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현실이다

정치 2019. 11. 17. 14:16 Posted by 해양장미

 추천 브금

 

https://youtu.be/0u1XucYIdPQ

 


 

 내가 정치 공부하고, 보고, 판단하는 데 있어 매 순간 되뇌는 명제는 이것입니다. ‘정치는 현실이다.’ 돈 문제가 현실이듯 정치도 현실입니다. 관련한 모든 꿈, 낭만, 정의, 명분, 당위, 목표 등등은 현실 정치에서 현실로 나타나고 작용합니다. 현실을 보고 판단할 수 없다면 정치적 판단은 못하는 겁니다.


 

 어떠한 정치적 현상이 일어났다면, 그 현상은 현실정치에서 최우선적으로 존중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명분도 당위도 현상에 우선할 수 없으며, 현상을 현실적으로 봐야지 낭만적이거나 의도적으로 봐서는 안 됩니다. 적어도 정치를 제대로 보고 싶다면 말입니다.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은 무언가 목표하는 게 있기 마련입니다. 그것은 정의일수도 있고, 당위일수도 있고, 이익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정치는 현실이고, 현실은 그 누구에게나 그다지 마음에 쏙 들지는 않는 성질을 가진 것입니다. 이 현실을 인정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여야지만 현실을 조금이나마 개선할 확률이 올라가는 것인데, 정의, 당위, 명분, 욕망 등을 앞세우면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조차 불가능해집니다.


 

 무언가를 볼 때는요. 보고 싶은 게 없어야 합니다. 보고 싶은 게 있으면, 보고 싶은 대로 보게 됩니다. 그러니까 보고 싶은 게 있어도 그걸 지워버리고 봐야 합니다. 견해나 입장이 있을 경우 잘 되는 건 아닙니다만, 그러려고 노력은 해야 합니다. 그래야 보고 판단할 수 있게 됩니다.


 현 정국은 문재인이 많이 못하는 게 맞습니다. 실질적으로도 못하고, 도덕적으로도 못하고, 총체적으로 최악입니다. 그런데 대다수의 유권자들은 문재인이 얼마나 못하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문재인/민주당 지지층을 제외하면 못한다고 어렴풋이 생각은 하는데, 어느 정도 못하는지 감을 잡는 건 쉬운 게 아닙니다.


 

 대다수의 정치 저관심-중도층은 딱히 신뢰하는 정치적 스피커가 없습니다. 정치 전반에 회의적이고 부정적인 편이지요. 그러니까 문재인 정권에 대한 비토의 목소리도 그들에겐 잘 들리지 않고, 들리더라도 그들은 잘 신뢰하지 않습니다. 극단적이고 강한 말을 할수록, 쓸데없이 자극적이고 강한 표현을 할수록 더 신뢰를 안 합니다. 저렴하거나 예의 없는 어휘 쓸수록 안 통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너무 많은 정치 고관심층이 관련하여 상식이 없습니다. 어휘 저렴하게 쓰면 특정 집단에서의 결속은 강화할 수 있지만, 그 범주를 벗어나면 없어 보이고 믿음 안 갈 뿐입니다. 특히 소위 보수들 쓰는 언어 보면 너무 저렴할 때가 지나치게 많은데, 어휘 그렇게 쓰면 못 믿을 사람으로 보이고 들리게 됩니다. 관련하여 최고의 모범은 고 김종필이었다 생각합니다.


 

 자유한국당과 보수세력은 이미 박근혜가 탄핵되었고, 유죄판결을 받고 수감 중이며, 이명박도 구속/수감된 바 있으며, 진박공천 등으로 이미 비박계 지지하던 유권자의 마음에 대못을 박은 적 또한 있습니다. 이런 사실들은 정치 저관심층도 명료하게 알 수 있는 사실들입니다. 대조적으로 문재인 정권은 아직 명료하게 매듭지어지고 일견에 보이는 잘못이 제한적입니다. 정치적 현상은 정치 저관심층에 의해 아주 많은 것이 결정되고 일어납니다. 보통선거를 하는 한, 민주정이라는 건 그런 겁니다. 고관심층은 일단 현재의 룰을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합니다.

도저히 못 봐주겠네요.

정치 2019. 11. 15. 16:28 Posted by 해양장미

 추악함 앞에 브금이라도 예쁜 걸로.

 

https://youtu.be/i0LRtNwiORY

 

 


 

 아니... 나의 동족들에게 대체 이게 무슨 짓입니까.


 

 의사표현 못하는 평범한 식물이라고 이렇게 함부로 막 사용해도 되는 겁니까. 식물의 정당한 권리는 어디 갔나요. 정말 어이가 없고 화가 납니다.


 


 정말 어리석고 광적인 인간들이 많습니다. 모 여초카페에선 어제 이런 글까지 올라오더라고요. 아들 수능보다 검찰에 불려간 조국 전 장관 걱정이 우선이시랍니다.


 

 참으로 모독적이고 일그러진 세태입니다. 악마와 마녀들이 달밤 아래 사바트를 벌이는 세상이 되었어요.



 나는 나의 동족들과 함께 기적을 기원해 보겠습니다. 이런 대재앙을 맞이했지만, 이 나라가 무사하기를.


 추천 브금

 

https://youtu.be/7ZexOxlZ-Jk

 

 


 

 아주 많은 유권자가 박근혜에 이어 문재인에게까지 질려버렸습니다. 정치 자체가 꼴 보기 싫다고 생각하는 유권자가 많아졌다고 느낍니다.


 

 이런 판이면 더 반성하는 모습, 더 새로운 모습 보여주는 쪽이 이깁니다. 무언가 그래도 좀 달라지는 것 같은 쪽에 중도표가 간단 말인데요. 아직까지는 민주당이건 자유한국당이건 쇄신하는 모습이 안 보이기 때문에, 누구라도 이길 수 있는 판인 것 같습니다. 조국-정경심 부부가 큰일을 하지 않았다면 민주당 원사이드였을 것입니다만.


 

 선거는 내편결집 + 중도확보가 승리 방정식인 매치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서로 첨예하게 대립하는 정치판에서 내편결집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어려운 건 중도확보지요.


 중도에도 정치 고관심층인 중도가 있고, 저관심층인 중도가 있습니다. 그런데 저관심층인 중도 쪽이 숫자가 훨씬 많습니다. 정치에 관심이 어느 정도 이상 있으면 보통 지지정당이 이미 있기 때문입니다.



 대다수의 유권자들은 정치 고관심층만큼 그렇게 정치에 관심이 많지 않습니다. 정치혐오가 생긴 사람들은 보통 정치에 대해 관심을 더 안 두지요. 정치 고관심층은 관심 많고 잘 알수록 정치를 루페(확대경)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정치 저관심층은 시력 나쁜 사람이 멀리서 보는 것처럼 정치를 봅니다. 그러니까 정치에 대한 지각이 결과적으로 완전히 달라요. 그런데 이 저관심층이 결국 선거결과를 만듭니다.


