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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2.25 좀처럼 집에서 일하지 않고 있는 대한민국 남성들 이야기 18

 스스로를 마초라 부르는, 그러나 진실은 찐따에 좀 더 가까운 이 시대의 다수 남성들은 그들의 ‘평균적으로 박약한’ 지적 수준 때문에 남자는 원래 가사노동을 안 하는 거라고 믿으며 - 그러나 종종 마지못해 하며 - 숨을 쉬고 있다. 그러나 남자들이 집안일을 안 하게 된 것은 지극히 최근의 일이었다.


 ‘사랑방’이라는 단어는 다들 알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는 이 단어가 정확히 뭘 뜻하는지 잘 모른다. 전통한옥의 구조를 보면, 사랑방은 안방보다 대문 쪽에 가까이 있는 일종의 손님 접대용 방으로, 남성이 사용하였다. 대조적으로 안방은 여성의 공간이었고 부엌과 접해 있었다.


 조선 문화에서 남성들은 안채의 주인은 아니었지만, 사랑채의 주인은 되었다. 그런 만큼 노비를 충분히 둘 정도의 경제력을 가진 자들이 아니라면, 당연하리만큼 ‘가사노동’을 했다. 이 가사노동은 여성들이 하던 요리, 빨래 등은 아니었지만 보다 중요할 수 있는, 남성적인 노동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건축, 건물 보수, 장작 패기, 장작 마련, 쇠죽 쑤기 등등.


 이런 일들을 옆에서 구경이라도 해 보면 알겠지만, 남성들의 가사노동량은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었다. 옛날엔 어지간한 집은 거의 가장 본인과 일가친척, 이웃 등이 힘을 합쳐 직접 지었고 끊임없는 보수가 필요했다. 예를 들어 초가집은 매년 지붕의 건초를 갈아야 하는데, 그것은 주로 남자들의 일이었다. 또한 진흙으로 쌓은 벽은 시간이 지나면 쉽게 무너지기 때문에, 그 역시 지속적인 보수가 필요하다. 농사에 필요한 소를 키우고 다루는 것도 주로 남자들의 몫이기 때문에[각주:1], 가정에서 남성들의 노동력은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당시 남성들이 가정 내에서 대접을 잘 받았던 건 어느 정도 이상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였다. 또한 당시엔 남자들이 아들들을 교육시켰다. 남자의 일들을 남자에게 배우면서 자랐던 것이다.


 그러던 조선 남자들이 집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잃어버린 건 일제시대와 그들에 의해 시작된 급속한 산업화 때문이었다. 일본은 제국주의 시대의 그 어떤 다른 국가보다도 자신들의 식민지를 체계적으로 근대화시키고자 했다. 당시 일본 내에는 크게 두 가지 세력이 있었는데, 그 중 한 세력은 장기적으로 조선 등의 식민지를 일본 제국의 영토로 만들 계획을 품고 있었다.[각주:2] 일본이 당시 조선인들에게 했던 행동들을 돌아보면 비난할 만한 것들이 꽤 있지만[각주:3], 그들은 그런 여러 가지 어이없는 ‘근대적인’ 행위들을 자국민에게도 했었다. 일례로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일본인이 서양인들에 비해 유전적으로 열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본을 들른 서양인 남자들의 유전자를 최대한 받아 일본인을 유전적으로 개량하려고 들기도 했었다. 이 시대에 그런 행위를 하면 막장국가 소리 듣기 딱 알맞겠지만, 그때의 일본인들은 진지했었다. 그리고 그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조선을 점령한 후 근대화를 시키려 들었으니, 딱히 악의가 크게 없었을지는 몰라도 당하는 쪽에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긴 했다.


 여하튼 산업화 과정에서 일본은 일단 남자들을 집에서 내보냈다. 농경 사회는 급속도로 붕괴하기 시작했고, 남자들은 일터에서 일을 하고 돈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제는 학교를 세워 그 동안 교육의 기회를 제공받지 못하던 여성들을 교육시켰고, 그 여성들은 일제에게 교육받은 방식으로 아들들을 가르쳤다. 나쁘게 말하면 식민지형 찐따들의 최초 생성이었다.


