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스 색깔 논란과 민주당 지지층의 인지

정치 2019. 9. 26. 15:55 Posted by 해양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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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JKk_M6e5gww

 




 드레스 색깔 논란, 많이들 기억하시지요?

 

 이 논란 당시 나는 좀 황당한 기분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흰금은 물론 파검으로도 안 보이기 때문입니다. 나에겐 픽셀 스포이드로 추출한 RGB색 그대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나에게는 그레이 톤이 섞인? 듯한 블루 계열과 올리브-카키색 계열로 보입니다. 이 카키색 부분이 검게는 안 보입니다.


 

 잘 이해가 안 가시면, 위에 추출한 색 거의 그대로 보인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드레스 논란 당시 나와 같은 부류가 소수 있었다고는 합니다. 당시 나는 처음엔 사람들이 색 이름도 몰라서 (또는 제대로 표현하기 귀찮아서) 올리브-카키색 계열을 검정이라고 이야기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검게 보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고 황당했고요. 흰금으로 보는 사람은 이해하기가 훨씬 어려웠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눈이 빛에 덜 민감한 사람들이 흰금으로 보기 쉽고, 더 민감한 사람들이 파검으로 보기 쉽다는데요. 나는 눈이 좀 많이 빛에 민감한 편입니다. 그게 영향이 있는 것 같아요.


 

 몇 년 된 이 논란을 이야기하는 건, 정치성향의 차이는 세상을 아예 달라보이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서입니다. 드레스 논란 당시 흰금파와 파검파는, 그냥 보이는 색을 이야기했을 뿐입니다만 실제 드레스 사진 색과는 둘 모두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냥 보이는 대로 보는데, 무의식적으로 보고 싶은 대로 보고 있단 말이지요.


 드레스 논란에서 진실을 알고 싶다면 픽셀을 아주 크게 확대하거나, 색상 추출 그래픽 툴(통칭 스포이드)을 쓰면 됩니다. 정치적으로도 진실을 알고 싶다면 툴을 사용하면 됩니다. 각종 객관적인 지표를 보고, 정치 원리를 이해하고, 특정 사람이나 단체의 이름을 지우고 사건의 얼개를 보면 됩니다.


 

 요새 대깨문들 행동을 보면 이런 식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흰금교가 있고요. 교주가 있고요. 흰금으로 보는 게 올바른 거고, 다른 식으로 보는 건 일베, 토왜라는 식으로 볼아 붙이고 있습니다. 실제 색은 그게 아니라고 하면, 수단방법을 안 가리고 공격합니다. 물론 그들의 시각에는 흰금으로 보이긴 하겠지요. 색상 추출 툴이 진실을 알려줘도, 그들은 그 툴이 틀렸다고 하는 식입니다. 내가 보는 게 진리고 진실이라고 믿는 겁니다.


 

 지금 민주당 지지층들이 보는 세상은, 민주당 지지층이 아닌 사람들이 보는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색상일 겁니다. 그들의 무의식적인 부분이 그렇게 만들 거고요. 믿음은 감각과 체험 자체를 다르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어떤 집단이 우리는 옳다라는 맹신을 가지게 되면 그 어떤 객관적 증빙도 안 통합니다. 그런 극단적인 부류들이 권력과 결합해 행동에 나서고 폭력적으로 패악질을 부리면, 평화적인 수단으로는 해결이 안 됩니다. 역사적으로 항상 그랬습니다. 현 시점에서는 민주당 지지층이 더 폭력적으로 변하기 전에 선거를 통해 민주당의 권력을 줄이는 게 가장 현실적인 해결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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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C_Cqas1nAxE

 


 

 선진국 어디나 국민의 지적 수준은 거기서 거기고, 원래 평범한 대중은 정책적 판단능력이 별로 없습니다. 좀 더 나은 나라도 있고 좀 못한 나라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다 수준미달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많은 분들이, 자기가 잘 하는 분야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업무건 전공이건 취미건. 그런 분야에 대해 대중과 본인이 얼마나 많이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생각해보세요. 기본적으로 국가 업무 수준으로 무언가 제대로 하려면, 진짜 대중과는 아예 다른 수준의 이해가 필요합니다.



 민주정이 만일 대중의 판단력으로 돌아갔다면, 세계 어디서든 실패했을 겁니다. 민주정은 대중의 판단력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고, 국민주권과 인민주권이 유능한 사람들에게 일을 맡김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다가 잘못된 신념을 가지고 무능한 부류가 대중을 꼬드겨서 권력을 쥐고 마음대로 독재를 하게 되면 망하는 거고요.


