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브금

 

https://youtu.be/A1Ihy4wsTQo

 

 


 

 지방선거에서 일방적인 대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은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그들의 사회주의적 본성을 더욱 드러내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관련 기사는 여기에 있고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oid=025&aid=0002832887

 

 역시나 운동권들의 정당답게 단일성 집단지도체제같은 말이 튀어나오는 게 주의 깊게 볼 부분입니다. 이미 민주집중제같은 어휘도 공개적으로 쓰는 정당이니 단일성 집단지도체제같은 말을 써도 전혀 이상할 건 없습니다만, 이런 걸 보면서도 그들이 사회주의자가 아니라고 우기는 부류가 많아 문제입니다.

 

 지난 전대에서 민주당은 온라인 문빠 권리당원들의 편파성과 파괴력을 익히 확인한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번엔 권리당원 투표 반영비율을 높였는데, 이렇게 되면 민주당은 원래도 그랬지만 문빠의, 문빠에 의한, 문재인과 친문을 위한 정당색이 더욱 더 짙어집니다.

  

 이미 현재의 민주당도 문재인과 청와대가 뭐라고 하면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는 정당입니다. 좀 더 디테일하게 말하면 좀 더 좌파적인 방향으로만 뭐라고 말이 나오는 본격 운동권 좌파정당입니다. 보다 중도적이거나 합리적인 사람들은 이미 민주당을 떠났거나, 당 내에서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된 지 오래인데 이 추세가 더 심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민주당의 의사결정구조나 순혈성에는 문제가 많습니다. 한국 정치사에서 이 정도로 단일한 지도체제고 이견을 내기 어려웠던 정당이 또 있었을까요. 이승만의 자유당도, 박정희의 민주공화당도, 전두환의 민주정의당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식으로 무늬만 민주적이고, 실제로는 전혀 민주적이지 못한, 그야말로 공산권 인민민주주의같은 구조를 가진 정당이 장기적으로 잘 될 가능성은 지극히 0에 가깝습니다만, 당장 발생하고 있고 앞으로 심화될 문제들이 골칫거리입니다. 사회주의자들이 집권한 이래 국내 투자자금은 줄을 이어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고, 국내 제조업 기업들은 해외투자를 무려 28%나 늘렸습니다. 또 비은행금융권 대출증가 추세는 명백한 문제를 드러내고 있으며, 경기선행지수 및 경기지수는 바닥을 모르고 하락중입니다. 정권은 여러 문제를 드러내고 있지만, 여당에 정권에 대한 견제는 전혀 없고 이미 거수기나 다름없는데 앞으로는 더 확실한 거수기가 될 예정입니다.

월드컵 도이칠란트전 감상

운동 2018. 6. 28. 02:01 Posted by 해양장미

 브금은 공식 월드컵 송입니다.

 

https://youtu.be/kFMZUxX6K6o




 

 선발이 누군지 안 보고 있다가 킥오프 후 파악하기 시작했습니다. 파악 후부터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지요.

 

 우리나라 선수들은 축구를 못 하는 게 결코 아닙니다. 선수들의 전력만으로 보면 적어도 대표팀 레벨이라면, 세계 그 어떤 팀을 상대로건 승리를 노릴 수 있을 정도는 됩니다. 어차피 대표팀은 어느 나라건 그리 수준이 완벽하지 않고요. 우리나라에도 축구를 잘 하는 선수는 많습니다.

 

 문제는 우리나라 대표팀이 제대로 된 팀이 된 적은 거의 없었다는 데 있지요. 이에 대해서는 하고픈 말은 예전부터 많았습니다만, 프로 스포츠 이야기 같은 건 웬만하면 안 하려는 블로그라 안 하고 있었습니다.

 

 이번 선발은 아주 좋았는데, 일단 기성용을 쓸 수 없게 된 것과 아마도 신태용이 고집을 꺾은 게 이유라 생각합니다. 일단 나는 기성용 개인의 기량과는 무관하게, 대표팀에서 기성용을 주전으로 쓰는 데는 기본적으로 반대 입장입니다. 기성용을 쓸 때 발생하는 단점들이 워낙 많기 때문인데, 이번 경기는 기성용을 안 쓸 때 어떤 식으로 긍정적인 효과가 나올 수 있는지가 증명된 좋은 케이스라고 생각합니다.

 

 황희찬을 기용하지 않은 것도 좋은 선발이었습니다. 나는 황희찬이 대표팀의 주전이 될 만한 기량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구자철을 살리려면 황희찬이나 기성용을 같이 쓰면 안 됩니다.

 

 장현수를 미드필드에 둔 것도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나는 그는 수비수에 어울리는 선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볼을 잘 다루는 선수인데, 수비력이 너무 나쁘거든요. 롱킥도 못 차고요.

 

 또한 이러한 선발에선 풀백 부담이 적기 때문에, 이용과 홍철 두 풀백이 본래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풀백은 얼마나 부하를 주느냐에 따라 카메라에서 보이는 기량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직관을 하면 풀백의 부하를 쉽게 볼 수 있지만, TV로 보면 잘 보이지 않아서 전술적인, 그리고 선수들 특성을 조합할 때 나오는 결과에 대한 이해가 필요해집니다.

 

 충분히 유리하게 이끌어갈 수 있는 경기를 방해한 건 주심이었습니다. 이번 경기의 주심은 최악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비리 그 자체였는데 피파랭킹 1위인 도이칠란트가 떨어지는 걸 막기 위해 피파 묵인 하에 조작질을 하고 있다는 판단을 하기 충분했습니다. 월드컵이나 올림픽의 더러운 면은 익히 보아왔지만, 이번의 더러운 정도는 무척 심각했습니다. 내가 월드컵을 그다지 사랑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지요.

 

 위기가 여러 번 찾아왔습니다. 좀 심각해질 수 있었던 건 전반에 이재성의 다리 근육이 경련한 순간이었습니다. 그가 쓰러졌다면 경기가 아주 어려웠겠지요. 다행히 그는 이겨냈고요.

 

 과부하가 걸린 구자철이 55분에 아웃된 건 분명히 좋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황희찬이 들어왔을 때, 정말 좋지 못한 교체라고 생각했지요. 신태용의 부족함이 다시 한 번 드러난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잘못된 교체는 재교체로 확실하게 증명됩니다. 구자철이 쓰러진 순간 고요한을 넣었어야지요. 신태용의 역량을 생각할 때, 선발이건 전술이건 그의 주도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코치가 해낸 것이겠지요.

 

 조현우 키퍼는 막은 건 전혀 흠잡을 데가 없었습니다. 훌륭한 선방을 이어나갔지요. 다만 골킥은 좀 심하게 문제였는데, 킥할 때 정성룡이 여러 번 그리워지다가도 선방 볼 때마다 정성룡이라면 먹혔겠다 싶었습니다. 지난 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한국 국가대표엔 조현우 같은 타입이 좋습니다.

 

 김영권은... 그가 어렸을 때 나는 그에게 큰 기대를 했었습니다. 참 좋은 재능이라고 생각했고, 실제 서울을 꺾고 광저우를 우승시킬 때만 해도 유럽에도 통할 선수라고 생각했었지요. 그런데 이후 중국화 되더니 중앙수비조무사 소리 들을 정도로 형편없어졌었습니다. 그랬다가 갑자기 월드컵 시작하면서 장점을 되찾았고, 이번 경기에선 걸렸던 저주라도 풀린 것처럼 본래의 기량으로 돌아왔습니다. 유럽으로 이적하고 싶어진 걸까요. 여하튼 그가 이번 경기 MOM이라 생각합니다.

 

 장현수는 여전히 심각하게 부족한 수비능력에 더해, 그가 피보테나 BTB로는 꽤 쓸 만한 선수라는 걸 증명했습니다. 그의 수비력으로도 중국리그나 J리그에서는 통하니까 수비수를 하고 있긴 할 건데, 그에게 어울리는 자리는 그 자리는 아닐 겁니다. 차두리도 처음부터 풀백으로 뛰었다면 더 높은 수준의 선수가 될 수 있었을건데요.

 

 그 외 전반적인 선수들이 다 잘하는 가운데, 아쉬운 점이라면 역시나 이런 경기에서 잘 활약할 법한 이승기, 김승대 같은 선수들을 뽑지 않은 걸 떠올렸습니다. 이겼으니 됐습니다만. 황희찬 투입 후 재교체는 백번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만약 도이치 선수들이 제 기량이었다면 힘들었을 겁니다. 그렇지만 고메즈건 뮐러건 내가 예전에 봤던 그 선수들은 아니더라고요.

 

 그리고 결국 골을 넣었을 때도 주심은 편파판정했지만, VAR가 살렸습니다. 거기서 경기는 실질적으로 끝났고, 추가 쐐기골은 더 잃을 게 없는 노이어가 자리를 이탈하면서 발생했지요. 다이렉트 골이 되나 싶었는데 좀 어긋나서 손흥민이 마무리했고, 손흥민은 94년 홍명보, 2002년 안정환 이후 오래간만에 한 월드컵에서 2골을 넣은 한국 선수가 되었습니다.