 

 현재 정치 저관심층의 니즈가 무엇일까요? 대략 저관심층은 지금 있는 정치인들 꼴 보기 싫어합니다. 요새 분위기가 그렇고, 그래서 관심이 줄어든 사람들이 많아요. 저관심층은 부패한 정치인에 열광하는 광신도들도 정신 나갔다고 생각하지요. 그러니까 이 니즈를 채워주면 됩니다. 지금 있는 정치인들을 많이 갈아치우는 모습을 보여주면 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럴싸하게, 잘 갈아치워야 합니다.


 

 자유한국당은 지금 쇄신이 그래도 가능은 한 상황입니다. 사견으로 이길 수 있는 방안은 다음과 같습니다. 황교안 대표는 무난하게 퇴임합니다. 다투고 안 좋은 모습 보이면 안 됩니다. 그리고 비대위 체제로 넘어갑니다. 비대위원장은 중도적이고 괜찮은 이미지여야 합니다. 다선 의원들은 대규모로 퇴진하고, 친박도 마찬가지로 퇴진하고, 영남권 네임드 의원들은 수도권에 출마합니다. 그리고 아예 싹 물갈이 하는 걸 보여줍니다. 이러면 자유한국당이 이길 겁니다.


 

 민주당은 가진 게 많고 짊어진 짐도 많은 많큼 쇄신이 더 어렵습니다. 이해관계 얽히고 각종 해먹고 있는 걸 고려하면 내년 총선까지는 거의 불가능할 겁니다. 그러다보니 지금 민주당은 민주당이 받을 만한 표를 최대한 받는 것 이상의 전략은 선택할 수 없습니다. 10번 선거하면 10번 다 민주당을 찍는 사람이 있는 반면 전혀 찍지 않는 사람도 있는데, 이번에 민주당은 그래도 7~8번은 민주당을 찍는 성격을 가진 사람을 잡는 방식으로 나갈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이기려면, 사회 전반의 정치혐오를 더 키워서 자유한국당의 잠재적인 지지층이 자유한국당에 투표하지 않게 만드는 쪽이 합리적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유한국당은 네거티브로 민주당에 맞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민주당 잘못한 걸 말하는 건 쉽습니다. 현 정권과 집권여당은 하는 것마다 어차피 잘못입니다. 나는 문재인은 당장 탄핵되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은 선거에 문재인 네거티브로 임하면 안 됩니다.



 문재인이라는 인물은 전혀 존중받을 가치가 없는 유기체입니다만,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존중받아야 하는 자리입니다. 그리고 문재인을 뭐라 해봐야 정치혐오가 더 커질 뿐인데, 선거 시점까지 유권자의 정치혐오가 늘어나면 현재 언더독인 자한당은 불리해집니다.

 


 자한당은 어차피 국민들에게 믿음은 못 줍니다. 그러니까 그건 포기해야합니다. 그 동안 잘한 게 뭐가 있어야 믿음을 주지요. 그렇지만 기대는 줄 수 있습니다. 예전의 자유한국당하고는 다른 게 한눈에 보일 정도라면, 유권자는 기대를 가질 수 있습니다. 엉망으로 해서 이미 국민들의 심판을 받은 부류들이 별로 달라진 것도 없이 다시 나와 봐야 어차피 표 못 받습니다. ‘그래도 민주당보단 낫잖아같은 이야기는 민주당 지지 성향이 아닌 정치 고관심층 사이에서나 통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원유철이 보수통합 팀장이라고요?

정치 2019. 11. 9. 21:36 Posted by 해양장미

 브금은 원유철이 역사왜곡중인 인물 때문에 고생한 치트공을 기리며.

 

https://youtu.be/GPbdV73sxoc

 



 

 원유철이 보수통합 팀장을 한다는데요.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3&aid=0003485649

 



 2016년에 새누리당이 총선에서 패배하게 된 요인 셋을 꼽으라 하면 나는 다음 3명을 꼽겠습니다. 박근혜, 이한구, 원유철. 그리고 이 중 내가 정서적으로 제일 싫은 건 원유철입니다. 원유철은 본래 친박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원유철만 제대로 했어도 옥새런까진 없었을 겁니다. 원유철이 말도 안 되는 역사왜곡을 하고 있는 것도 그가 싫은 이유로 추가할 수 있겠습니다.


 

 원래 원유철은 김영삼계라 할 수 있었, 계파색이 약했는데 유승민 원내대표 시절엔 원유철이 유승민 옆에 있었습니다. 친박계가 유승민 퇴진요구할 때는 유승민 옆에서 친박계에 맞섰어요. 그런데 유승민이 원내대표 자리에서 내려온 이후 원유철이 원내대표 되었거든요. 그 다음에 갑자기 원유철은 친박이 됩니다. 그리고 박근혜와 친박의 뜻대로 이한구와 손잡고 김무성 대표를 공격합니다. 당시 상황에 대해서는 일단 다음 링크를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A&nNewsNumb=201806100012

 

 링크에서 원유철은 친박 행동대장 ◯◯◯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통칭 옥새런 사건에 대한 진상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김무성이 월간조선과 장문의 인터뷰를 한 게 있는데, 이 또한 본문에서 소개하고자 합니다.

 

"나는 박근혜를 '동지'로 여겼지만, 박근혜는 나를 '신하'로 생각했다!"


"박근혜는 당권 잡고 날 죽였지만, 나는 박근혜의 대선 승리와 '4대 개혁' 성공 위해 총대 멨다!"


"모든 비극은 '공천 파동'에서부터 시작됐다... 나는 국민에게 공천권 돌려주는 '정의' 지키려다 '제왕적 권력'에게 졌다!"


"친박 핵심들은 '박근혜 하야' 주장... 법 절차대로 탄핵하자고 한 나한테 사과하라?"


"대통령은 판단력 갖추고 인사 제대로 해야... 문재인은 현실 감각 없는 듯해 큰일"



 

 나는 박근혜를 절대 용서할 수가 없어요. 대통령으로의 의무는 하나도 제대로 하지 않고, 권력만을 탐하며 새누리당을 망치고 문재인에 정권을 넘긴 나쁜 여자였습니다. 만약 이춘상의 죽음을 심적으로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면 대통령직을 맡지 말았어야지요.


 

 원유철은 정말로 용납이 안 됩니다. 원유철이 그 때 박근혜와 이한구 쪽에 붙으면서 새누리당이 망했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그는 지금 뇌물수수혐의로 징역 8년 구형상태지요? 그런 인물을 전면에 내세우다니. 황교안 대표, 과연 제정신입니까? 중도는 물론 비박계 지지하던 유권자까지 다 돌아서게 만들 수 있어요. 그는 아무리 봐도 커먼센스가 전혀 없습니다.


 

 나에게 황교안 대표는 이제 쓰리아웃입니다. 첫 번째로 경남FC. 두 번째로 박찬주. 이번 원유철이 세 번째입니다. 황교안이 계속 대표를 하겠다면, 나는 내년 총선에서 자유한국당에 표를 주는 것을 재고해 보겠습니다.

잘못된 담론, 민주주의 VS 경제

정치 2019. 11. 7. 11:06 Posted by 해양장미

 추천 브금

 

https://www.youtube.com/watch?v=__QPyOfsTgk

 

 


 

 가끔 나오는 담론인데, 이걸로 가장 시끄럽던 때가 노무현 때였던가요. 본질적으로 이 담론은 오해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합니다. 데모크라시를 잘못 이해하고, 독재를 잘못 이해하는 데서요.