 아버지들이 아들을 교육시키지 못하게 되면서, 남성들의 문화는 급속도로 단절되었다. 조선 시대에 남자들은 상투를 틀고 귀고리를 했고, 집안에 두루미와 매를 키우며 시와 서화와 활쏘기를 즐겼다. 그러나 일제시대 이후엔 윤리적이고도 바람직한 취미들은 거의 사라졌고, 문화적 빈자리를 차지한 것은 대단히 퇴폐적이고 말초적인 유흥 문화였다.[각주:4]


 새로운 식민지 남성들은 바람직한 삶의 모델을 새로 만들어야만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일제가 시작된 지 100년도 더 지난 오늘날에도 평균적인 한국 남성들의 문화는 다분히 불건전하다. 한국은 세계 최고액의 스카치위스키 소비국이다.[각주:5] 그리고 이 위스키는 대부분 룸살롱에서 소비된다. 알려지기론 한국의 GDP의 5%정도가 성매매 또는 유사성매매가 포함된 유흥업에 사용되고 있다. 통계 조사 결과 한국 남성의 성매수율은 50%가 넘는다. 그에 비해 도서구매율은 여성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그렇다 해도 당장 그때부터 남성들이 집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잃은 것은 아니었다. 그때까지도 남자들이 집에서 해야 할 일이 많았다. 그 시기는 오래 이어졌다. 집이 전통가옥인 이상, 남자들은 집안일에서 손을 놓을 수가 없다. 끊임없이 일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박정희 시대에 들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박정희는 노동 시간을 대폭 늘렸고, 남성들을 반영구적으로 가정에서 쫓아냈다. 물론 남성들만 집에서 쫓겨난 것은 아니었지만, 그 때는 기혼 여성의 근로비율이 낮았다. 또 박정희 시대에 시멘트를 사용한, 전문 건설업자들이 지을 수 있는 그런 주택이 보급되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급속한 도시화가 이루어지면서 공동 주택이 보급되었다. 이 새로운 주택들은 남성을 완벽하게 집안일에서 해방시켰다. 난방 방식도 연탄으로 바뀌었다. 이젠 남자들이 집을 짓고, 고치고, 장작을 패고, 쇠죽을 쑬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이 시기는 대략 1970년대 말부터 80년대 초 정도다.


 그리고 1990년대부터는 여성들의 본격적인 사회 진출이 이루어졌다. 그로 인해 남성들은 기존에 여성들이 하던 집안일을 분담할 필요성이 생겼다. 그러나 아직 남자들은 그런 것들에 익숙하지 않다. 이미 그 때로부터 근 2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젊은 남자들조차 여자가 밥상을 차려주지 않으면 식사를 제대로 못 챙기곤 한다. 수많은 젊은 여성들은 자신의 남편을 ‘우리 집 큰애’라고 부른다. 그런 소리를 듣는 남자들은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의 화신처럼 행동하곤 한다. 그들이 원하는 건 ‘내 여자가 된 엄마’쯤 되는 것 같다.[각주:6]


 한국에 널린 아파트들은 집주인이 직접 고치고 보수할 필요도 없고, 하고 싶어도 쉽지 않다.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거나 위험한 경우가 많다. 난방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 장작을 패기는커녕, 연탄을 갈 일조차 없어졌다. 한편으로 가사 도구들의 발전은 어쨌든 집에서 여성이 하던 일을 줄였기 때문에, 여자들은 투덜대면서도 혼자 힘으로도 가사 일을 어느 정도 다 할 수는 있다. 남자들은 굳이 자신까지 나서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곤 한다.


 가사 노동에 있어 아파트 주거가 일반화되지 않은 외국은 남자들 일이 여전히 많다. 그들은 잔디를 깎고, 정원을 가꾸고, 집과 차를 고친다.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의 집에 애정을 가지고, 가족들에게 가정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진다.


 대조적으로 박정희식 산업 모델은 남자들을 거의 완벽하게 집 밖으로 몰아내 버렸다. 그 과정 속에서 야근은 일상화되었고, 남자들은 집안일에 면책 특권을 받았다. 그러나 그 세월은 불과 20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이다. 이젠 시대가 변했지만, 남자들은 여전히 그 면책 특권을 행사하려 한다. 그러나 그것이 잘 통할 리 없다.


 당장은 집안일을 안 하는 게 남성들에게 이득으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대가는 참혹하다. 무엇보다도 자식들이 문제다. 자식들이 보기에,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집에서 아무 것도 안 하고 빈둥거린다. 그들의 어머니가 뼈 빠지게 바깥일을 하고, 집안일까지 해서 식탁까지 차려주는 동안 아버지들은 잔소리나 안 하면 다행인데, 보통은 일은 안 하면서 잔소리까지 한다. 음식이 맛이 없다는 둥, 요즘 너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든다는 둥.


 물론 밖에서 돈을 벌어오는 건 가정을 지켜나가고 화목함을 유지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아내는 그것을 이해할지 몰라도, 자식은 아니다. 자식들은 꽤 나이가 들기까지는 돈의 흐름을 체감 상 잘 이해하지 못한다. 자식들의 눈에 비치는 아버지는 아무 것도 하지 않기에 가정의 진정한 구성원이 아니다.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지만 결국은 그렇게 된다.