 

 굳이 보자면 민주정은 정치 세력들이 서로 선의의 경쟁을 할 때 성공합니다. 누굴 뽑건 괜찮은 상황이 될 수록 성공률이 높아진다고 이해하면 쉽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그런 상황에 가장 가까웠던 건 1997년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회창, 김대중, 이인제는 다 괜찮은 후보였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후보 전반의 질이 나빠지면 대중이 투표를 잘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2012년처럼 박근혜, 문재인, 이정희가 나오면 답이 없는 겁니다.


 

 그럼 국민은, 유권자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판단력보다는 전향적이고 개방적인 윤리적 의식과 주인의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대로 된 유권자라면 절대 정치인을 숭상하지 않습니다. 유권자가 주인이고 정치인은 하인이어야 합니다. 유권자가 정치인에게 권력과 권한을 양도할 때, 유권자는 언제든 정치인을 감시하고 처벌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정치인의 잘못에 관대해서는 안 되고, 권력을 잘못 휘둘렀을 때 처벌할 윤리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국민 수준이 모자라서 민주정이 무너진다면, 그건 지적수준의 문제는 아닙니다. 그보다는 윤리적 수준의 문제와 자존감의 문제가 민주정을 망칠 수 있습니다.


 

 나는 정치의 종교화를 볼 때마다 생각합니다. 정치인을 숭배하는 부류는 주권을 가진 시민이 될 자격이 없습니다. 그런 부류에게 투표권을 주면 안 됩니다. 정치인이 국민에 봉사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국민이 정치인을 섬기고 봉사한다면, 그것은 민주정이 아닙니다

스스로를 민주적이라 생각하는 꼰대의 시대

정치 2019. 2. 10. 14:02 Posted by 해양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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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2ncK3sQV1OQ

 



 최근 들어 20대 남성들의 문재인 정권에 대한 지지율이 매우 낮은 수준으로 떨어지고 비토가 이어지면서, 문빠 남초 사이트들 곳곳에서 전투가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전투들은 웃프게도 세대 전쟁 양상을 띠고 있는데, 대체로 30대에서 50대 정도의 문재인/민주당 지지층이 20대에 훈계를 늘어놓거나, 아니면 20대 남성을 응원하는 글이 올라오면서 댓글이 수 백 개씩 달리고 있는 걸로 보입니다.


 

 가장 먼저 이야기할 게 있다면 21세기에 통용되는 꼰대라는 어휘가 지칭하는 특성은 나이와 별로 상관이 없다는 겁니다. 오히려 꼰대들은 어릴수록 꼰대질을 더 하는 경향이 있지요. 꼰대는 교만하고 자기중심적이서 타인의 고통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오지랖까지 넓어서 이런저런 설교를 하는 경우입니다. 나이가 상대적으로 많은 사람이 적은 사람을 향해 꼰대질을 하기 쉽기 때문에 고연령층일수록 꼰대가 많을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사람은 대체로 어릴 때 더 교만하고 자기중심적이기 쉽고,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요새 20대를 향해 꼰대질을 일삼는 대깨문/민주당 광신도들은, 아마 그럴 기회가 있었다면 중학교 때도 후배들을 향해 꼰대질을 했을 겁니다. 성격의 많은 부분은 타고나고, 또 많은 부분은 어릴 때 결정됩니다.

 

 한편 대체로 30대부터 86세대까지는 꼰대일수록 강경한 민주당 지지층이 되기 쉽습니다. 그러한 사회 조건에서 자랐기 때문입니다. 90년대나 그 이후에 태어난 분들은 90년대부터 00년대 초중반까지 우리나라가 겪은 변화가 얼마나 심했는지를 체감할 수 없습니다. 그 때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고, 그 시기에 소위 보수 세력이 보여준 꼰대성은 좀 많이 심각했었습니다.


 

 예를 들어 90년대까지는 국한문혼용체가 일반적이었고, 호주제가 있었고, 동성동본끼리는 결혼할 수가 없었고, 신문들은 세로쓰기를 했습니다. 아이돌의 머리 염색도 비난받기 일쑤였고, 배꼽티나 미니스커트를 입고 다니는 여성들은 논란의 중심에 있었고, 좀 심한 경우에는 여성들이 바지를 입는 것도 못마땅하게 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 잔재는 아직 여학생들의 교복에 반영되어 있지요. 여담입니다만 요새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이 노출 심한 여자들을 공격하고, 그걸 소위 진보정권이라는 이 정권이 서포트해주는 걸 보면 파시즘이 어떻게 극우화되는지를 보고 있다는 기분일 따름입니다.


