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토피아 2023

정치 2023. 6. 17. 13:38 Posted by 해양장미

 브금

 

https://youtu.be/0iiznGWJsA0

 

 

 

 

 

 

 

1) 페미니즘이 출산율을 떨어뜨리는 핵심적인 원인 중 하나는 남성 청년에게서 남성다움을, 여성 청년에게서 여성다움을 줄이는 것에 있습니다. 페미니즘은 남성다움여성다움자체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을 전복하려 하는데 그런 관점도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존중받아야 합니다만, 사람도 동물이고 성 선택이 작용합니다. 페미니즘의 아주 심각한 문제는 결과적으로 이성에게 매력없는 청년을 양산한다는 겁니다.

 

 페미니스트들이 청년남성에게 매력이 없는 건 굳이 설명할 가치조차 없습니다. 최근에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는 대단히 이기적이고, 사악하며, 기만적이고, 매우 위험하며, 음험하고, 떼를 쓰고, 점점 더 많은 특혜를 원하고, 피해망상에 빠져 있으며, 남성을 혐오하여 공격적인 언행을 일삼는 여성을 뜻하는 어휘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럴싸하게 적어둔 페미니즘 이론서가 아니라 실제 페미니스트들의 행태와 권력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페미니즘은 이미 양육과 교육과 법률, 행정 및 권력에 침투한 지 오래고, 청년남성들도 페미니스트에 맞서 대응하기 때문에 어쨌든 페미니즘에 큰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최근의 남성들은 전통적인, 또한 자연적인 남성성을 크게 잃어버렸고, 이는 혼인적령기 여성들에게 있어 매력적인 남자를 찾기 어려운현실로 다가와 있습니다.

 

 나는 남성 청년들이 (긍정적인 의미로) 남자다울 필요가 있고, 여성들 또한 남성적인 장점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장부라거나 여걸이라는 표현은 오래 전부터 있었고, 긍정적이고 권장되어야 할 역할 모델로 인지되어왔지요. 최근에는 알파걸이라는 표현도 있었고요.

 

 그런데 페미니즘 트렌드는 주도적이고 유능한 알파걸을 양산하지 못했습니다. 반대로 대단히 이기적이고, 사악하며, 기만적이고, 매우 위험하며, 음험하고, 떼를 쓰고, 점점 더 많은 특혜를 원하고, 피해망상에 빠져 있으며, 남성을 혐오하여 공격적인 언행을 일삼는 여성 비율을 단적으로 높였습니다.

 

 그리고 남성 청년들은 그에 맞춰 위축되었고, 패기라거나 용기, 야심, 여자를 후릴 수 있는 매력과 과감성, 제어된 공격성 같은 걸 많이 잃어버렸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위축되지 않고 매력을 가꾸는 남녀의 수 자체는 꽤 됩니다만, 문제는 퍼센테이지입니다. 그 결과는 연예율, 혼인율과 출산율이고요.

 

 과거의 페미니스트들은 남성 청년들을 세련된 신사들로 키우고 싶어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페미니즘은 아줌마같은 남성 청년들을 양산했습니다. 여메웜이 모든 걸 망가뜨리고 있을 때, 그 현실을 외면하고 갈등을 부추긴 부류들은 접시물에 코를 박아야 합니다.

 

 

 

 

 

 

 

2) 이 출산율 하락은 반등이 매우 어렵습니다. 그나마 가능한 수단이 있다면, 우리나라 청년 남성들이 외국인 여성과 국제결혼을 하는 것을 최대한 서포트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청년 여성들과 외국인 남성의 혼인으로 출산율을 높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나라 청년 여성들의 (기혼녀거나 몇 년 내로 결혼할 사람은 제외) 평균적인 눈높이는 대략 천상계에서 우주공간 정도라 그 조건을 충족하는 외국인 남성들 중 우리나라에 와서 출산율을 높여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단적으로 이야기해서 무일푼인 외국인 여성과 결혼하려는 청년남성은 많지만 무일푼인 외국인 남성과 결혼하려는 청년여성은 거의 없습니다. 혼인적령기인 20대 때 평균 누적소득은 여성 쪽이 압도적으로 높은 게 우리나라 현실인데도 말입니다.

 

 물론 K-페미니스트들은 우리나라 남성의 국제결혼 선호에 발작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들이 원하는 건 그 무엇도 아닌 자신들의 권익 향상과 폭력성의 분출이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방안은 여성을 징병하되, 징집 이전에 출산한 여성에 대한 징병을 아이가 세는 나이로 5세가 되기 전까지는 유예하며(둘째건 셋째건 세는 나이로 4세까지의 아이가 있으면 징병되지 않음), 출산한 아이가 세 명 이상인 경우 (아이를 입양 보냈건, 아이가 사망하였건) 징집을 면제하는 방식을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아마 본문에 이야기한 방식은 실제로 출산율을 의미있게 높일 수 있는 방안 중 가장 비용이 들지 않고, 가장 온건한 방식일 겁니다. 돈으로 해결해보자는 분들도 많은데, 우리나라엔 그 정도 돈도 없고요. 밑빠진 독에 물 부어봐야 효율도 안 나옵니다.

