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2주년의 추억

정치 2019. 3. 10. 16:27 Posted by 해양장미

 추천 브금

 

https://youtu.be/q5YNhSKopr8

 

 


 오늘은 박근혜 탄핵 2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그 사이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나에게 박근혜가 탄핵되던 2년 전부터 안철수 대선 포스터가 나오기까지의 짧은 기간은 우리나라 정치사에서 근래 잘 없었던 아주 짧은 봄이었다고 느껴집니다. 모든 게 잘 풀릴 수 있었지요. 문재인이 당선되지 않았다면.


 

 최근에 김무성이 탄핵 당시의 박근혜에 대한 인터뷰를 했습니다. 링크합니다.

 

http://news.jtbc.joins.com/html/773/NB11780773.html

 

 이미 어느 정도 알려진 내용인데요. 박근혜는 국회의 탄핵소추를 마다하지 않았고, 헌재에서 그게 뒤집힐 거라 믿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 정도로 현실감각과 정치감각이 전무한 사람이 대한민국 대통령 자리에 있었다는 데서 참으로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국민주권위반이 거의 명백해진 상황에서, 충분한 해명도 인터뷰도 하지 않고 헌재에서도 헌법재판관들을 모독하듯 대하면서, 민심까지 완벽하게 잃어버렸는데 어떻게 저런 판단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런데 당시에 정말 흥미로우면서도 어처구니가 없었던 건, 얼마 안 되는 강성 박근혜 지지층은 거의 모두 다 헌재에서 탄핵되지 않을 거라 믿고 있었다는 겁니다. 박근혜야 인의 장막 뒤에 있었다고 가정해볼 수 있지만, 박근혜 지지층 개개인은 그렇지도 않았는데 아주 강력한 도그마를 가지고 있었지요.



 그런 소위 박사모 세력이 유난히 특이한 것이었으면 좋았을 겁니다. 그런데 요새 거의 유사한 특성을 만천하에 적극적으로 드러내면서, 곳곳에서 분탕질을 벌이거나 공작을 하거나 점령과 폭력을 일삼는 세력이 있지요. 대깨문 말입니다.

 

 나는 문재인도 박근혜와 마찬가지로 현실감각이 전무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나마 별 거 안 하고 드라마 보는 데 열을 올렸던 박근혜는 제한적인 해악만을 우리 나라에 끼쳤지만, 문재인은 그렇지 않아서 박근혜와 비교불가하게 큰 해악을 사방팔방 흩뿌리고 있지요.

 

 문재인의 정책적 실패와 비윤리적인 모습이 이미 객관적으로 드러난 상황임에도, 대깨문들은 절대 인정을 하지 않습니다. 문재인 정권만큼이나 비윤리적인 언행을 반복하면서, 박사모보다 훨씬 큰 해악이 되어가고 있지요. 과연 그 끝이 어떨지에 대해 기대와 우려를 가지고 있습니다.



 

 추천 브금

 

https://youtu.be/ncckLa4ubZo




 세계 정치는 포퓰리즘의 전성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고, 우리나라 정치는 좌파 포퓰리스트들의 전성기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 좌파 포퓰리즘이 결코 오래 지속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당장만 봐도 최악의 내수경기를 만들어놓고 전임 정권 탓만 하고 있으니, 우리나라 시민들이 단체로 스톡홀름 증후군에라도 걸리지 않은 이상에야 지지율은 계속 떨어질 수밖에 없겠지요.


 

 아마 다음 선거 또는 다다음 선거, 아니면 그 다음 선거에서라도 이 좌파 포퓰리스트들은 패하게 될 겁니다. 그러고 나면 아마도 20대 탓을 하겠지요. 여론조사를 보면, 20대의 현 정권과 민주당, 정의당 등에 대한 호감은 50대와 비슷합니다. 보통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서 좌파성향이 줄어드는 걸 감안할 때, 앞으로 20대는 지금까지의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좌파적이지 않은 세대가 될 거라 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현재의 20대가 민주당과 좌파를 싫어하는 건 당연하다 생각합니다. 3040 세대가 자유한국당 세대를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를 설명하면 대략 이렇습니다. 3040세대는 그 부모세대가 지지하던 자유한국당 세력을 말 안 통하는 꼰대, 권위주의적인 구시대의 유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에 20대가 민주당과 좌파를 싫어하는 이유도 거의 마찬가지입니다. 민주당과 좌파는 그 이상으로 말이 안 통하고, 권위주의적인 꼰대거든요. 3040 친 민주당 그룹은 이미 민주당에 소속감이 생긴 상태에서 내로남불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정치에 관심을 늦게 가지게 된 20대 다수는 소속감이 애매해서 그런 내로남불은 없단 말이지요.

 

 현재의 민주당과 정의당 등의 좌파정당들과 그 강성 지지층은 군사정권의 권위주의를 싫어했으나 오히려 더 권위주의적인 도그마를 가진집단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된 이유를 정말 간략하게 설명하면, 좌파라서 그렇습니다. 21세기의 좌파는 급진주의적이며 권위주의적이고, 포퓰리스틱한, 도그마를 가진 집단이 되었습니다.


 

 민주당 세력의 사상적 기반은 80년대 학생운동권에 있습니다. 이 운동권 사고방식은 신군부와 신군부 편을 든 미국, 신군부와 미국이 주장하는 자본주의 및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고 북조선과 중공 등 당시의 공산권을 긍정하는 것에 기반을 뒀는데, 고등학교 공부까지만 잘했고 자만심 가득한 학생들이 뜨거운 머리와 선민의식을 가진 상태로 사상을 구성하다보니 그야말로 문제투성이였습니다.


 

 이후 민주화도 되고, 공산권이 무너지고, 중국도 자본화되고 하면서 이 운동권 출신들도 변화를 맞이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만, 현실을 온전히 인정하고 사회주의에서 전향한 사람들은 민주당에 남지 않았습니다. 현재의 민주당계 정치인들은 서방 사회의 주류 학술 이론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고, 끊임없이 사회주의적인 대안을 찾아다녔습니다.

 

 학술적인 면에서 사회주의적인 것들은 끊임없이 비주류로 밀려나왔습니다. 현대 학문은 잘 되고 있는 것일수록 과학적입니다. 가설-검증-논쟁-이론의 사이클이 끊임없이 돌아가면서, 어떤 게 현실을 잘 설명할 수 있는지 찾아가는 것이지요. 이 과정에서 사회주의적인 것들은 끊임없이 비판받고 설득력을 잃어왔는데, 대체로 사회주의적 개념들은 현실을 설명하기보단 나름대로의 이상을 추구하는 것이다 보니 비과학적이고 종교적이기 쉬운 것입니다.


 

 대부분의 종교와 과학의 차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종교는 옳은 것을 선지자가 알고 있다고 가정합니다. 대부분의 유신론이라면 진리는 신에게 있고, 선지자는 신에게 진리를 전해 들었고, 신자들은 그 진리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면 되는 것입니다. 즉 종교적 세계관에서 진리는 이미 결정되어있어요.


