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테마
브금
https://youtu.be/o87hNhgfZvI?si=zJMYPZxn98qQ9umc
1) 월 초, 대선이 끝났습니다.
더듬어만진당 최고존엄이시며 디스토피아 트루 헤븐조선 총통이시며 손가락혁명군 최고사령관이신 1등 인민들의 위대한 령도자, 백만 개딸의 어버이, 망치를 든 남자, 방탄노년단의 리더, 폭동덕 호걸들의 수호귀, 파기환송 한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오르는 자, 칼로도, 법으로도, 펜으로도, 굶주림으로도 죽일 수 없는 ‘존재 자체가 죽음’. 190석의 권능을 가진 존재, 운명을 찢는 주동인물, 친애하는 지도자 리재명 두령께서 승리하고 즉시 즉위하신지도 이제 다소의 시일이 흘렀습니다.
두령 동지 만세! 토료 도오시 반자이! 토우링 통쥐 완수이!
이렇게 주돈군의 계엄으로 촉발된 반년간의 내란이 끝났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관측해온 사견에 의하면, 지난 대선에서 주돈군을 찍었던 사람들 중 대다수는 이 내란에 대해 꽤나 포용적인 개념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이번 대선에서 이준석에게 표를 던진 사람들조차 낮지 않은 비율로 그렇다는 감상입니다. 이는 내가 사적으로 느낀 감상이기에 객관성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만, 아마 사실에서 그리 거리가 멀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는 내가 바라는 현실이 아니고, 그렇기에 불편한 진실이라 어림합니다. 특히나 청년남성들 중 다수는 이미 꽤나 극우화가 진행되어 있고, 그 경향이 이번 계엄과 내란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드러난다는 게 현재의 추정입니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감상적으로 할 마음이 없습니다. 심적으로 건조하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상황은 파악하고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2) 두령께서 이번 대선에서 승리하기는 했지만, 아마 현재 민주당 지지자들은 큰 위기감과 경각심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내란으로 치러진 이번 대선에서 두령께서 얻은 득표율을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두령 동지는 과반 득표에 실패했고, 두령 동지의 지지자들 입장에서 보면 대략 유권자의 반 정도는 내란에 동조하는 끔찍한 상황이라 판단할 수 있는 게 현재의 상황입니다. 이준석의 득표를 회색지대로 뺀다 하더라도 김문수가 40% 이상 득표한 건 큰일이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게 두령 동지 지지자들의 마인드입니다.
국민의 절반 정도는 내란을 옹호하고 있고, 민주주의가 심각한 위기라는 게 두령 동지 및 민주당 지지자들이 보는 현재일 겁니다. 그리고 이미 민주당이 힘에서 우위인 만큼, 민주당 지지층 전반은 내란 옹호자들과 미개한 자들을 일단 힘으로 찍어누르는 게 올바른 조치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적어도 그들은 민주당이 힘으로 지배해야만 그들이 생각하는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고, 나라가 성공할 것이라는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3) 주관적으로 이번 계엄 사태에서 청년남성 전반의 반응을 살펴보면서 느낀 감상은, 대부분이 주돈군의 계엄이 성공한 경우의 수를 잘 상상하지 못하는 쪽에 가깝다는 것이었습니다.
현재의 청년남성들은 군사정권 당시를 경험해보지 못한 것은 물론 90년대의 야생도 경험해보지 못했고, 00년대의 정치사회적 분위기와 흐름도 알지 못합니다. 세월이 워낙 빠르다보니 이명박이 당선되던 07년에는 10살이었던 꼬마들이 이젠 20대 후반이 되어있는 게 현실이지요.
청년남성들이 이해하기 쉽게 비유하자면 페미성향을 가진 여자들, 즉 1등 인민 일동은 K-강제징용의 고통이나 우리 천민 청년남성 가붕개 제군의 각종 고난을 거의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와 마찬가지로 청년남성 가붕개 제군 전반은 주돈군의 계엄이 성공했을 경우의 수를 충분히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미 완전히 선진국이 되고 스마트폰이 일반화된 이후에 자란 청년들은 모든 게 야생이고 폭력이었던 시절을 이해할 수 없는 겁니다.
