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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8.21 두 가지 진보의 길 82
  2. 2014.02.13 한국 경제 이념대립의 특수성 - 제도주의 VS 신자유주의 45

두 가지 진보의 길

경제 2014. 8. 21. 19:25 Posted by 해양장미

 근래 최경환노믹스(초이노믹스)가 따끈합니다. 저는 최경환호의 전반적인 행보를 지켜보고 있는 중이고, 현재까지의 움직임과 반응에 어느 정도 이상 긍정적입니다. 그런데 사실 제 관심은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정책 못지않게 그 비판자들과 반대자들에게도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정책의 성패에 적잖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일단 본문에서는 이러한 주변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최경환노믹스 자체는 사실 제가 그 동안 줄곧 주장해왔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런 움직임은 합리적인 정부라면 당연한 것이고, 가장 큰 불만이라면 너무 늦었다는 정도입니다. 4~5월부터는 저렇게 했었어야죠. 물론 세월호 특별법과 엮어 법안 통과 딜레이를 시킨 야당의 잘못도 큽니다만, 일단 그 이야기는 차후 세월호 특별법을 이야기할 때 논하도록 하겠습니다.

 

 본 이야기를 시작하자면, 당연하게도 최경환의 경제 정책에 대한 반응은 꽤나 대조적인 편입니다. 물론 어떤 경제 정책이건 잡음이 없을 수는 없겠습니다만, 이 정책의 뿌리가 되는 마인드를 살펴보고 이견들의 뿌리도 살펴보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몇 번에 걸쳐 간략하게 이야기했습니다만, 이번에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보자면 대략 경제학파엔 크게 다음 분류 정도가 있습니다.

 

1) 케인즈주의 경제학파

2) 마켓 통화주의 경제학파

3) 마르크시안 경제학파

4) 오스트리아 경제학파

5) 행동주의 경제학파

6) 제도주의 경제학파

 

 이 외 분류방식에 따라 여러 다양한 마이너 경제학이 있지만, 이 정도만 이야기해도 굵직한 분류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분류들에 대해 약간 설명하자면, 1)에서 2)까지가 소위 주류경제학입니다. 2)는 시카고학파, 민물 경제학파, 신자유주의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다만 실제 시카고대학의 경제학은 최근 들어 통화주의 일색을 벗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그에 따라 민물경제학이라는 표현도 더는 딱 들어맞는 표현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편의상 신자유주의라 표현할 때가 많고요.

 

 마르크시안 경제학파는 보다 널리 퍼진 표현으로는 마르크스 경제학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각주:1]. 실제 이 그룹은 경제학이라는 밝은 바운더리 내에서의 영향력은 이제 거의 전무합니다만, 이 세상의 가장 어두운 영역에서는 아직 통하는 구석이 있습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한국 사회의 경제 담론 노이즈 중 많은 부분이 이 어둠에서 기인합니다.

 

 오스트리아 경제학파는 쉽게 이야기하면 하이에크 스타일입니다. 이쪽을 2)하고 혼동하는 분이 꽤 있는데, 그러면 곤란합니다. 오스트리아 학파가 통화주의 학파보다 훨씬 심하게 자유방임스타일입니다. 통화주의는 어느 정도 정부의 간섭을 전제하는데, 오스트리아 학파는 그것조차 쓸데없는 간섭이라는 입장이랄까요. 물론 이들의 존재와 혼동도 한국에서는 좀 경제 담론 노이즈에 영향을 줍니다.

 

 그리고 행동주의 계열은 쉽게 이야기해서 경제학에 심리학을 접목한 것으로, 근래 빠르게 성장 중이며 각광받고 있습니다. 다만 문제는 한국 현실에서 행동경제학은 경영이나 투자 지침 정도로 주로 활용되고 있고, 시민사회 내 거시경제 담론에선 일종의 노이즈에 가까운 영향을 주고 있기도 하다는 데 있겠습니다. 쉽게 예를 들자면 실제 주류 및 행동경제학에 대한 이해는 거의 없는 사람들이 주류경제학을 비판하기 위해 행동경제학을 들이미는 것 같은 것 말이지요.

 

 마지막으로 제도주의는 간략하게 장하준을 예로 들겠습니다. 종종 블로그에서 이 입장을 이야기해왔습니다. 참고로 제가 본 블로그에서 이야기하는 건 주로 케인즈-행동주의-제도주의쪽 입장입니다. 통화주의와는 약간의 거리가 있고, 마르크시안이나 오스트리아 쪽과는 거리가 멀다고 이해하시면 편할 것입니다.

