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진보의 길

경제 2014. 8. 21. 19:25 Posted by 해양장미

 근래 최경환노믹스(초이노믹스)가 따끈합니다. 저는 최경환호의 전반적인 행보를 지켜보고 있는 중이고, 현재까지의 움직임과 반응에 어느 정도 이상 긍정적입니다. 그런데 사실 제 관심은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정책 못지않게 그 비판자들과 반대자들에게도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정책의 성패에 적잖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일단 본문에서는 이러한 주변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최경환노믹스 자체는 사실 제가 그 동안 줄곧 주장해왔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런 움직임은 합리적인 정부라면 당연한 것이고, 가장 큰 불만이라면 너무 늦었다는 정도입니다. 4~5월부터는 저렇게 했었어야죠. 물론 세월호 특별법과 엮어 법안 통과 딜레이를 시킨 야당의 잘못도 큽니다만, 일단 그 이야기는 차후 세월호 특별법을 이야기할 때 논하도록 하겠습니다.

 

 본 이야기를 시작하자면, 당연하게도 최경환의 경제 정책에 대한 반응은 꽤나 대조적인 편입니다. 물론 어떤 경제 정책이건 잡음이 없을 수는 없겠습니다만, 이 정책의 뿌리가 되는 마인드를 살펴보고 이견들의 뿌리도 살펴보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몇 번에 걸쳐 간략하게 이야기했습니다만, 이번에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보자면 대략 경제학파엔 크게 다음 분류 정도가 있습니다.

 

1) 케인즈주의 경제학파

2) 마켓 통화주의 경제학파

3) 마르크시안 경제학파

4) 오스트리아 경제학파

5) 행동주의 경제학파

6) 제도주의 경제학파

 

 이 외 분류방식에 따라 여러 다양한 마이너 경제학이 있지만, 이 정도만 이야기해도 굵직한 분류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분류들에 대해 약간 설명하자면, 1)에서 2)까지가 소위 주류경제학입니다. 2)는 시카고학파, 민물 경제학파, 신자유주의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다만 실제 시카고대학의 경제학은 최근 들어 통화주의 일색을 벗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그에 따라 민물경제학이라는 표현도 더는 딱 들어맞는 표현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편의상 신자유주의라 표현할 때가 많고요.

 

 마르크시안 경제학파는 보다 널리 퍼진 표현으로는 마르크스 경제학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각주:1]. 실제 이 그룹은 경제학이라는 밝은 바운더리 내에서의 영향력은 이제 거의 전무합니다만, 이 세상의 가장 어두운 영역에서는 아직 통하는 구석이 있습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한국 사회의 경제 담론 노이즈 중 많은 부분이 이 어둠에서 기인합니다.

 

 오스트리아 경제학파는 쉽게 이야기하면 하이에크 스타일입니다. 이쪽을 2)하고 혼동하는 분이 꽤 있는데, 그러면 곤란합니다. 오스트리아 학파가 통화주의 학파보다 훨씬 심하게 자유방임스타일입니다. 통화주의는 어느 정도 정부의 간섭을 전제하는데, 오스트리아 학파는 그것조차 쓸데없는 간섭이라는 입장이랄까요. 물론 이들의 존재와 혼동도 한국에서는 좀 경제 담론 노이즈에 영향을 줍니다.

 

 그리고 행동주의 계열은 쉽게 이야기해서 경제학에 심리학을 접목한 것으로, 근래 빠르게 성장 중이며 각광받고 있습니다. 다만 문제는 한국 현실에서 행동경제학은 경영이나 투자 지침 정도로 주로 활용되고 있고, 시민사회 내 거시경제 담론에선 일종의 노이즈에 가까운 영향을 주고 있기도 하다는 데 있겠습니다. 쉽게 예를 들자면 실제 주류 및 행동경제학에 대한 이해는 거의 없는 사람들이 주류경제학을 비판하기 위해 행동경제학을 들이미는 것 같은 것 말이지요.

 

 마지막으로 제도주의는 간략하게 장하준을 예로 들겠습니다. 종종 블로그에서 이 입장을 이야기해왔습니다. 참고로 제가 본 블로그에서 이야기하는 건 주로 케인즈-행동주의-제도주의쪽 입장입니다. 통화주의와는 약간의 거리가 있고, 마르크시안이나 오스트리아 쪽과는 거리가 멀다고 이해하시면 편할 것입니다.

 

 그럼 본래의 문제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한국 경제 담론의 가장 골치 아픈 문제는 소위 진보개혁그룹이 이런 투박한 분류조차 전혀 이해를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통화주의와 오스트리아를 구분 못하는 건 당연하고, 케인즈주의와 오스트리아도 구분을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더 심한 경우는 제도주의와 오스트리아를 세트메뉴로 묶어서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게 극단적인 경우라 생각하실지 모르겠으나 그렇지 않습니다. 소위 진보 언론 수준은 진짜 심각합니다. 더 나아가 진보개혁정당 수준도 알면 알수록 처참합니다. 특히 아주 나쁜 케이스가 마르크시안을 기반으로 거기에 안 맞는 말은 죄다 주류경제학 = 신자유주의라고 생각하는 케이스인데, 의외로 흔합니다. 사실 이런 건 경제에 대한 이해가 거의 전무하니까 나오는 것입니다만, 전반적인 시민 사회의 인식을 크게 왜곡시키고 있지요.

 

 현실을 보자면 경제학에 있어서 온건 보수주의적 입장은 통화주의 쪽입니다. 더 분명하게 강한 보수쪽에 가까운 입장은 오스트리아학파 쪽이라고 할 수 있고요. 케인즈주의는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입장입니다. 케인즈주의는 실질적으로 이 시대의 주류경제학 그 자체나 다름없고, 케인즈주의 내에서도 비주류쪽 계열들이 있으며 주류케인즈주의라고 할 만한 것 내부에서조차 무시 불가한 견해 차이가 또 있다 보니 상당히 다양하게 나눌 수도 있긴 합니다만, 모든 케인즈주의는 통화주의에 비하면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강한 개입을 전제합니다. 소위 수정 자본주의는 많은 경우 1920년대에 등장한 케인즈주의를 뜻하기도 합니다. 사실 통화주의 또한 케인즈주의가 없었다면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고, 오스트리아학파와는 달리 일정 이상 시장에 개입하는 것을 당연히 여깁니다.

 

 또한 행동주의는 매우 진보적이고, 제도주의 또한 다른 의미로 진보적입니다. 이 관점들은 주류경제학을 곧잘 비판하지만 또한 그것을 보완할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저는 이런 보완관계의 관점들을 가능한 한 융합시켜서 이야기하려 합니다. 그러나 마르크시안, 즉 다른 표현으로 맑스경제학은 예외입니다.

 

 역사적인 이유로 한국에서는 넓은 의미로의 마르크시안이 너무 오랜 시간 진보 소리를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마르크시안은 여러 번 이야기해왔듯 경제학취급을 아예 못 받습니다. 현실과는 괴리된 사변적이고도 예언적인 주장이 많고, 근본적으로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부정하기 때문이지요. 어떻게든 현실을 파악하고 개선하려고 하는 게 아니고, 어차피 자본주의는 망할 거라고 생각하고 접근하기 때문에 사실 쓸모가 없습니다. 과학적인 학문이 되려면 이러저러하고 어째서 이럴 확률이 높다.’가 되어야하는데, 마르크시즘은 어쨌든 미래는 이렇게 될 것임.’ 같은 비과학적 예언에 기반을 두는 경향이 짙다 보니 결국 종교가 되는 거지요. 사실 많은 사람들이 종교적이기 때문에, 마르크시안의 말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잡아끄는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체로 근거는 없지요. 별로 맞은 적도 없고. 물론 워낙 자본주의 자체에 대해 비관적이다 보니 경제위기 때마다 기세가 좋아지지만 그것도 잠시뿐입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마르크시안은 아직도 나름대로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운동권과 진보 및 개혁세력의 역사 때문입니다. 9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대학 운동권은 강력했고, 일종의 마르크시즘도 널리 퍼졌습니다. 이 운동권 출신들은 현 정치권에도 상당수가 자리 잡고 있고, 시민단체나 소위 진보쪽 언론에도 적잖은 세력이 있습니다.

 

 이들은 한국에 완성도 높은 민주정이 자리 잡는 데까지 적잖은 공을 세웠습니다. 다만 그 이후 이들에 의해 빚어진 문제는 하나 둘이 아닙니다. 본 블로그에 여러 번 이야기해왔듯 사실 이들은 민주정을 지지하지 않으며, 87체제를 일종의 중간 단계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들의 사상에 전혀 완성도가 없다는 것입니다.

 

 운동권 출신들은 예외 없이 민주화 이후 공산주의 동구권의 몰락을 경험했습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내부 모순 때문에 무너질 거라 예언했습니다만, 실제로 먼저 무너진 건 공산권이었던 것입니다.[각주:2] 또한 민주화로 인해 반공주의가 옅어지고 공산권에 대한 정보 및 각종 마르크스주의가 양성화되면서 이들의 몰락은 가속화됩니다. 군사정권이 못 보게 탄압할 때는 신비스러운 기대감이라도 있었는데, 막상 이론 체계를 보니 거의 망상 수준에 또 인물들의 꼰대성은 박정희 뺨을 후려칠 정도인데다 동구권은 이미 망한 상황이었다는 것입니다. 이후 학생운동권은 민간인을 프락치로 몰아 폭행살인을 저지르는 등 과격시위를 거듭한 끝에 민심을 잃고 사멸합니다.

 

 사상은 무너졌으나 그래도 권력은 남은 이들이 많았습니다. 이들은 3당 합당 이후의 신한국-한나라-새누리당 세력에 네거티브를 일삼으면서 권력을 강화해 나갑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떠한 일관적인 사상도 없고, 젊은 시절 익힌 마르크시안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곤 합니다. 이런 악영향은 후대에 계속 이어졌고, 이후 안티조선운동과 결합하여 광범위한 반지성적 사상 오염정도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을 퍼뜨립니다. 조선일보야 예나 지금이나 문제가 많지만, 그보다 더한 것들이 양산되었죠.

 

 또 문제가 큰 게 운동권 386-486중 운동의 맨 앞에 열정적으로 서지는 않고, 동조는 하되 본인 앞가림을 우선하고는 그 다음에 열성적인 운동권에게 부채의식을 가지게 된 부류입니다. 이들은 대체로 다른 직업을 가지다가 현 야권에 직간접적으로 포섭되었는데, 그 결과 문화권력을 거의 완벽하게 장악하고 사회의 각층에서 편향적인 압력을 행사하는 상황이라 봐도 무방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현명하여 사회가 돌아가는 복잡성에 대한 통찰이 뛰어나고, 계속 지적 수준을 선도적으로 올려나가는 성향이라면 문제가 안 되는 정도를 넘어 좋은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 반대라서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속어로 완전 수꼴에 꼰대죠. 현실의 복잡성에서는 눈을 돌리고, 내가 아는 게 옳다고 믿으니까요. 그들의 의식 기반은 전근대적 사회와 군국주의, 그리고 마르크시즘이고요.

 

 사실 한국 사회는 역동적이고 진보적 의지가 강한 편입니다. 2002년 노무현의 당선은 그 한 예시라 할 수 있습니다. 연구자료들을 보면 당시의 노무현은 60대에게도 표를 많이 받았었어요. 그렇지만 그 결과는 사람들을 크게 실망시켰지요. 노무현 본인부터가 어떻게 국가를 통치해야할지 감을 못 잡았고, 소위 진보개혁그룹 전체가 갈팡질팡하면서 전반적인 통치철학의 부재를 드러냈으니까요.

 

 저는 통칭 진보개혁세력이 그 네이밍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적절한 이름 짓기가 어려워서 그냥 저리 칭하고 있습니다만, 실제로 이 그룹은 전혀 진보적이지 않습니다. 정말 여러 번에 걸쳐 말해왔지만, 저들은 이 사회를 어떤 방향으로 만들어야하고 그 구체적인 이미지는 어떠하며 그것을 위해 무엇을 해야겠다는 개념 자체가 거의 없습니다. 다만 구시대적이고도 막연한 운동의 관성에 의해 진보개혁세력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매사에 상대편에게 반기를 들면서 반사이익을 노릴 뿐이지요. 유토피아적 치기가 앞서거나 사상적 기반이 거의 없는 보수적 도덕주의를 들이미는 게 일상적이고요.

 

 또 처음 말했던 경제문제로 돌아가보면 사실 수많은 진보개혁파 인물들은 경제문제에 초연해하고 싶어 합니다. 돈보다 중요한 게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실질적으로 돈보다 중요한 걸 지키려면 돈(=재화)이 필요합니다. 화폐란 재화의 환산 및 교환단위이며, 기본적인 재화가 없으면 사람은 살 수 없습니다. 삶의 질을 높이는 데는 필연적으로 더 많은 재화가 들어갑니다. 그렇기에 경제문제가 중요한 것입니다. 심지어 재화의 여분이 확보되지 않으면 문화발전도 없습니다.

 

 이 주제는 공산주의적 마인드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공산사회주의는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으니까요. 물론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모든 시도는 다 실패했습니다. 사람 아니라 강아지라도 자기 몫은 지키려 드는 게 본능이니까요. 이 연장선상에서 현실적으로 왜 자본주의를 채택한 서방 국가가 민주정을 꽃피웠는지, 공산주의를 표방한 동구권이 거의 예외 없이 폭압적인 독재 정치가 되었는지도 성찰이 필요합니다. 물론 이 성찰이 심하게 부족한 사람들이 소위 진보개혁그룹에 너무 많습니다. 정치인들만 그런 게 아니고 그 광범위한 지지그룹 전체가요.

