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시민 파시스트들의 특성과 위험성

정치 2014. 2. 17. 12:29 Posted by 해양장미

 한국에서 깨시민 - 광신 노빠 - 은 가장 정치적으로 위험한 집단이다.


 그들은 대세후보를 잠재우고 자신들의 대선후보를 내세울 정도의 정치적 힘이 있고, 굉장히 광신적인데다 본인들을 선이라고 믿는, 제법 철저한 파시스트다. 그들의 파시즘은 몇 줄로 요약할 수 있는데,


1) 우리는 선이고, 너네는 악이다

2) 우리가 하면 착한 FTA, 착한 신자유주의, 착한 조문. 니네가 하면 나쁜 FTA, 나쁜 신자유주의, 나쁜 조문.

3) 우리가 이기면 위대한 국민, 국민의 승리. 우리가 지면 국민이 멍멍이 새끼. 또는 부정선거.

4) 우리는 옳다. 그러므로 국민의 선택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를 선택하면 옳은 선택. 저쪽을 선택하면 틀린 선택. 민주주의 따위 중요하지 않음. 그렇지만 우리야말로 민주주의의 화신.

5) 우리를 비판하면 일베충. 바로 사상검증 들어감. 이명박, 박근혜 욕해보라고 시킴.

 

 이런 사람들이 변호인 천만 관객 동원하고, 멀쩡하고 착한 척을 하니 위험 그 자체. 이들의 사고구조는 철저한 파시스트에 가까우며, 지극히 반민주주의적이다. 민주주의는 근본적으로 국민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들은 자신들이 평범한 국민보다 더 ‘깨어있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며 자신들과 다른 사고방식을 인정하지 못한다.


 이들이 이렇게까지 저열해진 데는 여러 이유가 있는데, 당연히 처음부터 노무현 정권과 그 지지자들이 이리 망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노무현이 정말 정치를 잘못하면서 차츰 사람들이 떨어져 나갔고, 결국 가장 기회주의적이거나 광신적인 사람들, 또는 너무 순진하거나 매우 느슨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만이 남았던 것이다.


 노무현이 집권하던 시점까지는 모든 과는 노무현의 것이었다. 당시 노무현의 지지율은 어차피 바닥이었고, 결국 노무현이 고건 발목을 잡고 열린우리당은 붕괴하면서 대선은 해 볼 필요도 없는 것이 되었다. 대통령이 한나라당 경선에서 결정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런데 상황반전은 이명박 집권 이후 이루어진다. 어쩌다보니 광우병 촛불시위가 불이 붙었는데, 처음에는 별거 아니었지만 이명박이 대응을 너무 잘못했고 이때가 기회다 싶었던 이명박 반대자들이 다 나오면서 문제가 엄청나게 커졌다.


 아마 당시 상황은 이명박이 한 번이라도 직접 나와서 ‘날 믿어 달라.’고 했거나 재빠르게 나서서 ‘국민의 목소리를 귀담아듣겠다.’ 정도로 이야기했다면 금방 별거 아니게 끝났을 것이다. 그런데 당시 정부가 했던 거의 모든 행동은 오히려 문제를 키우는 방향이었고, 이후 리먼사태까지 겹치면서 이명박 정부는 바로 난항을 겪게 된다.


 이명박은 그리 확고한 지지층을 가진 대통령이 아니었기에 문제는 심각했다. 광신적인 노무현 지지자들이 이명박 반대 분위기를 몰고 갔고, 실제 이명박 정권 또한 부족한 면이 많았기에 사태는 크게 악화되었다. 이후 이명박 정권은 노무현의 비리를 수사하지만, 노무현이 자살하게 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닫는다.


 사실 노무현 집권 이후의 대북특검이라거나 이인제에 대한 수사, 현대를 향한 온갖 공격 등에 비하면 노무현에 대한 비리 수사는 별일도 아니었다. 노무현 본인은 어땠을지 몰라도 - 수사가 중단되어서 아는 사람만 알 것이다. - 권양숙이나 노건평, 이광재 등은 확실히, 또는 거의 확실하게 비리가 있었고 충분히 클린한 정권이라 할 수 없었다.


 노무현 사후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에게 부채의식을 가지게 되는데, 그 부채의식은 대체로 정치에 대해 별 관심이 없던 사람들에게 생겨났다. 그 틈을 파고들어 수많은 사람들이 혹세무민을 시도하면서 지극히 광신적이고, 노무현 정권에 대해서 온갖 환상을 가지고 있는 깨시민들이 양산되게 된다.


 특히 이들의 온라인 커뮤니티 장악은 심각하였다. 이러한 장악은 노무현 집권기부터 시작되었고, 다분히 조직적이었다. 아무리 대형 커뮤니티라도 잘 조직된 수십 명만 있으면 정치적 분위기를 충분히 한 쪽으로 몰고 갈 수 있다. 이들은 노무현 정권 당시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에도 상당한 압력을 넣었고, 노무현 사후 보다 더 극렬하게 활동하였다. 활발한 활동으로 운영진에 올라가 편향적인 커뮤니티 운영으로 확고한 정치 편향성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애초에 ‘깨어있는 시민’이라는 말 자체가 자신들은 깨어있으며, 민주주의는 제대로 피어나보지도 못하고 위기 아래 있으며, 깨어있는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지켜야 하며 타자는 계몽이 필요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물론 이것은 심각한 착각이다. 이미 민주주의는 거의 완성되었다. 혁명도 더 이상 필요하지 않고, 민주주의는 각자의 다른 입장과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겨루는 제도에 가깝다는 걸 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민주주의의 역사와 실제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의 모습들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고, 상상 속의 ‘평등하고 공정한 사회’를 이룩하는 것을 민주주의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좋게 보면 유교식 철인정치론자, 나쁘게 보면 파시스트가 되었으며 그 경향은 나쁜 쪽으로 점점 흘러가고 있다.