 직장에서 괜찮은 사람인데 집에서 폭군이 되는 아버지는 흔하다. 집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세월이 결국 그들이 집에 있는 것을 불편하게 만든다. 그래서 직장에서 은퇴한 남성의 삶은 많은 경우 비참하다. 대체로 그들은 평생 집에 돈을 벌어다 줬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가족들에게는 가족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집 안에 와서는 오직 받기만 하고, 다른 가족들을 불편하게 해왔기 때문이다.


 대화가 안 돼서? 그 이유도 중요하다. 그러나 어머니와 자식들 사이에도 대화가 잘 안 되는 집은 흔하다.[각주:7] 그렇지만 그 갈등 관계는 보통 가족이라는 범주 안에서 이루어질 뿐, 가족으로 못 느끼는 양상으로 치닫지는 않는다. 어쨌든 대부분의 어머니들은 (물론 예외도 있지만) 집안일을 도맡아 하기 때문에, 자식들 입장에서는 갈등의 요소가 있더라도 가족이 아니라고 생각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일단 내가 먹을 식사를 해주고 내가 입을 옷을 빨아주는 사람과는 밀접할 수밖에 없다.


 가정이라는 곳에서 가족과 함께 사는 남자들은 결국 가정에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자신의 역할과 일을 가정 내에서 만들 필요가 있다. 잔소리쟁이나 자기자랑꾼처럼 모두가 싫어하는 위치에 있으면 안 된다. 무엇보다도 자식들에게 무언가 필요한 일을 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것이 좋은 아버지의 조건이다.


 물론 자식들만 문제는 아니다. 황혼이혼율이 괜히 높은 게 아니다. 아내 입장에서도 남편이 밖에서 일을 하는 게 고생스러울 거라 상상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눈으로 직접 보지 않는 한 공감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 게다가 요즘은 여자들도 거의 일을 한다. 같이 일하고 피곤한 상태인데 집에선 남자 쪽만 주로 놀면 여자 눈에 좋아 보일 리가 없다. 처음에야 애정으로 봐 준다 쳐도, 수십 년 그런 세월이 쌓이면 싫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남자도 집안일을 해야 한다는 건 딱히 페미니즘 같은 게 아니다. 남성은 농경 사회 이후 언제나 집에서 일을 해왔다. 다만 아주 짧은 기간,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아주 잠시 남성이 집안에서 몰아내졌을 뿐이다. 그러나 그 혼란기도 이제 끝났다. 남성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집안들을 찾음으로 가정의 일원으로 복귀해야한다. 안타깝지만 가정에서 자신의 일자리가 없는 남자는 결국 돈 벌어오는 기계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다. 스스로 그렇게 보이게끔 행동하기 때문이다.

 


  1. 일소를 다루는 건 다소 위험성이 있는 일이고, 여성에게는 쉽지 않은 면이 있다. [본문으로]
  2. 만일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지 않았다면, 이 계획은 실제로 이루어졌을지도 모른다. [본문으로]
  3. 향후 부패한 군부가 권력을 장악한 일본 제국은 좀 다른 성격의 국가가 되어버려서, 전쟁의 확대와 함께 조선을 처참하게 수탈하게 된다. 그러나 조선을 처음 합병할 당시의 일본은 딱히 꼭 그런 성격의 국가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 결과 2차 대전 이후 다른 서구에게 점령당했던 식민지들보다는 일제에게 지배당했던 식민지들의 경제 성장이 두드러지게 빨랐다. 물론 일본이 서구보다 더 못한 점도 있다. [본문으로]
  4. 정확히 말하면 그 보편성에서는 민주화 이후 시대가 더 심하다. [본문으로]
  5. 소비 양상을 보면 더 나쁘다. 에이지드(숙성년수)가 높은 위스키가 많이 팔리고, 싱글 몰트 시장은 작다. 위스키를 음미하기보다는 원샷을 하고 폭탄주를 만들어 먹기 때문인데, 그 때문에 일부 브랜드의 위스키는 아시아 수출용이 내수용보다 도수가 낮다. [본문으로]
  6. 설명을 하기 위해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개념을 이야기했을 뿐,, 나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가 실제로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본문으로]
  7. 물론 보통 아버지들이 더 심각하다. 평균적인 한국 아저씨들의 화법 자체에 문제가 있다. 대체로 말 자체를 잘 못하는데다 상대의 감정도 잘 못 헤아린다. 전반적인 문화적 결함 탓으로 보고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