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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10.28 도덕의 상실 11
  2. 2014.09.30 서북청년단 재결성? - 악은 새로운 악을 부른다 60

도덕의 상실

정치 2019. 10. 28. 21:25 Posted by 해양장미

 추천 브금

 

https://youtu.be/cRsICog0XgM

 

 


 민주정과 법치주의의 관계는 꽤나 흥미로운 면이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법치주의는 군주나 권력자의 전횡을 막고, 보다 공정한 사회로 가는 가운데 결국 민주정이나 공화정이 발달하는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었는데요. 막상 민주정에서 법치주의는 그다지 꼭 민주적인 요소는 못 됩니다. 특히 진보적 의제일수록 그러한데, 법의 본질은 보수적이며 강압적이며 관습적인 것이고, 권력자가 그러한 법의 본질을 어기게 되면 사법농단 또는 사법부 및 법관의 월권이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또한 민주정의 코어는 의회인데, 의회는 적극적으로 법률을 바꾸고 개선할 수 있는 기관입니다. 이론적으로 의회는 3권중 가장 강한 권한을 가져야만 합니다. 그래야 진짜 민주정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민주정치란 본질적으로 덕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통치자가 덕으로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는 옛 유학적 관념을 넘어, 각각의 자유로운 시민들이 충분한 도덕 관념과 주인의식을 가지고 협치를 하는 것이 바람직한 사회상일 것입니다.



 현대 주류 정치철학은 정치적이고 도덕적인 올바름이 무엇인가를 규정하는 데 많은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나는 롤즈의 의견처럼 서로 다른 포괄적 교설들이 중첩되는 지점에서의 중첩적 합의를 도모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현대적 자유주의자의 일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요약하자면 유연성과 포용성이 중요하며, 그런 만큼 불관용 및 불관용을 초래하는 것들에 대하여 배타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도덕주의는 때때로 복수나 심판, 과도한 흠집 잡기에 가까운 개념으로 오용되곤 합니다. 그러나 실제 우리가 도덕을 배울 때 관용과 용서가 중요하다고 배웠던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가치의 혼란, 즉 아노미에 일상적으로 시달리고 있으며, 옛 사람들보다 도덕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도덕의 상실은 특히 정치에서 쉽게 관측됩니다. 그것을 단적으로 드러낸 발언으로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들 수 있습니다. 문재인은 조국 장관을 여러 번 옹호하면서 그것이 합법임을 강조하였습니다. 물론 정경심이 구속된 상황에서, 사법적 무죄추정의 원칙을 존중하더라도 경제적 공동체인 조국의 무죄를 추정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또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정경심에 대한 각종 옹호를 청와대가 공개적으로 하였다는 것은 용납 불가능합니다만, 최대한 문재인의 발언을 용인하더라도 그의 발언은 너무나도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입니다.


 

 나는 문재인의 가장 큰 문제가 비도덕이라 생각합니다. 그는 도덕적인 척을 하고 대통령이 되었는데, 너무나도 끔찍하게 도덕을 붕괴시키고 있습니다. 아직도 그에 열광적인 시민들이 많은데, 그에 눈 뜨고 보기 힘든 아노미가 일어납니다. 만일 조국 장관이 무죄라고 가정해 볼까요. 그래도 그는 법꾸라지입니다. 우병우가 듣던 그 소리를 조국이 피할 수 있을까요.



 법꾸라지라는 게 무슨 뜻이겠습니까. 합법이지만 도덕적이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어진 명군은 덕으로 백성을 다스려야 한다는 건 공화정 아니라 군주정이었던 조선시대에도 상식이었습니다. 하물며 국가의 근본이라 할 만한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민주공화정에서는 어떻습니까. 약삭빠르게 법만 지키면 되는 것입니까? 물론 법도 지키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만. 문재인은, 조국은, 이 정권의 요인들은 너무나도 비윤리적인 정치꾼들입니다. 그런 그들이 도덕적인 척을 하고 집권했기 때문에, 이 나라의 도덕은 완전히 붕괴했습니다.


 

 나쁜 건 쉽게 퍼집니다. 이미 우리 일상에도 도덕과 관용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요새는 갈등이 일어나면 법을 가장 먼저 찾게 됩니다. 잘 사는 동네의 초등학교에서 싸움이 나면 변호사를 일단 부릅니다. 그런 시대가 되었습니다. 로스쿨 이후 변호사들이 쏟아져 나왔지요. 억울한 사람을 변호해주는 데 애쓰는 변호사는 거의 없습니다. 그런 식으로 변호사 일 하면 사무실 유지도 힘듭니다.


 

 그리고 문재인부터 페스카마호 변호를 맡았던 변호인이었지요. 대부분의 변호사는 보편적 도덕관념을 기준한다면 꽤 자주 비윤리적이어야만 하는 직업인입니다. 문재인은 기꺼이 보편적 도덕관념을 버리고 변호사의 직업윤리를 앞세울 수 있었던 직업인이었다고 생각하고요. 변호사는 가장 흉악한 범죄자의 변호도 기꺼이 맡는 게 올바른 직업윤리입니다. 그래서 법치주의와 국가 공동체의 도덕은 같을 수 없는 것입니다.