이 이야기는 청년남성 전반이 계엄에 대해 부정적이지 않다거나, 찬동한다거나 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계엄에 대한 적대감이 강하지 않다는 이야기에 가깝습니다. 주돈군이 잘못을 한 건 곧잘 이해는 하는데, 그게 얼마나 큰 잘못인지 감을 잘 못잡는 쪽으로 보입니다.
4) 돌아보면 우리나라의 속칭 보수세력은 박정희와 전두환에 대한 역사적 인식부터 오래되고 깊은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박정희의 산업화, 전두환 시절의 호황기, 87년의 노태우 당선, 그리고 김영삼의 3당 합당과 IMF가 많은 걸 꼬아놨지요.
아마도 청년남성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중 하나는, 민주화라는 게 굉장히 오랜 세월이 걸린 작업이었다는 사실 또는 인식일 것입니다. 현재의 20대 남성들은 민주화가 많이 된 시기에 성장했기 때문에 이를 이해하기 어려울 거라 생각합니다만, 많은 이들에게 민주화는 복잡하고 난해하며 오랜 세월이 걸리는 작업으로 인지되었습니다. 아마도 나는 이에 대한 이해와 페미니즘이라는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주로 소위 2030과 4050의 정치적 갈등이라 여겨지는 게 발생하는 거라 어림합니다.
우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나는 민주화의 의미를 확장하지 않는 게 좋다는 의견을 가진 쪽입니다. 그래서 상기한 부분에 대한 이야기나 설명을 해오지 않았습니다. 정치의 기술(旣述)은 명료한 것이, 그리고 선언하는 방식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메타포가 담긴 표현은 그것이 예술일 때와 달리 정치일 때는 선동이 되기 쉽고, 오해를 불러일으킬 확률도 높습니다. 그리고 나는 자칭 민주화 세력이라는 NL계열이 주장하는 민주주의에 결코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민주화는 현실적으로 꽤 광범위한 어감이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굳이 이걸 설명할 필요가 없었지만, 이제 청년세대들은 민주화의 의미를 받아들이는 게 달라졌기 때문에 설명할 필요가 생겨난 것 같습니다.
일단 87년에 직선제 개헌이 되긴 했는데, 당시 이 때 우리나라 민주화가 완결되었다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군사정권 인물인 노태우가 선거를 통해 대통령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후 노태우가 의외로 일을 잘하긴 했지만 다시 쿠테타를 일으키려는 시도도 있었고, 이 때의 민주화는 그야말로 직선제 개헌만 해놓은 상태에서 천천히 하나하나 되어가는 무언가였습니다.
이후 김영삼이 3당 합당을 했을 때, 정말 많은 사람들이 정치에 환멸감을 느끼고 김영삼에게 크게 실망했었습니다. 이 때 김영삼의 3당 합당에 반기를 들었던 대표적인 인물이 노무현입니다. 이 사건은 민주화 영웅이 군사정권과 손을 잡은 사건이기에 작은 사건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김영삼이 집권한 후에도 민주화가 제대로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군사정권과 손잡은 인물이 대통령이 되었으니 당연한 것이었지요. 김영삼이 정부의 이름을 문민정부라 하고 하나회를 바이든하고 전두환과 노태우를 감옥으로 보내긴 했지만, 3당 합당에 실망한 사람들의 마음은 돌아선지 오래였습니다. 잘 하기라도 했으면 모르겠는데, 김영삼의 엔딩은 외환위기에 IMF 구제금융이었고요.
이후 김대중이 집권했고, 많은 사람들은 그제야 민주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김대중의 시기는 IMF 극복기였지요. 그리고 민주당 지지층의 입장에서 보면 여전히 한나라당 세력은 강대하였고, 전두환과 노태우는 감형되어 곧 석방되었기에 제대로 된 민주화가 완성되었다고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더구나 당시 IMF 외환위기의 배경에는 미국이 있었다는 게 통설이었고, 그 극복을 위해 민족주의가 강해지게 되었습니다. 당시 미국은 시진핑의 중국에 육박할 정도로 여러 면에서 미움을 사기도 했고, 2002년 월드컵은 내셔널리즘을 강화해주었습니다. 민족주의는 박정희 시절에도 적극적으로 활용되던 것이었습니다만, 민주화 이후 00년대까지의 민족주의는 NL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이 문제까지 이야기하면 복잡하니까 일단은 스킵합니다.