 

 그럼 본래의 문제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한국 경제 담론의 가장 골치 아픈 문제는 소위 진보개혁그룹이 이런 투박한 분류조차 전혀 이해를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통화주의와 오스트리아를 구분 못하는 건 당연하고, 케인즈주의와 오스트리아도 구분을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더 심한 경우는 제도주의와 오스트리아를 세트메뉴로 묶어서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게 극단적인 경우라 생각하실지 모르겠으나 그렇지 않습니다. 소위 진보 언론 수준은 진짜 심각합니다. 더 나아가 진보개혁정당 수준도 알면 알수록 처참합니다. 특히 아주 나쁜 케이스가 마르크시안을 기반으로 거기에 안 맞는 말은 죄다 주류경제학 = 신자유주의라고 생각하는 케이스인데, 의외로 흔합니다. 사실 이런 건 경제에 대한 이해가 거의 전무하니까 나오는 것입니다만, 전반적인 시민 사회의 인식을 크게 왜곡시키고 있지요.

 

 현실을 보자면 경제학에 있어서 온건 보수주의적 입장은 통화주의 쪽입니다. 더 분명하게 강한 보수쪽에 가까운 입장은 오스트리아학파 쪽이라고 할 수 있고요. 케인즈주의는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입장입니다. 케인즈주의는 실질적으로 이 시대의 주류경제학 그 자체나 다름없고, 케인즈주의 내에서도 비주류쪽 계열들이 있으며 주류케인즈주의라고 할 만한 것 내부에서조차 무시 불가한 견해 차이가 또 있다 보니 상당히 다양하게 나눌 수도 있긴 합니다만, 모든 케인즈주의는 통화주의에 비하면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강한 개입을 전제합니다. 소위 수정 자본주의는 많은 경우 1920년대에 등장한 케인즈주의를 뜻하기도 합니다. 사실 통화주의 또한 케인즈주의가 없었다면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고, 오스트리아학파와는 달리 일정 이상 시장에 개입하는 것을 당연히 여깁니다.

 

 또한 행동주의는 매우 진보적이고, 제도주의 또한 다른 의미로 진보적입니다. 이 관점들은 주류경제학을 곧잘 비판하지만 또한 그것을 보완할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저는 이런 보완관계의 관점들을 가능한 한 융합시켜서 이야기하려 합니다. 그러나 마르크시안, 즉 다른 표현으로 맑스경제학은 예외입니다.

 

 역사적인 이유로 한국에서는 넓은 의미로의 마르크시안이 너무 오랜 시간 진보 소리를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마르크시안은 여러 번 이야기해왔듯 경제학취급을 아예 못 받습니다. 현실과는 괴리된 사변적이고도 예언적인 주장이 많고, 근본적으로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부정하기 때문이지요. 어떻게든 현실을 파악하고 개선하려고 하는 게 아니고, 어차피 자본주의는 망할 거라고 생각하고 접근하기 때문에 사실 쓸모가 없습니다. 과학적인 학문이 되려면 이러저러하고 어째서 이럴 확률이 높다.’가 되어야하는데, 마르크시즘은 어쨌든 미래는 이렇게 될 것임.’ 같은 비과학적 예언에 기반을 두는 경향이 짙다 보니 결국 종교가 되는 거지요. 사실 많은 사람들이 종교적이기 때문에, 마르크시안의 말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잡아끄는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체로 근거는 없지요. 별로 맞은 적도 없고. 물론 워낙 자본주의 자체에 대해 비관적이다 보니 경제위기 때마다 기세가 좋아지지만 그것도 잠시뿐입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마르크시안은 아직도 나름대로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운동권과 진보 및 개혁세력의 역사 때문입니다. 9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대학 운동권은 강력했고, 일종의 마르크시즘도 널리 퍼졌습니다. 이 운동권 출신들은 현 정치권에도 상당수가 자리 잡고 있고, 시민단체나 소위 진보쪽 언론에도 적잖은 세력이 있습니다.

 

 이들은 한국에 완성도 높은 민주정이 자리 잡는 데까지 적잖은 공을 세웠습니다. 다만 그 이후 이들에 의해 빚어진 문제는 하나 둘이 아닙니다. 본 블로그에 여러 번 이야기해왔듯 사실 이들은 민주정을 지지하지 않으며, 87체제를 일종의 중간 단계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들의 사상에 전혀 완성도가 없다는 것입니다.

 

 운동권 출신들은 예외 없이 민주화 이후 공산주의 동구권의 몰락을 경험했습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내부 모순 때문에 무너질 거라 예언했습니다만, 실제로 먼저 무너진 건 공산권이었던 것입니다.[각주:2] 또한 민주화로 인해 반공주의가 옅어지고 공산권에 대한 정보 및 각종 마르크스주의가 양성화되면서 이들의 몰락은 가속화됩니다. 군사정권이 못 보게 탄압할 때는 신비스러운 기대감이라도 있었는데, 막상 이론 체계를 보니 거의 망상 수준에 또 인물들의 꼰대성은 박정희 뺨을 후려칠 정도인데다 동구권은 이미 망한 상황이었다는 것입니다. 이후 학생운동권은 민간인을 프락치로 몰아 폭행살인을 저지르는 등 과격시위를 거듭한 끝에 민심을 잃고 사멸합니다.