 

 이 연장선상에서 이명박 취임 후를 돌아봅시다. 그 땐 거의 전 국민적인 안티MB 운동이 있었습니다. MB의 지지율은 노무현에 버금가게 바닥을 쳤었지요. 그러나 MB는 금방 지지율을 어느 정도 회복했고, MB운동은 단순히 MB를 반대하는 것 이상으로 진화하지 못합니다. 결국 현실적 대안을 제시하고 현실 속에서 그나마 진보적인 움직임을 만들어내고 있는 건 박근혜고요. 소위 진보개혁그룹이라는 사람들은 진보적인 정책에 태클이나 걸고 훈수나 두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그들이 아무 생각도 없었던 건 지난 대선 때 문재인의 형편없는 공약만 봐도 잘 드러납니다. 이번 국회 내내 법안처리 발목만 잡고 있는 것 역시 마찬가지고요.

 

 실제 최경환노믹스에 대한 것만 해도 그들이 얼마나 한심한지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일단 주류진보언론으로 꼽히는 경향신문 기사를 하나 링크해 보지요.

 

‘[사설]최경환 경제팀, 경기 불씨는 지폈다지만 (링크)’  


 이 정도면 솔직히 눈뜨고 못 봐줄 수준의 사설입니다. 일단 위에 말한 경제학파 구분을 전혀 못하다보니, 엉뚱한 말이 마구 튀어나옵니다. 최경환의 정책을 신자유주의라고 무개념 답정너짓을 하는 건 물론이고, - 그의 정책은 통화주의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 정작 본인은 부채형 정책은 당장의 경기부양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오래가지 못한다.’와 같은 리얼 신자유주의자 뺨을 후려칠 것 같은 소리부터 하고 시작하지요. 그 다음에도 참으로 어이가 저 멀리멀리 사라지는 말이 연잇습니다.

 

 심지어 마무리는 일본은 지난 20년간 1000조원이 넘는 돈을 뿌렸지만 성과를 보지 못했다.’라는 식인데, 정말 말 한번 잘했습니다. 일본이 왜 저렇게 돈을 뿌렸지만 성과를 못 봤는데요? 좀 재정정책 펴려고 하면 반대 움직임이 있어서 제대로 경기부양을 못시킨 채 재정확장을 멈추고, 또 그러니까 침체가 이어지고 다시 재정정책 좀 펼치려고 하면 또 누군가 태클 걸어서 멈추고 이러면서 다 합쳐보니 돈은 엄청나게 썼는데 결국 제대로 재정정책 한 번 못 펼쳐보다가 아베 정권 들어서야 좀 작정하고 재정정책 펴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일본이 어떻게 망해갔는지를 보고 배워야 하는데, 그 양상은 전혀 모르면서 무책임한 말만 내뱉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런 무책임함이 어떤 결과를 낳는데요.

 

 그나마 이건 언론 하나라 치고, 그럼 실제 130석 거대 야당 새민련은 어떻게 나오고 있나 봅시다.

 

최경환노믹스, 임금소득 증대 노력 없어아베노믹스보다 열등’” (링크)

 

 전 사실 이 기사를 보고 처음 든 생각이 참 답답하고 답이 없다가 아니고, ‘진짜 양심도 없다였습니다. 아니, 작년에 소득세 증세 막은 게 누군데요. 또 현재의 비정규직 문제도 그 근원책임은 민주당계에 있습니다. 그렇지만 원래 새민련 인간들이 양심이 정말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으니까 일단 넘어가겠습니다. 최경환이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 없는 것도 아니고요.


 그럼 최저임금 문제가 나와서 말인데, 어디 안 올리고 있나요? 이미 엄청나게 올리고 있습니다. 그래봐야 쥐꼬리라고 하실 분 많은 거 알고 저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만, 지금 최저임금 올리는 건 대책 없이 올리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생산성이 안 오르면 임금도 못 오른다는 건 먼 옛날 마르크스도 인정한 거예요. 임금은 생산성이 올라야 오릅니다. 그런데 생산성 오르는 속도보다 최저임금 오르는 속도가 몇 배는 빨라요.

 

 제대로 임금을 올리고 싶으면 결국 생산성을 높여야 하는데, 불경기에선 기업이 돈을 벌기 힘듭니다. 그러니까 경기가 나쁘면 통화 정책뿐 아니라 재정 정책도 펼쳐서 경기를 살려야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이익을 본다는 게 진보적인거시경제에 대한 접근 방식이라는 겁니다. 여기서 어쨌든 불경기는 불경기로 누가 죽건 망하건 놔두자라고 하는 게 극심한 수꼴 또는 경제 모르면서 훈수는 두고 싶은 꼰대의 자세고요. 수꼴 꼰대들은 어디서나 본인이 답 안나오는 꼰대인 걸 잘 모르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규제완화가 가계부채를 확대시켜 중장기적으로 내수위축 심화를 유발한다는 건 참 주옥같은 발언입니다. 일단 유동성 공급이 내수위축을 시킨다는 건 경제학적으로는 킹 오브 수꼴쯤 되는 발언이거든요. 부채가 확대되면 통화가 늘어나는데 이 때 내수가 위축된다는 말은 진짜 통화주의자들도 안합니다. 하도 말이 이상하니 중장기적으로라는 전제를 단 것 같은데, 저건 단순한 비관론 이상은 아닌 게 재정정책이 실패해서 경기가 의도한 만큼 부양되지 않을 때 재정건전성은 나빠지지만 경기는 충분히 좋아지지 않아 내수가 위축될 수 있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저 발언은 중간 과정은 설명할 수 없지만, 어쨌든 정책은 실패하게 될 것임같은 저질 답정너 발언이라는 겁니다. 인터넷 깨시민들도 아니고 국회의원이 나서서 저런 발언을 하니 역시 새민련다운 패기다 싶습니다.

 

 첨언하자면 규제완화는 정부가 그냥 하는 게 아닙니다. 이런 정책은 실제 위험성이 없지 않다 보니 다수의 경제 연구기관들이 연구하고 자료 발표하고 이게 적잖게 축적되고 정치인, 관료들 논의하고 나서야 나름 조심스럽게 들어간 겁니다. 제가 본 자료들에 의하면 최경환노믹스는 그리 위험하지 않습니다. 각종 연구자료들은 최경환의 발표 이전에 이미 쏟아져 나왔습니다. 쓸데없이 신중하게 한다고 너무 늦어서 문제죠.


 게다가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 문제도 그렇습니다. 복지를 하려면 돈이 있어야죠. 근데 경기가 나쁘면 세금이 안 걷힙니다. 실제 세수 걷히는 걸 보면 세율이 아닌 경기에 따라 세수가 왔다 갔다 합니다. 오히려 연구를 해보면 세율하고 세수는 음의 관계까지 성립합니다. 세율을 올리면 세금은 오히려 덜 걷히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겁니다. 이건 현실이다 보니 사실 이걸 이해 못하면 복지정책도 제대로 발제하는 게 어렵습니다. 진보무늬 답정너 꼰대들은 현실을 받아들이기엔 멘탈이 너무 약하다보니 인정할 수 없겠지만요.

 

 복지정책은 한 번 해놓으면 그 다음 조절하는 게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처음에 충분히 안정적인 재원을 확보하고 해야지, 막무가내로 하면 제2의 국민연금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사실 불경기일 때 저소득층에 재정을 직접적으로 쏟아 붓기 어려워지는 원인이 됩니다. 복지론자들은 저소득층에 직접적으로 돈을 풀면 그들은 여유가 없어서 돈을 쓰니까 선순환이 일어난다.’는 식의 주장을 하는데, 사실 막상 해보면 별로 그런 경우는 없기 때문입니다.

 

 불경기 시 재정 정책의 목표는 일차적으로 민간지출을 늘리는 것입니다. 불경기란 돈이 안 도는 소위 돈맥경화를 의미하기 때문에, 정부가 지출을 늘려 소비를 촉진하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정부는 연쇄적인 반응을 예상하고 연구한 후 그 곳에 재정을 투입하게 됩니다.

 

 이것이 성공하여 경기를 회복시킬 수 있다면 세수가 늘어나고 그 늘어난 세수는 복지 등 다른 정책에 쓸 수 있습니다. 선순환이 일어나는 거지요. 그렇지만 실패할 경우에는 돈을 풀었는데 민간지출은 늘어나지 않고 오히려 민간에서 부채를 갚아버리는 현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사실 이 경우 가장 좋은 대응방법은 니들이 쓸 때까지 돈을 푼다.’ 인데, ‘봐봐. 안되잖아.’하고 돈을 그만 풀면 처음부터 안 푼 것만도 못하게 됩니다. 이게 위에서 말한 일본이 겪은 일이고요. 괜히 재정정책에 금융규제완화가 동반되는 게 아닙니다.

 

 근거도 연구도 이성도 대책도 없이 경제 전반은 시장에 맡기고, 그냥 부자들한테만 세금 걷어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면 정부 경제정책은 다라는 태도는 진보도 뭣도 아닙니다. 그저 조금 인도적이고 세상일에 별 관심 없는 보수주의자의 태도일 뿐이죠. 사실 진보개혁세력 발언들을 보고 있자면 노무현 때 괜히 그토록 신자유주의 스타일이었던 게 아닙니다. 마인드 자체가 그래요. 그들은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에 관심이 없습니다. 일반인이 그래도 바람직하지는 않은데, 그런 사람들이 진보개혁정치인을 자처하니 큰 문제죠.


 이제 진보 지지층에겐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지금껏 해 왔듯 앞으로도 쭉 가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하면 앞으로도 어둠과 함께할 따름입니다. 운이 좋아서 집권을 하더라도 성공할 수 없지요. 자격이 없고 실력이 안 되니까요. 그렇지만 편한 길입니다. 개념인 코스프레도 할 수 있고, 저쪽 욕도 신나게 할 수 있지요.

 

 그렇지만 진짜로 사회의 진보를 원한다면 완전히 다른 길을 걸어야합니다. 한국의 소위 진보개혁세력이 지금껏 걷지 못했던 가시밭길 말입니다. 솔직히 말이 바른 말이지, 87체제 이후 소위 개혁세력은 현 대통령 박근혜에 비하면 엄청 편한 길 걸었습니다. 학생 운동권 시절부터 돈과 권력과 함께하면서도 진보 정의 개혁 코스프레하고 특권층으로 살아온 사람 엄청 많습니다. 새민련이 현재의 형편없는 모습이 된 건 오랜 세월의 결과입니다.

 

 전 기존의 진보개혁세력 인물들에게서는 그 어떠한 희망도 찾지 못합니다. 이미 인재의 무덤으로 악명을 높이고 있는 공식 콩가루인 마당에 갑자기 특급 인재가 하늘에서 떨어질 수는 없는 법이죠. 본 블로그에서 몇 번에 걸쳐 말해왔듯 진짜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사람은 이제 그 쪽에 안 붙습니다. 이미 실패한 정치인이 된 안철수도 만약 성공하려면 민주당과 승부를 해서 민주당을 부술 필요가 있었지요. 안철수가 비록 정말 못하긴 했지만, 아무리 잘했어도 민주당하고 합친 이상엔 방법이 없었을 겁니다. 차라리 새누리당 들어가서 대통령 되는 게 훨씬 쉬웠을 거라서요. 1년 전에 이렇게 말했으면 납득 못했을 분들 중에 지금은 그럭저럭 수긍하실 분들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결국 누군가는 어떤 게 진짜 진보의 길인지를 발견하고, 성찰하고, 대안을 만들어서 굳은 의지로 가시밭길을 걸어야 합니다. 다만 새 인물이 나올 때 필연적으로 수반될 진보무늬 기득권과 그 추종자인 깨시민들의 폭력적 견제는 시민 사회에서 보호해줄 필요가 있겠지요.

 


  1. 시각에 따라 마르크시안과 마르크시스트를 구분하기도 합니다만, 본문에서는 구분하지 않습니다. [본문으로]
  2. 굳이 마르크스를 좀 변호하자면 이 공산권은 등장 시부터 마르크스의 생각과는 달랐습니다. [본문으로]

 시간문제로 조금 짧게 씁니다.

 

 휴대폰 보조금으로 트러블을 일으킬 때부터 이미 정부를 비판하는 여러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저 역시 현 정부가 첨단산업에 대한 이해가 너무 부족하며, 기술적 분야의 미래를 설계해나갈 능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팬택 문제의 사업적인 부분은 첨단기술과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현 정부가 이런 데서도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장점이 없는 셈입니다.

 

 지난 시간동안 박근혜정부는 어려운 사정의 팬택이 더욱 어려워지는 방향으로 무리하게 보조금 정책을 운용하였습니다. 이동통신 시장은 정부의 입김이 큰 시장으로, 자유시장과는 거리가 멀기에 정부의 올바른 정책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정부는 공정하지 않았고 이 문제에 있어 전혀 통찰력이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정부는 국익을 위해 팬택발 기술유출을 막고, 팬택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챙겨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팬택 문제는 이동통신사들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정부가 뒤에서 어떻게 손을 쓸지, 저로서는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겉으로는 정부 일이 아니다라는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게 진심인지 작전인지는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잘 안 풀릴 경우, 다른 건 몰라도 팬택이 외국에 팔리는 사태만은 막아야합니다. 미국이라면 국가적으로 중요한 기업을 외국에 넘길까요? 그들은 결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팬택 문제가 악화될 경우, 정부가 그것을 방관한다면 저는 박근혜정부를 강도 높게 비판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 터무니없는 신자유주의의 길을 가느냐, 아니면 부친의 뒤를 이어 제 역할을 하는 정부를 운용하느냐의 분수령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가급적 이 문제가 잘 해결되었으면 합니다.

