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경제에 관한 논의를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참 안타까울 때가 많다.


 역시나 일반적으로 가장 큰 문제는 뭐가 신자유주의고 뭐가 케인즈주의고 뭐가 사회주의인지 잘 모른다는 데 있는데, 케인즈주의는 거의 언급도 안 되니 일단 뒤로 접어둔다 쳐도 자칭 진보라는, 달님을 외치는 깨시민들이 걸핏하면 신자유주의적인 주장을 하는 걸 보면 참 기가 막히곤 한다.


 예를 들어서 현 한국 경제 상황에서.


 대체로 케인즈주의자라면 기준금리가 9개월째 유지인데 경기가 살아나는 양상이 지지부진하고 원화가 너무 강세니 금리 좀 내리고 하우스푸어를 위한 지원 프로그램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할 건데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밖에까지 잘 안 퍼지는 안습한 현실 앞에 있고,


 대체로 신자유주의자라면 새로운 일자리 등을 위해 의료 영리법인 세울 수 있게 규제 풀고, 경제민주화를 위해 기존 순환출자구조도 해소하고 주주의 권한을 늘려야 한다고 지금까지 해왔듯 착한 척을 앞세워 주장할 것이고,


 대체로 사회주의자라면 보편적 복지를 얼른 하라고 주장하는 동시에 뭘 몰라서 경제민주화 움직임에 동참할 것이고,


 대체로 제도주의자라면 바이오, 항공, 에너지 등의 신산업 육성을 위해 국가적 지원과 정책이 더 강하게 있어야 할 것이라 주장할 것이고 + 추가로 실제 보면 사회주의자와 함께 복지론 주장 중


 대체로 깨시민이라면 다 됐고 부정선거! 박근혜 아웃! 안철수 양보해라! 등을 외칠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좌우파로 저 사람들을 구분하자면 좀 복잡해지는데...


 우선 사회주의자는 좌파로 확실하게 구분되긴 하는데 나머지는 아니다.


 케인즈주의자나 제도주의자는 어이없게도 수꼴 취급을 받기 일쑤고, 신자유주의자가 자칭타칭 진보로 불리는 것은 일상다반사고 소위 우파정당으로 분류되는 새누리당 내에서도 저런 온갖 소리들이 짬뽕 및 잡탕 되어서 내부갈등을 일으키는 게 현실.


 어쩌다 상황이 이리 되어가지고 사람들이 좌우파 구분도 하기 힘든 나라가 되었는지를 보자면 역시나 당연히 복잡한데, 시작부터 이야기하자면 아주 먼 과거로 올라가야 한다.


 일단 일제가 끝난 시점에서 한반도 남쪽, 그러니까 대한민국이 될 지역에서 공산주의자가 모두 제거되었다는 건 모두들 알 것이다.


 이승만 시절 한국의 정당은 이승만의 자유당과 아직까지 생존 중인 민주당이 있었다. 그런데 자유당이 민주당보다 좀 더 진보적이었다. 그리고 이승만이 물러난 이후 자유당은 부서져 버렸고, 민주당이 실질적으로 유일한 정당이 되었었다.


 많은 사람들의 오해와는 달리, 민주당은 딱히 진보주의적인 색채를 가진 적이 없었다. 다만 민주당의 역사를 보면 워낙에 많은 이합집산을 거듭했고 그 과정에서 운동권 세력이 참여하곤 하여 군사정권 시절 어감으로 ‘좌파’ 소리를 들어왔던 것이다.


 박정희가 쿠테타 이후 선거를 통해 대통령이 되는 과정에서 민주당의 보수주의적 색채는 선거에서 지는 요인이 되었다. 흔한 오해와는 달리 당시에 시민들은 박정희를 선택했고, 박정희가 서민의 편이었다.


 비록 박정희가 권위주의적이긴 했으나 서민에게 더 많은 이익을 가져다주고 삶을 안정되게 했다. 또한 유신 이전의 박정희는 선거로 당선된, 민주 체제 아래에서의 대통령이었다. 쉽게 말해 당시 구도는 박정희와 민주공화당의 제도주의적 진보 대 윤보선이나 김영삼, 김대중 등 민주당 계열의 자유주의 우파 구도였다고 할 수 있다.


 이후 박정희의 통치방식은 엄청난 경제적 성공을 가져왔다. 심지어 결국 정치적으로 실패한 유신체제조차 경제적으로는 기적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대조적으로 당시 김대중 등이 박정희의 방식에 반대하며 주장하던 소위 ‘대중경제론’이 있는데, 안타깝게도 그 내용을 보면 박정희가 오래 집권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단점이 많았다.


