은 폭락할 것이라고 오랜 시간 종말론을 퍼뜨려왔으나 그것은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았고, 문제를 계속 키우는 결과만을 낳았다.


 그나마 근래엔 반등의 여지가 있다. 불만투성이에 비관론에 빠진 깨시민들에게는 보이지 않겠지만, 현 정부는 시장에 대해 약간의 신뢰는 회복하였다. 부동산 규제는 완화되었고, 거래절벽은 해결 조짐이 있다. 이는 역시나 금융의 일반적인 패턴과도 일치한다. 부동산 종말론자들의 말은 겨울이 올 때마다 봄은 다시는 오지 않고, 이대로 빙하기가 올 거라고 소리치는 것과 흡사하다.


 박근혜정부는 근래 창업을 더 강력하게 지원하고 있고, 법인을 세우기 쉽도록 제도를 고쳤다. 또한 코스닥보다 작은 규모인 코넥스 증권시장을 도입해서 상장을 보다 쉽게 만들었다. 코넥스 시장은 아직까지는 대중적이지도 않고 충분히 성장하고 있지도 않지만 제도상으로는 중요한 가치가 있다. 상장이 쉽다는 것은 초기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인 요소다. 기업을 세울 때는 투자를 받아야 하는데, 투자자들은 가급적 빠른 시간 안에 수익을 실현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상장이 어렵다면 그만큼 투자를 받기도 어렵고, 투자가 없으면 기업을 만들기 어렵다. 한국은 세계 제 1의 파생금융시장이지만, 투기적 금융이 심하게 발달한 반면 창업과 신산업을 위한 ‘착한’금융은 거의 발달하지 못한 국가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가 이 포지션에 서야 할 사람들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근래엔 중견기업에 대한 지원 논의도 이루어지기 시작했고, 법인세 차등 구간에 대한 논의도 이루어지고 있다. 다만 이런 중요한 이야기들은 무능력하고 어리석고 폭력적인 정치권과 어리석은 자칭 진보좌파 지지자들의 무관심 속에서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다.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기업이 많아져야 노동자들이 대접을 받을 수 있다. 부가가치가 높아야만 임금도 많이 줄 수 있고, 좋은 기업이 많아져야 노동자들이 기업을 좀 더 고르고 쉽게 취업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것을 위한 정책적 지원은 지극히 부족하고, 특히 어리석은 진보세력들이 현실을 모르고 외면하면서 사태를 더 나쁘게 만들고 있다.


 일례로 GM대우나 쌍용차 정리해고 노동자들은 왜 재기가 아닌 투쟁에 매달린 것일까? 그들의 입장에선 대기업 정규직을 벗어나면 다시는 그런 수준의 생활을 누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 수많은 하청업체, 비정규직 직원들은 정리해고 당해도 그렇게 싸우지 않는다. 언론의 관심도 정규직 출신 투쟁자에게 집중된다. 물론 하청업체나 비정규직 출신 입장에서는 투쟁하는 것보단 재취업이 훨씬 현실적이기도 하다. 일은 비슷하게 하는데, 임금은 대기업 정규직이 훨씬 많이 받는 게 항상 지적되는 한국의 현실이다. 특정 대기업 강성노조는 끊임없이 싸우면서 엄청난 임금을 받고 있고, 그에 한국 기업들은 성공적인 기업일수록 점점 더 정규직 뽑기를 주저하고 있다.


 현재 한국은 성공적이고 젊은 창업인이 심히 부족한 사회가 되었고, 청년들의 시장과 노동, 금융, 부동산 등에 대한 인식도 충분히 현실적으로 합당한 수위에 올라있지 못하다. 특유의 집단주의나 이너서클 문제, 도전 없이 위험을 회피하려는 성향 등도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남들이 비교적 안전주의적인 길을 걸을 때 누군가는 도전정신을 가지고 기업을 세운다. 용기를 가진 도전자가 없다면 자본주의는 제대로 돌아갈 수 없지만, 많은 창업자들은 한 번 이상 넘어지고 힘들어서 도와 달라 그런다. 사업 성공에 가장 필요한 것은 그 무엇보다도 ‘운’이다. 그런 그들이 다시 일어나서 성공하면 많은 사람들을 고용할 수 있고, 그런 성공한 사람들이 많아지면 더욱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기에 노동자 대우도 좋아지게 된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역사 속에서 이런 진리를 깨닫고 창업자를 위한 안전 장치라 할 수 있는 주식회사 시스템과 파산 시스템을 발명하였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자칭 진보좌파들은 ‘이미 한국은 기업하기 너무 좋은 나라’라는 잘못된 망상을 가지고, 창업자들을 위한 금융 시스템 등에도 냉소를 보이며 누군가가 더 위로 올라서는 것을 가로 막는다. 조금만 돈을 벌어도 부르주아 취급을 하고, 운동권 방식으로 진실을 외면해 버린다. 금융계의 큰 손은 그런 그들의 어리석음과 질투심을 곧잘 이용하고, 엄청난 부를 축적한다.