 

 

 

자본주의의 진화 - 마이너스 이율의 도입

경제 2014. 6. 8. 16:52 Posted by 해양장미

 경제학은 왜 필요할까? 이번엔 이것부터 간단히 설명을 하고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경기가 나빠지면 개개인 입장에서는 씀씀이를 줄이는 게 현명한 선택이 되지만, 사회 구성원 모두가 그러면 불경기는 더욱 심해지고 모두들 더 가난해진다. 사회에 불안과 불신이 팽배해지고 모두들 은행에서 현금을 인출하려고 하는 뱅크런 현상이 발생할 경우, 은행은 예금액 전부를 현금으로 보유하고 있지 않기에 (은행의 현금 보유 비율을 예대차라 한다.) 파산하게 된다. 이것이 공황이고, 경제학 중 많은 부분이 이런 상황을 방지하고 해결하기 위해 발전하였다.

 

 개개인이 모두 과도하게 이기적이 될 때 그게 사회에 파괴적인 결과를 낳는 건 세상의 당연한 이치이다. 혹자는 자본주의가 이기심을 과도하게 긍정한다고 주장하지만, 대체로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경제학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거나 사이비거나 특별히 이기적인 사람들이다. 위대한 경제학자들은 대체로 사회 구성원들의 윤리성과 신뢰, 공동체 의식 등도 중시한다. 성공적인 시장에는 그런 게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불황이 빚어질 때마다 윤리성의 회복을 강조하며, 그들 각자가 상상하는 자본주의 이전 시대상으로 돌아가거나 - 실제로 그들이 상상하는 것과 같은 시대는 없었지만. - 아니면 사회주의 체제를 구축하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은 언제나 검소함을 주장하기 때문에, 경기를 회복시키고자 하는 경제학자들(또는 정부 및 관료들)에게는 골칫거리가 된다. 사실 아무리 심한 불경기라도 사람들이 돈을 펑펑 써대기 시작하면 금방 끝난다. 불경기란 시장에 돈이 잘 돌지 않는 현상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심리와 가치관은 대체로 문제를 악화시킨다.

 

 그래서 정부는 금리를 조절한다. 비록 금리는 (채권과 환율 때문에) 정부가 완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경기를 조절하고 정부 재정을 관리하는 데 있어 가장 전통적인 수단이다. 그런데 근래 들어 선진국들의 부채가 불어나게 되면서 금리는 점차 낮아졌고, 결국 금리의 조절만으로는 불충분한 시대가 다가왔다. 그래서 미국과 일본은 양적 완화라는 비전통적 방법을 채택하게 되었고, EU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되었다. 단기금리에 음수를 적용하게 된 것이다. 해당 소식을 링크하겠다.

 

‘ECB, 은행 단기예금에 첫 마이너스 금리 적용 (링크 클릭)’

 

 내가 생각하기에 마이너스 금리는 지금껏 있어왔던 자본주의의 기본 법칙을 (직관적으로[각주:1]) 뒤흔드는 행위다. 근대 자본주의의 발달은 금리와 예대차로부터 시작하였다. 금리가 있으니 사람들은 은행에 돈을 맡겼고, 은행은 예대차를 이용해 없는 돈을 창조하여 빌려줌으로 시중에 통화량을 늘렸다. 이렇게 늘어난 통화량은 호황을 만들고 모두를 부유하게 하는 데 크게 공헌하였으나, 이 시스템은 태생적으로 돈이 돈을 벌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흔히 진보좌파들이 지적하는 자본주의의 단점중 정말 많은 부분이 사실 ‘(양수인) 금리가 있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금리가 양수일수도 있고 음수일수도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아직 기준금리는 음수가 되어보지 않았고, 기준금리를 음수로 만들려면 화폐 체계를 완전히 바꿔야하지만 실제 채권금리가 음수가 되었던 사례는 최근에 있었고, 이는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자본주의의 진화라 할 수 있는 변화다. 만약 기준금리가 음수가 될 수 있다면, 화폐의 의미 자체가 변한다.

 

 본래 자본주의에서 현금은 기준금리 대비 부채이며, 미래 생산성에 대한 부채였다. 그런데 기준금리가 음이 되면, 현금은 그 자체로 자본이 된다. 사실 그렇기에 기준금리를 음수로 만들면서 기존 법칙들을 유지하려면 화폐를 없애야 하는데, 이런 이야기는 개인적으로는 사담으로나 하던 것이었지만 이젠 현실 앞에 등장해 있다. 난 사실 더 이상 세상에 버스 토큰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듯, 실물화폐도 그다지 필요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를 한국이 결정할 수는 없다. 세상의 기축통화는 달러다. 그렇더라도 과거 금본위제가 어느 날 사라졌듯, 미래의 어느 날 실물화폐가 사라질 날이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금리 기준점을 0에 두고 +, -를 조절할 수 있다면 이론적으로 불황을 극복하기는 훨씬 쉬워진다. 불황을 극복하는 데 있어 가장 손쉬운 방식은 현금을 무가치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경제적 불안감을 느낄 때, 사람들은 현금을 가치 있고 안전한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흐르지 않는 현금만큼 무가치한 것도 없다. 경제학자들은 오래도록 군중의 불안감 및 현금 숭배와 싸워왔다.

 

 필요하다면 모든 실물 화폐를 없애버리고, 중앙은행은 -5% 기준금리 같은 것도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현금을 쥐고 있는 게 정신 나간 짓이라고 생각하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모두가 최소한으로 돈을 쓰는 시장은, 모두가 최소한으로 돈을 버는 시장과 같다. 물가 문제에선 심한 인플레이션만 막으면 된다.

 

 보기에 따라 약간 난해했을지 모르는 이야기를 마치면서 부연하자면, 내가 이야기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케인즈주의적 관점이다. 그리고 신자유주의자들은 이것과 정 반대로 이야기하고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정부의 재정 정책은 불필요하며, 물가를 안정시키는 것 외엔 시장에 개입할 필요조차 없다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그들은 위기일 때 도리어 금리를 높여 투자를 촉진하자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한국은 IMFIMF의 지시로 그런 결정을 했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참으로 고통스럽고 끔찍했다. 그러나 이 사회의 수많은 신자유주의자들은 그 경험에서 별로 배운 게 없는 것 같다. 물론 자칭 진보좌파들도 경제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 신자유주의자들의 달콤한 말에 자꾸만 넘어간다는 것도 또 한 번 강조해야하겠다.

 


  1. 사실 양적완화도 판단하기에 따라선 자본주의의 기본 법칙을 뒤흔드는 행위일 수 있지만, 직관적으로 사람들에게 그렇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본문으로]

2014. 6. 4 지방선거 감상

정치 2014. 6. 6. 15:13 Posted by 해양장미

 야권은 비노 지도부를 가지면 언제나 선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왔다. 이 법칙은 이번에도 계속되었고, 친노 지도부가 패배의 아이콘이었음을 다시 한 번 증명하였다.

 

 역으로 새누리당은 역대 가장 나쁜 모습을 보였다. 선거의 여왕이 청와대에 들어가고, 친이와 친박의 갈등이 첨예화된 상황에서 그들은 많이 약해졌다. 세월호 사건이 야권에게 기회를 준 것도 맞지만, 더 이상 과거의 새누리당같은 조직적이고 강한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광역단체장을 기준으로 보면 새누리당은 패배했다. 무엇보다도 충청권을 모두 내줬다. 인천과 제주를 가져오긴 했고, 경기를 지키면서 대통령이 체면치례는 한 격이 되었으나 서울을 너무 무기력하게 내준 것도, 교육감 선거에서 새누리당 계열이 거의 일방적으로 패배한 것도 뼈아플 수밖에 없다. 흐르는 세월과 이 시대는 새누리당의 편이 아니다.

 

 그러나 야권이 너무 좋아할 것도 없다. 이번 선거 결과는 세월호가, 그리고 정몽준의 아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광역단체장이 아닌 광역의회 비례대표를 기준으로 하면 여전히 정당 지지도는 새누리당이 더 높다. 그리고 야권은 여전히 많은 갈등의 씨앗을 안고 있고, 안철수는 합당과 지선 과정에서 많은 이미지를 소모하였다.

 

 대조적으로 박원순은 시대의 흐름을 탔다. 이제 그는 (적어도 내가 보기엔) 가장 강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개인적으로 정말 원하지 않는 미래상이지만, 그가 청와대에 들어가는 상황을 나는 꽤 높은 확률로 감안하게 되었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 그는 많은 검증을 통과했어야 옳았지만, 정몽준이 그를 도와 자책골을 넣은 셈이다. 박원순은 대통령이 된다면 정주영의 묘소를 찾아 큰절을 올려 마땅할 것이다.

 

 한편 이번에도 세대 투표 양상이 드러났는데, ‘부채를 감축한다,’는 야권 후보를 지지하는 청년층의 모습에서 나는 이 나라의 미래 전망을 조금 비관적으로 느낀다. 저러한 안전 지향적 신자유주의는 청년에게 어울리는 태도가 아니다. 전반적으로 청년이 느끼는 불안감을 공감할 수 없는 건 결코 아니지만, 쉽게 이야기해 한국 젊은이들의 정서는 과도하게 수비적이다. 이러한 소위 초식성과 불안감을 자극하여, 안전지향적인 발언을 하는 정치인들이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결코 이 사회의 미래에 좋지 않다. 언제나 역사는 도전자들의 것이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는 부자들만을 더 배부르게 한다.

 

 전체적인 정치권의 역학 구도는 복잡하게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박원순 등 몇몇 정치인들을 제외하면 누구 하나 확고한 승리를 거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박근혜정부는 그나마 경인을 잡아 조기 레임덕은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차후 빚어질 정치적인 갈등을 봉합하기엔 턱없이 모자란 결과이기도 하다. 선거의 여왕이 통치의 여왕이 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여담. 나는 고승덕을 오래 전부터 싫어하였고 막아야 한다고 판단했지만, 캔디고의 스나이핑은 현재까지 내가 본 자료로는 크게 부당했던 것 같다. 캔디고는 그 철강왕 박태준의 손녀다. 그리고 아마도 이 사건에 관련이 있을 법한 문용린은 포스코청암재단 이사 출신이다. 한편으로 이 사건에 별 관련은 없을 것 같기도 한 박원순도 포스코의 사외이사 출신이라 조금 기묘하게 보이는 사건.


 나는 한 때 안철수에게 일련의 기대를 품었으나, 그는 나를 철저하게 실망시켰다. 그리고는 민주당의 다운 그레이드 버전 정당을 만들어 버렸다. 대략적인 내용은 알고 있었지만, 그들의 강령/정강 정책을 보자면 그들에게 기대라는 걸 품을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강령을 보면 뭉뚱그려서 좋은 말만 적어놓은 것 같지만, 수준 이하인 것만 몇 가지 인용하면서 비판을 해보겠다. 인용 부분은 파란 글씨다.


 

 

<대의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의 결합>

 

 정치인들만의 정치로 전락하는 위험성을 노정하고 있는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직접민주주의의 요소를 가미할 수 있도록 시민과 이해당사자들의 참여와 개방을 통한 협의제 민주주의를 보완적으로 추구한다.

 

: 여전히 야권은 직접민주주의 운운하는 뻘짓을 반복하고 있다. 내가 안철수를 한 때 지지해볼까 했던 주된 이유는 최장집의 합세였는데, 결국 내치더니 역시나 최장집의 이론과는 완벽하게 반대로 가고 있다. 직접민주주의? 노무현 정권과 개혁당-국참당이 망했던 길을 다시 한 번 반복하고 싶은가. 겪고도 배우는 게 없으니 바보다.

 

 

2. 경제

 

 공정한 시장경제질서 하에서 혁신과 함께하는 경제로 번영하는 국가를 만든다. 정부 주도의 양적 성장이라는 낡은 방식에서 벗어나 저출산고령화 및 경제의 세계화에 적극 대응하고 저성장과 양극화를 해소하는 혁신적 경제운용 패러다임을 구축한다. 공정한 시장 질서를 확립하고 정부의 과도한 개입을 방지하며, 양극화와 불평등을 해소하여 국민 모두에게 혜택이 골고루 돌아가는 경제민주화를 실현한다. 민간의 창의와 혁신을 극대화함으로써 역동적인 혁신경제를 뒷받침하며, 서민을 보호하고 중산층을 튼튼하게 하여 정의롭고 더불어 잘사는 경제, 사람이 중심인 경제를 만든다.

 

 

<공정한 시장경제>

 

 경제주체들간의 공정한 시장경제를 확립하고, 경제력집중의 폐해를 시정한다. 재벌 소유지배구조 개선, 금산분리 강화, 부당내부거래 해소 등 재벌개혁을 추진하며, 불법적 경제행위에 대한 징벌을 강화한다. 약탈적 금융으로부터 금융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를 정비하고, 독립적인 소비자보호기구 설치 등 금융감독체계를 보완한다. 소비자 존중의 경제운영과 소비자 주도의 개방형 혁신을 활성화한다. 지하경제를 양성화하여 세금탈루를 막고, 공평과세 정의를 구현하며, 계층세대 간 조세부담의 형평성을 확립한다.

 

: 이 글을 보는 당신이 만약 이 정강이 좋아 보인다면, 당신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이해가 아예 없거나 신자유주의자다. 위와 같은 주장은 신자유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미화시키며 표현하는 전형이며 심각할 정도의 신자유주의적 발상들을 포함하고 있다. 이것에 대한 포스트를 따로 작성한 적이 있으니, 지난 포스트 허울 좋은 경제민주화 사기극 (링크)를 참조하시길 바란다.