 

 

 

 

 

 

 

3) 우크라이나의 반격을 보면서 생각하건데 진작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팰콘과 아파치를 공급했다면 이번 반격에서 그냥 전쟁을 끝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에 있어 충분히 적극적이지 못했고, 그게 현재의 팽팽한 대치국면을 만들었습니다. 미국이 이러는 건 어차피 하루 이틀 일도 아니기 때문에 이상할 건 없습니다만, 국방을 미국에 의존하는 게 안 좋은 건 역사적으로 증명이 되어 있습니다.

 

 6.25 당시의 위기도 어느 정도는 미국에게 원인이 있습니다. 미국이 대한민국에 제대로 된 무기만 두고갔어도 그렇게까지 일방적인 후퇴는 없었을 것입니다. 애초에 전쟁이 벌어지지 않았을수도 있었고요. 미국의 전략적 판단 미스는 전통이고, 그런 실수를 수습하기 위해 미국이 피를 흘리고 돈을 퍼붓는 것 또한 전통입니다.

 

 물론 우크라이나의 이번 반격은 러시아 입장에서 감당이 쉽지 않을 겁니다. 러시아는 그동안 너무 많은 역량을 비효율적으로 소모했고, 우크라이나는 오랜 기간 반격을 준비했습니다.

 

 

 

 

 

 

 

4) 현 정권의 가장 큰 문제를 하나만 꼽아보자면 정치를 못한다는 겁니다. 조금 더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행위를 국민들에게 납득을 못시키고, 납득을 시키려는 의지가 부족합니다. 납득을 시킬 수 없는 행위도 많이 하고요.

 

 기본적으로 이 정권은 무언가를 객관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생각 자체를 진중하게 하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고 봅니다. 기본적인 시야가 좁고, 경박하며 기만적입니다. 그리고 권위주의적이지요.

 

 이런 타입들은 사실 정치를 하면 안 되는 것은 물론, 어떤 조직에서도 리더를 하면 안 됩니다. 그렇지만 유감스럽게도 하고 있지요.

 

 해돈성왕 전하의 경우 본래 국민의힘 소속 정치인이 아니었던 영향인지, 고의적으로 극우들의 마음에 드는 언행을 노출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까지 들 정도입니다.

 

 문제는 야권이 사상 최악이라는 겁니다. 역대 민주당 대표 중 리재명과 같은 대표는 없었습니다. 이 정도로 편파적이고 식물인 야권은 적어도 민주당이 야당을 하고 있는 와중에는 처음 봅니다.

 

 워낙 정치판이 답이 없다 보니 요즘은 정치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시들시들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정도로 모두가 정치에 관심을 놓아버린 시기가 언제 있었나 싶을 정도입니다. 신문과 TV가 영향력을 잃은 것도 한 원인이라고 생각하는데, 소수의 극단주의자들이 정치를 휘두르면서 대다수의 정치인들도 진짜 시민을 보지 못하게 된 것 같습니다.

 

 

 

 

 

 

5) 포스트 코로나의 터닝포인트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몇 개월은 코비드-19 판데믹에서의 탈출 과정에서 겪는 매우 힘든 시기였다고 생각하고요. 앞으로도 한동안 고난이 있겠습니다만.

 

 미국의 기준금리는 거의 정점까지 오른 것 같습니다. 여기서 끝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여기서 끝내고 위태로운 경제를 잡을 수 있다면 이번의 미국은 과거에 비해 무척 선방한 것입니다. 다만 가파른 금리상승으로 인해 세계 모두를 워낙 힘들게 했고, 근래 미국이 보이는 모습이 너무 이기적이고 강압적이다보니 아마 미국에 대한 회의감이 세계적으로 꽤 퍼지긴 했을 것입니다.

 

 미국이 가졌던 어려움 중 하나는 노동력의 부족이었습니다. 날리면 대통령이 집권하긴 했지만, 코로나 때문에라도 불체자를 받을 수가 없었지요. 코로나 터지고 바이든 당한 불체자들이 없는 이상 미국 공장은 돌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고령 노동자들 다수가 죽거나 병에 걸려 쓰러지고, 은퇴하고, 있던 공장도 닫고, 배달 업종이 늘어나면서 다른 업종에서 인력이 빠진 것도 문제의 원인이었습니다. 우리나라도 같은 문제를 겪긴 했지만 미국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많은 재난지원금을 풀었고, 우리나라는 코로나 통제가 더 잘 된 편인데다가 불체자 문제가 미국보다는 덜하다보니 대미지가 상대적으로 적었지요.

 

 그러나 511일 미국은 엔데믹을 선언했고, 그와 함께 불법체류자를 즉시 추방하는 정책도 폐지되었습니다. 그러자 즉시 미국 국경에는 이민자 수만 명이 몰려왔지요. 시간은 조금 걸리겠지만 미국의 구인난도 개선은 될 것입니다. 실질적으로 미국의 제조업은 불체자들이 없으면 돌아가지 않습니다.