 만약 한국이 정말 기업하기 좋은 나라였다면 글로벌 대기업들이 한국에 수많은 지사를 세우고,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한국 출신 기업들까지 해외에 지사를 세우고, 더 나아가 아예 법인을 해외로 옮겨버리고 있다.


 애초에 사회주의자들은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기업 활동 자체를 나쁘게 보기 때문에, 고용문제를 악화시키고 그로 인해 노동자의 처지를 더욱 최악으로 치닫게 한다. 물론 기업이 돈을 못 벌면 직원 - 엄밀하게 말해 대표이사도 기업 노동자이다. - 들도 돈을 못 벌고, 세금도 안 걷히니까 정부가 지출할 수 있는 재원도 모자라게 된다. 그리고 한 줌도 안 되는 이 사회의 사회주의자들은 무식하고 철학이 없는 수많은 자칭타칭 ‘깨시민’들의 사고방식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있기도 하다.


 진짜 사회를 개선하고 싶은 사람은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이해하고, 어떻게 해결해야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존에 알고 있던 것이 정말 옳은지를 끊임없이 검증하고 더 나은 방식을 찾아야 한다. 소위 진보좌파들은 자신이 일단 쌓은 지식과 사고방식을 신념과 정의라는 이름으로 합리화하고, 극단적인 확증편향을 보이기에 실제 사회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잘못된 신념과 가치관으로 나쁜 결과를 만드는 것은 언제나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자칭 진보좌파들의 집단주의와 이너서클 성향은 젊은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더해 ‘세상은 무서운 곳.’, ‘안 되는 곳’ 같은 온갖 협박과 공포감 등이 이 사회를 도전과 혁신이 부족한 곳으로 바꾸어 버렸다. 한국의 진정한 불안요소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바로 봐야 한다.


 물론 이 이야기는 복지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복지는 일종의 사회 안전망 또는 공공재의 개념으로, 어디까지나 경제구조에서 부수적인 것에 해당한다. 복지 재정은 공짜가 아니며, 국가의 복지는 국가가 경제적 성공을 거둘 때에야 그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 물론 튼실한 복지 시스템은 사회를 보다 더 혁신적이고 도전적인 방향으로 이끄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그보다 한국에 우선적으로 필요한 건 각종 반기업적인 규제들과 정서, 그리고 문화적인 결함 등을 해결하는 것이다.


 특히 자칭타칭 진보좌파들은 평소에는 복지국가를 만들자고 주장하지만, 막상 그들에게 약간의 손해라도 생길 수 있는 증세안이 나올 경우 후안무치할 정도로 거부감을 보이면서 ‘월급쟁이 유리지갑만 턴다!’는 식으로 여론몰이를 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작년에 민주당은 세무조사를 강화할 수 있는 법안에 대해 강경하게 반대하여 결국 통과되지 못하게 했다. 이러한 뻔뻔함과 도둑X심보로는 이 사회의 분배를 결코 개선할 수 없다.


 또한 현실적으로 한국의 재정 긴축 문제라거나 정부 부채 문제 등을 이야기하게 되면 이야기는 훨씬 복잡해진다. 한국의 수많은 정치사회적 담론들은 문제를 악화시키는 방향으로 얽혀 있다. 이 나라에서는 자칭타칭 진보좌파들이 실제로는 더 수구/보수주의적 자세를 취하고 있기에 문제가 심각해지는 부분이 많다. 상황을 개선하고 싶은 사람은 먼저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한국의 자칭타칭 진보좌파들은 현실을 이해하는 데 있어 너무나 소양이 부족하다. 정말로 소통이 필요한 이들은 그들이다.



  1. 출처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bestofbest&no=149251&s_no=149251&page=1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