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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7.05.16 분노와 혐오의 시대, 개막 79

한의 정서의 끝과 나쁜 방향으로의 변화

사회 2017. 11. 13. 10:17 Posted by 해양장미

 추천 브금

 

https://www.youtube.com/watch?v=MMzUKB8khxo

 

 근래 저연령층은 어떻게 체감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노무현 집권 시기 때만 해도 한의 정서라는 표현이나 감성은 다분히 일반적이었습니다. 일례로 2000년에 걸그룹 샤크라는 이라는 노래로 인기를 얻었었고, 현직 감 과수원 농부 이영도의 1999년 저 FW에서도 hjan이라는 표현이 활용되었는데 큰 위화감은 없었지요.

 

 한을 설명하자면 원한중 한이며, ‘분노, 아쉬움, 안타까움, 혹은 이들 모두가 한데 뒤섞인 묵은 감정으로 표현되곤 합니다. 이런 정서는 잘 해소되지 않는 특성이 있었기에 문제시되기도 했습니다만, 누그러들고 통제된 형태의 분노라는 점에서는 장점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이런 민족정서(?)가 어느 날 사라져 버린 것 같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오래 생각해왔는데, 역시나 나의 판단은 한국인 특유의 의 정서가 보다 보편적인 의 정서로 변하였고, 증오와 분노가 쉽게 표출되며 강화되는 게 근래 한국인의 정서 변화 방향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는 그 계기를 노무현의 자살(+ 그 뒤를 잇는 듯한 김대중의 타계)로 보고 있습니다.

 

 어떤 사회의 시간적 단면을 구성하는 요소는 매우 복합적인 것이며, 그 중 어떤 하나가 급격하게 변할 경우 사회에 드러나는 이지러짐은 예측할 수 없이 클 수도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기존 한국 사회의 안정성을 구성하던 주 요소 중 한의 정서가 있었고, 그것이 부정적인 면이 많더라도 어쨌든 그것이 급속도로 사라진 것이 한국 사회의 안정성을 크게 저해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이야기입니다.

 

 한의 정서가 있던 한국 사회엔 인내심, 최소한의 연대감, 운명에 대한 체념, 과거를 돌아보는 시간 같은 게 지금보단 훨씬 많았다고 판단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의 정서로 전환되면서 부당함에 대한 인내는 악으로, 연대감은 첨예한 적대로, 운명에 대한 체념은 무기력으로, 과거의 잘못은 조작을 해서라도 덮어야 할 것으로 인식전환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실제 과거의 한국사회에서 한의 정서는 덜 진취적이고, 부정부패와 부당함을 용인하는 방향의 문제를 낳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전환은 혼란을 일으키기 마련이며, 적대와 증오와 조작의 일상화는 꽤나 큰 문제를 빚어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문재인정권의 행보와 그에 대한 지지는 이러한 국민정서의 전환과 극단화를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고 여깁니다. 분명한 것은 역사적으로 볼 때, 또한 정치학적으로 볼 때 이런 방향으로의 변동은 좀처럼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하며, 매우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빈도가 대단히 잦다는 것입니다.

 

 한의 정서가 되살아날 필요는 없습니다. 그건 그 나름대로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다수의 한국인들은 한의 정서를 극복한 게 아니라, 일종의 열화판 정서를 대신 가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원의 정서를 가지게 된 한국인들은 도덕과 윤리를 배우며 습득했던 많은 미덕들을 잊었고, 매우 편향적인 것들만을 실행하며 본인들을 도덕적이라 여기게 되었습니다. 이젠 위선과 부덕과 혐오가 문제인 시대입니다.

 

 첨언하자면 현 정권의 적폐청산은 법무부와 사법부의 일을 청와대가 주도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면에서 정치적이며, 민주정의 분권원칙 및 협치의 정신에 위배됩니다. 각종 의혹에 대한 조사와 심판은 필요하나, 현 정권이 그다지 민주적이지 못한 것 역시 사실입니다.


분노와 혐오의 시대, 개막

사회 2017. 5. 16. 17:58 Posted by 해양장미

 개인적으로 근 10년 동안 사회적인 분노와 혐오가 증가해왔다고 생각합니다. 한 땐 그게 정치적인 우경화 현상이 원인이 아닐까 하는 가설을 세웠습니다만, 우파가 아닌 계열에서 본격적인 혐오조장을 하는 것을 확인한 이후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졌었습니다.

 

 근래 EBS에서 까칠남녀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한다고 들었습니다. 직접 보진 않았습니다만, 스크린샷이나 평가 등을 볼 때 래디컬 페미니즘의 입김이 듬뿍 들어간 방송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예전부터 EBS에 문제 많다는 주장을 해왔으나 미지근한 반응을 얻었던 입장에선, 현재의 뜨거운 반응에 조금 쓴웃음이 나오기도 합니다만, 적폐청산을 외치던 달님이 당선되고 열광적인 지지를 받고 그에 비교적 가까운 방송사 계열에 래디컬들이 많다는 걸 아는 입장에선 미래도 어느 정도 예상하게 됩니다. 물론 홍준표가 당선되었더라도 그다지 나을 건 없었을 겁니다.

 

 나는 앞으로의 시대가 분노와 혐오로 물들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는 한국뿐만의 일은 아닙니다. 그런 움직임을 막을 필요가 있다 생각해왔습니다만, 개인이 시대적인 흐름을 어찌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흐름이 예상된다면 그에 맞춰 대응하는 게 최선이겠지요. 이에 감상적이 될 여유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원인을 생각하다보니 3차 산업혁명에 생각이 닿았습니다. 4차 이야기가 나오는데 웬 3차냐 싶은 분들도 있겠으나, 3차 산업혁명이 우리의 통상적 인지보다 삶의 모습을 많이 바꾼 것은 사실입니다. 3차 산업혁명은 좋은 의미로건 나쁜 의미로건 우리 모두에게 다소의 공간적 자유를 부여하였습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과 굳이 부대끼는 걸 덜하게 해준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어쩌면 이런 변화는 우리가 타인에 대한 분노와 혐오를 인내하는 능력을 덜하게 했는지도 모릅니다. 타인을 실제 접하는 상황에 대한 모두의 평균적 역치가 낮아져서, 보다 쉽게 타인에게 분노하거나 혐오감을 드러낼 수 있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우리는 진화적으로 이런 상황에 익숙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감정 및 감각 체계는 매우 예전의 것에서 무척 더디게 발달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변화는 일어나고 있고, 결과는 받아들여야 합니다. 구시대적 종교는 힘이 약해졌고, 더 이상 사람들을 이끌지 못합니다. 철학은 말장난처럼 여겨지고 있고, 실제로 그러한 영역이 많으며, 아노미는 일상화되었습니다.

 

 증오와 분노의 시대가 어떻게 흘러갈진 알 수 없습니다. 뭘 어떻게 해볼 방법도 없습니다. 여러 정치세력이 서로 분노를 부추기고 증오하도록 하니 정치적 탈출구도 거의 없습니다. 다 잘될 거라고 행복회로 돌리면서 증오나 분노에 휘말리지 않는 게 각자의 최선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