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다 고이치의 말에 동의한다.

경제 2014. 2. 27. 23:33 Posted by 해양장미

 "변동환율제에선 나라마다 통화정책을 자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 엔화가 너무 저평가되고 원화 가치가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올라가는 게 염려된다면 한국도 양적완화 정책을 펴서 맞받아칠 수 있지 않겠느냐"


 아베노믹스의 설계자이자 현 일본은행 총재의 스승격[각주:1]인 하마다 고이치의 말이다.[각주:2]


 내가 박근혜정부에 대해 별 말을 안 하고 있던 것은 결코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속된 말로 정치권이 병림픽[각주:3]을 하는 와중에 - 특히 백번 천번 뭐라 해도 모자랄 그놈의 경제민주화 때문에 - 그나마 ‘나랑 의견은 다르지만 이런저런 사정 고려했을 때 그럭저럭 그런가보다 할 수 있는 정도’는 되기 때문에 별 말을 안 한 거다. 그렇지만 여왕폐하께서 나름 정치를 잘 하다 보니 지지율이 굳건해서, 굳이 편을 들어주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이제 할 말은 조금씩 해야겠다.


 제일 마음에 안 드는 것부터 하나 이야기하고 시작하자. 도대체 왜 그리 소심하게 경제정책 펴시는지 모르겠다. 좀 화끈하게 땡겨봐도 되는 상황이 아니신가. 적어도 여왕폐하 아버님이라면 이렇게 하진 않았을 거다.


 박근혜정부의 경제정책이 나름대로 건전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 영 체감 상 실효적인 게 별로 없는 건 여러 이유가 있지만 아베노믹스가 한 몫을 단단히 하고 있다. 어쨌든 한국은 제조업 국가고, 일본과 경쟁해야 하는 입장인데 동남쪽 열도국 총리대신 아베가 엔화 찍는 윤전기를 돌려 대서 - 이 말이 진짜로 현금을 위조지폐마냥 막 찍어댄다는 건 아니다. - 엔화가치를 폭락시키니 일제 수출품들 가격이 급락하고, 그에 경쟁 상품 만드는 한국의 제조업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럼 대한민국의 국가 지도자라면 어째야 할까. 저 쪽이 저러면 우리도 같이 하면 된다. 그런데 아직 한국 기준금리는 2.5%다. 저쪽은 제로금리에 양적완화까지 하는데 말이다. 물론 우리는 저 쪽 보다는 엄청난 여유가 있지만, 혹시 박근혜정부, 아베노믹스가 그냥 실패할 거라 보는 건가? 아닌가 혹시 물가안정을 위해 환율을 건드리기 싫은 걸까?


 박근혜정부의 아이덴티티는 사실 어디쯤에 있는지 파악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예를 들어서, 박근혜정부는 기업과 주주간의 관계에서 오너의 권리를 어느 정도 보장해준다는 면에서 덜 신자유주의적이다. 작년의 신속한 추경편성도 마음에 들었고, 창업과 기업의 성장을 돕는 각종 정책도 높게 평가한다. 그런데 거시정책에서 너무 소심한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한국은 변동환율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고, 내가 생각하기엔 아직 이율도 다른 선진국에 비해 높다. 양적완화는 너무 실험적인 방식이라 쳐도 기준금리를 더 낮춰서 대응할 수 있지 않은가. 저성장이 이어지고 있는데, 재정 정책과 통화량에 대해 너무 보수주의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려한다. 물론 어쩌더라도 아예 경제 개념이 없는 족속들보다야 낫겠지만, 국민들 인내심도 생각 좀 하셔야하지 않는가.


 여왕폐하 아버님께서는 그리 소심하지 않으셨다. 아무리 잃을 게 많아졌다고는 해도, 한국의 상황이 상대적으로 괜찮다고는 해도 지금은 다들 위험을 감수하는 시대다.


