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타계했다.


 그는 사담 후세인과 함께 팍스 아메리카나에 대항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는 지도자였고, 세계적인 독재자 중 한 명으로 평가가 교차하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가 좀 더 잘하길 바라는 편이었고, 나름대로 그가 하는 행동이 세계에 어느 정도는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보고 있었다.


 차베스가 반미세력의 핵심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석유였다. 베네수엘라는 사우디 이상의 풍부한 매장량을 가진 산유국인데, 차베스는 석유 자원을 국유화시키고 카리브 해의 17개 국가에 2005년부터 국제 유가의 절반 가격으로 석유를 공급해오고 있었다. 차베스의 계획은 대략 유로존과 같은 중ㆍ남아메리카의 연대를 구성하여 미합중국의 패권에 대항할 수 있는 세력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정치인으로는 젊은 나이에 암으로 사망했다. 세계는 팍스 아메리카나에 대한 강력한 도전자 하나를 또 잃었다.


 개인적으로는 팍스 아메리카나에 의한 질서를 어느 정도 이상 좋게 생각한다. 그러나 팍스 아메리카나는 정말 나쁜 짓을 많이 해 왔다. 다만 내가 그들을 그나마 좋게 생각하는 건, 그래도 소비에트나 나치에 비하면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도 경쟁자가 필요하다. 소비에트 주도의 공산권이 사라진 이상, 어쨌든 경쟁자가 있어야 질서가 무너지지 않는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차베스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향후 베네수엘라의 석유와 정치가 국제 정세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는 모를 일이다. 한편으로 그는 사회주의자들의 아이콘이기도 했다.[각주:1]


 중요한 건 21세기 이후 천연 자원이 세계의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판세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다는 데 있다. 개인적으로는 그 시작은 닷컴버블붕괴와 엔론사태였다고 본다. 이 중 엔론사태는 세계 경제사에 길이 남을 대형 사건이었다.


 엔론은 미합중국의 7대 대기업이었다. 갑작스레 파산하기 전 종업원 수만 해도 2만 2천명에 이르렀다. 포춘지는 1996년부터 파산을 맞이하는 2001년까지 엔론을 ‘미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꼽았다. 이 엔론은 미국 최대의 에너지 회사였다.


 문제는 엔론이 실제 재정 상태가 엉망임에도 불구, 회계를 조작하여 건실한 기업으로 위장하고 있었다는 데 있었다. 그리고 엔론은 광케이블 사업에 과다한 투자를 해놓은 상태였다. 문제는 2000년에 닷컴버블 붕괴가 있었다는 데 있다.


 90년대엔 정보통신 분야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다. 문제는 이것이 주식시장에서 과도한 버블을 만들어냈다는 데 있다. 이 위험을 피해갔던 투자자는 그리 많지 않다. 워런 버핏이 큰 명성을 쌓게 된 건 이 닷컴버블과 이후의 엔론사태에서 위험을 회피하고, 합리적인 리스크를 감수함으로 인해 막대한 돈을 벌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닷컴버블붕괴는 미합중국의 경제적 상황 자체를 아주 나쁘게 만들었다. 엔론사태 이후 엔론과 비슷하게 많은 기업들이 무너졌다. 회계조작이 있었던 것이다.


 이후 경기부양을 위해 금리가 내려갔다.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IT와 주식시장은 신뢰를 잃었다. 또한 회계부정 사태로 인하여 기업 상장 절차가 강화되었다.[각주:2] 그에 각종 파생상품과 금융업이 주목받게 되고, 자본은 주식시장이 아닌 원유와 귀금속, 그리고 부동산으로 흘러들어갔다. 이 시기의 유가, 금, 그리고 부동산 폭등은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아직도 선명할 것이다.


 자본이 기술과 혁신에 몰리는 게 아니라 원자재와 부동산에 몰린다는 건 기본적으로 불운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역사는 끊임없이 반복된다. 시장은 심리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이 시기가 많은 국가들에게 기회가 되었다는 것이다. 기술과 좋은 시스템을 가진 국가보다 자원을 가진 국가가 더 빠른 성장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브릭스로 불리는 국가 중 브라질과 러시아의 성장은 원자재의 가격상승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그 밖에 자본의 유동성이 높아지면서 세계 경제가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그 시기는 한국 기준에서는 노무현 정부의 임기와 거의 일치하였다. 발전한 IT기술은 IT자체의 성장보다는 유동성의 증가에 활용되었다. 이젠 누구라도 쉽게 외국에 투자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인 축구에 오일머니가 등장하게 된 것도 이 시기다.


(계속)



  1. 가끔 차베스는 좋게 평가하면서 박정희는 나쁘게 평가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건 좀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은 한다. 내국인 입장에서는 차베스나 박정희나. [본문으로]
  2. 한국도 이 점에서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미합중국의 경우 엔론 이후 한동안 이런 규제를 가했지만, 2012년에 다시 규제를 완화하여 소기업에 대한 금융 혜택을 제공했다. 상대적으로 각종 리스크와 버블을 두려워하여 규제를 강화해놓은 한국 방식은, 강력한 신생 기업이 생기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고 있다 할 수 있다. 주식시장과 실질적인 기업 투자에 관한 이야기는 언젠가 따로 할 생각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