 

 

<경제의 안정적 운영 및 위기관리>

 

 나라 곳간이 국민경제의 마지막 보루라는 점을 명심하여 국가재정의 건전성을 확보한다. 불안정한 국제금융질서와 금융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금융산업에 대한 감독과 규제를 강화한다. 또한 가계부채의 급증에 대해 체계적이며 적극적으로 대응한다.

 

: ‘국가재정의 건전성에 대해 우선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신자유주의자다. 다른 나라들이 불경기를 극복하기 위해 국가빚을 늘리면서 지출을 하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부채비율이 낮은 한국은 국가재정의 건전성부터 챙길 입장이 아니다.

 

  

 이 외에도 지적하자면 지적할 게 많지만 정말 한심한 것만 찾아서 비판하였다. 이게 진짜 심각한 문제인 게, 도저히 강령의 앞뒤가 안 맞는다는 것이다. 새민련의 강령은 과정과 목표를 같이 언급하고 있는데, 도저히 그 과정으로는 그 목표를 이루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위에 언급한 <공정한 시장경제> 바로 다음에

 

<혁신적 성장 경제>

 

 세계화와 정보화의 급격한 진행으로 지식, 정보, 지역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으므로 자율적, 분권적으로 경제주체와 부문을 새롭게 연결하고 융합함으로써 생동하는 경제를 만들고, 창의적 인재양성과 정보기술 강화로 성장 잠재력을 극대화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기업가 정신을 고양하고, 벤처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발전하는 성장사다리를 만들어 기업가와 기업이 생동하는 혁신경제의 주체가 되도록 한다. 중산층과 서민들의 소득을 향상시켜 내수활성화를 도모함으로써 기업이 살아나고 일자리가 늘어나는 고용친화적 성장을 이룬다.

 

 이런 내용이 들어가는데, 보고 있자면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좋아 보이는 말만 써 놓으면 단가 싶다. 바로 위에서는 정부가 개입 안함같은 식으로 말해놓고, 밑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정부가 시장에 참 많이 개입해야 겨우 될까 말까 할 만한 걸 적어놓으면 어쩌자는 건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내가 항상 하는 말이 야권은 철학이 없다는 거다. 정권을 노리는 사람들이라면, 정부가 어디에 얼마만큼 개입할 건지 계획을 세워놔야 한다. 그런데 새민련은 도대체 생각이라는 걸 안 하는 것 같다.

 

 복지 부분을 보면 더 가관이다. 온갖 좋은 말만 가져다 써놓긴 했는데, 위에는 정부 재정은 건전하게 만든다고 하고 복지 부분을 보면 돈 엄청나게 들 것 같고, 정부 재정확충은 어떻게 할 지 말도 없고 또 위에 보면 자영업자는 살리겠다고 하고 밑에 보면 최저임금은 올리겠다고 하고. 도무지 책임감이라는 게 있는 건가 싶다. 거기에 내수 활성화같은 목표까지 적어놨으니, 참 다 이룰 수 없는 목표를 너무 많이 써 놨다.

 

 솔직한 감상으로는 이 정도 정강이면 사기를 치는 것에 가깝다. 무슨 만병통치약 광고 보는 기분이다. 사실 안철수가 옛날부터 이래오긴 했는데, 강령까지 이런 식으로 만들면 어쩌자는 건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들이 집권하면 어쩔 건지는 대략 감이 온다. 전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사회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해가 없고, 중간 중간 엄청나게 신자유주의적인 언급이 있는 거 보면 안 봐도 뻔하다.

 

 야권은 노무현 때 이미 엄청난 신자유주의 굴착을 해댔다. 그런데 그런 오류들에서 도무지 배우는 게 없다. 애초에 남탓만 할 줄 알지 자기반성이 없고, 공부도 안 하는 족속이라는 건 알고 있는데 안철수는 한 술 더 뜨는 것 같다.

 

 새정치 하겠다는 족속이, 지들이 정의라는 족속이 이러면 정말 곤란하다. 만약 이들이 정권을 잡는다면 시민들은 더욱 큰 정치적 실망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최소한의 철학과 개념이라도 있다면 이 모양 이 꼴로 정강을 만들지는 않는다.

 

 본문을 마무리하면서 식견 있는 진보주의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새누리당 싫다고 이런 정당을 지지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요즘 야권이 솔직히 어딜 봐서 진보인가? 그리고 새누리당보다 딱히 실질적으로 나을 건 뭔가? 미련하고 광신적인 파시스트들이 야권에 계속 힘을 실어주고 광신적으로 실드를 쳐대면서부터 야권은 철저하게 망가졌다. 고쳐서도 못 쓸 지경이 된지 오래니, 사실 쳐다도 안 봐주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안철수는 한 술 더 뜨는 인물이었다.

 

 정치는 책임을 져야 하고, 철학이 있어야 하고, 문제를 직시해야 하며 해결책을 제시해야한다. 그리고 민주적이어야 한다. 야권이나 광신적인 야권 지지자들은 이 중 아무것도 없다. 그들은 새누리당보다 더 신자유주의적이고, 진정성 또한 모자라며 더 반민주주의적이다.

 

 

박근혜정부의 오판 – 바로잡을 수 있을까?

정치 2014. 3. 18. 17:54 Posted by 해양장미

 본 블로그에서 여러 번 이야기한 것이지만 나는 박근혜정부에 대해 근래 들어 느슨한 지지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불안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었고, 첫 해엔 야권이 정부의 운신 자체를 불가하게 하면서 큰 문제는 별로 드러나지 않았었다. 그렇지만 안철수에 의해 야권이 재편되는 가운데 서서히 정부의 불안요소가 드러나고 있다.

 

 박근혜정부의 운영방식은 폐쇄적인 분업화에 비유할 수 있다. 박근혜의 인사에 관련하여 사람들이 파악하기 어려운 것 중 하나는, 각 부처의 장차관들이 박근혜의 핵심 측근이라 보기 어려운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는 데 있다. 이 방식의 장점은 바깥의 흔들기에 강해서 추진력이 있다는 것인데, 단점도 있을 수밖에 없다.

 

 완벽한 스포츠 팀이 있기 어렵듯, 완벽한 정부도 있기 어렵다. 지난 시간동안 박근혜정부가 보여 온 최대의 약점은 분업화된 (고위) 공직자들끼리의 이견이 어울리는 데 적잖은 시간이 걸린다는 데 있다. 어느 조직이나 마찬가지지만, 이런 이견들 사이에서 나쁜 결과가 도출될 수 있으며 이럴 때 리더십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근래의 사태들을 보면 정권의 리더십에 금이 가는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한 듯하다. 전월세 세금 문제는 겨우 살아나려는 부동산 시장에 찬물을 끼얹은 격이 되었으나, 정부는 이 현실을 아직 제대로 파악한 것 같지 않고 금리에 대해서도 어리석은 판단을 할 조짐이 보인다. 현장의 목소리가 정부에까지 잘 와 닿지 않는 것이다.

 

 왜 이럴까?

 

 나는 박근혜정부의 근본적인 마인드에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것을 안전주의라고 표현해 왔는데,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필연적으로 생겨날 수밖에 없는 거시경제에서의 위험을 회피하려는 성향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웃 나라인 미국이나 일본은 양적 완화 등의 리스크를 충분히 감수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이 안전주의적으로 나가게 되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볼 수밖에 없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보자. 근래 박근혜정부는 지하경제를 줄이고 세금을 걷는 데 주력하고 있다. 특히 작년의 세수 확대가 실패했고 정부 적자를 기록했기 때문에, 정부는 전월세 등에서 세금을 걷으려 드는 것 같다. 그런데 기존 정책들과 상충되는 정책이 나온 것은 시장에 결코 좋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정부 내의 의견조율이 충분히 안 되고 있다는 추측이 가능한 것이다.

 

 재정 적자를 필요 이상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신자유주의적 관점이다. 한국은 재정 적자가 별로 없는 국가다. 금리에 대한 접근 또한 마찬가지다. 금리를 내려도 모자랄 상황에, 금리를 올리겠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금리가 올라간다는 말이 나오면 부동산 시장은 더 빠르게 냉각될 수밖에 없다. 근래의 정부 언행을 보면 젖은 장작 겨우 말려서 불이 조금 붙었는데, 바로 또 물을 뿌리는 것과 유사해 보인다.

 

 정치는 정부 내, 대통령 측근들 사이에서도 치열하게 이루어지곤 한다. 나는 박근혜가 리더십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나, 모두를 충분히 통제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고 빠른 시간 내에 개입하여서 교통정리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적잖게 다른 생각들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정책을 펼치는 곳이기에 때로는 빠른 정리가 필요하다. 그런데 박근혜는 이런 데 있어 순발력이 부족하다. 이것은 내가 박근혜에게 표를 주지 않았던 주된 이유 중 하나였는데, 다시 한 번 문제를 노출하고 있다.

 

 듣기로는 박근혜정부가 기존 모피아들을 퇴출시키고, 새로운 경제 인사들을 중용한다는 이야기들이 있다. 그런데 그들이 사태파악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한은 쪽의 발표로는 현재의 금리도 경기부양에 충분하며, 디플레이션 우려는 별로 없고,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에 맞춰 금리를 올려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어리석은 판단이다. 아직 실물경기는 충분히 회복되지 않았고, 얼마든지 금방 냉각될 수 있다. 생산자 물가의 디플레이션도 작년 내내 모두를 괴롭혔고, 정부의 예측에 비해 경제성장도 낮았으며 물가는 거의 상승하지 않았다.

 

 한은을 포함한 정부는 오판을 인정해야하지만, 태생적으로 관료들은 권위의 훼손을 두려워해 오판을 인정하기 싫어한다. 사실 나는 박근혜 대통령이 이런 상황에 대해 얼마나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고, 해결할 생각은 가지고 있는지 자체가 의문인 면도 있다. 만약 대통령의 관심사가 재정건전성에 있다면 그것은 엄청난 비극이 될 것이다. 중요한 건 재정건전성이 아니라 경기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정부는 언제나 잘못할 수 있는 존재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 제대로 비판을 하고, 바로잡으려 노력하려는 세력이 너무 적다. 부동산 현장이나 거시경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뭐라 해 봐야 씨알도 안 먹힌다. 이런 건 야권이나 시민 사회가 나서야 하는 문제다. 그런데 야권은 이런 민생문제에 대해 아무 소리도 안 한다. 왜냐고? 관심도 없고, 아는 것도 없으니까 그렇다. 야권이 정치공학이나 부정선거 이야기 말고 무슨 말 하는 거 들어본 기억이 천년은 된 것 같다. 항상 말하지만 그러니까 선거만 하면 지는 거고.

 

 한국은 국가 부채가 GDP30% 수준밖에 안 되는 나라다. 한국의 제조업 경쟁국인 미국이나 일본에 비하면 조족지혈 수준도 안 된다. 비록 한국의 내수 규모가 저들과 비교할 수 없이 작지만, 한국이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를 유지하고 재정건전성을 챙기는 동안 저성장이 일어났고 경기도 가라앉고 잠재성장률도 추락하였다. 박근혜대통령은 국민이 원하는 것을 살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경기다. 관료들은 자신들의 오판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 아버님이라면 용납하지 않았을 일이다.

 

 

 

 사람들이 경제에 관한 논의를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참 안타까울 때가 많다.


 역시나 일반적으로 가장 큰 문제는 뭐가 신자유주의고 뭐가 케인즈주의고 뭐가 사회주의인지 잘 모른다는 데 있는데, 케인즈주의는 거의 언급도 안 되니 일단 뒤로 접어둔다 쳐도 자칭 진보라는, 달님을 외치는 깨시민들이 걸핏하면 신자유주의적인 주장을 하는 걸 보면 참 기가 막히곤 한다.


 예를 들어서 현 한국 경제 상황에서.


 대체로 케인즈주의자라면 기준금리가 9개월째 유지인데 경기가 살아나는 양상이 지지부진하고 원화가 너무 강세니 금리 좀 내리고 하우스푸어를 위한 지원 프로그램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할 건데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밖에까지 잘 안 퍼지는 안습한 현실 앞에 있고,


 대체로 신자유주의자라면 새로운 일자리 등을 위해 의료 영리법인 세울 수 있게 규제 풀고, 경제민주화를 위해 기존 순환출자구조도 해소하고 주주의 권한을 늘려야 한다고 지금까지 해왔듯 착한 척을 앞세워 주장할 것이고,


 대체로 사회주의자라면 보편적 복지를 얼른 하라고 주장하는 동시에 뭘 몰라서 경제민주화 움직임에 동참할 것이고,


 대체로 제도주의자라면 바이오, 항공, 에너지 등의 신산업 육성을 위해 국가적 지원과 정책이 더 강하게 있어야 할 것이라 주장할 것이고 + 추가로 실제 보면 사회주의자와 함께 복지론 주장 중


 대체로 깨시민이라면 다 됐고 부정선거! 박근혜 아웃! 안철수 양보해라! 등을 외칠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좌우파로 저 사람들을 구분하자면 좀 복잡해지는데...


 우선 사회주의자는 좌파로 확실하게 구분되긴 하는데 나머지는 아니다.


 케인즈주의자나 제도주의자는 어이없게도 수꼴 취급을 받기 일쑤고, 신자유주의자가 자칭타칭 진보로 불리는 것은 일상다반사고 소위 우파정당으로 분류되는 새누리당 내에서도 저런 온갖 소리들이 짬뽕 및 잡탕 되어서 내부갈등을 일으키는 게 현실.


 어쩌다 상황이 이리 되어가지고 사람들이 좌우파 구분도 하기 힘든 나라가 되었는지를 보자면 역시나 당연히 복잡한데, 시작부터 이야기하자면 아주 먼 과거로 올라가야 한다.


