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칩(암호화폐)은 공리적으로 해악입니다.

경제 2018. 2. 11. 12:42 Posted by 해양장미

 추천 브금. 우클릭 후 반복 재생 가능합니다.

 

https://youtu.be/KAf9MxhIfio

 



 

 근래 반도체 기업들은 상당한 이익을 거두고 있습니다. 작년 한국 경제는 전반적으로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워낙 엄청난 매출을 거둬서 좋아 보이는 것 같은 착시가 일어나기도 했지요. 작년 한 해 삼성전자의 추정 영업이익은 약 544천억 원입니다. 그나마 환율문제로 매출에 비해 덜 번 게 저 금액입니다. 하이닉스야 SK가 인수하기 전, 사모펀드가 굴릴 시절 대량 매수해서 버틴 용사들은 부자 되었을 테고 이는 기업 오너의 중요함을 정말 잘 알려주는, 현 정권의 정책과 사고방식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대표사례 되었습니다. 하이닉스의 근 10년 주가 변화 그래프를 첨부합니다.


 

 이렇게 반도체 가격이 비싸진 덴 여러 원인이 있습니다. 일단은 소위 4차 산업혁명이 본격 전개 중이라 그렇다 할 수 있을 텐데, 단기적으로 보면 가상칩(암호화폐) 붐도 꽤 영향이 있습니다. 한동안은 비트코인, 근래는 이더리움의 채굴이 전 세계 GPU 시장에 너무 큰 영향을 주고 있고 그 때문에 GPU 가격이 고공행진을 하는 중입니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적은 상황인 것이지요.




 

 문제는 가상칩은 거의 누구나 버블이라 생각하고 있고, 그렇다보니 GPU 생산 공정 증설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공정을 증설하고 나니 가상칩 버블이 끝나버리면 GPU 가격이 폭락하고, 생산기업과 투자자들은 망해버릴 테니까요.

 

 현 시점에서 가상칩은 오직 블록체인 기술 하나를 테스트하는 정도만 인류 사회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 반해 해악은 매우 큽니다. 강력한 투기상품으로 전반적인 투자시장을 교란할 뿐만 아니라, 전 지구적으로 엄청나게 많은 전력을 소모하여 자원/환경/인프라/ 복지 모두에 해악이며, 아직은 그런 단계가 아니지만 각국의 통화-재정정책에 외부충격을 가져다 줄 가능성이 미약하게나마 있으며, GPURAM 가격을 폭등시켜 실제 상품개발 및 차세대 기술 연구 및 투자를 방해하고 있거든요.



 요약하자면 관련 금융, 실물, 에너지 자원이 너무나도 쓸데없는 데 몰려 진짜 가치 있는 쪽이 피해를 보고 있단 말입니다. 예를 들어 GPU가 슈퍼컴퓨터나 차세대 기술 연구에 쓰이는 게 좋을까요, 이더리움을 채굴하는 데 쓰이는 게 좋을까요? 어차피 현재 GPU는 한계까지 생산되고 있고, 공리적으로는 그게 어디 쓰이느냐의 문제가 있을 뿐입니다.

 

 이러한 각종 공리적 문제 때문에 각국 정부는 가상칩을 규제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당장은 가상칩 때문에 글로벌 반도체 기업이 돈을 벌고, 투기적 금융자본들도 돈을 버는데 이들의 금권이 강하기 때문에 처분이 유보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규제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자본주의는 가치 있는 곳으로 자본이 흐르도록 해야만 건강하게 유지됩니다. 기술이 발달하고, 미래가 좋아져야만 +금리를 가지는 신용화폐와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유지되고 발전해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만큼 자본의 흐름을 제어하고 유도하는 게 정부의 주 역할 중 하나이며, 이것이 좋은 정부와 나쁜 정부를 구분하는 주된 기준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이번 정부는 결코 좋은 정부가 아니고, 자본흐름을 제어하고 유도하는 데 있어 끔찍한 정부라 단언 가능하며, 가상칩 문제에서 우왕좌왕하고 각종 잡음을 내면서 미숙함을 넘어 심각한 부정까지 의심되는 모습을 많이 보이기는 했습니다만, 그나마 가상칩에 무조건 열광하고 흥분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아 불행 중 다행이긴 합니다



플레이트 아머에 대한 오해와 이야기

인류 2017. 5. 26. 17:38 Posted by 해양장미


 요즘 시대에 안 맞게 기사단이 많이 보여서, 이런 이야기도 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플레이트 아머는 보편적 인식보단 유니크 아이템으로 유럽사나 인류사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친 물건입니다. 이런 분야를 재미있어 하실 분들도 있으려나 모르겠네요.

 

 전쟁은 안 하는 게 좋습니다만 실제로 많이 했고, 갑옷과 투구, 방패 같은 건 전쟁에서 꽤나 중요한 물건이었습니다. 사람의 맨살은 거의 털도 없고 가죽도 얇아서, 날붙이 같은 데 대단히 취약합니다. 실제 뭔가 작업할 때 목장갑 정도만 껴도 손이 다치는 정도가 확 줄어듭니다.

 



 그래서 전쟁에 나가는 사람들은 무언가 많이 걸칠수록 살아날 확률이 높았습니다. 두꺼운 털가죽을 뒤집어쓰거나, 천 옷이라도 두껍게 누빈 옷을 입는다거나. 이런 건 실제로 방어력이 제법 있어서 각기 생가죽 갑옷(하이드)이라거나, 누비갑옷(갬비슨, 퀄티드 아머) 같은 식으로 부르는 물건이 됩니다. 좀 더 본격적인 경우는 가죽을 무두질하고 파라핀, 밀랍에 삶아 강화한다거나 옻칠을 한 것으로 갑옷을 만들기도 했습니다만, 좋은 가죽은 귀한데다 들인 공에 비해 성능이 애매한 게 문제였지요. 비단도 꽤 방어력을 가진 소재이지만, 귀하고 비싸서 그런지 활용은 제한적이었습니다.

 

 아무래도 강철로 갑옷을 만들면 방어력이 더 좋은 물건이 되기 때문에, 철을 다룰 수 있게 된 인류는 거의 어느 지역에서나 철로 갑옷을 해 입고 전투에 나서곤 했습니다.

 

 철제 갑옷은 제작방식에 따라 대략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라멜라(찰갑/미늘갑옷), 라미너(판갑), 스케일(어린갑/비늘갑옷), 메일(쇄자갑/사슬갑옷), 플레이트 앤 메일(경번갑), 브리간딘(두정갑), 플레이트 아머(판금갑옷). 게임 좀 하신 분들은 웬만큼 들어보신 것들일 겁니다. 영어식 표현을 우선적으로 쓰는 건 보편적으로 그 쪽이 더 이해하기가 쉬워서입니다.


 

 하나하나 간단히 설명하자면, 라멜라는 찰갑 또는 미늘갑옷으로 불리는 것으로 작은 금속편이나 골편, 가죽편 같은 걸 끈으로 엮은 것입니다. 방어력도 있고 제작에 큰 기술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어느 지역에서나 보편적으로 쓰였습니다만... 구조 상 유지보수가 매우 골치 아픕니다. 쓰다 보면 엮어놓은 게 계속 풀어지고 어디 공격받기라도 하면 손상되고, 겹친 부분에 녹이 스는 문제 등 때문에 반복적으로 해체 후 손질, 보수, 다시 엮기를 해줘야 했기 때문입니다.

 



 라미너는 고대에 쓰던 판 갑옷으로, 조금 큰 철판을 겹치듯 이은 형태입니다. 로마에서 쓰던 로리카 세그멘타타 같은 게 대표적이네요. 한반도에서도 쓰였고 전세계적으로 많이 쓰였습니다. 방어력은 있을 테지만 겹치는 부분이 많아 영 무겁고 불편했는지 중세 이후부터는 쓰지 않게 됩니다. 이 형태는 고대식이라 게임 같은 데도 잘 안 나옵니다.



 

 스케일은 라멜라와 혼동될 때가 많습니다. 한국어로 비늘갑옷이라 부르는데, 라멜라도 종종 비늘갑옷이라 부르기 때문입니다. 라멜라가 미늘끼리 끈으로 엮은 거라면 스케일은 단단한 비늘을 가죽 옷 같은 데 붙인 건데요. 방어력이 좋고 고대부터 근대까지, 거의 전세계에서 쓰던 갑옷 형태입니다만... 단점은 아무래도 보기보다 무겁다는 거였던 거 같습니다. 이 형태는 비늘이 겹친 구조가 잘 나와요. 보기엔 그럴싸하니 의장용으로는 곧잘 인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메일은 체인을 뜻합니다. 체인메일이라는 표현도 많이 씁니다만, 이는 후대의 표현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많이 쓰였으며, 실제 중세의 기사들을 상징하는 갑옷 형태입니다. 플레이트를 입은 기사는 중세보다는 근대의 형태에요.



  이 방식은 장점이 워낙 많아서 현대에도 쓰입니다. 촘촘한 사슬을 선이 아니라 면으로 만들어놓은 형태라, 입어도 움직임에 별로 지장이 없습니다. 공기도 통하고요. 그러면서도 베이는 걸 효과적으로 막아주기 때문에, 현대에도 정육 작업이나 잠수부가 상어의 공격을 막는다거나 하는 데 쓰입니다. 또 라멜라정도는 아니지만 노동집약적인 방식이고 기술이 덜 발달해도 좋은 걸 만들 수 있습니다. 관리도 라멜라같은 것보다 훨씬 쉬워서, 녹이 슬면 전체적으로 모래 같은 데 넣어 벗겨내는 식으로 녹제거를 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아예 스테인리스로 만들기도 하지만요. 고양이 키우는 분들한테도 유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메일은 구조적으로 사슬이 촘촘하고 이웃하는 고리의 수가 많을수록 방어력이 좋아지는데, 방어력을 높일수록 비싸고 무거워지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래도 촘촘할수록 화살 같은 걸 막는 성능이 올라가서 고성능 메일은 꽤 촘촘했던 것 같습니다.

