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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2.06.25 디스토피아 : 안티 휴머니즘 & 안티 플러럴리즘 45

 브금

 

https://youtu.be/-H91EVNH93M

 

 

 

 

 

 

-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마이클 잭슨이 Heal the World를 부르고, 곡절 끝에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기까지 지구촌은 두 번의 대전과 냉전을 딛고, 보다 진보적이고 포용적인 길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 세계의 아주 많은 것이 무너지는 것이 관측되기 시작하였습니다. 현재의 문제라는 것은 대체로 기원을 추적하면 할수록 멀고 복잡한 이야기가 되기 때문에, 비교적 덜 핵심적이고 어려운 것은 편의상 추려내고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핵심적인 것을 이야기하자면, 포용적으로 변하려는 세계를 이용하려는 악이 있었고, 그 악에 의해 선량한 대중이 광신적이고 폭력적인 대중으로 변하는 포퓰리즘의 도래, 또는 파시즘의 재림이 발생하면서 세상이 참으로 다난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 결과적으로 관측되는 현상은 휴머니즘의 퇴조, 다원주의의 퇴조, 그리고 신냉전과 전방위적 사회갈등입니다. 우리는 혼란 속에서 방향을 잡으려면 누가 웃었고, 누가 의도했고, 누가 이익을 봤는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우리 사회를 기준으로 이야기하자면, 휴머니즘의 퇴조와 공동체 의식의 붕괴가 너무나도 단적이고 빠릅니다. 양쪽으로 갈라진 정치적 극단주의는 그 결과의 단면입니다. 그리고 나는 이준석을 이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유일한 플레이어로 보지만, 이준석 지지층 중 다수는 지나치게 극우적이기에 이준석이 지닌 리스크 중 하나로 보고 있기도 합니다.

 

 물론 우리나라에는 아무데나 극우딱지 붙이는 좌파들이 많고, 이게 관련 문제를 악화시키는 주 요인이라는 건 이야기해 두겠습니다.

 

 

 

 

 

 

 

- 2010년대 들어 세상을 이렇게 만든 근본적인 요인을 딱 하나만 꼽자면 나는 스마트폰을 꼽겠습니다. 아이폰이 등장하기 이전 모바일 네트워크의 활용은 제한적이었습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스마트폰은 유감스럽게도 사람들을 스마트폰 속의 좁은 세상에 가둬버렸습니다.

 

 출퇴근 시간에 오피스가 많은 역을 오고 다니면, 수많은 사람들이 폰을 보면서 걷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걸을 때도 폰을 봐야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바빠서 출퇴근을 할 때라도 보고 싶은 걸 보겠다는 마음일 수도 있겠지만,

 

 여하튼 이제 대체로 사람들은 주변을 보지 않아요. 반복되는 일상은 무가치하고, 번잡한 출퇴근 시공간은 그저 견뎌야 하는 것이고, 주변 사람들은 거치적거릴 뿐이고, 흥미로운 건 스마트폰 안에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원하는 것만 보는 좁은 세상이 오랜 세월 누적되어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그런 사람들이 사는 세상은? 우리가 마주한 게 그런 세상이 아닐까 싶은데요.

 

 

 

 

 

 

- 안티 휴머니즘의 필두에 페미니즘과 환경주의가 있습니다. 페미니즘의 변이사를 보면 그 중 에코페미니즘이 있는데, 이 관점에서 사람이 자연을 개척하고 근현대 산업문명을 이룩한 과정은 남성적인것이며, 그 결과 자연파괴와 지구의 위기를 낳았다는 발상이 에코페미니즘의 핵심입니다. 그리하여 보다 자연적이며 착한친환경적 여성들이 주도권을 쥐고 파괴적인 가부장적 산업문명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인데요. 기본적으로 이 관점이 현대 페미니즘에 깊이 침투해 있습니다.

 

 이 영향인지 페미니즘은 결과적으로 문명, 과학, 산업, 수리적 합리성, 휴머니즘에 반대하는 인류의 적이 되었습니다. 캣맘은 이 현상의 단적인 예입니다. 캣맘은 고양이 사료가 생산되는 산업적 서플라이 체인이라거나 온갖 환경적인 배경들, 그리고 고양이가 초래하는 주변 사람들과 환경에 대한 영향을 무시합니다. 특권을 가진 사람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주변에 피해를 주더라도 저지하기 어려운 디스토피아가 현대입니다.

 

 도덕의 최소한이라는 법은, 도덕을 어기는 자들을 보호하는 도구로 변질되었습니다. 직업병이 멍청함인 판사들은, 겨우 없는 것보다는 나은 수준으로 전락해버렸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극단적인 사회는 반작용으로 또 극단적인 사람을 낳고, 휴머니즘과 다원성을 세계에서 빠르게 사멸시키는 중입니다.

 

 작용을 파악하고 그 반작용을 파악하지 않으면 이 사회상을 전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소위 식자층 중 이해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겁니다. 2010년 이전의 이론들과 지식들이 잘 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 길게 이야기할 시간과 여유가 없기 때문에 이야기를 조금 비약시켜 보겠습니다. 그렇게 하더라도 많은 분들이 직관적으로 이 담론을 따라올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나는 문제의 본질이 휴머니즘 및 다원성의 붕괴에 있다고 봅니다. 휴머니즘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기본적 솔루션이고, 그 방법으로 반작용보다는 작용을 우선 타켓으로 해야 한다고 판단합니다. ‘작용은 요약하자면 에코페미니즘과 그 주변부라 이야기하겠습니다.

 

 다만 그로 인한 반작용으로 인한 폐해도 절대 무시할 수 없습니다. 트럼피즘을 필두로 한 극우파의 준동과 그 전염성과 악영향은 이미 심각한 영역입니다. 주류 정치학자들은 이 반작용에 몇 년 전부터 주목하고 있는데, 반작용을 우선 타켓으로 해서는 문제 해결이 어렵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우에 대한 불관용은 필수입니다.

 

 휴머니즘을 복원하려는 다각도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극우는 본질적으로 안티휴머니스트이기에 배제되어야만 합니다. 이준석은 더 성공하고 싶으면 포인트를 잘 이해하고 움직여야 할 것입니다.

 

 

 

 

 

 

- 본래 안티휴머니스트는 사람보다 신을 우선시하는 종교쟁이들의 영역이었습니다. 극우파와 원리주의적 종교인들이 미국이나 한국 같은 나라에서도 손을 잡게 되면서, 극우 세력은 안티 휴머니즘의 한 축이 된지 오래입니다.

 

 한편으로 앞으로 전개될 신냉전은 현 시점에서는 에너지 전쟁같이 보이지만, 앞으로는 첨단기술 전쟁이기도 할 겁니다. AI 연구에 있어 중국은 미국보다 유리한 점이 있습니다. 인권을 무시하고 연구자료를 모으고 진행해버리기 때문입니다. 연구 대상(인구)도 많고요. 대조적으로 서방의 안티휴머니스트들은 신냉전 구도에서 심각한 방해밖에 되지 않습니다.

 

 서방이 기술의 발달을 주도하려면 그럴 자격이 되어야 합니다. 절대로 질 수 없는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나는 휴머니즘과 기술에 대한 자유주의적 태도가 결합될 필요가 있다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