5) 상기한 배경에서 노무현이 집권합니다. 노무현은 평균적인 청년남성들의 생각보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입니다. 노무현은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에 들이받는 용기와 문제를 찾아내는 반골 정신, 고난을 헤쳐나갈 정신력, 그리고 자신이 틀리지 않았나를 신중하게 고려하는 성격과 좋은 머리, 국가와 국민을 위한 진정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러 번 말했듯 이준석과 꽤 비슷한 캐릭터입니다. 차이라면 이준석은 노무현만큼의 반골 정신과 스스로가 틀리지 않았나 돌아보는 성격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 정도일까요.
그렇기에 노무현은 최고의 대통령이면서 동시에 나쁜 대통령이었습니다. 노무현이 가지고 있었던 반골 기질은 그의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정치사회적 문제를 잘 인지했고, 그것을 전복하고자 하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구체적인 방법론에서도 반골 기질이 작동하곤 했고, 그에 비효율이 생기는 게 일상적이었지요. 그럼에도 그는 자기 자신과 상황을 되짚어보고 최적의 결과물을 향해가는 능력이 있었기에 그 면에서는 정말 좋은 대통령이었습니다. 다만 그런 과정이 반복되었기 때문에 안정성이 떨어졌고, 효율적인 결과를 잘 얻지 못하곤 했습니다. 주변에서 마찰도 많았고요.
확장된 민주주의 관점에서 노무현은 민주주의 그 자체이기도 했고, 민주주의의 논란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노무현은 권위주의 타파를 주장하였었는데, 노무현 집권 이전의 우리나라는 일제부터 군사정권까지 이어지는 군사적 권위주의가 무척 강한 나라였습니다. 87년 민주화 이후 그것이 천천히 약화되고는 있었지만 여전히 무척 강한 사회였지요. 노무현은 권위주의를 타파하는 걸 시대적 과제로 생각했고, 스스로의 권위를 꽤나 내려놓는 방식을 채택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건 그가 정치를 하기 어렵게 만들었지요. 대신 그 덕에 우리나라의 권위주의는 실제로 줄어들기도 했습니다.
노무현은 권위를 내려놓으면서 당시의 야당이었던 한나라당과 잘 해보려는 노력을 누구보다 많이 했었습니다. 문제는 한나라당은 2002년 대선에서 지면서 이미 맛이 간 상태였다는 겁니다. 02년 대선은 한나라당이 이길 거라 확신하던 선거였고, 노무현 돌풍에 역전당해 졌거든요. 거기에 노무현이 권위 내려놓고 낮은 자세로 가니까 한나라당은 아예 노무현을 무시하면서 이 꼬인 역사의 본격적인 발단을 만들어냅니다. 대통령이 좀 겸손하게 나오면 상대쪽도 존중을 해 줘야 일이 매끄럽게 돌아갈텐데, 당시의 한나라당은 노무현의 고졸 학벌을 언급하면서 모욕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현 4050 세대의 국민의힘계에 대한 적대감은 단순히 노무현의 죽음으로 한번에 형성된 게 아닙니다.
6) 노무현 집권기는 아직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일간지의 힘이 강했던 시절입니다. 그때는 지금처럼 일간지의 힘이 약해질 미래를 예상할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 시절의 조선일보는 정말 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고, 노무현 정권을 공격하는 데 앞장섰지요.
당시 소위 보수우파 세력은 노무현 정권이 무능하다고 공격하면서, 그에 대조되는 캐릭터로 박정희를 복권시키고 있었습니다. 신군부 시절 전두환에 의해 부정되고 이미지가 추락했었던 박정희였습니다만, 김대중에게 정권을 잃은 후 소위 보수세력은 박정희의 이미지를 세탁하는 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무능한 노무현과 유능했던 박정희로 이미지를 대조시켰지요. 박정희가 저질렀던 모든 잘못들이 덜 중요한 것으로 취급되었고, 서울시장이었던 이명박은 자신을 제2의 박정희로 이미지 메이킹하는 데 성공하면서 강력한 대권주자로 부상합니다. 그리고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는 노무현 탄핵 사태를 거치면서 한나라당의 당권을 쥔 인물이 되지요.
