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집권 후의 예상

정치 2017. 1. 11. 20:28 Posted by 해양장미

 곧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통과되고, 그로부터 2개월 후의 선거에서 문재인이 대통령이 될 경우의 시나리오입니다. 개인적 예상에 의한 것이므로 이런저런 오류의 가능성이 있으며, 반론은 자유입니다만 견해를 표명하는 데 있어 어느 정도의 근거는 이야기해주시기 바랍니다.

 


1) 경제

 

 부동산, 금융부터 시작되어 어느 정도는 파국이 일어날 걸로 전망됩니다. 일단 임대차 문제에서 문재인과 민주당의 태도는 끔찍할 정도로 비현실적이고 무조건적/단기적 시각으로 임차인 편을 들기 때문에, 시장에 큰 충격이 가해지고 얼어붙을 것입니다. 완화적인 정책은 거의 없을 걸로 생각되고 가계부채를 줄여야한다는 무조건적 당위가 앞설 것임에 이 충격은 더 심할 것이며, 이는 극단적인 불황으로 이어져 금세 정부의 지지기반을 붕괴시킬 수 있습니다.

 

 당장 불경기로 인해 세수부터 펑크날 텐데, 이걸 만회하기 위해 이런저런 데서 세금을 걷으려 들 테고 조세저항도 거세게 일어날 겁니다. 연일 정부비판의 목소리가 클 테고, 관료들과의 갈등도 있을 텐데, 그걸 막고 꺾으려는 달레반들에 의한 정치적 갈등도 더 커질 겁니다.


 소위 재벌개혁을 하겠다고 외부펀드들의 권한을 늘리고, 법인세 감면안들을 줄임으로 기업들은 방어적이고 축소지향적인 경영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에 신규고용은 더 줄어들고, 각종 계열사가 정리될 확률이 높습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중기업들도 규모를 키우면 (큰 기업이 되었다는 이유로) 두들겨 맞기 때문에, 어지간해선 규모를 키우지 않습니다. 이에 고용절벽은 심화될 것이며, 다수의 기업은 해외계열사를 통한 (실질적) 외국기업화를 추구할 걸로 예상합니다.

 

 이런 흐름은 일단 2018년 지방선거까지 이어질 확률이 높은데, 그 시간동안 얼마나 큰 데미지가 발생할지 예상하기 어렵습니다.

 

 

2) 외교

 

 총체적 난국을 넘어 위기가 예상됩니다. 사드배치와 위안부 합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을 뒤집고, 명백한 친중/친북 노선을 걸을 걸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트럼프와 아베 정부는 한국을 반영구적으로 - 민주당계/운동권 세력이 완전히 몰락하기 전까지는 - 신용할 수 없는 상대로 볼 것이고, 앞으로 벌어질 대중 압박 체제의 구상에서 한국을 배제하려 할 것입니다.

 

 주한미군과 국정원에 대한 각종 거친 논의가 있을 것이고, 군대도 크게 건드리려 할 것이며 그로 인한 사회갈등도 커질 겁니다. 이 문제는 경제위기와 겹치면서 정치적 갈등을 극단화시킬 가능성이 높으며, 광범위하고 지속적인 충돌을 예상해 볼 수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매우 크고 오래 가는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심각한 분야라 하겠습니다.

 

 

3) 복지

 

 복지 문제에 있어, 이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걸 금방 깨달을 겁니다.

 

 복지를 확충하려면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세수가 늘어야 합니다. 그런데 민주당의 정책은 전혀 세수를 늘릴 수 있는 방향이 아닙니다. 무리하게 세율을 건드리면 세수는 더 엉망이 됩니다. 게다가 해온 말들이 있어서 근로소득세나 소비세는 건드리기도 어렵고, 국가부채를 늘리는 방향도 선택하기 어렵습니다.

 

 이 면에선 여러 가지 무리수를 두다가 국민의 고통과 함께 자멸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합니다.

 

 

4) 정치

 

 이미 사방에 모두 적이고, 동지는 없습니다. 문재인이 봄에 집권한다 해도 약 1년 후인 2018613일은 지선입니다. 이 때까지 문재인 정부가 인기를 유지하고 지배적일 수 있을지는 대단히 의문입니다. 그들은 지난 10년 간 해온 공격을 역으로 고스란히 당할 겁니다. 대선이 끝나자마자 모든 정치세력은 지선을 바라봅니다.

 

 물론 온갖 정치쇼와 포퓰리즘으로 인기를 유지할 수도 있겠지요. 이렇게 되면 상황은 훨씬 나쁠 것입니다만, 이 쪽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다 전망합니다.

 

 적이 많은 만큼 문재인은 국민들과의 직접 소통을 강조하며, 대중독재를 추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이리 할 경우 결과는 끔찍합니다.

 

 

5) 부패 개혁

 

 그나마 일말의 기대를 걸어볼 수 있는 분야입니다만, 있던 부패는 제대로 처리도 못하고 새 부패 만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기본적으로 기득권을 상대로 하는 개혁이라는 건 매우 난해한 일입니다. 문재인은 정권을 쥔다 해도 적이 많고, 특히 온갖 기득권 세력을 적으로 돌렸으며, 각종 전문분야의 이해에 있어 끔찍할 정도의 무지와 오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런 유형의 정치인이 펼치는 개혁은 잘 되기 어려우며, 강한 저항을 불러오면서 좋지 못한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보통 권력문제에 있어 힘과 의지만으로 상대를 때려눕히겠다는 건 멍청이의 발상입니다. 물론 가끔 닥돌 닥공이 이기기도 합니다만, 계속 이길 수는 없지요.

 

 

6) 언더도그마

 

 문재인이 서 있는 그룹의 매우 골치 아픈 점이 언더도그마입니다. 이 문제에서 운동권, 진보, 민주당 세력은 정말 너무나 심각한 망상꾼들이라 진짜로 답이 없습니다. 경제 파트에서 어느 정도 언급했습니다만, 근래 입법 예고된 성폭력 무고 같은 법 문제 또한 보고 있으면 암에 동맥경화, 뇌경색 및 심근경색이 동시에 올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언더도그마는 소수의 차상위 계층에게 특혜를 줍니다. 그리고 나머지 대다수에게는 큰 피해를 줍니다. 이 문제에선 일말의 희망조차 가지지 않는 게 좋습니다. 그들은 여러 부류에게 특혜를 주고, 각종 제도를 개악해서 수습할 수 없는 피해를 곳곳에 입힐 것입니다.

 

 그러고는 잘했다고 잘난 척 하고, 달레반들은 박수를 쳐주겠지요.

 

 여담인데 언더도그마는 민주당 쪽에만 있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민주당 쪽이 심합니다.

 

 

*) 희망은 있는가?

 

 사견으론 2018년 지선이 희망입니다.

 

 당장은 시간적 문제로 문재인의 대통령 당선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그러나 그 실체를 접하게 되면, 문재인을 지지한 게 실수였음을 많은 국민들이 깨달을 것이라 전망합니다.

 

 그 실망이 정치에 대한 근본적 경멸로 이어지지 않길 바랍니다. 정치세력들은 당장의 대선 이상으로 내년 지선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지선에서 문재인 세력이 참패한다면,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서울시장은 교체되어야합니다. 박원순은 더 이상 문재인 옆에 서 있진 않지만요.

 

 


LTV 완화 및 가계부채 논란에 대하여

경제 2014. 6. 29. 19:41 Posted by 해양장미

 근래 들어 LTV[각주:1] 완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논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전 예전부터 LTV 완화에 강력하게 찬성하는 입장이었는데, 가계부채가 많은 상황에서 LTV 완화가 가계부채에 악영향을 줄 거라는 연구결과들이 나오고 있어서 이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 합니다.

 

 모든 것에 앞서 우선적으로 이야기할 게 있습니다. 모든 투자전망 및 규제정책에는 낙관론자와 비관론자의 의견이 엇갈리기 마련입니다. 사람은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각자가 보고 싶은 데로 상황을 보게 됩니다. 경제학자들은 보다 정확한 예측 모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만, 이러한 예측 모델들의 정확성은 일기 예보보다 떨어지는 게 현실입니다. 기상 현상에 비해 경제 현상은 더욱 변덕스럽고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합니다.

 

 이런 한계 때문에 경제 문제에 있어 미래를 전망한다는 것은 내일 비가 오냐, 안 오냐같은 문제가 됩니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 경제 정책을 결정한다는 건 내일 놀러가려고 하는데, 예상 강수확률이 60%라면 과연 그냥 놀러갈까, 아니면 취소해야 하는가?’ 같은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치권의 언어는 이런 불확실성에 비해 너무나도 전투적입니다. 한국에서는 꽤나 단정적인 어투가 일상적이며, 예언가와 같은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특히 일종의 종말론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대체로 사이비 종교 교주 혹은 신도와 같습니다. ‘곧 멸망이 다가오니, 우리는 검소함 같은 도덕적 미덕을 회복해야한다.’ 같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물론 세상이란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긴 합니다만, 혹세무민은 언제나 타인에게 피해를 주기 마련입니다.

 

 그럼 본론인 가계부채 문제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LTV 논란의 핵심은 LTV 그 자체가 아닌 가계부채입니다. KDI[각주:2]나 피치[각주:3]LTV를 늘리면 가계부채가 늘어날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거나 경고를 하고 있는데, 사실 이건 당연한 일입니다. LTV를 늘리면 당장은 가계부채가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불경기에서 레버리지 규제를 해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가 살펴봐야 할 건 현재의 높은 가계부채 자체입니다. 왜 이리 가계부채가 많은지, 가계부채의 질(퀄리티)과 건전성은 어떠한지를 봐야 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가계부채를 해결할 수 있는지를 보고, LTV가 그것과 어떠한 연관이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거시경제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 구성원들의 심리와 전망에 있습니다. 쉽게 기본적인 설명을 하자면 사람들은 앞으로 수입이 늘어날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 돈을 더 쓴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아무리 지금 자금이 충분하더라도 앞으로 쪼들리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돈을 덜 씁니다. 유난히 헤픈 사람도 있고 구두쇠도 있지만 대체로는 이렇습니다.

 

 시장경제는 사람들이 돈을 많이 쓰면 쓸수록 더 호황이 오고, 안 쓰면 안 쓸수록 불황이 오게 되어있습니다. 누군가가 돈을 쓴다는 건 누군가가 돈을 번다는 거고, 돈의 흐름이 빨라질수록 해당 사회는 부유해지기 때문입니다.

 

 이 연장선상에서 가계부채는 그 액수보다도 사람들이 가계부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봐야합니다. 부채가 그 이상의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고 전망하게 되면, 그 부채는 거시적으로는 별 문제가 아닙니다. 쉬운 말로 5%이율로 돈 빌려서 10% 수익을 얻게 되면, 아무리 많은 돈을 빌려도 빌린 만큼 이익이 되는 것이지요.

 

 한국의 가계부채가 늘어나게 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만, 가장 큰 비중은 역시나 2008년부터 시작된 부동산 경기 침체에 있습니다. 한국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매우 잘 이겨낸 국가지만, 같은 해부터 발생한 부동산 경기 침체는 아직 극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방보다는 수도권에서의 피해가 큽니다.

 

 노무현 정권 시절 부동산 상승기 때 수많은 사람들이 담보대출을 포함한 투자를 감행했습니다. 그 덕에 대다수는 재산을 불렸습니다만, 망설이다 나중에 움직인 사람들 중 일부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망설이던 사람들은 그다지 투기적인 성향을 가졌다 보긴 어려운데[각주:4], 이 사람들 중 일정 비율이 주로 하우스푸어가 된 것입니다.