 

https://oceanrose.tistory.com/1086

 

 이 링크부터 읽어보시면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지 감 잡기 쉬워지실 거라 생각하고요.


 

 민주정체는 정치체제고, 민주적인 방식은 어느 정도의 시간적 여유가 있을 경우 - 그러므로 응급의료나 긴급한 군사작전 같은 경우는 논외 - 최선의 의사결정방식입니다. 이상적인 민주적 의사결정은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어떤 집단에서 가장 나은 인물이 표결에 의해 대표자가 됩니다. 그 대표자는 열린 태도로 전문성 있는 인물들의 도움을 받아 의사를 결정합니다. 그렇게 가능한 많은 분야에서 최선의 결과를 냅니다. 누군가 오판을 하면 바로잡습니다.



 원리상 독재는 민주적 의사결정보다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게 불가능합니다. 의사결정이 독단적이고 권위적이다 보니 합리적으로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이지요. 독재해서 망한 나라의 가장 좋은 샘플이 휴전선 북쪽에 있습니다. 그게 독재가 완전히 망하는 전형입니다. 김일성이 어처구니없는 지시 할 때 그걸 반대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어요. 거긴. 지도자가 어처구니없는 지시를 내릴 때, 지도자의 측근이 말도 안 되는 전횡을 행사할 때, 누군가 나서서 막을 수 있는 게 민주적인 겁니다.



 민주주의 VS 경제라는 담론이 나온 건 우리나라에서 군사정권이 경제정책을 잘 해서 그런 건데요. 이건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일단 독재자라고 모든 분야에서 독재하는 게 아닙니다. 박정희건 전두환이건 그랬습니다. 오히려 경제분야에서 독재하는 건 문재인이 역대 그 누구보다도 훨씬 심각합니다. 박정희건 전두환이건 경제정책에선 문재인같이 독재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경제정책 뿐만 아니라 정책 전반이 다 그랬고요.



 유신 이전의 박정희 정권은 다양한 정책에 있어 당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합리적인 의사결정능력이 있었습니다. 이는 당시 한국 상황에서 군인들이 엘리트였던 것에 기인합니다. 지금은 상상하기 힘들지만, 그 시절엔 잘 교육받는 청년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박정희 군부에서 일하던 군인 출신들은 젊은 편이기도 했고요. 지금 86보다 당시 군부정권 인사들이 훨씬 젊습니다. 5,16당시 김종필의 나이는 불과 만 35세였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30대가 당시의 김종필과 같은 권력을 얻는 게 가능할까요? 박정희도 그 땐 만 44세에 불과했습니다. 정권이 전체적으로 젊었던 겁니다.


 

 당시엔 야당의 반대들 중 어처구니가 없는 게 많았습니다. 최대한 민주적으로 가더라도 박정희 정권은 대체로 당연히 야당의 반대들을 이기고 가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민주적 의사결정이 잘 되려면 합리적 논의가 가능하고, 덜 논리적인 쪽이 빨리 패배를 인정해야 하는데,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는 그게 유난히 안 되는 편이긴 합니다. 특히 이 정권은 역대 최악으로 안 되고요. 전두환은 아예 본인의 모자람을 깨닫고 경제는 김재익 같은 전문가한테 위임하였습니다. 여담으로 나는 전두환이 통치자로 굉장히 유능했던 면을 인정하는데, 그는 정말 주제파악을 잘 했을 뿐만 아니라 주변에 베푸는 것을 절대 소홀하지 않는 인물이었습니다. 만일 이명박이 전두환의 장점을 조금이라도 본받았다면 감옥에까진 가지 않았을 겁니다. 전두환과 같은 인물이 군사정변으로 집권하였고 민간인 학살을 최소 방조하였으며 권력욕이 과도하고 인권의식이 심히 모자랐던 것은 참으로 비극적인 일이었지요. 그는 적어도 좀 더 오래 감옥에 있었어야 했습니다.


 

 나는 우리나라의 발전은 박정희 정권이 합리적 의사결정을 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판단하며, 그것은 독재자의 일반적 특성이 아니라고 굳이 이야기하겠습니다. 적어도 박정희는 경제에 있어 올바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인물이었고, 집권 전반부에는 독단적으로 잘못된 판단을 많이 내리지 않았습니다. 만약 박정희가 문재인처럼 독단과 오판을 반복했다면, 한강의 기적이 없었음은 물론 그 어떤 비참한 나라꼴이 되었을지 모를 일입니다. 다만 박정희가 권력욕을 덜 부릴 수 있었고 겸손했다면 참으로 좋았을 것인데, 권력에 대한 그의 과욕은 그 자신에게도, 그의 일가에게도 비극을 만들었을 뿐임을 모두가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박정희는 경제를 잘 한 정권으로 평가받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의 방식은 시대에 뒤떨어졌습니다. 유신 이후 말년에는 경제를 못 해서 퇴임 압력을 받다 김재규에 의해 사살되었음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즉 박정희도 비교적 민주적이고 젊던 시절에 더 잘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잘못한 점이 쌓였음에도 스스로 단점을 충분히 개선하지 못했기 때문에 말년에는 독재로 인한 실책이 두드러졌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민주정의 장점 중에는 박정희처럼 지도자가 권력에 집착하고 교만해질 때 그걸 방지할 수 있는 것이 일단 있습니다. 아무리 유능한 지도자라도 잘못을 하지 않을 수는 없으며, 지도자의 노화와 지속되는 과로는 이런저런 문제를 만들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민주적 의사결정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어느 때에나 반드시 필요합니다. 의사를 결정하는 방식을 기준으로 본다면, 박정희나 전두환보다 문재인의 독재하는 정도가 더 심합니다. 박정희는 군사 독재자의 일반적인 단점이 적은 편인데, 문재인은 포퓰리즘 독재자로 온갖 단점을 총망라하여 교과서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라 하겠습니다.

각종 문제가 있는 대한민국의 거주문화

사회 2019. 11. 6. 19:44 Posted by 해양장미

 추천 브금

 

https://youtu.be/H-HKx6JdCKE

 



 어떤 한 친구가 가업 실패로 몇 년간 어렵게 살면서 셋집을 전전하다가, 자가주택을 마련하여 거주하게 된 일이 있었습니다. 구축 아파트를 구매한 그 친구는 기뻐하며 열심히 집을 고쳤는데, 고친 일화를 들을 때마다 나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너는 단독에 살아야 할 사람인데.’


 

 나는 공동주택의 한 호를 소유한다는 건 진정한 의미의 주택 소유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우리사회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입니다. 공동주택에 사는 대한민국 도시민들은 본질적으로 유목민이며, 다수가 유랑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장노년층에는 이런 현실을 깨달은 사람이 많기도 하지요. 그리고 이러한 거주문화는 극단적으로 낮은 우리나라의 출산율에 일조하고 있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공동주택의 본질적 문제는 간단합니다. 실제 쾌적하게 쓸 만한 수명이 그리 길지 않다는 겁니다. 살다 보면 가장 먼저 외장이 나가고, 그 다음으로는 상하수도 배관과 바닥 난방 배관이 말썽을 일으킵니다.