이후 제2의 박정희와 박정희의 딸이 연달아 집권하고, 노무현이 죽는 비극을 맞이하게 되는데요. 이 과정은 당시의 청년 대다수에게는 참혹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겨우 다 이뤄가나 싶던 민주화가 전복되고, 민주주의의 상징적인 존재가 죽고,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으로 돌아온 것이었거든요. 박근혜의 당선을 곧 민주주의의 붕괴처럼 받아들이던 사람이 꽤 많았습니다.
이 연장선상에서 몰래 대리청정을 시키던 독재자의 딸을 쫓아낸 촛불은 혁명으로 표현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명박근혜 시대를 지나면서 소위 보수세력은 아주 무거운 역사적 부채를 짊어지게 됩니다.
7) 단언컨대 박정희의 유신독재와 광주사태를 밟고 선 전두환의 독재는 큰 잘못입니다. 종종 일제시대 청산 이야기가 나오는데, 현실적으로 우리가 제대로 청산해야 했을 문제는 군사독재 문제였습니다. 이 문제가 노태우의 당선과 김영삼의 3당 합당 및 IMF, 전두환 및 노태우의 석방, 그리고 박정희주의의 부활 등으로 전혀 청산되지 못했던 게 정말 많은 문제를 초래하였습니다.
민주당 지지층 입장에서 볼 때, 국힘계 지지층은 민주정에 대한 추구와 진정성이 없는 자들로 보이기 쉽습니다. 관련하여 나는 적어도 국힘계가 전두환에 대한 입장이라도 제대로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광주사태에 대해서도 국힘계에서 종종 망언이 나오는 게 현실이지요.
첨언하자면 나는 5.18을 광주사태라 칭하는데 이는 중립적이면서 잘 알려진 표현으로 처음부터 김영삼이 사용했던 표현이고, 당시 현장을 취재하고 누구보다 올바른 견지를 유지하고 있는 조갑제도 광주사태라는 중립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만일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면 광주사태는 광주항쟁 또는 광주민주항쟁이나 광주민중항쟁, 아니면 광주민주화투쟁이라 부를 수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5.18을 광주민주화운동으로 부르는 건 부적절하다는 생각입니다.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명칭은 민주정의당이 처음에 주장한 이름(참조)으로 그 항쟁을 운동같은 걸로 묘사하는 것은 부당합니다.
김영삼이 하나회를 숙청하긴 했지만 당시의 신한국당에는 민정당계가 많이 있었고, 그들을 단시간에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리고 이후 외환위기가 일어나면서 신한국당은 문을 닫고 이회창을 중심으로 한나라당이 창당되는데, 이회창은 삼김(三金.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청산을 내세우며 개혁적인 성향을 앞세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김영삼의 상도동계와 대립하면서 김영삼의 반대파였던 민주정의당계와 손을 잡게 됩니다. 그래서 한나라당은 신한국당에 비해 수구적인 색채를 가지게 되었고, 군사정권의 후예들이 다시 부흥하게 되지요.
그나마 이회창 본인은 개혁성향이 있었고, 당시에는 개혁보수 성향으로 인식되었던 인물들을 영입하면서 김대중 정권 당시엔 한나라당이 그렇게까지 수구적인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 때 개혁보수 느낌이었던 인물 목록이 권영세, 나경원, 원희룡, 이혜훈, 주호영... 이런 인물들이라 문제긴 했고, 이회창 본인도 2002년에 노무현에게 지면서 이후 한나라당은 급격하게 우클릭을 하여 군사정권을 긍정하는, 군사정권의 후계자같은 입장이 됩니다.