 일단 일제가 끝난 시점에서 한반도 남쪽, 그러니까 대한민국이 될 지역에서 공산주의자가 모두 제거되었다는 건 모두들 알 것이다.


 이승만 시절 한국의 정당은 이승만의 자유당과 아직까지 생존 중인 민주당이 있었다. 그런데 자유당이 민주당보다 좀 더 진보적이었다. 그리고 이승만이 물러난 이후 자유당은 부서져 버렸고, 민주당이 실질적으로 유일한 정당이 되었었다.


 많은 사람들의 오해와는 달리, 민주당은 딱히 진보주의적인 색채를 가진 적이 없었다. 다만 민주당의 역사를 보면 워낙에 많은 이합집산을 거듭했고 그 과정에서 운동권 세력이 참여하곤 하여 군사정권 시절 어감으로 ‘좌파’ 소리를 들어왔던 것이다.


 박정희가 쿠테타 이후 선거를 통해 대통령이 되는 과정에서 민주당의 보수주의적 색채는 선거에서 지는 요인이 되었다. 흔한 오해와는 달리 당시에 시민들은 박정희를 선택했고, 박정희가 서민의 편이었다.


 비록 박정희가 권위주의적이긴 했으나 서민에게 더 많은 이익을 가져다주고 삶을 안정되게 했다. 또한 유신 이전의 박정희는 선거로 당선된, 민주 체제 아래에서의 대통령이었다. 쉽게 말해 당시 구도는 박정희와 민주공화당의 제도주의적 진보 대 윤보선이나 김영삼, 김대중 등 민주당 계열의 자유주의 우파 구도였다고 할 수 있다.


 이후 박정희의 통치방식은 엄청난 경제적 성공을 가져왔다. 심지어 결국 정치적으로 실패한 유신체제조차 경제적으로는 기적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대조적으로 당시 김대중 등이 박정희의 방식에 반대하며 주장하던 소위 ‘대중경제론’이 있는데, 안타깝게도 그 내용을 보면 박정희가 오래 집권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단점이 많았다.


 박정희의 방식은 정부가 산업 육성을 돕고 금융을 제한하며 무역을 장려하는 방식이었다. 정부가 나서서 산업을 육성하고 강력한 보호무역을 통해 경제를 성장시키는 방식을 흔히 제도주의라 한다. 이 방식으로 박정희는 집권 내내 엄청난 투자를 하고, 무역 국가로 발돋움시켜 한국을 20세기에 가장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룬 국가로 만들었다.


 그런데 윤보선이나 박현채, 김대중이 주장하던 방식 - 대중경제론 - 은 이것과 반대의 방식으로, 수많은 국가들이 채택했다 실패한 방식이었다. 이 방식대로 하면 중앙은행은 강력하지 않아 금융통제가 안 되고, 산업이 제도주의처럼 발달하지도 못하며 무역 국가로 발돋움할 수도 없다.


 지금은 각종 방안들을 여러 국가들이 실험해본 끝에 뭐가 좋은지 증명이 되어있지만, 그 때는 그렇지 않았다. 박정희는 정말 가기 힘든 노선을 택했고, 엄청난 성과를 만들어냈다. 그러고 나서 그 열매를 제대로 보기도 전에 죽었지만.


 박정희 사후 박정희의 투자가 이루어낸 결과물들과 공산권의 몰락 등을 보면서 기존에 박정희의 정책에 반대하던 사람들도 의견을 달리하게 되었다. 김대중마저 90년대 들어선 기존의 대중경제론을 버리고 다른 입장을 취하게 된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도 김대중의 경제에 대한 이해는 다소 부족했던 면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가 좀 더 경제를 잘 이해했다면 IMF로 인한 타격을 더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IMF를 유발한 건 전적으로 김영삼 책임이다. 다만 김대중은 IMF와 좀 더 치열하게 싸워 피해를 줄일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어차피 멍청한 김영삼한텐 아무 기대도 안 한다. 그런데 김대중은 그래도 똑똑하니까. 똑똑한 사람은 똑똑한 사람의 몫이 있는 건데, 그 몫을 다하지 못했다는 거다.


 비극적인 문제는 민주정권의 태도 및 이해에 있었다. 박정희식 제도주의는 엄청난 발전을 만드는 동시에 필연적인 부작용을 낳는다. 정부의 혜택을 받는 쪽이 집중적으로 성장하다보니 덜 공평하고, 게다가 박정희는 권위주의적인 독재 통치를 했기에 자유에 대한 사회의 갈망도 컸기 때문이다.


 사실 자유에 대한 문제는 문화적인 면에서 두드러졌고, 지금도 충분히 해소되지 않았다. 유교식ㆍ군대식 권위주의 및 압축 근대화 과정 속에서 해소되지 못한 고간섭 문화는 아직도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그런데 민주화 이후 위의 문제들은 충분히 해결되지 못한 반면, 경제 체제는 제도주의에서 신자유주의로 급속도로 흘렀다. 특히 민주화에 누구보다 앞장섰던 김영삼부터 세계화니 선진화니 뭐니 하면서 대책 없는 신자유주의 판을 벌이다 나라를 말아먹었다.


 분배나 기타 등등의 이야기는 사실 김대중 때까지만 해도 잘 나오지 않았다. 김영삼과 김대중은 지역주의를 앞세웠고, 이념에 있어 그리 큰 차이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나마 김대중은 IT산업을 육성하는 등 제도주의적인 방안을 선택했지만 김영삼과 이후의 노무현은 아니었다.


 소위 좌우파 갈등이 빚어지기 시작하던 시점은 노무현 때부터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모두들 알다시피 노무현이 ‘좌측 깜빡이를 키고 우회전’을 해버리면서 모든 게 심각하게 꼬여버렸다. 대략 이때부터 노빠들은 제도주의와 케인즈주의 등을 ‘보수, 수꼴’등으로 낙인찍고 노무현의 신자유주의정책을 무한 실드치는 반지성주의적 궤변을 일삼게 된다. 물론 신자유주의가 본격적으로 욕먹기 시작한 이후에 깨시민들은 ‘노무현의 신자유주의는 시대적 흐름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같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무한반복하고 있고. 그런 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행위고 혹세무민이다.


 이야기가 꼬여버린 데는 이명박도 일조를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말로는 신자유주의의 화신처럼 등장을 해서는, 막상 정치는 딱히 신자유주의적으로 안 했다. 이러니 사람들의 경제적 좌우에 대한 착각이 더 심해진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근래의 경제민주화 논의는 아주 이런 혼동에 화룡정점을 찍어버렸다. 신자유주의자들이 경제민주화 타이틀을 걸고, 우린 착한 진보 ^^ 놀이를 해서 적잖은 사람들을 아스트랄하게 만들고,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을 혹세무민해 버렸다. 도무지 이게 언제쯤 어떻게 교통정리가 될지는 미지수다. 전문정보와 대중정보 사이를 이어줘야 할 기자라거나 시민 사회 등은 소양이 지극히 부족하고, 정치적 의도를 가진 뻘소리들만 해대면서 혼란을 가중시켜버렸다. 여기에 보편적 복지론이니, 선별적 복지론이니 하는 복지론이 앞서는 상황이 되다 보니 혼란은 더 심해졌다. 현실적으로 민중들은 뭐가 자기 자신에게 득이 될지를 감으로 대략 맞춰야 하는 입장이다.


 양당제에서 시민들이 명료하게 정치적 선택을 할 수 있으려면, 신자유주의 & 작은 정부 정당과 케인즈주의 & 제도주의 정당이 대립하는 게 편하다. 그런데 한국에선 제도주의를 박정희가 선점해버렸고, 그것이 극단적인 보수주의적 이미지로 자리 잡혀 있기에 이러한 이념적 균열이 일어나는 게 지극히 어렵다. 현재 박근혜정부는 적당한 제도주의와 적당한 케인즈주의, 그리고 적당한 신자유주의 사이에서 적당한 균형을 잡고 있다는 느낌인데 참 그것도 능력이라는 감상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 확 좀 땡겨 줬으면 좋겠다. (새누리)당내 신자유주의자들은 좀 치우고.


 여담인데 근래의 신자유주의는 ... 실제 경제학에선 그리 투철하고 극단적인 관념 속 신자유주의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게 이미지 그대로의 신자유주의는 이미지로나 존재할 뿐, 그게 학술적으로 맞는 말이 아니라는 건 이미 어느 정도 검증된 거고 이게 신자유주의만 이런 것도 아니고, 실제론 학자마다 서로 좀 다른 입장이긴 하지만 절충하고 더 나은 방향을 찾아가면서 이론을 만들고 현상을 살펴보고 그러는 게 현실인데, 굳이 보자면 학계에선 더 완성도 높은 수학적 무언가를 만들려고 하다 보니 무리수를 두는 경우가 꽤 있었고 그걸 막상 현실에 적용했을 때 패망한 사례도 많고 ... 오히려 리얼 ‘신자유주의’는 경제학계 외부에서 더 많은 것 같다. ‘학술적으로 맞는 말’이 아니고 ‘지들 돈 벌려고 하는 말’ 또는 ‘지들 권력 잡으려고 하는 말’을 하게 되면 사람은 완전히 이야기를 다르게 하는 법이다. 물론 저런 말들 중에는 도무지 신자유주의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이 하는 말들도 제법 많이 섞여 있으니 사람들이 더 혼동하기 쉬운 건 어쩔 수 없다.


 이념적 균열이 명료하지 못하고, 서민들이 자신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정치적 선택을 하기 어렵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상황이 아니다. 서민들은 삶의 개선을 위해 보다 케인즈주의적이거나 보다 제도주의적인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주의는 현실적인 대안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의 민주당이나 근래의 안철수 신당 모두 케인즈주의나 제도주의적인 대안을 보여준다고 하기 어렵다. 실제 케인즈주의적인 것은 학계와 관료이며, 제도주의적인 방안을 구상하는 쪽도 새누리당 내에 있다. 새누리당은 꽤나 광범위한 이념을 포괄하고 있는 정당인데, 소위 깨시민이나 진보좌파들은 이에 대한 이해가 없기에 선거에서 이기기 어렵다.


 서민들, 특히 나이가 좀 있는 서민들은 어떤 정책과 제도가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는지 어렴풋이나마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들을 향해 무식하다고 비난하고 국개론을 설파하는 깨시민들이야말로 실제로는 경제에 대한 이해가 없고 무식한 경우가 많다. 실제 깨시민들 많은 곳에서 자료와 근거를 제시하며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하는 경우, 돌아오는 건 비아냥과 매도 또는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거짓말인 경우가 99%이상이다.


 다만 새누리당이 서민들의 입장을 잘 대변해줄 수 있는 정당이 되긴 현실적으로 어렵다. 너무 많은 이념을 포괄하는 정당이 되어 있고, 당 내부에서 파워게임이 이루어지는 경우 누가 이길지는 명백하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한국 정치 현실에선 대통령의 정치 감각과 결단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대통령 주변의 이너서클이 제 역할을 못할 경우 정치 실패가 일어나기도 쉽지 않나 생각한다.



진보세력의 박정희 컴플렉스와 신자유주의

경제 2014. 1. 1. 23:58 Posted by 해양장미

 2014년이 시작되는 현재, 한국에서 ‘진보’의 정의는 적어도 정치적으로는 소위 '민주화 세력'으로 인식되는 범주와 유의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민주화는 과거에 이미 완성되었고, 모든 정당에 나눠져서 들어갔으나 많은 이들에게 그것은 무시되고 있다. 실제 DJ만 하더라도 DJP연합을 이룸으로 과거 군사정부와 손을 잡는 등, 이미 민주화 세력을 기준으로 한국 정당의 정치적 스펙트럼을 나누는 것은 무의미할 정도로 어렵다.


 실제 현 시점에서 소위 한국의 진보세력이 소위 보수 세력에 비해 철학적으로 딱히 진보적일 건 없다. (좀 더 진정한 의미에서의) 진보주의자들은 어디에나 있지만, 절대적인 수는 적고 오히려 민주당계나 NL의 경우 진보 이미지를 앞세워 마케팅을 할 뿐, 그 내용은 전혀 진보적이지 않은 경우가 다반사이다.


 오히려 깨시민이나 진신류로 표상되는 진보세력은 정말 많은 경우 구체적인 정책에 너무 무지하고, 더 나아가 정말 많은 경우에 아예 관심이 없다. 그들은 대체로 어떤 정책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를 통찰하지 못하고, 그것에 대해 심사숙고하는 태도도 없으며 자신의 믿음이나 감정, 또는 특정세력에 대한 광신적 지지를 앞세우기에 바쁘다. 더 나아가 그들의 이런 양상은 단순히 지지자들에서 끝나지 않고, 그들이 지지하는 정치인들 또한 그들과 유사한 모습을 보이곤 한다. 치기 어린 정의감으로 그 결과를 충분히 숙고하지 않거나, 심각한 확증편향에 가득 찬 정책을 매번 주장하고 밀어붙이는 게 그들의 현실이다.


 이런 세월이 누적되면서, 한국 국민들의 실제 삶은 여러 부분에 걸쳐 큰 피해를 입었다. 비록 한국이 잘 나가는 나라이긴 하고, 그 과실을 어느 정도씩은 모두가 누리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그것은 가랑비에 옷 젖듯이 다가오기에 크게 체감되는 경우는 드물다. 사람은 손익을 결코 동등하게 느끼지 않고, 누구나 이익보다는 손해에 대해 훨씬 민감하기 때문에 정치인들은 손해를 보고 있는 자들을 적극적으로 구제하고, 문제를 해결해줄 필요가 있다. 또한 손해를 보는 자들을 최대한 줄일 필요가 있다. 한국 진보정치의 부재는 이런 면에서 큰 문제를 낳고 있다.