 외장이 손상되는 문제는 아파트는 그나마 해결이 쉽습니다. 관리사무소가 의무적으로 관리를 해야 하는 분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연립주택이나 다세대는 해결이 거의 안 됩니다. 외장의 보수에는 필연적으로 비용이 소모되며, 누군가 나서서 일처리를 해야 하는데 관리사무소가 없으면 제 때 뭐가 안 됩니다. 그리고 외장의 손상은 콘크리트의 pH를 낮추기 때문에, 철근의 부식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빌라는 준공 후 20년쯤 지나면 낡은 슬럼가 건물처럼 되어버리곤 하지요. 실제 20년 된 빌라 벽을 파보면 철근 상태가 말도 아닙니다. 전국에 널린 90년대 빌라들, 결국 다 철거할 때 된 겁니다. 이 정권은 이 현실을 어쩔 건지 모르겠습니다. 노후주택 방치하다가는 다음 기사 링크와 같은 사고 터집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sec&oid=001&aid=0011094439&isYeonhapFlash=Y&rc=N

 

 외장을 어찌 관리한다 해도 상수도 배관이나 난방 배관은 골치 아픈 문제입니다. 일단 상수도 배관은, 우리나라에서는 벽체 및 바닥 콘크리트/모르타르에 그냥 배관을 묻어 공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건 현실적으로 교체가 쉽지 않고요. 특히 시공을 저렴하게 하는 빌라 같은 데서는 교체가 더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압니다. 물론 관리소가 없는 빌라 같은 데선 배관을 충분히 관리하는 것 자체가 어렵습니다.


 

 난방 배관은, 한국에서는 대체로 온수를 바닥에 돌리는 습식 난방을 하는데요. 이게 수명이 다 되면 참으로 골치 아픈 상황이 빚어집니다. 바닥 모르타르를 다 뜯는 대공사를 하지 않으면 수습이 안 되는데, 잘 사는 동네에서 매매가 이루어지면서 수천만원 들이는 리모델링을 하는 경우가 아닌 이상, 청소 외에는 예방적으로 무언가 조치를 하기 어렵기 때문에 제대로 문제가 터지기 전까지는 그냥 돌리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그리고 터지면 누수문제가 되어버리지요. 관리소도 없는 빌라 같은 데서 누수 터지면 굉장히 골치 아픕니다. 문제의 원인이 되는 세대가 무책임하고 배째라로 나갈 경우 좀 많이 심각해집니다.


 

 우리나라에서 짓는 주택 수명은 길게 30년 생각하면 됩니다. 이제 곧 2020년이니까, 1990년에 지은 건물은 수명이 끝난 겁니다. 이건 자동차 수명에 비유할 수 있는데요. 자동차도 고치면서 계속 타려면 오래 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게 가성비가 낮아지기 때문에 신차를 뽑게 되지요.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차를 무리하게 고쳐 타지 않고, 그냥 중고차를 팔고 신차를 뽑습니다. 그런데 공동주택 시장도 비슷하게 돌아갑니다. 재력이 있으면 신축에 옮겨 다니면서 살게 된단 말이지요.


 

 모든 유지보수에 있어, 단독주택이나 다가구, 상가주택 같은 경우 소유주가 1인이므로 소유주가 결정하여 추진할 수 있습니다. 단독주택의 경우 고치는 과정에서 주변에 민폐도 적고요. 그러니까 좀 더 제 때 유지보수를 하거나, 과감한 선택을 하는 게 쉽습니다. 평균적인 건물 사이즈가 작으니까 뭘 해도 쉽습니다. 그렇지만 빌라의 경우 제 때 유지보수가 안 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건물의 수명이 단축됩니다.


 

 좀 더 현실적인 이야기로 가 볼까요. 구축 보유자와 거주자는 보통 꽤 다릅니다. 구축의 문제를 아는 사람들은, 구축을 소유하되 거기서 살지는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즉 사람이 거주할 정도로만 고쳐놓고 세를 주고, 본인은 신축에 사는 것입니다.


 

 이 결과 현재 한국의 대도시는 중산층 이상이 거주하는 신축 아파트 단지와, 중산층 이하 서민이 거주하는 구도시 슬럼으로 점차 양분되고 있습니다. 슬럼에는 세입자들이 많은데, 이 세입자들은 동네를 발전시키고 가꿀 생각이 별로 없고, 진취적인 사람일수록 돈을 열심히 모아 떠나는 게 계속되니까 점점 더 답이 없어지는 겁니다.



 더 나아가 한국 여성들이 남자의 조건을 많이 보게 된 지도 이미 시간이 꽤 지났기 때문에, 이젠 기혼 부부는 거의 중산층인 반면 슬럼에는 젊은 부부가 거의 없기도 합니다. 슬럼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은 사람이 없기 때문에, 한국의 슬럼은 아이가 없고 노인이 많은 공간이 된 지 오래입니다.



 그나마 초등학교가 있는 공간은 그 주변이 한정적으로 노후화가 더디게 진행됩니다. 근래 신축이 아닌 주택을 구매하고 싶다면, (사견으로는 신축 또한) 역세권보다 학세권이 더 중요하다고 굳이 이야기하겠습니다. 초등학교가 근래 주택 시장에 끼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우리나라의 공동주택 거주 문화에 복잡하고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파트 위주가 아니라 공동주택 위주입니다. ‘아파트보다 아파트가 아닌 공동주택, 즉 다가구(여러 가구 세들어 사는 옛날식 양옥집과 원룸 투룸 등), 다세대 및 연립주택(빌라), 고시원 등이 훨씬 문제인데, 사회적으로 필히 관련 담론이 있어야 함에도 강남기득권좌파들이 담론을 주도하면서 훨씬 중요한 현실적 논의가 없습니다. 서민 서민하는 족속들은 있지만, 진짜 서민들을 바라봐주는 정치인은 거의 없는 게 현실이고, 서민팔이를 하는 족속들이 보통 제일 나쁩니다.


 

 공동주택 거주문화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상이 여럿 있는데, 좀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건 가정에서 남성이 배제된다는 겁니다. 주택이라는 건 살림과 함께 항상 관리와 유지보수가 필요한 공간인데, 보통 여성의 몫은 살림이고 관리와 유지보수는 남성의 몫입니다. 그런데 아파트의 경우 관리와 유지보수를 관리소가 대신해주기 때문에, 남성이 집을 돌볼 필요가 많이 줄어듭니다. 또한 여러 세대에 걸친 무언가 큰 작업을 하려면 여러 주민들의 동의가 필요해지기 때문에, 집주인이 집을 적극적으로 크게 손댈 일이 줄어들기도 합니다.


 

 또 주요한 한 변화는 소비재의 소비 문제입니다. 공동주택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이사를 많이 다니게 되며, 평생 이 집에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좀처럼 하지 않게 됩니다. 미국이나 일본 등지에서 30년 모기지로 집을 사서 대대로 살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과는 대조적이지요. 이로 인해 한국인들은 거주공간을 가꾸고 고급화시키는 노력을 점차 덜하게 되었는데, 특히 운반하기 어려운 가구의 다운그레이드가 심각합니다.