 

 한편 이 사회엔 하우스푸어보다도 가계부채문제의 주된 요인이 되는 계층이 있습니다. 자영업자[각주:5]와 실질적으로 자영업이나 다름없는 소규모 법인[각주:6]의 문제입니다. 한국은 신용대출이 발달하지 못했기에, 가능한 한 저리로 대출을 받으려면 담보대출을 받아야 합니다. 물론 한국에서 가장 일반적이고도 저금리인 담보대출은 주택담보대출입니다.

 

 IMF이후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가속화되면서 은퇴자금을 활용해 자영업을 시작하는 사례가 증가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질이 좋지 못한 가계부채가 늘었습니다. 최저임금의 가파른 상승, 이어지는 불경기, 신용카드 사용 비율의 증가, 계속되는 은퇴자들의 창업, 대기업 계열의 골목상권 진출 등으로 인해 자영업 및 소규모 법인의 생태계는 무너졌고[각주:7] 그것은 현재의 가계부채 문제의 주된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문제가 커지게 된 건 부동산 경기침체 이후 부동산에 묶인 자산이 충분히 유동화되기 어려웠다는 점에 있습니다. 부동산은 거래에 시일이 오래 걸릴 수 있는 자산이고, 급매물이 축적될 경우 순식간에 가격이 폭락할 수 있습니다. 특히 한국의 경우 공동주택이 주된 거주형태이기에 주택가격이 규격화되어있고, 폭락은 순식간에 번질 수 있습니다. 물론 폭락을 방지하려는 힘이 충분하기에 실제 폭락이 발생한 지역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만, 대신 유동성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표준가격에 거래가 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렇게 줄어든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거래보다는 대출을 선택하는 사람도 많아졌습니다.

 

 침체 당시 정권을 쥐고 있었던 이명박 정부는 정책과 행정에 있어 애매한 모습을 적잖게 보였습니다. 부동산 문제에 있어 최악의 대응을 한 건 아니었습니다만, 문제를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태도 역시 부족하였다고 봅니다. 쉬운 말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결정하고 추진하기보다는 우유부단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태도는 나쁜 결정을 밀어붙이는 것보다는 낫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문제 해결에 대한 더욱 본격적인 논의는 현 정부인 박근혜정부가 들어선 이후에야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각주:8]

 

 LTV 관련 논의에 있어 제가 생각하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이율입니다. LTV는 부채의 액수에 대한 제한이지만, 이 법적 한도는 제1금융권[각주:9]의 담보대출에만 적용됩니다. LTV 제한이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제한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LTV를 넘어서는 대출을 받는 사람들은 LTV 한도 때문에 더 많은 이율을 부담하게 됩니다.[각주:10] 실제로 보면 자영업자들이 부담하는 가계부채 평균 이율이 노동자가 부담하는 이율보다 유의미하게 높습니다.

 

 즉 위에 이야기한 것을 요약하자면 가계부채의 주된 문제는 소규모 사업자들에 있고, 이 소규모 사업자들은 LTV한도로 인해 실제 가진 자산의 규모에 비해 비교적 높은 이자를 부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에서 저는 LTV한도가 소규모 사업의 실패 확률을 높이고 있다는 추론도 가능하다 여깁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실패한 사업자는 그 순간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는 피부양인구가 됩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이 문제는 우리 사회의 고령화 문제 및 복지 문제, 청년층의 노인 부양 문제와도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LTV 한도를 완화해야 한다는 명분은 충분합니다. 또한 부동산 경기침체가 계속되어왔는데 LTV를 낮게 유지할 명분이 없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자영업자, 소규모 법인 문제를 개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경기침체를 속히 끝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계부채의 위험성 또한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가계대출 금액이 너무 크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기엔 많은 이들이 한국의 가계부채 문제를 과대평가하고 있습니다. 보통 이런 비관적 시각에는 전문적인 언어가 정치적 언어로 옮겨질 때 확대 재해석되는 문제가 그 뒤에 있는 것 같습니다.

 

 현재 한국의 가계대출 규모는 외부 조건이 불변일 때는 감내할 만한 수준입니다. 한국의 가계대출은 많은 부분이 부동산 담보대출이고, 부동산이 폭락하지 않는 한 총자산에 비해 안정적인 규모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금융자산에 비해서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부채가 유난히 큰데, 이는 한국인들이 재산을 금융자산으로 보유하는 비율이 낮기 때문입니다.[각주:11] 물론 이런 점을 정치적이고도 공격적인 언어로 악용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한국은 (가계)금융자산에 비해 가계부채가 비정상적으로 높다!' 같은 식으로요.

 

 중요한 것은 가계부채의 규모를 줄이려면 경기를 회복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경기가 나쁠 때 부채가 줄어들 리 없고, 채무가 늘어나는 것을 두려워하다 유동성이 줄어드는 경우 심히 나쁜 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경영이 힘든 기업에 회생자금이 필요하듯, 경기가 나쁜 사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부동산이 시민들의 가장 큰 재산인 나라에서 부동산 거래가 오래 침체되어 있는 건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입니다.

 

 한편으로 저는 충분한 근거 없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종말론을 설파하는 부동산 폭락론자들을 경계합니다. 대부분은 부동산이나 금융에 대해 기초지식조차 없어서 하는 말입니다만, 그 뒤에는 누가 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세상에는 나쁜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LTV는 완화해야 합니다. 설령 가계부채가 더 늘어나더라도, 현행 LTV를 유지하는 것보다는 그것이 장기적으로 가계부채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확률이 높다고 봅니다.[각주:12] 다만 정부는 향후 금리가 오를 것에 대비하여 고정금리대출을 늘리려는 시도를 지난 몇 년간 반복하고 있는데, 고정금리를 선택했던 사람들이 금리인하로 손해를 본 경험들이 있기에 이 시도는 실패할 것입니다. 한국은 변동금리제를 실시해왔던 나라인 만큼, 앞으로도 경기회복 때까지는 어떻게든 저금리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게 옳다고 봅니다.

 

 더 나아가 저는 정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부동산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잘 팔리지 않는 주택을 매입하고 임대를 놓는 등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는 북유럽 등의 복지국가 시스템에서는 당연한 일입니다. 사실 진보주의자들이 이런 식의 주장을 강력하게 펼칠 필요가 있습니다. 주거복지와 경기부양 모두에 도움이 되는데다, 북유럽에서 실제로 사용중인 방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자칭 타칭 진보들을 보면 한숨이 나올 뿐입니다. 그들은 대체로 나쁜 상황을 이용해 불안과 공포를 자극함으로서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고 얻으려 들 뿐, 진짜 문제를 해결할 만한 어떠한 현실적 방안도 생각하거나 제시하지 않습니다.

 

 당장 이 사회의 미래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불안을 해소시키고, 안정된 정서를 공유하는 것입니다. 공포감을 자아내는 말들이 공포를 확대시키고, 공포스러운 미래를 불러옵니다. 사람들은 예견한 대로 행동함으로 인해 예견을 실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현실적 위험에서 눈을 돌리는 것은 더 위험한 행위입니다만, 약간의 위험을 확대시켜 겁을 주는 것은 더욱 위험합니다. 역사는 겁쟁이가 아닌 용기 있는 자들의 편이었습니다.

 


  1. 주택담보대출비율을 의미합니다. LTV가 60%으로 책정된 지역에서는, 주택가치가 1억일 때 제1금융권에서의 주택담보대출한도가 6천만원이 됩니다. [본문으로]
  2. 한국개발연구원. 국무조정실 산하의 재단법인 경제ㆍ사회 연구기관입니다. [본문으로]
  3. 국제신용평가사 중 하나입니다. [본문으로]
  4. 수완 좋고 재기 넘치는 사람들은 대체로 분위기를 빠르게 읽고 투자에 일찍 뛰어들기 마련입니다. [본문으로]
  5. 연구에 의하면 자영업자들의 부채는 전체 가계부채의 43.6%를 차지하며, 가구당 부채액수는 임금노동자의 2배에 육박합니다. [본문으로]
  6. 실제 소규모 법인회사들을 보면 적잖은 경우 자영업과 동일한 방식으로 경영되고 있고, 자영업과 같은 양상의 큰 문제를 가진 경우가 적지 않지만 통계적으로는 결코 자영업으로 잡히지 않습니다. 무늬만 법인이지만 무늬 때문에 식별은 거의 불가능한 것입니다. [본문으로]
  7. 통계적으로 현재 자영업자의 1/3 정도는 생활비도 못 벌고 있습니다. 자영업자 평균 연수입도 노동자에 비해 유의미하게 낮습니다. [본문으로]
  8. 잘 하다가 전월세에 세금 걷는다는 희대의 바보짓을 하긴 했습니다만. [본문으로]
  9. 새마을금고, 지방농협 같은 건 제1금융권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본문으로]
  10. 물론 현실적으로는 DTI같은 문제도 있습니다. [본문으로]
  11. 한국 사람들은 총자산이 많은 사람이 부채도 많습니다. 그런데 비금융자산인 부동산을 빼고 금융자산만을 놓고 보면, 금융자산과 부채 사이엔 역의 관계가 성립합니다. 금융자산이 없을수록 부채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서구 선진국과는 정반대의 성향입니다. 즉 한국 가계부채는 외국의 사례와 양상이 달라 특수성이 있다는 겁니다. 자산이 많은 사람들이 부동산에 돈이 묶여 있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본문으로]
  12. 다만 외부리스크를 헤지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LTV를 지키자는 주장도 타당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한국이 그런 위험 회피적인 경향이 중장기적으로 더 큰 위험을 만들어내는 상황에 처해있다고 느낍니다. [본문으로]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

경제 2014. 2. 25. 11:27 Posted by 해양장미

 한국은 분배에 있어 문제가 심각화되는 경향을 가진 나라다.


 사실 한국의 지니계수라거나 빈부격차를 보면, 한국은 큰 문제가 있는 나라에 속하지는 않는다. 물론 한국보다 좋은 나라도 있지만, 한국보다 못한 나라가 정말 많다.


 그런데 한국이 좀 독특한 문제를 가진 점을 요약하자면,


1) 좀 중간이 없다. 잘살거나 아니면 못 산다. 쉽게 말해 양극화.

2) 못 사는 사람들 중 정말 못 사는 사람들은 너무 심각하게 못 산다. 이 사람들은 사회에 거의 아무 목소리도 못 내고, 그나마 살만한 사람들에게 치인다.

3) 전반적으로 너무 고학력에 너무 노동시간도 길고 타인 의식을 많이 하는 사회라 평균만큼 하기도 너무 힘들다.

4) 서민들도 부자를 너무 쉽게 볼 수 있다. 다른 나라에 비해 생활구역이 뚜렷하게 분리되어있지 않다. 더구나 문화적으로 사람 간의 비교를 심하게 한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진보좌파들은 실질적인 분배문제에 있어 현실성 있는 대안을 내놓거나 통찰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고, 그렇기에 정치적인 문제 해결이 너무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번 글에서는 이에 대해 좀 이야기해볼까 한다.


 그리고 어린 깨시민들의 안타까운 피해의식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한다.


 일단 가장 먼저 이야기해야 할 것은 흔히 대다수가 겪게 되는 저임금노동에 관한 것이다. 성인이 되고 저임금노동을 처음 해 보면, 그 반응은 각자 다르지만 대체로는 그것이 힘든 데 비해 정말 돈은 안 된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나마 요즘은 최저임금이 많이 올라서 꽤 나아졌지만, 10년 전만 해도 1.5배쯤 심각했다.


 보통 한국 사람들은 고학력에 어린 시절 인생의 목표도 (실제 이루기 힘들 정도로) 높은 편이라서 이런 경험이 좀 충격적이기 쉽다. 대체로 이런 경험들에서 진보적인 의식이 싹트기 시작하는데, 문제는 이후 습득하게 되는 소위 ‘진보세력’이 주장하는 말들을 좀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기 쉽다는 데 있다. 그나마 진보세력이 하는 말들이 좀 말이 되는 소리들이면 그래도 괜찮은데, 알고 보면 대체로 뻘소리 그 자체라서 이게 사회문제로까지 커지게 되는 것이다.