 

 장점이 있는 만큼 단점도 꽤 분명한데, 움직이긴 편합니다만 메일을 입으면 하중이 어깨 쪽에 전부 걸립니다. 그리고 타격엔 전혀 방어력이 없다시피 합니다. 타격에 한정한다면 우리가 요즘 겨울에 입는 패딩만 못한 방어력이지요.

 

 메일이 유행하던 시기에 도검은 종종 큰 게 유용했습니다. 제대로 베이지 않더라도 후려갈기면 어쨌든 데미지가 들어가는 게 메일이니까요. 그나마 유럽 중세시대 땐 대부분의 기사들은 귀족이었고, 귀족은 죽이기보다는 포로로 잡아 몸값을 받는 게 이익이었으므로 메일만 입어도 목숨을 부지할 확률이 높아 많이 애용되었습니다만... 기사계급이 점차 기득권이 생기고, 교육수준이 올라가고 싸움을 안 하게 되면서 상황이 변하게 됩니다.

 

 플레이트 앤 메일과 브리간딘은 트랜지셔널 아머라고도 합니다. 과도기형 갑옷이라는 뜻인데, 이는 유럽에 한정하여 이 갑옷들이 메일과 플레이트 시대 중간에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플레이트 아머는 거의 유럽에서만 썼던 방식으로, 다른 지역은 브리간딘 이상의 진화는 없었습니다. 물론 현대의 방탄복이나 방검복, 강화 외골격 같은 건 제외하고요.

 


 플레이트 앤 메일은 말 그대로 메일에 판금이 결합된 형태입니다. 이 형태는 타 지역과 유럽의 것이 좀 다른데, 유럽의 것은 메일 위에 각부의 판금을 부분부분 덧입어 방어력을 높인 형태입니다.



 대조적으로 타 지역의 것은 라멜라가 진화한 것처럼 보이는 형태가 많습니다. 라멜라의 미늘을 판금 느낌 좀 날 정도로 사이즈업 하고, 잇는 끈을 메일로 바꾸면 이렇게 됩니다. 고려나 조선에서도 경번갑이라 부르면서 많이 썼습니다. 이런 형태는 플레이티드 메일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보편적으로 합의된 표현인진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명칭들 사이에서 플레이트 메일이라는 잘못된 표현 또는 오해도 등장했습니다. 실제론 플레이트 앤 메일과 플레이트 아머는 좀 다른 겁니다. 플레이트 아머는 거의 전신이 판금이며, 움직임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일부분만 메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풀 플레이트라는 표현도 씁니다.

 



 브리간딘은 유럽지역이 아닌 지역, 특히 아시아 지역에서 갑옷의 최종진화형태였습니다. 이 형태는 가죽이나 직물로 된 천에 라멜라보다 큰 철판들을 리벳()으로 고정시킨 것인데, 이렇게 만들면 충격을 받아도 철판들의 연결이 잘 끊어지지 않습니다. 방어력이 좋은데 유지보수도 쉬웠습니다. 조선에선 두정갑이라 불렀지요. 우리 조상들이 제법 많이 썼음에도 어째 현대엔 잘 알려지지 않은 유형입니다. 유럽에선 많이 안 썼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브리간딘은 그냥 가죽옷이나 비단옷에 정이 박혀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만들기에 따라선 거의 갑옷처럼 안 보이기도 합니다. 안쪽은 다 철판이지만요. 이런 외형은 갑주에 대한 기억이 많이 잊혀졌던 20세기 중후반기만 해도 많은 오해를 낳았습니다. 가장 흔한 오해가 브리간딘을 징 박힌 가죽갑옷으로 오해한다거나, 아예 아시아 군인들은 갑옷을 잘 챙겨 입지 않은 걸로 오해한 것입니다. 이 오해 속에서 나온 것 중 D&D룰에 나오는 스터디드 레더 아머라는, 가죽에 징을 박아 방어력을 높였다는 게 있습니다만, 실제론 그런 거 없었습니다. 브리간딘을 오해한 거예요. 그렇지만 요즘 게임에도 그 이상한 가죽 갑옷은 종종 등장합니다. 가죽에 징만 박는다고 그다지 나아질 건 없을 텐데요. 그리고 우리나라 사극에서 조선 군인들은 아직도 갑옷을 잘 안 챙깁니다...

 

 어쨌든 브리간딘은 거의 단점이 없는 갑옷이었으니까 웬만해선 이거보다 갑옷이 발달하지 않았습니다. 유럽만 예외였지요. 모두가 알다시피, 유럽엔 전신을 감싸는 플레이트 아머가 등장합니다.


 

 플레이트 아머는 무겁고 둔하다는 흔한 오해와는 달리 입은 상태에선 단점이 거의 없습니다. 입고 체조건 구르기건 달리기건 다 할 수 있습니다. 보기엔 무거워 보입니다만, 실제 철판이 그다지 두꺼운 건 아니고, 통판 특성상 하중이 분산되기 때문에 오히려 철 조각들이 겹치는 스케일 같은 것보다 무겁지도 않고 메일처럼 어깨에만 하중이 걸리지도 않습니다.

 

 방어력도 다른 갑옷보다 아무래도 높았는데, 통 철판이라 냉병기론 데미지가 잘 안 들어갔습니다. 물론 꿰뚫는 게 불가능하진 않고 강하게 때리면 안쪽으로 충격이 들어가긴 합니다만, 플레이트는 정타가 잘 안 들어가도록 여기저기 각이 져있어서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당연하리만큼 플레이트에 데미지를 주는 공격법이나 냉병기도 발달하긴 했습니다만... 너무 많은 훈련과 재능이 필요했습니다.

 

 일단 왜 유럽에서만 플레이트 아머가 발달했는지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플레이트의 발달 요인 중 하나는 유럽 중세사회의 봉건제에 있습니다. 기사와 기사단, 용병단 위주의 형식과 문화를 지니고 있었던 유럽 군대는 다른 유라시아 지역 군대에 비해 아무래도 소수정예 엘리트 무장집단에 가까웠고, 그러다보니 개개인의 무장 수준이 높았습니다. 대조적으로 징병을 일상적으로 하거나 모든 남성이 전사에 가까웠던 아시아 군대는 각각의 무장 수준은 낮았지요. 쉽게 이야기하면 숫자냐 정예화냐의 차이입니다.

 

 정예화된 유럽 기사들은 랜스의 발달과 함께 마상 돌격을 많이 활용했고, 그러다보니 더 갑옷이 발달했습니다. 플레이트는 투구 다음 무릎, 정강이 부분부터 발달했고 이는 말에 탄 상태에서 다리를 공격당하는 걸 막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플레이트가 발달하게 된 데는 또 다른 요건들도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는 흑사병이었습니다. 유럽은 흑사병으로 인구가 많이 줄어들었는데, 그 결과 제조업이 노동집약적인 것보다는 숙련자에 의한 것으로 발달하였습니다. 갑옷 중에 라멜라나 메일은 노동집약적인 것입니다. 대조적으로 플레이트는 숙련된 장인이 만들 수 있는 것이지요. 또 유럽에선 시장경제가 비교적 일찍 활성화되었는데, 이는 유럽 중세사회에서 도시들이 독립적이었던 것과 연관이 있습니다. 인력의 감소로 인해 발달한 도제 시스템과 상공업자들의 공간이었던 도시가, 엘리트 위주의 군대 문화와 맞물려 만들어낸 게 플레이트 아머입니다. 유럽에서만 플레이트가 등장하게 된 덴 이런 이유들이 있었습니다.

 

 대조적으로 다른 지역의 갑옷은 노동력 문제가 덜했고 도시, 상업이 덜 발달했으므로, 메일이 좀 더 촘촘해진다거나 아니면 브리간딘의 외피가 더욱 화려해지는 식으로 발달합니다. 메일이나 브리간딘이 꼭 플레이트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갑옷은 아니기도 합니다. 사람이 쓰는 물건이다보니 입은 상태에서의 방어력이 전부는 아니거든요.

 

 플레이트 아머엔 결정적인 단점이 있었는데... 입고 벗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구조적으로 혼자선 입고 벗는 게 좀 어렵습니다. 입은 상태에선 화장실 문제도 해결이 안 됩니다. 그래서 더더욱 플레이트는 엘리트 기사 위주였던 유럽 사회에서 잘 통용될 수 있는 물건이었습니다. 종자 없이 입고 벗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닙니다만,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그리고 기사들은 플레이트를 입은 상태에서 화장실 갈 일이 생기면... 보통 그냥 입은 채로 배설하였습니다. 그 결과물을 해결하는 건 종자의 몫이었지요.

 

 아시아 전쟁사에 등장하는 것처럼 장수가 갑옷을 입은 채로 잔다거나... 밤에 기습을 받았는데 갑옷을 걸쳐 입고 뛰어나간다거나 하는 게 플레이트로는 거의 안 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대조적으로 브리간딘은 안쪽이 철판인 코트 같은 거라 기습 받아도 바로 걸쳐 입을 수 있었지요.

