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87체제 이후의 다섯 대통령 중 가장 존재감이 없는 대통령으로 이명박을 꼽아야 할 것 같습니다. 벌써 반쯤 잊혀진 인물이 되었고, 어느 정도는 본인이 그것을 원하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그런데 본래 약점도 많고 지지자들도 열성적이지 않던 이명박이 어떻게 대통령까지 될 수 있었을까요? 이명박의 위상은 3김보다는 분명 아래이고, 강경한 지지세력이 있는 노무현같지도 않고, 박정희의 딸이자 한나라당을 몇 번에 걸쳐 구원해냈던 선거의 여왕 박근혜와 비교하여도 모자란 점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는 87체제에서 가장 압도적인 격차로 당선되었고, 87체제 이후 집권 시기 같은 당적을 유지한 최초의 대통령이기도 합니다. 또한 그는 선거에서 진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한국 정치사의 한 단면을 볼 수 있습니다.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요인은 그 무엇보다도 입니다. 그리고 그의 앞에 큰 행운을 내린 인물은 노무현과 박근혜, 두 대통령입니다. 특히 노무현이 없었다면 이명박은 대통령이 되기 쉽지 않았을 겁니다.

 

 과거를 되짚어보겠습니다. 노무현 당선 시점에서, 당시의 한나라당은 엄청난 데미지를 입고 있었습니다. 2002년 이회창의 패배는 2012년 문재인의 패배에 비해 당에 훨씬 더 큰 충격을 안겨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회창이 줄곧 유리한 고지 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노무현은 당선되자마자 민주당부터 갈아엎으려 들었고, 이 과정에서 김대중의 동교동계 등과 첨예한 다툼이 발생합니다. 그 수위는 당이 유지될 만한 정도가 아니었고, 노무현은 취임 이후 대북송금특검 드라이브를 걸고 정몽준 및 현대그룹을 다방면으로 공격하는 등 민주당계 분열의 불씨를 폭발시킵니다.

 

 만일 이런 과정이 없었고 그가 포용의 덕을 보였다면 이명박 대통령의 등장은 없었을 것이고, 민주당계는 계속 집권을 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이미지에 비해 사실 사람됨이 매우 좁은 노무현은 복수의 달콤함에 젖어 취임한 해 바로 민주당을 깨부수고 온갖 깽판을 칩니다. 그에게 죽거나 다친 인물이 꽤 있는데,  노빠 깨시민들에 의해 반쯤 은폐된 이 역사는 꽤나 잔혹한 면이 있습니다. 그의 통치 스타일은 이미지와는 달리 독재와 폭정에 가까운 면이 많았습니다.

 

 현 대통령 박근혜가 선거의 여왕으로 등장하게 된 계기는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탄핵정국입니다. 사실 박근혜는 그 이전 한나라당색이 크게 강한 인물도 아니었고, 이름값은 있었지만 그리 높은 영향력을 가진 정치인도 아니었습니다. 실제 김대중이 박근혜를 후계자로 키우려고 했었다는 증언도 여럿 있으며, 노무현도 당선 직후에는 박근혜를 장관으로 쓰려는 검토를 해봤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실제 2002 대선 과정에서 박근혜는 따로 정당을 세웠다가 실패를 맛보고 한나라당으로 들어갔으며, 이후에도 한동안 주류에 자리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위기에서 영웅이 나올 수 있는 법이지요.

 

 2004년 탄핵정국은 한나라당에 씻을 수 없는 피해를 안겼습니다. 당시 탄핵에 참가했던 의원 중 태반이 재기불능이 될 정도로 강한 역풍을 받은 상태에서 총선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박근혜가 당대표로 나서 기적적인 선방을 해냅니다. 비교적 보수적이고 여성을 지도자로 인정하지 않는 전통적인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박근혜를 인정하게 된 건 이 때부터입니다.

 

 여담입니다만 이후 민주당계가 위기일 때 누가 나서는지, 나서서 어떻게 하는지를 보면 저 때 나서서 사과하고 다녔던 박근혜가 그래도 영웅적이었었다는 게 떠오르고 새삼스레 비교가 되곤 합니다. 지금 이 순간 새민련은 어떤가요? 위기 시에 숨어 있는 겁쟁이들이 영웅이 되고 지도자가 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이후 박근혜는 한나라당의 당권을 거의 완벽하게 장악하고, 당의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개편하는 가운데 차기 대통령을 향한 걸음도 시작합니다. 야권 지지자들은 쉬이 박근혜를 폄하하고 업적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합니다만, 그러한 리더십을 발휘한 인물은 DJ이후 한국 정치계 전체를 통틀어 박근혜가 유일합니다. 물론 야권 지지자들의 오만함은 박근혜의 리더십이 박정희의 후광과 한나라당의 전근대성에서 나온다고 우깁니다만, 그건 한나라당의 사정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상태에서 하는 오만한 말이고 진짜 전직 대통령의 후광만 이용하려 하는 인물은 지금 새민련에 따로 있지요.