 

 인류 전체의 역사로 볼 때 최근에 힘을 얻게 된 과학은 종교와는 전혀 다른 가정에서 출발합니다. 우리는 진리를 잘 모르고, 우리보다 선대 사람들은 우리보다 더 무식했다는 가정 말입니다. 그러니까 과학은 현재 우리가 옳다고 믿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고,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를 더 정확하게 밝혀내고자 합니다. 과학에서도 선지자들의 업적은 칭송받습니다만, 과학자들은 선지자를 비판하고 뛰어넘으려고 하지 덮어놓고 믿지는 않습니다.


 

 물론 종교와 과학의 대결은 과학이 이겼습니다. 지금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PC나 스마트폰 등으로 보고 계실 텐데, 그건 과학의 산물입니다. 종교 같은 게 PC를 만들 수는 없었지요. 진리를 알고 있다던 옛 종교 선지자들은 PC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BC 562년에 사망한 신 바빌로니아 제국의 군주, 나부-쿠두리-우추르(느부갓네살)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던 바벨탑을 건설했습니다. 그 높이는 91m 정도였지요. 기독교도들은 그것이 신에 대한 도전이라 주장했습니다. 물론 현재 우리나라 대도시엔 바벨탑 정도 높이의 건물은 널렸습니다. 인류가 하늘로 쏘아올린 보이저 1호는 이미 약 5년 전에 태양계를 벗어났고요. 종교는 모르는 걸 안다고 하고 검증을 피하기 때문에 옳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다수의 인류는 과학적이지 않고 종교적입니다. 소수의 과학적인 사람들과 다수의 종교적인 사람들이 있지요. 우리 인류도 생물이기 때문에, 다른 생물들과 마찬가지로 진화의 자연선택 압력 위에 있습니다. 우리 인류가 자연과 다른 종들에 맞서 험난한 생존경쟁을 하던 시절에는, 종교적인 특성들이 생존에 도움이 되었지요. 그 때도 과학의 싹은 있었습니다만, 과학이 본격적으로 활약하게 된 건 최근이고 우리 인류는 이미 그 전에 지구를 정복했습니다.


 

 물론 현대적인 과학의 발달은 인류의 평균 수명을 4배 정도 늘렸고, 맬서스 트랩 문제도 극복하게 해 주긴 했습니다. 현대 과학과 시장경제는 한 명의 천재만 있어도 모든 인류가 그가 발명한 것의 혜택을 볼 수 있게 만듭니다.



 과학의 발달에 의해 자연선택은 약해졌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이제 인류는 과학적으로 사고하는 유전인자를 발달시키지 않아도 생존에 별 지장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현대인의 평균지능은 옛 사람보다 많이 낮아졌습니다. 이젠 좀 멍청해도 오래 살아남을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멍청이들의 세상이 되었습니다.


 

 생물학적으로 우리 인류는 과학적으로 사고할 수는 있으나 그게 편하지는 않은 상태입니다. 우리 인류가 근육빵빵 또는 쭉빵 나이스바디를 가질 수는 있지만 실제로 그러긴 힘든 것과 유사하지요. 물론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나이스바디의 시장가치는 과학적 사고방식의 시장가치보다 높기 때문에, 나이스바디를 가지기 위한 노력은 많이 하지만 과학적 사고방식을 갖추기 위한 노력은 별로 하지 않습니다. 좋은 성적을 얻고, 시험에 합격하고, 사업이나 투자에 성공하는 정도에는 과학적 사고방식까지 별로 필요하지 않습니다.


 

 종교적 상품가치로 비교해볼 때, 사회주의적인 진보좌파는 마케팅하기가 쉬운 편입니다. 우리나라 좌파 도그마는 악을 간단명료하게 설명해줍니다. 재벌, 친일파, 자유한국당, 군사정권, 신자유주의. 이런 식으로 세트메뉴로 묶어서요. 그리고 그걸 반대하는 신앙을 가지고, 교주를 지지함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전도합니다. 예전에는 저 악에 개인주의와 미 제국주의, 그리고 자본주의도 포함되었었는데 시대가 지나면서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악의 축 목록에서는 사라졌습니다만, 여전히 내용에는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익 마케팅도 한동안 강력했습니다. 주로 안보 불안감의 해소와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앞세웠었지요. 그러나 시대가 지나면서 둘 다 마케팅 포인트로의 가치가 퇴색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마지막에 남은 건 태극기 부대의 맹신과 인지부조화였고, 이젠 그 가치는 껍데기조차 남지 않게 되었지요. 매카시즘도 일종의 포퓰리즘인데, 우파 포퓰리즘에 대한 이야기는 본문에서는 일단 생략합니다.


 

 믿음을 강조하는 종교가 권위주의적인 건 필연입니다. 증명할 수 없는 걸 믿으라 하니까 권위주의적인 게 되는 것이지요. 실제 권력을 쥐고 나면 그 경향은 점점 더 극단적이 될 수밖에 없고요. 실제로 성적으로 보여주는 게 없으니까요.


 좌파가 포퓰리스틱해지는 것 역시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적 진리에서 먼만큼 대중을 선동하고, 다원주의와 지성을 부정하지 않으면 효율적으로 권력을 차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포퓰리즘에 넘어간 대중은 자신들만이 진정한 국민이라 생각하게 되며, 자신들의 맹신 체계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일종의 비국민으로 취급해 버리게 됩니다. 포퓰리즘은 정치의 종교화이며, 민주정의 적입니다. 소외받는 사람들과 그들을 대변하는 사람들은 우리도 국민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포퓰리스트는 우리만 국민이라고 말합니다. 문빠들은 우리만 국민이라는 식으로 말하길 주저하지 않지요. 반대파에 친일파 낙인을 괜히 찍어대는 게 아닙니다. 물론 문재인 정권은 사회문화적인 면에 있어서는 좌파가 아닌 우파 포퓰리즘 정권에 해당하는데, 이런 양상은 포퓰리즘의 일종으로 좌우를 교차한다 할 수 있는 파시즘에 더 가깝긴 합니다.


 

 조금 더 논지를 전개시키자면, 결국 좌파와 사회주의는 자유민주정의 적입니다. 이론적으로, 또한 논리적으로 사회주의와 자유주의의 조화는 국가 단위에선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기도 합니다. ‘사회민주주의라는 표현은 분명히 통용됩니다만, 그 사상을 현실에 맞춰 이론적으로 정립하는 데 성공한 경우는 없습니다.


 

 21세기에 좌파는 민주적일 수 없고 필연적으로 권위주의적입니다. 반대자들을 포용하고 다원성을 존중하며 설득하고 합의를 해나가는, 그런 보다 정상적인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회주의 정권은 언제나 내가 옳다, 다수에게 피해를 주는 방식을 힘으로 밀어붙이곤 합니다. 타인이 가진 정당한 권리를 힘으로 빼앗지 않으면 사회주의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통과 분노와 죽음을, 그들은 전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사람을 보지 않습니다. 현실도 보지 않습니다. 사실 국가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문빠는 시민보다, 대한민국보다 문재인의 신성불가침함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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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Z5nM1mjDLvM

 

 

 문재인 정권이 성공하기 힘든 이유는 정말 많습니다. 오늘은 그 중 하나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문재인과 그 일당들은 이명박근혜 시절 내내 너무나도 심한 네거티브를 일삼아왔습니다. 나 역시 이명박근혜 정부가 별로 잘 한 정부라 생각하는 건 아니고, 야당은 어느 정도 네거티브를 하기 마련이라고 생각은 합니다만, 그래도 문재인 일당의 네거티브는 너무 심했지요. 밑도 끝도 없고 뒷감당도 안 될 네거티브를 너무 시전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네거티브는 정치적 부채입니다. 당장은 이익이 있지만, 정권을 잡고 나면 갚아야 합니다. 전에 했던 말을 지키거나 말을 바꿔야 하는데, 말을 지키려면 어렵고 바꾸자니 없어 보이는 것입니다.