 일례를 들기 위해 모 커뮤니티의 덧글 하나를 임의로 인용해 보겠다.[각주:1] 우연히 발견한 이 글을 인용한 이유는, 이것이 매우 흔한 진보좌파 식 담론 중 하나의 스탠다드가 될 수 있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또한 이 덧글은 해당 커뮤니티의 추천/반대 시스템에서 인용 시점 현재 추천 60개에 반대 0개를 받고 있기에, 소위 진보적인 사람들의 인지와 정서를 파악하는 데도 일정 이상 도움이 된다고 본다.


‘ 쌍팔년도식 경제관념을 교육받은 사람들이 자꾸 분배를 성장과 반대되는 개념쯤으로 착각을 하는게 문제인데, 분배는 성장에 반하는 개념이 아닙니다.


 분배는 더 성장하기 위한 밑거름이에요. 소를 키워 파는 사람도 더 질 좋은 사료, 예방접종 등 기본적인 의료 지원을 해야 더 높은 수익을 낼 수 있습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도 양질의 품종을 구하고 더 좋은 비료를 써야 더 높은 수익을 내는 법이구요. 공장을 운영하는 사람도 더 좋은 기술 개발에 투자를 하고 더 좋은 설비에 투자를 해야 수익을 올릴 수 있죠. 성장과 분배의 개념도 마찬가지에요. 노동자 개개인의 삶의 질이 올라가야 노동력도 더 향상되고 더 뛰어난 품질의 노동력 제공이 가능해 집니다. 분배는 성장의 결과라거나, 성장 이후에 '다 이루었다'하고서는 나눠먹는 개념이 아닙니다. 더 성장하기 위한 기본적인 투자죠.


 성장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자는 둥 뻘소리 하는 인간들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멍청이 이거나, 혹은 다 알면서 자기 배만 채우기 위해 거짓말하는 악당일 뿐입니다.


 공산주의가 망한 이유를 인간의 본능적인 '욕심'을 무시해서 그랬다고 쉽게들 이야기 합니다. 자본주의가 망한 이유도 똑같습니다. 인간의 본능적인 '욕심'이 저절로 컨트롤 될거라 믿는 착각과 무지 때문에 망한거에요. 지금의 자본주의는 초창기 개막장 천민자본주의랑은 엄청나게 다릅니다. 이름에 자본주의 들어가 있다고 해서 저 옛날 산업혁명 시절 영국에서 10대 미만 어린애들을 공장 기계 틈 기름웅덩이 속으로 밀어넣던 그 시절 막장 자본주의랑 같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시장논리에 모든걸 맡기면 다 알아서 될거다'라는 둥, '낙수효과'라는 희대의 뻘소리를 지껄이는 둥, 인간의 욕심과 시장논리에 그냥 모든걸 맡겨두면 다 알아서 될거라는 그런 착각은 곤란합니다.


 나라에서 나서서 적극 개입하며 분배에 힘써주지 않으면 더이상의 성장도 없습니다. 분배가 없으면, 분배를 위한 정부의 시장개입이 없으면, 결국에는 시장도 붕괴되고 말겁니다.


 지금 대한민국 경제를 살리는 길이요? 최저임금 확 높이고, 나태하고 태만한 대기업들 정신차리게 확 조져줘야 합니다.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고, 중소기업들이 대기업을 위협할 수 있게 보호해줘야 합니다. 어느 중소기업이건 좋은 아이템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새로운 강자로 일어설 수 있게 여건을 만들어줘야 하고, 대기업들도 정부 지원에 기대어 중소기업과 노동자들 피나 빨어먹으며 썩어가는게 아니라 언제건 밀려날 수 있다는 위기감에 죽자살자 뛰게 만들어야 합니다. 노동자들이 높은 임금과 여가생활, 자기계발의 여유를 가지게 되었을때 소비도 촉진되는 법이고, 더 질높은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게 되는 것이며, 그로 인해 기업들의 경쟁력도 올라가는 겁니다.


 자유시장경쟁체제요? 분배가 없으면 제일 먼저 '경쟁'이 없어집니다. 그 다음은 '시장'이 붕괴되고 '자유'도 무너집니다. 분배는 성장 이후에나 하는 옵션, 선택 같은게 아니라 성장을 위해서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기본 전제입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글쓴이에게는 좀 가혹하고 유감스러운 평일지 모르겠지만) 위와 같은 이야기는 너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정확히 말하면 그럴싸한 말과,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섞여 있긴 하다. 저런 글을 보면 도대체 누가 저런 이상한 소리를 하게 만들었을까, 얼마나 사태가 악화되었으면 애들이 저런 글에 모두 동의만 하게 된 걸까 싶다.


 한국 대기업이 나태하고 태만하다는 건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망상이다. 실제 수많은 한국 대기업들은 글로벌한 규모다 보니 외국 기업과의 경쟁에 살벌하게 노출된 상태다. 그런 만큼 현실을 보면 대기업들이 중소기업보다 훨씬 더 혁신적인 경우가 정말 많다. 그들이 정부의 보호 아래서 착취나 하면서 나태하게 있다는 오판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르겠다. 한국 대기업들이 각종 문제가 없는 건 아니고, 하청기업 착취가 없는 것도 결코 아니지만 적어도 나태하지는 않다.


 또한 주식회사는 원론적으로 투자자(주주)의 것이고, 투자자들은 기업의 실적이 매 분기 늘어나고 줄어드는 데 촉각을 곤두세운다. 실적이 줄어드는 걸 반기는 투자자는 없고, 기업은 투자자를 위해서라도 점점 더 많은 이윤을 남겨야 하는 게 현실이다. 이 상황을 바꿀 수 있는 방법? 사실 총수가 주주 엿 먹이는 게 유일한 방법인데, 진보좌파들은 총수는 싫어하고 주주 대우는 언제나 극진하니 될 리가 없다. 금융자본주의 사회에서, 좌파 지식인이라는 작자들이 금융에 대한 개념이 제로니 뭐가 되겠는가.


 실제 무식한 좌파들이 대기업에 괜한 압력 넣으면 그 피해는 엉뚱한 데로 튄다. 1차 하청업체에 튄 불꽃은 2차 하청업체로, 2차는 또 3차에게... 이런 식이 될 수밖에 없다. 또 위기를 느낀 대기업은 도전적인 신규투자를 꺼리게 될 수 있고, 유보금을 축적하는 경향도 생긴다. 정부는 힘은 세지만 전지전능하지 않고, 현실적으로 대기업을 제지하려는 수단들은 거의 다 헛발질이 되는 게 현실이다. 그 헛발질에 맞아서 실려 나가는 애먼 피해자들이 한둘이 아니고.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 이미 제법 하고 있다. 실제로 창업하려고 하는 청년들은 대체로 정부의 각종 지원 프로그램과 중소기업에 대한 혜택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한국 중소기업이 크기 힘든 건 정부의 지원이 없어서가 아니다. 하청업체 문제? 현실적으로 중소기업 차리는 사람한테 대기업 1차 하청은 나름대로의 꿈인 경우가 많다. 1차 들어가면 사실 회사 망할 걱정은 많이 없어진다. 중소기업의 대기업 위협? 사실 거의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제조업 기준에서 중소기업은 대체로 완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이 아니다. 규모 상 완제품의 Part를 생산하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타 업체에 생산품을 납품하는 입장이 되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무슨 중소기업 지하실에 외계인이라도 있어서 우주수준의 기술을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대기업과 경쟁할 만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중소기업? 체급이 애초에 너무 다르다. 초일류 엔지니어들이 뭐가 아쉬워서 중소기업에서 일할까.


 그럼 위의 말마따나 중소기업이 새로운 강자가 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본 블로그에서 항상 하는 말이지만 중소기업은 크다 보면 중견기업이 되고, 더 크면 대기업이 된다. 그런데 중소기업만 지원하고 중견기업부터는 견제하고 나 몰라라 하면? 중소기업은 영원히 중소기업으로 남기 쉽게 된다. 아니면 기업을 팔아 버리거나.


 이미 한국은 중소기업 지원은 나름 빵빵한데 중견기업부터는 대접이 엉망이라, 중소기업의 피터팬 컴플렉스가 꽤 심한 상황에 있다. 심지어 잘 나가는 중소기업들 중에는 해외지사 세우면서 한국에선 계속 중소기업으로 남아있거나, 한국 마음에 안 든다고 외국으로 날라버리는 회사도 있다. 이건 워낙 여러 번 해온 말이라 같은 말 자꾸 하려니 피곤한데, 사태가 이렇게까지 망가진 건 신자유주의자와 멍청한 사회주의자들의 쎄쎄쎄 짝짝꿍 놀이 때문이다. 요약하자면 정의감에 불타는 멍청이들이 모든 걸 망쳐 놨다. 그들의 눈에는 슈퍼 갑의 위치에 있는 몇몇 대기업 말고는 보이는 게 없는 것 같다.


 어설프게 국내 대기업 조여 봐야 국민들이 얻을 건 거의 없다. 그 대기업들에 국민연금 돈 잔뜩 들어가 있고,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일하고 있고 엄청난 수의 하청업체들이 연결되어있다. 또 한국 대기업들의 국제적인 라이벌 기업들은 각 해당 나라들 지원 받으면서 뛴다. 괜히 대기업 규제 들어갔다가 외국계 대기업만 신나라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또 대기업에 압박을 가하자는 말은, 대기업이 되려는 중견기업이나 미래가 유망한 중소기업에도 압박이다. 중소기업 많아봐야 일자리 안 나온다. 또한 대기업의 수가 적다는 건 그들이 그만큼 내수시장 및 갑을관계에서 유리한 입지에 있다는 뜻도 된다. 하청업체 입장에서는 납품할 기업을 충분히 고르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좌파들의 근본적인 문제는 분배에 대해 기본개념을 못 잡는다는 데 있다. 경제학적으로 시장실패 = 불황 = 디플레이션 or 저성장 = 분배 안 됨 이다. 복지 시스템? 그런 건 부수적인 것이다. 시장이 아닌 정부가 분배를 주도해야한다는 관점은 공산주의인데, 사실 현실에서 성공한 케이스가 없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소득재분배는 본질적으로 시장이 하는 것이다. 시장이 성공적으로 잘 돌아갈수록 분배가 잘 된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진보좌파들은 노동자들이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더 적은 시간을 일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청년들의 살벌한 취업난을 해결할 수 있을지 알지 못한다.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할 수 없기에 사회를 개선하지 못하고, 오히려 어리석게도 신자유주의와 때때로 결탁하면서 사태를 크게 악화시켰다. 경제 현실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좌파들이 퍼뜨리는 사회주의적 관념을 잣대로 세상을 재단하면서 비롯된 일이다.


 한국의 노동자들이 정말 좋지 못한 상황으로 몰리게 된 건 일차적으로는 IMF 이후이다. 그 이전까지는 경제가 잘 성장하면서 분배 또한 점점 잘 되고 있었다. 성장과 분배는 별개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IMF 이후 상황이 크게 변해버렸다.


 수많은 기업이 도산하면서 일자리가 사라졌고, 금융에 대한 주권을 잃어버리면서 한국 기업들의 지분 중 많은 부분을 외국인들이 차지했다. 금융개방이 강행되었고, 주주 중심의 신자유주의가 광풍처럼 몰아치게 되었다.