 

 웃프게도 오래 되고 허름한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면, 우연히 보이는 창문 안 가구가 의외로 고급진 것을 종종 볼 수가 있습니다. 오래 전에 산 가구라 그러합니다. 요새 아파트는 가성비를 중시한 빌트인 가구를 많이 쓰는 편이고, 들여놓는 가구들도 대체로 모던하고 심플하면서 가벼운 쪽입니다. 유행의 문제도 있습니다만, 고급원목을 써 대대로 물려 쓸 수도 있는 가구는 오히려 80~90년대에 많이 소비되곤 했지요. 종종 오래 되어서 어디선가 그런 걸 버릴 때 들어보면, 엄청나게 무거워서 운반이 힘들긴 합니다.


 

 마당이 사라지고, 베란다를 튼 가구가 늘어나고, 베란다가 작아지면서 나의 친족들 식물 또한 전보다 점점 덜 키우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현대 선진국 중 중산층 이상이 가장 식물을 키우지 않는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나는 재개발이나 뉴타운에 기본적으로 적극 찬성하는 입장입니다만, 돌아다니다가 재개발을 앞둔 지역을 보면 버려진 능소화나 감나무 등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물론 재개발을 잘 하고 나면 녹지가 늘어날 것이긴 합니다만. 식물을 키우는 개인은 줄어들 거라 생각하게 되니까요. 사실 지구를 지배하는 건 나의 친족들입니다.



 또 한 가지 문제를 꼽자면 사람들이 아이도 잘 키우지 않고 유목민처럼 살게 되면서 또 변한 게, 이웃끼리 서로 알고 지내려는 경향이 사라졌다는 겁니다. 이건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같은 건물에 사는 여럿이 상의해서 무언가를 해야 할 때 잘 되지 않는 결과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잘 모르는 사이일수록 층간소음이나 기타 이웃 간 피해에서 피해의 체감을 더 느끼게 됩니다. 아는 사이면 무의식중에 관대해지고 포용하기 쉬운데, 모르는 사이면 적대적이 되기 쉽습니다. 그렇지만 이사를 자주 다니는 한국인들은 더 이상 이웃끼리 굳이 알고 지내지 않으려 합니다.


 

 물론 아파트 위주의 주거에는 장점도 많습니다. 나는 이 점을 지난 포스트에서 여러 번 이야기해왔습니다. 그러나 나는 상류층이 공동주택에서 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고요. 가급적 상류층은 어떤 지역에서 자리 잡고, 아방궁 같은 대저택에서 사는 게 좋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야 그 지역이 번영하고 쇠퇴를 면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혼인율과 출산율이 급감하는 건, 결국 청년들이 어떤 삶을 추구하고 그걸 이룰 수 있다고 믿느냐의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젊은 여성들은 공동주택에서, 세계적으로 좋은 조건의 주택임차로 거주하면서, 가능한 직장 커리어를 유지하고, 싱글로 소확행을 누리는 삶을 장기적으로 추구하는 경향이 생긴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즉 공동주택 위주의, 타국대비 여성이 싱글로 살기에 너무나도 적합한 임대차 거주환경이 현재의 비혼 트렌드에 크게 일조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문제들을 개선하기 위해, 나는 앞으로 가능한 우리나라에서 국가주도의 공동주택 공급은 크게 줄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세대나 연립주택 같은 거주 형태를 가능한 제도적으로 없애나가야 합니다. 전반적인 도시 주거공간을 고층 아파트와 단독주택, 그리고 다가구와 상가주택으로 설계해야 합니다.


 


 주택모기지에 대한 지독한 LTV, DTI, DSR등의 기준을 해지해야만 합니다. 우리나라만큼 지독하게 주택담보대출을 규제하는 나라가 또 없습니다. 금리는 내리면서 금융상품을 조이니까 극단적인 부익부 빈익빈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특히 민주당의 경제정책은 서민을 사지에 밀어 넣고 금융기관을 살리고 부자를 더 부자답게 만들어주는 데 특화되어 있습니다.

 추천 브금

 

https://youtu.be/GFooW8KAD5M

 



 ‘인천이 옛날에는 서울보다 잘 사는 도시였어.’


 

 가끔 하는 말입니다. 농담같이 들리시겠지만 사실이고, 울산이 한 때 서울보다 잘 사는 도시였다고 할 날도 머지않았습니다. 인천은 울산 테크를 좀 일찍, 좀 약하게 탄 도시에요.


 

 그나마 인천은 인천공항을 유치했고, 부산항과 격차는 꽤 있지만 (지형 탓에 못 줄이는 격차입니다) 국내 제2의 항구도시긴 하고, 공업도 아예 죽진 않아서 어느 정도는 유지해 왔는데요. 최근 문재인 정권이 경제를 망치면서 + 사드배치 + 트럼프발 무역전쟁에 집중포화를 맞으면서 수도권임에도 도시 꼴이 말도 아니게 되었습니다.


 

 만일 안상수가 2010년대에도 시장을 할 수 있었다면 인천이 이 정도로 어렵진 않았을 텐데. 라는 생각을 항상 합니다. 송영길은 인천에 애정조차 없는 역대 최악의 시장이었고, 유정복은 과장 좀 보태 송영길만도 못한 시장이었고, 박남춘은 송영길과 유정복을 넘어서는 인재(人災)라고 생각합니다. 청와대에 문재인이 있다면 인천시청에는 박남춘이 있습니다.


 

 시장들 비판은 이 정도로 하고요. 나는 인천의 제조업이 전성기 수준으로 회복되는 건 불가능하다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이제 인천은 대안을 찾아야 하는데요. 나는 앞으로 인천은 관광도시로 대한민국 넘버원, 더 나아가 타이완을 넘어 아시아 넘버원을 지향해야 하며, 서울과의 문화수준 격차 또한 최대한 따라잡아야 한다고 주장해 보겠습니다.


 

 관광산업이 중요하다는 나의 발언은 어쩌면 대한민국 전체에 적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서식지 인천인 나는 식물이라 움직일 수 없으므로 어쩔 수 없이 국내 타 도시의 관광산업 발전을 결코 원하지 않기 때문에, 본문 내용은 인천에만 해당되는 것이라 단언하겠습니다.



 나는 관광하기 좋은 도시는 아름답고 깔끔하며 안전한 도시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나는 어떻게 하면 도시공간을 아름답게 가꿀지에 대해 가능한 모두가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것을 위해 나는 일차적으로 인천광역시 내에서의 보행흡연을 금지하는 동시에, 그 이상으로 담배꽁초 무단투기에 대한 강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이를 위해 나는 도시가 임시고용을 통해 단속인원을 다수 확보한 후, 철저한 단속을 통해 과징금을 얻어 임시고용인원에 대한 임금을 줄 수 있을 걸로 생각합니다. 각종 불법주차 역시 마찬가지로 단속하고 해결할 수 있습니다. 곳곳에 공공주차장을 최대한 지음으로 문제를 개선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배달대행이 대세가 된 이후 무법천지로 다니는 오토바이들 또한 반드시 단속해야합니다. 이 또한 인력이 필요한 일이므로, 임시고용을 통한 단속으로 강하게 해결해야 하겠습니다. 인도로 오토바이가 다니는 동네는 거주민들이 살기에도 안 좋지만, 관광객들이 보기에도 나쁠 수밖에 없습니다.