 이런 정치적 부채가 잘 드러난 예를 두엇 꼽자면, 사드배치 말 바꾸기와 제천 화재 사건을 이야기해볼 수 있습니다. 책임 안 지고 비난할 수 있을 때는 편한 겁니다. 문재인 일당이 세월호 사고를 그렇게까지 악용하지 않았다면, 제천 화재도 이렇게 커지진 않았습니다. 사드 배치 말 바꾸기와 그에 엮인 3불 정책 같은 건 말 할 가치조차 없으니 더 말하지 않겠습니다.

 

 문재인 일당은 이명박근혜 시절 모든 사회적 문제를 나라 탓, 정권 탓 하는 수준으로 네거티브를 했습니다. 그런데 문재인이 정권을 잡게 되었으므로, 시민들은 그토록 네거티브를 일삼았던 문재인은 무언가 획기적으로 다를 거라 기대를 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문재인 정권은 사회를 개선할 만한 능력이 전혀 없고, 아집만 가득하기 때문에 시민들이 실망하는 건 시작부터 시간문제였습니다. 그리고 올해 들어 본격적으로 실망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요약하자면 문재인 정권엔 빚을 갚을 능력이 없습니다. 시민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인내심이 줄어들기 마련이고, 현 정권의 잘못들도 점차 드러날 수밖에 없는데, 이는 마치 시간이 지날수록 이자가 불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기대가 클수록 실망도 큰 법인데, 어지간히 맹목적인 게 아닌 이상 문재인 정권이 기대만큼 잘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물론 나는 처음부터 아무 기대도 없었습니다만, 원래 바닥이었던 나의 상상보다도 더 엄청나게 못하고 있지요. 근래는 선거구호가 이런 식으로 바뀌었다는 평도 있고요.

 

사람이 먼저다 -> 북한이 & 세금이 먼저다

나라를 나라답게 -> 서민을 서민답게, 부자는 더 부자답게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 ???



 이런 와중에도 달빛양념단 라텔들은 피의 실드를 치고 있고, 민주당 대표까지 문재앙, 문슬람이라는 말을 고발해야한다는 말을 하고 있는 상황이니, 이는 정권차원에서 온라인 정치깡패를 적극적으로 동원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극단적이고 독단적인 정치는 당연하리만큼 큰 반발을 부를 수밖에 없습니다. 빚으로 부자 행세를 하면 안 되는 법인데, 지금 문재인 일당은 그러고 있습니다.


 

 증오와 복수의 포퓰리즘 정치는 여기서 멈추는 게 좋습니다. 나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문재인 대통령에게 하야를 강력 권장하고 싶습니다. 평양 올림픽을 마치고 하야한다면 국민들은 그래도 문재인이 권력욕으로 대통령 한 게 아니고, 실수는 했더라도 잘 해보려고 했던 인물로 기억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대로 대통령을 계속한다면 모두에게 불행한 결과로 치달을 확률이 높아도 너무 높습니다. 그대들은 복수심 충족과 아집의 증명과 기득권 증진을 위해 권력을 쥐고 있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문재인 지지율은 내려갈 것입니다. 그리고.

정치 2017. 9. 19. 15:06 Posted by 해양장미



 문재인 대통령은 41%의 득표로 당선되었습니다. 다자구도라고는 하지만, 이 숫자는 문재인 정권이 그리 굳건한 지지 위에 출발한 것은 아니라는 걸 의미합니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권에 대한 지지율은 당선 이후 쭉 매우 높은 걸로 조사되는데, 역대 기존 정권들과 비교해보면 잘한다는 의견 대비 못한다는 의견이 많이 나오는 편이고, 당선시점 대비 현재의 지지율은 그리 이상하게 높은 건 아닌데다, 워낙 정치를 못하고, 막하고, 어이없이, 후안무치하게 하고 있기 때문에 지속적인 지지율 하락을 피하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문재인 정권은 전 정권의 탄핵 이후 대통령에 당선되어 인수위 없이 출발하였기 때문에, 역대 타 정권에 비해 취임기간 대비 초기지지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당선을 기준으로 하면 문재인 정부 취임 후 100일은 다른 정부 취임 후 한달과 같은 시기입니다. 현재 문재인 정부는 3주 연속 지지율이 하락 중인데, 이는 인수위를 둔 정부 기준으로 취임 후 허니문이 지나고 바로 지지율이 떨어지는 패턴과 시기적으로 같습니다. 감각적으로 시민들은 7월까지는 인수위 같은 기간으로 생각했었나 봅니다.

 

 사실 문재인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정책이나 방식들은 못한다고 표현할 레벨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이렇게 하면 망한다로 표현하는 게 적합할 수준입니다. 시민권자로의 자격이 부족한, 문재인의 신민들이 바르는 양념에 올바른 소리들이 묻히고는 있지만, 이 정부는 정말로 답이 없어서 이승만 퇴출 이후 이런 정부가 또 있었나 수준이라 이야기하기에 부족함이 전혀 없습니다.

 

 독재했던 박정희와 신군부도, IMF를 불렀던 YS, 과히 낭만적이었던 DJ, 이명박근혜도, 심지어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도 이 정도로 막무가내에 총체적으로 반지성주의적이진 않았습니다. 그나마 비슷했던 게 YS와 노무현 같은데, 그 둘의 불행했던 끝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역사의 중요함을 입에 달고 사는 이들이 터무니없이 역사에 둔감한 건 비극입니다.

 

 이번 정부는 대략 정치학, 경제학, 정치철학 등에서 하지 말라는 건 다 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행동 패턴을 설명할 수 있는 체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종교 교리건 틀린 이론이건 체계는 있는 법입니다. 문재인은 지성과 학술을 적폐로 본다는 점에서 완벽한 반지성주의 포퓰리스트입니다. 조금 더 온화하게 표현하자면 문재인은 모든 분야에서 비주류로 일관하는데, 비주류가 비주류인 이유는 검증받지 못했고, 논쟁과 실험에서 승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혁신적인 것과 비주류를 혼동하면 안 됩니다.

 

 반지성주의 포퓰리즘은 종교적인 색채를 띱니다. 미국의 반지성주의 포퓰리즘은 신앙부흥운동의 형태였습니다. 한국은 미국보다 세속적인 국가여서 그런지, 정치의 종교화로 포퓰리즘이 발현하는 것 같습니다. 한국엔 박정희교와 노무현교가 있었고, 지금은 노무현교가 이겼으며, 2대 교주 문재인이 광신자들과 한국식 신앙부흥운동을 전개하는 중입니다.