 구체적으로 사안을 보면, 소위 보수로 분류되는 인물들이 오히려 실제로는 진보적인 포지션에서 정책을 펼쳐나갈 때가 적지 않다. 이것은 한국의 진보ㆍ보수 구분법과 인식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인터넷 노빠들의 등장 이후, 한국 정치 분위기는 지나치게 적대적이고 말이 험악하며 진영논리가 앞서기에 올바른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는 게 현실이고, 그렇기에 실제 사안들과 정책들의 효과나 영향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기에 진보ㆍ보수의 구분은 별 의미 없는 라벨링이 되어버렸다. 실체 없이 이미지만 나도는 게 작금의 상황이기에, 그런 것들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을 잡는 사람들은 대체로 부동층이 되어있으며 별 말을 하지 않는 경향이 강해져있기도 하다. 나만 해도 친노세력이나 민주당계의 어이없는 정책 등을 비판하다 보니 일베충, 알바, 수구꼴통 같이 어처구니없는 공격적인 말을 종종 듣는데 이건 정말 심각한 문제다. 그들은 과거 군사독재세력의 ‘빨갱이’ 낙인을 완벽하게 벤치마킹한 것으로 보인다.


 본문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이런 어이없는 적대적 대립과 무책임함, 그리고 진영논리와 철학 부재 등이 현실적으로 한국 국민들에게 너무도 큰 고통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현실적으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조금이나마 이야기해보고 싶다.


 이 면에서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이야기는 지속적인 경기의 냉각과 일자리 문제다. 이 두 가지 문제는 한국이 겪은 지난 10~15년간의 문제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만드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들은 소위 ‘진보적인’,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민주화 세력의 정신을 유지하거나 이어받은 사람들이다. 이런 진보적인 사람들은 새누리당 내에도 상당수가 있기 때문에, 실제의 문제 양상은 꽤나 복잡하게 일어나곤 한다. 그렇지만 현실을 요약해서 이야기하자면, 라벨이 진보적인 사람들이 실제로는 마인드건 사고방식이건 가진 이념이건, 주장하는 정책이건 대단히 보수적인 경우가 너무 많은 게 문제의 핵심이다.


 이 면에선 소위 인터넷 깨시민들이 ‘우리가 진짜 보수’라고 이야기할 때가 있는데, 그것이 핵심을 짚은 것일지도 모른다. 깨시민은 어딜 봐도 보수주의자가 맞다. 그것도 수꼴 극우파 수준으로 보수다. 수꼴들이 본인들을 진보로 라벨링해서, 서민 챙기는 척 하면서 온갖 개념을 어지럽히고 막말을 해대니 서민들의 삶이 엉망이 되는 거다.


 이런 문제의 기원은 안티 박정희, 즉 박정희 컴플렉스에서 비롯된다. 소위 민주화-진보 세력의 사고에는 박정희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자 하는 의식이 깔려있다. 그런데 박정희의 정책은 문화적이거나 정치적인 억압은 강했지만, 경제정책에 있어서는 보수적이라 할 수 없었다. 박정희의 경제정책이 세계적으로도 유래를 찾기 힘든 성공을 거둔 것은 훌륭한 정책을 펼쳤기 때문이다. 소위 진보세력 중엔 박정희의 업적을 폄하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공과를 바르게 평하지 않는 데서 많은 문제가 시작된다. 이런 태도는 박정희의 딸인 현 대통령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다.


 역대 한국 대통령 중 가장 자주적이고, 미국과 거리가 멀고, 가장 장기적 관점에서 경제와 산업을 성장시키고, 가장 신자유주의와 거리가 멀었던 대통령은 박정희다. 이것은 진보주의자에겐 불편한 진실이고, 모두들 박정희의 업적을 거짓말까지 동원해 폄하하는 데 바쁘다. 이런 시도는 지난 대선 때도 몇몇 단체에 의해 반복되었다.


 박정희가 했던 모든 것들을 부정하고, 박정희와 다른 방식으로 성공을 거두려 한 데서 비극이 시작되었다. 물론 박정희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수단을 정당화시켰다. 그가 나쁜 짓을 많이 했다는 걸 부정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그의 정책은 객관적으로 평가될 필요가 있다. 모든 주변 이미지와 감정을 제외하고, 정책과 행위만을 놓고 본다면 박정희는 국가주도적 진보주의자가 되고, 노무현은 극단적인 신자유주의 우파가 된다. 사람에 따라 불편하더라도 이것이 진실이다. 박정희는 금융을 억제하고 국가 및 관료 주도적으로 산업을 발달시켜 나갔다. 그 과정에서 적잖은 문제가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폐허에서 그 정도의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룬 국가는 지구촌에 한국뿐이다.


 심지어 박정희가 없었다면 삼성전자도 현대자동차도 포스코도 없었다. 옷 만들던 이병철에게 전자산업 하라고 시키고 건설업 하던 정주영에게 자동차 만들라고 시킨 건 박정희였다. 포스코의 전신인 포항제철은 다들 못하겠다고 해서 박정희가 직접 국가 주도로 차린 것이다.


 세계적으로 봐도 커다란 한국의 중공업은 개개의 기업이 쉽게 시도할만한 게 아니다. 특히 한국 같은 철저한 후발주자는 더더욱 그렇다. 국가에서 안 시켰어도 한국이 반도체 만들고, 자동차 만들어서 세계에서도 손에 꼽히는 국가가 될 수 있었을까? 냉정하게 말해 그건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그냥 박정희가 잘했다는 식으로 마무리되어서는 정말 곤란하다. 진짜 문제는 박정희 사후에 있다. 박정희 사후 한국엔 제 2의 삼성, 제 2의 현대자동차가 나오기는커녕 있던 대기업들까지 하나하나 몰락하고 결국 지금은 안정적이고 성장세인 대기업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커다란 암울함이다.


 한국 대기업이 쓰러진다고 중견기업ㆍ중소기업이 잘나가고 있을까? 아니다. 한국 기업들은 어차피 대체적으로는 세트메뉴다. 그 동안 소위 민주화 진보좌파들은 박정희와 대기업에 대해 지극히 적대적이고, 시장 개방하고 주주중심 자본주의, 금융 자본주의로 경제체제 바꿔, 기존에 박정희가 만들었던 부정한 대기업 재벌이 무너지면 뭔가 자연적으로 새로운 기회들이 창출될 거라는 주장을 했다. 그런데 사실 이런 이야기는 신흥종교에 가까운 것이다. 물론 근거는 별로 없다. 본래 신앙엔 믿음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무엇이 신자유주의인지, 왜 신자유주의가 문제인지를 먼저 개념을 잡아야한다. 흔히 깨시민을 비롯한 민주당 지지자들은 노무현의 적극적인 신자유주의 노선을 시대적 한계라는 이유로 변호하곤 하지만, 노무현은 상당히 적극적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쳤을 뿐만 아니라 그런 움직임은 지금도 지속중이다. 노무현보다는 이명박이, 이명박보다는 박근혜가 덜 신자유주의적인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대통령이 순간순간 했던 선택들을 보면 그 이념을 알 수 있는데, 대통령은 권한이 큰 직책이고 각자의 사고방식과 철학, 경험 등에 의해 선택이 이루어지게 된다. 외부의 압력으로 신자유주의적인 판단을 했다는 건 졸렬한 변명을 넘어 혹세무민하려는 거짓말에 불과하다.


 진짜 진보라면 국가가 나서서 신산업을 육성하자고 주장해야 한다. 또한 금융그룹을 자국민이 소유해야 한다고 주장해야한다. 어설픈 코스모폴리탄이 진보일 수 있는 국가는 미국뿐이다. 미국은 최강대국이니까. 그렇지만 한국은 아니다. 타국인들에게 인류애를 나누고 돈도 나눠줄지언정, 경제 주권은 나눠줘선 안 된다.


 지금 자칭 진보들이 하는 짓은 글로벌 금융세력에게 경제 주권을 팔아넘기고, 그나마 맞설 수 있는 국내 대기업은 옥죄는 행위에 불과하다. 사실 난 조선 말에 친일, 친청, 친러하던 사람하고 그들이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아무리 박정희를 만주국 장교출신 다카키 마사오라고 한들 박정희의 업적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그런 식으로 대통령에 반기를 드는 세력이 매국행위를 하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원래 제국주의라는 거, 식민지라는 거 별거 아니다. 군함 끌고 가서 무역하자고 하고, 강대국에게 이익이 되는 법 통과시키고, 그 나라 재산들 싸게 싸게 매입하고, 그리고 그 나라 사람들한테 물건 팔고 노동력 착취하면 그게 식민지다. 이 연장선상에서 신자유주의는 일종의 현대식 경제제국주의라 할 수 있다.


 김영삼 정부가 치기어린 신자유주의로 한국을 IMF의 수렁으로 빠뜨린 후, 김대중 정부는 화끈한 결단을 하지 못하고 IMF에 끌려 다니며 국부를 빼앗겼다. 노무현 정부는 거기서 한 술 더 떠서 아예 적극적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국가 경제의 뿌리를 뽑아 놨다. 자칭 진보세력은 이런 흐름을 진정시키려는 데 있어 큰 방해가 되고 있다. 그들의 무지와 광신, 어리석은 오만, 끝없는 권력욕과 질투심, 박정희 컴플렉스 등이 그 원인이다.


 나와 이웃의 행복을 위해 좋은 선택을 하고 싶다면, 가슴은 뜨거울지언정 머리는 차가워야 한다. 내가 바른 판단을 하고 있는지 언제나 의심을 가져야 하고, 나와 생각이 다른 이들의 말과 글에 귀를 기울여볼 필요가 있다. 소위 진보세력들이 박정희에 대해 컴플렉스를 가지고, 그의 방식이 낡았다고 여기며 신자유주의에 동조하는 목소리를 높이는 이상 현재와 같은 정치경제적 문제들은 해결되기 어려울 것이다.





 근래 한국 경제는 새로운 위기에 처해 있다. 과거 여러 풍파를 이기고,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남기도 했지만 그래도 한국 경제는 지금까지는 잘 순항해온 편이다. 그렇지만 이번 덫은 종류가 좀 다르고, 대단히 치명적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문제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경제 자체를 뒤흔들 수 있는 문제라 본다. 앞으로 가능한 한 열심히, 여러 차례 이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이 문제를 한번에 간추려 간결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가 말할 이 덫을 세간에서 부르는 이름은 ‘경제민주화’다. 사실 소위 경제민주화론자들이 내놓는 법안이나 제안을 보면 난 평정심을 유지하기 힘들다. 본 포스트의 글은 종종 과격한 어조를 사용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나의 심정에 비하면 굉장히 순화한 어조다.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해서, 현재 알려진 경제민주화는 나라를 팔아먹고 또한 도태시킬 수 있는 방식이다. 그들에 비하면 이완용은 매국노는커녕 애국자에 가까울 거다.


 이런 말을 하면 소위 깨시민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는 알고 있다. 그렇지만 미리 이야기하자면 나는 보수주의자와는 거리가 멀다. 본 블로그에서도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깨시민들이 지지하는 경제민주화론자들이 하는 말들은 월가 금융마피아들이 하는 말과 똑같아도 너무 똑같은 게 정말 많다. 물론 중간 중간 어이없이 사회주의적인 이야기를 하기도 하지만, 접합이 안 되는 걸 동시에 이야기하니 더 무식해보일 뿐이다.


 경제민주화론의 뿌리는 매우 깊다. 그리고 거기엔 재벌에 대한 질투와 증오심이 깃들어있다. 물론 재벌에 문제 많은 건 나도 안다. 그거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다. 그런데 경제민주화론자들이 문제인 건, 그 증오 때문에 결국 선택한 방식이 신자유주의 중에서도 극단적인 신자유주의라는 데 있다.


 사실 이렇게 말해도 별로 호응은 없다. 신자유주의 개념을 잡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아무한테나 신자유주의가 뭐냐고 물어봤을 때 어느 정도 제대로 답하는 사람은 100명 중 1명이나 될까? 걸핏하면 신자유주의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로 한정해서 물어봐도 10명중 1명이나 어느 정도 제대로 답할 거다. 의식적으로 신자유주의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실제 경제에 대해 하는 이야기는 신자유주의적인 웃픈 사태가 너무 많이 보이기도 한다.


 일단 모든 설명을 위해 현대 자본주의의 재미있고도 웃기는 면 하나를 이야기해보겠다. 예를 들어서 애플. 내가 애플 주식을 사고 싶으면 당장 살 수 있다. 그건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다. 그런데 주식은 그 회사의 지분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나는 정말 간편하게 애플의 일부를 사버릴 수 있다. 물론 1/N이지만.


 그런데 회사 주인 되긴 쉬운데, 회사 노동자 되긴 엄청 어렵다. 애플에 취직? 적어도 내가 이룰 만한 목표는 아니다. 실제론 취직은커녕 견학도 주식 사는 것보단 훨씬 어렵다. 애플 본사는 여기서 너무 머니까.


 이게 의미하는 건 간단하다. 회사와 노동자는 국적이 있고, 각 사회 현실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그렇지만 금융으로 분류되는 회사의 소유 권한은 그렇지 않다. 소유권은 순식간에 바뀔 수 있고, 이것이 파생 상품 등과 결합되면 훨씬 복잡해진다.


 현실적으로 이제 세계는 실물거래보다는 금융거래의 총액이 훨씬 많다. 특히 한국은 세계 제 1의 파생금융시장이다. 금융은 마법이고, 마법 같은 일을 해 내지만 그것은 매번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겐 엄청난 부를 가져다주지만, 상대에게는 굉장히 파괴적일 수도 있는 게 금융이다. 우리는 금융자본주의 위에 살고 있다. 비록 사람들 대부분은 금융에 대해 거의 무지하지만 말이다.