 

 

 

 

 

 

 

6) 개인 간이건 단체 간이건 관계를 맺을 때 꼭 지켜야 할 원칙이 있습니다. 다음에는 안 되는 건 이번에도 해주면 안 된다는 겁니다. 이번에 해주면 다음에도 해달라 하는 게 인간 심리입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우리나라는 중국과 관계를 아주 잘못 맺었습니다. 얼마 전 싱하이밍 대사가 선 넘는 발언을 하게 된 데도 이유는 있습니다. 중국인들은 우리나라를 상대로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중국에 저자세였던 역사가 있고, 중국을 추종하는 종중주의자들이 다수 있기에 그렇습니다. 리재명 두목을 상대로 그런 이야기를 한 것도 이유가 있지요.

 

 그런데 올해 해돈성왕 전하는 미국과 일본을 상대로 버릇을 잘못 들였습니다. 다음에는 안 되는 걸 이번에 해 줬거든요. 저자세 외교는 절대 피할 수 없는 이상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건 학창시절에 불량 일진들을 상대로 주눅든 모습으로 눈을 깔고 자세를 낮추는 것과 마찬가지의 행위입니다.

 

 한편으로 나는 미국과 중국 중 걸자면 미국의 승리에 올인하면 안 된다고는 생각합니다. 오바마 집권 때까지는 중국이 미국을 넘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생각했었지만, 트럼프 집권 이후의 미국을 보면서 헤지 정도는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반도체 어택을 보면서 생각합니다. 미국의 반도체 어택은 결국 미국의 숨통을 조일 겁니다. 한동안 중국은 집적도가 높은 반도체를 만들 수 없을테지만, 그것이 중국의 반도체 활용을 근본적으로 막지는 못합니다. 중국은 다른 나라가 만든 집적도가 높은 반도체를 어느 정도는 구매할 수 있고, 첨단무기나 우주항공 분야 같은 데도 꼭 집적도가 높은 반도체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미국은 중국의 도전을 경계하여 중국의 반도체 개발을 막았지만, 결과적으로는 반도체 생산과 관련하여 산업과 돈의 측면에서만 중국을 견제했을 뿐, 중국의 기술발전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중국을 더 진지한 도전자로 만들어버렸지요. 그러니까 미국이 하는 행위의 본질은 중국의 경제성장율을 떨어뜨리는 데 있습니다. 착각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최근 미국의 변화를 주목해야합니다. 미국은 중국과의 첨예한 대립을 포기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걸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맞춰가지 못하면 우리는 큰 대미지를 입게 될 겁니다. 항상 현실을 봐야 합니다.

 

 

 

 

7) K-페미니즘도 준동한지 이젠 꽤 오래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K-페미니즘에 영향을 받은 그룹이 이제 맘들이 되었고, 결국 대재앙이 번지고 있습니다. 취약했던 모든 현장이 무너지고 있지요. 공교육부터 소아과까지. 앞으로 이 화마(火魔)는 점점 더 번질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소위 MZ여성들에게 개념과 의무감과 중용의 미덕과 타인과 어울려 사는 법 등을 탑재시키는 데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성장 과정에서 거의 배려와 우대만을 받아온 소공녀들이 성장해서 어른이 되었고, 그녀들 중 일부는 본래 천성이 착하고 도덕심이 있지만 다른 일부는 본래 사악하고 못되어먹었는데, 그게 충분히 사회화가 되고 교정이 되질 못했습니다. 착한 여자들은 나쁜 여자들을 컨트롤할 수 없습니다. 인간 이하의 암컷들은 K-페미니즘을 주도하여 영향력이 닿는 모든 것을 망쳐버렸습니다.

 

 맘들이 된 소공녀들은 그 자신들보다 더한 소황제들을 키우고 있습니다. 법밖에 모르는 멍청한 법조인들과 법조인 출신 정치인들이 법과 규제로 모든 것을 망가뜨리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법률 체계는 가해자들의 편이고, 본래 법과 함께 사회를 지탱해야 할 덕()과 협()은 비대해진 법과 권력의 폭력성 앞에 위축되었습니다.

 

 감량을 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살이 빠질 때는 정체기가 있습니다. 분명히 체중이 줄어들만하게 살았는데 전혀 줄어들지 않고, 외형적으로도 사이즈가 줄어들지 않지요. 그런데 그런 정체기는 세포의 내용물이 사라져도 그 케이스(세포막)와 공간은 유지중이라 그러합니다. 건물을 철거할 때도 먼저 짐을 빼고, 사람이 나가고, 그 다음에야 건물을 철거하는데 살을 뺄 때도 세포 내용물부터 먼저 빠지고, 그 다음 구조(체조직)가 사라지는 겁니다.

 

 그런데 현재 일어나고 있는 우리나라의 붕괴도 동일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속은 썩어문드러지고 있는데 당장은 티가 나지 않아요. 그렇지만 실제로는 구조체만 남아있을 뿐, 짐도 빠지고 사람도 살지 않아 철거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으로 치닫는 사회 구조가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8) 자유주의는 간단히 이야기하면 사회 전체의 자유를 증진시켜서 내 자유도 확보하자는 겁니다. 그게 진짜자유주의입니다. 남들의 자유는 모르겠고, 일단 나는 내멋대로 하겠다에 가까운 자유지상주의와는 그래서 꽤 차이가 있습니다.