 

 사상은 무너졌으나 그래도 권력은 남은 이들이 많았습니다. 이들은 3당 합당 이후의 신한국-한나라-새누리당 세력에 네거티브를 일삼으면서 권력을 강화해 나갑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떠한 일관적인 사상도 없고, 젊은 시절 익힌 마르크시안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곤 합니다. 이런 악영향은 후대에 계속 이어졌고, 이후 안티조선운동과 결합하여 광범위한 반지성적 사상 오염정도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을 퍼뜨립니다. 조선일보야 예나 지금이나 문제가 많지만, 그보다 더한 것들이 양산되었죠.

 

 또 문제가 큰 게 운동권 386-486중 운동의 맨 앞에 열정적으로 서지는 않고, 동조는 하되 본인 앞가림을 우선하고는 그 다음에 열성적인 운동권에게 부채의식을 가지게 된 부류입니다. 이들은 대체로 다른 직업을 가지다가 현 야권에 직간접적으로 포섭되었는데, 그 결과 문화권력을 거의 완벽하게 장악하고 사회의 각층에서 편향적인 압력을 행사하는 상황이라 봐도 무방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현명하여 사회가 돌아가는 복잡성에 대한 통찰이 뛰어나고, 계속 지적 수준을 선도적으로 올려나가는 성향이라면 문제가 안 되는 정도를 넘어 좋은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 반대라서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속어로 완전 수꼴에 꼰대죠. 현실의 복잡성에서는 눈을 돌리고, 내가 아는 게 옳다고 믿으니까요. 그들의 의식 기반은 전근대적 사회와 군국주의, 그리고 마르크시즘이고요.

 

 사실 한국 사회는 역동적이고 진보적 의지가 강한 편입니다. 2002년 노무현의 당선은 그 한 예시라 할 수 있습니다. 연구자료들을 보면 당시의 노무현은 60대에게도 표를 많이 받았었어요. 그렇지만 그 결과는 사람들을 크게 실망시켰지요. 노무현 본인부터가 어떻게 국가를 통치해야할지 감을 못 잡았고, 소위 진보개혁그룹 전체가 갈팡질팡하면서 전반적인 통치철학의 부재를 드러냈으니까요.

 

 저는 통칭 진보개혁세력이 그 네이밍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적절한 이름 짓기가 어려워서 그냥 저리 칭하고 있습니다만, 실제로 이 그룹은 전혀 진보적이지 않습니다. 정말 여러 번에 걸쳐 말해왔지만, 저들은 이 사회를 어떤 방향으로 만들어야하고 그 구체적인 이미지는 어떠하며 그것을 위해 무엇을 해야겠다는 개념 자체가 거의 없습니다. 다만 구시대적이고도 막연한 운동의 관성에 의해 진보개혁세력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매사에 상대편에게 반기를 들면서 반사이익을 노릴 뿐이지요. 유토피아적 치기가 앞서거나 사상적 기반이 거의 없는 보수적 도덕주의를 들이미는 게 일상적이고요.

 

 또 처음 말했던 경제문제로 돌아가보면 사실 수많은 진보개혁파 인물들은 경제문제에 초연해하고 싶어 합니다. 돈보다 중요한 게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실질적으로 돈보다 중요한 걸 지키려면 돈(=재화)이 필요합니다. 화폐란 재화의 환산 및 교환단위이며, 기본적인 재화가 없으면 사람은 살 수 없습니다. 삶의 질을 높이는 데는 필연적으로 더 많은 재화가 들어갑니다. 그렇기에 경제문제가 중요한 것입니다. 심지어 재화의 여분이 확보되지 않으면 문화발전도 없습니다.

 

 이 주제는 공산주의적 마인드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공산사회주의는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으니까요. 물론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모든 시도는 다 실패했습니다. 사람 아니라 강아지라도 자기 몫은 지키려 드는 게 본능이니까요. 이 연장선상에서 현실적으로 왜 자본주의를 채택한 서방 국가가 민주정을 꽃피웠는지, 공산주의를 표방한 동구권이 거의 예외 없이 폭압적인 독재 정치가 되었는지도 성찰이 필요합니다. 물론 이 성찰이 심하게 부족한 사람들이 소위 진보개혁그룹에 너무 많습니다. 정치인들만 그런 게 아니고 그 광범위한 지지그룹 전체가요.

 

 이 연장선상에서 이명박 취임 후를 돌아봅시다. 그 땐 거의 전 국민적인 안티MB 운동이 있었습니다. MB의 지지율은 노무현에 버금가게 바닥을 쳤었지요. 그러나 MB는 금방 지지율을 어느 정도 회복했고, MB운동은 단순히 MB를 반대하는 것 이상으로 진화하지 못합니다. 결국 현실적 대안을 제시하고 현실 속에서 그나마 진보적인 움직임을 만들어내고 있는 건 박근혜고요. 소위 진보개혁그룹이라는 사람들은 진보적인 정책에 태클이나 걸고 훈수나 두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그들이 아무 생각도 없었던 건 지난 대선 때 문재인의 형편없는 공약만 봐도 잘 드러납니다. 이번 국회 내내 법안처리 발목만 잡고 있는 것 역시 마찬가지고요.