 그들은 처음부터 충분한 지성을 갖추지 못했다. 지성을 갖춘 이들은 초기 노사모에는 많았을지 몰라도, 금방 빠져나가 다른 정치세력에 합류되었고, 그 틈을 노려 한 자리 챙기려는 이들이 남아 감성적인 혹세무민을 계속하였기에 ‘깨시민’은 반지성주의적 공감대에서 탄생하였다 봐도 무방하다. 그들의 광신성이나 배타성에도 그럴 만한 기반들이 있다.


 깨시민 의식이 지니는 온갖 문제들은 한국의 문화적 결함과 공교육의 단점에서 출발한다. 그들은 대체로 민족주의적이고, 도덕주의적이고, 계급 갈등이 있다고 생각하며 한국이 공정하지 못한 나라고, 충분히 민족주의적 정의를 채우지 못한 그릇된 역사 위에 서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노무현 정부가 너무나 많은 ‘관용’을 보였기에 실패했다는 잘못된 공감대가 있어서, 타자에 대한 관용이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상당한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대단히 공격적이다. 또한 한국인들이 가진 한의 정서라거나 화병, 질투심, 유교적인 성군에 대한 동경 등도 모두 강하게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이들은 본질적으로 집단주의 및 도덕주의적인 우익이며, 잘 체계화된 사상을 가진 게 아니고 서로 모순된 관점을 복잡하게 가지고 있기에 어떠한 문제 해결책을 만들어내기가 대단히 어렵다. 현실 속에서 이들은 조직적이지도 관용적이지도 못하고 각자도생할 수밖에 없고, 현실적인 문제해결책을 내놓지 못하다보니 점점 더 도덕주의적이 되어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친노 그룹이 결코 도덕적으로 완벽한 것은 아니기에, 깨시민들의 지지성향은 점점 더 광신적이 되어가기 쉽다. 그들의 도덕주의에 대한 이야기는 지난 포스트, ‘도덕적인 깨시민들의 반민주성에 대하여 (링크)’ 에서 다룬 적이 있으니 참고하길 바란다. 


 대체로 깨시민들은 정치철학이나 경제학, 그리고 한국 근현대사 등에 대해 지식이 심각하게 부족하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고등학교 수준에서 많은 것들이 머물러있고, 그 이후에 지식을 습득하려는 노력을 안 하는 건 아니지만 그들의 이너서클 내에서만 떠도는 지식을 습득하는 경우가 많아 그릇된 지식체계를 형성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이따금 그들에게 보다 나은 지식을 전달하려는 이들이 있지만, 그들의 오만과 배타성은 타자를 밀어내고 낙인찍고 사상검증하기에 바쁜 게 현실이다. 워낙에 감정적이고, 자신이 가진 지식과 가치관을 의심해보는 태도가 없다 보니 확증편향이 상당히 강하기도 하다.


 이들은 전혀 도덕적이지 않지만 도덕주의적이고, 역사에 대해 잘 모르지만 본인들이 올바른 역사의식을 함양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굉장히 멀지만 자신들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수호자라 생각한다. 그리고 착한 사람, 개념인으로 자신을 포장하고 본인 스스로도 그렇게 믿기에 수많은 사람들을 혹세무민하고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타자를 공존의 대상이 아닌 퇴치의 대상이라 여긴다. 또한 결코 자신들이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은지, 그것을 위해 어떤 방안을 선택해야 할지, 그 과정에서 나올 수 있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애초에 그런 수준이 못 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민주주의는 아주 좋은 제도라서, 이들은 현실 속에서 좀처럼 승리를 거두지 못한다. 깨시민들의 심각한 배타성과 공격성, 그리고 후안무치함과 무식함은 그들이 왜 정치적 성공을 거둘 수 없는지를 잘 보여준다. 소통을 들먹거리면서 언제나 최악의 불통을 보이는 게 그들이기도 하다.


 이제 이들의 전성기도 거의 다 지나가고 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실체를 깨닫고 있고, 트위터도 예전 같지는 않다. 안철수가 새로운 대안 세력으로 떠오르고 있으며, 그의 우유부단함이나 정치적 미숙함은 다 감안하더라도 일단 그는 네거티브를 일삼거나 배타적이지는 않다. 이젠 증오와 적대의 정치도 어느 정도 접을 때가 되었다. 조율과 타협이 없다면, 그것은 올바른 민주주의가 아니다.


 괴물이 되어버린 깨시민이지만, 그들은 결국 ‘이상적인 군주를 뽑아, 더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고 싶은’ 사람들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민주주의를 이해하지 못하기에 민주주의의 적이 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이 복잡한 사회에서 철학자 왕은 있지도 않고, 설령 있다 해도 일반 국민들이 그것을 고를 수 있는 능력은 없을 뿐더러 정말 잘나고 착한 사람은 굳이 정치를 하지 않는다.


 깨시민들의 의식은 본질적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우려와 적대로 점철되어있다. 그들은 시민들이 올바른 대통령을 선택할 수 없다고 믿기에, 보다 ‘깨어있는’ 자신들이 지도자를 골라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전제는 애초에 망상일 수밖에 없고, 무의식중에 저렇게 생각할지언정 본인들 스스로도 저렇게까지 문제를 의식화하지는 않기에 그들은 타자에 대한 온갖 저주와 증오만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극단적 파시스트가 되는 것이다. 특히 깨시민의 파시즘은 노무현에 대한 신격화 및 무조건적인 그리움과 애정을 동반하기에 더더욱 위험하다. 고인이 된 정치인을 신격화시키고 지속적으로 미화하는 건 지극히 반민주주적인 행위임을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