 

 한문 빼고 한글만 가로쓰기로 사용하고, 동성동본이 결혼할 수 있게 되고, 호주제를 가족관계등록제로 바꾸는, 현재 생각해보면 상식 수준에서 일반화된 개혁조차 보수 세력들은 하나하나 전부 반대했었습니다. 게다가 IMF까지 일으켰지요. IMF이후 집권한 DJIMF를 극복했고, 개혁에 앞장섰고, 실제 많은 걸 개혁했었습니다. 일본 문화가 개방된 것도 DJ때 DJ가 이룬 일이지요. 노무현 시절까지는 자유주의자들이 노무현의 옆에 있었는데, 괜히 그랬던 게 아닙니다. 우리 사회가 수많은 문화지체를 뚫고 개혁을 하나하나 이룬 건 오래 된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시대가 지나면서 상황이 변해버렸지요. 정말 많이.


 

 노무현이 죽고, 김대중이 그 뒤를 따르듯 죽고, 이명박이 인기를 잃고, 박근혜와 최순실의 시대를 지나면서 청년이었던 자들의 개혁과 정의에 대한 열망 중 너무 많은 부분이, 이젠 문재인 파벌에 대한 맹목적 추종과 변호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이미 민주화가 완성되고 낡은 제도들이 타파된 건 노무현 때인데, 그 이후 획득한 데모크라시가 어떤 데모크라시여야 하냐는 데 있어 소위 운동권 민주당 세력은 방해물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운동권의 집단주의적인 성향이 데모크라시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운동권은 노무현의 자살로 부활했고, 박근혜와 적대적으로 공존하면서 정치의 종교화를 가속하게 되지요.


 

 현 30대 후반부터 86세대는 군사정권의 군사주의적인 문화와 교육에 많은 영향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들 중에 꼰대 성향을 가진 사람일수록, 본인은 잘 모르지만 사실은 권위주의적인 문화에 영향을 많이 받고 그런 성향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강경한 민주당 지지층이 군사정권 이상으로 권위주의적이고 배타적이며, 이상하게 변질된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데도 연유는 있습니다.

 

 민주와 반민주가 충돌하고 개혁과 낡은 수구가 충돌하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선악이 비교적 선명하게 나누어지던 시대도 있었지만, 이젠 흘러가버린 것입니다. 꼰대 성향이 강한 사람들은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기 어려워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적응 못하는 자신들의 나태함을 돌아보지 못하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꼰대질을 일삼곤 합니다. 민주당 지지층은 사무직 비율이 높은데, 아무래도 안정적이고 여유가 있다 보니 강남좌파화 된 면도 있고요. 그들은 재산과 계층 우위에 더해 도덕적 우월감을 가지고 싶어 합니다.

 


 민주화가 진행된 민주 사회는 다원성을 가지고, 서로 다른 이해관계와 입장을 가진 이들끼리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야 합니다. 자유로운 민주 사회의 정의는 현재의 강성 민주당 지지층이 생각하는 정의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어야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예전에 자유주의라는 대안이라는 포스트를 쓴 적이 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그것을 참조해 보시기 바랍니다

 

 한편으로 현재의 10, 20대 남성들을 보면 앞으로의 사회상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억울함과 분노를 느낄 만한 상황이고, 바람직하고 이상적인 담론은 멀고 극우적인 유혹들은 가까이에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 현 추세대로 20대 남성들이 극우화된 세대가 된다면, 앞으로 끊임없이 질타 받게 될 것입니다. 추악한 세대로 여겨지겠지요.


 

 권력자와 권력자를 무조건 옹호하는 광신도들이 분노와 증오, 망상과 아집에 가득 차 있으니 세상 돌아가는 꼴이 제대로 될 리가 없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서로간의 갈등을 줄이고 실리적인 방향으로 사회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정치 지도자가 갑자기 등장할 수 있을지는 대단히 의문입니다. 이 정권의 폭주는 너무 많이 와버렸고, 사회적인 갈등과 증오와 혐오도 원만히 수습되기엔 좀 심해졌습니다. 한번 이렇게 꼬인 흐름은 쉽게 풀리지 않습니다. 세상의 법칙이 원래 무언가 꼬인 걸 풀기는 어려운 반면, 무언가를 엉키고 꼬이게 하는 건 쉽기 마련입니다.