 

 대통령을 목표로 한 박근혜는 노무현 대통령의 실정을 부각시키며, 일시적으로 박정희를 그 대립항에 놓습니다. 이 워딩은 굉장히 성공적이었는데, 실제로 노무현 정권은 무능했고 실패를 거듭했기에 이를 박정희의 딸이 나서 박정희의 업적과 대비시키는 건 강력한 효과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다음에 있었습니다. 시민들은 박정희의 업적을 기리긴 합니다만, 박정희가 살아 돌아온다 해도 사실 시민들은 반기지 않을 거거든요. 국민이 원하는 대통령은 박정희처럼 잘 하지만, 박정희처럼 독재는 안 하는 사람이라고 보면 간단합니다.

 

 이 과정에서 박근혜의 워딩은 엉뚱한 인물을 띄웠습니다. 서울시장으로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유형의 리더십을 보여준 이명박이 차기 대통령감으로 부상하게 된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명박의 지지도는 박근혜를 넘어설 정도가 되었고, 박근혜는 자신을 유일한 대안으로 인지시키는 데 실패하게 되었습니다. 한나라당의 전통적 지지자들은 박근혜를 더 지지했지만, 대중적인 표의 확장성은 이명박이 높았던 것입니다.


 사실 박근혜가 머리가 나쁘고 속이 좁은 거야 세상이 다 알지요. 이명박도 탐욕스럽고 막무가내긴 하지만 그나마 머리는 덜 나빠 보이니 여론은 이명박에게 쏠리게 되어있었습니다. 이명박은 청계천까지 성공시키면서 포스트 박정희로 이름을 드높이며 서울시장 퇴임 후엔 지지율 1위를 달리게 됩니다. 노무현 정권이 워낙 아무것도 못하고 깽판만 쳐놔서 이명박 같은 시원시원한 스타일이 더 인기 있어지기도 했었지요.

 

 그래도 2006년만 해도 이 둘 중에 차기 대통령이 정해질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고건이 당시만 해도 지지를 많이 받고 있었고, 이명박과 양자대결을 하더라도 승산이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세 인물이 3강으로 꼽히던 상황이었지요.

 

 고건은 이명박이나 박근혜에 비해 개성적인 무언가는 부족했지만, 반대로 욕먹는 것도 덜한 유형이었습니다. 노무현이 탄핵 소추로 집무를 못 볼 때 대리로 국정운영을 잘 하면서 국민의 신뢰를 얻기도 했고요. 게다가 좌우중도적인 인물이라 표의 확장성도 넓었습니다.

 

 그런데 고건은 정말 어이없게도 같은 당인 노무현 대통령의 저격으로 정계은퇴를 선언해 버립니다. 그리고 고건을 지지하던 사람들 중 2/3 정도는 이명박을 지지하게 됩니다. 이게 얼마나 어이없는 상황이었냐하면, 2012년에 이명박이 박근혜에게 몽니를 부려서 박근혜가 대선 나가는 걸 포기했다고 생각하면 좀 비슷합니다. 어린 깨시민들은 이 무렵 노무현이 얼마나 맛이 간 언행을 많이 했는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만, 사실 노무현에게는 다른 생각이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예나 지금이나 악명 높은 노빠들의 악플이 고건에게 집중되었었기도 하지요.

 

 이후 시간이 지나 열린우리당도 파탄나고 대통합민주신당인가가 생깁니다. 이 과정에서 한나라당 출신이던 손학규가 합류하게 되는데, 여기서도 노무현은 몽니를 부려 손학규를 끌어내립니다. 물론 노무현이 공격하면 노빠도 공격하는 건 당연한 순서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노무현은 결국 대선후보가 된 정동영도 공격합니다. 이 때 어처구니의 완전 소멸을 겪고 영원히 민주당계 지지를 접은 사람도 좀 됩니다. 이에 노빠들은 결국 정동영 지지 안 하고 문국현이나 이명박을 찍고 그랬습니다.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노무현이 아무리 정치를 못했어도 당시 대통령은 노무현이었고 여당도 열린우리당이었습니다. 대선과 총선을 모두 이긴 정당이 그렇게 무력하게 정권을 내주는 건 흔한 일이 아닙니다. 후보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이명박을 정말 좋아했던 것도 아닙니다.