 

 문재인은 어쩌면 아직도 변호인의 관점에서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굳이 법조인이 정치 지도자를 한다면 가능한 판사의 관점이어야 하겠습니다. 변호사의 관점은 가장 나쁩니다.

 개인적으로 강성 야권 및 깨시민 파시스트들의 큰 사상적 문제 중 하나로 사회갈등 자체가 불러오는 위험성을 간과하는 경향을 꼽고 싶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절대선의 위치에 놓고, 선한 자신들이 권력을 잡아야 만 한다고 규정하는 가운데 그것을 위한 모든 사회갈등은 민주주의는 본래 이런 것이다라는 식으로 합리화시킵니다.

 

 그들이 대한민국 정치판의 한 주류로 부상한 이후,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보여온 태도는 끊임없는 갈등의 촉발과 공격이었습니다. 그들이 모두를 공격하는 가운데 온건하고 이성적인 사람들은 침묵하게 되었고, 시민 사회와 언론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많은 것이 황폐화되었고, 황무지 위에 극단적인 반대세력이 출몰하였습니다. 갈등은 갈등을 부르고, 악은 악을 부릅니다. 세상에 서북청년당 재결성이라니, 강성 야권의 업적은 정말 대단합니다.

 

 돌이켜보면 참 안타깝습니다. 고 김대중 대통령은 자신을 해치려 한 자들도 용서하고, 사회 통합을 위해 애썼습니다. 노무현 정권이 자신의 세력에 칼을 꽂았을 때도 그는 용서했습니다. 그러나 김대중의 그러한 정신을 이은 사람은 보이지 않습니다.

 

 굳이 말할 필요가 있나 싶지만, 서북청년단 재결성 같은 소리가 나오는 건 가볍게 보면 안 됩니다. 서북청년단은 역사적인 비극이라 할 만한 범죄 집단이고, 그런 집단이 부활하는 것은 인류의 보편적 기준에서 용인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민주적인 관점을 떠난 것입니다. 민주정체가 아니라 귀족정이나 왕정일지라도 그런 집단은 용인해서는 안 됩니다

 

 새누리당은 서북청년단의 재결성을 적극적으로 막고, 자유민주정체 국가의 집권여당으로서 품위를 지키고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꼬인 정국을 쉽게 돌파하기 위해 악의 손을 잡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저는 현재 새누리당이 제정신과 균형 감각을 상실한 면이 있다고 봅니다. 서북청년단을 결성하려는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그 배후에 새누리당 차원의 지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뭘 만들고 뭘 어째도 어지간해서는 별 사고는 못 치겠지만, 결코 현명한 방식이 아닙니다.

 

 만일 서북청년단 같은 게 진짜로 활동하면 강성 야권과 깨시민들도 더더욱 과격한 언행을 보이게 될 것입니다. 그들의 파시즘적 속성도 다음 단계로 본격적으로 진화해 사회 갈등은 더 첨예해지고, 보다 위험한 사회가 될 확률이 높습니다. 집권여당은 국민을 통합시키고 평화로운 사회 분위기를 조성할 의무가 있다는 걸 상기해야합니다. 만일 그런 의무를 지키지 않는다면 새누리당의 미래도 결코 밝지 않을 것입니다.

 

 현재의 한국은 민주정체가 아닌 입헌주의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입헌주의가 전제하는 시민적 자유와 정의, 인권을 추구하는 정신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시민적 자유란 무엇이든 해도 되는 무질서함이 아니고, 서로의 권리와 시민권을 존중하고 나의 권리와 시민권을 지키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서북청년단의 재결성은 입헌적 질서에 대한 도전이자 체제에 대한 반역입니다.

 

 사실 서북청년단 재결성 같은 어이없는 소리가 나올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의 시민 각자에게 입헌적 질서의 혜택이 충분히 체감되고 있지 못하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강성 야권은 이명박 집권 이후 정권에 대한 반대만을 반복하며 대안적 가치를 제시하지 못했고, 이번 국회에 들어서는 국회선진화법과 더불어 아예 입법마비를 일상화시키는 가운데 시민들에게 큰 고통을 전가하였습니다. 또한 야권에 보다 가깝던 광범위한 시민 사회와 진보 정치권은 민주당계 정치권에 포섭되고 반MB에 매몰되어 와해되다시피 하였고, 노무현 사후 야권 언론도 너무나 변질되어 언론으로서 전혀 제 기능을 못하고 있습니다. 87체제는 실패했고, 신자유주의와 IMF, 글로벌 금융위기 등으로 인한 침체와 불황은 우리의 국가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악조건은 시민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쉽게 합니다. 강성 야권과 깨시민들은 이러한 악조건의 조성에 너무나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앞으로 더 큰 비극이 출현할지, 아니면 우리 사회가 위기를 이겨내고 다시 희망을 가질 수 있을지는 하기 나름입니다. 계속 나쁜 선택과 사건들이 이어진다면, 우리는 또 한 번 역사에 비극적인 기록을 쓰게 될 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