 

 그러고도 16강은 못 갔지만요. 스웨덴이고 메히꼬고 못 이길 팀은 결코 아니었기 때문에, 아쉽긴 합니다만, 국가대표팀이 좀 제대로 하는 경기 본 건 최강희 감독의 데뷔 경기 이후 처음이라 기쁘네요. 지난 아시안컵은 준우승하긴 했지만 경기 내용은 별로 좋지 못했거든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리나라 선수들 축구 못하지 않습니다. 제대로만 짜 맞춰 돌리면 본선 진출 정도는 쉽게 할 수 있는 실력들입니다. 히딩크 이후 그걸 해낸 감독이 없을 뿐입니다. 허정무 때도 감독이 잘 해서 16강 간 건 아니었어요.

 

 우리나라 선수들 잘했습니다. 그렇지만 신태용 유임은 반대입니다. 그는 적당히 박수 받으며 떠나면 됩니다. 물론 암울 그 자체였던 홍명보와 슈틸리케보다는, 그는 명백히 나은 감독이었습니다.

 추천 브금

 

https://youtu.be/1NNy289k6Oc




 자유한국당은 현재 전 인천시장 안상수가 혁신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위한 준비위원회 위원장이라는 묘~한 자리를 맡은 상황입니다. 전 인천시장 안상수를 창원시장 안상수(보온병 상수)와 구분짓기 위해, 빛상수라고 하겠습니다. 그에겐 빚상수라는 멸칭이 있는데, 나는 그것이 부당한 데마고기라고 생각하며, 그만큼 인천의 미래를 생각했던 인물은 없었다고 생각하기에 발음은 같지만 뜻은 다른 빛상수로 부르겠습니다.

 

 여하튼 빛상수는 4년 전인 2014, 박근혜최순실 청와대에 의해 희생당한 인물입니다. 2010년 빚더미 인천을 만들었다는 언론 플레이를 앞세운 송영길에게 패배하고, 이후 민주당 쪽에서 법적인 공격을 여럿 받았던 빛상수였습니다만 모두 법정에서 승소한 후였지요. 그러고 송영길에 대한 리벤지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최순실이박근혜가 친박 정치인 유정복을 꽂으면서 안상수가 밀려나갔습니다. 유정복 카드는 당시 정치적으로는 성공적인 카드였고, 송영길을 상대로 이겼지요. 그래도 빛상수는 유정복에 협조했고, 2016년 총선에서 새누리당 탈당 후 무소속으로 당선되는 방식으로 재기합니다. 당시 빛상수를 뽑은 강화, 동구, 중구, 옹진 주민들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민주당의 데마고기만 듣고 현실은 잘 모르니 그런 것입니다.

 

 내 생각에 빛상수는 비대위 준비위원장을 맡을 자격이 됩니다. 그렇지만 역시나 반발이 많습니다. 일단 친박들은 빛상수한테 한 게 있다 보니 빛상수를 반길 수가 없고요. 내가 참으로 싫어하는 정치인 중 한 명인 심재철은 이 때가 기회인 듯 당권 잡아보려고 빛상수를 공격하고 나섰는데, 빛상수가 권력 쥐면 심재철 좀 당에서 쫓아내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심재철 볼 때마다 자유한국당에 투표할 생각이 사라지거든요.

 

 여하튼 사라져가는 권력을 붙들고, 추하게 내부다툼을 계속하고 있는 자유한국당을 보자면 어지간한 사람은 혐오감을 가지게 됩니다. 그런 자유한국당에서 빛상수정도면, 현재 낼 수 있는 최고의 카드니까 좀 친박이건 심재철이건 꼭 필요한 거 아니면 노이즈 좀 내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빛상수가 비대위원장 하겠다는 것도 아니잖아요.

 

 빛상수는 욕을 먹건 어쩌건 진지하게 미래 생각은 하는 인물입니다. 포퓰리스트들처럼 눈앞의 일들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빛상수에게 거는 기대는 큽니다. 그를 응원합니다. 그러나 비대위원장은 그가 아니고, 누가 비대위원장이 되는지는 봐야 할 일이겠지요.

홍장표 경제수석 경질

정치 2018. 6. 26. 12:49 Posted by 해양장미

 추천 브금

 

https://youtu.be/oUpTyAY_lbA

 

 

 기사는 여기서 보시고요.

 

http://news.naver.com/main/ranking/read.nhn?mid=etc&sid1=111&rankingType=popular_day&oid=025&aid=0002831736&date=20180626&type=1&rankingSeq=9&rankingSectionId=101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32&aid=0002878163&viewType=pc



 

 아집 밀어붙이다가 안 되니까 국민들 개돼지 취급하던 홍장표가 드디어 경질되었습니다. 이 좌파정권의 폭주에 김동연 부총리가 잘려나가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소득주도성장주의의 코어인 홍장표가 결국 밀려났습니다. 이 정권 돌아가는 것 중 처음으로 마음에 든 일이네요.

 

 문빠들, 좌파들 열심히 정신승리중인 것 같긴 합니다만 이는 명백하게 소득주도성장주의의 실패를 의미합니다. 소득주도성장은 학술적으로 이론이라 할 수 없습니다. 잘 봐줘도 주의또는 가설’이고요. 좀 더 엄밀한 기준에서 보면 '유사과학'이라 하는 게 더 정확합니다. 경제학적으로 볼 때 뻔히 안 될 걸 국민들 가지고 실험한 거지요. 엄청나게 많은 피해자가 나온 끝에 일단은 그 폭주가 조금 꺾이나 봅니다.

 

 이번 정권은 학자 타이틀만 걸고, 학계에선 논리적으로 밀려서 무시당하고 있는 비주류들 모아서 아집 밀어붙이니 잘 될 리가 없습니다.

 

 누가 문재인의 아집을 꺾게 만들었을까요? 누군지 몰라도 아주 큰일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한 문재인의 정치적 판단 중 이번 판단이 최고입니다. 내가 문재인의 판단을 긍정적으로 볼 날이 이렇게 빨리 오게 될 줄 몰랐습니다.



 

 오늘만큼은 우리 이니 참 잘했습니다.

 

 문재인은 어차피 경제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는 사람입니다. 지식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좌편향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제대로 판단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번만큼은 문재인조차 긍정적 효과가 90%’라는 홍장표의 정신승리가 거짓임을 간파했나봅니다. 아무리 멍청해도 문재인 머리가 박근혜보다는 조금 나은가보네요. 박근혜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상황 파악 못하던데요.

 

 물론 몇 명 잘려나갔다고 갑자기 경제 정책이 좋아질 거란 기대는 거의 없습니다. 아직도 최종구는 금융위에 있고, 장하성이나 김상조도 영~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민주당의 본질적 좌파스러움이 변하지도 않겠지요. 그래도 가장 크고 위험한 게는 푸른 기와집을 떠났네요.

 


 추천 브금인 남동구민의 노래 링크입니다.

 

http://www.namdong.go.kr/main/introduction/present/song.asp



 이전 화


1. 계양구 - 1) 계산, 작전동 일대
1. 계양구 - 2) 외곽 및 산악지대
2. 부평구


 



 부평에서 만월산 터널을 지나 구월동에 도착하면, 분위기와 공기가 확 달라집니다. 옛날부터 부평과 인천은 다른 도호부였고, 행정구역을 합친 후 오랜 시간이 지나 이제는 점점 하나의 도시로 융합하고 있긴 합니다만, 부평과 달리 구월엔 바닷바람이 분다는 점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구월동 쪽은 꽤 바다와 떨어져 있지만 나의 주관으로는 바람이 불면 바다 냄새가 풍겨오곤 합니다.



 

 남동구 구월동은 현재 인천의 새로운 제1도심이며 가장 번화한 곳입니다. 90년대까지 인천의 원도심은 동인천이었지만, 인천지하철 1호선이 깔린 후 구월동 일대로 옮겨오게 된 것인데요. 이에 대해서는 지난 포스트들에서도 다룬 적이 있습니다만 매우 드문 현상이긴 합니다.




 

 많은 사람들 - 거의 모든 사람들 - 이 남동구의 남동을 南東(South-East)겠거니 생각합니다. 실제 위치가 인천 남동쪽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실제 한자는 南洞이며, 조선 시대 이 지역 지명으로 남촌면’, ‘조동면이 있었기 때문에 일제 때 한 글자씩 따서 부천군 남동면으로 행정구역을 바꾼 것입니다. 그 땐 부천군의 남동쪽이 아니었지요. 이후 인천에 재편입되었지만 처음부터 이 지역이 남동구로 분구된 건 또 아니었습니다.

 

 1949년부터 1988년까지 현재의 인천 남구, 남동구, 연수구는 하나의 거대한 구로, 그냥 남구였습니다. 그러다 88년에 남동구가 분구되면서 옛 남동면 이름을 그대로 쓴 것입니다.




(이 남동구 마스코트는 이름이 '소래미'라고 하네요.)