 

 다만 정치의 종교화는 종교부흥 그 자체와는 다른 결과를 가져옵니다. 정치는 철저하게 내세가 아닌 현세의 것이고, 가장 현실적이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문재인은 자신이 시민들에게 내밀었던 막연한 이상을 현실화시킬 수 없습니다. 문재인이 하고 있는 현실 정치는 게임에 비유할 수 있는데, 해당 게임의 정석들을 완전히 무시하고, 하지 말라고 알려진 플레이들만 골라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처럼 하면 천운이 따라도 실패합니다.

 

 지지율은 떨어질 겁니다. 어떤 시기에, 어떤 패턴으로 떨어질지 예측하긴 어렵습니다만 적어도 문재인에 대한 막연한 낙관과 기대가 유지될 수는 없습니다. 지선 전에 민심이 크게 변할진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현재의 무력한 정당구도는 개선되길 바랍니다. 지금은 민주당조차 청와대에 반항이 힘든 일개 추종집단에 지나지 않습니다.

선출직은 책임지는 자리입니다.

정치 2017. 9. 8. 18:09 Posted by 해양장미

 특정 정치인에 대한 맹목적인 신도들이 주로 저지르는 문제의 핵심을 이야기하면 책임입니다. 정치인이 선거로 오른 자리는 책임지는 자리입니다. 그 사람이 선의로 뭘 했건 어쩌건, 그런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스포츠 팀 감독이 결과로 말해야하듯, 선출직도 결과로 말해야합니다.

 

 그러나 박사모나 노빠, 문빠 등은 그들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마치 그들이 책임에서 면제되고 지배만이 허락된, 제정일체의 신성한 군장처럼 떠받들고 거기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매도하며 정신 나간 언행을 반복합니다.

 

 박사모는 아직도 걸핏하면 태극기를 흔들며 교통을 마비시키고 국가의 상징을 모독하고 있긴 합니다만, 여하튼 세가 많이 줄었고. 제정신 유지 중인 시민들이 맞이하고 있는 가장 큰 정치적 문제는 문재인에 신성을 부여하려는 광신도들이라 하겠습니다.



 어제부턴가 사드배치가 되면서 시끄럽습니다. . 이 문제에 대해 문재인과 민주당은 책임질 게 있습니다. 말과 태도를 바꿔도 너무 뻔뻔하게 180도 바꿨거든요. 권력자들이 이럴 때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건 불신입니다. 그들이 통찰력이 없고 권력에 대해 탐욕스러우며 무책임하다는 건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았지만, 이번 말바꾸기로도 또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문재인 지지자들은 문재인은 사드에 대해 말바꾼 적이 없다고 우기고 있는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헛수고일 뿐이지요.


 사람들은 민주당에서 사드반대를 했고, 전자파 등 여러 괴담을 퍼뜨리며 선동해대던 것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고, 문재인도 여러 번 복잡하게 말을 바꾸긴 했지만 사드에 반대입장을 여러 번 표명한 것 역시 기억하고 있습니다. 북쪽은 예나 지금이나 일관적으로 핵실험, 미사일 실험을 해왔고 김정일 건강악화 이후엔 딱히 멈춘 적도 없었는데,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의 말은 어찌하여 이렇게 극적으로 바뀌는 것인지, 그들에게 최소한의 신뢰와 진실함과 통찰력이 있긴 한 건지 매우 의심스럽습니다.

 

 약 1년 전의 영상을 잠시 볼까요?

 

https://www.youtube.com/watch?v=NqxwrwC6rlM

https://www.youtube.com/watch?v=ok2TiqWVl4c

 

 그나마 끝까지 망상을 고집부리는 것보단, 정말 없어 보이고 멍청해 보이긴 하지만 이제라도 사드를 배치하는 건 잘한 겁니다. 그러나 적어도 말 바꾸기와 오판에 대한 책임 있는 태도를 보임이 좋을 것이며, 뻔뻔한 말 바꾸기를 광신도로 숨기기에 급급한 태도를 유지한다면 그만큼의 대가를 치러야 할 것입니다. 물론 머리가 너무 나빠서 작년 일도 기억 못 하는 사람들도 꽤 있긴 할 것 같습니다만....

 

 문재인은 한 치 앞도 못 보는 사람입니다. 1년 전에 문재인은 북쪽에 무조건 대화하자고 하면 문제가 개선될 것처럼 이야기하고, 망상을 밀어붙였지요. 그토록 판단력이 없는 겁니다. 문재인 광신도들은 정권의 개, 돼지, 나팔수이자 파시스트고요. 적당히 좀 했으면 합니다.

 

 한편으로 이번 사드배치는 노무현 정권의 지지기반이 무너질 때와 양상이 같다고 생각합니다. 노무현 정권이 크게 흔들리게 된 계기 중 하나가 이라크전 참전이었지요. 이라크전 참전도 외교적으로는 올바른 판단이었지만, 노무현은 그 결정을 지지자들에게 온전히 납득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노무현의 지지기반사상 중 하나는 반미였으니까요. 그 때도 노빠들은 전투를 벌였고, 노무현의 지지기반을 깎아먹었습니다.

 

 지금 문재인 정권이라고 크게 다르진 않습니다. 문빠들이 훨씬 더 공격적이고 광신적이며 문재인 지지율이 노무현 지지율보다 높고, 반대세력은 약하긴 합니다만 구조와 양상은 같습니다. 이는 책임질 수 없는 선동을 통해 정치적 이익을 보고 권력을 쥔 권력자가 필연적으로 맞이해야 하는 대가인 것입니다.


 한 때 티아라는 인기 좋던 걸그룹이었습니다. 2011년에 가장 인기 있던 노래는 티아라의 Roly-Poly였지요. 그러나 2012년 여름, 티아라는 화영 왕따 사건으로 주티야올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욕을 먹었습니다. 대응을 잘못한 것도 컸지요.

 

 그렇지만 티아라는 꿋꿋하게 활동했습니다. 나는 어느 때에나 티아라에 별 감정이 없었고, 왕따 사건은 속사정을 자세히 알 수 없으므로 일정 이상 판단하지 않았으며, 굳은 활동 의지에는 감탄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나중에 반전된 진실이라도 나오면 어떨까? 라는 생각정도는 했습니다.

 

 그러다 올해 진짜 반전이 나왔습니다. 이게 의외로 많이 안 알려진 것 같더군요.

 

http://entertain.naver.com/read?oid=433&aid=0000025379

 

 폭로와 함께 당시 사건들에 대해 기사가 나왔고...

 

http://cafe.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aVeZ&fldid=9Zdf&datanum=650390&q=%C6%BC%BE%C6%B6%F3&_referer=V7kfJwkeLEGMZxGlgqZEmW6QNnVzjZVJNQx.JvRxDP9wr24eIH_bqA00

 

 이런 정리도 있으니 관심 있으면 보셔도 좋겠습니다.

 

 이후 티아라에선 보람과 소연이 탈퇴했고, 탈퇴 이후 SBS계열에서 방송하는 THE SHOW라는 가요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 나는 보지 못했으나, 멤버들이 많이 울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럴 만 하지요.