 

 운전과 주차로 자유주의를 설명하면 쉽다고 생각합니다. 자유주의적인 도로망은 더 제한이 적고, 제한이 적으니까 더 효율적인 주행이 가능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차는 질서정연해야합니다. 그래야 내가 주차를 편하게 할 수 있으니까요.

 

 자유지상주의가 비현실적이라는 건 바보가 아닌 이상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비유하자면 자유지상주의자들은 다른 차들을 무시하고 내 좋을 대로 운전을 합니다. 깜빡이 같은 걸 켜지 않고, 주변 흐름도 신경쓰지 않으니까 효율적인 도로가 될 수 없습니다. 주차도 제멋대로 하니까 제대로 주차가 될 수 없지요. 주차칸 하나에 1대만 대야 하는데, 내 차는 귀하다고 주차칸 2개에 걸치게 주차를 하거나 다른 차가 나가지 못하게 막는다거나, 그런 문제가 일어납니다.

 

 자유주의는 어렵습니다. 자유주의적인 도로와 주차는 모두가 평균적으로 운전 실력이 좋고, 매너가 좋고, 도덕적일 때 그 구현에 가까워집니다. 그래서 자유주의 철학자들은 도덕과 공리를 강조해왔습니다. 자유주의에 대해 전혀 이해가 없는 자칭 자유주의자들이 너무 많아서 실제의 자유주의가 거의 알려지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자유주의는 사회 전체의 자유를 위해 개인의 방종을 제어하는 게 반드시 필요합니다. 음주운전이나 깜빡이 안 켜는 운전, 2칸 걸치기 주차 같은 건 자유지상주의에서는 몰라도 자유주의에서는 허용될 수 없는 것입니다. 문제는 구성원들에 대한 통제력을 자유주의적으로 확보하는 게 그리 쉽지 않다는 겁니다.

 

 현재 미국의 소위 리버럴들은 진짜 자유주의 범주에서는 꽤 벗어났습니다. 상기한 예로 들자면 지나치게 카메라를 많이 설치하고, 함정단속을 하고, 민식이법 같은 걸 만들고, 대로의 주행 속도를 시속 30-50km으로 제한을 한다거나, 여하튼 우리나라 도로에서 하고 있는 그런 것들을 전방위적으로 하고 있단 말이지요. 물론 그렇게 하는 게 진짜 무법천지 도로보다는 그래도 평균적으로 빨리 가고, 주차도 좀 더 정갈하게 되긴 합니다. 사고나서 도로 막히면 진짜 답도 없이 막히거든요.

 

 현재 미국의 대다수 리버럴들은 어떠한 일종의 공동체주의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정치철학적으로 그것을 공동체주의라 부르고 있지 않을 뿐입니다. 공동체주의라는 게 리버럴인 롤스를 반박하는 과정에서 나왔기 때문인데, 문제는 공동체주의자들이 현실정치에서 통할 만한 주장을 한 적이 없다는 겁니다. 공동체주의자들은 자유주의에 비해 미덕을 강조하는데, 서로 다른 문화권에 따른 미덕이 충돌할 때 공동체주의자들은 어디까지나 철저히 자신들의 가치관에 부합하는 것이 미덕이라 주장합니다. 그래서 사실 자칭 리버럴인 공동체주의자들과 자칭 공동체주의자들 사이에는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저 가진 가치관이 달라서 달라보이는 겁니다.

 

 자칭 리버럴들의 공동체주의를 나는 편의상 포스트모던 공동체주의로 칭하겠습니다. 그들의 가치관에 포스트모더니즘이 많은 영향을 끼쳤기 때문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기본 특성은 이성과 합리성에 대한 반발입니다.

 

 나는 포스트모더니즘은 파괴적이기에 기존의 관념이 가지고 있던 단점에 비판적이기 쉬운 장점이 있지만, 결국 네거티브적인 면이 강해 가치를 재창조하는데는 실패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철학으로의 포스트모더니즘은 쇠퇴기에 접어들었는데, 포스트모더니즘의 유산인 (상기한) 가칭 포스트모던 공동체주의는 점점 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이는 분야에 따른 발달 속도의 차이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시간이 많은 것을 해결해주길 바랍니다.

 

 

 

 

 

 

9) 포스트모던은 페미니즘과 꽤나 궤를 같이 합니다. 이성과 합리성을 추구하며 달렸던 근대의 끝은 세계대전으로 인한 멸망 직전의 세계였으니까, 그것에 대해 반발하면서 나온 게 포스트모던이었지요.