제2의 박정희로 스스로를 이미지메이킹했던 이명박 정권은 어떻게든 노무현을 죽게 만들었고, 박정희의 딸은 탄핵되었습니다. 그리고 위대한 수령 문재인 동지의 시대를 겪은 후 다시 국민의힘으로 재기한 민주자유당 계열은 절대 저질러서는 안 될 계엄을 저질렀고, 국민의힘 주류는 그걸 옹호하면서 현재의 답도 없는 상황을 만들어버립니다.
8) 민주당과 소위 진보세력은 오랜 세월동안 선거의 테마를 민주 VS 반민주로 잡아왔습니다. 문제는 그런 식으로 접근했을 때 패배한 적이 많았다는 건데, 그래도 민주당 지지층은 전통적으로 선거 구도를 민주 VS 반민주로 인식합니다.
강성 민주당 지지층의 기본적인 마인드는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에서 군사독재정당을 어떻게 찍어?’에 가깝습니다. 실제 국민의힘계는 박정희와 전두환의 과오에 대해 명료하고 올바른 견해를 유지하지 못하곤 합니다. 그리고 박정희의 딸을 앞세웠다가 말아먹은 걸로도 모자라 이제는 아예 계엄을 저지르고, 계엄을 옹호한 상태지요.
친애하는 두령 동지의 도덕적, 법률적 논란과 민주당이 저질러온 많은 잘못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번 대선에서 김문수 후보와 국민의힘이 받은 많은 득표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비록 두령 동지께서 존재 자체가 죽음이고 수상한 점이 많기는 하지만, 김문수가 만약 당선되기라도 했다면 계엄이 합리화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사실은 민주당 지지층과 구성원에게 많은 불안을 가져다줍니다. 절대권력을 쥔 쪽이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 건데요. 이 상황은 그 자체로 영 좋지 않은 면이 있습니다. 보통 이럴 때 권력자에 의한 폭력이 발생하곤 합니다. 그리고 친애하는 두령 동지는 ‘존재 자체가 죽음’이라 할 정도로 무서운 분이지요.
9) 주돈군이 석방되고, 상기했듯 김문수가 표를 많이 받으면서 계엄이 만들어낸 문제가 깔끔하게 해결되지 못하는 양상이 되었습니다. 거기에 더해 민주당은 역시나 김민석 총리인사 및 태양광 등의 무리수를 두면서 국민통합에 완전히 실패하는 모양새입니다.
민주당이 이토록 무리수를 두고 있는 이유는 이제 이 트루 헤븐조선의 기득권 주류가 민주당이 되었기 때문이고, 예상하지 못했던 정권교체로 민주당에 붙은 기득권 전반의 계획이 크게 어그러졌었기 때문이라 생각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권력을 쥐고 폭주를 시작한 민주당은 장기집권을 노리겠지만, 이번 대선에서 김문수와 이준석의 득표를 합하면 두령님의 득표를 넘는다는 것을 감안할 때 안심할 수 없을 것입니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저질러온 군사독재와 계엄의 역사를 강조하게 될 겁니다. 그래야 자신들의 부도덕과 부족한 정당성을 덮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민주당은 세대갈등을 유도할 겁니다. 세대 포위론에 이미 당해본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청년과 노년이 적대할수록 민주당에게는 유리해집니다. 젠더갈등을 세대갈등으로 확대하려는 시도도 계속될 겁니다.
민주당은 계엄은 막았지만 민주정은 철저히 파괴할 겁니다. 이미 김민석에 대한 검찰의 수사착수를 막는 논리로 등장한 게 내란공범들이 검찰, 방송, 법원 등에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김민석 총리 임명은 강행될거라 생각하고, 그가 계엄을 예고하고 막는 데 앞장섰다는 명분은 있습니다만 그것으로 그의 총리강행이 국민들에게 충분히 납득되지는 못할 거라 생각합니다.
친애하는 두령 동지께서는 지원금으로 민심을 다독이고, 이미지 정치를 통해 스스로를 우상화하는 식으로 우리 가붕개들 사는 개천 온도를 따끈하게 올려줄 거라 생각합니다. 가붕개 일동 여러분은 그저 백만 개딸과 1찍 1등 인민들의 어버이 두령님의 보살핌만을 기원하며, 트루 헤븐조선을 만끽하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