 

 각 분야에 임시고용을 유치하기 위한 선제적 투자가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도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각종 공모 펀드를 운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투자와 개선을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합니다. 시를 위한 기부금을 내는 사람들을 기념하기 위한 설치 기념물을 제작해주는 것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사람은 돈을 쓰거나 넣어둬야 관심가지고 애정을 가집니다.


 

 시가 운영하는 도시 관광 상품 패키지 중 일부는 시민들 중 소수에 일정 간격으로 무작위로 초대권을 뿌리는 것도 좋겠습니다. 그 후 피드백을 받아 관광 상품을 개선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인천타워 건축을 재개해야합니다. 인천은 별 전통도 문화재도 없는 도시기 때문에, 마천루만큼 랜드마크가 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포스코타워는 마천루로 더 홍보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관광객이 관광하기 쉽게끔, 인천 3호선을 빨리 착공해야합니다. 주민들이 많이 안 타더라도 관광객은 탈 겁니다.


 

 개성적인 것은 권장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관광상품으로 가치가 생깁니다. 설령 대한민국 현행법상 문제가 있더라도, 타인에게 별 피해가 되지 않는 이상 특별 지구로 지정해서 보호해야 합니다.


 

 잘 보이는 건물은 시에서 투자금을 내서라도 아름답게 짓도록 강권해야합니다. 그로 인한 이익의 일부는 환수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만, 가능한 개성적이고 아름다운 건물이 많아야 합니다. 건축 오타쿠들을 시청에서 뽑아 건축주들을 귀찮게 굴고 당근을 내밀어야 합니다.


 

 중요한 건 투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안상수를 빚상수라 폄하했었지요.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회수되는 빚이었고, 부채 없이는 투자가 되지 않으며, 투자 없이는 발전도 없는 것입니다. 그의 모든 투자가 성공적이지는 않았으나 그가 없었다면 현재의 인천도 없었습니다. 앞장 서 안상수를 폄하하던 송영길은 인천에 빚더미 도시라는 이미지를 뒤집어씌웠고, 인천의 발전을 그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방해하였습니다. 이후 인천의 발전은 크게 둔화되었습니다. 그러나 빚더미 도시라던 인천은 금세 빚을 청산했지요. 무리하게 청산하지 않고 계속 투자했다면 훨씬 나은 도시가 되었을 건데요.


 

 이상 글을 적당히 마무리하면서, 다른 도시는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는 말을 해야겠습니다. 일단 이렇게 하려면 입지가 되고 조건이 되는 도시여야 합니다. 각 도시마다 어울리는 발전 방향이 있습니다. 인천은 관광에 투자하면 대박나기 쉬운 조건의 도시입니다. 다른 도시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전반을 생각해본다면, 앞으로 우리나라가 패션/관광국가화되는 게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인이 제일 잘 하는 건 안자고 놀고 멋내는 겁니다.

정치는 현실이고, 투표는 차악을 뽑는 겁니다.

정치 2019. 11. 4. 12:45 Posted by 해양장미

 추천 브금

 

https://youtu.be/fQ1un3n-j4A

 

 


 

 그러니까 나는 아마 다음 총선 때 차악인 자한당에 표를 주게 되겠지요. 황교안 하는 거 보면 속이 터지긴 해도요. 누가 황교안 좀 안 끌어내릴까요?


 민주당이 최악임은 객관적 사실입니다. 그 쪽이 훨씬 더, 비교불가 수준으로 해로워요. 어제 82년생 김지영 관련 논평 철회한 거 보세요. 누군가 바른 말 좀 하면 양념당하고 준연당하는 게 그 당 공식이지요. 이것이 최악이 아니라면 무엇이 최악일까요. 세상에 순수한 악이 있다면, 그것의 이름은 민주당일 겁니다.


 

 박찬주가 갑질을 하더라도 공관병들 괴로운 정도지요. 집권여당이 래디컬 페미에게 점령당해 폭주하는 건 진지하게 문자 그대로 나라가 망할 일입니다. 이해찬 대표 말처럼 민주당이 20년 집권하다가는 세계 국가 목록에서 대한민국이 금세기 내 사라져도 전혀 이상할 게 없겠습니다.



 민주당은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이며 비민주적인 이익집단입니다. 그런 정당을 지지하거나 옹호하는 것은 마찬가지로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이며 비민주적인 일입니다. 그런 정당을 지지하거나 옹호하는 사람은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이며 비민주적인 사람입니다.



 최악이 어디인지 분명하고 그것의 해악이 대단히 크기 때문에, 이성적인 유권자라면 향후의 선거에서 민주당에 가장 큰 대미지를 입힐 수 있는 방향으로 투표해야한다고 나는 굳이 주장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아마 나는 다음 선거에서 싫어도 자한당을 뽑을 겁니다.



 그렇지만 정말 황교안과 같은 인물이 대표인 정당을 뽑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 인간 좀 갈아 치우면 좋겠습니다. 각자에겐 각자에게 어울리는 자리가 있는 것인데, 황교안은 감도 안 되면서 옹립되어 장관, 총리, 대통령 대행, 당대표를 하면서 줄곧 그 자리의 권력에 도취하는 모습을 보여 왔습니다. 그에게는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이 가져야 할 그 어떤 미덕도 없습니다. 아래에서부터 정치인으로 단계를 밟고 올라온 경력도 없고, 자리에 어울리는 적합성과 능력도 없고, 겸손함이나 포용성이나 매력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닙니다. 협소한 진영논리와 지긋지긋한 유훈정치판이 그를 당대표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박찬주를 밀어붙이고 있지요.


 

 나는 김무성 전 대표와 김병준 전 비대위원장을 좋게 생각합니다. 김무성은 이미지 관리나 발언 조절이 잘 안 되는 인물입니다만, 주변을 잘 챙기고 서로 다른 정치파벌끼리의 이견을 조율하고 타협점을 이끌어내는 데 능한 인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김무성을 프로 정치인이라 인정하며, 그렇기에 부당하게 월권을 행사하며 그를 밀어낸 박근혜와 친박세력에 대해 대단히 부정적인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김병준 전 비대위원장은 자유주의자로 자유한국당의 철학적 방향설정에 있어 준수하였다 생각하고요.



 홍준표 전 대표는 좋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김무성과는 반대로, 평론가의 입장에 있을 때는 지지자들이 좋아할 법한 말을 잘 하고, 옳은 말도 곧잘 하지만, 갈등을 키우는 성향이고 조절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예능인으로는 우수하다 할 수 있어도 정치인으로는 아닙니다. 정치인의 본업은 협상하고, 타협하고, 현실을 이해하고, 입법/행정/사법/외교 등을 해내는 것입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통치와 예능의 중요도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정당정치에 있어 총선을 앞둔 외부영입은 본질적으로 이미지 관리입니다. 전문성의 수혈이라는 일면 또한 없지 않습니다만, 국회는 모든 방면의 전문가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며, 보편적 입장에서 각 분야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가며 일을 해야 하는 대의체입니다. 그런데 신인 당대표라는 자가 제일순위로 영입한 인물이 공관 갑질 박찬주라니, 그런 커먼센스라면 빨리 사임하는 모두에게 좋은 일일 겁니다.