 

 노무현의 본심은 무엇이었을까요? 당시의 진상을 아시는 분은 원래 알 테고, 눈치가 빠르신 분들도 금방 깨달았을 겁니다. . 노무현은 이명박을 다음 대통령으로 만들고 싶었던 것입니다.

 

 혹자는 노무현이 친노그룹인 이해찬을 대통령으로 만들고 싶어해서 그랬다는 추론을 펼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랬다면 노무현은 아예 완전히 맛이 갔던 겁니다. 이해찬이 무슨 깜으로 대통령이 되나요? 그건 불가능합니다. 게다가 다른 정황도 있습니다. 노무현의 친형인 노건평과 이명박의 친형인 이상득 간의 커넥션이 있었던 것입니다.

 

 2007년 대선 직전 노건평과 이상득이 수차례 만난 건 모 언론에 의해 이미 보도가 된 적이 있습니다. 여기서 거래되었던 것이 노무현 가문의 비자금과 이명박의 BBK라는 의혹도 함께 합니다. BBK에 대한 이명박 측의 요구는 ‘BBK사건에 대한 공정한 처리정도였다고 하지만, 당시 이미 이명박 측은 노무현 가문의 비자금에 대해 정황을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 언론에서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도 없진 않으나, 이게 아니라면 당시 노무현의 행동을 이해하기 어렵기도 합니다.

 

 한편 노무현에게는 또 다른 동기도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본인이 김대중 정권에 한 게 있다 보니 보복을 당할 여지가 많았고 퇴임 후 원로로 존중과 애정을 얻고 싶었던 것이라 추정합니다. 실제 그는 퇴임 후 봉하에 내려가 민주주의 2.0이라는 정치토론 홈페이지를 열고 인기를 끌게 되지요.

 

 결국 이명박은 노무현과 박근혜, 두 대통령에 의해 비교적 손쉽게 로열로드를 걸은 것입니다. 그의 자질이나 여러 가지가 대통령에 그리 어울리지 않았음에도 말입니다. 사실 그는 연예인의 자질이 더 뛰어났어요. 먹방이라거나...

 

 다만 노무현의 계산은 이명박 집권 이후 뜻밖의 촛불시위 사태로 인해 순식간에 무너지고 맙니다. 애초에 커넥션이 있던 인물들이 잘려 나가고, 이명박 정권은 촛불시위대의 자금흐름을 추적한 끝에 노사모를 발견하게 됩니다. 노무현 본인은 그 와중에 눈치 없이 민주주의 2.0 같은 토론 홈페이지를 열어서 배신감에 분노를 느끼는 이명박을 더 자극하고, 결국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을 탈탈 털게 됩니다.

 

 노무현은 본인이 예전에 행했던 것과 유사한 표적수사를 받고는 정몽헌, 안상영, 남상국, 박태영, 이준원, 이수일, 강희도의 뒤를 따르게 되지요. 이들 모두가 노무현 정권의 수사로 자살한 경제인/정치인/관료들입니다. 표적수사는 아니지만 노무현 정권의 강압적인 이중곡가제 폐지 정책으로 인해 시위 중 경찰의 폭력으로 사망한 전용철과 이 정책으로 인해 분신자살한 진성규의 이름도 같이 이야기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습니다. 노무현 때의 시위진압은 정말 끔찍했습니다.

 

 만약 한나라-새누리당 10년 집권이 정말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은 일단 노무현부터 강도 높게 비판해야합니다. 대한민국의 진보적인 흐름을 다 흡수해서는, 제대로 해 놓은 건 없고 이명박한테 정권을 통째로 가져다 바친 인물이 노무현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노무현이 민주당 깨고 열린우리당까지 깨고 이사람 저사람 다 저격하고 광신도들만 남겨둔 탓에 민주당계는 아직도 엉망이고 솔직히 사망 일보 직전입니다.

 

 이런 과거를 아는 사람은 다 아는데, 깨시민들이 자꾸 역사왜곡과 조작을 일삼습니다. 청년 시절부터 DJ뽑았던 40, 50대가 왜 저번 대선에서 약속이라도 한 듯 박근혜를 뽑았을까요? 조중동에 세뇌되어서? 뭘 잘 몰라서?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지요. 하물며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은 노무현과 굉장히 친했는데요. 막상 노무현때는 조중동에서 중앙 빼고 조동이라는 말도 썼었습니다.