 

 티아라는 다소나마 명예를 회복했습니다만, 아마도 마땅한 것 이상의 손해를 본 것을 메울 길은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사건을 알리면서 내가 이야기해봐야 할 것 같은 건 역시나 값싸고 폭력적인 정의감에 대한 것입니다. 근래 값싼 정의감으로 폭력적인 언행을 일삼는 정권의 맹신자들을 많이 봅니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값싼 정의감으로 폭력을 정당화시키는 자들은 너무나 많은 피해자들을 만들어왔습니다.

 

 티아라와 소속사측이 잘못한 점이 없다 할 수는 없으나, 티아라는 잘못 이상의 피해를 입어 왔다고 생각합니다. 티아라-화영 사건에서 대중들은 충분한 내부사정을 알 수 없었음에도 티아라를 공격했고, 그런 행동에  대해어떤 문제의식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폭력은 나쁜 것이라 다들 배웠음에도 정의감으로 폭력성을 합리화한 것입니다

 

 이와 동일한 현상이 현 정부 관련해서도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극성 문재인 옹호자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폭력을 행사하고, 문재인 및 정권의 의견에 맹종하면서도 아무런 죄의식 및 문제의식이 없습니다. 그게 정의롭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정의는 본질이 아닙니다. 폭력이 본질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폭력적 욕구를 분출시키곤 합니다. 그 과정에서 그걸 합리화할 계기를 찾습니다. 정의감이나 신앙 및 이념은 폭력성을 합리화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고, 합리화된 폭력성은 가해자에게 있어 폭력이라는 의식마저 없게 합니다. 문빠-달레반-달빛기사단이 폭력적이라는 걸 인정 못할 사람들에겐 폭력을 합리화한 다른 케이스로 메갈을 들겠습니다. 폭력은 폭력일 뿐입니다. 폭력성을 조절하려면, 먼저 폭력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폭력성은 개인차가 있습니다. 폭력성을 가진 것 자체는 잘못이 아닙니다. 다만 그걸 합리화시키고 제어하지 못하면 잘못을 저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폭력적이지 않은 것을 옳다고 배웠습니다. 정의는 폭력적이지 않은 것입니다. 폭력적인 선택을 할 때는, 그것이 정의보다는 이익과 관련이 있음을 이해하는 게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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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드배치의 등장

정치 2017. 7. 29. 18:22 Posted by 해양장미

 착한 FTA, 착한 조문 등 참으로 많은 착한시리즈 중 이번엔 착한 사드배치가 등장했습니다.

 

 달님이 사드를 임시배치하겠다고 하니, 그 동안 별 소리를 다해대며 사드 반대를 외치던 문빠-달레반-달빛기사단원들이 일제히 달님의 사드배치에 찬성하는 목소리를 내며, 그 동안 불법 시위마저 방조하던 사드 반대 단체들을 순식간에 적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항상 말했지요? 이번 정권과 그 추종자들이 보이는 모습은 파시즘이라고요.

 

 파시즘이 이런 겁니다. 태도에 아~무런 일관성이 없습니다. 권력을 향한 추종만이 있을 뿐. 바로 어제 연내 사드배치 안된다는 기사가 떴습니다. 환경평가 때문에요.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7/28/2017072801253.html

 

 그러다가 밤에 북쪽이 미사일 쏘고, 갑자기 하루아침에 임시배치한다고 말을 바꾼 겁니다.

 

 이러니까 이번 정권이 독재정권인 겁니다. 절차도 원칙도 신뢰도 무엇도 없어요. 북쪽이 미사일 처음 쏩니까? 항상 쏘던 거 아닙니까? 주변 상황이 뭐 변하기라도 했습니까

 

 이제라도 사드배치 제대로 하는 것에 박수라도 쳐줘야 할까요? 그래도 하는 게 맞지요? 그렇지만 이 파시스트들의 준동을 보고 있자면 무섭고 싫다는 기분밖에는 들지 않습니다.

 

 사드 반대파로 남을 사람들은 이제 문빠-달레반-달빛기사단의 양념테러와 정부의 폭력에 굴복하게 될 겁니다. 그들을 응원할 수는 없지만 약간이나마 동정은 합니다.


철인정치론과 파시즘

정치 2017. 7. 2. 16:14 Posted by 해양장미

 국가를 플라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철학자 왕이 통치했으면 하는 바람은 제법 보편적인 것입니다. 실제 오랜 역사 속에서 철인정치론이나 그 비슷한 발상은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되었습니다. 동아시아 버전의 철인정치론으로 왕도정치를 들 수 있습니다. 조선이 왕도정치를 추구하는 나라였기 때문인지, 아직 한국인들의 마음속에는 일종의 철인정치론이 깊이 뿌리내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치란 본질적으로 지저분한 짓입니다. 민주정은 많이 민주적일수록 그 지저분함을 투명하게 드러내곤 하지요. 우리가 접할 수 있는 가장 민주적인 정치는 아파트 동대표 회의나 동네 반상회 같은 겁니다. 소규모에 걸린 이권도 적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지요. 많은 경우 아주 지저분하고요. 규모가 커지고, 걸린 이권이 커질수록 정치는 더 지저분해집니다.

 

 민주정치를 접할 때 가장 좋은 태도는 그것의 본질적 지저분함과 혐오스러움을 인정하고, 관심을 가지되 감정을 소모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정치는 재미없는 거고, 나는 정치 이야기가 본질적으로 재미없다는 걸 잘 알고 있으며 웬만하면 너무 많이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세상엔 재미있는 것, 즐거운 것, 아름다운 것이 많습니다. 가능한 많은 시간동안 그런 걸 보고 즐기며 사는 게 좋습니다.

 

 그러다보니 사실 많은 사람들이 감성적으로 민주정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철인정치 같은 게 훨씬 단순하고 매력적이거든요. 모두들 스스로 민주주의자라고 생각하지만, 실제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은 민주정과 거리가 있는 경우가 정말 많지요.

 

 근래 인터넷 세상엔 참으로 문재인 지지자들이 많습니다. 그들의 언행을 보면, 어딜 봐도 자유민주주의자가 아닌 철인정치론자들임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문재인을 대략 철인 대접합니다. 문재인이 명백한 잘못을 해도 문재인에 대한 믿음과 애정을 굳건하게 유지합니다. 사실 냉정하게 보면 정치인은 믿거나 애정을 기울일 만한 대상이 아니라 해야겠지만, 철인정치론자들은 그렇게 합니다. 믿고 지켜주면 철학자 왕이 알아서 잘 해줄 거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물론 실제론 차라리 중고차 딜러나 애널리스트를 믿는 게 낫습니다.



 현실 민주정에서 철인정치론은 정치의 종교화로, 파시즘으로, 민주정의 붕괴로 발현됩니다. 실제 무솔리니는 플라톤의 철인정치론과 니체의 위버멘시에 영향을 꽤 받았었기도 합니다. 원천적으로 정치란 매 순간 터져 나오는, 온갖 짜증나는 문제들을 봉합하고 각자의 손익을 조율하고, 싫어도 타협하는 가운데 정치철학적 가치를 실현하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특정 정치인을 떠받드는 방향의 종교화는 반드시 강한 도그마를 만들어내고, 각자의 의견을 조율하고 봉합하는 데 약점을 보이기 마련이며, 개인의 권리를 중시하기보단 전체주의 쪽으로 치닫기 쉽고, 정치철학보다 정치인이 중요해지기에 원리상 성공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정치인이라도 모든 문제에 대해 잘 이해하고 각자의 입장을 충분히 대변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합니다. 현실적으론 부모가 두 자녀 사이의 문제를 온전히 중재하고 조율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매일 보는 가족이라도 각자의 이익과 손해와 감정적인 부분들을 충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인의 지도에 토 달지 말고 따르라고 격렬하게 시민들이 주장한다면, 그건 엄연히 파시즘입니다.