 

 그래도 플레이트는 방어력이 좋아도 너무 좋았습니다. 냉병기로 플레이트를 상대하려는 시도도 많았습니다만, 그보단 화기가 빨리 발달합니다. 위에 이야기했듯 검이나 철퇴, 해머 들고 플레이트 입은 기사를 상대하려면 많은 숙련에 더해 재능까지 필요했으나, 화기는 아무나 다뤄도 기사를 이길 수 있으니까요.

 

 결과적으로 플레이트 아머의 발달은 총기의 발달을 초래하였고, 성능이 영 좋지 않던 전근대 총기를 다루는 전략전술도 발달시켰습니다. 유럽 군대는 계속 강해졌고, 결국 다른 지역을 본격적으로 침공해 점령할 수 있을 만큼 강해집니다.

  

 플레이트 아머의 발달 이전까지 유럽과 다른 지역의 군사적 역량 차는 별로 없었습니다. 오히려 많이 졌지요. 자주 싸웠던 중동, 이슬람 세력은 물론 칭기즈칸의 손자, 킵차크 초대 칸 바투가 폴란드를 정복했을 때만 봐도요.



 그 때 참전한 기사단 중 유명한 기사단으로 소위 튜튼기사단으로 불리는 예루살렘의 성모마리아의 도이첸(독일) 형제회가 있었습니다. 1190년 경 현 이스라엘 아코 시에 세워진 야전 병원에서 시작되어 1808년 나폴레옹에 의해 해체되었다가 다시 부활하여 명예 가톨릭 단체로 아직도 남아있는 단체인데요. 여튼 그 땐 튜튼기사단이 졌습니다. 그림에도 표현되지만, 1241년이라 플레이트가 아닌 메일 입던 시기였어요. 이 때 고려에선 최충헌의 아들 최우가 집권하던 때였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보편적 의미에서의 중세 땐 플레이트 아머가 없었어요.

 

 기록상 플레이트 아머가 최초로 등장하는 시기는 1410년입니다. 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중세라기보단 르네상스 시기(시각에 따라선 르네상스를 중세말로 보기도 합니다만), 이 때 한반도는 조선 태종 이방원 집권기였습니다. 즉 플레이트 아머는 흑사병 이후의 르네상스 시대에 만들어지게 된 것으로, 근대의 태동기에 등장하여 근대사 발전과 그림자에 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물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총기의 시대에 플레이트 아머는 점차 각 부분이 줄어들고 흉갑만 남다 사라져 현대의 방탄복으로 교체됩니다. 근래는 전국민이 징병되고 군용 방어복이 비교적 중시되지 않는 시기였습니다만, 점차 징병제가 사라지면서 그런 추세도 변하고 있습니다. 이제 스타크래프트의 마린이 입는 것 같은 전투복이 개발중이다보니 나중엔 정예 군인들이 그런 걸 입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다시 전쟁은 기사단이 하는 것으로 돌아가겠지요. 근현대의 시민 평등을 만든 건 총기였습니다. 죽창이 아니라 총 앞에서 만인은 평등했으니까요. 총을 막아낼 수 있는 강화 외골격이 보편화되면 평등은 사라질 확률이 꽤 있습니다.


화폐의 역사와 자본주의에 대하여

경제 2015. 8. 28. 13:59 Posted by 해양장미

 많은 이들이, 특히 많은 청년들이 자본주의와 자유시장, 그리고 돈에 관하여 막연하게 부정적인 인상을 가지고 있을 걸로 생각합니다. 이에 본문을 작성합니다.

 

 우선 먼저 이야기해야 할 게, 자본주의는 사실 ~ism이라 하기 어려운 자연발생적인 현상입니다. 애초에 자본주의라는 말을 발명한 것도 시장경제에 비판적이었던 그 마르크스이며, 그의 자본 및 시장에 대한 파악 및 정의는 불완전하고 작위적인 데가 있었기에 단어 자체가 광범위한 오해의 기원이 되었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경제학자들은 - 좌파 비주류들을 제외하면 - 자본주의라는 말 자체를 거의 안 씁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자본주의라는 언급 자체가 나오는 문서는 아예 보지도 않는다고까지 합니다. 즉 자본주의라는 말은 그 자체로 공산주의자들이 현실 시장-화폐경제에 대해 찍은 일종의 낙인이나 다름없습니다. 실제로는 시장-화폐경제는 자연발생적인 것으로, 우리 인류는 국가 형성 이전부터 이미 상업 활동을 해왔습니다. 옛 공산주의자들의 비과학적 오인이 현재까지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면이 많습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건 긍정하던 관계없이, 시장과 화폐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먼저입니다.

 

 이를 위해 선사 시대의 일부터 이야기해보지요. 우리 먼 조상들은 정착 생활로 재산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고, 이웃 부족과 자연스럽게 거래를 하게 됩니다. 이런 원시적 상행위는 삶의 질을 높여줄 뿐만 아니라 생존 자체를 위해서도 중요한 것이었는데요, 현대 선진국인들과는 달리 본래 인류의 삶이란 매우 큰 불안정성 위에 놓여있었기 때문입니다.

 

 불안정성의 일차적인 원인은 농사에 있습니다. 농사라는 건 사실 이 동네는 잘 되는데 옆 동네는 망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어떤 작물은 전멸하는데 어떤 작물은 멀쩡할 수도 있는 것이고요. 즉 상업행위는 흉년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쉬운 예를 들어보지요. 산 위의 A 부족은 수수와 조를 키우고 도토리, 밤을 줍고 토기를 굽습니다. 그리고 산 밑 바닷가의 B 부족은 물고기를 잡고, 해산물을 채취하며 신발을 만듭니다. 이 경우 AB 부족의 거래는 서로 살면서 겪을 수 있는 생존의 위험을 줄일 수 있는 유용한 것입니다. A부족이 농사가 망했을 때는 토기를 팔아 물고기를 사올 수 있고, B부족의 어획이 엉망일 때는 신발을 팔아 수수, 조 등을 사올 수 있으니까요. 실제로는 다양한 부족이 다양한 물품을 거래하게 되기 때문에, 계급 사회 형성 이전의 원시사회에서 상행위란 수렵, 채집, 농사, 목축과 마찬가지로 보편적으로 중요한생존 행위였습니다.

 

 실제 상업이 발달하지 못한 지역에선 기술이 발달한 현대에 들어서도 기근 시 대규모의 사망자가 나오는 게 일반적입니다. 이런 사례에는 북조선도 포함됩니다. 더 나아가 상행위에 대한 인류의 열망은 공산주의자들조차 이길 수 없었기 때문에, 완벽하게 시장경제를 통제할 수 있었던 옛 동구권 공산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거래는 인류의 본능이고, 사람이 모이면 시장이 생깁니다.

 

 물론 상행위의 기본은 물물교환입니다. 그렇지만 서로 필요한 물건만을 그 때 그 때 교환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각자가 매 순간 원하거나 필요한 건 다르기 마련이니까요. 그래서 모두에게 필요하거나 모두가 좋아할 법한 물건이 교환수단이 되게 됩니다. 화폐, 즉 돈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런 실물 화폐에는 크게 3종류가 있습니다. 식량, 섬유-피혁, 금속이 그것입니다. 이것들은 모두 생존에 중요한 것으로, 한반도에서도 꽤나 최근까지 쌀과 면포를 화폐로 사용했었습니다.

 

 물론 모두가 알다시피 점차 화폐의 통상적인 정의에 점차 가까워진 것은 금속입니다. 금속이 식량이나 섬유보다 보존성이 더 좋고 가치에 비해 부피가 작기 때문에 화폐로 보다 더 좋은 기능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금속은 식량, 섬유보다 사용이나 거래가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기원전 7세기경에 우리가 잘 아는 주조화폐, 즉 주화(=coin)가 등장하게 됩니다. 그 기원은 순도와 중량을 통일하고, 그것을 군주가 보장하는 금속조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후 주화는 오랜 기간 동안 화폐의 기본이 됩니다.

 

 이런 주화는 우리가 잘 아는 금, , ()동으로 주로 만들었고, 청동으로 된 게 주로 유통되다보니 동전이라는 언어가 대표적으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청동은 흔한 오해와는 달리 부식되지 않는 한 우리가 잘 아는 구리 색깔이며, 자연적으로는 쉽게 부식되지 않습니다. 부식이 된 후에야 청동 미술품에서 볼 수 있는 청록색이 나옵니다. 그 밖에 연(), 아연, 철 등으로도 주화를 만들었습니다만, 주화를 만들기에 적합한 소재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주조화폐 역시 여러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실제로 동전을 많이 가지고 거래를 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건데, 이게 자루 하나에 담길 정도가 되면 꽤 무겁습니다. 양이 좀 많아지면 운동 기구나 무기가 따로 없을 정도지요. 또 화폐를 발행하는 데 자원이 많이 들다 보니 마음대로 발행하기도 힘들고, 테두리를 깎아서 따로 사용한다거나 하는 문제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모든 문제보다 결정적으로 큰 문제는 금속의 시세는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주화는 엄연히 액면가가 있는데, 액면가와 실제 금속 조각의 가치가 다르다보니 혼란과 문제가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이 현상은 화폐의 본질과 맞닿아있기도 합니다. 근래에도 10원 동전을 모아 녹여 판 일당이 적발된 사례가 있는데, 10원 동전의 금속 가격이 10원보다 꽤 비싸기 때문에 빚어진 사건이었습니다.