 

 실제 최경환노믹스에 대한 것만 해도 그들이 얼마나 한심한지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일단 주류진보언론으로 꼽히는 경향신문 기사를 하나 링크해 보지요.

 

‘[사설]최경환 경제팀, 경기 불씨는 지폈다지만 (링크)’  


 이 정도면 솔직히 눈뜨고 못 봐줄 수준의 사설입니다. 일단 위에 말한 경제학파 구분을 전혀 못하다보니, 엉뚱한 말이 마구 튀어나옵니다. 최경환의 정책을 신자유주의라고 무개념 답정너짓을 하는 건 물론이고, - 그의 정책은 통화주의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 정작 본인은 부채형 정책은 당장의 경기부양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오래가지 못한다.’와 같은 리얼 신자유주의자 뺨을 후려칠 것 같은 소리부터 하고 시작하지요. 그 다음에도 참으로 어이가 저 멀리멀리 사라지는 말이 연잇습니다.

 

 심지어 마무리는 일본은 지난 20년간 1000조원이 넘는 돈을 뿌렸지만 성과를 보지 못했다.’라는 식인데, 정말 말 한번 잘했습니다. 일본이 왜 저렇게 돈을 뿌렸지만 성과를 못 봤는데요? 좀 재정정책 펴려고 하면 반대 움직임이 있어서 제대로 경기부양을 못시킨 채 재정확장을 멈추고, 또 그러니까 침체가 이어지고 다시 재정정책 좀 펼치려고 하면 또 누군가 태클 걸어서 멈추고 이러면서 다 합쳐보니 돈은 엄청나게 썼는데 결국 제대로 재정정책 한 번 못 펼쳐보다가 아베 정권 들어서야 좀 작정하고 재정정책 펴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일본이 어떻게 망해갔는지를 보고 배워야 하는데, 그 양상은 전혀 모르면서 무책임한 말만 내뱉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런 무책임함이 어떤 결과를 낳는데요.

 

 그나마 이건 언론 하나라 치고, 그럼 실제 130석 거대 야당 새민련은 어떻게 나오고 있나 봅시다.

 

최경환노믹스, 임금소득 증대 노력 없어아베노믹스보다 열등’” (링크)

 

 전 사실 이 기사를 보고 처음 든 생각이 참 답답하고 답이 없다가 아니고, ‘진짜 양심도 없다였습니다. 아니, 작년에 소득세 증세 막은 게 누군데요. 또 현재의 비정규직 문제도 그 근원책임은 민주당계에 있습니다. 그렇지만 원래 새민련 인간들이 양심이 정말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으니까 일단 넘어가겠습니다. 최경환이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 없는 것도 아니고요.


 그럼 최저임금 문제가 나와서 말인데, 어디 안 올리고 있나요? 이미 엄청나게 올리고 있습니다. 그래봐야 쥐꼬리라고 하실 분 많은 거 알고 저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만, 지금 최저임금 올리는 건 대책 없이 올리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생산성이 안 오르면 임금도 못 오른다는 건 먼 옛날 마르크스도 인정한 거예요. 임금은 생산성이 올라야 오릅니다. 그런데 생산성 오르는 속도보다 최저임금 오르는 속도가 몇 배는 빨라요.

 

 제대로 임금을 올리고 싶으면 결국 생산성을 높여야 하는데, 불경기에선 기업이 돈을 벌기 힘듭니다. 그러니까 경기가 나쁘면 통화 정책뿐 아니라 재정 정책도 펼쳐서 경기를 살려야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이익을 본다는 게 진보적인거시경제에 대한 접근 방식이라는 겁니다. 여기서 어쨌든 불경기는 불경기로 누가 죽건 망하건 놔두자라고 하는 게 극심한 수꼴 또는 경제 모르면서 훈수는 두고 싶은 꼰대의 자세고요. 수꼴 꼰대들은 어디서나 본인이 답 안나오는 꼰대인 걸 잘 모르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규제완화가 가계부채를 확대시켜 중장기적으로 내수위축 심화를 유발한다는 건 참 주옥같은 발언입니다. 일단 유동성 공급이 내수위축을 시킨다는 건 경제학적으로는 킹 오브 수꼴쯤 되는 발언이거든요. 부채가 확대되면 통화가 늘어나는데 이 때 내수가 위축된다는 말은 진짜 통화주의자들도 안합니다. 하도 말이 이상하니 중장기적으로라는 전제를 단 것 같은데, 저건 단순한 비관론 이상은 아닌 게 재정정책이 실패해서 경기가 의도한 만큼 부양되지 않을 때 재정건전성은 나빠지지만 경기는 충분히 좋아지지 않아 내수가 위축될 수 있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저 발언은 중간 과정은 설명할 수 없지만, 어쨌든 정책은 실패하게 될 것임같은 저질 답정너 발언이라는 겁니다. 인터넷 깨시민들도 아니고 국회의원이 나서서 저런 발언을 하니 역시 새민련다운 패기다 싶습니다.

