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필을 생각하며

정치 2018. 6. 23. 13:14 Posted by 해양장미

 추천 브금

 

https://youtu.be/Wxw2fnQn8YI

 



 3김 중 마지막 생존자였던 김종필이 타계하였습니다.

 

 그는 뛰어난 정치인이었고,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근래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된 청년들은 그에 대해 성급하고 단편적이며 부정적인 판단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지만, 그는 복잡하고 다면적인 인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박정희의 공이라 생각하는 건 사실은 많은 부분 김종필에게 돌아가야 합니다. 박정희가 그토록 권력욕을 부리지 않았다면, 김종필은 박정희보다 나은 지도자가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김종필의 부정적인 면은 근래의 민주당도 거의 유사하게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차라리 김종필이 훨씬 신사답고 사려 깊고 도덕적이었지요. 김종필보다 민주당 운동권들이 덜 독재를 사랑한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3김 중 김종필만이 여자관계가 깔끔한 애처가였고 가족들 비리가 터지지 않았습니다. YS, DJ와도 꽤 가까웠고, DJ와 가깝지 않았다면 DJP 연합은 없었을 것입니다.

 

 김종필은 5.16의 주역이었습니다. 박정희보다 김종필이 5.16을 주도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당시 그런 1인 장기 독재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박정희와 친인척 관계였고 가까웠으며 박정희 정부의 핵심 요인이었지만, 3선 개헌과 유신은 김종필의 뜻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유신 정권 아래에서 김종필은 강한 권한이 있는 책임총리를 맡았으나, 원하지 않는 자리였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지 75년에 박정희에게 큰 소리로 따지면서 징징까지 시전하면서 그만뒀습니다. 이후 박정희가 김재규의 총에 맞자 YS, DJ와 직선제 개헌에 합의했고, 제대로 된 대통령이 되고 싶어서 임시 대통령직엔 출마를 안 해 최규하가 대통령이 되었는데, 그 바람에 1212가 터지고 신군부한테 당했습니다.

 

 만일 박정희가 3선 개헌을, 유신을 강행하지 않았다면. 또는 김종필에게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주지 않았다면 최소한 신군부는 없었을 것입니다. 김재규가 박정희를 쏘던 시점까지 김종필이 총리였다면, 전두환이 쿠데타를 일으킬 상황은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전두환의 신군부는 몇 년 지속되지 않았지만 그 시기는 우리 시대에 끔찍한 문제를 안겼습니다. 현 민주당계-진보계 수뇌인 NL/PD 학생운동권이 탄생한 게 그 시기거든요. 신군부 쿠데타가 아니었다면 그런 끔찍한 게 나올 일도 없었습니다.

 

 이후 김종필은 DJP연합에 성공하여 내각제 개헌 후 집권에 가까워집니다만, 결국 김대중과 뜻이 어긋나고 2000년 총선에서 패배하면서 야심과 멀어집니다. 그리고 그의 정치는 2004년에 끝나는데, 노무현 탄핵 정국에서 그는 자민련 비례 1번으로 나섰지만 - 여성이 아닌 남성인 그가 1번이었습니다. - 자민련이 전국비례 3%를 못 얻어서 그의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끝나고 맙니다.

 

 그는 박정희 시대의 실무적인 업적의 주역이며, 한 개인으로는 깔끔하고 멋지며 지적인 예인이었습니다. 5.16을 그의 과오라 할 수는 있으나, 개인적으로는 5.16에 대한 주책임은 장면과 윤보선에 있다 생각하는 쪽입니다. 그렇게 무능하게 당하는 정권이 나라를 지킬 수는 없습니다. 김종필과 박정희가 권력욕은 있어도 사회와 국가에 대한 악의는 없었기에 다행입니다. 바꿔 생각하면, 당시 상황은 박정희보다 훨씬 나쁜 놈이 국가권력을 탈취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김종필은 다른 정치인들보다 도덕적이었고 유능했습니다. 김영삼도, 김대중도, 노무현도 가족들이 비리를 저지르고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대통령과 대통령이 아니었던 자의 권력 차이가 있다고는 하지만, 김종필만이 그런 게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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