 경제민주화 논의로 돌아가서, 위에도 이야기했지만 경제민주화의 가장 큰 부분은 소위 재벌개혁에 관한 것이다. 대체로 경제민주화론자들은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를 재벌위주의 낙후된 체제 문제로 보며, 재벌권력을 해체함으로 한국 경제를 이롭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지만 그것이 진실일까?


 간단한 반례를 들어보겠다. 우리는 IMF를 겪으면서 대우그룹을 잃었다. 대우 계열사들은 조각조각 찢어져서 대우자동차는 GM에, 대우가 인수했던 쌍용자동차는... 떠돌다가 얼마 전 마힌드라에, 대우인터네셔널은 포스코에 흡수되는 등 박살이 나버렸다. 그런데 그래서 우리가 좋았는가?


 나는 대우가 망하고 일어난 사태들 중 일부를 직접 눈으로 봤다. 그것은 전혀 좋은 게 아니었고, 끔찍했다. 망한 회사의 노동자는 정말 쉽게 실업자로 전락한다. 세계 2번째로 L6엔진을 개발했던 대우자동차는 글로벌기업 GM의 한국 공장으로 전락했고, 쌍용차는 제대로 된 주인을 못 만나서 얼마 전까지도 한참 이슈가 되었던 쌍용자동차 사태가 벌어졌었다.


 만약 지금 삼성그룹이나 현대자동차그룹, 또는 현대중공업그룹이 대우같이 된다면 그 사태는 상상을 초월하게 끔찍할 것이다. 재벌에 대한 증오심을 앞세우는 사람은 IMF에서 아무 것도 못 배운 사람이다. 그런데 실제로 경제민주화론자들은 IMF에 대해 꽤나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기존의 구시대적 질서가 무너지고, 한국 경제가 선진화된 계기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난 그런 관점은 황당할 따름이다.


 내가 하는 이야기들은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고 특별한 것도 아니다. 그저 대중들이 공감할 수 있는, 상식선의 이야기이다. 진실을 바로 봐야 한다. 우선 몇 번이고 본 블로그에서 이야기했지만 IMF이후 한국의 대기업들은 더 이상 온전히 한국의 소유가 아니다. 특히 금산분리 이후, 한국의 은행들은 거의 전부 외국 자본에 넘어가버렸다. 만일 증권사나 보험사를 포함하는 좀 더 강력한 금산분리가 일어났다면, 어쩌면 한국의 금융 모두는 외국 자본의 것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 우리 한국인이 제1금융권 은행에 내는 대부분의 대출금 이자가 가져다주는 이익의 과반은 외국인에게 넘어간다. 은행 쪽 빼도 외국인이 과반을 소유한 대기업 엄청 많다. 삼성전자? 의결권 빼면 과반이 외국인들 거다. 포스코, 네이버, 삼성화재, KT&G, 이마트, 신세계는 외국인이 과반을 소유하고 있는 이름난 대기업들이다. 굳이 과반이 아니더라도 외국인이 3할 이상을 소유한 대기업들은 너무 많아서 일일이 언급하기도 힘들 정도다. 우리가 GDP가 많이 늘었는데도 실생활은 IMF전보다 못한 건, 외국자본에 의해 우리의 국부가 많이 유출되는 탓이 크다. 만약 외국인들이 가져가는 이익을 국내에 돌릴 수 있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투자로 많은 이익을 보고 있는 외국 자본이 경영권은 손 안 댈까? 그럴 리가. 이미 우리가 다 아는 기업에 대한 적대적 M&A시도가 두 번이나 있었다. 한번은 SK에, 한번은 KT&G(구 담배인삼공사)에 있었는데 두 번 다 경영권은 지켰지만 상처뿐인 승리였다. 둘 다 노무현 정권 때 있었던 일이다.


 이 중 SK-소버린의 갈등은 굉장히 심각했다. 당시 SK그룹은 순환출자 구조의 지분 방어가 충분히 형성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적대적 M&A에 취약했는데, 당시 소버린이라는 모나코 국적의 자산운용회사에서 보름가량에 걸쳐 다량의 SK주식을 매입했었다. 그 당시 SK는 불법정치자금 등에 연루되어서 검찰조사를 받는 등의 사건이 터져 주가가 하락해 있었는데, 대주주 지분률도 낮았기 때문에 더욱 위험했다. 소버린은 1700억원 수준의 돈으로 SK의 주식 14.99%를 소유할 수 있었고, 2대주주가 되어 2년간 SK의 경영권 탈취를 시도했었다. 당시 SK가 경영권을 결국 방어할 수 있었던 것은 펜텍&큐리텔 덕이었는데, 만일 소버린이 펜텍&큐리텔과 결탁하는 데 성공했다면 SK가 외국 금융자본에 완전히 넘어갈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래도 소버린은 8000억~1조 수준의 엄청난 시세차익을 보고 떠났다. 참고로 소버린의 직원은 겨우 20명이다. 여기서 살짝 생각해볼 거. 이렇게 소버린이 번 돈을 누가 벌어다 줬을까?


 개인적으로는 이런 사태가 있었는데도 무턱대고 순환출자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 머릿속이 이해가 안 간다. 나는 그들이 온전한 선의를 가졌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 한국은 엄청난 희생을 감수하면서 재벌을 키웠고, 그로 인해 어느 정도 부자 국가가 되었다. 재벌이 미워도 재벌이 버는 돈을 이 사회에 환원할 수 있게 해야지, 재벌이 외국 금융자본의 공격에 팔려나갈 수 있게 만들어서야 되겠는가. 매국노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일단 삼성이나 현대자동차그룹의 순환출자를 해소하는 건 현실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말 그대로 엄청난 자금이 없으면 순환출자구조를 바꾸는 게 불가능한 게 현실이다. 그들이 삼성 순환출자를 해소방안이라고 주장하는 구체적인 방식은 터무니없는 망상에 불과하다.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내 정신줄이 나갈 지경이니 말을 안 하는 게 나을 것 같다. 그래도 조금만 요약해 말하자면 주식 잔뜩 팔아서 순환출자 해소하란다...


 순환출자 해소한다고 서민들 살림살이가 나아질까? 한국 경제가 나아질까? 개미 투자자들이 반길까? 주식시장의 큰 손 연기금이 이익이라도 볼까? 다 아니다. 순환출자 폐지론은 그냥 강아지 풀 뜯어먹는 소리다. 순환출자는 일본, 프랑스, 도이칠란트, 캐나다에도 있는 방식이다. 미국은? 미국은 순환출자보다 훨씬 강력한 차등의결권 제도가 있다. 일본은 순환출자보다 훨씬 강력한 상호출자도 허용된다.


 실제로 SK-소버린사태와 KT&G-칼아이칸 사태 이후 한국 기업들은 유보금을 쌓고, 자사주를 매입하는 데 돈을 더 많이 쓰고 있다. 경영권이 위험한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어디 있겠는가. 저런 극단적인 위험 앞에서 다른 투자는 뒷전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멍청이들이 증오심을 내세우고, 광신도들이 그들의 뒤를 뒷받침하고 여론을 장악하는 동안 민생이 어려워진 건 당연한 일이다.


 무엇보다도 세상 그 어떤 멍청이도 제대로 된 국가 지도층이라면 국가의 존립기반이 되는 큰 기업의 경영권을 외국 자본에게 그대로 넘겨주진 않는다. 그런데 이 나라 멍청이들은 정말 특별한 수준으로 멍청하다. 이 스페셜 멍청이들의 명단을 보자면 대략 민주당, 통합진보당, 참여연대, 경실련, 깨시민, 그리고 새누리당 내 소수파인 경실모 정도를 들 수 있겠다. 심지어 이 멍청이들은 나라 곳간을 날로 팔아먹으려 들면서 지들이 정의로운 척을 한다. 솔직히 보고 있으면 정신줄이 나갈 것 같다.


 이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적대적 M&A는 나쁜 게 아니라고 한다. 시장에서 일종의 규율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도대체 적대적 M&A가 무슨 규율을 잡는다는 건지 모르겠다. 외국자본이 한국기업 산다고 덤벼오는 게 대체 우리에게 주는 이익이 무엇인가?


 기업 소유주가 한국인이건 외국인이건 상관없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지만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기업 인수되고 나면 보통 제일 먼저 하는 게 인력감축이고 업무효율향상이다. 외국자본은 돈 뽑아먹고, 봐서 팔고 나가면 그만이다. 그건 쌍용자동차만 봐도 알 수 있다. 사회적 압력? 한국 법? 그런 건 어지간한 외국인 투자자에겐 아무 의미도 없다. 재벌 총수들은 무슨 비리를 저지르건 기본적으로 자신들의 기업에 애정을 가지고 대대손손 번영시키려 하지만, 외국 인수자들은 보통 안 그렇다. 100년 후를 바라보는 사람과 10년 안에 최대이익을 내려는 사람의 경영방식이 같을 수가 있겠는가? 어떤 방식의 기업이 한국에 있는 게 모두에게 이익일까?


 이들은 얼마 전 부도난 동양그룹이 순환출자 때문에 부실해져서 집단으로 망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그건 진실왜곡이다. 동양그룹이 망한 건 핵심 사업인 동양시멘트가 이익을 못 내고, 추가로 그냥 경영을 잘못해서다. 순환출자는 지배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고, 거기에 많은 지출을 해서 망했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지주회사가 안정적인 지배에 돈이 더 많이 든다.


 이걸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보면, 경제민주화론자들은 대기업 집단에서 한 기업이 어려워질 때 다른 계열사가 도와주면서 (돈을 빌려주면서) 문제가 누적된다는 식으로 주장한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이게 나쁜가? 예를 들어 삼성카드가 어려울 때 삼성전자에서 돈을 빌려주는 게 나쁜가? 내 생각에는 그게 아니다. 판단미스가 아니라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수단이 더 있는 게 경영상 훨씬 유리하다. 경제민주화론자들은 어떤 대기업 하나가 부실해지면 그게 바로 투명하게 드러나서, 투자자들도 발 빼고 주가도 바로 무너지고 채권자 찾아가고 그러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건 경영자에게도 수많은 직원에게도 하청업체에도 안 좋은 것이다. 그저 투자자, 그것도 사모펀드같은 것에게 유리할 뿐이다.


 그러니까 현재 멍청이들이 주장하는 방안대로 기존 순환출자 폐지되어 버리면 진짜 좋아하는 건 펀드들뿐이다. 물론 펀드에 줄 대고 돈 받는 사람들도 웃긴 한다. 경제민주화 하자는 사람들 중 그런 사람도 당연히 있다고 들었다. 덤으로 금융에 대해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옆에서 목소리만 높이는 걸 보면 정말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나마 현재 새누리당쪽에서는 신규순환출자만 막는 방향으로 타협하는 것 같은데, 막긴 왜 막나. 순환출자 괜찮은 제도다. 부실과 부실이 엮여서 더 어려워지면? 방관하지 말고 정부가 미리 좀 더 강력하게 개입하는 게 좋다. STX건 동양이건 위험 자체는 미리 감지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 나는 차등의결권 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신규순환출자를 없애려면 차등의결권 제도를 도입해야한다.


 유사시 외국 자본한테 자꾸 국내기업이 팔리는 것도 정말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봐서 수익성이 있고 큰 기업이면, 특별 예산을 편성해서라도 국유화를 시키는 게 낫다. 나중에 민영화시키더라도 그게 훨씬 이득이고, 노동자들에게도 그게 훨씬 낫다. 그러나 IMF 이후 멍청이들이 자꾸 설치면서 국부가 계속 유출되고 있고, 실업자들은 늘고 있다. 군사정권 하던 방식 싫다고, 소위 금융마피아들이 지들 돈 벌려고 하는 말을 그대로 외워서 앵무새처럼 따라하니 매국노가 되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1주 1표의 원칙을 중시하는 경제민주화는 대기업 이상으로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의 미래에 큰 문제를 안겨줄 수 있다. 기업의 성장과정에선 각종 자금조달이 필요한데, BW(신주인수권부사채)나 ELW(주식워런트증권)같은 걸로 조달이 이루어지곤 한다. 아직 대기업이 못 되어 신용이 모자란 기업들이 채권시장에서 채권을 발행할 경우 지불해야 금리는 엄청나게 높다. 그런데 경영권을 그나마 쉽게 보장해주던 순환출자가 금지되게 되면, BW등을 통한 자금조달에도 부담을 더 느끼게 될 수 있다.


 더구나 연결회계가 도입된 이상, 주주들은 투자를 고려할 때 순환출자가 되어있는 기업의 재무 구조를 좀 더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좀 더 신경이 쓰일 뿐이다. 리스크를 미리 파악하고 털어내는 건 불가능한 일이 아니고, 정부의 관리감독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지주회사 구조가 더 낫다는 근거가 불충분하기도 하다.


 물론 경제민주화론자들이 주장하는 건 순환출자 폐지뿐만이 아니다. 심각한 문제를 가진 게 정말 많다. 본문에서는 분량 상 그 중 문제가 크다고 생각되는 몇 가지만 다루려고 한다.


 출자총액 제한 제도라는 게 있다. 보통 줄여서 출총제라 부르는데, 경제민주화론자들은 이것의 재도입을 주장하고 있고 작년 선거 때 문재인 공약으로도 나왔었다. 이 출총제는 기업의 신규법인 설립과 구주취득에 의한 계열사 편입을 제한하는 제도인데, 쉽게 이야기해 재벌의 신규투자 및 몸불리기를 막는 제도인 것이다.