 

 첨언하자면 규제완화는 정부가 그냥 하는 게 아닙니다. 이런 정책은 실제 위험성이 없지 않다 보니 다수의 경제 연구기관들이 연구하고 자료 발표하고 이게 적잖게 축적되고 정치인, 관료들 논의하고 나서야 나름 조심스럽게 들어간 겁니다. 제가 본 자료들에 의하면 최경환노믹스는 그리 위험하지 않습니다. 각종 연구자료들은 최경환의 발표 이전에 이미 쏟아져 나왔습니다. 쓸데없이 신중하게 한다고 너무 늦어서 문제죠.


 게다가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 문제도 그렇습니다. 복지를 하려면 돈이 있어야죠. 근데 경기가 나쁘면 세금이 안 걷힙니다. 실제 세수 걷히는 걸 보면 세율이 아닌 경기에 따라 세수가 왔다 갔다 합니다. 오히려 연구를 해보면 세율하고 세수는 음의 관계까지 성립합니다. 세율을 올리면 세금은 오히려 덜 걷히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겁니다. 이건 현실이다 보니 사실 이걸 이해 못하면 복지정책도 제대로 발제하는 게 어렵습니다. 진보무늬 답정너 꼰대들은 현실을 받아들이기엔 멘탈이 너무 약하다보니 인정할 수 없겠지만요.

 

 복지정책은 한 번 해놓으면 그 다음 조절하는 게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처음에 충분히 안정적인 재원을 확보하고 해야지, 막무가내로 하면 제2의 국민연금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사실 불경기일 때 저소득층에 재정을 직접적으로 쏟아 붓기 어려워지는 원인이 됩니다. 복지론자들은 저소득층에 직접적으로 돈을 풀면 그들은 여유가 없어서 돈을 쓰니까 선순환이 일어난다.’는 식의 주장을 하는데, 사실 막상 해보면 별로 그런 경우는 없기 때문입니다.

 

 불경기 시 재정 정책의 목표는 일차적으로 민간지출을 늘리는 것입니다. 불경기란 돈이 안 도는 소위 돈맥경화를 의미하기 때문에, 정부가 지출을 늘려 소비를 촉진하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정부는 연쇄적인 반응을 예상하고 연구한 후 그 곳에 재정을 투입하게 됩니다.

 

 이것이 성공하여 경기를 회복시킬 수 있다면 세수가 늘어나고 그 늘어난 세수는 복지 등 다른 정책에 쓸 수 있습니다. 선순환이 일어나는 거지요. 그렇지만 실패할 경우에는 돈을 풀었는데 민간지출은 늘어나지 않고 오히려 민간에서 부채를 갚아버리는 현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사실 이 경우 가장 좋은 대응방법은 니들이 쓸 때까지 돈을 푼다.’ 인데, ‘봐봐. 안되잖아.’하고 돈을 그만 풀면 처음부터 안 푼 것만도 못하게 됩니다. 이게 위에서 말한 일본이 겪은 일이고요. 괜히 재정정책에 금융규제완화가 동반되는 게 아닙니다.

 

 근거도 연구도 이성도 대책도 없이 경제 전반은 시장에 맡기고, 그냥 부자들한테만 세금 걷어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면 정부 경제정책은 다라는 태도는 진보도 뭣도 아닙니다. 그저 조금 인도적이고 세상일에 별 관심 없는 보수주의자의 태도일 뿐이죠. 사실 진보개혁세력 발언들을 보고 있자면 노무현 때 괜히 그토록 신자유주의 스타일이었던 게 아닙니다. 마인드 자체가 그래요. 그들은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에 관심이 없습니다. 일반인이 그래도 바람직하지는 않은데, 그런 사람들이 진보개혁정치인을 자처하니 큰 문제죠.


 이제 진보 지지층에겐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지금껏 해 왔듯 앞으로도 쭉 가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하면 앞으로도 어둠과 함께할 따름입니다. 운이 좋아서 집권을 하더라도 성공할 수 없지요. 자격이 없고 실력이 안 되니까요. 그렇지만 편한 길입니다. 개념인 코스프레도 할 수 있고, 저쪽 욕도 신나게 할 수 있지요.

 

 그렇지만 진짜로 사회의 진보를 원한다면 완전히 다른 길을 걸어야합니다. 한국의 소위 진보개혁세력이 지금껏 걷지 못했던 가시밭길 말입니다. 솔직히 말이 바른 말이지, 87체제 이후 소위 개혁세력은 현 대통령 박근혜에 비하면 엄청 편한 길 걸었습니다. 학생 운동권 시절부터 돈과 권력과 함께하면서도 진보 정의 개혁 코스프레하고 특권층으로 살아온 사람 엄청 많습니다. 새민련이 현재의 형편없는 모습이 된 건 오랜 세월의 결과입니다.

