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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럴리즘'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20.09.11 데모크라시에 대하여 43
  2. 2018.08.31 자유주의라는 대안 33

데모크라시에 대하여

정치 2020. 9. 11. 15:48 Posted by 해양장미

 브금

 

https://youtu.be/oaWQnK65VIw

 




 몇 년 전 미 대법원이 동성혼을 가능하게 했을 때, 나는 그 판결을 환영하면서도 그것이 민주적이지 않은방식으로 이루어진 것을 우려하였습니다. 데모크라시와 법치주의, 그리고 데모크라시와 자유주의는 대체로 세트메뉴 취급이긴 합니다만 엄밀히 보면 서로 상충되는 면이 있긴 한데, 그게 다시 한 번 드러났던 것이지요.



 삼권 분립 체제에서 원칙적으로 제도는 의회가 결정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미국이건 헤븐조선이건 그렇게 되고 있지 않지요. 판례가 많은 것을 결정하기도 하고, 행정부가 많은 것을 결정하기도 합니다. 미국은 대법원의 동성혼 합헌 판결로 동성혼이 가능한 국가가 되었는데, 그것은 의회가 결정한 것이 아닙니다. 해당 판결이 자유주의의 정의와 기본권의 정의에 부합함은 물론입니다만, 민주적으로 이루어지진 않았지요.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을 자유주의에 대한 강한 반동으로도 규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적 진보가 매끄럽지 않을 때는 곧잘 반동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전 세계는 지난 4년 동안 세계 패권국의 수장이 우익 포퓰리스트인 것에 대한 대가를 꽤나 치렀지요. 트럼프의 당선과 함께 정치학계 등에는 포퓰리즘과 데모크라시에 대한 많은 논의가 있었는데, 나에게 설득력 있게 들리는 견해를 참조하여 이야기하자면, 근래 세계 곳곳에서 데모크라시와 자유주의의 결합은 약해졌으며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우리 신성 네오 헤븐조선은 데모크라시와 자유주의가 극단적인 균열을 일으킨 곳입니다. 날 것 그대로의 데모크라시는 표출된 민의와 인민주권 그 자체에 지나지 않습니다. 프로파간다로 인해 형성된 중우건 폭민이건, 표출된 민의가 인민주권을 가지고 국가를 움직인다면, 그것은 민주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존엄(燇㛪)하신 천룡들은 헌법에서 자유라는 문구를 빼고자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계시지요.



 고전이자 표준이 된 고 로버트 달을 비롯한 다수의 정치학자들은, 그리고 그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리버럴 데모크라시만을 진정한 데모크라시로 보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근래의 현상들은 기존의 관념에 대한 재고를 요구합니다.


 

 내가 보기에 민중은 자유로운 존재가 아닙니다. 그 어떤 철학자들보다 괴벨스가, 김어준이, 그리고 우리 더불어민주당과 헤븐조선, 촛불혁명의 최고령도자, K아이돌 중 단 하나의 정점이었던 분, 시장님 죽기 전까진 성인지감수성과 래디컬 페미니즘의 든든한 수호자였던 분, 누구보다 달과 같은(Lunatic), 화성(火星)보다 붉은 분, 그믐보다 더 깊은 분, 드루이드의 왕이 모시는 대군주, 노틀담의 예언 속 대왕 앙골모아, 소스가드(SouceGuard)와 라텔기사단의 숭배와 수호를 받는 분, 평등(抨蹬)과 공정(恐怔)과 정의(怔偯) 그 자체, 홍해를 가르는 기적을 행한 모세보다 더한 기적을 행하시는, 대지를 가르고, 바다를 가르고, 하늘을 가르고, 원하는 모든 것을 가르시는 분, 북쪽을 바라볼 때는 그냥 천사, 남쪽을 바라볼 때는 나팔과 금대접을 든 천사, 모든 존엄 중 최고존엄(膗辜燇㛪), 위대(僞大)한 수령(囚囹) 문재인(紊災人) 동지(哃謘)께서 민중을 잘 이해하고 있을 것입니다.