 

 본격적인 페미니즘도 그와 함께 시작합니다. 정말 러프하게 이야기하자면 남자들이 이성적으로 지배하는 사회는 전쟁하다 망할 뻔 했고, 이제 핵무기가 있으니까 진짜로 3차 대전 일어나면 다 죽으니까, 여자들이 비이성적으로 지배하는 사회가 대안이 될 것이다.’ 가 포스트모던 페미니즘 공동체주의가 기저에 깐 무의식일 겁니다. 이걸 알아도 아무도 말을 안 하는 것이지요.

 

 현재 청년세대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을 윗 세대보다 덜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은 세대는 86세대부터 X세대입니다. 이 세대가 무언가를 선택하는 방식은 논리와 이성 이상으로 직관과 직감, 점술, 계시, 그리고 감성이 좌우합니다. ‘성인지 감수성은 밑도끝도 근거도 없이 갑자기 등장한 개념은 아닙니다.

 

 문제는 포스트모던 공동체주의의 결과물은 극단주의적인 패권주의라는 겁니다. 논리가 없으니까 설득이 안 되고, 설득이 안 되니까 권력을 잡고 마음대로 하면서 내가 옳으니까 따라라.’ 라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거든요. 그럼 반발을 사니까 권력을 계속 잡을 수 없는데, 지지자들이 줄어들수록 컬트화되고 있지요. 지금 보이는 민주당의 현실은 대략 그런 겁니다. 더불어민주당이건 미국민주당이건 이 면에서는 어느 정도 공통점이 있습니다. 미국민주당 쪽 상태가 그나마 더 낫기는 합니다만.

 

 해돈성왕 전하는 어떨까요? 내가 보기엔 해돈성왕 전하와 명신왕후 전하도 포스트모던에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본래 민주당에 속한 인물이었고, 지금도 성향이 그러합니다. 본래 좌파는 극우로 바뀌기도 쉬운데, 극단주의와 과격성, 자기 자신이 옳다는 확신과 근거없는 무지성이 본질이지 좌우는 본질이 아니고 극우는 엄밀한 의미에서 우파로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는 본 블로그에서 여러 번 해왔습니다. 해돈성왕 전하의 행보를 보면 그의 본질은 극단주의자입니다. 좌파와 극우의 행태가 섞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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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Z5nM1mjDLvM

 

 

 문재인 정권이 성공하기 힘든 이유는 정말 많습니다. 오늘은 그 중 하나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문재인과 그 일당들은 이명박근혜 시절 내내 너무나도 심한 네거티브를 일삼아왔습니다. 나 역시 이명박근혜 정부가 별로 잘 한 정부라 생각하는 건 아니고, 야당은 어느 정도 네거티브를 하기 마련이라고 생각은 합니다만, 그래도 문재인 일당의 네거티브는 너무 심했지요. 밑도 끝도 없고 뒷감당도 안 될 네거티브를 너무 시전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네거티브는 정치적 부채입니다. 당장은 이익이 있지만, 정권을 잡고 나면 갚아야 합니다. 전에 했던 말을 지키거나 말을 바꿔야 하는데, 말을 지키려면 어렵고 바꾸자니 없어 보이는 것입니다.



 이런 정치적 부채가 잘 드러난 예를 두엇 꼽자면, 사드배치 말 바꾸기와 제천 화재 사건을 이야기해볼 수 있습니다. 책임 안 지고 비난할 수 있을 때는 편한 겁니다. 문재인 일당이 세월호 사고를 그렇게까지 악용하지 않았다면, 제천 화재도 이렇게 커지진 않았습니다. 사드 배치 말 바꾸기와 그에 엮인 3불 정책 같은 건 말 할 가치조차 없으니 더 말하지 않겠습니다.

 

 문재인 일당은 이명박근혜 시절 모든 사회적 문제를 나라 탓, 정권 탓 하는 수준으로 네거티브를 했습니다. 그런데 문재인이 정권을 잡게 되었으므로, 시민들은 그토록 네거티브를 일삼았던 문재인은 무언가 획기적으로 다를 거라 기대를 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문재인 정권은 사회를 개선할 만한 능력이 전혀 없고, 아집만 가득하기 때문에 시민들이 실망하는 건 시작부터 시간문제였습니다. 그리고 올해 들어 본격적으로 실망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요약하자면 문재인 정권엔 빚을 갚을 능력이 없습니다. 시민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인내심이 줄어들기 마련이고, 현 정권의 잘못들도 점차 드러날 수밖에 없는데, 이는 마치 시간이 지날수록 이자가 불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기대가 클수록 실망도 큰 법인데, 어지간히 맹목적인 게 아닌 이상 문재인 정권이 기대만큼 잘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물론 나는 처음부터 아무 기대도 없었습니다만, 원래 바닥이었던 나의 상상보다도 더 엄청나게 못하고 있지요. 근래는 선거구호가 이런 식으로 바뀌었다는 평도 있고요.

 

사람이 먼저다 -> 북한이 & 세금이 먼저다

나라를 나라답게 -> 서민을 서민답게, 부자는 더 부자답게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 ???



