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적으로 나는 지난 얼마 전 있었던 민주노총 주도 대규모 시위의 내용에 대해 동의하지 않으며, 그렇게 목적이 불분명하고 시민과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는 시위는 아무 효용도 없고 소모적이라 생각합니다. 시위란 목적과 범위를 분명히 해야 하며, 군중심리의 문제 때문에 어느 정도 통제되는 게 좋습니다. 민중총궐기라 명명되었던 지난 시위의 요구안을 정리한 것을 첨부합니다.




 

 실제 특정한 이해관계에 얽힌 농성장이 아닌 거리 시위 현장에 가보면 처음부터 무력 충돌이 일어나는 경우는 없습니다. 경찰은 폴리스 라인을 형성하고 그들이 (일방적으로) 이해하는 룰에 의해 시위를 평화적으로정리하려 시도합니다. 경찰 입장에서는 할 말 하고 빨리 해산하는 시위가 가장 좋은 시위입니다. 필요 이상의 충돌이 일어나는 이유는, 대체로 시위대가 경찰의 통제를 따르지 않고 폴리스 라인을 넘기 때문입니다. 무력 충돌이 나게 되는 일차적인 원인은 거의 시위대에게 있습니다. 이는 사건의 경위를 설명하려는 의도고, 도덕적 판단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이 경우 당연하게도 경찰은 진압에 들어가게 됩니다. 경찰이 시위를 진압하지 못하면, 사실 시위는 제법 높은 확률로 폭동으로 변하고 주변을 무법천지로 만듭니다. 사람은 집단으로 행동하면서 어떤 규범의 선을 넘어버리면 꽤 쉽게 광폭해집니다. 우리는 본래 집단으로 몇 시간을 달리며 창을 던지고 횃불로 사냥감을 위협해 절벽으로 밀어 떨어뜨리는 종족이었으니까요.

 

 그러니까 나는 시위는 어지간하면 평화적인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합법적으로 하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한국 집시법과 경찰이 해석하는 법률 및 조례는 사실 말이 안 되는 면이 좀 있습니다. 그런 이상한 법률과 해석에 시민이 꼭 협조해줘야 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렇더라도 현실적으로는 타협이 필요합니다. 보통 폭력이 빚어지는 이유는 시위대가 타협할 생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청와대로 돌진하자는 식의 시위는 당연히 무력 진압되게 됩니다.

 

 그렇지만 많은 경우에 더더욱 문제가 되는 건 경찰의 진압태도입니다. 이번 시위 현장에서 경찰은 물대포를 지침에 어긋나게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구조하는 구급차에까지 물대포를 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의료행위를 공격하는 건 전시에도 전쟁범죄에 해당합니다. 법을 수호해야 하는 경찰이 법을 짓뭉개버렸다는 겁니다. 나는 이런 행위를 저지르는 경찰을 정당한 법의 수호자로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태에도 경찰에 대한 옹호만을 반복하는 뻔뻔한 새누리당 의원들은 비인도적이며 개념이 없다는 비난을 받아 마땅할 것입니다.

 

 다만 정권을 교체한다고 이런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라는 건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잘 모르거나 역사왜곡하는 사람이 많은데, 노무현 때의 시위진압은 지금보다 더하게 폭력적이었습니다. 노무현 때는 경찰이 아예 농민들을 때려죽이고, 그에 대한 보상도 제대로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불사하며 농성을 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더 나아가 평택 대추리에는 경찰이 아닌 군부대를 투입하는, 민주정권 아래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전무후무한 사건을 벌이기도 했었습니다. 근래 웹툰과 드라마로 인기를 끌고 있는 송곳과 영화 카트의 시대적 배경도 노무현 때입니다. 차벽이니 컨테이너 성이니 이런 것도 다 노무현 때가 원조입니다. 박근혜 정권도 불통이고 폭력적이긴 합니다만, 그 정도가 노무현 정권 정도는 아니라는 게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즉 본 문제로 인해 현 정권을 비판하는 것은 합당하지만, 그렇기에 새민련으로 정권교체를 하자는 건 설득력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적어도 친노세력과 그 지지자들은 강경한 시위진압을 비판할 자격이 전혀 없습니다. 노무현은 자신이 과거에 했던 말을 스스로 철저하게 배신한 변절자였습니다.

 

 한편으로 시위란 본질적으로 정치 지도자에게 압력을 가하는 방식입니다. 시위가 만약 다수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면, 시위는 독재 권력자까지도 위태롭게 할 수 있습니다. 동의는 억압보다 강한 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위가 시민의 지지를 얻으려면 중대한 사안을 다루되, 명료하고 평화적이며 정의로울 필요가 있습니다. 적어도 근 몇 년 동안의 시위는 더 많은 시민들의 마음을 얻을 수 없었지요. 좋은 시위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여담을 조금 이야기하자면, 이명박과 박근혜 시대를 지나면서 소위 사회적이며 진보적인 의제가 정치적으로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느껴집니다. 개인적 체감으로는 항상 거대담론과 정치적 증오심을 앞세운 투쟁이 첨예화되면서, 보다 실질적인 진보적 의제들은 뒷전이 되고 있고 정부 또한 그런 걸 중점적 화제로 다룰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습니. 설령 정책적으로 문제를 개선하고 있더라도 말입니다.

 

 나는 이런 시대분위기가 좋다고 생각할 수 없지만, 그에 대한 정치적 개선방향이 단순한 정권교체일수는 없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보다 뜨겁고 매력적인 변화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