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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편에 깜빡하고 말하지 않고 넘어간 게 있는데, 우고 차베스는 윤리적 기준에서 보면 나쁜 사람이 맞다. 내 말은 그와 같은 사람도 세계의 균형을 위해서는 하나쯤 있는 것도 괜찮다는 거였다. 그럼 본격적인 이야기로 들어가서,


 현대 산업ㆍ정보 사회는 화석 연료로 만들어졌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화석 연료 없이 우리는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수준의 물질문명을 결코 누릴 수 없다. 특히 석유는 석탄보다 정치적으로 더 중요하다. 석탄은 석유에 비해서 덜 자본집약적이고, 권리가 분산되어있는 편이다. 그러나 석유는 그렇지 않고, 활용도는 석탄보다 높다.[각주:1]


 한편으로 흔히 한국을 석유 산업과는 관련 없는 나라라 생각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한국은 나름대로의 석유ㆍ화학 산업 강국이다. 한국의 3대 산업은 IT와 중화학공업, 그리고 석유다. 한국의 전체 수출비중 중 석유가 차지하는 비율이 그리 낮지 않다. 의외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정말 그렇다. 한국은 유전을 소유하지 못한 나라이지만, 대신 원유 가공 기술과 설비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한국은 원유를 수입해서 그것을 분리ㆍ가공한 후 수출해서 돈을 번다. 이 때문에 흔한 통념과는 달리 한국 정유회사들은 유가가 오르는 게 유가가 떨어지는 것보다 경영에 유리하다. 유가 하락 시 주유소의 기름 값이 빠르게 떨어지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가 이것이다. 또한 한국은 해양시추에 필요한 드릴쉽을 건조하는 (실질적인) 세계 유일의 국가다.[각주:2]


 21세기 초의 석유 가격 상승은 다양한 효과를 일으켰다. 높은 가격에서 유가가 안정되었고, 가격 상승의 요인 중 하나로 석유의 매장량 문제가 주목받게 되었다.[각주:3] 또한 지구온난화 문제도 점점 심각하게 인식되게 되었기 때문에, 세계는 대안 에너지를 찾아 나서는 움직임이 가속화되었다. 그 중 현재까지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은 천연 가스다. 그러나 아직 한국에선 천연가스 위주의 에너지 재편은 일어나고 있지 않다.


 상편에서부터 설명한 세계정세와 근래의 추세를 놓고 볼 때, 한국의 에너지 정책 및 시스템 특성을 정리해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1) 지리적ㆍ정치적으로 화석연료 수입에 높은 코스트가 든다.

2) 석유ㆍ화학 산업이 발달했지만, 유전에 대한 소유권이나 채굴에 관한 산업에서는 경쟁력이 없다.

3) 전기 가격, 특히 산업용 전기 가격이 매우 저렴하다.

4) 전력 생산에 있어 원자력 비중이 높고, 많은 문제가 있음에도 원자력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5) 신재생에너지의 경우, 기술 경쟁력은 있지만 정부 보조가 들어가는 국가와 비교해 볼 때 신재생에너지 기업의 경쟁력이 모자라다. 사람들의 관심도 모자라다.

6)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의 한국식 아파트 주거형태는, 필연적인 전기 냉난방 수요를 가져온다.


 이 문제들을 핵심적으로 정리하자면, 에너지 문제에서 한국은 항상 불안정한 위치에 있으면서도 그것을 장기적으로 해결할 만한 방안을 만드는 데는 실패해왔다고 할 수 있다. 이에는 애초에 불리한 조건, 정권교체로 인한 기존 정책의 대규모 수정, 근시안적이고 부실한 주택 건설, 지구온난화 등이 주된 원인이 되어 왔다.


 우선 한국은 중동의 주된 산유국에서 거리가 너무 멀다. 이는 높은 에너지 코스트를 불가피하게 한다. 자원의 수급이라는 면에서 기본적으로 입지조건이 나쁘다. 게다가 북조선 때문에 육로가 막혀 있어서, 도로나 철도를 통한 에너지 운송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천연가스를 직접 끌어올 수 있는 가스관 연결도 불가능하다. 만약 북조선과의 군사적 문제가 해결된다면, 한국의 에너지 수급은 훨씬 나아질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무조건 선박으로 원유나 석탄, 천연가스를 실어 와야 한다. 그런데 또 동아시아는 여름은 너무 덥고, 겨울은 너무 추워서 전기냉난방 수요를 높게 한다.


 한국은 이 난점을 극복하기 위해 석유화학 산업을 발달시키고, 원자력 기술을 익혔다. 또한 수력 발전도 적잖게 하는 편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특히 한국의 원자력 발전은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원자력 발전은 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원자력 발전의 사고율과 그로 인한 피해를 볼 때, 원자력을 인간이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오만인 것 같다. 실제 원전에서 작은 사고는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고, 후쿠시마나 체르노빌처럼 돌이킬 수 없는 사고도 약 20년 주기로 일어난다. 게다가 한국은 분쟁위험성이 현실적으로 있는 나라다. 과연 전시에, 또는 테러 위험에서 원전을 지킬 수 있을까? 나는 회의적이다.