 이런 와중에도 달빛양념단 라텔들은 피의 실드를 치고 있고, 민주당 대표까지 문재앙, 문슬람이라는 말을 고발해야한다는 말을 하고 있는 상황이니, 이는 정권차원에서 온라인 정치깡패를 적극적으로 동원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극단적이고 독단적인 정치는 당연하리만큼 큰 반발을 부를 수밖에 없습니다. 빚으로 부자 행세를 하면 안 되는 법인데, 지금 문재인 일당은 그러고 있습니다.


 

 증오와 복수의 포퓰리즘 정치는 여기서 멈추는 게 좋습니다. 나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문재인 대통령에게 하야를 강력 권장하고 싶습니다. 평양 올림픽을 마치고 하야한다면 국민들은 그래도 문재인이 권력욕으로 대통령 한 게 아니고, 실수는 했더라도 잘 해보려고 했던 인물로 기억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대로 대통령을 계속한다면 모두에게 불행한 결과로 치달을 확률이 높아도 너무 높습니다. 그대들은 복수심 충족과 아집의 증명과 기득권 증진을 위해 권력을 쥐고 있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도시낙후지역에 관한 이야기

사회 2017. 3. 18. 14:24 Posted by 해양장미

 근래는 개인 사정으로 잘 챙기지 못하고 있습니다만, 도시를 걷는 걸 좋아합니다. 내키는 대로 한참을 걸으면서 도시 구경을 하는 거지요. 차를 타면 주로 큰 도로로만 다니게 되기 때문에, 도시에 대해 충분히 알 수 없습니다. 자전거를 타면 고성능 자전거는 너무 빨라서 주변을 잘 못 보고, 성능이 낮은 자전거는 오르막이 힘든 게 문제입니다. 걷고 걷다 보니, 이렇게 걸어 다니는 걸 좋아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 중 어떤 부분에 대해선 잘 알기 어렵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다니지 않은 길로 다니다보면 여기에 이런 곳이 있었나? 여긴 어째서 이렇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이십 년 전에 걸었던 곳은 별로 변하지 않았음에도 옛 인상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달동네, 쇠퇴한 지역, 슬럼, 폐허, 개발지 같은 곳을 지나가게 되기도 합니다. 한참을 걷다 위성사진을 보면, 위성사진이 그런 모습을 잘 보여주지 못한다는 걸 깨닫게 되곤 합니다.

 

 그런 모습들 속에서 가장 쉽게 발견하는 현실적인 문제는, 옛날 80년대에 개발된 구역의 모습들입니다. 이런 구역은 한국 대도시에 정말 많은데, 길이 정말 좁고, 인도 구별이 명확하지 않거나 인도가 매우 좁습니다. 층수가 낮은 공동 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은 곳도 많은데, 이사를 할 때 사다리차를 쓸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곳에 사는 사람들도 크고 멀끔한 차를 탑니다. 아예 빈곤층이 사는 동네가 아닌 이상, 서민들도 차는 신형입니다. 이는 차에 대해 약간의 지식만 있으면 이유를 알 수 있는데, 차가 오래 되면 유지비가 너무 많이 들고 위험해서 새 차를 사거나, 연식이 덜 된 중고차로 바꾸는 게 오히려 이익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서민들은 1톤 트럭이나 스타렉스 같은 큰 차를 소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만큼 개발된 지 오래 된 동네는 주차난이 심합니다. 옛날엔 자동차가 많지 않았으니 주차장을 확보할 생각을 많이 하지 않았고, 지역 자체를 통째로 재개발하기 이전엔 길이 좁은 문제는 개선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려면 대규모 재개발이 불가피합니다. 이제 시간도 흘러 수도권 일대는 새로 신도시를 건설할 곳이 거의 남지 않았고, 재개발 시대가 올 겁니다. 그런데 그 동안 좌파, 진보, 민주당 계열은 덮어놓고 서민들의 생활을 개선할 수 있는 재개발 문제에 대해선 반대를 일삼았고, - 물론 그에는 옛날에 많던 강압적인 거주자 퇴거가 한 몫 하긴 했습니다만, 근래는 상황이 많이 다릅니다. - 그들의 각종 행태를 고려할 경우 앞으로의 도시재개발 문제 등에 꾸준한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항상 이야기하지만 진보좌파는 서민의 편이 아닙니다. 사안에 따라 그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정도지요.

 

 다만 앞으로 만일 자율주행 전기차 시대가 오면 주차 공간 문제가 다소나마 개선되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되었는데, 승용 전기차의 보급이 지지부진하더라도 향후 완전자율주행 기능을 탑재한 전기택시가 일반화될 경우, 택시요금이 저렴해지고 승차거부 등의 문제가 사라짐으로 차량 보유율이 낮아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향후 예상되는 신기술을 예측하여 도시 인프라, 재개발 계획을 짜는 건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전기차와 자율주행차에 대해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고요. 그러나 적어도 고려는 해야겠지요. 도시개발에 필요한 건 이데올로기와 고집이 아니라 통찰과 상상입니다. 많은 경우 정치인들은 근시안적이고 잘못된 선택을 해서 도시행정을 망치곤 합니다. 소위 진보 정치인이 이런 데서 많은 약점을 보이지요. 현재의 정치상황만 고려하면 앞으로 한동안 민주당계의 시대가 올 수도 있을 텐데, 일단은 그들이 변화하고 진화하길 기원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통계적으로 민주당의 지지층은 새누리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소득에 고학력인 사람들이 많다. 단 아예 재산수준이 많이 올라가면 새누리당 지지층이 많아지지만, 보통 새누리당을 주로 지지하는 계층은 보다 저소득에 저학력인 서민들이다.