 

 이 이름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고, 이름을 구월구로 바꾸려는 시도가 있습니다만 아직 본격적이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이 남동구라는 이름을 방위 이름으로 생각하고, 실제 남동쪽에 있다 보니 별로 문제의식도 없고요. 구월이라는 이름은 현재의 만월산에서 비롯된 것으로, 조선 시대 땐 만월산을 주안산이나 구월산으로 불렀습니다. 이 구월산이 부평과 인천, 두 도호부를 나누는 기준이었지요. 현재의 구월동 일대는 구월산 아래의 낮은 구릉지대에 자리 잡은 몇 개의 자연부락이었고요.



 

 인천의 자치구들 중 이런 경우가 많긴 한데, 남동구도 보통 사람들의 인식보단 상당히 넓습니다. 총면적이 57.05㎢라 계양구보다 더 넓고, 인접한 부천시 전체 면적보다도 넓습니다. 그렇지만 흔히 사람들이 남동구라 생각하는 간석-구월-만수동의 넓이는 그리 넓지 않은데, 전체 남동구 면적의 1/3 정도밖에 안 됩니다. 남동구에는 거대한 그린벨트와 인천대공원이 포함되고, 꽤 넓은 남동공단(남동인더스파크)도 남동구에 자리잡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독립적인 신도시인 논현동과 서창동, 그리고 소래포구까지 남동구에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남동구는 독립 자치도시 하나만큼 넓은 곳이고, 그 안에 여러 요소들이 있습니다. 오래 된 주택가부터 신도시, 공단, 번화가, 문화 시설, 관공서, 대공원, 농경 지대, 포구 및 어시장 같은 것들이 하나의 구에 다 있습니다. 인구도 많은 곳이라 올해 2월부터는 인천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자치구가 되었습니다. 현재 인구는 약 54만 명에 육박합니다. 인구 증가세에 있는 지역이고 빈 땅도 많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번영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큰 면적과 많은 인구로 인해 분구하자는 의견이 종종 나오기도 하는데, 이 의견을 검토할 때 문제는 자르기가 애매하다는 것입니다. 인구는 좁은 간석-구월-만수동 쪽에 집중되어 있는데, 이쪽과 다른 지역을 분구시키긴 어렵습니다. 그리고 이 지역을 제외하면 딱히 자를 만한 기준이 없습니다. 논현동은 번화한 동네고 사람이 꽤 살긴 하지만, 이 쪽의 인구는 약 10만 명 정도에 불과해서 분구시킬 만한 대상이 못 됩니다.



 

 정치적으로 남동구는 18대 총선까지만 해도 한나라당 텃밭이었습니다. 이윤성이 남동구 갑에서 4선을 했었지요. 그런데 2012년부터는 민주당계 지지로 바뀌었습니다. 여기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신도시 지역이 늘어난 것도 하나의 큰 이유가 되었습니다. 남동구는 앞으로도 워낙 개발할 수 있는 곳이 넓기 때문에, 한국 정치의 판세가 바뀌지 않는 한 계속 민주당계가 강세일 확률이 높습니다.




 간석동은 남동구의 서북단이며, 실제 생활권역은 북쪽에 인접한 부평구 십정동까지입니다. 간석이라는 이름은 바위 사이인데, 동암과 석바위 사이라는 뜻이라고 하면 인천 사람에겐 와 닿을 만한 설명이 됩니다.

 

 옛날에 주안산(=구월산, 만월산) 일대에서 구리가 채굴되었다고 하는데, 동암은 구리 광산 정도의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라 합니다. 동암은 역 이름에 쓴 것 외에는 많이 쓰는 지명은 아니고 그 일대는 십정동이며, 옛날엔 동암역 서쪽 및 간석역 북쪽은 바닷가였습니다. 석바위는 현재의 주안 일대인데, 암석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 합니다.



 

 경인선 동암역과 인천1호선 간석오거리역은 상당히 가까워서 통로만 길게 뚫을 수 있으면 환승역으로 쓸 수 있을 정도입니다. 만일 부평역이 가깝지 않았다면 환승역이 되었을 거라 생각하고요. 역을 나온 후 도보로 다이렉트 무료 환승이 안 되는 게 문제라면 문제입니다. 환승 시스템을 이용하려면 굳이 1정거장을 버스를 타야합니다. 동암역에서 내려서 간석오거리로 환승하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개선이 없는 것 같습니다. 주안과 인천시청을 잇는 인천 2호선이 생긴 후에는 더더욱 그런 환승은 필요가 거의 없어졌습니다.



 예전에 동암역 일대는 꽤 번화한 곳이었는데, 서구 구도시 지역에서 경인선 1호선을 탈 때 이용하게 되는 역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버스와의 경쟁에서 밀려 천천히 이용자수가 줄다가, 최근엔 인천지하철 2호선이 생기면서 상황이 완전히 변해버렸습니다. 서구에서 인천2호선을 타고 바로 주안역에서 경인선 1호선으로 환승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2011년에는 일일 이용자수가 6만 명에 육박했는데, 최근에는 4만 명 정도밖에 안 됩니다.


 

 인천 십정동-주안산업단지 일대의 구 경계는 복잡한데, 남동구 간석동의 서북쪽 경계는 간석역 북쪽의 학교들과 홈플러스, 그리고 홈플러스 서쪽의 공단 일부를 포함하는 첨단이 있습니다.


 

 경인선 동암역에서 간석역 사이엔 철도가 90도로 꺾이는, 소위 동암드리프트라 불리는 곡선구간이 있고, 이 동암드리프트 쪽부터 폭이 약 100미터쯤 되는 중앙근린공원이 남쪽으로 약 2.8km 이어집니다. 인천시청과 예술회관 및 버스터미널 앞에 있는 도로 사이의 공원이 이것입니다. 이게 꽤 깁니다. 총 면적은 넓은데 폭이 좁고, 공원 중간 중간에 도로가 뚫려 있기 때문에 체감면적은 그리 넓지 않습니다만 남동구 도심지 및 번화가에 있는 꽤 큰 녹지입니다. 인천예술회관이 중앙공원 안에 있기도 합니다.



 이 중앙공원이 남동구와 남구(미추홀구)의 경계는 아닙니다만, 일반적인 생활권 느낌으로는 중앙공원 서쪽은 주안이고 동쪽은 간석 또는 구월 정도로 뭉뚱그려 받아들여지는 느낌은 있습니다. 실제로는 중앙공원 서쪽 일부까지 간석 및 구월동입니다.


 

 구월동은 주거지역이면서 관공서 및 문화시설과 번화가 및 인천에서 가장 큰 3차 병원인 길병원을 포함합니다. 인천터미널 근처에서 구 경계가 있어 신세계백화점과 버스터미널은 남구 관교동입니다만, 통상적으로는 거기까지 구월동 일대로 인지되기도 합니다간석-구월동 주거지역의 인구 밀집도는 인천에서는 매우 높고, 인천에서 가장 고급 차량을 보기 쉬운 곳입니다.



 간석동과 구월동 경계엔 간석동 금호어울림 - 간석래미안자이 - 구월 힐스테이트 - 롯데캐슬골드의 거대 고층아파트단지가 있는데, 넷 합쳐서 총세대수가 무려 12625세대에 이르며, 특히 구월동 힐스테이트와 롯데캐슬 두 단지만 그리 넓지 않은 면적에 8460세대라 외부와는 아예 다른 하나의 작은 도시 같은 느낌까지 줍니다. 이 아파트단지 외부는 오래 된 주택가고, 좁은 도로와 인접해있으며, 아파트 전반이 낮은 언덕 지형에 매우 빽빽하게 지어진데다 방음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격리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롯데캐슬골드는 이름까지 캐슬이라, 저긴 진짜 성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합니다.



 번화도가 높은 것과는 별개로, 구월동의 오래 된 주거지는 평범하게 낡은 곳이 많습니다. 주거비가 저렴한 편인데 비해 교통은 좋다 보니, 오래 전부터 살던 사람들 외에 인구유입도 많습니다. 최근에는 송도국제도시가 발전하면서 구월동에 인구가 유입되기도 했는데, 송도에 대학이 여럿 들어왔지만 거기엔 대학생이 자취할만한 주택이 없고 물가도 비싸다 보니 인천 1호선으로 쉽게 오갈 수 있고, 놀기도 좋게 번화한 구월동에 거주하는 청년들이 늘어난 것입니다.



 구월동 모래내시장은 현재 인천에서 가장 번화한 재래시장입니다. 다만 실제 장사가 가장 잘 되는 곳은 시장 내 준대형 마트입니다. 요새 재래시장이 전반적으로 다 그렇습니다. SSM과 대형할인마트 같은 게 규제되는 동안, 대기업 계열이 아닌 큰 마트들이 곳곳에 생겨서 잘 나가고 있습니다. 물론 소규모 상인하곤 상관이 없지요. 오히려 소규모 상인한테 상관이 있는 곳은 대형할인마트입니다. 거기 입점을 많이 하니까요.