 주주를 중시하는 신자유주의가 곤혹스러운 건, 위에도 말했지만 투자자들이 근시안적이 되기 쉽다는 데 있다. 그렇지만 기업을 올바르게 경영하다보면 사실 어려울 때도 있고, 위기를 극복하고 큰 투자를 하면서 점점 더 나아가기 마련이다. 그런데 주주들은 그런 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당장의 실적과 당장의 주가만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주주의 힘이 강해질수록 기업의 간부들도 주주를 무시할 수 없게 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노동자까지 챙기기는 힘들게 된다. 지난 대선 때 시끄러웠던 경제민주화 이야기도 신자유주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건 지난 포스트들에서 몇 번 다뤘었다.


 계속 새로운 대기업이 생겨나서 인력을 수용해야만 노동자가 부족해져서 임금도 올라가고 대우도 좋아지는데, 한국은 IMF 이후 있던 대기업도 도산하고, 새로 생겨나는 큰 기업은 거의 없다 보니 노동자 대우가 좋아지기가 힘든 상황이 되었다. 더구나 일부 귀족노조가 온갖 땡깡을 부리다보니 상황은 더더욱 심각하게 꼬였다. 부르주아-프롤레탈리아로 세상을 이분화시켜 재단하는 멍청한 사회주의자들이 이 문제를 더 심각하게 꼬아놓은 것은 물론이다.


 문화적 결함으로 인해 일부의 직종에 노동자가 계속 몰리게 된 것 또한 큰 문제다. 더 이상 젊은이들이 힘든 일을 하기 싫어한다는 지적에 대해 발끈하는 청년들이 많지만, 막상 현장에 가 보면 사태는 생각보다 심각할 때가 많다. 한국인 남성 청년을 환영하는 일자리는 찾아보면 꽤 있다. 돈 더 주고 한국인을 쓰려고 해도 사람을 못 구하는 곳이 의외로 정말 많다. 외국인 노동자 일 시켜보니까 일을 잘 못 하다 보니 나온 현상이기는 하다. 찾으면 돈을 꽤 주는 곳도 찾을 수 있을 거다. 물론 학습된 무기력에 시달리는 수많은 청년들은 이런 일자리를 찾아다닐 정신적 여유가 모자란 것도 현실이고, 문화적인 각종 차별의식도 문제가 되곤 한다. 이런 건 단순히 각자의 몫은 아니다.

  

 그렇더라도 소위 ‘좋은 일자리’가 부족한 것은 맞고, 여자가 할 만한 일은 더더욱 부족하기도 하다. 그 주된 이유는 한국에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좋은 기업이 부족하기 때문이고 이런 상황에선 기업이 노동자에 비해 절대적인 우위를 가지게 된다. 좋은 기업에 들어가고 싶은 사람은 많은데, 좋은 기업이 뽑는 사람은 얼마 안 되기 때문이다.


 이런 한국의 양극화가 극단적으로 심해진 시점은 노무현 정부 때이다.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드라이브 및 부동산 폭등이 이 사회에 정말 큰 상처를 남겼다. 위에 이야기했듯 IMF 이전만 해도 한국의 성장과 분배는 어느 정도 같이 일어났지만, 노무현 때부터는 성장은 되는데 분배는 오히려 기존만 못해지는 상황이 벌어졌다. IMF가 일차적인 문제였지만, 일단 고비를 넘긴 후에 집권한 노무현은 IMF가 벌여놓은 참상을 오히려 더 키웠다. 그의 적극적인 금융개방정책으로 인해 산업으로 벌어들인 돈이 금융으로 빠져나가는 경우가 많아졌고, 부동산을 제어하지 못하면서 다른 곳에 투자되었어야 할 돈이 모두 부동산으로 향했다. 이때의 폭등이 심했던 만큼  이명박 집권기의 부동산 침체는 심각했고, 부동산에 흘러들어간 돈은 고인 물처럼 밖으로 나가기 어렵게 되었다. 더구나 이 시기엔 부동산 폭락을 외치는 얼간이들이 더 극심한 거래절벽을 유도하면서 사회를 더 힘들게 만들었다. 사실 얼간이라거나 멍청이라거나, 이런 건 정말 순화된 표현이다. 그들이 이 사회에 끼친 해악과 그 참상을 생각하면 더 심한 말을 들어도 싸다.


 참여정부 당시 열린우리당에서 일하던 어떤 사람의 증언에 의하면, 당시 열린우리당의 분위기는 ‘양극화’는 입에도 담지 못하게 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그런 데는 관심도 없었을 뿐더러, 소위 민생은 뒷전이었다는 이야기다. 그 때 열린우리당에서 양극화 문제 해결해야 한다고 그러면 ‘민주노동당으로 가라’ 같은 비아냥까지 들었다고 하는데, 그들의 비아냥과 뺄샘정치와 철면피는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가 보다. 그랬던 사람들이 지금은 무슨 서민의 편인 양, 노무현 때가 그래도 사람 살만한 세상이었던 양 구는 걸 보면 종종 어이가 없다. 뻔뻔한 거짓말을 앞세워 커뮤니티들을 장악하고 있는 황위병들의 파시즘과 무지가 세상에 끼친 해악이 너무 크다. 대학 등록금 폭등, 출산률의 지속적인 저하, 자살률의 증가, 장기적인 경기침체 등은 모두 노무현 정권에서 일어났다. 노빠 깨시민 파시스트들에게 속고 사는 사람들은 얼른 진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특히 노무현 때 너무 어려서 아무 것도 모르던 애들 작정하고 속이는 사람들이 진짜 악질이다.


 만일 노무현 정권이 분양원가를 공개하고, 제 때 금리를 조절하고 LTV규제 등을 조속히 도입하여 부동산 폭등을 견제하고, 무분별한 금융 개방을 잘 규제했다면 모든 것이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노무현은 서민을 위하지 않았고, 충분한 통치철학도 없었다. 당시 한국이 벌어들인 돈을 국제 금융으로 잃지 않고, 그게 부동산이 아닌 새로운 산업에 투자되었다면 정말 좋았을 것이다. 부동산 폭등이 어느 정도 제어되었다면 계속 완만하게 가격이 상승하였으리라 본다. 그랬다면 근래의 극단적인 침체기도 겪지 않았을 것이고 전세 문제도 지금 같지는 않았을 거라 추측한다. 비정규직 문제 등에서도 노무현 정부는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깨시민들이 말도 안 되는 혹세무민으로 노무현 정부를 변호하면서 잘못된 인식을 퍼뜨리니 문제를 해결하기 더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당시의 부동산 급등은 결국 정부의 온갖 헛발질 끝에 (종부세같은) 시장 및 과세 정의에 어긋나는 극단적 조처로 마무리되었는데, 강력한 규제와 맞물려 이제 너무 올랐다는 심리가 더해지면서 금융의 패턴 중 하나인 ‘Bust’ (소위 버블붕괴)가 발생하게 되고 이는 한국 부동산 시장의 특성인 전세제도 및 변동금리제도와 맞물려 거래절벽+전세가격 폭등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혹세무민을 일삼는 부동산 종말론자들은 한국 부동산의 특징을 고려하지 않고, 극히 일부 국가의 예만 의도적으로 들면서 한국 부동산은 폭락할 것이라고 오랜 시간 종말론을 퍼뜨려왔으나 그것은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았고, 문제를 계속 키우는 결과만을 낳았다.


 그나마 근래엔 반등의 여지가 있다. 불만투성이에 비관론에 빠진 깨시민들에게는 보이지 않겠지만, 현 정부는 시장에 대해 약간의 신뢰는 회복하였다. 부동산 규제는 완화되었고, 거래절벽은 해결 조짐이 있다. 이는 역시나 금융의 일반적인 패턴과도 일치한다. 부동산 종말론자들의 말은 겨울이 올 때마다 봄은 다시는 오지 않고, 이대로 빙하기가 올 거라고 소리치는 것과 흡사하다.


 박근혜정부는 근래 창업을 더 강력하게 지원하고 있고, 법인을 세우기 쉽도록 제도를 고쳤다. 또한 코스닥보다 작은 규모인 코넥스 증권시장을 도입해서 상장을 보다 쉽게 만들었다. 코넥스 시장은 아직까지는 대중적이지도 않고 충분히 성장하고 있지도 않지만 제도상으로는 중요한 가치가 있다. 상장이 쉽다는 것은 초기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인 요소다. 기업을 세울 때는 투자를 받아야 하는데, 투자자들은 가급적 빠른 시간 안에 수익을 실현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상장이 어렵다면 그만큼 투자를 받기도 어렵고, 투자가 없으면 기업을 만들기 어렵다. 한국은 세계 제 1의 파생금융시장이지만, 투기적 금융이 심하게 발달한 반면 창업과 신산업을 위한 ‘착한’금융은 거의 발달하지 못한 국가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가 이 포지션에 서야 할 사람들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근래엔 중견기업에 대한 지원 논의도 이루어지기 시작했고, 법인세 차등 구간에 대한 논의도 이루어지고 있다. 다만 이런 중요한 이야기들은 무능력하고 어리석고 폭력적인 정치권과 어리석은 자칭 진보좌파 지지자들의 무관심 속에서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다.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기업이 많아져야 노동자들이 대접을 받을 수 있다. 부가가치가 높아야만 임금도 많이 줄 수 있고, 좋은 기업이 많아져야 노동자들이 기업을 좀 더 고르고 쉽게 취업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것을 위한 정책적 지원은 지극히 부족하고, 특히 어리석은 진보세력들이 현실을 모르고 외면하면서 사태를 더 나쁘게 만들고 있다.


 일례로 GM대우나 쌍용차 정리해고 노동자들은 왜 재기가 아닌 투쟁에 매달린 것일까? 그들의 입장에선 대기업 정규직을 벗어나면 다시는 그런 수준의 생활을 누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 수많은 하청업체, 비정규직 직원들은 정리해고 당해도 그렇게 싸우지 않는다. 언론의 관심도 정규직 출신 투쟁자에게 집중된다. 물론 하청업체나 비정규직 출신 입장에서는 투쟁하는 것보단 재취업이 훨씬 현실적이기도 하다. 일은 비슷하게 하는데, 임금은 대기업 정규직이 훨씬 많이 받는 게 항상 지적되는 한국의 현실이다. 특정 대기업 강성노조는 끊임없이 싸우면서 엄청난 임금을 받고 있고, 그에 한국 기업들은 성공적인 기업일수록 점점 더 정규직 뽑기를 주저하고 있다.


 현재 한국은 성공적이고 젊은 창업인이 심히 부족한 사회가 되었고, 청년들의 시장과 노동, 금융, 부동산 등에 대한 인식도 충분히 현실적으로 합당한 수위에 올라있지 못하다. 특유의 집단주의나 이너서클 문제, 도전 없이 위험을 회피하려는 성향 등도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남들이 비교적 안전주의적인 길을 걸을 때 누군가는 도전정신을 가지고 기업을 세운다. 용기를 가진 도전자가 없다면 자본주의는 제대로 돌아갈 수 없지만, 많은 창업자들은 한 번 이상 넘어지고 힘들어서 도와 달라 그런다. 사업 성공에 가장 필요한 것은 그 무엇보다도 ‘운’이다. 그런 그들이 다시 일어나서 성공하면 많은 사람들을 고용할 수 있고, 그런 성공한 사람들이 많아지면 더욱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기에 노동자 대우도 좋아지게 된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역사 속에서 이런 진리를 깨닫고 창업자를 위한 안전 장치라 할 수 있는 주식회사 시스템과 파산 시스템을 발명하였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자칭 진보좌파들은 ‘이미 한국은 기업하기 너무 좋은 나라’라는 잘못된 망상을 가지고, 창업자들을 위한 금융 시스템 등에도 냉소를 보이며 누군가가 더 위로 올라서는 것을 가로 막는다. 조금만 돈을 벌어도 부르주아 취급을 하고, 운동권 방식으로 진실을 외면해 버린다. 금융계의 큰 손은 그런 그들의 어리석음과 질투심을 곧잘 이용하고, 엄청난 부를 축적한다.


