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상에는 평균 연령대 탓인지 상징조작 탓인지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만, 노무현은 김대중 정권 당시 결코 수면 밑 후보가 아니었습니다.
노무현은 1997년 11월, 국민회의에 입당하고 바로 부총재직에 오릅니다. 사실 그 이전 노무현은 통합민주당에 남아 김대중의 정계복귀를 강도 높게 비판하고, 부산시장과 종로구 의원에 도전하였지만 낙선하였습니다. 그리고 1996년에는 국민통합추진회의라는 것을 만들어 97년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선언까지 했었으나, 내부의 반발로 무산된 후 결국 국민회의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 시기에 노무현은 이미 명망 있는 정치인이었습니다. 실제 1999년 10월 차기대선후보 여론조사에서 노무현은 이인제, 이회창의 뒤를 이어 3위의 지지도를 가진 후보였습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노무현은 대략 현 시점 기준 적어도 김무성, 김문수 정도 비중은 있는 후보였다는 것이지요. 그가 대통령이 된 건 그리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었고, 굳이 특별하게 의미를 부여할 만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정권교체를 한 것도 아니고, 이미 대선 3년 전에 지지율 3위를 달리던 여당 내 네임드 후보이자 부총재직을 맡은 인물이었으니까요.
그는 이름 없는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대통령이 될 만한 후보 중 한 명이었고, 결국 대통령이 되었을 뿐입니다. 그가 대통령이 된 게 딱히 기적적이거나 이례적인 일은 아니었다는 겁니다.
본문을 작성하는 이유는 노무현의 대통령 당선을 기적적이거나 이례적인 일로 포장하고, 그 상징조작을 통해 노무현을 신격화하는 언행들에 대응하기 위함입니다. 신화란 대체로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노무현은 기적을 보여준 적이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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