 실제 간편한 예로, 지난 대선 때의 월 소득구간 별 투표율만 봐도 다음과 같다.


*200만 원 이하: 朴 56.1-文 27.6%

*201만~300만 원: 朴 40.1%-文 47.6%

*301만~400만 원: 朴 43.5-文 47.3%

*401~500만 원: 朴 39.4-文 50.6%

*501만 원 이상: 朴 40.8-文 46.4%


 이런 현상에 대해 소위 진보좌파들은 ‘기득권이 어리석은 서민을 혹세무민시켜, 계급 투표를 하지 못하게 한다!’ 라는 식으로 해석하곤 한다. 그런데 그게 진실일까? 왜 소위 계급론으로 해석할 수 없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사실 이런 현상이 (일부 유난히 감정적이고 말이 많은) 중산층 진보에게 실망감을 줄 경우, 이 자칭타칭 깨어있는 시민들은 ‘이제 난 더 이상 서민을 위하지 않겠다.’라는 식으로 유치한 실망감을 드러내곤 한다. 그러나 모든 현상은 이론보다 우위에 있는 것이다. 민주당이 계속 서민을 놓친다면, 그것은 민주당과 그 지지층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 현상에 대한 나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우선 민주당은 노년층에게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는데, 노년층은 평균적으로 재산과 관련 없이 월소득이 현저히 낮다. 대신 상대적으로 한참 돈을 버는 30~40대에서 비교적 민주당의 지지층이 두텁다. 어쩌면 저런 통계를 ‘월소득’이 아닌 ‘사유재산’으로 뽑았다면 결과는 좀 다르게 나왔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IMF이후 한국 사회에서 소득이 한참 안정적으로 들어오는 시기는 30~40대 정도다. 50대가 되면 돈을 쓸 일은 많지만, 일부 직종을 제외하면 안정적으로 계속 돈이 들어올 거라는 보장은 없어진다. 이 시기에 창업에 나서는 사람이 많고, 축적재산이 충분한 경우엔 자본가의 모습에 가까워진다. 어느 방향이건 간에 일단 측정되는 월소득은 줄어들기 쉬워지고, 이전과는 좀 다른 방향으로 정치를 바라보기 쉬워진다.


 사실 민주당과 진보좌파의 큰 약점이 이 지점에 있다. 좌파는 사회주의적 발상을 바닥에 깔고 있는 이상 사유재산의 축적에 대해 적대적이다. 복지해줄 테니, 젊은 시절 쌓아올린 재산을 달라고 할 때 순순히 내놓을 한국인은 거의 없다. 현실적인 영역으로, 경제라는 면으로 갈수록 민주당은 약점을 드러낸다. 또한 이는 단순하게, 연령대와 관계없이 저소득층이 새누리당을 지지하게 되는 이유일 수도 있다. 냉정하게 이야기해서 적어도 경제적인 면에선 민주당은 새누리당의 상대가 아니다. 이 말이 결코 새누리당이 경제를 다 잘한다는 건 아니다. 민주당이 강점을 보이는 경제분야도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새누리당이 크게 앞선다.


 진보좌파의 흔한 오해와는 달리, 서민들은 변화를 받아들이기 두려운 것도 아니고 무조건 새누리당을 찍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내 생각엔 민주당이 서민들의 절실함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자꾸 말을 바꾸고 신뢰를 잃는다. 이런 경향은 현재 민주당의 가장 극렬한 지지층인 깨시민에게서 더욱 극단적인 형태로 드러난다. 그들은 굉장히 쉽게 새누리당 찍는 서민들을 우매하고 계몽이 필요한 대상으로 여기곤 한다. 물론 깨시민들이 그런 태도를 드러낼 때, 서민들은 깨시민에 대한 분노와 증오를 쌓는다.


 풀뿌리 조직을 만드는 데서도 민주당은 새누리당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호남지역을 제외하면, 새누리당은 좀 더 풀뿌리 정치에 깊이 들어가 있다. 간단한 지역 모임이나 친목 모임, 종교활동, 계나 부동산 투자처 같은 사적인 금융 정보가 오고가는 만남 등에서 새누리당은 언제나 어느 정도 이상 우위에 있다. 이것은 깨시민들 같이 화를 잘 내거나 가르치려는 태도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세상엔 싸워서는 못 얻는 것들도 있다.