 

 보다 현대적 의미에서 발달한 의미의 화폐는 사실 고대부터 거래되었습니다. 위에 이야기한대로 화폐는 교환의 매개수단이며, 이 매개에 결정적으로 필요한 것은 크레딭, 즉 신용입니다. 실물이 화폐로 쓰였던 건 그것이 매우 높은 신뢰성, 즉 현물로서의 실효성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약 확실하게 이행을 한다는 신뢰만 있다면, 사실 시간차가 있는 재화교환에 있어 현물이 꼭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신용 거래 자체는 사실 매우 일반적입니다. 외상으로 물건을 산다거나, 품앗이를 한다거나 하는 것 모두가 신용 거래입니다. 위의 A, B 부족 이야기로 돌아가 보지요. A부족이 어느 해 흉년이 들어 B부족에게 식량을 사러 갔습니다. 그런데 B부족에는 이미 A부족이 만드는 토기가 남아도는 상태였고, A부족은 당장 B부족에게 줄 게 없습니다. 그래서 B부족은 A부족에게 내년에 조와 수수 열 자루씩을 받겠다는약속을 받고 물고기를 줍니다. 그런데 그냥 말로만 하는 약속은 안 지킬지도 모르니까, 신의 이름과 조상의 명예를 걸고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증서를 받아둡니다. 이 경우 이 증서는 일종의 화폐나 다름없습니다. 수표나 어음과 비슷한 신용화폐지요.

 

 시장에서 통하는 신용화폐, 지폐는 일종의 지급보증서에서 출발하였습니다. 큰 규모의 거래가 발생할 경우, 그 지불을 주화로 하는 것은 사실 꽤 어렵고 비효율적입니다. 공식적인 최초의 지폐는 ()송에서 시작되었습니다만, 신용 거래의 특성상 리스크가 있다 보니 실패를 거듭하긴 했습니다.

 

 지폐가 신용화폐인 건 지폐 그 자체로는 별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크레딭 없는 지폐는 온갖 낙서가 적히거나 인쇄된 작은 섬유조각일 뿐이지요. 이후 지폐는 현물과 연계되는 금, 은본위제와 함께 점차 보편화되게 됩니다.

 

 화폐 이야기가 길어지는데 화폐를 이해해야만 크래딭(신용)을 이해할 수 있고, 크래딭을 이해해야만 캐피탈(자본)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야 공산사회주의가 얼마나 큰 오해를 사람들에게 주입했는지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화폐를 설명하기 위해 유럽사 속의 시장 이야기를 조금 해보겠습니다. 서로마가 붕괴한 후, 중세는 흔히 이야기하는 암흑시대가 됩니다만 사실 상공업은 도시를 중심으로 계속 발달합니다. 상공업은 토지와 날씨가 주요 변수가 되는 농업과는 달리, 보다 사람과 기술에 의존적입니다. 사람이 모여야 기술이 발달하고, 상행위가 쉽게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사람이 많이 모이면 공간적으로 식량 등을 자급자족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더더욱 상업이 중요해지게 됩니다.

 

 중세 초기의 도시들은 대체로 봉건 영주들에 속해있었으나, 점차 독립하게 되어 자치구가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공화제는 도시의 제도였고, 그렇기에 시민이라는 어휘는 공화정과 관련이 깊습니다. 흔한 오해와는 달리, 상업이 없으면 데모크라시도 없습니다. 자본을 부정한 모든 체제가 민주정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걸 기억하세요.

 

 한편 근대 이전의 모든 도시는 담수를 가까이합니다. 사람이 살려면 물이 필요한데, 도시처럼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필연적으로 큰 수원이 필요했습니다. 이 수원은 대체로 강이고, 일부 운하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물길을 따라 교역이 이루어지곤 했지요.

 

 그런데 점차 유럽의 상업이 발달하다 보니, 1300년대쯤에는 주화에 쓸 귀금속이 부족해지게 됩니다. 이로 인해 주화가 귀해지게 되지요. 그리고 이후 대항해시대가 열리고, 1500년대에 들어서는 아메리카산 은이 유럽에 대량으로 들어오게 되는데, 이는 위에 이야기했던 주조화폐의 해당 금속 시세문제를 본격적으로 일으키게 됩니다. 비쌌던 은값이 공급증가로 싸지게 된 것이고, 그래서 은화에 대한 문제가 복잡해진 것이지요.

 

 이때까지만 해도 사실 은 유입으로 신나하던 에스파냐 사람들, 즉 보다 일반적인 표현으로 중상주의자들이 가졌던 경제와 화폐에 대한 인식 수준은 이 시대의 어린 사회주의자들과 별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 아는 게 없다는 뜻입니다. -, 왜 돈 그 자체였던 은을 많이 가졌는데도 충분히 부유해지지 않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우리는 이 시대의 멍청한 사회주의자들을 욕할 수는 있어도, 당시에 중상주의자들이 했던 착각을 욕하긴 힘듭니다. 돈의 본질에 대한 통찰은 그 시대에는 힘든 일이었으니까요.

 

 그러나 현명한 현대인이라면 이 문제를 어렵지 않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화폐는 독립된 기준 - 그러니까 액면가 - 을 가지는 것이 시장 경제를 안정적으로 만듭니다. 그런데 실물화폐는 해당 실물의 가격이 수요-공급의 원리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안정적인 기준이 되기 어렵습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오랜 시간 동안 완벽한 신용화폐가 등장하지는 못했는데 그것은 본질적으로 세계에 신용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예시를 들어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만일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이 극도로 억제되어있다면 - 이는 사실 경제성장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음을 뜻하기도 합니다. 옛날엔 이런 시대가 길었지요. - 쌀값은 매년 작황에 따라 크게 변화하게 됩니다. 그런데 만일 쌀 20kg에 해당하는 쌀본위제 하의 5만원권 지폐가 있다면 (그러니까 그 지폐를 정부 기관에 가져가면 쌀 20kg랑 바꿀 수 있는 것이라면), 그 액면가에 (5만원이라는 표기와는) 관계없이 지폐의 가치는 신용이 낮은 사회의 경우 쌀 시세에 맞춰 변화하게 됩니다. 이리 설명하자면 어렵지만, 실거래가를 거의 통제하지 않는 상장주식의 경우 액면가는 거의 무가치한 것이니 그에 연관 지어 생각하면 좀 더 쉽습니다.


 화폐가 그 본질인 크레딭으로 이해되는 데는 오랜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이 이해의 차이에서 중상주의와 자유주의가 구분되고, 그 유명하고 위대한 1723년생 애덤 스미스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중상주의자들은 귀금속을 부로 생각해 중시하고 귀금속이 국외로 빠져나가는 걸 막으려 했지만, 애덤 스미스는 그것을 반박하고 총생산량과 교환가치야말로 중요한 것이라 주장하며 경제학의 아버지가 되지요. 그렇지만 지폐를 실물인 금과 연계하는 금본위제는 극히 최근인 1970년대까지 계속됩니다. 금본위제 하에서 현금은 본질적으로 신용화폐가 아닌 금화의 변형된 형태입니다. 그렇지만 결국 이러한 금본위제는 시한부일 수밖에 없었는데, 여러 복잡한 모든 이유들을 생략하고 가장 중요한 단 한 가지 원인만을 꼽는다면, 금은 한정적인데 화폐는 점점 더 많이 필요하다는 걸 꼽아야겠습니다. 가장 선명한 예로, 현 시점에서 전 세계의 GDP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추정 황금 시세의 총합을 초과합니다.

 

 결국 1970년대에 금본위제는 폐지되고, 신용 화폐의 시대가 열립니다. 신용 화폐는 지금껏 인류의 최대 발명품중 하나일 것입니다. 오랜 오해를 풀고 결국 인류는 돈의 본질을 마주한 것입니다. 이후 많은 오해와 낙인, 그리고 각종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는 꽤 많이 부유해집니다.

 

 지금껏 설명하였듯 화폐는 재화의 매개수단이며, 이 본질은 크레딭(신용)입니다. 그런데 화폐는 거래의 수단이기 때문에, 거래가 발생하지 않으면 실물이 아닌 신용화폐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고 결국 유통화폐, 즉 통화는 흘러 다니는 신용이라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걸 다시 한 번 바꿔 말하면 통화량이 많다는 건 시장에 신뢰가 가득하다는(많다는) 겁니다. 그런데 시장의 신뢰란 곧 재화에 기대라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호황일 때는 통화량이 많고, 불황일 때는 통화량이 적습니다. 이걸 뒤집으면? 통화량을 늘리면 세상에 신뢰가 늘어나고, 호황이 옵니다. 어지럽나요? 언어유희 같을지도 모르지만 사실입니다.

 

 이런 식으로만 이야기하면 세상이 너무 해양장미빛일수 있으니 또 하나의 진실을 이야기하자면, 사실 많은 경우 과도한 신뢰는 위험합니다. 믿음이 항상 진실이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과한 믿음과 기대는 인플레이션을 촉진하고, 버블을 생성하며 그건 곧잘 터지곤 합니다.