 더구나 원전에는 저농축우라늄이 들어가야 하는데, 한국은 우라늄 농축을 못한다. 군사적 독립성을 가진 국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한국 정부는 우라늄 농축 기술을 발전시키고, 그 권한을 얻어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미합중국은 한반도 비핵화를 핑계로 반대하고 있다. 즉 한국은 이미 농축되어있는 우라늄을 구입해야만 하는 나라다. 같이 원자력 발전을 해도 미합중국이나 프랑스, 일본 등에 비해 가격 면에서 효율이 떨어지는 것이다. 다가올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이를 논의하려고 한다지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각주:4]


 또한 현재 한국에 있는 적잖은 원자력 발전소가 설계수명을 이미 다했거나, 다해가고 있는 상황임에도 운행을 계속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원자력 기술을 가지고 있는 전문가는 기본적으로 중립적일 수가 없다. 한국에서 원자력 발전을 계속 해야만 괜찮은 일자리가 나오기 때문이다. 에너지 관리 입장에서도 막대한 전기를 생산하는 원전이 몇 개 정지해버리는 건 큰일이다. 지난겨울 에너지 수급난이 있었던 것 또한 원전 문제가 직접적인 원인이다. 원전이 동시에 몇 개가 문제가 일어나 작동을 멈췄던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것을 어떻게든 고쳐서 계속 쓸 생각이다. 그밖에 ‘원전은 안전하다’고 광고를 하는 데도 꽤 돈이 들어가고 있기도 하다.


 왜 미리 제대로 대비를 안했냐고 불만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전력 수급에는 복잡한 문제가 많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도 발전소를 안 지은 것은 아니다. 4대강 사업은 분명 수상한 사업이긴 하지만, 그 과정에서 수력 발전소를 16개나 짓긴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전력은 현재 불안할 정도로 모자라다.


 근본적으로 전기냉난방이 증가한 게 에너지 사용증가의 큰 원인이긴 하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어딜 가나 에어컨이 있지는 않았고 난방에도 전기를 덜 썼다. 20년 전에는 아예 에어컨은 잘 안 썼고, 난방도 장작, 석탄, 기름, 가스 등을 직접 때는 곳이 많았다.


 박근혜 대통령과 지식경제부는 (일단 급한 대로) 석탄 발전소 12기와 가스 발전소 6기를 짓겠다는 계획을 지난 2월에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 또한 제동이 걸렸다. 석탄 발전은 환경오염이 심하기 때문에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환경부에서 나온 것이다.[각주:5] 이에 대한 뾰족한 대책이 대통령에게 있을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결국 산업용 전기세의 가파른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산업용 전기세는 그 동안 인상을 미뤄오는 가운데 분명 너무 저렴하게 공급되고 있기는 하다. 실제 생산비보다 싸게 공급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한국 산업의 경쟁력에 크게 일조하고 있긴 하다. 다만 이젠 모두가 산업용 전기 코스트를 공동 부담하는 게 버겁다.


 그리고 당장은 어쨌든 가스 발전소를 늘려서 전력수급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본다. 가스 발전은 석탄 발전에 비해 분명히 비싸지만, 온실 가스를 훨씬 덜 배출한다. 또한 향후 북조선과의 군사적 긴장이 해소되고, 세계의 주된 천연 자원이 가스로 변화할 것을 감안하면 미리 가스 발전에 투자하는 게 바람직할 거라 본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더 근본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계속)


  1. 기술적으로는 석탄을 석유화시키는 게 가능하다. 그러나 현 시점에선 그 과정은 금전적인 이익이 없다. [본문으로]
  2. 처음부터 드릴쉽을 한국에서만 건조한 건 아니다. 그러나 드릴쉽은 고도의 핵심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드릴쉽을 건조할 수 있는 국가는 그리 많지가 않다. 이런 드릴쉽은 군용함과 호화 여객선을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값비싼 함선으로, 척당 가격이 비싼 경우 1조원에 이른다. 다만 한국은 드릴쉽을 건조하는 국가임에도 드릴쉽에 들어가는 각종 핵심 기술과 브랜드는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드릴쉽 건조로 인한 이익을 다 가져가지는 못하고 있다. [본문으로]
  3. 실제로는 석유가격상승에 잔여 매장량의 팩트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심리와 투기자본이 주된 이유였다. 단, 심리에서는 지구상의 총 석유잔여량 위기설이 한 몫 하긴 했다. [본문으로]
  4. 참조 링크. http://www.segye.com/Articles/News/Politics/Article.asp?aid=20130313005110&subctg1=&subctg2=&OutUrl=naver [본문으로]
  5. 참조 링크. http://www.cnews.co.kr/uhtml/read.jsp?idxno=201302271643448430888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