 

 사적인 일화입니다만 몇 년 전에 모래내시장에서 그리 크지는 않은 참다랑어 선어를 한 마리를 통째로 싸게 사서 회를 떠먹은 적이 있는데, 대체 어째서 참다랑어가 바닷가도 아닌 구월동 시장에서 마리째 통째로 저렴하게 팔리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만, 얼리지 않은 참다랑어가 크기에 비해 참 맛있다는 것과 혈합육은 영 먹을 게 아니라는 것과 참다랑어를 익히면 꽁치만도 못한 맛이 난다는 걸 잘 알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구월동의 번화가는 예술회관역과 인천터미널 역 사이로, 구월동로데오거리로 불리며 롯데와 신세계 두 백화점을 끼고 있습니다. 구월동 신세계백화점은 영업이 잘 되는 지점입니다만, 부동산을 롯데그룹이 가지고 있고 재계약을 거부하여 곧 롯데그룹에 넘어갈 예정입니다. 신세계 백화점 뒤편에는 구월농산물도매시장이 있는데, 이 농산물도매시장을 남촌도림동 쪽으로 이전하고 롯데그룹이 구월아시아드 상권까지 이어지는 쇼핑몰을 개발할 거라 알려져 있습니다.


 

 구월4동쪽에선 남부의 남촌도림동으로 이어지는 그린벨트가 시작됩니다. 이 그린벨트 일부를 개발해서 구월아시아드선수촌 아파트단지가 들어섰습니다. 한 때 악명 높던 인천 부채 중 일부분은 이 곳에 투자되었던 것입니다. 지금은 개발이 잘 되어서 구월동 외곽 신도시로 잘 자리잡아가고 있습니다.




 만수동은 간석동 및 구월동의 동쪽으로 제법 넓은 주거지역입니다. 만월산터널이 있는 만수 3동쪽엔 인천가족공원에서 이어지는 폐광, 부평은광이 있는데 공원화시킨다고 합니다.



 이번 지선에서도 이것에 대한 말이 나왔던 것 같습니다. 다만 부평은광을 공원화시킨다는 주체는 부평구 쪽인 것 같습니다.



 

 남동구청이 남촌도림동과의 경계 부근, 만수동에 있습니다. 시청이 번화한 쪽에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좀 외진 데 있고요. 만수6동쪽은 90년대 초중반에 지어진 고층아파트가 들어서 있으며 만수 3지구라고도 불리는데, 타 지역과는 분리된 지형에 있는데다 다른 데선 살짝 보기 힘든 독립적인 분위기가 있습니다. 90년대 초중반 고층아파트지구의 분위기가 어느 정도 그대로 남아있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만수동 사람들은 경인선을 이용할 때 주로 부천 송내역을 이용합니다. 송내역은 인천과 부천의 경계에 있는 역이고, 남쪽은 바로 부평구 외곽 일신동입니다. 부평구 쪽에서는 일신동 현지인이 아닌 한 송내역을 굳이 이용할 이유가 없는 반면, 남동구 만수동/장수동/서창동에서는 접근성이 좋은 편이라서 송내역 남쪽은 행정구역만 경기도 부천이지 실제론 인천 남동구 생활권입니다. 만수동 쪽을 다니는 간선버스들은 송내역으로 많이 다니고, 인천 남동구 정치인들은 선거철이 되면 송내역 남쪽에서 유세를 합니다.



 만수동 북동쪽에는 외곽순환도로 장수IC가 있는데, 단언컨대 전국 최악의 정체구간입니다. 잘못된 도로설계와 인천 남동구와 부천 송내 일대의 높은 번화도로 인해 도무지 답이 없는 교통정체구간이 만들어졌습니다.

 

 사적인 이야기입니다만 초보운전 시절 나는 불행하게도 장수IC를 자주 지나다녔는데, 운전 실력이 빨리 느는 효과는 있었지만 정말로 권장하고 싶지 않은 일입니다.



 

 장수IC는 만수동 동쪽의 무네미로를 지나 곧바로 영동고속도로 및 서창JC로 이어집니다. 영동고속도로의 시작점이 만수동 동쪽에 있습니다. 이 지역에서 제2경인까지 세 고속도로를 탈 수 있습니다.




 이 간석-구월-만수동 일대를 인천지하철 1호선과 2호선이 교차해 지나갑니다. 환승역은 인천시청역이고, 2호선의 기점과 차량기지가 만수동 동쪽, 장수서창동에 있습니다.



 인천 2호선은 인천광역시 규모에 어울리지 않는 2량 경전철인데, 나의 예상대로 개통 직후부터 서울 9호선 수준으로 미어터지고 있고 시 측에서는 증차로 대응 중입니다만, 결국은 4량으로 증량하는 게 불가피할 것 같습니다. 나는 경전철에 기본적으로 회의적인데, 인천같이 발전 중인 대도시에 경전철을 깔 경우 당장은 예산이 좀 적게 들어갈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잃는 게 많습니다. 특히 인천 2호선 같은 경우는 유모차나 휠체어의 출퇴근 시간 탑승이 금지이며, 자전거는 아예 금지라서 문제입니다.



 

 게다가 이미 경전철로는 구간이 꽤 긴데, 향후 북쪽으로는 고양시까지 연장안이 나온 상태고, 동쪽으로는 적어도 광명까지는 연장될 가능성이 높아 경전철로 깐 게 처음부터 잘못이라는 생각입니다. 특히 최근에 서해선 소사원시구간이 깔렸는데, 인천 2호선 기점 운연역과 서해선 신천역은 겨우 2.4km밖에 떨어져있지 않습니다. 이 정도 거리면 별 문제가 없는 한 필연적으로 이어지게 되어있습니다. 경전철을 깔았을 때 가장 큰 문제는 그 지역이 아무리 발전하고 연장되고 수요가 늘어도 다시 중전철로 바꿔 까는 게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는 데 있습니다.

 


월드컵 경기가 끝난 후

정치 2018. 6. 24. 19:36 Posted by 해양장미

 영상은 여기서 보시고요.

 

https://youtu.be/QL0ngFHBGA8

 

 문재인, 김정숙 부부가 기자들과 함께 락커룸에 들어가 선수들을 세워놓고 위로하였습니다.


 

 이 장면에 대해 이런저런 말도 많고 각자 보는 시각도 다른데요.

 

 나의 판단기준에는 민폐입니다. 정치인이 나쁜 의미로 정치인 짓 한 거고요. 경기 다 뛰고 나면 저렇게 맞춰서 서있기도 힘듭니다. 지치고 정신적으로 힘든 선수들, 저렇게 세워놓고 윗사람 왔다고 모양새 낸 거지요. 저런 건 탈권위적인 게 절대 아닙니다. 대통령인 그가, 패전 이후 저렇게 방문한다는 것 자체가 선수들에게는 불편할 수밖에 없는 행사가 됩니다.

 

 문빠들은 문재인을 왕처럼 생각하고 열광하기 때문에, 문재인 같은 윗사람이 저렇게 하는 걸 선수들이 당연히 좋게 받아들여야 하고, 훈훈한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재인을 비판하는 걸 부당한 공격이라고 생각하지요. 그렇지만 그런 사고방식은 절대로 민주적인 건 아닙니다.

 

 물론 사고방식이 민주적인 사람이 문빠가 될 수는 없지요. 그들은 가장 권위주의적이고, 민주적인 것과는 가장 거리가 먼 사고방식을 가진 부류입니다.

 

 만일 문재인이 진짜로 좋은 윗사람 행세를 하고 싶었다면, 선수들 저렇게 세워놓을 거 없이 그냥 기습적으로 들어와서 잠시 다독거려준 다음에, 봉투 하나 두고 가면 됩니다. 이건 사회 어디서나 비슷하게 적용됩니다.

 

 문재인이 아니라 다른 어떤 대통령이라도 저렇게 국가대표팀이 패배한 직후, 선수들을 세워놓고, 카메라와 함께 들어와서, 장면을 연출하면 나는 좋지 못한 행동이라고 비판할 것입니다. 저런 행동에서 이익을 얻는 사람은 문재인 뿐입니다. 어디까지나 정치적인 연출입니다.

 

 많은 한국 사람들은 대통령을 마치 왕과 같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 민주정에서 대통령은 국가원수긴 하지만 본질적으로 행정부의 장에 불과합니다. 민주적인 사람일수록 이 차이를 잘 이해하고, 그에 맞는 정서를 가집니다. 그러나 한국엔 대통령을 그저 대통령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한국의 민주정은 아직 갈 길이 멉니다.

김종필을 생각하며

정치 2018. 6. 23. 13:14 Posted by 해양장미

 추천 브금

 

https://youtu.be/Wxw2fnQn8YI

 



 3김 중 마지막 생존자였던 김종필이 타계하였습니다.

 

 그는 뛰어난 정치인이었고,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근래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된 청년들은 그에 대해 성급하고 단편적이며 부정적인 판단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지만, 그는 복잡하고 다면적인 인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박정희의 공이라 생각하는 건 사실은 많은 부분 김종필에게 돌아가야 합니다. 박정희가 그토록 권력욕을 부리지 않았다면, 김종필은 박정희보다 나은 지도자가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김종필의 부정적인 면은 근래의 민주당도 거의 유사하게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차라리 김종필이 훨씬 신사답고 사려 깊고 도덕적이었지요. 김종필보다 민주당 운동권들이 덜 독재를 사랑한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3김 중 김종필만이 여자관계가 깔끔한 애처가였고 가족들 비리가 터지지 않았습니다. YS, DJ와도 꽤 가까웠고, DJ와 가깝지 않았다면 DJP 연합은 없었을 것입니다.

