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Half)자발적 정보통제

정치 2013. 11. 24. 17:38 Posted by 해양장미

 얼마 전 살짝 간만에 연락이 닿은 친구와 정치 이야기를 조금 했다. 나보다는 좀 더 감정적이고 야권 지지 성향이 강한 친구인데, 전기 요금 인상안에 큰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말해주었다. 이번엔 가정용 전기요금은 조금 오르고, 산업용 전기요금이 많이 오른다고. 덤으로 누진체계 변화가 취소되었다는 이야기도 했고. 디테일하게 이야기하자면 주택용 전기요금은 2.7%, 농사용 3.0%, 가로등/심야전력 5.7%, 대형건물 5.8%, 산업용은 가장 많이 올라서 6.4% 오르게 된다.


 역시나 그 친구는 이런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고 했다. 당연한 일이다. 일부러 찾아보지 않는 한, 그 친구가 접하는 미디어나 주변 사람들의 성향을 볼 때 그런 사실은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참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과거 조중동의 여론조작을 염려하던 사람들이 이젠 더 심한 여론조작 전문가들이 되어버렸다. 시대가 변해서 이젠 신문을 챙겨 보는 젊은 사람들은 많지 않다. 심지어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세대조차 종이 신문을 읽는 빈도는 줄어들었다.


 스마트폰은 공짜로 나눠주던 무가지까지 대폭 없애버렸다. 사람들은 이제 자신이 들어가는 커뮤니티와 SNS등에서 많은 시사정보를 얻는다. 소위 조중동의 영향력은 대폭 축소되었고, 사람들이 각자 입맛에 맞는 미디어를 선택하게 된 지도 오래 되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친노ㆍ깨시민 세력이 광범위한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를 거의 장악하다시피 했다는 데 있다. 물론 일베같은 반대 케이스도 있지만, 일베 등은 상식을 가진 누가 봐도 문제가 되는 커뮤니티이기에 그 폐해는 오히려 덜할지도 모른다. 진짜 문제는 겉으로 보기에 별 문제 없어 보이는 커뮤니티들이 가진 정치적 편향성이 과도하다는 데 있다.


 소위 깨시민이라 불리는 노무현교도들은 거의 모든 커뮤니티에 퍼져 있다. 이들의 방식은 정말 단순한데, 철저하게 자신들이 지지하는 친노세력을 정의로운 세력이라 떠받들면서 방해가 되는 세력은 가차 없이 매도하고, 친노세력에 대한 비판을 하는 자들을 무조건적으로 ‘알바’, ‘일베충’, ‘국정원 직원’등으로 낙인찍는 것이다.


 과거 군사정권의 빨갱이 낙인찍기를 벤치마킹한 듯한 이 전술은 굉장히 강력하여서, 노무현 사후 어지간한 커뮤니티들은 이들에게 거의 접수 당했다. 대체로 이들은 상세하고 논리적인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고, 상대를 부정하다 매도하고 낙인찍으며 분노의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인다. 시사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일수록 이 분노의 공감대에 휩쓸리기 쉽다. 심지어 그들은 같이 분노하지 않는 사람을 곧잘 악으로 매도하기까지 한다.


 사실 광신적인 노무현교도의 수는 매우 적다. 과거 국민참여당의 당세는 진보신당(현 정의당)만도 못했다. 그렇지만 그 소수가 만들어내는 여론은 엄청나다. 그들은 먼 과거로 돌아가면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든 적도 있고, 근래엔 친노세력이 민주당을 하이재킹할 수 있게 만들었고, 더 나아가 손학규와 안철수를 밀어내고 문재인을 대선후보로 만들었다.


 물론 그들도 분명한 한계는 있다. 매번 선거에서 패하는 걸 보면 그 정도가 그들의 한계다. 과거 김대중과 노무현을 지지했던 사람들이 박근혜로 돌아선 건 노무현 정부에게 큰 실망을 했고, 그것이 개선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만들어내는 진영논리와 증오감, 광신, 그리고 정부 실패는 선거 결과를 떠나 우리 모두에게 너무 큰 피해로 다가오고 있다.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이 좋다. 그들의 말을 듣고 있다 보면 세상은 모든 게 잘못되었고, 한국은 사람이 살 만한 나라가 아니며 부정한 자들이 권력을 잡은, 태어나서는 안 되었던 나라에 불과해진다. 마음속에 분노를 품게 만들고, 인생을 불행하게 만드는 게 그들의 방식이다. 거기에 휘말려 포교를 당해버리면 그들과 함께 이 사악한 현세를 구원해줄 재림 메시아를 기다리게 된다.

 

 그들을 자신의 편이라 생각하고, 그렇지 않은 쪽에 증오심과 적대감을 품게 된다면 모든 사태를 바로 바라볼 수 없다. 나에 대한 직접적인 피해가 아니라면, 증오심과 적대감을 내려놓는 게 우선이다. 모든 상황을 원점에서 다시 짚어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다면 진실과의 거리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더 이상 정부는 옛날처럼 정보를 검열할 수 없지만, 많은 시민들은 진영논리에 갇혀 맹신과 적대감으로 스스로 정보통제를 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