 

 현실적으로 이 문제를 최소화하려면 빠른 정권교체가 필요합니다. 자유한국당이 어느 정도 온건한 보수세력으로 자리 잡고, 사회적 갈등과 증오를 조금씩이라도 줄여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의 민주당에는 사회적인 갈등을 줄여나갈 가능성이 전혀 없습니다. 문재인부터 노무현을 잃은 분노로 정치를 시작한 인물이고, 한없이 교만한 인물들과 분노를 부추기는 쪽의 전문가들이 당의 너무 많은 부분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할 능력이 없는, 믿음만 강한 사람들

정치 2019. 1. 18. 23:31 Posted by 해양장미

 추천 브금.

 

https://youtu.be/RqkumZKGBgI

 

 

 

 이 블로그를 오래 봐 오신 분들은, 내가 수소연료전지 자동차에 대한 이야기를 꽤 예전부터 해 왔다는 걸 아실 겁니다. 그것에 대해 부정적이었다는 것 또한 말이지요.

 

 그런데 요새 문재인 정권이 수소연료전지 자동차를 본격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덤비고 있습니다. 숫자 말하는 거 보면, 도무지 현실성이라고는 전무한 밀어붙이기를 이번에도 하려는 것 같고요. 이 정권은 신중함과 판단력과 지혜는 없고, 자기 확신과 추진력만 강하며 무책임하고 후안무치합니다. 수소차 관련 기사는 링크하지요.

 

http://www.dailian.co.kr/news/view/765955/?sc=naver

 

 수소연료전지 자동차에 대해서는 논박이 있긴 합니다만, 현대차그룹 측에서는 긍정적으로 이야기하는 반면 현대차와 무관한 사람들은 회의적인 경향이 있습니다. 수소에너지의 활용을 여러 모로 신중하게 검토하신 분들은, 대체로 그것에 과한 기대를 가지거나 공금을 많이 붓는 게 리스크가 있다는 것 정도는 이해 중일 걸로 생각합니다.


 

 문제는 문재인 정권이 수소연료전지 자동차 인프라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결정했다는 데서 시작됩니다. 국민 분열을 극단적으로 만들어 낸 이 정권이 그렇게 결정한 시점에서, 수소인프라에 정부가 투자를 하는 게 합리적인가 비합리적인가에 대한 논의를 제대로 하는 건 무척 어려워졌습니다. 각 커뮤니티들을 보면, 대깨문들은 이 문제에 대해 사전지식도 합리성도 거의 없습니다. 그들은 문재인이 수소인프라에 투자하기로 결정한 시점에서, 수소연료전지에 대해 긍정적인 정보만을 취득하고 편향적인 옹호론을 펼치게 되었습니다. 이야기하는 수준을 보면 본래 지식이 없었던 게 바로 티가 남에도 불구, 무언가 우기고 반대파를 공격하는 데는 최고의 전문가들이지요. 물론 문재인이 한다니까 일단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긴 있습니다만, 본래 수소관련 투자에 대해 회의적이었던 사람들에게도 대깨문들은 정신 나간 공격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광경을 보면서, 나는 왜 북조선이 우리보다 못 살게 되었는지를 공부했던 예전이 떠오릅니다. 원래 우리보다 잘 살았던 북조선이 우리보다 못 살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김일성이 오판을 할 때 그걸 바로잡을 수가 없었기 때문으로 압니다. 수령님이 교시를 내리는데 감히 누가 반대를 한단 말입니까. 그런데 이 정권 하는 짓과 대깨문들 광신행위를 보면, 북측이 왜 망했는지를 글로 알던 것과는 다르게 실제 체감으로 깊이 깨닫게 됩니다. 대깨문들은 신성한 문프께서 무언가 결정한 것에 대해, 6두품 친문도 못 되는 하등한 부류가 감히 반대의견을 내는 걸 절대 용납하지 못합니다. 신성모독에는 이단심판을 내려야만 하지요.



 어쩌면 대깨문이 독재를 사랑하는 정도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박정희는 독재자이기는 했으나, 박정희의 의사결정 방식이 현 청와대와 대깨문 같이 독단적이고 광신적이었으면 우리나라 애진작에 망했습니다. 만약 대깨문 같은 부류들이 이승만 시대에 있었다면 얼마나 피로 얼룩진 역사를 더 많이 썼을지 모를 일입니다.