 

 김종필은 5.16의 주역이었습니다. 박정희보다 김종필이 5.16을 주도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당시 그런 1인 장기 독재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박정희와 친인척 관계였고 가까웠으며 박정희 정부의 핵심 요인이었지만, 3선 개헌과 유신은 김종필의 뜻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유신 정권 아래에서 김종필은 강한 권한이 있는 책임총리를 맡았으나, 원하지 않는 자리였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지 75년에 박정희에게 큰 소리로 따지면서 징징까지 시전하면서 그만뒀습니다. 이후 박정희가 김재규의 총에 맞자 YS, DJ와 직선제 개헌에 합의했고, 제대로 된 대통령이 되고 싶어서 임시 대통령직엔 출마를 안 해 최규하가 대통령이 되었는데, 그 바람에 1212가 터지고 신군부한테 당했습니다.

 

 만일 박정희가 3선 개헌을, 유신을 강행하지 않았다면. 또는 김종필에게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주지 않았다면 최소한 신군부는 없었을 것입니다. 김재규가 박정희를 쏘던 시점까지 김종필이 총리였다면, 전두환이 쿠데타를 일으킬 상황은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전두환의 신군부는 몇 년 지속되지 않았지만 그 시기는 우리 시대에 끔찍한 문제를 안겼습니다. 현 민주당계-진보계 수뇌인 NL/PD 학생운동권이 탄생한 게 그 시기거든요. 신군부 쿠데타가 아니었다면 그런 끔찍한 게 나올 일도 없었습니다.

 

 이후 김종필은 DJP연합에 성공하여 내각제 개헌 후 집권에 가까워집니다만, 결국 김대중과 뜻이 어긋나고 2000년 총선에서 패배하면서 야심과 멀어집니다. 그리고 그의 정치는 2004년에 끝나는데, 노무현 탄핵 정국에서 그는 자민련 비례 1번으로 나섰지만 - 여성이 아닌 남성인 그가 1번이었습니다. - 자민련이 전국비례 3%를 못 얻어서 그의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끝나고 맙니다.

 

 그는 박정희 시대의 실무적인 업적의 주역이며, 한 개인으로는 깔끔하고 멋지며 지적인 예인이었습니다. 5.16을 그의 과오라 할 수는 있으나, 개인적으로는 5.16에 대한 주책임은 장면과 윤보선에 있다 생각하는 쪽입니다. 그렇게 무능하게 당하는 정권이 나라를 지킬 수는 없습니다. 김종필과 박정희가 권력욕은 있어도 사회와 국가에 대한 악의는 없었기에 다행입니다. 바꿔 생각하면, 당시 상황은 박정희보다 훨씬 나쁜 놈이 국가권력을 탈취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김종필은 다른 정치인들보다 도덕적이었고 유능했습니다. 김영삼도, 김대중도, 노무현도 가족들이 비리를 저지르고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대통령과 대통령이 아니었던 자의 권력 차이가 있다고는 하지만, 김종필만이 그런 게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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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지역 소개 - 2. 부평구

사회 2018. 6. 22. 23:58 Posted by 해양장미

 브금. 부평구민의 노래.

 

http://www.icbp.go.kr/open_content/file/symbol_song2.wav

 


 전편은 다음 링크로


인천 지역 소개 - 1. 계양구 - 1) 계산, 작전동 일대

인천 지역 소개 - 1. 계양구 - 2) 외곽 및 산악지대




 계양구를 이어 부평구 소개입니다.



 

 인천 부평구는 인천 외 다른 지역에도 어느 정도 이상 알려진 구로, ‘부평이라 하면 현대에는 부평역 일대 및 부평동을 뜻합니다. 조선 시대에 부평의 중심은 계양구 계산동이었지만, 경인선 전철이 깔린 후 시간이 지나면서 부평역 일대가 중심지화된 것이지요.

 

 90년대 중반까지 같은 구였던 계양구가 도서지역을 많이 포함한 베드타운이 주인 반면, 부평구는 연담화된 메갈로폴리스의 한 중심지이면서, 교통의 요지이며 주거 상업 산업이 모두 발달한 곳입니다. GM대우 인천공장이 부평구에 있고, 옛날엔 삼익악기 공장도 이 곳에 있었습니다. 인천에서 가장 땅값이 비싼 곳도 부평구에 있습니다.

 

 부평구 지역의 역사는 좀 복잡한데, 간단하게만 설명하면 본래 조선 시대엔 부평도호부에 속했던 곳이 일제 이후 부천군이 되었었습니다. 이 땐 현 인천 중구, 동구 일대를 제외한 부평과 인천지역 모두를 부천군으로 묶었었는데요. 부평역 주변은 1940년대에 미쓰비시 공장이 들어서면서 다시 인천에 편입됩니다.


 

 이 시대에 미쓰비시가 현 부평구 지역에 끼친 영향은 아주 컸습니다. 어두운 역사인 면도 있었지만, 번영도 함께했었지요.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일제가 망하고, 미쓰비시가 떠나고, 전쟁이 터지면서 한동안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후 1970년대 들어서야 부평공단이 발달하면서 다시 번화한 곳이 될 수 있었습니다.

 

 계양구 이야기할 때도 다뤘지만 1980년대까지 부평-계양 일대는 많은 부분이 농경지였습니다. 타 인천지역과는 달리 평야지대이면서 하천도 발달해 있는 지역이었지요. 비가 많이 오면 굴포천이 범람해서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었는데, 예전부터 수해를 많이 입던 지역이기도 합니다. 옛날에 계양-부평 일대 농경지가 어떤 곳이었는지 감 잡을 수 있는 옛 뉴스를 하나 링크할게요.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87/1794480_19322.html

 

 옛 기록들을 보면 계양-부평 일대의 범람은 적어도 고려 시대 때부터는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이 문제는 경인아라뱃길을 공사한 후에야 거의 완전하게 해결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서구 다룰 때 이야기를 좀 더 할게요.


 

 1948년에 부평 미군 기지에서 찍었다는 사진입니다. 저 멀리 아마도 계양산인 것 같은 산까지 쭉 평야지요. 원래 부평은 이런 지대였습니다. 그렇지만 산업화 이후 부평은 완전히 다른 곳이 됩니다.


 

 1980년대 중반부터 부평구에는 고층아파트가 다수 생겨났습니다. 1기 신도시보다 빠른 시점에 고층아파트 단지가 크게 들어서면서 신도시화 되었던 것이지요. 이 때 인구가 급증했고, 번화도가 굉장히 높아졌습니다. 1990년대에 부평구는 번화하고 시끄럽고 항상 길이 막히는 곳이었는데, 이 때 사실 길이 막혔던 이유 중 하나는 인천지하철 1호선 공사 탓이었습니다.

 

 1990년대까지 인천의 중심은 동인천과 주안이었고, 부평역 일대는 그 때도 번화했지만 부도심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인천지하철 1호선 공사가 끝나고 동인천 일대가 쇠퇴하면서 부평과 남동구 구월동 일대가 도심화됩니다. 특히 부평은 경인선 1호선과 인천지하철 1호선이 교차하는 유일한 역이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번화해져갔습니다. 2000년대부터는 부평과 구월이 인천의 2대 도심이 되었으며, 부평역 인근 상권은 인천에서 가장 비싼 땅값을 형성한 곳이 되었습니다.


 

 보통 인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부평구의 넓이는 좀 넓습니다. 외곽 쪽이 사람들이 잘 모르는 오지여서 그런데요. 북서쪽으로 인천 나비공원 쪽, 청천 1동에 속하는 작은 분지가 있고요. 북동쪽으로는 삼산도매시장 동쪽, 서운JC 남쪽으로 농경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남동쪽으로는 인천시립공설묘지 및 광학산, 거마산의 북쪽 많은 부분과 부천 송내역 남쪽 폴리텍대학 인천캠퍼스까지 부평구에 속합니다. 남서쪽으로는 동암역 부근이 부평구에 속하는데, 행정구역만 그렇지 이 쪽은 부평 생활권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부평 생활권은 행정동 부평 3동에 속하는 백운역까지이며, 백운역 남쪽부터는 간석 생활권으로 봅니다. 옛날부터 십정동 쪽은 부평도호부가 아니기도 했고요.