 박정희의 방식은 정부가 산업 육성을 돕고 금융을 제한하며 무역을 장려하는 방식이었다. 정부가 나서서 산업을 육성하고 강력한 보호무역을 통해 경제를 성장시키는 방식을 흔히 제도주의라 한다. 이 방식으로 박정희는 집권 내내 엄청난 투자를 하고, 무역 국가로 발돋움시켜 한국을 20세기에 가장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룬 국가로 만들었다.


 그런데 윤보선이나 박현채, 김대중이 주장하던 방식 - 대중경제론 - 은 이것과 반대의 방식으로, 수많은 국가들이 채택했다 실패한 방식이었다. 이 방식대로 하면 중앙은행은 강력하지 않아 금융통제가 안 되고, 산업이 제도주의처럼 발달하지도 못하며 무역 국가로 발돋움할 수도 없다.


 지금은 각종 방안들을 여러 국가들이 실험해본 끝에 뭐가 좋은지 증명이 되어있지만, 그 때는 그렇지 않았다. 박정희는 정말 가기 힘든 노선을 택했고, 엄청난 성과를 만들어냈다. 그러고 나서 그 열매를 제대로 보기도 전에 죽었지만.


 박정희 사후 박정희의 투자가 이루어낸 결과물들과 공산권의 몰락 등을 보면서 기존에 박정희의 정책에 반대하던 사람들도 의견을 달리하게 되었다. 김대중마저 90년대 들어선 기존의 대중경제론을 버리고 다른 입장을 취하게 된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도 김대중의 경제에 대한 이해는 다소 부족했던 면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가 좀 더 경제를 잘 이해했다면 IMF로 인한 타격을 더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IMF를 유발한 건 전적으로 김영삼 책임이다. 다만 김대중은 IMF와 좀 더 치열하게 싸워 피해를 줄일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어차피 멍청한 김영삼한텐 아무 기대도 안 한다. 그런데 김대중은 그래도 똑똑하니까. 똑똑한 사람은 똑똑한 사람의 몫이 있는 건데, 그 몫을 다하지 못했다는 거다.


 비극적인 문제는 민주정권의 태도 및 이해에 있었다. 박정희식 제도주의는 엄청난 발전을 만드는 동시에 필연적인 부작용을 낳는다. 정부의 혜택을 받는 쪽이 집중적으로 성장하다보니 덜 공평하고, 게다가 박정희는 권위주의적인 독재 통치를 했기에 자유에 대한 사회의 갈망도 컸기 때문이다.


 사실 자유에 대한 문제는 문화적인 면에서 두드러졌고, 지금도 충분히 해소되지 않았다. 유교식ㆍ군대식 권위주의 및 압축 근대화 과정 속에서 해소되지 못한 고간섭 문화는 아직도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그런데 민주화 이후 위의 문제들은 충분히 해결되지 못한 반면, 경제 체제는 제도주의에서 신자유주의로 급속도로 흘렀다. 특히 민주화에 누구보다 앞장섰던 김영삼부터 세계화니 선진화니 뭐니 하면서 대책 없는 신자유주의 판을 벌이다 나라를 말아먹었다.


 분배나 기타 등등의 이야기는 사실 김대중 때까지만 해도 잘 나오지 않았다. 김영삼과 김대중은 지역주의를 앞세웠고, 이념에 있어 그리 큰 차이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나마 김대중은 IT산업을 육성하는 등 제도주의적인 방안을 선택했지만 김영삼과 이후의 노무현은 아니었다.


 소위 좌우파 갈등이 빚어지기 시작하던 시점은 노무현 때부터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모두들 알다시피 노무현이 ‘좌측 깜빡이를 키고 우회전’을 해버리면서 모든 게 심각하게 꼬여버렸다. 대략 이때부터 노빠들은 제도주의와 케인즈주의 등을 ‘보수, 수꼴’등으로 낙인찍고 노무현의 신자유주의정책을 무한 실드치는 반지성주의적 궤변을 일삼게 된다. 물론 신자유주의가 본격적으로 욕먹기 시작한 이후에 깨시민들은 ‘노무현의 신자유주의는 시대적 흐름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같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무한반복하고 있고. 그런 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행위고 혹세무민이다.


