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권과 포퓰리즘, 민주정의 붕괴

정치 2017. 12. 25. 20:02 Posted by 해양장미

 오늘의 추천 브금은 암울한 글 내용과 상관없는 크리스마스 테마입니다.


https://youtu.be/qOOaH6BAwvY

 


 올해 취임한 문재인 정권의 첫 해를 평가하려 해보니, 잘 되지가 않습니다. 이 제6공화국 최악정권의 우행을 일일이 서술하고 정리하고 비판할 기력이 없습니다. 지금의 이것은 단순한 정권의 실패를 넘어 국가의 실패이자 민주정체의 실패입니다. 문재인이 취임하면 사단이 날 줄은 알고 있었지만, 현재의 이것은 낮은 확률로 일어날 수도 있었던 아주 나쁜 시나리오쪽에 가깝습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이 정권의 핵심적인 문제는 역시나 정책들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해롭다는 데 있습니다. 도무지 주류학계나 다수 전문가의 의견을 따르는 게 거의 없으니까요. 이성과 지성, 검증과 신중함이라고는 없고 감성과 선동, 반지성과 권위주의, 급진과 맹종만이 있는 전형적인 좌파 포퓰리즘 정권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현재 이런 양상이 전개되고 있는 건 민주정의 구성요소들이 붕괴했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합니다. 본래 민주국가란 각 행위자들의 다원적인 의사가 적극적으로 표출되고 이해관계가 빠르게 조정되는 정치체제에 가깝습니다. 이 설명의 이해를 위해 자생적 민주국가의 출현을 되짚어보지요. 본래 거의 모든 국가는 군주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점차 사회가 발달하고 복잡해짐에 따라 군주가 각자의 영지(군왕의 경우 국가)를 통치하기 어려워졌고, 다원적인 계층이 생겨났습니다. 이들은 각자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었고, 그 목소리들은 의회를 통해 전달되었습니다. 왕과 영주들이 직접 섣부른 판단을 내릴수록 많은 것들이 꼬였기 때문에, 의회는 점차 권한이 커졌고 왕은 책임과 권한이 모두 축소되어갔습니다. 그 결과 어떤 나라는 왕이 통치권한을 내려놓고 적당히 대접받는 것으로 타협되었고, 어떤 나라는 왕을 몰아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민주정의 출발입니다.

 

 다원성, 의회, 다양성, 타협, 균형, 관용. 이것이 진짜 민주정을 묘사하기에 적합한 단어들입니다. 민주정은 더 나은 왕이 필요해서 나온 체제가 아닙니다. 그런 거였으면 왕을 갈아치우면 되었을 문제지요. 민주정은 본질적으로 왕이 아닌, 시민의 대표자들인 의회로 정치를 하려는 체제입니다. 의회의 뒤엔 정당이 있고, 이 정당은 다원성을 어느 정도 정리합니다.


 그런데 이 다원주의 모델을 반대하는 조류가 있으니, 그것이 대중주의. 즉 포퓰리즘입니다. 포퓰리즘의 본질은 단순히 퍼주는 정책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정부주도의 분배정책은 제대로 된 정부도 합니다. 제대로 할 뿐이지요. 어차피 트럼프같은 우파 포퓰리즘은 잘 퍼주지도 않고요. 포퓰리즘의 본질은 다원성에 대한 반대, 포퓰리즘 지도자 및 그 세력과 엘리트-기득권을 양분해 이미지 메이킹하고 포퓰리즘 지도자야 말로 국민의 편이라는 세뇌, 끊임없이 국민비국민을 분리하고 순수한 국민을 재정의하려는 것, 엘리트와 대중을 동일선상에 두고 대중이 더 옳은 판단을 할 수 있으므로 엘리트를 배제해야 한다고 믿는 것 등입니다.

 

 이런 포퓰리즘은 제법 세계적인 현상이며, 다원주의 민주정체 모델의 가장 큰 적입니다. 그리고 현재 한국은 다원주의 민주정이 일시적으로나마 붕괴하고 포퓰리즘이 득세하는 상황으로 진단할 수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포퓰리즘이 유행하는 이유는 아마도 이것일 겁니다. 대중은 진짜 민주정, 그러니까 다원주의 모델-자유주의 민주정체에 좀처럼 만족하지 못합니다. 어떤 사회가 이상적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민주정체는 최선의 체제일 뿐 이상적인 체제는 아니거든요. 그리고 포퓰리스트들은 민주정의 약점을 잘 노리고, 궤변과 선동을 동원해 그것을 파괴하는 데 능합니다.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문제점은 바람직한 민주정 모델은 어느 정도 학술적으로는 합의되어 있지만, 그것이 시민 사이에서 상식적으로 보급되어 있지는 못하다는 데 있습니다. 무언가가 상식선에서 보급되려면 윤리적 감성을 잘 자극할수록 유리한데, 다원주의와 자유주의가 사실 고전적 윤리관과는 잘 일치하지 않는 면이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포퓰리스트들은 꽤 쉽게 고전적 윤리관을 자극하고, 시민들을 설득합니다.


 실제 현상을 볼까요. 문빠들은 이런 식으로 현실을 인식합니다.

 


 그들이 극성맞은 이유지요. 모든 언론은 문재인의 적이자 국민의 적으로 기득권. 그러므로 국민인 자신들이 나서서 70% 국민의 지지를 받는 문재인을 지켜야 한다. 라는 게 그들의 달나라 세계관입니다. 저 바다건너 미국의 트럼프 지지자들도 이 면에선 똑같이 생각하고요.