 또한 메세지의 명료함도 격차가 있다. 새누리당이 하는 말은 대체로 좀 더 정치적으로 잘 연마된 언어다. 그렇기에 새누리당의 메세지는 일관적이고 단순하다. 말을 복잡하게 할수록 서민 표나 부동층 표는 떨어져 나간다. 사실 박근혜와 문재인은 이 면에서 매우 대조적인 편인데, 박근혜는 굉장히 말을 골라서 일관적으로 꾸준하게 말을 하는 정치인인 반면 문재인은 완전히 그 반대다. 그렇기 때문에 박근혜는 비록 영리한 이미지는 아니지만 신뢰가 있는 정치인으로 평가받는 반면 - 깨시민은 이걸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그만큼 선거에서 매번 진다. - 문재인은 말을 매번 바꾸는 것으로 보이기 쉽다.


 지금껏 새누리당의 강점을 살폈다. 그렇다면 민주당이 강점을 가지는 부분을 보자. 민주당은 거의 언제나 명분과 문화에서 강점을 가진다. 이것이 중산층이, 당장 내일 걱정이 없는 젊고 소득이 있는 사람들이 민주당을 지지하는 이유다.


 나쁘게 말하면 민주당의 강점은 좀 여유가 있는 사람들에게 통한다. 정의의 욕구, 문화적으로 더 나은 삶을 영위하고 싶은 욕구 같은 데서 민주당은 새누리당을 훨씬 앞선다. 실제로 민주당이 더 정의로운지 어떤지를 떠나서, 민주당 정치인들은 매번 어떻게든 그럴싸한 명분을 만들어내는 데 능하다. 물론 실제로 새누리당 정치인들이 그런 빌미를 많이 제공하기 때문이기도 한데, 예나 지금이나 언제나 일관적이라 할 만큼 민주당은 선거 때마다 공분을 일으키고, 자신을 정의의 편으로 포장한다. 그러나 이는 진실이라기보다는 사실 선거 전략에 가깝다. 민주당이 권력을 쥐었을 때 정의가 잘 실현되었다는 통계나 자료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한편 문화적인 면에서 민주당이 가지는 장점은 사실 세대적인 지지의 차이 탓도 있는 것 같다. 새누리당은 이 면에서 좀 더 구식이고, 꼰대 같고, 패셔너블하지 못하고, 뒤쳐져 있다는 인상을 줄 때가 많다. 이따금 굉장히 시대착오적인 발상을 이야기할 때도 많은데, 사실 민주당에서도 그런 문제는 종종 발견되긴 하지만 그래도 민주당은 어느 정도 한번 필터링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새누리당은 막 터져나온다는게 문제. 다만 때때로 민주당도 과격한 이미지로 페널티를 얻기도 한다.


 사실 명분과 문화는 민주정에서 굉장히 중요하고 강한 일면이기 때문에, 새누리당도 언제든 불안요소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이고 구체적이고 자세한 면과 일관성에서 민주당은 언제나 약하기 때문에, 보통은 새누리당이 이긴다. 젊은 중산층과 정치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대체로 민주당을 지지하지만, 부자와 서민과 연령대가 있는 사람들, 그리고 정치에 관심이 적은 부동층은 대체로 새누리당을 지지한다.


 깨시민들의 중산층스러운 모습들은 사실 여러 면에서 나타난다. 그들은 ‘참여’와 ‘소통’을 이야기하는데, 본 블로그에서 여러 번 말했지만 사실 이것은 진짜 서민들에게는 가능한 게 아니다. 민주당계 정당에 깨시민이 SNS 등을 통해 압력을 행사할수록, 민주당은 보다 중산층 아이덴티티가 강한 정당이 된다. 90년대의 민주당계는 보다 서민을 위하는 정당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지만, 노무현이 집권을 한 후에는 전형적인 중산층 정당이 되었다. 그래서 민주당은 노년층과 서민 및 영세상인의 지지를 잃었고 그 이후 매번 지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현재의 민주당은 깨시민의 중산층의 문화적이면서 이념적인 만족감을 위한 정당이 되어 있다. 서민은 그런 민주당을 보고 좀처럼 지지하기 어렵다. 실제 민생입법이라고 민주당, 친노세력, 깨시민들이 내세우는 것들은 서민들이 처한 현실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들이 많다. 서민에게 당장, 진짜로 중요한 결과를 낼 수 있는 입법에 민주당이 앞장 서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다.


 현실적으로 깨시민들도 왜 민주당을 찍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민주당이 당선되었을 때 서민에게 어떤 이익이 오는지를 잘 설명하지 못한다. 토론을 이성적으로 잘 하는 경우도 드물고, 새누리당, 이명박, 박근혜를 욕하고 알바, 일베충, 국정원 직원 등이라고 비아냥거리곤 하는 게 그들의 모습이다.


 냉정하게 이야기해 민주당은 고쳐 쓰기 힘들 정도로 망가졌고, 깨시민은 새로운 수구 세력이 되어 있다. 우리 사회가 그 동안 민주당에게, 그리고 깨시민에게 지출하고 소모한 온갖 선의와 개혁 의지들을 생각해볼 때 이는 매우 비극적인 결과물이다. 그러나 현실이 아무리 암담하다 해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한 개선은 없다. 사회의 진정한 개선을 원하는 이들이 좀 더 이성적으로 변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