 

 이것을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소위 아나바다 이벤트 시장을 열고, 모든 참가자에게 일정한 액수의 (많은 분들이 한 번쯤 써 보셨을) ‘달란트단위 이벤트 화폐를 나눠줬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런데 모든 참가자에게 적은 액수의 달란트를 지급한다면, 참가자들은 가장 신중하게 물건을 고르고 적은 물건만을 사는 경향이 생깁니다. 그 경우 물건이 얼마 안 팔리다 결국 막판에 많은 물건이 떨이로 처리되는 불황 및 디플레이션을 겪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참가자 모두에게 넘치도록 많은 달란트를 준다면? 보이는 대로 막 사니까 전체 물건이 아주 잘 팔릴 겁니다. 다만 한정적인 물건을 두고 누군가 경매를 시작한다면,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를 가능성이 높아질 것입니다. 실제 가치보다 훨씬 비싸게 살 수도 있겠지요. 이런 예시가 너무 간단하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만, 현실 시장도 그리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사람 본능과 습성이 거기서 거기거든요.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제 맨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 봅시다. 시장이란 자연스러운 거래의 필요성에 의해 형성되었으며, 거래의 교환수단인 화폐는 곧 서로간의 신용(현실적으로는 기축통화국의 - 이 시대에는 미합중국의 - 신용)입니다. 누군가 만들어낸 악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만약 돈이 사악하다면, 그것은 인간이 사악한 겁니다. 모든 돈 뒤에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해가 어디서부터 빚어졌을까요? 마르크스나 엥겔스 등이 보았던 산업 사회 초기의 온갖 사회 문제들은, 그냥 당시의 사회 문제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입니다. 자동화 기기의 발달로 인해 기계가 많은 노동력을 대체하게 되면서, 농장 일자리가 줄어들었고 도시로 나온 대규모 인력이 저임금과 과도한 노동에 시달렸던 게 당시 시대상입니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문제가 아니고, 당시의 시대상이 만들어냈던 일자리-노동력 시장 불균형의 문제라 보는 게 맞습니다. 그 문제는 생산성이 향상되고, 경제가 성장하며 개선되게 되지요.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공산주의 계열의 사상은 경제사에서 단순한 잡음이었을 뿐입니다. 자본주의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고, 그저 자연 발생적인 시장경제가 있었을 뿐이며 경제학은 꾸준히 발전하였고, 온갖 실패를 겪고 문제를 고쳐가면서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고 결국 지금에 이르렀을 뿐입니다. 그것을 작위적으로 나쁘게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을 뿐이지요.

 

 또 좌파들이 주장하는 수정 자본주의역시 현실 속에서는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그건 주류경제학에 속하는 케인즈주의를 좌파 사회주의자들이 제멋대로 부른 말에 불과합니다. 케인즈 이후 모든 주류경제학은 케인즈의 영향을 받았고, 케인즈를 부정하는 건 비주류들뿐인 게 또 현실이고요.

 

 세상엔 비교적 자유로운 시장경제활동을 보장했던 정부와, 그렇지 않았던 정부가 있었을 뿐입니다. 어떤 사상 및 체제는 상공업을 통제하고 철저한 농업 중심으로 갔고, 또 어떤 사상 및 체제는 생산수단을 국유화하는 코뮤니즘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그러나 결국 자유로운 시장경제활동을 보장하는 정부가 성공하였고, 인류의 본성적 생존활동인 상공업 행위를 지나치게 규제하는 시도들은 예외 없이 실패하였습니다.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 수만 년을 쌓아온 본성을 섣부르게 통제하려 드니 결과가 좋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한 시장 경제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 정부는 거의 예외 없이 착취적이었고, 시민들에게 더 나은 내일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자본주의의 진화 - 마이너스 이율의 도입

경제 2014. 6. 8. 16:52 Posted by 해양장미

 경제학은 왜 필요할까? 이번엔 이것부터 간단히 설명을 하고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경기가 나빠지면 개개인 입장에서는 씀씀이를 줄이는 게 현명한 선택이 되지만, 사회 구성원 모두가 그러면 불경기는 더욱 심해지고 모두들 더 가난해진다. 사회에 불안과 불신이 팽배해지고 모두들 은행에서 현금을 인출하려고 하는 뱅크런 현상이 발생할 경우, 은행은 예금액 전부를 현금으로 보유하고 있지 않기에 (은행의 현금 보유 비율을 예대차라 한다.) 파산하게 된다. 이것이 공황이고, 경제학 중 많은 부분이 이런 상황을 방지하고 해결하기 위해 발전하였다.

 

 개개인이 모두 과도하게 이기적이 될 때 그게 사회에 파괴적인 결과를 낳는 건 세상의 당연한 이치이다. 혹자는 자본주의가 이기심을 과도하게 긍정한다고 주장하지만, 대체로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경제학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거나 사이비거나 특별히 이기적인 사람들이다. 위대한 경제학자들은 대체로 사회 구성원들의 윤리성과 신뢰, 공동체 의식 등도 중시한다. 성공적인 시장에는 그런 게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불황이 빚어질 때마다 윤리성의 회복을 강조하며, 그들 각자가 상상하는 자본주의 이전 시대상으로 돌아가거나 - 실제로 그들이 상상하는 것과 같은 시대는 없었지만. - 아니면 사회주의 체제를 구축하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은 언제나 검소함을 주장하기 때문에, 경기를 회복시키고자 하는 경제학자들(또는 정부 및 관료들)에게는 골칫거리가 된다. 사실 아무리 심한 불경기라도 사람들이 돈을 펑펑 써대기 시작하면 금방 끝난다. 불경기란 시장에 돈이 잘 돌지 않는 현상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심리와 가치관은 대체로 문제를 악화시킨다.

 

 그래서 정부는 금리를 조절한다. 비록 금리는 (채권과 환율 때문에) 정부가 완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경기를 조절하고 정부 재정을 관리하는 데 있어 가장 전통적인 수단이다. 그런데 근래 들어 선진국들의 부채가 불어나게 되면서 금리는 점차 낮아졌고, 결국 금리의 조절만으로는 불충분한 시대가 다가왔다. 그래서 미국과 일본은 양적 완화라는 비전통적 방법을 채택하게 되었고, EU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되었다. 단기금리에 음수를 적용하게 된 것이다. 해당 소식을 링크하겠다.

 

‘ECB, 은행 단기예금에 첫 마이너스 금리 적용 (링크 클릭)’

 

 내가 생각하기에 마이너스 금리는 지금껏 있어왔던 자본주의의 기본 법칙을 (직관적으로[각주:1]) 뒤흔드는 행위다. 근대 자본주의의 발달은 금리와 예대차로부터 시작하였다. 금리가 있으니 사람들은 은행에 돈을 맡겼고, 은행은 예대차를 이용해 없는 돈을 창조하여 빌려줌으로 시중에 통화량을 늘렸다. 이렇게 늘어난 통화량은 호황을 만들고 모두를 부유하게 하는 데 크게 공헌하였으나, 이 시스템은 태생적으로 돈이 돈을 벌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흔히 진보좌파들이 지적하는 자본주의의 단점중 정말 많은 부분이 사실 ‘(양수인) 금리가 있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금리가 양수일수도 있고 음수일수도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아직 기준금리는 음수가 되어보지 않았고, 기준금리를 음수로 만들려면 화폐 체계를 완전히 바꿔야하지만 실제 채권금리가 음수가 되었던 사례는 최근에 있었고, 이는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자본주의의 진화라 할 수 있는 변화다. 만약 기준금리가 음수가 될 수 있다면, 화폐의 의미 자체가 변한다.

 

 본래 자본주의에서 현금은 기준금리 대비 부채이며, 미래 생산성에 대한 부채였다. 그런데 기준금리가 음이 되면, 현금은 그 자체로 자본이 된다. 사실 그렇기에 기준금리를 음수로 만들면서 기존 법칙들을 유지하려면 화폐를 없애야 하는데, 이런 이야기는 개인적으로는 사담으로나 하던 것이었지만 이젠 현실 앞에 등장해 있다. 난 사실 더 이상 세상에 버스 토큰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듯, 실물화폐도 그다지 필요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를 한국이 결정할 수는 없다. 세상의 기축통화는 달러다. 그렇더라도 과거 금본위제가 어느 날 사라졌듯, 미래의 어느 날 실물화폐가 사라질 날이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금리 기준점을 0에 두고 +, -를 조절할 수 있다면 이론적으로 불황을 극복하기는 훨씬 쉬워진다. 불황을 극복하는 데 있어 가장 손쉬운 방식은 현금을 무가치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경제적 불안감을 느낄 때, 사람들은 현금을 가치 있고 안전한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흐르지 않는 현금만큼 무가치한 것도 없다. 경제학자들은 오래도록 군중의 불안감 및 현금 숭배와 싸워왔다.

 

 필요하다면 모든 실물 화폐를 없애버리고, 중앙은행은 -5% 기준금리 같은 것도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현금을 쥐고 있는 게 정신 나간 짓이라고 생각하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모두가 최소한으로 돈을 쓰는 시장은, 모두가 최소한으로 돈을 버는 시장과 같다. 물가 문제에선 심한 인플레이션만 막으면 된다.

 

 보기에 따라 약간 난해했을지 모르는 이야기를 마치면서 부연하자면, 내가 이야기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케인즈주의적 관점이다. 그리고 신자유주의자들은 이것과 정 반대로 이야기하고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정부의 재정 정책은 불필요하며, 물가를 안정시키는 것 외엔 시장에 개입할 필요조차 없다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그들은 위기일 때 도리어 금리를 높여 투자를 촉진하자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한국은 IMFIMF의 지시로 그런 결정을 했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참으로 고통스럽고 끔찍했다. 그러나 이 사회의 수많은 신자유주의자들은 그 경험에서 별로 배운 게 없는 것 같다. 물론 자칭 진보좌파들도 경제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 신자유주의자들의 달콤한 말에 자꾸만 넘어간다는 것도 또 한 번 강조해야하겠다.