 

 현 정권의 무분별한 수소인프라 투자 선언을 눈먼 혈세를 함부로 쓰겠다는 발언으로 생각합니다. 잘못된 결정이라 판단하며, 강하게 반대합니다. 정치병 말기 환자들의 광신적인 옹호를 기반으로, 권력자들이 비논리적이고 독단적으로 재정을 사용한다면 이 나라의 미래엔 결코 밝음이란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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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ncckLa4ubZo




 세계 정치는 포퓰리즘의 전성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고, 우리나라 정치는 좌파 포퓰리스트들의 전성기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 좌파 포퓰리즘이 결코 오래 지속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당장만 봐도 최악의 내수경기를 만들어놓고 전임 정권 탓만 하고 있으니, 우리나라 시민들이 단체로 스톡홀름 증후군에라도 걸리지 않은 이상에야 지지율은 계속 떨어질 수밖에 없겠지요.


 

 아마 다음 선거 또는 다다음 선거, 아니면 그 다음 선거에서라도 이 좌파 포퓰리스트들은 패하게 될 겁니다. 그러고 나면 아마도 20대 탓을 하겠지요. 여론조사를 보면, 20대의 현 정권과 민주당, 정의당 등에 대한 호감은 50대와 비슷합니다. 보통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서 좌파성향이 줄어드는 걸 감안할 때, 앞으로 20대는 지금까지의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좌파적이지 않은 세대가 될 거라 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현재의 20대가 민주당과 좌파를 싫어하는 건 당연하다 생각합니다. 3040 세대가 자유한국당 세대를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를 설명하면 대략 이렇습니다. 3040세대는 그 부모세대가 지지하던 자유한국당 세력을 말 안 통하는 꼰대, 권위주의적인 구시대의 유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에 20대가 민주당과 좌파를 싫어하는 이유도 거의 마찬가지입니다. 민주당과 좌파는 그 이상으로 말이 안 통하고, 권위주의적인 꼰대거든요. 3040 친 민주당 그룹은 이미 민주당에 소속감이 생긴 상태에서 내로남불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정치에 관심을 늦게 가지게 된 20대 다수는 소속감이 애매해서 그런 내로남불은 없단 말이지요.

 

 현재의 민주당과 정의당 등의 좌파정당들과 그 강성 지지층은 군사정권의 권위주의를 싫어했으나 오히려 더 권위주의적인 도그마를 가진집단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된 이유를 정말 간략하게 설명하면, 좌파라서 그렇습니다. 21세기의 좌파는 급진주의적이며 권위주의적이고, 포퓰리스틱한, 도그마를 가진 집단이 되었습니다.


 

 민주당 세력의 사상적 기반은 80년대 학생운동권에 있습니다. 이 운동권 사고방식은 신군부와 신군부 편을 든 미국, 신군부와 미국이 주장하는 자본주의 및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고 북조선과 중공 등 당시의 공산권을 긍정하는 것에 기반을 뒀는데, 고등학교 공부까지만 잘했고 자만심 가득한 학생들이 뜨거운 머리와 선민의식을 가진 상태로 사상을 구성하다보니 그야말로 문제투성이였습니다.


 

 이후 민주화도 되고, 공산권이 무너지고, 중국도 자본화되고 하면서 이 운동권 출신들도 변화를 맞이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만, 현실을 온전히 인정하고 사회주의에서 전향한 사람들은 민주당에 남지 않았습니다. 현재의 민주당계 정치인들은 서방 사회의 주류 학술 이론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고, 끊임없이 사회주의적인 대안을 찾아다녔습니다.

 

 학술적인 면에서 사회주의적인 것들은 끊임없이 비주류로 밀려나왔습니다. 현대 학문은 잘 되고 있는 것일수록 과학적입니다. 가설-검증-논쟁-이론의 사이클이 끊임없이 돌아가면서, 어떤 게 현실을 잘 설명할 수 있는지 찾아가는 것이지요. 이 과정에서 사회주의적인 것들은 끊임없이 비판받고 설득력을 잃어왔는데, 대체로 사회주의적 개념들은 현실을 설명하기보단 나름대로의 이상을 추구하는 것이다 보니 비과학적이고 종교적이기 쉬운 것입니다.


 

 대부분의 종교와 과학의 차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종교는 옳은 것을 선지자가 알고 있다고 가정합니다. 대부분의 유신론이라면 진리는 신에게 있고, 선지자는 신에게 진리를 전해 들었고, 신자들은 그 진리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면 되는 것입니다. 즉 종교적 세계관에서 진리는 이미 결정되어있어요.