 

 전 기존의 진보개혁세력 인물들에게서는 그 어떠한 희망도 찾지 못합니다. 이미 인재의 무덤으로 악명을 높이고 있는 공식 콩가루인 마당에 갑자기 특급 인재가 하늘에서 떨어질 수는 없는 법이죠. 본 블로그에서 몇 번에 걸쳐 말해왔듯 진짜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사람은 이제 그 쪽에 안 붙습니다. 이미 실패한 정치인이 된 안철수도 만약 성공하려면 민주당과 승부를 해서 민주당을 부술 필요가 있었지요. 안철수가 비록 정말 못하긴 했지만, 아무리 잘했어도 민주당하고 합친 이상엔 방법이 없었을 겁니다. 차라리 새누리당 들어가서 대통령 되는 게 훨씬 쉬웠을 거라서요. 1년 전에 이렇게 말했으면 납득 못했을 분들 중에 지금은 그럭저럭 수긍하실 분들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결국 누군가는 어떤 게 진짜 진보의 길인지를 발견하고, 성찰하고, 대안을 만들어서 굳은 의지로 가시밭길을 걸어야 합니다. 다만 새 인물이 나올 때 필연적으로 수반될 진보무늬 기득권과 그 추종자인 깨시민들의 폭력적 견제는 시민 사회에서 보호해줄 필요가 있겠지요.

 


  1. 시각에 따라 마르크시안과 마르크시스트를 구분하기도 합니다만, 본문에서는 구분하지 않습니다. [본문으로]
  2. 굳이 마르크스를 좀 변호하자면 이 공산권은 등장 시부터 마르크스의 생각과는 달랐습니다. [본문으로]

 사람들이 경제에 관한 논의를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참 안타까울 때가 많다.


 역시나 일반적으로 가장 큰 문제는 뭐가 신자유주의고 뭐가 케인즈주의고 뭐가 사회주의인지 잘 모른다는 데 있는데, 케인즈주의는 거의 언급도 안 되니 일단 뒤로 접어둔다 쳐도 자칭 진보라는, 달님을 외치는 깨시민들이 걸핏하면 신자유주의적인 주장을 하는 걸 보면 참 기가 막히곤 한다.


 예를 들어서 현 한국 경제 상황에서.


 대체로 케인즈주의자라면 기준금리가 9개월째 유지인데 경기가 살아나는 양상이 지지부진하고 원화가 너무 강세니 금리 좀 내리고 하우스푸어를 위한 지원 프로그램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할 건데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밖에까지 잘 안 퍼지는 안습한 현실 앞에 있고,


 대체로 신자유주의자라면 새로운 일자리 등을 위해 의료 영리법인 세울 수 있게 규제 풀고, 경제민주화를 위해 기존 순환출자구조도 해소하고 주주의 권한을 늘려야 한다고 지금까지 해왔듯 착한 척을 앞세워 주장할 것이고,


 대체로 사회주의자라면 보편적 복지를 얼른 하라고 주장하는 동시에 뭘 몰라서 경제민주화 움직임에 동참할 것이고,


 대체로 제도주의자라면 바이오, 항공, 에너지 등의 신산업 육성을 위해 국가적 지원과 정책이 더 강하게 있어야 할 것이라 주장할 것이고 + 추가로 실제 보면 사회주의자와 함께 복지론 주장 중


 대체로 깨시민이라면 다 됐고 부정선거! 박근혜 아웃! 안철수 양보해라! 등을 외칠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좌우파로 저 사람들을 구분하자면 좀 복잡해지는데...


 우선 사회주의자는 좌파로 확실하게 구분되긴 하는데 나머지는 아니다.


 케인즈주의자나 제도주의자는 어이없게도 수꼴 취급을 받기 일쑤고, 신자유주의자가 자칭타칭 진보로 불리는 것은 일상다반사고 소위 우파정당으로 분류되는 새누리당 내에서도 저런 온갖 소리들이 짬뽕 및 잡탕 되어서 내부갈등을 일으키는 게 현실.


 어쩌다 상황이 이리 되어가지고 사람들이 좌우파 구분도 하기 힘든 나라가 되었는지를 보자면 역시나 당연히 복잡한데, 시작부터 이야기하자면 아주 먼 과거로 올라가야 한다.


 일단 일제가 끝난 시점에서 한반도 남쪽, 그러니까 대한민국이 될 지역에서 공산주의자가 모두 제거되었다는 건 모두들 알 것이다.


 이승만 시절 한국의 정당은 이승만의 자유당과 아직까지 생존 중인 민주당이 있었다. 그런데 자유당이 민주당보다 좀 더 진보적이었다. 그리고 이승만이 물러난 이후 자유당은 부서져 버렸고, 민주당이 실질적으로 유일한 정당이 되었었다.


 많은 사람들의 오해와는 달리, 민주당은 딱히 진보주의적인 색채를 가진 적이 없었다. 다만 민주당의 역사를 보면 워낙에 많은 이합집산을 거듭했고 그 과정에서 운동권 세력이 참여하곤 하여 군사정권 시절 어감으로 ‘좌파’ 소리를 들어왔던 것이다.


 박정희가 쿠테타 이후 선거를 통해 대통령이 되는 과정에서 민주당의 보수주의적 색채는 선거에서 지는 요인이 되었다. 흔한 오해와는 달리 당시에 시민들은 박정희를 선택했고, 박정희가 서민의 편이었다.