 이야기가 꼬여버린 데는 이명박도 일조를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말로는 신자유주의의 화신처럼 등장을 해서는, 막상 정치는 딱히 신자유주의적으로 안 했다. 이러니 사람들의 경제적 좌우에 대한 착각이 더 심해진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근래의 경제민주화 논의는 아주 이런 혼동에 화룡정점을 찍어버렸다. 신자유주의자들이 경제민주화 타이틀을 걸고, 우린 착한 진보 ^^ 놀이를 해서 적잖은 사람들을 아스트랄하게 만들고,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을 혹세무민해 버렸다. 도무지 이게 언제쯤 어떻게 교통정리가 될지는 미지수다. 전문정보와 대중정보 사이를 이어줘야 할 기자라거나 시민 사회 등은 소양이 지극히 부족하고, 정치적 의도를 가진 뻘소리들만 해대면서 혼란을 가중시켜버렸다. 여기에 보편적 복지론이니, 선별적 복지론이니 하는 복지론이 앞서는 상황이 되다 보니 혼란은 더 심해졌다. 현실적으로 민중들은 뭐가 자기 자신에게 득이 될지를 감으로 대략 맞춰야 하는 입장이다.


 양당제에서 시민들이 명료하게 정치적 선택을 할 수 있으려면, 신자유주의 & 작은 정부 정당과 케인즈주의 & 제도주의 정당이 대립하는 게 편하다. 그런데 한국에선 제도주의를 박정희가 선점해버렸고, 그것이 극단적인 보수주의적 이미지로 자리 잡혀 있기에 이러한 이념적 균열이 일어나는 게 지극히 어렵다. 현재 박근혜정부는 적당한 제도주의와 적당한 케인즈주의, 그리고 적당한 신자유주의 사이에서 적당한 균형을 잡고 있다는 느낌인데 참 그것도 능력이라는 감상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 확 좀 땡겨 줬으면 좋겠다. (새누리)당내 신자유주의자들은 좀 치우고.


 여담인데 근래의 신자유주의는 ... 실제 경제학에선 그리 투철하고 극단적인 관념 속 신자유주의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게 이미지 그대로의 신자유주의는 이미지로나 존재할 뿐, 그게 학술적으로 맞는 말이 아니라는 건 이미 어느 정도 검증된 거고 이게 신자유주의만 이런 것도 아니고, 실제론 학자마다 서로 좀 다른 입장이긴 하지만 절충하고 더 나은 방향을 찾아가면서 이론을 만들고 현상을 살펴보고 그러는 게 현실인데, 굳이 보자면 학계에선 더 완성도 높은 수학적 무언가를 만들려고 하다 보니 무리수를 두는 경우가 꽤 있었고 그걸 막상 현실에 적용했을 때 패망한 사례도 많고 ... 오히려 리얼 ‘신자유주의’는 경제학계 외부에서 더 많은 것 같다. ‘학술적으로 맞는 말’이 아니고 ‘지들 돈 벌려고 하는 말’ 또는 ‘지들 권력 잡으려고 하는 말’을 하게 되면 사람은 완전히 이야기를 다르게 하는 법이다. 물론 저런 말들 중에는 도무지 신자유주의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이 하는 말들도 제법 많이 섞여 있으니 사람들이 더 혼동하기 쉬운 건 어쩔 수 없다.


 이념적 균열이 명료하지 못하고, 서민들이 자신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정치적 선택을 하기 어렵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상황이 아니다. 서민들은 삶의 개선을 위해 보다 케인즈주의적이거나 보다 제도주의적인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주의는 현실적인 대안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의 민주당이나 근래의 안철수 신당 모두 케인즈주의나 제도주의적인 대안을 보여준다고 하기 어렵다. 실제 케인즈주의적인 것은 학계와 관료이며, 제도주의적인 방안을 구상하는 쪽도 새누리당 내에 있다. 새누리당은 꽤나 광범위한 이념을 포괄하고 있는 정당인데, 소위 깨시민이나 진보좌파들은 이에 대한 이해가 없기에 선거에서 이기기 어렵다.


 서민들, 특히 나이가 좀 있는 서민들은 어떤 정책과 제도가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는지 어렴풋이나마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들을 향해 무식하다고 비난하고 국개론을 설파하는 깨시민들이야말로 실제로는 경제에 대한 이해가 없고 무식한 경우가 많다. 실제 깨시민들 많은 곳에서 자료와 근거를 제시하며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하는 경우, 돌아오는 건 비아냥과 매도 또는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거짓말인 경우가 99%이상이다.


 다만 새누리당이 서민들의 입장을 잘 대변해줄 수 있는 정당이 되긴 현실적으로 어렵다. 너무 많은 이념을 포괄하는 정당이 되어 있고, 당 내부에서 파워게임이 이루어지는 경우 누가 이길지는 명백하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한국 정치 현실에선 대통령의 정치 감각과 결단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대통령 주변의 이너서클이 제 역할을 못할 경우 정치 실패가 일어나기도 쉽지 않나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