 


  1. 사실 양적완화도 판단하기에 따라선 자본주의의 기본 법칙을 뒤흔드는 행위일 수 있지만, 직관적으로 사람들에게 그렇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본문으로]

복지 담론의 불편한 진실

경제 2013. 5. 30. 17:42 Posted by 해양장미

 근래 한국에서 사회주의자들이 대단한 일을 해낸 것 중 하나는, 복지를 곧 분배인 것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는 데 있다. 많은 사람들이 ‘분배를 늘려야 한다.’라는 정치사회적 의미를 사회주의적이고 복지를 강화해야 하는 것처럼 이해하곤 한다. 그러나 사실 분배와 복지는 정말 다른 것이다.


 분배란 쉽게 이야기해 경제적 성장의 과실을 나누는 것 전체를 의미한다. 당연하게도 이 분배가 잘 될수록 사회는 보다 평등해지고, 가난하고 불만을 가지는 이들이 적어지게 된다. 그런데 복지, 특히 정치사회 쪽에서 말하는 공공복지는 정부가 개입하는 형태의, 분배의 한 방식을 의미할 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원칙적인 분배는 복지보다는 통화의 회전에 달려있다. 즉 노동자가 임금을 제 때 많이 받고, 보통 사람들이 돈에 대해 너무 불안감을 가지지 않고 쓸 만큼 쓰고, 소비에 의해 영세상인들도 돈을 충분히 벌 수 있다면 그게 분배가 잘 되고 있는 거다. 시장이 충분히 잘 작동한다면, 복지는 다분히 보조적 수단으로 충분하다. 문제는 충분히 잘 작동하는 시장은 정말 드물다는 데 있다.


 완벽한 시장이 일종의 유토피아라는 건 모두가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시장의 불완전함을 어떻게 극복할지에 대해서는 각자 생각이 다르다. 소위 메인스트림의 사고방식은 시장을 좀 더 잘 작동시키는 데 있다. 금리와 통화량을 조절하여 물가를 조율하고, 시장이 무난한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


 한국을 포함한 세계의 선진국들은 이러한 면에서 잘 작동하는 시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충분하냐고 묻는다면 많은 경우 그렇지는 않다. 호황은 모두를 평균적으로 부유하게 만들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불평등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신용이 무너지거나 붐이 꺼질 때 발생하는 불황을 막을 방법 또한 완벽하지는 않다. 이는 마치 병에 걸렸을 때, 의료적 조치를 받는다 해도 전혀 아프지 않을 수는 없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사회주의자들의 말대로 복지를 늘려야 하는 것일까? 근래 보편적 복지 담론이 불이 붙었던 것처럼, 증세를 해서 그런 식으로 하면 우리 사회의 분배는 더 나아질까? 그리고 근본적으로 우리 사회가 분배가 잘 안 되는 이유는 뭘까?


 우선적으로 꼭 이야기해야 할 것들은 이런 여러 가지 이야기에서 사회주의자들이 말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거다. 고의적인 누락이건, 몰라서 말하지 않는 것이건 근래 벌어지고 있는 사회주의적 담론의 확산은 사기성이 있다는 게 근래의 개인적인 판단이다. 


 일단 꼭 알아야 할 것은 모든 복지는 공짜가 아니라는 것과 우리 사회는 이미 일부 측면에선 강도 높은 복지를 실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 사회의 ‘아주 저렴하면서도 잘 관리되고 있는’ 대중교통은 엄청난 적자를 감수하고 시행 중이라는 점에서 분명한 복지이지만, 지속 가능성이 의심되는 복지다. 모두들 현재의 운임 체계에서 적자가 누적된다는 걸 알고 있다. 다만 생각하지 않을 뿐이다.


 대중교통 요금이 오른다 하면 자칭 서민들은 모두들 죽는다는 소리를 낸다. 그러나 그들은 미래의 일에 대해 눈을 감고 있다. 어떻게든 해결되겠지? 라는 심정으로 우리의 후손들에게 빚을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국민건강보험도, 국민연금도 마찬가지다. 복지 시스템이 잘 작동되기 어려운 이유는 정말 많다. 가장 큰 이유는 장기적으로 재원을 확보하는 게 어렵다는 것이다.


 대중교통 요금을 올린다거나 건강보험료를 더 걷겠다거나, 연금 지급액을 낮추겠다는 등의 조처를 반가워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지속 가능한 복지를 위해서는 대략 저런 조치들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4~5년짜리 정권들이 저런 일들을 벌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박원순처럼 초기 협정을 무시하고 대중교통요금을 올리는 걸 힘으로 눌러버리는 시장이 대중에게 인기를 얻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과연 우리 사회가 지금 하고 있는 복지 시스템을 장기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나는 대단히 의문스럽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코레일만 봐도 그렇게 인력감축을 하고 부실한 면을 많이 만들고 그래도 계속 적자가 나고 있다. 그나마 근래는 적자액이 줄어 올해가 흑자원년이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상황이다. 박원순이 부당하게 탄압하였다고 보고 있는 서울지하철 9호선만 해도 지난해 540억의 적자가 났다고 시에 청구한 상황이다. 9호선과 맥쿼리의 진실 또한 자칭 진보언론과 박원순의 포퓰리즘에 의해 크게 왜곡되고 있다고 본다.


 즉 민주주의 정권 하에서 복지 시스템을 제대로 유지시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복지 시스템을 처음 만드는 것 자체는 비교적 쉬운 일이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예산을 증액하고 혜택을 축소하는 정치적 리스크를 아무도 지고 싶어 하지 않아한다. 갑자기 대중교통비 기본요금을 500원 인상하겠다고 누군가 발표한다면, 그 사람이 과연 다음 선거에서 이길 수 있을까? 난 아니라고 본다. 그런데 모든 복지 제도가 이런 면이 있다.


 또한 세율을 올린다고 결코 세금이 더 걷히는 게 아니다. 이에 대해서는 지난 글 ‘커지고 있는 지하경제와 그 문제 및 원인, 그리고 해결방안’ 에서도 다룬 적이 있는데, 증세는 필연적으로 조세저항을 만들고 지하경제를 키우기 마련이며, 그 결과 현대의 금융자본주의 하에서 순환하지 않게 되는 돈은 모두에게 피해가 된다는 게 그 주된 내용이었다.


 실제 이명박 정권이 부자감세로 욕을 먹긴 했지만, 그것은 부당한 정치적 공격이었다. 우선 국세청에서 공개한 연도별 종합소득세율을 보자.


http://taxinfo.nts.go.kr/docs/customer/noted/noted_main.jsp?taxitem_str=%C1%BE%C7%D5%BC%D2%B5%E6%BC%BC&sub_title=%BC%BC%C0%B2&file_path=file%2FnotedInfo%2FU%BC%D2%B5%E6%BC%BC%C0%B2%282012%29.htm


 조금만 자세히 봐도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종합소득세율을 감세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명박 정권 또한 마찬가지로 감세기조였지만, 정권 도중 3억 이상의 고소득자에 대한 추가세율이 생겨났다. 무려 38%나 된다.


 1억 초과 법인세율 또한 마찬가지다. 노태우 정권 때 34%였던 법인세율은 김영삼 정권에서 28%까지 내려간 후, 김대중 정권에서 27%, 그리고 노무현 정권에서 25%로 감세한다. 그리고 이를 이명박 정권은 22%로 내렸다. 1억 미만 법인세율 흐름도 거의 동일하다.


 즉 감세는 이명박의 특이한 행동이 아니라, 민주화 이후 쭉 이어져온 기조였다는 게 핵심이다. 이에 대해 일단 자칭 진보 좌파 사회주의 세력들은 두 가지 방향으로 공격했다. 하나는 보수주의자와 연합하는 양상의 김대중부터 노무현까지 다 신자유주의였고, 그것이 양극화에 일조했다는 공격이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노무현 정권을 그래도 마음만은 서민을 위했던 정권처럼 포장하여 이명박 정권을 유독 부자 편을 드는 정권으로 낙인찍었다. 그러나 이는 모두 부당한 공격이다.


 결과적으로 세수는 어땠을까? 세율을 꾸준히 내린 것과 반비례로 세수는 쭉 증가해 왔다. 김대중 정권 후기인 2001년에 걷힌 총 국세는 95.8조였던 반면, 많은 감세가 있는 이후인 2011년에 걷힌 총 국세는 192.4조원이다. GDP가 올라가서? 꼭 그렇지도 않다. 현재와 큰 GDP 차이가 없었던 노무현 정권 말기인 2007년의 총 국세는 161.5조원이었다. 국제경기는 노무현 정권 때가 훨씬 나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세율인하가 더 많은 세수를 불러온 것이다.


 실제 감세를 하면 일시적으로는 세금이 덜 걷힌다. 그러나 금방 회복되어 더 많은 세금이 걷히게 된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는가? 세율과 세수의 관계를 일차원적으로 생각해선 안 된다. 증세가 지하경제와 불황을 불러온다면, 감세는 더욱 많은 경제활동으로 인한 호황을 불러온다. 세금은 돈이 돌아가는 과정에서 부과되기에 호황이어야 세수가 늘어난다. 실제 자유 경제학자들의 이론이 잘 증명되어온 게 한국인 것이다.


 결국 복지를 위해 증세를 하겠다는 방식은 불황을 불러올 수 있는 위험한 방식일 수밖에 없다. 현실적인 복지는 증세하지 않고, 적자를 누적시키지 않는 복지이다. 그런데 이미 한국은 적자를 누적시키는 양상의 복지를 하고 있다. 이런 면들에서 본다면 복지를 늘려 분배를 하자는 방식은 바람직하지가 않다.