 

 인류 전체의 역사로 볼 때 최근에 힘을 얻게 된 과학은 종교와는 전혀 다른 가정에서 출발합니다. 우리는 진리를 잘 모르고, 우리보다 선대 사람들은 우리보다 더 무식했다는 가정 말입니다. 그러니까 과학은 현재 우리가 옳다고 믿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고,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를 더 정확하게 밝혀내고자 합니다. 과학에서도 선지자들의 업적은 칭송받습니다만, 과학자들은 선지자를 비판하고 뛰어넘으려고 하지 덮어놓고 믿지는 않습니다.


 

 물론 종교와 과학의 대결은 과학이 이겼습니다. 지금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PC나 스마트폰 등으로 보고 계실 텐데, 그건 과학의 산물입니다. 종교 같은 게 PC를 만들 수는 없었지요. 진리를 알고 있다던 옛 종교 선지자들은 PC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BC 562년에 사망한 신 바빌로니아 제국의 군주, 나부-쿠두리-우추르(느부갓네살)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던 바벨탑을 건설했습니다. 그 높이는 91m 정도였지요. 기독교도들은 그것이 신에 대한 도전이라 주장했습니다. 물론 현재 우리나라 대도시엔 바벨탑 정도 높이의 건물은 널렸습니다. 인류가 하늘로 쏘아올린 보이저 1호는 이미 약 5년 전에 태양계를 벗어났고요. 종교는 모르는 걸 안다고 하고 검증을 피하기 때문에 옳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다수의 인류는 과학적이지 않고 종교적입니다. 소수의 과학적인 사람들과 다수의 종교적인 사람들이 있지요. 우리 인류도 생물이기 때문에, 다른 생물들과 마찬가지로 진화의 자연선택 압력 위에 있습니다. 우리 인류가 자연과 다른 종들에 맞서 험난한 생존경쟁을 하던 시절에는, 종교적인 특성들이 생존에 도움이 되었지요. 그 때도 과학의 싹은 있었습니다만, 과학이 본격적으로 활약하게 된 건 최근이고 우리 인류는 이미 그 전에 지구를 정복했습니다.


 

 물론 현대적인 과학의 발달은 인류의 평균 수명을 4배 정도 늘렸고, 맬서스 트랩 문제도 극복하게 해 주긴 했습니다. 현대 과학과 시장경제는 한 명의 천재만 있어도 모든 인류가 그가 발명한 것의 혜택을 볼 수 있게 만듭니다.



 과학의 발달에 의해 자연선택은 약해졌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이제 인류는 과학적으로 사고하는 유전인자를 발달시키지 않아도 생존에 별 지장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현대인의 평균지능은 옛 사람보다 많이 낮아졌습니다. 이젠 좀 멍청해도 오래 살아남을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멍청이들의 세상이 되었습니다.


 

 생물학적으로 우리 인류는 과학적으로 사고할 수는 있으나 그게 편하지는 않은 상태입니다. 우리 인류가 근육빵빵 또는 쭉빵 나이스바디를 가질 수는 있지만 실제로 그러긴 힘든 것과 유사하지요. 물론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나이스바디의 시장가치는 과학적 사고방식의 시장가치보다 높기 때문에, 나이스바디를 가지기 위한 노력은 많이 하지만 과학적 사고방식을 갖추기 위한 노력은 별로 하지 않습니다. 좋은 성적을 얻고, 시험에 합격하고, 사업이나 투자에 성공하는 정도에는 과학적 사고방식까지 별로 필요하지 않습니다.


 

 종교적 상품가치로 비교해볼 때, 사회주의적인 진보좌파는 마케팅하기가 쉬운 편입니다. 우리나라 좌파 도그마는 악을 간단명료하게 설명해줍니다. 재벌, 친일파, 자유한국당, 군사정권, 신자유주의. 이런 식으로 세트메뉴로 묶어서요. 그리고 그걸 반대하는 신앙을 가지고, 교주를 지지함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전도합니다. 예전에는 저 악에 개인주의와 미 제국주의, 그리고 자본주의도 포함되었었는데 시대가 지나면서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악의 축 목록에서는 사라졌습니다만, 여전히 내용에는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익 마케팅도 한동안 강력했습니다. 주로 안보 불안감의 해소와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앞세웠었지요. 그러나 시대가 지나면서 둘 다 마케팅 포인트로의 가치가 퇴색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마지막에 남은 건 태극기 부대의 맹신과 인지부조화였고, 이젠 그 가치는 껍데기조차 남지 않게 되었지요. 매카시즘도 일종의 포퓰리즘인데, 우파 포퓰리즘에 대한 이야기는 본문에서는 일단 생략합니다.