 본문과 함께 보면 좋은 영상

 

https://youtu.be/kY20wLISPgI

https://youtu.be/hFX3wf7Da7M

 


 

 그러고 보니까 나는 본 블로그에서 거의 공동체주의 비판만 해 왔는데, 지난 글에서 공동체주의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니까... 아예 공동체주의가 뭔지 잘 이해를 못 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먼저 요지부터 이야기하고 시작하자면,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의 관계와 공동체주의와 집단주의의 관계는 거의 같다는 것입니다. 개인주의이기주의 이듯, 공동체주의집단주의 입니다.


 

 현대정치철학에서 공동체주의가 주요담론이 된 건 최근의 일이고요. 단어의 어감만으로는 별로 그렇게 생각이 안 되겠지만, 공동체주의는 메이저 정치철학 중 가장 새로운 것입니다. 근현대 정치철학 발달 및 등장 계보를 보면 대략 공화주의 - 고전적 자유주의 - (아나키즘 등이 난립하는 혼세) - 현대적 자유주의 - 공동체주의 순으로 등장합니다. 결국 이 시대의 메이저 정치철학 담론은 현대적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만 남았다고 정리해도 됩니다. 나는 자유주의자라서 그 동안 현대적 담론의 관점에서 공동체주의를 비판해온 건데, 어쩌다보니 본문에서는 내가 공동체주의를 앞장서서 설명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다만 나는 자유주의자이다 보니 공동체주의자의 입장에서 공동체주의를 설명하는 것은 불가합니다.


한나 아렌트. 출처 https://brunch.co.kr/@kibokk/14

 

 계보로 볼 때 공동체주의는 공화주의의 후예이자 유사 관념(공동체주의공화주의)이라 할 수 있으며, 또한 동시에 서구 기독교 민주정체(기민주의)의 현대적 버전이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현대 공동체주의는 이미 현대적 자유주의가 등장한 이후에 본격적으로 논의된 만큼, 자유화된 세계관을 기반에 두고 있으며 집단주의적인 것, 특히 전체화에는 분명히 반대하는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현대적 자유주의가 이기주의나 방종, 더 나아가 고전적 자유주의에까지 비판적인 것과 유사합니다. 그래서 뭉뚱그려보자면 현대적 자유주의와 현대적 공동체주의는 많은 부분 목표나 결과가 아주 크게 다르지는 않고요. 합의 가능한 개념들이 많은데, 현실적으로는 주로 각론에서 이견을 보인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는 마치 주류경제학이라는 범주를 볼 때, 적어도 외부에서 (비주류경제학의 관점 등으로) 보기에는 이견이 그리 심하지 않은 것과 다소 유사합니다.


 

 예를 들어 근래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나는 현상을 두고 이야기를 해 보지요. 1인가구가 엄청나게 증가하고 있지요. 각자가 1인가구로 살면 장점도 있지만 이런저런 문제들이 많습니다. 그것에는 개인의 문제도 있고, 사회적 문제들도 있습니다. 이런저런 개선과 해결이 필요합니다.


  

 현대적 자유주의자로서의 나는, 해당 문제의 본질을 각자의 자유를 충분히 존중하지 못하는데서 일차적으로 비롯되었다고 가정합니다. 즉 사람들끼리 어울려 살려면 각자의 개성을 충분히 존중하고, 간섭을 과도하게 하지 마는 등의 배려가 필요한 것인데 서로의 개인성을 충분히 존중하지 못하고, 불편하게들 굴면서 정의로운(일상어휘로는 평등한이라는 단어로 대체하는 게 좀 더 이해가 쉽겠습니다.) 관념적 교집합을 이끌어내지 못하다 보니 (어떤 집단이 형성되면 자체적인 집단문화가 형성되기 마련이라 생각합니다. 2~4명이 모인 친구관계에서도 그렇습니다. 각자가 충분히 교감할 수 집단문화가 형성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구성원 각자가 쉽게 파편화된다는 가정을 하고 있습니다. 즉 이는 자유와 다원성의 증진으로 개선이 가능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또한 동시에 우리 각자는 숙명적으로 짊어져야 하는 외로움이 있다고도 생각하지요.



 그런데 공동체주의의 렌즈로 이 상황을 보면 조금 다른 방향부터 접근하게 됩니다. 즉 우리가 파편화되고 외로운 건 공동체의 유대감이 파괴되었기 때문이며, 이러한 유대감은 구성원에 대한 개방성, 따스함, 존중 등으로 유지될 수 있는데 그런 게 불충분하니까 공동체가 파괴되어 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각자를 서로 존중하고, 따스한 시각으로 서로를 바라봐주면서 공동체의 회복을 도모해야 한다 할 수 있지요. 특정인(대체로 윗사람)의 이익을 위해 각각의 권익이 침해된다거나, 공동체 내의 특정인에게 냉혹하게 군다거나, 누군가가 권력으로 찍어 누르면 당연히 공동체는 부서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게 위에 말했듯 약간 차이입니다. 각자의 개인성을 존중한다는 결과는 같지만, 존중하게 되는 접근방식은 조금 다른 정도랄까요. 우리나라는 집단주의적인 나라긴 해도, 현대적 공동체주의가 있는 나라는 아닙니다. 권위에 대한 추종, 공격적 오지랖, 이기심은 있지만 (이 모든 걸 다 높은 수준으로 갖춘 집단도 있지요.) 공동체도 자유도 영 모자란 나라라고 할 수 있지요.


 

 두 이념의 차이는 주로 각론에서 나타납니다. 일단 도덕을 어떤 식으로 규정하느냐의 차이가 생기는데, 쉽게 설명해 자유주의는 개개인의 느슨한 동의와 교집합에 의해 도덕이 생긴다고 보는 경향이 있는 반면, 공동체주의는 도덕을 보다 관습적이거나 전통적인 것, 또는 어떠한 진리에 의한 것 - 서구에서는 기독교적 관점으로 설명합니다. - 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공동체주의자들은 자유주의가 공공선을 파괴하고 개인의 파편화를 초래한다고 주장합니다. 대조적으로 자유주의자들은 공동체주의는 개인을 희생시키기 쉽다고 주장하지요. 나는 자유주의자이기 때문에 공동체주의자들을 현대적 자유주의의 관점에서 바라봅니다. 다원주의에 따른 타협의 대상으로 본다는 이야기고, 올바른 공동체주의적 덕성을 유지할 경우 몇몇 각론이 아니면 크게 부딪칠 일이 많지 않다는 것이지요. 다만 나는 자유의 증진을 공공선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공동체주의자들은 그렇지는 않지요.


 

 정치철학의 범주를 벗어날 때 공동체주의는 공공선을 규정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이 생기기 쉬워 잘 들어맞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즉 공공선을 규정하기 쉬운 영역일수록 공동체주의적 관점은 존중받을 가치가 있고,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습니다. 공동체주의는 공동체의 미덕을 규정하는 데 있어 약점을 드러내는데, 나는 그럴 때 결국 포괄적 교설을 이끌어내는 가운데 최대한 개개인을 존중하는 게 답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나의 시각에서 공동체주의는 관습에 대한 존중을 반드시 동반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공동체주의는 본질적으로 보수적입니다. 바람직한 공동체주의는 공동체의 관습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다듬어가야만 현실에 구현될 것입니다. 물론 우리나라는 각각 공동체의 존중받는 전통적 관습이 거의 상실되었고, 바람직한 형태라 할 만한 것이 별로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의 공동체주의자들은 해야 할 게 정말 많습니다.