 

 한국 사회는 집단주의적이고 왕도정치사상이 보편적인데다 자유주의 기반이 약하고, 민족주의는 강하다보니 파시즘의 위험에 아주 취약합니다. 지금은 파시즘이 이미 준동하고 있는 상황으로 보이고요. 이 파시즘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지는 예측할 방법이 없습니다. 3년 전에 지금의 정치현실을 예상할 수 없었듯, 3년 후의 일도 알 수 없습니다.

 

 자유로운 민주 시민들은 파시스트들의 준동을 좌시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그들은 매우 위험한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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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니문의 끝

정치 2017. 6. 22. 21:45 Posted by 해양장미

 조원씨앤아이의 여론조사에서 지난 523, 달님 지지율은 81.3%였습니다. 그런데 20일 조사에서 달님 지지율은 70.1%로 나왔습니다. 한 달이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10% 넘게 지지율이 깎인 것입니다.

 

 허니문은 끝나가고 있습니다. 41.08% 득표로 대통령이 되었던 달님이 그 배나 되는 지지를 얻었던 건, 그를 뽑지 않았던 국민들이 갑자기 달님에게 반해서 그런 게 아닙니다. 빨리 정부다운 정부가 생겨서, 각종 불안을 해소하고 그럴싸한 나라를 만들어주길 바라는 마음이 높은 지지율로 나타난 것이겠지요. 나는 물론 그에게 기대 같은 건 하지 않습니다만...

 

 워낙 지지율이 높았기에 빠른 속도로 지지가 줄었음에도 아직은 별로 티가 나지 않습니다. 다만 이 추세가 계속될 수 있음은 생각해봐야겠지요. 달님은 다자구도에서 40%정도의 득표를 했으니까, 25~30%정도의 콘크리트 지지층은 가지고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그 정도입니다. 지금 지지율이 높다고 달님이 국민적으로 사랑받는 대통령이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국민들의 기대를 충족할 수 없을 거고, 이미 다수의 사람들은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 정도는 가지고 있을 겁니다.

 

 이후의 흐름을 예측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만, 정석대로 간다면 달님이 기댈 곳은 역시나 내셔널리즘과 달빛기사단입니다. 개혁, 혁명, 대의, 민족, 정의, 국가, 자주, 청산 등을 내세울 것이고, 그걸로 수많은 문제들을 덮어나가려 할 것이고, 위기가 올 때마다 공공의 적을 만들려 노력할 것이며, 기사단은 더더욱 과격화되며 화대혁명을 불사할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정석일 경우지만요.

 

 갈등은 본질적으로 서로의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데서 생겨납니다. 그렇기에 갈등은 힘이나 협상을 통해 해결됩니다. 그리고 달님은 매우 넓은 분야에서 갈등을 감수하고, 그 갈등들을 힘으로 해결하려는 분이지요. 그는 용감하고 영웅적입니다. 그렇지만 민주정체엔 영웅이 필요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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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트 아머에 대한 오해와 이야기

인류 2017. 5. 26. 17:38 Posted by 해양장미


 요즘 시대에 안 맞게 기사단이 많이 보여서, 이런 이야기도 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플레이트 아머는 보편적 인식보단 유니크 아이템으로 유럽사나 인류사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친 물건입니다. 이런 분야를 재미있어 하실 분들도 있으려나 모르겠네요.

 

 전쟁은 안 하는 게 좋습니다만 실제로 많이 했고, 갑옷과 투구, 방패 같은 건 전쟁에서 꽤나 중요한 물건이었습니다. 사람의 맨살은 거의 털도 없고 가죽도 얇아서, 날붙이 같은 데 대단히 취약합니다. 실제 뭔가 작업할 때 목장갑 정도만 껴도 손이 다치는 정도가 확 줄어듭니다.

 



 그래서 전쟁에 나가는 사람들은 무언가 많이 걸칠수록 살아날 확률이 높았습니다. 두꺼운 털가죽을 뒤집어쓰거나, 천 옷이라도 두껍게 누빈 옷을 입는다거나. 이런 건 실제로 방어력이 제법 있어서 각기 생가죽 갑옷(하이드)이라거나, 누비갑옷(갬비슨, 퀄티드 아머) 같은 식으로 부르는 물건이 됩니다. 좀 더 본격적인 경우는 가죽을 무두질하고 파라핀, 밀랍에 삶아 강화한다거나 옻칠을 한 것으로 갑옷을 만들기도 했습니다만, 좋은 가죽은 귀한데다 들인 공에 비해 성능이 애매한 게 문제였지요. 비단도 꽤 방어력을 가진 소재이지만, 귀하고 비싸서 그런지 활용은 제한적이었습니다.

 

 아무래도 강철로 갑옷을 만들면 방어력이 더 좋은 물건이 되기 때문에, 철을 다룰 수 있게 된 인류는 거의 어느 지역에서나 철로 갑옷을 해 입고 전투에 나서곤 했습니다.

 

 철제 갑옷은 제작방식에 따라 대략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라멜라(찰갑/미늘갑옷), 라미너(판갑), 스케일(어린갑/비늘갑옷), 메일(쇄자갑/사슬갑옷), 플레이트 앤 메일(경번갑), 브리간딘(두정갑), 플레이트 아머(판금갑옷). 게임 좀 하신 분들은 웬만큼 들어보신 것들일 겁니다. 영어식 표현을 우선적으로 쓰는 건 보편적으로 그 쪽이 더 이해하기가 쉬워서입니다.


 

 하나하나 간단히 설명하자면, 라멜라는 찰갑 또는 미늘갑옷으로 불리는 것으로 작은 금속편이나 골편, 가죽편 같은 걸 끈으로 엮은 것입니다. 방어력도 있고 제작에 큰 기술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어느 지역에서나 보편적으로 쓰였습니다만... 구조 상 유지보수가 매우 골치 아픕니다. 쓰다 보면 엮어놓은 게 계속 풀어지고 어디 공격받기라도 하면 손상되고, 겹친 부분에 녹이 스는 문제 등 때문에 반복적으로 해체 후 손질, 보수, 다시 엮기를 해줘야 했기 때문입니다.

 



 라미너는 고대에 쓰던 판 갑옷으로, 조금 큰 철판을 겹치듯 이은 형태입니다. 로마에서 쓰던 로리카 세그멘타타 같은 게 대표적이네요. 한반도에서도 쓰였고 전세계적으로 많이 쓰였습니다. 방어력은 있을 테지만 겹치는 부분이 많아 영 무겁고 불편했는지 중세 이후부터는 쓰지 않게 됩니다. 이 형태는 고대식이라 게임 같은 데도 잘 안 나옵니다.