 

 부평의 지형은 서-남쪽으로는 한남정맥에 속하는 산맥으로 막혀있고, 북쪽으로는 경인고속도로로 계양구와 나뉘며, 동쪽으로는 부천과 연담화 되어있는 지형입니다. 본래 서-남쪽의 산에서 조금 내려가면 곧 바다가 나왔었기 때문에, 부평 서쪽의 서구는 그리 크지 않았고 옛날에는 같은 부평도호부에 속했으며 1980년대까지는 같은 북구로 분류되었었습니다만 지금은 간척사업과 검단 편입 때문에 서구가 훨씬 커졌고, 남구(미추홀구)쪽으로 연담화가 되면서 생활권도 좀 나뉘었습니다. 그래도 석남동, 가좌동 쪽과 부평구는 아주 왕래가 없는 편은 아닌데, 서구의 서쪽과 남쪽은 거대한 공장지대이기 때문입니다.

 

 부평의 지역은 북서쪽의 커다란 공장지대를 포함하는 청천동, 백마장으로 불리던 서쪽의 산곡동, 동북쪽의 삼산동, 삼산동과 청천동 사이의 갈산동, 부평역 인근의 부평동, 부평동 동쪽의 부개동, 동남쪽 외곽의 일신동, 그리고 동암 근처의 십정동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동에 따라 분화가 잘 된 지역이라 부평 사람들은 XX동이라 그러면 대략 어느 쪽인지 아는데, 청천동은 동 이름보다는 공단 쪽이라고 아는 사람들이 많고 부개동은 정확한 범위를 모르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또한 십정동의 경우 의외로 이름만 들어봤고 어딘지 모르겠다는 경우가 많은데, 백운역 다리 넘어서라고 설명하는 게 쉽습니다.

 

 청천동은 일부 지역이 과거에는 효성동이었습니다. 북구에서 계양-부평구로 분구되면서 고속도로 남쪽은 다 청천동에 들어가게 되었지요. 고속도로가 중간을 가로지름에도 효성동과 분위기가 비슷하고 실질적으로 연담화 되어있습니다. 넓은 지역입니다만, 공장지대가 많은 부분을 차지합니다. 안쪽 주거지역엔 꽤 오래 된 건물들이 남아있기도 합니다. 산곡동과 함께 재개발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고요.



 과장 좀 보태 300만 인천 시민의 자랑거리라 할 수 있는 소성주를 만드는 인천탁주의 본사 및 제1공장이 청천동에 있기도 합니다. 생탁 좋아하시는 분은 인천에 오면 반드시 소성주를 드셔보시길 권장합니다. 인천 지역 내에선 거의 아무 데서나 구할 수 있는데, 인천을 벗어나면 잘 구할 수 없는 생탁입니다.

 

 산곡동은 아주 오래 전부터 백마장으로 불리던 곳입니다. 조선 시대 때는 말을 먹이던 곳이었다나요. 공식적인 이름에는 백마장을 잘 안 쓰기 때문에 토박이들은 백마장이라 하면 산곡동 일대를 떠올리는 반면, 인천에 온지 오래 안 된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옛날에는 산곡동이 꽤 번화한 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일부 지역은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면 굉장히 오래 된, 옛날 영화를 찍을 수 있을 만한 건물들을 볼 수 있지요. 인천광역시 공식 블로그에서도 백마장은 관광지로 소개 중이니, 여기서도 소개해보겠습니다. (클릭)

 

 지금은 청천동과 함께 산곡동도 꽤 넓은 지역이 재개발에 들어갔습니다. 역사의 흔적을 보고 기록하고 싶은 분들은 서둘러 청천동, 산곡동을 찾아가보시길 권장합니다.



 청천동 동쪽의 갈산동은 부평대로와 장제로라는, 부평구의 큰 두 대로를 사이에 둔 주거지역입니다. 삼산동과 함께 인천에서 드물게 하천이 지나가는 지역입니다. 계양구 계산동 쪽은 주거지역의 하천을 모두 복개한 반면, 부평구는 청천동 쪽 하천의 상류만 복개하고 갈산동 쪽은 그냥 공원화시킨 차이인데요. 결과적으로는 공원화시킨 게 더 좋았습니다. 아라뱃길 공사 이전에는 범람 위험이 있었지만 이젠 조절도 잘 되는 편이고, 공장 지대 옆의 주거지역을 조금 덜 삭막하게 만드는 데 성공한 것 같습니다.

 

 갈산동 동쪽에는 삼산동이 있는데, 90년대 초반까진 갈산동인 시절도 있었던 외곽 지역 느낌이었지만 신도시화 되면서 인천에서 송도 빼면 제일 집값이 비싼 동네가 되어버렸습니다. 삼산동과 부천 상동은 2000년대 이후에야 개발되었는데, 원래는 농경지로 분리되어있던 도시 지역이 양쪽에서 확장되면서 연담화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꽤 드문, 완전한 평야 지대의 연담화된 신도시이면서 서울접근성까지 좋다 보니 비싸질 수밖에 없게 된 것인데, 번화하게 이어진 신도시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광역자치단체가 다르다보니 갈등이 꽤 첨예화되고 있기도 합니다. 삼산체육관역 같은 경우 일부 출구는 인천광역시이고, 일부 출구는 경기도 부천시일 정도로 눈에 보이는 경계가 없지요.


 

 이 사진의 가운데 길 왼쪽은 인천 부평구, 오른쪽은 부천입니다.



 삼산동 남쪽, 부평구의 동남쪽 일대는 부개동입니다. 삼산체육관-굴포천 7호선 라인을 경계로 남쪽은 부개동, 북쪽은 삼산동인데 동서로는 평균 800미터 정도밖에 안 될 정도로 좁고 남북으로는 3km가 넘는 긴 동이라, 부개동 쪽에 거주하는 사람을 빼면 부개동 영역을 잘 모릅니다. 보통 사람들은 부개동을 남북으로 왔다 갔다 할 일은 없고, 인천과 부천을 오갈 때 지나가는 정도인데 동서로는 1블럭 밖에 안 되거든요. 그래서 부개동은 좁은 동이 아닌데도 많은 사람들은 부개동 하면 부개역 근처겠거니 정도로만 생각합니다. 실제로는 상동호수공원, 웅진플레이도시 서쪽은 다 부개동입니다. 그리고 부평동과 부개동의 경계는 굴포천역 주변을 제외하면 대체 무슨 기준으로 나눴는지 현 시점에서는 전혀 알 수가 없어서, 막상 지나가면 어디서부터 시작인지도 알기 어렵습니다. 그냥 주택가 한복판 골목길을 경계로 나뉩니다.


 

 부평구 남동쪽 외곽의 일신동은 행정동 일신동과 법정동 일신동이 좀 다른데, 법정동으로는 일신동과 구산동 두 구역인 게 행정동으로는 일신동 한 구역입니다. 실제 둘을 나누는 데 무슨 의미가 있나 싶으니, 행정동 일신동으로 묶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이 지역은 이름 들어본 사람도 별로 없고, 거기도 인천이었느냐 정도로 취급됩니다. 실제 대부분의 면적이 광학산, 거마산 쪽 군부대고 보통 사람들은 그 쪽을 부천 송내 쪽이라 생각하지, 인천일 거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인천 폴리텍대학이 있다 보니, 그걸 보고서야 여기도 인천인가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많지요.

 

 부평동은 부평구의 중심지이며 번화도가 상당히 높은 곳입니다. 상업지구가 매우 발달해있고, 주거지역도 많으나 좀 오래 된 아파트가 많은 건 단점입니다. 이런 문제 때문에 최근에는 부평구에 도시형생활주택이 좀 들어섰는데, 관련해서 말이 좀 나오네요. 대조적으로 계양구는 도시형생활주택이 들어오는 걸 거의 막고 있습니다.



 부평동에는 인천북구도서관이 있는데, 분구 이전의 흔적입니다. 최근에는 이름을 바꾸려고 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부평구청 건너의 인천세림병원은 예전 이름이 안병원이었는데, 부평구청이 들어서기 전부터 해당 지역의 랜드마크였기 때문에 한동안 부평구청 일대를 안병원 쪽이라 불렀습니다. 지금은 시간이 오래 지나서 그렇게 잘 안 부르는 것 같지만요. 같은 예로 계양구 계산삼거리의 홍진아파트가 있습니다. 랜드마크는 사라지고 나도 한동안 그 지역을 랜드마크 이름으로 부를 때가 있습니다.


 

 부평역 일대에는 유명하고 거대한 지하상가가 있습니다. 상당한 규모의 지하던전이라 마계인천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생기는 데 일조하기도 했지요. 옛날에 부평역 일대에 몇 개의 지하상가가 따로따로 생겼고, 그게 합쳐지면서 현재의 거대한 지하상가가 되었는데 출구 숫자가 33개입니다. 그나마 요즘에는 지도가 생겨서 길 찾기가 참 쉬워졌는데, 옛날엔 지도도 출구번호도 없고 생긴 것도 더 복잡해서 현지인이 아니면 길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부평역 일대의 분위기는 아주 젊습니다. 실제로는 장년과 노년도 많이 다니지만, 분위기로 보면 10대에서 20대 초반을 위한 번화가라 할 수 있지요. 지하상가에서는 저렴한 보세 의류를 많이 팔고, 토요일이 되면 주변 학교를 마친 학생들이 많이 몰려듭니다. 인천지하철 1호선이 생기기 전엔 주변 사람들 모두 부평에서 버스를 타고 움직였기 때문에, 그야말로 유동인구가 엄청나게 많은 곳이기도 했지요.