 만약 한국이 정말 기업하기 좋은 나라였다면 글로벌 대기업들이 한국에 수많은 지사를 세우고,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한국 출신 기업들까지 해외에 지사를 세우고, 더 나아가 아예 법인을 해외로 옮겨버리고 있다.


 애초에 사회주의자들은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기업 활동 자체를 나쁘게 보기 때문에, 고용문제를 악화시키고 그로 인해 노동자의 처지를 더욱 최악으로 치닫게 한다. 물론 기업이 돈을 못 벌면 직원 - 엄밀하게 말해 대표이사도 기업 노동자이다. - 들도 돈을 못 벌고, 세금도 안 걷히니까 정부가 지출할 수 있는 재원도 모자라게 된다. 그리고 한 줌도 안 되는 이 사회의 사회주의자들은 무식하고 철학이 없는 수많은 자칭타칭 ‘깨시민’들의 사고방식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있기도 하다.


 진짜 사회를 개선하고 싶은 사람은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이해하고, 어떻게 해결해야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존에 알고 있던 것이 정말 옳은지를 끊임없이 검증하고 더 나은 방식을 찾아야 한다. 소위 진보좌파들은 자신이 일단 쌓은 지식과 사고방식을 신념과 정의라는 이름으로 합리화하고, 극단적인 확증편향을 보이기에 실제 사회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잘못된 신념과 가치관으로 나쁜 결과를 만드는 것은 언제나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자칭 진보좌파들의 집단주의와 이너서클 성향은 젊은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더해 ‘세상은 무서운 곳.’, ‘안 되는 곳’ 같은 온갖 협박과 공포감 등이 이 사회를 도전과 혁신이 부족한 곳으로 바꾸어 버렸다. 한국의 진정한 불안요소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바로 봐야 한다.


 물론 이 이야기는 복지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복지는 일종의 사회 안전망 또는 공공재의 개념으로, 어디까지나 경제구조에서 부수적인 것에 해당한다. 복지 재정은 공짜가 아니며, 국가의 복지는 국가가 경제적 성공을 거둘 때에야 그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 물론 튼실한 복지 시스템은 사회를 보다 더 혁신적이고 도전적인 방향으로 이끄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그보다 한국에 우선적으로 필요한 건 각종 반기업적인 규제들과 정서, 그리고 문화적인 결함 등을 해결하는 것이다.


 특히 자칭타칭 진보좌파들은 평소에는 복지국가를 만들자고 주장하지만, 막상 그들에게 약간의 손해라도 생길 수 있는 증세안이 나올 경우 후안무치할 정도로 거부감을 보이면서 ‘월급쟁이 유리지갑만 턴다!’는 식으로 여론몰이를 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작년에 민주당은 세무조사를 강화할 수 있는 법안에 대해 강경하게 반대하여 결국 통과되지 못하게 했다. 이러한 뻔뻔함과 도둑X심보로는 이 사회의 분배를 결코 개선할 수 없다.


 또한 현실적으로 한국의 재정 긴축 문제라거나 정부 부채 문제 등을 이야기하게 되면 이야기는 훨씬 복잡해진다. 한국의 수많은 정치사회적 담론들은 문제를 악화시키는 방향으로 얽혀 있다. 이 나라에서는 자칭타칭 진보좌파들이 실제로는 더 수구/보수주의적 자세를 취하고 있기에 문제가 심각해지는 부분이 많다. 상황을 개선하고 싶은 사람은 먼저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한국의 자칭타칭 진보좌파들은 현실을 이해하는 데 있어 너무나 소양이 부족하다. 정말로 소통이 필요한 이들은 그들이다.



  1. 출처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bestofbest&no=149251&s_no=149251&page=1 [본문으로]

근시안적 빈곤 - 체감 물가가 높아지는 한 이유

경제 2013. 10. 10. 18:58 Posted by 해양장미

 몇 년 전부터 유행한 이런 말이 있다.


 ‘부자들은 채소와 과일을 먹고, 중산층은 고기를 먹고, 서민은 인스턴트를 먹는다.’


 공감이 좀 가실지 모르겠다.


 이 이야기가 담고 있는 문제는 꽤나 복잡하다. 분명한 건 이게 한국만 겪고 있는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거의 세계 어느 나라나 같은 문제를 겪고 있다. 다만 한국은 변화 속도가 빠르고, 향후 다소 심한 양상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큰 편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문제로 인한 피해는 점차 확산되고, 더욱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어갈 것이다. 본문에서는 위와 같은 문제가 생기는 이유와 피해 전망, 그리고 해결 방안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한식이 현대의 모습을 갖추게 된 건 지극히 최근의 일이다. 150년 전 조선시대 말, 우리 조상님들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밥상 앞에 앉아 있었다.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해 백미밥과 배추김치를 기반으로 하는 현대의 한식의 보편화는 근현대의 기술이 있지 않고서는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이 중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배추는 현대 한식에서 가장 중요한 잎채소이다. 그런데 사실 한국 배추처럼 거대하고 꽉 차게 결구가 되어있는 형태의 배추는 매우 드물다. 이런 형태의 배추는 작년부터 영어로 ‘Kimchi Cabbage’라 부르게 된 것 같다. 이는 본래의 배추 형태와는 달리, 포기김치를 담그기 위해 개량된 종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한 가지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개인적으로 오랜 기간 의문을 가졌던 것 중에 ‘배추뿌리’의 존재가 있었다. 1960년대에 나온 건강 서적을 보면, 배추보다 배추뿌리가 몸에 좋으니 챙겨 먹으라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그 시대에 살아보지 않은 나는 막상 배추뿌리를 본 적이 없었다. 시판되는 배추는 모두 뿌리가 잘려 있었으니까.


 배추뿌리가 문화적으로 먹는 것이었다면 굳이 잘라서 팔 이유가 없었다. 부유해진다고 먹던 걸 일부러 잘라 버리는 건 좀처럼 생기지 않는 일이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답은 의외로 쉬운 데 있었다. 한국에서 1960년대에 키우던 배추는 요즘 배추와는 종류가 다른 배추였던 것이다.


 옛날 배추를 현대에는 보통 토종배추나 뿌리배추 등으로 부른다. 이 배추는 무처럼 뿌리를 먹을 수 있고, 흰 부분도 가늘며 속이 차지 않는다. 사실 알고 보면 배추는 식물학적으로 순무와 같은 종인데, 토종배추는 순무처럼 다소 매운 맛이 난다고 한다. 나는 아직 먹어본 적이 없지만. 토종 배추의 사진을 첨부한다.





 현대적인 대형 결구배추가 대량 재배되게 된 건 1970년대부터이다. 그런데 배추를 한번이라도 키워 본 분들은 다들 아시겠지만, 배추는 더위에 약한 채소다. 그렇기에 한국 기후에선 늦여름에 심어 가을동안 키운 후 김장을 담그는 채소인 것이다[각주:1]. 대형 결구배추는 이 짧은 기간 동안에 한 알의 씨에서 그리도 거대한 채소로 성장해야한다. 당연히 엄청난 영양분이 필요하고, 그마저도 한국인들은 일 년 내내 배추를 원하게 되었다.


 이 문제 때문에 한국 고랭지는 엄청난 면적이 배추로 뒤덮이게 되었다. 고랭지는 여름에도 온도가 많이 올라가지 않기 때문에, 연중 계속 배추를 키울 수 있다. 그런데 농업에 조금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다들 아시겠지만, 이렇게 넓은 면적에 단일 작물이 자라려면 그만큼의 관행적인 영농법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쉽게 말해 지속적인 종자개량과 다량의 화학비료, 농약의 투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실제 배추는 배추흰나비라는 이름까지 붙은 해충이 있을 정도로 많은 벌레들이 노리는 작물이다.


 그나마 한동안은 이런 식으로 수요를 버틸 수가 있었다. 기후는 비교적 안정적이었고, 유가도 그리 높지는 않았으며 농촌 인력도 그럭저럭 노동력이 있었다. 또한 땅심에도 어느 정도의 여유는 있었다. 그렇지만 오랜 기간 누적되던 각종 문제들은 최근에 심각한 양상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젠 기후가 변덕이 정말 심하다. 유가는 높아져서 화학비료와 농약의 가격도 올랐다. 물론 농촌의 노동력은 말할 필요도 없다. 50대면 젊은이 취급을 받을 정도니. 그리고 너무나도 오래 지속된 약탈적 농업은 한국 농지들의 지력을 크게 떨어뜨리고 말았다.


 한국인들은 유교적인 사고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국가가 윤리성을 가지고 국민을 부모처럼 보살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에 한국인은 일 년 내내 배추 가격이 안정되어야 한다는 식의 이상한 관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자연 법칙상 가능한 일이 아니다. 배추는 본래 가을에 한 번 재배되는 채소이고, 수요가 많다 보니 고랭지나 시설 재배로 부족분을 채우고 있을 뿐이다. 그나마도 기후가 나쁘거나 하면 당연히 수확량이 떨어지는 게 자연의 이치고, 더 나아가 너무 오랜 기간 동안 무리하게 많은 배추를 길렀기 때문에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코스트로 같은 양과 품질을 가진 배추를 생산할 수는 없다. 배추는 쌀, 고추와 함께 한국에서 가장 첨예하게 산업화된 작물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한 배추는 한 일례일 뿐이다. 사실 한국인들이 보편적으로 좋아하는 거의 모든 식재료들이 적잖은 문제를 안고 있다. 특히 한국 농업의 현실은 알고 나면 좀 골치 아픈 분야다. 기후는 점점 변덕스러워지고 있고, 너무 오랜 기간 동안 생산량 위주로 재배를 해온 결과 유기물함유량이나 양이온치환능력같은 땅심은 크게 떨어졌다. 애초에 한국 땅은 화강암질이기 때문에 좋은 토질이 아니다.


 한국 정부는 오랜 기간 동안 도시 서민들이 싼 가격에 충분한 채소를 먹을 수 있도록 하는 데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여왔다. 이런 정책이 한국의 산업화와 경제 성장, 그리고 보건에 큰 공헌을 한 것은 맞다. 그러나 그런 정책이 지속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몇 년 전부터 채소 가격이 요동치고, 종종 구제역이나 조류독감 같은 재앙이 발생하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또한 한국인들은 다분히 현대적인 기술이 적용된 것들에 전통의 탈을 씌우고, 그것에서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게 되었다. 하나하나 예를 들어보자면 위에 말했듯 대형 결구배추는 현대의 발명품이고, 대체로는 상당한 화학비료와 농약을 투입해야만 나오는 작물이다. 흰쌀밥은 현대적인 도정 기술의 산물이고, 멸치는 현대적 조업 기술 및 대규모 가공 기술의 산물이다. 우리가 대체로 흔히 먹는 고추는 과거엔 이리 널리 퍼지지 못했고, 그 품종도 현대화되었을 뿐더러 대규모 재배를 위해 적잖은 화학 약품들이 투입된다. 고추는 병충해에 약하기 때문에 국민약골 소리까지 듣는 작물이다.


 축산업은 공장식 축산 문제 이야기가 많이 나도니 굳이 이야기를 많이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조금 설명하자면 한국의 축산업은 집약적이고, 사료는 거의 수입하며 품종 문제등도 있다. 땅도 비싸고 인건비도 비싸기 때문에 방목하는 것도, 풀을 베어서 주는 것도 어려운 경우가 많다. 물론 보다 신경 써서 풀도 베어주고 공간도 확보하면서 가축을 키우는 농가도 있기 때문에 전체를 나쁘게 말할 수는 없지만, 기본적으로 좋은 여건은 아니라는 의미다. 무엇보다도 더 나은 방식으로 키운 농축산물이 아직 충분히 대접받지는 못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수입 개방 압력은 점점 커지고 있고, 도시 서민들은 싸게싸게만 외치면서 물가가 올라 죽겠다고, 유통업자들이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사실 유통업은 문제가 아니다. 딱히 큰 부자가 된 전통적 유통업자를 나는 본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한국의 높은 물류비용이나 리스크, 보관 비용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소위 유통을 현대화시킨 대형마트는 또 다른 방식으로 악의 축같은 대접을 받고 있으니, 상황파악에 좀 더 이성적일 필요가 있다.