 

 스케일은 라멜라와 혼동될 때가 많습니다. 한국어로 비늘갑옷이라 부르는데, 라멜라도 종종 비늘갑옷이라 부르기 때문입니다. 라멜라가 미늘끼리 끈으로 엮은 거라면 스케일은 단단한 비늘을 가죽 옷 같은 데 붙인 건데요. 방어력이 좋고 고대부터 근대까지, 거의 전세계에서 쓰던 갑옷 형태입니다만... 단점은 아무래도 보기보다 무겁다는 거였던 거 같습니다. 이 형태는 비늘이 겹친 구조가 잘 나와요. 보기엔 그럴싸하니 의장용으로는 곧잘 인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메일은 체인을 뜻합니다. 체인메일이라는 표현도 많이 씁니다만, 이는 후대의 표현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많이 쓰였으며, 실제 중세의 기사들을 상징하는 갑옷 형태입니다. 플레이트를 입은 기사는 중세보다는 근대의 형태에요.



  이 방식은 장점이 워낙 많아서 현대에도 쓰입니다. 촘촘한 사슬을 선이 아니라 면으로 만들어놓은 형태라, 입어도 움직임에 별로 지장이 없습니다. 공기도 통하고요. 그러면서도 베이는 걸 효과적으로 막아주기 때문에, 현대에도 정육 작업이나 잠수부가 상어의 공격을 막는다거나 하는 데 쓰입니다. 또 라멜라정도는 아니지만 노동집약적인 방식이고 기술이 덜 발달해도 좋은 걸 만들 수 있습니다. 관리도 라멜라같은 것보다 훨씬 쉬워서, 녹이 슬면 전체적으로 모래 같은 데 넣어 벗겨내는 식으로 녹제거를 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아예 스테인리스로 만들기도 하지만요. 고양이 키우는 분들한테도 유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메일은 구조적으로 사슬이 촘촘하고 이웃하는 고리의 수가 많을수록 방어력이 좋아지는데, 방어력을 높일수록 비싸고 무거워지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래도 촘촘할수록 화살 같은 걸 막는 성능이 올라가서 고성능 메일은 꽤 촘촘했던 것 같습니다.

 

 장점이 있는 만큼 단점도 꽤 분명한데, 움직이긴 편합니다만 메일을 입으면 하중이 어깨 쪽에 전부 걸립니다. 그리고 타격엔 전혀 방어력이 없다시피 합니다. 타격에 한정한다면 우리가 요즘 겨울에 입는 패딩만 못한 방어력이지요.

 

 메일이 유행하던 시기에 도검은 종종 큰 게 유용했습니다. 제대로 베이지 않더라도 후려갈기면 어쨌든 데미지가 들어가는 게 메일이니까요. 그나마 유럽 중세시대 땐 대부분의 기사들은 귀족이었고, 귀족은 죽이기보다는 포로로 잡아 몸값을 받는 게 이익이었으므로 메일만 입어도 목숨을 부지할 확률이 높아 많이 애용되었습니다만... 기사계급이 점차 기득권이 생기고, 교육수준이 올라가고 싸움을 안 하게 되면서 상황이 변하게 됩니다.

 

 플레이트 앤 메일과 브리간딘은 트랜지셔널 아머라고도 합니다. 과도기형 갑옷이라는 뜻인데, 이는 유럽에 한정하여 이 갑옷들이 메일과 플레이트 시대 중간에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플레이트 아머는 거의 유럽에서만 썼던 방식으로, 다른 지역은 브리간딘 이상의 진화는 없었습니다. 물론 현대의 방탄복이나 방검복, 강화 외골격 같은 건 제외하고요.

 


 플레이트 앤 메일은 말 그대로 메일에 판금이 결합된 형태입니다. 이 형태는 타 지역과 유럽의 것이 좀 다른데, 유럽의 것은 메일 위에 각부의 판금을 부분부분 덧입어 방어력을 높인 형태입니다.



 대조적으로 타 지역의 것은 라멜라가 진화한 것처럼 보이는 형태가 많습니다. 라멜라의 미늘을 판금 느낌 좀 날 정도로 사이즈업 하고, 잇는 끈을 메일로 바꾸면 이렇게 됩니다. 고려나 조선에서도 경번갑이라 부르면서 많이 썼습니다. 이런 형태는 플레이티드 메일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보편적으로 합의된 표현인진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명칭들 사이에서 플레이트 메일이라는 잘못된 표현 또는 오해도 등장했습니다. 실제론 플레이트 앤 메일과 플레이트 아머는 좀 다른 겁니다. 플레이트 아머는 거의 전신이 판금이며, 움직임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일부분만 메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풀 플레이트라는 표현도 씁니다.

 



 브리간딘은 유럽지역이 아닌 지역, 특히 아시아 지역에서 갑옷의 최종진화형태였습니다. 이 형태는 가죽이나 직물로 된 천에 라멜라보다 큰 철판들을 리벳()으로 고정시킨 것인데, 이렇게 만들면 충격을 받아도 철판들의 연결이 잘 끊어지지 않습니다. 방어력이 좋은데 유지보수도 쉬웠습니다. 조선에선 두정갑이라 불렀지요. 우리 조상들이 제법 많이 썼음에도 어째 현대엔 잘 알려지지 않은 유형입니다. 유럽에선 많이 안 썼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브리간딘은 그냥 가죽옷이나 비단옷에 정이 박혀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만들기에 따라선 거의 갑옷처럼 안 보이기도 합니다. 안쪽은 다 철판이지만요. 이런 외형은 갑주에 대한 기억이 많이 잊혀졌던 20세기 중후반기만 해도 많은 오해를 낳았습니다. 가장 흔한 오해가 브리간딘을 징 박힌 가죽갑옷으로 오해한다거나, 아예 아시아 군인들은 갑옷을 잘 챙겨 입지 않은 걸로 오해한 것입니다. 이 오해 속에서 나온 것 중 D&D룰에 나오는 스터디드 레더 아머라는, 가죽에 징을 박아 방어력을 높였다는 게 있습니다만, 실제론 그런 거 없었습니다. 브리간딘을 오해한 거예요. 그렇지만 요즘 게임에도 그 이상한 가죽 갑옷은 종종 등장합니다. 가죽에 징만 박는다고 그다지 나아질 건 없을 텐데요. 그리고 우리나라 사극에서 조선 군인들은 아직도 갑옷을 잘 안 챙깁니다...

 

 어쨌든 브리간딘은 거의 단점이 없는 갑옷이었으니까 웬만해선 이거보다 갑옷이 발달하지 않았습니다. 유럽만 예외였지요. 모두가 알다시피, 유럽엔 전신을 감싸는 플레이트 아머가 등장합니다.


 

 플레이트 아머는 무겁고 둔하다는 흔한 오해와는 달리 입은 상태에선 단점이 거의 없습니다. 입고 체조건 구르기건 달리기건 다 할 수 있습니다. 보기엔 무거워 보입니다만, 실제 철판이 그다지 두꺼운 건 아니고, 통판 특성상 하중이 분산되기 때문에 오히려 철 조각들이 겹치는 스케일 같은 것보다 무겁지도 않고 메일처럼 어깨에만 하중이 걸리지도 않습니다.