 경제에 대한 이해가 다소 부족하신 분들에겐 지금까지 적은 이야기들이 좀 뜬금없이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내가 한 이야기는 ‘우리 신자유주의적으로 가지 맙시다.’와 거의 유사한 이야기다. 덤으로 이야기하자면 ‘일본의 실패를 보고 배우자’ 같은 이야기도 된다.


 아베노믹스는 양적완화지만 일종의 환율전쟁이기도 하다. 아베노믹스는 엔화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난 첨에 아베가 저럴 때 미국이 일본을 말릴 줄 알았다. 그런데 안 그러더라. 이미 외교적인 고려까지 있었다는 뜻이다. 근래 일본이 노골적으로 보이는 군사주의 우경화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일본은 단합이 필요하고, 전쟁이라도 불사할 기세다.


 그런데 우리는 일본이 저러는데 뭘 하고 있는 걸까. 그들이 가진 절박함이나 패기를 그냥 무시해도 되는 걸까? 대한민국은 위에 말했듯 양적완화까지 할 필요도 없다. 기준금리가 2.5%나 되기 때문에, 이것만 한 1.5% 수준으로 낮춰도 원화가치를 절하시킬 수 있다. 근래 한국 기준금리 인하 논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닌데, 나는 정부가 너무 금리를 높게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부의 우려는 높은 가계부채로 인한 리스크 관리에 있다고 본다. 그런데 한국의 가계부채는 자산대비 그다지 높지 않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같은 파생상품으로 과도한 자산대비 부채비율을 가졌던 미국 등과 비교하면 꽤 안전하다. 게다가 우리는 어느 정도 마음대로 금리를 조절할 수 있다. 또한 가계부채는 경기가 살아나야 줄어드는 것이다.


 이미 지난 1월에 기준금리가 인하될 거라는 전망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기준금리는 아직도 유지 중이다. 나는 이게 한은의 과도한 상황 낙관과, 그 예측이 빗나간 현실에서 그것을 바로 인정할 수 없는 관습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 본다. 한은이 독립적으로 보이려는 것도 그 이유에 속할 것이다.


 사실 이런 모습도 신자유주의와 관료제의 폐단이다. 솔직히 누가 미래를 얼마나 예측할 수 있나. 미래예측이 그리 잘 되면 공무원 때려치우고 전업 투자자로 나서도 그로스나 소로스 못지않게 돈 잘 벌 수 있을 텐데. 그리고 한은 독립시키자는 말은 제발 그만 좀 하자. 관치금융 해야 한다.


 국제 금융시장에게 부정적 시그널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니까 우린 너무 고금리를 유지해왔다는 거다. 지금이라도 빨리 얼른 내리고, 다른 선진국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해야 한다. 더는 밍기적거릴 때가 아닌 것 같다.


 솔직히 DTI며 LTV며 다 강하게 유지하고 있는 한국이다. 기준금리 좀 내린다고 큰 리스크를 질 상황이 아니라는 거다. 무식한 야당 정치인들 무서워서 이런 식으로 하고 있는 건 아니리라 믿는다.


 한국은행의 발언을 보면 현재의 금리도 경기부양에 적합한 금리라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대통령의 뜻과 한국은행의 의지가 현재 동일한지 개인적으로 의문이다. 여왕폐하께 한 마디 더 남기자면, 이런 상황에서 아버님이라면 어떻게 했을 지를 생각 좀 해보셨으면 한다.




  1. 혹시 잘 모르실 분들을 위해 말하자면, 하마다 고이치는 자신의 제자격인 일본은행 총재를 비판하던 입장이다. [본문으로]
  2. 기사 참조 http://media.daum.net/issue/415/newsview?issueId=415&newsid=20140220151809687 [본문으로]
  3. 난 이 단어를 좋아하지도 않고 가볍게 쓰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근래의 한국 정치권을 형용할 때 이보다 더 어울리는 표현은 없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