 비록 박정희가 권위주의적이긴 했으나 서민에게 더 많은 이익을 가져다주고 삶을 안정되게 했다. 또한 유신 이전의 박정희는 선거로 당선된, 민주 체제 아래에서의 대통령이었다. 쉽게 말해 당시 구도는 박정희와 민주공화당의 제도주의적 진보 대 윤보선이나 김영삼, 김대중 등 민주당 계열의 자유주의 우파 구도였다고 할 수 있다.


 이후 박정희의 통치방식은 엄청난 경제적 성공을 가져왔다. 심지어 결국 정치적으로 실패한 유신체제조차 경제적으로는 기적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대조적으로 당시 김대중 등이 박정희의 방식에 반대하며 주장하던 소위 ‘대중경제론’이 있는데, 안타깝게도 그 내용을 보면 박정희가 오래 집권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단점이 많았다.


 박정희의 방식은 정부가 산업 육성을 돕고 금융을 제한하며 무역을 장려하는 방식이었다. 정부가 나서서 산업을 육성하고 강력한 보호무역을 통해 경제를 성장시키는 방식을 흔히 제도주의라 한다. 이 방식으로 박정희는 집권 내내 엄청난 투자를 하고, 무역 국가로 발돋움시켜 한국을 20세기에 가장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룬 국가로 만들었다.


 그런데 윤보선이나 박현채, 김대중이 주장하던 방식 - 대중경제론 - 은 이것과 반대의 방식으로, 수많은 국가들이 채택했다 실패한 방식이었다. 이 방식대로 하면 중앙은행은 강력하지 않아 금융통제가 안 되고, 산업이 제도주의처럼 발달하지도 못하며 무역 국가로 발돋움할 수도 없다.


 지금은 각종 방안들을 여러 국가들이 실험해본 끝에 뭐가 좋은지 증명이 되어있지만, 그 때는 그렇지 않았다. 박정희는 정말 가기 힘든 노선을 택했고, 엄청난 성과를 만들어냈다. 그러고 나서 그 열매를 제대로 보기도 전에 죽었지만.


 박정희 사후 박정희의 투자가 이루어낸 결과물들과 공산권의 몰락 등을 보면서 기존에 박정희의 정책에 반대하던 사람들도 의견을 달리하게 되었다. 김대중마저 90년대 들어선 기존의 대중경제론을 버리고 다른 입장을 취하게 된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도 김대중의 경제에 대한 이해는 다소 부족했던 면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가 좀 더 경제를 잘 이해했다면 IMF로 인한 타격을 더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IMF를 유발한 건 전적으로 김영삼 책임이다. 다만 김대중은 IMF와 좀 더 치열하게 싸워 피해를 줄일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어차피 멍청한 김영삼한텐 아무 기대도 안 한다. 그런데 김대중은 그래도 똑똑하니까. 똑똑한 사람은 똑똑한 사람의 몫이 있는 건데, 그 몫을 다하지 못했다는 거다.


 비극적인 문제는 민주정권의 태도 및 이해에 있었다. 박정희식 제도주의는 엄청난 발전을 만드는 동시에 필연적인 부작용을 낳는다. 정부의 혜택을 받는 쪽이 집중적으로 성장하다보니 덜 공평하고, 게다가 박정희는 권위주의적인 독재 통치를 했기에 자유에 대한 사회의 갈망도 컸기 때문이다.


 사실 자유에 대한 문제는 문화적인 면에서 두드러졌고, 지금도 충분히 해소되지 않았다. 유교식ㆍ군대식 권위주의 및 압축 근대화 과정 속에서 해소되지 못한 고간섭 문화는 아직도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그런데 민주화 이후 위의 문제들은 충분히 해결되지 못한 반면, 경제 체제는 제도주의에서 신자유주의로 급속도로 흘렀다. 특히 민주화에 누구보다 앞장섰던 김영삼부터 세계화니 선진화니 뭐니 하면서 대책 없는 신자유주의 판을 벌이다 나라를 말아먹었다.


 분배나 기타 등등의 이야기는 사실 김대중 때까지만 해도 잘 나오지 않았다. 김영삼과 김대중은 지역주의를 앞세웠고, 이념에 있어 그리 큰 차이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나마 김대중은 IT산업을 육성하는 등 제도주의적인 방안을 선택했지만 김영삼과 이후의 노무현은 아니었다.


 소위 좌우파 갈등이 빚어지기 시작하던 시점은 노무현 때부터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모두들 알다시피 노무현이 ‘좌측 깜빡이를 키고 우회전’을 해버리면서 모든 게 심각하게 꼬여버렸다. 대략 이때부터 노빠들은 제도주의와 케인즈주의 등을 ‘보수, 수꼴’등으로 낙인찍고 노무현의 신자유주의정책을 무한 실드치는 반지성주의적 궤변을 일삼게 된다. 물론 신자유주의가 본격적으로 욕먹기 시작한 이후에 깨시민들은 ‘노무현의 신자유주의는 시대적 흐름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같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무한반복하고 있고. 그런 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행위고 혹세무민이다.