 

 방어력도 다른 갑옷보다 아무래도 높았는데, 통 철판이라 냉병기론 데미지가 잘 안 들어갔습니다. 물론 꿰뚫는 게 불가능하진 않고 강하게 때리면 안쪽으로 충격이 들어가긴 합니다만, 플레이트는 정타가 잘 안 들어가도록 여기저기 각이 져있어서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당연하리만큼 플레이트에 데미지를 주는 공격법이나 냉병기도 발달하긴 했습니다만... 너무 많은 훈련과 재능이 필요했습니다.

 

 일단 왜 유럽에서만 플레이트 아머가 발달했는지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플레이트의 발달 요인 중 하나는 유럽 중세사회의 봉건제에 있습니다. 기사와 기사단, 용병단 위주의 형식과 문화를 지니고 있었던 유럽 군대는 다른 유라시아 지역 군대에 비해 아무래도 소수정예 엘리트 무장집단에 가까웠고, 그러다보니 개개인의 무장 수준이 높았습니다. 대조적으로 징병을 일상적으로 하거나 모든 남성이 전사에 가까웠던 아시아 군대는 각각의 무장 수준은 낮았지요. 쉽게 이야기하면 숫자냐 정예화냐의 차이입니다.

 

 정예화된 유럽 기사들은 랜스의 발달과 함께 마상 돌격을 많이 활용했고, 그러다보니 더 갑옷이 발달했습니다. 플레이트는 투구 다음 무릎, 정강이 부분부터 발달했고 이는 말에 탄 상태에서 다리를 공격당하는 걸 막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플레이트가 발달하게 된 데는 또 다른 요건들도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는 흑사병이었습니다. 유럽은 흑사병으로 인구가 많이 줄어들었는데, 그 결과 제조업이 노동집약적인 것보다는 숙련자에 의한 것으로 발달하였습니다. 갑옷 중에 라멜라나 메일은 노동집약적인 것입니다. 대조적으로 플레이트는 숙련된 장인이 만들 수 있는 것이지요. 또 유럽에선 시장경제가 비교적 일찍 활성화되었는데, 이는 유럽 중세사회에서 도시들이 독립적이었던 것과 연관이 있습니다. 인력의 감소로 인해 발달한 도제 시스템과 상공업자들의 공간이었던 도시가, 엘리트 위주의 군대 문화와 맞물려 만들어낸 게 플레이트 아머입니다. 유럽에서만 플레이트가 등장하게 된 덴 이런 이유들이 있었습니다.

 

 대조적으로 다른 지역의 갑옷은 노동력 문제가 덜했고 도시, 상업이 덜 발달했으므로, 메일이 좀 더 촘촘해진다거나 아니면 브리간딘의 외피가 더욱 화려해지는 식으로 발달합니다. 메일이나 브리간딘이 꼭 플레이트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갑옷은 아니기도 합니다. 사람이 쓰는 물건이다보니 입은 상태에서의 방어력이 전부는 아니거든요.

 

 플레이트 아머엔 결정적인 단점이 있었는데... 입고 벗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구조적으로 혼자선 입고 벗는 게 좀 어렵습니다. 입은 상태에선 화장실 문제도 해결이 안 됩니다. 그래서 더더욱 플레이트는 엘리트 기사 위주였던 유럽 사회에서 잘 통용될 수 있는 물건이었습니다. 종자 없이 입고 벗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닙니다만,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그리고 기사들은 플레이트를 입은 상태에서 화장실 갈 일이 생기면... 보통 그냥 입은 채로 배설하였습니다. 그 결과물을 해결하는 건 종자의 몫이었지요.

 

 아시아 전쟁사에 등장하는 것처럼 장수가 갑옷을 입은 채로 잔다거나... 밤에 기습을 받았는데 갑옷을 걸쳐 입고 뛰어나간다거나 하는 게 플레이트로는 거의 안 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대조적으로 브리간딘은 안쪽이 철판인 코트 같은 거라 기습 받아도 바로 걸쳐 입을 수 있었지요.

 

 그래도 플레이트는 방어력이 좋아도 너무 좋았습니다. 냉병기로 플레이트를 상대하려는 시도도 많았습니다만, 그보단 화기가 빨리 발달합니다. 위에 이야기했듯 검이나 철퇴, 해머 들고 플레이트 입은 기사를 상대하려면 많은 숙련에 더해 재능까지 필요했으나, 화기는 아무나 다뤄도 기사를 이길 수 있으니까요.

 

 결과적으로 플레이트 아머의 발달은 총기의 발달을 초래하였고, 성능이 영 좋지 않던 전근대 총기를 다루는 전략전술도 발달시켰습니다. 유럽 군대는 계속 강해졌고, 결국 다른 지역을 본격적으로 침공해 점령할 수 있을 만큼 강해집니다.

  

 플레이트 아머의 발달 이전까지 유럽과 다른 지역의 군사적 역량 차는 별로 없었습니다. 오히려 많이 졌지요. 자주 싸웠던 중동, 이슬람 세력은 물론 칭기즈칸의 손자, 킵차크 초대 칸 바투가 폴란드를 정복했을 때만 봐도요.



 그 때 참전한 기사단 중 유명한 기사단으로 소위 튜튼기사단으로 불리는 예루살렘의 성모마리아의 도이첸(독일) 형제회가 있었습니다. 1190년 경 현 이스라엘 아코 시에 세워진 야전 병원에서 시작되어 1808년 나폴레옹에 의해 해체되었다가 다시 부활하여 명예 가톨릭 단체로 아직도 남아있는 단체인데요. 여튼 그 땐 튜튼기사단이 졌습니다. 그림에도 표현되지만, 1241년이라 플레이트가 아닌 메일 입던 시기였어요. 이 때 고려에선 최충헌의 아들 최우가 집권하던 때였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보편적 의미에서의 중세 땐 플레이트 아머가 없었어요.

 

 기록상 플레이트 아머가 최초로 등장하는 시기는 1410년입니다. 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중세라기보단 르네상스 시기(시각에 따라선 르네상스를 중세말로 보기도 합니다만), 이 때 한반도는 조선 태종 이방원 집권기였습니다. 즉 플레이트 아머는 흑사병 이후의 르네상스 시대에 만들어지게 된 것으로, 근대의 태동기에 등장하여 근대사 발전과 그림자에 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물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총기의 시대에 플레이트 아머는 점차 각 부분이 줄어들고 흉갑만 남다 사라져 현대의 방탄복으로 교체됩니다. 근래는 전국민이 징병되고 군용 방어복이 비교적 중시되지 않는 시기였습니다만, 점차 징병제가 사라지면서 그런 추세도 변하고 있습니다. 이제 스타크래프트의 마린이 입는 것 같은 전투복이 개발중이다보니 나중엔 정예 군인들이 그런 걸 입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다시 전쟁은 기사단이 하는 것으로 돌아가겠지요. 근현대의 시민 평등을 만든 건 총기였습니다. 죽창이 아니라 총 앞에서 만인은 평등했으니까요. 총을 막아낼 수 있는 강화 외골격이 보편화되면 평등은 사라질 확률이 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