 저 달나라 세계관의 에멘탈 치즈보다 더 심각한 구멍들은 일단 넘어가고, 저 세계관을 적용할 경우 생기는 문제부터 이야기해보지요. 가장 큰 문제는 저 세계관 인지에서 나오는 결론이 민주와는 거리가 멀고 독재에 가까울 수밖에 없다는 데 있습니다. 실제 현실에 훨씬 가까운 다원주의 모델에서, 이 사회 구성원들 - 다른 표현으로 대한민국 국민들 - 은 각기 입장에 따라 서로 다른 이해관계와 이권, 양보 가능한 것과 지켜야 하는 것, 요구사항 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관계에서 비슷한 입장인 사람들을 묶어서 집단화할 수 있고, 그걸 조정하는 것이 다원주의의 요지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문빠들이 추종하는 대중주의는 이런 다원성을 무시하고, ‘기득권 적폐 및 그에 오염된 천것들달님 편인 진짜 국민으로 이분화합니다. 그리고 강하고 사악한적폐 기득권 연합의 타파를 위해 진짜 국민진짜 문재인 지지자가 되어 문재인에게 힘을 실어줘서 적폐청산을 하고 꿈과 사랑이 가득한 파란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식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사고방식은 여러 표현이 있습니다. 철인정치론, 수호자주의, 파시즘, 또는 (좌파) 포퓰리즘 독재. 본질적으로 포퓰리즘은 독재가 아닌 다른 모델을 만들 수가 없습니다. 포퓰리즘 모델에서 진짜 국민은 일관된 공동의 의지를 지니고, 올바른 대표자를 강력히 지지하는 것 외에 이상적인 데모크라시가 가능한 방식이 없거든요. 그들은 시민의 대의체인 의회보다는 대표자에 대한 추종자들의 직접지지를 바람직하다고 여기고, 그것을 직접민주주의로 포장합니다.



 

 한편으로 실제 이 정권의 독재 이후 온갖 다원적 집단과 정권이 충돌했습니다. 정권이 독단적으로 워낙 말도 안 되는 짓을 계속 벌이니까요. 그러나 하나하나의 다원적 집단들은 열광적인 대중을 등에 업은 정치권력을 이길 수 없습니다. 이 과정은 매우 파괴적인데, 포퓰리즘 정책으로 인한 직접적인 손해도 크지만 다원적 집단과 엘리트, 학계 하나하나를 부정하는 과정에서 사회 전반에 대한 불신이 확대되고 더 나아가 민주정체 그 자체에 대한 불신까지 커지는 게 현재의 모습입니다.

 

 현재의 이 상황은 너무나도 위험하기 때문에 빠른 브레이크가 필요합니다만, 언제 잡힐지는 미지수입니다. 한국의 약한 정당구조는, 특히 근래 들어 더 약해진 정당들은 포퓰리즘 감염에 매우 취약한 토대나 다름없습니다. 정당의 약화는 90년대 이후 세계 선진국 전반에 나타나는 현상인데, 한국은 본래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정당이 약했기 때문에 더 심하게 포퓰리즘을 앓고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한편으로 포퓰리즘은 진짜또는 더 나은민주정인 척 위장하지만 사실 - 위에 쭉 설명했듯, 엄밀한 의미에선 - 민주정이 아닙니다. 민주정을 자의적으로 재정의하고 독재에 어울리는 형태로 변질시키려는 현상, 즉 이 시대 민주정의 주적에 더 가깝습니다. 이 점에선 과거에 파시즘이나 민주집중제 공산주의가 그랬던 것과 별 다를 게 없습니다. (정치사적으로 보면 포퓰리즘은 파시즘과 유사한, 사회주의가 변질된 한 형태에 가깝기도 합니다.) 다만 현대의 포퓰리즘은 과거의 유사품들과는 달리 대의민주정의 껍질은 더 세련되게 잘 살려놓는 경향이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업그레이드 버전입니다.

 

 또한 포퓰리즘을 상대하는 건 본질적으로 매우 어려운데, 실제 포퓰리즘에 대한 매카시스틱한 접근은 포퓰리즘이 명줄을 이어나가는 데 의도하지 않은 도움이 됩니다. 많은 선진국가들의 기성정당들이 포퓰리즘 세력을 적대하는 와중에 포퓰리즘이 성장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현 자유한국당 세력이 친노, 친문 세력을 대하는 태도와 방식 등에서 친노친문 세력은 무한한 생명력을 얻었고 끈질기게 살아남아 이 사단에 이른 것입니다. 포퓰리즘은 안티-다원주의이기 때문에, 안티-다원주의인 매카시즘으로 포퓰리즘을 제거할 수 없습니다. 매카시즘은 특히 좌파 포퓰리즘의 주장에 그럴싸한 근거를 제공합니다. 포퓰리스트를 상대하는 올바른 방법은 포퓰리스트의 입을 틀어막는 게 아니고, 포퓰리스트를 상대로 끊임없이 공개토론장에서 이기는 것, 그리고 포퓰리스트에게 도덕성에서 밀려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듯 포퓰리스트를 상대하는 건 어렵기 때문에, 세계 선진국 전반이 포퓰리즘에 위기를 겪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의 위기를 올바르게 극복하지 못한다면, 문재인 정권이 무너지더라도 포퓰리즘의 핑퐁게임이 정권만 바꿔가며 계속될 우려도 있습니다. 가까운 미래, 우익에 트럼프 같은 인물 등장해서 친문세력의 후예와 정권 주고받는 싸움을 하는 시나리오를 상상하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일단 급한 문제는 문재인의 실정과 독재이지만, 그 못지않게 우리가 제대로 바라봐야 할 문제는 다원주의와 자유주의, 민주정체 그 자체의 붕괴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