 정부는 앞으로도 더욱 저렴한 농축산물 공급을 위해 보조금을 지급하고, 대형 영농을 탄생시킬 것이다. 그러나 그런 방식은 지금껏 그래왔듯 더욱 농촌을 압박할 거고, 장기적으로 생산성을 더 낮출 것이다. 기후는 점점 더 예측하기 어려워질 거고 농산물 가격은 올라갈 수밖에 없다.


 지금도 그렇지만 서민들은 점점 더 국내산 신선식품을 먹기 어려워질 것이다. 서민들의 우는 소리는 점점 더 심각해질 것이고, 정치가들은 더욱 더 달콤한 말을 하면서 농촌을 더 압박하고 포퓰리즘 정책을 펼칠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빈곤을 후대에 떠넘기면서 근시안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빈곤은 점점 누적되고 있고, 이 체제가 지속 가능한지에 대해 나는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상황을 이해하고, 좀 더 지속 가능한 사회 체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자칭 진보라는, 깨어있다는 시민들은 이런 문제엔 진지한 관심이 없다. 몇 년 전 구제역 사건 때 자칭 진보들이 걱정하던 것은 대체로 고기값과 수질 오염 뿐이었다.


 수입에 의존하는 게 한 방법이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중국산 농산물도 시간이 지나면 결코 지금처럼 저렴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은 아직도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고, 어쩌면 스스로 식량을 자급자족하는 것조차 어려워하게 될 수도 있다. 또한 12억 인구의 인도가 경제성장을 더 하게 되면 세계 식량은 더 모자라질 가능성이 높다. 한동안 지속적으로 국제 식량 가격은 올라갈 것이다.


 국제유가의 추가 상승 여력도 문제를 크게 만들 수 있다. 모든 화학비료나 화학농약, 농기계에는 석유가 소모된다. 유통에도 석유가 필요함은 물론이다. 식량 가격의 지속적인 상승은 도시 서민들의 식단을 더욱 불량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고, 이는 장기적으로 국민의 심신 건강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


 과거에 미래로 미뤄둔 근시안적 빈곤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개인적 차원에서 이런 문제를 개선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있지만, 사회적으로 보면 더욱 큰 비용이 나갈 가능성이 높다. 오늘도 자칭 진보주의자들은 더 저렴한 물가와 더 많은 복지, 더 낮은 세금을 원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해줄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고, 사실 지금도 정부는 오래 지속되어온 포퓰리즘 정책으로 시민들의 불만을 누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어떤 사회가 문제를 잘 해결하려면 진보적인 사람들이 영리하고 이성적일 필요가 있다. 그러나 한국의 자칭 진보들은 그런 것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다. 자칭 진보들이 징징대면 징징댈수록 빈곤은 심해지기 마련이다. 그들은 남의 주머니를 털어 내 주머니를 채우는 데만 급급하다. 근시안적이고 이기적인 이들이 지역을 끼고 갈라져 진영논리를 앞세우며 비아냥거리고 다투는 사이 우리의 미래는 점점 빈곤해지고 있다. 누구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는지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1. 일부 추위에 강한 배추는 월동하기도 한다. 이것을 우리는 대체로 봄동이라 부른다. [본문으로]

복지 담론의 불편한 진실

경제 2013. 5. 30. 17:42 Posted by 해양장미

 근래 한국에서 사회주의자들이 대단한 일을 해낸 것 중 하나는, 복지를 곧 분배인 것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는 데 있다. 많은 사람들이 ‘분배를 늘려야 한다.’라는 정치사회적 의미를 사회주의적이고 복지를 강화해야 하는 것처럼 이해하곤 한다. 그러나 사실 분배와 복지는 정말 다른 것이다.


 분배란 쉽게 이야기해 경제적 성장의 과실을 나누는 것 전체를 의미한다. 당연하게도 이 분배가 잘 될수록 사회는 보다 평등해지고, 가난하고 불만을 가지는 이들이 적어지게 된다. 그런데 복지, 특히 정치사회 쪽에서 말하는 공공복지는 정부가 개입하는 형태의, 분배의 한 방식을 의미할 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원칙적인 분배는 복지보다는 통화의 회전에 달려있다. 즉 노동자가 임금을 제 때 많이 받고, 보통 사람들이 돈에 대해 너무 불안감을 가지지 않고 쓸 만큼 쓰고, 소비에 의해 영세상인들도 돈을 충분히 벌 수 있다면 그게 분배가 잘 되고 있는 거다. 시장이 충분히 잘 작동한다면, 복지는 다분히 보조적 수단으로 충분하다. 문제는 충분히 잘 작동하는 시장은 정말 드물다는 데 있다.


 완벽한 시장이 일종의 유토피아라는 건 모두가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시장의 불완전함을 어떻게 극복할지에 대해서는 각자 생각이 다르다. 소위 메인스트림의 사고방식은 시장을 좀 더 잘 작동시키는 데 있다. 금리와 통화량을 조절하여 물가를 조율하고, 시장이 무난한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


 한국을 포함한 세계의 선진국들은 이러한 면에서 잘 작동하는 시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충분하냐고 묻는다면 많은 경우 그렇지는 않다. 호황은 모두를 평균적으로 부유하게 만들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불평등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신용이 무너지거나 붐이 꺼질 때 발생하는 불황을 막을 방법 또한 완벽하지는 않다. 이는 마치 병에 걸렸을 때, 의료적 조치를 받는다 해도 전혀 아프지 않을 수는 없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사회주의자들의 말대로 복지를 늘려야 하는 것일까? 근래 보편적 복지 담론이 불이 붙었던 것처럼, 증세를 해서 그런 식으로 하면 우리 사회의 분배는 더 나아질까? 그리고 근본적으로 우리 사회가 분배가 잘 안 되는 이유는 뭘까?


 우선적으로 꼭 이야기해야 할 것들은 이런 여러 가지 이야기에서 사회주의자들이 말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거다. 고의적인 누락이건, 몰라서 말하지 않는 것이건 근래 벌어지고 있는 사회주의적 담론의 확산은 사기성이 있다는 게 근래의 개인적인 판단이다. 


 일단 꼭 알아야 할 것은 모든 복지는 공짜가 아니라는 것과 우리 사회는 이미 일부 측면에선 강도 높은 복지를 실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 사회의 ‘아주 저렴하면서도 잘 관리되고 있는’ 대중교통은 엄청난 적자를 감수하고 시행 중이라는 점에서 분명한 복지이지만, 지속 가능성이 의심되는 복지다. 모두들 현재의 운임 체계에서 적자가 누적된다는 걸 알고 있다. 다만 생각하지 않을 뿐이다.


 대중교통 요금이 오른다 하면 자칭 서민들은 모두들 죽는다는 소리를 낸다. 그러나 그들은 미래의 일에 대해 눈을 감고 있다. 어떻게든 해결되겠지? 라는 심정으로 우리의 후손들에게 빚을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국민건강보험도, 국민연금도 마찬가지다. 복지 시스템이 잘 작동되기 어려운 이유는 정말 많다. 가장 큰 이유는 장기적으로 재원을 확보하는 게 어렵다는 것이다.


 대중교통 요금을 올린다거나 건강보험료를 더 걷겠다거나, 연금 지급액을 낮추겠다는 등의 조처를 반가워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지속 가능한 복지를 위해서는 대략 저런 조치들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4~5년짜리 정권들이 저런 일들을 벌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박원순처럼 초기 협정을 무시하고 대중교통요금을 올리는 걸 힘으로 눌러버리는 시장이 대중에게 인기를 얻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과연 우리 사회가 지금 하고 있는 복지 시스템을 장기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나는 대단히 의문스럽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코레일만 봐도 그렇게 인력감축을 하고 부실한 면을 많이 만들고 그래도 계속 적자가 나고 있다. 그나마 근래는 적자액이 줄어 올해가 흑자원년이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상황이다. 박원순이 부당하게 탄압하였다고 보고 있는 서울지하철 9호선만 해도 지난해 540억의 적자가 났다고 시에 청구한 상황이다. 9호선과 맥쿼리의 진실 또한 자칭 진보언론과 박원순의 포퓰리즘에 의해 크게 왜곡되고 있다고 본다.


 즉 민주주의 정권 하에서 복지 시스템을 제대로 유지시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복지 시스템을 처음 만드는 것 자체는 비교적 쉬운 일이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예산을 증액하고 혜택을 축소하는 정치적 리스크를 아무도 지고 싶어 하지 않아한다. 갑자기 대중교통비 기본요금을 500원 인상하겠다고 누군가 발표한다면, 그 사람이 과연 다음 선거에서 이길 수 있을까? 난 아니라고 본다. 그런데 모든 복지 제도가 이런 면이 있다.


 또한 세율을 올린다고 결코 세금이 더 걷히는 게 아니다. 이에 대해서는 지난 글 ‘커지고 있는 지하경제와 그 문제 및 원인, 그리고 해결방안’ 에서도 다룬 적이 있는데, 증세는 필연적으로 조세저항을 만들고 지하경제를 키우기 마련이며, 그 결과 현대의 금융자본주의 하에서 순환하지 않게 되는 돈은 모두에게 피해가 된다는 게 그 주된 내용이었다.


 실제 이명박 정권이 부자감세로 욕을 먹긴 했지만, 그것은 부당한 정치적 공격이었다. 우선 국세청에서 공개한 연도별 종합소득세율을 보자.


http://taxinfo.nts.go.kr/docs/customer/noted/noted_main.jsp?taxitem_str=%C1%BE%C7%D5%BC%D2%B5%E6%BC%BC&sub_title=%BC%BC%C0%B2&file_path=file%2FnotedInfo%2FU%BC%D2%B5%E6%BC%BC%C0%B2%282012%29.htm


 조금만 자세히 봐도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종합소득세율을 감세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명박 정권 또한 마찬가지로 감세기조였지만, 정권 도중 3억 이상의 고소득자에 대한 추가세율이 생겨났다. 무려 38%나 된다.


 1억 초과 법인세율 또한 마찬가지다. 노태우 정권 때 34%였던 법인세율은 김영삼 정권에서 28%까지 내려간 후, 김대중 정권에서 27%, 그리고 노무현 정권에서 25%로 감세한다. 그리고 이를 이명박 정권은 22%로 내렸다. 1억 미만 법인세율 흐름도 거의 동일하다.


 즉 감세는 이명박의 특이한 행동이 아니라, 민주화 이후 쭉 이어져온 기조였다는 게 핵심이다. 이에 대해 일단 자칭 진보 좌파 사회주의 세력들은 두 가지 방향으로 공격했다. 하나는 보수주의자와 연합하는 양상의 김대중부터 노무현까지 다 신자유주의였고, 그것이 양극화에 일조했다는 공격이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노무현 정권을 그래도 마음만은 서민을 위했던 정권처럼 포장하여 이명박 정권을 유독 부자 편을 드는 정권으로 낙인찍었다. 그러나 이는 모두 부당한 공격이다.