 그런데 당연하지만 이런 출총제는 대기업의 신규투자를 가로막게 된다. 과연 이것이 바람직할까? 지금도 대기업들은 현실적으로 많은 유보금을 쌓아놓고 있다. 오죽하면 추미애는 유보금에 과세까지 하려 드는 상황이 아닌가.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출총제를 도입하자는 건, 결국 결론은 하나다. 괜히 일 더 벌이지 말고, 수익 고배당하고 주주중심 경영하라는 것이다. 게다가 출총제는 한국 기업에게만 적용되는 국내법이기 때문에, 외국 회사는 자유롭게 국내 기업 지분을 매수할 수 있고 한국 기업은 그 경쟁에 마음껏 뛰어들 수 없게 된다. 그러니까 출총제 재도입하면 외국인 투자자들이 좋아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경제민주화론자들이 사실 글로벌 금융자본의 편이라는 건, 그들과 민주당이 현재 국회에 올려놓고 매일같이 시위하며, 민생법안 막으면서 밀어붙이는 상법개정안만 봐도 알 수 있다. 본문에서 이것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려면 지면이 더 많이 들어갈 것 같은데, 간단히만 소개하자면.


 집중투표제 의무화라거나 집행임원제도, 감사위원이 되는 이사의 분리선출 및 사외이사 비율 늘리기 등등이 쟁점이 되고 있는데 이 법안들을 하나하나 설명하자면 복잡하니 요약해 말하자면, 경제민주화론자들과 민주당이 강경 주장하고 있는 방식은 모두 소액주주가 이사회에 더 많은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는 방향이다.


 사실 이런 걸 보고 있자면 기가 찬다. 매국노들과 매국노에 속은 멍청이들이 정의의 탈을 쓰고, 자칭타칭 깨어있는 시민이라는 광신도들을 규합하여 글로벌 금융자본의 종으로 날뛰면서 당장 필요한 민생법안은 막고 있기 때문이다. 조금 설명하자면 저 소액주주가 말이 소액주주지, 의미가 있을 만한 지분을 가지려면 엄청난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특정 기업과 특수관계도 아닌 사람이 의미있는 소액주주가 되려면, 엄청난 부자거나 아니면 펀드여야 한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이번 상법개정안은 소버린같은 외국 사모펀드가 국내 대기업에 좀 더 감내놔라 배내놔라 하기 쉽게 해주는 개정안이라는 소리다.


 결론적으로 본문을 요약해보겠다. 소위 경제민주화라고 하는 것들은 대중이 피상적으로 생각하는 평등주의가 아니다. 진실은 금융자본, 그것도 외국인을 포함한 글로벌 금융자본이 한국 대기업을 좀 더 접수하기 쉽고, 이용해서 이익을 얻기 쉽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저런 말도 안되는 소리들의 이론적 기틀이 되는 것이고, 저런 멍청한 소리가 계속 나오고 지지받는 이유는 사람들이 재벌에 대한 질투심이 있고, 금융과 경제를 사실 정말 모르며, 관용 없는 도덕주의적인 태도를 가지곤 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공약을 취소하고, 경제민주화를 막고 있는 것은 정말 잘하고 있는 거다. 경제도 금융도 모르고 일자무식하게 그저 노무현 찬양, 이명박근혜 까기에 여념이 없는 깨시민들은 자신들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실 경제민주화가 뭔지, 구체적으로 뭔 소리를 하는지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있는 깨시민은 전체 깨시민 중 1%도 안 될 거다. 그러니까 깨시민은 안 되는 거고.


 사람들이 지금 민주당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좀 더 잘 알 필요가 있다. 현재 민주당은 부동산 관련법안을 4월부터 계류시키고, 제대로 협의하지 않으면서 예산안 심의도 제대로 안 하고, 걸핏하면 국회에 참석하지 않는 가운데 특검수용과 위에서 설명한 경제민주화 법안 등이나 밀어붙이고 있다. 그러니까 내가 이것도 정당이냐고 그러는 거다. 정치인의 자격이 안 되는 사람이 민주당에 너무 많다.




 개인에게 부채란 고통스럽기 쉬운 일이다. 물론 레버리지를 즐겨 사용하고, 그로 더 많은 부를 얻는 사람들도 많긴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에게 빚은 공포이자 타락의 상징 같은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적금과 보험을 들고, 부채를 최소한으로 맞추면서 안전한 삶을 사는 것을 바람직하다 생각하고, 또한 그런 것을 권장 받곤 한다.


 그렇기에 대체로 ‘우리 도시에 빚이 많다!’라는 말은 훌륭한 정치적 언어가 되곤 한다. 근래 나왔던 이야기만 해도 서울시 빚이 27조네, 인천시 빚이 10조네... 심지어 성남은 모라토리엄 선언까지 했었다. 이 도시들은 새누리당에서 민주당 정치인으로 시장이 바뀐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사실 2013년 현재, 과거 2010년 성남의 모라토리엄 선언은 과도한 정치쇼였다는 지적이 많은 상황이다. 나는 이것에 대해서 아직 구체적인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모라토리엄이라는 것은 극단적인 상황에서 나올 만한 것인데 성남이 그런 상황이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중요한 것은 민주당과 소위 진보좌파들이 자꾸만 ‘빚’과 ‘재정적자’를 들고 정치적 공세를 펼친다는 데 있다고 본다.


 지난 포스트, ‘계속되는 민주당의 발목잡기에 대한 사견’  및 ‘민주당의 대기업 유보금 과세 논란’에서  나는 민주당이 자꾸만 월가 신자유주의자들이나 할 법한 소리를 한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이번 포스트에서도 그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고, 그런 소리를 내는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한 약간의 이야기를 할 것이다. 민주당의 저런 태도가 이 사회에 끼치는 해악이 너무 큰 데 반해, 그들의 그런 면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너무 없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할 필요성을 느낀다.


 민주당은 왜 걸핏하면 ‘재정적자’를 입에 담을까? 그리고 왜 새누리당 정치인들은 재정적자를 감수하는 것일까? 재정적자는 왜 필요하고, 얼마나 위험할까? 이런 것들에 대해 먼저 알아야 정치판의 저런 언어들을 이해할 수 있다.


 가장 먼저 이야기해야 할 것. 이 정부 재정적자라는 면에서 본질적으로 진보주의적인 것은 새누리당이다. 대조적으로 민주당은 보수주의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민주당이 하는 말 중에는 진보좌파 방식의 방안도 많기 때문에, 그들이 철학이 없고 포퓰리즘 공약만 늘어놓는다는 지적을 듣는 것이다.


 왜 민주당이 보수주의적인 것인가? 그것은 부채에 대한 태도 차이에서 기인한다. 현대의 새로운 케인즈 경제학이 제시하는 불황에 대한 대응방법은 한마디로 다음과 같다. ‘돈을 풀어라.’ 이것은 정부지출을 늘리라는 식의 말과 같다. 그런데 그러려면 세금을 더 걷어야 하지 않느냐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부자감세논란 또한 지난 몇 년간 시끄러웠다. 그런데 세율을 올려야 할까?


 세금을 더 걷어야 하는 건 맞다. 그런데 세금은 거래 또는 소득이 발생할 때 과세되기 때문에, 세율의 증가는 곧 거래의 감소로 이어지고 그것은 불황을 심화시킬 뿐만 아니라 결국 세수도 줄어들게 하기 쉽다. 비유하자면 A라는 물건을 팔 때 2000원 남기고 3~4개 파는 것보다는, 1000원 남기고 10개 파는 게 낫지 않은가? 세금도 같은 이치다.


 현실적으로 불황이 오면 세수는 줄어든다. 그러니 정부는 더 많은 돈을 풀어야 한다. 불황일 때는 빚을 져야 (부채를 늘려야) 하는 것이다. 이것과 정확히 반대의 요구를 했던 게 과거 외환위기 때 IMF인데, 그들이 강요했던 긴축&고금리 방안 때문에 대한민국은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했다. 막상 근래 금융위기를 겪자 미국도, 유럽도, 일본도 그런 식으로 하지 않고 네오케인즈주의의 방식대로 돈을 풀어 난관을 극복하고 있다. 무식하면 당하는 거다. 몇 년 전 IMF 총재가 한국 외환위기 때 IMF가 했던 조처는 실수라고 인정 및 사과까지 했었다.


 위와 같은 진실에도 불구, 불경기인데도 부채 줄이라는 말과 함께 적자가 쌓여서 큰일 날 거라고 하는 진보좌파가 많다. 물론 민주당도 그런 식의 말을 많이 한다. 그러나 이렇게 부채를 두려워하고, 걸핏하면 긴축을 이야기하는 방식은 과거의 IMF나 근래의 미국 공화당 및 보수주의자의 관점과 같다.


 그들이 미국의 QE(양적완화)나 일본의 아베노믹스가 뭘 의미하는지 알고 있을까? 이미 금리는 0에 가깝고, 돈을 적당히 풀어서는 아예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 않으니까, 아예 국채를 직접 매입하는 방식 등으로 통화(돈)를 시중에 마구마구 풀어버리는 게 양적완화 및 아베노믹스다. 이러면 화폐가치는 떨어지지만, 통화량은 늘어나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불황의 순환 구조에서 벗어나기 쉽게 된다. 그런데 한국 진보좌파들은 금리만 낮춰도 왈왈댄다. 이들이 생각하는 건 물가밖에 없다... 그런데 물가가 안 오르는 건 디플레이션이다. 물가가 오르지 않는다 = 디플레이션 = 불황 인 것을 이들은 알고 있는 것인지?


 본래 경기는 순환한다. 계절이 순환하듯 호황과 불황도 교차하기 마련이다. 돈 없을 때 절약하는 건 각 가정에나 이익이 되는 방식이다. 그러나 불경기라 돈 없다고 모든 가정이 절약하면, 시장에 돈이 돌지 않기 때문에 불황은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한국은 식량이나 생필품의 자급자족률도 극단적으로 낮은 편이다보니 이렇게 되면 그 고통은 더욱 심하다.


 사업할 때 어려우면 원래 돈 끌어다 쓰기 마련이다. 그 정도가 과도하지 않도록 조절하는 게 중요할 뿐이다. 적자 났다고 무조건 사업 접으면? 세상에 될 사업 아무 것도 없다. 정부는 가계재정보다는 사업에 가까운 것이다. 불경기일 때는 재정적자를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돈을 풀어야 한다. 이것이 보다 진보적인 관점이고, 많은 이들이 고통을 덜 겪는 방법이다. 그러나 자칭 진보좌파는 긴축을 하라고 하니, 무지가 빚어내는 심각한 불운이라 해야겠다.


 만일 불황일 때 과거 IMF의 조처처럼 긴축하면? 사실 이렇게 하면 시간적으로는 불황을 더 빨리 벗어날 수도 있다. 다만 우리가 IMF때 겪은 일과 동일한 상황이 발생한다. 씻을 수 없는 고통의 바람이 불어오게 되는 것이다. 빈부격차는 엄청나게 커지고, 수많은 기업이 도산하고, 살아남은 대기업은 더 커지며 자본가들은 상당한 돈을 번다. 이럴 때 돈을 버는 자본가들은 결코 국내의 자본가뿐만은 아니다. 엄청난 외국계 자본이 침투해서 국부가 유출되게 된다. 이런 게 진보좌파가 원하는 것인가?


 재정건전성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부채의 액수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산 대비 부채가 어느 정도인지, 재정규모 대비 부채가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향후 어떻게 부채를 해결할지가 중요하다. 그러나 부채의 액수를 말하는 이들은 부채의 질적인 면은 말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서울시 부채? 18조가 넘는 SH공사 부채보다는 4.3조 정도 되는 지하철공사 부채가 훨씬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부채 가지고 허구한 날 시끄러운 박원순은 SH공사 부채나 건드리지, 지하철공사 부채는 손댈 생각도 못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런 게 포퓰리즘인거다.


 만약 이런 문제들이 복지와 결합한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복지엔 필연적으로 재정이 필요한데, 민주당식의 재정 관점과 복지는 결합이 잘 안 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이미 상당한 수준으로 하고 있는 복지정책인 건강보험과 국민연금을 보자. 어떻게 운용되고 있는가? 그리고 지속 가능한가?


 소위 진보좌파들의 4대보험에 대한 평가는 보통 그리 좋지가 않다. 그러나 그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더 나은 방안을 만들 것인지는 미지수다. 대체로 그들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생각인지 말이 없고, 모델도 제시하지 못한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매우 다른 성향의 관점이 접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재정 정책에는 신자유주의 스타일로 이야기하면서, 분배 문제에서는 갑자기 사회주의 스타일이 되니 될 리가 없는 것이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렇다.


 한국은 진보적인 열정이 넘치는 나라다. 사회를 개선하려는 의지도 강하고, 대한민국 건국 이후 두 번이나 민중 혁명을 통해 사회를 바꿨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가 충분히 진보하지 못한 것은 현재 진보좌파 입지에서 권력을 잡고 있는 이들의 소양이 매우 부족하고, 그들이 권력욕이 있을 뿐 철학이 있거나 비전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친노세력과 깨시민이 이에 해당한다.


 그들이 망상에 가득 차있는 사이, 소위 보수우파는 보수우파로의 아이덴티티를 벗고 더 진보적인 입지에 서 있다. 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지는 근래의 한나라-새누리당 정권은 4대강 같은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했지만, 금리를 잘 조절하고 좋은 재정 정책을 펴는 등 합리적인 조처를 취하고 있다. 적어도 경제 정책에 있어 새누리당 정권은 보수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자칭 진보좌파들의 엄중한 자기반성이 요구될 때이지만, 내가 보기엔 이미 그들은 반성을 잊었고 남탓만 하고 있다. 그러니까 나는 오늘도 이런 포스트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