 

 부평역 주변엔 꽤 크고 오래된 시장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3개의 시장이 한 군데 있는 건데, 일반 이용자가 굳이 구분할 건 없고 크고 잘 되는 시장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백화점도 두 곳 있었는데, 현대백화점은 닫고 아울렛으로 바뀌었습니다. 부평 일대의 상권은 여전히 번화합니다만, 고급 상권은 연담화된 부천 상동 일대로 넘어가는 양상이 오랜 시간에 걸쳐 진행 중에 있습니다. 부천과 부평의 상권 다툼이 근래 꽤 있는데 이건 부천 이야기할 때 더 해보겠습니다.

 

 부평구는 정치적으로는 민주당계 우세지역입니다. 부평구가 생긴 이후 국회의원 당선기록을 보면 민주당계가 8, 자한당계가 5번 당선되었습니다. 근래 들어 민주당계 지지세가 점점 더 강해지는 경향이 있는데, 이 추세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습니다.


 

 지형적인 영향으로 인해, 부평역 일대는 북쪽이 발달했고 남쪽은 얼마 가지 않아 산지라 크게 번화하지는 못했습니다. 경인선 역도 정식 역사는 북쪽이고, 남쪽엔 옛날엔 간이역만 있다가 2000년대 들어서야 조금 개선되었지요. 다만 부평 일대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병원인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이 부평역 남쪽에 있습니다.


 

 동수역 일대는 처음 생겼을 때 부평 사람들이 거의 모두 그 이름을 다소 의아하게 생각했었습니다. 동수라는 지명을 아무도 몰랐거든요. 조선 시대에 동수쪽 일대의 행정명이 동소정면이어서 그렇게 되었다는데, 토박이가 그 일대를 부르는 이름은 사실 삼릉이었습니다. 미쓰비시 군수공장이 있던 지역이거든요. 미쓰비시 한자를 한국 발음으로 읽으면 삼릉입니다. 그런데 일제 기업 흑역사 이름을 역 이름에 붙일 수 없다고 반발이 있어서 조선 시대 이름을 가져온 거지요. 일단 역이 생기고 나니 동수 쪽이라고 부르게 되긴 합니다.



 부평의 경인선 1호선을 지나는 길은 영 교통이 좋지 않습니다. 경인선 지하화가 인천의 숙원사업 중 하나인 이유인데요. 부평구에서는 차를 타고 넘어갈 수 있는 길이 다섯 있습니다. 백운과 부개역 쪽에선 좀 넓은 고가도로를 타고 넘을 수 있고, 부평공원 남서쪽과 장제로 쪽은 경인선이 좀 높이 지나가서 굴을 뚫고 지나갑니다. 그리고 부평공원 동북쪽에서 동수 안쪽 골목으로 넘는, 좁은 남부고가로가 있습니다. 도보로는 부평역을 그냥 넘어갈 수 있습니다만, 부평역을 바로 넘는 도로는 없습니다.


 


 부평동과 십정동은 법정동과 행정동 경계가 좀 다른데, 문화권으로 생각하면 행정동 경계가 좀 더 그럴싸합니다. 경계 사이에 있는 백운역은 행정동으로는 부평 3동이고, 법정동 및 지번주소로는 십정동입니다. 윗 사진의 경계는 법정동 기준입니다.


 

 백운역과 부평삼거리역을 넘어가는 길은 고갯길입니다. 옛 인천도호부와 부평도호부를 나누던 고개고요. 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동암역과 십정동 일대는 행정구역으론 부평구지만 문화적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고, 적잖은 부평 사람들은 그 쪽은 다른 지역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부평삼거리역 근처, 만월산 위에는 인천시립공설묘지 및 시립승화원, 인천가족공원이 있습니다. 설명하자면 공동묘지, 화장터, 납골당입니다. 근래 인천 시민 중 누군가 돌아가시면 높은 확률로 찾게 되는 장소이지요. 인천에 많은 인프라를 의존하는 부천 시민들도 저렴하게 이용 가능합니다만, 이용 약정을 맺을 때 주고받기로 한 것에서 부천이 인천에 제공하기로 한 걸 잘 이행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인천 쪽에서는 불만이 꽤 있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부평구와 서구를 나누는 산악 지대는 북쪽에서부터 계양구 천마산과 이어지며 주요 봉을 원적산, 철마산으로 부르는데 이 철마산이라는 이름이 문제가 됩니다. ‘천마산철마산이 머지않은 곳에 있는데다 천마산을 철마산이라 부르기도 하다 보니 구분이 영 안 가거든요. 부평 쪽에서 천마산이라고 하면 또 원적산 남쪽의 철마산을 뜻할 때도 많고요. 이 산들은 제일 높은 곳도 200미터가 안 되지만, 교통을 방해하기엔 충분한 높이라 원적산은 유료터널로 뚫어놨고 철마산 쪽은 본격 고갯길입니다.

 

 부평구 남쪽은 만월산과 광학산(=만수산=이 산도 철마산으로 부르기도 합니다.;)으로 막혀 있는데 광학산 북쪽은 군부대고, 만월산은 유료터널이 뚫려있어 이 길을 통해 남동구로 빠르게 넘어갈 수 있습니다. 다만 인천의 산지를 넘는 세 터널인 원적산, 문학산, 만월산 터널은 하이패스가 안 되기 때문에 불만의 목소리가 많이 나오는 편입니다. 지나가는 거리에 비해 비싸기도 하고요.

 

 한동안 번화하고 인구도 쭉 늘어왔지만, 근래 부평구는 인구유출지역입니다. 최근까지는 부평이 인천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자치구였지만, 올해 들어 인구증가세인 남동구에 추월당했습니다. 부평구엔 이제 낡은 주택이 많고, 부천 상동과의 경쟁에서 상권을 조금 뺏기고 있기도 하거든요. 7호선의 부평구청 연장은 부평구의 교통을 개선되게 했지만, 상권에는 마이너스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인구유출 중이지만 인천광역시 차원의 배려를 받지도 못합니다. 신도시 지역과 원인천 지역 과제에 밀려 있으니까요.

 

 개인적으로는 부평이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인천광역시는 국제해양도시로 발전하고자 계속 추진 중이라, 바다에서 멀고 그럭저럭 살림이 괜찮았던 부평, 계양 쪽엔 관심이 별로 없습니다. 그나마 계양구는 시장을 둘이나 배출하기라도 했지 - 배출하고도 소외받긴 했습니다만 - , 부평구는 그런 것도 없었지요. 워낙 입지가 좋으니 알아서 커왔지만, 인천광역시는 부평구도 신경을 좀 써야합니다. 그나마 최근에는 청천동, 산곡동의 재개발이 추진되고 있어 부평 주거 낙후 문제도 어느 정도는 개선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습니다. 부평의 많은 문제들이 잘 풀리면 좋겠습니다.



지선 이후의 경인권 이야기

정치 2018. 6. 21. 22:38 Posted by 해양장미

 추천 브금


 https://youtu.be/SxsXalb3j_s


 

 이번 지선에서 경인권은 거의 전 지역이 묻지마 민주당 투표가 되어버려서, 구청장이나 군수까지 거의 다 민주당 정치인이 되었습니다. 이부망천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소리를 들은 경인권이 지선 이후 어떨지 이야기해보고, 경인권 도시들의 문제도 간단하게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가장 먼저 3선한 서울 박원순부터 이야기해볼까요. 나는 2010년대의 서울이 좀 문제 많은 도시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나 명백하게 도시를 쇠퇴시키는 사람이 3선을 하다니요. 예전엔 대한민국이 서울민국이라 문제였는데, 박원순은 그 국가적인 숙제를 전력을 다해 해결 중인 것 같습니다. 박원순 집권 이후 서울 인구는 급락세이고, 도시경쟁력 순위 같은 것도 많이 떨어졌으며, 이번 3선으로 인해 가시적이고 어느 정도 비가역적인 쇠퇴에 들어설 거라 생각합니다.

 

 여담인데 박원순의 3선은 명백한 민주정의 실패입니다. 차라리 관선시장 시절이 낫거든요. 아직 우리나라 민주정의 성숙이 얼마나 멀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케이스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아마 박원순이 3선을 하게 된 데는 서울이 전국에서 가장 자가거주율이 낮은 광역단체인 것이 큰 이유일 거라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장기임차세대를 제외한) 전입 임차거주자들의 투표가 지방자치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고, 제법 문제를 만들기 쉽다고 생각합니다. 임차거주인의 투표권을 빼앗자는 게 아니고, 장기임차거주가 드문 한국 현실에서 임차거주자 중 다수는 전입지역에 큰 관심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한편으로 경인권에 박원순은 그리 도움이 되는 인물은 못 됩니다. 인천과 김포에 인구를 늘려주고 있다는 점에서는 좋습니다만, 서울을 강남특별시로 만들고 있거든요. ‘강남시장은 박원순의 잘 알려진 별명 중 하나입니다. 서쪽의 양천, 강서, 은평, 서대문, 마포, 영등포, 구로, 금천 쪽엔 박원순이 결코 좋은 시장이 아닙니다. 문제는 경인권의 다른 도시들, 그러니까 인천, 부천, 김포, 시흥, (+광명, 고양)은 서울 서쪽의 흥망과 꽤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타 도시 입장에서 경쟁적인 관점에서 볼 땐 좋은 서울 시장인데, 협력의 관점에서 볼 땐 나쁜 시장입니다.