 

 믿음을 강조하는 종교가 권위주의적인 건 필연입니다. 증명할 수 없는 걸 믿으라 하니까 권위주의적인 게 되는 것이지요. 실제 권력을 쥐고 나면 그 경향은 점점 더 극단적이 될 수밖에 없고요. 실제로 성적으로 보여주는 게 없으니까요.


 좌파가 포퓰리스틱해지는 것 역시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적 진리에서 먼만큼 대중을 선동하고, 다원주의와 지성을 부정하지 않으면 효율적으로 권력을 차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포퓰리즘에 넘어간 대중은 자신들만이 진정한 국민이라 생각하게 되며, 자신들의 맹신 체계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일종의 비국민으로 취급해 버리게 됩니다. 포퓰리즘은 정치의 종교화이며, 민주정의 적입니다. 소외받는 사람들과 그들을 대변하는 사람들은 우리도 국민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포퓰리스트는 우리만 국민이라고 말합니다. 문빠들은 우리만 국민이라는 식으로 말하길 주저하지 않지요. 반대파에 친일파 낙인을 괜히 찍어대는 게 아닙니다. 물론 문재인 정권은 사회문화적인 면에 있어서는 좌파가 아닌 우파 포퓰리즘 정권에 해당하는데, 이런 양상은 포퓰리즘의 일종으로 좌우를 교차한다 할 수 있는 파시즘에 더 가깝긴 합니다.


 

 조금 더 논지를 전개시키자면, 결국 좌파와 사회주의는 자유민주정의 적입니다. 이론적으로, 또한 논리적으로 사회주의와 자유주의의 조화는 국가 단위에선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기도 합니다. ‘사회민주주의라는 표현은 분명히 통용됩니다만, 그 사상을 현실에 맞춰 이론적으로 정립하는 데 성공한 경우는 없습니다.


 

 21세기에 좌파는 민주적일 수 없고 필연적으로 권위주의적입니다. 반대자들을 포용하고 다원성을 존중하며 설득하고 합의를 해나가는, 그런 보다 정상적인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회주의 정권은 언제나 내가 옳다, 다수에게 피해를 주는 방식을 힘으로 밀어붙이곤 합니다. 타인이 가진 정당한 권리를 힘으로 빼앗지 않으면 사회주의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통과 분노와 죽음을, 그들은 전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사람을 보지 않습니다. 현실도 보지 않습니다. 사실 국가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문빠는 시민보다, 대한민국보다 문재인의 신성불가침함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문재인 시대, 가치의 퇴행

정치 2018. 8. 15. 16:39 Posted by 해양장미

 추천 브금

 

https://youtu.be/GVsfGqowvOk

 

 

 정치는 가치 추구의 도구일 뿐이며 그 자체로는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그러나 문재인 시대에 들어 정치를 가치보다 우선시하는 정치병은 사회적으로 심화되었고, 진짜 가치들은 망가졌습니다.



 

 ‘자유’, ‘번영’, ‘성장’, ‘진보’, ‘공정’, ‘평등’, ‘통합’, ‘민주성’, ‘법치’, ‘행복’, ‘균형’, ‘박애같은 가치들이 모두 퇴행하였습니다. 박근혜보다는 낫다고 맹목적으로 소리치는 문빠들이 많습니다만, 박근혜 때는 몇 가지 문제만 제외하면 그래도 지금보다는 훨씬 나았습니다. 물론 박근혜 시절이 좋았다는 건 아닙니다. 그 때도 바닥이었지요. 지금이 아주 깊은 지하일 뿐.


 

 도대체 어디서부터 뭐라 해야 할 지도 감 잡기 힘들 정도로, 거의 모든 면에서 이 사회는 어지러워지고 있습니다. 나아진 거라곤 북조선하고 사이가 좋아졌다하나 뿐인 것 같네요.

 


 민주성이 악화된 몇 가지 예를 들어볼까요. 박근혜 정부도 지나치게 청와대가 비대하고 각 부처 장관은 존재감이 약했으며 박근혜 대통령은 3권 분립을 위협하고 독재를 추구하긴 했지요. 최순실 국정농단이 이에 더해졌고요. 그런데 이번 정권은? 청와대와 내각은 아예 빈번하게 충돌하며, 각 부처 장관은 청와대 수석보다 밑 직위처럼 되어버렸으며, 일처리는 못하면서 거의 트롤링 수준으로 사고치는 장관이 많은 데다, 여당은 박근혜 시절과는 달리 청와대에 충성 경쟁하는 거수기 수준에 3권 분립은 이미 있는지조차 의심스럽습니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국회나 각 부처에서 처리하는 게 아니라, 청와대에 안건이 다녀오는 걸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정상이 아닙니다. 김동연 부총리나 청와대와의 갈등을 견뎌내고 독자적으로 움직이고 있지요.