 이야기가 꼬여버린 데는 이명박도 일조를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말로는 신자유주의의 화신처럼 등장을 해서는, 막상 정치는 딱히 신자유주의적으로 안 했다. 이러니 사람들의 경제적 좌우에 대한 착각이 더 심해진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근래의 경제민주화 논의는 아주 이런 혼동에 화룡정점을 찍어버렸다. 신자유주의자들이 경제민주화 타이틀을 걸고, 우린 착한 진보 ^^ 놀이를 해서 적잖은 사람들을 아스트랄하게 만들고,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을 혹세무민해 버렸다. 도무지 이게 언제쯤 어떻게 교통정리가 될지는 미지수다. 전문정보와 대중정보 사이를 이어줘야 할 기자라거나 시민 사회 등은 소양이 지극히 부족하고, 정치적 의도를 가진 뻘소리들만 해대면서 혼란을 가중시켜버렸다. 여기에 보편적 복지론이니, 선별적 복지론이니 하는 복지론이 앞서는 상황이 되다 보니 혼란은 더 심해졌다. 현실적으로 민중들은 뭐가 자기 자신에게 득이 될지를 감으로 대략 맞춰야 하는 입장이다.


 양당제에서 시민들이 명료하게 정치적 선택을 할 수 있으려면, 신자유주의 & 작은 정부 정당과 케인즈주의 & 제도주의 정당이 대립하는 게 편하다. 그런데 한국에선 제도주의를 박정희가 선점해버렸고, 그것이 극단적인 보수주의적 이미지로 자리 잡혀 있기에 이러한 이념적 균열이 일어나는 게 지극히 어렵다. 현재 박근혜정부는 적당한 제도주의와 적당한 케인즈주의, 그리고 적당한 신자유주의 사이에서 적당한 균형을 잡고 있다는 느낌인데 참 그것도 능력이라는 감상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 확 좀 땡겨 줬으면 좋겠다. (새누리)당내 신자유주의자들은 좀 치우고.


 여담인데 근래의 신자유주의는 ... 실제 경제학에선 그리 투철하고 극단적인 관념 속 신자유주의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게 이미지 그대로의 신자유주의는 이미지로나 존재할 뿐, 그게 학술적으로 맞는 말이 아니라는 건 이미 어느 정도 검증된 거고 이게 신자유주의만 이런 것도 아니고, 실제론 학자마다 서로 좀 다른 입장이긴 하지만 절충하고 더 나은 방향을 찾아가면서 이론을 만들고 현상을 살펴보고 그러는 게 현실인데, 굳이 보자면 학계에선 더 완성도 높은 수학적 무언가를 만들려고 하다 보니 무리수를 두는 경우가 꽤 있었고 그걸 막상 현실에 적용했을 때 패망한 사례도 많고 ... 오히려 리얼 ‘신자유주의’는 경제학계 외부에서 더 많은 것 같다. ‘학술적으로 맞는 말’이 아니고 ‘지들 돈 벌려고 하는 말’ 또는 ‘지들 권력 잡으려고 하는 말’을 하게 되면 사람은 완전히 이야기를 다르게 하는 법이다. 물론 저런 말들 중에는 도무지 신자유주의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이 하는 말들도 제법 많이 섞여 있으니 사람들이 더 혼동하기 쉬운 건 어쩔 수 없다.


 이념적 균열이 명료하지 못하고, 서민들이 자신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정치적 선택을 하기 어렵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상황이 아니다. 서민들은 삶의 개선을 위해 보다 케인즈주의적이거나 보다 제도주의적인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주의는 현실적인 대안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의 민주당이나 근래의 안철수 신당 모두 케인즈주의나 제도주의적인 대안을 보여준다고 하기 어렵다. 실제 케인즈주의적인 것은 학계와 관료이며, 제도주의적인 방안을 구상하는 쪽도 새누리당 내에 있다. 새누리당은 꽤나 광범위한 이념을 포괄하고 있는 정당인데, 소위 깨시민이나 진보좌파들은 이에 대한 이해가 없기에 선거에서 이기기 어렵다.


 서민들, 특히 나이가 좀 있는 서민들은 어떤 정책과 제도가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는지 어렴풋이나마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들을 향해 무식하다고 비난하고 국개론을 설파하는 깨시민들이야말로 실제로는 경제에 대한 이해가 없고 무식한 경우가 많다. 실제 깨시민들 많은 곳에서 자료와 근거를 제시하며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하는 경우, 돌아오는 건 비아냥과 매도 또는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거짓말인 경우가 99%이상이다.


 다만 새누리당이 서민들의 입장을 잘 대변해줄 수 있는 정당이 되긴 현실적으로 어렵다. 너무 많은 이념을 포괄하는 정당이 되어 있고, 당 내부에서 파워게임이 이루어지는 경우 누가 이길지는 명백하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한국 정치 현실에선 대통령의 정치 감각과 결단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대통령 주변의 이너서클이 제 역할을 못할 경우 정치 실패가 일어나기도 쉽지 않나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