 

 데모크라시는 그 자체로는 효용이나 효율이 매우 낮은 편입니다. 공화정 엘리트 관료의 개입과 자유주의가 배제된 주민자치가 난항을 겪기 쉽다는 걸 염두에 두면 됩니다. 민중의 다수결은 많은 경우 진리와는 거리가 먼 것이며, 진리에서 먼 민의는 대단히 포퓰리스틱합니다.


 

 근래 두드러지는 포퓰리즘은 최적의 엘리트를 배제합니다. 진리에 가까운 것이 아닌, 민중이 솔깃하기 쉬운 권력자의 아집이라거나 일종의 마이너리티가 각광받고, 그에 따라 정책이 추진됩니다. 그 과정은 열린 의사결정도, 합리적 의사결정도 아니고 프로파간다에 의해 민의를 얻은 권력자의 자의와 독단이기에 독재입니다. 민주적인 독재, 포퓰리즘 독재라 할 수 있지요.


 

 데모크라시는 정치체제입니다. ‘민주주의라는 오역 때문에 쉬이 오인되지만, ~ism이 아닙니다. ‘민주정또는 민주정체가 올바른 번역이지요. 흔히 이야기하는 진정한 민주주의라거나 민주적이다같은 개념에는 자유주의, 공화주의, 법치주의 같은 이념이 다분히 섞여 있습니다. 그러나 포퓰리즘은 도덕적 가치를 추구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권력과 기득권과 정열과 도취를 추구하지요.



 마땅히 비유할 대상이 별로 없어 그나마 많은 분들이 알 만한 것에 빗대 볼까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진정한 민주주의’, ‘민주적인 것같은 게 만화 드래곤볼에 나오는 순진한(뚱보) 부우라면, 순수한 데모크라시는 키드(순수) 부우입니다. 드래곤볼을 보셨으면 이 비유가 직관적으로 와 닿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근래 일어나는 현상은, 비교적 성격이 좋은 뚱보 부우에서 자꾸 키드 부우가 분리되고, 그 키드 부우가 온갖 것들을 다 부수고 다니는 것에 가깝습니다. 자유/공화/법치주의가 결합되지 않은 데모크라시는 프로파간다와 포퓰리즘으로 돌아가는 거대한 괴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부정하고 우려하던 그 중우/폭민정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민주 시민은 자유주의 또는 공동체주의의 영역에서 따르거나 발전시키거나 가치를 부여하는 언행을 해야 합니다. 데모크라시 자체는 선하지도 않고, 추종할 만한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데모크라시는 정치체제라는 수단이며 정체 중 나은 정체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조리 도구나 공구 같은 건데, 어떤 좋은 도구라도 정신줄 놓고 마구 휘두르면 흉기밖에는 되지 않는 것입니다

자유주의라는 대안

정치 2018. 8. 31. 22:03 Posted by 해양장미

 추천 브금

 

https://youtu.be/UBQUeVPdYvo

 


 

 이 곳을 자주 찾아주시는 분들은 다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만, 나는 자유주의자입니다.

 

 나는 동성애, 낙태, 안락사 같은 논제에 있어 모두 진보적인 입장입니다. 나는 정치적 자유주의자이기에 다원주의자이며 가능한 타인끼리의 간섭은 줄여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남이사 뭘 하건, 그게 나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되지 않는다면 신경 쓰지 않는다는 입장이지요.



 다원주의에 대한 - 특히 사회문화적인 면에 대한 - 나의 지향은 아주 강합니다. 진짜로 남한테 피해만 안 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만큼 나는 꼰대를 많이 싫어합니다. 특히 좌파 꼰대들은 북핵보다 더 답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나는 방어적 민주주의자이기도 합니다. 다원주의가 하나의 사회적 단위 내에서 상대주의를 지나치게 강조하고, 언더도그마에 빠져 타인에게 피해를 강요하는 순간 극단주의자가 대세가 되고, 좌파 포퓰리즘이나 극우파가 날뛴다는 걸 잘 알고 있기도 합니다. 다원주의의 한계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느냐 아니냐, 공격성이 어떠한가에 있습니다.