 박원순이 3선했으니 앞으로도 경인권 서울시민들은 엑소더스를 이어나갈 겁니다. 이혼하고 부천가고 더 망하면 인천 가는 게 아니고, 서울이 낙후되고 살기가 점점 나빠지니까 더 살기 좋은 인천, 김포, 부천 등의 신축 주거지로 움직이게 될 겁니다. 서울은 주택은 점점 낙후되는데 부동산값은 점점 오르는 기현상이 당분간 계속될 거고요.


 

 인천광역시는 박남춘이 시장에 당선되면서 스윙보트 도시의 아이덴티티를 이어나갔습니다. 박남춘이 어떤 시장이 될 지는 아직 지켜봐야 감이 잡힐 것 같지만, 그래도 박남춘은 인천 토박이고 인천에서 2회 국회의원을 했으니 약간 기대하는 면은 있습니다. 민주당 친노 정치인이라는 걸 생각하면 있던 기대도 사라집니다만.

 

 인천시장은 투쟁적이고 도전적이며 애향심이 가득해야 욕을 덜 먹을 수 있는 험난한 자리입니다. 다수의 인천시민들은 박근혜와 홍준표가 싫고 유정복이 불만스러우며 이부망천 소리에 화가 나서 박남춘을 찍은 거지, 박남춘에 대해 잘 알고 그가 좋고 민주당이 좋아서 박남춘을 찍은 게 아닙니다.

 

 한편으로 전전임 시장인 송영길은 인천에 대한 애정이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박남춘이 송영길보다는 애향심이 더 있고 더 나은 시장이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경기도의 경우 이재명은 자신이 남경필보다 나은 행정가일지 스스로 증명해야 할 차례가 되었습니다. 다만 그것이 쉽고 수월해 보이지는 않는데, 이재명이 성남시에서 펼친 행정은 긍정적으로 이슈화되긴 했으나, 그런 방식은 성남시 같은 조건에서 단기적으로만 유효한 것으로 보이는 면이 많기 때문입니다. 경기도는 매우 넓고, 전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광역단체이며, 행정력에 문제가 있는 곳도 많을 뿐더러, 자치시가 많아 성남시장 때처럼 일을 밀어붙이기는 쉽지 않습니다. 특히 경인권 경기도 지역은 행정이나 인프라 등에서 인천광역시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을 정도지요.

 

 김포시는 나의 생각에는 정치적으로 좀 문제가 많은 곳입니다. 지리적으로 한강과 두 독립된 광역단체 사이에 고립되어있고, 실질 면적이 좁은데다 - 북과 인접지라 개발이 불가한 면적이 넓습니다. - , 인구도 인천광역시 1개 구 수준인데, 그 인구 중 또 너무 많은 비율이 최근에 온 외지 출신입니다. 실제 인구수는 인천 남동구 > 부평구 > 서구 > 김포 > 계양구입니다.


 

 그런 작은 도시가 고립되어있고, 재정적으로 열악하다보니 꽤 복마전이 벌어집니다. 실현 불가능한 공약이 남발하고, 비리가 많고, 일 추진이 제대로 안 되며, 심한 환경오염 문제를 재정난 때문에 시가 방조한다거나 하는 문제가 벌어집니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 김포는 꽤 자주 인천과 병합 이야기가 나오고, 가장 병합이 유력한 곳입니다만 지금까지는 실패하고 있습니다. 여하튼 김포시는 이번에도 김포도시철도 개통이 또 연기되는 문제가 터졌는데, 그 도시는 빨리 인천과 합치는 것 외에는 정치적으로 답이 없습니다. 토박이는 인천과 합치는 걸 찬성하거나 그리 반대하지 않는데, 외지 출신들이 반대하고 있는 이상한 양상이 벌어지고 있기도 하지요.

 

 김포는 문제 많은 민주당 시장이 연임을 곧잘 하고 있는데, 이번에 또 이런저런 문제가 있음에도 연임되었습니다. 나는 김포가 잘 되길 오래 전부터 바라왔으나, 독립시로 남아있는 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기는 매우 어려울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 위치에서, 그런 인프라로, 그런 인구와 그런 재정으로는 뭘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얼마 없습니다.


 

 부천시는 지난 19대 총선부터 완전한 민주당 텃밭이 된 지역인데, 사실 나는 부천 시민들이 부천의 문제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지 매우 의심스럽습니다. 김포 정도는 아니지만, 현재 부천은 부천이 당면한 문제를 직접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재정난이 크고, 앞으로 무언가에 쓸 만한 남은 부지가 거의 없습니다. 그렇다고 경기도 쪽에서 부천에 무언가 배려를 해 줄 거라는 기대도 별로 없는 상황입니다.

 

 물론 부천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발전 중이었고 괜찮은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번영은 부천에서 일궈낸 게 아니고, 중앙 정부와 경기도에서 이룬 것인데다 부천의 최대 메리트는 서울접근성입니다. 많은 인프라를 인천에 의존 중이기도 한데, 재정과 부지가 없어서 보다 독립적인 도시가 될 수가 없습니다.

 

 이 와중에 본래는 한 지역이었던 인천과는, 인천이 직할시로 승격한 직후부터 계속 다투고 있는데 인천도 부천에 잘못한 것들은 있습니다만 전혀 현명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지 못합니다. 나는 부천은 결국 인천과 합병하는 게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 확신하며, 자치시를 유지하는 것으로 얻을 수 있는 메리트가 거의 없는 상황으로 봅니다.


 

 마지막으로 시흥시는, 그야말로 하나의 도시로 아이덴티티가 거의 없는 곳입니다. 존재감도 별로 없고, 서울 시흥역 때문에 더 혼동하는 사람도 많은데 거기하곤 위치가 좀 다릅니다. 서울 시흥역은 거기가 시흥이고 얽힌 사정은 복잡합니다. 여하튼 시흥시는 거기가 시흥시라는 이름의 단일 도시로 존재하는 것부터 문제인 곳인데, 통째로 인천에 병합시키던가 아니면 쪼개서 인천과 안산 등으로 병합시키던가 해야 하는 지역이고, 단일 도시로는 정치적인 답이 김포 이상으로 아예 없는 곳이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딱히 이야기할 것도 없습니다. 언제 따로 다뤄보도록 하지요. 

불체자에 대한 방화벽을 제거하려는 민주당

정치 2018. 6. 20. 20:22 Posted by 해양장미

 추천 브금

 

https://youtu.be/qCktGCkp--0

 




 예멘 난민들이 제주에 들어오면서 이슈화가 된 가운데, 지난 5월 민주당 박주민 의원 대표발의로 불체자에 대한 위험한 법안이 발의되었음이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관련 기사는 다음 링크고요.

 

http://www.insight.co.kr/news/161669




 대표발의한 박주민 의원은 한미FTA 반대 상경 농민 저지에 대해 국가배상청구소송, 용산 참사 대책위 활동가들 형사변론, 세월호 참사 의혹규명 등 법률지원 등의 변호사 활동을 했고, 진보신당 시절 진보신당에서 활동했었으며 2016년 민주당에 입당해 서울 은평구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근래는 메갈 옹호로 악명을 날렸고요.

 

 이 블로그를 오래 봐 오신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만, 나는 전부터 한국은 이제 이민자를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해왔습니다. 출산률이 너무 떨어져서 인구수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이민자를 많이 받지 않으면 답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불법체류자엔 엄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당하게 한국에 이민 올 수 있는 문을 열어주고, 그 문을 통과하지 않는 사람은 철저히 걸러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 나는 저 민주당 좌파들은 역시나 너무나도 위험하고 매사에 아집을 밀어붙인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위험한 법안 발의자들 9명의 민주당 의원들. 박주민, 신창현, 원혜영, 권미혁, 유승희, 박범계, 한정애, 임종성, 유동수와 민주평화당 황주홍 의원으로 알려졌습니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이래도 민주당이 보수정당이라 생각합니까?

 

 노무현 때 강금실이 외국인 지문날인 폐지를 했다가 문제가 많아 2011년에 와서야 지문날인을 부활시켰던 걸 기억해보십시오. 모든 한국인은 주민등록 시 지문날인을 합니다. 한국인도 지문날인을 하는데, 섣부르게 외국인부터 지문날인 폐지했던 그 아집이 저들에겐 그대로 있는 겁니다.

 

 애초에 불법체류자를 1년이나 구금시켜놓는 게 문제입니다. 1년 채우기 전에 다 쫓아 내야합니다. 올해 들어 우리나라 불법체류는 지난해보다 25% 정도 증가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여당은 참 멋진 법을 발의합니다. 막아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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