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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파 개념의 기원과 좌파의 본성

정치 2020. 8. 19. 18:43 Posted by 해양장미

 브금

 

https://youtu.be/_LoHS0c89As

 



 

 의외로 많은 분들이 모르는 개념인데, 좌우파 개념의 기원은 프랑스 혁명 이후의 사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당시 프랑스 국민공회 의장석 기준으로 왼쪽에 급진 공화파인 자코뱅파가, 오른쪽에 온건 공화파인 지롱드파가 앉았지요. 그리고 둘은 첨예하게 대립하는데, 가장 큰 의제는 루이 16세를 죽일까, 살릴까?’ 였습니다.


 

 역사는 다들 아시다시피 자코뱅파가 이겼고, 루이 16세는 사형당했고, 마리아 안토니아(마리 앙투아네트)도 사형당했고, 혁명에 동조하지 않던 방데 사람들은 대학살당했고, 자코뱅파의 로베스피에르는 폭압적으로 독재하며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을 숙청과 패전으로 죽이다가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이후 프랑스는 나폴레옹이 왕도 아니고 (로마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황제를 자처하며 전 유럽과 전쟁을 벌이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지요.


 

 관련하여 나의 견해는 다음과 같습니다. 루이 16세는 그렇게 사형당할 만큼 나쁜 왕이 아니었으며, 마리아 안토니아는 드물게 선량한 왕비였고 사형당할 이유가 아예 없었으며 (실제 사형구형 명목은 근친상간이었으나 세뇌된 아들 루이17세의 거짓증언 외에는 근거가 없었습니다. 사실상 좌파의 피목증 정적숙청 원조.), 방데 대학살 피해자들에 대한 프랑스의 태도는 철저히 비난 받아 마땅합니다. 로베스피에르는 음, 그래도 시대보정 하면 우리 수령(囚囹)님보다는 조금 나은 양반이겠네요.


 

 그러니까 원래 좌파라는 개념은 과격하고 사람 생명 알기를 가볍게 여겨 누명을 씌워 선인을 죽이고, 대학살도 쉽게 저지르고 잘못을 인정조차 하지 않는, 자의식 과잉이 지나쳐 독단을 결코 주저하지 않는 급진 공화주의자들을 의미한다 할 수 있습니다. 이후 공산주의자건 사회주의자건 거의 이 개념에서 벗어나본 적이 없지요.



 나는 독단적이고 단편적이며 비현실적인 신념을 가지고 권력에 집착하며 오판을 반복하면서 인명을 가벼이 여기는 자들보다는 차라리 쾌락형 연쇄살인범들이 비교불가로 낫다고 생각합니다. 연쇄살인범이 사람을 아무리 많이 죽여 봐야 보통 수십 명입니다. 그런데 대조적으로 로베스피에르 같은 위인은 사람을 최소 십만 단위로 죽이지요. 물론 공산주의자들은 그러한 로베스피에르를 높이 평가하였고, 마오쩌둥은 거의 1억 명에 육박하는 사람을 죽이는 대업을 달성하였습니다.


 

 여담으로 극우파는 대체로 이름이 극우일 뿐 좌파와 유사합니다. 사고방식이건 행동방식이건요. 사견으로 극좌와 극우를 구분하는 것에는 실질적 의미가 거의 없고 오로지 정치적 의미만 있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실제 극좌로 분류되는 유형과 집단들을 보면 그것들을 모두 포괄할 수 있는 유사성을 찾기가 대단히 어려운데, 그 다양성을 고려한다면 극우도 그냥 한 범주로 묶어도 되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표면적으로야 극좌는 평등을, 극우는 차등을 이야기하긴 합니다만 극좌가 진짜로 평등 추구하는 걸 본 적이 있어야 말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혁명은 대의 어쩌고. 민주주의 어쩌고. 그런 부류가 좌파에 많지요. 물론 여못잃 민못잃 대못잃 같은 소리입니다. 프랑스 혁명을 추대하고 합리화하려는 자들은 공화국을 대단히 특별한 것으로 취급합니다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명예혁명을 이룩한 잉글랜드는 말할 것도 없고, 로마부터 공화국이었던 만큼 유럽에는 중세에도 공화국들이 꽤 있었습니다. 이탈리아 지역에는 아말피, 베네치아, 시에나, 제노바, 루카, 피사, 피렌체에 각각의 공화국들이 있었고요. 이탈리아 반도 동쪽 아드리아 해 건너편의 라구사(현재는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에도 공화국이 있었습니다. 북서부 러시아에도 노브고로드 공화국이 있었고요. 그리고 프랑스의 북쪽에 있던 네덜란드는 1581년부터 이미 공화국이었지요. 프랑스 혁명은 1789년이고요.


 

 당시의 부르봉 왕조가 프랑스를 잘 통제하지 못한 것은 맞습니다. 루이 16세 즉위 이전에 이미 프랑스 상황은 영 좋지 못했고, 루이 16세는 기울어가는 프랑스를 바로잡을 만큼의 능력자는 아니었지요. 당시 조선은 정조가 대활약하며 신하들을 마구 휘두르고 있었지만, 루이 16세에게는 그만한 왕권도 능력도 없었습니다. 마리아 안토니아는 루이 16세보다는 능력이 있었던 것 같지만, 합스부르크에서 온 외국인이었기에 온갖 음해를 당하기 쉬운 위치였으며 당시 프랑스는 여자가 온갖 일에 나서는 걸 결코 좋게 보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가진 권력은 합스부르크 및 신성 로마 제국의 실질적인 여제였던 어머니(마리아 테레지아)에 비하면 대단히 미약했지요.


 

 프랑스 혁명은 어떻게 포장하더라도 당시 해결되지 못한 프랑스의 온갖 문제가 폭력적인 방식으로 폭발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에 마리아 안토니아를 포함해 수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사형 당했고, 방데 사람들은 아예 대학살을 당했지요. 그 이후 프랑스는 근래까지도 방데를 공화국의 적 취급했고, 아직도 제노사이드로 인정하지 않는 비양심을 숨김 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죽지 않은 대다수 민중도 폭력적인 혁명으로 인해 혁명 이전보다 더 어려운 삶을 살게 되었고, 극심한 혼란 속에서 나폴레옹 시기에 이르러서는 아예 전 유럽과 전쟁을 벌이게 됩니다.


 

 프랑스 혁명에 대해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건, 민주공화정은 올바르고 전제군주정은 그릇되다는 이분법적이고 무조건적인 유아적 사고에 기인합니다. 그리고 좌파들은 그러한 유아적 사고에 편승하여 폭력을 합리화하고 인명을 가벼이 여깁니다. 그것이 좌파의 본질이며, 지금까지도 좌파들이 못된 습성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그렇기에 좌파들은 위선적일 필요가 있으며, 언제나 기만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본성을 드러내 보이면 상식적인 이들은 그들의 편을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칼 마르크스는 자코뱅을 높이 평가하였고, 자코뱅의 사고방식과 행동은 공산주의의 사상적 뿌리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좌파들은 루이 17세를 세뇌하고 마리아 안토니아를 근친상간범으로 몰아 죽이던 그런 행동을 반복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