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가 가야할 길

정치 2013. 8. 19. 13:44 Posted by 해양장미


 안철수는 파악하기 어려운 사람이다. 모호함 자체가 어쩌면 그가 가진 전략이기 때문이다. 한국처럼 가연성이 큰 사회, 그러니까 작은 갈등의 불씨로도 잘 폭발하는 사회에서는 모호함 자체가 주는 이익이 크긴 하다. 다만 모호함 속에서도 불빛은 있어야 시민들이 그 불빛을 따라 모여든다.


 이 면에서 볼 때 내 생각에 안철수는 아직까지 자신의 생각을 대변해줄 이념 체계를 찾지 못했거나, 충분히 구축하지 못한 것 같다. 태생적으로 너무 늦은 나이에 정치에 관심을 가진 게 아닌가 싶은데, 그를 이용하려는 사람은 많으니 그가 빠른 성숙을 이루어내야만 한다. 그러나 애초에 쉬운 일은 아니다.


 그의 대선 이후 근래까지의 행보는 ‘나쁘지는 않았다.’ 의원 자리도 얻었고, 이번 시위에 휘말리지도 않으면서 조용하게 이미지 소모를 최소화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최장집과 갈라선 건 대단히 좋지 않은 일이다. 둘은 애초에 꽤 큰 이념 차이가 있었는데, 결국 그 갭을 메울 수 없었나보다.


 안철수가 아껴오던 이미지가 최장집의 이탈로 인해 어느 정도는 나쁜 식으로 규정되었다. 알 수 없었다는 건 좋은 식으로 결론이 날 수도 있었다는 건데, 결과적으로는 포용력이 나쁘다는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 다만 다행인 것은 대중들은 최장집의 이탈에 별 관심이 없고, 심지어 최장집이 누군지도 잘 모른다는 것이다. 민주 정치란 정치에 가장 무관심한 대중을 잡는 일이어야 한다.


 다만 근래 새누리당이 보여주는 정치력이 워낙 강력하기 때문에, 아직까지 모호함으로 보호받고 있는 안철수가 거기에 대항할 무언가를 가질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새누리당이나 박근혜가 보여주는 워딩의 일관성이나 각종 논제 설정 등을 보면 민주당하고는 정치 실력 자체가 하늘과 땅도 넘어 우주와 심해 차이쯤 된다. 실제로 민주당은 노무현 탄핵정국 이후 자기 실력으로 승리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2010년의 승리는 MB가 인기를 잃었고, 보편적 무상급식 이슈에 이상할 정도로 불이 붙은데다가 때마침 DJ이후 민주당 역사상 유일하게 친노가 아닌 손학규가 리드한 선거가 되어 이긴 것이었다. 오히려 근래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이 보여주는 정치력을 보면, ‘사실 DJ의 정치력을 계승한 자는 박근혜’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무능한 진보좌파들은 박근혜가 왜 선거의 여왕인지 전혀 모르고, 시민들이 멍청해서 박정희만 그리워해서 그런다고 생각하니 절대 이길 수가 없다.


 안철수는 민주당의 백태클을 피하면서 새누리당이라는 키퍼를 상대로 골을 넣어야 하는 축구 선수에 비교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사실 안철수에게 그런 실력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 안철수가 이기려면


1) 민주당에 들어가서 친노를 물리치고 동교동계를 복권시키면서 새로운 민주당을 탄생시키던지

2) 쭉 이미지 소모를 최소화하는 가운데 박근혜의 레임덕을 기다리면서 차기 새누리당 주자를 견제하던지 - 박근혜는 이명박 재임 기간 동안 이미지 소모를 최소화하였다. -

3) 내가 잘 모르는, 숨겨왔던 정치적 천재성이 있어서 그걸 보여주던지


 해야 한다.


 사실 안철수가 가진 유일한 장점은 인지도다. 그 누구도 현재 차기 대통령이 될 것 같은 인지도가 없다. 5년 전의 박근혜와 같은 입지와 실력을 지닌 정치인이 없다는 것이다. 이럴 때는 누구라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아직도 차기 대통령 지지율 1위는 안철수이다.


 안철수는 그럴싸한 워딩을 만들어야한다. 그리고 이따금 툭툭, 일관성이 강하게 던지면서 민주당의 실수를 이용해야한다. 어차피 민주당은 자기 스스로 무언가 할 수 있는 정당이 아니다.


 그가 성공하려면 먼저 현재의 민주당을 밟고 올라서야한다. 이것 자체는 그가 잘 이해하는 것 같다. 문재인을 타산지석으로 삼는 것도 좋다. 그가 근래 보여주는 트위터 정치는, 한 정치인으로서 가질 수 있는 최악의 태도다. 그의 모습은 전쟁에 패해 쫓긴 한 군주가 자신을 추종하는 이들 사이에 둘러앉아, 그 좁은 세계에서만 - 현실에서는 트위터 깨시민들 - 열변을 토하고 만족감을 얻고 호응을 얻는 것과 같다. 지금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그를 잡지 않는 이유는, 그와 깨시민들의 어리석은 언행이 그들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안철수는 어쨌든 그러지는 않으니 새누리당 안에서만 차기 대통령을 골라야 하는 불상사는 안 생길 것 같아 천만다행이다.


 그리고 그의 이념 자체를 선명하게 만들어야한다. 그는 ‘이념’ 자체에 대해 거부감을 가진 것 같지만, 사실 그가 하고 있는 생각 또한 하나의 이념이다. 다만 그에게 그런 걸 이야기해줄 사람은 없을 거고, 그는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을 거다. 그의 곁에 현명한 조언자가 없을 거라 생각하니 안타깝기도 하지만, 자신의 생각이 옳다면 그것을 선명하고 쉽게, 반복해서 전달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언어가 시민들과 적의 머릿속에 틀어박힌다면, 그 정치인은 정말 강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이걸 가장 잘 하는 정치인이 박근혜 대통령이다. 그런데 대통령은 살면서 딱 한 번 패했다. 그 패배가 어째서 일어났는지를 안철수가 이해할 수 있다면, 차기 대통령은 그의 것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안철수 본인이 박근혜를 꺾을 수도 있었던 또 다른 인물이었다. 그러나 박근혜는 성공적으로, 힘을 크게 들이지 않고 안철수를 꺾는 데 성공했다. 그녀는 두 번 패하지 않았다.


 또 이미지 문제도 있다. 현재의 안철수는 너무 도도하고, 그래서 친근하지는 못한 반면 또 카리스마는 모자라 보인다. 여기에 포용력이 모자라다는 인상까지 생겨났다. 이미지가 상당히 나쁘게 흘러가고 있다. 이걸 극복하려면 이미지를 새로 만들어나가야 한다. 시간은 있지만, 처음 나왔을 때의 신선함은 이제 사라졌다. 10월에 어떤 모습을 보일지가 어느 정도는 관건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