 

 하물며 지난 정권 때는 마음껏 비판이라도 했지, 이번 정권에선 입조심을 해야 하지요. 비판하면 일베 소리 듣는 건 일상다반사입니다. 물론 절차적인 문제들도 많지요. 일례로 현재 우리나라 경제를 망가뜨린 한 원인인 법인세 인상은 지난 연말 국회에서 민주당이 날치기로 처리했습니다. 멍청하게 당한 자유한국당도 문제입니다만, 그런 중요한 사안을 날치기한 건 절차로만 봐도 비판받아 마땅하지요. 내용은 더 문제고요.


 

 또 예를 들어볼까요. 사회갈등과 수많은 피해자를 낳을 수밖에 없는, 무고죄 수사 금지 조치는 아예 국회에서 막히니까 법무부 자체 지침으로 처리했습니다. 3권 분립이고 법치주의 원칙이고 평등과 공정의 가치고 다 내다 버린, 그야말로 초법적 독재행위라고밖에 할 수 없지요. 이번 정권 하는 걸 보면 애초에 민주적 절차나 법치주의 원칙을 지킬 생각이 없습니다. 세계사에 그 동안 참으로 많았던 좌파 독재정권과 마찬가지로, 내가 옳으니 입 닫고 나를 따르라는 식의 정권인데, 겉으로는 국민의견 수용하고 친절해 보이는 척을 하는 포퓰리스트인 것이지요.



 

 이 정권이 모든 가치를 망가뜨리는 이유는 강한 사회주의 도그마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주의자들은 거의 모든 분야의 과학적인 학문에서 마이너로 밀려왔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과정 속에서 광신 종교화되었고 기묘한 도그마가 생겨났습니다. 이들은 도그마가 강한 만큼 권위주의적이며, 겉으로는 친절하고 양심적인 척을 하지만 그들만의 도그마에 맞지 않으면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폭력을 행사합니다. 그들은 소상공인, 소기업, 가치투자자 및 더 잘 살고자 하는 서민의 적인데, 그렇게 되는 이유는 커먼센스와는 동떨어진 사회주의 도그마 때문입니다.


 

 문제는 보통 사람들은 그들이 가진 사회주의 도그마를 잘 모르고, 그들이 겉으로 보이는 친절한 모습을 우선시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비판하는 말들은 박근혜의 하해와 같은 과오 때문에 설득력을 꽤나 잃어버렸고요. 언론권력과 문화권력을 장악한 지 오래인 좌파들의 오랜 프로파간다는 시민 전반을 좌파 포퓰리즘에 극단적으로 취약하게 만든 상태이기도 합니다. 특히 다큐 즐겨 보고, 팟캐 좀 듣고, 베스트셀러 교양서들도 챙겨본, 통상적인 상황이라면 교양인이어야 할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좌파 포퓰리즘에 대단히 취약해진 상황입니다.

 


 부모로부터 독립이 늦어지고 자식도 늦게 낳거나 가지지 않는 현 세태도, 청년층이 사회주의에 취약해진 한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주택 청약을 하고 매매해보고 직접 가정 살림을 꾸려보고 자녀의 미래를 위해 진지하게 현실적으로 고민해보는, 그런 인생 경험이 과거 세대보다 절대적으로 부족해지고 늦어지게 되는 것이지요. 이건 세상 물정 파악 중 한 부분이 늦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가난한 청년들이 우리 이니 하고 싶은 거 다 해!’라고 외쳤고, 이니는 마음대로 했습니다. 그 결과 강남에 부동산 가진 부자들은 더 부자가 되었고, 중산층과 부자의 간극은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 이후 최초로 벌어졌고, 서민들은 더 서민스러워졌지요. 그 원인이 아직도 이명박근혜에게 있다고 믿고 있는 종교인들이 많습니다만, 경제 정책과 현상과 지니계수 추이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면서 그러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겁니다. 정치학적으로 하지 말라는 짓 골라하고, 경제학 원론 수준에서도 하지 말라는 짓만 골라 하다가 이리 된 거라서요.


 

 정치는 종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정치, 경제, 사회적인 각종 문제들은 현실적이고 논리적인 방식으로 풀어야 합니다. 문재인 취임 후 모든 가치들은 무너졌고, 망상으로 아집부리고 떼쓰고 권력가지고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이는 게 정당화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런 비극적인 시대는 가능한 짧게 끝나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