 

 자유주의는 문화적인 면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경제적인 자유도 중요합니다. 이것에 대해 조금 설명하자면, 정부는 자유 시민들의 재산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또한 동시에 정부는 자유시장이 최대한 효율적으로 작동하도록 매 순간 조치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시장을 무조건 자유방임해야한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닙니다. 어차피 닉슨 쇼크 이후의 현대 금융시장은 자유방임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기도 합니다.

 

 경제적인 면에서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는 기본적으로 갈등 관계입니다. 사회적 자유주의라는 건 엄밀히 말하면 성립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회주의는 필연적으로 누군가에게는 무거운 세금을 물리고, 조세저항을 초래합니다. 그것은 정치권력 또는 무력에 의한 일종의 폭력이며, 결코 동의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유재산침해에 대한 불만을 가진 자들의 저항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사회주의적인 국가는 진취적이고 성공을 추구하는 인적 자원을 빠르게 잃습니다. 권력자에 의한 사유재산침해의 역사는 아주 오래 된 것이기도 합니다. 사회주의와 좌파 포퓰리즘은 사유재산침해를 인민의 이름으로 어찌 잘 합리화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고전적이지 않은, 또는 리버테리어니즘이 아닌 현대적인 자유주의는 꼭 필요한 복지나 꼭 필요한 부분의 정부 간섭을 결코 배제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자유주의는 노동능력이 없는 자를 위한 복지를 딱히 부정하지 않습니다. 축조물이나 제조 과정, 교통수단 등의 안전 관리 같은 것도 정부가 간섭을 해야만 하는 부분입니다.


 

 1970년대에서부터 80년대 초반까지는 공공, 환경 관리조차 시장주의적으로 접근하던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1984년에 보팔 가스 누출 사고가 터지면서 극단적인 시장주의는 그 설득력을 잃었지요. 자유주의는 원리주의가 아니고, 고집스럽지 않습니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양극단의 정치적 갈등을 최대한 배제한 균형이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정치적 자유주의는 후기 롤즈의 철학으로 대표할 수 있습니다. 그 주장을 요약하자면, 본문의 위에 설명한 것과 같은 다원성입니다. 서로 다른 포괄적 교설들이 중첩되는 지점에서의 중첩적 합의를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를 정치와 도덕의 분리로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특정한 도덕을 강조하는 것은 공동체주의 또는 공화주의의 특성인데, 자유주의는 보다 다양한 도덕이 있을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도 방어적 민주주의 범주 안의 옳음의 범위를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워마드나 이슬람 원리주의 같은 건 포용할 수 없지요.


 

 대조적으로 보수적인 공동체주의를 주장하는 철학자로 역제 정의란 무엇인가를 집필한 마이클 샌델을 꼽을 수 있는데, 나는 그의 주장을 여러 모로 비판하는 입장에 있습니다.

 

 본문은 대략적인 자유주의 소개이며, 자유주의라는 대안을 제시하려는 목적에서 작성되었습니다. 요새 문재인 정권에 실망하면서, ‘내가 보수 편을 들어야 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런데 보수주의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보수 정치세력 편을 들라고 하는 건 처음부터 어려운 이야기지요.

 

 자유주의는 보수주의가 아닙니다. 철학적으로는 공동체주의 또는 공화주의와 대립하는 개념이며, 현실적으로는 사회주의와 보수주의 모두에 대립할 수 있는 개념이지요.

 

 그러나 자유주의는 좌파와 우파 모두에게 더럽혀져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우익들이 주로 자유주의의 이름을 망쳐왔지만, 글로벌 기준에서는 좌파 사회주의자들이 자유주의 이름을 많이 더럽혔습니다. 미국의 리버럴들은 결코 더 이상 리버럴하지 않습니다. 사사건건 간섭하기 좋아하고 교조적이며 너무나도 사회주의적인 자들이 자유주의자를 자처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그것은 명백한 잘못입니다. 진짜 자유주의는 그런 게 아닙니다.

 

 한편으로 나는 리버테리언들은 다소 극단적이며 현실적이기보다는 관념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은 왜 현대적인 자유주의가 변화하였는지를 조금 더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리버테리언이나 고전적 자유주의자가 아닙니다만, 그런 쪽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의견을 밝혀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