 결과적으로 세수는 어땠을까? 세율을 꾸준히 내린 것과 반비례로 세수는 쭉 증가해 왔다. 김대중 정권 후기인 2001년에 걷힌 총 국세는 95.8조였던 반면, 많은 감세가 있는 이후인 2011년에 걷힌 총 국세는 192.4조원이다. GDP가 올라가서? 꼭 그렇지도 않다. 현재와 큰 GDP 차이가 없었던 노무현 정권 말기인 2007년의 총 국세는 161.5조원이었다. 국제경기는 노무현 정권 때가 훨씬 나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세율인하가 더 많은 세수를 불러온 것이다.


 실제 감세를 하면 일시적으로는 세금이 덜 걷힌다. 그러나 금방 회복되어 더 많은 세금이 걷히게 된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는가? 세율과 세수의 관계를 일차원적으로 생각해선 안 된다. 증세가 지하경제와 불황을 불러온다면, 감세는 더욱 많은 경제활동으로 인한 호황을 불러온다. 세금은 돈이 돌아가는 과정에서 부과되기에 호황이어야 세수가 늘어난다. 실제 자유 경제학자들의 이론이 잘 증명되어온 게 한국인 것이다.


 결국 복지를 위해 증세를 하겠다는 방식은 불황을 불러올 수 있는 위험한 방식일 수밖에 없다. 현실적인 복지는 증세하지 않고, 적자를 누적시키지 않는 복지이다. 그런데 이미 한국은 적자를 누적시키는 양상의 복지를 하고 있다. 이런 면들에서 본다면 복지를 늘려 분배를 하자는 방식은 바람직하지가 않다.


 물론 한국이 사회적 지출비용이 높은 편은 아니고, 세율이 유럽 국가들에 비해 높은 편도 아니다. 그런데 여기엔 중대한 맹점이 있다. 이것은 결코 사회주의자들이 말하지 않는 것들이다. 알려진다면 결코 지금처럼 시민들이 복지 담론에 열광할 수가 없을 테니까.


 일례로 스웨덴을 보자. 스웨덴은 복지국가로 유명하다. 스웨덴이 복지국가가 된 일차적인 이유는 워낙 부유해서였지만, - 2차 대전 직후 전쟁에 휩쓸리지 않은 스웨덴은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였다. - 그런 복지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는 엄청난 세금이 들어간다. 그런데 실제 스웨덴의 세율과 한국의 세율을 비교해보면 어떨까?


 한국이 스웨덴에 비해 세금을 별로 안 내는 건 맞다. 그런데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한국은 소득수준을 4단계로 나눌 경우, 고소득자가 저소득자에 비해 8.7배나 많은 소득세율을 부과 받고 있다. 이는 세율기준이기에 실제 세액으로 치면 까마득한 격차가 나게 된다. 실제 한국은 부자들만 세금내고, 서민들은 거의 세금 안 내는 나라다. 그런데 스웨덴은 소득격차 대비 1.44배 차이밖에 안 난다. 쉽게 말해 모두가 세금을 많이 낸다는 것이다.


 한국만큼 고소득자가 저소득자에 비해 엄청난 세율을 부과 받는 나라는 소위 선진국 중 없다. 배수로 치면 브리튼이 1.43배, 미합중국이 1.57배, 일본이 1.82배, 도이칠란트가 2.16배, 프랑스가 좀 차이가 심해서 2.64배다. 그러나 어떤 나라도 한국처럼 극단적인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쉽게 이야기해서 한국이 세금을 많이 걷지 않는 건 맞는데, 특히 극단적으로 저소득층에 세금을 거의 안 걷고 있다는 것이 진실이다. 실제 경험으로 모두들 알겠지만, 한국은 저소득층에 대한 소득공제율이 커서 소득이 일정 이하면 실제 세금을 안 걷는다. 그런데 다른 나라는 이렇게 하지 않는다. 다른 나라들에서는 소득이 낮은 서민에게도 세금을 꽤 떼어간다. 소위 복지국가들은 다 그렇게 한다.


 소득세뿐만이 아니고, 모두들 공평하게 낼 수밖에 없는 VAT도 한국은 상당히 낮은 편이다. 모두들 알다시피 한국의 VAT는 10%다. 그런데 세계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20%전후의 높은 VAT를 걷는다. 스웨덴의 VAT는 25%다. 그나마도 한국 서민들은 현금거래를 통해 VAT를 내지 않는 데 능하다.


 결국 한국이 증세를 통해 복지국가가 되려면 서민들에게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이 엄청난 세금을 물려야 한다. 그런데 면세혜택에 익숙한 한국 서민들이 과연 그걸 감내할 수 있을까? 한국은 사실 서민에게 실질적 면세혜택을 제공해왔다는 점에서 제법 복지국가였다고도 할 수 있다.


 한국 현실에서 ‘복지해줄게, 세금 왕창 내라.’ 라는 말은 사실 복지국가를 만들려 한다면 부자보다도 서민에게 먼저 적용되어야 한다. 사회주의자들은 결코 이 진실을 말하지 않아왔다. 그들은 부자를 털어 서민의 주머니를 채울 수 있는 양 말해왔다. 그러나 한국은 이미 중산층 이상만 세금을 내는 나라다. 부자들의 경우 그 불평등을 인지하고 있는 만큼, 세율을 더 올린다 하면 조세저항도 강할 수밖에 없다. 실제 세율 올려봐야 부작용만 심하고 딱히 더 걷히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실제 세금을 더 걷는 방법은 결국 서민들에게 보다 평등한 조세를 부과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게 과연 서민들이 원하는 걸까?


 실제 우리 한국인들에게 다가와 있는 불평등은 복지의 문제가 아니다. 보다 많은 좋은 일자리, 너무 길지 않은 노동시간, 강제적이지 않은 회식 및 유흥, 법 앞에서의 평등, 하도급 및 갑을관계에서의 정당함, 체불 없는 임금 지급, 출산 및 육아시의 경제적 안정 등이 정말로 필요한 것이다.


 부자에 대한 증오심으로 증세를 주장하는 것은 결국 모두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불러온다. 부자가 돈을 잘 쓰도록 해야 한다. 그 돈이 시장에서 잘 돌고 돌면 결국 지급준비율의 원리로 점점 불어나면서 모두의 주머니로 돌아오는 게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세상의 법칙이다. 사업자들이 돈을 벌어야 노동자도 안정적으로 임금을 받고, 사업하기 좋아야 일자리가 많이 생긴다. 일자리가 많이 생겨야 노동자도 좀 더 귀한 대접을 받을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사회주의를 억압해왔기에 실제 사회주의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아직도 잘 모른다. 그러나 우린 왜 자본주의가 결국 사회주의를 이겼는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민주당의 증세론에 반대한다.

경제 2013. 4. 1. 13:22 Posted by 해양장미


 올해 경제 성장률이 작년의 전망보다 낮게 예상됨에 따라, 그리고 세수 확보의 미진함으로 인해 추경 예산 확보에 관련하여 민주당에서는 증세 담론을 확대할 기회로 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이 시점에서의 증세 담론에 대해 분명하게 반대한다. 민주당의 어리석음에 대해 한숨이 나온다고밖에 할 수 없다.


 쉽게 이야기해보자. 현재 추경이 필요한 이유 중 하나가 세수 미달이다. 세금이 계획대로 안 걷혀서 예산이 펑크가 났다는 거다. 그런데 왜 이렇게 되었는지를 봐야 한다. 세금이 왜 안 걷혔을까?


 세금은 주로 돈이 흐르는 과정에서 생겨난다. 현물이나 용역을 거래하거나, 증여하거나 하는 과정에서 세금이 부과되고 그것이 정부의 주 수입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불황은 당연하게도 세수를 줄일 수밖에 없다. 특히 지방세는 파탄 직전인데, 지방세의 주수입원이었던 부동산 거래가 마비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기획재정부에서는 채권을 발행해서 추경을 편성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경제학의 기본이다. 리먼 사태 대 오바마 정부 및 크루그먼, 버냉키, 실리콘 밸리 등의 의견이 어떠했는지를 보자. 그들은 엄청나게 돈을 풀었다. 양적 완화라 불리는 돈풀기를 3번에 걸쳐서 했고, 그 결과 경제가 부활했다. 그 과정에서 이렇게 돈 풀다간 빚 때문에 망한다고 징징대던 건 공화당, 월가 쪽이었다. 그러나 결국 용감함이 승리했다. 이것이 ‘진보적인’ 방식이다. 불황일 때 복지해야 하니, 증세하자고 외치는 건 자본주의 자체를 불신하는 공산주의적 발상이다. 그보다 상식적인 진보적 방향은 정부가 개입해서 돈을 풀고, 그래서 불황을 이겨내자는 것이다. 그러니까 새누리당의 현재 경제 정책은 어느 정도 진보다.


 여기서 더 보수적인 발상은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면 되는 게 없으니, 그냥 망할 때 망하게 냅두자. 라는 것이다. 사실 이건 친노세력이 지난 이명박 정부 때 많이 주장했던 이야기다. 그리고 이 방식은 정확하게 미국 공화당, 그리고 월가의 주장과 일치한다. 이러니까 친노 집권 때 그리 서민경제가 파탄난 거다.


 민주당은 이념적 기반이 없다 보니 - 여기에 요즘은 호남당 벗어난답시고 지역까지 영남 2류당 되려 하고 있다. - 어떨 때는 심한 보수적 작태를 보이고, 어떨 때는 공산주의자가 따로 없다. 이러한 之자 행보가 민주당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이길 수밖에 없는 선거도 지게 만든다. 쉽게 말해 어리석고 멍청한 거다.


 현재와 같은 심한 불황에서 세수를 올리자는 말을 시민이 들으면 어떻게 반응할까? 답은 간단하다. 욕먹는다. 세율 올려봐야 그 때문에 불황 더 심해지면 돈은 어차피 더 안 걷힌다. 돈이 돌아야 세금이건 뭐건 거둬질 게 아닌가? 불황에서는 돈을 푸는 게 맞고, 증세는 호황기에 하는 게 맞다. 이 기본적인 이론대로 한다면 사실 노무현 정부 때 증세했어야 한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 땐 감세했다. 그러니까 노무현 정부 때 양극화가 그리 심해진 거다.


 여기서 돈풀기로 추가 발생하는 부채는 어쩌냐는 의문이 나올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 마인드가 딱 미합중국 공화당 마인드다. 진보적인 경제학은 거기에 대한 다음과 같은 해답을 가진다. ‘재정지출의 확대는 그 이상의 유효수요를 창출하는 승수 효과가 있기 때문에 재정적자가 발생해도 경제성장에 따른 세수 확대로 인해 이러한 적자는 일시적인 현상에 그친다.’ 미국이 이번에도 증명해 보였다. 이건 정말 여러 번 증명된 이론이다.


 공공 재정 적자, 즉 부채를 과하게 두려워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보수주의자와 사회주의자들이다. 이 점에서 이 둘은 비슷한 마인드를 지니고 있다. 보수주의자들은 자본을, 사회주의자들은 노동을 신성시하기 때문에 어쨌든 돈을 덜 유동적이고, 보다 단단한 것으로 인지하기 쉽다. 그러나 현대 경제에서 돈은 그다지 단단하지도 않고 신성한 것도 아니다. 물론 물질적으로건 정신적으로건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사람들에게는 ‘부자증세’ 같은 말은 언제나 달콤하게 들릴 법하긴 하다. 그것은 이 시대 한국에선 새로운 인민의 아편이겠지.


 중요한 것은 세율이 세수를 결정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세수를 확보하려면 지금은 세율을 조정하기보다는 불황을 해결해야 한다. 예를 들어서 현재 부동산 양도소득세는 감면해버리는 게 세수에 도움이 될 수밖에 없다. 거래가 이루어져야 뭘 돈을 걷건 어쩌건 할 게 아닌가?