 물론 한국이 사회적 지출비용이 높은 편은 아니고, 세율이 유럽 국가들에 비해 높은 편도 아니다. 그런데 여기엔 중대한 맹점이 있다. 이것은 결코 사회주의자들이 말하지 않는 것들이다. 알려진다면 결코 지금처럼 시민들이 복지 담론에 열광할 수가 없을 테니까.


 일례로 스웨덴을 보자. 스웨덴은 복지국가로 유명하다. 스웨덴이 복지국가가 된 일차적인 이유는 워낙 부유해서였지만, - 2차 대전 직후 전쟁에 휩쓸리지 않은 스웨덴은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였다. - 그런 복지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는 엄청난 세금이 들어간다. 그런데 실제 스웨덴의 세율과 한국의 세율을 비교해보면 어떨까?


 한국이 스웨덴에 비해 세금을 별로 안 내는 건 맞다. 그런데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한국은 소득수준을 4단계로 나눌 경우, 고소득자가 저소득자에 비해 8.7배나 많은 소득세율을 부과 받고 있다. 이는 세율기준이기에 실제 세액으로 치면 까마득한 격차가 나게 된다. 실제 한국은 부자들만 세금내고, 서민들은 거의 세금 안 내는 나라다. 그런데 스웨덴은 소득격차 대비 1.44배 차이밖에 안 난다. 쉽게 말해 모두가 세금을 많이 낸다는 것이다.


 한국만큼 고소득자가 저소득자에 비해 엄청난 세율을 부과 받는 나라는 소위 선진국 중 없다. 배수로 치면 브리튼이 1.43배, 미합중국이 1.57배, 일본이 1.82배, 도이칠란트가 2.16배, 프랑스가 좀 차이가 심해서 2.64배다. 그러나 어떤 나라도 한국처럼 극단적인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쉽게 이야기해서 한국이 세금을 많이 걷지 않는 건 맞는데, 특히 극단적으로 저소득층에 세금을 거의 안 걷고 있다는 것이 진실이다. 실제 경험으로 모두들 알겠지만, 한국은 저소득층에 대한 소득공제율이 커서 소득이 일정 이하면 실제 세금을 안 걷는다. 그런데 다른 나라는 이렇게 하지 않는다. 다른 나라들에서는 소득이 낮은 서민에게도 세금을 꽤 떼어간다. 소위 복지국가들은 다 그렇게 한다.


 소득세뿐만이 아니고, 모두들 공평하게 낼 수밖에 없는 VAT도 한국은 상당히 낮은 편이다. 모두들 알다시피 한국의 VAT는 10%다. 그런데 세계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20%전후의 높은 VAT를 걷는다. 스웨덴의 VAT는 25%다. 그나마도 한국 서민들은 현금거래를 통해 VAT를 내지 않는 데 능하다.


 결국 한국이 증세를 통해 복지국가가 되려면 서민들에게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이 엄청난 세금을 물려야 한다. 그런데 면세혜택에 익숙한 한국 서민들이 과연 그걸 감내할 수 있을까? 한국은 사실 서민에게 실질적 면세혜택을 제공해왔다는 점에서 제법 복지국가였다고도 할 수 있다.


 한국 현실에서 ‘복지해줄게, 세금 왕창 내라.’ 라는 말은 사실 복지국가를 만들려 한다면 부자보다도 서민에게 먼저 적용되어야 한다. 사회주의자들은 결코 이 진실을 말하지 않아왔다. 그들은 부자를 털어 서민의 주머니를 채울 수 있는 양 말해왔다. 그러나 한국은 이미 중산층 이상만 세금을 내는 나라다. 부자들의 경우 그 불평등을 인지하고 있는 만큼, 세율을 더 올린다 하면 조세저항도 강할 수밖에 없다. 실제 세율 올려봐야 부작용만 심하고 딱히 더 걷히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실제 세금을 더 걷는 방법은 결국 서민들에게 보다 평등한 조세를 부과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게 과연 서민들이 원하는 걸까?


 실제 우리 한국인들에게 다가와 있는 불평등은 복지의 문제가 아니다. 보다 많은 좋은 일자리, 너무 길지 않은 노동시간, 강제적이지 않은 회식 및 유흥, 법 앞에서의 평등, 하도급 및 갑을관계에서의 정당함, 체불 없는 임금 지급, 출산 및 육아시의 경제적 안정 등이 정말로 필요한 것이다.


 부자에 대한 증오심으로 증세를 주장하는 것은 결국 모두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불러온다. 부자가 돈을 잘 쓰도록 해야 한다. 그 돈이 시장에서 잘 돌고 돌면 결국 지급준비율의 원리로 점점 불어나면서 모두의 주머니로 돌아오는 게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세상의 법칙이다. 사업자들이 돈을 벌어야 노동자도 안정적으로 임금을 받고, 사업하기 좋아야 일자리가 많이 생긴다. 일자리가 많이 생겨야 노동자도 좀 더 귀한 대접을 받을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사회주의를 억압해왔기에 실제 사회주의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아직도 잘 모른다. 그러나 우린 왜 자본주의가 결국 사회주의를 이겼는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따금 소위 ‘진보적인’ 분들 중에는 주식시장을 합법적인 사기도박판이며, 실제 노동이나 생산과는 관련도 없는 사람들이 돈을 빼먹는 도구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주식시장의 존재가 그렇게 허술한 것이었다면 자본주의의 대성공은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주식시장은 아주 중요하고, 그 중에서도 리스크가 높은 주식시장이 가장 중요하다.


 그 이유를 서술하자면 다음과 같다. 새로운 기업이 성공하려면 거의 예외 없이 어딘가에서 자본을 끌어와야 한다. 흔히 노동자 마인드로는 ‘남의 돈으로 사업을 하지 말라’고 하지만, 사업가 마인드는 그런 게 아니다. 사업은 남의 돈으로 하는 거고, 실패하면 파산 신청하고 도망 좀 다니다가 재기하면 되는 거다. 원래 파산 제도가 있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고, 사업 재능이 있는 사람이 두어 번 말아먹어도 재기하게 해서 말아먹는 경험을 쌓게 할 수 있게 해주는 거다. 결국 그래서 대박 한번 내면 수백수천 노동자가 일자리를 얻게 되니까. 그러나 은행은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결코 벤처기업에 저금리로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 은행은 지불의무가 있기 때문이다.[각주:1]


 은행 외에 벤처기업에 낮은 이율로 돈을 빌려주는 사람을 소위 엔젤투자자라 그런다. 벤처기업에 돈 빌려주는 사람은 아무리 엔젤투자자 소리를 듣긴 해도 손해 볼 생각으로 기부하는 건 아니다. 그들도 수익을 내고 싶어 한다. 다만 좋은 일도 할 겸사,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으로 도전할 뿐이다. 그런데 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투자 방식은 BW다.


 BW에 대한 이해 없이는 금융을 일정 이상 알았다 할 수 없다. 물론 BW와 비슷하거나 관련이 있는 개념을 가진 것도 많다. CB도 있고 ELW도 있고. 그러나 여기선 BW만 언급하겠다. BW는 풀어서 ‘신주인수권부사채’라고 한다.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BW는 기본적으로 채권이다. 다만 이 채권에는 신주인수권이 따라온다.


 신주인수권은 BW를 구매할 때 특정 시기와 가격을 명시한다. 이 신주인수권은 청구권이며, 투자자는 정해진 시기에 청구권을 사용할 수도 있고 포기할 수도 있다. 투자자 입장에선 정해진 시기에 회사의 주가를 보고 주식을 청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주식을 청구하지 않아도 채권으로의 가치는 남는다.


 다만 BW는 일반 채권에 비해 이율이 낮다. 신주인수권이 따라오는 대신이다. 그런데 신생 비상장기업에 투자자가 거액의 BW 투자를 하고 차후 신주를 인수할 경우, 그 주식을 처분해야만 현금 수익이 나오게 된다. 그렇기에 벤처 투자자들은 BW를 구매할 때 성공 시 인수한 주식을 어떻게 정리할지까지 계획을 세우고 투자를 하게 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가장 좋은 주식 매도 방식은 회사의 상장이다. 상장기업의 주식과 비상장기업의 주식 사이에는 유동성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가치도 다르다. 또한 상장 이후의 추가적인 주가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즉 주식시장은 상장이 쉬울수록, 높은 수익률이 나올수록 도전적인 투자자들이 신생 기업에 투자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주식시장이 실물 경제에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이런 이유다. 이게 세계에서 가장 잘 되고 있는 시스템이 미합중국의 벤처들과 나스닥이다. 결국 누군가 대박을 노리고 투자를 하는 것이, 진지하고도 도전적인 사업가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곤 하는 것이다.


 한국에는 이러한 자본주의의 기본 원리를 충분히 이해하는 사람이 너무 적다. 그렇기에 한국에서 사업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누군가는 창업을 하고, 실패를 거듭하고 파산을 겪고 사채업자들한테 도망을 다니더라도 다시 일어나서 기업을 세워 중견기업으로 키워야 한다. 그래야만 일자리가 생기고 사회에 돈이 돌아가고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있다. 복지는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들이나, 기타 여러 이유로 돈을 벌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필요한 안전장치일 뿐, 결국 누군가는 어떤 형태로든 일을 해야만 다들 먹고 살 수 있다.