 

 한편으로 공동체주의는 공공선을 강조하고 샌델 같은 우파 공동체주의자의 경우 (샌델은 많이 심하게 우파입니다.) 공동체가 정의를 대체하거나 어떤 경우 공동체가 정의의 근원이라 주장할 뿐, - 사견으로 관습적이지 않은 사회 공동체는 정의를 규정할 수 있다고 봅니다. - 그 구체적 해결책으로 집단주의적인 방법론을 택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공동체주의자들은 자유주의자들이 무신경하게 공리(최대다수의 최대행복)를 들이밀 때, 공리가 반드시 공공선은 아니라고 주장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겠습니다만, 사실 어지간한 사람들은 누구나 공공선과 공리를 같다고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현실적으로는 공리보다 나은 공공선을 찾기 어려워합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통상의 유권자가 아닌 통치자의 경우, 반드시 공동체주의적인 덕성을 함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순수한 자유주의 정치철학이 존립하기 어려운 딜레마라 할 수 있는데, 아나키한 상태가 아닌 이상 대의제의 대표자는 존재할 수밖에 없는데, 이 대표자가 공적 개념과 덕성이 없는 경우 이런저런 문제가 많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통치자의 윤리로 공화/공동체주의는 언제나 탐구되어야만 하며, 시민들은 각자의 자유를 추구하는 가운데 좋은 공동체 의식이 있는 대표자를 찾아 뽑아야만 합니다. 권력이라는 게 존재하는 한, 권력을 쥔 사람이 가져야 할 공적 의식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국가/시민공동체에 대한 존중이 전혀 없이, 사적 이익만을 추구한 자가 권력을 가질 때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를 똑똑히 보지 않았습니까.

 브금은 계절에 맞춰

 

https://youtu.be/2i1T2L2BJpo

 

 



 여러 번 말했던 이야기를 다시 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은데, 결국 철학이 문제입니다. 자유한국당은 (김병준 비대위 시절을 제외하면) 정치철학이 부재한 정당입니다. 상대적으로 민주당은 아주 잘못된 정치철학을 가진 정당이고요. 그래서 더 해로운 건 민주당입니다만, 더 헤매는 건 자한당입니다.


 

 기회가 될 때마다 강조하고 있는데요. 보수주의는 태도(attitude) 또는 정서(emotion)일 뿐 철학(philosophy)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특정 정치세력 또는 사회운동 및 사회적 트렌드 등이 급진성을 보일 때, 그에 대한 의심이나 반감 등이 보수주의적인 움직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만큼 보수주의는 능동적이기 어렵고, 수구화되기 쉽고, 극우화 및 포퓰리즘으로 치닫기도 쉽습니다. 괜히 최근에 세계 전반적으로 전통적 보수세력이 망한 게 아닌데요. 21세기 들어 엄청나게 빠른 사회/기술변화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말 그대로의 보수적 태도를 가지고서는 국가가 생존하기 어려운 면이 있기도 합니다.



 한편으로 철학적으로만 - 그리고 원리만 - 보자면, 보수주의는 공동체주의와 친하고 진보주의는 자유주의와 친해야 합니다. 이것이 자유 없는 자유한국당소리를 듣는 근본 이유인데요. 보수적 정서와 태도를 가질 경우 관습과 가까워지는 반면 자유주의와는 멀어지게 되는 게 당연합니다. 그런데 꽤 많은 자칭 보수주의자들이 사회적/문화적 면에서 다소 수구적인 공동체주의를 앞세우는 가운데, 오로지 경제적인 면에서만 극단적인 자유주의를 추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모습은 자칭 보수주의자들에 대한 대중적 - 특히 중도적인 사람들의 - 반감을 불러일으키기 쉽습니다. 황교안 대표는 특히 이런 유형의 전형인 것 같습니다. 대조적으로 유승민의 경우 그의 정치적 행보가 최악임에도 불구하고, 철학적으로 공동체주의적 태도를 제법 일관적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지층이 남아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보수주의적인 사람들은 각자의 보수성이 본질적으로 정서적이라는 것을 먼저 이해하고,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철학적 일관성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좌우파를 막론하고 이 작업이 선행되지 않으면 포퓰리스틱해지고 파시스틱해지기 쉽습니다. 파시즘은 철학의 일관성이 없고 열광적으로 권력을 향해 움직이는 것을 우선시하는 게 본질입니다.


 

 한편으로 대한민국에서는 민족주의와 해당 이미지를 NL계열이 선점하고 있으며, 인종/민족갈등이 매우 약한 편이기 때문에 보수파가 극우화되면서 세력을 확장할 여지가 많지 않습니다. 즉 우리나라에서는 극우적 열광의 많은 지분을 민주당과 범여권이 가지고 있고, 보수당은 반공 매카시즘에 집착해 왔던 것이 현실입니다.


 

 또한 공동체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자유한국당이 보수적 공동체주의를 적극 도입하기엔 우리나라의 보수적 전통이라 할 만한 게 별로 없습니다. 만일 자유한국당의 뿌리를 박정희에서 찾는다면, 박정희 정권은 좋게 표현해 혁신적인 정권이었습니다. 권위주의적이긴 하였으나 보수적인 정권과는 거리가 멀었지요. 심지어 전두환도 혁신적이었습니다. 김영삼도 그러합니다. 이명박도 보수적인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보수파는 이름만 보수지, 실제로는 보수적인 적이 없었습니다. 박정희를 숭상하면서 그걸 보수라 부르니까 논리가 사라지고, 맹종이 남기 쉬워지는 것입니다.


 

 나의 견해로 자유한국당은 전반적인 시민이 그럭저럭 동의할 수 있는 철학을 먼저 정립하고, 그 철학을 행동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중도적인 시민들은 결코 민주당의 아집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자유한국당이 대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면 적어도 한 번은 투표를 해 줄 겁니다.



 정치공학적으로 접근한다면 자유한국당은 공동체주의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가지고, 연구하고 사상을 정립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자유한국당이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주의를 챙기는 건 대단히 어렵고요. 바람직한 공동체주의라도 챙기는 게 현실적으로 나을 겁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에 보편적인 한국인들이 현재 원하는 건 제대로 된 공동체주의입니다. 표 가진 유권자들의 니즈가 그쪽입니다.



 나는 스스로 자유주의자임을 여러 번 밝혀왔습니다만, 만일 내가 현재 자유한국당에서 당론과 정책을 결정하는 입장이었다면 나는 공동체주의적 요소를 많이 이야기할 것입니다. 민족주의적인 이야기도 할 거고요. 이 연장선상에서 이야기하자면, 아무래도 민부론은 정치공학적으로는 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만일 자유한국당이 현재 국민들이 가진 국가공동체에 대한 불안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듬직한 청사진을 제시하여 안도감을 줄 수 있다면, 내년 총선에서 질래야 지기도 어려울 것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