반대의 정치와 그 종결

정치 2011. 5. 1. 06:09 Posted by 해양장미


 보궐선거는 끝났다. 이제 다음 선거는 총선이다. 이제 ‘이명박에 반대하는’ 방식의 정치도 끝날 때가 되었다. 물론 반 MB의 구호 자체는 다음 선거까지 살아있을 테지만.


 사실 이 불쾌한 흐름은 지난 지방선거로 끝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후 여당이 보여준 모습은 전혀 쇄신이 없었고, 오히려 이전보다도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정말 환상적으로 짜증나는 시간이었다.) 이번 선거를 한 마디로 평하자면 자업자득. 여기엔 당연히 유시민도 포함.


 긴 시간이 지나 새로운 가치와 미래를 지향하는 정치적 무대는 이제야 다시 열리게 되었다. 사실 현 정부의 문제가 지나치게 심각하기 때문에 지방선거고 보궐선거고 정부 심판론이 득세하면서 본래의 의미를 제대로 찾기가 어려웠다.


 현재 날아오른 정치인들은 주로 자신의 의견을 분명하게 밝히고 미래를 지향하면서 부상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변화한 시대와 조건에 맞춰 차기 총ㆍ대선 후보들은 미래지향적인 제시를 하고 선거에 나서야 한다. 보다 튼실한 내적인 준비는 물론이고, 보다 잘 엄선된 선거 타이틀과 시민들의 의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자세 또한 갖춰야 한다.


 문제라면 여권이고 야권이고 꾸준한 세력 확대가 없었다는 것. 오히려 정치 혐오만 잔뜩 늘어난 게 최근의 추세랄까. 해온 걸 보면 정치에 관심과 희망을 가지는 사람이 늘어날 리가 없긴 하다. 지지층의 확대가 없고, 분명한 정치색의 매력을 발휘하여 유권자를 확보할 수 없을 때 단순다수 양당제 민주주의 정치는 타락하기 쉽다. 평소에 여기저기 연줄 닿는 데로 발 넓혀놓은 후 선거국면이 되면 부동층을 잡기 위해 총력전을 펼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변화한 조건이라면 빈부격차의 확대와 빈자의 증가. 어차피 양당 모두 부자에서 멀어질 수는 없다. 만약 민주당이 이걸 실패하면 처참하게 패배하게 될 거다. 일례로 노무현 정부가 종합부동산세를 밀어붙임으로 인해 야권이 받아야 했던 피해를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새로운 통치 권력은 사회에 대한 신뢰와 윤리를 회복시켜야 한다. 전체주의적인 사고를 할 필요는 없지만, 쓸데없는 분열을 늘리는 것은 좋을 게 없다. 이 나라의 현실은 더욱 강한 공공성을 요구한다. 또한 시대적인 대세 중 하나인 공공복지와 사회신뢰는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개념이다. 믿을 수 없는 정부에 누가 기꺼이 세금을 내려고 할까? 세금이 없으면 복지는 불가능하다. 조세저항은 복지의 수준을 낮추기 마련이다.


 또한 복지는 넓은 관점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복지를 단순히 직접적인 이익을 주는 것이 아니고, 사회의 책임이라는 부분에서 접근해야 한다. 이런 기본적인 이야기를 굳이 해야 하는 건 참 따분한 일인데, 안타깝게도 그럴 필요성이 있다. ‘복지’라는 한국어가 워낙에 추상적이고 뜬구름 잡는 어감을 가지기 때문이다. 언제 뭐 제대로 해본 적이 있어야지. 사실 복지라는 한국어는 ‘행복한 삶’ 정도의 뜻을 지니는 단어다. 흔히 쓰는 용례가 ‘공공복지’에 해당하는 의미일 뿐이고.


 사회를 좀 더 투명하고 신뢰할 수 있게 만드는 건 복지라는 사회적 건축물을 만드는 데 있어 일종의 기초공사라 할 수 있다. 현재 한국에 필요한 사람은 분배의 정의를 한국 현실에 잘 실현할 수 있는 사람이다. 서로간의 이익 배분을 잘 조절하면서 증세를 위한 준비를 시작해야 할 때다. 토건은 좀 적당히 그만 하고.




꼬리 - 민주주의의 성지라던 김루살렘의 주민들이 대한민국의 바울, 시티즌 유의 수하를 뽑지 않은 죄로 노리스도의 열혈 신도들에게 불로장생할 정도로 욕을 잡수시고 계시니 참으로 안타깝다. 깨어있던 시민들이 한 순간에 국개가 되는 거지. 그나저나 이대로 포기할 시티즌이 아니니 다음엔 뭘 할까 진심 무서울 정도. 나름 예상되는 다음 패 중 하나는 친구 몇에게 말해놨는데 아주 끔찍하단다. 그가 최소한의 품위는 지켜주길 바란다.

꼬리 2 - 내 생각엔 아마도 내년 대선에서 복지라는 이름의 이슈를 밀어붙이는 사람은 필패할 것 같다. 시티즌 유에게도 배울 게 있다.


 

2011년, 반 MB를 넘어서

정치 2011. 1. 4. 19:31 Posted by 해양장미


 새해가 되었다. 근래의 정치사회적 움직임은 이명박의 통치시기를 넘어서는 기점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려하던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어떠한 커다란 악이 있을 때, 어쩌면 그 악과 싸우는 것은 차라리 쉽다. 그렇지만 악이 남긴 파괴를 딛고 그 다음을 기약하는 것은 훨씬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물며 지금까지 해온 게 싸움밖에 없다면 더더욱.


 담론은 이미 옮겨지고 있지만 중앙 정부의 정치적 힘은 한나라당이 독점하고 있다. 다른 정치세력들은 반 MB에 너무 많은 힘을 쏟았으며, 지금도 할 수 있는 게 많지는 않다. 오히려 거대담론들은 민주주의의 확산에 좋지 않게 작용했고, 지난 2010년에 민주당계를 제외한 진보세력은 몰락의 길을 걸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사회 분위기가 지독하게 나빠진 것은 여러 정치사회 담론과 문화에 적잖은 영향을 주었다. 거대담론과 네가티브에 휘말리기 쉬운 상황이 반복해 발생했고, 문화는 날이 갈수록 빠르게 천박해졌다. 심해진 배금주의는 더 심한 배금주의로의 악순환을 반복시켰고, 내 주변의 거의 모두가 몇 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가난해졌다.


 나쁜 쪽으로 가속화된 정치사회적 흐름은 대안으로 거론되는 여러 담론들을 포퓰리즘에 가까운 것으로 만든 것 같다. 물론 그런 조짐은 계속 있었지만, 이 시대의 정치적 퇴행은 무시하기 어려운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근래의 군사적인 갈등은 이념적 균열에 매우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문제는 몇 년 내에 어떤 식으로든 해결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만, 현재는 아주 나쁜 영향을 주고 있다.


 그렇더라도 이제 네가티브는 끝났다. 이명박 정권 다음을 논의할 때가 이미 다가왔으며 그렇다면 반 MB를 넘어 새로운 대안을 이야기해야 한다. 복지 이야기도 좋지만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어지간한 수준의 복지가 자신의 삶을 우선적으로 개선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복지가 세금을 늘릴 거라 생각한다. 정치는 윤리적 욕구뿐만 아니라 실질적 욕구도 충족시켜줘야 한다.


 MB의 비윤리적 권위주의식 통치 시기는 필연적으로 어떤 형태로든 끝을 맺게 되어있다. 막상 그 끝을 앞둔다면, 사람들은 결코 윤리적 욕구만을 고려하지는 않을 것이다. 누가 더 나은 비전을 제시하고 더 포괄적인 시민들을 돌보고 포용할 것인가? 이 의문의 답은 아직 변수가 많다.


 한편 개인적으로는 근래 시민들의 이성적, 윤리적인 수준이나 욕구가 전반적으로 저하되어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부분이 많은데, 이는 결과적으로 앞으로의 정치사회문화적 양상에 일정 부분 이상 변수로 작용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전반적으로 사회의 여러 건강한 모습이 사라진 양상이라 할 수 있다.


 너무 많은 것이 파괴되었다. 많은 것을 새로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이고, 사람들은 적어도 무언가 획기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은 느끼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 열망이 단순한 포퓰리즘으로 기울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그렇지만 이 나라에 앞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높은 포퓰리즘 시대를 이겨낼 수 있는 가능성이 어느 정도나 있을까? 나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또한 이것과 별개로 아직도 야권에서 주로 논의되는 이야기는 반MB연대이며, 안타깝게도 이런 연대는 박근혜의 좌향좌에 의해 이념적, 정책적 차별을 유의미하게 확보하지 못하게 된 게 현실이다. 올해는 나에게 보이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예 및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천천히 해나가게 될 것 같다.


 내 생각에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는 이 자유민주주의의 틀을 일차적으로는 유지하는 가운데 문제점 하나하나를 충실하게 보완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는 것이다. 아직까지 한국은 절차적 민주주의 체제를 보완해가면서 정치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해 노력해본 적이 없다. 그리고 물론 반 MB담론은 이런 것을 기본적으로 포괄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현재의 추세로 정권을 교체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무엇이 나아질 것인가? 물론 MB정권에 비해 더 윤리적인 행정 절차를 밟을 수 있고, 언론은 좀 더 자유로워져 노무현 때 수준으로 수구언론의 권력은 내려갈 것이며, 새만금은 하더라도 4대강 같은 수준의 어이없는 공사는 진행되지 않을 것이다. 사회 분위기는 현재보다는 나아질 것이며 서민이 구제받을 확률이 2%내지 5%는 더 생길 것이다. 북조선과는 지금처럼 냉전으로 달려가지 않을 것이며, 제국주의적인 군사주의의 망령도 덜 소환될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는 훨씬 더 나은 기회들이 생길 거다. 국민들끼리의 사회적인 신뢰도 아주 약간은 회복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변화는 근본적으로는 거의 아무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다. 노무현 정부가 신자유주의적 성장 및 그 부수효과들 외엔 뚜렷한 업적 없이 정권을 빼앗기고 사회 양극화를 심화시켰음에도 그런 실수는 반복될 가능성이 적지 않고, 노무현과 유시민의 신도들은 노무현 정부 및 관련 인사들에 대한 비판 자체를 불허하면서 매우 폭력적인 대응을 일삼고 있다. 국민참여당은 이제 민주당보다 정치학적으로 진보적인 특색이 없다고 판단됨에도 그들이 더 진보적인 것처럼 이미지를 관리하고 있으며, 좌파 정당들은 호남의 민주당보다는 영남패권주의적인 국민참여당과 함께하려고 하고 있다.


 사실 내 생각엔 이제라도 가장 기초적인 것을 해야 한다. 정당이 좀 더 새로운 피를 수혈하고, 젊은 정치인을 성장시키며 이념적으로 포괄해야 할 계층에게 어필하고 요구를 수용하면서 세력을 늘려야 한다. 그리고 당연히 이렇게 하려면 현실적이고 시대의 변화에 어울리는 진보적 변화와 행동이 필요하다. 쉽게 말하면 이는 민주주의의 실현이라 할 수 있다. 정당이 시민의 요구사항을 수용하지 않으면, 절차적 민주주의 정치는 뼈대만 남은 통치에 불과하다.


 한편으로 현재의 복지 담론은 저도의 포퓰리즘성 시혜적 복지에 불과하기 때문에, 바람직하고 수준 높은 복지로 연결될 확률이 낮다. 박근혜도 오세훈도 유시민도 복지를 말하지만, 그것은 아주 낮은 단계의 - OECD 국가 중 형용할 수 없이 최저인 - 복지에 불과하다. 그리고 시간에 따라 복지 레벨은 높아질 것이지만, 그 복지 양상은 각각에게 큰 도움을 주지 못하는 포퓰리즘 성향을 가질 확률이 높다. 보다 민주주의적인 변화가 필요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