 여담이지만 사회적 약자들이 정치적 판단에 있어 보수세력을 선택하는 이유 역시 간단하다. 그들은 복지같이 좀 뜬구름 잡는, 각자에게 혜택이 얼마나 돌아올지도 모르는 공약에는 큰 관심이 없다.[각주:2] 그보다 그들에게 와 닿는 것은 자신이 소속된 작은 기업이나 가게들이 얼마나 안정적으로 잘 운영될 수 있느냐다. 증세나 갑작스러운 정책 변경 같은 건 섣불리 잘못하면 그들의 직장을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다. 포디즘 몰락 이후 사용자와 첨예한 갈등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안정적이고 규모가 큰’직장을 가진, 소위 귀족노동자들이다. 이 점에서 사회주의 세력들은 현실 자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뿐더러,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하며 소위 ‘자기들만 잘난’ 꼰대짓을 하고 있다고 이야기해야겠다.


 문제는 한국의 코스닥이 신생 기업의 투자 수단으로 잘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정부에서 투자자 보호를 목적으로 상장을 어렵게 해놨기 때문이다. 결국 현재 한국은 코스닥과 코스피의 구분이 애매모호한 상태다. 코스닥은 좀 더 많은 리스크를 가지고, 좀 더 많은 일확천금을 기대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현재 한국은 신생 기업이 상장을 하는 것이 워낙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상장을 기대하면서 투자하지를 않는다. 주식 시장이 기업하는 데 도움이 되게 하려면 리스크를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본은 결코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 오히려 통제하기 어려운 괴물에 가깝다. 그러나 자본이 지나간 자리에서 꽃이 피고 열매가 맺었던 역사를 돌아봐야 한다. 현대 인류는 자본이 낳은 과실을 이용하여 황제의 식사를 하고, 긴 기대수명을 누리고 있다.



  1. 이 과정에서 독재자의 개입이 기업 육성에 도움이 된 케이스는 수도 없이 많다. 그러나 보통 독재자들은 기업을 충분히 육성하고 나면, 성장한 부르주아 계급에 의해 잘려 나가곤 한다. [본문으로]
  2.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현명한 정책이 아니라 보는 보편적 무상급식이 그리 이슈가 되었던 건, 결국 서민층의 피부에 와닿는 이슈였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복지를 잘 하려면 결국 어느 정도의 난해한 시스템을 도입할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하면 서민들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본문으로]

한국은 잘나가는데 왜 한국인은 가난할까?

경제 2013. 2. 8. 16:57 Posted by 해양장미


 한국은 잘나가는 나라다. 사실 요즘 한국인들은 만성적 불경기 때문에 잘 체감하지 못하는 것 같지만, 한국 경제는 근래에도 계속 눈부신 성장을 해 왔다. 그러나 한국은 부자일지언정 한국인은 가난하다. 문제는 이걸 제대로 설명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거다.


 보수주의자들은 아직 1인당 GDP가 모자라서 그렇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곤 한다. 물론 말 자체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현재 체감 상 적잖은 한국인들은 1인당 GDP가 현재의 반도 안 되었던 시절에 비해서도 못 산다. 경기는 계속 안 좋다.


 그렇다면 진보주의자들은? 각자 말이 다르지만 대체로 하는 이야기는 ‘분배 정책이 모자라서’ 그렇다고 주장한다. 경제민주화를 이루고 복지를 늘리면 해결이 된다는 거다. 그런데 그들의 구체적인 방안들을 계산해보면, 장기적인 계획의 현실성 및 총체적인 사태 파악에 대해 의구심이 들곤 한다. 일단 지난 대선의 문재인 경제공약부터 심각한 문제였다. 그래도 경제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좋단다.


 한국 경제는 쉽게 이야기해 국내에 식민지를 가진, 재벌 위주의 현대적 중상주의 경제다. 중상주의는 본래 값싼 노동력과 반강제적 판매처를 제공해줄 식민지를 필요로 하는데, 한국은 바깥에 식민지를 만들 힘이 없었기 때문에 안에다 만들었다. 이 과정은 폭압적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국가 경제 발전에 큰 도움이 되었고, 적잖은 사람들이 성공적으로 자산을 가진 계층으로 올라섰다. 교육과 부동산에 대한 투자는 전국민적이었다.


 이 흐름은 외환위기 이전까지는 어느 정도 안정적이었다.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 라는 면에서는 지금보다 훨씬 좋았던 시기다. 그러나 IMF는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간단히 말해 한국은 잘나가는데 한국인이 가난한 이유는, IMF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의 폐해가 아직도 얼마나 심각한지를 잘 보여주는 표를 보자. 2013년 2월 8일 현재 (장마감) 코스피 시가총액 상위 30개 상장회사의 주가 및 외국인 소유 지분 상황이다.







 여기서 중요하게 봐야 할 것은 외국인 비율이다. 주식이란 주식회사의 소유증권이며, 회사는 장기적으로는 회사의 이익과 손해를 주주에게 가급적 정직하게 반영하여 손익을 분배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 유수의 기업들을 소유한 자들 중 적잖은 비율이 외국인이라는 데 있다.


 한국은 사실 몇몇 잘나가는 대기업들을 빼면 그 경제 규모가 크게 줄어든다. 애초에 성장 과정에서 몰아주기식으로 대기업을 키웠고, 그 재벌들이 실질적 소유권을 지니고 책임경영을 하면서 국부를 쌓아온 것이다. 그런데 외환위기는 이 대기업들의 소유권을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들에게 나눠주는 방식의 개방을 가져왔다.


 외국인 소유 지분으로 보자면, 코스피 상위 30회사 중 삼성전자(우선주까지 포함)와 포스코, 신한지주, KB금융, NHN(네이버), KT&G, 삼성화재, 하나금융지주는 아예 한국인이 과반을 소유한 회사가 아니다. 외국인이 더 많은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여기에 외국인이 40% 이상을 소유한 회사까지 이야기한다면 현대차(우선주들은 외국인들이 과반을 소유하고 있다.), 현대모비스, SK텔레콤, S-Oil, KT, LG생활건강이 들어간다. 다들 한번쯤 들어본 거대 회사들이다. 기타 잘 알려진 코스피 200 내의 외국인 소유비율이 과반인 회사는 이마트, 코웨이, BS금융지주, 한라공조, DGB금융지주, 신세계, 쌍용차가 있다.


 이 회사들은 법인의 국적은 한국이지만 소유주는 외국인 비율이 더 높거나, 외국인이 상당히 많은 지분을 가지고 있다. 이들이 벌어들이는 수익은 장기적으로는 외국인 소유 지분 이상으로 나라 밖으로 빠져 나가게 된다. 특히 금융 회사들의 지분 구조는 한국인의 부의 축적에 있어서 잠재적인 악재다.


 그러나 이렇다고 해서 외국인 투자를 막는 게 딱히 좋은 것도 아니다. 자본주의에서 투자금은 어쨌든 많이 들어올수록 유리하다. 사업을 할 때 투자금을 많이 확보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한국은 한국이 벌어들이는 부를 한국인이 충분히 소유하지 못하고 있다. 만약 순환출자라는 회계의 마법이 없었다면 경영권까지 빼앗긴 회사들이 많았을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순환출자를 전면 폐지해야 한다고 한 건 무지와 우격다짐의 결정체였다. 한국 혼자서 세계의 자본과 경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금융을 이해하지 못하는 정치 세력이 집권을 하면 큰 파국을 불러올 수도 있다.


 장기적으로 한국인이 더 부유해지려면 개개인이 더 많은 주식을 구매하여 장기 보유하여야 한다. 그러나 현재 한국인의 개인 투자자들 (소위 개미들) 은 상당히 잦은 주식거래를 반복하며 돈을 많이 잃어주고 있다. 그들이 잃는 돈의 대부분은 보다 신중하고 장기적인 양상으로 돈을 투자하는 외국인들의 주머니로 향한다. 이들이 금융에서 돈을 벌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거의 빨대를 꼽고 단물을 빨아먹는 수준에 가깝다. 한편 한국의 투자기관들은 외국인과 경쟁하기엔 연기금을 제외하고는 실력이 모자라는 것 같다. 조직 문화 자체가 금융같이 바쁘게 돌아가는 산업에서는 너무 수직적이고 딱딱한데다, 창의성이나 도전정신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정리하자면 ‘국부의 유출’이 한국은 부유하지만 한국인이 가난한 근본적인 이유다. 그리고 이런 국부 유출의 기원은 IMF고, 나쁜 형태로 지속되는 이유는 제도보다는 한국인 개개인의 자질과 전반적인 문화적 결함, 그리고 순종적인 노동자와 공무원만을 길러내는 교육 탓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그나마 국내에 남아 있는 국부 또한 제대로 분배되지 않고 있는 것은 맞다. 두 가지 문제가 공존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가난하고, 자산에 비해 실 구매력이 낮다. 그러나 분배 문제를 이야기하기 전에 국부가 대규모로 유출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아직도 소위 깨시민들의 인식 수준은 ‘나라가 망할 거다! 주가는 폭락할거다! 연기금이 주가를 떠받치고 있다!’ 정도에 머물러 있다. 한심할 뿐이다. 원래 주식이건 상품이건 쌀 때 사서 비싸게 팔아야 이득인 건데.




'경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근혜 정부의 LTV 규제완화 방안에 찬성한다.  (9) 2013.02.26
자유의 태동  (4) 2013.02.14
경기는 언제 풀릴 것인가  (6) 2013.02.13
젯밥의 역사  (0) 2013.02.10
친노주의식 경제관련 언론 플레이 반박하기  (8) 2013.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